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역사를 보면 솔직히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나 중국처럼 새로운 권력집단의 정권이 들어서거나 새로운 나라를 세워서 내부를 새롭게 바꾸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더군다나 정묘호란,병자호란을 막지 못한 지배층들은 그 누구도 반성하거나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씁쓸하네요 잘 들었습니다
동감합니다 조선의 사상이 너무 깊게 뿌리가 내려지다보니 개혁적인 정책이나 대외정책 등 너무 범위내에서의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하죠 조선 후기 그 많은 민란등을 겪었으면 변화가 생겼어야했는데 정권 지키기에만 안주하는 태도는 고립되는 사회를 만드는 원흉이 되었다고봅니다
@@lioo2661 실제로 광해군 치세때도 홍타이지가 계속 조선치자고 누르하치한테 건의하는데 다이샨이 막아서 그리된겁니다;; 좋기는 무슨 선조때 누르하치와 '표면상만' 사이가 좋아서 서로 생색도 내고 그랬지 사르후 이후에 저쪽에서 조선군포로 학살한다만다 얘기나오는게(이것도 다이샨이 좀 줄임) 당시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교과서적 정리이다보니 실제 역사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조금 보여서 글쓰고 갑니다. 우선 광해군과 강홍립 이야기는 논쟁이 있구요.(사서에는 광해군은 안했다고 하고 강홍립은 내통이 있었다고 해서 주장이 다르죠.) 그리고 실리외교 일제시대 조선사편수회에서 나온 내용이기에 사용을 하지 않는것이 맞다고 봅니다. 또한 강홍립은 전투에 패하고 부하 2/3정도를 잃은후에 금에 항복했기에 단순한 투항이라고 볼수 없습니다. 명백한 패장인거죠.
세종대왕도 셋째 였으나, 첫째는 놀기 좋아하고, 둘째는 몸이 안좋아서 셋째인 세종(대왕)을 왕으로 올렸다고 하네요 그당시 세종(대왕)은 글공부도 열심히 하고, 여러 분야에서도 우수하였다네요. 음악, 과학, 한글 등등... 가치관에서 좀 달라지겠지만 저한테 최고의 왕을 뽑으라하면, 고민없이 세종대왕 할아버지(?)십니다.
입은 삐뚤어 졌어도 말은 바로 합시다.태종의 첫아들 양녕대군은 방탕하여 ,태종에게 미움을 받았고 둘째 효령 대군 불교에 심취하여 정치 뜻이 없었고, 셋째인 충녕대군은 어릴때부터부터 총명하여 왕재로써 부족함이 없었다 이에 태종은 충녕을 왕으로 삼으니 이가 바로 세종대왕님 이시다.
이런 거 보면 성리학이 참 미친 학문이죠 정통성과 명분을 내세우다 보니 도리어 동족간에 살해를 부축이는 역할을 했으니 말이죠 이 성리학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근대화를 열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이 있었는데 그게 정조임금이죠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되돌리고 싶다고 할 때 가장 우선으로 보는 게 정조시대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라죠
되짚어보면 정조때 실학사상의 근본이 되는 사상가가 나왔고 인재와 과학기술을 중시한 정조였기에 임금의 비호하에 그들이 정권의 핵심에 있었다면 근대화의 물결이 18세기 조선을 물들였을 것이고 일본과 중국보다 빠른 근대화가 이루어졌을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 정조시기가 중요했음
@@wootaekjeong5027 일본과 중국보다 근대화가 빨랐을거라구요?ㅋㅋㅋㅋㅋ죄송한데 이미 정조는 이양선을 쫓아낸 전적이 있었을뿐더러, 청나라와 일본은 (폐쇄적이긴 했지만) 서양과 교류를 하고있었습니다. 상업도 조선보다 훨씬 발달되어있었구요. 정조시기 때도 조선은 중국과 일본에 밀린지 오래였어요.
@@ms-sx7lo 제가 보는 관점은 정조임금보다 정조시대입니다 그때 우리나라 실학의 거두인 북학사상이 나왔고 천주교가 청나라에서 도입되기 시작했죠 역사학의 관점에서 판단했을 때 천주교의 도입은 종교만이 아니라 의학과 서양의 선진과학기술의 도입을 의미했죠 정조의 승하로 안동김씨 풍양조씨 세력들의 득세 연이은 대원군과 민비의 실정으로 나라를 내어준 걸 복기하면 정조시대가 여러가지 관점에서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정조이후의 역사를 정조시대에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걸 실현 시킬 인재들이 있었으니까요
와...다음 주에 시험 있는데 사회 시험범위... 잘 배우고 갑니다!!! 선생님 께서도 은잡지님 영상 자주 보여주세요!! 그만큼 은잡지님의 영상이 중요한 부분으로 간추려져 있고 좋다는 거겠죠? 저도 커서 은잡지님 처럼 되고 싶어요!! 음악 쪽이지만 은잡지님 같은 그런 사람이요! 오미크론,코로나 조심하세요!
차라리 고려가 백배남 몽고시대때도 안하던 이마를 땅바닥에 조아리는 삼전을 하고도 나라를 이어가니 참 영화나 드라마는 조선 포장이나 하고 병자호란때 억울하게 끌려갔다 다시온 여자들을 화냥년이라 부르지않나 참참 아무리봐도 우리는 고조선 이어 부여와 고구려 고려에 민족이지 고려배신하고 왕이된 이성계 족보는 진정한 초주지계인것 같음
내용 처음부분에 광해군이 집권할때 조금 다른의견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광해군은 보통의 왕들보다 빠르고 확실히 정통성을 인정 받고 집권했으니까요. 선조가 죽자마자 상도 마치기잔에 인목왕후로 부터 옥새를 받으니까요. 광해군 집권기간의 문제를 정통성이 부족해서 라고 하기에는 사서에 내용과 교과서에 내용은 다르기에 글쓰고 갑니다.
오류가 좀 있는 것같습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명은 그 무시무시한 암군 만력제에 의해 국가 제정이 파탄나고 곳곳에 민란이 나 있는 상황이었고, 그 와중에 만력제가 조선을 도와준답시고 20만명을 보내는 바람에 완전 작살이 난겁니다. 그리고 대동법은 광해군때부터 시행폐지를 반복하던 법안입니다. 인조가 최초는 아닙니다..
2:45 적당히 싸우고 항복하라는 밀지는 없었습니다. 사리후전투에서 김응하장군이 전사하는 등, 조선은 필사적으로 싸웠고, 이 전투에서 후금에 대해 그나마 제대로 싸운 병사는 조선군과 명나라 장군 마귀(麻貴)의 부대 밖에 없었습니다. 2:57 광해군의 중립외교도 근거가 없습니다. 광해군은 후금에 유화책을 펴면서 명나라에대한 사대를 견지했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근본이유는 중립외교가 아니라 홍타아시가 명과 단교하고 자신을 황제로 받드는 (조선이 견지해온) 중립외교(?)의 파기에 대한 요구였습니다. 학계에선 이런 "중립외교"라는 단어조차 교과서에서 삭제되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사료적인 근거가 없으니 4:14 폐모살제를 반대할 서인, 남인들은 조정에 하나도 남지 않아 반대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중립외교(?)를 가장 반대한 세력은 대북파입니다. 다북파는 강경한 성향이라 온건한 외교를 찬성할리는 만무합니다. 이게 실록의 기록입니다. 4:19 청과 전쟁을 서인들이 주장했다지만, 이런 주장을 할 서인들은 한 명도 궁궐에는 없었습니다. 완벽한 대북독재시대였죠. 6:30 인조의 외교는 광해군의 노선에서 바뀐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홍타아시가 명나라와 청나라 양자택일을 요구할때 바뀐 것입니다. 명나라가 건재하던 시절 조선이 선택할 것은 없었고, 침략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광해군의 키워드는 바로 동정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항상 동정에 해당되는 인물의 키워드는 영화나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상당히 주목끌고 히트하는 다르게 말하면 돈이되는 상품성이 되는것입니다 이것을 노려서 성공한게 영화 광해 입니다 이외에도 동정이라는 인물로 주목받고 그 이상으로 부풀려지는 인물들이 있지요 수양대군에게 왕자리를 뺏기고 죽기까지한 단종,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 최영과 정몽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 다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동정 캐릭터들 입니다 잘했는데 죽었다 이거죠 그렇다고 이 인물들을 폄하지는 않지만 바로 부각된다는 겁니다 딱 드라마로 만들면 억울한 스토리를 그려서 사람들 여운에 남게하는 요소를 넣기 좋은 인물들이죠 그만큼 사람들은 영화라는 각본에 짜여진 스토리에 그대로 믿어버리고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 그이상으로 인물을 옹호하고 그 인물들과 반대되었던 인물은 무조건 폄하합니다 그리고 최근의 전 노무현 대통령을 보아도 그분은 훌륭했던 분이고 저도 존경하는 인물이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못잡아먹어 욕하던 인물을 서거 하시고나서 동정 캐릭터로 계속해서 옹호하게되죠 참 사람 마음이란게 이런 부분은 언제나 바뀌지 않는것 같은게 바로 동정 캐릭터 라는겁니다 저도 영화 광해를 보고 이병헌씨 연기도 좋았지만 영화속 신하들과의 대화에서 백성을 위하는 말을 보고 정말 대단한 인물이지 않았을까 감탄하고 계속해서 검색을 하곤 했었습니다 당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옹호하는 물결이더군요 하지만 역사에 관심을 갖을수록 잘못했던 측면도 나오는데 사람들은 그 부분은 말을 안하고 하기 싫어합니다 잘한점만 부각시키면 잘못한점은 없게 되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공평하지 못하게 생각하는 판단은 인물을 보고싶은 부분만 보게되고 그로인해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다는점을 알게된 후로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더군요 절대 잘한점만 보지 말고 못한점도 볼것 그리고 잘한점 못한점 두 부분 어느 한쪽도 더 높게 생각하지 말것 이런 생각으로 인물을 보게된후로 그동안 보아오던 역사 인물들을 다시보게되고 더 잼있어졌습니다
@@enelu2256 광해군 비판 소스의 대부분이 광해군일기에서 나오고 있는데, 광해군일기를 어디까지 믿고 그리 말씀하지는지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초본과 정초본 원문을 국역한 역사학자이자 한문학자인 임승표 박사님께서 [광해군일기]를 완역한 뒤에 다른 실록에 비해 특히 주의하라는 메뉴얼까지 남겼습니다. 1. 다른 실록과는 다르게 초초본의 기초사료(승정원일기, 시정기)의 90% 이상 산실 2. 다른 실록과는 다르게 턱없이 부족한 초초본을 메우기 위해 사대부가에 소장하고 있는 일기, 장소, 조보, 야사 및 문집 등을 수집하여 편찬 3. 인조반정에 의하여 집권한 서인에 의하여 광해군일기가 편찬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주관이 상당 부분 작용하였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해야 함 그러므로 "[광해군일기]는 사료 비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라고 못까지 박은 임승표 박사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이렇게 역사 시리즈 많이 만들어주세요!
넵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은잡지 공부하고 복습하기 좋아요
@@nett449 ㅇㅈ
사실 그동안 많은 왕들이 왕권강화를
위해 살인을 했는데 광해군이
유독 부각되는 이유는 '폐위'됐기
때문입니다.
조선 왕중에 태종도 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나요?
@@hary-xk8yg 맞아요
폐위 자체보다는 대륙 정세 변화에 어떻게 대처했느냐가 더 주요합니다. 정세 변화의 중심에 있을 때 이에 대한 대응법 차이에서 광해군과 인조가 대조되어 인조가 비판받는 거죠. 게다가 왕자로서 전장 경험이 있는 경우는 조선 역사상 광해군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글쎄요..오히려 광해군은 정말 부각이 안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한테 광해군 물어보면 대부분은 중립외교, 대동법을 말하지, 숙청은 거의 언급조차 안될겁니다. 오히려 숙청 이미지가 가장 강한건 승리자인 태종과 세조죠.
글쎄 살인을 해도 방법이 있을 텐데 8살짜리 꼬마애를 집에 가둬서 끓여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인조는 왕이 되었으면 안되었다.
조선의 암흑기의 절정을 찍은 왕.
ㅇㅇ 정당성이 없어서 유교식 명분싸움이 인조 이후부터 극단적으로 심해졌지. 유럽은 근세로 접어들며 상업과 무기가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을 때 우리는 예복으로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으니;;
조선: 후금이 쳐들어 온다!!! 우리들 끼리 싸우다 죽자!!!!!!
인조반정 & 이괄의 난이 터짐.
후금: ㅋㅋㅋㅋㅋ 저 듕신들! 따 먹어야지!
진짜 한국은 팀킬의 챔피언이당 ㅉㅉㅉ
@Moving Stone Lee 진짜 선조 인조릉을 파해쳐야 태워버려야 하는데... 저런 쓰레기들은 왕으로 모실 자격이 없음.
인조 뿐만 아니라 조선왕은
선조 고종 연산군
ㅇㅈ
10:37 인조는 대동법을 처음 시행한 것이 아니라 대동법을 확대 했습니다
영상을 만들 때 대동법 확대라고 써놨으면 괜찮았을텐데 그렇지 못했네요
이점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5:04 원조가 아니라 원종입니다
괜찮아요 지금이라도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5:07 오타
@@아무것도하고싶지-u8f 감사합니다 실수가 있었네요
@@은잡지 혹시 이렇게 캐릭터나 그림들 같은것들은 무슨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모션을 넣나요?
@@user-fq5it8xy5r 애프터이펙트를 이용합니다
진짜.. 대박이에요..
공무원 한국사 준비하면서 한국사 공부 했었다가 이제는 다 까먹었는데
지금 보니까 완전 평생 기억 남을 것 같이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겠어
역사 시험 전날에 봐도 죄책감 없는 영상
조선 후기의 역사를 보면 솔직히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나 중국처럼 새로운 권력집단의 정권이 들어서거나 새로운 나라를 세워서 내부를 새롭게 바꾸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더군다나 정묘호란,병자호란을 막지 못한 지배층들은 그 누구도 반성하거나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씁쓸하네요 잘 들었습니다
조선왕조 200년 각이였는데
임진왜란 후 이순신이 야망을 가졌다면 왕조를 뒤집을 수 있었죠 지략도 뛰어나고 백성들에게 구세주였으니까요 충분한 힘이 있었거든요 류성룡을 설계자로 두고 진행했다면...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일본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중국에는 누루하치, 한국은 인조...
조선전기의 초대왕이 태조 이성계라면 조선후기의 초대왕은 인조인 듯 합니다...
위화도 회군과 인조반정.. (위화도 회군이 성공하였으면 이괄의 난은 실패..)
@@wootaekjeong5027 그걸 알았으니 선조가 끊임없이 견제했겠죠? 그리고 선조가 자기 밑 아작내는데는 일가견이 있는사람이라;
동감합니다 조선의 사상이 너무 깊게 뿌리가 내려지다보니 개혁적인 정책이나 대외정책 등 너무 범위내에서의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하죠 조선 후기 그 많은 민란등을 겪었으면 변화가 생겼어야했는데 정권 지키기에만 안주하는 태도는 고립되는 사회를 만드는 원흉이 되었다고봅니다
놀면서 하는 역사공부! 좋은영상 감사해요~^^
언제나 이런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녹두전 이번 화 보고 설명 들으러 왔습니다 .. 드라마 덕에 역사 공부를 .. 설명 감사합니다 !
깔끔한 설명 좋습니다. 시청자를 모으기위해 수십만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에서도 자극적인 컨텐츠와 검증되지 않은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속에 보기드문 깔끔한 채널이네요
그림이 커엽고 깔끔해서 좋네요.
ㅇㅈ
ㄹㅇ
ㅋㅋ
그렇게 인조와 서인은 조선을 한번 말아먹었다고 합니다.
조선이 가장 번성한 시기가 서인 효종.영조. 정조대왕 시대인데 말아먹긴 멀 말아먹엇다는거죠?
@@lxdvskd2636 회광반조
역사 시간에 겁나답답했는디,, ㅋㅋ
@@lxdvskd2636 영조도 백성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여 영조대왕 이라고 합니다
인조가 청나라 과 싸워서 항복해서 청나라왕에게 삼전도굴욕을 함
삼전도 굴욕이란 삼전도에서 인조가 3번절을 하고 9번 고개를 조아림
그놈의성리학... 대단한학문이긴한데 너무 과학을 미천한것이라고 배제 한것이참... 아쉬울뿐이네요
@Lucy Blossom 성리학덕에 우리에게유명한 이이 와 이황 선생같은 사람이나온걸 보아 미개한 학문은 아니였던거같아요 관혼상제의 법칙덕에 효를매우 중요시여겨서 도덕적으로는 아주뛰어난학문이였죠 다만이게 변질되서 여성을차별하고 과학을미천하게봤다는것이 슬픈뿐이죠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관학파는 주례를 부국강병의 줄기로 삼고 여러 업적을 남겼는데 성리학의 근원을 연구하기 시작하는 사림집권 이후에는 그야말로...
@@user-hm5en7rf4i 그러게요... 오직성리학만이 옳다고여겨서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일어나게되엇죠..
어쩔수없는 그들의 무지함일뿐입니다
우리 또한 도덕이라는것이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과학 연구를 안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성리학 대단하죠 대단하게 미개한 학문
편집이 깔끔해서 보기 좋네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역사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본 것중에 가장 이해가 잘되는 영상이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폐모살제때문이죠 뭐 광해군이 쫓겨난건.. 좀더 신중해서 인조까지 다죽였더라면..이방원처럼 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까요?..
근데 선조는 진짜 양심없는게 본인은 더 정통성 없으면서 광해군한테 저러는거 비양심적임.
ᄋ ᄋ 양심없는것보단 자신의 트라우마 아닐까요?
@@ashm8826 처음동기는 자기친동생이 죽은게 크다고생각됨.
어차피 인조가 삼전도의굴욕까지 당했고 항복한건데 더이상 망할게 머있다고 망했을거라 하지.그들이 마음먹었으면 식민지가 됐을텐데 맘먹지 않아서 그나마 종속국가로써 유지되었지..조선자체가 항상 백성들은 가난했었고..즉 누가했던 기대는 안가는데 혹 모르겠네 광해가 게속 집권해서 청나라한테 종속 안되고 중립외교 잘했다면 백성들이 좀더 먹고살기 좋았을라나? 가장좋은건 역대왕중에 훌륭한 왕이 있어서 서양문물을 빨리 접하길 원하고 서양과 왕래하면서 빨리 발전시켰더라면 중국일본한테 쉽게짓밟히지는 않았을거 같은데..너무 무능한 왕들이였음..안주하기만하고..
그나마 광해군이 왕 유지했으면 전쟁은 안일어났죠. 광해군은 명과청 두 나라하고 그런대로 친하게 지냈는 데 인조는 그 두나라하고도 사이 나쁘게 지냈었으니
@@lioo2661 실제로 광해군 치세때도 홍타이지가 계속 조선치자고 누르하치한테 건의하는데 다이샨이 막아서 그리된겁니다;; 좋기는 무슨 선조때 누르하치와 '표면상만' 사이가 좋아서 서로 생색도 내고 그랬지 사르후 이후에 저쪽에서 조선군포로 학살한다만다 얘기나오는게(이것도 다이샨이 좀 줄임) 당시 상황입니다
이렇게 영상으로보면 공부같지않고 재밌게볼수있는것같아요! 역사컨텐츠도 많이 만들어주세요~~
저도 같은 생각 입니다 저도 역사를 좋하해서요 ㅎㅎ
감사합니다 더 많이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쉽고 정확하고 알기 쉽게...
참 좋네요 ㅎ
와.... 내용 전체를 모션그래픽으로
작업을.... 증말루 대단하십니다
내용도 좋아요👍👍👍
이번 역사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ㅎㅎ
와... 이렇게 바로 이해된 거 처음임 진짜 ㅠ 영상 너무 깔끔해서 보기 좋아요 감사합니다
10:03 광해군의 폐모살제와 비슷한 행위가 아니라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지독한 패륜이었음.
은잡지님! 늘 이렇게 도움되는 정보 감사합니다!은잡지님의 좋은 지식을 가지고있으니 늘 도움되네요! 오늘도 교과서에는 없는 중요한 내용을 배우고가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제들도 참신하고 좋네요 딱 이정도 퀄리티로만 쭉하셔도 될듯
감사합니다 계속 달려나가겠습니다
와...뜬금없지만 발음 좋다.... 여러분 자동자막 켜보세요 대박이에요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어요
강의 진짜 포인트만 딱 잡아서 너무좋다
역사 샘인데요 감사 합니다
중세 왕정 국가에서는 뭐...
왕이 되지 못한 왕자는 곧 죽음
이라고 봐도 무방합디다.
동서막론 하고 그런거 같음...
권력이란게 뭔지...쩝
경제가 파탄나 있는 상황이지만 궁궐을 너무 사랑해서 궁궐 짓기를 멈추지 못한 광해군
@@jjhyeon1113 굳이 규모를 경북궁의 10배되는 규모로 해야 했을까요.......국가재정의 27%를 쏟아부었으니
@@jjhyeon1113 그러기에는 광기가 너무 심합니다 명나라에 벽에 바르는 유약 잘만들어서 조선이 자주 수입하던 곳이 후금에게 점령당했는데 광해의 반응은 '그럼 궁궐 어떻게 지어' 였습니다
전적으로 동감. 사실 역사왜곡은 드라마나 영화가 일등공신 예로 명성왕후 난 민비라는 호칭이 맞을듯 한데
궁궐짓는답시고 백성들 쪼아대서 힘든건 차치하고, 적어도 외교적인 안목이나 대응은 인조보다 나아도 한참 나았죠. 후금이 계속 세지니까 정찰꾼도 계속 보내고 강홍립 통해서도 정보를 계속 받아보고 명나라가 군대키우라고 보낸 은도 안쓰고 궁궐에 박아놓아서 출병빌미를 안주는등 외치적인 부분만 봐도 인조하고는 비교하기가 실례인 수준입니다
애초에 인조놈 반정 명분이 광해가 궁궐짓는답시고 패악질 해대서 백성들이 너무 힘들다! 이거였는데 지는 아예 백성을 힘들게하는걸 넘어서 남의나라에 수십만단위로 포로로 끌려가게 만들어버림 ㅇㅇ 진짜 이새끼는 왕이라는게 수치스러운새끼임 무덤에서 파내야합니다
역사이야기 너무좋아요😣🔥
영상잘봤습니다
은근한잡다한지식님 영상 뭘로만드세요???
애프터 이펙트를 사용합니다 :)
이거 보면서 공부하면 공부 짱 잘됨
정리 잘해 주었어요..😊
지난 5월에 한국사 43회 1급 합격했는데 그때기억이 나고 깊게알수없었던 부분을 알수있어서좋네용
재미있게봐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지식도 다뤄주시는 줄은 몰랐네요! 이런 컨텐츠도 많이 해주세요ㅎㅎㅎ
다양한 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와 인강너무어려워서 좌절하다가 보게됐는데 쉽고재밌고 진짜짱이에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ㅎㅎㅎ
무능하고 무책임한 왕, 인조 친명배금정책으로 청나라 성질 건드렸으니 그냥 가만이 중립을 지켰으면 전쟁을 피할수 있엇을 텐데
잡하~!! 정말 유익하네요. 캐릭터들도 귀엽고 ㅎㅎㅎ 캐릭터들 이름은 뭔가요...?
캐릭터 이름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ㅠㅠ
병자호란때의 요구는 실상 요구가 아니라 그냥 전쟁하자는 게 맞을겁니다. 이당시에 재위한 청태종이 집권전부터 조선을 미리 밟아두자는 의견을 펼쳤던 주전론자였기 때문이죠. 정묘호란은 어쨌든 병자호란은 조선이 친명배금을 주장하는 이상 무슨 명분으로든 밟으러 내려왔을거임.
조선한테는 양자택일밖에 없었음. 청나라랑 전쟁하던가 명나라 버리고 청나라 밑으로 기어들어가던가. 여기 댓글에 있는 인간들이 그렇게 빨아재끼는 중립외교로는 택도 없음.
애초에 그해에 청제국 선포했는데 중립외교를 할수가 없죠 ㅎㅎ(황제는 무조건 한명=명과 청중에 골라야함)
뭐 광해군에 대해말이 많지만
한가지확실한건 광해군때는 외세의 침입이 없었고 인조때는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세트로당했다..
은잡지님은 역사도 너무 설명을 잘해주셔서 영상 정주행하기 너무 좋아용ㅋㅋㅌㅌㅋ!!
보기 좋게 잘 설명되었네요.
아무래도 교과서적 정리이다보니 실제 역사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조금 보여서 글쓰고 갑니다. 우선 광해군과 강홍립 이야기는 논쟁이 있구요.(사서에는 광해군은 안했다고 하고 강홍립은 내통이 있었다고 해서 주장이 다르죠.) 그리고 실리외교 일제시대 조선사편수회에서 나온 내용이기에 사용을 하지 않는것이 맞다고 봅니다. 또한 강홍립은 전투에 패하고 부하 2/3정도를 잃은후에 금에 항복했기에 단순한 투항이라고 볼수 없습니다. 명백한 패장인거죠.
정답
은잡지님 왕에 호칭에 시작이 언제인지 에대한 영상도 올려주세용~~
세종대왕도 셋째 였으나,
첫째는 놀기 좋아하고, 둘째는 몸이 안좋아서
셋째인 세종(대왕)을 왕으로 올렸다고 하네요
그당시 세종(대왕)은 글공부도 열심히 하고,
여러 분야에서도 우수하였다네요.
음악, 과학, 한글 등등...
가치관에서 좀 달라지겠지만 저한테 최고의 왕을 뽑으라하면, 고민없이 세종대왕 할아버지(?)십니다.
입은 삐뚤어 졌어도 말은 바로 합시다.태종의 첫아들 양녕대군은 방탕하여 ,태종에게 미움을 받았고 둘째 효령 대군 불교에 심취하여 정치 뜻이 없었고, 셋째인 충녕대군은 어릴때부터부터 총명하여 왕재로써 부족함이 없었다 이에 태종은 충녕을 왕으로 삼으니 이가 바로 세종대왕님 이시다.
전중식 정치뜻이 없는게아니라 계속 정치 ㅎ하려하면 죽임당하니까 절로 도망(?) 쫄튀한거지 머..
헷갈리던 정보..잘보고갑니다
은잡지님! 1달에 1번씩은 역사해주시면 않되겠나요?????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만약 구독자가 10만까지 간다면 특집으로 영상 제작과정 올려주새오
저런 아기자기한 캐릭터들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궁금하네요 ㅋㅋ
한번 계획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거 너무 좋아요~~~!!!
어제 역사시간에 이영상을봤네요
은잡지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귤에 있는 속껍질은 뭐고, 먹어도 되는 건가요? 영상으로 만들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ua-cam.com/video/sJqgVZcaDwU/v-deo.html 귤에 관한 은잡지 영상입니다
귤락이라고 하며 먹어도 됩니다
tv에 나오신거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
@@은잡지 와!
@@은잡지 :)
이런 거 보면 성리학이 참 미친 학문이죠 정통성과 명분을 내세우다 보니 도리어 동족간에 살해를 부축이는 역할을 했으니 말이죠 이 성리학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근대화를 열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이 있었는데 그게 정조임금이죠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되돌리고 싶다고 할 때 가장 우선으로 보는 게 정조시대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라죠
정조또한 그저 조선의 임금일뿐... 대한민국의 역사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의 성공여부로 많이 달라졌을겁니다
ㄴㄴ정조는 백년 살았어도 절대 근대화못했습니다. 뼛속부터 성리학군주인데 어떻게 근대화를 하겠어요?ㅋㅋㅋ그나마 가능성있었던게 소현세자인데, 모르죠. 세자 때까지는 괜찮았다가 왕되고 나서 망한 케이스가 한두번이 아니라...
되짚어보면 정조때 실학사상의 근본이 되는 사상가가 나왔고 인재와 과학기술을 중시한 정조였기에 임금의 비호하에 그들이 정권의 핵심에 있었다면 근대화의 물결이 18세기 조선을 물들였을 것이고 일본과 중국보다 빠른 근대화가 이루어졌을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 정조시기가 중요했음
@@wootaekjeong5027 일본과 중국보다 근대화가 빨랐을거라구요?ㅋㅋㅋㅋㅋ죄송한데 이미 정조는 이양선을 쫓아낸 전적이 있었을뿐더러, 청나라와 일본은 (폐쇄적이긴 했지만) 서양과 교류를 하고있었습니다. 상업도 조선보다 훨씬 발달되어있었구요. 정조시기 때도 조선은 중국과 일본에 밀린지 오래였어요.
@@ms-sx7lo 제가 보는 관점은 정조임금보다 정조시대입니다 그때 우리나라 실학의 거두인 북학사상이 나왔고 천주교가 청나라에서 도입되기 시작했죠 역사학의 관점에서 판단했을 때 천주교의 도입은 종교만이 아니라 의학과 서양의 선진과학기술의 도입을 의미했죠 정조의 승하로 안동김씨 풍양조씨 세력들의 득세 연이은 대원군과 민비의 실정으로 나라를 내어준 걸 복기하면 정조시대가 여러가지 관점에서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정조이후의 역사를 정조시대에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걸 실현 시킬 인재들이 있었으니까요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은 인조의 삼전도 굴욕 소식을 듣고 너무 배꼽잡고 웃어서 오래살은거 같음ㅋ(광해군이 67세로 그당시 기준으로는 엄청 오래 살았다지?)
이래서 사람은 힐링을 해야 오래 사는 듯
이해 너무 잘될요 감사합니당
와...다음 주에 시험 있는데 사회 시험범위... 잘 배우고 갑니다!!! 선생님 께서도 은잡지님 영상 자주 보여주세요!! 그만큼 은잡지님의 영상이 중요한 부분으로 간추려져 있고 좋다는 거겠죠? 저도 커서 은잡지님 처럼 되고 싶어요!! 음악 쪽이지만 은잡지님 같은 그런 사람이요! 오미크론,코로나 조심하세요!
고맙습니다! 시험 좋은 결과 있길 바랄게요
sun영님도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
공무원시험준비하는데 잘보고갑니다!
2:32 오타 제보요
명나라의 패해→명나라의 피해
피드백 감사합니다
차라리 고려가 백배남 몽고시대때도 안하던
이마를 땅바닥에 조아리는 삼전을
하고도 나라를 이어가니 참
영화나 드라마는 조선 포장이나 하고
병자호란때 억울하게 끌려갔다 다시온
여자들을 화냥년이라 부르지않나 참참
아무리봐도 우리는 고조선 이어 부여와
고구려 고려에 민족이지
고려배신하고 왕이된 이성계 족보는
진정한 초주지계인것 같음
후금이 조선을 친 이유에는 조선과 명나라 2개의 전선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 않나요?
실례가 안됀다면요 영상에 쓰시는 그림같은 소스 어디서받을수있는지 알려주실수 있으신가요?
제가 직접 그린 것입니다
@@은잡지 와...진짜 잘그리시네요!!
인조보다는 광해군이 나은듯...
비교가안되지요. 광해군 얼마나 똑똑한분인데..
이괄의 난 부분 수정이요!!!!
이괄은 서인들이 모함해서 인조가 어쩔수 없이 이괄의 아들과 부하를 잡아가서 정말로 1만명? 정도 데리고
한성 쳤다고 들었어요.
와 설명겁나 잘하셨다
내용 처음부분에 광해군이 집권할때 조금 다른의견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광해군은 보통의 왕들보다 빠르고 확실히 정통성을 인정 받고 집권했으니까요. 선조가 죽자마자 상도 마치기잔에 인목왕후로 부터 옥새를 받으니까요. 광해군 집권기간의 문제를 정통성이 부족해서 라고 하기에는 사서에 내용과 교과서에 내용은 다르기에 글쓰고 갑니다.
오류가 좀 있는 것같습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명은 그 무시무시한 암군 만력제에 의해 국가 제정이 파탄나고 곳곳에 민란이 나 있는 상황이었고,
그 와중에 만력제가 조선을 도와준답시고 20만명을 보내는 바람에 완전 작살이 난겁니다.
그리고 대동법은 광해군때부터 시행폐지를 반복하던 법안입니다.
인조가 최초는 아닙니다..
그림체 ㄹㅇ좋다
0:37 분신술인가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오 배워갑니다 ㅋㅋ
갑자기 역사?!
사랑해요~
이괄은 단순히 지방발령, 2등공신 외에도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여럿 있더라고요
아들이 역적으로 몰린 것도 하나의 이유였죠
2:45 적당히 싸우고 항복하라는 밀지는 없었습니다. 사리후전투에서 김응하장군이 전사하는 등, 조선은 필사적으로 싸웠고, 이 전투에서 후금에 대해 그나마 제대로 싸운 병사는 조선군과 명나라 장군 마귀(麻貴)의 부대 밖에 없었습니다.
2:57 광해군의 중립외교도 근거가 없습니다. 광해군은 후금에 유화책을 펴면서 명나라에대한 사대를 견지했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근본이유는 중립외교가 아니라 홍타아시가 명과 단교하고 자신을 황제로 받드는 (조선이 견지해온) 중립외교(?)의 파기에 대한 요구였습니다. 학계에선 이런 "중립외교"라는 단어조차 교과서에서 삭제되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사료적인 근거가 없으니
4:14 폐모살제를 반대할 서인, 남인들은 조정에 하나도 남지 않아 반대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중립외교(?)를 가장 반대한 세력은 대북파입니다. 다북파는 강경한 성향이라 온건한 외교를 찬성할리는 만무합니다. 이게 실록의 기록입니다.
4:19 청과 전쟁을 서인들이 주장했다지만, 이런 주장을 할 서인들은 한 명도 궁궐에는 없었습니다. 완벽한 대북독재시대였죠.
6:30 인조의 외교는 광해군의 노선에서 바뀐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홍타아시가 명나라와 청나라 양자택일을 요구할때 바뀐 것입니다. 명나라가 건재하던 시절 조선이 선택할 것은 없었고, 침략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광해군이 임진왜란에서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큰 이유는
이미 세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왕의 자리에 올 랐습니다~~
조선3대왕중 가장 멍청(?)했던왕은?
1.선조 2.인조 3.고종
전...개인적으로 2번요...
금나라는 정말 조선에도 조건 괜찮게 외교를 딜할 생각이었는데
조선이 다 튕기고 응 오랑캐 하니까 속전속결로 보급에 신경 많이 안쓰고 쳐들어왔는데
인조 이 병신이 도망도 제대로 못가서 버티기만해도 이기는걸 져버림
광해군의 키워드는 바로 동정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항상 동정에 해당되는 인물의 키워드는 영화나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상당히 주목끌고 히트하는 다르게 말하면 돈이되는 상품성이 되는것입니다 이것을 노려서 성공한게 영화 광해 입니다 이외에도 동정이라는 인물로 주목받고 그 이상으로 부풀려지는 인물들이 있지요 수양대군에게 왕자리를 뺏기고 죽기까지한 단종,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 최영과 정몽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 다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동정 캐릭터들 입니다 잘했는데 죽었다 이거죠 그렇다고 이 인물들을 폄하지는 않지만 바로 부각된다는 겁니다 딱 드라마로 만들면 억울한 스토리를 그려서 사람들 여운에 남게하는 요소를 넣기 좋은 인물들이죠 그만큼 사람들은 영화라는 각본에 짜여진 스토리에 그대로 믿어버리고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 그이상으로 인물을 옹호하고 그 인물들과 반대되었던 인물은 무조건 폄하합니다 그리고 최근의 전 노무현 대통령을 보아도 그분은 훌륭했던 분이고 저도 존경하는 인물이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못잡아먹어 욕하던 인물을 서거 하시고나서 동정 캐릭터로 계속해서 옹호하게되죠
참 사람 마음이란게 이런 부분은 언제나 바뀌지 않는것 같은게 바로 동정 캐릭터 라는겁니다 저도 영화 광해를 보고 이병헌씨 연기도 좋았지만 영화속 신하들과의 대화에서 백성을 위하는 말을 보고 정말 대단한 인물이지 않았을까 감탄하고 계속해서 검색을 하곤 했었습니다 당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옹호하는 물결이더군요 하지만 역사에 관심을 갖을수록 잘못했던 측면도 나오는데 사람들은 그 부분은 말을 안하고 하기 싫어합니다 잘한점만 부각시키면 잘못한점은 없게 되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공평하지 못하게 생각하는 판단은 인물을 보고싶은 부분만 보게되고 그로인해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다는점을 알게된 후로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더군요 절대 잘한점만 보지 말고 못한점도 볼것 그리고 잘한점 못한점 두 부분 어느 한쪽도 더 높게 생각하지 말것 이런 생각으로 인물을 보게된후로 그동안 보아오던 역사 인물들을 다시보게되고 더 잼있어졌습니다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있던 소현세자가 돌아와서 청나라에서 보았던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인조가 오랑캐의 앞잡이가 되었다며 독살을 시켰다죠?
(10:10의 추측 내용)
그건 소수의견이고 다수설은 풍토병으로 인해 죽었다는 것이 학계 주류임
프레디들 최근 의료계에서도 독살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죠.
인조는~~명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
가 ᆢ명나라의 문물을 널리 받아들이기싨어
소현세자를 독살한게 틀리없답니다!!!!
이거는ᆞ역사실록에 분명히 기록되어있어요
명나라가 아니라 청나라
@@야구의남자 어디요? 실록말씀이신가....그게 진실이여도 효종이 기록안했을껄요?
광해가 잘했건 못했건, 인조는.... 반박불가, 모두가 인정하는 연산군 다음의 조선 차악의 왕이지.
왜자고일어나면주먹이잘안펴져요?
너무궁금해요
안 쥐어져요.
아마도 근육이 자는동안 긴장이 풀려서 다시 힘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걸려서 일거에요
다른건 몰라도 반정세력들이 다루기 쉬운 왕은 아니었을까
아니 진짜 영상이랑 상관은 없는데 이분 왜 독자 없는거지 .. 유명해지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지금 이상태로 멈쳐있기엔 너무 아까워 ,,,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후금은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명에게 올인할 수 있게 후방을 안정화하기 위해 조선을 친 것입니다.
혹시 차가운물에 몸담갔다가 뜨끈한 물어 담그면 다리가 빨개지며 찌릿찌릿한가요 로 영상만들어드릴수있나요??
여진족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운게 아니라 금나라를 세웠는데 고려시대 금나라랑 헷갈리니까 후대어서 후금이라고 부른겁니다. 단군이 고조선 세웠다고 하실분이네
그렇군요 피드백 감사합니다
@@은잡지 기본적인 지식도 부족한데 참 용케도 만드시네 ㅋㅋㅋ 나무위키?
북인들은 광해군의 중립외교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중립외교는 광해군과 북방의 장수들이 긴밀하게 수행한것이죠. 실제로 많은 북인들이 중립외교에 반대해서 사표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현세자...그는 진짜였습니다
2:50 광해군이 후금에 항복하라 했다는 말은 임용한 교수님이 부정하시던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윤씨의 피묻은 적삼을 보고 분노하여 갑자사화를 일으켰다가 폐위됐죠.
은잡지님 연산군 편 해주세요
이분은 나중에 대륙의 87.5%의 시청률을 차지하는 유튜버가 될것입니다.
오.. 87.5라니 어마어마하네요
@@은잡지 오머나 답글이라니 어마어마매어마마마마 하군요....
광해군의데스노트 왜케 골때리지ㅋㄱㅋㅋㅋ
조선시대의 데스노트는 유명한 계유정란때 한명희의 살생부 지
나는 개인적으로 광해군이 인간적으로는 천하에 나쁜놈이고 왕으로써는 외교 정책은 정말 잘했고 성군 이라고 생각함
그거 초과대포장임ㅋㅋ. 외교정책은 사실 인조 초기때까지도 똑같았고(후금이 왕자 압송하라고 협박하기 전까지) 내치는 더 병신같았음. 경복궁 재건한다고 국가재정 파탄나고 소북남인서인 다 숙청하고. 광해군이 인조보다 병신같은새끼
@@enelu2256 광해군 비판 소스의 대부분이 광해군일기에서 나오고 있는데, 광해군일기를 어디까지 믿고 그리 말씀하지는지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초본과 정초본 원문을 국역한 역사학자이자 한문학자인 임승표 박사님께서 [광해군일기]를 완역한 뒤에 다른 실록에 비해 특히 주의하라는 메뉴얼까지 남겼습니다.
1. 다른 실록과는 다르게 초초본의 기초사료(승정원일기, 시정기)의 90% 이상 산실
2. 다른 실록과는 다르게 턱없이 부족한 초초본을 메우기 위해 사대부가에 소장하고 있는 일기, 장소, 조보, 야사 및 문집 등을 수집하여 편찬
3. 인조반정에 의하여 집권한 서인에 의하여 광해군일기가 편찬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주관이 상당 부분 작용하였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해야 함
그러므로 "[광해군일기]는 사료 비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라고 못까지 박은 임승표 박사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은잡지님 중종도 한번 설명해주세요
역사이야기만이해주세요!!!!
역사책 보다 훨씬 이해 잘되고 쉽게 가르치네.
궁금한게 있는데 구글 드라이브에 용량이 찼어서 구굴 포토에 있는 사진을 지웠는데, 그 사진이 다 휴지통에 있는데, 거기서 다시 복원을 할 수 있어서 중용한 사진을 복원했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휴지통에 있을땐 용량이 안 차고, 구글 포토에 있는 사진은 용량이 차는걸까요?
휴지통은 서버가 다른 것이 아닐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왜 광해군을 조나 종으로 부르지 않고 군으로 부르나요??
폐위가 된 왕은 왕자로 강등되기 때문에 군으로 됩니다 예를 들면 노산군,연산군,광해군이 있습니다
지금도 국민이 주인이 아닌데..
와 ㄹㅇ 이해못했는데 감사합니다ㅋㅋㅋㅋ넘 이해가 잘돼서 구독누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