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강] Ⅱ-4-3)4) 항일 의병 전쟁, 애국 계몽 운동

Поділитися
Вставка
  • Опубліковано 10 лис 2024

КОМЕНТАРІ • 12

  • @와신상담-e8r
    @와신상담-e8r 2 роки тому

    헌정연구회는 독립협회가 계승하고 그 뒤 대한자강회가 계승하듯이 계승한다는 말이 활동하는 성격이 비슷하다는것이죠? 각각 추구한 목표는 다른것이죠?

    • @teachistoria
      @teachistoria  2 роки тому +1

      실제로 독립협회 인사들이 헌정연구회로, 헌정연구회 인사들이 대한자강회로 참여합니다. 또한 독립협회와 헌정연구회 모두 입헌군주제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대한자강회가 추구한 정치적 목표에 대해서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 @장발좌
    @장발좌 2 роки тому

    그리고 보안회가 황무지 개간궈뉴요구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 성공하렸다고 나왔는데 학습지에서 철회시킴이라는 말이 요구를 철회시켰다는 건가여 아니면 보안회 조직 자체를 철회 시켰다는건가요?

    • @teachistoria
      @teachistoria  2 роки тому +1

      강의에도 나와있듯이, 보안회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철회시킵니다.

  • @와신상담-e8r
    @와신상담-e8r 2 роки тому

    보안회만 해산되고 헌정연구회는 해산되지 않고 자강회로 된거죠?

    • @teachistoria
      @teachistoria  2 роки тому +2

      네 맞습니다. 다음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헌정연구회' 항목 끝부분입니다.
      1906년 윤효정·장지연(張志淵)·나수연(羅壽淵)·김상범(金尙範)·임병항(林炳恒) 등이 보다 주체적 목표를 가진 자주·자강의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발전적으로 확장하여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로 개편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

    • @와신상담-e8r
      @와신상담-e8r 2 роки тому

      @@teachistoria 그럼 대한 자강회또한 해산된게 아니죠? 교과서 뒤에 통감부의 탄압을 받아 강제 해산되었다고 나와있는데 그건 지회를 말한걸까요/.....?

    • @teachistoria
      @teachistoria  2 роки тому

      교과서 서술 그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대한자강회는 고종 강제퇴위를 반대하다가 해산됩니다.
      ------------------------------
      (우리역사넷 펌)
      대한자강회의 현실참여운동은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인한 고종의 양위(군주의 지위를 물려줌)로 더욱 적극화 되었다. 고종의 양위가 일제의 강압적 수단에 이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자강회는 별보를 내어 양위 소식을 전하고 동우회 등의 단체들과 함께 각지에서 연설을 통해 양위반대운동과 배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국 대한자강회는 1907년 8월 보안법에 의거해 내부대신의 명의로 강제 해산당했다.

  • @장발좌
    @장발좌 2 роки тому

    의병에서 무장독립 전쟁으로 계승되었다는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 어떤식으로 변화된걸까요?

    • @teachistoria
      @teachistoria  2 роки тому +1

      의병이 무장독립전쟁으로 계승되었다는 것은 실제로 남한 대토벌 작전 이후 국내 의병 운동이 위축되면서 의병들이 국외로 이동하였고, 이 시기 즈음 일제에 강점당하면서 무장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교과서 표현에 따르면 의병 전쟁의 '정신'이 일제 강점기의 무장 독립 전쟁으로 계승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 @수학95받은현우진
    @수학95받은현우진 3 роки тому

    사랑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