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암성지 소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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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2 вер 2024

КОМЕНТАРІ • 2

  • @지금여기-k7i
    @지금여기-k7i 2 місяці тому +1

    1797년 다산이 형제들과 천진암에 놀러 가 쓴 詩 ‘사석’에서는 천진암 스님들과 함께 공양하고 잠에 들었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그래서 18년 귀양 후 천진암 방문 한다. 1827년의 詩, "寺破無舊觀,樓前 僚舍半虛舊" 이렇게 써놓았다.
    천주교 측에서 "절은 다 허물어져 옛 모습이 하나도 없고. 요사체는 반이나 무너져 빈 터가 되었네"로 해석해 놓았다.
    그러나 필자는 '절은 허물어져 가 옛 모습은 볼 수가 없고[無舊觀], '누각 앞' 요사채는 반이나 허물어져 가고 있네.(寺破無舊觀,樓前 僚舍半虛舊)”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누각 앞[樓前]'이란 말은 의도적으로 천주교 측에서 빼버린다. '누각 앞[樓前]'이란 말은 정확히 해석하기 위하여 필자가 집어 넣은 것이다.
    그럼 천주교 측에서 '누각 앞[樓前]'을 왜 뺏는냐? 천진암이 아주 작고 별볼일 없는 사찰인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빼버린 것이다. 2층 누각이 있다면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되는 것이다. 단어 하나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글자 하나 하나하나에도 큰 뜻이있다. 천주교 측에서 천진암이 아주 작고 별볼일 없는 사찰인 것을강조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오히려 천진암이 1801년 신유박해로 사찰로 숨어 들어온 천주교도를 숨겨줌[隱藏]이 발각되어 역적에 준하는 참형(慘刑)을 당한다. 스님들이 작두에 목이 짤리는 참변을 당하면서 사찰도 폐사(廢寺) 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