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안정을 찾지 못하는 신학교 생활 (히 11:8-10)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으로 곁길로 가던 정승회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어 신학교로 직행하게 하였으나 신학교에 들어간 정승회는 아직도 신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곳에서도 인도해 주셔서 공부도 3등을 하고 군대 문제도 군종 장교 후보생으로 선발되어 신학교를 잘 마치고 목사가 되어 군종 장교로 입대하여 지도자 훈련을 받게 하였다. 1. 한국 신학교 이야기한국의 교회는 장로교회가 장자 교단이다. 미국은 침례교회가 가장 크다. 한국 교회는 세계 수준의 신학교육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신학교는 신학석사 과정 3년을 이수해야 목사가 될 수 있다. 이런 목회자 양성으로 인하여 교회가 성장하였다.총신대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이다 석사과정의 한 학년이 600명정도 이다. 그래서 총신대학, 총신대학원을 나온 사람은 다른 교단에서도 존경한다.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이 신학교를 가면 이는 진짜 신학교가 아니고 일반 대학이나 다름없는 학사과정이다. 이 사람은 7년을 공부해야 신학교를 나온 사람이 되고 목사가 될 수 있다.2. 이적적으로 신학교 대학부 입학 (학사과정) 1965년 초 서울 용산에 있던 장로교 총회신학교 대학부에 입학 하였다. 우리 반은 20명정도 였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신학교 적응은 쉽지 않았다. 특히 군대 문제로 고민 중에 있었다. 그곳에서도 다른 대학으로 옮길까? 를 생각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이 대학 저 대학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이때 길이 열렸으면 대학 입시 때를 잊어버리고 주의 종의 길을 버렸을 것이다. 2.1 새벽마다 울며 기도하는 정승회 나는 신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다른 길을 찾기에 열심이었다. 아침마다 울며 기도하였다. 장로 아들이 신학교를 갔는데 도중에 돌아왔다면 이같이 부끄러운 일은 없다. 신학교를 계속하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지는 상황이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하여 생 병이 생겼다. 이 병은 본 교회 담임 목사님의 방문과 기도를 받고 나았다. 생 병이니까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 이 후로 조금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으나 아직도 방황하는 태도는 여전했다. 2.2 일반 대학과 다른 공부한국의 대학은 미국과 달리 대학 들어가면 고등학교 때 보다 공부를 안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신학교 공부는 설렁설렁 하지 않고 공부 벌레처럼 공부한다. 이 훈련으로 후에 일반 대학 농학과에 편입하여 공부할 때 장학금을 받았다. 3. 군종 장교 후보생으로 선발되어 안정을 찾다 (나이타한) 그런데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셨다. 군대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사병이 아닌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일반 대학교의 ROCT 같은 것과 비슷한 군종 장교 조기 선발 제도가 대학부 2학년때 국방부 군종부에서 만든 것입니다. 이로써 학업 중에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렸습니다. 당시 총신은 총회 분열로 장신이 대학인가를 가져 갔기에 총신은 무인가 신학교로 병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장욱정은 군대를 갔다가 오순절로 갔고, 장정일은 군대를 갔다가 총신 후배가 되었습니다. 나도 군대 문제로 고민 중이었는데 이런 군종 장교 조기 선발제도를 통하여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된 후에 군종 장교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신학교 생활에 방황하고 있는 나를 다시 잡아 두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조치였다고 봅니다. 나는 이 군종 장교 선발 시험에 합격하면 다시는 딴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특별히 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험은 대학부 1학년부터 신학부 3학년까지 전 학년에 걸쳐서 실시하였습니다. 마침 내 나는 군종 장교 선발 시험에 함격하여 군대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해결하고 신학교 생활은 안정이 되었기에 신학교 생활은 정상화 되었습니다. 이때 나는 반에서 3등의 성적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아직도 안정을 찾지 못하는 신학교 생활 (히 11:8-10)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으로 곁길로 가던 정승회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어 신학교로 직행하게 하였으나 신학교에 들어간 정승회는 아직도 신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곳에서도 인도해 주셔서 공부도 3등을 하고 군대 문제도 군종 장교 후보생으로 선발되어 신학교를 잘 마치고 목사가 되어 군종 장교로 입대하여 지도자 훈련을 받게 하였다.
1. 한국 신학교 이야기한국의 교회는 장로교회가 장자 교단이다. 미국은 침례교회가 가장 크다. 한국 교회는 세계 수준의 신학교육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신학교는 신학석사 과정 3년을 이수해야 목사가 될 수 있다. 이런 목회자 양성으로 인하여 교회가 성장하였다.총신대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이다 석사과정의 한 학년이 600명정도 이다. 그래서 총신대학, 총신대학원을 나온 사람은 다른 교단에서도 존경한다.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이 신학교를 가면 이는 진짜 신학교가 아니고 일반 대학이나 다름없는 학사과정이다. 이 사람은 7년을 공부해야 신학교를 나온 사람이 되고 목사가 될 수 있다.2. 이적적으로 신학교 대학부 입학 (학사과정)
1965년 초 서울 용산에 있던 장로교 총회신학교 대학부에 입학 하였다. 우리 반은 20명정도 였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신학교 적응은 쉽지 않았다. 특히 군대 문제로 고민 중에 있었다. 그곳에서도 다른 대학으로 옮길까? 를 생각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이 대학 저 대학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이때 길이 열렸으면 대학 입시 때를 잊어버리고 주의 종의 길을 버렸을 것이다.
2.1 새벽마다 울며 기도하는 정승회
나는 신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다른 길을 찾기에 열심이었다. 아침마다 울며 기도하였다. 장로 아들이 신학교를 갔는데 도중에 돌아왔다면 이같이 부끄러운 일은 없다. 신학교를 계속하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지는 상황이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하여 생 병이 생겼다.
이 병은 본 교회 담임 목사님의 방문과 기도를 받고 나았다. 생 병이니까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 이 후로 조금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으나 아직도 방황하는 태도는 여전했다.
2.2 일반 대학과 다른 공부한국의 대학은 미국과 달리 대학 들어가면 고등학교 때 보다 공부를 안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신학교 공부는 설렁설렁 하지 않고 공부 벌레처럼 공부한다. 이 훈련으로 후에 일반 대학 농학과에 편입하여 공부할 때 장학금을 받았다.
3. 군종 장교 후보생으로 선발되어 안정을 찾다 (나이타한)
그런데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셨다. 군대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사병이 아닌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일반 대학교의 ROCT 같은 것과 비슷한 군종 장교 조기 선발 제도가 대학부 2학년때 국방부 군종부에서 만든 것입니다. 이로써 학업 중에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렸습니다.
당시 총신은 총회 분열로 장신이 대학인가를 가져 갔기에 총신은 무인가 신학교로 병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장욱정은 군대를 갔다가 오순절로 갔고, 장정일은 군대를 갔다가 총신 후배가 되었습니다.
나도 군대 문제로 고민 중이었는데 이런 군종 장교 조기 선발제도를 통하여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된 후에 군종 장교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신학교 생활에 방황하고 있는 나를 다시 잡아 두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조치였다고 봅니다.
나는 이 군종 장교 선발 시험에 합격하면 다시는 딴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특별히 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험은 대학부 1학년부터 신학부 3학년까지 전 학년에 걸쳐서 실시하였습니다.
마침 내 나는 군종 장교 선발 시험에 함격하여 군대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해결하고 신학교 생활은 안정이 되었기에 신학교 생활은 정상화 되었습니다.
이때 나는 반에서 3등의 성적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