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때 강원도 전차부대및 다련장 진지이탈했다. 선제타격한다고..지금와서 말하지만 6개월 넘게 진지 버리고 산골자기에 숨어서 적진지에 포탄사격준비다했었고 8군단 특공 뿐아니라 군단장 지시사항으로 탄조립까지 완료되었고 통신부대 제 2진지 통신망 확인 및 전방부대 돌격준비까지했었다. 그때 아무도 힘들단말안했고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간부랑 병사싸운다고?ㅋㅋ 지라마라 둘다 눈돌아간 상태였고 서로존중하며 야전에서 6개월동안 숨어서 숙박했고 밥도 연기난다고 못하게 해서 주변 부대에서 비닐에 먹었다. 그때? 부모님께 연락조자 할 시간없었다. 그래도 우린 최선을 다했다. 130미리 다련장 탄조립ㅋㅋ 맨손으로 했고 사격진지에숨어서 하루8시간씩 사격 연습했다. 36발 실탄 조립 장전준비였고 명령떨어지는순간 전쟁시작이었다. 이때 ㅋㅋ병사고 간부고 하나였다. 불만조차없었고 불안하지조차않았다. 그냥 내가 해야할것만보였다.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가 생생하네요, 당시 연평도에 있었던 해병대원입니다. 당시 영상에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장비도 열악하였지만 당시 너무 화가 났던 기억이 나네요, 보병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당하고만 있던게 너무 분하였지만, 전쟁을 피한 덕에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생하고 계신 장병분들 감사합니다.
@@chfg5762 제 개인적인 생각에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것에대한 제 생각을 풀어보자면 아마 옛 남성우월주의때문일수도 있고(우린 너흴 지키기위해 희생하고 대단하며 우리가 없으면 너희는 위험해진다) 혹은 주변국가인 일본과 중국이 남성이 주로 군대를가며 얻어지는 사회적인 입지다짐이나 효율성과 성차별역시나 존재하여 그리 행한것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여성 역시 본인이 국가를 위한 의무를 하고싶지만 나라에서 부르지않앗으니 안간다 라는식의 의견이 나오고있는것같은데. 그것만 해도 발전한것같아요 '여자는 애낳잖아요' 보단 났죠...
여하간 경찰,소방관,군인 등 사람의 목숨이 개인의 능력에 좌지우지하듯 맡겨지는 일은. 절대로 양성평등이니 나도하고싶은데 왜못하게 하냐 차별이냐. 이딴 말에 휘둘리면 안된다고 봅니다. 자꾸 천조국은 어쩌구하며 미국이랑 빗대어 말하는분들 몇분 계신대.미국은 경찰 소방관 군인 할것없이 특정직업이 하고싶으면 양성모두 그직업에 알맞게 준비된 사람만 뽑습니다. 말그대로 체력이필요하면 양성모두 턱걸이몇개 팔굽혔다펴기 몇개 윗몸일으키기 몇개. 똑같아요.. 그걸 수행할 수 있는 사람만 뽑기때문이죠.. 그런말들을 뱉는 많은 여성분들도 그런점은 좀 입감하고 알고 넘어가야하는 부분이라 보구요.. 그래도 가고싶다 싶으면 행정업무든 사무업무든 여러분야로 뽑으니 글로 알아보시던가. 혹은 제 댓글처럼. 입대는 하대. 간호부대 혹은 입대가 아니어도 나라에 헌신하고싶다면 남자들 예비군 민방위 받을때 만이라도 나와서 구호법...cpr,붕대감는법 등 방독면이라던가 기본적인 전쟁시 따른 교육이수없이 피난에서라도 혹은 후방에서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면으로 배웟으면 하네요
저도 이 사건 당시에 육군에서 군복무중이었습니다. 이 사건 때 현역 및 예비군 동원 연차 안에 있었던 남성들은 그 당시 전면전이 되면 본인이 전쟁에 참전하게 될 것이라는 운명을 분명히 느꼈었습니다. 마냥 두려울 것만 같은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비장함과 결의 같은 것도 솟아 오르더라구요. 다행이 전쟁으로 번지지 않았지만 그 경험을 한 당시의 현역과 예비역들은 사후세계를 경험해봤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갖고 있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경험처럼, 당시 실탄을 지급 받고 1주일 정도를 전시준비태세를하고 진짜 전쟁을 기다리며 불안과 공포속에서 유서도 작성하고 전투 상황 및 본인이 전사하고 난 후의 상황 등을 수 없이 상상해 본 것을 통해 마치 참전했던 것 처럼 왜곡된 기억이 있습니다. 정도가 약한 PTSD 같은 것 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8-90년대 생 남성들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갖게 된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일단 육군 특히 북한군과 마주하는 최전방에 근무했던 사람들이나 이렇게 연평도 포격 서해교전 천안함등등 경험했던 사람들은 보수적일수 밖에 없음...저역시 저때 군에 있진 않았지만 예전에 김대중 햇볕정책때 gop에서 바로앞 gp교전을 목도했던 사람이라...북한의 실상모습을 모습을 알고 완전 보수화되었죠...
보수보수 하는데 보수는 힘으로 밀어붙이자는거임 진보는 햊빛정책으로(성공은못함ㅠㅡ) 서서히 밖으로나오게 하는정책 솔직히 정확한 답은없슴 진보래도 북한 절대싫어함 그냥접근 방식만다름 다만 외국전문가들은 문화적으로 북한이 무너지는게 최고라고함 지나가는말에 빼박이란 말이있는데 대한민국이 그런형국임 진짜 노답임 힘으로하자니 피해가너무크고 평화로하자니 열불터지고 ㅠㅡ 그냥 김정은 급사하길
당시 경기도 북부 양주에서 군복무중이었습니다 군에서 천안함과 연평도를 모두 겪었는데요 영상에도 나왔듯 연평도 사건때는 정말 전쟁하는줄 알았네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알았지만 정말로 휴전선을 넘어 황해도 토벌 계획이 실행 직전까지 갔었더라고요..몇일간 단독군장에 총기 휴대하고 다녔고 전투화도 못벗고 침상에서 가취침했던게 생각나네요.. 전쟁은 나면 안되지만 저당시 상황에선 욱해가지고 밀고 올라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기도 했었는데요 피할수 없었다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각오로 응징하고 토벌했을 겁니다 천안함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던터라 연평도까지 터지니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빡쳐있는 상태였습니다 두려움보다는 분노와 빡침이 더 컸었고 애국심이 확 샘솟더라고요 미국이 적극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전쟁했겠군요.. 당시 북괴뢰군의 도발로 인해 전사한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 민간인 2분과 천안함 46분의 명복을 빕니다.. 🇰🇷
댓글 하나 하나씩 읽어보니 정말 눈물나네. 나도 저때 제대한지 6개월 차였던 예비역이었는데 저 뉴스 보고 정말 화가 나서 나라에서 소집하면 언제든지 달려갈 생각이었는데.. 저때 당시 복무 중이었으면 아마 88년에서 92년생 사이였을 것 같은데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들에게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잊을 수 없는 날 입니다. 2010.11.23 그날은 저의 스무번째 생일이기도 했으니까요. 대학 강의실에서 들었던 속보 소식은 참담함 그 자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에 저는 해병대에 입대하고 최전방 강화도에서 근무 했습니다. 분노로 시작된 결정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느꼈던 점은 전쟁이란 절대 일어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였지요. 후배로써 연평도에서 순직하신 선배해병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또한 지금 이 시간에도 전방에서 고생중인 우리 해병들, 국군장병들 너무 감사합니다. 더 강한 힘으로 전쟁억제력을 유지해주세요! 부탁합니다
10년 군번인데 이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막 자대배치 받고 생활관 막내생활 시작 할 때 였고 부대는 강원도지역 공병대대 완전무장에 얼굴은 검게 위장을 하였고 교대로 근무만스며 그렇게 쪽잠을자며 전시준비태세였고 정말 이상했던건 내가 예상한 분위기와는 달리 각소대 분위기는 엄청 차분하고 희생당한 해병대원의 뉴스를보며 분노하며 당장이라도 북괴와 싸울 수 있을것만같은 오묘한 감정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이 그려졌고 중대장은 바뀔거라 하였다 무서웟지만 그렇게 큰 두려움의 감정은 아니였던것같다 전역이다가오는 병장마저도 그때 만큼은 정말 진지하게 의기투합하며 전쟁을 준비하며 대기했던 기억이난다. 본지 며칠안된 선임들 분대원들이였지만 그 짧은 기간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전우애를 느꼈달까.. 그날의 사건 후 전쟁이 발발하지않고 일상으로 돌아갔을땐 다시 악마들이 되어있었지만 아직도 그때 분대장이 진지한눈으로 겁나냐? 했던게 떠오르네 전쟁나면 선임새끼들 다 쏴죽일거라 생각하곤 했었는데 막상 전쟁나면 그게 또 아니게 되더라싶었다
연평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해병입니다 이렇게 선임분들께서 연평도 멀리 나아가 한국을 지켜주셔서 저희가 조금은 편안히 지내고있습니다 매일 근무에 들어가면서 드는 생각이 ‘오늘도 전쟁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겠다’ 그와 동시에 더 열심히 나라를 위해 이바지 해야겠다는 맘을 갖고 임합니다 해병대 서북도서, 1•2사단 , 9여단 뿐만 아닌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군 장병 다들 고생많으십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더라도 지켜낼 수 있는 군인으로 남겠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잘 자랐네 우리는 북한을 혐오하지도 지역갈등을 심화시킬 생각도 없다. 그러나 군인으로서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우리는 한 나라의 군인으로서 국민들을 위해 모든 경우의 수와 위험요소를 선제 제거해야한다.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이 나지 않는것이다. 그러기 위해 압도적인 국방력 또는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이 있는데 우리는 근 20년 가까이 외교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된다는것을 몸소 느껴왔다.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압도적인 힘으로 지키는 것이다.
전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연평도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의 몇몇 군사시설을 공습으로 파괴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북한도 함부로 덤볐다간 자기들도 피본다는 생각을 하고 군사 도발 옵션을 선택할때 좀더 신중해졌을 겁니다. 연평도 포격 이전에 있었던 천안함 폭침 사건때 즉각적으로 북한에 국지적으로 군사적 보복을 감행했었다면 연평도 포격전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우리 군이나 미군이나 이런 국지적 도발에 대응한 보복 응징 계획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작계는 전면전을 가정한 것들이였지요. 연평도 도발 이후에서야 국지전 대응 메뉴얼이 만들어 진 것으로 압니다.
저날 저는 대구에 있는 전투비행단 소속 병장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국군과 민간인이 적 공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눈이 돌았던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 화력의 부대였다는 자부심과 분노가 함께 섞여서 적의 선제타격 대상이라는 두려움은 1도 없이 출격만을 대기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에 참 긴장되고 힘든 순간이었지만, 모두가 애국심으로 한뜻이 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포격 다음날 아침 헬기타고(승무원이었움) 연평도 날아갔는데 민가지역은 못들어갔지만 K9자주포 갱도주변에 파편 어마무시했고 군용렉스턴 다 박살나있고 막사 화장실 주저앉고 진짜 생난리였음. 그당시 우리해병대원들은 여기저기 계속 뛰어다니고.. 저사건으로 나의 안보관은 확실하게 확립되었움
연평도때 우리가 강하게 대응했으면 북한한테 이렇게 개무시는 안당했을거야 판문점 도끼만행때만해도 미국 무시하고 우리군이 올라가서 북한 초소 때려부실때 북한애들 다 도망갔다 북한은 항상 우리가 뭘 할수가 없으니까 계속 도발하는거야 연평도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되지만 또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제발 강하게 나가자 언제까지 질질 끌려 다니냐?
이때 군생활중이였는데 이제막 상병달고.... 진지공사 나갔다가 갑자기 비상이 울렸고 뉴스를 보니 연평도가 폭격 당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섬에서 연기가 나는 뉴스를요 그러면서 전군 완전무장 되었고 군장적재까지 했었습니다 말그대로 출발 하면 바로갈수있게 준비를 한것이지요 이때 진짜 전쟁이 나는구나 했습니다. 새벽12시까지 대기하다가 생활관으로 다시 집결하라고 하더니 침낭만풀고 군복 입고 총기를 안고 취침 하라 했습니다. 그리곤 그뒤론 완전군장 풀고 한달동안 단독군장 생활 했습니다. 그때당시 김정은 욕 엄청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이땅을 지켜주시는 후배분들 감사합니다.
세월호를 비난하는것은 아니지만 목숨잃었던 아이들보다 이때 연평해전때 천안암때 목숨잃은 군인들께 보상을 더 해야하는것같습니다....이때 이병때 훈련받고 저는 공수훈련을 마치고 소청도로 부대이동 했다가 다시 기존부대로 왔습니다 그때 전사하신 연평도 두 해병님들 정말 가슴아팠습니다..
그...연평해전이랑 천안함 목숨잃은 군인에게 보상을 더 해줘야 하는건 공감을 합니다만 세월호를 굳이 꺼내실 이유가 있나 싶긴 하네요. 설마 특정 극성 유튜버들처럼 시체팔이한다 라고 생각하시진 않을 거라 믿어요. 별개의 사건이고 별개의 보상이 존재할 뿐 누가 그때보다 못 받고 더 받았니 하며 비교하는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보상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으면 그 유가족분들께서 소송을 하던 뭐 성명서를 내든 하셨을테니 그런거를 공유하면서 지지해 주시고 하시는 방향이 더 건설적일거라 생각되어 추천드립니다
@@Cathorn 두일모두 엄청난 비극이죠 나라를위한 목숨을 값으로 매길수도없죠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군인이였기에 그런생각이들었나봅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죄하겠습니다 저는 세월호의 이야기를 빗대서 말하고싶었던게 아니고 조금더 헌신한 군인들을 위한 내용을 언급한것입니다 시체팔이 이런 생각은 일도없습니다만 제말은 세월호 아이들의 목숨값이 너무과했다가 아니라 말그대로 군인들의 헌신한 목숨값이 너무도 적다입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냥 단순한 제 의견일뿐입니다 연평해전을 보고 너무 속상했던 기억이 선명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때 포병부대에 있었던 예비역입니다. 아 지금은 민방위고요 이 때 어느정도였냐면 전방에 있던 부대들은 내일 당장이라도 개전할 수 있도록 화포에 포탄적재 완료하고 뒤에 차량에 포탄 전부 실어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명령하달되는 순간 DMZ에서 지뢰가 터지든 말든 무조건 북진하라는 명령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전쟁을 하면 안되지만 이 때 당시 대부분의 장병들은 차라리 전쟁해서 저것들 눕히고 뒷일 생각하자고 할 정도 였습니다.
이때 우리나라 현역분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다시 한번 군인분들께 존경을 표하게되네요 현역 장병분들은 대부분 20대 초 어린 청년들입니다 .. 전우가 전사해서 분노하더라도 실제 전쟁의 공포 앞에선 20살의 청년에겐 .. 인간이라면 ..너무나도 큰 공포입니다 .. 하지만 언제 두려웠냐는듯 맞서싸울겁니다 .. 적군 앞에선 한치의 두려운 모습도 보이지않을것이고 내 등 뒤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총성조차 안들릴수있도록 목숨 걸고 싸울것임을 다 알고있습니다 .. 두려워도 두렵지않아도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
10군번으로 연천에서 취사병 복무중이였는데 그때 메뉴가 두부조림이였음.... 두부 썰고 있는데 취사이모가 어머어머 하면서 빨리 티비보라고 해서 나갔더니 연평도가 개박살이 났다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음 벙쪄서 이게 뭐지? 진짠가? 하고 담배피면서 어떻게 해야되냐 후임들이랑 얘기하고있는데 갑자기 사이렌 울리더니 전부 총 찾아가고 전투식량 보관하는 1종 창고와 탄약고에 간부들이 존나 뛰어다니고 난리가 났었음 멸공 피아식별띠도 나눠주고 날 세운 대검까지 그날 저녁에 준비 시키는데 진짜 무서웠음.... 중대장이 소대원들 모아놓고 나도 전쟁을 안해봐서 두렵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밖엔 우리 가족이 있으니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다들 무섭겠지만 훈련한대로만 하자며 조금만 고생하자는 말에 진짜 뭉클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제2 연평 해전 일어났을때 GOP근무 중 이었습니다 월드컵때.. 전 소초 상황병 제외하고 전원 전 초소에 배치되고 암구호 숙지철저히 하고 수하 했을때 암구호 모르는 거수자는 그냥 쏘라고 해서 정말 긴장 하며 밤이 지나가길 바랬었죠.. 북에서는 대남방송으로 백배 천배 보복 하겠다고 그 특유의 말투로...밤에 들으니 으스스 했었는데..계속 듣다보니 오기가 생겨 내려오기만 해봐 바로 죽여 버릴 거다 라는 생각으로 버텼네요..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네요
난 09 10월 군번인데 아직도 기억난다 막 물상병 달아서 기분좋았던 시절, 눈 치우러 나갔다가 급하게 다 복귀하라 해서 뉴스를 봤다. 그 다음은 내 예상과 달랐다. 장난기 많고 사건사고가 많던 우리 소대는, 풀 군장을 준비한 상태로 위장을 했다. 놀랍도록 단 한 마디 말 없이 침묵으로 준비했고 분노가 느껴졌다. 땅에 떨어진건 처음이였으니까. 그런 진지한 모습들은 처음 본 거라 낯설기도 했다 ㄹㅇ.. 분명 전시때는 다들 다를거라 생각한다. 모두 고생했다. 또한, 지금 나라 지키는 후배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사회 나와서 첫번째 근로자의 날 대전 현충원에 갔었습니다. 그 곳 문광욱 일병님의 묘소에, "동생이 가지고 놀던 물건입니다.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라고 쓰여진 큐브가 있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먹먹해서 차마 오래 있지 못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서정우 하사님, 문광욱 일병님 뿐만 아니라, 연평해전에서 전사하신 여섯 분과 초계임무 중 전사하신 천안함 마흔 여섯 장병분들, 그리고 그들을 직접 구하겠다고 뛰어드신 한주호 준위님까지, 모두모두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바다는 이 분들의 허락없이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아직도 주적이 수십명 죽인 북한이라고 생각하시나 ? 불법체류자로 들어온놈들까지 400 백만명 이상에 중국놈들이 건설현장에서 95%이상 다장악해서 1인당 하루 20 만원씩 돈다벌어가고 그돈다 중국으로 외화반출에 도심에는 가게 한집건너 하나가 중국 마라탕집으로 바뀌는데 인종교체 당하며 일자리 다뺏기고 자영업자들도 하루 36 명씩 자살하는 마당에 그래서 한국인들은 한번 더 전쟁이나 나라를 뺏겨 지배당해봐야 뭐가 더 중요한지 알게 된다 너무 배가 불렀어
대본쓰신분 미필이거나 군대를 글로만 배우셨나 전쟁나도 우려하던일 안생김; 본인 보직 장비는 허구한날 정비하고 저때 최전방 운전병으로 있었는데 일반병사들은 매일 철책 수비할때 실탄 수류탄받고 경계함. 무슨 총알받는다고 상관을 쏨ㅋㅋㅋㅋ 그리고 저때 전쟁이 실제로 난다면 다같이 싸우다 뒤지자 마인드였음
당시 남양주서 근무, 우연하게 작전실 갔다가 티비에 포격뉴스 나오는데 실내에 있던 장교 및 병사들 5초간 정적 그리고 10초 후 전화 폭주, 전 병사 영내 대기 및 외출자 즉시 복귀, 탄약고에서 탄약 및 고폭탄 전부 분출하고 연대 차량 전체 연병장 올려서 도열하고 동원령 떨어지면 퇴계원에 예비군 받으러 전 수송병 차량에서 3일간 대기 했네요 한달간 전투복 입고 단독군장 상태 대기 진짜 전쟁나는줄 휴..
이 당시에 직업군인으로 충주 비행장에서 근무했었어요 . 24시간 비상대기에 모두 현장 근무실 대기. 밤 10시인가? 기지방송으로 총기불출하라고 하는데 진짜 군생활 5년하면서 저때 처음 경험해봄. 아? 기지생활하는 공군인데 이 밤중에 총기불출하고 단독군장 차라고?… 아 전쟁나는구나, 여기서 탄약만 불출하면 진짜 터지는거구나 했었는데 .. 분위기는 곧 탄약 불출하라고 방송할거같았는데 다행이 그다음날까지 조용하더군요.. 라인 안쪽 활주로에선 F16들 4대씩 편대로 밤새 뜨고내리고… 그때 전투기들 다뜨고나면 그 잠깐 조용한 밤하늘에 그렇게 밝고 고요한 보름달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저때 진짜 살벌했었어요.. 천안함, 김정일 죽은건 쨉도안됨. 이젠 20대의 청춘의 기억으로 남고 어느새 30중반으로 일상에서 정신없이 살고있네요 저당시에 저뿐만 아니라 현역으로 근무했던 분들 모두 너무 자랑스럽네요
군복무할 당시 진짜 전쟁준비 했죠.... 요즘 장병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실탄받고 대검 착검하고 a급 전투 물자 받으면서 최소한 괴뢰군 5명은 죽이고 죽자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비장한 마음이었습니다.... 항상 국가안위를 위해 고생하는 국군 장병들 화이팅입니다!!
당시 포항 훈련단에 있었는데 아마 공수 기초 훈련 중에 소식을 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격훈련이 앞당겨지고 연평도 지원자도 따로 뽑고 다음날엔 유서 낭독도 했네요 매우 무거운 분위기에 정말 전쟁이 시작되는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한파도 일찍 와서 매우 춥고 어두운 겨울의 시작으로 기억이 남았네요
그리고 2010년은 연평도 포격사건도 그렇고 천안함 침몰 사건도 그렇고.... 우리 국군 장병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북한군의 국지도발로 부터 이 국토를 지키다가 산화 하셨던 해네요...... 개인적으로 2002년 8월 29일 한창 2002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물들어 있었을 때 또 다른 어느 곳은 포탄이 오가는 전쟁터였고 당시 우리 해군 장병분들과 간부 분들의 목숨 건 결사항전이 있었기에 북한군의 야욕을 꺾고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면서도 그 분들의 희생에 마음이 경건해지네요
전입간지 한달도 안된 이등병이 대대 ATT 2일차 점심 먹고 행군 시작하자 마자 멈추라더니.. 연평도에 포격전이 일어났다면서 전쟁 난다며 ㅈ댔다를 반복하던 3소대장.. 자기 소대에 가서나 떠들지... 그러고 몇분뒤 육공에 타고 복귀할때 솔직히 진짜 쫄렸음... 짬도 안되는데 이 상황이 현실인가 했음. 복귀해서 유서 쓸때 진짜 전쟁나나 했다.
천안함, 연평도, 김정1 사망 다 격은 09군번 병사출신 부사관으로 6포병여단 에서 근무했었는데 저때는 전쟁 무섭다 보다는 이번기회에 밀어버리자 라는 분위기가 더 컷죠 무섭기도 했었고 대대 이탈해서 전쟁 발발시 이용하는 사격진지에 처음 가서 대기해본터라 긴장도 많이 했었던게 기억납니다. 현역분들 고생많습니다. 다만 끌려오신게 맞긴 하지만 군대에서 얻어가는게 더 많으니 긍정적으로 군생활 하셔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진군!
이스라엘 처럼 욕 뒤지게 먹었을듯. 중동전쟁때 군사적 도발을 군사적 침략으로 대응을 해서 골란고원 뺏었을때 국제사회가 시리아편 들어줌. 아무리 총쏴도 탱크 밀고 들어가는 것은 선 넘음. 3배 4배의 포격으로 대응을해도 경계선 침범은 에바임. 한국도 북진했으면 진짜 국제사회에서 제재 당했을듯.
저 육군 17사 100연대 3대대 출신입니다. 10년군번으로 이때 갓 일병땐데, 신병위로휴가도 연기되었습니다. 정보병이라, 지통실서 항상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해병2사전우들께서 상황발생시 대처하시는 모습에 감명 받았습니다. 전군 진돗개 하나로 정말 전쟁 직전 이었고, 해병2사와 연계하여 상황회의도 진행하였습니다. 이때 전쟁에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나라 지키는 후배님께 항상 감사히 생각하겠습니다.
내가 저때... 고등학교 시절.. 진짜 세상이 무섭게만 느껴졌거든 그런데 연평도에 있는 해병대의 용감한 자주포 대원모습보고.. 이게 진짜 군인이군아 멋진모습에 해병대를 동경했다.. 그덕에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구했다 나도 군대들어가서 용기를 내고 저 형처럼 용기내서 싸워야지 심정으로 해병대에 입대하려했으나 좀처럼 쉬운일은 아니였기에 떨어져서 1년후 나는 평범한 땅개트리를 탔지.. 2014년 6월9일 논산훈련소 들어가 자대배치 받았더니 22사단이였다 하필 임병장 사건이 터진후였고.. 같은 훈련소 동기들과 거의 최전방에 배치받았고 음... 그곳에 생활 절반은 정상과 비정상이였다 22사단에서 살아서 전역하고자 시간이 빠르게 흐르길 빌었지 비정상이 많았기에 부당함이 컸어도 암묵적으로 불만을 참고 군대생활을 무사히 전역했지.. 나는 지금도 내마음속은 주적을 용서할 마음따위 버린지 고딩시절이였다
비밀유지서약 10년의 기간이 끝나고 이제 말할 수 있네요.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도 앞 해상에서 작전 중이었던 참수리 고속정 해군입니다. 우리 연평도의 해병대 K9 자주포가 고요한 바다의 공기를 가르며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NLL 이남으로 해상사격 훈련을 진행하였고, 우리 고속정은 탄착점 확인 및 보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NLL을 들이대며, 자기네 영토 내라며 사격훈련을 진행한다면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위협했었습니다. 연평도에서 k9 자주포의 사격훈련이 끝나자마자 북한이 연평도로 해안포를 쏴대었습니다. 북한의 도발 직후 평택에 전개 해 있던 2함대 전체가 연평도 근해로 줄지어서 긴급출항하였고, 3함대에서도 서해로 일부 전개 하고 있었습니다. F15K 전폭기가 서울과 서해 사이에서 시위기동 하고 있었고요.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 연평도 근해에 2함대 기함부터 지원함까지 모두 도착하여 북진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유서작성을 안 하였지만, 함선 대부분의 수병들이 유서 작성을 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북한의 지대함, 지대공 미사일 신호 알람이 계속 울렸었지만 추가 도발은 없었고, 북한의 군항은 출항 하면 곧바로 대한민국 해군의 함대함 미사일에 저격 당할 것을 아는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군공항에서도 이륙하는 항공기 하나 없었습니다. 포항에서는 해병대가 도보행진으로 2함대로 신속전개하였고, k2, k1, k9 등 전차와 장갑차 등이 줄지어 2함대로 들어와 LST에 실려 서해 5도로 전개되었습니다. 일계급 특진한 문광욱 일병, 서정욱 하사. 그 당시 문광욱 이병, 서정욱 병장의 전사 소식을 직접적으로 전해 들었고, 특히 문광욱 이병은 해상기지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였으나 끝내 사망은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영상에서 프래깅을 문제 삼았는데 부조리는 격동기라서 일부 잔존했었지만, 그 상황에서 프래깅을 걱정할 수준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장교, 부사관, 사병 모두 하나가 되어 명령만 하달 되면 북진 준비를 하였으니까요. 저 때 생각하면 동료들 모두 내 목숨을 생각하기 보다는 내 가족이 우선이었어요. 북진하여 적을 섬멸하는 것만이 내 가족과 조국을 지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만큼 모두 열정적이었어요. 내심 정말 두려웠기도 했는데 말이죠. 이후 사태가 진정 되고 서해에서 지속 된 도발로 인해 부모님의 걱정으로 지상발령을 신청하여 인천방어사령부에서 지휘통제실 KNTDS 직으로 근무했었는데 국민들은 모르는 북한의 사소한 도발이 정말 많았어요. 그럼에도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바다에서 고생하며 생활하던 때가 너무 그립기도 하네요. 얼마 전에 아내와 아들과 함께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보러 광화문에 들렀는데 해군뿐만 아니라 국군의 많이 발전 된 모습에 듬직했네요. 국군장병 모두 화이팅입니다.
진짜로 전쟁 직전까지 갔었죠. 평택에 있는 주한미군 물자랑 장비들 파주로 전개되는 상황이었고 전방 부대들의 포병부대들은 모두 전진배치, 전진배치할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북한과 가까운 포병부대는 24시간 북한 조준해놓고 무한대기 상황이었습니다. 후방인 공군도 군장 착용하고 근무 섰을 정도니…
이때 수방사에서 복무했습니다. 전방은 아니었지만.. 총기 항시 휴대, 대검 착검, 피아식별띠 항시 착용, 전투복과 전투화 항시 착용, 증가초소4개소 추가 운용, 근무 제외한 모든 시간 전투 모의훈련, 병사 휴가 전면 통제, 간부 교대로 주둔지 주둔.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네요. 아직까지 대선 후보 1순위는 국방과 안보관입니다.
그때 강원도 춘천에서 육군으로 군무했습니다. 연평도 포격하기 전날 당직근무를 서서 포격당일 취침중이였는데, 포격했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환복하고 지하벙커로 뛰어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애국심이 투철하지도 않았고 친구랑 전쟁나면 도망간다고 농담하고 그랬었는데, 그때는 두려움보단 이상하게 전쟁나면 반드시 이기겠단 생각 뿐이었네요. 지금 근무하는 후배들도 동일한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감사한 마음 가지고 두발 뻗고 잡니다.
북진은 커녕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우리 어떻게 하냐고 물었던 게 우리나라 장군들인데요... 오죽하면 미군이 어이없어 했을까요? 10년도 1월군번으로 이때 호국이 준비하다 급하게 뛰어올라가 군장싸고 단독군장에 위장하고 YTN만 시청하고 있던 때가 생각납니다. 유서쓰고 그런거까진 안했지만 2011년이 되자 갑자기 태극기랑 사단기 뒤에 서서 사진 찍었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그때 그 사진이 죽으면 보낼 사진이라고 하더군요. 하여튼 그때 이후로 군생활도 많이 바뀐게 사실입니다. 사실 북진은 이때보다 1994년 북핵위기때가 골든타임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나 중국도 그때당시의 미국을 막을 수는없었을 테니까요.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평소와 다름 없이 학교를 갔다가 집에 와보니 난리가 나있었다.. 그때 당시 기억으로도 우리나라가 전쟁중인 국가라는게 확 실감이 됐고 저기에 나와 우리 가족들이 살고있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듬과 동시에 과연 여기도 안전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진짜 그냥 어리고 철없을 때였음에도 화가 났었다. 쟤들은 뭔데 우리나라 사람들 괴롭히고, 우리는 왜 맞고만 있나 하고. 지금 젊은 20대 30대 남성들이 안보에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게 된 이유가 진짜 북한때문이란 말에 부정을 할 수가 없다.
나도 연평도때 복무중이었음. 철원 육군 K-9 부대라서 진짜 까딱하면 포 쏴올리겠다는 분위기였음. k-9 하나에 포탄 51발 장약 풀로 채우고 k10에 100발 넘게 싣고 부대에 있는 포탄 장약 신관 뇌관 싸그리 모아서 트럭에 다 실었음. 근데 저때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던게 그전에 천안함 때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아마 부대원 대부분이 이제는 진짜 포탄 쏟아부어서 더 이상 도발하지 못하게 막아야한다라는 의견이 팽배했음. 그때 사수였는데 사격버튼을 누르지 못한게 천추의 한임.
20100810군번임 당시 나는 k9포병이였고 자대받고 이등병 쯤에 첫 훈련이 호국훈련임 진짜 당시 자대가자마자 몇달뒤 조온나큰 훈련이였음 마지막날 훈련쯤이였나 훈련중에 사단장왔다고 잠시대기하라함 한3시간기다렸나 포대장이 실제상황이라 무전때림 바로 부대 복귀하자마자 탄 48발인가 다 실고 신관장입 다 해놓고 진짜 실제상황이라고 무전때리면 쏘라함 우리부대가 김포쪽이여서 강화도랑 바로 앞임 다행이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큰 훈련 마치고 또훈련하는느낌이였음 그뒤로 6개월마다 우리는 강화도로 컨테이너 생활하면서 자주포 몰고 파견나가고 없던 맨바닥에 포상 진지 다 마대에 흙퍼서 구축하고 맨날 샤워하다말고 자다말고 팬티만입고 비상떠서 헬멧쓰고 자주포로 뛰어나가고 정신차려보니까 전역날이다가옴 전역날까지 화스트페이스 걸림 군생활나름좀 힘들었나봄 10년이 지났는데도 가끔씩 군대꿈꾸는거 그래도 나름 포반장까지 상도 여러개받고 같이고생한 우리 부대원들하고 좋은추억이였음 생각해보면 남들하고 다른군생활한거같기도하고... 지금은 꿈같지만 벌써 35살임 우리국군 생각보다 쎄다고생각함 우리국군장병들응원합니당 ❤
그때 저도 철원에 있었습니다. 자대가 포병이라서 철책에 있지는 못했지만은요. 당시에 포병부대는 포대원들이 개인화기탄 지급받고 탄약차에 포탄 적재하고 비문 파기 준비도 했었죠. 그때 다들 했던 말이 어제 유서 작성 했는데 낙장불입이라 다시쓰기에는 뭣하지만은 만약 죽어서 환생하게 되면은 이미 통일이 되어서 편하게 살거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었죠.
천안함과 연평도 두 사건을 철원 어느 GP에서 겪은 사람입니다. 두 사건 모두 저에겐 죽음을 떠올리게 했었죠. 전쟁이 나면 북한 방사포만으로도 GP가 있는 전방에선 살아남기 힘들거라는게 병사들 사이의 정론(?)이었거든요ㅋㅋ 군에선 그런 얘기 일절 안했지만 워낙 긴장되는 사건들을 겪는 부대라 저희끼린 그런 얘길 자주 했습니다. 당시에 북진을 했다면 딴건 다 모르겠고 지금 침대에 누워서 이 영상을 보진 못했을것 같습니닺
말년중사 때 포대장님 생일이라 행보관님과 케잌사러 잠깐 나왔는데 TV에서 연평도에 포탄 400여발 낙하 뉴스가 나오고 헐레벌떡 대대에 들어가보니 자주포 버슬렛 열고 포탄 적재하고 탄약 전투식량 불출하고 친구들 부모님 계속 휴대폰에 전화 오고 준비태세 걸렸던거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네 ㅋㅋㅋ
군번 10-13277 당시 5사단 105미리 포병대대 관측장교였습니다. 당직근무 시간이 가까워 졌기에 슬슬 준비하려던 차에 실제 상황이라며 지휘통제실에서 방송이 나오고 급한대로 티비를 켜니 뉴스속보가 나오더군요. 바로 대응사격 출동하였고, 전 포반원들은 즉각대응사격 준비를 완료한 채 사격 명령만 기다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1월 말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 약 3주간 퇴근 및 개인정비 없이 포상에서 덜덜 떨면서 너죽고 나죽자 하는 전쟁상황의 긴장감과 연속된 근무상황의 피로 누적과 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 또한 두려웠으나 함께하는 전우들이 있었기에 포대원들 부모님께 연락하라고 핸드폰도 빌려주고 서로 힘내고 조금만 참자고 버텼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북진 했다면 결국엔 우리가 승리하였겠지만 저를 포함한 청춘을 바친 전우들과의 헤어짐의 슬픔 또한 짊어졌어야겠지요.
특전사를 꿈 꾸며 군사학과에 재학중인 20살 남자입니다. 불철주야 우리 국군의 헌신을 잊지 않고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특전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에 희생 당하신 4분 모두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저도 꼭 멋지고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어 우리나라를 지키겠습니다.
전쟁이 터지는 것을 무서워 할게 아니라 전쟁이 터져도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해야죠, 저도 저 때 현역 장병이었는데 내심 두려워 하기도 했지만 지긋 지긋한 북한의 도발을 두번 다시는 안일어나게 해버리고 싶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국가 답지도 않은 괴뢰국의 도발에 산화 되신 군장병,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 위로의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연평도 포격때 강원도 전차부대및 다련장 진지이탈했다. 선제타격한다고..지금와서 말하지만 6개월 넘게 진지 버리고 산골자기에 숨어서 적진지에 포탄사격준비다했었고 8군단 특공 뿐아니라 군단장 지시사항으로 탄조립까지 완료되었고 통신부대 제 2진지 통신망 확인 및 전방부대 돌격준비까지했었다. 그때 아무도 힘들단말안했고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간부랑 병사싸운다고?ㅋㅋ 지라마라 둘다 눈돌아간 상태였고 서로존중하며 야전에서 6개월동안 숨어서 숙박했고 밥도 연기난다고 못하게 해서 주변 부대에서 비닐에 먹었다. 그때? 부모님께 연락조자 할 시간없었다. 그래도 우린 최선을 다했다. 130미리 다련장 탄조립ㅋㅋ 맨손으로 했고 사격진지에숨어서 하루8시간씩 사격 연습했다. 36발 실탄 조립 장전준비였고 명령떨어지는순간 전쟁시작이었다. 이때 ㅋㅋ병사고 간부고 하나였다. 불만조차없었고 불안하지조차않았다. 그냥 내가 해야할것만보였다.
고생하셧습니다 힘든작전이엿네요
급박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Gop에 자대배치받아 근무하고 있었는데 무섭다보단 분노만 느끼고 내부결속도 더잘되었었음.
고생 많았다.
최근 군인에 대한 대우가 이슈되고 있는데 그때보다 더 한 상황에서도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ㅜ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가 생생하네요, 당시 연평도에 있었던 해병대원입니다.
당시 영상에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장비도 열악하였지만 당시 너무 화가 났던 기억이 나네요,
보병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당하고만 있던게 너무 분하였지만, 전쟁을 피한 덕에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생하고 계신 장병분들 감사합니다.
하지만 통일할 기회인데
고생하셨습니다 저 군대에 있을 때도 목함지뢰랑 전방부대에 확성기 포격때문에 진짜 전쟁나는 줄 알았습니다 저도 이 정도였는데 그 당시 복무한 분들은 어땠을지 정말 짐작가네요 그래도 무사히 나오셔서 다행입니다
K9이랑 미사일 , 공군폭격기 더 도입해야함
@이재성 통일의 뜻을 모르나?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점령하는 것도 통일이야 그리고 너같은 사회 잉여들만 죽을거면 진작 북진했지 지금 대한민국이 잃을게 훨씬 많다 확실한 명분있을때 핵시설 선제타격하고 북진이 답이다 그때 넌 입대하지말고 도망가라 도움안될거니까
@이재성 틀린말을 고쳐주는데 비아냥 거리고 있네 ㅋㅋㅋㅋ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친구야
대구에서 중학교 다닐때 일어났는데, 운동장에서 애들이랑 축구하는데 전투기 편대 비행하길래
친구들이랑 전쟁났나보다 ㅋㅋ 그랬는데 진짜 포격났던거였음
누구는 아무것도 모르고 노는동안, 누군가는 피흘리며 조국을 지켜내는 중이였음
당시 지켜주신 군인장병분들 너무 고맙습니다.
그때 k2공군기지에서 북한폭격하려고 이륙했다들었습니다
원래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웃는게 그나라는 평화로운거임
잘 자라주셔서 감사감사
국군장병들 하는 거 없고 미군이 지켜준다면서 국군들 조롱하는 요즘 페미들은 참 ㅋㅋ
대구는 대구폐렴으로 유명하죠
@@허점례-u7k 없다 없어~
여성도 남성이 군대에서 의무적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시간동안
의료교육이라든가 간호교육같은 기본적으로 전쟁에 도움이 될만한 교육을 같은 시간동안 받고 나왔으면 좋겠다.
오 이거 좋다
진짜 내가 제일 이해 안가는게 그거임 군대 못가는 남자들은 어떻게든 공익으로 끌고 가면서 여자들은 도대체 왜 군대도 안가고 공익도 안가는거임?
@@chfg5762 제 개인적인 생각에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것에대한 제 생각을 풀어보자면 아마 옛 남성우월주의때문일수도 있고(우린 너흴 지키기위해 희생하고 대단하며 우리가 없으면 너희는 위험해진다) 혹은 주변국가인 일본과 중국이 남성이 주로 군대를가며 얻어지는 사회적인 입지다짐이나 효율성과 성차별역시나 존재하여 그리 행한것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여성 역시 본인이 국가를 위한 의무를 하고싶지만 나라에서 부르지않앗으니 안간다 라는식의 의견이 나오고있는것같은데. 그것만 해도 발전한것같아요 '여자는 애낳잖아요' 보단 났죠...
여하간 경찰,소방관,군인 등 사람의 목숨이 개인의 능력에 좌지우지하듯 맡겨지는 일은. 절대로 양성평등이니 나도하고싶은데 왜못하게 하냐 차별이냐. 이딴 말에 휘둘리면 안된다고 봅니다.
자꾸 천조국은 어쩌구하며 미국이랑 빗대어 말하는분들 몇분 계신대.미국은 경찰 소방관 군인 할것없이
특정직업이 하고싶으면 양성모두 그직업에 알맞게 준비된 사람만 뽑습니다. 말그대로 체력이필요하면 양성모두 턱걸이몇개 팔굽혔다펴기 몇개 윗몸일으키기 몇개. 똑같아요.. 그걸 수행할 수 있는 사람만 뽑기때문이죠.. 그런말들을 뱉는 많은 여성분들도 그런점은 좀 입감하고 알고 넘어가야하는 부분이라 보구요..
그래도 가고싶다 싶으면 행정업무든 사무업무든 여러분야로 뽑으니 글로 알아보시던가. 혹은 제 댓글처럼. 입대는 하대. 간호부대 혹은 입대가 아니어도 나라에 헌신하고싶다면 남자들 예비군 민방위 받을때 만이라도 나와서 구호법...cpr,붕대감는법 등 방독면이라던가 기본적인 전쟁시 따른 교육이수없이 피난에서라도 혹은 후방에서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면으로 배웟으면 하네요
체력이 좋을 필요도 없고 남자랑 똑같은 기간 복무할 필요도 없다
5주 기초군사교육이라도 하는게 맞다
특히 국가관, 안보관, 대적관 교육은 무조건 해야됨
요즘 댓글들 보면 지령받아 댓글쓰는 간첩이 아닌가 의심까지 된다
저때 확전의 리스크 감수해서라도 적어도 항공기로 적진지 포격은 했어야 합니다. 자주포 반격으론 부족했어요. 저때는 도발이 아니라 비겁하게 민간지역 포격한 침공행위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의 대응이 좀 굴욕적인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저때 확실히 본때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맞아요 저때 충분히 명분도 있었고 북한 확실히 밟아 놓았어야 했어요
아직도 승질나네요
전투기 폭격으로 보복했어야했음
정확히는 안한게 아니라 못한거임.
현대전에서 폭격은 선전포고이자 전쟁의 시작임.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작권이 없었음...
(중간생략하고)
이 이후로 한미연합훈련에 미항공모함이
참여하게됨
@@Lesspacioh맞아요.. 미국이 말리기도 했고 달래주기용으로 한미연합훈련 규모를 늘린거죠
@@Lesspacioh 잘못 알고 계신데요, 전작권은 북한과의 전쟁 시에 발동하는 겁니다.
이런 국지전과 도발에 대한 응징은 전작권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 당시에 7군단에서 복무중이었는데 전장비 시동에 기동 준비까지 마치고 대기 하던 도중 제가 속해 있던 대대장이 말씀하던게 기억나네요.. 우리 군단 전력으로 북한 15분안으로 주요 시설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 상부에서 명령 떨어지면 불바다 만들러 가자고..
7군단 존멋
북진선봉 7군단 반갑습니다!!!
@@naman_ba 북진!!
북진!
북진! (탄약없음)
저도 이 사건 당시에 육군에서 군복무중이었습니다. 이 사건 때 현역 및 예비군 동원 연차 안에 있었던 남성들은 그 당시 전면전이 되면 본인이 전쟁에 참전하게 될 것이라는 운명을 분명히 느꼈었습니다. 마냥 두려울 것만 같은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비장함과 결의 같은 것도 솟아 오르더라구요. 다행이 전쟁으로 번지지 않았지만 그 경험을 한 당시의 현역과 예비역들은 사후세계를 경험해봤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갖고 있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경험처럼, 당시 실탄을 지급 받고 1주일 정도를 전시준비태세를하고 진짜 전쟁을 기다리며 불안과 공포속에서 유서도 작성하고 전투 상황 및 본인이 전사하고 난 후의 상황 등을 수 없이 상상해 본 것을 통해 마치 참전했던 것 처럼 왜곡된 기억이 있습니다. 정도가 약한 PTSD 같은 것 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8-90년대 생 남성들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갖게 된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일단 육군 특히 북한군과 마주하는 최전방에 근무했던 사람들이나 이렇게 연평도 포격 서해교전 천안함등등 경험했던 사람들은 보수적일수 밖에 없음...저역시 저때 군에 있진 않았지만 예전에 김대중 햇볕정책때 gop에서 바로앞 gp교전을 목도했던 사람이라...북한의 실상모습을 모습을 알고 완전 보수화되었죠...
전 하루이틀만 전쟁할까 걱정됐지 그 이후로는 맨날 단독군장하고 생활하는게 짜증났을 뿐이었는데 엄청 몰입하셨네요
보수보수 하는데
보수는 힘으로 밀어붙이자는거임
진보는 햊빛정책으로(성공은못함ㅠㅡ)
서서히 밖으로나오게 하는정책
솔직히 정확한 답은없슴
진보래도 북한 절대싫어함
그냥접근 방식만다름
다만 외국전문가들은
문화적으로 북한이 무너지는게
최고라고함
지나가는말에 빼박이란 말이있는데
대한민국이 그런형국임
진짜 노답임
힘으로하자니 피해가너무크고
평화로하자니 열불터지고
ㅠㅡ
그냥 김정은 급사하길
@@NorthKorea_Wins ㅋㅋㅋ 니들이 다 디지겟지.... 북괴군이냐???ㅋㅋㅋㅋ그때 전쟁 나서 김정은 목 땃어야 되는데 ^^ 아쉽네~~
@@스윗-d8q 볕
당시 경기도 북부 양주에서 군복무중이었습니다 군에서 천안함과 연평도를 모두 겪었는데요 영상에도 나왔듯 연평도 사건때는 정말 전쟁하는줄 알았네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알았지만 정말로 휴전선을 넘어 황해도 토벌 계획이 실행 직전까지 갔었더라고요..몇일간 단독군장에 총기 휴대하고 다녔고 전투화도 못벗고 침상에서 가취침했던게 생각나네요.. 전쟁은 나면 안되지만 저당시 상황에선 욱해가지고 밀고 올라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기도 했었는데요 피할수 없었다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각오로 응징하고 토벌했을 겁니다 천안함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던터라 연평도까지 터지니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빡쳐있는 상태였습니다 두려움보다는 분노와 빡침이 더 컸었고 애국심이 확 샘솟더라고요 미국이 적극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전쟁했겠군요..
당시 북괴뢰군의 도발로 인해 전사한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 민간인 2분과 천안함 46분의 명복을 빕니다.. 🇰🇷
저도 둘다 겪었던 전방 수색대대 출신인데 대부분 진지하게 잘 준비해서 무조건 이긴다는 마음으로 전투태세로 대기하고 있었죠.. 그때가 마지막 북진통일 기회이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
맞아요 저도 당시 복무중이였고(비록 후방에서 사회 복무원이였지만)
진짜 전쟁나나...머리속에서 아무생각도 안나고 멍해 있던..
그때 티비를 보는데 1도 거짓없이 진짜 몇분간 멍때리더군요...
댓글 하나 하나씩 읽어보니 정말 눈물나네. 나도 저때 제대한지 6개월 차였던 예비역이었는데 저 뉴스 보고 정말 화가 나서 나라에서 소집하면 언제든지 달려갈 생각이었는데.. 저때 당시 복무 중이었으면 아마 88년에서 92년생 사이였을 것 같은데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들에게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ㅇㅇ 저 89년생인데 저때 상병때 정기휴가중이었는데 진짜 전쟁나는줄ㅠㅠ
잊을 수 없는 날 입니다.
2010.11.23 그날은 저의 스무번째 생일이기도 했으니까요. 대학 강의실에서 들었던 속보 소식은 참담함 그 자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에 저는 해병대에 입대하고 최전방 강화도에서 근무 했습니다.
분노로 시작된 결정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느꼈던 점은 전쟁이란 절대 일어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였지요.
후배로써 연평도에서 순직하신 선배해병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또한 지금 이 시간에도 전방에서 고생중인 우리 해병들, 국군장병들 너무 감사합니다. 더 강한 힘으로 전쟁억제력을 유지해주세요! 부탁합니다
밥 먹은 거 소화 안 된다 전쟁이다아아 !
10년 군번인데 이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막 자대배치 받고 생활관 막내생활 시작 할 때 였고 부대는 강원도지역 공병대대 완전무장에 얼굴은 검게 위장을 하였고 교대로 근무만스며 그렇게 쪽잠을자며 전시준비태세였고 정말 이상했던건 내가 예상한 분위기와는 달리 각소대 분위기는 엄청 차분하고 희생당한 해병대원의 뉴스를보며 분노하며 당장이라도 북괴와 싸울 수 있을것만같은 오묘한 감정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이 그려졌고 중대장은 바뀔거라 하였다 무서웟지만 그렇게 큰 두려움의 감정은 아니였던것같다 전역이다가오는 병장마저도 그때 만큼은 정말 진지하게 의기투합하며 전쟁을 준비하며 대기했던 기억이난다. 본지 며칠안된 선임들 분대원들이였지만 그 짧은 기간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전우애를 느꼈달까.. 그날의 사건 후 전쟁이 발발하지않고 일상으로 돌아갔을땐 다시 악마들이 되어있었지만 아직도 그때 분대장이 진지한눈으로 겁나냐? 했던게 떠오르네 전쟁나면 선임새끼들 다 쏴죽일거라 생각하곤 했었는데 막상 전쟁나면 그게 또 아니게 되더라싶었다
저도 10인데 무서우셨을듯..
다행히... ;;; 전쟁이 안 나서 ...ㅠ
연평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해병입니다 이렇게 선임분들께서 연평도 멀리 나아가 한국을 지켜주셔서 저희가 조금은 편안히 지내고있습니다 매일 근무에 들어가면서 드는 생각이 ‘오늘도 전쟁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겠다’ 그와 동시에 더 열심히 나라를 위해 이바지 해야겠다는 맘을 갖고 임합니다
해병대 서북도서, 1•2사단 , 9여단 뿐만 아닌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군 장병 다들 고생많으십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더라도 지켜낼 수 있는 군인으로 남겠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잘 자랐네
우리는 북한을 혐오하지도 지역갈등을 심화시킬 생각도 없다.
그러나 군인으로서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우리는 한 나라의 군인으로서 국민들을 위해 모든 경우의 수와 위험요소를 선제 제거해야한다.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이 나지 않는것이다.
그러기 위해 압도적인 국방력 또는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이 있는데 우리는 근 20년 가까이 외교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된다는것을 몸소 느껴왔다.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압도적인 힘으로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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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①천문학적 군수물자수출②반도체 인력.장비 일본으로 이전③동북아 경제패권 일본이 장악
미군추찬 한국최소피해액(150만명사망.7천조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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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히 전역하길 바라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군복무에 감사드립니다
전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연평도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의 몇몇 군사시설을 공습으로 파괴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북한도 함부로 덤볐다간 자기들도 피본다는 생각을 하고 군사 도발 옵션을 선택할때 좀더 신중해졌을 겁니다. 연평도 포격 이전에 있었던 천안함 폭침 사건때 즉각적으로 북한에 국지적으로 군사적 보복을 감행했었다면 연평도 포격전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우리 군이나 미군이나 이런 국지적 도발에 대응한 보복 응징 계획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작계는 전면전을 가정한 것들이였지요. 연평도 도발 이후에서야 국지전 대응 메뉴얼이 만들어 진 것으로 압니다.
우리가 쉽게 보복못하는 이유는 다 돈때문..
WWE에 너무 몰입하지말길
천안함은 자작극이요.. 그걸 빌미로 유엔에 북한규탄한다고 끌고 가니 북한도 빡칠수밖에...
@@intotherain235 논할 가치도 없는 음모론입니다.
@@agm1144 논하고 싶지 않겠지... 수십번의 재판을 통해,, 관련 증언,자료는 차고 넘쳐여..
저날 저는 대구에 있는 전투비행단 소속 병장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국군과 민간인이 적 공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눈이 돌았던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 화력의 부대였다는 자부심과 분노가 함께 섞여서 적의 선제타격 대상이라는 두려움은 1도 없이 출격만을 대기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에 참 긴장되고 힘든 순간이었지만, 모두가 애국심으로 한뜻이 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ㅈㄹ하네
정비대대 병사였겠지
실무장 정비. 급유 등 지원을 위해 출격을 대기하는 보직이셨나보지 저분이 언제 캐노피에서 조종간 잡고 대기했다고 말한적있나
저때 연천에서 근무한 육군현역이었는데 진짜 실탄분배준비까지 다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음.
언제 데프콘3 발령될지 모른다고 다들 긴장했는데, 그때 말년 병장들도 북한 욕은 했지만 지시사항에는 아무 불만 없이 군장 FM으로 쌌었음.
포격 다음날 아침 헬기타고(승무원이었움) 연평도 날아갔는데 민가지역은 못들어갔지만 K9자주포 갱도주변에 파편 어마무시했고 군용렉스턴 다 박살나있고 막사 화장실 주저앉고 진짜 생난리였음. 그당시 우리해병대원들은 여기저기 계속 뛰어다니고.. 저사건으로 나의 안보관은 확실하게 확립되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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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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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추찬 한국최소피해액(150만명사망.7천조피해)
연평도때 우리가 강하게 대응했으면 북한한테 이렇게 개무시는 안당했을거야
판문점 도끼만행때만해도 미국 무시하고 우리군이 올라가서 북한 초소 때려부실때
북한애들 다 도망갔다 북한은 항상 우리가 뭘 할수가 없으니까 계속 도발하는거야
연평도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되지만 또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제발 강하게 나가자 언제까지 질질 끌려 다니냐?
연평도때 대응사격해서 북한군 40명 이상 사망했는뎅
@@dnkqn8062그걸 어케아냐 ㅋㅋㅋㅋ
이렇게 못하게 하는게 민주당들임
@@park5178 북한 포격시설 위치도 아는데 그런걸 모를까..?
@@park5178 뭘 어케 알아;; 공식 브리핑 나온거다.
친구야 뉴스는 보고 살자
남측도 대응사격 실시했고 사상자 위성관측 완료됐다
이때 군생활중이였는데 이제막 상병달고.... 진지공사 나갔다가 갑자기 비상이 울렸고 뉴스를 보니 연평도가 폭격 당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섬에서 연기가 나는 뉴스를요 그러면서 전군 완전무장 되었고 군장적재까지 했었습니다 말그대로 출발 하면 바로갈수있게 준비를 한것이지요 이때 진짜 전쟁이 나는구나 했습니다. 새벽12시까지 대기하다가 생활관으로 다시 집결하라고 하더니 침낭만풀고 군복 입고 총기를 안고 취침 하라 했습니다. 그리곤 그뒤론 완전군장 풀고 한달동안 단독군장 생활 했습니다. 그때당시 김정은 욕 엄청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이땅을 지켜주시는 후배분들 감사합니다.
총 안고 자는 건 좀 에반데.
@@user-ri2vp7qt7f 에바요? 상황울리면 바로 튀어나가야는데요? 님 5분대기조는 해보셨는지요?
수고하셨습니다.
@@user-ri2vp7qt7f 미필새킨가 ㅋㅋ
세월호를 비난하는것은 아니지만 목숨잃었던 아이들보다 이때 연평해전때 천안암때 목숨잃은 군인들께 보상을 더 해야하는것같습니다....이때 이병때 훈련받고 저는 공수훈련을 마치고 소청도로 부대이동 했다가 다시 기존부대로 왔습니다 그때 전사하신 연평도 두 해병님들 정말 가슴아팠습니다..
그...연평해전이랑 천안함 목숨잃은 군인에게 보상을 더 해줘야 하는건 공감을 합니다만 세월호를 굳이 꺼내실 이유가 있나 싶긴 하네요. 설마 특정 극성 유튜버들처럼 시체팔이한다 라고 생각하시진 않을 거라 믿어요.
별개의 사건이고 별개의 보상이 존재할 뿐 누가 그때보다 못 받고 더 받았니 하며 비교하는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보상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으면 그 유가족분들께서 소송을 하던 뭐 성명서를 내든 하셨을테니 그런거를 공유하면서 지지해 주시고 하시는 방향이 더 건설적일거라 생각되어 추천드립니다
@@Cathorn 두일모두 엄청난 비극이죠 나라를위한 목숨을 값으로 매길수도없죠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군인이였기에 그런생각이들었나봅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죄하겠습니다
저는 세월호의 이야기를 빗대서 말하고싶었던게 아니고 조금더 헌신한 군인들을 위한 내용을 언급한것입니다 시체팔이 이런 생각은 일도없습니다만 제말은 세월호 아이들의 목숨값이 너무과했다가 아니라 말그대로 군인들의 헌신한 목숨값이 너무도 적다입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냥 단순한 제 의견일뿐입니다 연평해전을 보고 너무 속상했던 기억이 선명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세월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뭐하러 언급하고 비교하는거죠? 문제는 선거철에만 안보 타령하며 보수표 흡수하는 세력이 정작 미국이 말린다고 아무런 보복도 못했다는거죠
그럼에도 아직까지 안보팔이에 희생자들을 이용하는게 역겨운겁니다.
아놔 그러면 산불사건은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인에게 더 보상을 해야 한다고는 왜 안하나요? 홍수는요?
아 그리고 저는 연평도를 비난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에게 보상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전치꾼 양반?
천안함을 비난하는것은 아니지만 일방적으로 목숨잃었던 장병들보다 죽음을 목전앞에두고 직접 맞서싸운 625 국군들에게 보상을 더 해야하는것같습니다...
이때 포병부대에 있었던 예비역입니다. 아 지금은 민방위고요
이 때 어느정도였냐면 전방에 있던 부대들은 내일 당장이라도 개전할 수 있도록 화포에 포탄적재 완료하고 뒤에 차량에 포탄 전부 실어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명령하달되는 순간 DMZ에서 지뢰가 터지든 말든 무조건 북진하라는 명령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전쟁을 하면 안되지만 이 때 당시 대부분의 장병들은 차라리 전쟁해서 저것들 눕히고 뒷일 생각하자고 할 정도 였습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아시아 최강 북진 7군단의 위용인가 존경스럽슴니당 ㄷㄷㄷ
11사 동일했습니다
지금은 남자들에게서 국가사회주의가 없어져서
그렇게 안 싸워 줍니다.
다 계집처럼 수지타산 따집니다.
망했습니다.
12사단 수색대대였습니다.
그때 침투준비 다 해놓은 상태였고, 명령만 떨어지면 침투예정이었습니다.
전투복 취침, 침투를 위한 루트, 작전 방법 등 모든것을 머리가 아닌 몸이 반응하게끔 아침, 저녁으로 준비가 되어져 모든 침투 준비는 다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jinhyeoklim7860 개멋지다.. 17 군번 후배입니다. 비록 gop 43쪽이긴 했지만요. 바로 전방 고지 위 gp 바라보면서 근무했네요.
10년도에 군대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진짜 머리카락 자르고 유서까지 쓰면서 명령을 기다렸었죠
그땐 정말 무섭고 두려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북진했어야 했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랬다면 전 여기서 이렇게 댓글을 못쓰고 있었을 수 도 있겠지만..ㅎㅎ
우리 나라를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당신의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한국놈들은 70년간 머리자르고 유서만 쓰지 통일에 대한 의지도 없는 쫄보민족ㅋㅋㅋㅋㅋㅋ
@@약탈자-x1n 님도 포함해서요?
@@약탈자-x1n 잼민아 유튜브 끄고 공부해라
이때 우리나라 현역분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다시 한번 군인분들께 존경을 표하게되네요
현역 장병분들은 대부분 20대 초 어린 청년들입니다 .. 전우가 전사해서 분노하더라도 실제 전쟁의 공포 앞에선 20살의 청년에겐 .. 인간이라면 ..너무나도 큰 공포입니다 .. 하지만 언제 두려웠냐는듯 맞서싸울겁니다 .. 적군 앞에선 한치의 두려운 모습도 보이지않을것이고 내 등 뒤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총성조차 안들릴수있도록 목숨 걸고 싸울것임을 다 알고있습니다 .. 두려워도 두렵지않아도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
네 저도 저시절에 현역 육군 일병 이였네요 ㅎㅎ
그때 육군 장교로 현역 복무 중이었는데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연평도에서 해병대원들과 민간인이 사망 한 소식과 불바다가 된 영상을 뉴스로 보며 뭔가 분노와 피가 끓어오르며 참전하게 되어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그런 기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놀랍습니다.
저도 전역 두달남은 병장이었는데 전역이고 뭐고 북한놈들 죽여버리겠다는 생각밖에 안났던거같아요 ㅎㅎ 뭔가 독기에 가득차있어서 유서도 쓰고 완전군장,얼굴위장,총기소지한채로 잠잤던게 이젠 추억이죠…
물상이었는데. 오후 3시에 갑자기 5대기 부대 밖으로 출동하길래 뭐지 했었는데. 갑자기 부대원 막사 앞에 집합. 행보관이 집에 전화 못하게 통제 후 행정실에서 총기 분출. 그리고 YTN뉴스 시청
저는 전쟁은 진짜 안하고싶었어요 솔직히 무서움
우리가 말아먹은 통일기회
1:판문점 도끼 만행
2:아웅산 테러 사건
3:북한 1차 핵위기
4:고난의 행군
5:연평도 포격
연평도포격때가 마지막 기회였다..이제 끝난거임
진짜 기가막히게 통일 기회를 다 말아먹음
잘정리하셨군요
감사합니다
기회는다시올거니까
그때잡아도늦지않습니다
기회는언젠가는옵니다
애써 준비한 실미도 부대도 알아서 말아먹...
목함지뢰도 있었습니다.
아 그때는 이미 늦었나...
10군번으로 연천에서 취사병 복무중이였는데
그때 메뉴가 두부조림이였음....
두부 썰고 있는데 취사이모가
어머어머 하면서 빨리 티비보라고 해서 나갔더니
연평도가 개박살이 났다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음
벙쪄서 이게 뭐지? 진짠가? 하고 담배피면서
어떻게 해야되냐 후임들이랑 얘기하고있는데
갑자기 사이렌 울리더니 전부 총 찾아가고
전투식량 보관하는 1종 창고와
탄약고에 간부들이 존나 뛰어다니고 난리가 났었음
멸공 피아식별띠도 나눠주고
날 세운 대검까지 그날 저녁에 준비 시키는데
진짜 무서웠음....
중대장이 소대원들 모아놓고
나도 전쟁을 안해봐서 두렵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밖엔 우리 가족이 있으니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다들 무섭겠지만 훈련한대로만 하자며 조금만 고생하자는 말에
진짜 뭉클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무리 우리 민족이라지만 민간마을에 포탄을 날리는 건 전시때도 금기라 하는데 보복을 못하는 나라가 나랍니까?
공산주의자는 가족도 아님
당시 MCRC 근무 중이었는데, 실제로 공중전력 모두 전투준비 상태였고, TCD께서도 합참승인만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저때 총 동원해서 다 밀어버렸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역사가 바뀔 수 있었는데...
전작권이 없으니
미국의 반대로..
핵떨어진다 뒤질래
우리가 무조건 이기는 전력이라도 핵때뮨에 안됨
Master Control & Reporting Centrer
사실 연평도 포격이전부터 서해 상공 상황이 이상했었죠... 예의주시하던 상황이었음..
저날 해병대 면접보고왔습니다. 면접 잘본거 같아서 기분좋게 집에왔는데 가족들이 티비켜고 얼굴하얘지셔서 절 보던게 기억나네요.역사를 공부하는이유는 같은실수를 반복하지 않기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는 우리가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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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①천문학적 군수물자수출②반도체 인력.장비 일본으로 이전③동북아 경제패권 일본이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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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나쁜것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ㅈ밥이어서 먹힌거임 일본을 원망하지말고 우리 군사력 강화에 힘쓰는게 독립투사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저도 저때 실탄챙기고 독도함타고 포항에서 인천 서북도서로 와서 다음 명령을 기다렸던 해병 1107기에요 저시절엔 응징하려는 마음밖에 없었는데 아무일없이 철수한게 다행인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살고 있네요... 다만 돌아가신 해병선임들께는 면목이 없습니다.
자발적 노예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kmyoo 이게 맞는듯 당시 조선은 일본한테 점령당해도 싼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였음 물론 븅신같은 기득권층때문에 피해는 일반 백성들이 다봤지만
저는 제2 연평 해전 일어났을때 GOP근무 중 이었습니다 월드컵때..
전 소초 상황병 제외하고 전원 전 초소에 배치되고 암구호 숙지철저히 하고 수하 했을때 암구호 모르는 거수자는 그냥 쏘라고 해서 정말 긴장 하며 밤이 지나가길 바랬었죠.. 북에서는 대남방송으로 백배 천배 보복 하겠다고 그 특유의 말투로...밤에 들으니 으스스 했었는데..계속 듣다보니 오기가 생겨 내려오기만 해봐 바로 죽여 버릴 거다 라는 생각으로 버텼네요..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네요
난 09 10월 군번인데 아직도 기억난다
막 물상병 달아서 기분좋았던 시절, 눈 치우러 나갔다가 급하게 다 복귀하라 해서 뉴스를 봤다.
그 다음은 내 예상과 달랐다. 장난기 많고 사건사고가 많던 우리 소대는, 풀 군장을 준비한 상태로 위장을 했다. 놀랍도록 단 한 마디 말 없이 침묵으로 준비했고 분노가 느껴졌다. 땅에 떨어진건 처음이였으니까. 그런 진지한 모습들은 처음 본 거라 낯설기도 했다 ㄹㅇ.. 분명 전시때는 다들 다를거라 생각한다. 모두 고생했다.
또한, 지금 나라 지키는 후배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당시 현역이었던 후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때 예비역 직장인이었는데 뉴스보고 조용히 출퇴근 하던 차량 트렁크에 전투복, 전투화 싣고 다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이 순간 불철주야 애쓰는 국군장병 여러분께 감사함을 글로 나마 전해봅니다
멋지십니다… 저도 배우겠습니다
사회 나와서 첫번째 근로자의 날 대전 현충원에 갔었습니다. 그 곳 문광욱 일병님의 묘소에, "동생이 가지고 놀던 물건입니다.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라고 쓰여진 큐브가 있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먹먹해서 차마 오래 있지 못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서정우 하사님, 문광욱 일병님 뿐만 아니라, 연평해전에서 전사하신 여섯 분과 초계임무 중 전사하신 천안함 마흔 여섯 장병분들, 그리고 그들을 직접 구하겠다고 뛰어드신 한주호 준위님까지, 모두모두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바다는 이 분들의 허락없이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중국 공산당 해적선이 1년에 6,000 척이 서해 남해 동해에 나타나 바다물고기 다훔쳐 가는데 무슨 얼씬을 못해
@@전재원-f5p 안타깝네요....ㅠㅠ
아직도 주적이 수십명 죽인 북한이라고 생각하시나 ?
불법체류자로 들어온놈들까지 400 백만명 이상에 중국놈들이 건설현장에서 95%이상 다장악해서 1인당 하루 20 만원씩 돈다벌어가고 그돈다 중국으로 외화반출에 도심에는 가게 한집건너 하나가 중국 마라탕집으로 바뀌는데
인종교체 당하며 일자리 다뺏기고 자영업자들도 하루 36 명씩 자살하는 마당에
그래서 한국인들은 한번 더 전쟁이나 나라를 뺏겨 지배당해봐야 뭐가 더 중요한지 알게 된다
너무 배가 불렀어
@@전재원-f5p 네 그러면 북한 받고 중국까지 얹는걸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가지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그때가 북진할 좋은 타이밍이긴 하였네… 하지만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안일어나고 국군장병들이 안다치고 무사히 전역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 종자들은 겁쟁이들이고 배신자들이라서 북진한다해도 3시간 쿠테타 남.
@@alienelephant4721 느그 조상이?
@@alienelephant4721 가서 얌전히 보던 애니나 마저봐라
@@alienelephant4721 인터넷 상이라 얼굴이 가려졌다고 아무말이나 하고 다니는 거 아니다 한국 종자?? 겁쟁이에 배신자라고? 손가락을 그렇게 함부로 놀리면 쓰나
@@벽을뚫는포신 이건 내 뇌피셜이 아니라 진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면며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야.
만약 진짜 한국이 결단력이 대단했다면 이딴 결과가 나왔겠냐고? 이런 배신자들이 대거 속출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상황을 겪은거 아니냐?
했다면이 아니라 무조건 발포지점 공군기로 폭격했어야 함. 엄연한 무력 공격이고 확전 여부에 상관없이 공격했어야 했다.
ㄹㅇ 북한, 중국같은 싸이코패스국가들은 대화할필요없음.
그냥 도발하면 미사일과 폭격기, 자주포로 싹 밀어버려야함.
멸종시켜버려야함
@@hsjeong333 공군기 이 병신같은띨새기야
@@Ov6esv ㅋㅋㅋㅋ방구석 레이건
말은 개나소나 하지
@@kjs-ey3jl ㄹㅇ 북한, 중국같은 싸이코패스국가들은 대화할필요없음.
그냥 도발하면 미사일과 폭격기, 자주포로 싹 밀어버려야함.
멸종시켜버려야함
♥일본자금♥ 지원받고+논조따라가는
★ 조선일보/국힘당★은 한반도전쟁 외치죠
임
①천문학적 군수물자수출②반도체 인력.장비 일본으로 이전③동북아 경제패권 일본이 장악
미군추찬 한국최소피해액(150만명사망.7천조피해)
대본쓰신분 미필이거나 군대를 글로만 배우셨나 전쟁나도 우려하던일 안생김; 본인 보직 장비는 허구한날 정비하고 저때 최전방 운전병으로 있었는데 일반병사들은 매일 철책 수비할때 실탄 수류탄받고 경계함. 무슨 총알받는다고 상관을 쏨ㅋㅋㅋㅋ 그리고 저때 전쟁이 실제로 난다면 다같이 싸우다 뒤지자 마인드였음
155미리 견인포상에서 1달동안 먹고자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유서도 써서 낭독하고 겁도 나고 다들예민 했지만 전투력만은 최상이였어요.
자다가 일어나서 바로 수신한 포격 위치 조준하고 1분 내외로 발사까지 가능한 상태였으니
오우 솜씨 좋은데?
@@지나가는븅신새끼 ㅋㅋ
당시 남양주서 근무, 우연하게 작전실 갔다가 티비에 포격뉴스 나오는데 실내에 있던 장교 및 병사들 5초간 정적 그리고 10초 후 전화 폭주, 전 병사 영내 대기 및 외출자 즉시 복귀, 탄약고에서 탄약 및 고폭탄 전부 분출하고 연대 차량 전체 연병장 올려서 도열하고 동원령 떨어지면 퇴계원에 예비군 받으러 전 수송병 차량에서 3일간 대기 했네요 한달간 전투복 입고 단독군장 상태 대기 진짜 전쟁나는줄 휴..
와 진짜 그 정적이란게 정말 무서울듯 설마 하시다가 헐 진짜네 영화의 한장면 처럼 갑자기 전화 울리고 대박
이 당시에 직업군인으로 충주 비행장에서 근무했었어요 .
24시간 비상대기에 모두 현장 근무실 대기.
밤 10시인가? 기지방송으로 총기불출하라고 하는데
진짜 군생활 5년하면서 저때 처음 경험해봄.
아? 기지생활하는 공군인데 이 밤중에 총기불출하고 단독군장 차라고?…
아 전쟁나는구나, 여기서 탄약만 불출하면 진짜 터지는거구나 했었는데 ..
분위기는 곧 탄약 불출하라고 방송할거같았는데 다행이 그다음날까지 조용하더군요..
라인 안쪽 활주로에선 F16들 4대씩 편대로 밤새 뜨고내리고…
그때 전투기들 다뜨고나면 그 잠깐 조용한 밤하늘에 그렇게 밝고 고요한 보름달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저때 진짜 살벌했었어요.. 천안함, 김정일 죽은건 쨉도안됨.
이젠 20대의 청춘의 기억으로 남고 어느새 30중반으로 일상에서 정신없이 살고있네요
저당시에 저뿐만 아니라 현역으로 근무했던 분들 모두 너무 자랑스럽네요
당시 해군 대조영함 근무 중이었습니다.
호국훈련한다고 동해에서 훈련중이었는데 갑자기 중단되고 서해로 전진 배치 되었습니다.
동기랑 살아서보자고 다짐했던 기억이나네요.
당시 해병1사단 포항에서 복무중이였는데 당시 화랑훈련하는중이였습니다 포항에서 lst타고 평택까지가서 상륙훈련하러가던중 배안에서 뉴스로 봤던걸로 기억하네요 평택부근에서 대기하면서 배안에있던 kaav 상륙장갑차 다 빼고 탄약이랑 비상식량으로 꽉채워서 한발만 더 쏘면 북한으로 상륙한다고 간부들이 전파하고 그랬었는데... 유서도쓰고 간부들이 핸드폰으로 가족들에게 전화도 시켜주고 했던기억이나네요
군복무할 당시 진짜 전쟁준비 했죠.... 요즘 장병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실탄받고 대검 착검하고 a급 전투 물자 받으면서 최소한 괴뢰군 5명은 죽이고 죽자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비장한 마음이었습니다.... 항상 국가안위를 위해 고생하는 국군 장병들 화이팅입니다!!
대검착검은 백병전상황인대요?
아니그게 아니고요 왜 대기상태서 왜 대검
착검을 하냐고요
돌격 상황도아니고
주둔지서 저러다 팀킬하죠!
@@CARDIOK1NG 이상하내요 준비태세 에서
대검 착검을
지휘관 스타일 인가보내요!
준비태세라도 착검 할수 있잖아? 왜케 부들거리면서 달려들어ㅋㅋ진심ㅋㅋㅋ댓글 보러 온다ㅋㅋㅋㅋ
@@devgru2074 별로 안부들거려 보이고 님 억지 ㅋ 이 더 이상해보임
당시 포항 훈련단에 있었는데 아마 공수 기초 훈련 중에 소식을 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격훈련이 앞당겨지고 연평도 지원자도 따로 뽑고 다음날엔 유서 낭독도 했네요 매우 무거운 분위기에 정말 전쟁이 시작되는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한파도 일찍 와서 매우 춥고 어두운 겨울의 시작으로 기억이 남았네요
♥일본자금♥ 지원받고+논조따라가는
★ 조선일보/국힘당★은 한반도전쟁 외치죠
임
①천문학적 군수물자수출②반도체 인력.장비 일본으로 이전③동북아 경제패권 일본이 장악
미군추찬 한국최소피해액(150만명사망.7천조피해)
저도그때있었습니다 지금다시봐도 가슴아프네요 아마 공수 171차 그해 마지막 차수였던것같습니다 필승
마무리 멘트 정말 좋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진짜 감사합니다..
그리고 2010년은 연평도 포격사건도 그렇고 천안함 침몰 사건도 그렇고.... 우리 국군 장병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북한군의 국지도발로 부터 이 국토를 지키다가 산화 하셨던 해네요...... 개인적으로 2002년 8월 29일 한창 2002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물들어 있었을 때 또 다른 어느 곳은 포탄이 오가는 전쟁터였고 당시 우리 해군 장병분들과 간부 분들의 목숨 건 결사항전이 있었기에 북한군의 야욕을 꺾고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면서도 그 분들의 희생에 마음이 경건해지네요
♥일본자금♥ 지원받고+논조따라가는
★ 조선일보/국힘당★은 한반도전쟁 외치죠
임
①천문학적 군수물자수출②반도체 인력.장비 일본으로 이전③동북아 경제패권 일본이 장악
미군추찬 한국최소피해액(150만명사망.7천조피해)
전입간지 한달도 안된 이등병이
대대 ATT 2일차 점심 먹고 행군 시작하자 마자
멈추라더니..
연평도에 포격전이 일어났다면서
전쟁 난다며 ㅈ댔다를 반복하던 3소대장..
자기 소대에 가서나 떠들지...
그러고 몇분뒤 육공에 타고 복귀할때 솔직히 진짜 쫄렸음...
짬도 안되는데 이 상황이 현실인가 했음.
복귀해서 유서 쓸때 진짜 전쟁나나 했다.
ㄷㄷ생활관 분위기 ㅈ되겠다
걱정마세요. 그일 터지기 하루 전날 유서쓴 저도 있습니다... 미리 작성 했던 이유가 당시 소속부대가 정훈교육 주간이라서 제가있던 포대의 정훈주간 1일차 오후 일정이 전면전 선포했다 가정하고 유서쓰기 였었거든요...
천안함, 연평도, 김정1 사망 다 격은 09군번 병사출신 부사관으로 6포병여단 에서 근무했었는데 저때는 전쟁 무섭다 보다는 이번기회에 밀어버리자 라는 분위기가 더 컷죠 무섭기도 했었고 대대 이탈해서 전쟁 발발시 이용하는 사격진지에 처음 가서 대기해본터라 긴장도 많이 했었던게 기억납니다. 현역분들 고생많습니다.
다만 끌려오신게 맞긴 하지만 군대에서 얻어가는게 더 많으니 긍정적으로 군생활 하셔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진군!
저때당시 의정부 군부대서 직업군으로 근무하던 사촌동생이 저때가 밀고나가기가 엄청 좋은 기회였었다고 하네요.
요약
장점 : 이북 영토 일부 수복, 건설 호황, 북한 붕괴 가속화, 미탈북자 상당수 구제
단점 : 불가피한 희생.
사견 : 설령 전쟁 진짜 나도 핵쏘기는 어려웠을듯. 지켜보던 미군이나 UN군파병 가능했으니. 반대로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 끌어들이기 더 어려워지고.
장점:부동산 해결!
@@qqqqqqqqqqqqqqqqqqqqq7662 키야
@@qqqqqqqqqqqqqqqqqqqqq7662 캬아~ 내래 사리원시의 살립집을 매수해주갓어!
이스라엘 처럼 욕 뒤지게 먹었을듯.
중동전쟁때 군사적 도발을 군사적 침략으로 대응을 해서 골란고원 뺏었을때 국제사회가 시리아편 들어줌. 아무리 총쏴도 탱크 밀고 들어가는 것은 선 넘음. 3배 4배의 포격으로 대응을해도 경계선 침범은 에바임.
한국도 북진했으면 진짜 국제사회에서 제재 당했을듯.
@@lilknight4431 한국이 제재 당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미 핵무기 보유와 과거 남침 전력, 그리고 북한 인민들에 대한 인권수탈로 테러단체 수준의 인식을 가지게 된 나라를 침략했다고 제재를 때린다고요?
0:19 심지어 북한군이 쏜 포탄 때문에 방탄 헬멧에 불이 붙은 채 대응 포격에 임한 해병대원 분의 일화를 뉴스를 통해 듣기도 했었죠.....
저 육군 17사 100연대 3대대 출신입니다.
10년군번으로 이때 갓 일병땐데,
신병위로휴가도 연기되었습니다.
정보병이라, 지통실서 항상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해병2사전우들께서 상황발생시 대처하시는 모습에 감명 받았습니다.
전군 진돗개 하나로 정말 전쟁 직전 이었고,
해병2사와 연계하여 상황회의도 진행하였습니다.
이때 전쟁에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나라 지키는 후배님께 항상 감사히 생각하겠습니다.
오 나 07군번 2대대
ㅇ9 군번 저도 102연대 수송대 출신입니다.
그때 휴가짤리고 2주동안 단독군장상태로
먹고자고씻고 언제든 출동대기 했던게 생각나네요. 북한씨x넘들
오 전 17사 100연대 3대대 본부 수송이라 반갑네요
내가 저때... 고등학교 시절..
진짜 세상이 무섭게만 느껴졌거든
그런데 연평도에 있는 해병대의
용감한 자주포 대원모습보고..
이게 진짜 군인이군아 멋진모습에
해병대를 동경했다.. 그덕에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구했다
나도 군대들어가서 용기를 내고
저 형처럼 용기내서 싸워야지 심정으로
해병대에 입대하려했으나
좀처럼 쉬운일은 아니였기에 떨어져서
1년후 나는 평범한 땅개트리를 탔지..
2014년 6월9일 논산훈련소 들어가
자대배치 받았더니 22사단이였다
하필 임병장 사건이 터진후였고..
같은 훈련소 동기들과 거의 최전방에
배치받았고 음...
그곳에 생활 절반은 정상과 비정상이였다
22사단에서 살아서 전역하고자
시간이 빠르게 흐르길 빌었지
비정상이 많았기에 부당함이 컸어도
암묵적으로 불만을 참고 군대생활을
무사히 전역했지..
나는 지금도 내마음속은 주적을
용서할 마음따위 버린지 고딩시절이였다
비밀유지서약 10년의 기간이 끝나고 이제 말할 수 있네요.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도 앞 해상에서 작전 중이었던 참수리 고속정 해군입니다. 우리 연평도의 해병대 K9 자주포가 고요한 바다의 공기를 가르며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NLL 이남으로 해상사격 훈련을 진행하였고, 우리 고속정은 탄착점 확인 및 보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NLL을 들이대며, 자기네 영토 내라며 사격훈련을 진행한다면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위협했었습니다. 연평도에서 k9 자주포의 사격훈련이 끝나자마자 북한이 연평도로 해안포를 쏴대었습니다. 북한의 도발 직후 평택에 전개 해 있던 2함대 전체가 연평도 근해로 줄지어서 긴급출항하였고, 3함대에서도 서해로 일부 전개 하고 있었습니다. F15K 전폭기가 서울과 서해 사이에서 시위기동 하고 있었고요.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 연평도 근해에 2함대 기함부터 지원함까지 모두 도착하여 북진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유서작성을 안 하였지만, 함선 대부분의 수병들이 유서 작성을 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북한의 지대함, 지대공 미사일 신호 알람이 계속 울렸었지만 추가 도발은 없었고, 북한의 군항은 출항 하면 곧바로 대한민국 해군의 함대함 미사일에 저격 당할 것을 아는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군공항에서도 이륙하는 항공기 하나 없었습니다. 포항에서는 해병대가 도보행진으로 2함대로 신속전개하였고, k2, k1, k9 등 전차와 장갑차 등이 줄지어 2함대로 들어와 LST에 실려 서해 5도로 전개되었습니다. 일계급 특진한 문광욱 일병, 서정욱 하사. 그 당시 문광욱 이병, 서정욱 병장의 전사 소식을 직접적으로 전해 들었고, 특히 문광욱 이병은 해상기지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였으나 끝내 사망은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영상에서 프래깅을 문제 삼았는데 부조리는 격동기라서 일부 잔존했었지만, 그 상황에서 프래깅을 걱정할 수준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장교, 부사관, 사병 모두 하나가 되어 명령만 하달 되면 북진 준비를 하였으니까요. 저 때 생각하면 동료들 모두 내 목숨을 생각하기 보다는 내 가족이 우선이었어요. 북진하여 적을 섬멸하는 것만이 내 가족과 조국을 지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만큼 모두 열정적이었어요. 내심 정말 두려웠기도 했는데 말이죠. 이후 사태가 진정 되고 서해에서 지속 된 도발로 인해 부모님의 걱정으로 지상발령을 신청하여 인천방어사령부에서 지휘통제실 KNTDS 직으로 근무했었는데 국민들은 모르는 북한의 사소한 도발이 정말 많았어요. 그럼에도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바다에서 고생하며 생활하던 때가 너무 그립기도 하네요. 얼마 전에 아내와 아들과 함께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보러 광화문에 들렀는데 해군뿐만 아니라 국군의 많이 발전 된 모습에 듬직했네요. 국군장병 모두 화이팅입니다.
네 맞아요.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에 일반인은 알지 모르는 북한의 자잘한 도발이 정말 많았죠. 서풍발령으로 인해 아랏트에서 긴급출격한적도 정말 많았었던게 기억납니다.
선배님 고생많으셨습니다
근대 난 북한이 우리가 전쟁을이르키지 못 할 확신을 갖고 도발을했다고 생각함
맞아요. 다 계산해 보고 한 짓이겠죠.
언제나 나라를 지켜주시는 군인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이새키 프사보코 드립칠려고 댓창봤는데 진짜가 있었네........
@@막힘없이죽는나무 ㄹㅇㅋㅋ
@@Robot3527 ?
@@태양-l3o 🇰🇷❤️🇰🇵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시는 수십만의 국군 현역 장병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진짜로 전쟁 직전까지 갔었죠. 평택에 있는 주한미군 물자랑 장비들 파주로 전개되는 상황이었고 전방 부대들의 포병부대들은 모두 전진배치, 전진배치할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북한과 가까운 포병부대는 24시간 북한 조준해놓고 무한대기 상황이었습니다. 후방인 공군도 군장 착용하고 근무 섰을 정도니…
현역 중사입니다, 선배전우님들의 투지 받들어 열심히 군생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몸 건강하시고 복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때 수방사에서 복무했습니다.
전방은 아니었지만.. 총기 항시 휴대, 대검 착검, 피아식별띠 항시 착용, 전투복과 전투화 항시 착용, 증가초소4개소 추가 운용, 근무 제외한 모든 시간 전투 모의훈련, 병사 휴가 전면 통제, 간부 교대로 주둔지 주둔.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네요.
아직까지 대선 후보 1순위는 국방과 안보관입니다.
대검 착검을 왜하나요?
배병전 상황도 아닌대요
하라니까 착용하지..어짜피 날서있는 대검도 아니고
연평도 포격전 전날 입대했던… 공군 696기 입니다.. ㅠㅠ 2주 지날때까지 훈병들은 전혀 몰랐고 밖에 계신 부모님들은 엄청 걱정하셨었죠.. ㅠㅠ
당시 육안 최초 관측자 였습니다. 중대장이랑 간부랑 같이 산벙커에 숨어서 반대쪽 출구로 나와 북한쪽 해안선 보고 있다 갑자기 퍼퍼퍼펑 소리 나고 연기 나는게 보이는데 설마 포를 육지에다 쏠꺼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ㅋㅋ
몇기입니까?
@@yoli_jh 아쎄이 본인 기수 까고 묻는 거 국룰인데 찐빠고
@@응애세력-c2l ㄹㅇ
①민주당지지자→중.일 둘다 경계함
②국힘당지지자→중국만 깜(일본은 절대 안깜)
♥일본회의 자금♥유입 의심받는
조선일보.국힘.역사학계,유튜버가 전부 ②번 처럼함
@@응애세력-c2l 나 해병대 아닌데
대부분 동의 하나 프레깅은 억측임
저런 상황이 오면 내무부조리와는 관계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적을 조질 생각만함.
적을 두려워한다거나 관심병사들은 적한테도 총 쏠 생각도 못할텐데 어떻게 아군, 거기에 선임을 쏜다는 것임.
이때 미필 시절이라그래영 ㅎ 센서님이
그때 강원도 춘천에서 육군으로 군무했습니다. 연평도 포격하기 전날 당직근무를 서서 포격당일 취침중이였는데, 포격했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환복하고 지하벙커로 뛰어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애국심이 투철하지도 않았고 친구랑 전쟁나면 도망간다고 농담하고 그랬었는데, 그때는 두려움보단 이상하게 전쟁나면 반드시 이기겠단 생각 뿐이었네요. 지금 근무하는 후배들도 동일한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감사한 마음 가지고 두발 뻗고 잡니다.
2010년은 잊을수없는,잊어서는 안되는 한해였지...
김정일 뒤지고 그 아들인 김정은이 권력승계 받는다고 일으킨게 천안함,연평도...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ㅂㄷㅂㄷ
최악의 군번이 10군번임ㅋㅋ 천안함, 연평도에 이어 말년에 김정일 사망까지
@@user-kq9ah3kjhw45 여기 10군번 추가요~ 다시 생각해도 아찔함 ..사건사고로 병사들 휴가도 다 짤라버렸던 때인데 말년에 휴가나가기 직전에 김정일 죽었다했을땐...
김정일 2011년 말에 뒈졌는데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정은이 말고 정일이 디지기전 마지막 발악이었죠
북진은 커녕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우리 어떻게 하냐고 물었던 게 우리나라 장군들인데요... 오죽하면 미군이 어이없어 했을까요? 10년도 1월군번으로 이때 호국이 준비하다 급하게 뛰어올라가 군장싸고 단독군장에 위장하고 YTN만 시청하고 있던 때가 생각납니다. 유서쓰고 그런거까진 안했지만 2011년이 되자 갑자기 태극기랑 사단기 뒤에 서서 사진 찍었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그때 그 사진이 죽으면 보낼 사진이라고 하더군요. 하여튼 그때 이후로 군생활도 많이 바뀐게 사실입니다.
사실 북진은 이때보다 1994년 북핵위기때가 골든타임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나 중국도 그때당시의 미국을 막을 수는없었을 테니까요.
09년 6월 군번입니다. 당시 제가 있던 대대는 대대 정훈교육 주간이었죠....
제대한지 1년만에 참전할뻔했군요
저도 10년 1월 군번이었는데 동기 반갑네요
이때 전방부대여서 전화도 다 통제당하고 위장하고 군장싸고 총멘채로 밥먹고 전투복전투화 착용한채로 잠들고 처음엔 전쟁날까 무서웠는데 한달정도 그렇게사니까 너무힘들어서 혹여 전쟁나면 한명이라도 더 죽일각오로 싸울라했던게 기억나네요
현무발사운용병 출신입니다. 미필 또는 친중세력이 말하는것보다 도발하면 다들 적을 없애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온 부대가 단결합니다. 생각보다 한국 청년들?? 대적관 확실합니다
제 학교 후배가 연평도 포격 때 연평도에서 해병대 병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전쟁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군장도 다 싸고 준비 다 했는데 결국 안 났다고 들었습니다.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산화 하신 연평도 군인분들 감사합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국간성"이었고 우리의 영웅입니다!!!
저때 연평도 주민들 삶의 터전을 두고 허겁지겁 인천으로 나오는 모습보고 진짜 눈돌아가는줄 알았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손이 다 부들부들 하더라고요
그 당시 예비군 훈련이 예정되었지만 저걸로 인해 취소가 되었죠~군생활때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포격소식을 듣고
분노가 극에 달해서 투입만 된다면 사지를 찢어서 죽여버리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평소와 다름 없이 학교를 갔다가 집에 와보니 난리가 나있었다.. 그때 당시 기억으로도 우리나라가 전쟁중인 국가라는게 확 실감이 됐고
저기에 나와 우리 가족들이 살고있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듬과 동시에
과연 여기도 안전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진짜 그냥 어리고 철없을 때였음에도 화가 났었다. 쟤들은 뭔데 우리나라 사람들 괴롭히고, 우리는 왜 맞고만 있나 하고.
지금 젊은 20대 30대 남성들이 안보에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게 된 이유가 진짜 북한때문이란 말에 부정을 할 수가 없다.
당시 조금이라도 북진을 했다면 현재 심각한 서울 공화국 문제도 좀 완화되고, 휴전선과의 거리 증가로 보병의 필요성이 줄어서 점점 심해지는 징집률 문제도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지금도 이추운날씨에 나라 지켜주시는 국군장병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상 마지막 북진기회였네....
다음에 기회와봤지, 한국놈들은 기회가 오자마자 바위밑에 숨는 패배자 개돼지들에게 지나지않지.
중2때다 학교끝나고 집에왔는데 엄마가 뉴스보고 있더라 티비보고 굳어서 잘못본줄 알고 몇번을 눈에 힘주고 뉴스 특보특유의 맨위구석 빨간색 박스를 봤지 '북한 연평도 포격' 진짜 온몸에 소름돋으면서 습관적으로 겜하려고 컴 켜놓고 뉴스특보 끝날때까지 티비앞에만 있던 기억난다
북진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순 대응사격이 아닌, 원점 타격과 더불어 해당지역 지휘부에 대한 심각하고 절제된 파괴는 필요했다.
나도 연평도때 복무중이었음. 철원 육군 K-9 부대라서 진짜 까딱하면 포 쏴올리겠다는 분위기였음. k-9 하나에 포탄 51발 장약 풀로 채우고 k10에 100발 넘게 싣고 부대에 있는 포탄 장약 신관 뇌관 싸그리 모아서 트럭에 다 실었음. 근데 저때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던게 그전에 천안함 때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아마 부대원 대부분이 이제는 진짜 포탄 쏟아부어서 더 이상 도발하지 못하게 막아야한다라는 의견이 팽배했음. 그때 사수였는데 사격버튼을 누르지 못한게 천추의 한임.
군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저때는 내가 예비군 3년차땐데.. 진심 김씨 일가 모가지 따러 갈 생각이었는데 아쉬웠음..
그리고, 오늘도 발 뻗고 자게 해줘서 고맙다 후배 군인들아.. 건강하게 전역하고..
20100810군번임 당시 나는 k9포병이였고 자대받고 이등병 쯤에 첫 훈련이 호국훈련임 진짜 당시 자대가자마자 몇달뒤 조온나큰 훈련이였음 마지막날 훈련쯤이였나 훈련중에 사단장왔다고 잠시대기하라함 한3시간기다렸나 포대장이 실제상황이라 무전때림 바로 부대 복귀하자마자 탄 48발인가 다 실고 신관장입 다 해놓고 진짜 실제상황이라고 무전때리면 쏘라함
우리부대가 김포쪽이여서 강화도랑 바로 앞임 다행이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큰 훈련 마치고 또훈련하는느낌이였음 그뒤로
6개월마다 우리는 강화도로 컨테이너 생활하면서 자주포 몰고 파견나가고 없던 맨바닥에 포상 진지 다 마대에 흙퍼서 구축하고 맨날 샤워하다말고 자다말고 팬티만입고 비상떠서 헬멧쓰고 자주포로 뛰어나가고 정신차려보니까 전역날이다가옴
전역날까지 화스트페이스 걸림
군생활나름좀 힘들었나봄 10년이 지났는데도 가끔씩 군대꿈꾸는거
그래도 나름 포반장까지 상도 여러개받고 같이고생한 우리 부대원들하고 좋은추억이였음
생각해보면 남들하고 다른군생활한거같기도하고...
지금은 꿈같지만 벌써 35살임
우리국군 생각보다 쎄다고생각함 우리국군장병들응원합니당 ❤
가벼운 입으로 나불대지마라 우리 군은 어려움이 발생하면 니가 생각 못하는 엄청난 응집력으로 결과를 낸다
저때 북진하고 북한을 멸망 시켰어야 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저땐 북한도 내부적으로 어지러운 상황이라 승기를 잡을수 있는데
그리고 민간인까지 죽었는데 전쟁으로
안 간거는 이해를 도저히 못하겠다
그럼 북한하고는 계속 조공바치면서 민족이라 봐줘야 하냐??
포격 때 사망하신 국군 두 분 중 한 명이 저희 학교 선배님이셨죠...
@@ChakanUA-cam 문성중학교요
띄어쓰기에 오타 있어서 수정했어요
10년도에 진짜 철원 지오피에 있엇지....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어..
그때 저도 철원에 있었습니다. 자대가 포병이라서 철책에 있지는 못했지만은요. 당시에 포병부대는 포대원들이 개인화기탄 지급받고 탄약차에 포탄 적재하고 비문 파기 준비도 했었죠. 그때 다들 했던 말이 어제 유서 작성 했는데 낙장불입이라 다시쓰기에는 뭣하지만은 만약 죽어서 환생하게 되면은 이미 통일이 되어서 편하게 살거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었죠.
@@bearangry9075 저희는 분대원들끼리 10킬 0데스 하자 혹은 죽더라도 9킬 1데스는 하자라고 맘먹고 군장싼채로 op에서 잠들었엇지요...
천안함과 연평도 두 사건을 철원 어느 GP에서 겪은 사람입니다. 두 사건 모두 저에겐 죽음을 떠올리게 했었죠. 전쟁이 나면 북한 방사포만으로도 GP가 있는 전방에선 살아남기 힘들거라는게 병사들 사이의 정론(?)이었거든요ㅋㅋ 군에선 그런 얘기 일절 안했지만 워낙 긴장되는 사건들을 겪는 부대라 저희끼린 그런 얘길 자주 했습니다. 당시에 북진을 했다면 딴건 다 모르겠고 지금 침대에 누워서 이 영상을 보진 못했을것 같습니닺
말년중사 때 포대장님 생일이라 행보관님과 케잌사러 잠깐 나왔는데 TV에서 연평도에 포탄 400여발 낙하 뉴스가 나오고 헐레벌떡 대대에 들어가보니 자주포 버슬렛 열고 포탄 적재하고 탄약 전투식량 불출하고 친구들 부모님 계속 휴대폰에 전화 오고 준비태세 걸렸던거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네 ㅋㅋㅋ
저 당시 현역이었던 입장에서
전쟁이 났다면 아마 저는 죽지 않았을까 싶네요..
지금 국제정세를 보면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다가오는 거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걱정되기도 합니다.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마음가짐만이 역설적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사즉생 생즉사
당시 미국이 전면전+중국 러시아 참전을 우려했던 점이 있어서 한국군의 북진을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함..
ㅋㅋㅋ 덕분에 천안함 장병들만 개죽음 됐지
센서스튜디오님 우리나라가 외세침략안받고 지배계층이 안바뀌었다면 리뷰해주세요 ㅠ 😢 ㅠ
궁금하긴 하네요
일제의 침략도 너무 화가나지만
모든 원인은 썩어버린 지배계층 때문이였죠
당시 미국은 자국의 사업적 이득이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에서만 봐도 전쟁날뻔한걸 잘 막았다고 생각하고 있을듯.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이 안되면 절대적으로 막는게 미국임
군번 10-13277 당시 5사단 105미리 포병대대 관측장교였습니다. 당직근무 시간이 가까워 졌기에 슬슬 준비하려던 차에 실제 상황이라며 지휘통제실에서 방송이 나오고 급한대로 티비를 켜니 뉴스속보가 나오더군요. 바로 대응사격 출동하였고, 전 포반원들은 즉각대응사격 준비를 완료한 채 사격 명령만 기다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1월 말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 약 3주간 퇴근 및 개인정비 없이 포상에서 덜덜 떨면서 너죽고 나죽자 하는 전쟁상황의 긴장감과 연속된 근무상황의 피로 누적과 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 또한 두려웠으나 함께하는 전우들이 있었기에 포대원들 부모님께 연락하라고 핸드폰도 빌려주고 서로 힘내고 조금만 참자고 버텼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북진 했다면 결국엔 우리가 승리하였겠지만 저를 포함한 청춘을 바친 전우들과의 헤어짐의 슬픔 또한 짊어졌어야겠지요.
특전사를 꿈 꾸며 군사학과에 재학중인 20살 남자입니다. 불철주야 우리 국군의 헌신을 잊지 않고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특전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에 희생 당하신 4분 모두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저도 꼭 멋지고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어 우리나라를 지키겠습니다.
지금은 어때?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 엌ㅋㅋ나도 궁금해
@@Cjdnndnd ㅋㅋㅋ
@@dudgjsqor7636 나두
저눔이 내뱉은 대로 지금 하고 있을지 참 궁금함 ㅋㅋ
특전사 할려면 고등 졸업하시고 바로 가지 머하러 군사학과 가세요
항상 재밌게 보고있어요 ㅎㅎ
저때 중학생이였는데 진짜 소름이였다 진짜쏠줄도 몰랐고 그때부터 북한이 불쌍하지도않고 주적은 북한이다 라는 마인드로 살아옴
전쟁이 터지는 것을 무서워 할게 아니라 전쟁이 터져도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해야죠, 저도 저 때 현역 장병이었는데 내심 두려워 하기도 했지만 지긋 지긋한 북한의 도발을 두번 다시는 안일어나게 해버리고 싶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국가 답지도 않은 괴뢰국의 도발에 산화 되신 군장병,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 위로의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이 두개가 진짜 한반도에서 북한을 몰아낼 절호의 기회였는데
둘다 실패해서... 하
15년도 8월에 일어난 포격도발도 추가하라
저때가 북진통일의 기회 이기도 했다는거네요
한국놈들은 쫄보들이라 절대못하죠ㅎㅎㅎㅎㅎ
진짜 기회는 판문점 도끼때지
@@약탈자-x1n 그러는 너는 어느나라냐 한국인 아닌가봐
@@약탈자-x1n 니 애미가 그리 가르치디? ㅋㅋㅋ
@@위국-d2x 역사가 잘 설명하고 있음, 수고
저때 평양과 백두산에 태극기 꽂았어야 했고, 설령 북한을 완전히 갈아버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황남, 황북, 강원은 모조리 가져와서 평양 목전에 포구 겨눠놨어야 했음
그렇게 해야 나중에 우리가 북한에 영향력 행사하며 흡수해먹기도 쉽지
-이때가 남북 통일의 마지막 기회였다,
북한도 아직 핵무기 없었고 이때 쳐서 통일했다면
북한땅 개발 덕에 남한이 저출산/인구절벽으로
멸망이 확정될 일도 없었겠지..
전쟁나면 튈거라고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정작 실전에선 마음속에 살기를 품으며 진지해졌던 우리들의 모습이 이제와 생각하면 먹먹하면서도 다행스럽네요
어짜피 죽을거면 도망칠빠엔 지키다 죽는게 낫죠
당시 장사정포 요격체계가 완성된게 아니었기 때문에 수도권, 전방은 아작났을 겁니다. 우리가 밀고 올라가면서 북측 전방, 개성쪽 평야도 아작났을거고요. 핵 자체가 전력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나라가 멸망하진 않았겠지만... 글쎄요.. 도대체 얼마나 죽었어야 했을까요?
장사정포 자체가 워낙 노후화된 포와 포탄들이라 실제로 전쟁시 서울불바다나 육지의 많은 피해는 없을듯합니다.
@@Ruy_Lopez 그래도 최소 몇천명대 사망자는 나왔을거라 생각
장♡사정?포♡
@@Ruy_Lopez 물량이많았으니..
@@Ruy_Lopez 전쟁은 게임이 아닙니다.
그 포탄이나 미사일 다 우리들 집 앞마당에 떨어질거고 내가 아는 누군가가 피떡이 되서 죽어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