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개마는 13세기에 나타났다는 거에 대해서 오류 정정 합니다. 해당 내용은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님 칼럼을 참조했는데 앞으로는 좀더 사실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알렉산더대왕(알렉산드로스 3세)가 친위대로 조직한 ‘헤타이로이’ 정예 기병대가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3세와 전투를 벌인 이소스 전투(기원전 333년)때 ‘헤타이로이’ 중기병대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그리스에 이어서 로마제국에도 강력한 기병대를 두어 막강한 전투력을 활용하여 광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설인귀가 당나라 궁까지 쳐들어간 연개소문 으로부터, 큰 부상을 당하면서도 이 세민을 구해내 철로 된 패를 받는데 거기엔, 역모를 제외한 모든 죄를 사한다고 적혀 있었다는게 야사로 내려 오는데 이 야사는 만주쪽 민중들로부터 나왔답니다. 설인귀도 고구려 유민이었는데, 설인귀 아비가 불미스런 일에 휘말려 당에 망명 했다고 하더군요. 그 설인귀만 아니었으면 지금의 중국 대륙은 없을지도 모르는데.... 통탄할 일이지요.
@@f-killer7537 3년전 댓글에 큥쾅치는 거 보니 쟤는 원종단인가 보네 ㅋㅋㅋㅋ 원종아 칼은 뽑지 말거라 무섭단다 병원 한번 가보고 누가 보면 고구려 개마무사?? 그게 핵 미사일 것 처럼 말할 줄 알겄노 걍 고구려 입장에서 쟤네들이 정예 기병인 건 확실하구만 ㅋㅋㅋ
@@한대웅-h6q 찰갑 자체는 굉장히 오래된 갑옷제작술 이기는 합니다. 시베리아 같은 열악한 환경속에서 나무조각 짐승의 뼛조각 등에 구멍을 내고 끈으로 엮던 기술이 그대로 재질을 금속으로 바꾼 것인데 이것이 가볍고 유연해서 승마에도 편하면서 내구력도 아주 좋고 수리하기도 편해서 정주국가들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정몽규_축협퇴출추진 경기병을 운영하는 장수가 개멍청하다는 전제에 백병전을 전제로 하네요.딱 보고 싶은 거만 보는 겁니다.경기병이 중기병한테 왜 백병전을 합니까?하면 진다는 걸 님도 아는데 사거리 유지하며 천천히 체력만 깍아 먹으면 답 있습니까?그 수많은 병과 중 가장 먼저 사라진게 전차병이고 그다음이 중기병입니다.경기병은 1차 세계대전 근처까지 살아남아 활약했습니다.자동차와 엔진 전차 전까지 살아남은 병과인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맞아요 카타프락토이 시작 자체가 기원전 중앙 아시아 스텝 유목민족들의 철갑 기병대였고, 그 카타프락토이가 서쪽으로는 파르티아(후일 사산조 페르시아)에 영향을 주어 , 파르티아가 도입해서 로마 제국을 상대로 카타프락토이를 보내면서 보병대 중심인 로마 제국조차 영향을 받아서 도입하게 됨. 동쪽으로는 흉노와 강, 선비는 물론 동북방의 고구려도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다른분들도 많이들 말씀하셨는데 서양에도 파르티아 에서 영향을 받은 로마제국의 카타프락투스, 트라야누스 원주에 등장하는 룩솔라니족 보조군 중장기병이나 제국 말기에 동로마 지역의 클라바나리우스 같은 중장기병이 있었습니다 뭐 더 옛날인 후계자 전쟁 시기에도 벌써 망루 달고다니는 전투 코끼리 까지 나왔으니까요ㅋㅋㅋ
고구려의 영토는 한국사에 나오는 영토가 아닙니다 광개토태왕때는 서쪽으론 내몽골 사막지대에 이르렀고 동쪽으로는 말갈 및 동부여를 평정하여 연해주에 이르렀습니다 , 문자명왕때는 최종적으로 북부여까지 흡수했으니 흑룡강 부근까지 영역을 확보했습니다 통전에선 영양태왕시기때 동서 6천리 남북 4천리에 이르렀으며 구당서와 신당서에선 동서 3천리에 서쪽으론 요서 영주까지 이르렀다고 하였고 남북으론 2천리였으며 영토 외에 60여개의 군현을 설치했다했습니다 , 그리고 말갈족역시 고구려계 민족이며 전쟁시 말갈족을 내세워 전쟁했다했습니다 땅이 크다고해서 쓸모없는땅이 많지않느냐라고 하셨는데 요동에는 철광산지 및 부여일대에는 농경과 초원지대가 있어서 농사및 유목에 좋으며 남쪽에는 한강역시 있어서 농사에 유리합니다 , 서쪽에는 거란역시 고구려의 종속국이기에 사막내에 생산되는 소금들이 있으니 짱꺠들이 오죽하면 고구려 땅을 탐냈을지 짐작되네요
@@epyju4605 잘못알고잇구나 홍산문명이 신석기말 청동초기고 기원전 6처련전경임 북방기마족 연합국이 고조선이고 핵심은 부여 예맥 선비 숙신이다 철기는 고조선의 풍부한 자원 철을 기반으로 발전함 넌 북방기마족이 누군지도 모르는구나 당시 화족은 태령산맥 서쪽 밖에서 놀앗다 화하족은 북방기마족이 아니엇고 농사짓던 작은 종족에 불과함
판갑이 찰갑보다 발달된 형태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서로 장점과 단점이 나누어지는 형태인 거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찰갑이 더 가볍지는 않습니다. 판갑은 고정식 조립으로 무게를 분산 시키기 용이하지만 찰갑은 오히려 모든 무게가 어깨로 다 쏠리기 때문에 무겁다면 더 무겁죠. 활동하기는 더 편하지만
파르티안 기사법은 고대 페르시아의 파르티아 제국의 기병들이 로마군을 상대로 이용한 궁술에서 유래했는데 이들은 등자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현제 등자의 영향력은 등자가 없던 시대의 기병(고대 페르시아와 로마의 철갑 기병)들도 전쟁터에서 나름 크게 활약했다는 것이 밝혀져 안정성 향상보다는 훈련기간 단축에 있다고 보고있습니다(출처 나무위키 등자편).
@이희재 카타프락트, 카타프락토이에 대한 설명 en.wikipedia.org/wiki/Cataphract 메소포타미아부터 스키타이 고대로마 페르시아 등등 전 세계적으로 기원전부터 쓰이던, 마갑을 씌운 기병을 부르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600년경 이란 고원에서부터전파되었을것이다 라고 추정합니다. 본 영상은 재미로 보세요.
자료가 치밀하고 많은 자료에 놀랍네요 철의 보급에 있어서 철기 유물로 유추한것이 매우 설득력 높습니다 이것으로 말도 안되는 중국한나라 위만이 철기를 보급하였다는 증거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드라마 주몽에서 고구려 기술자들이 중국 기술 들여와 강철기술 익혔다는 내용도 잘못된 내용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고요 자료 바탕으로 중국의 영향이 아니라 주체적 기술발전이라는 확실한 주장이 탄생 되었습니다
고구려 개마무사들이 탄 말은 서역의 아할테케(한혈마)와 거란 ㆍ말갈 등 북방유목민들의 말과 과하마로 불리운 한반도와 만주에서 서식한 말을 교배ㆍ개량해서 큰 덩치와 빠른 속도 ㆍ강인한 지구력ㆍ근력 ㆍ튼튼한 다리와 발굽을 가진 부여마로 불리운 전투용 군마를 생산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아니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애초에 그런 논쟁을 한다는 것 부터가 웃기긴 한데. 로마는 군사 기술적으로 고구려보다 딸린다 해도, 그들은 정교한 조직력이 있음. 전쟁의 승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인의 힘이나 군대의 기술이 아님. 조직력임. 뭐 기마부대의 위력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조직력이 약하면 무너지는 것임. 한마디로 로마는 조직력이 매우 우세하고, 고구려는 기술이랑 개개인의 역량이 매우 우세함. 그에 대한 역사서의 기록이 있음. 당 태종 때에 당나라의 군사적 조직은 로마와 맞먹을 정도였고 거기에 동돌궐 출신 기마대를 편입시킴. 고구려 후기에는 지방 토호세력과 중앙조직세력의 조직체가 고구려 전반.중기 때보다 약했음. 동돌궐 기마대가 고구려 개마무사와 전투를 했을 때 동돌궐 기마대가 전멸했다고 함. 조직력이 있는 유목민이였는데… 개마무사의 강력함이 보이는 글임. 반대로 태종이 개마무사를 유인해서 괴멸시켰다는 기록이 있음.(이로 인해 고구려의 정예부대가 약화됨.) 당 군대 조직력이 개마무사를 무너뜨림. 이걸 봤을 때 누가 강하다의 우열은 가릴 수 없음
@@ohilyeojoh-a 결과적으로 보면 님 말대로지만 당시 원정군 장수인 관구검은 활도 창도 안통해 질겁을 했죠. 결국 사마의가 미리 언질한 대로 고구려군의 핵심 전력이었던 개마무사들을 함정으로 유인해 처리한 후 최대전력을 잃은 고구려를 유린했다고 알아요. 만약 사마의의 책략에 안 걸리고 개마무사들을 처리하는데 실패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 생각해요. 간단히 말해 사마의가 사용한 협곡으로 유인해 바위로 출입구 막고 불태워 죽이는 방식 빼고 님이 당시 한나라 장수고 전장에서 개마무사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 뾰족한 수단이 떠오르나요?
@@김민철-u4w 질겁은 했다는 이야기나 사마의의 계책같은건 기록에 없습니다 기록자체도 초반에 진 관구검이 창병으로 방진짜서 고구려 기병 몰살했다 이런식으로 담백하게나옴(삼국사기) 더군다나 저 전쟁자체도 두차례에 걸쳐진행되었고 1차2차 모두 고구려가 집니다 개마무사가 뭐 대단한게아니라 말에 갑옷씌우고 기수도 갑옷입은 기병임 백제.신라.가야도 개마무사 있었고 당시 동북아 국가들 대부분 있었음
고려의 주 정치인들이 신라의 6두품이었죠. 그리고 고려를 망하게 했죠. 조선의 주 정치인들이 초기엔 서울 경기 사람들이었으나. 중기 성종이 남부지방 귀족들 사림들을 등용시키면서 연산군때 피비린내가 났죠. 지금도 남쪽 귀족들이 정치문화를 이끌고 있죠. 대동법도 경기도만 시행해서 남쪽 귀족들은 피해가 없었죠.
기병의 기동성을 원한다면 기병과 말 모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긴 창으로 중무장한 중장기병 보다는 가볍게 무장을 한 환두대도와 활, 화살을 무기로 사용하는 경기병이나 궁기병 위주로 가야 하고 말이 지칠 때 마다 새 말로 갈아 탈 수가 있어야 합니다. 광개토태왕의 고구려 5만 대군 중에서 기병으로 신라 서라벌을 쳐들어 온 백제와 가야, 왜 연합군을 격퇴한 것은 중장기병이 맞지만, 추적을 한 것은 경기병과 궁기병 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중장기병도 기동성을 위해서 무거운 갑옷을 벗고 경무장화 해서 가야와 왜의 잔적을 추적 했을 수도 있고 경장을 하지 하지 않더 라도 말이 지칠 때 마다 갈아 탈 수가 있는 여러 필의 새 말들 있었을 것 같네요.
내용을 정정하고 싶네요... 당시 중국이 최강이 아니라... 고구려가 동북아 최강이었습니다~ 비록 고구려가 당나라와의 전쟁 중에 망하긴 했지만... 전쟁에서 패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연개소문 사후에 남생, 남건 형제 간에 분란이 일어나서 스스로 무너진 겁니다~ 연개소문이 건강하게 장수만 했더라면... 당나라는 결코 고구려를 넘볼 수 없었을 겁니다~
@Enok Oh 당나라와 고구려를 동일선 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입니다. 이래서, 단순비교는 무섭습니다. 당나라의 수명은 150년 정도인데 반해, 고구려는 900년 가까이 대륙에 존재했는데, 당나라가 고구려보다 강하다는 건... 굉장히 단순한 이야기죠~ 그럼, 당나라가 건국되었을 때부터 고구려가 망하기 전까지 줄기차게 당나라가 더 강했단 말입니까? 당나라는 고구려를 이간질을 통해 무너뜨린 것이지...고구려가 약해서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연개소문 사후...두 아들 사이에 내분을 일으켜서 멸망한 것이지... 마지막까지도 당나라는 전쟁에서 고구려를 무너뜨리지 못했죠~ 게다가, 심지어 당나라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당고조 이연이나 이세민이나 이민족 출신입니다. 오늘날에는 중국인들이 자기 역사라고 주장하니까...다들 들어주고는 있지만... 그 당시에 한족인 중국인들이 선비족을 중국인으로 생각했을까요? 중국인들은 그들의 지배를 받았을 뿐, 중국을 지배한 것이 중국인이었던 것은 아니죠~ 중국을 지배했던 것 자체로 중국인이 된다고 하면, 왜 몽고인들은 명나라에 의해 초원으로 쫓겨낫겠습니까? 애시당초 몽고인들도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청나라를 지배한 만주족들도 자신들을 '중국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에게는 백두산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황실가문에는 중국인 황후를 들이지도 않았지요~
@Enok Oh 제가 알기로는 고구려가 더 많이, 더 크게 이긴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님의 말대로 국력차이가 어마어마하면... 어째서 그런 참패를 당하고...명색히 당나라 황제가 줄행랑치듯이 도망을 갔을까요? 그리고, 눈에 화살을 맞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으면서...유언을 남겼다죠? '절대로 고구려와 전쟁을 하지 말라'고...
@@yummyenglish6901 눈에 화살 맞았다는 것 고구려와 전쟁을 하지말라고 유언했던 것 전부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실제로는 고구려와의 다음 전쟁을 준비하다가 당태종은 병으로 사망한 겁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당나라보다 오랫동안 존속했다고 국력이 강하다는 논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300년 가까운 당나라 수명이 150년 정도라는 것 자체가 오류이시고 세계 대부분의 왕조가 군사력이 제일 강한 시기는 건국 초창기부터 초기 안정기까지입니다. 그 당나라의 국력이 욱일승천하던 시기가 삼국통일 항쟁 시기로서 그당시 당나라의 국력은 고구려하고는 아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융성하던 시기입니다. 당나라의 주력군이 670년대에 티벳에 갈려나가기 전까지는 야전에서 고구려 신라 모두 아에 상대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당나라의 군사력이 양과 질 모두 아득하게 상위였던 시기였습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신라의 삼국통일도 발해의 건국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에요. 야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상대도 안되게 박살났었는데 무슨 근거로 고구려가 당나라보다 군사력이 강하다고 생각하세요??? 당나라 상대로 이긴 것은 전부 수성전에서 이긴 겁니다. 당나라는 보급의 한계로 패전한 것이구요. 님의 표현대로 당나라보다 고구려의 군사력이 약하다면 연개소문 생전에도 전선이 고구려 수도인 대동강에서 형성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참 후방인 강한 나라의 수도에서 전선에서 형성이 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겁니다. 이미 연개소문 생전에 백제가 멸망하고 나서는 고구려는 거의 연명 밖에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나라는 커녕 신라와도 아득히 벌어져 버린 국력 차이 때문에요. 신라와의 모든 야전에서도 다 패배해서 임진강 이북지방까지 전부 빼았기고. 그리고 분열은 멸망의 원인이 아니라 멸망을 단축시킨 거에요. 20년 넘게 역사 가르치는 사람으로 선생님 같으시길래 길게 답글 달아봤습니다.
고구려가 강대했던 국가이긴 한데 항상 쭝궈 놈들이 분열된 시기에만 기회를 틈 타 치고 나가는 패턴이라 고대 쭝궈 놈들이 확실히 초강대국, 선진국 이였단건 부정 할수가 없음. 단, 고대 쭝궈는 대국이니만큼 체면 때문이라도 상식이 통용되는 국가였는데 현시대 쭝궈 놈들은 그때보다 땅 덩어리는 더 커졌을망정 속은 좁디좁은 소인배에 주변 나라에 민폐만 끼치는 지구의 적폐 덩어리
주필산 대패 는 사실인데 그럼 뭐가 구라인거임? 이세민이가 안시성 전투를 앞두고 고구려의 계책 중 가장 하책으로 초원에서 당나라 군에 맞짱 뜨는 거였어. 근데 진짜 하책을 들고 맞짱뜨니 이세민이가 더 당황했었다네 .. 아주 죽으려고 자진해서 달려와주니까.. 실제로 개마기병 전투력은 공갈수준이었는지 논란 많음.그 이전에도 동천왕이 관구검하고 전투할때도 기병이었다 무너져서 동쪽으로 도망쳤을 정도였으니
개마무사에 대한 묘사는 꽤 잘한 편입니다. 정면에서 돌격할때 화살을 튕겨내고 적을 공포스럽게 하지만 혼전이 벌어지면 적들에게 둘러싸여서 기수가 창에 찍혀 떨어져서 무력화 되는것도 매우 좋은 고증입니다. 그래서인지 삼국 중무장 기병들이 못신을 신었다던지 고대 페르시아의 카타프랙트(갑옷으로 뒤덮었다는 그리스어) 기병들은 쇠주걱이나 곤봉 같은 무기를 지녔다던지 해서 혼전에 대비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보병들이 둘러싸고 장창으로 찌르거나 걸어 당기는걸 당해내기는 어려웠습니다. 백제 군사 박물관에 가면 백제 시대 창 유물중 상당수가 낚시바늘이나 갈고리처럼 생긴 장치가 있어서 당시 기병을 상대하기 위한 전술이 발달했음을 알수 있고 또 반대로 삼국이 기병전력을 많이 보유했음도 엿볼수 있습니다.
@이희재 제가 같다고한건 지금도 나라마다 사정은 다 다르고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국가의 국력수준을볼때 미국을 1위 그 뒤를 러시아, 중국등이 이어간다고 보잖아요 제가 맨처음 궁금해 했던건 바로 그런거였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저 당시엔 중국이 세계적 규모의 앞선 나라라고 인정하잖아요? 사실상 지금의 미국이라 보면 된다고..... 이게 님의 말대로 조건이 다달라 비교할 수 없다면 나올 수가 없는 말이잖아요? 모두 사정이 달라도 대략적인 비교를해 봤을때 나온 결과 아닌가요? 그리고 제가 말했던건 우리나라문명의 국가들도 저당시엔 중국의 뒤를 잇는 강국이었을지 그게 궁금했던 거였어요. 지금 우리가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세계적으로도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것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저당시 그정도의 강국이었는지요
애초에... 땅도 척박해서 농사 짓기 힘들기에 당연히 인구도 적었고, 당시까지는 인구=국력 방식이 돌아가는 고대시대였죠. 그래서 위서 동이전이라든지 고대의 여러 기록들도 대부분 고려(고구려)보다 백제가 호구(戶口) 즉 백성 수가 더 많다고 나오더라구요. 고려(고구려)한테는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 전투가 조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통 멸망 직전에 고구려는 30만명 정도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중 주필산 전투에 15만이 전멸 당했다는건 고구려 멸망을 뜻합니다. 이상한 점이 주필산에서 안시성과의 거리는 코앞인데 안시성까지 가는데 1달 이상 걸렸습니다. 이때 고구려와 2차 주필산 전투가 있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때 당태종의 6군이 고구려군에 의래 전멸당했다고 그래서 당태종이 굉장히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하여튼 고구려가 주필산 전투에서 전멸 됐다는건 허구입니다. 이상입니다 더욱 더 자세히 적고 싶었는데 설명 제대로 못해서 죄송합니다. 네이버에 주필산 전투에 치시면 더 나올거에요 수상한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신성에만 병력이 10만이 있어 안시성을 쳐야한다는 기록이 있는등 이상합니다
서양에서 개마는 13세기에 나타났다는 거에 대해서 오류 정정 합니다.
해당 내용은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님 칼럼을 참조했는데
앞으로는 좀더 사실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알렉산더대왕(알렉산드로스 3세)가 친위대로 조직한 ‘헤타이로이’ 정예 기병대가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3세와 전투를 벌인
이소스 전투(기원전 333년)때 ‘헤타이로이’ 중기병대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그리스에 이어서 로마제국에도 강력한 기병대를 두어 막강한 전투력을 활용하여 광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고구려 이전 현재의 개마고원 일대에 개마국이 있었는데 그 개마와 철기라는 개마는 다른겁니까?
@@대모달-c8r 다릅니다 개마고원 의 개마는 말도 오르기 힘든 고지대 란 뜻이고 개마무사는 개마 즉 갑옷입힌 말 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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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알렉산더 중기병은 뻥일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qkdhrwifh1436 당시 마케도니아는 말안장이랑 발받침대도 없던시절임.
중기병은 뻥일가능성이 높은거죠.
오늘날 유명한 중국 경극에 용포를 입은 한 사람은 도망을 가고 뒤에 무장을 한 장수가 쫓아가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중국에 전해져 오는 이세민과 연개소문의 경극이다! 중국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이세민이 연개소문을 피해 도망을 가는 상황극이다!
교통정리를 잘했어야하는데
설인귀가 당나라 궁까지 쳐들어간
연개소문 으로부터, 큰 부상을 당하면서도
이 세민을 구해내 철로 된 패를 받는데
거기엔, 역모를 제외한 모든 죄를 사한다고
적혀 있었다는게 야사로 내려 오는데
이 야사는 만주쪽 민중들로부터 나왔답니다.
설인귀도 고구려 유민이었는데, 설인귀
아비가 불미스런 일에 휘말려 당에 망명
했다고 하더군요. 그 설인귀만 아니었으면
지금의 중국 대륙은 없을지도 모르는데....
통탄할 일이지요.
강주 용문현 사람으로 평민 출신이며 본명은 설례(薛禮)로 흔히 알려진 인귀(仁貴)는 자(字)이다. 족보에 의하면 삼국지에 여포의 부하로 나오는 설란의 15대손이다. 설인귀 아버지는 당나라 가아니라 수나라 벼슬이였는데 일찍 죽어서 집안이 몰락한것임.
고구려역사는 배울때마다 국뽕이 차오름😀
그림 퀄리티가 점점 후덜덜 해지네요~!!
정말 고구려의 자랑스러운 개마무사
자랑스럽기는 그래서 고구려 철갑병이 위나라 보병 관구검의 방진에 걸려서 탈탈털려 나라가 멸망직전까지 간것인데 너무 국뽕식 해석이 아닌가?
@@f-killer7537 3년전 댓글에 큥쾅치는 거 보니 쟤는 원종단인가 보네 ㅋㅋㅋㅋ 원종아 칼은 뽑지 말거라 무섭단다 병원 한번 가보고 누가 보면 고구려 개마무사?? 그게 핵 미사일 것 처럼 말할 줄 알겄노 걍 고구려 입장에서 쟤네들이 정예 기병인 건 확실하구만 ㅋㅋㅋ
장르도 다채롭고 꿀잼입니다
역사를 배우다 보니 가장 마음에 드는 나라가 결국에는 고구려,고려...뿌리가 같은 발해까지...솔직히 신라가 나당 연합을 맺고 기어코 고구려를 무너뜨린 후 당나라에 고구려의 국토를 다 빼앗긴 걸 보고 아...하는 탄사가 나왔죠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만주의 풍부하고 질좋은 철강을 바탕으로 조직한 군대 개마무사네요 옛날에 삼국시대유물보면 고대시대에는 찰갑도물론 있었지만 판갑옷도 많았죠
잘아시네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걸 그대로 고증했는데 바로 판갑이었죠
만주가 위험한 게 철광석이 엄청 풍부해서라고 하죠.. 농업생산력에 말도 수급할 수 있고 철까지 풍족하니 고구려가 성장할 토양은 충분했음
갑옷의 발전사를 보면 판갑 > 찰갑 > 판금 순으로 변경됩니다.
@@한대웅-h6q 찰갑 자체는 굉장히 오래된 갑옷제작술 이기는 합니다. 시베리아 같은 열악한 환경속에서 나무조각 짐승의 뼛조각 등에 구멍을 내고 끈으로 엮던 기술이 그대로 재질을 금속으로 바꾼 것인데 이것이 가볍고 유연해서 승마에도 편하면서 내구력도 아주 좋고 수리하기도 편해서 정주국가들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한대웅-h6q 판금 / 두정갑
썸네일만 보고 웅장해졌네요👍
영상 감사합니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
고려가 현재의 코리아가 됐으니
나는 고구려의 후예다
지랄도 병이다
@@선인장-f8n ㅋㅋㅋㅋㅋ 조상은 맞잖아요
우와 어마어마한 자료네요
ㅎㅎㅎ잘보고 있습니다!
화약무기가 등장하기전에 최강병력이 기병인데 거기에 중장기병을 양성있으니 고구려를 상대하기란 상당히 어렵겠죠
장거리 행군이 어렵고 대량 양산이 어렵죠.제 보기에는 몽골식 경기병 보다 못해 보이는 데요.중장기병 vs 경기병 경기병 압승입니다.전술 활용도 차이가 너무 큼.
중장기병이 단점이 없는 최강의 병과도 아니고 고구려만 중장기병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특별히 위협적인 면이 있는 것이지 그렇게 상대하기 어려운 병과도 아니고.
결론은 고구려의 개마 기병이 절대 특별한 존재는 아니에요
@@zzang-mathis 하지만 말을타면서 뒤로 활을 쏘는방식
10미터가 넘는 2인 장창을 썼던 장창병(파이크와는 조금다름)까지하면 전략 전술적으로 뛰어나긴했음
@@백수현-k1p 뭔개솔? 경기병이랑 백병전하면 무조건 중장기병이 승리하는데요?
경기병은 중장기병에게 데미지를 줄수없지만
중장기병은 경기병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수있습니다
@@정몽규_축협퇴출추진 경기병을 운영하는 장수가 개멍청하다는 전제에 백병전을 전제로 하네요.딱 보고 싶은 거만 보는 겁니다.경기병이 중기병한테 왜 백병전을 합니까?하면 진다는 걸 님도 아는데 사거리 유지하며 천천히 체력만 깍아 먹으면 답 있습니까?그 수많은 병과 중 가장 먼저 사라진게 전차병이고 그다음이 중기병입니다.경기병은 1차 세계대전 근처까지 살아남아 활약했습니다.자동차와 엔진 전차 전까지 살아남은 병과인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넘 재밌어요 ! 중국인들의 마음과 시야가 넓어지길 바랍니다 . 분명 중국에도 바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겠지요 .
자랑스럽고 멋있는 고구려의 개마무사👍
고구려는 정말대단한듯..
대단해서 위나라 관구검한테 영혼까지 털리고 당나라한테는 멸망당함
@@onlycocoro체급보고 생각해보삼 버틴게 대단하지
@@onlycocoro 소설가세요? ㅋㅋㅋ 당나라때는 고려 내부적으로 분열된시기고 신라랑 연합해야 이길수 있던게 당나라임 230만 수나라군을 이긴게 고려임
@@onlycocoro그래도 후연, 수나라 멸망시킨게 고구려임ㅋ 위나라도 한번만 이겼지, 그후 고구려한테 다 졌음
신기하네 1.5배로 재생하니까 평상시 말하는속도에 발음까지 좋아지네
ㄹㅇ이네 ㅋㅋㅋㅋ
이걸어찌 중국역사라 우기는거냐
이게 중국역사가 아닌 증거:
1500년 전부터 역대 중국 역사학자와 사서 편찬자들은 ‘위촉오’ 3국 시대를 3국 시대라고 했지, 아무도 ‘위촉오고’ 4국 시대라고 한 적 없음
삼국지 (O)
사국지 (X)
@@CrabTastingMan 애초에 후한말기는 고구려가 지방정권 축에도 못낄정도로 약해서 걍 관심 밖이었음. 고구려는 물론 우리역사이긴 한데 지방정권이네 뭐네할게 아니라 그당시 고구려가 성장하기 이전단계라 논외였음 ㅋㅋㅋ
만리장성 이남의 지역이 한족 역사지. 오랑캐를 막기위한 만리장성이 있는데 동북공정ㅈㄹ하는거보면 천안문 마려움
그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 이순신 세종대왕은 명백한 조선족입니다 ㅋㅋ 그건 인정해야함
근데 인구의 절대다수가 중국으로 압송되거나 종국에는 흡수되었는데 과연 한국과의 관계가 크다고 할 수 있을지.
그저 지역사로 봐야 함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수나라 당시 중국인구가 4800만쯤 됬다고 하는거보면 진짜 국력차이 어마어마 했을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원정에 실패한 대가로 나라 망조들리고 반란 일어나서 왕조가 교체돼버림 ㅋㅋㅋ 반대로 고구려는 국력 몰빵해서 수나라 막아낸 것도 대단한데 당나라랑 또 싸워서 국력을 죄다 소진함. 전쟁 결과는 수나라 고구려 모두 망해버림.
연개소문 아들들의 분열 때문인데 그걸 대국에 맞선 얼석음 때문으로 돌리다니 . . .
매국노들이 좋아할만한 궤변이군요.
@@jesusismylord7364 뭔 개소리야 대제국인 수나라 상대로 버텨낸 고구려가 대단하다는 뜻이잖아
@@jesusismylord7364 그리고 연개소문은 고구려말 당제국 전성기 시절이야기 인데 왜 여기다 끌어옴
@@jesusismylord7364 아무도 대국에 맞선 어리석음이라 하지않았는데 궤변은 본인이 만들어냄...어서 예수님 곁으로 가시길..
썸넬 개마무사 군대 너무멋잇음
타이틀 영어로도 올려주삼
잘봤어요!!!
5.4m 창을 어떻게 들고 다니냐 ㅎㄷㄷㄷ 조상님들
겨드랑에 중간부분 끼고 듬
@@user-rf6sx1ko9h 무게가 장난 아니겠어요
21세기에도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중국이 넘보지 못하도록 계속 발전해야지 지금의 우리가 고구려처럼 강해질 수 있다
기술은 잠간이나 인수가 중요하다
인간사는 중심이 인간이다
재밌습니다
서양의 중장기병 시기는 좀 잘못 된거같네요.. 동로마 시기 초반에도 카타프락토이라는 중기병이 이미 있었습니다.
ㅇㅇ 그거도 로마제국 전에. 있었음
기원전임
맞아요 카타프락토이 시작 자체가 기원전 중앙 아시아 스텝 유목민족들의 철갑 기병대였고,
그 카타프락토이가 서쪽으로는 파르티아(후일 사산조 페르시아)에 영향을 주어 , 파르티아가 도입해서 로마 제국을 상대로
카타프락토이를 보내면서 보병대 중심인 로마 제국조차 영향을 받아서 도입하게 됨.
동쪽으로는 흉노와 강, 선비는 물론 동북방의 고구려도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mnklkl 중앙아시아 까지 고조선 연방이엇고 북방기마족의 연합국이엇음
@@joncert4844 좀아시네요 ㅋ 중앙아시아 역사가 우리역사임 중국까지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포함임
다른분들도 많이들 말씀하셨는데 서양에도 파르티아 에서 영향을 받은 로마제국의 카타프락투스, 트라야누스 원주에 등장하는 룩솔라니족 보조군 중장기병이나 제국 말기에 동로마 지역의 클라바나리우스 같은 중장기병이 있었습니다
뭐 더 옛날인 후계자 전쟁 시기에도 벌써 망루 달고다니는 전투 코끼리 까지 나왔으니까요ㅋㅋㅋ
역으로 중장기병만 너무 믿고 싸우다 한번은 크게 깨져서 나라가 기울뻔한적이 있죠
고구려의 영토는 한국사에 나오는 영토가 아닙니다
광개토태왕때는 서쪽으론 내몽골 사막지대에 이르렀고 동쪽으로는 말갈 및 동부여를 평정하여 연해주에 이르렀습니다 , 문자명왕때는 최종적으로 북부여까지 흡수했으니 흑룡강 부근까지 영역을 확보했습니다
통전에선 영양태왕시기때 동서 6천리 남북 4천리에 이르렀으며
구당서와 신당서에선 동서 3천리에 서쪽으론 요서 영주까지 이르렀다고 하였고 남북으론 2천리였으며 영토 외에 60여개의 군현을 설치했다했습니다 , 그리고 말갈족역시 고구려계 민족이며 전쟁시 말갈족을 내세워 전쟁했다했습니다
땅이 크다고해서 쓸모없는땅이 많지않느냐라고 하셨는데 요동에는 철광산지 및 부여일대에는 농경과 초원지대가 있어서 농사및 유목에 좋으며 남쪽에는 한강역시 있어서 농사에 유리합니다 , 서쪽에는 거란역시 고구려의 종속국이기에 사막내에 생산되는 소금들이 있으니 짱꺠들이 오죽하면 고구려 땅을 탐냈을지 짐작되네요
서아시아에도 기원전에 이미 카타프락토이라는 중장기병이 있었고 유목민들에서도 동아시아에도 다른 중장기병을 운용한 사례가 많은 걸로 압니다
최초의 중기병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쪽에서 활동하던 사르마티아인이 개발했고 기원전 5세기 인가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개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료와 벽화기록없이 후대에서 그냥 철기병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가설입니다. 등자, 말안장도 없던 시절입니다. 유일하게 고구려가 사료와 벽화기록으로 탄탄하게 가장 오래된 기록이지요
우리나라 영상물 중에 개마무사를 제대로 표현한건 영화 안시성에서 활을 튕겨내던 모습이었음
근데 그 장면도 개마무사가 기사 (말위에서 활쏘기)를 안하고 닥돌만 해서 제대로 표현했다고 하기에는 좀....
@@qkdhrwifh1436 원거리에서 견제해야 할때는 활 쏘고 가까이 가면 돌격한거죠
@@qkdhrwifh1436 아니 기동성이 좋은 기병이 활도 쏘고 돌진도 가능한게 뭐가 의문이신지 잘 모르겠네요.
저정도 무장 시킬려면 즉 경제력 또한 받혀줬다는 뜻이죠 그리고 아직도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만주 지역 사람들이 기질이 세다고 들었어요
혹시 이번 영상에 관련된 자료출처좀 알 수있을까요? 고구려에 대해 흥미가 있긴 했는데 만족스런 자료를 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cons73철기를 받아들인 부분도 의아해요. 청동기가 중국방면에서 전래되고 철기는 북방 유목민 쪽에서 전래된걸로 알거든요.
솔직히.이번 편은 원래 영상들보다 허점이 많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epyju4605 잘못알고잇구나
홍산문명이 신석기말 청동초기고
기원전 6처련전경임
북방기마족 연합국이 고조선이고
핵심은 부여 예맥 선비 숙신이다
철기는 고조선의 풍부한 자원 철을 기반으로 발전함
넌 북방기마족이 누군지도 모르는구나 당시 화족은 태령산맥 서쪽 밖에서 놀앗다 화하족은
북방기마족이 아니엇고 농사짓던
작은 종족에 불과함
위대한 민족~~
우리 나라 특수부대 명칭하나를 '개마 무사'라 바꿨으면 좋겠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
4세기 일본은 한국이 만들었다.
백제가 도왜인 신분으로 넘어가 한국의 기술력을 이전시켰기 때문
근데 더 무게를 다 버티는 말도 정상은 아닌듯하네요 ㄷㄷ
삼국시대 한반도가 동시대 비교시 이상할 정도로 카타프락토이가 발달한 곳이었죠.
이후 요금으로 이어지고 서방 동로마와 패르시아도 비슷
판갑이 찰갑보다 발달된 형태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서로 장점과 단점이 나누어지는 형태인 거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찰갑이 더 가볍지는 않습니다.
판갑은 고정식 조립으로 무게를 분산 시키기 용이하지만
찰갑은 오히려 모든 무게가 어깨로 다 쏠리기 때문에 무겁다면 더 무겁죠.
활동하기는 더 편하지만
고구려당시 판갑은 그냥 선철판을 얼기설기 끼워맞춘거라 16세기에 등장한 물건하고는 완전히 다른 물건입니다.
개마무사가 요즘으로 치면 장갑차나 땡크지 ㅎㅎㅎㅎ
K2 혹은 K3 전차가 통일한국 이후 개마고원에서 활보하면 그게 개마무사인거임 ㄹㅇㅋㅋ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자위할게 아니라 현재를 가다듬고 미래이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주는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부터 낳자 ^^ 아이를 낳지 않는건 조상들에 대한 배반이다
파르티안 기사법은 고대 페르시아의 파르티아 제국의 기병들이 로마군을 상대로 이용한 궁술에서 유래했는데 이들은 등자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현제 등자의 영향력은 등자가 없던 시대의 기병(고대 페르시아와 로마의 철갑 기병)들도 전쟁터에서 나름 크게 활약했다는 것이 밝혀져 안정성 향상보다는 훈련기간 단축에 있다고 보고있습니다(출처 나무위키 등자편).
수양제:그래서 내가 중원의 중장기병 물량을 데리고 침략 했는데 죄다 고구려의 성은 산성이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양제: 아 그냥 ㄹㅇㅋㅋ만 치라고 ㄹㅇㅋㅋㅋㅋㅋ
수당시대 중국은 중장기병을 대폭 줄이고 경기병을 많이 뽑아내는 쪽으로 발전합니다. 물론 요동의 풍부한 철 덕분에 고구려와 그 이후 금나라가 중장기병을 운용하는게 유리한 면은 있었죠.
개마무사는 지금으로 치면 전차부대임
탱커계 간지 원탑 개마무사
개마무사같은 중장기병 카타프락토이는 서양에도 고대부터 있었습니다
@이희재
카타프락트, 카타프락토이에 대한 설명
en.wikipedia.org/wiki/Cataphract
메소포타미아부터 스키타이 고대로마 페르시아 등등 전 세계적으로 기원전부터 쓰이던, 마갑을 씌운 기병을 부르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600년경 이란 고원에서부터전파되었을것이다 라고 추정합니다. 본 영상은 재미로 보세요.
관구검이 1만명으로 동천왕의 철기 5000을 발라버린 적이 있죠.
발라버렸다기 보다는 초반 전투에서 조위군을 박살내서 필 받은 동천왕이 관구검의 방진과 장창 방어전에 무리한 돌격을 거듭하다가 주력이였던 중장기병이 와해되었다고 보지요.
@@hawk8873 그걸 발렸다고 합니다
관구검이 장창병으로 방진으로 역습한 기록이 있는데 기록이 좀 중국위주 기록이라 .. 교차검증이 필요함
@@이종격투기-c7i 거의 와해까지 됬었다는
기록있는데 발리긴. 카운터 맏고. 피로스 승리지
관구1만도구라
만팔천 죽였다도 구라
지들1만이라고 적었는데 정작 삼국사기에 동천왕은 위의대군이 우리소군만 못하다고말함
이세민 연개도함락못시킨안시성드립은 잘만믿으면서 이기록은 왜안들음
만팔천 죽고 기병1천으로 도망갔다써있는데
정작 13년후 259년 중천왕은 정예기병 5천동원해서 위나라군대파후 8천명 참수함
낙랑군보다 인구가적던 산골짜기 인구 40만따리 고굴이 13년만에 4천기병 증원하는 미라클
부여는이때 위한테식량원조함 적국임
중국기록에는 3천씩 두번진얘기도 안나옴 그냥줄창이겼다고나옴
태조왕 좌원대첩 온달의 북주대파도 중국기록에 안나옴 곧이곧대로 믿는거아님
근데 철기가 마갑을 입힌 중장기병이 아닌 용맹한 기병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죠.
정예기병을 철기라고 부르기도 하더라고요.
마갑은 에바같음. 그렇게 크고 힘쎈 말품종은 동아시아에 없었을듯
예나지금이나 인구보다는 발전과 향산된 무기가 중요한거같아요
그 발전된 무기를 위해서는 인구와 경제력도 있어야 하니깐요 스타만 봐도 똑같죠 전쟁은 다 돈인데 돈벌려면 인구가 있어야하죠
자료가 치밀하고 많은 자료에 놀랍네요
철의 보급에 있어서 철기 유물로 유추한것이 매우 설득력 높습니다
이것으로 말도 안되는 중국한나라 위만이 철기를 보급하였다는 증거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드라마 주몽에서 고구려 기술자들이 중국 기술 들여와 강철기술 익혔다는 내용도
잘못된 내용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고요
자료 바탕으로 중국의 영향이 아니라 주체적 기술발전이라는 확실한 주장이 탄생 되었습니다
기갑부대 ㅈ나 멋있어 ㄷㄷ
강철의 열제 소설보면 참 ㅋㅋㅋ 재미있는데 딱 저거를 주재로 하는 이세계 소설인데 강추한다 빨리보셈 ㅋㅋ
철기 하나에 돈 엄청 쏟아부었겠네;;
고구려 개마무사들이 탄 말은 서역의 아할테케(한혈마)와 거란 ㆍ말갈 등 북방유목민들의 말과 과하마로 불리운 한반도와 만주에서 서식한 말을 교배ㆍ개량해서 큰 덩치와 빠른 속도 ㆍ강인한 지구력ㆍ근력 ㆍ튼튼한 다리와 발굽을 가진 부여마로 불리운 전투용 군마를 생산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동예의 뛰어난 무장과 전술을 흡수했을 겁니다. 맥궁, 과하마, 3장 장창(길이 10미터, 3인 1조 운용의 대 기병용 장창대)로 대변되는 강력한 동예군은 옥저와 함께 고구ㄱ려로 흡수 됩니다.
역시 모팔모님의 활약이.
모팔모는 실존인물이 아니라서......
예전에 인터넷에서 로마군 만명과 고구려 100만이 싸워도 로마군이 이긴다는 뻘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작성자는 어린 것이 분명하고 전쟁에 전 자도 모르는 버러지였지만, 이런 글에 호응하는 작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영상이 그때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고구려 무장 상태 (찰갑 등자 사용 등)가 로마 기병보다 훨씬 뛰어났음
아니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애초에 그런 논쟁을 한다는 것 부터가 웃기긴 한데.
로마는 군사 기술적으로 고구려보다 딸린다 해도, 그들은 정교한 조직력이 있음.
전쟁의 승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인의 힘이나 군대의 기술이 아님. 조직력임.
뭐 기마부대의 위력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조직력이 약하면 무너지는 것임.
한마디로 로마는 조직력이 매우 우세하고, 고구려는 기술이랑 개개인의 역량이 매우 우세함.
그에 대한 역사서의 기록이 있음.
당 태종 때에 당나라의 군사적 조직은 로마와 맞먹을 정도였고 거기에 동돌궐 출신 기마대를 편입시킴.
고구려 후기에는 지방 토호세력과 중앙조직세력의 조직체가 고구려 전반.중기 때보다 약했음.
동돌궐 기마대가 고구려 개마무사와 전투를 했을 때 동돌궐 기마대가 전멸했다고 함. 조직력이 있는 유목민이였는데… 개마무사의 강력함이 보이는 글임.
반대로 태종이 개마무사를 유인해서 괴멸시켰다는 기록이 있음.(이로 인해 고구려의 정예부대가 약화됨.) 당 군대 조직력이 개마무사를 무너뜨림.
이걸 봤을 때 누가 강하다의 우열은 가릴 수 없음
개마무사는 현대로 치면 탱크지요.
참고로 관구검조차 개마무사를 정면으로 이길 방법이 없어 사마의가 준 전략을 사용해야 겨우 이겼으며 관구검조차 '세상은 넓다지만 저런 괴물들이있다는데 기겁을 했다고하지요"
겨우이김 = 고구려군2만명중 1만8천명이 전사하고 왕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
@@ohilyeojoh-a 결과적으로 보면 님 말대로지만 당시 원정군 장수인 관구검은 활도 창도 안통해 질겁을 했죠. 결국 사마의가 미리 언질한 대로 고구려군의 핵심 전력이었던 개마무사들을 함정으로 유인해 처리한 후 최대전력을 잃은 고구려를 유린했다고 알아요.
만약 사마의의 책략에 안 걸리고 개마무사들을 처리하는데 실패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 생각해요.
간단히 말해 사마의가 사용한 협곡으로 유인해 바위로 출입구 막고 불태워 죽이는 방식 빼고 님이 당시 한나라 장수고 전장에서 개마무사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 뾰족한 수단이 떠오르나요?
@@김민철-u4w 질겁은 했다는 이야기나 사마의의 계책같은건 기록에 없습니다
기록자체도 초반에 진 관구검이 창병으로 방진짜서 고구려 기병 몰살했다 이런식으로 담백하게나옴(삼국사기)
더군다나 저 전쟁자체도 두차례에 걸쳐진행되었고 1차2차 모두 고구려가 집니다
개마무사가 뭐 대단한게아니라 말에 갑옷씌우고 기수도 갑옷입은 기병임
백제.신라.가야도 개마무사 있었고 당시 동북아 국가들 대부분 있었음
그당시 중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고구려가 더강해진것도 있습니다
같은 만주에 있었던 여진은 대륙을 쓸었는데 고구려는 그시절 개마무사로 왜 대륙을 못 쓸었을까요?
여진족은 시기가 짧을 뿐 역사 내내 주기적으로 영토가 확 넓어지는 시기가 있었는데 고구려가 제국치고는 영토가 화끈하게 넓지는 않은것도 의문이긴 합니다
@@EEcircuits 그러니까요 고구려는 기병으로만해도 대륙을 씹어먹을수도 있을텐데요 흉노나 거란 여진 몽골과 비교해도 절대 지지않았을텐데요 5부족체제라 귀족들이 말을 잘안들어서 그런가?ㅋ
@@1818ksyjys 조건도 맞지 않았고 절박함도 없었죠. 청나라는 17세기 소빙하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원의 비옥한 토양을 가져야겠다는 의지가 만주인 모두에게 확고했고 요와 금은 연운 16주가 송에게 없었다는 점 덕에 중원 진출이 비교적 쉬웠죠.
일단 수당나라가 선비족이 세운 국가라 군사력이 매우 강대했음. 그에 비해 명나라는 한족국가에 말기라 군사력이 매우 약했고. 명나라같이 한족이 세운 국가였으면 고구려가 중원 쓸었겠죠.
@@erchany 당나라도 선비족이 세운국가인가요?
6.25 전쟁때도 부산은 전쟁을 겪지 않았죠.
부산이 겪었으면 상황 종료......;;
태왕의 서수남진이 뒤집혀지고 남수서진이라는 허무맹량한 목적에 군부, 연씨가문이 나라를 컨트롤 했으니 말로가 정해졌다. 고대 시대의 왕국은 왕과 귀족 중심의 국가인점을 감안하면 매우 답이 없는 상황이다
황하문명보다 요하문명이500~1000년 앞섬
고려의 주 정치인들이 신라의 6두품이었죠. 그리고 고려를 망하게 했죠. 조선의 주 정치인들이 초기엔 서울 경기 사람들이었으나. 중기 성종이 남부지방 귀족들 사림들을 등용시키면서 연산군때 피비린내가 났죠. 지금도 남쪽 귀족들이 정치문화를 이끌고 있죠. 대동법도 경기도만 시행해서 남쪽 귀족들은 피해가 없었죠.
철갑기병은 동아시아지역에서 최강이지요
배경음악이
다른 역사 채널이랑 같네...
우리의 잃어버린 고조선 고구려 대륙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의 영토를 중공으로부터 되찾아야 합니다.
통일먼저해야겠죠?
그럼 몽골은 옛날 원나라 영토를 되찾는다고 하겠네 ㅋㅋ
그 논리면 억울한 나라들 쫌 많겠는데
로마? 몽골? 페르시아? 오스만? 비잔티움? 거란? 여진? 프랑스? 독일 ? 일본? 영국 ???????
@@부자의꿈-b9q 네
고구려가 저렇게 큰 이유는 중국이 분열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 재임당시 백제 한강유역을 공격하다가 단시간에 신라 요청으로 백제-가야-왜 연합군을 가야지역에서 섬멸시키는 기동성을 봤을때도
중갑기병이 기본적으로 느릴수밖에 없는데 체계적으로 엘리트 교육식으로 기마기술을 익힌 부대가 있었다는 점이 많이 연구되었으면 좋겠어요
중장기병도 풀 아머로 뛰는 건 전투 직전이고 행군시에는 별도 치중대에 마갑등 무거운 장비는 별도 수송했을 겁니다. 개마무사 형 풀 아머 중장기병의 경우 마갑 무게만 100kg단위로 나가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서도 2km이상 작전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봅니다.
통상 마갑은 마구를 포함해서 30~50kg정도로 봅니다. 기수(70kg)+무장(20kg)을 고려하면 120~140, 높은경우 150kg정도 되겟네요. 짐말이 들수 있는 하중이 140정도라고 했는데 하중이 비슷하게 나온걸로 봐서 통상적인 수치가 이정도 나오게 마갑 무게가 계산되있다고 보는편이 합리적입니다.
기병의 기동성을 원한다면 기병과 말 모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긴 창으로 중무장한 중장기병 보다는 가볍게 무장을 한 환두대도와 활, 화살을 무기로 사용하는 경기병이나 궁기병 위주로 가야 하고 말이 지칠 때 마다 새 말로 갈아 탈 수가 있어야 합니다. 광개토태왕의 고구려 5만 대군 중에서 기병으로 신라 서라벌을 쳐들어 온 백제와 가야, 왜 연합군을 격퇴한 것은 중장기병이 맞지만, 추적을 한 것은 경기병과 궁기병 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중장기병도 기동성을 위해서 무거운 갑옷을 벗고 경무장화 해서 가야와 왜의 잔적을 추적 했을 수도 있고 경장을 하지 하지 않더 라도 말이 지칠 때 마다 갈아 탈 수가 있는 여러 필의 새 말들 있었을 것 같네요.
한반도 5000년 역사상 제일 부강했을때가 고구려가 아니었을까? 아님 통일신라?
부는 통일신라
강은 고구려
@@unitedaccountsofme9297 부는 현대 한국이지. 그이전이면 초기조선이고 초기조선전에는 100년간 황금기 보낸 고려 문종시대때고
신라는 군사력은 별볼일없었음. 실제 야전에서 고구려군을 한번도 제대로 이긴적없고 석문전투떄 당나라에 야전군 다 학살당함. 심지어 중앙군 10만대군이 일개 군벌인 장보고의 5000정병에 무참히 학살당한 약골임
생각해보니 한반도 역사상 모든 나라들이 가난을 벗어난적이 단 한번도 없는걸로 암
@@erchany 신문왕~경덕왕 때의 신라는 1인당 생산량이나 국민소득 모두 탑클래스라고 봐야함. 아바시드나 사산조 유민출신 외인들도 신라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했으니
저래서 동예가 10M 창을 썼나봅니다..
한여름에는 개마무사가 잠정휴업에 들어갔겠네...
고구려 옆에 일본이 붙어있었으면 일본 진작에 멸망했을텐데 섬나라라 운좋았네. 한자, 철기술 죄다 백제, 신라가 가르쳐준 일본.
고구려가 일본정벌 한번했었죠.
@@이씨-o9g ???
@@이씨-o9g 정벌했다는 증거는 없고
신라에 침입한 일본군을 격퇴한 기록은 있죠
@@Abkaijui 드라마 보고 착각한듯?
@@이씨-o9g 고구려가 일본정벌을 어떻게 해요 이사람아 고구려는 일본정벌 단 한번도 실행한적이 없고요 백강 전투때 일본군,백제군과 함께 싸운 전투 기록은 있습니다
고구려>고려>꼬레>꼬레아>코리아
빙하기로 산업구조가 망가진 고구려는 국력이 쇠퇴합니다.
국방의 기본은 경제력에 있습니다.
감자만 있어서도 고구려는 망하지 않았다.
내부분열땜에 망한거지 뭘
연씨집안이 트롤짓 한거지ㅋㅋ
@@심심해-e4u 외교실패로 망한거임
3가지도 멸망의 요소임
개마무사 보면 중세시대 기병들처럼 철갑옷 단단히 두른거같은데
점점 발전하면서 나중에
고려시대 조선시대 오면 되게 허술한 갑옷 왜그랬을까요 백제갑옷은 완전
옷이던데 기동성을 위해 방어를
포기한건가
화포같은 원딜이 발전하니까 당연한거임
@@lililjdjr377 어떤거? 영화 안시성에서 나온 갑옷 말임? 그건 국뽕이 아니라 성의 없이 대충 만든거임 차라리 KBS 고구려 갑주를 쓰는게 훨씬 좋은데
@@심심해-e4u 찰갑으로 된 마갑으로 총으로 무장한 보병대에게 돌격하는건 의미 없을듯
적어도 강철제 플레이트 아머 마갑으로 무장했다면 모를까(총알을 막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반대로 숭숭 뚫려버리는 경우가 다반다)
개마무사....
내용을 정정하고 싶네요...
당시 중국이 최강이 아니라...
고구려가 동북아 최강이었습니다~
비록 고구려가 당나라와의 전쟁 중에 망하긴 했지만...
전쟁에서 패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연개소문 사후에 남생, 남건 형제 간에 분란이 일어나서 스스로 무너진 겁니다~
연개소문이 건강하게 장수만 했더라면...
당나라는 결코 고구려를 넘볼 수 없었을 겁니다~
@Enok Oh 당나라와 고구려를 동일선 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입니다. 이래서, 단순비교는 무섭습니다.
당나라의 수명은 150년 정도인데 반해,
고구려는 900년 가까이 대륙에 존재했는데,
당나라가 고구려보다 강하다는 건...
굉장히 단순한 이야기죠~
그럼, 당나라가 건국되었을 때부터 고구려가 망하기 전까지 줄기차게 당나라가 더 강했단 말입니까?
당나라는 고구려를 이간질을 통해 무너뜨린 것이지...고구려가 약해서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연개소문 사후...두 아들 사이에 내분을 일으켜서 멸망한 것이지...
마지막까지도 당나라는 전쟁에서 고구려를 무너뜨리지 못했죠~
게다가, 심지어 당나라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당고조 이연이나 이세민이나 이민족 출신입니다.
오늘날에는 중국인들이 자기 역사라고 주장하니까...다들 들어주고는 있지만...
그 당시에 한족인 중국인들이 선비족을 중국인으로 생각했을까요?
중국인들은 그들의 지배를 받았을 뿐,
중국을 지배한 것이 중국인이었던 것은 아니죠~
중국을 지배했던 것 자체로 중국인이 된다고 하면, 왜 몽고인들은 명나라에 의해 초원으로 쫓겨낫겠습니까?
애시당초 몽고인들도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청나라를 지배한 만주족들도 자신들을 '중국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에게는 백두산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황실가문에는 중국인 황후를 들이지도 않았지요~
@Enok Oh 제가 알기로는 고구려가 더 많이, 더 크게 이긴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님의 말대로 국력차이가 어마어마하면...
어째서 그런 참패를 당하고...명색히 당나라 황제가 줄행랑치듯이 도망을 갔을까요?
그리고, 눈에 화살을 맞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으면서...유언을 남겼다죠?
'절대로 고구려와 전쟁을 하지 말라'고...
@@yummyenglish6901 눈에 화살 맞았다는 것 고구려와 전쟁을 하지말라고 유언했던 것 전부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실제로는 고구려와의 다음 전쟁을 준비하다가 당태종은 병으로 사망한 겁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당나라보다 오랫동안 존속했다고 국력이 강하다는 논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300년 가까운 당나라 수명이 150년 정도라는 것 자체가 오류이시고
세계 대부분의 왕조가 군사력이 제일 강한 시기는 건국 초창기부터 초기 안정기까지입니다.
그 당나라의 국력이 욱일승천하던 시기가 삼국통일 항쟁 시기로서 그당시 당나라의 국력은 고구려하고는 아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융성하던 시기입니다.
당나라의 주력군이 670년대에 티벳에 갈려나가기 전까지는 야전에서 고구려 신라 모두 아에 상대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당나라의 군사력이
양과 질 모두 아득하게 상위였던 시기였습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신라의 삼국통일도 발해의 건국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에요.
야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상대도 안되게 박살났었는데 무슨 근거로 고구려가 당나라보다 군사력이 강하다고 생각하세요???
당나라 상대로 이긴 것은 전부 수성전에서 이긴 겁니다. 당나라는 보급의 한계로 패전한 것이구요.
님의 표현대로 당나라보다 고구려의 군사력이 약하다면 연개소문 생전에도 전선이 고구려 수도인 대동강에서 형성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참 후방인 강한 나라의 수도에서 전선에서 형성이 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겁니다.
이미 연개소문 생전에 백제가 멸망하고 나서는 고구려는 거의 연명 밖에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나라는 커녕 신라와도 아득히 벌어져 버린 국력 차이 때문에요.
신라와의 모든 야전에서도 다 패배해서 임진강 이북지방까지 전부 빼았기고.
그리고 분열은 멸망의 원인이 아니라 멸망을 단축시킨 거에요.
20년 넘게 역사 가르치는 사람으로 선생님 같으시길래 길게 답글 달아봤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개마무사는 제7기동전단쯤 되려나? 중국으로 북진하는 강철웨이브!!!
등자가 있다는 실물고고학이 있는지요??
네. 고고학적 유물로 입증이 되고 거기에 있는 문양과 모양, 재질을 가지고 연대 추정하거나 전파 경로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hawk8873 어디에 있는지요.가보고 싶네요
@@petercypark501 평생 볼일 없겠네요..에휴
@@sssu6572 박물관에 가보세요. 곳곳에 있는데요.
동시기 개마기병은 세계적인 트랜드였고 오호십육국의 중국이나 저 멀리 중앙아시아 소그디아 까지 고구려랑 유사한 중무장기병을 사용했기 때문에 새삼 고구려가 특이한 건 아님.
굳이 우리의 고유한 하면서 무리하게 국뽕질 할 필요 없이 고구려는 충분히 대단한 나라임.
근데 관구검한테 동천왕이 중기병 닥돌만 하다가 진건....
영화 안시성 도입부에 고구려 개마무사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 나옴
5만을 중장기병으로 무장시켰다는건 당시 가용인구와 제철자원이 얼마나 됐다는건지? 이해가 안감. 중세시대 기준으로 최소 1500-2000만명은 있어야 5만명의 군사를 유지할 수 있는데 당시 다민족 국가였던 고구려 지배계급이 그정도 였다는 건 말도 안됨
갑옷들이 실제로 검정검정 했나요 ???? 쇠라는게 녹슬고 그러면 고구려 군의 대부분은 갈색 느낌 아니였을까요 ??
갑찰이 녹슬지 않도록 옻칠이나 기름칠을 했었습니다.
옻칠의 경우는 투명칠, 흑칠, 다른 색으로 낼 수 도 있습니다.
개마무사는 위나라의 관구검도 혀를 내둘렀다고 하는데 근데 진삼국무쌍은 왜? 관구검이 고구려랑 전투를 하는 시나리오는 안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고구려 궁수부대는 오늘날로 보면 k9 자주포와 105mm 차륜형 자주포, 155mm 견인포를 운용하는 포병에 비유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주포를 운용하는 포병은 궁기병에 견인포를 운용하는 포병은 궁보병에 비유될 것 같네요.
고구려가 강대했던 국가이긴 한데 항상 쭝궈 놈들이 분열된 시기에만 기회를 틈 타 치고 나가는 패턴이라 고대 쭝궈 놈들이 확실히 초강대국, 선진국 이였단건 부정 할수가 없음.
단, 고대 쭝궈는 대국이니만큼 체면 때문이라도 상식이 통용되는 국가였는데 현시대 쭝궈 놈들은 그때보다 땅 덩어리는 더 커졌을망정 속은 좁디좁은 소인배에 주변 나라에 민폐만 끼치는 지구의 적폐 덩어리
이 시기 아시아 최강 부대.
서양 페르시아의 카탁프락토이는 기병이 없던 로마에서는 용병으로 쓰였었고, 등자가 없어서 전투력 및 기동성이 10배이상 안좋다고 보면됨. 등자가 세계 10대발명품인 이유지. 그리고 서양철은 중국이나 고구려철인 강철(카본스틸)에 비해 그냥 일반 iron이었음. ㅅㄱ
안시성의 나온 사람들 같은데 기분탓인가?
근데 저정도 무장이면 무기까지 최소 20키로 이상일텐데 옛날사람 몸으로 저런무장을 하고 싸울수가 있음?
기술의 발달로 전투에 필요한 도구들이 더 작아 졌지만, 고대부터 지금까지 보병이 매는 쭉 군장 무게는 20~30이라고 합니다. 저정도가 인간이 매고 움직이면서 싸울수 있는 최대 무게라는 거죠
@@써니-e5q 사실 행군해보면 20키로도 무거운데 옛날사람은 덩치도작고 평균신장도 기껏해야150대일텐데 그런사람들이 20~30키로의 군장을매고 전투에 임했다는게 진짜 신기할따름임
그냥 지금 은퇴하는 세대나 그 윗 세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죠. 학교가는데 최단거리로 10km 돌아오는데 축구하고 놀다가 빙 돌아서 오고 집에오면 농사짓고.. 조선시대만 해도 그냥 짚신 신고 일주일만에 걸어서 한양갔다가 복귀하는데요. 요즘 허우대 멀쩡해도 10km 못뛰는 20대가 허다한걸 생각하면 납득이 좀 가실까요?
이 개마무사를
영화 안시성에서
허수아비로 묘사했죠
주필산 대패 는 사실인데 그럼 뭐가 구라인거임? 이세민이가 안시성 전투를 앞두고 고구려의 계책 중 가장 하책으로 초원에서 당나라 군에 맞짱 뜨는 거였어. 근데 진짜 하책을 들고 맞짱뜨니 이세민이가 더 당황했었다네 .. 아주 죽으려고 자진해서 달려와주니까.. 실제로 개마기병 전투력은 공갈수준이었는지 논란 많음.그 이전에도 동천왕이 관구검하고 전투할때도 기병이었다 무너져서 동쪽으로 도망쳤을 정도였으니
허수아비로 묘사한게 아니라 중장기병이라는 병과 자체가 한번 봉쇄되어버리면 약점도 많은 병과입니다.
무적의 부대가 아니에요.
개마무사에 대한 묘사는 꽤 잘한 편입니다. 정면에서 돌격할때 화살을 튕겨내고 적을 공포스럽게 하지만 혼전이 벌어지면 적들에게 둘러싸여서 기수가 창에 찍혀 떨어져서 무력화 되는것도 매우 좋은 고증입니다. 그래서인지 삼국 중무장 기병들이 못신을 신었다던지 고대 페르시아의 카타프랙트(갑옷으로 뒤덮었다는 그리스어) 기병들은 쇠주걱이나 곤봉 같은 무기를 지녔다던지 해서 혼전에 대비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보병들이 둘러싸고 장창으로 찌르거나 걸어 당기는걸 당해내기는 어려웠습니다. 백제 군사 박물관에 가면 백제 시대 창 유물중 상당수가 낚시바늘이나 갈고리처럼 생긴 장치가 있어서 당시 기병을 상대하기 위한 전술이 발달했음을 알수 있고 또 반대로 삼국이 기병전력을 많이 보유했음도 엿볼수 있습니다.
그럼 당시 중국이 지금의 미국이라보고 세계1위라 본다면 우리나라는 세계top에 들어가는 수준의 나라였던건가요?(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역사 잘 아시는 분 설명좀......
@이희재 그런 이유로 비교의 유무를 들기엔 지금도 조건은 같고 게다가 중국, 일본, 우리나라도 같은 동양권이라고 문화와 정치체제가 다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말이죠?
@이희재 제가 같다고한건 지금도 나라마다 사정은 다 다르고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국가의 국력수준을볼때 미국을 1위 그 뒤를 러시아, 중국등이 이어간다고 보잖아요 제가 맨처음 궁금해 했던건 바로 그런거였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저 당시엔 중국이 세계적 규모의 앞선 나라라고 인정하잖아요? 사실상 지금의 미국이라 보면 된다고..... 이게 님의 말대로 조건이 다달라 비교할 수 없다면 나올 수가 없는 말이잖아요? 모두 사정이 달라도 대략적인 비교를해 봤을때 나온 결과 아닌가요? 그리고 제가 말했던건 우리나라문명의 국가들도 저당시엔 중국의 뒤를 잇는 강국이었을지 그게 궁금했던 거였어요. 지금 우리가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세계적으로도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것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저당시 그정도의 강국이었는지요
시대마다 다르겠지만 당나라 전성기의 군대는 2차 대전으로 치면 미국의 경제력 + 독일의 전술과 무기 + 소련의 인구빨 정도로 보시면 적절할것 같습니다.
@@미제드론 그럼 수, 당 두나라의 군대를 매번 격파했던 고구려나 백제, 신라등도 군사력도 군사력이지만 문화, 기술 등등 종합적으로 그 당시 오늘날의 유럽의 선진화된 강대국 느낌이라 볼 수 있을까요?
@@유동국-y6l 우리나라 삼국시대때 전세계적으로 투탑이 당과 우마이야 칼리프 왕조라고 볼수있고 그외 비잔틴 프랑크 일본의 대화정권 인도의 몇개 왕조 동남아의 참파 스리비자야 정도 외에는 우리와 국가로서 견줄만한 곳은 없었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고구려한테 털린덜 감추려고 하다보니 중공이 고구려를 지들 꺼라고 허소리하지....
이거 그림들 안시성에서 본거같은데 ㅋㅋㅋㅋㅋㅋ
고구려가 인구만 많았었다면 아쉽네요..
애초에... 땅도 척박해서 농사 짓기 힘들기에 당연히 인구도 적었고, 당시까지는 인구=국력 방식이 돌아가는 고대시대였죠. 그래서 위서 동이전이라든지 고대의 여러 기록들도 대부분 고려(고구려)보다 백제가 호구(戶口) 즉 백성 수가 더 많다고 나오더라구요. 고려(고구려)한테는 안타까운 현실이죠~!
하지만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는 전멸당햇지 안타깝다 고구려
그 전투가 조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통 멸망 직전에 고구려는 30만명 정도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중 주필산 전투에 15만이 전멸 당했다는건 고구려 멸망을 뜻합니다. 이상한 점이 주필산에서 안시성과의 거리는 코앞인데 안시성까지 가는데 1달 이상 걸렸습니다. 이때 고구려와 2차 주필산 전투가 있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때 당태종의 6군이 고구려군에 의래 전멸당했다고 그래서 당태종이 굉장히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하여튼 고구려가 주필산 전투에서 전멸 됐다는건 허구입니다. 이상입니다 더욱 더 자세히 적고 싶었는데 설명 제대로 못해서 죄송합니다. 네이버에 주필산 전투에 치시면 더 나올거에요 수상한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신성에만 병력이 10만이 있어 안시성을 쳐야한다는 기록이 있는등 이상합니다
고구려군이 주필산에서 개쳐발린 사실이지만 전멸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나 다름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