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apell4370 광해군때는 북인 정권 이었는데 어떻게 서인덕에 복직 하나요. 그리고 19년의 유배 생활이 어떻게 약간 입니까? 그의 집안은 원래 부유 하기는 했지만 고산은 검소한 편이였어요. 그가 경원에서 유배생활 하다 경상도 기장으로 이배할때 한양 집에 들려도 된다는 조정의 허락을 받고 집에 들렸을때 고산은 아들이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선비는 스스로 노력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수고로 생활하기 때문에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50이 넘을때 까지 비단옷을 입어본 적이 없는데 너는 젊은 나이에 비단옷을 입고 있으니 한심하게 생각한다'고 꾸짓고 '종들도 사람이다. 그들 에게도 사람사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줘라'고 충고를 하죠. 인격적 으로도 훌륭 하다고 생각 합니다.
궁중에서 오라가라 하면서 마음에 안들면, 귀향 보내고 피곤한 삶만 살았네. 재산도 많겠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갖 관직 마다하고 편하게 살았으면 100세 이상 장수 했을것으로 생각. 그 살벌한 시대에 서인들로 인해 죽지 않은게 다행이였네요. 왠만한 인사 같았으면 중간 중간 사사됐을 듯 싶은데, 그의 힘도 만만찮으니 서인들이 쉽게 목숨을 빼을 수 없었나 봅니다.
그런 삶은 조선이 망할때까지 남인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과거에 급제를 해도 남인 출신이면 한달을 있다가 짤리고 나중에 다시 관직을 받아서 이동하는 중에 면직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반인데 한성에서 체류하는 기간중에 끼니를 거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냥 낙향하여 살면 끼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서울에서 사는데 관직에 나가도 몇일 일하다가 짤리기를 부지기수이니 월급이나 제대로 받을수 있을까요? 대부분 요직은 서인들 차지였습니다 저런 대우를 200~300년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한말이후 영남 남인 출신중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가 가장 많이 나온 지역이 바로 영남지역이죠
미친놈이지 그게 무슨 대인인가요? 송시열은 권력욕만 넘쳤던 사람일뿐 간단한 일화로 대동법의 확대 시행을 가장 반대했던 인물중 한사람입니다 대동법은 원래 백성들은 특산물을 국가에 공납을 해야했지만 이게 부담이 심했죠 그래서 임진왜란 시기에는 수미법이라고 해서 쌀로 대신 공납할수 있는 제도를 도입합니다 이것을 도입한 것은 서애 류성룡이고 사실 이법은 양반들의 반발이 심했어요 특산물을 독과점 해버리면 백성들은 쌀로 그것을 대신 사서 공납해야하는데 여기에 부조리가 심했거든요 퇴계 이황선생은 기대승과 논쟁을 보면 송시열은 소인배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성리학이 배타적이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한것도 바로 송시열 때문이죠 윤휴와 논쟁에서 송시열이 보여준 것은 조선이 망하는데 일조를 했죠 송시열은 주자의 주석에만 집착하고 조금이라도 재해석하는것을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성리학이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것은 송시열 때문이죠
송시열이나 정철.윤선도 모두 재주는 뛰어났으나 모두 당파만 만들어 나라 말아먹는데 일조한 놈들 ㅡ 말이 그러한거지. 정철 그놈은 강원도 관찰사 하면서뿐만 아니고 평생을 술쳐먹고 정무는 뒷전이고 놀러나 다니면서 그래서 술쳐먹고 관동별곡 쓴거고 심지어 기묘사화때 1000명 그가족까지 2000명 이상을 죽인 놈이다. 송시열이도 청나라를 치기위해 기용한건데 준비가 아직 미비하니 우짜니 하면서 정적들 목아지 날리기만 바쁜 놈들이다. 그새끼들 영정 사진 함 보시라. 눈이고 뭐고 보면 사기꾼처럼 생긴놈들이다.조선왕조실록에 최고로 많이 거론된놈이 송시열 인데 단지 그당시 당파를 주무른 놈들이다보니 역사 기록에 많이 나오다 보니 그런것이고 을사오적신보다 더 나라 말아먹은 놈들이다.
감사합니다
아 풍수지리에도 능하셨군요 효종과 사도세자자리는 정말 좋아보였습니다.... ^^ 서인을 견제하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잘 만들어주신 분이시네요 ^^ 자료 감사합니다
한문 서예를 하면서,
고산 윤선도 선생 한시를 쓰고 있는데,
반갑고 감사합니다.^-^
어..... 제가 해남 윤씬데..... 어?.....
고산 참 멋지네 내그내님의 시 어부사시사를 사랑하이
이 음으로 계속 해주셈 그래야 당신이 매력적으로 남음
학창시절에 윤선도의 옛시를 대하고 놀랬던 기억이 새롭구나 장수하셨는데 어마무시하게 멘탈이 강했던 어른인것같다
잘 봤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네요
잘 보고 갑니다. 윤선도 인생은 서인에게 탄핵 그리고 복직 이걸 반복했군요.
광해군때 서인덕에 복직했고. 호화롭고 부유하게 살앗어요.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는 받고 . 약간의 유배보다는 호화롭고 풍요롭게 잘살았어요.
@@vcapell4370 광해군때는 북인 정권 이었는데 어떻게 서인덕에 복직 하나요.
그리고 19년의 유배 생활이 어떻게 약간 입니까?
그의 집안은 원래 부유 하기는 했지만 고산은 검소한 편이였어요.
그가 경원에서 유배생활 하다 경상도 기장으로 이배할때 한양 집에 들려도 된다는 조정의 허락을 받고 집에 들렸을때 고산은 아들이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선비는 스스로 노력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수고로 생활하기 때문에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50이 넘을때 까지 비단옷을 입어본 적이 없는데 너는 젊은 나이에 비단옷을 입고 있으니 한심하게 생각한다'고 꾸짓고 '종들도 사람이다. 그들 에게도 사람사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줘라'고 충고를 하죠. 인격적 으로도 훌륭 하다고 생각 합니다.
아니 탄핵을 밥먹듯이 당했네 화딱지났겠네
윤선도의 생애를 잘 정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윤선도 집안이 돈 머리 사람에 구애받지 않는 갑부라 정적에 파직돼 오랜 유배 생활을 해도 유유자적 안빈낙도의 문학들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미스터 송은 여기저기 말썽꾸러기였네. ㅋㅋㅋ
거이 평ㅇ생을 부귀영화 누리다 . 그흔한 오랑캐 역사속에서도 잘살은 .송시열 때문에 귀향한번덕에 이미지 번전용으로 짤짤한편리고요 ?
보길도 여행지에서 만난 윤선도를 다시 들으니 새롭네요~^^
궁중에서 오라가라 하면서 마음에 안들면, 귀향 보내고 피곤한 삶만 살았네. 재산도 많겠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갖 관직 마다하고 편하게 살았으면 100세 이상 장수 했을것으로 생각. 그 살벌한 시대에 서인들로 인해 죽지 않은게 다행이였네요. 왠만한 인사 같았으면 중간 중간 사사됐을 듯 싶은데, 그의 힘도 만만찮으니 서인들이 쉽게 목숨을 빼을 수 없었나 봅니다.
그런 삶은 조선이 망할때까지 남인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과거에 급제를 해도 남인 출신이면 한달을 있다가 짤리고 나중에 다시 관직을 받아서 이동하는 중에 면직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반인데 한성에서 체류하는 기간중에 끼니를 거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냥 낙향하여 살면 끼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서울에서 사는데 관직에 나가도 몇일 일하다가 짤리기를 부지기수이니 월급이나 제대로 받을수 있을까요? 대부분 요직은 서인들 차지였습니다
저런 대우를 200~300년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한말이후 영남 남인 출신중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가 가장 많이 나온 지역이 바로 영남지역이죠
@@Ulsanman3 조선이 망하고 일제에 의해 수작을(작위를 받은자) 한자가 76명인데 그중 68명이 노론 이고 5대 매국노들이 모두 노론 이니 그들이 나라를 팔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3대 갑부라는데 말다했지
윤선도 하면 어부사시사 아닌가?
어이어이야 물고기야 물어라. 고등학교때 배운 어부사시사
64세에 어부사시사를 지었구만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을 비롯해
조선의 3대 시인들 고산 윤선도 박인로
관직생활 거의를 유배로 마친사람
그런대도 80 이 넘게 살았으니~~
마인드콘트롤을 무진 잘한것 같습니다
평생 학문 풍류 관직을 얻었으니
정적같은 급은 아니고
호란때 잘사거라 취급다체를 안한거로 아니는대요. KBs 무슨 역사여행때 유배라도 되는줄 알앗는데 그냥 쉬려고 연못만들고 그랫다는요?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개처량한 세상.. 피 토하는 음악..ㅋ
이분은 평생을 귀양으로 보내셨네
심심하면 조정에 가서 벼슬하고 또 심심하면 귀양이네
조선탑급아갈파이터 모두까기인형
송시열 나빠요~
ㅈ또 아닌거 같은걸로 상소 탄핵 당햇네
해남현감이
아침마다 윤선도에게 문안?
뭔 개가 풀뜯어먹는소리?
역사를 바로알자 송시열은 민족정신 선비정신 의 뿌리이다 누가 과연 그의 학문적 영향을 안받았는가 모든 선비의 정신적 뿌리이다 유교정통 법맥을 이어받은 분이다
송시열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 보시길!
성격은 편협하고,원만하지는 않았지싶음
송시열은 극 사대주의자
망한지 오래된 중국황제를 추앙하는 인간이고 남인 개혁주의들을 압살하고 왕권에 도전하는 ....
조선에 일등 간신배이다
조선이 망할때 나라팔아먹은 매국노, 일본 작위받은 60여명 대부분이 송시열을 추앙하는 노론계 역적놈들 후손들이다
알고나 입을 여시오
송시열의 학문이야 주자학의 대가로 시비걸 사람은 없지만 정쟁을 일삼고 서인 노론의 영수로 충신이라기 보다는 붕당의 우두머리로 파당의 이익만 추구만 인물이라고 본다.
송시열의 정적인데 안죽고 유배생활 한것 만으로
서인 이 참 많이 봐주는구나
송시열 이 대인이다
미친놈이지 그게 무슨 대인인가요? 송시열은 권력욕만 넘쳤던 사람일뿐
간단한 일화로 대동법의 확대 시행을 가장 반대했던 인물중 한사람입니다
대동법은 원래 백성들은 특산물을 국가에 공납을 해야했지만 이게 부담이 심했죠
그래서 임진왜란 시기에는 수미법이라고 해서 쌀로 대신 공납할수 있는 제도를 도입합니다
이것을 도입한 것은 서애 류성룡이고 사실 이법은 양반들의 반발이 심했어요
특산물을 독과점 해버리면 백성들은 쌀로 그것을 대신 사서 공납해야하는데 여기에 부조리가 심했거든요
퇴계 이황선생은 기대승과 논쟁을 보면 송시열은 소인배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성리학이 배타적이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한것도 바로 송시열 때문이죠
윤휴와 논쟁에서 송시열이 보여준 것은 조선이 망하는데 일조를 했죠
송시열은 주자의 주석에만 집착하고 조금이라도 재해석하는것을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성리학이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것은 송시열 때문이죠
송시열이나 정철.윤선도 모두 재주는 뛰어났으나 모두 당파만 만들어 나라 말아먹는데 일조한 놈들 ㅡ
말이 그러한거지. 정철 그놈은 강원도 관찰사 하면서뿐만 아니고 평생을 술쳐먹고 정무는 뒷전이고 놀러나 다니면서 그래서 술쳐먹고 관동별곡 쓴거고 심지어 기묘사화때 1000명 그가족까지 2000명 이상을 죽인 놈이다.
송시열이도 청나라를 치기위해 기용한건데 준비가 아직 미비하니 우짜니 하면서 정적들 목아지 날리기만 바쁜 놈들이다. 그새끼들 영정 사진 함 보시라. 눈이고 뭐고 보면 사기꾼처럼 생긴놈들이다.조선왕조실록에 최고로 많이 거론된놈이 송시열 인데 단지 그당시 당파를 주무른 놈들이다보니 역사 기록에 많이 나오다 보니 그런것이고 을사오적신보다 더 나라 말아먹은 놈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말년에 윤선도와 송시열이 보길도에 따로 함께 살았다는 것 송시열이 바위에 임금에게 쓴 글이 보길도에 남아있다는 것
남들은 초근목피로 어렵게살떼 얼마나 잘쳐먹고 했으면 당파싸움이나 일삼다 임금이 사약을내려 한대접으로는 죽지를 않해 몇사발을 퍼먹여 죽였다니 송씨놈들치고 악인 아닌자들이 없다 송두율 이라는 여자중 이 천성산도롱뇽 죽는다고 공사를못하게 길에드러누워 공사가늦어져 국민들에게 그피해를 잊었단말인가
이런 사대주의자를 대단한 인믈처럼 포장한 우리 역사는 정신차려야 한다.
사대주의자는 송시열임.
괴산에 만동서원을 지어 명나라 만력제와 숭정제의 위패를 모셔놓고 재조지은 이라며 왕을 협박하며 노론 정권을 유지한 자임.
현대판 영삼이네
금수저 집안에 불같은 성격
누가 일본의 무사정권을 나쁘다 하였나 조선의 선비 정권이 더 추잡하지;않느냐
지금 더불어 민주당이하느짓을 서인이하고있네요
국짐당 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