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보면 딱 박사님 말씀 그대로임. 정말 역사와 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음. 뭐 요새 전쟁사 영상이 많다고 하지만, 역사라는 게 종합적 사고로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분야라 어떤 주제든 오해를 많이 함. 이랬으면 이겼을꺼다, 저랬으면 막았을꺼다, 이건 민족주의다 무지성 반일이다... 답답한 노릇임.
학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하는 큰 착각이 있죠. 이과 분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신뢰하면서 역사를 비롯한 문과 분야는 개나 소나 전문성 전무한 자기들 뇌피셜을 믿어도 된다고... 기본과 기초가 되는 문과 학문들을 천대하니 이런데서 한심한 댓글이 판을 치고 국수주의 환빠들이 날뛰는 듯 하네요 ㅉ
임진왜란 보면 잘못퍼진 사실이 많아서 아쉬워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나아진거 같습니다. 1. 조정은 일본이 공격할 줄 모르고 방관했다 -> 이순신도 배치하고 성벽수리하고 대비는함. 전국시대 끝나고 도쿠가와쪽도 제대로 정리 못한 상황에서 그렇게 많이 쳐들어올거라고 예상 못하지. 그리고 좀 방심하기도하고 원균의 뻘짓도 크고 2. 조총이란 신무기 '총'에 대처를 못했다 -> 영상처럼 승자총통같은 샷건?이 있어서 그정도 까진 아님. 3. 양반은 다 도망갔다 -> 싸운 의병장이 그 양반임
맞아 아예 모른진않았고 공격한다는 정보를 들었으나 반신반의했지 그래도 완전 무시할순없어서 보강을 했지만 하면서도 설마 오겠어? 하며 대충대충 보강 조총도 임진왜란 컨텐츠만 보면 조총이 무슨 게임체인저인거처럼 말하는데 절대 그정도가 아님 오히려 조총보다 병사 개개인의 수준차이가 너무 심해서 그거 때문에 작살났지 검창으로 맞붙는 백병전에선 아예 게임이 안됐고 3번째도 동의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는 논란이 있죠. 기록 상으로는 부산진 전투가 최초로 되어 있죠. 그런데 유적으로 남아 있는 게 있어요. 다대포 해안에 가면 얕으막한 동산이 있고, 여기에 왜군에 패배해서 사또쯤 되는 사람이 장렬히 전사한 유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투는 아무리 계산을 해도 부산진 전투와 같은 날이거나 그 전날입니다. 문제는 왜군이 도착한 영도와 다대포는 거리가 꽤 멀죠. 학자들 중에는 왜군의 일부가 다대포에 먼저 들어 와서 여기서 싸운 게 아니냐 라는 주장도 있어요. 역사학자들 중 누군가가 이 문제를 정리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다대진의 전투를 기대했는데, 결국은 SKIP했군요. 실록에 282번이나 언급한 우리 동네라, 당시 부산진이나 다대진은 동등한 위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다만 지금의 "부산진"는 현재에 도심이고, 부산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져서 유명해졌고, "다대진"은 고종 이후 버려진 항구이기에 잊혀진 것 같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무관심과 세월의 장난에 망각속의 영역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착각하는것 중 하나가 부산진 및 다대포진 경상좌수영내 수군지휘관들 즉 부산진 전투 직전 자침시켰다는 전선 3척이 판옥선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즉 경상좌수영은 개전 3일만에 휘하 전선 절반이 침몰했다 볼 수 있음 정발영감,윤홍신영감 두분다 정3품 직급 첨사였음 즉 경상좌수영절도사 즉 경상좌수영내 넘버2 넘버3의 분함대가 개전초기 날아감 웃긴건 조선의 진관체제에 군체계의 무지로 부산진에 왜 병력이 작았다고 까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부산진,다대포진,수영본영,동래현 등은 경상좌수영 소속이었으니 병력의 수는 판옥선 숫자에 비례하니 적은 병력일 수 밖에 없었음
이순신이 있더라도 상륙은 막을 수 없었을 겁니다. 다만 원균이 그랬던 것 처럼 수군을 죄다 자침시켜버리는 사태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난중일기에도 '경상우수영 수군을 자침시키지 말고 피했더라면..' 이라고 아쉬워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실 지금처럼 레이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하루 전에야 일본군의 진격을 알아챈 조선이 배를 모아서 반격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죠. 다만 흩어져 있는 배를 수습해서 일단 피한 다음에 훗날을 노리는 정도는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일본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정도는 가능하게끔 준비를 하는 것이 사령관으로서의 책무겠죠.
저당시 조선의 전투력이 일본이나 명나라를 앞섰죠. 특히 수군은 압도하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이지요. 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때문에 전투에 제대로 임하지 않았고 그때문에 초반의 전투에서는 패할수밖에 없었다고 배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일본이나 명나라까지도 정벌할수있는 전투력을 가졌지만 좀처럼 전쟁을 하려하지않는 나라가 조선이었던 것이지요. 일본놈들이 패배의식 심어주기 위해 가르쳐온 가짜 역사가 아닌, 조선이 얼마나 강국이었는지 실제 팩트를 짚어내고 충분히 자부심을 심어주는 교육이 되었으면 합니다.
150년간 십만이 넘는 군대가 내전한 일본보다 200년동안 전쟁을 안하고 만명 모으기도 어려운 군대가 더 강하다고 믿는 것이야 말로 바보임. 평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서 못나간 것임. 조선은 어떻하던 여진족을 소탕하려고 무지하게 애셨음. 워낙 약탈이 심한 민족이라.... 그래도 워낙 군대가 허약해서 여진족이 수시로 국경을 넘어 약탈했음.
첨사정발 부사 송상현 송상현은 죽기로작정하고 노비를시켜 말하길 내가죽으면 얼굴에있는 점으로 시신을 찾아 수습하고 내조에 계신 내부친께 이 부채를 전해라했는데 그부채에 부자의관계는가볍고 군신의 길은 무겁다 라고 써있었다 뜻이 머겠냐 유교세상에 부친보다 먼저죽는 불효를하나 부친은 가슴을 부여잡고참지만 자신이 도망가서 목숨을 유지하면 임금은 자기를 죽일거다라는 뜻입니다 어려선 몰랐는데 너무 슬픕니다
댓글을 보면 딱 박사님 말씀 그대로임. 정말 역사와 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음. 뭐 요새 전쟁사 영상이 많다고 하지만, 역사라는 게 종합적 사고로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분야라 어떤 주제든 오해를 많이 함. 이랬으면 이겼을꺼다, 저랬으면 막았을꺼다, 이건 민족주의다 무지성 반일이다...
답답한 노릇임.
학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하는 큰 착각이 있죠. 이과 분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신뢰하면서 역사를 비롯한 문과 분야는 개나 소나 전문성 전무한 자기들 뇌피셜을 믿어도 된다고... 기본과 기초가 되는 문과 학문들을 천대하니 이런데서 한심한 댓글이 판을 치고 국수주의 환빠들이 날뛰는 듯 하네요 ㅉ
이렇게 귀한 강의를 기획하고 진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bs에 좋은 선택. 통찰의 임용한 박사'님
의
다음영상 기대되요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임진왜란의 발발을 알린 부산성전투의 정발 장군은 생각보다 굉장히 잘싸운 장군이었죠.
근데 적군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했던 보병군인이었던 중세 일본군이었기 때문에 적군이 너무 강해서 패전한 안타까운 전투였음.
과연 수신료의 가치를 진정으로 실천하고 있는 유일한 채널
훌륭한 강의 고맙습니다.
임진왜란 보면 잘못퍼진 사실이 많아서 아쉬워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나아진거 같습니다.
1. 조정은 일본이 공격할 줄 모르고 방관했다 -> 이순신도 배치하고 성벽수리하고 대비는함. 전국시대 끝나고 도쿠가와쪽도 제대로 정리 못한 상황에서 그렇게 많이 쳐들어올거라고 예상 못하지. 그리고 좀 방심하기도하고 원균의 뻘짓도 크고
2. 조총이란 신무기 '총'에 대처를 못했다 -> 영상처럼 승자총통같은 샷건?이 있어서 그정도 까진 아님.
3. 양반은 다 도망갔다 -> 싸운 의병장이 그 양반임
3번은 진짜 양반 by 양반이라서.. 걍 도망간 양반도 많긴 합니다.
맞아
아예 모른진않았고 공격한다는 정보를 들었으나 반신반의했지 그래도 완전 무시할순없어서 보강을 했지만 하면서도 설마 오겠어? 하며 대충대충 보강
조총도 임진왜란 컨텐츠만 보면 조총이 무슨 게임체인저인거처럼 말하는데 절대 그정도가 아님
오히려 조총보다 병사 개개인의 수준차이가 너무 심해서 그거 때문에 작살났지
검창으로 맞붙는 백병전에선 아예 게임이 안됐고
3번째도 동의
임용환 선생님은 참 정치적 편견 없이 잘 알려주는거 같습니다ㅎ
언제나 감사합니다❤
2~9편까지는 맴버쉽 동영상이네요. 왜요... 수신료 다 냈는데... 임용한 박사님 강의는 그래도 전국민이 봐야되는 거 아닌가요 ㅠㅠ
남은 8편 빨리 풀어주세요ㅠㅠ
임용한 박사님 잘 보겠습니다!
최고입니다^^
어제 올라온 따끈따끈한 영상이네요
와 이게 올라오다니😍
우리시대의 현자 임용한. 그의 통찰력을 이어받을 후학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하는데ㅠㅠ 미래에 쓰이지 못하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그냥 옛날 이야기일뿐이다.
썬킴님 설민석님이 있음
@@KrMorgan12ㅋㅋㅋㅋㅋ진짜 맞을래요?
@@다람쥐-e7p 나말고 저 두명이 맞을래요.
@@KrMorgan12 어림반푼도 안되는 소리 셧업하고 댓글지워라.
정말 역사 "선생님"과 옛날 "이야기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의 역사 강의인데 왜 재미있지?
임용한선생님 명강입니다.
어렸을때 정발 장군이 놀다가 대비를 허술하게 했다고 배웠었는대(사냥) 그게 아니었네요
박사님 너무 바쁘셔..
부산성 참혹했죠 이래서 국방력이 중요합니다
현재도 마찬가지고요 걱정이네요
한가해지면 남해안쪽에 만들어진 왜성을 돌아볼 예정이에요. 재밌는구조가 많았다고 하네요. 뭐 지금은 순천왜성같은거 빼고는 제대로 보존된게 없다곤 하던데;;
제가 어릴적부터 역사와 지리에 관심이 많았네요 ㅜㅜ
역사 관련 영상을 보면 애국심도 생기고 좋은데.. 요즘 저출산 영상에 달린 댓글들 보면 진짜 가관임.. 이런나라에 애기 태어나게 하면 안된다니, 안태어나게 하는게 애국이라고 하니.. 속이 꽉 막히더군요..
2강을 보고싶어요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는 논란이 있죠. 기록 상으로는 부산진 전투가 최초로 되어 있죠. 그런데 유적으로 남아 있는 게 있어요. 다대포 해안에 가면 얕으막한 동산이 있고, 여기에 왜군에 패배해서 사또쯤 되는 사람이 장렬히 전사한 유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투는 아무리 계산을 해도 부산진 전투와 같은 날이거나 그 전날입니다. 문제는 왜군이 도착한 영도와 다대포는 거리가 꽤 멀죠. 학자들 중에는 왜군의 일부가 다대포에 먼저 들어 와서 여기서 싸운 게 아니냐 라는 주장도 있어요. 역사학자들 중 누군가가 이 문제를 정리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실전용 왜군이 서류상 군대인 조선군을 박살내는 전쟁의 시작 실전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중요
첫 댓글 얌얌😊
썸네일상으로는 고니시는 102살까지 장수한게 돼버리는군요ㅋㅋㅋ
1600년을, 1660년으로 오타낸 듯 합니다 ㅎㅎ 에도막부까지 살아남는 다중우주의 고니시..
임박사님 왔다 각잡아라
크..
캬 ebs가 인제 일을하노
1강만 공개되나요?
4편 진주성까지 업로드 되어 오늘 낮시간대에 볼수 있었는데
방금 보니 1편 제외 전부 멤버십 전용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중요한건 당시 정발영감은 수군지휘관이었다는 사실 육군 지휘관이 아닌 수군지휘관이라 휘하 병력이 수군이라는 약점
小西行長 1555~1600
고니시 유키나가 103살에 죽었다구요..?
무조건 삼국지 아저씨!!!
하긴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밥 먹고 전쟁만 한지가 벌써 100년인데 그 정도면 전쟁에는 달인이 되었겠죠. 부산진성 공격시에 보여준 일본군의 기계같은 움직임은 아마 이런 실전경험에서 나온 듯 합니다.
헐... 낚였네. 1강 맛보기였어.
다대진의 전투를 기대했는데, 결국은 SKIP했군요. 실록에 282번이나 언급한 우리 동네라, 당시 부산진이나 다대진은 동등한 위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다만 지금의 "부산진"는 현재에 도심이고, 부산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져서 유명해졌고, "다대진"은 고종 이후 버려진 항구이기에 잊혀진 것 같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무관심과 세월의 장난에 망각속의 영역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착각하는것 중 하나가 부산진 및 다대포진 경상좌수영내 수군지휘관들 즉 부산진 전투 직전 자침시켰다는 전선 3척이 판옥선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즉 경상좌수영은 개전 3일만에 휘하 전선 절반이 침몰했다 볼 수 있음
정발영감,윤홍신영감 두분다 정3품 직급 첨사였음 즉 경상좌수영절도사 즉 경상좌수영내 넘버2 넘버3의 분함대가 개전초기 날아감
웃긴건 조선의 진관체제에 군체계의 무지로 부산진에 왜 병력이 작았다고 까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부산진,다대포진,수영본영,동래현 등은 경상좌수영 소속이었으니 병력의 수는 판옥선 숫자에 비례하니 적은 병력일 수 밖에 없었음
고니시 유키나가 생몰년도가 잘못된거 같습니다
순국선열 흑의장군 정발장군님
01:30 고니시 사망연도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 처형 당하니까 1600년 일듯............
부산진성 다대포성 동래성 다 합친게 지금의 부산이죠
원래 유료컨텐츠 였는데 무료로 풀어주는 건가요? 아 주 조 아
앗 1강만 무료네 당했다
땡큐.
그렇군요.
일본 1543년 조총수입 1592년 임진왜란 발발 때 세계최대 조총보유국 이었다고 합니다 소총수를 앞에세운 근대보병전술을 구가하는 왜군에 사실상 조선군은 상대가 되지못해습니다.
1차 평양성 전투에서 조선군이 어설프게 야습하다 실패하고 고니시 부대에 역습당해 하루만에 함락된 케이스, 예성강 전투에서 가토 부대가 후퇴하는 척하는데 속아서 추격하다 역습당해서 하루만에 개성함락.
송때도 그랬던건가요? 금 기병이 후퇴하는척 한후 송 부대를 향해 돌진했다는 설을 들은적있습니다
1:26 썸네일 포함 출생일은 불분명 한데 고니시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하여 카톨릭 신자라할복도 안해서 목썰려 죽는걸로 아는데 1660년도면 98세 사망인데 천수를 누린건데
그러게 말이죠 빨리 수정해야~
1:26 모임 102년 살음? ㅋㅋㅋ 임진왜란 후 돌아가서 내전으로 금방 뒤진거로 아는데
고니시 유키나가는 1600년 서군으로써 참전하여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패전후 참수됐습니다
1660년이라고 되어있는데 수정부탁드립니다
1. 적군이 오는지도 모르고 사냥(훈련) 나가 있고 2. 왜관에서 왜인이 나가는지도 몰랐다는 의미네요
초반 경계의 실패라고 보여짐
19:00 삼국지가 후반으로 갈수록 장수들의 무력이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삼국이 정립되고 국가와 군대가 안정이 되면서 행정형 장수들이 대장이 되고 무력만 좋아서는 잘해야 부장급밖에 못되었어요.
부산성이 아니라 동래성입니다
동래는 송상현
부산이란명칭이 그당시에 있었던가!!!
고구려 멸망 이후에 천혜 요새 평양성을 가장 잘 활용해서 방어한 인물이 고니시라는게...
1:29
고니시 유키나가 1558~1660년으로 생몰이 되어있는데 무슨 100살을 살았습니까?
아무리 적장이라지만 조사 좀 제대로 하죠?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후 향년 45세에 참형에 처해지는 사람입니다.
1555년~1600년으로 생몰 전부 틀렸습니다.
야전형 장군!!!!
처음엔 뭘모르고 대항했다가 이후 소문이 나서 한양까지 전부 도망가기 바빳음
경상도 수군이 부산에 모여 있다가 정발의 야습제안을 무시하고 배를 버리고 도주하고 흩어지고 육군을 도운것도 아닌데 정발 송상헌만 죽었는데 잟한것이라니 교수님 전쟁사 공부 더하세요. 이순신 장군도 경상도 수군이 적전 도주한것울 비난했는데 이순신이 바보라는 것인가
뭐라하는 인간들 저시절 부산으로 보내줘야되는데
임란 당시 도쿠가와 이예야스가 일본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었다느니, 일본 북쪽은 통일이 안되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최x성, 설x석, 썬x, 이런 유사역사학자들 나와서 국뽕 무지성반일 민족주의 헛소리하는거만 듣다가 임용한 박사님 강의들으면 정화되는느낌
반일 민족주의는 위 셋중에 썬X는 인정함.하지만,다른 두 사람은 반일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멈.
황현필인,ㄴ 왜빼누 ㅋㅋㅋㅋ
@@다람쥐-e7p애초에학자도아님ㅋㅋㅋ
@@다람쥐-e7p 걔는 걍 지령받은 선동가수준이라
몰라서 물어보는건데 이분도 유사역사학자 아닌가요?
교차검증 하지도않고 책에 옮겨적었던 논란이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왜 엉망이 되버린 고려사 (국경 왜곡) 에 대해선 침묵하시는거요?
지명이 지금과 달라서 아무도 모르는데, 니는 우째 아노?
임용한은 다 좋은데 자꾸 고정관념 깨라는 식으로만 한다
니처럼 고정관념잇으면 아무리말해도안깨지니까그러지
우리가 타임머신이 없는 이상 자료를 기준으로 과거를 상상해 봐야 하는데. 누군가는 처음 본 그 자료가지고 고정관념이 생겨서 계속 찾아내는 자료로 인해 바뀌는 기록을 따라갈 생각을 안 하니까?
일본군이 상륙전에 원균이 아닌 이순신이 잇엇더라면. 대비하고 상륙도 못햇을텐데요. 혹은 정발장군이 조선의 화포로 상륙하는 일본군에 포격을 가햇더라면.. 이순신장군처럼 대비한 장수가 부산에 한명이라도 잇엇더라면 피해가 작앗을수도 잇지 않앗을까요?
대비아뮤리잘해도 600으로 18000을 어케막음 ㅋㅋ 무기수준 실전경험 차이도 장난아닌데
꼭 그렇다고 확신할수도 없는게.....
박사님이 누누히 강조하는 게
원하는 장소와 원하는 때 이 두가지가 전략 전술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인데.
경상도 바다에선 그 두가지 이점을 활용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어요
당시 조선시대 시대상황에 대해 1도 모르네
이순신이 있더라도 상륙은 막을 수 없었을 겁니다. 다만 원균이 그랬던 것 처럼 수군을 죄다 자침시켜버리는 사태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난중일기에도 '경상우수영 수군을 자침시키지 말고 피했더라면..' 이라고 아쉬워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실 지금처럼 레이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하루 전에야 일본군의 진격을 알아챈 조선이 배를 모아서 반격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죠. 다만 흩어져 있는 배를 수습해서 일단 피한 다음에 훗날을 노리는 정도는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일본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정도는 가능하게끔 준비를 하는 것이 사령관으로서의 책무겠죠.
이순신장군은 철저하게 이길 각이 나와야 움직이는 타입이라 첫 상륙때는 확실히 병력온존하면서 빠졌겠지
EBS ㅋㅋㅋ
이세환 패키지 이양반도 좀 그만보고 싶다 방송 그만하고 책좀보고 연구좀 해라
우리는 600명이고
일본은 1.500.000명이였다는걸
밝혀야쥬
제대로
설명해 주세요
옷은 일본순사 같냐
조선인 포로를 포르투갈 상인에게 노예로 파는 행위를 예수회 선교사들이 금지했을 때 포르투갈 상인과 다른 다이묘들은 무시했지만 고니시는 이에 순명했던 사실만 봐도 존경받을만한 인물임.
저당시 조선의 전투력이 일본이나 명나라를 앞섰죠.
특히 수군은 압도하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이지요.
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때문에 전투에 제대로 임하지 않았고
그때문에 초반의 전투에서는 패할수밖에 없었다고 배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일본이나 명나라까지도 정벌할수있는 전투력을 가졌지만
좀처럼 전쟁을 하려하지않는 나라가 조선이었던 것이지요.
일본놈들이 패배의식 심어주기 위해 가르쳐온 가짜 역사가 아닌,
조선이 얼마나 강국이었는지 실제 팩트를 짚어내고
충분히 자부심을 심어주는 교육이 되었으면 합니다.
정신승리 ㅋㅋㅋㅋㅋㅋㅋㅋ
국뽕학 배움???
객관적으로 명일이 더 쌘데
@@플라티나-p9m 日本人は出て行ってください
150년간 십만이 넘는 군대가 내전한 일본보다 200년동안 전쟁을 안하고 만명 모으기도 어려운 군대가 더 강하다고 믿는 것이야 말로 바보임.
평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서 못나간 것임. 조선은 어떻하던 여진족을 소탕하려고 무지하게 애셨음. 워낙 약탈이 심한 민족이라.... 그래도 워낙 군대가 허약해서 여진족이 수시로 국경을 넘어 약탈했음.
압도적인 전투력의 조선수군(지휘관 바뀌니 전멸)
선조보다 못났으면 비판하지 말라는 이상한 아저씨
그럼 대통령 비판도 하지말라는건가 당최 이해가 안가는 사람
문맥을 이해못하는 니가 당최 이해가 안간다.
언제 비판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대로 비판하라고 했죠.
영상도 안보고 싸지르는 이런 인간때매 한국이 이모양임
당최 이해를 못할만 함 지능이 좀 딸리는듯 ㅋㅋㅋ
첨사정발 부사 송상현 송상현은 죽기로작정하고 노비를시켜 말하길 내가죽으면 얼굴에있는 점으로 시신을 찾아 수습하고 내조에 계신 내부친께 이 부채를 전해라했는데 그부채에 부자의관계는가볍고 군신의 길은 무겁다 라고 써있었다 뜻이 머겠냐 유교세상에 부친보다 먼저죽는 불효를하나 부친은 가슴을 부여잡고참지만 자신이 도망가서 목숨을 유지하면 임금은 자기를 죽일거다라는 뜻입니다 어려선 몰랐는데 너무 슬픕니다
얼마나 지식 없고 줏어 들은 것만 많은 감성적인 아재들이 임용한 박사님께 악플을 많이 달았는지 악플의 변을 설명하는데 절반 이상 쓰잖아요. 니가 학교에서 배운게 다라고 생각하지 마라 임마. 나이처먹고 그러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