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사] 루이15세와 퐁파두르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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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9 лют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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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의 즉위
루이 14세는 우리나라의 영조처럼 아주 오래 살았는데 그래서 아들과 손자가 그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가 1715년 임종 무렵, 5살밖에 되지 않은 증손자를 왕세자로 세웠습니다.
루이 14세는 어린 왕의 등극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고 양친을 모두 잃은 어린 증손자가 너무나 불쌍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증손자의 지위를 확고하게 지켜 주고 싶었던 루이 14세는 자신이 죽고 나서 누군가가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섭정왕을 세우지 말고 섭정회의를 만들도록 유언했습니다.
그런데 루이 14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파리 고등 법원은 그의 유언을 부결하고 루이 14세의 조카 오를레앙 공 필리프를 섭정왕으로 세웠습니다.
오를레앙 공은 야심은 많았지만 나라를 다스릴 능력은 전혀 없었는데 루이 14세가 제정한 많은 정책을 없애 버리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실력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결국 프랑스의 외교와 재정 상태가 엉망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데 1723년, 오를레앙 공이 세상을 떠나고 13살의 루이 15세가 친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정을 하게 되었지만 루이 15세는 여전히 정사에는 관심이 없어 자신이 신뢰하던 가정교사 추기경 플뢰리에게 정사를 맡겼습니다.
플뢰리는 16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는데 이 사근사근한 늙은이는 성실하게 일하면서 루이 14세 말기와 섭정왕 오를레앙 공 때 생긴 외교와 내정의 구멍을 열심히 메워 나갔습니다.
그가 권력을 쥐고 있던 시기 프랑스 재정은 어느 정도 호전되었고 외교적으로도 만족할 만한 상태가 되어 루이 15세의 재위 기간 중 가장 평화롭고 안정된 시기가 됩니다.
1741년, 줄곧 유럽의 패자 자리를 꿈꾸던 루이 15세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뛰어들었는데 프랑스는 프로이센과 연합하여 오랜 적이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를 공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