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죄론의 근간이 된 롬5장12절을 재림교회는 어떻게 주석 하는가. ■□■ 롬5장“12. 이러므로. 많은 사람이 여기 소개된 구절을 성경 전체는 아니지만 신약에서 가장 난해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바울이 의도한 것과 다른 목적으로 성경절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도의 주요 목적은, 아담의 죄의 결과를 그리스도의 의롭다 하시는 일의 결과와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그분의 사역이 미치는 결과들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므로”는 죄인을 화목시키고 의롭게 하며 그로 하여금 최종적인 구원의 소망을 붙잡게 하는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사업에 관한 1~11절 내용을 되짚어 언급하는 말일 것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아담의 죄의 결과와 그리스도의 구원의 결과를 이 말로 비교하기 시작하는데 그 비교의 첫 부분만 제시한다. 이것을 제시하면서, 그는 자기 특유의 방식대로 이미 말했던 내용에 포함된 어떤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중단한다. 13~17절이 제임스왕역(KJV)에 괄호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15절에서 다시 그의 주요 논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바울이 비교를 완료한 것으로 보고 읽으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해 사망이 온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확산되었느니라. 이와 같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가 세상에 들어왔고 의를 통해 생명이 들어왔느니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되느니라.”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말했다. “사도가 일반적인 작문법에 따라 먼저 충분히 비교한 다음에 설명과 조건들을 제시했다면 주석자들은 많은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의 의미에 대한 더 깊은 연구와 해명에 치중한 나머지 성경에 나오는 그러한 문법적인 난제들이 전반적으로 간과되고 있다”(랑에 주석[Lange’s Commentary, Scribner’s, 1870]의 5:12 주석 부분에 있는 편집자 주를 참조하라). 이 성경절에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비교의 주안점들은, 죄와 사망이 하나의 원리와 권세로서 아담으로부터 인류 전체에 미치듯이, 의와 생명은 그것을 반격하고 정복하는 원리와 권세로서 그리스도로부터 나와 온 인류에게 미친다는 것이다. 또한 사망이 아담의 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해졌듯이, 생명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모든 이에게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온전치 못하다. 왜냐하면 아담의 죄에 참여하는 것은 만민에게 공통적이지만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함은 믿는 자들에게 한정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요 그리스도의 의는 능력과 목적에 있어서 똑같이 보편적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신자는 아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가 얻은 것은 아담이 잃은 것보다 더 크다(참조 시대의 소망, 25). 죄. 바울은 여기서 죄를 의인화(擬人化)한다. 죄는 “사망 안에서 왕노릇”(21절)하고, 우리를 죽게 만들며(7:13), 우리를 주관하고(6:14), 각양 탐심을 이루며(7:8), 죄인을 속이고 죽인다(7:11). 5:12, 13, 20, 21을 15~18절과 비교해 보라.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의 원리가 세상에 들어왔다. 이어서 “죄”는 헤아릴 수 없는 “범죄”의 원천이 되었다. 이 부분 전체를 통하여 불법의 원리와 본질로서의 “죄”(참조 요일 3:4 주석) 그리고 여기서 “범죄”라고 번역된 죄의 구체적인 행위 사이에 구별이 나타난다. 세상에 들어오고. 바울은 죄가 바깥에서 인간 세상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낸다. “세상”이라는 단어는 종종 인류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롬 3:19; 11:15; 참조 요 3:16, 17). 바울은 죄의 기원에 대하여 그 이상 논하지 않는다. 최초의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고, 그 경로로 죄가 인류에게 들어오게 되었다.
■ 이어서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경고하였다(창 2:17). 범죄 후에 하나님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고 선고했다. 성경은 세 가지 종류의 사망에 대하여 말한다. (1) 영적인 사망(참조 엡 2:1; 요일 3:14), (2) 예수가 “잠”으로 묘사한 일시적 죽음인 “첫째 사망”(참조 요 11:11~14; 계 2:10; 12:11), (3) 영원한 죽음인 “둘째 사망”(참조 마 10:28; 약 5:20; 계 2:11; 20:6, 14; 21:8). 아담의 죄의 결과로 생기게 된 사망, 특히 그의 후손에게 전해진 사망이 과연 어떤 류의 것이냐에 대하여 상당한 논란이 있어 왔다(참조 아래 “사망이…이르렀느니라”에 관한 주석). 이런 논란의 대부분은 사망의 본질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단지 죄가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고 그 결과로 사망이 이르러 왔다는 역사적 사실만을 진술하고 있다.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이 세상에 죄나 사망이 없었다. 범죄 후에 그 두 가지가 다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담의 죄악이 그 두 가지의 원인이었다. 아담의 죄의 결과인 사망과 그리스도의 의의 결과인 생명 사이에는 중요한 대조점이 있다. 바울의 논증은, 그리스도가 이룬 생명의 선물과 은혜가 아담의 죄의 결과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이 성경절의 요지는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것이다(5:2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3:23의 동사 형태와 같다. 바울이 여기서 주로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각각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참조 5:13 주석). 그런 해석은 문맥에 맞지 않는데, 그 이유는 14절에서 바울이 모세까지는 사람들이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했다고 부언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했을 때 그들은 생명과를 먹을 권리를 잃어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그 죽음을 후손에게 전해 주어야 했을 뿐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본성이 타락하고 악에 저항하는 힘이 저하되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1). 이와 같이 아담과 하와는 후손에게 죄로 향하는 성향과 그 형벌인 사망을 넘겨 주었다.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죄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님을 적대하는 감염 세력으로 도입되었고, 그 이후로 이 감염은 계속되었다. 사람이 거듭나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본성의 감염 때문이다(참조 3:23; 5:1 주석). 아버지로부터 자식에게 죄된 본성이 전달됨에 대하여 다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의 비행의 결과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나 그들이 부모의 죄에 동참하지 않는 한 부모의 죄 때문에 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자녀들은 부모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유전과 부모들의 모본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짓는다. 나쁜 버릇과 그릇된 식욕과 저열한 품행은 육체적 질병과 퇴화 현상을 지니고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내려간다”(부조와 선지자, 306). …으므로. 헬라어 에프 호(eph’ ho-). 이 구절은 여러 신학적인 논쟁거리가 되어 왔으며, 다양한 형태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단순히 “~때문에” 혹은 “~인 까닭에”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고전 헬라어에서는 대개 “~을 조건으로 하여”라는 의미이지만, 이것이 신약에서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다. 고후 5:4; 빌 3:12; 4:10에서의 용례와 비교해 보라. 사망이…이르렀느니라. 헬라어 디에르코마이(dierchomai). “퍼지다”, “스며들다.” 이 구절은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들어왔느니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단어는 사망이 인간 가족의 각 구성원에게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모든 사람에게. 이것은 앞에 나오는 “세상에”라는 구절에 해당하지만 구체적 부분들(“모든 사람에게”)이 추상적 전체(“세상에”)와 구분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모든 사람에게 “들어왔느니라”(참조 위의 “사망이 이르렀느니라”에 관한 주석)는, 마치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한 도성에 들어가는 것과 다른 것처럼 앞에 나오는 “들어오고”와 다르다. 아담에게 선고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진술은, 아담에게 주어진 선고(창 2:17)가 “둘째 사망”(참조 위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주석; 각 시대의 대쟁투, 544)을 가리킨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둘째 사망은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질 수 없는데, 왜냐하면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계 20:12, 13)고 분명하게 진술된 것처럼 최종 심판의 결과로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영원한 사망의 최종적인 선고는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책임에 기초한다(롬2:6). 모든 사람은 똑같이 무덤으로 내려가는데, 이런 면에서 만민이 아담의 범죄의 형벌에 참여한다. 생명은 범죄로 말미암아 몰수당했다. 아담은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었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533).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전 15:22)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그러하다. 구속의 경륜이 없었다면 아담의 죄의 결과는 영원한 사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이 마련됨으로써 아담의 가족의 모든 구성원은 선악간에 무덤에서 불려 나오게 될 것이다(행 24:15; 참조 고전 15:22). 그때에는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 자들은 모두 순전히 그들 자신의 죄의 결과로 그런 상태에 있게 되었음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인정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로 인해 아담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선한 일을 행한” 자들, 곧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요 5:29).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계 20:6). “악한 일을 행한” 자, 곧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고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용서를 받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요 5:29). 이 사람들은 범죄의 형벌 곧 최종적인 “죄의 삯”(롬6:23)인 “둘째 사망”(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544)을 받게 될 것이다.”.
율법은 의, 즉 의로운 생애, 완전한 품성을 요구하지만 인류는 그 요구에 미칠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계발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받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그분의 생명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관용을 통하여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으신다. 그분은 인간의 품성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따라 형성하여 영적인 힘과 아름다움을 지닌 훌륭한 건물이 되게 하신다. 그리하여 바로 이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서 성취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롬 3:26)실 수 있다.” (시대의 소망 762.2)
■□■ 육체의 본성이 마귀의 영인가! 아니면 내안에 존재하는 유혹인가! "저열한 욕정은 체내에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을 통하여 일한다. ‘육신 (flesh)’ 또는 ‘육신의 (fleshly)’ 또는 ‘육신의 정욕들 (carnal lusts)’ 이란 말은 그 저열하고 타락한 본성을 포함한다. [[육신 그 자체는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 the flesh of itself cannot act contrary to the will of God). ]] 우리는 육신과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신체를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할까! 아니다. [[죄에 대한 유혹을 죽게 해야 한다.]] 부패한 생각은 추방되어야 한다. 모든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혀야 한다. 모든 동물적인 경향은 심령의 더욱 높은 능력 아래 복종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최고의 통치권을 행사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보좌를 차지하셔야 한다. 우리의 몸은 그가 사신 소유로 간주되어야 한다. 몸의 지체들은 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 MS 1, 1888."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1 P 236) ■ 본문확인■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1 - Ellen G. White Writings - m.egwwritings.org/ko/book/11338.1684 인간이 태어나는 상태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 남으로 태어난 후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어쩔수 없이 타락한 본성을 선택하여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 왜 아담과 후손은 첫째 사망을 경험 해야 하는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7 KRV) "19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에덴 동산에 생명과실이 있었다는 것은 창조될때부터 생명과실을 먹어야만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범죄의 경험으로 에덴 동산에서 쫒껴남으로 더이상 생명과실을 먹을 수 없게 되어 영생을 잃어 버렸습니다. 22....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19,22, 24).
■□■ 하나님이 사탄의 자녀를 창조 하셔서 선물로 주시나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시편 36:9 KRV) ■ 씨를 주시는 하나님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세기 4:25 KRV ) ■ 장부를 만드시는 하나님.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시편 139:13 KRV) ■ 뱃속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 주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나를 붙들어 주셨고 나를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게 하셨으므로 내가 항상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시편 71:6 KLB) ■ 자녀를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다. (시편 127:3 RNKSV)
■□■성경은 죄의 책임이 후손에게 전가 된다고 하는가! ■요한복음9:2~3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에스겔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에스겔 14: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찌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신명기 24:16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 이어서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경고하였다(창 2:17). 범죄 후에 하나님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고 선고했다. 성경은 세 가지 종류의 사망에 대하여 말한다. (1) 영적인 사망(참조 엡 2:1; 요일 3:14), (2) 예수가 “잠”으로 묘사한 일시적 죽음인 “첫째 사망”(참조 요 11:11~14; 계 2:10; 12:11), (3) 영원한 죽음인 “둘째 사망”(참조 마 10:28; 약 5:20; 계 2:11; 20:6, 14; 21:8). 아담의 죄의 결과로 생기게 된 사망, 특히 그의 후손에게 전해진 사망이 과연 어떤 류의 것이냐에 대하여 상당한 논란이 있어 왔다(참조 아래 “사망이…이르렀느니라”에 관한 주석). 이런 논란의 대부분은 사망의 본질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단지 죄가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고 그 결과로 사망이 이르러 왔다는 역사적 사실만을 진술하고 있다.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이 세상에 죄나 사망이 없었다. 범죄 후에 그 두 가지가 다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담의 죄악이 그 두 가지의 원인이었다. 아담의 죄의 결과인 사망과 그리스도의 의의 결과인 생명 사이에는 중요한 대조점이 있다. 바울의 논증은, 그리스도가 이룬 생명의 선물과 은혜가 아담의 죄의 결과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이 성경절의 요지는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것이다(5:2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3:23의 동사 형태와 같다. 바울이 여기서 주로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각각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참조 5:13 주석). 그런 해석은 문맥에 맞지 않는데, 그 이유는 14절에서 바울이 모세까지는 사람들이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했다고 부언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했을 때 그들은 생명과를 먹을 권리를 잃어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그 죽음을 후손에게 전해 주어야 했을 뿐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본성이 타락하고 악에 저항하는 힘이 저하되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1). 이와 같이 아담과 하와는 후손에게 죄로 향하는 성향과 그 형벌인 사망을 넘겨 주었다.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죄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님을 적대하는 감염 세력으로 도입되었고, 그 이후로 이 감염은 계속되었다. 사람이 거듭나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본성의 감염 때문이다(참조 3:23; 5:1 주석). 아버지로부터 자식에게 죄된 본성이 전달됨에 대하여 다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의 비행의 결과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나 그들이 부모의 죄에 동참하지 않는 한 부모의 죄 때문에 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자녀들은 부모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유전과 부모들의 모본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짓는다. 나쁜 버릇과 그릇된 식욕과 저열한 품행은 육체적 질병과 퇴화 현상을 지니고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내려간다”(부조와 선지자, 306). …으므로. 헬라어 에프 호(eph’ ho-). 이 구절은 여러 신학적인 논쟁거리가 되어 왔으며, 다양한 형태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단순히 “~때문에” 혹은 “~인 까닭에”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고전 헬라어에서는 대개 “~을 조건으로 하여”라는 의미이지만, 이것이 신약에서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다. 고후 5:4; 빌 3:12; 4:10에서의 용례와 비교해 보라. 사망이…이르렀느니라. 헬라어 디에르코마이(dierchomai). “퍼지다”, “스며들다.” 이 구절은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들어왔느니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단어는 사망이 인간 가족의 각 구성원에게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모든 사람에게. 이것은 앞에 나오는 “세상에”라는 구절에 해당하지만 구체적 부분들(“모든 사람에게”)이 추상적 전체(“세상에”)와 구분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모든 사람에게 “들어왔느니라”(참조 위의 “사망이 이르렀느니라”에 관한 주석)는, 마치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한 도성에 들어가는 것과 다른 것처럼 앞에 나오는 “들어오고”와 다르다. 아담에게 선고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진술은, 아담에게 주어진 선고(창 2:17)가 “둘째 사망”(참조 위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주석; 각 시대의 대쟁투, 544)을 가리킨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둘째 사망은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질 수 없는데, 왜냐하면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계 20:12, 13)고 분명하게 진술된 것처럼 최종 심판의 결과로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영원한 사망의 최종적인 선고는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책임에 기초한다(롬2:6). 모든 사람은 똑같이 무덤으로 내려가는데, 이런 면에서 만민이 아담의 범죄의 형벌에 참여한다. 생명은 범죄로 말미암아 몰수당했다. 아담은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었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533).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전 15:22)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그러하다. 구속의 경륜이 없었다면 아담의 죄의 결과는 영원한 사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이 마련됨으로써 아담의 가족의 모든 구성원은 선악간에 무덤에서 불려 나오게 될 것이다(행 24:15; 참조 고전 15:22). 그때에는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 자들은 모두 순전히 그들 자신의 죄의 결과로 그런 상태에 있게 되었음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인정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로 인해 아담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선한 일을 행한” 자들, 곧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요 5:29).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계 20:6). “악한 일을 행한” 자, 곧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고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용서를 받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요 5:29). 이 사람들은 범죄의 형벌 곧 최종적인 “죄의 삯”(롬6:23)인 “둘째 사망”(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544)을 받게 될 것이다.”
■□■ 언제부터 죄인이 되는가! ■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요한복음 15:22~24)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요한복음 9:40~41) ■□■ 예수님의 말씀으로 영감받은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로마서 5:13) ■"...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로마서4:15) ■"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로마서 7:8)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한일서 3:4) ■□■ 엘렌지 화잇 선지자도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의 기록에 영감받아 다음과 같이 기록 합니다. ■“빛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등한히 하거나 거절하면 심판을 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빛이 주어지기 전에는 죄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절할 빛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증언 1권 116) ■□ 예수님(복음/말씀)을 만났을때 죄인임을 깨닫고 나의 구속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면 칭의를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인이 됩니다.
목사님 품성변화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10:27 에 말씁입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누가복음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 구원을 얻을수 있는 품성의 변화의 기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면 어떠한 행위로 나타 나는가! ■요한복음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 즉 품성의 변화의 기준은 자신이 하나님 말씀믿고 지키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회개한 강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행위가 없었는가!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3:40-42)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모든사람들 아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까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돌을 던지고 채칙질 하고 예수님의 옷을 찢고 희롱하고 야유하는 상황속에서 십자가 주위에서 유일하게(요한과 마리아 제외) 하나님과 예수님을 인정하고 믿고 자신과 가장 가까운거리에 있는 회개하지 않은 강도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행위 즉 품성의 변화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 회개한 강도의 품성변화의 결과로 예수님이 구원을 약속 하십니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도 자아를 내려 놓으셨다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 마옵시고 ... 자아를 내려 놓는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라고 말씀 해 놓으시고.. 우리와 본성이 다르시다???? 자아가 본성이고 이 본성이 죄로 기우는 본성입니다. 그래서 엘렌지 화잇 여사는 시대의 소망에 영감의 글로 이렇게 기록 합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는 것은 거의 무한한 굴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인류가 4천 년간의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진 때에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은 아담의 모든 자녀들과 같이 위대한 유전의 법칙이 끼쳐온 결과를 받아들이셨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그분의 육신의 조상들의 역사 가운데 드러나 있다. 그분은 이러한 유전을 지니고 우리의 슬픔과 시험을 공유하시며 우리에게 죄 없는 생애의 모본을 주기 위하여 오셨다." (시대의 소망 48) ■ 성경은 어떻게 기록 하는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히브리서 4:15 KRV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KRV))
■□■ 목사님의 말씀으로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즉 우리의 자유의지로 죄를 선택없이 모든 인류는 죄인이 되었는데 죄인이 된 인류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복음을 선택하여야만 의인이 된다???? 인류의 수많은 사람중에는 복음을 믿는 사람들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텐데 목사님의 이론 이라면 하나님을 공의롭지 못한 하나님으로 만드시네요..ㅠㅠ
아멘
아담잘못으로 내가죄인되어으나 주님께서 값아주셨으니 참귀한말씀😅합니다
내가한사람아담때문에죄인되고사망에이르게되었으나.내가하나님을선택하느냐.사탄을선택하느냐에따라내안에의를받았기때문에구원받을수있었음알려주셨습니다멸망의자식으로태어났지만예수님의보혈괴희생으로구원받게하신하나님을찬양합니다.
■□■ 원죄론의 근간이 된 롬5장12절을 재림교회는 어떻게 주석 하는가. ■□■
롬5장“12. 이러므로. 많은 사람이 여기 소개된 구절을 성경 전체는 아니지만 신약에서 가장 난해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바울이 의도한 것과 다른 목적으로 성경절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도의 주요 목적은, 아담의 죄의 결과를 그리스도의 의롭다 하시는 일의 결과와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그분의 사역이 미치는 결과들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므로”는 죄인을 화목시키고 의롭게 하며 그로 하여금 최종적인 구원의 소망을 붙잡게 하는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사업에 관한 1~11절 내용을 되짚어 언급하는 말일 것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아담의 죄의 결과와 그리스도의 구원의 결과를 이 말로 비교하기 시작하는데 그 비교의 첫 부분만 제시한다. 이것을 제시하면서, 그는 자기 특유의 방식대로 이미 말했던 내용에 포함된 어떤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중단한다. 13~17절이 제임스왕역(KJV)에 괄호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15절에서 다시 그의 주요 논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바울이 비교를 완료한 것으로 보고 읽으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해 사망이 온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확산되었느니라. 이와 같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가 세상에 들어왔고 의를 통해 생명이 들어왔느니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되느니라.”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말했다. “사도가 일반적인 작문법에 따라 먼저 충분히 비교한 다음에 설명과 조건들을 제시했다면 주석자들은 많은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의 의미에 대한 더 깊은 연구와 해명에 치중한 나머지 성경에 나오는 그러한 문법적인 난제들이 전반적으로 간과되고 있다”(랑에 주석[Lange’s Commentary, Scribner’s, 1870]의 5:12 주석 부분에 있는 편집자 주를 참조하라).
이 성경절에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비교의 주안점들은, 죄와 사망이 하나의 원리와 권세로서 아담으로부터 인류 전체에 미치듯이, 의와 생명은 그것을 반격하고 정복하는 원리와 권세로서 그리스도로부터 나와 온 인류에게 미친다는 것이다. 또한 사망이 아담의 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해졌듯이, 생명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모든 이에게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온전치 못하다. 왜냐하면 아담의 죄에 참여하는 것은 만민에게 공통적이지만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함은 믿는 자들에게 한정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요 그리스도의 의는 능력과 목적에 있어서 똑같이 보편적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신자는 아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가 얻은 것은 아담이 잃은 것보다 더 크다(참조 시대의 소망, 25).
죄. 바울은 여기서 죄를 의인화(擬人化)한다. 죄는 “사망 안에서 왕노릇”(21절)하고, 우리를 죽게 만들며(7:13), 우리를 주관하고(6:14), 각양 탐심을 이루며(7:8), 죄인을 속이고 죽인다(7:11).
5:12, 13, 20, 21을 15~18절과 비교해 보라.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의 원리가 세상에 들어왔다. 이어서 “죄”는 헤아릴 수 없는 “범죄”의 원천이 되었다. 이 부분 전체를 통하여 불법의 원리와 본질로서의 “죄”(참조 요일 3:4 주석) 그리고 여기서 “범죄”라고 번역된 죄의 구체적인 행위 사이에 구별이 나타난다.
세상에 들어오고. 바울은 죄가 바깥에서 인간 세상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낸다. “세상”이라는 단어는 종종 인류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롬 3:19; 11:15; 참조 요 3:16, 17). 바울은 죄의 기원에 대하여 그 이상 논하지 않는다. 최초의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고, 그 경로로 죄가 인류에게 들어오게 되었다.
■ 이어서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경고하였다(창 2:17). 범죄 후에 하나님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고 선고했다.
성경은 세 가지 종류의 사망에 대하여 말한다. (1) 영적인 사망(참조 엡 2:1; 요일 3:14), (2) 예수가 “잠”으로 묘사한 일시적 죽음인 “첫째 사망”(참조 요 11:11~14; 계 2:10; 12:11), (3) 영원한 죽음인 “둘째 사망”(참조 마 10:28; 약 5:20; 계 2:11; 20:6, 14; 21:8). 아담의 죄의 결과로 생기게 된 사망, 특히 그의 후손에게 전해진 사망이 과연 어떤 류의 것이냐에 대하여 상당한 논란이 있어 왔다(참조 아래 “사망이…이르렀느니라”에 관한 주석). 이런 논란의 대부분은 사망의 본질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단지 죄가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고 그 결과로 사망이 이르러 왔다는 역사적 사실만을 진술하고 있다.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이 세상에 죄나 사망이 없었다. 범죄 후에 그 두 가지가 다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담의 죄악이 그 두 가지의 원인이었다. 아담의 죄의 결과인 사망과 그리스도의 의의 결과인 생명 사이에는 중요한 대조점이 있다. 바울의 논증은, 그리스도가 이룬 생명의 선물과 은혜가 아담의 죄의 결과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이 성경절의 요지는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것이다(5:2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3:23의 동사 형태와 같다. 바울이 여기서 주로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각각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참조 5:13 주석). 그런 해석은 문맥에 맞지 않는데, 그 이유는 14절에서 바울이 모세까지는 사람들이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했다고 부언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했을 때 그들은 생명과를 먹을 권리를 잃어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그 죽음을 후손에게 전해 주어야 했을 뿐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본성이 타락하고 악에 저항하는 힘이 저하되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1). 이와 같이 아담과 하와는 후손에게 죄로 향하는 성향과 그 형벌인 사망을 넘겨 주었다.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죄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님을 적대하는 감염 세력으로 도입되었고, 그 이후로 이 감염은 계속되었다. 사람이 거듭나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본성의 감염 때문이다(참조 3:23; 5:1 주석).
아버지로부터 자식에게 죄된 본성이 전달됨에 대하여 다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의 비행의 결과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나 그들이 부모의 죄에 동참하지 않는 한 부모의 죄 때문에 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자녀들은 부모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유전과 부모들의 모본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짓는다. 나쁜 버릇과 그릇된 식욕과 저열한 품행은 육체적 질병과 퇴화 현상을 지니고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내려간다”(부조와 선지자, 306).
…으므로. 헬라어 에프 호(eph’ ho-). 이 구절은 여러 신학적인 논쟁거리가 되어 왔으며, 다양한 형태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단순히 “~때문에” 혹은 “~인 까닭에”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고전 헬라어에서는 대개 “~을 조건으로 하여”라는 의미이지만, 이것이 신약에서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다. 고후 5:4; 빌 3:12; 4:10에서의 용례와 비교해 보라.
사망이…이르렀느니라. 헬라어 디에르코마이(dierchomai). “퍼지다”, “스며들다.” 이 구절은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들어왔느니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단어는 사망이 인간 가족의 각 구성원에게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모든 사람에게. 이것은 앞에 나오는 “세상에”라는 구절에 해당하지만 구체적 부분들(“모든 사람에게”)이 추상적 전체(“세상에”)와 구분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모든 사람에게 “들어왔느니라”(참조 위의 “사망이 이르렀느니라”에 관한 주석)는, 마치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한 도성에 들어가는 것과 다른 것처럼 앞에 나오는 “들어오고”와 다르다.
아담에게 선고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진술은, 아담에게 주어진 선고(창 2:17)가 “둘째 사망”(참조 위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주석; 각 시대의 대쟁투, 544)을 가리킨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둘째 사망은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질 수 없는데, 왜냐하면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계 20:12, 13)고 분명하게 진술된 것처럼 최종 심판의 결과로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영원한 사망의 최종적인 선고는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책임에 기초한다(롬2:6). 모든 사람은 똑같이 무덤으로 내려가는데, 이런 면에서 만민이 아담의 범죄의 형벌에 참여한다. 생명은 범죄로 말미암아 몰수당했다. 아담은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었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533).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전 15:22)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그러하다.
구속의 경륜이 없었다면 아담의 죄의 결과는 영원한 사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이 마련됨으로써 아담의 가족의 모든 구성원은 선악간에 무덤에서 불려 나오게 될 것이다(행 24:15; 참조 고전 15:22). 그때에는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 자들은 모두 순전히 그들 자신의 죄의 결과로 그런 상태에 있게 되었음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인정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로 인해 아담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선한 일을 행한” 자들, 곧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요 5:29).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계 20:6). “악한 일을 행한” 자, 곧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고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용서를 받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요 5:29). 이 사람들은 범죄의 형벌 곧 최종적인 “죄의 삯”(롬6:23)인 “둘째 사망”(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544)을 받게 될 것이다.”.
율법은 의, 즉 의로운 생애, 완전한 품성을 요구하지만 인류는 그 요구에 미칠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계발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받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그분의 생명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관용을 통하여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으신다.
그분은 인간의 품성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따라 형성하여 영적인 힘과 아름다움을 지닌 훌륭한 건물이 되게 하신다.
그리하여 바로 이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서 성취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롬 3:26)실 수 있다.” (시대의 소망 762.2)
■ 이 타락한 본성은 언제 없어 지는가?
고전15: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바로 예수님재림 사건으로 아담과 하와가 죄 짓기전 몸과 영의 상태로 변합니다.
■□■ 육체의 본성이 마귀의 영인가!
아니면 내안에 존재하는 유혹인가!
"저열한 욕정은 체내에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을 통하여 일한다. ‘육신 (flesh)’ 또는 ‘육신의 (fleshly)’ 또는 ‘육신의 정욕들 (carnal lusts)’ 이란 말은 그 저열하고 타락한 본성을 포함한다.
[[육신 그 자체는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 the flesh of itself cannot act contrary to the will of God). ]]
우리는 육신과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신체를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할까! 아니다.
[[죄에 대한 유혹을 죽게 해야 한다.]]
부패한 생각은 추방되어야 한다. 모든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혀야 한다. 모든 동물적인 경향은 심령의 더욱 높은 능력 아래 복종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최고의 통치권을 행사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보좌를 차지하셔야 한다. 우리의 몸은 그가 사신 소유로 간주되어야 한다. 몸의 지체들은 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 MS 1, 1888."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1 P 236)
■ 본문확인■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1 - Ellen G. White Writings -
m.egwwritings.org/ko/book/11338.1684
인간이 태어나는 상태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 남으로 태어난 후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어쩔수 없이 타락한 본성을 선택하여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 왜 아담과 후손은 첫째 사망을 경험 해야 하는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7 KRV)
"19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에덴 동산에 생명과실이
있었다는 것은 창조될때부터 생명과실을 먹어야만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범죄의 경험으로 에덴 동산에서 쫒껴남으로 더이상 생명과실을 먹을 수 없게 되어 영생을 잃어 버렸습니다.
22....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19,22, 24).
■□■ 하나님이 사탄의 자녀를 창조 하셔서 선물로 주시나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시편 36:9 KRV)
■ 씨를 주시는 하나님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세기 4:25 KRV )
■ 장부를 만드시는 하나님.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시편 139:13 KRV)
■ 뱃속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
주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나를 붙들어 주셨고 나를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게 하셨으므로 내가 항상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시편 71:6 KLB)
■ 자녀를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다.
(시편 127:3 RNKSV)
■□■성경은 죄의 책임이 후손에게 전가 된다고 하는가!
■요한복음9:2~3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에스겔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에스겔 14: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찌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신명기 24:16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 이어서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경고하였다(창 2:17). 범죄 후에 하나님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고 선고했다.
성경은 세 가지 종류의 사망에 대하여 말한다. (1) 영적인 사망(참조 엡 2:1; 요일 3:14), (2) 예수가 “잠”으로 묘사한 일시적 죽음인 “첫째 사망”(참조 요 11:11~14; 계 2:10; 12:11), (3) 영원한 죽음인 “둘째 사망”(참조 마 10:28; 약 5:20; 계 2:11; 20:6, 14; 21:8). 아담의 죄의 결과로 생기게 된 사망, 특히 그의 후손에게 전해진 사망이 과연 어떤 류의 것이냐에 대하여 상당한 논란이 있어 왔다(참조 아래 “사망이…이르렀느니라”에 관한 주석). 이런 논란의 대부분은 사망의 본질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단지 죄가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고 그 결과로 사망이 이르러 왔다는 역사적 사실만을 진술하고 있다.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이 세상에 죄나 사망이 없었다. 범죄 후에 그 두 가지가 다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담의 죄악이 그 두 가지의 원인이었다. 아담의 죄의 결과인 사망과 그리스도의 의의 결과인 생명 사이에는 중요한 대조점이 있다. 바울의 논증은, 그리스도가 이룬 생명의 선물과 은혜가 아담의 죄의 결과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이 성경절의 요지는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것이다(5:2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3:23의 동사 형태와 같다. 바울이 여기서 주로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각각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참조 5:13 주석). 그런 해석은 문맥에 맞지 않는데, 그 이유는 14절에서 바울이 모세까지는 사람들이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했다고 부언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했을 때 그들은 생명과를 먹을 권리를 잃어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그 죽음을 후손에게 전해 주어야 했을 뿐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본성이 타락하고 악에 저항하는 힘이 저하되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1). 이와 같이 아담과 하와는 후손에게 죄로 향하는 성향과 그 형벌인 사망을 넘겨 주었다.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죄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님을 적대하는 감염 세력으로 도입되었고, 그 이후로 이 감염은 계속되었다. 사람이 거듭나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본성의 감염 때문이다(참조 3:23; 5:1 주석).
아버지로부터 자식에게 죄된 본성이 전달됨에 대하여 다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의 비행의 결과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나 그들이 부모의 죄에 동참하지 않는 한 부모의 죄 때문에 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자녀들은 부모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유전과 부모들의 모본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짓는다. 나쁜 버릇과 그릇된 식욕과 저열한 품행은 육체적 질병과 퇴화 현상을 지니고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내려간다”(부조와 선지자, 306).
…으므로. 헬라어 에프 호(eph’ ho-). 이 구절은 여러 신학적인 논쟁거리가 되어 왔으며, 다양한 형태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단순히 “~때문에” 혹은 “~인 까닭에”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고전 헬라어에서는 대개 “~을 조건으로 하여”라는 의미이지만, 이것이 신약에서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다. 고후 5:4; 빌 3:12; 4:10에서의 용례와 비교해 보라.
사망이…이르렀느니라. 헬라어 디에르코마이(dierchomai). “퍼지다”, “스며들다.” 이 구절은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들어왔느니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단어는 사망이 인간 가족의 각 구성원에게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모든 사람에게. 이것은 앞에 나오는 “세상에”라는 구절에 해당하지만 구체적 부분들(“모든 사람에게”)이 추상적 전체(“세상에”)와 구분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모든 사람에게 “들어왔느니라”(참조 위의 “사망이 이르렀느니라”에 관한 주석)는, 마치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한 도성에 들어가는 것과 다른 것처럼 앞에 나오는 “들어오고”와 다르다.
아담에게 선고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진술은, 아담에게 주어진 선고(창 2:17)가 “둘째 사망”(참조 위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주석; 각 시대의 대쟁투, 544)을 가리킨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둘째 사망은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질 수 없는데, 왜냐하면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계 20:12, 13)고 분명하게 진술된 것처럼 최종 심판의 결과로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영원한 사망의 최종적인 선고는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책임에 기초한다(롬2:6). 모든 사람은 똑같이 무덤으로 내려가는데, 이런 면에서 만민이 아담의 범죄의 형벌에 참여한다. 생명은 범죄로 말미암아 몰수당했다. 아담은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었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533).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전 15:22)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그러하다.
구속의 경륜이 없었다면 아담의 죄의 결과는 영원한 사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이 마련됨으로써 아담의 가족의 모든 구성원은 선악간에 무덤에서 불려 나오게 될 것이다(행 24:15; 참조 고전 15:22). 그때에는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 자들은 모두 순전히 그들 자신의 죄의 결과로 그런 상태에 있게 되었음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인정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로 인해 아담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선한 일을 행한” 자들, 곧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요 5:29).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계 20:6). “악한 일을 행한” 자, 곧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고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용서를 받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요 5:29). 이 사람들은 범죄의 형벌 곧 최종적인 “죄의 삯”(롬6:23)인 “둘째 사망”(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544)을 받게 될 것이다.”
■□■ 언제부터 죄인이 되는가!
■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요한복음 15:22~24)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요한복음 9:40~41)
■□■ 예수님의 말씀으로 영감받은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로마서 5:13)
■"...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로마서4:15)
■"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로마서 7:8)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한일서 3:4)
■□■ 엘렌지 화잇 선지자도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의 기록에 영감받아 다음과 같이 기록 합니다.
■“빛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등한히 하거나 거절하면 심판을 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빛이 주어지기 전에는 죄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절할 빛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증언 1권
116)
■□ 예수님(복음/말씀)을 만났을때 죄인임을 깨닫고
나의 구속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면 칭의를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인이 됩니다.
목사님
품성변화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10:27 에 말씁입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누가복음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 구원을 얻을수 있는 품성의 변화의 기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면 어떠한 행위로 나타 나는가!
■요한복음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 즉 품성의 변화의 기준은 자신이 하나님 말씀믿고 지키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회개한 강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행위가 없었는가!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3:40-42)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모든사람들 아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까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돌을 던지고 채칙질 하고
예수님의 옷을 찢고 희롱하고 야유하는 상황속에서
십자가 주위에서 유일하게(요한과 마리아 제외) 하나님과 예수님을 인정하고 믿고 자신과 가장 가까운거리에 있는 회개하지 않은 강도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행위 즉 품성의 변화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 회개한 강도의 품성변화의 결과로
예수님이 구원을 약속 하십니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도 자아를 내려 놓으셨다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 마옵시고 ...
자아를 내려 놓는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라고 말씀 해 놓으시고..
우리와 본성이 다르시다????
자아가 본성이고
이 본성이 죄로 기우는 본성입니다.
그래서 엘렌지 화잇 여사는
시대의 소망에 영감의 글로 이렇게 기록 합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는 것은 거의 무한한 굴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인류가 4천 년간의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진 때에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은 아담의 모든 자녀들과 같이 위대한 유전의 법칙이 끼쳐온 결과를 받아들이셨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그분의 육신의 조상들의 역사 가운데 드러나 있다. 그분은 이러한 유전을 지니고 우리의 슬픔과 시험을 공유하시며 우리에게 죄 없는 생애의 모본을 주기 위하여 오셨다."
(시대의 소망 48)
■ 성경은 어떻게 기록 하는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히브리서 4:15 KRV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KRV))
■□■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는데 마귀와 성령님이 함께 거하신다.???ㅠㅠㅠ
사도 바울도 내속에 선과악이 공존한다 하지 않았나요????ㅠㅠㅠ
■□■ 목사님의 말씀으로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즉 우리의 자유의지로 죄를 선택없이 모든 인류는 죄인이 되었는데
죄인이 된 인류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복음을 선택하여야만 의인이 된다????
인류의 수많은 사람중에는 복음을 믿는 사람들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텐데
목사님의 이론 이라면 하나님을 공의롭지 못한 하나님으로 만드시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