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신라혼 저기요. ㅋㅋ 일본관련 유물이 아니라 영산강 유역의 유물이고요. 일본보다 앞선 시기의 유물들입니다. 나주지역 사람들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가서 한반도 도래인이 된 것은 까먹으셨나요? 그리고 일본인 무덤은 2개뿐입니다. 나주의 변방을 지키는 무장의 무덤이였고요. 고대 마한,금관가야와 일본의 관계는 매우 밀접했다는건 기본 상식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없던 시절입니다. 그많은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으로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주하면서 일본에서 많은 유적을 남겼고, 일본 역시 한반도의 영향을 절대 무시못합니다. 일본이 고대 유적을 비공개하는 것은 바로 한반도 세력의 영향을 인정하기 싫은 것때문입니다. 일본고사기 기록에 금관가야의 왕이 넘어가 규슈에서 아소산에서 도래인들을 규합해 군대를 만들고 규슈전역과 오사카까지 정복해 일본 최초의 덴노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일본은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일본보다 나주 영산강 유물과 유적은 일본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이 거짓임을 알 수 있으니 더욱 공개해야하고요. 일본 교토대 사학과 교수가 밝헜던대로 3~6세기 인구증가율이 전세계 평균의 5배를 넘는 폭발적인 인구증가 역시 한반도 도래인들이 규슈와 간사이 지역에 일본 원주민들 인구에 근접할만큼 많은 수의 한반도 도래인들이 살았다는 간접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일본의 야마토 정권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며, 한반도 도래인들의 기반을 통해 백제 역시 쉽게 일본으로 진출할 수 있는것이죠.
@@大신라혼 일본관련 유물이 아니라 일본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일본관련 유물이라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딴짓만 하고 사니까 제대로 아는게 없더냐? 방송불가? 니가 뭐라도 되냐? 외부공개를 안한다고? 이미 외부공개된 자료들인데 니가 뭘 안다고 떠들어?
@@박재홍-e5l 고분들 발견당시 뉴스, 방송내용 다 확인했지만 일본보다 후대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일본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된겁니다. 일본거다? 일본식 유물이란게 정의가 뭔가요? 토기부터 무덤양식, 안에서 발견되는 유물들 전부 영산강 유역의 유적이 훨씬 앞선 시기입니다. 일본인 무덤은 단 2기뿐이였고, 고분 역시 왕의 고분보다 작았고, 가야와 경계지역에서 나주지역을 방어했던 지역의 고분입니다. 일본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이 한반도식이라고 일본학자도 인정하고 있는데 님은 무슨 근거로 일본식이라고 떠드는것인지 의도가 궁금하네요.
옹관묘는 베트남, 중국, 라오스 등등에도 많이 발견됩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시작 된 선사시대 원시 유물이란 말이죠 옹관묘는 한반도 전 지역에 분포하고 일본에도 있지만 북방민족의 남하로 사라지죠 전남 지역만 5세기까지 옹관묘를 썼다는건 그 지역에 문명이 늦게 시작되었단 뜻입니다
난 국민학교 시절 해남에서 살았는데 학교가는 길이 바닷길로 가면 좀 지름길이라서 바닷가로 다녔는데 산이 바닷물에 침식되어 항아리 하나가 보이고 그항아리가 깨지면서 그안에서 사람 뼈가 보였는데 남자아이들이 해골을 꺼내서 축구차듯이 차니. 깨저버린 기억이 납니다 이런 장례문화가 있었다니 그 지역에서 살았으면서 영상보고 알았습니다
제가 15년동안 진도 해남 강진 장흥 보성쪽으로 난초 산행을하고 있습니다 쉬는날이면 일행분들과 산을 다니는데 제가 경험한바에 의하면 진도쪽의 산속에는 유난히 돌무덤들이 많고 발견되지 않은 성벽비슷한 장소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물론 산속에 항아리들을 많이보구요 ㅎ 첨엔 무서웠는데 지금은 하도 많이봐서 별루 ㅋ 그리고 강진쪽은 도자기 고향답게 난초찾아 산속을 헤메다보면 도자기 굽는터를 가끔씩 발견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발굴이 전혀 안된곳이구요!! 첨엔 무덤가인줄 알았는데 주변에 상당한 양의 도자기들이 깨져있는것을 보고 알았죠 지금도 난초산행하고 있고 강진 그쪽방향으로 가면 자세히 살펴볼려고 합니다ㅎㅎ
3:24 젊은 사람들 이쪽으로 와서 도와주세요! 3:353:373:423:47 "어-화" 제가 당시 중1이었는데 이거 본방으로 봤는데.. 이때부터 지금까지 무거운 것을 들어 나를 때 저의 기합이 "어-화"랍니다^^ 역사스페셜은 역사 뿐만 아니라 무거운 거 드는 방법까지 저에게 가르쳐준 셈이네요^^
영상을 보다가 요르단 에 갓을때 박물관을 여행햇을때 나주옹관과는 다른 모양의 옹관을 봣는데 시기는 같은 시기엿다면 흥미롭군요 요르단의 유적지는 스타디움 건축흔적을 보면 고대그리스 양식이 많이있엇구요 그렇다면 비슷한 시대가 아닐까요? 연구 하시는 분들 요르단 유적지와 비교연구 하신다다좋겟군요
당연히 다르죠 역사기본기죠 왕국발생단계 부족국가(도시국가 단계) -> 연맹왕국 (왕을 부족장들이 선출하는 단계) -> 고대국가 (부자상속제 즉 하나의 왕조가 등장하는 단계) 이거 외우시고 보시길 이단계는 연맹왕국을 말하조 백제 남부지역을 백제가 아닌 또다른 국가들의 모임이 있었고 백제가 세력이 강성하면 포섭됐다가 약해지면 독립되는 그 단계임
진짜 역사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댓글 남깁니다. 의문투성이인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민족의 역사에 다가가시고 싶으신 분들은 sumin park 고대사, 책보고님 영상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문학으로 당시 고대 수도의 위치 기록을 보면 고구려 - 몽골 일대 백제 - 북경 일대 신라(초기) - 중국 동부 양자강 일대 신라(후기) - 한반도 일대로 나옵니다. -백제의 중심은 북경과 산동 반도입니다. 백제 귀족 성씨 8개 중 대다수가 현 산동 반도에 있습니다. 백제는 패망 후 열도로 건너가 신라+가야+빙하기 전 건너온 고대 한반도인을 통합해 '일본'을 만듭니다. 당시 일본 열도의 가장 강했던 세력이 신라, 가야의 '철기병'이었는데 여기에 건너온 백제인들이 추가로 '철기마병'까지 운용해 지배 세력이 됐습니다. 교토 쪽에 있는 '나라'현도 우연이 아닙니다. 이 나라 현은 신라-가야 세력이 지배하다 열도로 온 백제가 지배하게 됩니다. 또한 일본어의 뿌리는 백제어입니다. -'발해'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 이는 한족이 '진국', '후고구려'를 낮추어 부르던 말입니다. '대진국'이라고 부르셔야 합니다. -역사서인 '고려사'에서는 '고려는 동서가 2000리 남북은 1500리'로 '동서가 남북보다 길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교과서에선 남북이 더 길다고 가르칩니다. 고려 역시 진짜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는 말할 것도 없고 북경과 산동 반도 이남까지입니다. -예맥(우리) 동호(선비[수, 당]-거란[요]-몽고족[원]) 숙신(말갈-여진[금]-만주족[후금,청])은 모두 한민족의 갈래이며, 원나라(동호)와 금-청나라(숙신)가 들어서면서 형, 동생의 관계가 역전됩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몽골이 다 쓸어버리던 와중에 괜히 고려만 남겨둔 게 아닙니다. 또 훗날 후금(훗날 청)이 '뿌리를 잊고 이민족에게 사대하는' 조선을 정신 차리게 한 것도 절대 굴욕이 아닙니다. -'여진'이 아니라 '주션Jurchen'이란 발음이 맞습니다. 한문을 그대로 읽다보니 여진이라고 잘못 읽게 된 겁니다. Jucrchen과 Josun이 발음이 비슷한 이유는 (고)조선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여진족은 대한민국(조선)을 여진족 파벌 중 하나로 인식했습니다. 때문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도와줬습니다. -청 건국자 누르하치의 조상인 먼터무는 이성계의 부하 이지란과 6촌 사이이고, 먼터무는 스스로 이성계를 섬겼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129기의 고분군(후한 묘 7기, 북조 묘 2기, 당 묘 33기, 요 묘 33기)에 아파트를 지어 역사를 지우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역사 유물인데 왜 보존하지 않고 그 위에 콘크리트 붓기 바쁠까요? "상식적으로 다가가면 답이 나옵니다." 또 '낙랑군 조선현 사람 무덤'이 '북경'에서 나왔습니다. 식민사학자+일본+한족은 낙랑군이 현 '평양'에 있었다는데.. 무덤은 어째서 '북경'에서 나오나요? 한족, 일본은 과장이나 왜곡이어도 '좋은 건 다 자기네 거'라는데, 대한민국 주류 사학계는 '환단고기와 한민족의 대륙 고대 국가는 환빠'랍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 주류가 되는 사람들의 실태입니다. -일본 열도와 대륙에 사는 한민족의 갈래, 조선족, 고려인 모두 몇만년에서 몇천년을 함께 살아왔고 떨어진지는 고작 몇백년 밖에 안 됐습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스스로를 중국인, 일본인 등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몽골과는 통일 후 연합해야 합니다. -일찍이 우리 한민족(동이족:동쪽의 큰 활을 든 민족)은 동아시아에서 뛰어난 역사(홍산 문화)를 지닌 민족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또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날진 모르겠지만 진짜 역사를 알고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알리려는 노력은 해봅니다. 대한민국 만세.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베트남 즉 그 당시의 (월족)들의 옹관묘와 비슷하네요. 왕관의 형태도 미얀마 및 베트남 쪽의 형태와 비슷한것 같습니다. 이 옹관묘에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나주 지역에 또 다른 왕국이 있었다면, 이는 가야의 고분처럼 반드시 밝혀져야 할것입니다.
왜국임. 광개토 대왕에 의해 멸망당했다가 신라와 고구려가 대립을 하자, 신라가 왜를 한반도에 다시 불러들인거임. 이것 때문에 백제가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거. 신라가 왜를 불러들인 이유는 고구려와 싸우라는 목적임. 고구려 입장에서는 신라 하나만 상대하다가 다시 신라 백제 왜 3국과 대치해야 할 상황이니 남진할 엄두를 못냄. 이렇게 다시 들어온 왜국이 바로 임나임. 이후 신라 진흥왕때 몰살당함. 이때의 참상이 일본서기 흠명천황 23년조의 기록에 나와 있음. 신라가 임나를 멸망시키고 관가를 불 태웄으며 임나의 남녀노소를 모조리 찢어죽였다는게 일본서기의 기록임. 일본 천황이 이 사건으로 병을 얻어서 결국 죽게 되고 유언은 임나를 수복하라였음. 신라에게 병탄당했다는 명확한 증거.
백제의 마한 복속은 무령왕 때 입니다. 백제가 전라도 지역을 지배한 건 100년도 안 됩니다. 백제 멸망 시기에 3대가 살았다고 가정하면 할아버지는 마한 사람이라, 전라도 지역에 살던 한 가족이 자신들을 백제인이라고 인식했을 확률은 희박합니다. 백제는 건국부터 멸망까지 경기-충청 정권이었으며, 멸망 후 부흥 운동 역시도 이 지역에서 일어납니다. 신라 무열왕도 신규로 복속된 영토를 시찰했을 때, 위험한 구 백제 지역에 머무는 대신 현재 전북 익산 지역에 주둔하며 그 곳에서 사망했습니다. 신라 통일 전까지는 전라도에 하나의 통일 세력이 존재했다기 보다, 백제계-마한계-일본계 세력이 느슨한 연맹관계로 존재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전라도 자랑 1. 9223년 전 (세계 최초 국가 환국 건국)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부족이 고흥군 풍양면 팔봉산에서 건국.도읍은 나주 자미산 일대로 정함.(일만년 전라도 문명편. 일봉 곽춘근 선생) 약 3000년 후 천안으로 도읍을 옮기고 신시배달국 건국. 이후 한 부족은 북쪽으로 올라가 우수리(소머리)강 일대에서 정착하다가 서진 하여 수메르국 건국. (수메르는 소머리 라는 뜻임. 소설가 윤정모:수메르 한민족 머나먼 원정길).한 부족은 산동반도로 건너가 신시배달국 건국.(월드컵때 붉은악마 가면은 치우천왕 가면임) 산시성 함양시 일대에 5000년 이상된 동이족 피라미드 수십개 발견 되었음. 구글지도로 확인 가능합니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 편수관인 이병도(이완용 조카),신석호,경성제국대 교수16명과 이마니시 류(금서룡)가 조선태고사 환국,신시배달국 역사 5000년을 없애 버리고 한민족 역사를 대부분 왜곡 시킴.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민족,역사,문화 말살 정책으로 조선인을 이간질 시켜 반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정책. 2. 세계 고인돌의 60% 이상이 전라도에 분포.(소멸된 것 포함.약 4만여 기가 전라도에 분포.도올 김용옥 선생) 탄소측정해 보면 대부분이 10000년 이상으로 나옴. 세계역사가 한꺼번에 풀릴 열쇠. 3. 전라도 언어는 10000년 전 언어이고 동,서양 언어의 뿌리 입니다.범어(산스크리트 어),인도어,유럽어,영어로 발전(강상원 박사) 범어는 대부분이 전라도 언어 입니다. 거시기: 머리 속에서 생각 해서 말해 줄게.산스크리트 어 옥스퍼드 사전에 그대로 나와 있음. 머시기:계산하다,헤아리다,기계(machine). 긍게: ghin ge(산스크리트 어) 동의하다.(agree). 그랑게:그렇게 이해하고 밝힌다. 그라고: 그렇게 이해하고 진행한다. 띠어 브리제: 제거하다. 꼬막(작은 것이 기어 다닌다)꼬마,깐난이,까나리는 모두 적다는 뜻. 시아: 했시아,먹었시아,갔시아,왔시아 등. 잉:확인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였을내나 그때 난 무안,몽탄면 지역에 살았고 새마을 사업으로 윗동네 가는 길을 넓히는 산비탈을 깍는 일을 하는데 영상에 나오는 옹관묘가 다수 나왔고 그당시는 저런 묘형식을 몰라 애장살이로만 알았다,. 지금도 그지역 일대 산비탈은 지금도 저런 형태가 많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상한 형태의 항아리 저런 영상과 비슷하다.
일본 애니중에 섀도 하우스라는게 있음. 그것도 생각남.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이 대저택에 일하러 갔는데 그 곳의 그림자들과 인격이 동화되다가 어느새 육신을 빼앗김. 물론 본인은 그게 성장한 자기 자아라고 생각함. 그 저택 주인들은 수백 수천번 그렇게 새상을 살아온 것. 영혼을 빼앗긴 아이들이 있으면 오래된 육신은 버려졌을테고 어떻게 처리됐을까? 애니 제대로 안봐서 잘 모르지만..
중국이 세계 최대임. 꼭 같은 양식의 옹관묘 묘제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부터 이미 시작이 되었고 실제 수천기가 무더기로 발굴된 사례도 있음. 그 묘제를 사용하던 무리들이 한국으로 넘어온거임. 즉, 원시 중국인들이 한반도 전라도에 넘어왔고 이들이 역사에 왜라고 기록이 된거임. 그리고 그 무리들중 일부가 또 일본으로도 간 거. 그래서 삼국지 위서를 보면 왜인들이 자신들이 중국의 회계지방에서 넘어온 태백의 자손이라고 한거임. 태백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 나라의 개국시조임. 즉, 중국 남방에서 살던 오나라인들이 한반도와 일본으로 넘어온 거. 한국의 양식이 3세기 양식이기 때문에 삼국지 시대 당시 손견이 건업, 회계, 오나라등을 평정할 떄 여기 살던 원주민들이 손견과 손책을 피해 한반도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있음.
@@정창운-k8y 백제의 건국은 황해도에서 시작이 되었고 장수왕이 남진을 할 때 한강을 넘어 남하를 한거임. 이후 장수왕이 개로왕을 쳐 잡아 죽인 후에 한반도에서 백제가 완전히 멸망당해버림. 이때는 충청도에도 백제가 없었음. 이후 장수왕이 신라까지 정벌할려고 하자 신라가 서토를 일본에게 양토해주고 왜구를 한반도에 불러온 거임. 고구려와 전쟁하라고. 백제는 이때 충청도에 들어간거임. 그래서 충청도에서 백제 유물은 5세기 이전 것은 안 나오는거임.
한국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묘제의 일부로 사용하던 것이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처럼 대형 전용 옹관을 사용한 예는 없으며 영산강 유역 토착세력에 의해 완성된 묘제로 이해되고 있다. 나주시에서도 마한이라고 발표 하고 있네요 ㅎㅎ 사적 제513호 (2011년 7월 28일 지정)
한반도자체가 소국이 난립할수밖에 없는 지형적구조라서 큰나라 몇개말고는 연구할필요도 연구도 힘들다고 봐야함. 너무 많은 소국이 생기고 없어지고 반복해서 한나라의 유적이나 유물 기록인지 판별도 애매하고 그럴가치도 없어보임. 이름만 나라지 사실상 군장규모의 부족급이나 마찬가지인 경우도 많을테고. 특히 가문을 너무 중시하는 성향을 보면 아마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까지는 생겼다 사라지는 나라가 100개도 넘었을거같음.
나주와 인근의 다양한 고분군을 볼때 백제와의 역사적 긴밀성은 크지않다. 흔히 근초고왕 때 정복되었다고하나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전방후원분의 시기로 봐서 왜의 세력권이었고 그 이전의 정치세력이 마한이라고하나 이것도 사료적 고고학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무덤 양식으로 볼때 토착세력과 중국의 이주민세력, 마한의 패주세력, 왜 세력 등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혼재했고 백제 동성왕 전후로 백제의 세력권 내지는 영토가 되었다고 보는것이 합당하다.
신미제국 들먹이려면 백제,고구려보다 많은 전문도기, 시유도기 유물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백제, 고구려의 서진/동진 방문은 5회를 넘지 못하지만... 신미제국은 여러 소국이 최대 30국가, 횟수로는 10회 이상 방문했다. 그러니 알려진 전문도기 수량 2배 이상의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 신미제국이다.
마한(백제)은 지리적,경제적으로 당시 선진국인 중국산동지역과 중국 중부, 남부인 절강성(상하이),베트남 그리고 지리적,경제적측면에서 후진국인 일본간의 해상중심지에 위치해 3국간의 무역중심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특히 당시 일본은 지리적으로 대륙과 떨어져 있어 문명이 뒤쳐져 있었고 당시 글로벌언어인 한자보급이 거의 안된 상태에 사실상 원시적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신라(가야)에 비해 교류는 적었으나 무역에 관여하는 소수일본인들이 잠깐잠깐 당시 선진국인 마한(백제)에 들러 마한의 선진문명과 풍습을 배워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뭏든 마한(백제)경제적측면에서 자체적으로 평야지대인데다 교역으로 인해 타지역에 비해 풍요로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한(호남 +충청)은 경기도를 기반으로 한 경기호족 왕건과 호남(나주)호족인 나주오씨간의 연합정권차원의 고려를 개국하기 직전인 917년까지 사실상 독자성을 유지한채 존재했음 .
역사를 보는 시각이 큰 잘 못 입니다. 힌국인의 시각으로 보기 보다는 왜의 시각으로 해설을 하면 안돼죠. 일본식 전방후원분이라는 것은 매우 잘 못 된 시각이요. 전방후원분이 일본이 먼저 시작을 했다는 것을 증명 할 방법이 있고 그 방법으로 실증을 했어요? 전방후원분이 나주에서 시작을 해서 일본으로 갔다는 것을 말을 해야지. 이런 역사는 뭐 하러 합니까? 지금도 일본의 시각으로 보는 식민사학은 없애야 한다.
@@msrt9860 전라도의 옹관묘 양식이 나올 떄 이미 한반도에는 삼한이 존재했고 그 이전엔 진국이라는 국가가 또한 존재를 했음. 왜가 전라도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한이 존재했기 때문에 제대로 정착을 못했고 그래서 일본으로 갔던거임. 일본의 영토가 한반도보다 3배나 더 컸고 인구도 작았기 때문에 왜구들이 넘어가 살기 유리했던 조건임. 그래서 4세기가 되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전쟁이 엄청나게 벌어진거임. 한일 양국의 고고학 공통점이 4세기에 전쟁관련유물들인 갑옷, 화살, 철기등이 엄청나게 나온다는거임. 그 이전까지는 무기류들이 그렇게까지 나오지 않음. 즉, 4세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전쟁이 벌어졌다는거고 한국의 경우에는 기록이 비교적 잘 남아 있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내부에서 벌어진 전쟁 관련 기록들이 없기 때문에 알지를 못하는거임. 고고학 유물로 보면 한국이 삼국시대일때 일본 역시도 삼국시대였다고 추정해볼 수 있음.
2001년도 방송이네요. 지금 2024년인데 새롭게 업데이트해서 새로운 역사스폐셜 방송을 만들어주시길 고대합니다. 영산강 유역에 추가 발굴 조사된 내용들이 많으니 업데이트된 방송을 해주세요
싫어요
@@大신라혼 저기요. ㅋㅋ 일본관련 유물이 아니라 영산강 유역의 유물이고요. 일본보다 앞선 시기의 유물들입니다. 나주지역 사람들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가서 한반도 도래인이 된 것은 까먹으셨나요? 그리고 일본인 무덤은 2개뿐입니다. 나주의 변방을 지키는 무장의 무덤이였고요. 고대 마한,금관가야와 일본의 관계는 매우 밀접했다는건 기본 상식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없던 시절입니다. 그많은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으로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주하면서 일본에서 많은 유적을 남겼고, 일본 역시 한반도의 영향을 절대 무시못합니다. 일본이 고대 유적을 비공개하는 것은 바로 한반도 세력의 영향을 인정하기 싫은 것때문입니다. 일본고사기 기록에 금관가야의 왕이 넘어가 규슈에서 아소산에서 도래인들을 규합해 군대를 만들고 규슈전역과 오사카까지 정복해 일본 최초의 덴노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일본은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일본보다 나주 영산강 유물과 유적은 일본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이 거짓임을 알 수 있으니 더욱 공개해야하고요. 일본 교토대 사학과 교수가 밝헜던대로 3~6세기 인구증가율이 전세계 평균의 5배를 넘는 폭발적인 인구증가 역시 한반도 도래인들이 규슈와 간사이 지역에 일본 원주민들 인구에 근접할만큼 많은 수의 한반도 도래인들이 살았다는 간접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일본의 야마토 정권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며, 한반도 도래인들의 기반을 통해 백제 역시 쉽게 일본으로 진출할 수 있는것이죠.
@@大신라혼 일본관련 유물이 아니라 일본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일본관련 유물이라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딴짓만 하고 사니까 제대로 아는게 없더냐? 방송불가? 니가 뭐라도 되냐? 외부공개를 안한다고? 이미 외부공개된 자료들인데 니가 뭘 안다고 떠들어?
@@大신라혼 그럴줄 알았습니다. 학술적으로 연구하면 좋겠죠.
@@박재홍-e5l 고분들 발견당시 뉴스, 방송내용 다 확인했지만 일본보다 후대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일본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된겁니다. 일본거다? 일본식 유물이란게 정의가 뭔가요? 토기부터 무덤양식, 안에서 발견되는 유물들 전부 영산강 유역의 유적이 훨씬 앞선 시기입니다. 일본인 무덤은 단 2기뿐이였고, 고분 역시 왕의 고분보다 작았고, 가야와 경계지역에서 나주지역을 방어했던 지역의 고분입니다. 일본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이 한반도식이라고 일본학자도 인정하고 있는데 님은 무슨 근거로 일본식이라고 떠드는것인지 의도가 궁금하네요.
너무 좋은 내용이네요
♡♥♡
옹관묘는 베트남, 중국, 라오스 등등에도 많이 발견됩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시작 된 선사시대 원시 유물이란 말이죠
옹관묘는 한반도 전 지역에 분포하고 일본에도 있지만 북방민족의 남하로 사라지죠
전남 지역만 5세기까지 옹관묘를 썼다는건 그 지역에 문명이 늦게 시작되었단 뜻입니다
난 국민학교 시절 해남에서 살았는데 학교가는 길이 바닷길로 가면 좀 지름길이라서 바닷가로 다녔는데 산이 바닷물에 침식되어 항아리 하나가 보이고 그항아리가 깨지면서 그안에서 사람 뼈가 보였는데 남자아이들이 해골을 꺼내서 축구차듯이 차니. 깨저버린 기억이 납니다 이런 장례문화가 있었다니 그 지역에서 살았으면서 영상보고 알았습니다
유물보관을 뭇했군요 ㅎㅎ
아이들이 죽으면 항아리에 넣어뚜껑을 닫아서 묘는 쓰지안고
집푸라기로 덥어놓은 것을 초분라 했어 습니다
그런곳을 지나갈려면
머리가 쭈빗쭈빗 했죠
60년대 그랫어요
@@정종성-n2c 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남도 전역에잇엇어요ㅡㅡ해남ㆍ나주 ㆍ영임. 만 잇던게 아니고ㅡㅡ보성 ㆍ고흥. 뿐 아니라 흥 ㅡㅡ 내륙한가운데서도ㅡㅡㅡ보성강유역과( 화순 사평. 동복 능주 보성문덕. 복내. 순천의 주암 ㆍ송광. 별양 해롱 낙안ㅡㅡ순천시 동천 유역의 . 서면ᆢ 섬진강 유역의. 곡성. 서콕 죽콕 ㆍ 옥 과 구레에서도. 경지정리전에 아주 흔하게 보던 장례 형태임ㅡㅡ 경지정리가 파괴함ㅡㅡ가마 ㆍ옹관 묘ㆍ 고인돌 파괴는 ᆢ경지정리. 후로 로 ㅡ근 60프로가. 파괴 사라짐ㅡㅡㅡㅡㅡ(((시골 우리집에도 거대고인돌 4기군. 모여잇어ㅡㅡ돌의 형태 재질이 전혀다름 ㅡㅡ 바위가 이동해온겆--작은 마을에. 지금도 20기이상 있어ㅡ신고는 노 ㅡ시간가면서 추가파괴중ㅗ요즘은 중장비가 원인)ㅡㅡㅡㅡ남해ㅡ 초고대 문자도. 석각도 파괴ㅡ---------ㅡ국 가( (((해방후 친일파와 추종세력들이 권력장악후ㆍ파괴ㆍ 방치 ㆍ방관ㅡㅡ역사논쟁 ㆍ생존게임)))
그게 곧 유물이자 유적. 현실적으로 더 피부에 와닿네요
제가 15년동안 진도 해남 강진 장흥 보성쪽으로 난초 산행을하고 있습니다 쉬는날이면 일행분들과 산을 다니는데 제가 경험한바에 의하면 진도쪽의 산속에는 유난히 돌무덤들이 많고 발견되지 않은 성벽비슷한 장소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물론 산속에 항아리들을 많이보구요 ㅎ 첨엔 무서웠는데 지금은 하도 많이봐서 별루 ㅋ 그리고 강진쪽은 도자기 고향답게 난초찾아 산속을 헤메다보면 도자기 굽는터를 가끔씩 발견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발굴이 전혀 안된곳이구요!! 첨엔 무덤가인줄 알았는데 주변에 상당한 양의 도자기들이 깨져있는것을 보고 알았죠 지금도 난초산행하고 있고 강진 그쪽방향으로 가면 자세히 살펴볼려고 합니다ㅎㅎ
우와~
저기 2023년에 반남면, 대안리 등 고분 구경하다
우니나라에 무덤 길이가 23미터(?)나 된 고대무덤을
보고 많이 놀랐는데, 관리가 소홀한 게 안타까웠습니다.
2024년에보고계신분있다면 책보고검색해서 영상보고오시면 이해가 더 잘될껍니다.
우리가알고있는 백제라는 이지역이 백제가아니라는사실
과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잊혀지고 왜곡되었던 역사의 진실이 점점 드러나는듯 합니다.
@@team4kings- 과학이 발전할 수록 책보고 같은 사이비들이 설 자리가 더 빠르게 없어질 겁니다
@@PrettyT-rex u sure?
@@team4kings- ㅇㅇ
ㅂㆍㅂㆍ7
맞아요 다시면 신풍리에 흙으로 높이쌓은 성벽이 있고 고인돌도 있고 땅속에선 도자기 까지 나오는걸 보았습니다 일반 시골이 아니었습니다 어릴적 무슨 왕족이 살았을거라 상상하며 자라습니다
나주만 아니고 해남에서도 발견됐어요 제가 어려서 산에가 우연히 발견됐어요
출토물을 해남 군청 공보실에 갔다주었는데. 연락은 없었어요
진짜에요?
@@朱宰寬
나주보다 아래쪽에는
당연히 백제영향권에서 더 멀어졌겠죠
연락 없었으면 아닌겁니다. 어르신
옹관묘는 베트남, 중국, 라오스 등등에도 많이 발견됩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시작 된 선사시대 원시 유물이란 말이죠
옹관묘는 한반도 전 지역에 분포하고 일본에도 있지만
전남 지역만 5세기까지 옹관묘를 썼다는건 그 지역에 문명이 늦게 시작되었단 뜻이죠
@@김명곤-l7q 얼마나 가정에서 못 배웠으면 나이 운운하면서 인신공격으로 비꼬고있네
아~ 우리 민족의 진실한 역사를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보고 싶습니다.!!!
고인돌도 엄청난 문화잔재인데 말이에요. 사학자들이 뭔가 숨기고 진실을 말하길 두려워하는것 같네요
3:24 젊은 사람들 이쪽으로 와서 도와주세요! 3:35 3:37 3:42 3:47 "어-화" 제가 당시 중1이었는데 이거 본방으로 봤는데.. 이때부터 지금까지 무거운 것을 들어 나를 때 저의 기합이 "어-화"랍니다^^ 역사스페셜은 역사 뿐만 아니라 무거운 거 드는 방법까지 저에게 가르쳐준 셈이네요^^
도와.도와 했어요 우린.
영상을 보다가 요르단 에 갓을때 박물관을 여행햇을때 나주옹관과는 다른 모양의 옹관을 봣는데 시기는 같은 시기엿다면 흥미롭군요 요르단의 유적지는 스타디움 건축흔적을 보면 고대그리스 양식이 많이있엇구요 그렇다면 비슷한 시대가 아닐까요? 연구 하시는 분들 요르단 유적지와 비교연구 하신다다좋겟군요
이런 것은 계속 연구해야 하는데 기존의 식민사학과 모순되니깐 사장되버리고 마네요~ 씁씁합니다. 백제사 학자 양심고백 좀 하시죠~ 백제가 도대체 어디에 있었소? 부여가 그 부여고 웅진이 그 웅진이요?
당연 아니죠. 이것이 합리적인 결론.
어딨긴 유물 유적이 말해주잖아ㅋㅋㅋ
유물, 유적, 기록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정신병자들만 헛소리 함
사장 되긴 뭘 사장 되요 님이 관심이 없는 거지
식민사관과 어떻게 배치되는데
항아리 관은 들어보긴 한 거 같은데 이렇게 오랜만에 보니 또 새롭네요
고대 한반도도 중국의 춘추시대처럼 소국이 날립한 형세인 듯 하다. 남부는 백제와 신라가 패권국인 춘추형국. 사실 고대국가 라는게 지금 국가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같은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거임 같은 정서 같은 문화 인식 언어를 공유한 그룹
그런 의미에서 고대중국은 고대한국과 진짜 전혀 다른 그룹임
당연히 다르죠
역사기본기죠
왕국발생단계
부족국가(도시국가 단계) -> 연맹왕국 (왕을 부족장들이 선출하는 단계) -> 고대국가 (부자상속제 즉 하나의 왕조가 등장하는 단계)
이거 외우시고 보시길
이단계는 연맹왕국을 말하조
백제 남부지역을 백제가 아닌
또다른 국가들의 모임이 있었고
백제가 세력이 강성하면
포섭됐다가
약해지면 독립되는 그 단계임
신라 백제는 대륙에 있었음
@@정창운-k8y 그건 너무 나간거고
그걸 묶어서 마한이라 통칭합니다.
백제전에 어떤 부족이 살고 있었을까 궁금 하네요~!
마한이쥬
韓족
마한이 있었고 마한 전체를 진나라라고 자칭했습니다.
진짜 역사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댓글 남깁니다.
의문투성이인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민족의 역사에 다가가시고 싶으신 분들은 sumin park 고대사, 책보고님 영상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문학으로 당시 고대 수도의 위치 기록을 보면
고구려 - 몽골 일대
백제 - 북경 일대
신라(초기) - 중국 동부 양자강 일대
신라(후기) - 한반도 일대로 나옵니다.
-백제의 중심은 북경과 산동 반도입니다.
백제 귀족 성씨 8개 중 대다수가 현 산동 반도에 있습니다.
백제는 패망 후 열도로 건너가 신라+가야+빙하기 전 건너온 고대 한반도인을 통합해 '일본'을 만듭니다.
당시 일본 열도의 가장 강했던 세력이 신라, 가야의 '철기병'이었는데 여기에 건너온 백제인들이 추가로 '철기마병'까지 운용해 지배 세력이 됐습니다.
교토 쪽에 있는 '나라'현도 우연이 아닙니다.
이 나라 현은 신라-가야 세력이 지배하다 열도로 온 백제가 지배하게 됩니다.
또한 일본어의 뿌리는 백제어입니다.
-'발해'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
이는 한족이 '진국', '후고구려'를 낮추어 부르던 말입니다.
'대진국'이라고 부르셔야 합니다.
-역사서인 '고려사'에서는 '고려는 동서가 2000리 남북은 1500리'로 '동서가 남북보다 길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교과서에선 남북이 더 길다고 가르칩니다.
고려 역시 진짜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는 말할 것도 없고 북경과 산동 반도 이남까지입니다.
-예맥(우리)
동호(선비[수, 당]-거란[요]-몽고족[원])
숙신(말갈-여진[금]-만주족[후금,청])은
모두 한민족의 갈래이며, 원나라(동호)와 금-청나라(숙신)가 들어서면서 형, 동생의 관계가 역전됩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몽골이 다 쓸어버리던 와중에 괜히 고려만 남겨둔 게 아닙니다.
또 훗날 후금(훗날 청)이 '뿌리를 잊고 이민족에게 사대하는' 조선을 정신 차리게 한 것도 절대 굴욕이 아닙니다.
-'여진'이 아니라 '주션Jurchen'이란 발음이 맞습니다.
한문을 그대로 읽다보니 여진이라고 잘못 읽게 된 겁니다.
Jucrchen과 Josun이 발음이 비슷한 이유는 (고)조선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여진족은 대한민국(조선)을 여진족 파벌 중 하나로 인식했습니다.
때문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도와줬습니다.
-청 건국자 누르하치의 조상인 먼터무는 이성계의 부하 이지란과 6촌 사이이고, 먼터무는 스스로 이성계를 섬겼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129기의 고분군(후한 묘 7기, 북조 묘 2기, 당 묘 33기, 요 묘 33기)에 아파트를 지어 역사를 지우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역사 유물인데 왜 보존하지 않고 그 위에 콘크리트 붓기 바쁠까요?
"상식적으로 다가가면 답이 나옵니다."
또 '낙랑군 조선현 사람 무덤'이 '북경'에서 나왔습니다.
식민사학자+일본+한족은 낙랑군이 현 '평양'에 있었다는데.. 무덤은 어째서 '북경'에서 나오나요?
한족, 일본은 과장이나 왜곡이어도 '좋은 건 다 자기네 거'라는데, 대한민국 주류 사학계는 '환단고기와 한민족의 대륙 고대 국가는 환빠'랍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 주류가 되는 사람들의 실태입니다.
-일본 열도와 대륙에 사는 한민족의 갈래, 조선족, 고려인 모두 몇만년에서 몇천년을 함께 살아왔고 떨어진지는 고작 몇백년 밖에 안 됐습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스스로를 중국인, 일본인 등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몽골과는 통일 후 연합해야 합니다.
-일찍이 우리 한민족(동이족:동쪽의 큰 활을 든 민족)은 동아시아에서 뛰어난 역사(홍산 문화)를 지닌 민족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또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날진 모르겠지만 진짜 역사를 알고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알리려는 노력은 해봅니다.
대한민국 만세.
1930년대 까지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칭기스칸 발해왕가의 후손임을 잊지 않다 ㅡ 다음 검색
재밋당
♡♥♡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베트남 즉 그 당시의 (월족)들의 옹관묘와 비슷하네요. 왕관의 형태도 미얀마 및 베트남 쪽의 형태와 비슷한것 같습니다. 이 옹관묘에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나주 지역에 또 다른 왕국이 있었다면, 이는 가야의 고분처럼 반드시 밝혀져야 할것입니다.
아뇨 나주 지역, 광주 지역같은 전남지역은 이미 연구가 많이 진행돼서 대충 시기적인 출토 연대나 구분이 현재는 되고 있습니다
1930년대 까지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칭기스칸 발해왕가의 후손임을 잊지 않다 ㅡ 다음 검색
유골 DNA는 일본계로 나왔죠?
@@cijjeehh2302 대부분 유골은 산성 토양으로 녹아서 못찾는다ㅜ보면 됨
아따 결국 동남아서 올라온 사람들이 나주 정착해서 소왕국세웠다가 백제한테 복속당했당께요
나주 대형옹관은 단순히 백제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라고 한다. 영산강은 예전에 바닷물이 들어와 해상교역이 이루어져서 다른 나라의 토기가 발굴되어 고대 왕국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재미있게 잘 시청했습니다.
@@seungheelee1094 옹관묘는 백제와 관계없슈 진국(마한)과 관련 있슈 삼한은 농경민족이유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인들이 기마민족이구유 기마민족이 남하하니 농경민족인 삼한사람들이 가야 백제 신라에 흡수 되는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간거쥬 그들이 야요이인 입니당
고흥 포두에 안동고분을 아시는지요~
거기에서 백제왕관이라는 최고 보물이 나왔고 거기에도 어마어마한
왕국이 있었다는 심증과 기타~~~
그런데 왜
사학자들은 그걸 충청도로 가지고 올라가서
광활하고
찬란했던
백제 이전 역사를
숨겨버렸는지~???
일본의 의도대로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중요한 점은, 한반도 나주 옹관묘는 3-6세기 경 유적인데, 일본열도 야마토 지역에서도 비슷한 옹관묘가 5세기 이후 부터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고대 무덤을 체계적으로 발굴 역사가 왜곡 되지 않게 하는것이 이땅에 후손들의 의무당
평양 아닌 고구려에도 경주 아닌 신라에도 강성한 지방의 독보적 호족세력은 있었지요 가야쪽은 더욱 그렇고요 딱히 백제만의 문제는 아님다
옹관묘제는 영산기ㅏㅇ 유역에만 있었던 것 아니고 전북 충청지역에도 산재되 있었지요 능산리 고분군에도 옹관이 여러곳에 쓰였음
@user-vn2ec7ob2c 한자로 돼 있는걸 번역한게 엉망이네 ㅋㅋㅋ
이런 프로그램 재현하라
해수면~~~날씨가~~~서안 해양성기후 였을수 있습니다~~~실크로드도 초원지대가 많았다고하죠~~~몽골기병들이 말타고 뻔질나게 다녔겠죠~~~(풀먹는 몽골말)
국사책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 많다 역사학자들은 더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란다.
백제에 의해 소멸(멸망)된 옹관국은 이곳의 토착민이었다는 결론이 아닐런지..
백제에 의해 소멸된게 아니라 광개토 대왕에 의해 소멸되었고 이후 전방후원형 세력이 등장했다가 신라 진흥왕에 의해 몰살당하고 퇴출됨. 백제와는 우방이었기 떄문에 백제가 왜국을 멸하지 않음. 둘의 출자가 모두 중국이었기 때문에 상호간에 전쟁을 하지 앟음.
@@大신라혼
뭔소리지??
광개토대왕이 ??
개소리를 하고 있네
백제의 위치가 다른곳이란 얘깁니다. 우리 고대역사는 조선창업자의 모화사상과 일제식민사관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축소되었어요.
@@노블레스오빌리주 고려사와 중국역사서 고대지도들 분석 해 보면 백제신라는 중국해안지역에 있었고 한반도 전체는 고구려 영토였습니다. 한반도 남부가 신라영토가 된게 500년경정도...라고 합니다. '책보고'채널 참고
@@노블레스오빌리주 백제는 전라도지역에 담로를 뒀을 가능성은 있으나 전라도지역이 본국은 아니었습니다.
내 고향 영암군 시종면에서 옹관과 금으로 만든 부장품이 오래전에 출토되었습니다. 면사무소 옆에는 큰 무덤이 있습니다
어떤 왕국일까!
왜국임. 광개토 대왕에 의해 멸망당했다가 신라와 고구려가 대립을 하자, 신라가 왜를 한반도에 다시 불러들인거임. 이것 때문에 백제가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거. 신라가 왜를 불러들인 이유는 고구려와 싸우라는 목적임. 고구려 입장에서는 신라 하나만 상대하다가 다시 신라 백제 왜 3국과 대치해야 할 상황이니 남진할 엄두를 못냄. 이렇게 다시 들어온 왜국이 바로 임나임. 이후 신라 진흥왕때 몰살당함. 이때의 참상이 일본서기 흠명천황 23년조의 기록에 나와 있음. 신라가 임나를 멸망시키고 관가를 불 태웄으며 임나의 남녀노소를 모조리 찢어죽였다는게 일본서기의 기록임. 일본 천황이 이 사건으로 병을 얻어서 결국 죽게 되고 유언은 임나를 수복하라였음. 신라에게 병탄당했다는 명확한 증거.
왜. 그걸 몰러., ..
동남아 세력임
@@nature5120 똥내나 세력 아님 ^^
옹관묘를 썼던 세력이 한반도에서 살다가 규슈로 쫓겨갔단 얘기지.. 다만 금관묘는 거기에 신라땅이였단 증거임. 백제 무령왕릉은 양나라 양식으로 백제왕릉이 아닌것 같고 한반도 남부는 완전 다 그냥 고구려땅이었다가 신라땅이 된듯함.
대단한 왕국 마한이 있었지요.
쌀하고 콩 한반도가 원산지인가 뭔가 그렇다던데 왕국이든 뭐든 다른곳보다 사람살기 좋았을듯
23년 동안 바뀐 건 없나요
일본요시노가리 유적에서 동일한 옹관 77개가 나왔어요
오 전문가다
백제의 마한 복속은 무령왕 때 입니다. 백제가 전라도 지역을 지배한 건 100년도 안 됩니다. 백제 멸망 시기에 3대가 살았다고 가정하면 할아버지는 마한 사람이라, 전라도 지역에 살던 한 가족이 자신들을 백제인이라고 인식했을 확률은 희박합니다. 백제는 건국부터 멸망까지 경기-충청 정권이었으며, 멸망 후 부흥 운동 역시도 이 지역에서 일어납니다. 신라 무열왕도 신규로 복속된 영토를 시찰했을 때, 위험한 구 백제 지역에 머무는 대신 현재 전북 익산 지역에 주둔하며 그 곳에서 사망했습니다. 신라 통일 전까지는 전라도에 하나의 통일 세력이 존재했다기 보다, 백제계-마한계-일본계 세력이 느슨한 연맹관계로 존재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전라도 자랑
1. 9223년 전 (세계 최초 국가 환국 건국)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부족이 고흥군 풍양면 팔봉산에서 건국.도읍은 나주 자미산 일대로 정함.(일만년 전라도 문명편. 일봉 곽춘근 선생)
약 3000년 후 천안으로 도읍을 옮기고 신시배달국 건국. 이후 한 부족은 북쪽으로 올라가 우수리(소머리)강 일대에서 정착하다가 서진 하여 수메르국 건국.
(수메르는 소머리 라는 뜻임. 소설가 윤정모:수메르 한민족 머나먼 원정길).한 부족은 산동반도로 건너가 신시배달국 건국.(월드컵때 붉은악마 가면은 치우천왕 가면임)
산시성 함양시 일대에 5000년 이상된 동이족 피라미드 수십개 발견 되었음. 구글지도로 확인 가능합니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 편수관인 이병도(이완용 조카),신석호,경성제국대 교수16명과 이마니시 류(금서룡)가 조선태고사 환국,신시배달국 역사 5000년을 없애 버리고
한민족 역사를 대부분 왜곡 시킴.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민족,역사,문화 말살 정책으로 조선인을 이간질 시켜 반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정책.
2. 세계 고인돌의 60% 이상이 전라도에 분포.(소멸된 것 포함.약 4만여 기가 전라도에 분포.도올 김용옥 선생)
탄소측정해 보면 대부분이 10000년 이상으로 나옴. 세계역사가 한꺼번에 풀릴 열쇠.
3. 전라도 언어는 10000년 전 언어이고 동,서양 언어의 뿌리 입니다.범어(산스크리트 어),인도어,유럽어,영어로 발전(강상원 박사) 범어는 대부분이 전라도 언어 입니다.
거시기: 머리 속에서 생각 해서 말해 줄게.산스크리트 어 옥스퍼드 사전에 그대로 나와 있음. 머시기:계산하다,헤아리다,기계(machine).
긍게: ghin ge(산스크리트 어) 동의하다.(agree). 그랑게:그렇게 이해하고 밝힌다. 그라고: 그렇게 이해하고 진행한다.
띠어 브리제: 제거하다. 꼬막(작은 것이 기어 다닌다)꼬마,깐난이,까나리는 모두 적다는 뜻. 시아: 했시아,먹었시아,갔시아,왔시아 등. 잉:확인하다.
약 챙겨먹어라
전라: 발가벗음. 알몸뚱이. 알몸.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를 말하며 올누드라고 하기도 한다.
갖다 맞추느라 수고했어요
이 뭔.,...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듯이 역사도 남겨지기도 사라지기도.. 안타깝지만 산 사람들이 살아가야하는 과정...
길이가 3미터 엄청남
우리나라 거짓역사를 모두다 수정해야합니다
신라의 왕중한명이로 보면 될것 같은데요. 신라의 경주는 황제가 있고.
백제라고 하는 금동관은 고구려의 왕중 한명으로 한반도는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중으로 해석 하면 딱 맞네요.
한반도에는 백제가 없고 지금의 중궁의 황하강에 있었다는 것이 성립 됩니다.
이 뭔 개소리야..
마한 진한 변한도 모르나?
전라도 나주영암쪽인데 뭔 신라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나
이거 유네스코문화제됐나?
일본은 더거지같은것도 다 문화재로 올려서 관광상품화하던데 제발 우리것을 잘지켜 후손들에게 자긍심을갖게해주었으면한다
지금은 독무덤이라고 하죠.나주박물관에 독무덤이라고 나와있습니다
파묘 생각남. 우미보즈 같은것도.
나는 왜 저 무덤 방식이 시신으로 진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느껴질까.
한반도 남부 나주 영산강지역의 고대왕국은 비류백제(중국 사마염의 진나라 역사서인 진서晉書의 부여 의려왕) ♥비류의 비류백제는♥ 대륙인 대방고지에서 부여 위구태가 건국했고, 서기 238년에 비류백제(고이왕=부여 의려왕)가 영산강지역도 차지하고, 일본열도까지 진출.
일본서기 응신천왕 14년,16년에 등장하는 백제 궁월군이 120현(縣)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285년에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나라현의 전방후원분을 만든 것으로 보이고,비류백제 궁월군 세력이 일본열도를 장악하여 일본열도의 전방후원분이 번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음
♥문헌 근거♥【일본서기】 응신천왕 14년, 16년에 등장하는 궁월군(궁월 君임금)이 백제 고이왕( 진서의 부여 의려왕)의 아들이고,
1) 283년 : 궁월군이 백제(영산강 지역)에서 왜로 오겠다고 함(일본서기),고이왕 신라공격(삼국사기)
2) 285년 : 모용외 공격으로 의려왕 사망(진서 부여), 궁월의 인부(군사)가 왜로 건너감(일본서기)
3) 286년 1월에 신라와 화친하고 11월에 고이왕 사망(삼국사기)
♥☞ (문헌 근거 해석)
1) 238년 하북성 창주시의 부여 의려왕(궁월君)이 군사를 이끌고 영산강 지역 비류백제 영토로 이동하고, 일본열조로 진출했고,
283년 고이왕(의려왕)의 아들(궁월군)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고이왕(의려왕)이 신라를 공격했다
2) 285년 부여(비류백제) 의려왕이 하북성의 자리를 비운사이
전연의 묘용외가 창주시의 비류백제(부여)를 공격하여 멸망시켰으니 진서는 의려왕이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초기 고대국가는 아스달연대기처럼 그랬을거 같은데ㅎㄷㄷ
초등학교 1학년 때 였을내나 그때 난 무안,몽탄면 지역에 살았고 새마을 사업으로 윗동네 가는 길을 넓히는 산비탈을 깍는 일을 하는데 영상에 나오는 옹관묘가 다수 나왔고
그당시는 저런 묘형식을 몰라 애장살이로만 알았다,. 지금도 그지역 일대 산비탈은 지금도 저런 형태가 많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상한 형태의 항아리 저런 영상과 비슷하다.
일본 애니중에 섀도 하우스라는게 있음.
그것도 생각남.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이 대저택에 일하러 갔는데 그 곳의 그림자들과 인격이 동화되다가 어느새 육신을 빼앗김.
물론 본인은 그게 성장한 자기 자아라고 생각함.
그 저택 주인들은 수백 수천번 그렇게 새상을 살아온 것. 영혼을 빼앗긴 아이들이 있으면 오래된 육신은 버려졌을테고 어떻게 처리됐을까?
애니 제대로 안봐서 잘 모르지만..
물건 옴길때 오가 하는거 개웃기네요. 저희 아버지 전라도 사람인데 실제로 저렇게 말함 ㅋㅋ
경상도는 도가 도가 했어요. 오랫안에 듣네요.
@@parkjake1 엥 저는 부산,울산인데 왜 하나둘 했던거 같죠 ^^
일본에도 옹관묘가 있ㅇ슴.
중국이 세계 최대임. 꼭 같은 양식의 옹관묘 묘제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부터 이미 시작이 되었고 실제 수천기가 무더기로 발굴된 사례도 있음. 그 묘제를 사용하던 무리들이 한국으로 넘어온거임. 즉, 원시 중국인들이 한반도 전라도에 넘어왔고 이들이 역사에 왜라고 기록이 된거임. 그리고 그 무리들중 일부가 또 일본으로도 간 거. 그래서 삼국지 위서를 보면 왜인들이 자신들이 중국의 회계지방에서 넘어온 태백의 자손이라고 한거임. 태백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 나라의 개국시조임. 즉, 중국 남방에서 살던 오나라인들이 한반도와 일본으로 넘어온 거. 한국의 양식이 3세기 양식이기 때문에 삼국지 시대 당시 손견이 건업, 회계, 오나라등을 평정할 떄 여기 살던 원주민들이 손견과 손책을 피해 한반도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있음.
마한사람들이 일본으로 많이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옹관묘가 있는겁니다
성우분 성함이 궁금합니다.
오래전 kbs에서 방영했던 NHK 다큐
실크로드 성우분 같아요.
@@나그네길인생-j7s 유인촌 씨에요.
@@이현숙-h3p7p유인촌은 사회자구요. 나레이션 성우를 말하는 듯..
옹관은 울산 옹기 마을에 가면 볼수가 있어요.
백제점령군을 피해 일본으로 이주한 고대 전남사람과 일본인의 조상
백제가 왜를 점령한 사실이 없음. 고고학 유물상으로도 백제의 침략흔적이나 전쟁기록도 전혀 없음. 왜가 전쟁을 한 대상은 초기에는 고구려, 이후에는 신라임. 백제와는 전쟁관련 기록자체가 한국이건 일본이건 아예 나오지 않음.
백제인은 충남과 경기도서울남부. 인데 전라도는 한빈도 토종. 백제는 대륙에
@@정창운-k8y 백제의 건국은 황해도에서 시작이 되었고 장수왕이 남진을 할 때 한강을 넘어 남하를 한거임. 이후 장수왕이 개로왕을 쳐 잡아 죽인 후에 한반도에서 백제가 완전히 멸망당해버림.
이때는 충청도에도 백제가 없었음. 이후 장수왕이 신라까지 정벌할려고 하자 신라가 서토를 일본에게 양토해주고 왜구를 한반도에 불러온 거임. 고구려와 전쟁하라고.
백제는 이때 충청도에 들어간거임. 그래서 충청도에서 백제 유물은 5세기 이전 것은 안 나오는거임.
경상도만 와도 무슨무슨 도시국가 같은 나라가 있었음. 당연히 백제지역도 있었겠지만. 마한/변한/진한 - 삼한 지역.
왕건이 나주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가 당시 나주지역 호족들의 핏속에 백제에 의해 자기들 정치집단이 멸망당한 저때의 악감정이 남아있어서 견훤의 후백제를 좋게 볼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나주지역 호족들은 저 옹관묘 주인들의 후손이었던건 아닐까요?
한반도의 나주 아님...
이 야, 2미터 짜리 옹관을 고대에 만들어 냈다는거 참 미스테리네요.
중국에서 춘추전국 시대부터 등장하는 묘제임. 진시황이 등장하면서 중국 내부에 전쟁이 발발하니까 그걸 피해서 한반도로 도주해온 무리들임. 보트피플이라고도 하지.
2미터짜리 공관이 참 미스테리면
그보다 2~3천년전에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참 참 참 참 참 참 참 참 참 참 참 참 참 참 참 차마 더 치기 힘들다 미스테린가요??
백제는 중국 사서에 보면 자치권을 부여받은 담로국(제후국)을 거느린 황제국이었다
백제 천도 기간에도 번성했었던 고대국가가 있었군요 ㄷㄷ
5:30 마한 진한 변한
인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한국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묘제의 일부로 사용하던 것이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처럼 대형 전용 옹관을 사용한 예는 없으며 영산강 유역 토착세력에 의해 완성된 묘제로 이해되고 있다.
나주시에서도 마한이라고 발표 하고 있네요 ㅎㅎ
사적 제513호
(2011년 7월 28일 지정)
나주에~~~있을수 있죠~~~해수면이 낮아서 너 넓은 국토였을수도 있고~~~가야가 있었을수도 있고~~~😊
거긴 가락국이다
마한 실직국 파사국 등 부족국가들 많음
삼한중 하나
마한의 역사라고
합니다
6세기초까지는
독자적 정치체제를
유지했고 그후
백제에 병합됩니다
CIS-AB형
그게 전라인 하고 무슨 관련인가요? 그당시 지역이름과 나라이름이 전라가 아닙니다.
중국이 아니라 중원의 나라이름을 일컬어야 한다
한반도자체가 소국이 난립할수밖에 없는 지형적구조라서 큰나라 몇개말고는 연구할필요도 연구도 힘들다고 봐야함. 너무 많은 소국이 생기고 없어지고 반복해서 한나라의 유적이나 유물 기록인지 판별도 애매하고 그럴가치도 없어보임. 이름만 나라지 사실상 군장규모의 부족급이나 마찬가지인 경우도 많을테고. 특히 가문을 너무 중시하는 성향을 보면 아마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까지는 생겼다 사라지는 나라가 100개도 넘었을거같음.
고인돌 유적과 연관은?
고대 삼국이 중국대륙에 있었다는 설이 생각나네. .
'책보고' 유튜브좀 보세요 ㅎㅎ 그 얘기 잘 나옴
진짜 왕국이었을까? 부족연맹체가 아닐까용?
나주와 인근의 다양한 고분군을 볼때 백제와의 역사적 긴밀성은 크지않다. 흔히 근초고왕 때 정복되었다고하나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전방후원분의 시기로 봐서 왜의 세력권이었고 그 이전의 정치세력이 마한이라고하나 이것도 사료적 고고학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무덤 양식으로 볼때 토착세력과 중국의 이주민세력, 마한의 패주세력, 왜 세력 등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혼재했고 백제 동성왕 전후로 백제의 세력권 내지는 영토가 되었다고 보는것이 합당하다.
@user-vn2ec7ob2c
이 양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소리다!
@user-vn2ec7ob2c 엉터리 한자해석 ㅎㅎ 그만좀 붙여넣어 가짜역사
역사스페셜 댓글 관리 안함? 대륙 사이비 신도들 너무 많네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뭘 관리하란거임??
대륙백제, 대륙신라, 대륙고구려 듣기만 해도 싫어하는것을 보아하니 중국놈인듯??.
중원의 중원는 고대 한나라 초기땅 뿐이다 중국인아
@@PrettyT-rex100%화하족 ㅋㅋㅋ 맞아 표현의 자유 근데 너는 날조와 왜곡을 밥먹듯이 하잖아 그래 서 저런말이 나오는겨 알았냐? ㅋㅋㅋㅋㅋ
@@PrettyT-rex오늘 점심은 짜장이나 먹어라
@@PrettyT-rex근데 중국은 표현의 자유 없잖아 근데 표현의 자유를 아네? ㅋㅋㅋ
나참ᆢ아니 대형옹관은 힌번에 안 만듬ㆍ
위 아래 두개로 붙임ㆍ
또한 5등분으로 하루에 한단씩 만듬ㆍ
이음부는 물로 적셔 자연스래 굳으면서 붙음ㆍ
우리의 대륙 역사가 왜곡되니 한반도에 있던 고대 왕국이 미스터리 해지는 게 당연한 이치.
가야 영향권에 속한 왕국이었거나, 가야와는 또 다른 왕국이 아니었을까.
이 정도면 정신병원에 가야될듯
한 나라의 역사를 현재 국가의 국경에 따라 생각하니 생기는 문제가 많죠. .ㅎㅎㅎ
일본과는 60% 정도, 중국동북부와는 40%정도 교집합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중국 사천운남서방은 10%이내
그 시대나 우리나라가 단군 시대와는 연계성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스처럼 작은 폴리스가 여러 있었죠
백제가 이곳 역사를 없애기 위해 그에 관련된 문헌들을 불태워 없애고 외곡해 버린 장소입니다.
와 처음보는 관인데 신기하다..
역사스페셜
신미제국 들먹이려면 백제,고구려보다 많은 전문도기, 시유도기 유물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백제, 고구려의 서진/동진 방문은 5회를 넘지 못하지만... 신미제국은 여러 소국이 최대 30국가, 횟수로는 10회 이상 방문했다.
그러니 알려진 전문도기 수량 2배 이상의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 신미제국이다.
still mystery? then, what do they do? the historians.
역시적 문헌을 찾아야 한다.
전라도의 또다른 왕국은 무엇인가?
놀라운 문명국가었음에도 백제나 신라메 가리워저있는 것이 안타갑다
한국의백제땅은
묘지터 만 쓰고 본토는 중국 우리땅에ㅡ
뭔가 종교적 성지같은 역할이었나봅니다. 문명이나 유적이 또 없으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또 계속 나오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서해바다를 낀 국가를 형성했었고
뭔가 종교적 성지같은 역할이었나봅니다. 문명이나 유적이 또 없으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또 계속 나오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서해바다를 낀 국가를 형성했었고
원래 백제도 개국 시 그냥 소국 중 하나였고 마한이라는 소국연합이 충청 전라도에서 강성했음.
삼국시대전에 어떤시대가 잇엇는가..
이주세력이죠
1. 기원전 184년에 망한 기자 조선의 준왕이 충청도에 오죠
2. 기원전 18년 소서노와 비류가 금강에 와요
보세요 -
백제는 100家에요
온조백제는 10제=10가
비류백제는 90제=90가...
백제의 몸통은 비류 백제에요!
로가? 고대일본꺼?
양산박이 있었구만.
3백호를 다스리는...
기원 후보다 기원 전에 만들어 진 것 같다 ㅋ.
중원깊숙히 있던 대륙의 마한 세력은 백제와 맞나 요서 산동 반도에서 전라도 지역으로 왔던것 같다 규슈지역 까지 퍼져나갔다
새 알모양을 형상화한것 같다
새 토템은 우리민족 고유 문화이다
마한(백제)은 지리적,경제적으로 당시 선진국인 중국산동지역과 중국 중부,
남부인 절강성(상하이),베트남 그리고 지리적,경제적측면에서 후진국인 일본간의
해상중심지에 위치해 3국간의 무역중심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특히 당시 일본은 지리적으로 대륙과 떨어져 있어 문명이 뒤쳐져 있었고 당시
글로벌언어인 한자보급이 거의 안된 상태에 사실상 원시적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신라(가야)에 비해 교류는 적었으나
무역에 관여하는 소수일본인들이 잠깐잠깐 당시 선진국인 마한(백제)에 들러
마한의 선진문명과 풍습을 배워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뭏든 마한(백제)경제적측면에서 자체적으로 평야지대인데다 교역으로 인해 타지역에
비해 풍요로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한(호남 +충청)은 경기도를 기반으로 한 경기호족 왕건과 호남(나주)호족인
나주오씨간의 연합정권차원의 고려를 개국하기 직전인 917년까지 사실상 독자성을
유지한채 존재했음 .
마한(전라)는 백제(서울경기)의 식민지였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충청도 금강 이남부터는 백제의 식민지입니다.
@@김인직-m5y 백제의 본국은 서울이 아닌 요서지역 현 베이징 일대입니다
마한 유적
삼국이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소수의 북방민족들이 들어와서 지배계층이 되고 기존 토착민이 피지배계층이 된 듯
어쩐지...저짝 출신들은 뭔가 다르더라고.생각자체가
전라도가 아니라 남해안쪽이 다르죠. 해양권이니... 일본도 혼슈, 오사아, 큐슈, 다 다르죠 ㅎㅎ
나주? 음.... 어중간... 하다? 그게... 무슨 뜻이지?
팔구천년전 빙하기에 연결되어있었는데 왔다갔다했겠지
역사를 보는 시각이 큰 잘 못 입니다.
힌국인의 시각으로 보기 보다는 왜의 시각으로 해설을 하면 안돼죠.
일본식 전방후원분이라는 것은 매우 잘 못 된 시각이요.
전방후원분이 일본이 먼저 시작을 했다는 것을 증명 할 방법이 있고 그 방법으로 실증을 했어요?
전방후원분이 나주에서 시작을 해서 일본으로 갔다는 것을 말을 해야지.
이런 역사는 뭐 하러 합니까?
지금도 일본의 시각으로 보는 식민사학은 없애야 한다.
영산강 유역의 고대왕국이 뭔지는 역사학자라면 다 알거라.. 인정을 못하는것.
끝까지 남아있던 마한 또는 왜로 나중에 일본으로 넘어간 세력
관심있어서 보다가도 유씨 나오면 뒤로가기 누르게 되네
바남이 우리시골이다
근래에 많이 발굴했지
일본인들은 과거 한반도 남부 지방에 살았습니다.
말을 꺼꾸로 하네. 한반도 남부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지금의 일본 열도로 건너가서 산거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거지, 부모가 자식을 닮았다고 표현하나.
@@msrt9860 전라도의 옹관묘 양식이 나올 떄 이미 한반도에는 삼한이 존재했고 그 이전엔 진국이라는 국가가 또한 존재를 했음. 왜가 전라도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한이 존재했기 때문에 제대로 정착을 못했고 그래서 일본으로 갔던거임. 일본의 영토가 한반도보다 3배나 더 컸고 인구도 작았기 때문에 왜구들이 넘어가 살기 유리했던 조건임. 그래서 4세기가 되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전쟁이 엄청나게 벌어진거임. 한일 양국의 고고학 공통점이 4세기에 전쟁관련유물들인 갑옷, 화살, 철기등이 엄청나게 나온다는거임. 그 이전까지는 무기류들이 그렇게까지 나오지 않음. 즉, 4세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전쟁이 벌어졌다는거고 한국의 경우에는 기록이 비교적 잘 남아 있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내부에서 벌어진 전쟁 관련 기록들이 없기 때문에 알지를 못하는거임. 고고학 유물로 보면 한국이 삼국시대일때 일본 역시도 삼국시대였다고 추정해볼 수 있음.
@@아련한여름 당연하죠 요즘은 역사를 안 가르치니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구나
@@아련한여름 일부는 동족이긴 함. 대표적인 유전자가 C3와 O2b*유전자.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 공유가 됨. 즉, 같은 민족이라는 이야기임.
인류시원은 한반도다 왜 ㅡ 다음 검색
기미가요는 고대 김해김씨를 찬양하는 노래 ㅡ 다음 검색
옹관은 가야, 백제도 있음..그러나 그냥 가야 백제에선 그냥 옹관묘일뿐
백제는 아니야 백제는 중국에 있었으니
202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