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 일뿐 마산은 역사적으로 창원부의 영역이었으며 1899년 개항장으로 지정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월 1일 창원부가 마산부로 개칭되고, 1914년 마산부의 영역을 개항장(마산합포구 일대 구시가지) 일대로 축소시키고 잔여지역을 창원군으로 분리시키면서 이때부터 창원과 행정적으로 분리되었다가 2010년 7월 1일 통합하게 되어 96년 만에 다시 창원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2001-2003 상남동 상업지구 재개발이 완료 되면서 50만 구 창원지역 사람들이 시내버스 30분 타면서 창동 찾을 필요가 없어지게 됨 (자차 몰면 차댈 대도 없는 창동) 합성동은 그나마 유지가 되는 이유가 구 창원 서부지역(의창동 팔용동 명서동 김해진영읍) 사람들도 심리적으로 가까운 곳이라
태양신 입니다 고김부영 창녕군수고요 계팔동네 산다카니까 아~~~그렇구나 하종근이를 만나고 일났네 너그가 그런사이였나 돈이 1억3천만원이라 카던데 그뒤에 오는말은 너그끼리 생각해라 이러케요 꺼꾸로 중학교 2학년때 먼저 전학가고 만년필 선물 받고 조금지나니까 하종근이라캐고 우리동네 까지 왔고 알아보니 조금 착하고 학생회장 연대장 이라했고 뽀뽀만하고 말데요 끝까지 마산가지뭐 내가출하고 나면 조금 골치아플끼라 끝이다 영원히......
태양신 입니다 서울 양수오빠는 데기 어렵데이요 그때 우리도 조금 나아졌고 그런데 영선언니가 서울 양수가보자 그래서 그래 난 세벌짜리 옷 반바지 위에거 두벌짜리데 가죽옷 비슷하게 입었고 옷이 날라갈분 했습니다 좀 살만하지요 유행따르고 일류미용실 가고 석미용실 송죽미용실 두군데요 그래서 송죽보양탕 이지요 물쓸라고 물이 줄줄 흐르고 있고 목사님 되다카는기 기가차고 맥이축빠져부고 작은엉매는 병원에서 허리에 ㄸ줄매어놓고 사는것은 영 파이더라요 요새는 도선 때문에 잘살겠네 바람 피웠고 돈이 어마어마 하게 돈들어오고 그거 내돈이다 구절띠기 한테 원수오빠한테 결혼식날 세명이서 오고 조향숙이 돈없어서간다 그냥 가자 도선가 내몸팔아서 결혼했고 이상하다 결혼하고 돈이 이상해서 물어본다 ㅅㅂㄴㅇ ㅅㅂㄴㅇ 딱두마디 먹통만들었다 차단 시켰다요 다른동생들도요 도둑질 했는거 하며 싹다 말했지요 김선옥이 한태는 서문시장 한의원 같이해주는곳 요새는 건물안에 거기서 장사하데요 나도 중풍 들고 찾아갔지요 뱀구워서 목에 훅하고 뺃으면 말 잘 듣데요 바람 피웠는거 말했지요 영선언니는 요새는 안카는데 샤니빵인가 빵장사 하는사람 하고 바람 피웠잖아요 아이고 꼬시다요 막덕다요 화이팅~!!!
솔직히.. 마산 10년뒤에 보장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제가 마산에서 4년 근무하다가 김해로 넘어왓지만, 마산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지역분위기도 문제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정말곤 내세울 것이 뭐가있는지요? 지금 그 교육열정도 어쩌면 고입 선발고사 170~180받아야 인문계갔던 70중후반 생들이 지금 학부모가 되서 그렇지, 아마 이 세대의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그정도 교육열도 유지될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84년생입니다만. 저희 세대부터 고등학교 간판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걸 조금씩 알아간 세대거든요. 게다가 저희는 연합고사 200만점에 110점 조금 더 받으면 인문계 갈 수 있었던 데다가, 저희 후배들은 전부 중학교 내신성적으로만 갔던 점에서 볼 때, 지금 중고등하교 학부모만큼의 교육열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제 직업이 교사거든요... 지금도 고교 비평준화 회귀, 고입선발고사 부활 울부짖는 동네가 마산입니다. 지금 그걸 살린다고 해봣자 마산 안살아납니다. 중학생 숫자가 고등학교 정원보다 턱 없이 부족하거든요. 거기다가 MZ세대들이 대도시 혹은 김해나 양산같이 대도시와 접근성도 좋고 집값 싼 동네로 다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고민하면 아무리 늦어도 10년뒤엔 마산 인구의 평균연령이 급속도로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산도 언제까지 젊은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애향심과 열정페이에만 호소할겁니까? 뭔가 대책을 내놓아야 젊은 사람들이 유입이되지~ 그저 젊은사람들 빠져나간다고 한숨만 쉬면 뭐가 달라지는지요?
@@리코디언수쌤 교통도 사람질도 기타인프라도 창원이 월등한것같아요 김해 양산은 부산이고 싶어하는 도시라고 밖에 안보이고... 장유는 창원에서 일하고 동부는 부산에서 일하고 김해가 좋다는게... 뭐가좋은지?? 창원 부산 비싸니깐 싼집찾아 김해 양산 아닌가요?? 글쓰신분이 김해에 좋은직장 찾으셔셔 그냥 좋은분들이랑 만나신거같아요
광역시 포함 전국 7대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서울,부산,인천,대구,광주,대전 광역시 빼고 마산이였습니다. 인구대비 최고의 도시중 하나였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마산 가계부동산은 중간 평수가 없고 아예 작거나 아님 35평 이상부터 시작이였습니다
25살까지 마산에 살다가 지금은 경기도..어느덧 46살이네..창동 그립다...
서울에서 살다온 와이프한테 지금도 창동갈때마다 애기한다.여기 90년도후반에만해도 주말에 사람들까리 어깨 맞대고 총총걸음으로 걸어가야했다고..
40년이 지나서 추억만 남아서 그리운 마산 창동 구석구석 거리들, 지금도 어디에 무엇이 있었고 골목골목에 자리하던 세탁소며 구멍가게 구두수리점. 그리고 온갓 잡가게들이 눈에 선하다, 그립던 마산 제2의고향.
1998~2000년 고등학생때 창동 맨날 갔었지~ㅋ 부림시장에서 625떡볶이 사먹고 아트뉴스 구경하고 하이프랜드랑 무료입장가서 옷구경하고 옷 사입기도하고 창동 레코드가게에서 핑클,ses,신화,h.o.t, 조성모 등등 테잎도 사고 남성동 파출소옆 세가 오락실 가서 철권테그하고 근처 주라기 오락실, 불종거리쪽 2층에 사이버스페이스였나? 거기 오락실가서 맨날 펌프하고 골목 안쪽에 오락실 두개 더 있었는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안나네ㅋ 졸업할때쯤 어시장에서 창동 들어오는 초입에 가건물로 지어진 조이맥스라고 오락실이랑 피시방 같이하는 대형 게임존 생겨서 맨날 애들이랑 몰려다니며 펌프하고 포트리스하고 스타하고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군.. 지금은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구나 그때가 참 그립다ㅎㅎ
저랑 같은 세대신거 같네요 기억이 다나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지금은 고향떠난지 10년이 넘어서 생각이 잘 안나네요😅
스마트폰도 없고 그런 시절에 어떻게 살았냐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저 시절에 저 시절만의 재미가 있었던게 옷사러 창동 간다고 하면 신나가지고 가서 길거리 분식 먹고 극장에 어떤거 개봉했는지도 둘러보고 버스 겨우 타가지고 돌아오곤 했는데 진짜 재밌었다.
1분6초 제이제이 옷가게 간판 보이네요.. 그당시 제이제이하고 부림지하상가 페인트타운 옷가게 두군에 많이갔었는데
추억 일뿐 바람과 함께 사라 졌다
엄청 핫 하였네요
2005년 합성동에 마산CGV 생기고 창동은 연흥극장?이 문 닫으면서 급격하게 상권이 이동했던거 같네요.
연흥극장에서 타이타닉 봤었는데 ㅜㅜ
온라인 마켓 생기기 시작하면서 죄다 망한듯,, 창원이고 진해고 주변도시에서 옷사러 올일이 없었으니,,그후 수출도 죄다 망하고,,
창동 댓거리 합성동 상남동 다 그립네 ㅜㅜ
저는 창동이 참 좋더라고요^^추억도 많고
진심 찐 마산인으로서 다른곳보다 창동이 제일 추억에 남음.. 어렸을때 어머니 손잡고 맨날 롯데리아 가서 데리버거 사주셨던...
상남동. 어린시절 제비산꼭대기에서 살던시절이 새록새록. 디게 못살았지만.경치는 좋았지. 마산 앞바다가 훤히다보이고 고래와 똑같이 생긴 돛섬도보이고. 우물물도 밑에서 지고나르던시절.그때는 육호광장 철길에서 연도 많이날리고 했었는데.제비산 꼭대기에있는 선화고등공민학교운동장에서 친구들이랑 오징어게임 토까이치기(자치기)하면서놀고 성호골로 가재잡으러가고...못살았지만 그때가 그립네😊
진심 상상을 초월했던곳이다 사람많기로
약속장소 코아양과 앞이나 남성동파출소 앞이 주로 였는데 ㅎㅎ😊
학문당 서점, 시민극장앞
1순위 코아 2순위 시민극장 3순위 고려당
고려당~금백제과
오랜만에 창동 풍경 잘 봤습니다. 무학국민학교 다닐때 가족모두 창동 나가면 사람들한테 휩쓸려 다녔는데...ㅎㅎ. 조만간, 가 봐야 할 듯.. 아.. 옛날이여~~~
내가 대학 92학번인데..저시절 창동은 정말 경남 최고의 핫플레이스엿다.
사람에 치여서 못다닐정도였지. 지금 창동나오면 정말 격세지감 느낀다. 만화방이 웬말이냐 ㅋㅋㅋㅋ
학문당. 고려당 . 시민극장. 지하상가. 코아양과 다 추억이다
ㅎ저랑 갑장이네요.ㅎ.나셀커피집.코아양과 등등 그립네요.
@@탱쑤기 나셀커피숖 ㅎㅎ 참 잊고 있었는데 ㅎㅎ 단골 이었죠.. 반갑습니다
80년초에 고고장 바덴바덴 많이 놀러갔죠
입장료 1.500원인가 했는데 부림지하에 롤러스케이트장으로 해서 기억이 새록새록~~~
입구에서 외쳤죠. 어서오세요 디스코 바덴바덴~이라고. 밤새 콜라한잔먹고 춤추고~😊
저도기도라고했나요 어서오십시요 대벌스텐드바 2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저 마산 사는데 창동 이 많이바꼈네용...
참 그립다 마산 창동
시민극장이 저희엄마친구아버지가 운영하시는곳이더라구요. 그래서 한번쯤가보고는 싶었는데 아쉽네요
태양신 입니다 옛날에 김영미 입니다
창녕여고 2학년때 하종근 창녕군수를 꺼꾸로 시간이 딱하게도 멈춤되었슴니다 가출하고
제가 억울하고 첫경험도 있고요 그런몸으로요
바람이 들고요 박광윤가 그칼줄이야요 저한테 사진도 한장 있고요
가정실습한다고요
그런아가 바람피워
가출 했다네요
말은 못하고 그랬던사람있다고요 성격이 그래서 모르지만요
부끄러움이 많아서요
1년동안 있스면서 그래도
결혼 한번은 해야안되겠나 마산서 웃슴팔고 완월동에서 몸팔고요 돈번거 김선옥이 한태 다 빼끼뿌고요 남양다방 그사람과 처음만나격어보니 오르가즘 느꼈고요 메시지 창에 글 많이 쓰나습니다 독감 예방접종 하는데요 차단 해뿌데요 하종근 창녕군수 1년하고 감옥살이 6년동안하고 대학 갈라고 시험 보니 떨어져부고 유신학원다녔고 영대출신 창녕종고 학생회장 연대장 이고 김영미 결혼 예정자 되고 데이터 할땐 부끄러움이 많아서 골치아픔니다 고2때 목욕하고 하얀원피스 작은언니 선물 좋는거요
박광윤이가 나를 속샘은 요곳이구나 경년이가 내따라가자 그래 남지미장원에 가더니 광윤가 하는곳이데 아무말도 못하고 입은다물고요 나중에 알고봤더니 하종근 하고 바람 났다네요 기가차서요 오르가즘도 없으면서요 저는 국민학교 3학년때 권담임선생님이 오르가즘을 했고요 김영미 나와 이거 탄로났다 옷은 팔을빼뿌는거 바로해서 선생님한테 나갔지요
선생님이 ㅈ을봤고 크데요 키가 185cm정도 되지 싶성니다
선생님은 자꾸 하고요 저는 할수있나요 가만히 서가 열심히 봤지요 ㅎㅎㅎ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저도 조용히 왔고 다시는 선생님 얼굴 보는일 없을것이다 아이고 무시라요
태양신 입니다
마산대학교 다니다가 그만두고 일하러 공장비슷한거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다닐적에 앞산에 놀러갔다가 뱀이한마리 잡아다가 그걸 불에구워서 맛있게 먹었데요
또 1년동안 있었면서 좀 그랫던 모양 이데요
춥어가 저그엄마가 벌벌떨어가며 있었고요
다들 그렇게 살았데요
우리집에 같이 놀러오고
또 하나는 내정지방에 내가 자취하고 빈방이고 그기에 자고요 왜 그랬을까요 눈치로 대강마추고요
내 좋아하던 많습니다
사랑이라 카가요
살인자인데요 비밀 이지만요 그때는 법원에가서 물어보면 아실고요
아버지가 동생하나 있는게 다 잖아요
어디묻현던지요
도선은 지가 필숙언니 지하고 동갑 그집에서 막
만지고 어째한번해볼라고
카는거 방문을 차고 마당으로 나왔데요
옛날에 마산서 그날라카는거 말아부고요
도선도 말았부고 아~~~인제 알겠다 눈치끌려야지뭐 ㅎㅎㅎ
다른것은 다 놔두고 생전 처음으로 관계 맺었고 (조금 적다싶어도 참아라)
다 말해주던걸요
요만거 다요 여호와 하나님아 한태 물어보이소 거짓말 하는가요 아닙니다 일기장 보여드릴께요
엄청 납니다 가족들 사진까지로요 남자들 키가 크데요 엄마 달맞나봐요 차단 해버리다요 신경질이나서요
저녁이나 .주말. 크리스마스 이브때는 창동골목 구석구석에 인파들만가득했었는데 발디딜틈없이 그때 왜뭐가있어서 창동거리를 누볐을까 그때가좋았던것같아요
고려당앞에서 중앙시장까지 갈라면 20분 걸리던시절
80~90년대에 잘나갔던 7대 도시의 추억뿐... 창원으로 통폐합된 이곳은 이제 노인도시가 된 지 오래.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 일뿐
마산은 역사적으로 창원부의 영역이었으며 1899년 개항장으로 지정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월 1일 창원부가 마산부로 개칭되고, 1914년 마산부의 영역을 개항장(마산합포구 일대 구시가지) 일대로 축소시키고 잔여지역을 창원군으로 분리시키면서 이때부터 창원과 행정적으로 분리되었다가 2010년 7월 1일 통합하게 되어 96년 만에 다시 창원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어렸을때 할아버지댁이 창동옆에 중성동?인가 거기였는데 90년대 마산 내려가면 창동에 사람 진짜 많아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면서 다녔는데
20년만에 일이 있어서 부산갔다가 한번 들렸는데 진짜 사람이 안보임ㅜㅜ
80년대 후반..길벗레코드...코아양과...성당앞 피자집도 괜찮았고..안집 김밥도 맛있었지. 아남나쇼날에서 전축이랑 tv도 샀었고..영화관이며 볼링장도..길벗레코드 맞은편에 첨으로 코인노래방도 들어왔었지. 한곡에 300원 했던거 같고..골프매장도 많았었고 또 뒷골목엔 룸싸롱들 경복궁...등등 ㅎㅎ 그땐 그때가 천국인줄 몰랐어. 그립다.
2000년 초반까지도 사람좀있었는데ㅎㅎ 지금은 진짜사람들 많이빠졌음 ㅎㅎ
저도 마산에서 4년근무하고 여긴 도저히 아니다싶어 김해로 도망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1-2003 상남동 상업지구 재개발이 완료 되면서 50만 구 창원지역 사람들이 시내버스 30분 타면서 창동 찾을 필요가 없어지게 됨 (자차 몰면 차댈 대도 없는 창동)
합성동은 그나마 유지가 되는 이유가 구 창원 서부지역(의창동 팔용동 명서동 김해진영읍) 사람들도 심리적으로 가까운 곳이라
태양신 입니다
김도선이가 큰집 바로옆인데요 생전에 큰집에 못옵니다
저그 형제들 다요
저그 구절띠기가 추석다가오고 무우가지고
전을 굽으가 먹고 엄마 사과 카는데 눈치로 얼른 집어넣고요 그길로 우리집에 안옵니다
원수같이요 저는 자꾸 갔답니다 살인하고 제사지낼때 오후 4시되어서 하면 큰일났다
제사는 밤12시 정각에 한다 살인자는 저번에 남부서에 우리집에 경찰이고요 두분이 오셨길래 벌써 유통기한 지났고요 말이 99%로 되잖아요 고마 말이 그만하게 되었고 글로써요 알건 알아야지요 단 두형제인데요 어디다라고
말할까요 알아야지요
어디에 있는지 파묘하여 달라해야지요
지금 다른사람묘는 파묘되고요 할매묘는 새밭밑에 있고요 이것밖에요
신경질이나서요
또 두분이 오셨습니다
경찰이고요
그러니까 총4분이지요
울집이 저기 근처..어릴때.....술레잡기를 저기서햇는데
태양신 입니다 옛날에 김영미 입니다
김원수 양수 덕수 도선 학선은 대구갔고 가출 했고요 담배도 10개피 피우데요 안캐도 안다 학선지뭐 탱자가시 났는거 2개만 치우고 살짝 밖으로 나가고 더가고 알고봤더니 내가 데이터 하로갔다 그런데
옷다벗고 종근오빠가 봤낳으마 어짜겐노 이게 진짜 블로그 보는 사람들 눈이 뻘거해볼라고 캐사는데요 홀딱 벗어낳고 술한잔 마시고오께 그래가지고 마루에 큰상채려나놓고
돼지고기 안주했게지뭐
큰방으로 들어가데
우리는 데이터하고 몰래 딸기농사 지었거든요 둘째오빠꺼요 김봉수씨 남묘호렌게교 믿고요
딸기농사 잘되었지요
부끄럼만고요 그때는 말한마디가 얼마나 어렵다고요
평생동안 그카고 살았고
우리 OK안경무역회사 채려놓고 브라질 살고 미국살고 정경화 사장이고요 돈하루에 1억씩 들어오고요
우리집에 와가 저녁 아침 밥값 받아야지요 서현진 사장이고 또 한사람 있고요 열기매운탕 온마리 얼마나 맛이 있었다고요 장금이돼지국밥 우포식 추어탕 유명한 잔치국수 북구청 있는데요 1등요
할매가 자전거 타고 우리집앞으로 왔다갇다하고요 노원국수집은 아저씨가 아파트 한쪽의 서가 자꾸 우리인데로 쳐다보고요 신납니다 ㅎㅎㅎ 그런데 제가 무단히 작은방에서 아뿔사 다리가 뿌러져서요 곽병원 119차로 아파서 죽겠더라요 또 한가지 더 있고 M병원 그기서 오른쪽 왼쪽 무릎밑에요 똑같이요
화이팅~!!!
수정요
살인자 되고요
저그애비 눈봉사고 동산앞에 나가서 고함을 질러대니 뭐꼬 알고났더니 작은아버지네 배가고파서 죽겠다 질질끌리가 집에 도착 했습니다 송죽보양탕 할때 제가 봤거든요
시퍼렇게 눈알멩이가 두개가 30cm떨어져있고
무시무시 하더라요 벌벌 떨리고 또 장사해야지요
장사해보니까 재미나데요
돈이 은행에 다그쪽으로
빠지고요 2마리반 팔았구요 일하는 사람 양복입고 몇사람씩 와가
버팅고요 1년하고 아이구아 큰일났습니다 홍재수가요 터키에서 돈이 어마어마 하게요
신납니다 2층에 내과에 들러 태반그게 인기라데요 주름살도 안생기게 해 주고요
홈플러스도 같이가고 과일도 박스띠기로요
이렇게 되자 중국으로 갔다네요
돈도없고 남의집에 돈버려가고요 처음에는 살랑살랑 하게 놀던날도많고 어마야 자꾸 손님이 빠글빠글한게 장사잘됩디다 장사잘되고
90만원받고 일몬해주겠다 이카이키네
그러마 다른일 찾아보지요
장금이돼지국밥 우포식 추어탕 유명한 잔치국수 북구청 있는데요 1등이고요
화이팅하세요
태양신 입니다
김원수 살인자 였습니다
구절띠기하고 양수오빠하고 덕수하고 도선하고 학선은 지금 대구에살고있고 다 알지요 이젱이 인데요
저그 작은방에서 이잡을라고 종이깔고 이잡는마스마 아이구 더러버라 큰이 작은이 쎄까리 억수로 많더라요
그런손으로 몰래 숨어가 딸기따고 딸기값 내도 5형제들 내돈 1억2천만원 이다 이자는 차차 받기로 하고 말안하데요 차단 시키데요 대한민국 정부에서 조사들어가면 될것이고요 저는 편안합니다
화이팅~!!!
태양신 입니다
김원수 마산수출자유지역에 근무했고요 다 알아야지요
살인자 인데요
사람이 죽었다고 말해줍니까 어디있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까만밤에 누가볼까봐요
단두형제된요 끌어묻었다캐나노이요
우리아버지는 싹파띠부고
화장해부고 고김영수 짓인게지요 대궐같고요
싹다팔아무따네요
대구 신천1동 2층에서 화장해야된다 신경질이나서요
인제 태양신이고 옛날에 김영미고요 태양신이 집도 받고 환생해서 둘이서만 잘살고요
행복하게 살랍니다
5형제들들은 여기에 못오루구로요 제가 열심히 할것입니다
저당시 약속장소 코아양과앞 시민극장앞 남파앞 조흥은행 앞이였지~창원공단 총각들 수출 아가씨들이랑 미팅 마니 했는데...아 옛날이여~~~
창동거리에 명곡사 그리고 사거리에 지하 커피은행 모두가 그립다, 지금은 사라졋겟지?
집이 창원이라 창동을 가끔 가는데 당연히 영업중인줄 알았는데 기사 찾아 보니 폐업했다네요ㅠ갈때마다 지나다니는곳인데 왜 몰랐을까요
예전 마산이 창원에 통합되었다고 했을 때 이해가 안갔죠. 내 머리속엔 마산이 더 큰 도시였는데..
우리집이당
태양신 입니다
ㅎㅎㅎ 창동 이네요
창동에 흑과백 크라식 다방에서요
2소개소 마산 창동에있고
여기가 시내 한복인데 저한번 물어보자 일할곳 좀 찾아보게요 어마야
첫경험도 있는데요 일할곳 찾을라고 왔드니
내옷을 벗기고 뺨3대 맞았고 게보린 2알 먹고요 조금 있으니까 다방에서 나오는거 같아섭니다 저그끼리 눈치로 그카데요
머리가 아파서 죽을뿐 했습니다 2알먹고 한참 지나니까 약발이 있더라이요
여호와 하나님아 한태 배웠습니다 말 다 통합니다 정말 입니다 이만 총총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아 한태 배웠습니다 말 다 통합니다 정말 입니다
아뿔사 중학교 2학년때 우리반애데 부산으로 전학간다그카는기라요
계팔동네요 그기같으면 얼굴 한번 더볼까 싶어서요 눈이 펑펑 쏟아붓고요 갸가 김순임하고 바로 앞집에 살고있고 방문열어부마 될끼인요 그래서 설날지나고요 반찬도 많고요 이집에는 김도 아주많이주고 아이구아 김이 비살낀데 이레 주노
여호와 하나님아 예수 그리스도야 고김웅기 말 다 통합니다 정말 입니다 이만 총총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아 한태 배웠습니다 말 다 통합니다 정말 입니다
화이팅~!!!
태양신 입니다
고김부영 창녕군수고요
계팔동네 산다카니까 아~~~그렇구나 하종근이를 만나고 일났네 너그가 그런사이였나 돈이 1억3천만원이라 카던데
그뒤에 오는말은 너그끼리 생각해라 이러케요
꺼꾸로 중학교 2학년때 먼저 전학가고 만년필 선물 받고 조금지나니까
하종근이라캐고 우리동네 까지 왔고 알아보니 조금 착하고 학생회장 연대장 이라했고 뽀뽀만하고 말데요
끝까지 마산가지뭐 내가출하고 나면 조금 골치아플끼라 끝이다
영원히......
태양신 입니다
서울 양수오빠는 데기 어렵데이요 그때 우리도 조금 나아졌고 그런데 영선언니가 서울 양수가보자 그래서 그래 난 세벌짜리 옷 반바지 위에거 두벌짜리데 가죽옷 비슷하게 입었고 옷이 날라갈분 했습니다
좀 살만하지요 유행따르고 일류미용실 가고 석미용실 송죽미용실 두군데요
그래서 송죽보양탕 이지요
물쓸라고 물이 줄줄 흐르고 있고 목사님 되다카는기 기가차고 맥이축빠져부고 작은엉매는 병원에서 허리에 ㄸ줄매어놓고 사는것은 영 파이더라요
요새는 도선 때문에 잘살겠네 바람 피웠고 돈이 어마어마 하게 돈들어오고 그거 내돈이다 구절띠기 한테 원수오빠한테 결혼식날 세명이서 오고 조향숙이 돈없어서간다 그냥 가자 도선가 내몸팔아서 결혼했고 이상하다 결혼하고 돈이 이상해서 물어본다 ㅅㅂㄴㅇ ㅅㅂㄴㅇ 딱두마디 먹통만들었다 차단 시켰다요 다른동생들도요
도둑질 했는거 하며 싹다 말했지요 김선옥이 한태는 서문시장 한의원 같이해주는곳 요새는 건물안에 거기서 장사하데요 나도 중풍 들고 찾아갔지요 뱀구워서 목에 훅하고 뺃으면 말 잘 듣데요
바람 피웠는거 말했지요
영선언니는 요새는 안카는데 샤니빵인가 빵장사 하는사람 하고 바람 피웠잖아요
아이고 꼬시다요 막덕다요
화이팅~!!!
안집 김밥
코아양과
마산 족발
묵자자골목~~
감염떡볶이는 또어떻고요~~ㅋㅋㅋ
영상속 창동은 80년대
19살때 창동밴드연습실 다니다가 창동에 천원서점 알바하던 진영이 누나~ 알게되서 우정쌓고~ 하 오래전.. 이 누나는 나중에 검사가 되었는데.. 아직 하시나ㅋ
나의 창동은
고딩때 친구들과 일탈했던 추억의장소
솔직히.. 마산 10년뒤에 보장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제가 마산에서 4년 근무하다가 김해로 넘어왓지만, 마산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지역분위기도 문제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정말곤 내세울 것이 뭐가있는지요? 지금 그 교육열정도 어쩌면 고입 선발고사 170~180받아야 인문계갔던
70중후반 생들이 지금 학부모가 되서 그렇지, 아마 이 세대의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그정도 교육열도 유지될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84년생입니다만. 저희 세대부터 고등학교 간판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걸 조금씩 알아간 세대거든요. 게다가 저희는 연합고사 200만점에
110점 조금 더 받으면 인문계 갈 수 있었던 데다가, 저희 후배들은 전부 중학교 내신성적으로만 갔던 점에서 볼 때, 지금 중고등하교 학부모만큼의
교육열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제 직업이 교사거든요...
지금도 고교 비평준화 회귀, 고입선발고사 부활 울부짖는 동네가 마산입니다. 지금 그걸 살린다고 해봣자 마산 안살아납니다.
중학생 숫자가 고등학교 정원보다 턱 없이 부족하거든요.
거기다가 MZ세대들이 대도시 혹은 김해나 양산같이 대도시와 접근성도 좋고 집값 싼 동네로 다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고민하면
아무리 늦어도 10년뒤엔 마산 인구의 평균연령이 급속도로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산도 언제까지 젊은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애향심과 열정페이에만 호소할겁니까? 뭔가 대책을 내놓아야 젊은 사람들이 유입이되지~
그저 젊은사람들 빠져나간다고 한숨만 쉬면 뭐가 달라지는지요?
어차피 인구자체가 많이 줄었기때문에 큰 희망은없고 창원시란 명목하에 같이 커가는수밖에 없죠
부산보다 살기좋고 김해 양산보다 좋다고 생각하는데...
부산이랑 가깝다는게 좋다는 기준이면
부산분이신가 보네요;;;
@@Settima_ 고향은 마산인데 지금 김해에 정착했죠~ 부산뿐만아니라 인근도시랑 접근성하나는 끝내주는 도시죠~
@@리코디언수쌤 접근성 좋으면 뭘하나요?거기 사람들 다 돈은 딴동네서 벌고 있지 않나요?ㅋ
@@리코디언수쌤 교통도 사람질도 기타인프라도 창원이 월등한것같아요
김해 양산은 부산이고 싶어하는 도시라고 밖에 안보이고...
장유는 창원에서 일하고
동부는 부산에서 일하고
김해가 좋다는게... 뭐가좋은지??
창원 부산 비싸니깐 싼집찾아 김해 양산 아닌가요??
글쓰신분이 김해에 좋은직장 찾으셔셔 그냥 좋은분들이랑 만나신거같아요
마산창동 대단했지
아 태양극장이다
80년대중반. 불종거리 판문점갈비집에서근무했죠 갈비 로스 돼지갈비. 주방에서 즐거윘죠.
그래 내가 96 7 8년도 고등학생 때니까 마산에는 만나면 코아제과 앞에서 만났었다 그때도 학생들 진짜 많았다 지금 옷가계가 상호가 생각 나지 안지만 연애인 입는 옷도 팔고...
라떼는 창동이 번화가였제
나 국민학교때
으마으마했다고 들었음
지금은 텅비었다던데
크~~~~~~~~~~❤
마산이란 지명이 없어진 거 같아 아쉽다 왜 창원시가 됐냐
그럼 분리쳐하세요 빚쟁이 도시 통합해서 꿀이란 꿀은 다 쳐빨면서 불만이 많구나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마산이 그립고
젊은사람은 마산이 촌스럽구
@@ghiam111 어짜피 같은 시골살면서 꼴값은 창원이나 마산이나 그냥 시골이지ㅋ
@@choop1989 아 같은시골이라서 마산에는 기생수도 존나게많고 상권 다합쳐도 상남하나에 못비비고 집값도 그지수준이구나 ㅋㅋㅋㅋㅌㅌㅋㅋㅋㅋㅋㅋ
@@ghiam111 이런 말 하는게 창원 욕먹이는지 모름. 내 어릴적에도 마창진은 이상하게 양아치근성 있는 애들 참 많았는데 이분은 그때 그대로 몸만 큰채 정신은 그대로인듯. 학군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이런애들하고 안섞이게 키워야하거든
저때가 더 세련된게 있다... 저 때는 음식이 지금처럼 맵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한식은 빨갛게 고추맛뿐이 안나고 동남아 음식인 줄 ㄷㄷㄷ 세련된 음식은 식재료 본연맛으로 먹는대... 현재 한식은 매운 고추 양념맛으로 먹는 촌스럽고 상스러운 음식들로 변했어 ㅍㅍ
25년전쯤인가 마산 합성동 터미날쪽 진짜 사람들 바글바글 했ㅇ,ㅁ
주변 가게도 장사 잘됐고
사람들이 북적북적 횡단보도 파란불 되면 사람이 줄지어 신호 바뀔때까지
진짜는 코파카바나ㅡ바덴바덴ㅡ쥴리아나ㅋㅋㅋ전국 춤쟁이들다모였지!영상에는 촌스런사람들뿐이지만!!
심현보 아나운서 ㅎ정겹다
코아 앞
탑건… 이 있네 ㄷ ㄷ 😂
1984년 이령국민학교 첫 사랑 잊으라 윤은실😗
아 신포동
떡
내 기억에 창동은 토요일만되면 패싸움났던거같은데 ㅋㅋㄱㅋ
저시대 시민극장에서 둘이서 영화보고 짜장면 사면고 버스타고 집오면
딱 만원 들었었다
코아제과 기억나네
엄마 아빠 데이트장소가 창동이였다는데 ㅎㅎㅎ
한일합섬 있을 적엔 결혼하기 좋았죠
마산시는 누구나 아는 도시였는데 창원시로 흡수통합 되니 아쉽네
저 시절도 imf 터지고 살기 좋은 시절은 아니였어 다 자기가 사는 시절이 힘들고
그 힘든 와중에도 잘 사는 사람 열심히 사는 사람 다 있었다. 불평불만 그만하고
열심히 살자!
창원과 분리해서 다시 마산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 도시로 탈바꿈하면 좋겠다.
쓸데없이 돈들이지말고 술집이나 오래좀 영업해라
밤10시만되면 불 다꺼지는데 누가 창동가냐?
진짜 맛집은 바라지도 않는다
좀 친절하고 절실한 사장들이 모이면 창동 금방 번화가된다
지금은 그냥 시골
창동은옛날이야기
완전히망했다
시대흐름 ~~~
안타깝다
1980 한국 인신매매 천국 아니던가🤔
민생 경제발전😗
시민극장에서 우뢰매 봤는데 극장에서 아재들 담배피던시절 ㅎㅎ
끝물 딱 2007년도에 항아리바지 입엇던 애들 댓글 다달아라 ㅋㅋㅋ
창동도이제는완전히
망했네
아~옛날이여~
많이 늙으구나😗 1984년 이령국민학교 첫 사랑 잊으라 윤은실
개망한동네
옛날 합성동이 그립다
밀양수산 동명중하교 1학년 마치고 2학년부터 마산중앙중하교 다녔는데 학생이라 돈이 없어 태양극장 많이갔지 시민극장 중앙극장 3.15극장은 잘 못가고
망햇잖아..지금도 망하고잇고.볼것도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