คำเทศนาในคริสตจักรบ้านผาบือ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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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 лют 2025

КОМЕНТАРІ • 1

  • @sawadeetv3090
    @sawadeetv3090  6 годин тому

    아직도 안정을 찾지 못하는 신학교 생활 (히 11:8-10)
    4. 김의작 음악 교수의 영향을 받다
    평소 교회 생활에서 찬송을 좋아했다. 그래서 교회 성가대, 지역 연합 합창대 등에 참여하여 왔는데 총신 대학부에서 서울대 작곡과 출신 교수인 김의작 교수를 만났다.
    나는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지금 나의 찬송 창법과 지휘는 그를 닮았다. 그리고 태국에서 찬송 지도로 활개를 펴고 있다. 태국의 교회 개척과 육성 사역에서 이 찬송 실력은 나의 큰 자산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신학교 합창단에는 들어가지 못했다.나는 음악가 수준은 못 되어도 교회 육성과 지도, 신학교 교육에 두각을 드러내는 선교사가 되었다.
    5. 신학교 석사 과정 (3년)
    신학교는 대학부가 2년제 였기에 이를 마치고 신학부에 들어갔습니다. 신학부는 3년입니다.
    우리는 본과라고 불렀고, 일반대학 출신들은 신과라고 불렀으며, 전도사 경력에 30세 이상은 전수과라고 불렀는데 전체가 60명 정도이었습니다.
    신학교 입학 당시 우리 신학교는 용산 교사에서 사당동 교사로 옮겨갔는데 대학부 2학년 때(기억이 없다)로 보입니다.
    용산 도원동 기숙사에서 버스를 타고 숭실대 앞에 내려서 산길을 타고 사당동 산 밑에 건축 중인 학교를 다녔다. 이 길은 길이 아니었다. 강도가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다. 비가 오면 장화가 필요했다.
    후에 남산 밑의 회원동 기숙사 생활, 학교 가 건물에서의 기숙사 생활, 학교 주변의 사당동 민가에서 자취 생활 등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우리 때 총신의 교수진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박형룡박사(조직신학), 박윤선박사(성경신학), 최의원박사(구약신학), 명신홍박사(실천신학), 차남진박사(실천신학), 이상근박사(조직신학), 간하배교수(신약신학), 김의환박사(교회사), 박아론박사(변증학)
    총신대학교는 세계에서 가 큰 신학교이다. 학생이 많을 때는 신학부 1학년이 600명-700명에 이르렀다. 지금도 500명선이다.
    결론
    신학교 시철 초창기에는 적응이 어려웠으나
    군종 장교 후보생이 된 후 안정을 찾아 신학교 생활을 잘 마쳤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린 나이에 노회의 고등성경학교 일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