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가 불쌍하네요~~ 과한 부분이 있었겠지만 사약을 내려 죽게하고 왕 자신은 왕권을 강화하고... 중종 숙종 비슷한 구석이 있네요 인간적으로 비정한거 같습니다 특히 숙종 ㅠㅠ 교수님 강의는 언제나 푸근하고 구수하고 신뢰가 가서 한능검을 앞두고 최강 1교시 왕 시리즈를 몰아서 보고 있습니다 ^^ 훌륭하고 재미있는 강의 감사드려요^^~~
조광조에 관한 평가는 여러 갈래이지만 "무언지는 모르나 이상정치를 추구했다는 측면에선 좋은 이미지를 준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 역사스페셜을 통해 조금은 실체에 가까운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조광조 위배지인 전남 화순군 쌍봉사 옆 동네 '증리'에 조광조가 유배생활을 했다는 집터의 표지석을 답사했던 적이 있었고, 능주 장터엔 사약받았던 집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기에 몇 차례 돌아본 바 있어 감회가 새롭더군요~ 조광조의 사상은, 고려말 성리학자들 중 조선에 협력하지 않고 불사이군이란 명분에 초야에 묻혔던 '고려파'의 후예로 성리학 근본주의를 따른 듯 보입니다. 성리학 중에서도 외골수파라 할까요? 요순 시대를 재현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들이 할 수 있고 선택받은 자라는 자부심~~ 조광조의 추종자들이 그뒤에도 조선을 이끌었는데 율곡이 대표라 하겠습니다. 이 영상에서 조광조가 중종에게 "임금도 선비이고 선비의 우두머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데, 율곡의 이기이원론적 일원론은 조광조의 이 말을 철학적인 표현으로 바꾼 정치철학이라 보입니다. 퇴계는 '왕은 선비가 아니고' 하늘을 대역하는 것이고 선비들의 보좌를 받아 정치를 한다는 왕권강화 입장으로 약간 차이가 나는 듯한 느낌이고요. "왕도 선비다"와 "왕은 선비의 보좌를 받아 하늘을 대역한다"는 견해 차이는 정치적ㆍ종교적 관점에선 하늘과 땅만큼 다른 듯 여겨집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신으로 보느냐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이다는 입장은 313년 로마 기독교 공인 이래 지금까지 이단 시비로 화형에 처할 만큼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되실 수 있으나, 로마 시대 정통으로 인정한 "예수는 신이다"는 아타나시우스파? 이론은, "황제도 신이다"와도 부합하기에 황제도 좋아했고, 동시에 교황은 신의 대리인이 되고 신부들은 교황 즉 신의 대리인의 대리인이라 성직자인 신부들의 말이나 설교는 신의 말씀과 동일시되어 절대권력이 되기에 '예수는 사람'이란 이론을 펴는 영지주의자 등은 추방되고 18세기까지도 화형을 당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자꾸 종교 이론을 두고 언어의 유희에 빠져 "그 말이나 이 말이나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이마나 마빡이나 같은 뜻 아니냐? " 싶겠지만, 그 언어의 유희 뒤에 '절대권력'이냐 '상대권력'이냐는 권력관계가 깔려 있거든요^^ 예를 들어, 교황이 하는 일엔 공적인 일 사사로운 일도 있을 텐데 사사로이 하는 일은 개인 일이니 아래 성직자들이 거부해도 제재할 '종교적 권위'가 없어지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난 2천년 그리 피비린내 나는 화형 등 비인간적 행위를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면서 "예수는 신이다"는 신학이론을 고수해 온 건 아닐까요??? 조광조는, "왕도 선비다"는 말을 은연중 내뱉음으로써 고래로 전해오는 즉 딱히 말로 안 해도 '왕권신수설적인 신화의 상징인 소격서' 혁파를 죽기로 밀어부침으로써 왕 뒤에 가려진 종친ㆍ대비 등 실세?들과의 '종교전쟁'을 촉발시켰고, 왕의 신성한 절대 권위를 능멸한 꼴이 되었지 않았을까요? 짐작컨대, 소격서 폐지 문제가 나오자 당시 대비나 종친들이 중종에게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의) 왕권이 능멸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심어주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중국 역사 드라마에 보면, 황제의 명을 내릴 땐 '하늘의 뜻을 받들어 : 봉천)란 문구가 반드시 처음에 들어가는데, 조선에선 중국과의 관계상 이 표현을 쓸 수 없기에 대신 소격서에서 제사를 올림으로써 '고조선부터의 천자국이란 자긍심을 가지고 또 왕권의 권위를 나름 지켜온 셈인데, 조광조는 소격서 문제가 성리학적 관점에선 미신적 요소란 생각만 했지, 왕이 전제 왕권을 휘두르는 절대권력을 지탱하는 종교적 권위의 상징이란 '종교적 기능'을 간과했거나 무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광조는 유학자로서는 뛰어났을 지 모르나, 소격서가 왕권의 신성을 담보하고 그게 종교적 기능을 한다는 걸 간과한 실패한 정치인이거나 정치역량이 부족했던 듯 보입니다.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 등에선 조광조는 반대파들이 음해하여 '주초위왕'이란 잎사귀를 만들어 역모로 몰아 죽였다고 알려져 왔으나 역사스페셜에선 이게 중종이 직접 밀지를 내려 만든 책략이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즉 중종이 직접 기획, 감독, 연출하여 조광조 일파를 척결한 종중의 친위 쿠데타이었던 게죠^^ 소격서 폐지 이후 현량과가 시행되었는데 서경덕 화담 선생은 수석으로 천거되었으나 응하지 않았고, 대신 김식이 수석으로 천거되어 대사성에 올랐다가 죽임을 당했군요. 서화담 선생이 그 때 출사했더라면 사약을 받을 뻔했네요 ^^ 암튼 조광조의 근본주의적 성리학은 율곡을 거쳐 송시열로 ~ 노론 300년 일당독재를 거쳐 그 후손들이 지금도 학계(서울대 중심)ㆍ정계ㆍ경제계. 법조계(김&장)를 틀어쥐고 좌지우지하고 있다고들 합니다(배기성 역사 강사 유튜브 등 다수). 저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편가르기, 흑백논리, 진영논리에 쉽게 휩쓸리는 문화풍토에서 자유롭지 못 한 데는, 이런 조광조 류의 성리학 근본주의 사상의 영향이 그가 죽은지 거의 5~600년이 지나감에도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이 영상을 보고서 소름이 느껴졌습니다 ~😢~ 사람은 누구나 힘(세력)을 갖추면 고집스러워진다고 합니다.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처칠도, 맥아더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충신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참조해 주십시요."라고 올리고, 결정은 결정권자가 내려야지 조광조처럼 자신이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하는 고집은 왕권 침해는 물론 혹세무민하는 사이비종교 교주들과 진배 없을 직권남용이라 보입니다. 어느 유튜브에도 유사한 강의가 있기에 참고로 올려봅니다. 신 교수님의 명강의에 거듭 감사올립니다👍😍🌺 ua-cam.com/video/A6u7asvvW4w/v-deo.html
위훈삭제는 저항이 심했을것.예나 지금이나 돈과 권력을 뺏으려들면 반발이 극에달하네. 지금 검판사들의 전관특혜 박탈을 시도하니 온나라가 뒤집어진거지. 퇴직하면 수백억의 돈을 거둬들일 꿈에 부풀어있는데 그걸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미쳐가지고 70군데 압색을 하고 대권도전까지 나서니 후대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지역구의원에게 문자폭탄 보냅시다 ""개혁이 민생이다.검·언 개혁 완수하라""..ㅇㅇㅇ의원님 계속 지지할테니.개혁법안에 찬성 부탁합니다.☆☆☆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의원들 실명을 공유하여, 총선에서 낙선운동합시다..이제라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수박들은 용서합시다.
조광조가 불쌍하네요~~
과한 부분이 있었겠지만 사약을 내려 죽게하고 왕 자신은 왕권을 강화하고...
중종 숙종 비슷한 구석이 있네요
인간적으로 비정한거 같습니다 특히 숙종 ㅠㅠ
교수님 강의는 언제나 푸근하고 구수하고 신뢰가 가서
한능검을 앞두고 최강 1교시 왕 시리즈를 몰아서 보고 있습니다 ^^
훌륭하고 재미있는 강의 감사드려요^^~~
재미있어요.^^
귀에 쏙쏙들어오네요.
신병주 선생님 반갑습니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구수한 목소리로 이야기 들려주셔서 많이 도움이 됐는데 여기서 뵙네요~
대책, 압권 같은 단어의 유래 도 알게돼 유익했고 조광조의 외모에 대해 처음 알게됐네요~ 찌질한 중종, 조광조 안타깝고.. 재미나게 들었습니다
❤❤❤❤❤
조광조에 관한 평가는 여러 갈래이지만 "무언지는 모르나 이상정치를 추구했다는 측면에선 좋은 이미지를 준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 역사스페셜을 통해 조금은 실체에 가까운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조광조 위배지인 전남 화순군 쌍봉사 옆 동네 '증리'에 조광조가 유배생활을 했다는 집터의 표지석을 답사했던 적이 있었고, 능주 장터엔 사약받았던 집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기에 몇 차례 돌아본 바 있어 감회가 새롭더군요~
조광조의 사상은, 고려말 성리학자들 중 조선에 협력하지 않고 불사이군이란 명분에 초야에 묻혔던 '고려파'의 후예로 성리학 근본주의를 따른 듯 보입니다. 성리학 중에서도 외골수파라 할까요? 요순 시대를 재현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들이 할 수 있고 선택받은 자라는 자부심~~ 조광조의 추종자들이 그뒤에도 조선을 이끌었는데 율곡이 대표라 하겠습니다.
이 영상에서 조광조가 중종에게 "임금도 선비이고 선비의 우두머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데, 율곡의 이기이원론적 일원론은 조광조의 이 말을 철학적인 표현으로 바꾼 정치철학이라 보입니다.
퇴계는 '왕은 선비가 아니고' 하늘을 대역하는 것이고 선비들의 보좌를 받아 정치를 한다는 왕권강화 입장으로 약간 차이가 나는 듯한 느낌이고요.
"왕도 선비다"와 "왕은 선비의 보좌를 받아 하늘을 대역한다"는 견해 차이는 정치적ㆍ종교적 관점에선 하늘과 땅만큼 다른 듯 여겨집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신으로 보느냐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이다는 입장은 313년 로마 기독교 공인 이래 지금까지 이단 시비로 화형에 처할 만큼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되실 수 있으나, 로마 시대 정통으로 인정한 "예수는 신이다"는 아타나시우스파? 이론은, "황제도 신이다"와도 부합하기에 황제도 좋아했고, 동시에 교황은 신의 대리인이 되고 신부들은 교황 즉 신의 대리인의 대리인이라 성직자인 신부들의 말이나 설교는 신의 말씀과 동일시되어 절대권력이 되기에 '예수는 사람'이란 이론을 펴는 영지주의자 등은 추방되고 18세기까지도 화형을 당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자꾸 종교 이론을 두고 언어의 유희에 빠져 "그 말이나 이 말이나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이마나 마빡이나 같은 뜻 아니냐? " 싶겠지만, 그 언어의 유희 뒤에 '절대권력'이냐 '상대권력'이냐는 권력관계가 깔려 있거든요^^
예를 들어, 교황이 하는 일엔 공적인 일 사사로운 일도 있을 텐데 사사로이 하는 일은 개인 일이니 아래 성직자들이 거부해도 제재할 '종교적 권위'가 없어지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난 2천년 그리 피비린내 나는 화형 등 비인간적 행위를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면서 "예수는 신이다"는 신학이론을 고수해 온 건 아닐까요???
조광조는, "왕도 선비다"는 말을 은연중 내뱉음으로써 고래로 전해오는 즉 딱히 말로 안 해도 '왕권신수설적인 신화의 상징인 소격서' 혁파를 죽기로 밀어부침으로써 왕 뒤에 가려진 종친ㆍ대비 등 실세?들과의 '종교전쟁'을 촉발시켰고, 왕의 신성한 절대 권위를 능멸한 꼴이 되었지 않았을까요?
짐작컨대, 소격서 폐지 문제가 나오자 당시 대비나 종친들이 중종에게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의) 왕권이 능멸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심어주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중국 역사 드라마에 보면, 황제의 명을 내릴 땐 '하늘의 뜻을 받들어 : 봉천)란 문구가 반드시 처음에 들어가는데, 조선에선 중국과의 관계상 이 표현을 쓸 수 없기에 대신 소격서에서 제사를 올림으로써 '고조선부터의 천자국이란 자긍심을 가지고 또 왕권의 권위를 나름 지켜온 셈인데, 조광조는 소격서 문제가 성리학적 관점에선 미신적 요소란 생각만 했지, 왕이 전제 왕권을 휘두르는 절대권력을 지탱하는 종교적 권위의 상징이란 '종교적 기능'을 간과했거나 무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광조는 유학자로서는 뛰어났을 지 모르나, 소격서가 왕권의 신성을 담보하고 그게 종교적 기능을 한다는 걸 간과한 실패한 정치인이거나 정치역량이 부족했던 듯 보입니다.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 등에선 조광조는 반대파들이 음해하여 '주초위왕'이란 잎사귀를 만들어 역모로 몰아 죽였다고 알려져 왔으나 역사스페셜에선 이게 중종이 직접 밀지를 내려 만든 책략이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즉 중종이 직접 기획, 감독, 연출하여 조광조 일파를 척결한 종중의 친위 쿠데타이었던 게죠^^
소격서 폐지 이후 현량과가 시행되었는데 서경덕 화담 선생은 수석으로 천거되었으나 응하지 않았고, 대신 김식이 수석으로 천거되어 대사성에 올랐다가 죽임을 당했군요. 서화담 선생이 그 때 출사했더라면 사약을 받을 뻔했네요 ^^
암튼 조광조의 근본주의적 성리학은 율곡을 거쳐 송시열로 ~ 노론 300년 일당독재를 거쳐 그 후손들이 지금도 학계(서울대 중심)ㆍ정계ㆍ경제계. 법조계(김&장)를 틀어쥐고 좌지우지하고 있다고들 합니다(배기성 역사 강사 유튜브 등 다수).
저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편가르기, 흑백논리, 진영논리에 쉽게 휩쓸리는 문화풍토에서 자유롭지 못 한 데는, 이런 조광조 류의 성리학 근본주의 사상의 영향이 그가 죽은지 거의 5~600년이 지나감에도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이 영상을 보고서 소름이 느껴졌습니다 ~😢~
사람은 누구나 힘(세력)을 갖추면 고집스러워진다고 합니다.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처칠도, 맥아더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충신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참조해 주십시요."라고 올리고, 결정은 결정권자가 내려야지 조광조처럼 자신이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하는 고집은 왕권 침해는 물론 혹세무민하는 사이비종교 교주들과 진배 없을 직권남용이라 보입니다.
어느 유튜브에도 유사한 강의가 있기에 참고로 올려봅니다.
신 교수님의 명강의에 거듭 감사올립니다👍😍🌺
ua-cam.com/video/A6u7asvvW4w/v-deo.html
도봉서원에도 배향됐어요
22:00 책갈피
군약신강 유동근 이 드라마 로 나왔던 조광조 생각나네여
현량과는 애초에 사림세력 부풀리기 용도밖에는
유튜브 창조언론 UTV당 화이팅! 개미군단으로 뭉쳐 선거문화 보다 더 새롭게 해내자 위대한 대한민국 새희망 UTV 화이팅!...
우모씨가 터트린 채널입니다
무슨일 있나여??
아 그 중국좆문가 말씀하시는거구나
신돈. 그는 과연 요승이였나 혁명가 이였나.
16:12 뭔가 착각하신듯......사림파는 세조의 계유정란에 반대하여 지방으로 내려간 집단이 아니라 조선건국을 반대한 온건개화파의 일부의 후예들입니다...
왕을 어지간히 쪼댓나보네ㅋㅋ
엄마가 잔소리해도 듣기싫은데 신하가 하루 세번 몇시간씩 붙잡고 갈구는데 당연히 죽여버리지 ㅋ
빙고~
위훈삭제는 저항이 심했을것.예나 지금이나 돈과 권력을 뺏으려들면 반발이 극에달하네.
지금 검판사들의 전관특혜 박탈을 시도하니 온나라가 뒤집어진거지.
퇴직하면 수백억의 돈을 거둬들일 꿈에 부풀어있는데 그걸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미쳐가지고 70군데 압색을 하고 대권도전까지 나서니 후대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개혁이 진짜 어려워요 우리의 큰 손실이고 ㅠㅠ
무능의 제왕하고 무슨 개혁
개혁 당할자들 만만치 않죠..그래서 처단한 자들만이 권력을 잡았던 것이죠
악하고도 절박한 자들이 광속으로 먼저 휘두르죠.
선한 경향 때문레 머뭇거라거나 생각이 많다가 당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개같은 세상.. 피 맺히는 음악..ㅋ
한양조가들 이런 선조있다 니성격 승질이면 한양조가다
현량과는 개혁이 아니고 사림을 세력화할려는 술수아닙니까? 지금말로 지들끼리 다 헤처먹을려는...
오너가 전문 경영인 델고 왔는데 이새끼가 회사를 자기 껀줄 착각하니까 오너가 죽여버린거임
조광조는 개혁가가 아니라 극단적 유교 원리주의자 즉, 유교 탈레반으로 보면 됩니다.
조선의 유교가 사고의 경직화 되는데 큰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조광조도 정치 감각이 별로였던거임 왕이 중종이라는 걸 간과한거임
여론조사 3위 허경영 왜 배제시켰나
무슨 수작을 하는가 햤더니 역시나 그것이 알고싶다Go
아니 왜 자꾸 이준석이 떠오르냐
그 당시에도 가짜유공자(공신)들이 있었네.
효과음 엄청 거슬린다! 삑 삑~~
양념 적당히 넣으시오
지역구의원에게 문자폭탄 보냅시다 ""개혁이 민생이다.검·언 개혁 완수하라""..ㅇㅇㅇ의원님 계속 지지할테니.개혁법안에 찬성 부탁합니다.☆☆☆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의원들 실명을 공유하여, 총선에서 낙선운동합시다..이제라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수박들은 용서합시다.
착각을 한거임 조광조
준석아 밥은 먹고 폰질하니
역적 조광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