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대첩, 고구려 을지문덕 미스터리】 ㅣ을지문덕은 이름이 아니다?ㅣ그의 생과 사 기록은 없다ㅣ일요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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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5 січ 2025

КОМЕНТАРІ • 563

  • @y-dragon8103
    @y-dragon8103 3 роки тому +160

    요즘 중국 동북공정이 판치고 있는데 이런 우리 한국사 관련 컨텐츠 너무 좋아요~^^

    • @bc-tp6bt
      @bc-tp6bt 3 роки тому +15

      동북공정은 이미 완료됐다고합니다 ㅜㅜ 그래서 문화공정을 준비한다고 하죠

    • @장미-z6b
      @장미-z6b 3 роки тому

      👍👍👍

    • @석류-f2k
      @석류-f2k 3 роки тому +5

      @@bc-tp6bt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부처도 문제가 있고요.. 조선구마사같은 드라마에도 동북공정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거대자본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 동북공정을 받아 들이는 기업들의 자세가 더 심각해요.

    • @bc-tp6bt
      @bc-tp6bt 3 роки тому +6

      @@석류-f2k 맞는말씀입니다 차이나타운 같은 경우에도
      중국자본이 들어온건데 세금으로 만든거라고 안일하게 언플하는 가짜뉴스들부터 어찌해야할듯요

    • @sweetfan3250
      @sweetfan3250 3 роки тому

      한족.노예족말고 선비족.수나라인가요?

  • @e36dhdbsjzb
    @e36dhdbsjzb 3 роки тому +55

    그냥 을지문덕이 없는 사람인거 보다 후대에 의도적으로 기록말살을 한거 같음. 두가지 이유 때문임
    1. 영왕왕 이후 영류왕과의 갈등 및 정치적 숙청: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정도라면 당시 고구려 군부에서 엄청난 신망이 있었을 거임.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군부의 상징적 인물이고 주화파라기 보다 주전파일 가능성이 큼. 아마 당시 태자였던 영류왕과 사상적으로 갈등했을 가능성이 높음. 영류왕은 제위시절 대당친화정책을 쓰다가 연개소문에게 오체분시되니까 ㅇ
    2. 을지문덕은 사실 순수 고구려인이 아닐 수 있음. 선비족의 일파였던 조상이 고구려로 귀화했을 가능성이 있음. 이런 얘기가 나오는게 당나라의 울지경덕 때문인게 큼. 같은 선비족인데 혼란기때 망명한 나라가 다른거임. 이게 의외가 아닌게 고려 거란 전쟁때 고려측에 발해의 후손들도 많이 참전했지만 거란측에도 발해의 후손들이 많이 참전했음. 전혀 이상한게 아닌거임. 특히나 혼란기에 나라가 망하고 도망가서 특정한 나라에 귀부하는건. 즉 고구려는 태왕릉비에서도 천손의 후예라고 자처할 정도로 혈통에 자부심이 강한데 을지문덕이 선비족 계열이다? 거기다 영류왕과 근본적인 견해차가 극과극이다? 제거의 명분은 충분하고 지병으로 설사 이전에 죽었어도 조선시대 부관참시같이 사후에 얼마든지 죄명을 덮어씌우고 기록말살해버렷을 수 있음. 살수대첩 기록을 못건드린건 당시 그 전투 충격이 너무 커서 중국측에도 기록이 많이 남아 위조해봤자라서 그런거라고 생각함. 오죽하면 고려 원종이 태자시절 쿠빌라이에게 투항하러 갔을때 "중국도 정복못한 고려가 나한테 투항하러왔다"고 놀라워했겠음. 또 임진왜란때 명나라한테 도와달라니까 "니네 예전에 100만대군도 무찌른 애들 아니냐? 설마 일본이랑 편먹고 우리 공격하는거 아냐? "라고 의심했던 명나라 조정이었겠음? 특히 고구려는 당시 신라와는 달리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는 편이었음. 워낙 전쟁이 많았으니까 그럼, 대표적으로 온달도 그런 케이스고. 또한 씨름도에 왠 중동인이 그려진 걸보면 알수 있듯 꽤나 외국인들도 고구려에 거주했을거란 추정도 가능함.
    출생이 미스테리한건 그때문일거임. 사실 연개소문도 가문적 특성을 보자면 고구려의 전통적인 귀족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있음. 특히 장수왕 평양천도 이후 국내성계vs평양계 귀족간 갈등을 암시하는 기록은 많음. 삼국사기엔 두 집단 사이의 갈등에 대해 간주리의 난만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서기까지 보면 안장왕 사후 고구려 혼란기 일본에 고구려인이 가서 "우리나라는 곧 망할거다"라며 망명을 해버린 인사들도 있을 정도니까. 연개소문도 연남생 비석을 보면 광개토대왕시절 모두루 묘지같이 "우리가문은 천손의 후예고 고구려 건국시 추모대왕을 도왔다" 라는 기록이 없음. 즉, 연개소문 가문은 신흥 귀족세력이었다는거.
    그리고 생각해보면 연개소문 쿠데타때도 그렇고 멸망할때 당나라에 투항하는거도 보면 연남생이 연남건과 대립 끝에 국내성으로 튀고 얼마뒤에 국내성.목저성, 남소성 등 6개 성이 당나라에 투항해버림. 저 3개 성은 광개토왕 이전부터 오랫동안 고구려 서북경계를 담당했던 전통적인 방어성임. 근데 얘네가 갑자기 한꺼번에 항복을 해버린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국내성계 귀족의 불만이 터져서 나라를 갖다바친거라 생각함. 국내성계 귀족들 세력이 컷으니까 연개소문도 쿠데타 이후 자기한테 반기를 든 안시성주를 함부로 토벌하지 못한거고. 아마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벌이고 주살한 수백명의 귀족들도 상당수가 국내성계였을 가능성이 큼. 결과적으로 애석하지만 우리는 장수왕 시기 고구려 최전성기고 평양천도 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개로왕의 걸사표(당시 북위한테 고구려좀 공격해달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수도를 이전한다고 나라 전체를 어육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라고 써놓음), 일본서기, 이후 간주리의 난, 추군과 세군끼리 분열, 연개소문 쿠데타시 안시성주의 반발, 멸망당시 남생과 국내성계의 동향 등을 고려하면 장수왕때 평양천도가 결국 고구려의 멸망의 씨앗이 된거임.
    PS: 그렇다고 영류왕 볍진이라고 보면 안됨, 이 사람 아니었으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도 없었음. 내호아의 수군 4만이 평양성에 상륙했을때 당시 태자였던 영류왕이 결사대 5백을 이끌고 내호아의 4만 병력을 전멸시켰음. 원래 수양제가 30만 별동대 보낼때 이 수군들과 연락을 취해서 보급품도 받고 수군과 양면공격 하라고 보낸거임. 근데 살수대첩 직전에 당시 태자였던 영류왕이 평양성에서 내호아의 4만병력을 작살냈고 내호아가 본국으로 후퇴해버려서 30만 별동대가 보급도 못받고 고립된 거임. 그렇게 어버버 거리다가 살수대첩으로 오체분시 된거고. 즉 다시말해 을지문덕 만큼이나 영류왕도 전쟁영웅이었다는거임.

    • @이도형-x9x
      @이도형-x9x 3 роки тому +1

      되려 주화파가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봅니다
      중국의 물량공세를 알았으니 ....
      영류왕이 주화파 된 것도 물량공세를 몸소 겪었던 것이 한 이유였을 것이니....

    • @e36dhdbsjzb
      @e36dhdbsjzb 3 роки тому

      @@이도형-x9x 영류왕은 주화파가 된게 확실하고 그를 따르는 귀족들도 그랬을 겁니다. 평양성 전투 영웅이지만 통일된 중국의 물량을 보고 진짜 나라 절단날거 같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자기가 왕이 되고 난 후부터는 대당친화정책을 펼치죠. 심지어 고수전쟁 승전탑도 스스로 허물어버리고 당시로선 국가기밀인 고구려 지도까지 넘겨주죠. 아마 이게 당시 연개소문을 위시한 강경파 입장에선 피가 거꾸로 솓아오르는 매국노질이라고 인식했을겁니다. 그게 정변으로 이어진거고..저는 영류왕의 입장도 연개소문의 입장도 이해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류왕이 전쟁영웅이긴 하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극심한 PTSD도 앓았을거라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사실 너무 지나치게 굴종적인 측면도 있어서요.

    • @oo9384
      @oo9384 3 роки тому

      다른건 저도 동의를 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가설 같아요. 그런데 음..수도 이전으로 멸망테크탔다는건 조금 비약같습니다. 원래 수도를 옮기는 것 자체가 위험부담이 있는거죠. 그래서 달구벌 천도도 무산되었구요. 하지만 고구려는 그럼에도 고수 고당전쟁 훌륭하게 잘 막아내었어요. 만약 그게 상황적 원인이었으면 그때 이미 진즉 나라 갖다 바쳤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뭐 물론 나라 망했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거에요. 지금 우리나라도 나라 망할 것 같아서 이주하는 사람도 있잖아요.ㅎㅎ고구려가 생각보다 다민족이어서 내부 갈등이 생각보다 심각했을거라는 것엔 저도 동의는 합니다.. 그럼에도 세계대전급 규모의 고수 고당전쟁을 막아냈다는 건 그래도 제법 국가 이데올로기는 잘 발휘되고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구 이데올로기도 예맥족 중심으로만 천손 후예다라기 보다는 한단계 더 나아가서 중국의 천하관에 대응한 국가정체성의 성격을 가진 고구려 천하관같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막 싸우다가도 중국이 오니까 단합해서 다 막아내고..그런 성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다 고구려가 비로소 멸망되니까 그때부턴 혈통중심으로 뭉쳐진거고 발해는 그런 국가통합적 이데올로기가 없었으니까 고려와 거란이 싸울 때 각각 참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견이 있어 댓글 남겨봅니다! 진짜 죽기 전에 기적처럼 유기나 고구려 1차 사료 하나만 발견되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진짜ㅜㅜ사료가 너무 부족해..고구려 쳐돌이라 하...간절하네요 1차사료

    • @e36dhdbsjzb
      @e36dhdbsjzb 3 роки тому +3

      @@oo9384 저도 너무 비약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근데 개로왕 걸사표부터 시작해서 안장왕이 피살의혹도 그렇고 국내성계vs평양계가 멸망직전까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 보여서 평양천도가 그 원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사실 평양천도는 정말 합리적인거 맞죠..국내성..지안시 그 좁아터진 땅덩어리..나라가 커졌는데 그 코딱지만한 곳이 수도기능을 제대로 해낼지도 의문이고 방어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동천왕,고국원왕때 두번이나 제대로 털려서 방어기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평양이야말로 방어적,인구부양적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수도가 이전된다는 것은 기득권의 변경을 뜻하는 것이고(특히 고대에는) 장수왕 사후 약 100년간 고구려가 거의 내전에 시달렸다는 점과 멸망직전에도 국내성계가 허무하게 이탈해버린점 등..(선도해나 그 이세민한테 투항해버린 백암넝주 같은 사람들이 제 상상으로 반연개소문계이며 국내성계 귀족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님 말씀처럼 사료가 너무 부족한게 탈이네요.ㅜ

    • @나이스-p8h
      @나이스-p8h 3 роки тому

      역적이었던 척준경 전투들이 상세히 기록되있는것만 봐도 (이것도 역적이라 깎아내린 수준인데 활약이 엄청나죠)
      일단 역적이어도 오랑캐 처부순 활약은 기록에 남겨두는게 국룰이엇던것 같음

  • @터프가이-q5s
    @터프가이-q5s 3 роки тому +53

    제가 볼때는 을지문덕장군의 기록을 당나라가 후에 고구려로 쳐들어오면서 중국입장에서는 치욕의 역사니까 기록말살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제가 당나라왕의 입장에서 조금 생각해보니 쪽팔리는 역사라 당장 을지문덕기록 찾아서 불태워버리라고 명령할 것 같네요,,, 중국피라미드도 발굴할려고 하니 중국에서 갑자기 발굴못하도록 막았다고도 하더라구요...

    • @justmen454
      @justmen454 3 роки тому +16

      저도 그렇게 생각함

    • @b982
      @b982 3 роки тому +6

      저도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걸로 하죠. 고구려의 역사를 완전히 지운게 당나라입니다.

    • @혜모수73
      @혜모수73 3 роки тому +5

      보장왕때 평양이 함락되고 당 장군 이정이
      고려의 역사와문화가 당에 필적하니 후환을 없앨 목적으로 다 불살랐다던데 그때 다 사라졌을수도 있다고 봄.

    • @관운장KOR
      @관운장KOR 3 роки тому +1

      니가 당나라 왕이 된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 입장으로 생각을 하냐? 논리가 없노

    • @user-ej1ic1xw3v
      @user-ej1ic1xw3v 3 роки тому +7

      @@관운장KOR 초면에 반말하는걸로 봐서 딱 보니 초딩인것 같은데 터프가이형 참고로 영춘권 익혔다. ㅋㅋ

  • @goldlaby7379
    @goldlaby7379 3 роки тому +10

    평소 역사 채널도 자주 보는데 역사+미스테리라니 넘나 좋아용!

  • @꼬앨
    @꼬앨 3 роки тому +12

    언제나 흥미롭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역사미스테리 ^^ 오늘도 감사히 잘보겠습니다 ^^

  • @soulmate5968
    @soulmate5968 3 роки тому +6

    참 좋습니다 .역사에 대한 의문 제기는
    흘미롭고 다시 한 번 탐문하게 되요

  • @curiousbox5982
    @curiousbox5982 3 роки тому +24

    세모녀살인사건,경북구미여아사건 등등
    자극적인 사건들로 떠들썩하다가
    역사이야기를 들으니 귀가 정화 되는것같네요^_^
    재미있게 시청하고 갑니다! 오늘 하루도 화이팅 입니다.

  • @daebaksdailylife3933
    @daebaksdailylife3933 3 роки тому +16

    고구려의 기록이 가장 덜 남아있기 때문에 이 말 나오고 저 말 나오면 흔들릴 수 밖에 없고 확신하기 어렵긴 하죠.
    그럼에도 그들이 존재했다고 확신을 가져야 하는 건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증거를 계속 찾고 연구하지 않으면 뺏겨버리니까.

    • @대광성
      @대광성 3 роки тому +1

      삼국의 역사가 각기 다른 나라에서 강하게 존재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딱 골라 내것 네것 이라는 개념을 두긴 어렵지요
      본래 같은 북방민족의 혈통이라는 개념 때문 입니다.
      다만 고구려의 언어와 이름이 지금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는 국가가
      몽골 이라는 것 입니다. 당시 신라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을 것 정도는 짐작할 뿐 입니다.
      다만 우리가 중요한 사료에서 각기의 나라를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가
      있지요 즉 고구려 19대 왕 영락제 에서 중원을 점령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남진정책을 통해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했다 는 내용 입니다.
      우리는 그 남진정책을 한반도 남쪽지역을 점령하였다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 이죠 그 남진 이라는 것은 고구려 남쪽 즉 만주 지역을 의미 합니다.
      즉 만주는 애초부터 고구려의 영토가 아니었음을 이야기 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만주의 지배권은 누구에게 있었는가 라는 것 입니다.
      그 시기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가는 신라 였습니다. 즉 신라가
      만주의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오랜 신라의 골칫거리
      였던 두 오랑캐에 관해서 알 수 있습니다. 倭(일본) 이죠 또한 말갈족 입니다.
      만일 신라가 만주에 영토를 두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상식의 역사에서
      신라까지 침범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바로 고구려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째서 소군 왕장의 묘가 내몽골 자치구에 있어야 했는지 의미심장한
      수수께끼를 내 봅니다. 그곳을 적동림목 이라 하지요

  • @goope9745
    @goope9745 3 роки тому +33

    역사 미스테리 너무 좋습니다. 많이해주세요~~~

  • @로지퍼지
    @로지퍼지 3 роки тому +12

    김원님께서 역사미스테리 컨텐츠 다뤄주시니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ㅠ
    하루에 10번씩도 더보는것 같아요
    오늘도 잘보겠습니다!

  • @써뉘-i2c
    @써뉘-i2c 3 роки тому +8

    저도 역사좋아하는데 더좋아하는 미스터리가 더해지니 더 재밌어요 김원님 👍👍

  • @최호재님매타몽영열
    @최호재님매타몽영열 3 роки тому +2

    김원님안녕하세요
    오늘도좋은영상감사합니다
    감사히잘보겠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 @두두-g6u
    @두두-g6u 3 роки тому +5

    선좋아요~하고 들으면서 잠들어볼께요~
    다들 잘자요~-

  • @hmson-tr6yh
    @hmson-tr6yh 3 роки тому +21

    와~~~
    역사 미스테리 너무 좋습니다.ㅎㅎ
    오늘도 김원tv 잘 보겠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 @장미-z6b
      @장미-z6b 3 роки тому +2

      👍👍👍

    • @곽경근-g9d
      @곽경근-g9d 3 роки тому

      @@장미-z6b 앗 🌹님 여기 계시네요.ㅎ

    • @장미-z6b
      @장미-z6b 3 роки тому

      @@곽경근-g9d방가워요
      제가 가입한 유튜브 채널중 최고로 오래된 채널이구요 애청자입니다 ㅎㅎ존날되세요

    • @곽경근-g9d
      @곽경근-g9d 3 роки тому

      @@장미-z6b 반갑습니다.~^~^

  • @유리창엔비-w7x
    @유리창엔비-w7x 3 роки тому +9

    김원님 영상은 장르불문 모두 굿입니다 ~
    올려주신 영상 꿀보이스로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
    늘 감사드립니다 ~~~~♡

  • @다정하게-q7v
    @다정하게-q7v 3 роки тому +11

    안녕하세요 수고많네요 잘시청합니다

  • @1억2억3억4억5억억
    @1억2억3억4억5억억 3 роки тому +33

    영상이 길어서 자기전에 보기 더 좋아졌다...
    내 수면제는 평생 이 채널임 ....

    • @관운장KOR
      @관운장KOR 3 роки тому +1

      아이큐 80들의 전형적인 특징

    • @1억2억3억4억5억억
      @1억2억3억4억5억억 3 роки тому

      @@관운장KOR 왜 시비지 ㅋㅋㅋㅋㅋ
      아이큐에 뭐 있나보네 ㅋㅋㅋ
      아이큐 90인 애들이 뭐 ㅈㄹ할 때 너 아이큐 80이냐고 그러던데 ㅋㅋㅋ
      님아이큐 90?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회사원-y4e
      @회사원-y4e 3 роки тому

      @@관운장KOR 초딩ㅎㅇ

  • @레싸
    @레싸 3 роки тому +21

    요즘 역사 컨텐츠 자주해주셔서 너무 좋습니다

  • @효도리-v3p
    @효도리-v3p 3 роки тому +14

    역사이야기 너무 좋아요~~~~ 잘보겠습니당

  • @장지훈-r1m
    @장지훈-r1m 3 роки тому +7

    매번 정말 재미있는데..
    이번껀 더 재미있네요.

  • @징크스-u2t
    @징크스-u2t 3 роки тому +6

    네이버에 을지문덕전에 보면 의견 갈등과
    연개소문 내용 자세하게 나옵니다.
    연개소문은 을지문덕의 후계자이며, 전장도 함께했었다고 ~ 그리고 태왕과의 갈등 내용도 나옵니다

  • @purutpo3124
    @purutpo3124 3 роки тому +17

    한국사 너무 재밌다...많은 사람들이 알 수록 힘이 되는 역사를 컨텐츠화 해주셔서 감사해용😊

  • @choiheavensent
    @choiheavensent 3 роки тому +8

    김원님이 하는 역사 미스테리 넘나 흥미롭네요 ㅠㅠ 역사컨텐츠도 자주해주세요 ㅠㅠㅠㅠㅠㅠㅠㅠ

  • @dwanmanager9048
    @dwanmanager9048 3 роки тому +8

    한국 역사관련 컨텐츠는 언제나 흥미로워요! 감사합니다.

  • @user-9g1o2r
    @user-9g1o2r 3 роки тому +9

    좋아요 선클릭 후 시청👍

  • @수아의수다
    @수아의수다 3 роки тому +7

    역사미스터리 정말 재밋어요!

  • @JYTMMA
    @JYTMMA 3 роки тому +2

    고건무는 아이러니하게도 차후 영류왕이 되고 나서 당나라와 전쟁에 대비도 하면서도 외교적으로 굽히는 자세를 취했는데 결국 을지문덕과 비슷한 정책을 표했던 연개소문에게 암살당하죠... 역사는 만약이란 것이 없지만 만약 을지문덕의 말대로 수나라가 무리하게 3차 침입을 하기 전에 요동을 넘어 본토를 쳤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 @stussy_nike
    @stussy_nike 3 роки тому +17

    인물위주로 풀어나가는것도 재밌네요. 역사미스테리도 자주 올려주세요 ㅎㅎ

  • @Everloveme
    @Everloveme 3 роки тому +9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라는 말이 되게 와닿는 느낌

  • @배요한-w7d
    @배요한-w7d 3 роки тому +15

    이런 주제 넘 조아요 ㅠㅠ

  • @J레옹
    @J레옹 3 роки тому +3

    내용 퀄리티가 대단하세요 ㅎ

  • @브람-j3h
    @브람-j3h 3 роки тому +15

    문덕은 뭔가 이름보다는 호나 자 같은 느낌이 크긴하지
    유비도 자가 현덕이잖아
    을씨 성에 이름이 지였거나
    상산 조자룡처럼 을지 지역에 자가 문덕인 사람인게 더 와닿는 것 같음

    • @Yui-Myong
      @Yui-Myong 3 роки тому +1

      을씨나 을지씨 일 가능성이 높을듯 하네요 이름이나 자가 문덕이겠고 고구려 재상 을파소가 있으니

    • @똑똑한가시
      @똑똑한가시 3 роки тому +5

      @@Yui-Myong 그게아니고요 지금으로 따지면 몽골계 이름입니다
      실제로 몽골사람이름중에 올지모돈이라는 이름이 있구요
      아마도 올지모돈의 음차문자를 그대로 써서 그럴겁니다

    • @BF-hj1gr
      @BF-hj1gr 3 роки тому +5

      @@똑똑한가시 (성)울즤 Улзы + (이름)문닥 Мундаг
      러시아 바이칼호수 부근 몽골족의 땅 부랴티야공화국에 현재 실제 존재하는 이름입니다. 부랴트민족은 일본인보다 혈통적으로 우리와 더 가까운 민족입니다.
      우리가 왜 이런 걸 모르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한국인과 혈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러시아 부랴트민족
      ua-cam.com/video/bZsaYjPk0NE/v-deo.html

    • @Yui-Myong
      @Yui-Myong 3 роки тому +1

      @@똑똑한가시 을지문덕의 평양출신 설도 있어요 자료는 자세히 안남았다는데 원래 이 분이 자료같은게 적은편이고 평양에서 뭐라고하지 그걸? 그 지방 전설? 민담?으로 있데요 그리고 을파소도 있는데 그럼 이분도 몽골분이신가요ㅡㅡㅋ
      저가 봤을땐 고구려 사람 평양출신일 가능성이 높고 이유는 당시에 수나라가 쳐들어왔을때 왕이나 을지문덕은 반드시 잡아라고 한건 다들 아실겁니다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는거죠 그렇다면 그 시대에서 당연히 귀족 가문 중 뛰어난 자제가 높은 벼슬에 올랐다는게 가장 개연성 높은 일이죠
      아무나 사령관급. 군대 맡기고 할수있을까요? 충성심 증명되고 능력있고 귀족이고 그러니 살수대첩을 지휘해서 승리로 이끈것이죠 당시 총사령관은 강이식 대장군이고 북방에서 수나라 대군을 맡고 수군은 왕제인 고건무(후에 영류왕) 당시 도성이던 평양에서 왕과 함께 지킨 장군이 을지문덕입니다
      그럼 이런 중요한 최후의 방어선을 아무에게나 맡길까요? 그게 위에 말했던 을지문덕 평양 석다산 출신의 고구려 귀족이라는 게 저의 주장입니다
      이름은 을문덕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그럼 가운데 지가 왜 생겼냐 이것이 최대 의문인데 지라는 단어는 고대 한국어에서 귀인에 대한 높임말이라고 해서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을문덕이 을지문덕이 되었을 가능성을 저는 높게 보고있어요
      이또한 정확한건 아니라고 나오죠
      그렇다면 왜 저는 이걸 미느냐 이 지라는 것에서 나오는 관직이 있거든요
      막리지라고. 고구려 후기의 최고 관직이죠 이 막리지莫離支의 지도 을지문덕의 지와 같은 한자입니다
      그러니 높은 관직의 이름도 막리지이고 높은 사람이라는 뜻도 있는 지를 더해 을문덕에서 을지문덕이 되었다라고 보는게 저의 견해입니다

    • @대광성
      @대광성 3 роки тому

      @@Yui-Myong 저기요 평양엔 대박산도 있고 그곳에 단군왕검의 유골도 있다고 하는 족속 입니다.
      순진하게 그들이 주장하는 걸 믿나요?
      파주시에도 전설과 민담은 존재 합니다. 당나라 설인귀에 대한 것 이죠 그 마을 지명 마지리 설마리 같은 것 도
      그런 유형 입니다.

  • @mind_trip
    @mind_trip 3 роки тому +5

    흥미로운 내용이예요!! 감사합니다~

  • @나의우상링컨
    @나의우상링컨 3 роки тому +1

    대단하십니다..김원님..역사까지 해주시네요..왜 인물중 을지문덕만 살수이후 왜 없지 궁금했는데..저도 김원님과 비슷한 생각하고 있습니다..살수이후 세력이 커져서 누군가와 대립하다 사라지고 이긴파가 을지문덕을 기록에서 삭제한 쪽이 좀 맞는거같네요..역사는 승자의편이다 라는말이 있는데..을지문덕이 살수이후 기록이 없는건 누군가와 대립하다 져서 삭제된 아까운 인물..

  • @hmk2892
    @hmk2892 3 роки тому +4

    아이가 학교과제로 을지문덕 장군 공부중인데~ 흥미롭네요.

  • @dske9146
    @dske9146 3 роки тому +14

    역사관련 많이해주세요 일본중국도 재밌는거많아요!

  • @slow324
    @slow324 3 роки тому +13

    발해에 이어서 역사 미스터리..
    정말좋습니다!

  • @정다정-u2q
    @정다정-u2q 3 роки тому +19

    흥미로운 역사 컨텐츠 감사합니다 잘 볼게요

  • @jun-m7y
    @jun-m7y 3 роки тому +1

    김원님 정말 잘보고있습니다!! 나중에 시간되시면 미스테리중에 예수무덤편도 해주세요!!

  • @고구려-x1h
    @고구려-x1h 3 роки тому +10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 이라는 것도 사실 우리나라 역사기록 어디에도 없는 얘기고
    대체 어디서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 이라는 근거가 나온건지 알 수가 없는게 미스테리 라는거죠.
    우리나라 역사기록들이 정사라는 자료들도 세세한 부분이 부족하고 대체적인 윤곽만 써놔서
    보는 사람들이 정말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 알 수가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기록문화 라는 조선왕조실록 조차도 그런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 받고 있는게 현실 입니다.
    어느 역사학자분이 역사프로에서 말하기를 역사에 대해 연구하는데 대한 고충을 토로 하면서
    우리나라는 기록이 너무 없다,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 하면서도 중국쪽 기록에 바탕해 연구해야
    할 때가 많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분들은 역사학자들에게 왜 우리나라 역사 연구를 하면서 자꾸 중국쪽 애기만 하느냐 라고
    불평, 불만을 하셔서 이에 대해 대답 하려면 설명하는 입장에서 양이길고 힘들 때가 많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직업 중에 역사학자도 극한직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 @홍칠공-w9i
      @홍칠공-w9i 3 роки тому

      명나라때 나온 소설중에 안시성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있어요.
      그때 안시성주 이름을 "양만춘"이라 했는데 지금까지 이어져온겁니다.

    • @재밌는놀이90
      @재밌는놀이90 3 роки тому

      조선왕조실록은 사실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승정원일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다 타버리는 바람에... 고구려랑 백제 기록도 함락 이후 화재로 죄다 타버렸죠. 이게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 @상국독이
      @상국독이 Рік тому

      고려 조선 때 거란 부터 시작해서 요나라 여진족 몽골 등 죄다 처들어오면서 기록이란 기록을 죄다 태워버려서 많이 남지 않앗나 생각은 해요 알다시피 몽골이 처들어올때 황룡사9층 목탑도 태워버려서 지금은 흔적만 남은 상태죠 외세에 침공때 기록들이 사실 손실된것도 크다고 생각해요

  • @leezzang1219
    @leezzang1219 3 роки тому +4

    너무 재밌습니다 ㅎㅎㅎㅎㅎ

  • @막벌자
    @막벌자 3 роки тому

    다큐에 꼭 맞는 목소리네요~^^ 혹시 시간 여행자가 아닐까요?

  • @eommijin
    @eommijin 3 роки тому +5

    역사 이야기 흥미진진 합니다.👍

  • @johnjoon-d3p
    @johnjoon-d3p 3 роки тому +4

    이런 컨텐츠 너무 좋아용~~

  • @준서준희아빠
    @준서준희아빠 3 роки тому +1

    최근 알아 구독했는데.
    김원. 멋짐 ^-^

  • @장미-z6b
    @장미-z6b 3 роки тому +3

    이런 컨텐츠도 너무 흥미로워요 갠적으로 무측천을 좋아하지만요 감사이들었습니다

  • @초이-o5s
    @초이-o5s 3 роки тому +5

    역사 컨텐츠 너무 좋습니다. 자주자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happy-pigbear
    @happy-pigbear 3 роки тому +2

    참 미스테리하네요... 반역이라면 살수대첩에서도 흔적 지워져야할텐데...
    남긴것도 희안하네요....
    한곳만 남기고 전체를 지운걸까요...
    있긴있어지만 그다음대 왕인 고건무가
    싹다 치운걸까요..아님 소실된건가...흠..

  • @pantera5739
    @pantera5739 3 роки тому

    1.18분20초 쯤 ..언급하신 역사서가
    김부식의 삼국사기 인가요?
    ,중국 사기 인가요??
    2.19분29초.. 이런 기록이라는게
    어디 기록인가요?
    3번째 듣고 있는데요, 사료가 궁금하네요

  • @Roxy_ing
    @Roxy_ing 3 роки тому +2

    너무 재밌게 들엇어요!!!

  • @se_hyunJang
    @se_hyunJang 3 роки тому +3

    고대사... 즉. 카자흐스탄쪽에서 우리나라의 시작으로 유추되던 당시 그리고 예전 지금 우리나라가 그때는 동이족으로 불리던 당시 살수대첩으로 예측되는 전쟁은 중국땅쪽으로 발발된 역사가 추론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하시는분의 EBS 방송을 본적 있습니다. 고대사 연구는 못하게 막히고 있으며(기존 정착된 역사학자들과 정치적문제) 만약 고대사 역사 연구가 된다면 이 역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 @댕댕아앙
    @댕댕아앙 3 роки тому +2

    너무 흥미롭네요 ,잘봤습니다

  • @meenzino5585
    @meenzino5585 3 роки тому +3

    17:21 '자' 라는소리 김원씨가 낸 소리인가요? 입이랑 안맞아서 귀신소리처럼 들려서 소름돋음 목소리도 김원씨랑 다른듯...;;;

  • @야리끼리-k4y
    @야리끼리-k4y 3 роки тому +3

    캬 다양한 주제 넘 좋네요 👍
    전한길쌤한테 물어보고싶네

  • @tv-funhistorytv1061
    @tv-funhistorytv1061 3 роки тому

    을지문덕의 가계는 알 수 없다고 기록에 나오고있죠.
    그거 활동했던 지역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살수대첩의 살수는 현재의 청천강으로 알려져 있죠.
    그는 수나라가 쳐들어왔던 요동성 지역에서도 또한 평양성을 공략하기 위해 들어온 평양성 전투에서도 등 장하지 않다가 수나라 별동대를 유인하여 살수에서 크게 물리칩니다.
    그리고 전 후 기록이 크게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그가
    정확히 말하면 그의 가문이 이전에는 전혀 정치의 중심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영양왕은 역시나 가계가 불분명한 온달을 보내 죽령 이북을 탈환하고 또한 을지문덕 장군은 그전에 가계를 알지 못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영양왕이 등용한 것이나 혹은 그 인재임을 알아채고 장군의 지위에 올린 것인데...
    또 여기서 영양왕은 이전의 역사서를 개편하여 신집이라는 새로운 역사서를 개편한 것을 보면.. 역사서는 왕실 중심으로 기록 되기에 왕권을 강화하는 모습과 연결됩니다. 백제의 서기가 근초고왕때 신라의 국사가 진흥왕때 편찬된 것으로 보면 알수 있죠.
    즉 영양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많이 쓰고자 하였다라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죠. 그럼 왜? 을지문덕은 그 뒤에 등장하지 않을까요?
    그건 영양왕과 그 뒤 영류왕과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둘은 이복 형제 입니다.
    영양왕 그리고 영류왕 여기서 또한 명의 인물 대양왕... 대양은 누구 일까요?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하고 즉위시킨 보장왕의 아버지 입니다.
    즉, 영양과 대양... 그리고 영류 일부 학자들은 영양과 대양의 공통점인 양... 그리고 연개소문이 영류를 죽이고 대양의 아들을 왕으로 올린 점으로 미루어
    영양왕과 영류왕의 즉위 과정에서 왕권 경쟁이 있었고, 대양 측과 연개소문이 곤을 잡고 영류를 죽인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참고하여 연갸소문은 영류왕의 사지를 찢어 죽였다고 합니다. 뭔가 큰 원한의 관계가 있었나 싶은데.. 이것은 대양의 아들 보장왕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죠.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영양은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많이 등용했지만 영양왕과 대척점에 있던 영류왕이 영양왕이 등용했던 인물을들 제거했다. 라는 것으로 추정 가능합니다. 영양왕의 충신이었을 테니까요.
    계보가 불분명할 정도로 신진 인물이었던 을지문덕이 그 뒤에 이상하리 만큼 내용이 나오지 않은 것 역시 이렇게 이해한다면 어느정도 수긍이 되는 점이 있다고 할수 있겠네요
    또한 그가 활동했던 지역 즉 근거가 청천강 지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는 지역의 권력자가 자신의 지역에 성주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또한 청천강은 고구려의 중심이 된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살수대첩에만 등장하는 아유라고 볼 수 있겠네요

  • @심쿵두루
    @심쿵두루 2 роки тому

    역사미스터리도 자주 다뤄주세요^^
    재밌고 유익해요

  • @pinksands9575
    @pinksands9575 3 роки тому +4

    재밌어요~!

  • @sj-xt2lw
    @sj-xt2lw 3 роки тому +4

    역사 컨텐츠 자주해주세요~ ㅎ

  • @최원경-l1b
    @최원경-l1b 3 роки тому +7

    한국의 역사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백제의 동성왕의 북위대패 무령왕 무덤의 미스테리 등 다뤄 주셧으면 감사드리겟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인환-z8d
      @이인환-z8d 3 роки тому

      을지문덕은몽골계이름이라합니다

  • @BrianHSC
    @BrianHSC 3 роки тому +1

    말씀하신대로 지웠다면 살수대첩까지 지웠거나 축소했을테고, 역모를 꾸몄다면 그 기록이 있을테고, 그럼 하나 남은건 회의를 느껴 자발적으로 이름을 바꾸고 은둔했다가 아닌가 싶네요.

  • @user-yt4249
    @user-yt4249 3 роки тому +12

    역사 미스테리 감사합니다 !!

  • @ttff9978
    @ttff9978 3 роки тому +1

    을지문덕이 궁근해서 ㄷ들어왔는데 채널이 좋네 구독해야디

  • @heonnivan
    @heonnivan 3 роки тому +14

    킹 갓 제너럴 을지문덕 장군님. 맨날 얻어 맞기만 한 한반도 역사에 길이 길이 기억되어야 할 분입니다.
    정치적 입장 때문에 밀려 언급을 못하게 하고 기록을 지운듯 합니다.

    • @김영주-f1i
      @김영주-f1i 3 роки тому

      그럴것 같습니다

    • @상국독이
      @상국독이 Рік тому

      저도 그런거 같긴 해요 분명 정치적 입장에서 분열이 있엇을태고 기록을 지우고 을지문덕 과 그 가족들을 유배를 보낸게 아닐까 싶어요 아니면 그럴일은 없겟지만 가족 전부를 몰살시키는 일을 했다던지 햇을꺼 같을꺼 같아요 그런 증거가 없긴 하지만

  • @htht1336
    @htht1336 3 роки тому +2

    토전사 수나라 고구려편에 나오는 말이지만
    삼국사기도 중국사료로 만든것이고
    고구려때 사료가 거의 안남아 있어서 중국에
    있는 걸로 하다보니 연구가 힘들다고 함니다.
    자세한건 토전사 수나라편 보면 나와요

  • @박상훈-f9v
    @박상훈-f9v 3 роки тому +6

    김원님 정말 좋아해서 거의 모든영상 감사하게 보고있습니다.
    근데 역사기록을 말씀하실때 최소한의 출처라도 말씀하시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특히 고건무와 을지문덕이 대립했다는건 어떤 기록인지 궁금하네요
    당시 사병과 토지까지있는 귀족의힘은 상당했기때문에 왕족과의 대립은 흔한일이었을텐데......
    아무튼 이번영상도 즐겁게 봤습니다 수고하세요~

  • @hidmen
    @hidmen 3 роки тому +2

    을지문덕=올지모던 몽골에는 '올지'라는 성을 가진사람들이 아직 있습니다.
    나사의 이클립스에 들어가면 일식이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일식기록과 비교해서보면 고구려는 몽골에 위치 합니다.
    물론 한반도에도 고구려는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의 왕조가 여러지역을 통치하던 시절이였죠
    이런 정황으로 보아 살수대첩의 살수도 중원과 경계를 이루는 황하강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김정민박사 강의중...

  • @시우네
    @시우네 3 роки тому +2

    뒷지이야기 듣는데 갑자기 생각난게 잔다르크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ㅋㅋ

  • @youngjoo1019
    @youngjoo1019 3 роки тому

    살수가 어디 있는 곳인지 좀 알려주실분??

  • @jungkyuhan9781
    @jungkyuhan9781 3 роки тому +9

    고구려 뿐만 아니라 중국측 사서에 을지xx, 울지xx 등등 유명한 을지라는 성씨 가진 인물들 많이 나오고 중국측 성씨연구에 이미 흑룡강 유역에 사는 부족/가문이라고 연구되어있습니다. 고구려 영토가 넓어 흑룡강유역 부족들도 많이 흡수되어 을지가문 사람들도 다수 있었나봅니다.

    • @Sancho25
      @Sancho25 Рік тому

      을지랑 울지랑 성이 다른데요?..

  • @ariaoflight0609
    @ariaoflight0609 3 роки тому +6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만약 반역죄를 지어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만들려고 했다면 살수대첩 또한 역사에서 지웠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을지문덕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 @리림-r1v
    @리림-r1v 3 роки тому

    수양제가 고수전쟁 3번 싸웠는데 1차원정은 싸우지도 못하고 풍토병으로 전사해서 후퇴 2차3차는 모두 요동성 하나를 함락못한걸로 압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공대로 수군 내호와와 합세해서 평양성 공격하려했으나 수군이 먼저 패하고 육군은 퇴각하게되는데 마지막 3차전쟁에서만 등장하는게 을지문덕 아닌가요?
    그리고 고당전쟁 끝나고 고구려내분을 연개소문 자식간의 권력싸움 그때 평양성 함락후에
    이세적이 제일먼저 한것이 모든역사서를 없애버린것입니다
    삼국사기도 사대하는 김부식이 중국역사를 기록한것이구요
    중요한건 패망하면 그모든역사가 사라집니다 특히 고구려에 패한 중국에서 가만뒀을까요
    발해에 대한역사가 없는것도 그런이유구요
    역사가 없으니 중국역사기록 교과서에 적는것이 전부구요
    일제시대때 그나마있던 상고사기록 역사책또한 일본이 싹다 태우거나 일본으로 싣고가
    지금 일본황실에 소장되어 있구요
    일본 골동품 경매시장에 흔하게 돌아다는것이 우리나라 역사서입니다
    엄청난 문화약탈해갔고 역사재단 또한 친일파가 주름잡고 있으니 문제죠

  • @BF-hj1gr
    @BF-hj1gr 3 роки тому

    우리가 놓치는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
    고구려는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지금이야 각 지역이 국가로 나뉘어져 있지만
    유목국가였던 고구려는 광활한 영토, 다양한 민족이 그 근간을 이룹니다.
    우리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 중국책이나 우리 고서의 "문자"에만 매달리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해석 못하는 것들이 많죠.
    고구려의 흔적이 나오는 고고학, 고구려를 언급한 중앙아시아/북방민족 사료,
    고구려 강역의 현재 모습, 현지 언어(인명, 지명) 등도 같이 봐야 하는 데 말이죠.
    지금의 몽골과 러시아의 부랴티야공화국 주민들의 성씨에 "울즤(улзы)"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에 "문닥(мундаг)"이 있구요.
    즉 "울즤 성의 문닥"이란 이름을 가진 장수였던 거죠.
    우리 발음도 그렇고 몽골/부랴트 발음도 그렇고 한자로 적은 거 뿐이죠.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혈통 러시아 부랴트민족 ua-cam.com/video/nocAUMH-cI8/v-deo.html

  • @green_tea_piccolo
    @green_tea_piccolo 3 роки тому +3

    역사 미스테리 자주 해주세요

  • @신마적-u1n
    @신마적-u1n 3 роки тому +1

    Sbs드라마 연개소문이 현실적으로 해석잘한거같습니다. 정치적 대립으로 고건무에게 죽임을당하고 이후 연개소문이 문덕의 복수를 하지않았나 그래야 연개소문의 토막살인이 합당해지겠지요. 그리고 그의무덤이없다는것도 고건무와의 대립으로 무덤조차도 허용하지않았다할수있겠네요. 만약 그때문덕의 주장대로 처들어가서 제압을했다면 이나라는 그야말로 대단한나라가되었겠죠.

  • @A-JiTae
    @A-JiTae 3 роки тому +3

    궁긍한건.. 대역죄라는 가설을 세웠을때 존재자체를 지워야할텐데.. 살수대첩이라는 큰 전공은 왜 남아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

  • @수호랑-f3s
    @수호랑-f3s 3 роки тому +1

    고구려는 원래 국내성파와 평양성파로 나눠서 분열이 심했던걸로 알고 있어요. 광개토태왕이후에 장수왕때도 몇십년 동안 고구려가 혼란기였다는 기록도 있더라고요. 그것때문에 백제와 신라 관리를 제대로 못했고요. 관리를 못했으니 백제 개로왕을 치려갔겟죠. 지속적인 분열도 있엇고 고대사 기록이 없다보니 통편집이 된게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썰이지만 연개소문이 집권하기전에 고구려 귀족을 많이 죽였다는 기록이 있으니 을지문덕장군 후손이 거기서 연개소문에게 반발했다가 죽어서 을지문덕장군의 가문이 사라진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을지문덕장군에 대한 살수대첩은 있는데 을지문덕 장군의 자손의 활약성에대한 기록이 없으니.. 분명 을지문덕장군의 후손있다면 당태종이 쳐들어왔을때 성을 지키는 역할이라도 했을텐데 그런 기록조차 없으니 그냥 뇌피셜로 써봤습니다.

  • @renight2
    @renight2 3 роки тому +3

    이번 주제좋아요!

  • @천손의후예-z2n
    @천손의후예-z2n 3 роки тому +20

    다음엔 온달 미스테리 다뤄주세요

    • @gilhyunan1139
      @gilhyunan1139 3 роки тому +3

      온달이 사실 귀화환 몽골족인데
      그 몽골족의 풍속이 너무 이질적이여서
      바보온달이라 불렸다는데 진짜인지

    • @ysson6704
      @ysson6704 3 роки тому +2

      몽골옆,카자흐스탄 지역에 온다르 라,불리는 사람들성이많음,

    • @Yui-Myong
      @Yui-Myong 3 роки тому +1

      @@gilhyunan1139 청화수님도 되게 역사 잘다루시니 한번 들러서 들어보세요 온달 얘기도 나옵니다

    • @jackdemon469
      @jackdemon469 3 роки тому

      온달은 부리야트 족입니다... 지금은 러시아 일부죠.
      부리야트 족은 부여의 6부족중 하나로 보시면 됩니다.
      갈려져서 부리야트 족이 되었죠...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교과서에서 구라치고 있는데 믿으면 안됩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다민족국가였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 웃기고 자빠졌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우리의 역사적 역량을
      한반도에 국한시킬려는 중국과 일본의 공작입니다.
      우리나라 쓰레기 역사학자들이 인정해버린 결과입니다.
      다시 온달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부리야트족 출신의 청년이 고구려로 들어오니
      당연히 말이 잘 통하지 않았고 "어버어버" 그러니까
      동네 아이들이 바보 라고 놀렸을뿐이지.. 진짜 바보는 아니였을겁니다.
      평강공주가 그런 온달을 보니
      부리야트족은 키와 덩치가 어마어마 합니다.(참고로...)
      장군감이라 생각하고... 결혼하게 된것일겁니다.
      이건 미스테리도 아닙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죠.

  • @김정은-x2j
    @김정은-x2j 3 роки тому +1

    저의개인적인생각인데요
    우리나라 항모,전투기 명칭을 이렇게했으면 좋겠어요
    1번 배달민족 (단군이전의 최초배달국가)
    2번 단군조선 (고조선)
    3번 북부여 (열국시대)
    4번 고구려 ,백제,신라,가야 (사국시대)
    5번 남쪽(통일신라)북쪽(대진국,발해)
    6번 고려
    7번 조선
    8번 대한민국,북한
    생각만해도 윽시로 좋으네요

  • @dmkim78
    @dmkim78 3 роки тому +2

    역사 컨테츠 좋네요

  • @김종현-z9m
    @김종현-z9m 3 роки тому +2

    살수대첩자체가 과장된기록이라는 말도잇고
    이순신장군이랑 먼가 평행한데, 장군이 돌아가시면서 죽음을 알리지말라 한 것처럼 살수대첩직후 돌아가셨는데 다음에 또 쳐들어올게 뻔해서 돌아가셧단 기록도 없게한게 아닐까 생각이드네요

    • @바밤바-q4n
      @바밤바-q4n 3 роки тому

      그럴 듯 하군요

    • @나이스-p8h
      @나이스-p8h 3 роки тому +1

      을지문덕 이야기가 나온 삼국사기란 책을 쓴 김부식이란 사람 자체가 허황된 이야기, 단군왕검 같은 이야기는 말도 안된다 해서 믿기힘든 것들은 전부 다 빼겠다 한 실리주의 현실주의 적인 사람입니다. 후에 나온 삼국유사가 이 김부식이 버린 이야기를 첨가해서 만든거고요. 삼국사기 쓴 사람의 성격 자체를 보면 과장되었다고 보기 어려움. 김부식이 아 이건 과장된거 아니야? 하는것들은 전부 삼국사기에서 빼놨거든요. 김부식이 봤을때도 고증이 됬으니 넣었을 겁니다.

  • @일월봄날
    @일월봄날 3 роки тому +3

    역사 미스테리 계속해주세요 너무 좋습니다.
    사라진우리역사를 찾아서.

  • @뉴행운-c1c
    @뉴행운-c1c 3 роки тому +3

    을지문덕 양만춘 실제 이름이 중요하겠나요
    그분들이 실제로 존재해서 우리역사를 빛내다는것이 팩트이죠

  • @MinnesotaVikings7
    @MinnesotaVikings7 3 роки тому

    연개소문 장군님도해주시면 안될까요...?

  • @jhk2269
    @jhk2269 3 роки тому +10

    영상이 따끈따끈하네

  • @안준형-n2h
    @안준형-n2h 3 роки тому +2

    영류왕에게 일부분의 세력을 잃었거나 겸 세력을 뺏기거나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세력싸움에서 진 을지문덕이지만 살수에서 그래도 큰공을 세웠으니
    업적은 깍아내리지 않는 조건하에 조정에 서지 못하게 끔 정치적 영향력을 잃게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 되네요!! 고건무(영류왕)입장에서는 나중에 을지문덕을 그냥 조정에 남겨두면 나중에
    또한번 의견대립이 발생할수 있기 때문이겠죠...

    • @이벨라-d7k
      @이벨라-d7k 3 роки тому

      그냥 사서 및 기록 부족일것 같네요. 고구려만 따로 다룬 역사서가 없잖아요. 을지문덕만 특히 기록이 없는게 아니라, 그냥 고구려 시작부터 끝까지 기록이 부족한거겠지요

  • @TheBlade3508
    @TheBlade3508 3 роки тому +9

    여러 정황상 병사나 돌연사가 가장 그럴듯해 보입니다 만일 후사를 이을 자손 조차 없다면 기록에서 지워지는건 당연하죠 진짜 역적이었다면 살수대첩에서의 기록은 말이 안되는 설명이죠 ㅋㅋ 그게 아니라면 갑작스런행방불명 ㅋㅋㅋㅋ 뭐 저는 돌연사에 한표 던지고 싶네여

    • @느림보치타
      @느림보치타 3 роки тому +2

      돌연사라면 윗분 말처럼 더 기록이 남지 않았을까요? 살수대첩이라는 큰 업적을 세웠고 그 이전에도 수나라에서 알고있었던 인물이 갑자기 죽은거니까요

    • @비호천왕
      @비호천왕 3 роки тому

      @부르르 고건무가 암살했으면 일부러라도 지울것 같음.역모를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그냥 죽였으면 계속 거론되면 왕권이 추락하니 그럴거 같음

  • @RunRunRing
    @RunRunRing 3 роки тому

    역적의 기록도 없고 아무런 것도 없다는 것 보면 고건무가 을지문덕에 대해 엄청난 열등감을 가졌던 거 아닐까요?
    살수대첩에 대한 공은 고건무도 함께한 공이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겼으나 이전, 이후의 기록은 열등감에 의해 삭제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영양왕 이후에 고건무가 왕이 되었으니 왕이 된 후 모든 흔적을 지웠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드네요.

  • @hooligun4683
    @hooligun4683 3 роки тому +5

    제가 전에 서프라이즈에서 을지문덕의 이야기를 본적이 있는데 북한지역이 어디가 고향이엿고 소금장수엿다라는 얘기를 봣슴다

    • @hooligun4683
      @hooligun4683 3 роки тому

      @known UN 서프라이즈 768회 보시면 을지문덕 이야기로 나와 있슴다

    • @조인준-f8o
      @조인준-f8o 3 місяці тому

      소금장수 을불 아인가,,,,,

  • @이운중룡
    @이운중룡 3 роки тому

    김정민 박사님 이야기로는 고구려는 모쿠리 즉 몽골계 올지모던 몽골이름을 한자로 발음하여 을지문덕 살수는 북방민족 말로는 사르수 사르는 노랗다 수는 강 즉 황하가 되겠지요

  • @지존형-d1u
    @지존형-d1u Рік тому +1

    고건무가 영양왕의 뒤를이어 왕이됐고 연개소문이 반란을 잃으켜 죽임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을지문덕과 그 가족들도 함께 죽었고 역사에서 지워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음.

  • @유무-e6v
    @유무-e6v 3 роки тому

    개인적인 추론입니다. 을지문덕은 영양왕 자신이 아니었을까요? 살수대첩 이전에 기습적으로 수나라 요서 지방을 공격했던, 배포와 지략이 있는 왕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전쟁의 선봉이자 지략가라고 알려진다면, 수나라 쪽에서의 암살, 또는 침략 이전에 정치적인 제거 대상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그런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을지문덕이라는 장군을 만든 게 아닐까..생각 해 봅니다. . "나는 왕일 뿐이다. 다만 내 나라에 훌륭한 장군이 하나 있는데, 그 훌륭한 장군이 수나라를 기습 침공도 했고, 방어도 했을 뿐이다"..방송 내용 중에, 을지문덕은 수나라를 먼저 치고 후에 신라를 공격하자고 하면서 고건무 장군과 대립을 했다고 나오는데요..수나라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영양왕의 행적과 같아 보입니다. (즉위 9년 차에 중국 수나라를 기습 공격할 수 있는 배경과 그 기록의 존재가 더 궁금해집니다.

  • @평화지-k3u
    @평화지-k3u 3 роки тому +8

    몽골에 을지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 살고 있고 그사람들 말로는 본인들이 을지문덕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뭐 .. 그렇다고요

    • @Kimchi_season_leader
      @Kimchi_season_leader 3 роки тому

      을이 성이고 지문덕이 이름인데 어찌저찌되서 성을 을지로 후손이 바꿨나보네요 을지문덕의 조상은 옛날에 을 파소라고 큰 벼슬을하던 조선시대로치면 영의정급의 벼슬을 지낸 재상의 후손이라고 되어있거든요.

    • @MrYou-wf1df
      @MrYou-wf1df 3 роки тому +2

      그건 환빠들의 주장입니다

  • @트라팔가로우-i1y
    @트라팔가로우-i1y 3 роки тому +1

    을지문덕과 연개소문, 양만춘 연관성이 있는것 같네요
    연개소문세력과 양만춘세력은 사이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수나라가 살수대첩이후 을지문덕에 대한 원한이 있어서 수단과 방법안가리고 제거하려고 했을것 같네요
    양만춘과 을지문덕은 아는사이 였던것 같네요
    왜 양만춘은 연개소문과 사이가 안좋았을까요?
    을지문덕과 연개소문 쿠데타사건 뭔가 일이 터지지 않았을까요?
    연개소문을 제거하려는 세력이 영류왕세력이 져서 고구려는 연개소문에 것이 되었지요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은 수와 당을 공격하자는 입장은 비슷하네요
    영류왕세력은 수와당과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세력입니다
    을지문덕(수수께끼 인물)
    양만춘(안시성성주,수수께끼 인물) VS 연개소문 두세력은 서로 싸우는 세력임
    당나라가 쳐들어와서 어쩔수 없이 칼을 당나라로 돌렸지만 당이 쳐들어 안왔으면 고구려를 두고 둘이 싸웠을것 같네요
    을지문덕 미스터리인물
    양만춘 미스터리인물
    고구려 멸망해서 기록이 다 지워졌을수도 있겠네요
    발해 미스터리 국가 왜 망했을까요?

  • @Angel_Lea
    @Angel_Lea 3 роки тому +3

    ෆ 오늘도 잘보고가용 ෆ

  • @5위
    @5위 3 роки тому +1

    을지문덕이 돌궐족이라는 말도 있지요
    위지 문덕이라는 기록이 있어서
    그리고 살수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둑을 막아 터트렸다는 알은 살수라는 지명에의해 나왔다고하죠
    역사 기록에서 실제로 둑을 막아 살수 전쟁을 한 장군은 강감찬 장군 이라고 합니다

    • @mika7201
      @mika7201 2 роки тому

      그래 얕은 지식으로 버거울거다
      고려시대 거란(요)침입 막은 귀주대첩의 강감찬과 ㅋㅋ

  • @환웅-c2i
    @환웅-c2i 3 роки тому +17

    동북공정이 판을 치는 요즘, 발해에 이어 고구려까지... 그저 빛원 .. 그저 갓원

  • @김영수-y4r9r
    @김영수-y4r9r 3 роки тому

    선생님 좋은 방송 감사 드립니다! 지금의 역사관으로 1500년전의 성씨를 해석하니까,,혼란이 오지 않나 싶습니다요,,과거의 왕이나 장군들의 이름을 한자 성씨로 완전히 고착되어진 현대의 시선으로 보니까 당연히 해석이 안되는거 아닌 싶습니다,,우리나라 고대 왕들이나 장군들의 성씨나 이름을 제대로 해석 하려면 중국 사서에 오랑캐라고 지칭하는 흉노나 몽골 그밖의 중앙 아시아 언어를 알아야 해석 가능할 거라 생각이 듭니다,,예를들면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은 몽골말로 하면 올지 모돈이라고 하네요! 또 살수대첩의 강이 어디냐 지금도 논란이 많지만 투르크어를 알면 쉽다고 하네요,,살수의 살은 투르크어로 누런색 황색을 사르라고 한답니다,,또 수는 한자로 물,강을 뜻하니 두개의 말을 합치면 한자로 황하강을 뜻한다고 하네요,,이런걸 보면 중궈넘들이 동이족의 강역을 한반도로 국한 시키려고 역사 조작을 얼마나 했는지 알수 있지 않나요!? 한마디로 살수는 중국 대륙속에 있던 강이라는 말이지요,,그래야 30만명의 수나라군이 몰살될 정도의 강이 되지요! ,,이상은 김정민 박사님 개인적인 역사의 견해를 인용했습니다,,

  • @CYO-e9o
    @CYO-e9o 3 роки тому +4

    이 얘기를 사학과 친구에게 해 주었는데 굉장히 흥미롭게 들으면서 고구려 내에서 어떠한 이유로 기록말살형을 당한게 아닐까 추측하더라고요. 삼국사기에서 을지문덕에 대한 부분은 대부분 수나라의 기록을 인용해 온 것으로 '훌륭한 상대편 장수였다'는 중국의 기록(살수대첩에 대한)만 남고 고구려에 남아 있어야 할 을지문덕의 일생에 대한 정보는 남기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고요.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인것 같아 올려봅니다!

    • @donpakonel104
      @donpakonel104 7 місяців тому

      을지문덕 뿐만 아니라 안시성 전투며 그외에도 고구려 자체적으로도 기록이 많이 없습니다. 이건 고구려가 단지 유목국가였기 때문으로 보는편이 나을듯 싶습니다.

  • @donpakonel104
    @donpakonel104 7 місяців тому +1

    몽골계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지금 몽골에서도 올지ㆍ울지란 성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문덕은 몽골어로
    МУНДАГ [ 몬닥 ]
    1. 우수한 2. 아주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