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우승 경기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 잡는 도아게 투수 시켜줬는데 1아웃도 못 잡고 경기를 망칠 뻔 했었네요 ㅋㅋㅋㅋ 용병 신분에다 99시즌 망쳐서 우승 기여도가 사실상 없던 선을 저 자리 올려준 호시노감독… 15년 후 선감독이 호다다 달려가서 인사하는 게 이해가 되네요. 참고로 99년 선동열은 고작 31이닝 먹었으니 사실상 한 게 없고 중간에선 이상훈과 이와세 둘이서 170이닝… 개같이 굴렀습니다.
39경기 31이닝이지만 28세이브 era2.61이면 망친 건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별개로 속구 구속은 140 중~후반으로 괜찮아 보이지만 확실히 변화구 비율이 높아졌고, 익스텐션을 짧게 가져가고 팔 각도를 높여 종 변화구 무브먼트를 더 챙기는 전략으로 바뀐 것 같네요.
기량(구위)이 떨어진 99년이라 확실히 이전 시즌들에 비해 변화구 비중이 높아졌네요. 좋았던 97년, 98년은 패스트볼 비중이 최소 70%이상인 느낌이었는데 이 영상에서는 반대로 변화구가 60%이상인 느낌이네요. 해외진출을 좀더 빨리 했다면 성적도 훨씬더 좋았겠지만 무었보다 술도 끊고 몸관리도 더 철저히 해서 충분히 더 롱런할수 있었을텐데 "당시로서는" 환갑과도 같은 나이였던 30대 중반에 겨우 해태에서 풀렸던게 팬으로서 많이 아쉬운 부분이네요. 영상 잘봤습니다. ^^ 좋은영상 감사드립니다.
@@JamesLeezz 네. 그때 당시에는 명확한 제도가 없었고 KBO에 오늘날의 FA제도와 포스팅시스템 제도가 생긴건 90년대 후반 혹은 2000년쯤으로 기억합니다. 참고로 선동렬은 해태에서 끝까지 안보내려고 했지만 해외리그에서 활약하는 선동렬을 보고 싶다는 팬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결국 주니치에 2년간 2억엔으로 임대선수로 보냈고(끝까지 완전 트레이드는 안시켰죠ㅋ) 이종범은 해태 모기업의 자금난도 있고해서 3억5천만엔인가에 완전 트레이드 되었죠. (다만 주니치에서 이적료를 지불하고 이적이 되었고 이종범이 그 계약기간을 다채우지 못해서 기아로 유턴때는 기아가 다시 그 이적료를 주니치에 돌려주었습니다.) 이상훈도 주니치 갈때는 선동렬 처럼 임대선수로 보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후 보스턴 갈때는 이적료 받고 완전 이적을 한걸로 알고있습니다. 이때 이문제가 이슈화가 되어서 오늘날의 한미일 포스팅시스템 제도가 생긴걸로 알고 있어요. 대충 이런 스토리인데 제기억에 의한 답변이므로 백퍼 확실하지는 않을수도 있으니 더 디테일하게 알고 싶으시면 직접 찾아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리그우승 경기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 잡는 도아게 투수 시켜줬는데 1아웃도 못 잡고 경기를 망칠 뻔 했었네요 ㅋㅋㅋㅋ
용병 신분에다 99시즌 망쳐서 우승 기여도가 사실상 없던 선을 저 자리 올려준 호시노감독… 15년 후 선감독이 호다다 달려가서 인사하는 게 이해가 되네요.
참고로 99년 선동열은 고작 31이닝 먹었으니 사실상 한 게 없고 중간에선 이상훈과 이와세 둘이서 170이닝… 개같이 굴렀습니다.
99년은 방어율이 안좋긴하더군요~~~ 그당시 이상훈 이와세 기록이 궁금해지네요 ... 그렇다면 이상훈 이와세에게 마무리자를 주지는않았나요>>
39경기 31이닝이지만 28세이브 era2.61이면 망친 건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별개로 속구 구속은 140 중~후반으로 괜찮아 보이지만 확실히 변화구 비율이 높아졌고, 익스텐션을 짧게 가져가고 팔 각도를 높여 종 변화구 무브먼트를 더 챙기는 전략으로 바뀐 것 같네요.
기량(구위)이 떨어진 99년이라 확실히 이전 시즌들에 비해 변화구 비중이 높아졌네요.
좋았던 97년, 98년은 패스트볼 비중이 최소 70%이상인 느낌이었는데 이 영상에서는 반대로 변화구가 60%이상인 느낌이네요.
해외진출을 좀더 빨리 했다면 성적도 훨씬더 좋았겠지만 무었보다 술도 끊고 몸관리도 더 철저히 해서 충분히 더 롱런할수 있었을텐데 "당시로서는" 환갑과도 같은 나이였던 30대 중반에 겨우 해태에서 풀렸던게 팬으로서 많이 아쉬운 부분이네요.
영상 잘봤습니다. ^^
좋은영상 감사드립니다.
근데 90년대에는 크보에서 선수하다가 해외진출하는 방법이 트레이드나 방출되는거였나요?
@@JamesLeezz 네. 그때 당시에는 명확한 제도가 없었고 KBO에 오늘날의 FA제도와 포스팅시스템 제도가 생긴건 90년대 후반 혹은 2000년쯤으로 기억합니다.
참고로 선동렬은 해태에서 끝까지 안보내려고 했지만 해외리그에서 활약하는 선동렬을 보고 싶다는 팬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결국 주니치에 2년간 2억엔으로 임대선수로 보냈고(끝까지 완전 트레이드는 안시켰죠ㅋ)
이종범은 해태 모기업의 자금난도 있고해서 3억5천만엔인가에 완전 트레이드 되었죠. (다만 주니치에서 이적료를 지불하고 이적이 되었고 이종범이 그 계약기간을 다채우지 못해서 기아로 유턴때는 기아가 다시 그 이적료를 주니치에 돌려주었습니다.)
이상훈도 주니치 갈때는 선동렬 처럼 임대선수로 보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후 보스턴 갈때는 이적료 받고 완전 이적을 한걸로 알고있습니다.
이때 이문제가 이슈화가 되어서 오늘날의 한미일 포스팅시스템 제도가 생긴걸로 알고 있어요.
대충 이런 스토리인데 제기억에 의한 답변이므로 백퍼 확실하지는 않을수도 있으니 더 디테일하게 알고 싶으시면 직접 찾아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앙팡맨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