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없으니 그랬죠 대원군이 키워 놓은 군대를 민비가 다시 다 없에 버려서 병인양요 이후 강화도 수비병 400명을 4000명 가까이, 10배 가까이 늘리고 내륙에도 군인을 많이 증강해 놨는데 민비가 집권하자 마자 호포법 (양반도 세금 내는 법) 없에 버리고 본인 굿 하고 사치하는데 돈 쓰느라 돈 없으니 군대 다 없에버리고
@@jamercho8927전봉준이 한성감옥에서 일본 극우단체 천우협의 다나카 지로에게 남긴 유언, 이이화씨 "전봉준, 혁명의 기록"의 정확한 문구는 "내 형편이 여기에 이른 것은 필경 천명이니 굳이 천명을 거슬러서까지 일본으로 탈출하려는 의사는 없다. 근일에 사형에 처해질 테니 그 뒤에는 천우협의 손으로 동학당을 구해주었으면 한다." 천우협은 일진회를 만들어서 동학당을 보호하고, 일진회는 한일합방과 만주국 성립에 앞장섭니다.
에효...물론 민비가 나쁜짓은 많이 했지만, 외교적 감각하나는 탁월했다. 그래서, 일본이 시해한거다. 만약, 1905년까지 살았다면, 조선이 러일전쟁에서 같은 동양이라고 일본을 지원하지 않았을거다 그때 일본은 거의 작살나기 직전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적당히 둘이 무승부였다면, 조선은 오히려 중립국이 될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민비시해에 참가했던 유길준은 이후에도 친일행각을 혁혁하게 했다. 결국 1905년이후 자신이 잘못했고 일본에 속았음을 알고, 나중에 일본이 주는 작위도 마다한다. 물론, 민비는 쌍뇬은 맞으나, 만약 기존 관료집단으로 이완용등의 지랄도 막을 힘이 충분했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저때 서양문물 받아와도 될 놈이 되는거다. 일본이 영일동맹까지 간 그레이트 게임도 결국 운뺠이다. 세상에 능력도 중요하나, 유신지사란 놈들의 면면을 보면 운빨이 맞다. 우리보다 강력한 쇄국을 했으나, 데지마란 인공섬에서 화란인과 작은 틈으로 교역한 것도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운빨이었다. 오죽하면 흑선 한방에 세상이 바뀌는 나라겠는가?
동학반란군은 전라도 관아들을 털어서 이미 총과 화약 그리고 대포 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과 활 칼은 물론이구요 동학을 제대로 연구하고 자료를 작성하시길 바랍니다 12가지 개혁안은 일제시대 1930년대 동학반란을 소재로한 소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그런 개혁안은 없었고 전주성에 같혀서 식량과 사기가 떨어지자 고종 과 빈비가 내려보낸 왕의군대에 항복하고 조정에서 파견된 군대도 쓸데없는 정부군과 반란군의 전투로 민간인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해산을 조건으로 포위를 풀어줍니다 쫒겨서 도망치다 전주성으로 들어간 반군이 무슨 협상력이 있겠습니까 정부군도 반군들 식량이 고갈되기만 기다리면 피한방울 안흘리고서도 이기는 싸움인데 ... 일본군 때문에 강경진압을 안한것이지 ... 이런 유튜브를 작성하려면 연구도 좀해보고 교수나 전문가들 의견도 좀들어 보고 해야지 전라도 자료만 보고 작성해서 ... 다음세대들에게 잘못된 정보만을 주입시키려는 ... 왕조시대에는 민란은 어떤 명분을 대더라도 반란입니다 성공했다면 왕건의 고려나 조선의 이성계처럼 왕조 창립이구요 ... 동학이 혁명이 라면 홍경래의 난도 혁명입니다 동학반군들 중에 협박이나 위협으로 강제로 참가한 사람들도 수두룩 하다고 당시사료에도 나와있습니다
ㅋㅋㅋ조선이란 악마같은 나라 지만 그 빌어먹을 나라를 망하게 하는 최고 원흉이 동학도들임 일본에 나라를 바친 장본인들이 을사오적이 아니라 이용구가 동학잔당을 규합 해서 세운 일진회 바로 저 동학 잔당들 입니다 저들 수십만이 수도에 집궐해서 일본과 합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어요, 당시 일본군이 궁궐을 포위 한건 맞지만 니들 문제는 니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일본군이 포위를 풀고 철수했다면 저 동학잔당 일진회에 의해 왕이고 뭐고 전부 도륙 당했을 겁니다
동학은 민씨 집권세력과 흥선의 세력다툼의 한가지 형태이지 흔히들 알고 있는 혁명은 아니다 라는걸 이제는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동학의 발발에서부터 흥선은 깊게 관여를 합니다.. 전봉준은 흥선의 집에서 식객노릇을 3년 정도 한 흥선의 사람이라는걸 먼저 알아야 합니다.. 흥선은 세가 불리해질때마다 전봉준과의 밀서를 통해 군사행동을 독려한 여러가지 정항으로봐서도 농민 봉기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추구하던 이상도 외세를 물리치고 흥선의 쇄국으로 돌아가자는 회귀주의 .. 덕분에 외국군대가 들어올 빌미만 제공하고 애꿎은 농민만 수만명이 희생 당한 어처구니없는 운동입니다.. 개혁하고 개항하고 외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것도 아닌 그져 흥선의 재집권 운동이 무슨 후대에 의미가 있다고 지금 현재 동학 후손을 찾고 연금까지 주는지. 어이가 없는 역사 왜곡과 무분별한 반일을 멈춰야죠.. 언제까지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이 개,돼지 노릇을 할껀지 안타깝습니다.
이번화는 너무 오류가 많으시네요 황토현 전투에서 정부군이 농민군보다 숫자가 많았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되었구요(모든 자료에서 농민군 숫자가 압도적입니다.) 당시 농민군이 총도 없다는 것도 잘못되었습니다. 농민군은 구식이라도 소총으로 대부분 무장했었고, 관아에서 노획한 대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황토현 전투 반격의 시작이 농민군의 대포 사격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우금치 전투는 일본군이 아니라 조선 관군이 주도적으로 펼친 전투입니다. 우금치 전투에 참여했던 일본군은 무기 수준도 별볼일 없었고 수도 200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그 전투에서 사용했던 대포 개틀링 모두 일본의 무기가 아니라 관군의 무기였고 관군이 사용했습니다. 동학 농민군을 끝까지 추적하고 학살한 것도 대부분 관군들이 주력이고 일본군이 전술 지휘와 보조를 해주는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전봉준이 끌려가는 사진은 전봉준이 막 잡혔을 때가 아니라 한양에서 심문을 마치고 이감될 때 사진입니다. 그리고 전봉준과 대원군의 밀약은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도 없고 당사자들도 모두 부인하였는데, 확정지어서 말하는 것은 성급하신 것 같습니다. 정읍에서 자라서 고부 친구들도 많고, 어렸을 때 전봉준의 부하였던 할아버지도 뵌 적 있었고, 황토현에서 3번이나 수련회도 했었습니다. 그만큼 이 영상의 오류들이 크게 보이네요 그리고 역사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주제넘게 조언하나 하자면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으신 것 같아요. 나중에 주어 담기 힘드니 너무 단정적인 표현은 자제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역사돋보기 이영님의 insight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동영상 끝에 언급하신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동학농민운동은 구시대적인 왕정,신분제에서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민중이 스스로 주인이 되기로 각성한 사건이라 생각됩니다. 더 거슬러 우리는 항상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역사는 외세와 자주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이었죠. 통일신라는 중국을 끌어들였으나 고려는 나주를 기반으로한 백제세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해상 확장으로 전세계에 코리아를 알렸으며 조선을 건국한 세력도 전주 이씨죠. 결국 안동 김씨 세력과 부패한 왕조가 나라를 말아 먹었으나 다시금 동학농민운동으로 우리나라는 민중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죠. (우리는 학교에서 근대 민주주의를 영극,프랑스라고 배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뿌리는 동학농민운동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역사라는걸.....우리나라의 있었던일들을 알려준다는건.......막중한 노력(사료찾기.등)과 책임이 동반합니다.내가 찾고 찾아서 이것이 맞다라고 생각이 들어도 다시 고증하고해야 하는거죠.님 올리신 이번 자료는....실망감도 있지만..더욱 큰건 안타까움입니다.불특정다수의 여러사람들이 보는데......쉬운일이 아닙니다.좀더 공부하고 좀더 발로 뛰고해야합니다.
동학반란군은 전라도 관아들을 털어서 이미 총과 화약 그리고 대포 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과 활 칼은 물론이구요 동학을 제대로 연구하고 자료를 작성하시길 바랍니다 12가지 개혁안은 일제시대 1930년대 동학반란을 소재로한 소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그런 개혁안은 없었고 전주성에 같혀서 식량과 사기가 떨어지자 고종 과 빈비가 내려보낸 왕의군대에 항복하고 조정에서 파견된 군대도 쓸데없는 정부군과 반란군의 전투로 민간인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해산을 조건으로 포위를 풀어줍니다 쫒겨서 도망치다 전주성으로 들어간 반군이 무슨 협상력이 있겠습니까 정부군도 반군들 식량이 고갈되기만 기다리면 피한방울 안흘리고서도 이기는 싸움인데 ... 일본군 때문에 강경진압을 안한것이지 ... 이런 유튜브를 작성하려면 연구도 좀해보고 교수나 전문가들 의견도 좀들어 보고 해야지 전라도 자료만 보고 작성해서 ... 다음세대들에게 잘못된 정보만을 주입시키려는 ... 왕조시대에는 민란은 어떤 명분을 대더라도 반란입니다 성공했다면 왕건의 고려나 조선의 이성계처럼 왕조 창립이구요 ... 동학이 혁명이 라면 홍경래의 난도 혁명입니다
한국사1급, 공시국사 100점 내내 맞은 사람인데요, 동학농민운동 20문제중 0~1문제 나와요. 그것도 연표 예시 아니면 사료하나 떤져주고 그 시대의 경제, 사회상 묻는 정도. 즉, 한국사에서 그닥이란 의미죠. 봉기, 점령, 봉기, 승리, 봉기, 진압, 재편성, 대패, 와해. 끝.
뭔 소리임? 저 당시 일본군에 의해 온 산이 동학군의 흰 옷으로 온통 하얗게 되었고, 너무 끔찍한 대량 학살에 왜군 장교조차 충격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저 당시 조선군은 그런 학살 벌일 무기조차 없었음. 그리고 생간은 무슨... 식인종이냐? 어디서 이상한 매국노들이 만든 것을 그대로 믿고 있네.
@Quintus Statilious Procorpius 역사라는건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봐야 되는 문제임. 현대적관점에서야 당연히 저시기가 답답하고 왜그랬을까 라는 의문점을 가질만하지 현재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안됀다는말임. 역사라는 학문은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상황으로 돌아가서 생각해야 되는 문제임
동학농민혁명이 프랑스혁명보다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진정한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점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은 성공하긴 했으나 부르주아들의 권리만 강조되었을 뿐, 여자와 서민들의 삶은 달라질 것이 없었으므로 이후 다시 나폴레옹의 군주제로 쉽게 되돌아가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동학혁명은 인즉천의 사상. 즉 만인은 모두 하늘이라는 천부인권의 진정한 민주 이념이 도입된 세계사 최초의 혁명으로 이후 3.1운동, 4.3/여순민중항쟁,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촛불혁명, 등 끊임없이 부정부패와 불의에 항거하는 대중혁명들의 정신적 토대를 만들어준 정의로운 우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동학군이 나중에 모두 일진회로 넘어가 한일합방 청원한 것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전반전에는 동학군 뛰고 후반전에 유니폼 갈아입고 일진회 친일활동한 사람은 위대한 동학농민운동 혁명가인가요? 친일매국노인가요? 그리고 전봉준이 난 일으킬때 교주 최시형과 부교주 손병희가 극구 만류한 것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그 위대한 혁명을 만류했으면 잘 못된거 아닌가요? 헌데 그 위대한 동학농민혁명 일으키고 나중에 다 일진회로 넘어가고 동학에서 제명당하고 지들끼리 시천교 만들고.... 총체적으로 봤을 때 위대하다고 할 수 있나요? 애초에 교주 최시형이 난 일으키지 말라고 했을 때 말 들었으면 나중에 일진회 친일활동하지 않았을테고...
전혀 아닙니다. 태평천국운동이 서태후의 권력욕이 들어간 것 처럼 동학도 대원군의 권력욕이 들어갔습니다. 아무거나 붙이지 마세요. 대원군이 일본에서 소총 밀수해서 동학군에 넘겨줬습니다. 한편 흥선대원군이 동학 농민군에게 거병을 사주했다는 것은 러시아의 외교관의 비밀 편지에도 나타난다. “나는 나의 정보원을 통해 다음과 같은 첩보를 받았다. 임금의 아버지(대원군)가 주모자로 나서서 중대한 폭동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 폭동은 오는 여름 혹은 아무리 늦어도 가을 이전에 폭발할 것이며, 공모자와 대리인들이 일본과 중국에서 무기를 구입하고 있으며 이미 4천여정의 소총이 구매되었는바, 그 중 일부는 일본에서 나왔고 소수의 일본인이 이에 가담하여 일을 같이 꾸미고 있으며, 이 음모에 대해 일본 정부는 전혀 모르고 있다.” - 1894년 2월 21일, 주일본 러시아 공사 미하일 히트로포(Mikhail Hitrovo)가 주조선 러시아 공사 칼 베베르(Karl L. Weber)에게 보낸 비밀 정보
만약에 우리의 동학농민운동이 성공을 했었다면.....세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역사가 됐을것이며.....지금의 프랑스 시민혁명보다도 더더욱 대단한 역사가 되었을것이구나!.....정말로 우리역사에서 아쉬운 순간이었다!.....이러한 역사속에는 만고의 역적 민비년도 있었고.....아이러니 하지만 안중근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서 동학농민들을 때려잡으러 다니던 양아치였다는 사실이구나!
@@전찬동-l6o 국제정세, 역사 다 너무 모르시네요...일본 아니었어도 청나라나 러시아에 먹힐 운명이었어요. 너무도 부끄러운 역사라 좌파들이 장악한 학계에서 가르치지 않을 뿐이죠. 조선은 안망하는게 이상할 정도로 한심한 나라였고, 힘 한번 못써본게 아니라 안쓴거죠. 전투 한 번 안하고 고종이 그냥 팔아 넘긴겁니다. 이씨 왕가 종묘사직의 보존과 일본 귀족이 되는 조건으로...고종 아들 중 한놈은 일본 군으로 쓰리스타 중장까지 올랐고, 또 한 놈은 유럽 여행이나 다니며 스포츠카를 타고 선진 여성들과의 사교를 즐기면서 평생 행복하게 플렉스한 인생을 즐겼지요ㅋㅋㅋ
확실한거는 조선후기에 조선내에는 조총을 시장에서도 살수있을만큼 흔해빠진무기였음 조선의 무기개발이 사실상 임진왜란에서 거의 멈추었던건 사실이지만 그건 새로운 무기의 탄생이없었을뿐이지 기존무기의 개량은 꾸준히 이루어진편임 조총의경우도 임진왜란을 기준으로보면 사실상 마개조에 가깝게 개조했었다고함 그리고 조선인들은 그런 조총을가지고 조준사격을 하면서 호랑이를 잡으러다닐정도로 사격실력을 알아주는 국가였음 물론 구식무기의 비중도 적지않았던건 사실로보임 그리고 영상에서 말씀하신것처럼 처음전투에서 근대화를 어느정도한 정부군을상대로 승리했고 승리방식도 설명하셧는데 다르게말하면 그런전투를했다면 당연히 동학군역시 각종신식무기들을 보유했을거라는거 물론 정부와 협상을하면서 돌려줬을 가능성도있지만 무력이 없으면 토벌당할 우려가 높은상황에서 굳이 넘겨줬을거같지는않음 즉 2차전투라고해도 무작정 죽창들고 싸운게 아니라는거 그리고 전라도지역이 유독 강경세력이 많았던건 사실 다른지역에비해 전라도는 농사외에 먹고살길이 없기떄문인게 컷음 뭐 다른지역들은 먹고살기힘들면 몰래 깊은산에가서 화전민이된다던가 산적질을한다던가 경기도지역이면 뭐 상업쪽일에 종사한다던가 하는등 그래도 농사로 먹고살기힘들지만 뭐라도 다른거 해먹을게있는데 전라도는 알아주는 곡창지대면서 평야지대였기에 그야말로 오로지 쌀농사에 인생몰빵을 걸어야했던지역임 그리고 그만큼 수탈을 가장심하게 당했던지역이기도하고 수탈을당했으면 뭐라도 다른거해먹고살게있어야하는데 다른거 해먹을방법도없음 그러다보니 가장 강경세력이 발호하는게 전라도가 될수밖에없었음
동학이 왜 민중에 파고들었을까요.. 그것은 우리한민족이 만주를 발판으로한 역사 만년전까지 깊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워준 역사인식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제가 그렇게 학살한 이유중하나고요. 역사를 잃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한 신채호도 동학,대종교 등과 역사인식의 출발점이 같죠..
영상 내용에 몇가지 손질들이 필요하다 봅니다. 혹여나 이 영상의 모든 내용과 제작자의 발언이 후손들에게 진실로 여겨지고 기억될까봐 걱정입니다. 긴 영상을 정리하여 만드시느라 고생하신건 알겠으나 잘못된 부분은 다듬고 수정하여 올바른 영상으로 만드셔야할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농민들 봉기는 너무 나도 잘한거지만 결론은 사이비 종교에 매진해서 저렇게 희생을 ...다르게 생각하면 그 당시 민생 백성들은 어디 의지할때가 없어으니..저렇게 좋은 교리에 안 빠질수가 없죠...문제는 저 당시 동학이 요즘 개신교 교리보다 더 좋은 교리인게 함정...ㅎㅎㅎ
뭐 내용에 이상한걸 다 빼버리고...그나마 남아 있는 사실에서 건져 ..좀 의미부여를 심하게 하자면 ... 결국 동학농민 운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농민 반란이지만... 그 속의 내용을 보면 ... 농민 반란이 아닌 ....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마지막 ..전쟁이였다고 해야 하죠. 동학측의 대원군 중앙군 측의 민비.. 다만 그 전과는 달리..이번에는 진짜 지는쪽이.. 물리적으로 모가지가 날아가기에.. 둘다 해선 안되는 부분까지 손을 댄거구요. 대원군 측은 바로 농민 즉, 그 동안의 것과는 달리 반란군과 손을 잡은거고.. 민비측은 ..외국, 청과 손을 잡은겁니다. .. 최고 권력자를 노리는 2명이 한 사람은 반란군 한사람은 외국.. 이러니 나라가 걍 시원하게 망한거죠 ㅋ
최제우가 주창한 東學(동학)은 그 핵심이 "사람속에는 하늘이 있으므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으로, 이것이 "人乃天(인내천)"임. 그러므로 "侍天主(시천주)"가 인간 속에 내재하는 한울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임. 이것은 배달국(白達國) 환웅(桓雄)께서 말씀하신 "一神降衷(일신강충)"의 뜻을 이은 것임. 카톨릭이 서양에서 동양에 들어올 때 동양사람들이 天을 가장 숭고한 것으로 받든다는 것을 알고 天으로 교의 이름을 붙여 천주교라 하였음. 우리 입장에서 그 天을 부정할 수는 없으므로 "도는 천도이나 학은 동학이라" 하여 천주교의 그 天은 인정하면서도 서양의 西敎(서교)를 부정하고 동양의 東學(동학)을 내세운 것임. 천주교의 천주(하느님)는 사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벗어나 저 높은 하늘에 계심. 즉 천주교의 天(主)과 동학의 天은 전혀 다른 것임. 공산좌파들이 신봉하는 공산주의도 역시 서양에서 들어왔으므로, 공산주의는 죽었다 깨어나도 西學(서학)일 수 밖에 없음. 그 西學(서학)인 공산좌파들이 마치 자기들이 東學(동학)인 것처럼 말하는데, 참으로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임. 그리고 공산주의는 유물론 즉 세상의 근본은 물질이라 주장함. 그런데 동학의 근본은 사람속에 있는 한울이고 그 한울은 정신이지 물질이 아님. 그러므로 공산주의와 동학은 근본이 다름. 동양에서 말하는 "革命(혁명)"은 "하늘이 명을 바꾸었다"는 뜻임. 하늘이 명을 바꾸었는데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명은 하늘의 명이 될 수 없음. 그러므로 결과가 이루어져야 혁명이 되는 것임. 그에 비하여, 서양의 쿠데타는 성공여부와는 관계가 없음. 그러므로 실패한 쿠데타란 것도 말이 됨. 4.19는 정권이 교체되어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불과 1년 정도밖에 유지되지 못했으므로 천명을 받았다 할 수 없음. 천명은 그렇게 싸구려가 아님. 그러므로 4.19는 의거가 맞는 것임. 완전한 성공을 이루지 못한 4.19의 맥을 이어서 완전한 성공을 가져온 것이 5.16임. 그래서 5.16은 혁명이 되는 것임. 동학난은 실패한 것임. 그래서 동학난이 되는 것임. 굳이 혁명이란 말을 붙이고 싶으면 동학혁명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으므로 동학쿠데타라 하면 됨.
동학이 서학을 받아들였다거나 단순히 대항해서 창시했다거나 라는 해석은 잘못되었습니다 천주교는 천주를 유일신 하나님절대자로 여기지만 동학의 한울님(하느님)은 유일신이 아닌 우리가 회복해야하는 순수한 상태 천주의 마음으로 살아가야한다는 논리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 주인이되어 노력하고 수련하여 이 이치를 깨닫고 실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동학농민봉기 역사에서 제일 이해할 수 없고 개탄스러운 것이.... 국내 농민 봉기 반란 문제에 조선 정부 민비가 외세 열강의 군대를 끌어들였다는 점이죠.... ㅂㄷㅂㄷ
군대가 없으니 그랬죠
대원군이 키워 놓은 군대를 민비가 다시 다 없에 버려서
병인양요 이후 강화도 수비병 400명을 4000명 가까이, 10배 가까이 늘리고
내륙에도 군인을 많이 증강해 놨는데
민비가 집권하자 마자 호포법 (양반도 세금 내는 법)
없에 버리고
본인 굿 하고 사치하는데 돈 쓰느라 돈 없으니
군대 다 없에버리고
권력을 내려 놓았어며는 새세상이 열렸을 것을 깜도 않되는 썩어 문더러진 조선왕조의 끝을 잡고 백성을 외세의 아가리에 집어 넣은 것들.명성왕후.고종.흥선.대신들.우물안의 개구리.솥에 삶아 지는게.백성은 무슨 죄인지.
정규군이라 할 것도 없이
관군이 너무 약했으니까요.
만약이란 없겠지만 청나라른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일본은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올시다가 100%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 기득권만을 지키기 위해서
한능검 시험 덕분에 좋은 영상 시청하네요. 우리 조상님들께서 얼마나 힘드셨는지 감이 옵니다 존경합니다.
존나 슬프네.. 쓰잘데기없이 눈물을 빼고 자빠졋냐
아직도 한국사 편찬하는자들 다 일본 식민사관 가진자들..
그거 공부할필요없음
동학농민운동 에 대해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에서 현실을 배웁니다^^
@@dustone 부국강병에 올인해야 하는데 비생산적인 정치권 인간들보면 한심하다!
과거의 역사를 보고도 정신 못차리는 정치권 ㅉㅉ
잘 봤습니다. 전주협약 시 폐정개혁안 12조는 없었다고 하죠.. 36년 동학사라는 역사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하데요.. 잘 찾아보시고, 수정해서 오류가 없도록 해야 겠네요.
와... 너무 슬프네요... 전봉준님과 동학농민운동에 참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네요..
먼 개소리임 이거 때문에 청일 전쟁 발생 했고 실직적 혁명도 아닌 반란 사건인디. 동학/ 민비/ 고종의 콜라보였다. 우금치 전투에서 왜 갈려 나간줄 아냐 ? 전봉준이 자기 믿으면 총알이 피해
간다고 선동 해서다.
동학농민운동 참가자들이 마을등을 약탈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평소의 원한이 있는 동네 사람들에 복수에 이용하고 고문한 사실을 아시나요?
동학교주 최시형도 해산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한 참가자들을 사문난적이라고 규정한 사실은 아시나요?
관군과연합해서 일본군을 무찔러야지😢😢😢
@@jamercho8927전봉준이 한성감옥에서 일본 극우단체 천우협의 다나카 지로에게 남긴 유언, 이이화씨 "전봉준, 혁명의 기록"의 정확한 문구는 "내 형편이 여기에 이른 것은 필경 천명이니 굳이 천명을 거슬러서까지 일본으로 탈출하려는 의사는 없다. 근일에 사형에 처해질 테니 그 뒤에는 천우협의 손으로 동학당을 구해주었으면 한다."
천우협은 일진회를 만들어서 동학당을 보호하고, 일진회는 한일합방과 만주국 성립에 앞장섭니다.
민비를 우리손으로 처단했어야 했는데~ 드라마로 너무 미화되었음
역잘알ㅋㅋㅋㅋㅋ
실제로 민비 시해에 조선인들도 가담했긴 함
쓰레기를 어찌 그리 미화가 잘됐는지.누가 그리 미화를 했누.역사는 있었던 그대로.
@@버디홀리 길잡이가 조선이었으니..
에효...물론 민비가 나쁜짓은 많이 했지만, 외교적 감각하나는 탁월했다. 그래서, 일본이 시해한거다. 만약, 1905년까지 살았다면, 조선이 러일전쟁에서 같은 동양이라고 일본을 지원하지 않았을거다 그때 일본은 거의 작살나기 직전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적당히 둘이 무승부였다면, 조선은 오히려 중립국이 될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민비시해에 참가했던 유길준은 이후에도 친일행각을 혁혁하게 했다. 결국 1905년이후 자신이 잘못했고 일본에 속았음을 알고, 나중에 일본이 주는 작위도 마다한다.
물론, 민비는 쌍뇬은 맞으나, 만약 기존 관료집단으로 이완용등의 지랄도 막을 힘이 충분했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저때 서양문물 받아와도 될 놈이 되는거다.
일본이 영일동맹까지 간 그레이트 게임도 결국 운뺠이다. 세상에 능력도 중요하나, 유신지사란 놈들의 면면을 보면 운빨이 맞다. 우리보다 강력한 쇄국을 했으나, 데지마란 인공섬에서 화란인과 작은 틈으로 교역한 것도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운빨이었다. 오죽하면 흑선 한방에 세상이 바뀌는 나라겠는가?
우리나라 최악의 역사왜곡, 민비가 마치 독립운동하다 죽은걸로 포장, 조선의 국모... 그 악녀는 여흥민씨 배에 기름끼울 고민만 한 여자임. 이러고도 일본 역사왜곡 운운할 수있나
민자영은 조선 아니 우리 역사이래 최고의 악녀다
일본 낭인들에 시해되고
시간까지 당한건 당연하다
조선을 망하게 한 근본은
민씨 일족의 패악질때문이다
그렇게 수탈에 대항 해서 일어났는데.
지금 동학 기념관을 무식하게 크게 지어서 관리하는 세금이 1년에 몇십억씩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넓은 부지가 텅텅 비어서 관리하는 직원들만 있다던데.. 아이러니 하네.
동학반란군은 전라도 관아들을 털어서 이미 총과 화약 그리고 대포 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과 활 칼은 물론이구요 동학을 제대로 연구하고 자료를 작성하시길 바랍니다
12가지 개혁안은 일제시대 1930년대 동학반란을 소재로한 소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그런 개혁안은 없었고 전주성에 같혀서 식량과 사기가 떨어지자 고종
과 빈비가 내려보낸 왕의군대에 항복하고 조정에서 파견된 군대도 쓸데없는 정부군과 반란군의 전투로 민간인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해산을 조건으로 포위를 풀어줍니다
쫒겨서 도망치다 전주성으로 들어간 반군이 무슨 협상력이 있겠습니까 정부군도 반군들 식량이 고갈되기만 기다리면 피한방울 안흘리고서도 이기는 싸움인데 ... 일본군
때문에 강경진압을 안한것이지 ... 이런 유튜브를 작성하려면 연구도 좀해보고 교수나 전문가들 의견도 좀들어 보고 해야지 전라도 자료만 보고 작성해서 ... 다음세대들에게
잘못된 정보만을 주입시키려는 ... 왕조시대에는 민란은 어떤 명분을 대더라도 반란입니다 성공했다면 왕건의 고려나 조선의 이성계처럼 왕조 창립이구요 ... 동학이 혁명이
라면 홍경래의 난도 혁명입니다 동학반군들 중에 협박이나 위협으로 강제로 참가한 사람들도 수두룩 하다고 당시사료에도 나와있습니다
@@rs6561 혈세가 줄줄세는데가 너무 많아요! 이런게 국가경쟁력 약화시키는 요인이죠!
불쌍한 우리 농민이셨던 조상님들.
너무 마음 아프고 속상하고 희생하신 동학군 조상님들 그리고 대한민국 명문 고려대학교를 세워주신 동학군 후손 조상님들.
너무 존경스럽고 감사드리며 후손으로써 조상님들 희생과 노고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깊은 존경 드립니다.
ㅋㅋㅋ조선이란 악마같은 나라 지만 그 빌어먹을 나라를 망하게 하는 최고 원흉이 동학도들임
일본에 나라를 바친 장본인들이 을사오적이 아니라 이용구가 동학잔당을 규합 해서 세운 일진회
바로 저 동학 잔당들 입니다
저들 수십만이 수도에 집궐해서 일본과 합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어요,
당시 일본군이 궁궐을 포위 한건 맞지만 니들 문제는 니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일본군이 포위를 풀고 철수했다면 저 동학잔당 일진회에 의해 왕이고 뭐고 전부 도륙 당했을 겁니다
그 농민을 불쌍하게 만든 장본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을 노예와 기생의 나라로 만든 세종이 나옵니다 ㅋㅋㅋ
이러한 동학군을 좀도둑, 쓰레기라 지칭하며 일본군과 함께 토벌했던 안중근 이야기는 도대체 왜 아무도 하지 않는 걸까
@@Close_To_Me 안중근이 아니라 안중근 아버지다
@@Close_To_Me 엥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 처단했잖아요
그리고 동학군도 마냥 좋은 놈들도 아닌게 이들도 술주정애 부녀자 겁탈, 그리고 재산 몰수를 저질렀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보낸 사신들을 사살하는 추태도 벌였죠. 드라마 녹두꽃에서 보여준 그 장면이 고증을 지킨거죠
나중에 일부 세력은 친일파로 돌아섬
일본놈든이 마냥 좋은놈들이 아니라서
어떻게든 한국의 역사왜곡과 유언비어를 많이 생산했으니
걸러가며 생각하세요
농민군이 수만이였는데 모두가 그랬다 하지마쇼
머리보다 사족에 더 치중하는
댓글
@@honggibongable 거기다 전봉준의 친척 전정훈은 알고 지냈던 모리배들과 같이 동학을 사친한 사기범죄를 저질렀다 발각되어 금강산으로 도망가서 백도교 라는 사이비 종교를 만들었고 훗날 그의 2째 아들 전룡해가 그 악명높은 백백교를 만들었죠.
동학운동은 눈물이다!!!
후대에 더 가치있게 빛날 조상님들의 업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좌파?
"오직 죽을뿐"... ㅠ 가슴이 울컥하네요
왜곡하지않고 매우 사실적인 역사를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처럼 왜곡하지 않아서좋치
약간 미화된 점이 없지않아 있음.
동학은 민씨 집권세력과 흥선의 세력다툼의 한가지 형태이지 흔히들 알고 있는 혁명은 아니다 라는걸 이제는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동학의 발발에서부터 흥선은 깊게 관여를 합니다.. 전봉준은 흥선의 집에서 식객노릇을 3년 정도 한 흥선의 사람이라는걸 먼저 알아야 합니다..
흥선은 세가 불리해질때마다 전봉준과의 밀서를 통해 군사행동을 독려한 여러가지 정항으로봐서도 농민 봉기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추구하던 이상도 외세를 물리치고 흥선의 쇄국으로 돌아가자는 회귀주의 .. 덕분에 외국군대가 들어올 빌미만 제공하고 애꿎은 농민만 수만명이 희생 당한
어처구니없는 운동입니다..
개혁하고 개항하고 외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것도 아닌 그져 흥선의 재집권 운동이 무슨 후대에 의미가 있다고 지금 현재 동학 후손을 찾고 연금까지 주는지.
어이가 없는 역사 왜곡과 무분별한 반일을 멈춰야죠.. 언제까지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이 개,돼지 노릇을 할껀지 안타깝습니다.
@@김영진-i3w 정확한 말씀이네요! 동학난은 대원군이 전봉준을 이용해서 자기권력 찿기위한 행동대였죠!
이번화는 너무 오류가 많으시네요
황토현 전투에서 정부군이 농민군보다 숫자가 많았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되었구요(모든 자료에서 농민군 숫자가 압도적입니다.)
당시 농민군이 총도 없다는 것도 잘못되었습니다.
농민군은 구식이라도 소총으로 대부분 무장했었고, 관아에서 노획한 대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황토현 전투 반격의 시작이 농민군의 대포 사격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우금치 전투는 일본군이 아니라 조선 관군이 주도적으로 펼친 전투입니다.
우금치 전투에 참여했던 일본군은 무기 수준도 별볼일 없었고 수도 200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그 전투에서 사용했던 대포 개틀링 모두 일본의 무기가 아니라 관군의 무기였고 관군이 사용했습니다.
동학 농민군을 끝까지 추적하고 학살한 것도 대부분 관군들이 주력이고 일본군이 전술 지휘와 보조를 해주는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전봉준이 끌려가는 사진은 전봉준이 막 잡혔을 때가 아니라 한양에서 심문을 마치고 이감될 때 사진입니다.
그리고 전봉준과 대원군의 밀약은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도 없고 당사자들도 모두 부인하였는데, 확정지어서 말하는 것은 성급하신 것 같습니다.
정읍에서 자라서 고부 친구들도 많고, 어렸을 때 전봉준의 부하였던 할아버지도 뵌 적 있었고, 황토현에서 3번이나 수련회도 했었습니다.
그만큼 이 영상의 오류들이 크게 보이네요
그리고 역사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주제넘게 조언하나 하자면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으신 것 같아요.
나중에 주어 담기 힘드니 너무 단정적인 표현은 자제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말씀해주신 것 말고도 천주교와 동학에 관련된 설명도 솔직히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저 시대 화승총도 총임? F22 앞에서 복엽기 날려 싸우자는 소리지...
@@헐헐-m4x 적절한 비유입니다. 당시 최신식인 영국제 스나이더 소총 앞에서 화승총은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무기죠.
일본군이 관군을 지휘했다는게 최악의 만행
동감입니다. 보다보니 너무 위화감 넘치고 감정적으로 단언하는게 .. 매우 선동적이라고 느껴지던데.
특히 전봉준에 관련해서 썰이. .우금치에서 계속된 돌격으로 와해된 것을 봐도.. 김개남과 갈라선 후. .군사적 질적저하가. 참. .
근현대사는 진짜 학술적으로 다시 써야된다. 기록이나 근거들이 명백한 것들을 반영해서 정치편향 없이 기록해야 된다.
이넘의 운동권 세력이 정권만 잡으면 항쟁이나 혁명으로 명칭을 바꿔버림.
이때 그 유명한 안중근도 진압군으로 참여 했었죠 진짜 에휴... 우리나라 역사교육 언제 바뀌려나
진압군으로 참여가 아니라 당시 직업과 신분이조선군인이자 중장계급이었지요.
또 동학이엇던 김구를 자신의 집에 숨겨주기도하고 후에 독립운동도 함께 연대합니다 .
@@노재팬-y3e결국 총들고 쏴죽여서 무력진압한건 사실이잖아
@@원석-x7j 니군대갔다왔나
민보군이라고 해서 양반들이 만든 의병집단들이 동학군 죽이고 다니긴 했음 그리고 안중근이 민보군에서 활동 했고
@@노재팬-y3e 안중근 부자가 함께 진압군으로 활동했어요
동학농민운동 진압과정이야말로 한국사에서 손꼽히는 실수 중 하나였습니다. 이사건 이전까지 일본은 갑신정변 이후로 한반도에 대해 간섭할 여지가 전혀 없어서 전전긍긍했는데, 동학농민운동 진압 때문에 일본이 한반도에 마수를 뻗을 수 있는 기회가 됐죠.
국내문제만으로 끝났으면 좋았겠는데 국력보다는 외세를 말?로 휘두르는 걸 좋아했던 민비덕에 동학운동이 발생한 게 잘못이냐고 한다면 민비일당의 부정부패가 근원이었고 화의가 그대로 실행만 됐으면 나라 개혁으로 독자적 근대화할 최대이자 절호의 기회가
@@ColorofloveThe 나라꼴이 개판이라 살 수 없는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게 잘못입니까?
@@CRCheol 들고 일어나서 결과적으로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어 왕조와 양반의 수탈은 사라졌으니 잘못은 아니죠.
@@ColorofloveThe ??
@@삐용삐용-s8p 동학은 잘못이 아니고 지들 멋대로 쳐들어온 일본이 잘못했구만..왕과 양반은 수탈만 했지. 일본은 수탈은 기본에 민족성까지 말살하려 했구만..같은 사람 취급도 안해줌..
바른정신
열정적 행동력!!
진정 존경스럽습니다.
전봉준이고 나발이 교주가 동학운동반대했는데, 동학운동이라고 하냐. 기가차는 노릇이지. 처음에 취지야 좋았을지몰라도 하는짓은 강도였다는 사료가 존재하는데. 의도가 좋았으니 행동은 용서해야된다. 말도 안돼는 개소리임..
역사돋보기 이영님의 insight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동영상 끝에 언급하신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동학농민운동은 구시대적인 왕정,신분제에서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민중이 스스로 주인이 되기로 각성한 사건이라 생각됩니다.
더 거슬러 우리는 항상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역사는 외세와 자주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이었죠.
통일신라는 중국을 끌어들였으나
고려는 나주를 기반으로한 백제세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해상 확장으로 전세계에 코리아를 알렸으며 조선을 건국한 세력도 전주 이씨죠. 결국 안동 김씨 세력과 부패한 왕조가 나라를 말아 먹었으나 다시금 동학농민운동으로 우리나라는 민중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죠.
(우리는 학교에서 근대 민주주의를 영극,프랑스라고 배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뿌리는 동학농민운동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좋은 이야기 많이해주시네요 배워갑니다!
우리민족이 끼가 있네... 큰그림에서는 서로 웬수가 화합을 하고....
정말 재미 있고 20분이 순삭...??^^
근데 제발 부탁인데 사실만...
역사라는걸.....우리나라의 있었던일들을 알려준다는건.......막중한 노력(사료찾기.등)과 책임이 동반합니다.내가 찾고 찾아서 이것이 맞다라고 생각이 들어도 다시 고증하고해야 하는거죠.님 올리신 이번 자료는....실망감도 있지만..더욱 큰건 안타까움입니다.불특정다수의 여러사람들이 보는데......쉬운일이 아닙니다.좀더 공부하고 좀더 발로 뛰고해야합니다.
눈물납니다.
외세 배척을 내세우고 요구사항중 일부가 갑오개혁에 반영이 되었을 뿐 기본적으로는 종교적 농민반란에 불과한 사건인데 정치가 개입되니 빨아주기 바쁘니 원…
프랑스혁명처럼 우리도 민중이 승리했으면 좀 더 민중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을것을
권력자들을 잘못 뽑았으면 빨리 갈아치우지 않으면 국민들만 희생 당한다 . 일본기관총에 추풍낙엽 되듯이 근현대사도 마찬가지 , 미국도망 총사살 감옥 . 이래서 그래도 이어져온 민주화를 지켜보자 .
그래서 지난 5년 동안 멓했음?
수백년전 조선이나 지금 대한민국이나
물질적인것이외에는 똑같음ㅋ
어디가 똑같음? 전혀 다르지~북한이 조선과 비슷하다면 모를까...
@@siegfried--9321 국민들 의식 수준이 변한게 없어요!
@@김배식-l6i 아~의식 수준은 거의 똑같죠. 개화가 안된 인간들이 아직도 절반ㅋㅋ
교과서가 따로 없으십니다!
나름 한국사에 자신있다고 생각하는 저이지만 흥선대원군이 동학농민군을 지지하던 세력이었다는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좋은 지식 알고갑니다.
사료에 없는 내용입니다
@@colt7057 되게 중요한 포인트인데 사료에 없는게 이상
민비가 맞는 표현입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동학농민운동 장면 드라마 제목이 뭔가요?
녹두꽃일걸요 조정석 최무성 나오는
잘봤습니다. 이제 동학농민혁명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니 가능하면 반영해주시면 좋겠네요🙂 중요한 한국사이니까요~~굿
동학혁명이성공햇다면 우린지금어떡게살고잇을까요
@@순옥박-w2r 5/16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조병갑 사촌형도 횡포 엄청났음 ㅋㅋ조병식인가 뭔가 ..심지어 민비 전담무당 진령군이랑 엄청 친했다고함.
조씨.. 워 엄청나네
윤석열 같은 놈들이네요 하...
@@contiguous1 ㅋㅋ 전 민비= 김명신이라 생각.
윤석열= 고종
@@contiguous1 조병갑 증손녀 조기숙이 어느당에서 국회의원 했는지는 아냐?ㅋㅋㅋ 애초에 민주당의 뿌리가 친일 지주들이 모여서 만든 한국민주당이란다. 지금도 친일파 후손들 바글거리고
믿거조
개틀링건은 관군이 가지고 있었고 실제 전투는 관군과의 전투였습니다. 역사를 입맛대로 바꾸지 마십시오...
이미지 세탁에 성공한 니라를 말이먹은 민비
진령군이란 여자무당에 의지한 한심한 여자져 꼭 지금의 누구처럼.쥴리라 그랬나?
김정일 김정은도 일본이 두들겨패고 현세의 지옥속에 사는 조선인민 꺼내주면 감사는 커녕 나중에 좌파들이 민비처럼 세탁해줄걸.
뮤지컬이 세탁 오지게했지
확실한건 민비가 정치에 너무 깊게 관여 한건 맞은듯 그러니 일본군 표적이 되었겠지
@@에헴엠 민비가 굶어죽는 백성들이 많은데 산신제 지낸다며 국력낭비가 엄청심했죠!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도 없었죠!
17:45 손병희 이라면... 독립운동가 민족인 손병희 선생님 맞나요?😮
맞아요 그 손병희입니다. 방정환 선생의 장인
드라마이름이 먼가요?
화면에나오는
넘 맘아파서 보고있기가 힘드네요..ㅠㅠ
동학란,제주4.3,여순반란,광주사태....무서무서 어서 독립해 나가세요. 서로 안보고 살면 서로 좋다
동학반란군은 전라도 관아들을 털어서 이미 총과 화약 그리고 대포 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과 활 칼은 물론이구요 동학을 제대로 연구하고 자료를 작성하시길 바랍니다
12가지 개혁안은 일제시대 1930년대 동학반란을 소재로한 소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그런 개혁안은 없었고 전주성에 같혀서 식량과 사기가 떨어지자 고종
과 빈비가 내려보낸 왕의군대에 항복하고 조정에서 파견된 군대도 쓸데없는 정부군과 반란군의 전투로 민간인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해산을 조건으로 포위를 풀어줍니다
쫒겨서 도망치다 전주성으로 들어간 반군이 무슨 협상력이 있겠습니까 정부군도 반군들 식량이 고갈되기만 기다리면 피한방울 안흘리고서도 이기는 싸움인데 ... 일본군
때문에 강경진압을 안한것이지 ... 이런 유튜브를 작성하려면 연구도 좀해보고 교수나 전문가들 의견도 좀들어 보고 해야지 전라도 자료만 보고 작성해서 ... 다음세대들에게
잘못된 정보만을 주입시키려는 ... 왕조시대에는 민란은 어떤 명분을 대더라도 반란입니다 성공했다면 왕건의 고려나 조선의 이성계처럼 왕조 창립이구요 ... 동학이 혁명이
라면 홍경래의 난도 혁명입니다
한국사1급, 공시국사 100점 내내
맞은 사람인데요,
동학농민운동 20문제중
0~1문제 나와요.
그것도 연표 예시 아니면
사료하나 떤져주고
그 시대의 경제, 사회상
묻는 정도.
즉, 한국사에서 그닥이란 의미죠.
봉기, 점령, 봉기, 승리, 봉기, 진압,
재편성, 대패, 와해. 끝.
이모든 역사안에서 오늘우리일수밖에!
와 소름 새야새야파랑새야 노래 초딩때 그냥 외우래서 외웠었는데;
동학당에 대한 학살은 일본군이 아니라 관군 및 양반들이 벌였습니다. 동학당의 생간까지 씹어 먹었다죠. 애시당초 우금치 전투에서도 일본군 병력 수가 관군보다 더 적었구요.
뭔 소리임? 저 당시 일본군에 의해 온 산이 동학군의 흰 옷으로 온통 하얗게 되었고, 너무 끔찍한 대량 학살에 왜군 장교조차 충격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저 당시 조선군은 그런 학살 벌일 무기조차 없었음. 그리고 생간은 무슨... 식인종이냐? 어디서 이상한 매국노들이 만든 것을 그대로 믿고 있네.
전형적인 식민사관이네
@Quintus Statilious Procorpius 고종이랑 민비 지키겠다고 거사일으킨거 아닌데??? 논점 파악 못하누
@Quintus Statilious Procorpius 역사라는건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봐야 되는 문제임.
현대적관점에서야 당연히 저시기가 답답하고 왜그랬을까 라는 의문점을 가질만하지
현재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안됀다는말임.
역사라는 학문은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상황으로 돌아가서 생각해야 되는 문제임
맞습니다. 동학군이 기세등등 할 땐 찍소리도 못하고있다 일본군에 패배하니까 민보군을 조직해서 생존한 동항군을 살육하고 다녔죠. 이 양만기득권세력들이 지금의 한동훈 같은 쓰레기들입니다 ㅠㅠ
동학농민혁명이 프랑스혁명보다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진정한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점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은 성공하긴 했으나 부르주아들의 권리만 강조되었을 뿐, 여자와 서민들의 삶은 달라질 것이 없었으므로 이후 다시 나폴레옹의 군주제로 쉽게 되돌아가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동학혁명은 인즉천의 사상. 즉 만인은 모두 하늘이라는 천부인권의 진정한 민주 이념이 도입된 세계사 최초의 혁명으로 이후 3.1운동, 4.3/여순민중항쟁,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촛불혁명, 등 끊임없이 부정부패와 불의에 항거하는 대중혁명들의 정신적 토대를 만들어준 정의로운 우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동학군이 나중에 모두 일진회로 넘어가 한일합방 청원한 것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전반전에는 동학군 뛰고 후반전에 유니폼 갈아입고 일진회 친일활동한 사람은
위대한 동학농민운동 혁명가인가요? 친일매국노인가요?
그리고 전봉준이 난 일으킬때 교주 최시형과 부교주 손병희가 극구 만류한 것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그 위대한 혁명을 만류했으면 잘 못된거 아닌가요?
헌데 그 위대한 동학농민혁명 일으키고 나중에 다 일진회로 넘어가고 동학에서 제명당하고 지들끼리 시천교 만들고....
총체적으로 봤을 때 위대하다고 할 수 있나요?
애초에 교주 최시형이 난 일으키지 말라고 했을 때 말 들었으면 나중에 일진회 친일활동하지 않았을테고...
전혀 아닙니다. 태평천국운동이 서태후의 권력욕이 들어간 것 처럼 동학도 대원군의 권력욕이 들어갔습니다. 아무거나 붙이지 마세요. 대원군이 일본에서 소총 밀수해서 동학군에 넘겨줬습니다. 한편 흥선대원군이 동학 농민군에게 거병을 사주했다는 것은 러시아의 외교관의 비밀 편지에도 나타난다. “나는 나의 정보원을 통해 다음과 같은 첩보를 받았다. 임금의 아버지(대원군)가 주모자로 나서서 중대한 폭동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 폭동은 오는 여름 혹은 아무리 늦어도 가을 이전에 폭발할 것이며, 공모자와 대리인들이 일본과 중국에서 무기를 구입하고 있으며 이미 4천여정의 소총이 구매되었는바, 그 중 일부는 일본에서 나왔고 소수의 일본인이 이에 가담하여 일을 같이 꾸미고 있으며, 이 음모에 대해 일본 정부는 전혀 모르고 있다.” - 1894년 2월 21일, 주일본 러시아 공사 미하일 히트로포(Mikhail Hitrovo)가 주조선 러시아 공사 칼 베베르(Karl L. Weber)에게 보낸 비밀 정보
심지어 이준용은 동학군과 합세해서 한양에서 정부 고위직 암살하러 돌아다녔습니다. 그게 무슨 혁명입니까? 권력다툼이죠. 대원군이 일으킨 7번의 쿠테타중 마지막 쿠테타가 동학농민운동입니다. 이준용을 왕으로 만들려는 그래서 한양의 관군을 못보내고 외국군에게 요청한 것이고요.
@@user-ge6hb7nn5y 말도 안되는 헛소리입니다. 태평천국운동이 서태후의 지지를 받았던 것처럼 동학은 대원군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전주성 함락전에 이미 대원군이 소총 4,000정을 일본에서 밀수해서 동학군에 넘겨줬어요.
@@user-ge6hb7nn5y 동학의 비교대상은 그냥 태평천국운동이에요. 종교집단이 일으킨 권력싸움에 이용되다가 국가멸망을 앞당긴 사건.
폐정개혁안은 아직 진위여부가 논란중입니다. 그내용도 넣었으면 합니다
만약에 우리의 동학농민운동이 성공을 했었다면.....세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역사가 됐을것이며.....지금의 프랑스 시민혁명보다도 더더욱 대단한 역사가 되었을것이구나!.....정말로 우리역사에서 아쉬운 순간이었다!.....이러한 역사속에는 만고의 역적 민비년도 있었고.....아이러니 하지만 안중근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서 동학농민들을 때려잡으러 다니던 양아치였다는 사실이구나!
왜요?
역으로 동학농민운동 안 했으면 청나라 일본이 올일이 없었다는 생각은 안 하는지 이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는 바람에 일본한테 힘 한번 못 쓰고 당했지 탐관오리만 죽이고 말아야지
@Haru 10배요?ㅋㅋㅋ 동학군 3만6천명 죽을때 일본군 1명 죽었어요. 그 동학군도 못 막아서 ㅂㅅ같이 외국 군대에 sos친게 당시 조선의 국력인데 100배도 너무 많이 쳐준거죠.
@@전찬동-l6o 국제정세, 역사 다 너무 모르시네요...일본 아니었어도 청나라나 러시아에 먹힐 운명이었어요. 너무도 부끄러운 역사라 좌파들이 장악한 학계에서 가르치지 않을 뿐이죠. 조선은 안망하는게 이상할 정도로 한심한 나라였고, 힘 한번 못써본게 아니라 안쓴거죠. 전투 한 번 안하고 고종이 그냥 팔아 넘긴겁니다. 이씨 왕가 종묘사직의 보존과 일본 귀족이 되는 조건으로...고종 아들 중 한놈은 일본 군으로 쓰리스타 중장까지 올랐고, 또 한 놈은 유럽 여행이나 다니며 스포츠카를 타고 선진 여성들과의 사교를 즐기면서 평생 행복하게 플렉스한 인생을 즐겼지요ㅋㅋㅋ
0:09 이거 소개해주새요!
팩트는 당시 우금치의 주력은 3000명의 조선군이었다
일본이 동학운동을 진압하면서 알게 되었겠죠...이나라 조선이란 곳이 얼마나 한심한상황인지...
동학농민운동 이후 일본군이 이곳의 성인남성들을 죽인 사건도 조사되어야 하고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국사책에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돋보기님 어디 잡히셔서 강제로 영상제작하는거 아니죠? 보는 저야 좋지만 건강생각해주시길... 요즘 영상분량 장난 아닌거 같아서 걱정되네요
안중근은 천주교인이며 동학농민을 학살했다는 얘기가 있죠. 안중근은 양반집이라 농민의 봉기가 달갑지 않았죠.
확실한거는 조선후기에 조선내에는 조총을 시장에서도 살수있을만큼 흔해빠진무기였음
조선의 무기개발이 사실상 임진왜란에서 거의 멈추었던건 사실이지만 그건 새로운 무기의 탄생이없었을뿐이지
기존무기의 개량은 꾸준히 이루어진편임
조총의경우도 임진왜란을 기준으로보면 사실상 마개조에 가깝게 개조했었다고함
그리고 조선인들은 그런 조총을가지고 조준사격을 하면서 호랑이를 잡으러다닐정도로 사격실력을 알아주는 국가였음
물론 구식무기의 비중도 적지않았던건 사실로보임
그리고 영상에서 말씀하신것처럼 처음전투에서 근대화를 어느정도한 정부군을상대로 승리했고
승리방식도 설명하셧는데 다르게말하면 그런전투를했다면 당연히 동학군역시 각종신식무기들을 보유했을거라는거
물론 정부와 협상을하면서 돌려줬을 가능성도있지만 무력이 없으면 토벌당할 우려가 높은상황에서 굳이 넘겨줬을거같지는않음
즉 2차전투라고해도 무작정 죽창들고 싸운게 아니라는거
그리고 전라도지역이 유독 강경세력이 많았던건 사실 다른지역에비해 전라도는 농사외에 먹고살길이 없기떄문인게 컷음
뭐 다른지역들은 먹고살기힘들면 몰래 깊은산에가서 화전민이된다던가 산적질을한다던가 경기도지역이면 뭐 상업쪽일에 종사한다던가 하는등
그래도 농사로 먹고살기힘들지만 뭐라도 다른거 해먹을게있는데
전라도는 알아주는 곡창지대면서 평야지대였기에 그야말로 오로지 쌀농사에 인생몰빵을 걸어야했던지역임
그리고 그만큼 수탈을 가장심하게 당했던지역이기도하고
수탈을당했으면 뭐라도 다른거해먹고살게있어야하는데 다른거 해먹을방법도없음
그러다보니 가장 강경세력이 발호하는게 전라도가 될수밖에없었음
동학농민 진도 밀양박씨 전주성. 유골 전시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랑 부친이랑 일본군 이랑 가치 진압했죠~ 본인 자서전에도 쓴 이야기임
안중근은 어느시점에 가담한거에요?
관군
동학이 왜 민중에 파고들었을까요.. 그것은 우리한민족이 만주를 발판으로한 역사 만년전까지 깊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워준 역사인식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제가 그렇게 학살한 이유중하나고요.
역사를 잃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한 신채호도 동학,대종교 등과 역사인식의 출발점이 같죠..
쉣 더 민자영!!!
*공부를 좀더 해야겠어요
서학을 배척해서 동학이라고 했는 게
아니고
*동은 우리나라를 예전에 동국이라 불러서 동이고
*학은 학문이라는 뜻이고
동학은:동국의 학문이다💕
진심 조선은 보기만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암닭이울면 나라가망하는건 역사가증명하네요
조선왕조. 한글창제 하나로 인정해주는거지..
양반놈들 왕가놈들, 백성들 쥐어짜기만 했지 진짜.. 나쁜놈들임.
민중도 별로 대단할 거 없었음.
지배층도 피지배층도 다 개막장.
마누라, 자식을 소유물로 여겨서 학대하고 죽이기를 일삼던 게 당시 민중들이었음.
@@심해-s1i 경북괴 일베 土왜ㄷㄷㄷ
日혐한집회 참가자들 “일베와 친구”, “조선일보 신뢰” - 고발뉴스
@@심해-s1i 류석춘(경북안동 국짐당 혁신위원장) 위안부는 자발적매춘. 이영훈(경북대구) 반일종족주의.
주옥순(경북포항 국짐당 디지털 위원회 부위원장) 아베수상님 사죄드립니다.
송언석(경북 김천 국민의짐 비상대책위원장 ) 65년 개인청구권 완료. 이명희(경북문경) 친일 교학사교과서 저자.
전광훈(경북의성) 일장기부대 코로나 살포.
대부분이 글도 못읽는 까막눈인데 뭐 알기나 하겠냐... 중세 유럽 암흑기를 500년간 강제당한거지
솔직히 우리 한반도 역사에서 박정희 전으로 자랑할만한 역사는 아니지.
한강의 기적은 진짜 자랑할만 하고.
조선 초기 민씨로 흥해서
민씨로 망한 조선
조선이 없었고 그냥 고려로 있었어야함.. 유지만 됐다면
차라리 통일신라가 조선보다 국력이 강했을지도
동학은 서학에 대항하여 만는 종교쯤으로 인식하는 강단사학
그 인식이 정확한 겁니다...ㅎㅎㅎ
강단 사학이 정설입니다... 나머지는 썰이지요..^^
너무아쉬운 일입니다
기관총을 향해 미신을신봉하여 총알이 피해간다는 부적을 붇이고 기관총에 돌격한 동학군을 단지 의의로만 판단하고 빨기엔 좀 부족하다 반면교사로 삼아야하지않나 싶다
동학을 말아잡주신 전봉준
어찌보면 동학농민운동은
촛불집회에 시초라고 볼수 있군요.
잘 보았습니다.
세월호 이용한 정치적인 좃불집회랑 같냐...
어으...
무슨 동학이랑 촛불을 연관지어? 싸이코인가?
1차 동학란 조병갑의 학정으로 인한 농민의 반란으로 동학과는 무관했다는것이 정설이다 다만 반란에 가담한 사람중에 동학교도 들이 많았을 뿐이다 전주화약은 허구이다 모르면 주뎅이 닫고 있어라
지금도 마찬가지잖냐 윗사람이라고 갑질에 노예 요구에 에혀..
전주 이씨. 전주 권배정씨. 소상공인 자영업 유흥업 행정명령 정지 책임감
파병 요청?
삼천리 금수강산 에...
외국 군인을 불렀다고?
미친...
역사는 역사로만 남아있으면 안된다
우리도 일본 중국에 복수를 해야한다
하지만 현실은 저자세외교 조용한외교로
겁쟁이들만 양산되고있다..
우리 국력이 저들보다 강해지면 저들이 저자세로 나올거임. 겁쟁이가 아니라 객기만 남은 바보들이 아닌거지~
저기여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10대 사건과 가장 중요한 사건은 다른 거 아닌가여
썸네일도 그렇게 했으면 참 좋았을 뻔
영상 내용에 몇가지 손질들이 필요하다 봅니다. 혹여나 이 영상의 모든 내용과 제작자의 발언이 후손들에게 진실로 여겨지고 기억될까봐 걱정입니다. 긴 영상을 정리하여 만드시느라 고생하신건 알겠으나 잘못된 부분은 다듬고 수정하여 올바른 영상으로 만드셔야할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망할 민비
동학이 30년만 먼저 일어났어도..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거...
잘봤습니다
우리지역정읍 황토현 전적비 전봉준생가
조선의 눈동자/ 곽재구(낭송: 손효성) / MultiVideoArt G.W.
ua-cam.com/video/lLLXJEcK6Cs/v-deo.html
더 세부적으로 해주세요 안맞는내용이 있어요
틀린 내용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농민들 봉기는 너무 나도 잘한거지만 결론은 사이비 종교에 매진해서 저렇게 희생을 ...다르게 생각하면 그 당시 민생 백성들은 어디 의지할때가 없어으니..저렇게 좋은 교리에 안 빠질수가 없죠...문제는 저 당시 동학이 요즘 개신교 교리보다 더 좋은 교리인게 함정...ㅎㅎㅎ
뭐 내용에 이상한걸 다 빼버리고...그나마 남아 있는 사실에서 건져 ..좀 의미부여를 심하게 하자면 ... 결국 동학농민 운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농민 반란이지만... 그 속의 내용을 보면 ... 농민 반란이 아닌 ....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마지막 ..전쟁이였다고 해야 하죠. 동학측의 대원군 중앙군 측의 민비.. 다만 그 전과는 달리..이번에는 진짜 지는쪽이.. 물리적으로 모가지가 날아가기에.. 둘다 해선 안되는 부분까지 손을 댄거구요. 대원군 측은 바로 농민 즉, 그 동안의 것과는 달리 반란군과 손을 잡은거고.. 민비측은 ..외국, 청과 손을 잡은겁니다. .. 최고 권력자를 노리는 2명이 한 사람은 반란군 한사람은 외국.. 이러니 나라가 걍 시원하게 망한거죠 ㅋ
최제우가 주창한 東學(동학)은 그 핵심이 "사람속에는 하늘이 있으므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으로, 이것이 "人乃天(인내천)"임. 그러므로 "侍天主(시천주)"가 인간 속에 내재하는 한울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임. 이것은 배달국(白達國) 환웅(桓雄)께서 말씀하신 "一神降衷(일신강충)"의 뜻을 이은 것임.
카톨릭이 서양에서 동양에 들어올 때 동양사람들이 天을 가장 숭고한 것으로 받든다는 것을 알고 天으로 교의 이름을 붙여 천주교라 하였음. 우리 입장에서 그 天을 부정할 수는 없으므로 "도는 천도이나 학은 동학이라" 하여 천주교의 그 天은 인정하면서도 서양의 西敎(서교)를 부정하고 동양의 東學(동학)을 내세운 것임. 천주교의 천주(하느님)는 사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벗어나 저 높은 하늘에 계심. 즉 천주교의 天(主)과 동학의 天은 전혀 다른 것임.
공산좌파들이 신봉하는 공산주의도 역시 서양에서 들어왔으므로, 공산주의는 죽었다 깨어나도 西學(서학)일 수 밖에 없음. 그 西學(서학)인 공산좌파들이 마치 자기들이 東學(동학)인 것처럼 말하는데, 참으로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임. 그리고 공산주의는 유물론 즉 세상의 근본은 물질이라 주장함. 그런데 동학의 근본은 사람속에 있는 한울이고 그 한울은 정신이지 물질이 아님. 그러므로 공산주의와 동학은 근본이 다름.
동양에서 말하는 "革命(혁명)"은 "하늘이 명을 바꾸었다"는 뜻임. 하늘이 명을 바꾸었는데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명은 하늘의 명이 될 수 없음. 그러므로 결과가 이루어져야 혁명이 되는 것임. 그에 비하여, 서양의 쿠데타는 성공여부와는 관계가 없음. 그러므로 실패한 쿠데타란 것도 말이 됨.
4.19는 정권이 교체되어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불과 1년 정도밖에 유지되지 못했으므로 천명을 받았다 할 수 없음. 천명은 그렇게 싸구려가 아님. 그러므로 4.19는 의거가 맞는 것임. 완전한 성공을 이루지 못한 4.19의 맥을 이어서 완전한 성공을 가져온 것이 5.16임. 그래서 5.16은 혁명이 되는 것임.
동학난은 실패한 것임. 그래서 동학난이 되는 것임. 굳이 혁명이란 말을 붙이고 싶으면 동학혁명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으므로 동학쿠데타라 하면 됨.
근대사는 그냥 소설이야 😊😊😊😊😊
130년전 민비. 현실에서 거니.. 개인 사리사욕 채우느라 나라 망해먹을 **
동학이 서학을 받아들였다거나 단순히 대항해서 창시했다거나 라는 해석은 잘못되었습니다 천주교는 천주를 유일신 하나님절대자로 여기지만 동학의 한울님(하느님)은 유일신이 아닌 우리가 회복해야하는 순수한 상태 천주의 마음으로 살아가야한다는 논리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 주인이되어 노력하고 수련하여 이 이치를 깨닫고 실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김 개남 장군 님
정몽준 은 전주에서 빠른 시일내에 서울 로 진격 했쓰면 우리나라 는 세계 최고 의 국가 경제 대국 이 되었습니다 전봉준 의 판단을 잘못하고 동학혁명 이 실패 한겁니다
조선후기.대한제국 때는
걍 정글러 들은 그냥 넥서스안에서 수비만하고 미드.탑.바텀 챔 들도 다른포탑 털리건말건 그냥 넥서스 만 지키는 상황같음
민비가 더 적당한 표현이네..청군 불러들이고 결국 일본군도 들어오고 최종적으로 일본에 당하지..
황건적이나 홍건적이랑 다를바없는 광신집단이죠.
명성황후는 개뿔!! 외세를 끌어들여 일본의 속국이 됐은니 역적이지! 민비도 과분해!
동학이라는 종교성 때문에 그 자체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온전한 민중운동이라고 평가하는데 주저함이 생깁니다
와 밑에 댓글들 보니까 이 유튜버 영상은 다신 보면 안되겠네 확정지어 말하는거 ㄷㄷ
이준용을 왕에 올리지 말고 흥선대원군이 직접 왕을 하면 되는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