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drwweqwq ㄴㄴ 3차침공이랑 4차침공때는 수나라군이 그렇게 죽지않았음 3차때는 양현감 반란때문에 도중에 철수했고 4차때는 신성 비사성등을 포위했고 그 중 비사성은 함락당했음 그때 고구려는 항복문서로 달래면서 수나라군에 전쟁을 멈춰줄걸 요청했었음 4차때는 수나라군 피해는 없음 고구려입장에서는 청양전술로 다태워버리는 바람에 국력적 손실을 크게 입어 4차침공때는 수나라군에 대항 할 힘이 없었음 심지어 4차때는 수나라 내부반란의 흥기로 병력도 많이 동원못해 대군도 아니었음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이 가능했던 것은 수나라 수군이 평양시가전에서 평양 방어사령관, 고구려 수군 장군 고건무의 수군에게 패했기 때문이죠. 수나라 육군이 수군과 합동해서 평양을 공격하고 수군으로 부터 군량과 군수물자 보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 불가능해 졌고 거짓으로 패해서 평양까지 유인한 을지문덕 장군의 청야전술도 유효했죠.
을지문덕 장군이 두번 항복하는데 첫번째에는 수나라도 미심쩍어 그냥 참수 하려다가 항복하는 장수는 참하면 않된다 싶어 돌려 보냈고 두번째 재차 항복 하려하니 받아주고 지키던 성을 계속 지키도록 하고 평양쪽으로 들어갔다가 을지문덕이 무슨 연고인지 재항쟁 하면서 수나라 보급로가 끊어 짐으로 3만 기병대가 철수도중 살수에서 소멸된 것입니다 . 그 보복으로 을지문덕 장군도 참수 되였다는 얘기는 없지만 그뒤로 종적을 감추었 습니다 . 가장 미스테리 한것은 1만6천명 수나라 포로들 한테 고구려 여자 한명씩 붙여서 강제로 가정을 이루게 한것 입니다 .
을지문덕 장군이 두번 항복하는데 첫번째에는 수나라도 미심쩍어 그냥 참수 하려다가 항복하는 장수는 참하면 않된다 싶어 돌려 보냈고 두번째 재차 항복 하려하니 받아주고 지키던 성을 계속 지키도록 하고 평양쪽으로 들어갔다가 을지문덕이 무슨 연고인지 재항쟁 하면서 수나라 보급로가 끊어 짐으로 3만 기병대가 철수도중 살수에서 소멸된 것입니다 . 그 보복으로 을지문덕 장군도 참수 되였다는 얘기는 없지만 그뒤로 종적을 감추었 습니다 . 가장 미스테리 한것은 1만6천명 수나라 포로들 한테 고구려 여자 한명씩 붙여서 강제로 가정을 이루게 한것 입니다 .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역사학 교수들,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태강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위,촉,오의 분열을 끝낸 나라는 사마염이 건국한 진나라 입니다 ‘태강’은 진나라 무제였던 사마염의 연호입니다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의 지방행정조직을 점검하기 위해 ‘태강지리지’라는 지리서를 편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태강지리지는 낙랑군이 현존했을때의 책이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태강지리지가 당나라때에는 존재했기 때문에 사마정이 그 책을 인용해서 사기색은에 기록한 것입니다) 갈석산은 하북성에 있는데 아주 유명한 산입니다 고조선의 영토가 거기까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북한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석산이 평양에 있습니까?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내려왔나요? 평양에 있었던 것은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입니다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낙랑공주는 낙랑국 왕의 딸인 것입니다 그러나 낙랑군은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지방행정기관이기 때문에 낙랑태수의 딸은 낙랑공주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북성에 있었던 낙랑군과 평양에 있었던 낙랑국은 서로 다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갈석산이 있는 하북성이 고조선의 땅이였기 때문에 광개토태왕때 고구려가 옛 땅을 되찾기 위해 거기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가 고대의 요하였고 난하의 동쪽이 요동, 서쪽이 요서였던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 애국심이 생기지도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어떤 의무나 희생을 치를 가치도 전혀 못느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처럼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인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만 좇는 것입니다 이게 다 우리 역사의 뿌리가 잘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의도대로 민족정신이 말살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제대로된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현재의 코로나 방역, 한류열풍, G7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이 타진 되는 상황등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는 현상이 바로 K방역, 한류열풍, G7국가로의 진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인의 대담함은 지금도 전설로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국동포들에게서 들었던 내용은당시 고구려군의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하여 "도리깽이"라는 손으로 말위에서 내려치는 쇠방망이로 주로 머리를 타격하였는데 얼마나 무서웠던지 한번 맞으면 그자리에서서 대부분 즉사 했다고 합니다. 이내용은 구전으로 중국 한족이나 조선족 동포들 대부분 알고 있는내용 입니디 이 것을 취재하여 밝히면 좋을듯합니다.
멀리 떨어진 상대에게 어느민족보다 뛰어난 뛰어난 활솜씨로 잡고... 전설에의하년 고구려는 여인들도 활솜씨가 뛰어났다 합니다. 도리께를 > 중국발음으로 도리껭?> 정확히 마상전투 무기로 편곤이란 무기로써- 말의 달리는 파워로 상대 머리를 치면 투구를 썼어도 낙마 하여 잡는대 효과를 봤다네요! 그 떨어진 장수를 멀리서 장창으로 찌르고 혹은 달려오는 말을 향에 숨어있다 낫모양의 무기명 -삭도로써 말다리를 베어 떨어고- 그리고 혹은 긴 대나무를 각가지에 방울과 쇠꼬쟁이를 매어 붙히어 달려오는 말에 밀어붙이면 말이 겁을 집어먹고 날뛰어 장수가 떨어지면 또 때려 잡고, 쌈잘하는 놈이 나오면 당파( 삼지창)로 상대무기를 막아 잡아툴어 무기를 움직이지 못하게하고 옆에서 장창으로 옆구리찌르고 ... 이렇게 우리민족의 전투법은 몆명이 조직적 팀웍의 백병전을 활용했죠!
@@김영철-p7v 절강병법은 척계광이 쓴 기호신서 안에 들어 있는 일부 고, 내가말하는건 사도세자의 무예제보와 모원의 의 병법과, 척계광의 기호신서와, 주역과 온갖 우리전통무예를 우리몸에 맞게 체계적으로 왕의 영에의해 문신 이덕무 박제가 와 무장 백동수의 모델로 정리한게 무예도보통지의 18반무예와, 마상6기를 포함 24반무예죠! 이것이 동양의 유일한 종합 병법서 어정무예도보통지라고 하죠! 이걸 사도세자가 체계적으로 가르쳐 군사를 훈련시키려다 노론 소론 정치싸움에 휘말려 사도세자가 희생된 이유죠! 중략, 그럼 그이전엔 우리것이 없었나? 있었다 기록한줄인 김유신의 병 법 고려명장 을지 문덕의병법, 연개소문의병법, 그 이전의 치우 는 전쟁의 신이라 했는데? 대충싸워서 연전연승 했을까요? 기록에 없다고 없는게되나요? 조선시대의 이순신의 해전도 학익진이 있고요! 그래서 문화복원이 필요한겁니다 하다못해 무당들 씻김굿까지 복원하는데 돈 대주는 놈들이 무예는 국민의 자존감을 살리는 건데 이건 개똥으로 알죠! 푸념으로 한마디 합니다. 친구한명은 조선병법 중 일부 재현하느라고 집팔아 사비로 일 하다 가장파탄도 났죠 ! 이게 우리나라 실정입니다.
아닙니다. 113만이라는 군대가 정확히 계산되어 있으며, 기록까지 자세하게 나와있을 정도로 대단한 군사량이었고 충격적인 양이었습니다. 수군의 편제를 보면 24군으로 총 대략적으로 30만명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에 수송부대와 경비병력과 병참대 등을 모조리 합하면, 약 100만 군대가 나오게 됩니다.
@@김동욱-z9pㅈㄹ하지마세요 수나라가 고구려 정벌때 총 수군 육군 보급부대 다 합쳐서 200만이 되었는데 중국 역사에도 기록되어있고 고구려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있는데 제발 모르면 말을 하지마세여 수나라가 육군은 탁군에 집결시켜서 하루에 1개 군단씩 출병시켜서 전군을 다 출격시키는데 40일이 걸렸는데 그리고 달랑10만명으로 고구려를 쳤겠냐?
을지문덕 장군이 두번 항복하는데 첫번째에는 수나라도 미심쩍어 그냥 참수 하려다가 항복하는 장수는 참하면 않된다 싶어 돌려 보냈고 두번째 재차 항복 하려하니 받아주고 지키던 성을 계속 지키도록 하고 평양쪽으로 들어갔다가 을지문덕이 무슨 연고인지 재항쟁 하면서 수나라 보급로가 끊어 짐으로 3만 기병대가 철순도중 살수에서 소멸된 것입니다 . 그 보복으로 을지문덕 장군도 참수 되였다는 얘기는 없지만 그뒤로 종적을 감추었 습니다 .
그대의 신과 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 신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통달했도다. 전쟁에 이겨 그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 물러나는게 어떠한가? 속뜻 너네 보니까 싸움 잘하더라 전략도 쫌 하는거같고 ㅋㅋ 그동안 몇번 이기니까 좋디? 고마했으면 이제 좀 꺼져라 험한꼴 당하기전에 ㅋ
살수가 황하라는 설도 있습니다. 살수의 살은 사르 샤르 의 음차문자로서 터키어,몽골어의 노란.황색의 뜻을 가진 강이라고 보는 것이죠... 중국역사의 왕조들은 시안과 낙양을 번갈아 수도로 쓰며 태행산맥동쪽과 황하이북의 민족들과 항상 대립했습니다...중국이 북경을 실질 점유한건 명대 이후였고요
"살수"는 현 하북성 호타하 입니다 "평양"은 하북성 석가장시 입니다 살수는 고구려 수도가 북한 평양이라는 주장은 일본식민사학자들의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며 고구려의 서쪽경계는 산서성 황하동쪽 즉, 하동지방까지 입니다 "요"는 경계, 국경이라는 의미로서 중국 산동, 산서의 경계인 태행산맥을 의미하며 광개토호태왕에 의하여 요서지방까지 정복한 기록은 사서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기록으로는 하북성 양평, 평원이 평양으로 주장하기도 하며 살수로 현 청룡하(과거 강수)로 기록되고 요수로 불리운 강을 살수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는 모두 고구려 강역이 서쪽으로 산서성에서 동으로 연해주까지 이르는 대제국 이었기에 해석이 조금씩 다른것입니다
실크로드 1할, 해상운로 9할,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세가들중에 하나였던, 수가 실크로드의 영주들을 상당히 모았고, 해상운로의 중심이 되는 황하라인을 깨기 위하여 모여 들었습니다. 상류쪽에 통제거를 건설하여 병력을 건너게 하고, 부근에 영제거를 건설하여 낙타와 마차를 건너게 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다큐멘터리로 작업을 하려면 철저한 고증이 필요합니다 우선 고구려 평양성은 현재 북한 평양이 아닙니다 현 중국 하북성 노룡현 인근 또는 석가장시 입니다 두번째 살수는 현 평안도 청천강이 아닙니다 삼십만명이 몰살되기에 너무 강이 좁습니다 현재 호타하 또는 역수 정도로 비정할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현 중국 산서성 인근까지 점령하여 황하남쪽 장안(서안)을 수도로 하는 수나라의 위협이었기에 수나라가 침략한것입니다 고구려는 사서에 의하면 동서 6천리,남북 2천리의 강역입니다 자꾸 우리나라를 한반도 내에 비정하려는 반도 식민, 친중 사관은 바뀌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친일청산없이 중국식민지, 일본식민지 라는 날조된 역사를 후세에 물려주려 하십니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분들의 희생으로 한반도는 살아남았다 감사합니다
강감찬 을지문덕 이순신 등등 이분들이 한반도에 태어나신게 정말이지 축복이다
감사합니다.
위대한 을지문덕 장군의 전투지략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스케일 대단하다 ㆍ역시kbs. 특히 한상권 아나운서는 독보적 멋진목소리
이러한 을지문덕 장군님의 현묘한 전략과 용맹을 우리가 이어 받아 현재의 중국을 여러 갈래로 쪼개어 다시 한번 고구려의 더 넓은 기상을 재현해야 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올쏘!!!!!
@@ILovekorea365 7days the 88
ua-cam.com/video/aUt7YvhUM8M/v-deo.html
고구려역사는 볼때마다 민족을 반도안에 주저앉힌 김유신 김춘추가 얄밉다. 신라역사에선 몰라도 민족전체로 보면 대 반역자다
진짜 중국정통은 중화민국 장제스인데 국민당이 이겻어야 ㅠ ㅠ 대만아 힘내라
너무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을지문덕 장군도 물론 대단하지만 그 듣도보도 못한 어마무시한 숫자의 초대군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결사항전 한 고구려 병사들도 대단합니다
이유:도망가면 죽여서
영양왕도 대단해
도망가면 내 나라 내 가족이 죽는데
지금 당신들 맘도 같은 걸?
이당시 고구려 병마도원수(지금 합참 의장)강이식 장군이 계셨다 이분이 한국 진주강씨의 시조.
일단 터무니없이 많은 숫자를 동원한 수나라의 미련함.먹고 마셔야하는데 그 많은 숫자 ㅠㅠ
벌판에서 대회전이라면 모를까 옹성전을 하는 전쟁에서...
한 전투에서 30만이 전멸한 전쟁이 세계사에 있을까?
어마어마한 승리입니다.
수나라 4차례 침공 중 대부분이 그렇게 죽었습니다
대한민국 역대 킬수 1위 을지문덕
역사책에소 저때 고구려는 싸이오닉 스톰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dgdrwweqwq ㄴㄴ 3차침공이랑 4차침공때는 수나라군이 그렇게 죽지않았음
3차때는 양현감 반란때문에 도중에 철수했고
4차때는 신성 비사성등을 포위했고
그 중 비사성은 함락당했음
그때 고구려는 항복문서로 달래면서 수나라군에 전쟁을 멈춰줄걸 요청했었음
4차때는 수나라군 피해는 없음
고구려입장에서는 청양전술로 다태워버리는 바람에 국력적 손실을 크게 입어 4차침공때는
수나라군에 대항 할 힘이 없었음
심지어 4차때는 수나라 내부반란의 흥기로
병력도 많이 동원못해 대군도 아니었음
진나라 땐가, 30만 군사 단체 암매장 햇엇죠
자랑스런 우리 역사
네 맞습니다
을지문덕 정말 대단하네요
이런 프로그램은 제발 다시 좀 만들어 주세요~~~
ua-cam.com/video/aUt7YvhUM8M/v-deo.html
이런 프로그램 만들지마! 중공 동북공정 지원 프로그램이냐?
@@undaunted3202 역사가 어디 갑니까?
그리고 중국도 항상 인정은 하고 있었습니다 사드사태 이후로 이렇게 엉킨겁니다 사이도 안좋와 져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말을 해도 말빨도 안서고
@@아..대한미인국추모성 뭘 중공이 인정한단 소리져?
@@undaunted3202 뭐라시는 건지 이해가 잘...🙄🙄
좌우지간 잃는 것 보다 우리가 얻는게 더 많을것 같은데요? 우리 민족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면? 비록 TV프로 라도😃 님 말을 제 짧은 소견으로 와까리 마셍 😆😆
정말 용감했던 고구려군 !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
고구려의 어마어마한 역사를 남기신 을지문덕 장군 만세 ! 만세 !
삼국사 열전에 나오는 위인 중 한분이죠
고구려 때는 참 유명한 장군들도 많았는데 나라를 위기에서도 구하고 중국에서 연개소문을 그렇게 무서워 했다면서요? 일본에서 이순신 장군님을 가끔 괴물이나 도깨비식으로 비유하듯 연개소문 장군도 엄청 무서운 괴물처럼 비유 한듯
고구려의 기상이 자랑 스럽 읍니다
~
을지문덕 장군의 지혜를 배우자!!
2
저런 장군이 존재한다는게 상상할수없지😊
자랑스럽고 위대한 고구려의 기개와 역사 입니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세계사에 빛나는 위대한 문화유산
볼수록 들을수록 우리나라! 우리의 고구려 조상님들의
정신력과 힘에 정말 자손으로서 너무나도 가슴이 뜁니다.
대단하십니다. 👍👍👍👍
화살촉이 거의 창수준이네요
0.51%의 탄소를 함유한 특수강을 제련할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고구려
확실히 군사적기술이 우위에 있으니 인해전술 수나라군을 물리칠수 있었네요
그리고 을지문덕같은 모사는 전쟁의 향방을 가른다
을지문덕 장군의 탁월한 전략전술의 고구려 나라를 구하다
이거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
갑옷고증좀 제발..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강제규 감독이 살수 만들었습니다. 곧 개봉.
임박사님의 논리적인 시각이 어릴적 신화같은 역사를 배우던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런데 몽골 고려 침략 국방tv는 좀 국뽕이
고려를 미화.
국방tv 라서 그랬는지?
그런거 보면 모든 나라가 자국 역사는 미화.
마치 팔이 안으로 굽듯.
ua-cam.com/video/aUt7YvhUM8M/v-deo.html
@@tur7321 약간은 그런듯도 합니다 ㅋ 우리 민족 자존감만은 지켜 주려고 햇나보죠 ㅎ
을지문덕장군이라니. 정말몇십년만이냐?~~어릴적 초등학교다닐때 존경했던 우리의조상
역사저널 그 날과는 급이 다르구만 역시 대단해...
부끄럽다ㅉㅉ 그렇게 남을까서 높이고싶냐ㅡㅡ
@@gold-ux2gu 뭔 소리야?
난 역사저널 그날이 더 괜찮던데?
그날 이랑 비교를말아지요..젓나시끄러움
우리나라눈 지형이 수비에 유리하다고 판단됩니다. 이점을 살려 자손 만대 길이 물려줄수 았도록 해야 합니다.
대단한 을지문덕장군. 세계사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인공 위성 보니까 북한 넘어 요동 까지는 다 산세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수비 공격도 용이 하지만 물이 많은듯 심산 유곡 중국이 탐낼까봐 걱정 이미 요동이나 연변은 중국 땅 됐지만.. 😑😑
존경합니다.
이것이바로 을지문덕장군의 위력~
장군님 오랫만입니다 저 기억 하십니까 살수대첩때 3번부대 195번 궁병 입니다.
항상 존경 합니다 장군님
ㅋㅋㅋㅋㅋㅋ
기억한다 잘했다 치타
ㅋㅋㅋㅋㅋ
좀 웃겼다,❤🎉
귀여워 😊
좋은영상감사합니다
21:40 정말 충격적이네 기술력도 기술력인데 어떻게 저 예전에 어우...대단하네요...
을지문덕!!! 개좋아!!!
반드시 영화로 제작되어야함.
올쏘!!!!!
ㅇㅈ
불가능함 고구려 역사가 중국꺼라는 주장이 있어서 외교문제때문에 나라에서 제제할껄아니까 다들 제작하기 꺼려함
을지문덕 영화로 나오면 명량이후 대박날듯
안시성도 제작됐는데 뭘 ㅋㅋㅋ 문제는 제대로 만드냐 거지같이 만드냐지
강감찬 장군님 영상보고 을지문덕 장군님 영상도❤ 넘나 재밌는 역사스페셜😊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이 가능했던 것은 수나라 수군이 평양시가전에서 평양 방어사령관, 고구려 수군 장군 고건무의 수군에게 패했기 때문이죠. 수나라 육군이 수군과 합동해서 평양을 공격하고 수군으로 부터 군량과 군수물자 보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 불가능해 졌고 거짓으로 패해서 평양까지 유인한 을지문덕 장군의 청야전술도 유효했죠.
재미있게 해주세요
@@안승엽-t7z 역사는 재미있게 예기를 못해요. 왜냐하면 역사는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을지문덕 장군이 두번 항복하는데 첫번째에는 수나라도 미심쩍어 그냥 참수 하려다가 항복하는 장수는 참하면 않된다 싶어 돌려 보냈고 두번째 재차 항복 하려하니 받아주고 지키던 성을 계속 지키도록 하고 평양쪽으로 들어갔다가 을지문덕이 무슨 연고인지 재항쟁 하면서 수나라 보급로가 끊어 짐으로 3만 기병대가 철수도중 살수에서 소멸된 것입니다 . 그 보복으로 을지문덕 장군도 참수 되였다는 얘기는 없지만 그뒤로 종적을 감추었 습니다 .
가장 미스테리 한것은 1만6천명 수나라 포로들 한테 고구려 여자 한명씩 붙여서 강제로 가정을 이루게 한것 입니다 .
@@ljh6463 참고로 걔네는 고수전쟁 한참 이전인 칸나이 전투 규모는 인정함 ㅋㅋ 당시 로마 8만 vs 카르타고 5만 규모인데도 불구하고 수용함 모순임
개구라 아님 지금북한이 2500만인데 군인이 백만여명임 100만이란얘긴 후방에서 보급등을맡은 나이지긋한어르신들까지 합친숫자임
살수의 정확한 위치부터 규명해야 합니다.
고구려 맨탈 갑이네..ㅋㅋ
감사합니다!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되겠네요
아차산등산가실때 고구려유적지 들러들러 해보세요~~ 워낙 고구려 유적지가 많아서 중턱에 정자이름도 고구려정ㅎ
"그만 만족하고 돌아감이 어떠한가"
을지문덕 장군님 개멋지네
저 시를 읽고 얼마나 빡쳣을까 ㅋㅋ
뜬금없지만 갑자기 이세돌9단이 생각나네요. 중국기자들 빡치게 하는데 도가튼 사람으로 유명했었죠 ㅋㅋ
아 그리고 또 생각해보니 중국이 한복은 중국거라고 우기니 "중국사람들이 민주화의 상징인 한복을 갈망하는거 보니 민주화를 갈망하는 것 같다. 그들을 지지한다"라고 재치있게 조롱한 우리나라 네티즌이 생각나네요
돌려까기의 민족ㅋㅋ
@후야 수나라 장수들이죠..저때 당나라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화살이 튕겨져 나와요!!!!
대박!!!!!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열심히 버워야 할 역사공부다 을지문덕장군 우리들 선조들의 용맹과 지혜를 잊지말아야 한다
을지문덕 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민족은 시련은 있을지언정 굴복은 없다. 현재의 중국 또한 우린 시련은 원하지는 않으나 그들이 원한다면 결코 물러서지는 않을것이다.
@@dusdn3218
우리 민족은 시킴이나 티벳과 같이 먹거나 종속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혹 베트남인 아니면 태국인?
ㅍ ㅠㅠ ㅓ ㅍ ㅠ
을지문덕 장군이 두번 항복하는데 첫번째에는 수나라도 미심쩍어 그냥 참수 하려다가 항복하는 장수는 참하면 않된다 싶어 돌려 보냈고 두번째 재차 항복 하려하니 받아주고 지키던 성을 계속 지키도록 하고 평양쪽으로 들어갔다가 을지문덕이 무슨 연고인지 재항쟁 하면서 수나라 보급로가 끊어 짐으로 3만 기병대가 철수도중 살수에서 소멸된 것입니다 . 그 보복으로 을지문덕 장군도 참수 되였다는 얘기는 없지만 그뒤로 종적을 감추었 습니다 .
가장 미스테리 한것은 1만6천명 수나라 포로들 한테 고구려 여자 한명씩 붙여서 강제로 가정을 이루게 한것 입니다 .
한국인 건들면 중국도 손발 짤린다고 중국인도 알듯..역사적으로 중국이 망할때 한반도랑 엮이면서 망한게많음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역사학 교수들,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태강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위,촉,오의 분열을 끝낸 나라는 사마염이 건국한 진나라 입니다 ‘태강’은 진나라 무제였던 사마염의 연호입니다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의 지방행정조직을 점검하기 위해 ‘태강지리지’라는 지리서를 편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태강지리지는 낙랑군이 현존했을때의 책이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태강지리지가 당나라때에는 존재했기 때문에 사마정이 그 책을 인용해서 사기색은에 기록한 것입니다) 갈석산은 하북성에 있는데 아주 유명한 산입니다 고조선의 영토가 거기까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북한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석산이 평양에 있습니까?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내려왔나요?
평양에 있었던 것은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입니다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낙랑공주는 낙랑국 왕의 딸인 것입니다 그러나 낙랑군은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지방행정기관이기 때문에 낙랑태수의 딸은 낙랑공주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북성에 있었던 낙랑군과 평양에 있었던 낙랑국은 서로 다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갈석산이 있는 하북성이 고조선의 땅이였기 때문에 광개토태왕때 고구려가 옛 땅을 되찾기 위해 거기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가 고대의 요하였고 난하의 동쪽이 요동, 서쪽이 요서였던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 애국심이 생기지도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어떤 의무나 희생을 치를 가치도 전혀 못느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처럼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인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만 좇는 것입니다 이게 다 우리 역사의 뿌리가 잘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의도대로 민족정신이 말살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제대로된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현재의 코로나 방역, 한류열풍, G7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이 타진 되는 상황등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는 현상이 바로 K방역, 한류열풍, G7국가로의 진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대단하시네요
이 정보를 유튜브로 만들어 주세요
고구려인의 대담함은 지금도 전설로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국동포들에게서 들었던 내용은당시 고구려군의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하여
"도리깽이"라는 손으로 말위에서 내려치는 쇠방망이로 주로 머리를 타격하였는데
얼마나 무서웠던지 한번 맞으면 그자리에서서 대부분 즉사 했다고 합니다.
이내용은 구전으로 중국 한족이나 조선족 동포들 대부분 알고 있는내용 입니디
이 것을 취재하여 밝히면 좋을듯합니다.
@@유학소녀-x2v 한민족입니다
도리깽이ㅡㅡ40년오랬만에 들어봄 도리깨
멀리 떨어진 상대에게 어느민족보다 뛰어난 뛰어난 활솜씨로 잡고... 전설에의하년 고구려는 여인들도 활솜씨가 뛰어났다 합니다.
도리께를 > 중국발음으로 도리껭?> 정확히 마상전투 무기로 편곤이란 무기로써- 말의 달리는 파워로 상대 머리를 치면 투구를 썼어도 낙마 하여 잡는대 효과를 봤다네요!
그 떨어진 장수를 멀리서 장창으로 찌르고 혹은 달려오는 말을 향에 숨어있다 낫모양의 무기명 -삭도로써 말다리를 베어 떨어고- 그리고 혹은 긴 대나무를 각가지에 방울과 쇠꼬쟁이를 매어 붙히어 달려오는 말에 밀어붙이면 말이 겁을 집어먹고 날뛰어 장수가 떨어지면 또 때려 잡고,
쌈잘하는 놈이 나오면 당파( 삼지창)로 상대무기를 막아 잡아툴어 무기를 움직이지 못하게하고 옆에서 장창으로 옆구리찌르고 ...
이렇게 우리민족의 전투법은 몆명이 조직적 팀웍의 백병전을 활용했죠!
@@김영철-p7v 절강병법은 척계광이 쓴 기호신서 안에 들어 있는 일부 고, 내가말하는건 사도세자의 무예제보와 모원의 의 병법과, 척계광의 기호신서와, 주역과 온갖 우리전통무예를 우리몸에 맞게 체계적으로 왕의 영에의해 문신 이덕무 박제가 와 무장 백동수의 모델로 정리한게 무예도보통지의 18반무예와, 마상6기를 포함 24반무예죠!
이것이 동양의 유일한 종합 병법서 어정무예도보통지라고 하죠!
이걸 사도세자가 체계적으로 가르쳐 군사를 훈련시키려다 노론 소론 정치싸움에 휘말려 사도세자가 희생된 이유죠! 중략,
그럼 그이전엔 우리것이 없었나?
있었다 기록한줄인 김유신의 병 법 고려명장 을지 문덕의병법, 연개소문의병법, 그 이전의 치우 는 전쟁의 신이라 했는데? 대충싸워서 연전연승 했을까요?
기록에 없다고 없는게되나요?
조선시대의 이순신의 해전도 학익진이 있고요!
그래서 문화복원이 필요한겁니다
하다못해 무당들 씻김굿까지 복원하는데 돈 대주는 놈들이 무예는 국민의 자존감을 살리는 건데 이건 개똥으로 알죠!
푸념으로 한마디 합니다. 친구한명은 조선병법 중 일부 재현하느라고 집팔아 사비로 일 하다 가장파탄도 났죠 !
이게 우리나라 실정입니다.
조선족 동포? 지들 자체가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동포 취급싫다하고 한국에서 선택적 동포주장하는 애들인데?
이 당시 수나라가 동원한 113만이란 군대가 그 당시로서는 상식을 벗어난 군대 규모였다고 함. 국사선생님에 의하면 오늘날 인구 비율로 따져봤을 때 1억 5천만이 넘는 군대 규모라고 보면 된다고...
김승환 중국 기록은 0하나 빼야함
아닙니다. 113만이라는 군대가 정확히 계산되어 있으며, 기록까지 자세하게 나와있을 정도로 대단한 군사량이었고 충격적인 양이었습니다.
수군의 편제를 보면 24군으로 총 대략적으로 30만명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에 수송부대와 경비병력과 병참대 등을 모조리 합하면, 약 100만 군대가 나오게 됩니다.
@@김동욱-z9pㅈㄹ하지마세요 수나라가 고구려 정벌때 총 수군 육군 보급부대 다 합쳐서 200만이 되었는데 중국 역사에도 기록되어있고 고구려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있는데 제발 모르면 말을 하지마세여 수나라가 육군은 탁군에 집결시켜서 하루에 1개 군단씩 출병시켜서 전군을 다 출격시키는데 40일이 걸렸는데 그리고 달랑10만명으로 고구려를 쳤겠냐?
@@swan5796 승환님이 말한게 맞아요
그런데?결국은 중국 내전이잖아?아니면 왜 당나라가 고구려 멸망할때 신라.백제는 같이 나서지 않았지?아~백제가 먼저 없어졌지?신라는 당나라랑 같이 고구려 없애버렸잖아.신라가 당나라를 도와 내란을 평정한것이네.😂😂😂
지금으로 치면 미국 해군과 육군을 동시에 격파한건데 그것도 육군은 지금처럼 폭탄이나 기관총도 없던시잘에 세계최강 군대를 전멸시킴... 다른 전쟁이랑 수준이 달랐다고 봐야함.. 개인적으로 을지문덕이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 장군 중 최고라고 생각함
살수대첩도 명량처럼 영화화하면 대박칠 듯한데............ 감독님들~~~~~ 좀 만들어주이소~~~~~
맞아요 세계 역사에서 가장큰 전쟁중 하나일꺼임 수나라만 100만이 넘었으니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113만인가
자료가 없어서 힘들듯 해요
자료가 빈약해서....고구려가 멸망하고 그.누구보다 고구려를 성가시게 생각했던 당나라가 없앤듯....
@@Cute_Joyuri 당나라도 영향이 있겠지만 조선이나 명나라 영향인듯 한데
명은 강국이었던 고려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고
조선은 자신들의 역사는 엄청나게 세밀하게 기록한것에 비하여 고려의 역사나 기록은 남기질 않은거로 봤을때
어차피 영화니 허구성을 곁들여 작가가 맘만 먹는다면 "이랫을것이다!"라는 전제로 영화로 제작해볼만함. 스케일 키워서 볼만할듯
기록의 중요성! 기록 보존의 중요성! 중국사와 후대의 삼국사기로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 지금이라고 기록 본질의 중요성이 다르진 않겠지.
중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착해졌던 때가 있었다니 감동입니다.
이게 만약 서양에서 이루어진 고대 전투였다면 지금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전쟁으로 알려졌을텐데... 시간이 답이겠죠.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길 기원합니다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님 이인간 무시하세요 유튜브에서 허위정보로 떠들어대긴 바쁜 불쌍한 인간이니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이새끼 또또 이러네ㅋㅋㅋㅋㅋㅋㅋ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옛날은 소문이 안퍼져서 치사하게 거짓말하고 승리로 이길 수 있었는데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당.. 그래도 아주 좋은 책략이었네유..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댓글 봤는데 ㅂㄷㅂㄷㅂㄷ하는것 너같으데 ㅋㅋㅋㅋㅋㅋㅋ또 팩트 쳐맞을까봐 밤새도록 열폭했을듯 ㅋㅋㅋㅋㅋㅋ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4시데 뭐 어쩌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소리 그만 찌결이고 학자한테 이메일보내봐 ㅋㅋㅋㅋㅋㅋㅋㅋ니가 보여준 자료로 왜 못하냐 ㅋㅋㅋㅋㅋ
이런시기에 영화로 만들어서 전세계가 보게 해야한다.... 그래야 동북공정 막을수 있다.
고구려 발해 북부여 고조선의 역사가 우리 역사임을 전세계에 문화로 알려야 한다
영화마들자고요?!
중국무서워서말도못하는세상되었음
영화 만들려고 해도 고증할수있는 자료가 우리나라는 없어서 ...안되여
기본 소득 쪼끔만 줄여서 남은돈 이천으로 영화 제작 가능할듯.
최수종이 을지문덕
전세계가 보게 하려면 화이트워싱해서 을지문덕장군을 브레드피트같은 배우가 해야함
@@ljyl2759 뭔 개소리냐? 안시성도 영화로 만들었다 너 초딩이냐
현대판 을지문덕 같은 한명
리더자가 필요할듯, 무리들만 득실!
을지문덕 장군이 두번 항복하는데 첫번째에는 수나라도 미심쩍어 그냥 참수 하려다가 항복하는 장수는 참하면 않된다 싶어 돌려 보냈고 두번째 재차 항복 하려하니 받아주고 지키던 성을 계속 지키도록 하고 평양쪽으로 들어갔다가 을지문덕이 무슨 연고인지 재항쟁 하면서 수나라 보급로가 끊어 짐으로 3만 기병대가 철순도중 살수에서 소멸된 것입니다 . 그 보복으로 을지문덕 장군도 참수 되였다는 얘기는 없지만 그뒤로 종적을 감추었 습니다 .
연개소문 아들이 성문 열어줘서 걔는 죽을 때까지 당나라 공신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제는 살수의 위치를 바로잡을 때가 되지 않았나?
을지문덕 강심장~ 무슨 영화 보는듯~
현대에 을지문덕 장군님이나 강감찬 장군님처럼 훌륭한 분이 계셨으면..
을지문덕 강감찬 장군님도 필요 하지만, 세종대왕 대신 사실상 후반기 국정을 직접 책임 태평성대를 이룬 문종이 지금 같은 글로벌 경쟁 시대엔 더 필요할지도.
세종대왕을 오히려 능가하는 자질을 가졌지만
문종이 좀 더 장수했으면 거의 강희제 같은 위대한 군주로
근데 고구려 연개소문 아들이 성문열어줘서 걔는 죽을 때까지 당나라에서 공신으로 잘먹고 잘 살았음 ㅋ
대조영이 다시 다찾죠
@@bleee1 성문 연건 신성이라는 승려
연남산은 성밖으로 나가 항복
@@tur7321 너무 아들을 늦게 만듦... 부인을 여러번 바꿧는데도ㅠㅠ 단종이 5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달라졌을텐데 물론 세조가 신하들에게 인기가 많았긴했고 반정이 없었으면 성종도 없었겠지
이야 ... 고구려 성벽 위엄 봐라 6:51
청천강이 살수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빨리 교과서가 바뀌고 강단에서 식민사학자들을 쫓아버려야 한다!
이름도 개 멋있어 을.지.문.덕
온다르(온달), 위구태(오고타이), 을지문덕(올지모돈), 대무신(테무진), 주몽(춀몬) 등 몽골에서 아직도 이 이름들 쓰여요.
몽골가면 올지 성씨 아직도 있음.
수나라 113만 대군을 막고 30만 별동대를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전멸시키다. 대단하다. 그리고 엄지인 이쁘다.
내가 그말 할렷는데! 엄지인 이쁘다
9⁹0
고대 저그러쉬
수나라: 저글링만 닥치는 대로 만들어! 디파일러 만들지 말고 저글링만 만들어! ㅇㅋ?
고구려: 벙커에 파이어뱃 넣고 뒤에 탱크 오지게 넣어!
니가봣나
대한민국 역사상 킬수 1위
엄청나군요..
캬 살수대첩에서 살아남은 자가 30만명 중에 2700명이라... 엉덩국이 생각나네! 들어올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때는 아니란다.
진짜 우리역사에서 요동반도를 잃은게 두고두고 안타깝다. 서로는 요하를 경계로, 북으로는 흑룡강을 경계로 국경을 삼으면 참 좋을텐데. 그게 고구려의 국경이었고.
우리가 북한을 무너트리고 거기나 먹었음 좋겠어요 ㅠㅜ
한반도의 반이라도 지킨게 다행이다
아직 모른다 그리고 진행형이다.
...h
P]],,,
만족함을 알고 그만 물러가는 것이 어떠하리?
쌀때까지 못빼 안에다 쌀꺼야
@@IandeSongfransisco 아.. 안돼앳.!
그대의 신과 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
신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통달했도다.
전쟁에 이겨 그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 물러나는게 어떠한가?
속뜻
너네 보니까 싸움 잘하더라
전략도 쫌 하는거같고 ㅋㅋ
그동안 몇번 이기니까 좋디?
고마했으면 이제 좀 꺼져라 험한꼴 당하기전에 ㅋ
어린이 교과서 위인전의 대표 인물인 을지문덕 장군의 지혜와 용맹을 본 받고 싶습니다
49:51 ㅋㅋㅋㅋㅋㅋㅋㅋ대단하심.. 크으
Sbs에서만 사극으로 나온 을지문덕 그러나, 앞으로 제작팔 수 있을 것 같네요. 안시성도 영화로 흥행 했으니 언젠가는 나올 수 있겠죠?
대한민국 역사 3대 대첩 →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님 살수대첩 & 고려 강감찬 장군님 귀주대첩 & 조선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 한산도대첩
평양성의위치 살수의 위치궁금합니다
살수가 청천강이라니 한심합니다. 그당시 고구려의 강역이 한반도라는것은 모화사상의 극치 아닌가요?
그럼 어디 입니까?
막연히 딴지 걸지 말고 답을 주셔야지
@@조용순-m3w 국뽕관점에서 강역을 보는것이 아니고,
고구려가 수나라의 공격을 막아낼때 국경선을 헤아려보면 북경근처의 조선하(조하)나 하북성의 요수 적어도 만주의 요하가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지명은 바뀌기도하고 이동하기도 합니다.
살수가 황하라는 설도 있습니다. 살수의 살은 사르 샤르 의 음차문자로서 터키어,몽골어의 노란.황색의 뜻을 가진 강이라고 보는 것이죠... 중국역사의 왕조들은 시안과 낙양을 번갈아 수도로 쓰며 태행산맥동쪽과 황하이북의 민족들과 항상 대립했습니다...중국이 북경을 실질 점유한건 명대 이후였고요
"살수"는 현 하북성 호타하 입니다
"평양"은 하북성 석가장시 입니다
살수는 고구려 수도가 북한 평양이라는 주장은 일본식민사학자들의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며 고구려의 서쪽경계는 산서성 황하동쪽 즉, 하동지방까지 입니다
"요"는 경계, 국경이라는 의미로서 중국 산동, 산서의 경계인 태행산맥을 의미하며 광개토호태왕에 의하여 요서지방까지 정복한 기록은 사서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기록으로는 하북성 양평, 평원이 평양으로 주장하기도 하며 살수로 현 청룡하(과거 강수)로 기록되고 요수로 불리운 강을 살수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는 모두 고구려 강역이 서쪽으로 산서성에서 동으로 연해주까지 이르는 대제국 이었기에 해석이 조금씩 다른것입니다
고루려가 있었기에 우리 민족도 지금 아직도 이렇게 남아서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싸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수는 청천강이 아니다. 중원에 있는 강이다.
This should make movie with this history.
이야 400년대에 저런 철갑을 만들수잇다니
실크로드 1할, 해상운로 9할,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세가들중에 하나였던, 수가 실크로드의 영주들을 상당히 모았고,
해상운로의 중심이 되는 황하라인을 깨기 위하여 모여 들었습니다. 상류쪽에 통제거를 건설하여 병력을 건너게 하고, 부근에 영제거를 건설하여 낙타와 마차를 건너게 합니다.
살수대첩은 고대 토목공사의 최고우위가 어느민족인지 보여주는전쟁사........
그런일 없었다고.
실제로는 수공이 아니라 도하 할때 기습한거
ㅎㅎㅎ 살수는 뻥이다
살수가 어딘지는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요동에서 일을 벌이다 천하를 잃었다."
단단히 준비하는 자가 승리한다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제작하면 대박나겠는뎅
아따.재미나는군요😊
살아서 도망간 자, 살아서 돌아가 신고된 숫자의 차이.
이런 프로그램을 넷플릭스에서 개방하도록하자
을지문덕 장군 얼굴 한번 보고싶은데 한번을 안 보여 주내요! ㅠㅠ
수양제는 고구려를 쉽게 이길수 있다고 생각했고 을지문덕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수나라 군사를 격파하겠다는 불굴의 정신으로 승리 했을까요~~ 대단하네요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여기에 나오는 평양이 북한 수도 평양이 아니고 중국 안의 요양이라고 말했건만, 왜 박지원의 고증을 무시하는지. 남한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에 찌들어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지금 요양땅을 찾아오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답답해서 못보겠다.
그쵸? 평양이란 단어는 고유지명이 아니라 일반명사일 가능성이 있음. 동북에 양자로 끝나는 지역은 고대 평양들일 가능성이 있음. 즉 고구려의 서울이란 뜻
잡앙.몽땅.똥한바가씩멕이고잉.손목.발목짜르고잉.여태후한테보냉.처결을 기다리게 해분다.
ㅂ
ㅋㅋ 와 ㅋㅋ 교차검증이란걸 모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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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전술 소름이네
조상님들 희생으로 오늘날의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고 학자나 한문을 아시는 분들 거의 돌아가시고 한문을 익힌 고고학자 얼마 없지, 방송에선 그분이 그렇타면 믿을 수 밖에 없지
을지문덕, 광개토대왕, 이순신....
세계가 알아야 할 위인들이다...
하아 영화로 보고 싶다.!!!
우리나라 중에서 제일 강한 나라가 고구려입니다
장강의 앞 물결이 뒷 물결에 밀린다. 한쪽에서 수해가 나면 아랫쪽에서는 더 큰 수해가 난다.
진짜 다른 전투들도 훌륭한게 많지만 이 살수대첩이야 말로 세계사를 뒤바꾼 전쟁이라 중국본토를 점령한 급의 위대한 전투사임. 통일제국을 무너뜨렸으니.
저때 고구려는 현 중국대륙에서 있었습니다.
유튜브. "책보고" 채널에서 서적과 지도. 논리로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살수 역시 우리가 말하는 그 지역이 아니고요~~
중요한 하나의 축인 "청야 전술"에 대해서는 너무나 가볍게 다루고 있네요.
고수 전쟁은 위대한 승리였지만, 청야 전술은 고구려를 병들게 만들어 고구려가 망해가는 원인이 됩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참임. 보급이 제대로 되어야 전쟁을 하는 것인데, 당시 수나라는 많은 인원이 너무 먼거리를 원정하는 바람에 그것, 병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 잘 먹어야 싸움을 할 것 아닌가?※☆※
살수가 고구려 땅이었을까요? 자꾸 고구려 땅에서 살수를 찾는데 전멸 했다면 아마 수나라가 후퇴하다가 강으로 몰려서 몰살 당했다 봐야 하지 않을까요?
역사에서 젤로 재미나는 부분
그러나 지금은 반대가 되었지요 ㅜㅜ
역사적 사실을 다큐멘터리로 작업을 하려면 철저한 고증이 필요합니다
우선 고구려 평양성은 현재 북한 평양이 아닙니다
현 중국 하북성 노룡현 인근 또는 석가장시 입니다
두번째 살수는 현 평안도 청천강이 아닙니다
삼십만명이 몰살되기에 너무 강이 좁습니다
현재 호타하 또는 역수 정도로 비정할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현 중국 산서성 인근까지 점령하여 황하남쪽 장안(서안)을 수도로 하는 수나라의 위협이었기에 수나라가 침략한것입니다
고구려는 사서에 의하면 동서 6천리,남북 2천리의 강역입니다
자꾸 우리나라를 한반도 내에 비정하려는 반도 식민, 친중 사관은 바뀌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친일청산없이 중국식민지, 일본식민지 라는 날조된 역사를 후세에 물려주려 하십니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살수대첩의 살수는 청천강이 아니라 황허강이었다.
무리한 고구려 원정으로 멸망하는 수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