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 명성황후 초상화 그린 화공이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다 좌우 대칭이 하나도 안 맞는 삐뚤어진 얼굴을 나름 보완 수정해서 그렸으나 그래도 작가로써 특징은 알려주고 싶었던 듯 싶네요 그리고 후대에 들어서 사진이 좌우 반전 처리가 되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초상화 보면 오른쪽 보이는 눈꼬리가 살짝 더 올라가 있고 눈시울도 사진과 같이 살짝 다르게 표현했네요 눈 밑에 애교살 부분도 사진과 같이 양측 눈이 다르게 표현되었구요 근데 입매 쪽을 보면 사진은 살짝 왼쪽으로 실룩하고 돌아가 있게 입매가 비뚤어졌는데 초상화는 미세하게 오른 편으로 살짝 치우쳐있고 씰룩한 입꼬리 부분도 오른 편으로 되어있네요
예전 저의 어머니 (살아계시다면 110세)는 민비에 대해, 수수팥떡 뭉쳐놓은 것처럼 생기고 입은 튀어나왔다는 말씀을 하신 적 있는데 아마 그 시대를 사셨던 어르신 세대에선 일상적 구전으로 통하던 악녀의 상징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증에 창고가 될 것같아 올립니다. 호칭도 민비가 아닌 민중년이라 불려졌지요. 민심은 천심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순종은 어릴 때부터 맛탱이 가서 계단도 혼자 못오를 정도였음 영상에서 처럼 납중독이라면 왜 갑자기 장성하고 나서 다시 정상인처럼 사람구실할만큼 변했을까? 안 좋은 건 다 일본탓을 하는 국민성을 진보랍시는 인간들이 전염시켜서 포퓰리즘이 당연하다는 식의 인간들이 정상인 행세를 함 나라가 해줘야지!! 반체제를 원하는 인간들이 조선을 빨면 어쩌자는 건지 ㅋㅋ 하긴 통제자체가 목적이고 수단인 이념을 빠는 이들이 진보를 들먹이는 게 코미디네 왕비 민씨는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사진 그림이 다 조작이라면서 필요한건 맞다고 우기는 건 아닌지 그나마 이승만박사가 맞다고 하니 신빙성이 있어보임
와 ... 너무 소중한 영상입니다... 오늘 갑자기 타임라인에 떠서 우연히 보게됐는데 너무 흥미롭고 이게 말로 표현을 못하겠네요.. 너무 감사드리고.. 역사 공부한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신기한 영상이에요ㅜ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종종 올려주세요 구독하고 가겠습니다..!!
1:56 이 사진이 맞다면, '동안이라 어리게 뵌다'는 건 무리고, 입궁전 사가에서 찍은 것일 거라는 추측이 합리적이네요. 평복 차림도 이해되구요. 명성왕후로 실린 구한 말 여러 자료에서 조금씩 다른 건 당시 기술상 여러번 반복해서 싣다보니 흐려지고 가필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구요.
이우공 님 정말 잘 생겼음. 일본으로 원폭투하전에 일본군인드ㅡㅡㅡㅡㄹ 명령으로 거기 안가고 싶은데 갔원폭길거리에서 맞고 돌아가셨다. 부하에게 말을 질려주셔서 빨리 벗어날수도 없었다고 함. 부하의 부인이 풀산을 한다고 어서가서 탸어나는 아이보라고 말 빌려주셨다고 함. 어찌 그리 착하고 선한지
사진을 보는데 소름이.. 초상화와 너무 닮아서 그런 것도 있고, 약간 기분 나빠지는 인상이네요. 다른 거 볼 것도 없이 순종과 너무 닮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증거가 되는 것 같아요. 이 영상에는 안 나왔지만 순종 다른 사진을 보니까 진짜 소름 끼칠 정도로 똑닮았더라구요. 같은 핏줄이 아니고서야 그 정도로 닮을 수는 없겠죠.
지금에야 한국이 먹고살만해지니까 점차 과거 기록들도 찾아내고 정리해서 이정도로 가는거지 불과 20년전만해도 돌아 볼 겨를이 없었음. 게다가 민비를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암만 늦어도 1950즈음에 세상을 다 떠났을텐데 그때는 미군부대 음쓰찌꺼기 모아서 부대찌개 해먹기 바쁠때였어요
민비가 처한 시대배경을 생각해보면 어느순간부터는 신변위협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잔사람이고 후궁들에게도 자기옷 입혀놓고 외출하던 사람인데 민비가 적삼있고 그래도 장갑으로 포인트 주고 찍은게 더 정상으로 보이는구만.. 저때 추레한 적삼에 저런 최고급 장갑끼고 사진찍을만한 저당시 여성이 조선에 몇명이나 있을까 더군다나 명성황후 조카도 마지막 사진을 민비라고(사후) 신문에 글이랑 실었는데 초상화랑도 빼박이고 가장 확률이 높아보임
민비가 민씨일족들을 데려다가 세도정치와 부정부패로 조선을 말아먹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음 조선초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황해도와 평안도 및 경기도 일대의 호족들 대표인 여흥민씨들이 이성계의 반 역을 강력히 지원하였다 막대한 재산을 허비하면서 말이다 그뿐이 아니라 1,2차 왕자의 난에서도 민씨일족들은 태종 이방원을 도 왔다 하지만 태종이방원이 권력을 잡게되자 공이커서 권력을 잡은 원경왕후의 친정오빠와 친척들인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희 등 수많은 민씨일족들을 처형했다 조선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민씨일족들은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와 사노비이며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고 허구헌날 당쟁으로 날이새고 사대부 양반들끼리 패를 나워 죽이 고 죽이는 싸움을 그둬 들이기 위해서 조선을 망하게 할수 밖에 없었다 여흥민씨인 민비는 역시 왕비가 되자 친인척 대거 핵심요직에 등용하고 국가세금을 군비에 사용하지 않고 청나라를 망하게한 서태후 처럼 악랄하지는 않았으나 무능의 극치로 가난했던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500년내내 넘쳐났던 조선의 국고를 탕진하는데 앞장서서 결국 조선은 스스로 일본에 나라를 상납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은 500년동안 400만명에서 1000만명 수준이던 인구가 한일합방 36년만에 두배 세배인3000만명이상 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해방직전 남북한인구) 만주나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일본등 해외로 빠져나간 인구를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일본애들이 조선쌀 80프로 수탈하고 유전자도 다른데 조선시대 쌍수와 코주사 백칠 화장으로 유명하고, 토번/티벳족이 베이스고 야요이인이 이 티벳족임 그래서 작은 야요이인 (티벳족;신라에 의해 백제 노예에서 쫒겨난 것임, 의자왕 타락과 3천 궁녀)과 작은 토번족으로 키가 작은거임
이렇게 2000년대 도덕적 잣대로 선조들을 비판하며 식자인양 하시는 분들이 역사를 왜곡함. 그당시 한나라의 왕과 왕비는 지금의 부유층이 누리는 부의 정점에 있었고 백성과 나라의 모든 재물이 일차적으론 왕과 왕비의 소유였음. 일본만 해도 일본왕 한마디에 할복하고 카미카제 하는게 이상하지 않았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국왕과 왕비의 말이 절대적이었으며 유럽귀족들이 모여 하루가 멀다하고 파티와 모임을 열어 사치와 향락을 즐겼음. 대항해시대를 연것도 사치품인 후추와 향락품을 찾아 항해를 했다는건 알고 있는지? 2000년대 잣대로 조선시대를 들여다 보니 이런말들이 통하고 그걸 일본이 교묘하게 부추키며 조선은 망할만 했고 명성황후는 죽을만 했다라고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한국인들 상당수가 그 주장에 동의를 하고 있으니 참 선동당하기 쉬운 민족임
저 당시 사진의 개념은 오늘날과 같이 일상사진의 개념이 아니에요ㅋㅋㅋ 사진 한장 찍을때도,평복을 입더라도 격식을 차려서 궁중용을 입지 행여라도 기생이나 여염집 아낙과 겹치는 일이 없이 차별화를 뒀죠 가장 대표적인게 첩지나 족두리인데요 가체는 고사하더라도 첩지나 족두리도 없이 사진을 찍는 건 말이 안돼요 고종이나 다른 여인들도 평복을 입고 찍은샷이 있지만 고종의 평복 사진은 상중에 찍은 사진이었고 백립에 흰도포,지팡이에 당혜까지 전부다 최고급 궁중의 것임을 알 수 있고 다른 여인들의 치마 저고리도 일반인들의 그것과 격이 달라요 원단을 자세히 보면 온갖 수복문양들이 자수질 돼있고 저고리 형태도 최소 가슴 밑은 넉넉히 가리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이에요
엄상궁은 출신은 미천했죠. 왕족 출신이 아니죠. 명성황후의 나인이었다가 명성황후의 처소를 드나들던 고종의 승은을 입었어요. 야사이기는 하지만 여자 좋아하던 고종이 자신의 처소를 드나들다 자신의 나인들에게 관심을 가질까 봐 우려한 명성황후가 고종이 절대로 관심을 보이지 않을 만한 박색을 일부러 자신의 최측근 나인으로 삼은 것이었는데 오히려 명성황후가 뒤통수를 맞은 거라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부인이나 어머니의 시녀였다가 권력자의 첩(후궁)이 된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 아무래도 자주 드나드는 곳에서 눈에 띌 수 있으니까요. 일부다처제 시절에 권력자는 여러 여인 거느릴 수 있고요.
진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만 아는것이고..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추정이라도 굉장히 부합하는거 같기는하네요 저분이 진짜 명성황후 본인인지는 알수없으나 인상만으로 보자면..굉장히 영악하고 똑똑했을거 같기는하네요 인상만으로만 말한겁니다 악행 많이 저지른거 알고 있습니다 얼굴도 동안이여서 얼굴만으로는 구분이 안가서 옷을 벗겨서 가슴을보고 누군지 알아차렸다고 들었는데..어려보이고 좀 고집스러움도 보이고 굉장히 영악한 인상임
악행 저지렀다는 것도, 황현의 매천야록 즉 한양에 살지도 않은 시골에 있는 자가 사람들이 이랬대 저랬대 하는 말만 듣고 찌라시를 작성하였고 현대의 유튜버들이 자극적인 부분만 짜집기 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런 유튜버들이 맨날 하는 말이 황후의 사치설인데, 선교사 말에 의하면 황후는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 어떤 악세사리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표범 카펫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거짓이고요. 언더우드 선교사에 결혼식 지참금을 엄청나게 줬다고 하는데 이것도 내막을 보면 이해됩니다.
당시 일본이 황후와 고종의 자금 출처를 감시하고 있었기에 두 부부는 돈을 함부러 쓸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주고 대리로 자금을 조달하게 시켰고요. 자금은 독립운동 자금과 현대식 학교, 현대식 병원이 세워지는데 쓰였습니다. 연세대학교가 세워진 계기입니다.
민비가 민씨일족들을 데려다가 세도정치와 부정부패로 조선을 말아먹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음 조선초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황해도와 평안도 및 경기도 일대의 호족들 대표인 여흥민씨들이 이성계의 반 역을 강력히 지원하였다 막대한 재산을 허비하면서 말이다 그뿐이 아니라 1,2차 왕자의 난에서도 민씨일족들은 태종 이방원을 도 왔다 하지만 태종이방원이 권력을 잡게되자 공이커서 권력을 잡은 원경왕후의 친정오빠와 친척들인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희 등 수많은 민씨일족들을 처형했다 조선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민씨일족들은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와 사노비이며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고 허구헌날 당쟁으로 날이새고 사대부 양반들끼리 패를 나워 죽이 고 죽이는 싸움을 그둬 들이기 위해서 조선을 망하게 할수 밖에 없었다 여흥민씨인 민비는 역시 왕비가 되자 친인척 대거 핵심요직에 등용하고 국가세금을 군비에 사용하지 않고 청나라를 망하게한 서태후 처럼 악랄하지는 않았으나 무능의 극치로 가난했던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500년내내 넘쳐났던 조선의 국고를 탕진하는데 앞장서서 결국 조선은 스스로 일본에 나라를 상납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은 500년동안 400만명에서 1000만명 수준이던 인구가 한일합방 36년만에 두배 세배인3000만명이상 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해방직전 남북한인구) 만주나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일본등 해외로 빠져나간 인구를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절대적으로 한 드라마로 인한 피해..." 난 조선의 국모다"... 실제론 흥선대원군이 10년동안 모은 국고를 1년에 다 써버림 그게 독립을 위해서도 백성을 위해서도 아닌 미국 의사한명의 진료 한번과 절에 보시 한다고 쓴돈 ...자체한 현대적 가치는 기억안나는데 몇 천억원 ...
언더우드의 부인인 호튼이 결혼식때 왕비의 선물에 대하여 기록한 부분 “그 소중한 날(언더우드와 결혼하는 날) 아침에 조랑말들의 방울소리가 우리 앞마당에서 들려왔다. 나는 곧 그 앙증맞은 짐승들의 긴 행렬이 중전마마의 선물을 잔뜩 싣고 도착한 것을 알았다. 자그마치 현금 백만냥이었다"
@@bomsorikim970 그래서 존재 안하고 개 박살났잖아 조선후기에 저 정도 돈은 절대 적은게 아님 설령 적더라도 조선 재정이 파탄 난 상태에서 퍼준걸 생각해야지... 흥선 대원군이 걷어놓은거 여기저기 다 빠져 나가고 민비가 무당이랑 이 사람 저 사람 퍼줘서 망한거임 ㅇㅇ 님 의견도 맞긴함 큰 돈은 아님
@@국어국문학과_전공 헛것을 배운 우리 국어선생님^^ 사투리를 사라지게 만든 국어 선생님, 왕족의 언어를 사라지게 만든는 표준어 ㅎㅎ 사투리=상쓰런 언어 왕족만 사용하는 언어 국어선생님이 나라의 언어 공부는 안하고 일본 앞잡이들이 선생의 선생이 돼어서 우리말 말살 정책에 동참 하면서 머가 먼지를 모르고 선생님하고 계시죠 ㅡㅡ, 어떻하던 감사 합니다. 헛것을 가려쳐 주셨어^^ ♤♤♤♤다 버려야 할것 = 헛것♤♤♤
역사에 관심 있는 1인입니다. 명성황후 사진 진위여부가 논란 되길래 선교사 증언과 사진들을 본 적이 있지요. 이상하게 기생사진이라 일컫는 사진이 끌리더라구요. 묘한 기품과 차가운 창백한 얼굴이 제 생각에도 저 사진이 맞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기록한 선교사가 말하길 희고 창백하고 나이가 어려보인다고 날카롭고 단아하고..
근데 중간에 나오는 수수한 차림으로 심통 맞은 표정 짓고 흥선대원군이랑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 속 여자는 흥선대원군의 첩일 거라는 추정이요. 상당히 신빙성 있네요. 대신 대원군의 첩이라고 하기에는 그 분도 정말 인물이 없네요;;; 심지어 인상까지 심통 맞아 보여요;;; 아무튼 이 시기엔 사진이 개발되어서 고종, 순종, 영친왕, 덕혜옹주, 의친왕 등등 이 시기 왕족들의 사진은 꽤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 시대엔 사진 기술이 아직 많이 발달하기 전이라 사진 1장 찍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진이 영혼을 빼 먹는다, 옷 속까지 찍는다 등 낭설이 많아 사진 찍기를 꺼리는 사람들도 많았다는데 고종은 사진 찍는 걸 꽤 좋아한 편이라죠. 그래서 사진들이 제법 많아요. 그런데 유독 명성황후 사진만 정식으로 기록된 것이 없는 것이 저도 의아하네요.
맞습니다 민비가 없었다 하더라도 조선는 망할 수 밖에 없는나라였죠 그러나 민비의 악행은 비판받아야합니다 국가는 몰락해가고 백성은 굶어죽어가는데 국모라는 왕비가 무당에게 벼슬까지 주고 허구헌날 궁에서 굿판을 벌리고 자기아들 무병장수를 위해 온나라 절에 치성비로 쓴 돈이 어마무시 오즉하면 백성들이 낫.곡갱이등 무기를 들고 민비를 죽일려고 왕궁까지 쳐 들어갔겠어요 왕비의임무가 무엇인줄도 모르는 미친사람
민비의 요청으로 외국군 진입해 자국민 학살해 달라고 요청하고 그로인해 조선에서 청일전쟁 발발하고 식민지의 결정적 단초 제공~ 갑신정변,갑오경장의 급진적,온건 개혁 모두 거부, 친위대도 관리못해 임오군란 원인 제공, 만민공동회,독립협회와 협조할듯 하더니 강제해체 등등.. 구한말 개혁,독립활동에 열심이었던 주요인사 태반이 고종의 연이은 삽질에 실망,좌절해 변절할 정도로 안그래도 위태로운 나라가 망하지못할까봐 안달난 전형적인 암군과 그 배후인 민비
엄귀비는 평민출신으로 집이 가난해(부친이 작은 가게를 하는 상인이었음)8살에 입궁해서 일하다가 일본군과 친일파들의 위협에서 왕을 구해낸 공로로 귀비가 되었는데 나라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선교사들의 말을 듣고 학교도 2개(현 양정고, 숙명학원)나 세우고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만59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에도 후원금을 보내고 장학금을 지급하고, 그 사촌 남동생한테도 돈을 줘서 현 진명학원이 되는 학교를 세우게 함... 8살부터 번 돈 및 내탕금으로 한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신 훌륭한 분인데 뭘 고구마로 꼬셨느니 저 얼굴로 꼬셨다느니 말하는지. 매관매직으로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세금을 마구 걷어서 백성을 고통에 빠뜨리고, 동학 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일본군과 관군을 보내 백성을 죽이고, 왕실에서 매일 수입사치품 쓰느라 나라빚을 눈덩이처럼 만든 민비따위랑은 비교가 안됨(사관과 궁녀가 쓴 기록에 매일 새로운 가구, 서양과 일본물건을 사재꼈다고 남아있음.) (* 민비는 성격이 고약해서 엄귀비가 고종의 아들을 얻자 제거하고자 궁궐 밖으로 쫒아내고 서인으로 강등해 죽이려고 했고 병딱같은 고종은 민씨가문이 기세등등하니깐 엄귀비를 서인으로 그대로 강등시키려다가 제발 서인으로는 강등시키지 말아달라는 엄귀비 부친의 읍소를 듣고서야 서인으로 강등을 안 시킴. 민비는 장귀인이 의친왕을 얻자 똑같이 궁에서 내쫒음.) 그리고 왕실 내 대표친일파 이준용(순종 동생놈)이 눈엣가시로 여긴 사람임. 엄귀비는 데라우치 총독한데도 소리질렀고 친청파 친일파 친러파로 나라 팔아먹고 부귀영화를 얻으려한 민비년과는 급이 다른 여장부임. 민비 살해 이후 고종이 황후로 앉히려 했으나 세력도 없고 친일 왕족들이 반대해서 못하였다고 하나 민비 살해 후 다시 중전을 앉히지 않고 여성 서열 1위로 앉혔음. 다만 스스로 권력을 잡지 않고 부정부패를 안 저질러서 안 유명해진 것이었을 뿐 훌륭한 분인데 얼굴 비하에 저질스러운이야기는 왜 하는지.
@@AJ-vm3xh 예~~맞습니다~~엄귀비는 우리나라 교육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훌륭한 인물인데 여기서 너무 헐뜯고 비난하는것같아서 마음이 안좋았습니다~~엄상궁이란 호칭도 너무 비하하는것같아서 생존시 순헌황귀비라는 호칭으로 예우해드려야합니다~~그리고 진명여고도 귀비께서 후원하신 학교입니다
7:08 명성황후 초상화 그린 화공이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다 좌우 대칭이 하나도 안 맞는 삐뚤어진 얼굴을 나름 보완 수정해서 그렸으나 그래도 작가로써 특징은 알려주고 싶었던 듯 싶네요 그리고 후대에 들어서 사진이 좌우 반전 처리가 되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초상화 보면 오른쪽 보이는 눈꼬리가 살짝 더 올라가 있고 눈시울도 사진과 같이 살짝 다르게 표현했네요 눈 밑에 애교살 부분도 사진과 같이 양측 눈이 다르게 표현되었구요 근데 입매 쪽을 보면 사진은 살짝 왼쪽으로 실룩하고 돌아가 있게 입매가 비뚤어졌는데 초상화는 미세하게 오른 편으로 살짝 치우쳐있고 씰룩한 입꼬리 부분도 오른 편으로 되어있네요
원래 왕족 초상화는 다 미화 됩니다.
있는 그대로 그렸다간 목아지가 ㅋㅋㅋㅋ
당장 우리도 증명사진 전부 뽀샾 하지않음? ㅋㅋㅋㅋ
근데 조선의 화공들은 뽀샵처리 그런거 없고 있는 그대로 그린다고 그러더이다
@@han1231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에는 뾰루지도 그렸는데......?
친일파들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반박 ㅡ 다음 검색
@@han1231 조선의 초상화는 있는 그대로 그리는게 특징이었습니다. ㅋ 대표적으로 윤두서 초상화가 있죠.
대단하세요. 저도 역사책에 나오는 사진이 명성황후가 아니라고는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고증을 거쳐서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역사적 인물들과 사실들의 고증을 위해 애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자료들을 수집해 분석하고 영상으로 제작하기까지 정말 수고가 많으세요. 구독하고 다른 영상들도 보겠습니다.
예전 저의 어머니 (살아계시다면
110세)는 민비에 대해,
수수팥떡 뭉쳐놓은 것처럼 생기고 입은 튀어나왔다는 말씀을
하신 적 있는데 아마 그 시대를
사셨던 어르신 세대에선 일상적
구전으로 통하던 악녀의 상징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증에
창고가 될 것같아 올립니다.
호칭도 민비가 아닌
민중년이라 불려졌지요. 민심은
천심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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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어릴 때부터 맛탱이 가서 계단도 혼자 못오를 정도였음
영상에서 처럼 납중독이라면 왜 갑자기 장성하고 나서 다시 정상인처럼
사람구실할만큼 변했을까?
안 좋은 건 다 일본탓을 하는 국민성을
진보랍시는 인간들이 전염시켜서
포퓰리즘이 당연하다는 식의 인간들이 정상인 행세를 함
나라가 해줘야지!!
반체제를 원하는 인간들이 조선을 빨면 어쩌자는 건지
ㅋㅋ 하긴 통제자체가 목적이고 수단인 이념을 빠는 이들이
진보를 들먹이는 게 코미디네
왕비 민씨는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사진 그림이 다 조작이라면서
필요한건 맞다고 우기는 건 아닌지
그나마 이승만박사가 맞다고 하니 신빙성이 있어보임
1930년대 까지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와 ... 너무 소중한 영상입니다... 오늘 갑자기 타임라인에 떠서 우연히 보게됐는데 너무 흥미롭고 이게 말로 표현을 못하겠네요.. 너무 감사드리고.. 역사 공부한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신기한 영상이에요ㅜ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종종 올려주세요 구독하고 가겠습니다..!!
명성황후 실물에 대한 해외선교사나 해외사람들의 후기와 정확히 일치하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올바르게 역사를 알아야 해외에 다시는 안당하고 나라를 똑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민비 명성황후가 어떤일을 했든간에 모습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고증된 사진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성황후 얼굴 모습이 늘 궁금했는데, 이제 뭔가 해답이 나오는거 같네요 . 감사합니다.
민비는 암적 존재였는데 명성황후라 띄우는 세력은 반일 프레임으로 이익 보는 집단들.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귀한자료를
잘 보았습니다
명성황후는 개풀뜯고있네 민비
저러케 이쁘게 생기기도 어려우데 어찌그러케 좋아했을까 ?
순종의 눈동자 반사시인것..입술약간 뒤틀린듯한..빼박이네요. 이렇게 치밀하게분석해주시다니..시청자로써 정말 감사합니다.
일본인이 왜곡한 거예요 사진의 중요성을 알고 일황가문은 멋있게 대한제국 왕실은 기형처럼보이게 조작했어요
그렇네요 입술 뒤틀린거 사진이라서 반대니까 그림쪽이랑 비교하면 빼박이네요
순종이 그렇게 된건 유전적인 이유보다 커피에 아편을 넣어 고종과 순종을 독살하려 했는데 고종은 커피 애호가라 맛이 이상해 먹지 않았고 순종만 마셨는데 이때 치아도 18개나 빠지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후유증이 심각하게 와서 정상인처럼 보기 어려웠다는 말이 있습니다.
볼수록 신기하게 초상화랑 진짜 똑같아보이네요👏🏻👏🏻
지나가시다 우연히 절 만나신 분들 늘 즐거우시고 요즘 이 코로나 시기 때 건강 조심하세요 옷 따스히 든든히 입으세요 댓글 달아주시는 한 분 한 분께 기도 드립니다 행복하세요:)
1:56 이 사진이 맞다면, '동안이라 어리게 뵌다'는 건 무리고, 입궁전 사가에서 찍은 것일 거라는 추측이 합리적이네요. 평복 차림도 이해되구요.
명성왕후로 실린 구한 말 여러 자료에서 조금씩 다른 건 당시 기술상 여러번 반복해서 싣다보니 흐려지고 가필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구요.
20대도 보면 눈 옆에는 주름이
ㄱ
감사드립니다 . 역사의 자료 힘들게 복원해 주셔서 , 수고하셨습니다 .
엄청난 추리, 분석, 끈기 등 정말 역사가로서의 자질이 타고나신것 같습니다. 이것을 뉴스기사로 내도 손색이 없겠어요.
남의 주장에 잘 현혹되지 않는 사람인데
이건 진짜 그럴싸하다
유전자는 거짓말을 안하죠
2번이 민비일가능성이 큽니다 흥선대원군첩이 왕가사진찍는데 끼는것도웃기고 거기에민비가없다는게 더말이안됨 2번임
@@문일낫 근데 기록과도 틀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사진이 정말 순종하고 얼굴빼박이지않나요? 걍 똑같이생김..
@@Emperor0313 왕실가족사진에 민비가빠지고 첩이들어간다는게 더있을수없는일 다들관상 신봉자들인듯 홍라희랑 이재용이랑똑같음?
김대중이랑 장노도랑똑같음? 육영수랑 박지만이랑똑같음? 어휴,.
근데 그렇게 치면 두번째가 더 닮은것같아요
우리가 알고 있었던 명성황후 민비의 사진과 그림들을 모두 추정에 불과하군요. 복식이나 자료를 기반으로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명성황후의
사진 하나 없느냐고
고종이 몹시 비통해했다는 얘기도 할머니께
들었어요.
민비가 회장되었던
곳의 흙을 다 관에
담으라는 고종의
명이 있었어요.
두부부의 생전 정은 각별했다고 합니다.
민비 일본식 표현은 자제좀
ㅋㅋㅋㅋ혀영심 가득하여 나라 팔아먹은 사람이 이렇게 추대를 받다니
@@깨어나라-t6w 민비라는 표현도 아까운 여자입니다
@@깨어나라-t6w 비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임 무슨 비가 일본식표현임 ㅋㅋ
오랜만에 와서 다시 시청했습니다. 영상을 만들기 위한... 생각할수록 놀라운 노력과 정성이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민비의..
오른쪽눈이
안쪽으로 몰린듯한 모습
순종께도 닮아 있습니다..
놀랍게도 아들 순종과 명성왕후 추정사진속 여인은 모두 눈이 사시라는 점때문에 더 와닿네요.
명성황후 추정사진보면 진짜 순종이랑 얼굴똑같음... 걍 빼박
사진이 일제에 의해 조작된 것입니다
언더우드부인이 쓴 조선 여행기록에 보면 왕비는 마른 체형에 차가운 인상이었으나 친절했고 총명하고 호기심도 많았다고 합니다. 대충 어느정도 선에서 연상되는 스타일이죠
총명이라? 그건 언더우드 부인의 착각. 무당에 빠져 나라먹은 녀ㄴ
하.. 이제보니... 건진법사....
친절?.. 죽은 사람들 시신을 꺼내어 찢던 여자가 친절? .. ㅎㅎ
명성홯후가 굉장히 똑똑해서 신하들도 어려워했다는 이야기는 많아요.
@@hmjeon8609 국고를 지 사비로 쓴 희대 망할여편네죠
외모만 보자면 이우 왕자가 사진이 남은 왕족 중엔 진짜 존잘..
이우공 님 정말 잘 생겼음. 일본으로 원폭투하전에 일본군인드ㅡㅡㅡㅡㄹ 명령으로 거기 안가고 싶은데 갔원폭길거리에서 맞고 돌아가셨다. 부하에게 말을 질려주셔서 빨리 벗어날수도 없었다고 함. 부하의 부인이 풀산을 한다고 어서가서 탸어나는 아이보라고 말 빌려주셨다고 함. 어찌 그리 착하고 선한지
@@박난영-r8m 그래봤자 일본군인으로 활동한 왕족일뿐 ㅋ
@@김달랑베르-y7t 이게팩트
군은 어쩔수없이간거고 독립위해서 왕족신분으로직접 뛰셨는데
@@송리븐 뇌내망상은 혼자서만.
진즉 명성황후 실제 사진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으면 그 분을 모시고 시독했던 분들도 있었는데.. . 이제는 다 돌아가시고.. 아쉽네요
사실 거짓을 떠나서 제일 설득력있는 분석입니다.
괸상도 보아하니, 인생이 그러할 듯 함.
이게 설득력 있다고..?
@@blacks3701 그럼 설득력이 없는 이유는?
@@blacks3701 그는 설득력 없다는 이류를 찾아
일주일 넘게 나타 나지 않았다!!
@@woongin 이게 설득력이있는 이유는??
인정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 하십니다. 정확한 분석 감사 합니다.
일본 이 악랄하게 조작함
불과 7분여짜리 영상인데 수십부작의 대하드라마를 완결하여 본듯 감회가 남다르군요.
사진을 보는데 소름이.. 초상화와 너무 닮아서 그런 것도 있고, 약간 기분 나빠지는 인상이네요.
다른 거 볼 것도 없이 순종과 너무 닮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증거가 되는 것 같아요.
이 영상에는 안 나왔지만 순종 다른 사진을 보니까 진짜 소름 끼칠 정도로 똑닮았더라구요.
같은 핏줄이 아니고서야 그 정도로 닮을 수는 없겠죠.
갸름한 미인형이라는데 맞는거 같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엄상궁-영친왕 명성황후-순종에서 답나왔네요 엄마 판박이네
어디가 닮았다는거지 동양인인거?
영친왕은 상궁 아들인가요?
@@hunk2985 그렇다네요 저도 몰랐는데요
붕어빵이네. 여자가 너무 설치면 안조아요.
요즘 떠오르는 썰이 귀인 장씨가 상당한 미녀였지 않겠나 하는 썰이 있대요
의친왕을 거쳐서 이우 공의 외모가 고종과는 전혀 달랐기에, 장씨가 미녀여서 dna를 바꾸지 않았나 추측한다고 하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논문으로도 발표하면 더 좋지 않을까합니다. 고증학으로도 의미가 있는 업적입니다.
무당에게 관직까지 줘가며 국고를 탕진했던 민씨일가가 나라를 팔아먹는데 일조한 인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누가 민비가 개혁적이라고 평할 수 있을까? 관리 중 민씨가 230명
ㅁㅈㅇ같
@@전국구개나리 문제인정부에 문씨들이 많나요?
@@색기넘치는신현준
문재인 패거리들이 많죠
지들끼리 돌아가며 해처먹기.
딱 민비와 민씨들.
@@김훈-o8m 대원군 이 며늘외척이 득세
할까 친청 없는 민비 골랏는데 없던
민씨 친척이 하나 둘 생겨났다는..
근데.. 왕이나 권력자들 여자 인물 보고
잠을 잤을텐데 인물들이 미인들이 아녀.
딱 문재인같네 공공기관 공기업 죄다 낙하산..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한눈썰미하는 사람인데 주장하시는바가 맞다고 보입니다 언젠가는 일본지하도서관에 남아있을자료가 공개되고 모든역사가 정정되는 날이 올것으로 믿습니다!
뜨거운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신병자들이 넘쳐나는구나
근데 오래사셨던 다른 왕가나 순종효황후나 궁녀한테 추정사진들 보여주면서 맞냐고 확인했으면 알수있지않아요..?
그분들은 얼굴을 모를리 없잖아요ㅠㅠ
생존해계실때 알아봤으면 좋았을텐데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네여..
매국과 권력욕으로 묻힌
실질적으로 조선의 마지막 공주가
민정 몇년까지 살아 있었는지도 모르는
지금에야 한국이 먹고살만해지니까 점차 과거 기록들도 찾아내고 정리해서 이정도로 가는거지 불과 20년전만해도 돌아 볼 겨를이 없었음. 게다가 민비를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암만 늦어도 1950즈음에 세상을 다 떠났을텐데 그때는 미군부대 음쓰찌꺼기 모아서 부대찌개 해먹기 바쁠때였어요
일단 민비의 얼굴을 함구 하라고 했다네요 모른다고 하라고 그랬다던데
긴 시간 자료조사와 팩트체크 등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민씨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되었네요👏
p.s:목 짧은 엄상궁 울 동네 국밥집 아줌마랑 똑닮
격식있는 의복은 아니고 홑옷인 적삼입니다. 왕비가 적삼을 입고 사진을 찍었을 것 같지는 않네요. 여전히 모른다가 정설
맞습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 저 사진은 민비 아닙니다
홑옷 적삼에 격식의 끝판 장갑이라 ...
@@시민세종 ㅣ
시내를 구경하고 싶었던 왕비가
서민복 차림으로 길거리에 나서서 허름한 복장인거고 저 장갑은 왕가에 자존심을 지키는 의미로 착용을
한거지 고로 맞음
민비가 처한 시대배경을 생각해보면 어느순간부터는 신변위협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잔사람이고 후궁들에게도 자기옷 입혀놓고 외출하던 사람인데 민비가 적삼있고 그래도 장갑으로 포인트 주고 찍은게 더 정상으로 보이는구만.. 저때 추레한 적삼에 저런 최고급 장갑끼고 사진찍을만한 저당시 여성이 조선에 몇명이나 있을까 더군다나 명성황후 조카도 마지막 사진을 민비라고(사후) 신문에 글이랑 실었는데 초상화랑도 빼박이고 가장 확률이 높아보임
칭찬합니다
고맙습니다
말끔히 풀리네요
하여간 대단하십니다 열정이~~
계속 부탁드림니다
고종 순종은 외모가 진짜..불량감자네
고종은젊은시절은 괜찮은데 나이들어서 좀
친일파들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반박 ㅡ 다음 검색
관상이 과학이다. 저런 모습이였다니 나라가 망함
민비가 민씨일족들을 데려다가 세도정치와 부정부패로 조선을 말아먹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음 조선초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황해도와 평안도 및 경기도 일대의
호족들 대표인 여흥민씨들이 이성계의 반 역을 강력히 지원하였다 막대한 재산을 허비하면서 말이다 그뿐이 아니라 1,2차 왕자의 난에서도 민씨일족들은 태종 이방원을 도
왔다 하지만 태종이방원이 권력을 잡게되자 공이커서 권력을 잡은 원경왕후의 친정오빠와 친척들인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희 등 수많은 민씨일족들을 처형했다
조선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민씨일족들은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와 사노비이며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고 허구헌날 당쟁으로 날이새고 사대부 양반들끼리 패를 나워 죽이
고 죽이는 싸움을 그둬 들이기 위해서 조선을 망하게 할수 밖에 없었다 여흥민씨인 민비는 역시 왕비가 되자 친인척 대거 핵심요직에 등용하고 국가세금을 군비에 사용하지
않고 청나라를 망하게한 서태후 처럼 악랄하지는 않았으나 무능의 극치로 가난했던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500년내내 넘쳐났던 조선의 국고를 탕진하는데 앞장서서
결국 조선은 스스로 일본에 나라를 상납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은 500년동안 400만명에서 1000만명 수준이던 인구가 한일합방 36년만에 두배 세배인3000만명이상
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해방직전 남북한인구) 만주나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일본등 해외로 빠져나간 인구를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효종 이후? 조선이 후기에 들어서면서 권문세가들이 결탁하여 똑똑한 왕자 왕들을 은밀히 죽이는 작업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야 조선을 파 먹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 영상과는 별개지만 진짜 장연홍이랑 이우왕자는 지금 시대에도 존예 존잘임,,,
이우왕자 일본군장교,
@@H푸른하늘-k4s 일본군 장교복 입은 거 개간지던데
@@H푸른하늘-k4s 일본군 장교가 대통령도 했는데 뭐 그런걸로...
@@이상혁-n5j어휴 아직도 조작사진에 놀아나니
@@wjdqhr38뭔 조작사진?ㅋㅋㅋ그래 사진이 조작이라고 치자. 그럼에도 견마지로 혈서는 오까모도미노루의 모든 것을 증거한다.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딴건 모르겠고 영친왕 & 엄상궁은 레알이다는 거지 ㅋㅋ
ㄹㅇㅋㅋ
훌륭하십니다.
대단하십니다.감사합니다
이게 사실이면 한나라의 왕비를 기생으로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기생으로 둔갑시켜버리다니ㅠㅠ 너무 악랄하잖아ㅠ
일본애들이 조선쌀 80프로 수탈하고 유전자도 다른데 조선시대 쌍수와 코주사 백칠 화장으로 유명하고, 토번/티벳족이 베이스고 야요이인이 이 티벳족임 그래서 작은 야요이인 (티벳족;신라에 의해 백제 노예에서 쫒겨난 것임, 의자왕 타락과 3천 궁녀)과 작은 토번족으로 키가 작은거임
반대일 수도 있어요.
전국적 봉기로 확산된 동학농민운동, 조선의 백성을 청나라 군대를 불러 진압한 민비(명성황후)와 백성들 괴롭히는데 전념한 민씨일가가 더욱 악랄함 악질중에 개악질
@@bm-mh4yd
그렇죠.
이런 민비를 피해자 영웅시 하는 이유가 뭘까요...
민비 저 여자가 악랄한건 모르시나
이들은 진즉 사라저야 했다. 이들로 인해 가시밭길 헤멘 조상들 생각하면 슬프다. 지금도 이들과 같이 행동하는 북조선..내 죽기전에 망하는꼴 보고잡다.
사람의 얼굴중에 다른 부분은 다 조작할수 있어도 귀만은 조작할수 없다
조작뿐 아니라 조작할 발상조차 못하는것이 귀이다
저 사진은 민비가 맞다 사진과 초상화의 귀가 일치한다
귀도 조작 가능하지않나?증명사진 찍으러 가면 귀도 사이즈에 맞게 바꿔주시던데
진짜 대단하시네요. .
정말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슴니다
잘생겨서 왕족이되는게 아니라 가문에 힘이있어야 정실부인이될수있고. 정실부인을 외모로 뽑는게아니라서 정실부인의 아들들이 왕이되니 왕족들이 잘생길수가없죠.
@@삼각태 세종은 고도비만...
@@우마이우마이-l4t 어느날부터 악플로 세종대왕 비하하는 글 넘침
@@희주-x7k 악플이 아니라 실제로 살쪄서 병으로 고생하신분이에요
조선구라사 박계옥같은 놈 많겠지
명성황후가 어떻게 생겼건
역사의 죄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죠.
드라마와 뮤지컬을 통해 미화된 사실이
안타깝네요.
무덤에 침이라도 뱉어야 할듯요.
백성의 혈세로 자신의 사치를
충당했으니. 에휴
민비때문에 나라가 망한것임
이렇게 2000년대 도덕적 잣대로 선조들을 비판하며 식자인양 하시는 분들이 역사를 왜곡함. 그당시 한나라의 왕과 왕비는 지금의 부유층이 누리는 부의 정점에 있었고 백성과 나라의 모든 재물이 일차적으론 왕과 왕비의 소유였음. 일본만 해도 일본왕 한마디에 할복하고 카미카제 하는게 이상하지 않았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국왕과 왕비의 말이 절대적이었으며 유럽귀족들이 모여 하루가 멀다하고 파티와 모임을 열어 사치와 향락을 즐겼음. 대항해시대를 연것도 사치품인 후추와 향락품을 찾아 항해를 했다는건 알고 있는지? 2000년대 잣대로 조선시대를 들여다 보니 이런말들이 통하고 그걸 일본이 교묘하게 부추키며 조선은 망할만 했고 명성황후는 죽을만 했다라고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한국인들 상당수가 그 주장에 동의를 하고 있으니 참 선동당하기 쉬운 민족임
정말 대단합니다. 사진판독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군요.
판독 잘 안된거임
영친왕은 자기엄마 엄상궁과 너무 붕어빵 두툼한 입술과 짫은목 너무 많이 닳았네
아들은 대체로 엄마의 유전자를 많이물려받는거 같더이다 체격 이목구비 딸은아빠외모 많이 닮고 뉴스에도 나왔어요 예쁜딸을 원하면 미남을 남편으로 삼으라고 .
근데 나는 개인적으로 조선을 조선을좋아하지도않지만 어찌됬든 민비라고 하면서 조선의 국모를 폄하하진 맙시다 명성황후입니다 이것이 인긴의 예의라고 봅니다
근데 엄상궁 조두순 하고 약간 같은 느낌 .
유전자 쎈 쪽 닮는거임
@@annakim4473 딸을 안주네요 ㅠㅠ
"내가! 조선의 국모다!!!"
희대의 역사왜곡 ㅋㅋㅋ
국모는 개뿔 세금을 지돈인양 쓴 련 조선 말아 먹은 일등공신
@@정의란-q8k 세금을 지돈인양쓰는 것보단
역시 자기나라 백성을 일본을 불러서 제압하려는게 젤 크지않음?ㅋㅋㅋㅋ 텐징조약땜에 청나라까지 와서 동학농민운동 제압함 ㅅㅂㅋㅋㅋㅋㅋㅋ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내명부 수장이라는 년이 일본 낭인들한테 빌빌대기나 했으니ㅋㅋㅋㅋㅋ 악행을 일삼을 때는 가오충만하더니만 죽기는 싫었나봄
실제기록은 끝까지 나는 민비가 아니라고 우겼지
@@웃어라-k1z 그 반대 아님? 민비가 청을 불러 아산에 상륙하고 톈진조약때문에 이듬해 일본이 인천이 상륙한거 아님?
고생하셨습니다..알수없던 것을 또 하나 안 시간입니다.
나중에는 진짜 전문가가 팀을 이루어 복원 및 확인 작업이 있어야 겠네요
이미연이 명성황후 찍어서 실제 명성황후도 예쁠줄 알았음.. 아니 그냥 모든 왕비들 태자비들 다 예쁠줄 알았음
👍👍👍👍👍👍😆👍👍👍👏👏👏👏
인물 드럽게 없음 다들
정실왕후는 못쌩겼을 가능성이 높음..
이쁜건 후궁들...
그당시엔 미인들임.. 미의 기준이 시대가 변하며 달라짐..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가 집안과 정약결혼을 해야되었기에 미모는 선택 사항이...
저 당시 사진의 개념은 오늘날과 같이 일상사진의 개념이 아니에요ㅋㅋㅋ
사진 한장 찍을때도,평복을 입더라도 격식을 차려서 궁중용을 입지 행여라도 기생이나 여염집 아낙과 겹치는 일이 없이 차별화를 뒀죠
가장 대표적인게 첩지나 족두리인데요
가체는 고사하더라도 첩지나 족두리도 없이 사진을 찍는 건 말이 안돼요
고종이나 다른 여인들도 평복을 입고 찍은샷이 있지만 고종의 평복 사진은 상중에 찍은 사진이었고 백립에 흰도포,지팡이에 당혜까지 전부다 최고급 궁중의 것임을 알 수 있고 다른 여인들의 치마 저고리도 일반인들의 그것과 격이 달라요
원단을 자세히 보면 온갖 수복문양들이 자수질 돼있고 저고리 형태도 최소 가슴 밑은 넉넉히 가리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이에요
고맙습니다 🙏
애쓰셨습니다 ᆢ사시눈이 인상적입니다
그림은 눈동자가 중앙에 있네요
사실과 똑같이 그렸다간 죽음이겠네요
눈동자 를 중앙에 그리고 목숨부지 ᆢㅎ
수고하셨습니다 😊 😊 😊
조선왕실 임금어진 초상화는 단점이나 약점으로 부각되는 부위도 수정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대로 그렸습니다 ~^^ 철종의 눈이 사시였다고 기록이있고 어진또한 그렇습니자
어떻게 생겼건 관심 1도 없음
그당시 조선 백성들만 불쌍함
ㅇㅈㅇㅈ
조선백성아니고 고려백성입니다. 이씨괴뢰조선의 괴수들과 양반놈들이 고려백성을 500년간 개돼지 노예로 부린것임.
@@air5210 ?
@@look_big 고려는 어느 정도 합의에 의해 세워진 국가였지만(신라와 후백제가 귀순, 발해도 귀순) 조선왕조는 쿠데타에 의해 왕위를 뺏고 세워진 국가라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소리인듯 합니다.
@@AJ-vm3xh대학때 사회학을 교양으로 들었습니다.
쿠데타와 혁명의 차이를 모르실 수 도 있습니다.
쿠데타는 무력을 이용한 단순 권력 이동을 의미하며
먼가 거창해보이는 혁명이란 단어는
체제의 변화와 변혁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걸 의미 합니다.
저건 쿠데타가 아닙니다
왕족 인물들이 다 왜저러나...ㅎ 엄상궁...어쩔겨
사극 다 거짓인겨? 비 뽑을때 인물은 안보나벼?
이사진이 맞나봅니다, 약간 사시인게 아들과 똑 닮았습니다.
엄상궁은 출신은 미천했죠. 왕족 출신이 아니죠. 명성황후의 나인이었다가 명성황후의 처소를 드나들던 고종의 승은을 입었어요. 야사이기는 하지만 여자 좋아하던 고종이 자신의 처소를 드나들다 자신의 나인들에게 관심을 가질까 봐 우려한 명성황후가 고종이 절대로 관심을 보이지 않을 만한 박색을 일부러 자신의 최측근 나인으로 삼은 것이었는데 오히려 명성황후가 뒤통수를 맞은 거라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부인이나 어머니의 시녀였다가 권력자의 첩(후궁)이 된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 아무래도 자주 드나드는 곳에서 눈에 띌 수 있으니까요. 일부다처제 시절에 권력자는 여러 여인 거느릴 수 있고요.
@@꽃말-y6l ㅎㅎㅎ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리 그래도...엄상궁은 마음이 많이 예뻤나 보네요.
@@金進義 아관파천 앞장선것도 엄비가 한 몫했쬬
좀 똥똥하고 푸짐한 몸매가 그 당시에는 미인이었다는데요
또 건강해 보이기도 하구요
미스코리아 선발 초기에도 똥똥한 몸매에 얼굴형도 동글동글한게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진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만 아는것이고..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추정이라도 굉장히 부합하는거 같기는하네요 저분이 진짜 명성황후 본인인지는 알수없으나 인상만으로 보자면..굉장히 영악하고 똑똑했을거 같기는하네요 인상만으로만 말한겁니다 악행 많이 저지른거 알고 있습니다 얼굴도 동안이여서 얼굴만으로는 구분이 안가서 옷을 벗겨서 가슴을보고 누군지 알아차렸다고 들었는데..어려보이고 좀 고집스러움도 보이고 굉장히 영악한 인상임
악행 저지렀다는 것도, 황현의 매천야록 즉 한양에 살지도 않은 시골에 있는 자가 사람들이 이랬대 저랬대 하는 말만 듣고 찌라시를 작성하였고 현대의 유튜버들이 자극적인 부분만 짜집기 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런 유튜버들이 맨날 하는 말이 황후의 사치설인데, 선교사 말에 의하면 황후는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
어떤 악세사리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표범 카펫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거짓이고요. 언더우드 선교사에 결혼식 지참금을 엄청나게 줬다고 하는데 이것도 내막을 보면 이해됩니다.
당시 일본이 황후와 고종의 자금 출처를 감시하고 있었기에 두 부부는 돈을 함부러 쓸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주고 대리로 자금을 조달하게 시켰고요. 자금은 독립운동 자금과 현대식 학교, 현대식 병원이 세워지는데 쓰였습니다. 연세대학교가 세워진 계기입니다.
당신도 그 자리에 가면 스트레스 받습니다
@@성이름-v3k1p 와~ 이 따위 역사를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어디 책이나 사료가 있음 알려주셈. 태어나서 첨 들어본다.
이분대체 전공이 뭐길래 ?
너무 실득력있는 증거들.ㅈ
백퍼 맞습니다 명성황후 !
눈이 약간 사시 인거 같으니까
딱 맞아요
옛날 사진은 전구로 번쩍하며 찍혀서 눈이 사시로 잘 나온데요
엄상궁은 외모로는 천한 부엌어멈처럼 생겼는데 그래도 엄비라는 귀한 분이 되어 호사를 누렸네
민비가 민씨일족들을 데려다가 세도정치와 부정부패로 조선을 말아먹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음 조선초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황해도와 평안도 및 경기도 일대의
호족들 대표인 여흥민씨들이 이성계의 반 역을 강력히 지원하였다 막대한 재산을 허비하면서 말이다 그뿐이 아니라 1,2차 왕자의 난에서도 민씨일족들은 태종 이방원을 도
왔다 하지만 태종이방원이 권력을 잡게되자 공이커서 권력을 잡은 원경왕후의 친정오빠와 친척들인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희 등 수많은 민씨일족들을 처형했다
조선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민씨일족들은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와 사노비이며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고 허구헌날 당쟁으로 날이새고 사대부 양반들끼리 패를 나워 죽이
고 죽이는 싸움을 그둬 들이기 위해서 조선을 망하게 할수 밖에 없었다 여흥민씨인 민비는 역시 왕비가 되자 친인척 대거 핵심요직에 등용하고 국가세금을 군비에 사용하지
않고 청나라를 망하게한 서태후 처럼 악랄하지는 않았으나 무능의 극치로 가난했던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500년내내 넘쳐났던 조선의 국고를 탕진하는데 앞장서서
결국 조선은 스스로 일본에 나라를 상납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은 500년동안 400만명에서 1000만명 수준이던 인구가 한일합방 36년만에 두배 세배인3000만명이상
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해방직전 남북한인구) 만주나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일본등 해외로 빠져나간 인구를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진짜 수고가 많으셨네..속이 후련하네.
고생많으셨어요.진짜 명성황후를 알게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명성황후의 얼굴을 찾아 주셔서 깊은 감사말씀 전합니다.
1:00 클로즈업 할 수록 무서워....
두한이가 여장하면 저럴거 같음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명성황후 일본인 손에 죽다 보니 일본을 적대시 하기위해 그 여자를 높이 평가하는데 어떤 일화에 의하면 못된짓을 많이해 주민들이 피난가는 길도 가로 막았다 하더군 역사는 만들기 나름이지
절대적으로 한 드라마로 인한 피해..." 난 조선의 국모다"... 실제론 흥선대원군이 10년동안 모은 국고를 1년에 다 써버림 그게 독립을 위해서도 백성을 위해서도 아닌 미국 의사한명의 진료 한번과 절에 보시 한다고 쓴돈 ...자체한 현대적 가치는 기억안나는데 몇 천억원 ...
일화를 가지고 아가리 터는 새끼도 있네
일화에는 박근혜가 최태민 성노리개 였단다 증인도 많고
됏냐 ㅋㅋㅋ
일화가 그렇다 쳐도 박정희가 독립군 때려잡는 부대 대표 전진 나팔수 보다는 훨씬 난 거 같다
@@더불어새날
좌파좀비들 민비ㄴ 과 영혼을 같이 하기를 꼬~옥... 누가 뒈지나 보자!!
전에 명성황후 생가에 가본적 있는데 주변에 나이 드신 할머니와 젊은 아가씨들 인상과 비슷한 골격 외모를 가지신 분들 본적있었는데 놀랐음 dna 무시 못해요 할머니 외모와 손녀가 비슷한것 보면 소름 돋아요!
어딘가요?
왠지 보면볼수록 짠해지네요
다시한번 나라에 힘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되생각해 봅니다
1:28 박명수
왜이리 사진들이 클로즈업하면 다들 무섭게 째려 보는 거 같아서 오싹 자기 전에 보고 있는게 꿈에 나올까 무섭네
아닠ㅋㅋㅋㅋ큐ㅠㅠㅠㅠ저도요...왜 공허한 눈을 클로즈업하셨는지....저만 그런줄
역사를 잊지 안게 하려고 애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언더우드의 부인인 호튼이 결혼식때 왕비의 선물에 대하여 기록한 부분
“그 소중한 날(언더우드와 결혼하는 날) 아침에 조랑말들의 방울소리가 우리 앞마당에서 들려왔다. 나는 곧 그 앙증맞은 짐승들의 긴 행렬이 중전마마의 선물을 잔뜩 싣고 도착한 것을 알았다. 자그마치 현금 백만냥이었다"
백만냥 별로 큰 돈아니라니까?ㅋㅋㅋㅋㅋㅋㅋ그 당시 물가 조사해보기나 했음?ㅋㅋㅋㅋㅋㅋㅋ
@@bomsorikim970 당시 국가 예산이 400만냥
@@KoreanBeautyOwner 그니까 당시 돈으로환산해야지 뭔 400타령ㅋㅋ 실제로 4분의1이면 나라가 존재할 수없어요 님앜ㅋㅋㅋㅋ에휴
@@bomsorikim970 그래서 존재 안하고 개 박살났잖아 조선후기에
저 정도 돈은 절대 적은게 아님
설령 적더라도 조선 재정이 파탄 난 상태에서 퍼준걸 생각해야지... 흥선 대원군이 걷어놓은거 여기저기 다 빠져 나가고 민비가 무당이랑 이 사람 저 사람 퍼줘서 망한거임 ㅇㅇ 님 의견도 맞긴함 큰 돈은 아님
@@광대-k6m 민비퍼준적없다 에휴 나무위키에 어느 깨시민이 조목조목 반박해놨드라 시간날때가서 봐
정말 사진속과 그림속 일치하네요.
3:55 이사진은 전원주씨 아닌가?
개그맨 김영구인줄
전원주씨도 초년에 고생 많이 했지만 말년이 좋죠.
아마도 저런 관상은 그런가 봄.
아지매 개념좀 챙기세요 남과비교하는건 나쁜겁니다 아시겠어요?
ㅋㅋㅋ 빵!터짐
전원 주씨 ㅋㅋㅋㅋ
조선후기 왕족 이하전의 직계손 입니다.
저희 조부께서 1889년생이신데 저 사진 맞다고 하셨습니다.
덕혜옹주가 부모님 결혼식 오셨을때니 벌써 60년전 이야기 입니다.
안녕하세요? 영상속 주장하는 사진이 맞다는거죠???
저는 맞는거로 알고 있습니다.
@@BOXER462
이래서 드라마가 무서운거구나....
@@Sm43916 님이 다시 공부해야 할듯
@@Sm43916 아몰랑 친일파 또 등장이네 ㅋㅋ
@@Sm43916 밥은 먹고 다니냐
명성왕후도 나라를 판건 마찬가지죠. 중국이였잖습니까? 일본을 막으려다 중국의 본심은 그게 아니였죠.
@@Sm43916 무식한건 죄가 아니지만, 무식함을 사실인양 당당하게 표출하는건 부끄러운 일 입니다.
예복이니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보다
그냥 컴퓨터의 힘으로 얼굴을 대조하고 합쳐보는 게 제일 빠른 거였네요.
4:39 나는 오른쪽 순종은 이 영상 두번째 민비 추정인 사람과 닮았다고 생각해 왼쪽과 전혀 안닮았어
어린순종 사진보세요
코 입이 두번째 여자랑 똑같아요
🇰🇷명성왕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한민국 국민 중 조선시대 좋아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진정한 조선은 세종대왕 까지임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이후로 개ㅈ망
아무리 늦어도 임진왜란 직후까진 망했어야 할 왕조였지요. 중국이 명에서 청으로 넘어갈 때 우리도 같이 변했어야 했는데.
많음 특히 진보쪽 사람들은 조선이 살기좋았던 나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많음
@@Samshin1048 살기좋은 나라는 아니어도 동시대에 저거보다 나은 나라도 없지않나요?
조선시대는 알고보면 독재정치 같은데요?
북한 아닌가요? 조선 이라는 단어 아직도 쓰는데요
밤에 보는데 얼굴이 자꾸 커지는 화면이라 링 영화처럼 모니터 뚫고 나오는줄.............
맞아 ㅜ 무서어요
저도 그 생각했어요.
맞아요
나도 무셔셔 빨리돌림 ㅋ ㅠㅜ
동감입니다...ㅎㅎ
3:50 민비가 개혁적이라고?
이 영상의 신뢰도를 말해주네요.
그나마.. ㅋㅋㅋㅋㅋㅋㅋㅋ
긴시간 수고 하셨네요!
당신을 respect
감사합니다!
썸네일사진은 명성황후가 아닙니다.
숙명여학교 설립하신 고종의 후궁
엄귀비 입니다. 썸네일을 명성황후라고 착각하게 해놨네요.
영친왕 엄마가 명성황후 아니라는 건 조금만 공부해도 다 알어 ㅋㅋㅋㅋㅋㅋ
@@ediya4499 공부를 덜하셨네 의사 전달력이...
ㅡㅡ 그냥 외국인 찾아 명성황후가 왜 한국인 피가 썩였다고 생각해요 ㅜㅜ 외국인 입니다. 전부 속고 있읍니다.
@@남윤실-k7f 썩였다고x 섞였다고o
있읍니다x 있습니다o
@@국어국문학과_전공 헛것을 배운 우리 국어선생님^^ 사투리를 사라지게 만든 국어 선생님, 왕족의 언어를 사라지게 만든는 표준어 ㅎㅎ 사투리=상쓰런 언어 왕족만 사용하는 언어 국어선생님이 나라의 언어 공부는 안하고 일본 앞잡이들이 선생의 선생이 돼어서 우리말 말살 정책에 동참 하면서 머가 먼지를 모르고 선생님하고 계시죠 ㅡㅡ, 어떻하던 감사 합니다. 헛것을 가려쳐 주셨어^^ ♤♤♤♤다 버려야 할것 = 헛것♤♤♤
얼굴 확대 안해주시면 안될까요...? 진짜 무서워 죽겠어요..... 혼내려고 이놈아!!!!!!!!!! 하면서 다가오는 것 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
ㅋㅋㄱㄱㄱㅋㄱㄱㅋ 저두
핸폰을 확대시마다 점점 멀리보셈?
진짜 편집이랑 노래 섬뜩해서 보다가 끄고 싶었어요
진실을 알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사진이 명성황후 사진은 맞는것 같은데요, 다만 눈 밑의 그늘이 30대를 증명한다면 제 초중고때 친구들 상당수가 30대였다는 말임...
와 근데 진짜 명성황후 초상화랑 똑같다 귀 모양도 똑같음 심지어ㄷㄷ
식견이 짧아 그 진위는 모르겠지만 님의 노력만큼은 인정합니다 ㅎ
역사에 관심 있는 1인입니다.
명성황후 사진 진위여부가 논란 되길래
선교사 증언과 사진들을 본 적이 있지요.
이상하게 기생사진이라 일컫는 사진이 끌리더라구요.
묘한 기품과 차가운 창백한 얼굴이
제 생각에도 저 사진이 맞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기록한 선교사가 말하길
희고 창백하고 나이가 어려보인다고 날카롭고 단아하고..
잘은 모르겠지만... 엄상궁... 영친왕... 기가 막히네...ㅋ
근데 중간에 나오는 수수한 차림으로 심통 맞은 표정 짓고 흥선대원군이랑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 속 여자는 흥선대원군의 첩일 거라는 추정이요. 상당히 신빙성 있네요. 대신 대원군의 첩이라고 하기에는 그 분도 정말 인물이 없네요;;; 심지어 인상까지 심통 맞아 보여요;;;
아무튼 이 시기엔 사진이 개발되어서 고종, 순종, 영친왕, 덕혜옹주, 의친왕 등등 이 시기 왕족들의 사진은 꽤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 시대엔 사진 기술이 아직 많이 발달하기 전이라 사진 1장 찍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진이 영혼을 빼 먹는다, 옷 속까지 찍는다 등 낭설이 많아 사진 찍기를 꺼리는 사람들도 많았다는데 고종은 사진 찍는 걸 꽤 좋아한 편이라죠. 그래서 사진들이 제법 많아요. 그런데 유독 명성황후 사진만 정식으로 기록된 것이 없는 것이 저도 의아하네요.
명성황후 시해한 그 일본 그 깡패들이 죄다 불태우지 않았겠어요? 어쩌면 일본 비밀문서 뭐 그런곳에는 오히려 사진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되네요 있다해도 공개될리는 없겠지만
요즘엔 근대한국사 교수들 대부분 이 그림이(기생사진이라 오해받았던) 명성황후라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책에 근거도 나와있구요.
대단하십니다 . 역사를 알게 되는 기쁨이에요 .
합성이 아닙니다 목이짧아서 그렇습니다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 상궁 국밥하나 거하게 말게 생겼네
@@탕구리뼈다귀부메랑 ㅋㅋㅋㅋㅋㅋㅋㅋ
@@탕구리뼈다귀부메랑 ㅋㅋㅋㅋㄱㅋㄱㄱ ㄱㄱㄱ
???:어이 황후
???: 황후 어서오고
명곡중에 명곡임에도 이영상에 넣으니 7분내내 세상 시끄러운 소음처럼 정신이 다 없네 그냥. 왜 그러신 거임???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영상에 집중하면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데… 아니다 싶음 안보면 된다는.. 조언정도야 할 수 있지만 님은 그냥 테클거는것처럼 느껴지네요
@@류동관-h7z 네. 다시봐도 시끄럽네요
명성황후 민비가 무척 똑똑했다는건 사실인듯. 대원군과 며느리 누가 옳았는지는 알수없고 조선의 명운이 다해서 누가 했어도 망했을듯. 순종은 엄귀비보다 아버지 고종을 닮은듯함.
맞습니다 민비가 없었다 하더라도
조선는 망할 수 밖에 없는나라였죠
그러나 민비의 악행은 비판받아야합니다
국가는 몰락해가고 백성은 굶어죽어가는데 국모라는 왕비가 무당에게 벼슬까지 주고 허구헌날 궁에서 굿판을 벌리고 자기아들 무병장수를 위해 온나라 절에 치성비로 쓴 돈이 어마무시
오즉하면 백성들이 낫.곡갱이등 무기를 들고 민비를 죽일려고 왕궁까지 쳐 들어갔겠어요
왕비의임무가 무엇인줄도 모르는 미친사람
@@younghan6259 그렇습니다. 저도 차라리 대원군이 옳았던듯 합니다. 대원군의 쇄국 정책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데 쇄국정책의 이유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것으로 보입니다.
민비의 요청으로 외국군 진입해 자국민 학살해 달라고 요청하고 그로인해 조선에서 청일전쟁 발발하고 식민지의 결정적 단초 제공~
갑신정변,갑오경장의 급진적,온건 개혁 모두 거부, 친위대도 관리못해 임오군란 원인 제공, 만민공동회,독립협회와 협조할듯 하더니 강제해체 등등..
구한말 개혁,독립활동에 열심이었던 주요인사 태반이 고종의 연이은 삽질에 실망,좌절해 변절할 정도로 안그래도 위태로운 나라가 망하지못할까봐 안달난 전형적인 암군과 그 배후인 민비
젤 마니 닮았어요. 이분같아요 저두
엄상궁 저 얼굴로 고종을 꼬시다니 대단혀.. 체력은 좋게생겼네
그래도 엄상궁보단 엄귀비라는 호칭이 나을것 같습니다
아관파천으로 러시아공사관으로 고종피신시킨 1등공신이다..목숨걸고 빼냈는데 여장부라 할만함.
간사한 민비보다 몇만배 위인
고종이 ㅈㄴ힘들때 고구마인가 감자인가로 꼬셨다하죠
엄귀비는 평민출신으로 집이 가난해(부친이 작은 가게를 하는 상인이었음)8살에 입궁해서 일하다가 일본군과 친일파들의 위협에서 왕을 구해낸 공로로 귀비가 되었는데 나라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선교사들의 말을 듣고 학교도 2개(현 양정고, 숙명학원)나 세우고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만59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에도 후원금을 보내고 장학금을 지급하고, 그 사촌 남동생한테도 돈을 줘서 현 진명학원이 되는 학교를 세우게 함... 8살부터 번 돈 및 내탕금으로 한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신 훌륭한 분인데 뭘 고구마로 꼬셨느니 저 얼굴로 꼬셨다느니 말하는지.
매관매직으로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세금을 마구 걷어서 백성을 고통에 빠뜨리고, 동학 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일본군과 관군을 보내 백성을 죽이고, 왕실에서 매일 수입사치품 쓰느라 나라빚을 눈덩이처럼 만든 민비따위랑은 비교가 안됨(사관과 궁녀가 쓴 기록에 매일 새로운 가구, 서양과 일본물건을 사재꼈다고 남아있음.)
(* 민비는 성격이 고약해서 엄귀비가 고종의 아들을 얻자 제거하고자 궁궐 밖으로 쫒아내고 서인으로 강등해 죽이려고 했고 병딱같은 고종은 민씨가문이 기세등등하니깐 엄귀비를 서인으로 그대로 강등시키려다가 제발 서인으로는 강등시키지 말아달라는 엄귀비 부친의 읍소를 듣고서야 서인으로 강등을 안 시킴. 민비는 장귀인이 의친왕을 얻자 똑같이 궁에서 내쫒음.) 그리고 왕실 내 대표친일파 이준용(순종 동생놈)이 눈엣가시로 여긴 사람임.
엄귀비는 데라우치 총독한데도 소리질렀고 친청파 친일파 친러파로 나라 팔아먹고 부귀영화를 얻으려한 민비년과는 급이 다른 여장부임. 민비 살해 이후 고종이 황후로 앉히려 했으나 세력도 없고 친일 왕족들이 반대해서 못하였다고 하나 민비 살해 후 다시 중전을 앉히지 않고 여성 서열 1위로 앉혔음.
다만 스스로 권력을 잡지 않고 부정부패를 안 저질러서 안 유명해진 것이었을 뿐 훌륭한 분인데 얼굴 비하에 저질스러운이야기는 왜 하는지.
@@AJ-vm3xh 예~~맞습니다~~엄귀비는 우리나라 교육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훌륭한 인물인데 여기서 너무 헐뜯고 비난하는것같아서 마음이 안좋았습니다~~엄상궁이란 호칭도 너무 비하하는것같아서 생존시 순헌황귀비라는 호칭으로 예우해드려야합니다~~그리고 진명여고도 귀비께서 후원하신 학교입니다
너무 쏙쏙 잘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