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로 증이인~으~~ㄷ을 삼어" (3:32) ... 이 대목 증인"을"은 말로 만 듣던 그 유명한 안향련의 "을"목이네요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소리를 좌우로 흔들다가 끝트리에서 살짝 쳐주는 어느 명창도 이 대목을 이런 구성으로 부르는 걸 못 봤어요... 과연 천하명창이란 호칭에 걸맞죠
30여년전쯤에 판소리 관심생겼을대 우연히 라디오에서 아니 이런 목소리가? 하고 집중하게 했던 안향련 명창 그 이후 자료도 찾아보고 음반 나온거 있으면 사서 듣고 했었는데 유튭이 좋은 자료실을 합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스스로 삶을 끊으신 그 느낌이 목소리에도 왠지 담겨 있는듯
고인이 된 얀향련 명창은 앞으로 지금도 없지 않은가. 앞으로 100 년 후에도 안 나올 것이다. 조상현 선생도 남자 소리꾼으로서는 판을 막은 분이다. 국가 유산청(전신은 문화재청) 관리가 잘 못 판단하여 조 명창을 인격 살인을 했다. 판소리 소리를 하는데 아쟁을 왜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창극 시절을 생각해서 그런 악기를 쓰는 모양인데 안 쓰는 게 소리를 살리는 길이다.
@@코스모스-j7r 당시는 소리꾼들이 생계 유지가 어려워서 잠시 그런 것이고 국립 창극단이 생기고 난 다음에 월급을 받기 시작을 했다고 한다. 당시 강종철 님이 증언을 해 주었습니다. 사연은 이러하다. 71 년 도 쯤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을 했을 적에 일장 훈시를 하고 나서 단원들과 한가지 씩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하자 가장 소장측인 깅종철님이 나서서 < 지금 공연할 때마다 쥐꼬리만큼 출연비;를 받는데 이것 가지고서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월급을 주십시요> 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한 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고 한 다음 다음 달 부터 월급이 나왔다고 한다. 15000원 쯤 나왔다고 한다. 당시 이 돈은 매우 큰 돈이며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50 원이고 지하철 공사가 막 시작 할 무렵이다. 9급 공무원 월급이 5000 원 할 당시라고 한다. 소주 한 병 진로가 40 원 할 때이다.
"일월로 증이인~으~~ㄷ을 삼어" (3:32) ...
이 대목 증인"을"은 말로 만 듣던 그 유명한 안향련의 "을"목이네요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소리를 좌우로 흔들다가 끝트리에서 살짝 쳐주는
어느 명창도 이 대목을 이런 구성으로 부르는 걸 못 봤어요...
과연 천하명창이란 호칭에 걸맞죠
너무 일찍 가셔서 공연 볼 수가 없었는데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안향련선생님.
천정을 뚫고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생전 육성 소리가 그립네요...
판소리하시는 분들 모두 힘내시고 행복하세요.
천 하 제일 명 창 !
요절 하시다니 !
너무나 애석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
30여년전쯤에 판소리 관심생겼을대 우연히 라디오에서 아니 이런 목소리가?
하고 집중하게 했던 안향련 명창 그 이후 자료도 찾아보고 음반 나온거 있으면 사서 듣고 했었는데 유튭이 좋은 자료실을 합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스스로 삶을 끊으신 그 느낌이 목소리에도 왠지 담겨 있는듯
참으로 하늘이 내린 목
어릴쩍 정말 넘 좋아해던 분이였는데 참으로 안타가운 안향련 그리 빨리가셨단 말인가요 많이보고 싶네요
최고의 명창이십니다~
살어계셨음 을마나 좋았을까요~
두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
그때, 그 애절한 심정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합니다.
김소희명창의 수제자이셨는데, 아직까지도 판소리만큼은 안향년에 비길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절절한곡 안향련님 엄마도좋아 하셨지요 울엄마도 창하셨는돼 지금은아주먼곳에 보고싶네요
너무잘하시네요너무아까운명창이시네슬프다
절세의미인절창이그립습니다
비운의 큰 명창 안향련
감사히 잘듣고 갑니다.
저 세상에서도 국창으로
큰 소리꾼 되십시요.
이 작품발표 10개월 후 에 돌아가셨으니 이때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그놈의 사랑이 뭔지 사랑땜에 세기의 명창 .아까운분 떠났읍니다. 좋은 자료 올려 주신분 감사합니다.
언제 보아도 아쉬운 분입니다. 사랑을 버리고 예술을 택하시지 ㅡ그리도 힘드셨읍니까!
창 중에 실제로 눈물을 흘리는 군요.당신의 신세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김
❤❤❤아무리생각해도 아깝고 도원통한 재능을 바보갔다고도해봅니다
얼마나외롭고 그리웠으면 그런모진 마음을 잡수셨을까요 마음이 져려옵니다
생죤해 계시면 향연
77세 보고십다
당대에 최고의 스타
조상현
안 향련 그시절이 그립구나
안향련명창님! 천재시죠 아쉽지만 영상이 있어
귀한 자료 잘보았습니다
고 안향련씨 보고싶다
조선제일창이십니다
잘 헌다!
얼씨구~~
너무나 일찍 가셨네요. 영상이 있어 다행입니다.
오..이별가 김명환 명고 북이네요.
역시.. 그 소리에 그 북이네요.
대단하심...
사랑했던 화가성암이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가사 자막 부탁드림니다
영상 감사합니다ㆍ음반 구입 할 수 있을까요?
사고사로 돌아가셯는지 병사인지 진짜$ 궁굼함니다 고인의 명복을진심 빔니다😢😢😢😢
비련의 종말이였습니다... 34세 방년에 수면제로 생을 마감했죠
@@kben0912 방년이라는 뜻은 16 살을 말합니다
혹시. 안향년 명창 자료 는종. 있는데 다른분.
김동애. 명창 자료도 있으면. 올려주세요 8:15
고인이 된 얀향련 명창은 앞으로 지금도 없지 않은가. 앞으로 100 년 후에도 안 나올 것이다.
조상현 선생도 남자 소리꾼으로서는 판을 막은 분이다. 국가 유산청(전신은 문화재청) 관리가 잘 못 판단하여 조 명창을 인격 살인을 했다. 판소리 소리를 하는데 아쟁을 왜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창극 시절을 생각해서 그런 악기를 쓰는 모양인데 안 쓰는 게 소리를 살리는 길이다.
나무아미타불
굿 ㅡ (♥)
4:03
조상현은 약장사 따라 다녔다고 하던데
어째 실력이 그리 조아 보이지 않고 비리에 연루되어
형사 사건에 휘말려 이미지도 좋지 않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좀 그래 보이네요!
@@코스모스-j7r 당시는 소리꾼들이 생계 유지가 어려워서 잠시 그런 것이고 국립 창극단이 생기고 난 다음에 월급을 받기 시작을 했다고 한다. 당시 강종철 님이 증언을 해 주었습니다. 사연은 이러하다. 71 년 도 쯤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을 했을 적에 일장 훈시를 하고 나서 단원들과 한가지 씩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하자 가장 소장측인 깅종철님이 나서서 < 지금 공연할 때마다 쥐꼬리만큼 출연비;를 받는데 이것 가지고서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월급을 주십시요> 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한 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고 한 다음 다음 달 부터 월급이 나왔다고 한다. 15000원 쯤 나왔다고 한다. 당시 이 돈은 매우 큰 돈이며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50 원이고 지하철 공사가 막 시작 할 무렵이다. 9급 공무원 월급이 5000 원 할 당시라고 한다. 소주 한 병 진로가 40 원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