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다큐멘터리 "3개의 가면 3부작" 2편 - 편견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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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7 лют 2025
  • 편견,혐오,차별의 표현들은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혐오’ 와 ‘차별’ 은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혐오의 밑바탕에는 ‘편견’ 이 자리 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타고 더욱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전파 된다. 혐오표현을 없애자는 건 더불어 사는 공존의 사회를 만들자는 호소가 아니던가? 편견의 가면, 혐오의 가면, 차별의 가면에 감추어진 아슬아슬한 ‘말의 칼날’ 들을 취재하여 3편의 “다큐멘터리” 로 그 대안을 제시 하고자 한다.
    2편-편견의 감옥
    대부분의 편견과 혐오 그리고 차별은 그렇게 스멀스멀 일상에 스며든다.
    바야흐로 ‘혐오 과잉 시대’ 다. 청소년은 공짜 밥을 먹는 ‘급식충’ 이니까, 20대 청년은 사회에 무관심한 ‘정치 무식자’니까, 주부는 자기 아이만 아는 ‘맘충’ 이니까 혐오당해 마땅하다고 이야기한다. 또 아저씨는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개저씨’ 라서, 노인은 청년들에게 부담이 되는 ‘연금충’ 이라서 그렇단다.
    혐오표현에는 “동남아시아 출신들은 게으르다”, “조선족들은 칼을 가지고 다니다가 시비가 붙으면 휘두르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등과 같이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말들이 있고, 여성은 “조신해야 한다”, “나서지 마라“, ”집에서 애나 봐라“ 와 같이 소수자를 일정한 틀안에 가둬놓고 한계를 지우는 유형도 있다.
    ”혐오 정서는 거대한 스펀지 같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 모든 이슈는 ‘혐오’ 로 귀결된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가 일상화되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만큼 민중의 고통과 불안이 크다는 의미다.
    또 대구? 대구스럽다?
    대구에 대한 혐오를 불러오는 뿌리에는 ‘보수’가 있다. 보수의 심장, 보수의 텃밭, 보수의 중심, 보수적인 도시, 대구. 여기에서 말하는 보수는 어떤 의미일까?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보수는 도시를 표현하는 한 부분의 특징일 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닐 것이다.
    보수적이라는 대구는 변화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세대에 따라 변하고, 사람마다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은 늘 그 자리, ‘대구는 보수일 것이다’ 라는 단단한 편견에 갇혀있진 않은가?
    이 편견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사람과 도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스스로의 변화도 이끌어 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다수의 증오와 차별을 받는 ‘혐오의 자리’가 있다. 역사 속에서, 이 ‘혐오의 자리’에 세워진 자는 차별받고, 뜯기고, 저며지며, 살육 되어 왔다. 편견과 혐오, 차별의 가면을 쓰고, 누군가를 ‘혐오의 자리’로 내몰고 있진 않은가? 지금, 멈추지 않으면,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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