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을 초월한 철학자 ‘니체’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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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9 лют 2025
- 문 앞에서
어느 깊은 밤, 아무도 오지 않을 것만 같은 폐허가 된 극장의 뒤편 문을 두드렸다. 종소리가 울리길 기다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문이 없는 건 아닐까? 혹은 문이 있더라도 열쇠가 없어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망설이는 찰나, 문이 삐걱 열렸다. 웬 마른 체구의 남자가 삐죽 고개를 내민다. 황갈색 콧수염에 매서운 눈빛.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준비는 되었소? 그대를 받아들일지 아닐지 내가 결정하오.”
묵직하고 낮은 음성, 마치 서슬 퍼런 비판과 함께 빈틈을 찌를 것만 같은 카리스마. 그렇다. 그는 바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이다. 한 세기 이상 지난 역사에서 이 사상가를 ‘신(神)을 죽인 철학자’라 부르며 경악했던 적도 있었고, 그의 저술을 읽으며 위로받거나 자극받기도 했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그를 직접 ‘인터뷰’한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나는 성필원이라고 한다. 오래된 텍스트들의 저자를 탐색하는 일에 재미를 붙여, 이미 한 번 시공간을 뛰어넘어 소크라테스와 스피노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니체를 ‘인간’의 얼굴로 만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혹독하고, 비정하며, 강렬한 말들을 쏟아냈던 니체가 내 앞에 서 있다. 전신을 둘러싼 기운 자체가 날 선 칼 같다.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이다. 철저히 ‘의지’를 외쳤던 그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믿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성필원: 안녕하십니까, 니체 선생님. 우연한 기회에 스피노자 선생님도 인터뷰했는데, 그때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분을 만났습니다. 선생님도 어디에 계신지 몰라 꽤 애를 먹었습니다. 이곳은 도대체 어디입니까?
니체: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여긴 ‘언어와 사유’를 초월한 장소지. 이런 말을 써도 좋을지 모르겠군. 보통 사람들은 ‘무(無)의 극장’이라고도 부르지. 하지만 자네가 여기에 온 건 우연이 아니다. 그대가 진실로 원하는 바, 즉 “과거와 미래가 함께 머무는 지점”을 찾아 헤맨 끝에 도달한 것이겠지.
성필원: 그렇다면, 가령 여기가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철학적 상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저는 스피노자 선생님을 만났을 때, 스스로가 ‘왕따 철학자’라고 자조했음에도 그의 평온한 태도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신이 죽었다(Gott ist tot)’라는 엄청난 선언 때문에 많은 논란을 일으키셨잖아요. 사람들은 그 선언을 극도로 위험하거나 대단히 불경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선생님이 그 문장을 쓰신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니체: 사람들은 나를 오해했지. 그 문장이 “교회에 대한 전쟁선포” 또는 “모든 도덕 부정”이라고 읽혔으니까. 사실 내가 말하려고 한 것은 ‘신’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인간에게 유효하지 않다는 걸 지적한 거다. 이전 시대에 절대적 권위를 갖던 기독교적 가치 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를 가감 없이 “신이 죽었다”고 표현했을 뿐이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존 가치의 중심축이 무너졌는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인정하기를 두려워했어.
성필원: 그렇다면 그것은 종교의 부정이라기보다는, 기존 도덕과 가치관의 해체를 예견한 말이었던 셈이군요.
니체: 맞다네. 나는 인류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절대적 도덕’에 기대어 살 수 없음을 선언한 거야.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가치의 창조다!”라고 외친 것이지.
성필원: ‘고통’과 ‘악’에 대한 선생님의 언급은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악이 늘기를 바란다, 고통이 더 커지길 바란다." 이런 식의 말이 자칫하면 ‘니힐리즘(허무주의)’ 혹은 ‘잔혹성의 찬양’으로 오인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니체: 그 점에서 내 말을 쉽게 곡해하는 자들이 참 많았지. 내가 “고통을 멸시하거나 이를 극복하자”고 말한 게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생산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일 걸세. 나는 고통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을 극복하고, ‘초인’을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악이 늘어나길 바란다’는 건 조금 과장된 표현이긴 한데, 기존의 ‘선악’ 구분이 약자의 계산된 복수심에서 나왔다는 점을 폭로하려고 한 거지. 때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가치가 무너질 충격이 필요하다고 보았다네.
성필원: 그래서 선생님은 ‘힘에의 의지’를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삼으셨죠. 이게 정확히 무엇인지, 대부분의 사람이 궁금해합니다.
니체: 자네는 생명체가 왜 숨을 쉬고, 먹고, 번식하고, 영역을 넓히려 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는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야. 더 높고 강렬한 존재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표출하려는 충동을 갖고 있지. 그것이 곧 ‘힘에의 의지’다.
그 의지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할 때, 인간은 시기와 질투, 원망, 보복심 같은 온갖 ‘감정’을 꼬아낸다네. 그러나 그 의지가 제대로 발현되면,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초극(超克)하여 새롭게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지.
성필원: 선생님의 저서 『도덕의 계보』에서 ‘주인도덕’과 ‘노예도덕’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구분도 꽤 파격적이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기독교 도덕을 ‘노예도덕’이라 칭한 부분이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 것으로 압니다.
니체: 사람들은 늘 선과 악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아. ‘선과 악’이라는 도덕 개념은 오랜 계급투쟁의 결과이기도 하고, 약자들이 강자들을 정신적으로 묶어두기 위한 장치로 발전해온 측면이 있지.
‘주인도덕’의 기준으로 보면 ‘선하다’는 것은 긍정적이고 힘찬 삶의 에너지, 지배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반면, 그런 강인함을 위협적으로 느끼는 약자들에게선 그것이 ‘악’처럼 보일 뿐이지. 대신 약자들이 자신들의 불행과 복종을 ‘선’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할 때, 나는 거기에 노예도덕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네.
성필원: 이 대목에서 스피노자가 말했던 ‘교회 문턱에서 멈출 수 없는 진리 추구’가 떠오릅니다. 선생님도 어느 시점부터는 교회나 제도권, 기성 체계와 극렬히 대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니체: 그렇네. 아니, 사실 나는 집안 자체가 루터교 목사의 가정이었고 종교의 그림자 속에서 자랐다네. 그러나 과감히 그 체계를 벗어났지. 전통적인 관념 자체가 허구적일 수 있다는 걸 직시한 뒤에는 결코 되돌아갈 수 없었어. 나에게 종교의 지배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힘에의 의지’를 억압하고, 자책과 내면의 복수심을 키우는 장치처럼 보였다네.
성필원: 선생님의 마지막 생애를 보면, 정신적 붕괴를 겪고 요양원과 병원을 전전하다가 5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간의 평은 “니체가 너무 과격한 사상을 펼친 나머지 광기에 사로잡혀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는 식입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떠십니까?
니체: 뇌질환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한계가 내 사고를 계속 좀먹은 것은 사실이네. 그러나 ‘파멸’이니 ‘광기’니 하는 시선은 후대에 만들어진 신화적 이미지가 아닐까 싶군. 내가 주장했던 사상은 ‘인간이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초인이 되라’는 것이지.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네.
나는 진리를 향한 격렬한 욕망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감수했고, 그러다 몸이 무너진 것이지, 사상 자체가 광기를 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니체는 자기 말대로 스스로를 태우다 죽었다”며 비웃기도 하지.
성필원: 그래도 선생님이 당대에 겪은 외로움이나 오해를 보면, 스피노자 선생님 못지않게 ‘왕따 철학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 고독은 선생님 삶에 어떤 의미였나요?
니체: 하하, 자발적 왕따였을 수도 있지. 나는 군중의 박수보다 위험한 사유를 택했다네. 고독 속에서야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내가 두려워하는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까. 고독과 광기가 내게 남긴 것은 ‘내면 깊숙한 곳까지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는 길’이었다고 본다네.
성필원: 선생님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영원회귀’입니다. 그것은 모든 일이 무수히 반복된다는 가설인데, 왜 ‘끝없는 반복’을 사유의 핵심으로 삼으셨나요?
니체: 인간은 흔히 ‘한 번 사는 인생’이라고들 말하지만, 만약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어떨까? ‘영원회귀’ 사상은 이 질문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 태도를 바꾸려 한 것이지.
“내 삶이 다시 무한히 반복될지라도, 나는 이 순간을 긍정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긍정이자 ‘초인’에 가까운 태도라고 생각했네. 즉, 자기 삶을 무한히 긍정하는 것, 거기에 심오한 자유와 해방이 있다고 보았던 거야.
성필원: 그런 점에서, 선생님이 말하신 ‘아모르 파티’ 개념도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운명을 긍정적으로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때론 세속적 성공이나 행복이라는 측면과 달라서 사람들을 당혹케 했죠.
니체: 고통이나 시련, 비극마저도 자신의 운명으로 껴안는 태도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고결한 태도였지. 그것이야말로 ‘노예도덕’에서 벗어나, 스스로 운명에 책임지는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길이라고 보았다네.
성필원: 선생님이 “나는 세상이 언젠가는 더 많은 악으로 가득 차고 사람들의 생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고통스럽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위안을 삼는다”고 말한 대목이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를 두고 “니체의 꿈은 한국 땅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한국 사회가 극심한 경쟁과 고통을 겪으면서 새로운 가치 창조의 기회를 얻고 있다는 역설적 평가이기도 합니다. 만약 현대 한국 사회를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니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역설이지만, 인간은 순탄하고 안락한 환경보다는 오히려 극도의 혼돈과 비극 속에서 ‘더 높은 존재 가치’를 도모하기도 하지. 다만 한국 사회에 악이 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초인이 등장하거나 새로운 가치가 창조된다는 보장은 없어.
핵심은 ‘이 고통에
그대자신이 되어라
오늘 현존하라
오하당day
오늘 하루도 당신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