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이 죽었을 때 당나라 왕이 상복을 입었다면 당연히 백제국이 황제국이었겠지요. 이 사실은 모든 다른 기록을 부정하고 압도하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다고 황제국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과는 대화 자체를 해서는 안됩니다. 식민 학자들도 문제지만 교과서 벗어난 책을 읽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문제입니다. oecd국가 중에 가장 책을 안 읽는 국민들이라고 합니다. 남 탓할 것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스스로 깨어나려고 해야 합니다. 현대 교육의 90%이상은 거짓이라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고려, 중국 동부를 다스린 나라) 한반도의 서경,개경은 가짜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동이의 "이"자가 오랑캐의 뜻을 갖게 된건 불과 일제강점기 최근의 일입니다. "이"자의 초기 상형문자는 큰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그리고 유물론적으로 보면 중국 산동지역, 절강성지역, 하북지역, 만주, 한반도에 걸처 비파형청동검, 고인돌, 제기 등 같은 문화권을 형성했던 유물들이 또렷하게 중국 중.서부와는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동이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주장하시면, 중국역사서인 구당서와 여러 중국사서 기록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고구려,백제,신라의 후손이 아닌것이 됩니다. !! 중국 동북공정에 동조하면서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화교인가요? 혹시 중국인인가요? 남의 문화와 역사까지 빼앗아 자기들것인냥 포장하는 중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민족입니다. 중국역사를 공부하시면 알겠지만 중국 한족들의 역사는 동.북방 민족들에게 침략받은 역사밖엔 없습니다. 그러니까 몽골역사도 갖다붙이고, 여진족,선비족,거란족 역사까지 지들역사로 갖다붙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추악한 민족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참고로 여진족 금나라를 세운 사람은 "신라인 김함보"입니다. 완안함보라고도 하지만, 왕실기록과 여러사서에는 "김"함보로 기록하고 있고, 신라말기, 왕건이 안휘성 인근의 경주를 본거지로 하고 있던 신라를 접수하고, 고려를 세울무렵. 이에 반대한 신라인 김함보가 여진(말갈)의 땅 완안부로 가서 금(김)나라를 건국합니다. 말갈은 흑수말갈과 남말갈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흑수말갈의 위치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 "흑수하"라는 강이 흐르는 지역에 있던 말갈입니다. 흑룡강성쪽이 아닙니다. 그래서, 북경에 왕성을 두고있던 발해 초기, 당나라가 당과 발해 사이, 즉 태행산맥 위쪽 대동시 인근에 있던 흑수말갈을 회유하려 했던것입니다. 후금(청나라) 왕조의 성씨는 아이신교로 입니다. 즉 김씨 가계 라는 뜻입니다. 또한 초기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이후 고구려, 발해 유민이 중앙아시아로 이주, 몽골 건국에 크게 기여함, .... 몽골 계급체계에 대대로, 고구려,발해 성씨들이 지배)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서안 인근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구테타로 고려가 망하게 되고, 조선초기 수많은 고대사 사서들이 불태워지고, 삼국사마저도 편집되서 원본이 소실된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역사 에 흥미를느껴 국민학 교때부터 多讀하며 꾸 준히 관심을 가졌고 40대부터 재야사학자 들이 드물게나마 三國 大陸設을 주장하는 책 을보면서 관변,강단사 학자들의 왜색사관을 의심하여 환단고기도 강역을보면 부족한점 이많아 아쉬웠어요 최근엔 비주류 이지만 연구하시는 분들이많 아서 흥미를느끼나 선생님의 짧으나마 글 을보고 잘정리된 견해 라 생각합니다👍
선비족 이라는 이름 자체가 고조(선 비)왕의 백성들 이라는 소리. 비왕 이란, 고조선에서 제후국왕을 부르던 호칭. 선비족 모용씨 들이 스스로 고조선의 후예를 자처 하고, 스스로 조선후 라고 했고. 모용은 비석에 "조선건국 고죽위군" 으로 시작함. 고죽=고구려. 고조선이 건국한후, 고구려족이 왕이 되었다는 소리임.
세민을 군으로 칭하고 무왕 붕어 후 현무문에서 애도하였다는 것은 백제와 당의 상하관계를 알게 해줍니다. 《삼국사》와 지나 기록에 삼국이 지나왕조에 조공하였다는 기사는 어불성설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광대한 영역을 가진 강대국이었습니다. 아무리 역사를 왜곡해도 결국 진실은 드러나게 됩니다.
@@박영서-n7k 중국은...어느나라를 말하는가요? 한족의 정체성을 묻는 겁니다. 중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은 어느 나라를 세웠죠? 연대적으로 가까운 청나라는...만주족. 즉 말갈족의 나라입니다. 만족. 여진족 이라고도 하죠. 우리가 알아낸 역사에선 중국 한족은....그냥 대륙의 노예들이던데. 북방기마민족의 노예. 지배자가 아니었어요...문화도 마찬가지고... 중국역사가...그래요. 한족의 나라가 드물어요.
만리장성은 더 이상 기준이 아닙니다. 만리장성계속 연장하는거 봐요 만리장성은 진나라 때 쌓은게 아니고 대부분은 명나라 이후에 쌓은거고 지금 중공도 열심히 쌓고 있습니다. 산해관이 끝점이 된 것도 역사왜곡을 위해 연장하고 연장해서 끝점으로 만든건데 거기서 더 연장해서 지금 길림성까지 왔어요 ㅎㅎ
DNA결과에서도 나왔는데, 한국인은 중국 양쯔강 유역 벼농사 짓던 농민과 유전적으로 유사하다고..아마 2년전 정도에 나왔던 논문이었던듯. 거기가 일본으로 이주한 레이 민족이 살았던 곳이고 당연히 백제 강역이었죠. 양직공도에 백제 언급한부분도 중국이 원문은 공개 안한다고 합니다. 양나라가 백제와 동족이라는 언급이 어딘가 있는듯함.
사서의 소실이.. 크게.. 1. 3국 멸망시에.. 한번 있었고.. 2. 그 다음 몽골의 침입때.. 3. 이후 고려가 대륙에서 심양쪽으로 밀려나면서.. 4. 그리고 조선왕조 초기에 명과 역사정리하면서.. 역사 재편.. 5. 그리고 임진왜란 시에 경복궁 불타면서.. 싹다 소실.. 6. 마지막으로 일재 강점기에 .. 전부 정리된 거죠. 그럼에도.. 솔직히 아직도 중국에서도 무덤등에서 의외로 많이 나올 거라고 보이고.. 일본 왕실 서고에도 쫙 깔려 있겠죠. 그리고 자칭 경주에 있는 그 많은 무덤들도.. 전부 파보면.. 뭔가.. 나올 겁니다. 아마.. 우리가 잘 모르는 역사일 걸요. ㅋ 이사지왕과 같은.. 진짜 한반도 역사겠죠.
많았어요. 우리가 제일 으뜸이며 상국이였습니다. 그리고 기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민족이죠. 그래서 주변국들이 우리를 따라 자기네들도 사서를 왕명으로 만들고 정통국가로 보이려고 했죠. 역사서는 우리가 제일 많았죠. 그런데 조선이 전부 불 살라 없애버렸어요. 그 나마 숨어서 살아 남았던 책들도 일제시대때 전부 불 타 없어지거나 일본열도로 넘어갔습니다. 살아 남은 우리의 역사서들이 일본에 잘 보관되어 있길 고대할 따름입니다. 일본이 너무 밉지만 문화재를 아끼고 소중하게 보존하는 것은 잘 하기에 그들을 믿을 수 밖에요.
" 역사상식을 뛰어넘는 " 이라고 표현 하였듯이, 우리 역사는 그만큼 제대로 된 역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역사 왜곡 날조 조작의 역사 , 아직 식민지 역사를 벗어나지 못한 역사 아직도 일제시대 만들어진 조선사편수회 이병도가 건재하고, 그 강단역사를 주름 잡고 있는 한국 사학계 역사가 제대로 설 날이 그 언제가 될까....
하늘로부터 받은 제사권이 중요했었죠 그 당시는 우리 삼국의 정통성을 보다 잘 알고 있었겠죠. 환인 환웅 단군의 적장자 혹 형제나 왕족들이 갈라져 나라를 세워 그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백성을 규합하는 가장 큰 명분이기 때문 힘이 강대하더라도 백제의 정통성에 반할수 없기에 예를 갖춰야죠 제사권이 가정으로 내려온것도 전에는 임금만 올렸죠 예송론쟁의 쟁점 또한 적장자로써 군주의 제사절차냐 백성들의 절차냐 하는 정통성의 문제이므로 송시열이 사사되는 건 정해진 수순일겁니다 숙종의 네번의 환국은 결국 왕권강화를 위한 것입니다
고대 조상이 같다하여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모용씨의 후연과 고구려는 고대에는 한민족이었다 헌데 이들은 요동을 사이에 두고 엄청 싸워댔다 한민족이라면서 그렇게 피터지게 싸우나 같은 민족이라도 떨어진 기간이 길면 당현히 적이 되는 겁니다 후연이 망하면서 고구려에 수많은 유민이 들어오고 그들을 고구려 남쪽 지역에 땅을 때어주며 거수국 형식으로 국가를 보존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장수왕이 연왕을 시해하려 하니 이들이 각각 고구려를 버리고 백제와 신라로 스며 듭니다 그러면서 신라 백제의 왕이 되고 기득권이 됩니다 문주왕부터는 후연의 후예가 왕이 되는 것이고 그들의 영토는 대륙 입니다 후연은 당과 함께 선족 출신이니 이세민이 무왕의 장례에 상복을 입고 통곡하였다는 것은 같은 선족 출신이기에 그러합니다 이때부터는 한민족의 역사관이 아니라 선족의 역사 입니다 이를 김부식은 이름이 같은 그 나라들을 합쳐버려 그리된 것입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선족이 장악하고 부터 대륙은 한민족과의 관계는 끊어 진겁니다
역사의 재인식 이라는 대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전국민의 통일된 염원이 모아져야합니다. 한중일 삼국의 역사사료를 크로스 쳌크하고 그시대의 일어난 사건들을 그시대 사람들의 인식체계로 해석해도 한중일삼국의 관점이 다르면 해석은 달라집니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면 자존심과 영토콤플렉스를 초월하여 진실된 역사를 밝혀내리라 믿습니다. 한중일 역사학도들의건투를 빕니다.
북위 효문제도 고구려 장수왕이 죽자 동문 밖에나가 소복을 입고 곡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武王으로 시호를 정했다면 왕이 생전에 필시 영토정복의 위업이 있었을 것이고 隨 문제가 중원통일을 하였을 때도 안휘 강소 절강 복건의 일부 연안지대는 영향이 미치지 못하였고 당 고종과 측천무후 시대에 이르러서야 당에 편입되었슴.
백제왕이 죽었을 때 당나라 왕이 상복을 입었다면 당연히 백제국이 황제국이었겠지요.
이 사실은 모든 다른 기록을 부정하고 압도하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다고 황제국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과는 대화 자체를 해서는 안됩니다.
식민 학자들도 문제지만 교과서 벗어난 책을 읽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문제입니다.
oecd국가 중에 가장 책을 안 읽는 국민들이라고 합니다.
남 탓할 것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스스로 깨어나려고 해야 합니다.
현대 교육의 90%이상은 거짓이라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ㅋㅋㅋㅋ
그 당시 백제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습니다.
바로 북경 아래가 백제 땅이었습니다.
백제가 힘도 강대하였구요
당시에 까불면 바로 주금이었죠
당나라 정도는 백제의 껌이었습니다.
@@월군-v8j당신은 친구가 죽는데 상복 입나요 어찌 그리 심사가 비뚤어져 있나요?
선비는 머리 밀고 부여 풍습 받았던 부여고구려백제 속족.후예 거란이 고구려를 조상이라 했지.거꾸러 동명왕이 선비니 하고 있어
선비족은 머리 밀고 부여 풍습 받고 살았던 부여 고구려 백제 속 족. 후예 거란족이 고구려를 조상이라 했지. 그 당 왕이 부여 왕족 지류일 수도 있는 거.
@@mh-gq3oq
ㅋㅋㅋㅋㅋㅋ
환자들이 넘 많다
식민사학자들을 몰아내자.. 식민사학자라 부르지도 말아야 한다. 퇴출 시켜야
제대로 연구하지않는 자들은 그들에 동조하는 간첩이거나 매국자로 간주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그놈들이 우리나라 사학계를 꽉 틀어쥐고 있는게 문제.. 해결안되는 이유는 이번 의사증원 사태의 원인에서 처럼 밥그릇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럴려면 전작권을 찾아와야 하구요 또 그것을 위해선 제대로 된 정치인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전자개표기를 퇴출시켜야 하는 것이죠.
@@바람의그림자-k6m 전작권을 가져오면 미군이 한국을 도울 이유가 없죠. 문재인 대통령이 돼도, 막상 못하는건 이유가 있음. 전작권 회수하면 한국은 멸망이라는걸 아니까 ㅋㅋ
어용교수
기록은 차고 넘칩니다.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80년동안 식민역사교육 일제가 교과서 끝내주세요 감사합니다
백제일본입장에선 한반도에서 강제로 섬으로 떠나야했던 사람들인데 그원한이 가벼울까?
조선 스스로가 중국에 사대하기 위해 한반도를 벗어난 역사를 모두 폐기했음 단군조선도 부정하고 기자조선부터 기술했음 수서령을 내려 중국에 거스르는 역사서를 분서갱유함 일본왕실은 백제의 후손이며 백제 멸망때 일본에너 1000여척의 배를 보내 백강전투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움
백제가얼마나크고 강대했는지 짐작이가네요.
띵하기는? 한단고기충이구나. 그러케 큰 나라었다면 당이 쳐들어 올 쨉이 되겠냐?
(고려, 중국 동부를 다스린 나라)
한반도의 서경,개경은 가짜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동이의 "이"자가 오랑캐의 뜻을 갖게 된건 불과 일제강점기 최근의 일입니다.
"이"자의 초기 상형문자는 큰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그리고 유물론적으로 보면 중국 산동지역, 절강성지역, 하북지역, 만주, 한반도에 걸처 비파형청동검, 고인돌, 제기 등 같은 문화권을 형성했던 유물들이 또렷하게 중국 중.서부와는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동이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주장하시면, 중국역사서인 구당서와 여러 중국사서 기록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고구려,백제,신라의 후손이 아닌것이 됩니다. !!
중국 동북공정에 동조하면서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화교인가요?
혹시 중국인인가요?
남의 문화와 역사까지 빼앗아 자기들것인냥 포장하는 중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민족입니다.
중국역사를 공부하시면 알겠지만 중국 한족들의 역사는 동.북방 민족들에게 침략받은 역사밖엔 없습니다.
그러니까 몽골역사도 갖다붙이고, 여진족,선비족,거란족 역사까지 지들역사로 갖다붙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추악한 민족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참고로 여진족 금나라를 세운 사람은 "신라인 김함보"입니다. 완안함보라고도 하지만, 왕실기록과 여러사서에는 "김"함보로 기록하고 있고,
신라말기, 왕건이 안휘성 인근의 경주를 본거지로 하고 있던 신라를 접수하고, 고려를 세울무렵.
이에 반대한 신라인 김함보가 여진(말갈)의 땅 완안부로 가서 금(김)나라를 건국합니다.
말갈은 흑수말갈과 남말갈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흑수말갈의 위치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 "흑수하"라는 강이 흐르는 지역에 있던 말갈입니다.
흑룡강성쪽이 아닙니다.
그래서, 북경에 왕성을 두고있던 발해 초기, 당나라가 당과 발해 사이, 즉 태행산맥 위쪽 대동시 인근에 있던 흑수말갈을 회유하려 했던것입니다.
후금(청나라) 왕조의 성씨는 아이신교로 입니다.
즉 김씨 가계 라는 뜻입니다.
또한 초기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이후 고구려, 발해 유민이 중앙아시아로 이주, 몽골 건국에 크게 기여함, .... 몽골 계급체계에 대대로, 고구려,발해 성씨들이 지배)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서안 인근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구테타로 고려가 망하게 되고, 조선초기 수많은 고대사 사서들이 불태워지고, 삼국사마저도 편집되서 원본이 소실된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역사
에 흥미를느껴 국민학
교때부터 多讀하며 꾸
준히 관심을 가졌고
40대부터 재야사학자
들이 드물게나마 三國
大陸設을 주장하는 책
을보면서 관변,강단사
학자들의 왜색사관을
의심하여 환단고기도
강역을보면 부족한점
이많아 아쉬웠어요
최근엔 비주류 이지만
연구하시는 분들이많
아서 흥미를느끼나
선생님의 짧으나마 글
을보고 잘정리된 견해
라 생각합니다👍
님이 정리해 주신 내용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아리송 했지만 제 니름대로 상상했던 내용과 거의 일치하네요. 감사합니다.
아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일제식민사학은 모두 다 싹 쓰러서 바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식민사학ㅋㅋㅋㅋㅋ 백제의 후손이 일본인데..
전라도 = 백제 = 일본..
대체 누가 식민사학인가..
멍청하다
@@이름-e4c배우는 교과서도 전라도 보단 충청도가 백제임 폄하 존나게 하네 경상도는 그럼 중공.친일 다하는거임ㅋㅋ
@@범내려온다-k3f충청도만 백제냐? 한성백제부터 익산까지 백제의 도읍지였다 백제가 멸망하자 일본에서 1000척의 전함을보내 백강전투에서 백제부흥을 위해 싸웠다
백제 신라 고구려가 현재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다는 사실은 이제 부정할 수 없다
도대체 얼마나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건가
영국은 아메리카를 지배했지.
@@j3459 수구초심
@@j3459당신 대조선파인 거 같은데? 맞지??
중국 일본 북한 다 전부 한민족입니다.. 우리나라가 이세나라를 전부시러하죠? 일루미나티 영국 미국 프랑스애들이 이렇게 조작한겁니다 힘합치지못하게하고 분열되라고
일루미도 우리 민족입니다.
그들은 결국 우리를 도와주는 셈이 됩니다.
백제가 지금의 중공 산동반도 서쪽에 있어 22담로를 두고 강력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백제 강역이 진짜 백제의 위치였으며 한반도에는 백제의 일부 담로가 있었을것으로 생각합니다
@@남성송기준-m5w 웃기지 좀 마세요. 백제 왕릉원 가보셨어요 ?
그리고 무령왕릉은 묘지석 까지 나왔는데. 엉뚱한 주장 계속 펴시네. 어리석은 분 들.
@@risekim 이런글 쓰는 님도 어리석어요~
@@realtormk1976 어리석긴. 님들만 할까요 ?
백제가 지금의 중국땅 에 있었다면
백제가 당나라에 망했는데, 백제유민도 중국것. 백제문화도 중국것 입니까 ? 난 당신들의 의도가 의심스러워요.
@@realtormk1976 게다가 일본것들이. 백제부흥운동 이라고 백제땅 에 들어왔었는데. . 그게 산동반도 라면 그 시절 중국대륙에 일본이 진출했다는 건가요 ? 정말 ?
@@risekim진출을 한 게 아니라 패배하고 돌아갔죠.
대한민국의 국사교과서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올바른 내용으로 바꿔야 합니다.
책보고님의 유트브를 보시면 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고려시대 삼국시대 본토는 광활한 중국땅이 였음이 중국 수많은 역사서에 셀수도 없이 기록돼있습니다
모든게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볼수있읍니다
역사제대로 연구하면 학위도 못받고 제도권에서 밥줄도 끊긴다는거.. 잘 듣고갑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이죠..
식민사관이 장악한 곳이라 개혁이 아닌 숙청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일본 섬이 된 대마도 지명을 생각해 보면 한반도는 마한이었습니다. 마한과 마주보는 섬이라서 대마도입니다.
오😮
워ㅡ 이렇게 유추해본다면 진한 변한의 위치가 몹시 궁금해지네여 역사의 진실이 ㅡ
80년대 역사 교과서에는 마한,진한
변한이 한반도안에 있었는데 아닌가
보죠?
@@하슬라-i8o
대마도의 이름이 그 뜻이였군요.
몰랐던 것을 새로 배우고 갑니다.
백제 신라 고구려는 중원 대륙에 있었고 백제는 그 가운데 쯤 있었습니다.
사람 죽어 행여 나갈 때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북망산천.. 이 상여곡은 우리 고유의 장례 문화를 나타내며
그래서 백제 왕족이 북망산에 많이 묻혀 있는 것입니다!
당나라 이세민은 선비족의 후예이고 백제 무왕은 선비족인 졸본부여 동명왕의 후예인 비류백제의 후손입니다 따라서 ♥동명왕의 졸본부여는♥ 선비족의 적통이기에, 비류백제도 선비족 적통이니 선비족 방계인 당나라는 선비족 적통인 비류백제 무왕을 천자로 인정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고대국가는♥ 해모수의 북부여족과 동명왕의 졸본부여족으로 나누어서 봐야 합니다 북부여족은 오환계열로 오환(말갈),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로 이어지고, 졸본부여족은 선비계열로 선비, 졸본부여, 비류백제, 한성백제로 이어집니다
1) 개로왕은 부여의 여씨, 2) 문주왕과 동성왕은 모용의 모씨(삼근왕도 모씨로 추정), 3) 무령왕 이후부터는 부여인 비류백제 우태의 우씨로 추정 됩니다 그래서 부여인 비류백제의 후손인 성왕이 백제 국호를 남부여(졸본부여 남쪽)로 바꾼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요.
♥주서부터는 백제 시조가♥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부여 구태(위구태)로 나오니, 무령왕 부터 북주시대에는 비류백제의 우씨가 백제왕이 된 것이다
선비족 이라는 이름 자체가 고조(선 비)왕의 백성들 이라는 소리.
비왕 이란, 고조선에서 제후국왕을 부르던 호칭. 선비족 모용씨 들이 스스로 고조선의 후예를 자처 하고,
스스로 조선후 라고 했고. 모용은 비석에 "조선건국 고죽위군" 으로 시작함. 고죽=고구려.
고조선이 건국한후, 고구려족이 왕이 되었다는 소리임.
@@수구리suquri 구태 백제는 산동성 제나라 땅에 세워진 나라. 그래서 백제 임.
구태 의 나라 = 구태라 = 구다라
역사를 잃은자 번영할 수 없다. 역사는 그 나라의 정신이며 앞으로 살아가야 할 명분이다.
지랄
네 귀한 영상 잘봤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서들을 찾아내서, 우리의 역사를 확대시켜주시는지, 늘 감사하고 감탄할뿐입니다.
감사드립니다❤절강성.에
황칠이 나는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역사의 자주독립을 향하여~~~~
쿠릴타이선생님 수고 많으십니다.
이세민이 고구려 왕 죽었을때도 거애 한 기록있습니다.
항상 심도있는 영상 잘 보고있습니다
세민을 군으로 칭하고 무왕 붕어 후 현무문에서 애도하였다는 것은 백제와 당의 상하관계를 알게 해줍니다. 《삼국사》와 지나 기록에 삼국이 지나왕조에 조공하였다는 기사는 어불성설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광대한 영역을 가진 강대국이었습니다. 아무리 역사를 왜곡해도 결국 진실은 드러나게 됩니다.
우와........백제는 중국에 있었네.
심지어....당나라도 백제의 제후국이었구만....백제무왕이 죽자....당 이세민이 상복을 입고 울었다니....
백제가 황제국......이라는 뜻.
갈석산이 고구려의 위쪽에 있었구요
산동반도가 백제 땅이었습니다.
당시 대륙의 강자가 백제였습니다.
세종께서 중국을 잘 받들어 평화속에 한글을 창제 하셨습니다
@@박영서-n7k
중국은...어느나라를 말하는가요?
한족의 정체성을 묻는 겁니다.
중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은
어느 나라를 세웠죠?
연대적으로 가까운 청나라는...만주족.
즉 말갈족의 나라입니다.
만족. 여진족 이라고도 하죠.
우리가 알아낸 역사에선
중국 한족은....그냥 대륙의 노예들이던데.
북방기마민족의 노예.
지배자가 아니었어요...문화도 마찬가지고...
중국역사가...그래요.
한족의 나라가 드물어요.
뭔 도그사운드
@@박영서-n7k 중국은 1950년에 만든 나라 아님?ㅋㅋㅋ 뭔소리야ㅋㅋㅋ
정치인들부터 역사를 다시공부시켜야 합니다.
강단사학계의 눈치보지말고..재야사학계의 당돌함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시야를 더욱 넓혀주세요
공교롭게 전라도에서 황칠나무가 서식하기는 합니다만 소량이지요.
언제쯤 올바른 우리역사를 되찾을수 있을지 기약이 없네요.
친일사학자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코웃음치며 "반짜이"를 외치고 있겠지요
진안 마이산 상가에 가면 묘목도 팝니다.
황칠나무 묘목요
친정부모님은 황칠나무 잎 잔가지로 우려낸 차를 물처럼 마시고 계셔요. 전남 고흥 한나수목원에서 구입하시죠.
백제가 일본열도로 가서 일본을 건립한것이니,
친일사학자를 욕할수도 없는거 아닌가요?
일본이 열도 부여인데, 친일이 죄인가?
앞뒤가 안맞는 주장.
@@davidjacobs8558어떤 사학자는 일본사는 한국사의 한갈래로 봐야한다는 주장도 하더군요. 그리고 일본은 백제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영토는 만리장성이 경계성일수도 있슴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난리장성을 쌓았겠어요.
왜곡됀 역사를 바로 잡아야.
만리장성은 더 이상 기준이 아닙니다. 만리장성계속 연장하는거 봐요
만리장성은 진나라 때 쌓은게 아니고 대부분은 명나라 이후에 쌓은거고 지금 중공도 열심히 쌓고 있습니다.
산해관이 끝점이 된 것도 역사왜곡을 위해 연장하고 연장해서 끝점으로 만든건데 거기서 더 연장해서 지금 길림성까지 왔어요 ㅎㅎ
서생님의 고견 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식민사학 없애기위해 구독 좋아요 누름.
역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친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중국.러시아.일본.몽골 동남아 우리고토 우리역사무대 국사편찬위원회 다시 국사편찬 친일파사학자 아웃.민족사학자 등용 다시 우리고토수복.회복.역사문화재발굴 동북아시아공동체 화폐 한국이 주도 비자없이 교류.하나의공동나라 만들자.우리역사 찬란한
우리의 마지막 과업은 역사광복이라는 걸
실감케하는 고마운 역사강의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어김없이 유익하고 도움되는 영상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
DNA결과에서도 나왔는데, 한국인은 중국 양쯔강 유역 벼농사 짓던 농민과 유전적으로 유사하다고..아마 2년전 정도에 나왔던 논문이었던듯. 거기가 일본으로 이주한 레이 민족이 살았던 곳이고 당연히 백제 강역이었죠. 양직공도에 백제 언급한부분도 중국이 원문은 공개 안한다고 합니다. 양나라가 백제와 동족이라는 언급이 어딘가 있는듯함.
옆동네 세민이 이야기는 인상적입니다.
감사합니다
훌룡한 강의입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일본 천왕도 백제후손으로 매년 전라도에 와서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가는데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당나라까지 연계되어 있었군요.
강좌
감사합니다 😊
고려사에 없는 고려수도 강화도 500년동안 날짜 있는거 1개
절강성에 백제성 있다
삼협댐 때문에 수몰 됬어
삼협댐과 절강성위치 알고나 말을해라
결국중국에 신라 고구려 백제가있었다는명확한증거네요.우리땅이였네 어쩌다가 뺏겨버린겨. ㅠㅠ
감사합니다 ❤
북위황제도 장수왕죽었을때 소복입고 곡을 했다던데요
손자라고 어디서 본거같네요. 딸의 아들
우리의 상고사는 다시 정리가 필요할 듯 하군요
이문제는 이병도와
이병도 후학 한국의 역사계에 물어보시라
식민사학의거두 이병도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하루빨리. 몰아내고 단죄해야함
그러게말입니다. 측천무후도 신라왕이 죽자 대성통곡했다고 하는데.. 왜 그런걸까요....
정치적인 쇼겠죠. 삼국지 보면 많이 나옴. 제갈량도 주유가 죽고 대성통곡 하고 조조도 눈물 한방울 안 울릴 것 같은 인간인데 정치적인 쇼를 하려고 우는 장면이 많이 나옴
매우 좋은 역사적 사실을 알게되어 기쁩니다. 구독하겠습니다.
장수태왕 붕어에도 북위 효문제는 상복 입고 곡을 했다는...
당시 당나라는 없고 당조였으니까
백제는 상국이지
우리나라 고대왕국 고조선부터 중세왕국 고려까지 실록(몽골과 전쟁으로) 등의 그 시대(백제당시 사관들이 기록한 사서 등)에 기록한 사서가 없어서 아쉬워요.
아마 일본넘들이 다 가져갔을거에요. 일본 왕실 금고에 있을것
세종이 분서갱유 해서 그렇습니다. 이씨조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모든 사서를 전국에서 수거하고 모두 불태워 버렸죠
사서의 소실이.. 크게.. 1. 3국 멸망시에.. 한번 있었고.. 2. 그 다음 몽골의 침입때.. 3. 이후 고려가 대륙에서 심양쪽으로 밀려나면서.. 4. 그리고 조선왕조 초기에 명과 역사정리하면서..
역사 재편.. 5. 그리고 임진왜란 시에 경복궁 불타면서.. 싹다 소실.. 6. 마지막으로 일재 강점기에 .. 전부 정리된 거죠.
그럼에도.. 솔직히 아직도 중국에서도 무덤등에서 의외로 많이 나올 거라고 보이고.. 일본 왕실 서고에도 쫙 깔려 있겠죠.
그리고 자칭 경주에 있는 그 많은 무덤들도.. 전부 파보면.. 뭔가.. 나올 겁니다. 아마.. 우리가 잘 모르는 역사일 걸요. ㅋ 이사지왕과 같은.. 진짜 한반도 역사겠죠.
많았어요. 우리가 제일 으뜸이며 상국이였습니다. 그리고 기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민족이죠. 그래서 주변국들이 우리를 따라 자기네들도 사서를 왕명으로 만들고 정통국가로 보이려고 했죠. 역사서는 우리가 제일 많았죠. 그런데 조선이 전부 불 살라 없애버렸어요. 그 나마 숨어서 살아 남았던 책들도 일제시대때 전부 불 타 없어지거나 일본열도로 넘어갔습니다. 살아 남은 우리의 역사서들이 일본에 잘 보관되어 있길 고대할 따름입니다.
일본이 너무 밉지만 문화재를 아끼고 소중하게 보존하는 것은 잘 하기에 그들을 믿을 수 밖에요.
대마도 우리땅.
중국도....내땅.
우리는 부동산에 강한 나라.😮
우리나라는 정치계보다 교육계를 다시 시작해야함
아마도 역사에서 지워진 것이 백제가 사라지기 전 까지는 백제가 천자국으로서 존재했고 이후 그 지위가 당으로 넘어갔으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기 저기 읽고 들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 역사상식을 뛰어넘는 " 이라고 표현 하였듯이, 우리 역사는 그만큼 제대로 된 역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역사 왜곡 날조 조작의 역사 , 아직 식민지 역사를 벗어나지 못한 역사
아직도 일제시대 만들어진 조선사편수회 이병도가 건재하고, 그 강단역사를 주름 잡고 있는 한국 사학계
역사가 제대로 설 날이 그 언제가 될까....
백제가 중국대륙에 존재했다는 반증 아닐까요
연회 추리 인상깊었네요😊
다른 유튜버 언급해서 죄송한데 책보고tv 채널보면 백제랑 신라가 중국땅에 있었던 사실이 고전 사서에 많이 남아있대요 한반도에서만 있던 나라가 아니라고 함
북애자규원사화는 우리 선조광역을 말한다
중원은 쓸모없는 땅이어서 버린 것이다.
'기호지방'이라면 경기도와 호남이 붙어야 가능한 명칭으로 한국에는 중간에 충남이 끼어 있음. 즉 '자칭 양반,선비의 고장'이라 우기는 곳은 시원찮은 후손들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
중국남부의 왜국의 종족을 경남에 이주시키니 하는 짓들이 형편 없음 창원,통영,밀양,함양,산청등 경찰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근원
당나라.. 세민이.. 속이.. 뻥!
책보고님의 주장과 다르지 않군요.잘 보고 있습니다.
❤
하늘로부터 받은 제사권이 중요했었죠
그 당시는 우리 삼국의 정통성을 보다 잘 알고 있었겠죠. 환인 환웅 단군의 적장자 혹 형제나 왕족들이 갈라져
나라를 세워 그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백성을 규합하는 가장 큰 명분이기 때문
힘이 강대하더라도 백제의 정통성에 반할수 없기에 예를 갖춰야죠
제사권이 가정으로 내려온것도 전에는 임금만 올렸죠
예송론쟁의 쟁점 또한 적장자로써 군주의 제사절차냐 백성들의 절차냐
하는 정통성의 문제이므로
송시열이 사사되는 건 정해진 수순일겁니다 숙종의 네번의 환국은 결국 왕권강화를 위한 것입니다
이세민이 무왕의 숨겨진 아들이었나 봅니다. 지 애비가 죽지 않고서야 어찌 소복을 입고 곡을 하리요.
백제가 현재 북경에 근방에 있었나봐 !
고대 조상이 같다하여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모용씨의 후연과
고구려는 고대에는 한민족이었다
헌데 이들은 요동을 사이에 두고
엄청 싸워댔다 한민족이라면서
그렇게 피터지게 싸우나
같은 민족이라도
떨어진 기간이 길면
당현히 적이 되는 겁니다
후연이 망하면서 고구려에
수많은 유민이 들어오고
그들을 고구려 남쪽 지역에
땅을 때어주며 거수국 형식으로
국가를 보존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장수왕이 연왕을 시해하려 하니
이들이 각각 고구려를 버리고
백제와 신라로 스며 듭니다
그러면서 신라 백제의 왕이 되고
기득권이 됩니다
문주왕부터는 후연의 후예가
왕이 되는 것이고
그들의 영토는 대륙 입니다
후연은 당과 함께 선족 출신이니
이세민이 무왕의 장례에
상복을 입고 통곡하였다는 것은
같은 선족 출신이기에 그러합니다
이때부터는 한민족의
역사관이 아니라
선족의 역사 입니다
이를 김부식은 이름이 같은
그 나라들을 합쳐버려 그리된 것입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선족이 장악하고 부터
대륙은 한민족과의
관계는 끊어 진겁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장학생과 중공장학생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역사의 재인식 이라는 대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전국민의 통일된 염원이 모아져야합니다. 한중일 삼국의 역사사료를 크로스 쳌크하고 그시대의 일어난 사건들을 그시대 사람들의 인식체계로 해석해도 한중일삼국의 관점이 다르면 해석은 달라집니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면 자존심과 영토콤플렉스를 초월하여 진실된 역사를 밝혀내리라 믿습니다. 한중일 역사학도들의건투를 빕니다.
북위 효문제도 고구려 장수왕이 죽자 동문 밖에나가 소복을 입고 곡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武王으로 시호를 정했다면 왕이 생전에 필시 영토정복의 위업이 있었을 것이고 隨 문제가 중원통일을 하였을 때도 안휘 강소 절강 복건의 일부 연안지대는 영향이 미치지 못하였고 당 고종과 측천무후 시대에 이르러서야 당에 편입되었슴.
지도를 참잘 선택하셨네요
가까운 혈족이엇을수도. 요동은 백제의 땅이었습니다. 당시 서해는 육지였고
백제 왕궁도 한성도 옹주도 익산도 산둥반도애 있나. 거긴 곡부 공자의 출생지도 있는데.
탱리는 텡그리를 소리나는대로 표기한걸로 보여집니다.
유튜브 청화수님 왈 졸본을 일본으로 발음을 연관시키면 왜 일본에 소서노신화가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하였어요 청화수님 유튜브도 좋댓구알~~
그런 세민이가 죽자 그 아들놈이 백제를 멸망시켰단 말인가?
권력에 눈이 먼거죠
그 당시는 당나라가 백제을 황제 나라로 모셨을 것임 . 후에 당이 세지니 신라와 함께 백제를 치고 ,고구려치고 난뒤
신라 뒷통수치다가 져서 과거 약한 나라로 돌아 갔을 것으로 생각됨
구독 눌렀습니다❤
당왕 세민이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 사서들의 앞뒤가 안맞다는건... 후대에 글자 바꿔치기나 관계를 역으로 적는 등 뜯어고쳤을 가능성이 다분하네요
영상 잘 보고 갑니다 : )
책보고님과 쿠릴타이님 의견이 일치 하는곳이 꽤 많으니, 이 두 분이 서로 의견 나누며 올바른 소리를 더 키워 나가면 좋겠습니다!!
나라간 혼맥은 흔한일이에요.. 신라. 가야 금동관문화 다 백제 혼맥세력이죠
수양제가 만들었다는 대운하의 위치는 어딘가요? 이 지도로는 백제와 고구려 신라 땅인가요? 이상하네요?
오르도스 북방ㅡㅡ음산산맥아레. ㅡㅡ황하가 산서성 서촉 자나서.
자기나라의 역사를
자기역사 학자가 많은토론을거처기록
해야 하거늘 남의 나라 역사를배운 선생의 지도받은 재자들이 우리역사를쓰고 가르친다니 이런 모순이있나 과히 짐승나라의 썩은 법이다 당장 고처라
일본이쳐들어와언어와글을말살시킨이유가중국이역사를왜곡한사실이다육십년전에어른들이역사가잘못돼다고 바르겠다고노력하는분들이계셨는데 다 고인!됐었는데
😉👍
황칠나무도 잘 몰랐네요 종려나무와 전혀 다른데요
훌용해..
천자국이 백제엿나보네
세민이는 실상 황제 취급 못받앗고
당나라에 무슨 중화사상이 잇나요
중화사상은 송나라 주자가
백제가황제국이고당나라는제후국지식민사관과일본의역사왜곡으로인하여우리영토가축소되었지지금의산등반도는백제영토가맞지백제도온조백제와비류백제을하나로보는잘못이있지비류백제도400년간존속했는데
당나라는 흉노족의 나라지요. 흉노족의 활동근거지와 확장지와 거의 일치합니다. 신라 지배층도 흉노족일파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으니.. 당시 국제역학관계상 신라와 당나라의 동맹은 당연하죠.
그럼 나당연합군은 어떻게 설명 되어야할까요?
툭하면 모반하여 새로운 나라 세우고 심하면 제 아비도 죽이고 왕이 되는 곳이였으니 뭔들 못했을까요..
요동성 산동성은 고대 우리나라 영토? 고려말 조선초까지만 해도 요동성은 우리나라 영토로 인식?
당이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는데 백제왕 죽음에 슬퍼했다?
아ᆢ 당 건국 초기에는 그랬다는건데 왜 멸망시켰을까?
이세민은 백제에
후손인거지요
백제 무왕은 중국으로 건너간후
지금중국땅 의 백제에서 왕으로 재위하다가 죽은것으로 아는데요
고려가 중국에 있었다면 제왕운기를 지은 이승휴와 천은사가 왜 한반도 삼척에 존재하는가?
당나라만 황제였을까?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도 황제였다
저게 통곡했다가 아니라 추도식을 거행했다는 말입니다
그냥 제후왕이 죽었으니 내가 추도식은 해줄게입니다
오늘에야 봅니다. 쿠릴타이 TV 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나이스
후백제 망하고 넘어간 백제왕자가 닿은 지역이 지금 일본의 정치 1번지... 우리는 아직도 일재 잔재 기득이 주도하는 나라이고 결국 백제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