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문화마을_하늘에서본대한민국_Korea from the sky_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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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7 лют 2025
  • 60~70년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유천문화마을은 청도읍 유호1리와 내호리다. 유호리와 내호리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바로 붙어있는 한마을 같은 곳이다. 고려시대부터 유천역이 있어 유천으로 불렸다. 예전의 유천은 현재의 유호리와 내호리, 밀양시 상동면 옥산리 일대를 아우르는 지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가 유천마을을 거쳐서 갔었다. 아직도 마을 뒤편에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영남대로 옛길이 있다.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시 유천역이 설치되면서 인근 지역 중심 상업지로 발전했다. 지금도 농촌이지만 농가보다는 상가가 많은 마을이다. 1939년 경부선 철도가 복선화되면서 유천역은 1945년 상동면으로 이전됐다.
    예전에 마을을 통과하던 철길은 도로로 변했고 사라진 유천역 자리에는 유천역사를 복원해 놓았다. 역사 앞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역무원의 모습도 재현했다. 유천역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서울역에서 유천역 차표를 달라고 하면 역무원이 말없이 상동역으로 가는 차표를 발권해 주는 것으로 보아 모두의 마음 속에는 유천역이 존재하는 셈이다. 향이 좋고 도수가 높았던 유천소주가 유명했으나 1966년 ‘전국 양곡 양조 금지령’에 의해 그 명맥이 끊어졌다.
    유천마을은 근대와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마을이다. 근대거리를 복원한 마을이 아니라 보존된 마을이다. 추억을 관광상품으로 복원해 전시하는 다른 지역의 근대문화 거리와는 달리 유천마을은 살아있는 근대거리다. 대부분의 건물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상가에선 영업활동을 한다.
    대표적인 시설로 영신정미소가 있다. 대들보에 ‘소화(昭化)16년...’이란 상량문이 있어 1941년에 건축된 것을 알 수 있다. 80년을 넘긴 정미소지만 아직도 힘차게 돌아간다. 붉게 녹슨 함석지붕에 낡은 판자문이 정겹다. 내부로 들어가면 벼를 이송하는 송판으로 된 승강기에는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흔들리는 백열등은 뽀얀 먼지를 머리에 이고 있다. 농가에서 보내온 벼를 보관하면서 연락이 오면 도정을 해주는 방식도 옛날 그대로다.
    유천극장은 1967년 건립되어 지역의 문화공간이다. 2008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청도군에서 매입해 재건축해 개관했다. 월 2회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한다. 다양한 벽화도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아이들, 군고구마를 먹으며 작은 TV 앞에 모여앉은 가족을 그린 벽화도 있고 실제 모습처럼 잘 표현해놓은 전파사와 사진관, 대포집도 만날 수 있다.
    유천마을에는 집집마다 365일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 마을 출신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의미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항거한 독립유공자는 10명에 이른다. 한 마을에서 이렇게 많은 독립유공자가 활동한 것은 드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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