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도서 Bock L. Darrell,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LukeII(베이커주석 누가복음), 신지철 옮김, 부흥과 개혁사, 2017 Edersheim Alfred, The Life & Times of Jesus The Messiah(메시아 4. 십자가와 면류관), 황영철,김태곤 옮김, 생명의 말씀사, 2012. Freeman M. James, Manners and Customs of the Bible(성경 속의 생활풍속 따라잡기), 남송현 옮김, 아가페, 1998 Garland E. David,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존더반 신약주석 강해로 푸는 누가복음), 정옥배 옮김, 도서출판 디모데, 2018. Green B. Joel, The Gospel of Luke(NICNT 누가복음), 강대훈 옮김, 부흥과 개혁사, 2020 Mark(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III 마르코복음서), 최원오 옮김, 분도출판사, 2017. Marshall I.Howard, 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 Luke(국제성서주석 누가복음), 강요섭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1996. Morris Leon, The Gospel According to St. Luke(틴델신약주석 시리즈 3. 누가복음), 이정석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Oden C. Thomas &Christopher A. Hall, 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 New Testament III 김득중, 성서주석 누가복음 II, 대한기독교서회, 1993. 최승락, ‘두 렙돈 이야기의 진짜 뜻은’(그말씀 2003년 7월호), 두란노, 2003
우리가 성경의 본을 따라 믿음으로 작은 물질을 갖고 있어도 그걸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설교는 많이 하면서 또 다른 좋은 본보기인 헌금과 십일조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 쓰는 일(신 14:29, 26:12)과 초대교회처럼 교회 헌금을 가난한 신자들에게 주어 서로 돌보는 일(물건을 통용함, 행 2:44, 4:32)은 왜 따라하지도 않고 설교도 하지 않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참 이런 영상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성경은 하나의 메세지가 담긴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본문 내용의 길이, 연관성으로써 나올 수 있는 해석들은 수많은데 그것에 대해서 댓글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오네요 오늘 영상에서의 포인트는 과부의 전부를 드리는 믿음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누가복음의 이러한 맥락으로 보았을 때는 이런 메세지도 담겨져있다는 말인데 무엇은 맞고 무엇을 틀렸다고 하는 모습들은 주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해했다는 제목보다는 또 다른 해석이 제목으로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LogosCommunity 두 과부에 대한 또다른 해석 정도가 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목회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써 목사님께서 영상에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굉장히 공감하고 새로운 해석을 듣게 되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비진리에 영역에서는 그것에 대한 충분한 주장과 근거만 있다면 여러 해석들이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 랍돈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이나 몰랐던 이야기 정도가 훨씬 더 이해하는데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합니다. 향유옥합 깨뜨려 주님발에 부은 과부얘기를 교회나 지도자들은 그 믿음을 칭찬하고 본받자고 합니다. 이는 그 당시 그걸두고 뭐라고 질책했던 유다와 별 다를게 없다고 봅니다. 예수님한테 똑같이 혼나지 않을까요? 헌금에대한 칭찬이나 질책이나 의식저변에 돈에대한 욕심이 깔려 있는건 똑같다고 보니까요.
마크 빌츠 유대인 목사님이 같은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맥락으로요.. 말씀을 전후 맥락을 살피며 읽으니 놓쳤던 부분이 정말 보이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말씀의 더 깊은 의미를알게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릴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교회가 진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 말씀의 의도가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게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혹시 균형을 잃는 분들 계실까 노파심에 한마디 적어봅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도 적지만 내가 가진 전부를 드릴 때도 있고, 하나님은 저의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공급자되신 하나님을 신뢰하면 모두 드려도 아깝지 않고 그보다 더 큰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분을 사랑함으로 아깝지 않게 드려야 할 것이며 교회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어려운 이들을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부분들이 부각되면서 올바른 헌금에대한 가르침까지도 거부하게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며 항상 필요를 채워주기 원하시는 선하신 아버지이시기에♡
지금 다니는 개척교회 목사가 이 본문에 예수님이 과부의 믿음을 칭찬했다고 그러고, 제가 힘든 상황에 있는데 욥이 마지막장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서 물질이 가장 먼저 회복됐다느니 하는 소리 듣고는 교회를 못가겠더라구요.. 저는 이미 오래전에 송태근목사님이 이 본문은 과부의 믿음에 대한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걸 간직하고 있어서 더 대조가 되죠,,
부교역자 입장으로서 말씀드립니다. 헌금 설교 하는 것은 목회자 입장에서 지옥 같음을 반드시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눈치라는 것은 있고 한국교회사를 그래도 신학대학원에서 전문적으로 배워서 780년대 순복음교회가 대부흥 시킨 기복 신앙의 악몽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목회자들도 성도들을 최대한 터치하지 않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말라기를 반드시 읽으셔야 합니다. 말라기에서 생계와 교회 운영을 하는데 필요한 재정이 없었던 제사장들은 결국 성전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성전이 텅텅 비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종교 개혁가 느헤미야도 그들을 찾아 오라는 비상 경보를 울릴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생계유지 수단이 없다면 목회자들도 자연스레 교회를 떠나게 되고 결국 가정이나 각자를 위해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 지식도 흐릿해지고 설교 기량도 많이 하락합니다. 그러면 목회자가 부족해지고 우리가 걱장하는 AI 목회자 도입이 진짜 추진될지도 모르는겁니다. 문제의 심각성이 이 정도인 것입니다. 한국교회사 특히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초고급 자동차를 종종 선물 받고, 부흥회나 예배 때 헌금을 내지 않으면 신앙이 잘못됨을 말씀하는건 틀렸지만, 헌금 시스템은 영적인 것임과 동시에 실질적인 역할 또한 하도록 하나님깨서 만드셨음을 성경을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과부와 같이 “마음의 100퍼센트”를 매주일 하나님께 올려 드림으로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를 목격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미국에서 3여년 동안 공부하면서 미국 현지인 교회를 섬길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바가 하나 있었습니다. '목회자는 재정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 실제로 제가 섬겼던 교회 교역자들은 전부 평일 자기 주업이 따로 있어서 교회 헌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설교는 생활에 밀접한 내용들임과 동시에, 헌금같은 물질적인 것에 영향받지 않는,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세속적인 것들을 적대시하고 성결과 성별에 목숨 거는 설교들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면 헌금을 하지 않았느냐구요? 아뇨, 헌금은 물론 했습니다. 하지만, 그 헌금들은 본 영상에서 지적된 바 대로 지역 고아원이나 부랑자 지원 센터 등에 기부 되었고, 그 중 일부만 주일 예배 이후 다이닝 물품 구매 혹은 분기마다 진행 된 교인 피크닉 정도에 약간 후원 될 뿐이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왜 한국 교회들이 하나같이 헌금에 목을 메고 성경 내용까지 짜깁기 해 가면서 헌금을 강요하게 되는지... 목회자들이 십일조 수입에서 자유롭게 되지 못하는 이상, 헌금은 언제고 성경의 자리를 넘보려 할 것입니다.
@@Warriors2020 향유 옥합은 능력있는 언제든 다시 벌수 있는 여성이고 (희생이 아닌 앞뒤 안가린 정말 사랑해서 이해타산적(((유다와 대비)))이지 않은 예수님 향한 "참사랑") 두렙돈은 능력이 없는대 불구하고 드린(정말 희생.헌신적인 믿음 & 없는 자들에게 까지 굳이 착취) 서로 다른 경우가 아닌가요
개개인의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모든 헌금은 하늘 보좌에 상급으로 쌓이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헌금을 독려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도 아니지요 독려하는 자의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은 아시지요 그리고 십일조는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도 믿음으로 기꺼이 드려야 진정한 십일조의 복을 받습니다
두가지모두맞죠 이런 종교지도자들 속임에서도 믿음의 과부를 칭찬하신 예수님. 전부를 드린 과부마음을 칭찬하셨지요. 속임을 당하든 당하지안하든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지요. 예수님은 또한 종교지도자들이 과부들을 돌보지않고 탐욕으로 이용하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둘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이 번쩍드는 해석이네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난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그 마음을 우리가 본받자고 하는 깨달음인데 그것까지 빼앗는 종교시스템을 비판한 것이라는 것이 무섭네요. 그래도 작은 마음을 다 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여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인정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 영상이 소개한 과부의 두 렙돈에 대한 해석이 전적으로 맞는 유일한 해석이고 기존 해석은 확실히 다 틀렸다. 이 사건이 언급된 눅 21:1-3 바로 다음 4-5절에 그 답이 나와 있다. 과부의 마지막 생활비까지 착취해 아름답게 꾸민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를 생활비를 전부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한다로 해석하는 목사는 바리새인처럼 교인을 착취해 교회 건물 치장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라 봐도 틀림없다 (자신이 수혜자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상식을 벗어나 무리하게 헌금하라고 할 수 있다) . 하나님은 생활에 필요한 돈은 생활에 쓰는 것을 기뻐하신다. 무리한 종교적 열심은 자발적으로는 자기만족을 위한 가증한 위선이고 남에게 가스라이팅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압제이며 절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 (누가복음 21장 / 개역개정) 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Yaong_goongdoong 비대면 임에도 눈치를 안봐도 되는 자유임에도 내고자하는사람을 막는건 좋지않죠 오프라인에서 면전에 대고 후원을 한다면 수직관계로 갑과 을이 되어 문제가 되죠 온라인 특성상 서로 익명상태고 주고싶다고하면 받아도 눈치안보이고 유튜브품질에 자연스레 보답하면되는 서로 편한 서로 윈윈한 관계가 되죠 온전한 자유의지로 서로 형성 되는 거니까요
물리적으로 성전이 무너지는것과 성전의 기능인 속죄제사가 무너지는것 둘중에 무엇이 더 어려운가? 이런 질문이 되어 돌아오는 돌위에 돌하나. 현대 외형 교회가 속죄소 역할을 하는가? 아니라면 왜 외형 교회가 필요한가? 모이기를 힘쓰라는 말씀에 합당한 교회의 외형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묻지도 않고 과부의 두 렙톤이 생활비 전부라고 아신것은 예수님이 다 아신다면. 스스로 하나님이신것을 드러내신것은 아닌가? 성전 유대교의 종말이 십자가로 이루어졌을때 속죄는 예수를 믿음으로서 하는 것이라 할 때에 나의 두 렙톤은 무엇인가?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하나의 성경 본문에 단 하나의 해석이라는 어떤 사고방식들도 문제. 신앙에 도움 안되는 해석들은 더 문제. 판단과 기준이 예수님이어야 한다는 실제. 이런 생각이 드네요. 예수님 안에서 바른 메세지 전달의 도구로서 이 채널이 흥왕하기를!
@@LogosCommunity 신명기 14 29에 십일조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마아사르 מעשר이니 모은돈 정도로 바라보는게 맞지않나 생각도 듭니다. 교회가 지역 사회에 대한 영적 물리적 책임이 있는 본문 발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약에서도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도운 이야기도 있고..다른 이들이 공예배에 참여할수 있도록 영적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않는 외형 교회들이 늘어가길 소망하게 되네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이 충만한 사역자 사역지 가정 되시길!
로고스님 영상 중에 예전에는 과부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은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고 하셨었는데.. 그렇다면, 그때 교회의 사람들은 과부의 헌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봤을까요? 예수님은 이 과부의 헌금을 칭찬함으로서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가진 것의 전부를 드리는 것과 많이 가진 것의 일부를 드리는 것.. 여기에서 복지를 위한 세법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은 더 많이 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역시 기독교가 문제가 아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문제로군요.
교회의 역할에 약자를 돌보는 것이 있고 또한 부패한 종교가 약자들을 착취하고 있음에 대한 것은 동의합니다만 아래 많이 다른분이 말씀해주신대로 이 구절에 대한 비약적인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다양한 해석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런 해석들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반감을 주의해주셔야 함이 마땅합니다. 만약 어떤 성도가 이 영상을 보고 교회가 가난한 자신을 착취한다고 생각한다면요? 목회자가 가지고 있는 것 하나하나가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럼 그 성도에게는 더 이상 목회자의 대언이 마음속에 씨뿌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를 운영하는 쪽의 입장을 대변하시는 말씀이로군요. 그쪽에서 보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인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인은 소모품이 아니라 주체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쪽 입장이 아니라 교인(성도,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이 진정 무어라 말하는지를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요?
@@LogosCommunity 교회를 운영하는 쪽의 입장을 대변했으나 저는 완전히 평신도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주체,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무어라 말하신 건지를 영상에서 해석해놓으셨죠. 근데 그 해석은 교회의 주인이자 머리이신 예수님을 받드는 해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반대로 가난한 성도를 착취하는 목회자도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저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은 누가 높으니 하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 수준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바가 권세자들의 착취에 관한 것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지금도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사랑에 메여 말 안 해도 헌신하고 헌금합니다. 장성했다는 것은 어떤 직분을 맡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집사여도 장로여도 권사여도 저 말씀이 필요한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금에 관한 설교가 저 본문과 함께 필요한 것 같습니다.
@@LogosCommunity 그리고 선생님의 해석이 완전히 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묵상의 깊이가 깊고 맥락을 이해하시는 것이 뛰어나긴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헌금하라고 설교하는 것을 절대로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고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또한 말씀을 맡은 자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해야함이 마땅합니다. 바울도 직접 천막을 기워가며 말씀을 전하고 성도를 세운 것처럼요. 결론은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감당할 만한 것을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라 확신합니다.
십일조설교는 대중설교라 대부분 있는자 위주 설교다 보니 가난한 소수는 헌금설교는 알아서 걸러 듣고 (내 개인적인 생각은 있는자들은 돈에대한 욕심을 하나님보다 더 우상으로 섬기기에 내라고 설교 하는거고 가난한 소수를 위한 설교를 줄이는건 있는자들이 가난한 소수에게 한설교에 자신을 대입하여 합리화 할까 염려해서 더 굳이 강조는 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즉= 있는자면 번제개념으로서 십일조를 드리면 되고 없는자면 자유의지에 맡기고 교회가 바깥에 오지랖부리기 보다 먼저는 내부의 없는자에게 관심을 가져서 믿음에서 탈선하지않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줘야하죠 교회는 자선단체가 아닌 믿음있는 이웃,참크리스찬을 먼저 도와야죠 )
하나님은혜받은 기쁨으로 믿음에 대한 행위로서 헌금을 내면 되는거구요 애초에 씨가 뿌려지지않은건 목회자 설교가 영양가 없는 설교거나 참 설교였다면 애초에 안심어질 돌밭이나 가시떨기 그리고 가라지 겠지요
비슷한 예가 또있지요. 허나 상황은 반대되는 예지요. 바로 향유옥합을 깨뜨린 여인과 그것을 가난한자를 들먹여 욕심을 드러낸자를 예수님이 질책하는 내용이지요.. 예수님은 가난한자가 많은 돈을내도 부자가 적은돈 내도 칭찬도 질책도 안하십니다. 단 인간만이 뭐라할뿐... 그러면서 자기욕심에 예수님을 팝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좋아하실거야. 아님 실망하실거야 라고..
재미있는 해석이고 또 지적자체는 옮지만 본문을 그렇게 해석한다는것은 문제가 있어보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장사하는곳으로 변했을때 그것을 보시자마자 불과같이 노하시며 그곳을 뒤짚어 업고 강력하게 권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두 렙돈을 헌금하러 나온 여인의 이야기에선 헌금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셨습니다 마가복음 12:41 - 41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만약 저 해석대로라면 악의적인 종교시스템이 과부의 두 렙돈을 삼키는것을 두눈으로 보심에도 그저 멀리서 외면하시는 주님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왜곡되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과 행적에 맞지 않는이야기며 고로 이 이야기의교훈이 과부의 두렙돈을 집어삼키는 종교시스템의 문제로서의 비약이아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주님께서 머리털까지 세신바된 그들을 끝날까지 세말하게돌보신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도약을 칭찬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신약의 맥락속에 이 이야기가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성경의 연구는 좋으나 믿음의 연약함을 지니고 있는 양들이 섞여있는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확실하지 않은 성경구절의 해석을 화제거리 삼아 올리는건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돈을 긁어모으려는 목사에대한 분별력을 기르는 영상이 될 수도있지만 이 구절의 원래의미대로 온전히 설교하는 모든 목사들을 돈에미친 장사꾼이라 여기며 더 올라가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말씀하신 이 세상의 부를 다루는 급진적인 요청으로 맺어질 모든 풍부한 열매들을 경직되게하며 (물론 전체적인 맥락에따라 세밀하게 해석해야되는 부분이지만) 그래 교회에 돈내는 것은 미친짓이야 라며 세상의 향략을 맘껏 누리며 이에 더해 영생의 패키지 까지 누릴 수 있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사를 자처하시는 입장에서는 마지막날 이에대한 모든 심판을 받으신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신중히 말씀을 연구하고 올리심이 유익해 보입니다
참고도서
Bock L. Darrell,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LukeII(베이커주석 누가복음), 신지철 옮김, 부흥과 개혁사, 2017
Edersheim Alfred, The Life & Times of Jesus The Messiah(메시아 4. 십자가와 면류관), 황영철,김태곤 옮김, 생명의 말씀사, 2012.
Freeman M. James, Manners and Customs of the Bible(성경 속의 생활풍속 따라잡기), 남송현 옮김, 아가페, 1998
Garland E. David,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존더반 신약주석 강해로 푸는 누가복음), 정옥배 옮김, 도서출판 디모데, 2018.
Green B. Joel, The Gospel of Luke(NICNT 누가복음), 강대훈 옮김, 부흥과 개혁사, 2020
Mark(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III 마르코복음서), 최원오 옮김, 분도출판사, 2017.
Marshall I.Howard, 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 Luke(국제성서주석 누가복음), 강요섭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1996.
Morris Leon, The Gospel According to St. Luke(틴델신약주석 시리즈 3. 누가복음), 이정석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Oden C. Thomas &Christopher A. Hall, 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 New Testament III
김득중, 성서주석 누가복음 II, 대한기독교서회, 1993.
최승락, ‘두 렙돈 이야기의 진짜 뜻은’(그말씀 2003년 7월호), 두란노, 2003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를 수백번 보고 들었지만 이런 해석은 처음이네요. 덕분에 많은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배우고 갑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성경은 늘 약자들을 배려하는 제도들을 보여줬죠. 생활비 전부를 드렸던 과부의 헌금을 믿음의 고백으로만 볼 게 아니라 그 과부를 돌보지 못한 공동체의 문제로 보는 게 건강한 방향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본을 따라 믿음으로 작은 물질을 갖고 있어도 그걸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설교는 많이 하면서 또 다른 좋은 본보기인 헌금과 십일조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 쓰는 일(신 14:29, 26:12)과 초대교회처럼 교회 헌금을 가난한 신자들에게 주어 서로 돌보는 일(물건을 통용함, 행 2:44, 4:32)은 왜 따라하지도 않고 설교도 하지 않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같은 의견을 가진 말씀해석을 늦게라도 알게되어 너무 기쁩니다.
교회가 참 복음의 의미를 깨닫고 말씀대로 순종하게되기를 기도합니다
동의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옳은 해석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했지만 본문을 이렇게 해석해야한다고 생각해보지도 못했네요. 개인적으로 묵상해봐야겠지만 목사님 해석이 맞는것 같아요. 귀한 말씀 감사하고 정주행 들어갑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해석하고 계시는 목사님이 있다는 것이 반갑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 유투브를 알게 되어 감사하고 정주행 갑니다 ❤
혹시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어도 이런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시고 지나가시면 고맙겠습니다
감명깊으셨다면 정주행 말고 후원하시기 바랍니다 밑에 계좌 열어놓으셨답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깨닫게하는 영상입니다! 궁금증이 해소되어 기쁘고 이 영상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수 있게되어서 참 감사합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ㅛㅛ
참 이런 영상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성경은 하나의 메세지가 담긴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본문 내용의 길이, 연관성으로써 나올 수 있는 해석들은 수많은데 그것에 대해서 댓글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오네요 오늘 영상에서의 포인트는 과부의 전부를 드리는 믿음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누가복음의 이러한 맥락으로 보았을 때는 이런 메세지도 담겨져있다는 말인데 무엇은 맞고 무엇을 틀렸다고 하는 모습들은 주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해했다는 제목보다는 또 다른 해석이 제목으로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어떤 제목이 좋을까요?
@@LogosCommunity 두 과부에 대한 또다른 해석 정도가 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목회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써 목사님께서 영상에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굉장히 공감하고 새로운 해석을 듣게 되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비진리에 영역에서는 그것에 대한 충분한 주장과 근거만 있다면 여러 해석들이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 랍돈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이나 몰랐던 이야기 정도가 훨씬 더 이해하는데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향유옥합 깨뜨려 주님발에 부은 과부얘기를 교회나 지도자들은 그 믿음을 칭찬하고 본받자고 합니다. 이는 그 당시 그걸두고 뭐라고 질책했던 유다와 별 다를게 없다고 봅니다. 예수님한테 똑같이 혼나지 않을까요?
헌금에대한 칭찬이나 질책이나 의식저변에 돈에대한 욕심이 깔려 있는건 똑같다고 보니까요.
Are you a Theophilus?
John 15: 12~17
마크 빌츠 유대인 목사님이
같은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맥락으로요..
말씀을 전후 맥락을 살피며
읽으니 놓쳤던 부분이
정말 보이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말씀의 더 깊은 의미를알게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릴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과부의 전부를 드리라는 해석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해석의 새 지평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진짜 제대로 된 해석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그 과부처럼 주님께 다 드리고 싶었읍니다.
주님의 뜻을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역시 우리의 예수님.멋있브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대단하십니다.
노고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회가 진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 말씀의 의도가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게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혹시 균형을 잃는 분들 계실까
노파심에 한마디 적어봅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도
적지만 내가 가진 전부를 드릴 때도 있고, 하나님은 저의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공급자되신 하나님을 신뢰하면
모두 드려도 아깝지 않고
그보다 더 큰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분을 사랑함으로 아깝지 않게 드려야 할 것이며 교회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어려운 이들을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부분들이 부각되면서
올바른 헌금에대한 가르침까지도
거부하게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며 항상 필요를 채워주기 원하시는 선하신 아버지이시기에♡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권사님
찬미예수님
하느님 아빠 아버지
하느님은 영원토록 찬미와 영광 받으옵소서
🌈 🏳️🌈 🌈 🏳️🌈 🌈 🏳️🌈 🌈 🏳️🌈 🌈 🏳️🌈 🌈 🏳️🌈 🌈 🏳️🌈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군요.
지금 시대에도 이 종교적인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보다 더 잘살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우리의 숙제이지요
지금 다니는 개척교회 목사가 이 본문에 예수님이 과부의 믿음을 칭찬했다고 그러고, 제가 힘든 상황에 있는데 욥이 마지막장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서 물질이 가장 먼저 회복됐다느니 하는 소리 듣고는 교회를 못가겠더라구요.. 저는 이미 오래전에 송태근목사님이 이 본문은 과부의 믿음에 대한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걸 간직하고 있어서 더 대조가 되죠,,
성경 해석이 전부가 아닐때가 있습니다 이 유튜브는 신앙을 흔들려는 목적이 아닐것 입니다. 사단에 흔들릴것이 아니라 믿음을 재점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더 포괄적인 은혜를 얻기를 소망 합니다
돈과
나를둘다못섬긴다고하셨습니다
그걸 태스트하는순간이있습니다
교회 못 다닐 이유 천만가지
교회 꼭 다닐 이유 천만가지
선택은 본인의 몫
하나님은 그 중심을 달아보시기 때문에, 결국 교회를 못간다 안간다 옮긴다 하는 것은 마귀의 훼방이라고 봐야죠
첨듣는 해석인데 공감이갑니다
첨 듣는 해석인데도 공감해주시니 열린 분이시군요.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부교역자 입장으로서 말씀드립니다. 헌금 설교 하는 것은 목회자 입장에서 지옥 같음을 반드시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눈치라는 것은 있고 한국교회사를 그래도 신학대학원에서 전문적으로 배워서 780년대 순복음교회가 대부흥 시킨 기복 신앙의 악몽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목회자들도 성도들을 최대한 터치하지 않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말라기를 반드시 읽으셔야 합니다. 말라기에서 생계와 교회 운영을 하는데 필요한 재정이 없었던 제사장들은 결국 성전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성전이 텅텅 비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종교 개혁가 느헤미야도 그들을 찾아 오라는 비상 경보를 울릴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생계유지 수단이 없다면 목회자들도 자연스레 교회를 떠나게 되고 결국 가정이나 각자를 위해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 지식도 흐릿해지고 설교 기량도 많이 하락합니다. 그러면 목회자가 부족해지고 우리가 걱장하는 AI 목회자 도입이 진짜 추진될지도 모르는겁니다. 문제의 심각성이 이 정도인 것입니다.
한국교회사 특히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초고급 자동차를 종종 선물 받고, 부흥회나 예배 때 헌금을 내지 않으면 신앙이 잘못됨을 말씀하는건 틀렸지만, 헌금 시스템은 영적인 것임과 동시에 실질적인 역할 또한 하도록 하나님깨서 만드셨음을 성경을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과부와 같이 “마음의 100퍼센트”를 매주일 하나님께 올려 드림으로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를 목격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귀한 의견 감사합니다
아니 목사님이 보여주세요 100%를 드리는 믿음을...그러면 성도는 따라갈 것입니다.
일하며 돈 벌며 목회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고 가난한 신도들에게 의지하지 않아 좋습니다.
미국에서 3여년 동안 공부하면서 미국 현지인 교회를 섬길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바가 하나 있었습니다.
'목회자는 재정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
실제로 제가 섬겼던 교회 교역자들은 전부 평일 자기 주업이 따로 있어서 교회 헌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설교는 생활에 밀접한 내용들임과 동시에, 헌금같은 물질적인 것에 영향받지 않는,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세속적인 것들을 적대시하고 성결과 성별에 목숨 거는 설교들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면 헌금을 하지 않았느냐구요? 아뇨, 헌금은 물론 했습니다. 하지만, 그 헌금들은 본 영상에서 지적된 바 대로 지역 고아원이나 부랑자 지원 센터 등에 기부 되었고, 그 중 일부만 주일 예배 이후 다이닝 물품 구매 혹은 분기마다 진행 된 교인 피크닉 정도에 약간 후원 될 뿐이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왜 한국 교회들이 하나같이 헌금에 목을 메고 성경 내용까지 짜깁기 해 가면서 헌금을 강요하게 되는지...
목회자들이 십일조 수입에서 자유롭게 되지 못하는 이상, 헌금은 언제고 성경의 자리를 넘보려 할 것입니다.
@@베아트리체-j2e저 가난한 지체이지만 우리 목사님이 돈벌지않고 목회에 전념하셔서 성도들의 영의 성장에 힘써서 (영이잘됨같이 범사가 형통하죠 )교회재정에서 목사님 월급드리고 그러길 진심으로 바라는데요
돈벌며 목회하시는 목사님들 사실 영적상태가 평신도보다 좋지않을때가 허다합니다 많이 뵈었어요 안타깝게도요
잘 보았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헌금을 가장 크게 보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과부의 헌금 안에 있는 마음까지 받으셨음도 포함되지 않을까요??
변질된 종교 시스템도 문제지만 그 속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계심도 말씀해야 하지 않을까요?
충고 감사합니다.
저도 윗분 처럼 말씀하신다고 들립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넣었다고 하신거지요.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서 예수님 발에 부을때, 가롯 유다는 차라리 가난한 자를 위해 썼어야했다 주장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뭐라 답변하셨던가요 ...?
@@Warriors2020 향유 옥합은 능력있는 언제든 다시 벌수 있는 여성이고 (희생이 아닌 앞뒤 안가린 정말 사랑해서 이해타산적(((유다와 대비)))이지 않은 예수님 향한 "참사랑")
두렙돈은 능력이 없는대 불구하고 드린(정말 희생.헌신적인 믿음 & 없는 자들에게 까지 굳이 착취)
서로 다른 경우가 아닌가요
정성들여 만든 영상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혹 설교마다 ~~중 참고서적올려주시면 더 읽어보고싶습니다 강건하십시요
예 요즘 제가 만드는 영상의 더보기에는 참고도서를 올리고 있지요. 전에 올린 영상들도 참ㄴ고도서가 있었는데 이제와 올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제 카스토리에 공유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감사하죠
지금도 각종 헌금을 독려하고 하늘에 복을 쌓는다는 논리의 설교는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바로 구원받은 우리 인데 말입니다
바른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개개인의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모든 헌금은 하늘 보좌에
상급으로 쌓이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헌금을 독려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도 아니지요
독려하는 자의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은 아시지요
그리고 십일조는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도 믿음으로
기꺼이 드려야 진정한 십일조의 복을 받습니다
헌금을 못하는 사람은 상급을 못받는 것인지요?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복을 받으려고 헌금하십니까 ? 기독교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님이 하시는 말씀이 영상의 기복신앙입니다. @@wegatherattheriver4625
하늘 보좌가 계급제입니까 사유재산제입니까? 상급이 있다면 그걸 나눠쓰고 너와 나의 차별이없는 곳이 천국일터인데 상급을 쌓아놓다니요. 그걸 어디다 쓴답니까? 아니면 상급에 따라 하나님이 차별 사랑하시고 차별대우 하실까요?
@@yoon2nd 네 맞습니다 위에 글쓰신분은 참 안타깝네요
👏👏👏👏👏👍👍👍
감사합니다
두가지모두맞죠 이런 종교지도자들 속임에서도 믿음의 과부를 칭찬하신 예수님. 전부를 드린 과부마음을 칭찬하셨지요. 속임을 당하든 당하지안하든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지요. 예수님은 또한 종교지도자들이 과부들을 돌보지않고 탐욕으로 이용하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둘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정녕 원하셨을까요 아무것도 없는 과부가 아버지가 딸에게 ... 은혜와 은총의. 문제인것 같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무모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교회에서 목회자들과 관계없이 늘 진심으로 헌금하는 성도를 칭찬하십니다. 주님은 목회자들이 혹시나 다른 목적이나 마음이 있다고 하여 성도들의 헌금하는 마음을 외면하시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헌금이넘쳐 과부나 가난한자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책망하실거라 생각해요
진심으로 헌금하는 것을 사리사욕으로 악용하는 일이 없어야겠지요.
정신이 번쩍드는 해석이네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난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그 마음을 우리가 본받자고 하는 깨달음인데 그것까지 빼앗는 종교시스템을 비판한 것이라는 것이 무섭네요. 그래도 작은 마음을 다 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여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인정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영상이 소개한 과부의 두 렙돈에 대한 해석이 전적으로 맞는 유일한 해석이고 기존 해석은 확실히 다 틀렸다. 이 사건이 언급된 눅 21:1-3 바로 다음 4-5절에 그 답이 나와 있다. 과부의 마지막 생활비까지 착취해 아름답게 꾸민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를 생활비를 전부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한다로 해석하는 목사는 바리새인처럼 교인을 착취해 교회 건물 치장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라 봐도 틀림없다 (자신이 수혜자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상식을 벗어나 무리하게 헌금하라고 할 수 있다) . 하나님은 생활에 필요한 돈은 생활에 쓰는 것을 기뻐하신다. 무리한 종교적 열심은 자발적으로는 자기만족을 위한 가증한 위선이고 남에게 가스라이팅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압제이며 절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
(누가복음 21장 / 개역개정)
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처음으로 슈퍼쳇을
보내려는데요
아시는 분 쉽게
설명 부탁 드립니다
저희 유투브는 광고가 일절 없습니다. 따라서 슈퍼쳇도 없습니다. 그래도 후원하시겠다는 뜻있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후원계좌를 오픈하려고 합니다. 일단 제 계좌번호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이런 해석을 하시고 후원 계좌를 여신다라...😅😅😅
@@Yaong_goongdoong 비대면 임에도 눈치를 안봐도 되는 자유임에도 내고자하는사람을 막는건 좋지않죠
오프라인에서 면전에 대고 후원을 한다면 수직관계로 갑과 을이 되어 문제가 되죠
온라인 특성상 서로 익명상태고 주고싶다고하면 받아도 눈치안보이고
유튜브품질에 자연스레 보답하면되는 서로 편한 서로 윈윈한 관계가 되죠
온전한 자유의지로 서로 형성 되는 거니까요
물리적으로 성전이 무너지는것과 성전의 기능인 속죄제사가 무너지는것 둘중에 무엇이 더 어려운가?
이런 질문이 되어 돌아오는 돌위에 돌하나.
현대 외형 교회가 속죄소 역할을 하는가? 아니라면 왜 외형 교회가 필요한가?
모이기를 힘쓰라는 말씀에 합당한 교회의 외형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묻지도 않고 과부의 두 렙톤이 생활비 전부라고 아신것은
예수님이 다 아신다면. 스스로 하나님이신것을 드러내신것은 아닌가?
성전 유대교의 종말이 십자가로 이루어졌을때 속죄는 예수를 믿음으로서 하는 것이라 할 때에 나의 두 렙톤은 무엇인가?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하나의 성경 본문에 단 하나의 해석이라는 어떤 사고방식들도 문제. 신앙에 도움 안되는 해석들은 더 문제. 판단과 기준이 예수님이어야 한다는 실제. 이런 생각이 드네요.
예수님 안에서 바른 메세지 전달의 도구로서 이 채널이 흥왕하기를!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LogosCommunity 신명기 14 29에 십일조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마아사르 מעשר이니 모은돈 정도로 바라보는게 맞지않나 생각도 듭니다. 교회가 지역 사회에 대한 영적 물리적 책임이 있는 본문 발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약에서도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도운 이야기도 있고..다른 이들이 공예배에 참여할수 있도록 영적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않는 외형 교회들이 늘어가길 소망하게 되네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이 충만한 사역자 사역지 가정 되시길!
내용 중에 언급되는 최승락교수님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십니다. 수정이 필요할듯요😅
2003년 그말씀에 기고하실 때 최승락 교수는 국제신대 교수였습니다. 잡지에 그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후에 고려신학대학으로 옮기신듯 합니다.
부자와 헌금 많이 내는 자를 찾아다니는 교회가 아닌 가난한 자 연약한 자를 찾아다니는 교회가 되길 ~
아멘
예수님이 찾아간 세리와 창녀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였군요
몇개월전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두렙돈여인이 넣은것은 기쁨이었다 하셨어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고스님 영상 중에 예전에는 과부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은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고 하셨었는데.. 그렇다면, 그때 교회의 사람들은 과부의 헌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봤을까요? 예수님은 이 과부의 헌금을 칭찬함으로서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가진 것의 전부를 드리는 것과 많이 가진 것의 일부를 드리는 것.. 여기에서 복지를 위한 세법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은 더 많이 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역시 기독교가 문제가 아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문제로군요.
감사합니다
이래서 종교 지도자들이 헌금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아름답게 사용하도록 기도해야하는 중요성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대형교회들도 세습하고 그때와 다르지 않을듯 합니다 교회는 점점더 커지고 대형화되고 이럴때일수록 분별력을 키워야 할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백번 옳습니다
예배와 헌금은 하루살이이고
삶에서의 자비 실천이
낙타입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데 기부하는 곳이
잇어서 좀 적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도움되길 바랍니다
추후에도 보내도록
노력하게ㅅ습니다
참 그리고요
제네이버 블로그와
저서로 봉인된 하나님의
최고 계명이잇는데요
한가하실 시간에 한 번
봐주시면 감사하게습니다
이 구절을 요즘 목사님들은 없는중에
헌금을 많이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부하게. 채워주신다는 말로 해석해서 헌금을 많이 하면 복받는다는 말로
이해하게 하니 정말로 잘못 가르치는게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돈이 필요하실까요?
과부는 남은 떡 하나를 아들과 먹고 죽던가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할배의 약속을 믿고 남은 떡을 할배에게 양보를 하던거 둘중에 하나지만
하나님이 이미 엘리야에게 과부댁에서 가서 같지 있으라고 하셨네요.
그렇게 보고 싶으시면 그렇게 보시지요. 저는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과부는 이제 그만 살고 죽자 사는게 너무 힘들다 는 인생 포기의 결단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멘 🙏
낮은곳으로 잘 흘러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교회의 역할에 약자를 돌보는 것이 있고 또한 부패한 종교가 약자들을 착취하고 있음에 대한 것은 동의합니다만 아래 많이 다른분이 말씀해주신대로 이 구절에 대한 비약적인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다양한 해석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런 해석들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반감을 주의해주셔야 함이 마땅합니다.
만약 어떤 성도가 이 영상을 보고 교회가 가난한 자신을 착취한다고 생각한다면요? 목회자가 가지고 있는 것 하나하나가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럼 그 성도에게는 더 이상 목회자의 대언이 마음속에 씨뿌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를 운영하는 쪽의 입장을 대변하시는 말씀이로군요. 그쪽에서 보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인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인은 소모품이 아니라 주체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쪽 입장이 아니라 교인(성도,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이 진정 무어라 말하는지를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요?
@@LogosCommunity 교회를 운영하는 쪽의 입장을 대변했으나 저는 완전히 평신도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주체,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무어라 말하신 건지를 영상에서 해석해놓으셨죠. 근데 그 해석은 교회의 주인이자 머리이신 예수님을 받드는 해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반대로 가난한 성도를 착취하는 목회자도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저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은 누가 높으니 하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 수준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바가 권세자들의 착취에 관한 것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지금도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사랑에 메여 말 안 해도 헌신하고 헌금합니다. 장성했다는 것은 어떤 직분을 맡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집사여도 장로여도 권사여도 저 말씀이 필요한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금에 관한 설교가 저 본문과 함께 필요한 것 같습니다.
@@LogosCommunity 그리고 선생님의 해석이 완전히 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묵상의 깊이가 깊고 맥락을 이해하시는 것이 뛰어나긴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헌금하라고 설교하는 것을 절대로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고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또한 말씀을 맡은 자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해야함이 마땅합니다. 바울도 직접 천막을 기워가며 말씀을 전하고 성도를 세운 것처럼요. 결론은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감당할 만한 것을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라 확신합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목회자이기에 헌금 설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헌금 설교를 할 때에도 헌금 설교에 합당한 본문으로 해야 교인들도 이해가 됩니다. 저는 이 본문에서 헌금설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십일조설교는 대중설교라
대부분 있는자 위주 설교다 보니
가난한 소수는 헌금설교는 알아서 걸러 듣고
(내 개인적인 생각은
있는자들은 돈에대한 욕심을 하나님보다 더 우상으로
섬기기에 내라고 설교 하는거고
가난한 소수를 위한 설교를 줄이는건 있는자들이
가난한 소수에게 한설교에 자신을 대입하여 합리화
할까 염려해서 더 굳이 강조는 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즉= 있는자면 번제개념으로서 십일조를 드리면 되고
없는자면 자유의지에 맡기고
교회가 바깥에 오지랖부리기 보다
먼저는 내부의 없는자에게 관심을 가져서 믿음에서 탈선하지않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줘야하죠
교회는 자선단체가 아닌 믿음있는 이웃,참크리스찬을 먼저 도와야죠 )
하나님은혜받은 기쁨으로 믿음에 대한 행위로서
헌금을 내면 되는거구요
애초에 씨가 뿌려지지않은건
목회자 설교가 영양가 없는 설교거나
참 설교였다면 애초에 안심어질 돌밭이나 가시떨기 그리고 가라지 겠지요
요즘 목사들 이야기인줄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오 교부들의 성경주해 저 책 좋죠
참고자료일 뿐이지요
비슷한 예가 또있지요. 허나 상황은 반대되는 예지요. 바로 향유옥합을 깨뜨린 여인과 그것을 가난한자를 들먹여 욕심을 드러낸자를 예수님이 질책하는 내용이지요..
예수님은 가난한자가 많은 돈을내도 부자가 적은돈 내도 칭찬도 질책도 안하십니다. 단 인간만이 뭐라할뿐... 그러면서 자기욕심에 예수님을 팝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좋아하실거야. 아님 실망하실거야 라고..
감사합니다
이게 더 옳은 해석이네요...그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미워하고 죽였죠
감사합니다.
@@LogosCommunity 저도 이런 해석을 4년 전엔가에 처음 접했는데 그 당시에는 이상하다 생각되서 저도 복음서 자세히 읽어보니 마냥 칭찬한것만은 아니더라고요. 현재도 많은 목사님들이 이 과부처럼 헌금해라...하는 분들이 많아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교회나 당시 성전이나 같아요.
또 모 위키에선 목사 다수가 신자들을 헌금 삥뜯을 소모품으로 본다고 하고요.
슬픈 역사는 왜 그리 반복되는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계좌번호가 더 좋겧네요
감사합니다. 신한은행 110-461-797390 배경락 입니다.
@@LogosCommunity코메디네ㅋㅋㅋㅋㅋ 헌금 설교에 대해 실컷 비판해놓고 계좌번호 남기는 게 모순됐단 생각 안 하시나요?
@@Yaong_goongdoong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돈이 필요하시지 않아요.
(((다만 내가 받은 것의 일부를 떼어 주님께 드리는 그 마음을 보고 싶으신 거죠))))
. 그렇기에 부자들이 하는 큰 헌금보다 과부의 적은 돈을 귀하게 보신 거구요.
본인 입으로 한말
과부는 예수님께 두렙돈을 드렸지만….. 요즘은 과부의 두렙돈을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 예수님처럼 살지않고…섬김보단 섬김을 엄청받고 사는 큰교회목사들 사모들이 다 닦아 쓰는것같아… 교회가 예수님이 아님을 교회에서 잘가르쳐주길..
예! ㅠㅠ 죄송합니다.
침소봉대.
아--
키워드는 과부와 고드란트.
감사합니다
한국기독교에 헌금이라는 것에 의미를….재대로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요즘 교회는 보면 자기들 주장의 근거로 삼기 위해서 성경의 일부 구절들을 이용하고 있음.. 성경 어디에도 세상에서 복을 받고 세상의 도를 세우기 위해서 쓰여지지 않았음.
댓글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해석이고 또 지적자체는 옮지만 본문을 그렇게 해석한다는것은 문제가 있어보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장사하는곳으로 변했을때 그것을 보시자마자 불과같이 노하시며 그곳을 뒤짚어 업고 강력하게 권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두 렙돈을 헌금하러 나온 여인의 이야기에선 헌금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셨습니다
마가복음 12:41 - 41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만약 저 해석대로라면 악의적인 종교시스템이 과부의 두 렙돈을 삼키는것을 두눈으로 보심에도 그저 멀리서 외면하시는 주님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왜곡되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과 행적에 맞지 않는이야기며 고로 이 이야기의교훈이 과부의 두렙돈을 집어삼키는 종교시스템의 문제로서의 비약이아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주님께서 머리털까지 세신바된 그들을 끝날까지 세말하게돌보신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도약을 칭찬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신약의 맥락속에 이 이야기가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성경의 연구는 좋으나 믿음의 연약함을 지니고 있는 양들이 섞여있는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확실하지 않은 성경구절의 해석을 화제거리 삼아 올리는건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돈을 긁어모으려는 목사에대한 분별력을 기르는 영상이 될 수도있지만
이 구절의 원래의미대로 온전히 설교하는 모든 목사들을 돈에미친 장사꾼이라 여기며 더 올라가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말씀하신 이 세상의 부를 다루는 급진적인 요청으로 맺어질 모든 풍부한 열매들을 경직되게하며 (물론 전체적인 맥락에따라 세밀하게 해석해야되는 부분이지만)
그래 교회에 돈내는 것은 미친짓이야 라며 세상의 향략을 맘껏 누리며 이에 더해 영생의 패키지 까지 누릴 수 있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사를 자처하시는 입장에서는 마지막날 이에대한 모든 심판을 받으신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신중히 말씀을 연구하고 올리심이 유익해 보입니다
제 의견에 동의하시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으신대로 해석하시지요. 저는 저 나름의 해석이니까 존중해주시고요
자의적인 해석이 많이 섞인 해석입니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해석입니다.
동의 안하셔도 됩니다.
"일천, 일만 번제 바치리라?"
너희가 성경을 오해 하였도다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아직도 깨달음이 없느냐?
주여!
타작 마당의
한 그릇 얼음냉수 처럼
이 무익한 종은
주님의 마음
시원케 하기를
소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이 필요치 않다,설교시간에 헌금얘기하는 목사는 걸러내도록 합시다
헌금 설교를 안해도 헌금하는 교인들이 있을 때 멋진 기독교가 되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장하길 바라싶니다 성장합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돈이 필요하시지 않아요. 다만 내가 받은 것의 일부를 떼어 주님께 드리는 그 마음을 보고 싶으신 거죠. 그렇기에 부자들이 하는 큰 헌금보다 과부의 적은 돈을 귀하게 보신 거구요.
설교때마다 과부의두렙돈은
가난한자의주머니를 털고 쥐어짜내는
역활을하죠
아나니아와삽비라는 더심한데 이건 집팔아서 다바치라는 메세지같음
감사합니다
밥먹고 살려고 직업으로 목사를 선택한 분은 절대적으로 회개 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입니다. 그 직업 때문에 먹고 사는 걸 정죄할 순 없지요. 그런데 목적이 먹고 사는 것이라면 어떤 직업이라도 비난받을 수 있겠지요..
화폐 가치는 논의하기가 참 어려운거 같네요.
두 렙돈이 과부의 생활비전부라고 했는데 너무 비현실적듯. 참새 반마리가값이 생활비의 전부라니? ㅎ
그만큼 그 시대에 억압받고 수탈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지요. 일본이 압제하던 시대에 굶어죽어갔던 사람을 생각하면 되지요
성경에 과부를 과잉 보호식으로 성경에 쓰인 그 이유/ 그시대에 과부의 위치를 이해를 못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