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국사 I 242 실패로 끝난 홍경래의 난, 저항의 시대를 여는 힘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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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9 лют 2025
- 1812년 음력 4월, 넉 달째 이어진 봉기군과의 전투에 지친 관군은 성벽을 허물 계획을 세운다. 성벽 아래로 땅굴을 파고 거기에 화약을 묻어 폭파시키기로 한 것이다. 관군은 성을 공격하면서 북장대 밑으로 땅굴을 파는 양동작전을 펼친다. 땅굴을 파기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성 아래에 도달한 관군은 화약 1,710근을 성 밑에 쌓고, 폭약에 불을 붙였다. 관군은 무너진 성벽을 넘어 물밀듯이 정주성으로 진입했고, 그 과정에서 봉기군의 대원수 홍경래는 총탄에 맞아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이때 관군에게 체포된 사람만 2,983명. 이중 10살 이하의 어린아이와 여자를 제외한 1,917명이 모두 참수된다. 한때나마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홍경래와 봉기군의 꿈은 그렇게 사라지고 만다. 반란은 진압됐고, 사회적 모순을 바꿀 개혁조치는 취해지지 않는다. 백성들의 불만은 더 쌓여갔고, 농민들은 저항의 주체로 성장하게 된다. 홍경래의 난은 실패했지만, 홍경래는 저항의 상징이 돼, 임술농민봉기(진주민란),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했다. 홍경래의 난은 세도정치의 장벽을 넘지 못했고 지역차별 철폐도 이루지 못했지만, 19세기 농민들의 의식을 성장시키고 새로운 저항의 시대를 열어가는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홍경래의_난 #실패#관군 #정주성 #진입#임술농민봉기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
홍경래의난 1811
홍경래가 뛰어넘어야할 담벼락이 너무높앗다ㆍ 안타깝다
그래두 홍경래의 난이후 백성들을 새로운세상을 만들고싶었던 난도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군 지도자 최재우를비롯해 정봉준까지
정봉준 ㄷㄷ
전씨임 ㅋㅋ
0:47
안타깝다. . .ㅠㅠ
관군들 완전 육지의 네이비씰UDT특수부대네
땅굴을 파고 폭약 1700근을 설치 하다니
멋지다
ㅋ
홍경래의난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