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now this is a sad sound about Koreans in past having a hard time. But once I saw a video a handsome young trot singer singing this song with full of joy, giggling all the way, and the guests and audience were reacting with a celebratory mood as if the song is about some happy event. Some Koreans told me being a foreigner would not understand this is Korean culture, they sing a sad song with happy mood. That singer is handsome but I don't like him because he was always giggling. I like Jung Dong Won because he sings the song about Koreans suffering famine with a melancholic mood. A senior trot singer was among the judges and his eyes were reddened.
나는 이것이 과거에 한국 사람들이 힘들었던 것에 대한 슬픈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젊고 잘생긴 트로트 가수가 낄낄거리며 기쁨에 넘쳐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이고, 손님들과 관객들은 마치 행복한 사건을 담은 노래인 듯 축하 분위기로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한국인들은 외국인으로서 이것이 한국의 문화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행복한 기분으로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 그 가수는 잘생겼지만 늘 낄낄대기 때문에 싫어요. 내가 정동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기근에 시달리는 조선인들을 우울한 기분으로 노래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중에는 트로트 선배가 있었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2007년생 남인수 선생님 팬입니다.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듣게 되었는데 그 당시의 모습을 잘 재현하셨고 얼굴도 미남이신데 고인이 되신지 올해로서 60년이지만 전 계속 남인수 선생님의 노래를 들을것입니다. 결핵으로 이른나이에 세상을 떠난게 너무 안타깝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인수 선생님은 우리 가요계에 획을 그은 분중 하나라고 생각듭니다.
저두요. 사실 저 중국에서 자랄때 아주 애기때부터 동네 어르신들께서 잔치집이나 술상에서 접시 엎어놓고 절주잇게 두드리는 저가락 장단에 맞춰 부르는 이 노래에 익숙해졋답니다 지금은 어르신들께서 다 돌아가시구 추억만 남앗습니다 그분들은 오리지날 한국태생이구 독립군, 피난민 ,등 출신이셧어요
1950년~1953년 전쟁기간에 영상 찍은거면 저때 저 아주머니 30대 후반~40대 초라해도 70여년 흘렀으니 100세는 넘었을테죠 살아계시다면 이미 자신이 저때 물동이 들고 고생한 것조차 잊어버리고 치매걸렸을 수도있고 그냥 인생의 마지막 장식을 살고있겠죠 인생은 산다는게 잠깐이고 아무것도 아니죠
영상에서 물지게를 지고가는 아주머니가 나옵니다. 나도 어려서 우리동네 수돗물이 안나올 때는, 시에서 나 온 물차로 가서 물초롱 2개에 5원을 내고 물지게에 물을받아 집으로 날랐적이 꽤 여러번 있었어요. 물지게 무게는 그렇게 안무겁지만, 요령이 없어 걸을 때 물통 안에서 물이 출렁 거리는 그 박자를 잘 못맟히면 바지와 신발이 홀딱 다 젖었지요.
우리 할머니도 저때는 많이 고우셨겠죠? 젊으셨던 시대라 소학교 선생 순사에 교실에 일장기 달고 히라가나 배우셨다고 하셨으니 저때 쯤 아마 중딩나이큰고모 유치원쯤울아빠 기저귀작은아빠하고 피난 가셨을텐데요 지금은 40살장손 저의 얼굴도 못 알아보시는데... 신기한건 제 아들 증장손자는 알아보십니다
남인수(1918~1962) 선생의 본명은 강문수이다. 태어날 때 본명은 최창수였으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자 어머니 장하방이 강영태라는 남자에게 재가하여 강문수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새아버지 강영태의 양자로 입적되었다는 말인데 입적 후의 본관은 진주 강씨. 입적 전의 본관은 어떤 최씨인지도 알수없고 친부의 호적에도 없다고 합니다.(1960년대생까지의 인물이 태어날 당시만 해도 의학기술이 지금보다는 낮아서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시기라 출생신고를 몇년 늦게하는 경우도 많았음. 친부의 호적에 남인수가 등재되어 있지 않은 이유임.) 이 노래가 들어보면 묘한게 원곡가수인 남인수 선생 본인도 실향민 가족이라고 합니다. 남인수의 형제 중이 '최창도'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딸이 1970~80년대 북한의 인기가수였던 최삼숙(1951~)이라고 합니다. 즉 최삼숙은 남인수의 조카이지요.
피난살이.의 서려움. 묻어 있는. 노래 우에저녛게. 못살았을까요 1945년 이전을 생각해보세요ㆍ 돌담흙담ㆍ 집이엉 기와집은 제실한체 뿐 일본 관광지 기와집있어요ㆍ도로 시몐트 도로 지금은 고 층 건물. 즐비 도로변 사탕 아이스 녹차 크림 일본도 시에서 벗어나면 단독주택상가 농촌이층집민가등ㆍ우리와비슷 대구중앙통 하고 현풍외곽. 땅값다르듯이ㆍᆢ 대구 동대구는 땅 한평 1000만원 현풍은 500만 농촌은 100만원 돼요ㆍ농촌집주택
이 음원(音源)도 맑게 나오기는 하나, 남인수(南仁樹) 특유(特有)의 쇳소리를 띤 카랑카랑한 음색(音色)이 살아나지 못해 아쉽습니다. 음반이 낡은[磨耗] 탓도 있겠지요. 그리고, 딱 하나 중요한 것만 지적해 드립니다. "사투리에"라고 표기하면, 뜻이 사뭇[딴판으로] 달라져 큰 왜곡(歪曲)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꼭 아셨으면 합니다.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 운다'면, 사투리 때문에 아가씨가 슬피 운다는 뜻―이 경우의 '에'는 원인 부사격 조사이기에 '우네[기본형은 '울다']를 수식하게 됨―이 되므로, 다시 말해 다른 누구의 '사투리 때문에(사투리를 듣고) 경상도 아가씨가 슬피 운다'는 뜻으로 되기 때문. 본의(本意)와는 엉뚱하게 왜곡(歪曲)돼(=되어) 버리고 말지요. 그러나, 본 뜻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가씨'가 돼야 하고, 그러려면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로 표기(表記)되어야 맞지요―'의'는 관형젹 조사로서 사투리를 수식함―. 모든 언어는 표기(表記)와 실제 소리[발음]가 다르게 마련입니다. 소리[發音]는 '에'로 나더라도―서울 방언(方言)이 표준어(標準語)로 된 결과― 어디까지나 표기는, '에'가 아니라, '의'라야 맞습니다. 간과(看過)하기 쉬운, 주의(注意) 깊게 생각해야 할 부분.
저희 외가 성씨랑 같군요 드문 성씨인데… 사투리에~라는 표준어 표기를 따지는건 그닥 의미 없는듯 합니다 그 시절엔 국어 표기법에 게의치 않는 어휘나 글들이 많았던 때인지라 그냥 시대반영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노래하기에도 어감적으론 ~의 보단 ~에가 곡조를 뽑아내기엔 한결 낫지 않나 싶습니다
@@chw1766 '카랑카랑'이란 말뜻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시는군요. 남강수 씨의 노래는 목소리부터 힘이 없고 콧소리가 섞인데다가 가락은 늘어지고 쳐졌으며, 저음이 잘 되지 않으니까, 억지로 목을 후벼파 소리를 내려다가 가래 끓은 소리가 나는 걸 못 느끼시네. 그의 목소리가 좋으면, 왜 인기 가수가 못 됐을까요?
발표 시기(연대)도 1953년 10월경. 1954년이 말이 안 되는 것[言語道斷]은, 이 해(1953) 11월 27일 부산역전(釜山驛前) 근처(近處)에서 발화(發火)되어 버진 대화재(大火災)로 부산역사(釜山驛舍. 일제강점기 건축; `부산정거장')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는데, 이 '부산역 대화재(釜山驛大火災)'는 어마어마하게 번져 나가 부산역(釜山驛) 일대(一帶)는 물론, 남포동(南浦洞)⦁중앙동(中央洞)⦁광복동(光復洞) 및 국제시장(國際市場)까지 전소(全燒)되었고, 복구(復舊)에만도 2 년이 넘게 소요(所要). 이런 판국에 "(열차) 차창 밖의 (보슬비 속 깜빡이는) 등불(가로등)"이 웬말? 아무것도 없는 잿더미 위에서 열차(列車)가 운행(運行)됐다는 말? 아니면, 작사가(作詞家)가 상상(想像)의 세계에서 가사[노랫말]를 쓴 것? 그렇다면 이 노래는 아무런 역사적(歷史的)-사료적(史料的) 가치(價値)도 없는 허접한 쓰레기? 이래서 이 노래가 1 년이 지난 뒤에 나오고 환도(還都)-환고향(還故鄕)하는 사람들도 다음 해까지 기다리며 굼벵이같이 움직였다는 얘기? 연대(年代) 문제에 있어서, 처음에는 1953년으로 기록되어 오다가 근자(近者)에 와서 1954년으로 자꾸 얘기되는 까닭은, 신문(新聞. 日刊紙) 광고(廣告)만을 근거(根據)로 주장하는 사랍들의 설(說)이 설득력(說得力)을 얻은 결과(結果). 그러나,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의 유행가(流行歌) 발표 연대는 당시 일간지(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신보 등)의 '신보(新譜)' 광고란(廣告欄)을 보고 정확한 연대를 잡을 수 있으나, 광복 후(光復後)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는 것이, 광복 후의 신문 광고는 대부분 '신보(新譜)' 광고가 아니라, '판촉(販促)' 광고임을 유의(留意)해야 하기 때문.
625때 의무병 복무하시다가 총상맞고 완쾌되시고 건강히사시다가 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술드시면 옛날뽕짝을 혼자 즐겨부르시며 인생한탄하시다가 주무시곤하셨는데 그땐 주정도 안계시니까 그립네요~~그때좀 잘해드릴걸~~위에서 잘계시나싶네요 행복하세요
@@fiercehan6791 부산광역시
@김와우 감사합니다
미투
😅😮😢
찢재명 구속
70년대에 뜻도 모르고 부르다가 이제60살 넘어서 인생의 맛? 을 보고 들으니 서글퍼집니다.
역시 남인수 선생님 목소리 너무나 그립습니다.
이노래는 우리 아버지가좋아하셨는데
비가오면 농사일못하고 집에계실때
즐겨부르셨던 노래입니다
노래를 들을수있어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보고싶다
언제나 그리운 이름 아버지
남인수선생 이별의 부산 정거장 최고여요 너무 잘 불렀어요.
어릴때 들을때는 웃기고 좀 그렇더만, 이제 내나이 50줄에 다시들어보니 참 우리 부모님세대 고생 하셨음을...그리고 희망과노력으로 좋은세상 이어주셨음을... 감사합니다.
1951. 1.4.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정든 고향을 등지고
모친과 함께 피난민 열차를 타고 한많은 부산 피난 시절을 보냈던
그 시절의 애절한 이별의 부산정거장!
영상으로 보는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누나,
깨끗하고 담백하게 절제하면서 불러도 감동을줄 수 있다고 알려주시는 남인수 선생님
그시절 그노래 그옛날 다시 돌아 오지 못할 그명장면을 이렇게 볼수 있다니 참으로 영광 스럽고 반갑네요 그동안 이명장면을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만났네요 남인수님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들시길 바랍니다
이세상에 다시는 이런 위대하고 완벽한 가수는 없을거여요.
I know this is a sad sound about Koreans in past having a hard time. But once I saw a video a handsome young trot singer singing this song with full of joy, giggling all the way, and the guests and audience were reacting with a celebratory mood as if the song is about some happy event. Some Koreans told me being a foreigner would not understand this is Korean culture, they sing a sad song with happy mood. That singer is handsome but I don't like him because he was always giggling. I like Jung Dong Won because he sings the song about Koreans suffering famine with a melancholic mood. A senior trot singer was among the judges and his eyes were reddened.
나는 이것이 과거에 한국 사람들이 힘들었던 것에 대한 슬픈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젊고 잘생긴 트로트 가수가 낄낄거리며 기쁨에 넘쳐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이고, 손님들과 관객들은 마치 행복한 사건을 담은 노래인 듯 축하 분위기로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한국인들은 외국인으로서 이것이 한국의 문화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행복한 기분으로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 그 가수는 잘생겼지만 늘 낄낄대기 때문에 싫어요. 내가 정동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기근에 시달리는 조선인들을 우울한 기분으로 노래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중에는 트로트 선배가 있었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GoodGood-vb8gm 당신 말이 맞아요
트롯트 프로에서 그건 잘못된거죠 적당히들 했어야는데
@@GoodGood-vb8gm 그시절에 부를때는 그말씀이 맞아요. 그러나 지금은 울면서 부를필요는 없다고 봐요. 지금은 슬푼과거도 웃으면서 부를수 있다고 봐요.
@@GoodGood-vb8gm 그 시절에는 그말씀이 일이가 있지만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잖아요 . 아직도 울면서 불을필요는 없다고 봐요. 지금은 웃으면서 불러도 돼요.
손인호선생님의 노래~~너무 좋습니다
얼굴없는 가수 손인호님 존경합니다
스타365가 우리 민족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옛노래를 하나 하나 아름다운 영상으로 올려주시는 수고에
큰 감사 드립니다 ❤
남인수 노래에 손인호???
2000년에 태어난 젊은이라도 이 노래가 너무 좋아서 반복해서 듣고 있네요 ㅎㅎ
천하의 미성이라오
ㅋㅋㅋㅋ
선희님이 각색하는 가요와 영상이 너무 좋습니다.
일본 엔가도 제가 좋아하는 노래만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같이 하시길 빌겠습니다.💯👍
아, 가락 잘 넘어간다. 살짝 살짝 비틀고, 꼬집으며, 거침없이 넘어가는구나!
이건 진짜 남인수 목소리 노래구나.
노래같은 노래 남인수선생의 명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잘듣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누구도 흉내 낼수없는목소리 너무듣기좋고 들을수록 중독이되는같다!
2007년생 남인수 선생님 팬입니다.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듣게 되었는데 그 당시의 모습을 잘 재현하셨고 얼굴도 미남이신데 고인이 되신지 올해로서 60년이지만 전 계속 남인수 선생님의 노래를 들을것입니다. 결핵으로 이른나이에 세상을 떠난게 너무 안타깝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인수 선생님은 우리 가요계에 획을 그은 분중 하나라고 생각듭니다.
음악을 아시는 군요.
@@이찬솔-j2p 대표적으로 무정열차, 이별의 부산 정거장, 울리는 경부선 등을 좋아합니다
영상 너무 좋네요. 감동입니다. 자금의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이 어떻게 일으났는지를 망각해 버렸어요.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이노래를 듣고싶어 찿아보게 되었습니다.
노래 듣기만 해도 눈물이 흘러요
K_POP의 전설이 되셨습니다.
맑으면서 한맺힌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고향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이거 보면 고생 소리 못합니다. 상상도 안 가는 한국전쟁 스토리.
동네 어르신들 술자리에서 이곡을 부르시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다시 가고 싶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정말 희생한 선배, 영령들이여!
잊지않겠습니다!
눈감고 들으니 비교불가입니다
너무 잘부르시네요 조명섭가수님 ❤
조명섭 이 아니고 남인수 선생님의 오리지날 곡 입니다. 조명섭은 짝퉁 이고요.
남인수 맞아요 모창가수 남강수라고 있는데 그분 목소리도 아니고 조명섭도 저 남인수 떨림 넘김소리는 못따라갑니다
덕분에 잘 들었어요. ^^ 요즘 떠오르는 가수 조명섭도 전통가요 엄청 잘부으더라구요. 특히 (가수들중엔)흔치않게 현인선생 노래들을...
네 남인수선생님 옛모습을 그대로 하시네요
노래도 눈감고 들으면 똑같은 창법으로 부르세요 ❤
진짜 오리지날 남인수 노래군요.
소시적에 칙칙 폭폭 기차타고 엄마 따라서 외가 집 가던 추억이~~~ ^.^
오랜만에 들어보는 노래-이별의 부산 정거장.
부산의 어린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감사드려요
권선희선생님은좋은노래만듣게해주시니감사합니다
맑고 고운 목소리고,
옛날 가수분들은 고음도 정말 편하게 부르십니다
져ㅡㅇ님니
저는2천년대. 태어낮지만. 이노래 매우좋아합니다
어르신..... 저는 2000년생입니다만은...
음.....아닙니다.....
우리 시아버님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넘 듣기 좋아요
신미래님 부르는거 보고 원곡 찾아봤네요ㆍ 그때의 시절 조금이나마 알고 갑니다
아이고 이런! 해욱님도 신미래도 노래 듣고 왔습니까? 저도 신미래씨 노래 듣고 왔습니다. ㅎㅎㅎ
80년대 중학교때 이노래 옴총 조아함오니 반주가 넘 조아오니요
배경과 노래가잘어울리는좋은장면 이네요.증기기관차 너무정감이 감니다,
조명섭 노래듣고 원곡들으러 와봤네요
저두요.
사실 저 중국에서 자랄때 아주 애기때부터 동네 어르신들께서 잔치집이나 술상에서 접시 엎어놓고
절주잇게 두드리는 저가락 장단에
맞춰 부르는 이 노래에 익숙해졋답니다
지금은 어르신들께서 다 돌아가시구 추억만 남앗습니다
그분들은 오리지날 한국태생이구 독립군, 피난민 ,등 출신이셧어요
야인시대에서 극중 임화수가 부르던 그노래 야인시대때문에 트로트한번접해봅니다
22
아주 훌륭한 기억의 전율이
배경사진과 함께 들으니 감상에 젖네요..
글쵸😊😊😊
아주 귀한 영상이네요.
물동이 지고 가시는 여자분 미인이네요.
아마 지금 살아 계실런가.
1950년~1953년 전쟁기간에 영상 찍은거면 저때 저 아주머니 30대 후반~40대 초라해도 70여년 흘렀으니 100세는 넘었을테죠
살아계시다면 이미 자신이 저때 물동이 들고 고생한 것조차 잊어버리고 치매걸렸을 수도있고
그냥 인생의 마지막 장식을 살고있겠죠
인생은 산다는게 잠깐이고 아무것도 아니죠
영상에서 물지게를 지고가는 아주머니가 나옵니다.
나도 어려서 우리동네 수돗물이 안나올 때는, 시에서 나 온 물차로 가서 물초롱 2개에 5원을 내고 물지게에 물을받아 집으로 날랐적이 꽤 여러번 있었어요.
물지게 무게는 그렇게 안무겁지만, 요령이 없어 걸을 때 물통 안에서 물이 출렁 거리는 그 박자를 잘 못맟히면 바지와 신발이 홀딱 다 젖었지요.
우리 할머니도 저때는 많이 고우셨겠죠? 젊으셨던 시대라
소학교 선생 순사에 교실에 일장기 달고 히라가나 배우셨다고 하셨으니
저때 쯤 아마 중딩나이큰고모 유치원쯤울아빠 기저귀작은아빠하고 피난 가셨을텐데요
지금은 40살장손 저의 얼굴도 못 알아보시는데...
신기한건 제 아들 증장손자는 알아보십니다
안녕 하세요. 마산 전통가요 애호가 입니다. 남인수 선생님 마니아 입니다. 대박 나세요. 구독은 지난번 눌렀습니다.엔카팬 이기도 하구요
추억의 영상과 함께 올려주신 소중한 노래, 감사히 들었습니다.
잘듣고 갑니다 서른인저도 옛날노래 좋아서. 노래방 가면 불러요 ^^
뭔가 가사는 구슬픈데.. 노래 자체는 박자도 경쾌하고 노래도 구성지고 반주도 신나고 좋아요 ㅎㅎ;
배경과 가사까지 있어서 좋아요, 잘 보고 듣고 갑니다
노래는 역시 원곡이 👍
잘들었습니다 ^^
와 이노래가 이렇게 오래된 노래였구나...... 노래방에서 가끔씩 부르는데 첨 알았네요
옛날 모습 보니 새삼스럽고,
가수 이름 내력 알려준 것도 좋아요,,,
내아빠가 제일 좋아하셨던 노래인데~~~
이 영상보면서 몰랐던걸 많이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영상편집 참 잘하셨어요. 가난한 삶을 사셨던 부모님들 참 불쌍해요
코가 찡하네
야인시대 보고 왔습니다. 노래가 정말 슬프고 애절합니다.ㅠㅠ
명곡이에요!!! 영상감사합니다!!!👍👏
잘듣고 공유합니다....휘귀LP판이군요....감사합니다......^^
913번째로 좋아요 누리뜨멍 잘듣엉 감수다. 향수에 젖은 이별의 부산정거장
감사합니다
저도 조명섭 노래듣고 찾아왔어요.
딱 좋습니다
해방이다~
집으로 돌아가니 이별하는 연인들에 노래~
남인수선생님이궁금해졌어요
6.25 때 조국을 위해서지켜 주신 분들의 희생때문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몸들바를모르게씁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즐겁습니다.
노래좋다
조으타
전통가요지킴이 조명섭가수님
불러주신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옛향수을 불러옵니다
아~부산 🚢배 타러 가고 싶다 ᆢ뱃놈은 배를타야되네 ㅋㅋ
자료화면은 어디 출처인가요?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남인수(1918~1962) 선생의 본명은 강문수이다. 태어날 때 본명은 최창수였으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자 어머니 장하방이 강영태라는 남자에게 재가하여 강문수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새아버지 강영태의 양자로 입적되었다는 말인데 입적 후의 본관은 진주 강씨. 입적 전의 본관은 어떤 최씨인지도 알수없고 친부의 호적에도 없다고 합니다.(1960년대생까지의 인물이 태어날 당시만 해도 의학기술이 지금보다는 낮아서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시기라 출생신고를 몇년 늦게하는 경우도 많았음. 친부의 호적에 남인수가 등재되어 있지 않은 이유임.)
이 노래가 들어보면 묘한게 원곡가수인 남인수 선생 본인도 실향민 가족이라고 합니다. 남인수의 형제 중이 '최창도'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딸이 1970~80년대 북한의 인기가수였던 최삼숙(1951~)이라고 합니다. 즉 최삼숙은 남인수의 조카이지요.
아빠 엄마 보고싶어요
가황 남인수 원창 이별의 부산정거장 스테레오 음반 소리 ua-cam.com/video/Pm5aseXUcCQ/v-deo.html
울 엄니 열여덟곡 이였다~~가사 적어드렸던 생각난다 ㅠㅠ
시대 가 부모 세대 울도늘어 가 요ㅡㅡ
피난살이.의 서려움. 묻어 있는. 노래
우에저녛게. 못살았을까요
1945년 이전을 생각해보세요ㆍ
돌담흙담ㆍ 집이엉
기와집은 제실한체 뿐
일본 관광지 기와집있어요ㆍ도로 시몐트 도로
지금은 고 층 건물. 즐비
도로변 사탕 아이스 녹차 크림
일본도 시에서 벗어나면 단독주택상가 농촌이층집민가등ㆍ우리와비슷
대구중앙통 하고 현풍외곽. 땅값다르듯이ㆍᆢ
대구 동대구는 땅 한평 1000만원
현풍은 500만
농촌은 100만원 돼요ㆍ농촌집주택
권선희씨 최고!!!!!!
#오유진 양의 연주를 듣고 찾아 보게 됐네요 ...
젊은 여자분이 그리운 노래 배경화면 좋은 음악 감사합니다!
어머니
우리가.어떻게.하여야.하나님의.일을.하오리이까.예수께서.이르시되.하나님께서.보내신.이를.믿는.것이.하나님의.일이니라.하시니.요한복음.6:28-29
이 음원(音源)도 맑게 나오기는 하나, 남인수(南仁樹) 특유(特有)의 쇳소리를 띤 카랑카랑한 음색(音色)이 살아나지 못해 아쉽습니다. 음반이 낡은[磨耗] 탓도 있겠지요. 그리고, 딱 하나 중요한 것만 지적해 드립니다. "사투리에"라고 표기하면, 뜻이 사뭇[딴판으로] 달라져 큰 왜곡(歪曲)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꼭 아셨으면 합니다.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 운다'면, 사투리 때문에 아가씨가 슬피 운다는 뜻―이 경우의 '에'는 원인 부사격 조사이기에 '우네[기본형은 '울다']를 수식하게 됨―이 되므로, 다시 말해 다른 누구의 '사투리 때문에(사투리를 듣고) 경상도 아가씨가 슬피 운다'는 뜻으로 되기 때문. 본의(本意)와는 엉뚱하게 왜곡(歪曲)돼(=되어) 버리고 말지요. 그러나, 본 뜻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가씨'가 돼야 하고, 그러려면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로 표기(表記)되어야 맞지요―'의'는 관형젹 조사로서 사투리를 수식함―. 모든 언어는 표기(表記)와 실제 소리[발음]가 다르게 마련입니다. 소리[發音]는 '에'로 나더라도―서울 방언(方言)이 표준어(標準語)로 된 결과― 어디까지나 표기는, '에'가 아니라, '의'라야 맞습니다. 간과(看過)하기 쉬운, 주의(注意) 깊게 생각해야 할 부분.
저희 외가 성씨랑 같군요
드문 성씨인데…
사투리에~라는 표준어 표기를
따지는건 그닥 의미 없는듯 합니다
그 시절엔 국어 표기법에 게의치 않는
어휘나 글들이 많았던 때인지라 그냥
시대반영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노래하기에도 어감적으론 ~의 보단 ~에가 곡조를 뽑아내기엔 한결 낫지 않나 싶습니다
어수정씨 이곡은 남강수씨가 카랑카랑 합니다. 그곡 들으세요.
먼 한자를 이리 많이 때려박노 없어도 별 상관 없겠구만은
@@chw1766 '카랑카랑'이란 말뜻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시는군요. 남강수 씨의 노래는 목소리부터 힘이 없고 콧소리가 섞인데다가 가락은 늘어지고 쳐졌으며, 저음이 잘 되지 않으니까, 억지로 목을 후벼파 소리를 내려다가 가래 끓은 소리가 나는 걸 못 느끼시네. 그의 목소리가 좋으면, 왜 인기 가수가 못 됐을까요?
@Moving Stone Lee 고대어의 말소리를 우리가 어떻게 정확히 제대로 알 수 있나요? 훈민정음 제정 이후니까, 중세어(中世語)라고 해야지요. 중세어는 그랬지요. 그런데,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중새(조선 시대) 노랩니까? 뚱단지 같은 소리!
ua-cam.com/video/IF76RtwkACg/v-deo.html
하모니카 버전으로 새롭게 꾸며본 영상이니
향수를 노래와 함께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인수 선생이 남기신 노래들과 업적은 재조명 되어야 합니다,해방전 친일행위는 일본놈들 강압에 이루어진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요
부롸보~~
한국전쟁 부산피난시절
부산역은 경부선 마지막 역 부산 지하철 1호선 113번
다함이 안녕?
ㄷㄷ
조명섭 바람이 불것이다.
불고 있네요 ㅎㅎ
0:37
세라복에 멍든사나이
우리ㅇㄱㆍ버지느느ㅡ빠개ㅣ으
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우네 🥺
'사투리에'가 아니라, 발음은 그렇더라도 표기는 '사투리의'로 해야 맞습니다. 그렇쟎으면, 뜻이 180도로(딴판으로) 달라져 크게 왜곡(歪曲)되기 때문이지요
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왜 슬피울까?
😶
남인수 선생을 폄하 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습니다. 제 귀에는 남인수 선생 목소리 같지 않네요.
누구 목소리 같아요?확실한건 남강수님 목소리 아닙니다 모창분들 목소리하고 전혀 다르세요~
분명 원곡이자요…
모창하는분 많이 있는데 음성 바프레션 모든게 차이 남을
느낄겁니다.
찬빈이 한테 는 송현준이 가 오빠 예요 형 이예요
1910년 이전은. 더 더 못살았을 것입니다ㆍ
조선말은... 상상도못하죠...
안 태어나서 다행임
님 을어나
ㅋㅋㅋ
발표 시기(연대)도 1953년 10월경. 1954년이 말이 안 되는 것[言語道斷]은, 이 해(1953) 11월 27일 부산역전(釜山驛前) 근처(近處)에서 발화(發火)되어 버진 대화재(大火災)로 부산역사(釜山驛舍. 일제강점기 건축; `부산정거장')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는데, 이 '부산역 대화재(釜山驛大火災)'는 어마어마하게 번져 나가 부산역(釜山驛) 일대(一帶)는 물론, 남포동(南浦洞)⦁중앙동(中央洞)⦁광복동(光復洞) 및 국제시장(國際市場)까지 전소(全燒)되었고, 복구(復舊)에만도 2 년이 넘게 소요(所要). 이런 판국에 "(열차) 차창 밖의 (보슬비 속 깜빡이는) 등불(가로등)"이 웬말? 아무것도 없는 잿더미 위에서 열차(列車)가 운행(運行)됐다는 말? 아니면, 작사가(作詞家)가 상상(想像)의 세계에서 가사[노랫말]를 쓴 것? 그렇다면 이 노래는 아무런 역사적(歷史的)-사료적(史料的) 가치(價値)도 없는 허접한 쓰레기? 이래서 이 노래가 1 년이 지난 뒤에 나오고 환도(還都)-환고향(還故鄕)하는 사람들도 다음 해까지 기다리며 굼벵이같이 움직였다는 얘기? 연대(年代) 문제에 있어서, 처음에는 1953년으로 기록되어 오다가 근자(近者)에 와서 1954년으로 자꾸 얘기되는 까닭은, 신문(新聞. 日刊紙) 광고(廣告)만을 근거(根據)로 주장하는 사랍들의 설(說)이 설득력(說得力)을 얻은 결과(結果). 그러나,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의 유행가(流行歌) 발표 연대는 당시 일간지(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신보 등)의 '신보(新譜)' 광고란(廣告欄)을 보고 정확한 연대를 잡을 수 있으나, 광복 후(光復後)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는 것이, 광복 후의 신문 광고는 대부분 '신보(新譜)' 광고가 아니라, '판촉(販促)' 광고임을 유의(留意)해야 하기 때문.
그런일이 있었군요.
53년11월 27일의 화재.
그럼 이노래는 7월 휴전이후 11월27일 사이에 가사가 쓰여진것이겠네요
판자촌 ㅡㅡ분하고 억울해 삼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