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가족이 서로 제한없이 직접 사는 가정으로 방문할수있도록 판문점을 열어주고 이산가족 통행증을 해주는 증명서만 갖고도 수시로 방문하게 했어야 되는데 ......이제는 이산 직계가족도 많이 죽고 없는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명목으로 북한과 타협할 이유가 없다 !!!
혹시 북한측 관계자입니까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7분이면 됐죠 서로 무사히 잘 있는것 확인하고 간단하게 안부만 묻고 하면 됩니다 5분이면 충분합니다 7분이면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저때는 1964년 도쿄올림픽때니까 1950년 625때 헤어지고 불과 14년만 아닙니까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LEEkyouho 글쎄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것이 부모자식간에 굳이 만날 필요가 없고 만나고 싶지 않다는게 대부분인데 저런 사람들은 대체 왜 저러냐고 길을 막고 물어보세요 굳이 저렇게까지 해서 꼭 만나야 겠다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어 그리고 이유가 어쨌거나 본인의 가족들을 만나겠다면 자기돈으로 만나야지 순전히 개인적인 사정인데 왜 저기다가 피같은 혈세를 써야한단 말인가 이게 말이 되는가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개소리를 작작해라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헤어진 가족이 서로 제한없이 직접 사는 가정으로 방문할수있도록 판문점을 열어주고 이산가족 통행증을 해주는 증명서만 갖고도 수시로 방문하게 했어야 되는데 ......이제는 이산 직계가족도 많이 죽고 없는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명목으로 북한과 타협할 이유가 없다 !!!
고마워요 ! 😄
신금단부녀 상봉 진짜 이산가족 ㅠㅠㅠ
두 부녀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요?
금단이는 아직 생존중으로 알려졌고 아버지는 사망
12살이면 아버지 기억 추억도 있었을텐데.저때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었던 시대라 자신감도 있었을듯!
잘살은 적은 없단다,,,단지 수치상 쩨끔 높았지, 그것도 사회주의국가들의 수치는 믿을수없는것...
1964년이면 내가 초등학교 2학년떄이네...어름풋이 기억이 나는듯하다..우리집은 반장집이라서 유선 라디오방송 스피커가 달려 있었어... 체신의 노래를 제목도 모르고 그떄 배웠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노래가 체신의노래 이더라고..
이산가족은 꼭 만나야한다.
혹시 북한측 관계자입니까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분단의 아픔
격동의 시대의 슬픔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신금단 선수의 남동생은 아직 살아 있을까요?
기다리던 부녀상봉에 힘들게 만났는데 7분만의 만남이라니....
7분이면 됐죠 서로 무사히 잘 있는것 확인하고 간단하게 안부만 묻고 하면 됩니다 5분이면 충분합니다 7분이면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저때는 1964년 도쿄올림픽때니까 1950년 625때 헤어지고 불과 14년만 아닙니까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이통영-y9v 안친해서 교류가 없는거랑 강제로 찢어져서 교류하고 싶어도 못하는거랑 같음?
@@LEEkyouho 글쎄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것이 부모자식간에 굳이 만날 필요가 없고 만나고 싶지 않다는게 대부분인데 저런 사람들은 대체 왜 저러냐고 길을 막고 물어보세요 굳이 저렇게까지 해서 꼭 만나야 겠다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어 그리고 이유가 어쨌거나 본인의 가족들을 만나겠다면 자기돈으로 만나야지 순전히 개인적인 사정인데 왜 저기다가 피같은 혈세를 써야한단 말인가 이게 말이 되는가
신금단이 어머니한테 쓴 편지가 잘못 보내져서 남한으로 오는 바람에 부녀가 상봉 할수 있게 됐네요
방송 시기가 남북 정상 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한 시기네요
그런데 지금은 70년이네요!!
이젠 거의 다죽음 직계는. 이산가족 이제다시는 없을듯.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신금단이 부친과 같이 남하했으면 한국 국적으로 3관왕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고립된 북한,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살아 생전 통일을 보려는지?
얼음의 땅
얼음같은 사람들,
58년 개띠 오명규 사장님이 진행자
이번에 나올 배우는 과연 누굴지 기대된다.
이름이 말해준다 금단의부녀 .....
미리 준비도 없이 사전협의도 없이 만나게 하여 아버지만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네.ㅋ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역사재연 드라마
내 국민학교때 어렴풋하게 들은 애가 이제서 드라마를 보냐요
통일이여 어서 오라
개소리를 작작해라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이산 가족들이 늙어 다 떠나셨는데,
이제 무슨 통일이 필요한가?
배우 조하나씨의 신인 시절이네요~~~
생사도 모르는 사람이 1천만명인데 외국에서 정부 지원으로 직접 7분간 만났으니 얼마나 큰행운인가?
신금단선수도 북한에서 고위직까지 했을테니 아버지도 안심했을테고...
어디서라도 잘살아야. 그게 부모마음이지 얼마나 가슴이 찣어졌을까.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
다음달부터바로올리는거맞습니까
신금단 배역에 조하나씨네요
경제비화시리즈 다큐멘터리극장 신화를만든사람들1부와2부도9월달부터올려주세요
조하나씨 젊은때 모습 나오네
ㅡ
경제비화시리즈 다큐멘터리극장 신화를만든사람들1부와2부는언제쯤올리는것입니까9월달부터바로올리는거맞습니까
😂
참누구의잘못인가요정치인의책임이승만김일성둘의욕심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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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김일성 놈 남침 탓이지.
프로그램은 좋은데
중엄한역사을 지들끼리웃고 코메디같이
방송하는게 짜증난다
이제는 이산가족이니 나발이니 하는 거지같은 개소리는 좀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몇년전에 북한에 사는 딸이 월남한 아버지가 수백억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을 알고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 미국에 있는 종북떨거지들의 도움으로 남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남한법원에다가 유산상속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일원에다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상봉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청에 자기는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할 경우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할수 있지만 북한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여년 전에 한국논단이라는 월간잡지에 어느 일본인 할머니가 직접 한글로 쓴 수기를 연재했는데 195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재일조총련 남성과 결혼한후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는군요 남편은 함경도 어느시골에 구두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식량난이 일어나자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그후 이 할머니는 자기동네를 왕래하는 조선족 행상으로부터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함께 중국 심양으로 나가서 며칠간 그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대사관 직원분이 자기를 데리러 직접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선족 행상은 미리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억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고 이 일본인 할머니에게는 사례비 대신 자기가 소개하는 중국인 여성을 친딸이라고 속이고 일본으로 함께 데리고 가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었습니다
알고봤더니 그 20대 중국인 여성은 50대 유부남인 이 조선족과는 내연관계였습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중국여성을 자기딸이라 속이고 함께 일본대사관 직원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호텔에서 이틀간 머물던중
일본에 살고있는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대중반이신 어머니는 그때까지 도쿄인근 도시에서 큰딸(할머니의 큰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두분이 모두 엄청 울었다는군요
그후 할머니와 중국인 여성은 일본본국에서 나온 정부요원을 따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왔는데요
정부요원은 할머니와 가짜딸을 도쿄부근 시골도시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간단한 안내를 하고 돌아갔는데요 앞으로 6개월간은 평균수준의 생활비가 지원되니까 그안에 적당한 일자리를 본인이 알아서 구하고 기타 생활관련 민원은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여성은 할머니의 영구임대아파트에 1주일간 머물다가 자기가 살 곳을 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할머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요 두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사는곳은 차로 불과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 2년 후 돌아가셨는데 당시 60대의 이 할머니는 귀국후 동네마트 식육점에서 일했는데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언니에게 어머니의 묘지는 자기돈으로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돈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건 가족에 대한 정서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원래 경남출신으로 625당시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 2000년에 아사하기 일보직전 탈북을 했는데 1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누나 형 동생 등 7남매가 모두 부산에 생존해 있더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가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더니 회의결과 이분더러 "남한은 살기가 복잡하고 힘드니까 니가 살기가 괴로울것이다 그러니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중국에서 알게된 조선족 여성과 함께 다시 들어와서 부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왕래도 고사하고 일체의 연락도 없고요 요즘은 같은 서울시내에 살아도 형제들끼리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30~40년간 전혀 안만나고 사는분들도 많더군요 전화도 10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고요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관계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제사때 볼일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실때 보면 됐지 형제끼리 일부러 만날 필요가 뭐가 있다는것이냐 입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산가족들은 축복받은 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안만나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 이산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더내도 시원찮을 판에 나라돈으로 상봉행사를 지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정 북한 가족들 만나고 싶으면 자기돈으로 만나고 북한 정권이 뒤틀면 서울 시내 아파트 한채씩 북한에 기부하고 만나라고 하십시요 그러면 다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엉뚱한 세금 뜯어내려고 눈꼽만큼도 슬플것도 없는데 억지로 징징 짜는 일 만들지 마세요 정말 밥맛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