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마지막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위대하다던 한무제 때 대군을 징집해서 흉노를 친다고 나라를 들들볶았더니 3000만 인구가 1500만 인구로 내려앉을 정도로 막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 죽어버린 건 아니고 오히려 징집 도피하려고 도망자, 도적이 되어 내부의 불안요소가 되었죠. 원래 큰 일에는 백성들의 큰 희생이 따릅니다. 근데 고려의 사례를 갖고 억까를 하는 군요.
옛날 어느 고려사 전문 역사학자가 말하길..몽골이 고려에 집중을 하다가, 뒷통수 맞을가능성 있는데다가, 옛날 수나라가 고구려 침략하다 망했고, 당태종이 고구려 침공하다 피박 썼고, 삼국말기에 당과 신라랑 한 판 붙어 당이 후퇴했고, 거란이 몇번이나 침공했다가 결국 거란이 서서히 멸망했던 것들이 몽고도 알고 있었기에 고려는 민중이 강해서 뿌리를 뽑는 것 보다, 크게 이득 볼것도 없으니 살살 다스리는게 나을거라고 몽골의 신하들이 상소를 해서 고려는 반만 살려 줬다고 하더군요.
징기스칸 유언이 고려를 '말발굽아래 두지 말아라 ' 왜 한국을 몽골에서는 송골로스라고 따로 부를까. 왜 태국 중국은 아직도 한국을 고려(까올리,까오리)로 부를까. 왜 원나라는 영락궁(광개토대왕)을 짓고 제를 올렸을까. 왜 지금도 몽골인들은 한국을 조상이 같은 나라라고 부를까. 왜 몽골은 고려에 공주를 시집보내고 화족은 노예로 부렸을까. 역사는 스스로 찾아야지 이런 유튜브에서 일본인들이 써준 소설로 배우는게 아님. 그리고 한국에는 고려사 전공 교수가 없어요. 교수인데도 고려사 원문도 제대로 안본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니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에 고려사 원문이 번역을 안해놨거나 엉망으로 한자뜻까지 바꿔서 풀이한거죠. 그방대한 조선왕조 실록은 다 번역해놓고 ㅋ
그나마 고려라는 나라를 보존하고 왕권을 유지한것도 사실이고,백성들이 받은 고통또한 사실이죠. 한편으론 몽골이 정복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걸 감안하면 나름 선방한면도 있는거 같습니다. 그때 만약 몽골이 직접 지배하였다면.. 우리의 역사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확실한건 우리 조상들이 나라를 지키고 보존하는 생존력자체는 세계 탑급인건 확실한거 같습니다. 강의 잘 들었어요.^^
강의 마지막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위대하다던 한무제 때 대군을 징집해서 흉노를 친다고 나라를 들들볶았더니 3000만 인구가 1500만 인구로 내려앉을 정도로 막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 죽어버린 건 아니고 오히려 징집 도피하려고 도망자, 도적이 되어 내부의 불안요소가 되었죠. 원래 큰 일에는 백성들의 큰 희생이 따릅니다. 근데 고려의 사례를 갖고 억까를 하는 군요.
@@두선생의역사공장 청나라의 기마부대가 한양까지 7일 안에 왔는데 그것보다 더 빠른 몽골군이 4일만에 오지 않을까요? 무슨 한반도에서 강화도 지금도 쉽게 점령하는 강화도를 먹을 것도 없는 척박한 강화도에서 무슨 전쟁을 한다는 것인지 생각 좀 하고 사세요. 소설 작가님 정신 차리세요.
고려정벌을 안했다가 맞긴합니다..이유는 징기스칸은 자기 아들들을 직접 원정에 보냈는데 고려엔 징기스칸 왕자가 정벌하러 오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중요성이 많이 떨어지긴합니다. 게다가 서진해서 공격가는데 고려는 반도끝이라 많이 계륵이기도 하고...이후는 쿠빌라이의 황제즉위에 원종의 항복과 의탁이 영향을 주었기에 충분히 세조구제를 해줄 명분도 있었네요
스타로 치면 이미 게임은 끝났는데 프로브가 구석구석 다니면서 여기저기 파일런 박아두는 짓을 한거죠 그걸 일일이 찾아가며 부시려면 부실 수는 있으나 그렇게 함으로 인해 생기는 노력의 대가가 크지 않기 때문에 맵의 남은 자원은 정복한 놈이 파먹으면서 파일런 두어개는 그대로 남겨둔... 그런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부가 설명을 몇개 덧붙이면 1. 쿠빌라이 칸의 통치 스타일이 이전 대칸들과 다른 약간 둥근 스타일이고 본인이 중국물과 유교물을 좀 먹어서 기존의 북방 유목민들의 시각만 가지고 있지 않음 2. 최악의 상황에도 기회를 노리고 포착하는 고려의 외교와 통찰력 실제로 카디얀이 공격을 격퇴할때 한희유, 원충갑이 크게 공을 세우고 그 대가(?)로 탐관총관부를 고려가 다시 돌려받고 동녕부를 심양으로 밀어 버려서 서북면의 통제권을 고려가 다시 돌려받음 3. 몽골이 반대하나 고려의 적극적 몽골황실에 일원이되고 그 부가효과로 고려의 지위가 안정됨 원래 쿠빌라이 칸과 몽골은 고려의 황실과 혼인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고려가 하도 끈질기게 요청하고 그 결과 서로 혼인을 함 덩달아 고려의 민초도 어느정도 우위를 가지게 되었음
팩트: 저당시 고려를 원간섭기라고 가르치며 고려를 원나라 영토로 교육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음. 구글에 영어로 몽골제국 최대영토 검색하면 100% 한반도는 몽골제국 영토로 칠해져잇음. 원간섭기라는말 자체가 국뽕역사 왜곡의 산물임. 왕이 있다고 독립국? 그럼 심양왕있던 만주지역도 독립국가로 표시해야지?
@@강인하-c5v 쿠빌라이 대칸과 약속한 불개토풍을 세조구제를 명분으로 카안 울루스의 지방행성으로 편입 시키는 입성책동을 막은게 몇번인데 어떻게 카안 울루스(원나라)의 영토로 그냥 단정 지을수 있는지? 원나라 7대 무종 키야트보르지긴 카이샨 치세 천하에 사직을 가진건 고려뿐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건 무엇인지? 모스크바 공국이 킵차크 울루스의 세금원이 되는데 그곳을 킵차크 울루스의 영토로 말하지는 않음
@@오산-v2b 솔직히 한반도는 첩첩산중으로 한반도 내에서도 산맥으로 막혀서 통행이 어려운 나라이고 과거 농사짓던 시절에도 보릿고개 당시 먹을게 없어서 풀뿌리와 나무껍데기 먹던 나라인데 점령해보이 이건 노략질은 커녕 다른 나라에서 뺏은 자원 지원해줘야 할 판이죠. 과거 중국을 치려던 유목민족들이 중국과 친하게 지내던 한반도의 국가들을 먼저 손봐서 뒤를 치지 못하게 한 목적이 큽니다.
원종의 입장에선 쿠빌라이한테 붙어서 손해볼게 없는게, 1. 당시 쿠빌라이는 칸의 후순위였기에, 자신을 칸으로 인정해주고 받들어주는 원종은 매우 반갑고 고맙게 보였을 것. = [쿠빌라이가 이기면 고려는 완전 보존가능.] 2. 아리크부카 승리시, 리크부카한테는 당시 몽케가 죽었기때문에 누구한테 가야할지 몰라 때마침 쿠비라이가 보여 그리로 가서 굴복의사를 밝혔다. 몰라봬서 죄송했다. = [아리크부카가 이겨도 목숨보존가능] 3.쿠빌라이 아리크부카랑 서로 동반자멸 = [항복할 필요가 없어지고 고려자체가 온전히 보존가능.] 나올수 있는 시나리오가 3가지뿐인데, 3가지 전부 고려에게는 손해볼 것이 없는 배팅이었습니다. 원종은 굉장히 똑똑했던 것 같습니다 :)
심양왕이 다스렸던 지역은 일찌기 고려의 영토로 보아야합니다. 요양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은 고려의 서경으로 추정되며 묘청이 고려의 수도를 개경에서 서경으로 천도하려 했던 것은 고구려가 지배했던 유주지역(지금의 북경유역)을 되찾기 위함이였습니다. 교과서에는 서경을 평양으로 추정하는데 개경에서 불과 북쪽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않은 곳을 서경이라함은 옳지 않습니다. 식민사학이 고려의 영역을 축소했지만 만주 원류고, 혹은 청의 건륭제의 명에 의해 쓰여진 사고전서에 의하면 고려의 동서 강역은 고구려의 영토보다 더 컸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서희의 강동육주는 압록강 남쪽이 아니고 요하의 동쪽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강동육주란 용어가 맞게 됩니다.
여몽여진연합군이 주원장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성계가 주원장과 야합하여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성계가 만주를 주원장에 바치는 대신 조선왕자리를 보장받았습니다. 한국사 최대의 치욕사건입니다. 이 바람에 중국사 5000년가운데 북방족이 거의 유일하게 패했습니다. 조선판 분서갱유사건인 서적수거령은 그 본질이 고려역사말살작업입니다.(정부아닌 개인이 역사서를 소유할 경우 참형에 처한다-사서수거령) 이성계를 비롯한 조선왕조는 자신들의 부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역사서를 다 불사르고 지도를 불살라 자신이 고려땅 대부분을 주원장에게 바치고 왕이 된 사실을 숨기고자 했습니다.(단군이래 최대의 매국노) 이성계는 기마민족인 고려인들에게 사농공상신분제를 강요하고 기마민족의 주산업이던 공,상업을 억눌러서 조선인들이 가난한 농민이 되게했고 고려와 달리 유교를 강요하여 백성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기마민족정신을 말살했습니다. 조선왕조500년은 한국역사 5000년의 최대치욕이고 역사의 암흑기입니다.
고려 공민왕때 만주를 고려가 엄연히 통치하고 있었는데 이를 고려영토로 표기하지 않은 것은 현재 역사학계의 심각한 잘못입니다. 당시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했던 몽골제국이 왜 고려만을 예외로 했는지 그 이유를 아는 한국인이 현재 거의 없습니다. 몽골황실이 외국과 사돈 관계를 지속한 것은 세계의 절반을 차지한 몽골에게 유일한 사례입니다. 그 뿐 만 아니라 고려인이 몽골황후가 되고 그 아들이 몽골황제가 되고 이런 특수한 관계가 왜 발생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몽골에게 몰살당한 민족들이 상당히 많습니다.중국인도 1억명 가운데 5000만이 몰살당했고. 이런 특수한 관계는 당시 몽골이 고구려의 후손으로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라는 말이 고구려의 5대부족중 하나인 몽고려에서 나온 말이고. (고구려는 자신들의 나라를 고구려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고려라고만 불렀습니다.고구려라는 말이 처음 생긴 것은 왕고려때입니다. 중국사에 고구려시대에 고려라는 말이 수없이 나오는 것은 고구려가 당대에는 고려로 불렸기 떄문입니다.) 당시 국제정세는 명태조주원장과 이성계 연합세력과 북원,여진,고려조정으로 양분되어 세계대전급 전쟁이을 벌이던 상황이었습니다.(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던 몽골제국) 이 사실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와같은 북방민족과 남방민족의 대결에서 아주 희귀하게 북방민족이 패한 이유가 북방세력이 분열됐기 떄문입니다. 중국사 5000년에서 북방민족이 패한 거의 유일한 사례입니다. 인구 1억이던 중국이 총인구 20만이던 몽골에게 힘없이 무너진 이유가. 농경민족인 중국의 농민 보병부대가 원래부터 북방기마부대의 상대가 안됐기 때문에 5000년동안 계속 패했던 것이고. 당시 농경민이 말을 기르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가능했고. 이성계의 반란은 휴전선을 지키던 전두환일당이 탱크를 몰고 서울로 쳐들어온 것보다 더 나쁜 사례인데. 그렇기 떄문에 조선의 역사는 그 이전의 모든 역사를 말살하고 역사책을 불태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들의 부정행위를 숨길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현재 국사교과서의 고려국경은 일제시대 일본만화가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린 것이 식민사학자들이 옳다거니 차용하고 그게 오늘날 국사교과서까지 올라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코메디같은 사실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내용과 많이 유사하네요. 우리나라에 일제식민사관에의해 영향받고 가르친것에의해 계속 내려와서 아직도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한례로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도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인데 일본관료와 청나라(중국계)관료에 의해서 변경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고려때 만주를 고려가 지배했는데 왜 우리영토가 안될 수 있습니까? 또한 청나라는 그 지역을 신성시해서 공도정책으로 비워뒀기 때문에 그 지역에 거주하는 자는 주로 우리 조상들이었을 확률이 높고요. 또한 그지역의 천부장이었던 이성계가 고려의 장수에서 쿠테타해서 고려왕조를 찬탈하고 조선를 세웠었는데 그지역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지요. 함경도 이북 지역에 이성계같은 우리 조상들이 수 많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중세때 세계 최강대국 몽골제국이 고려를 정복했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그 후에 몽골제국이 고려를 멸망까지도 시킬 수 있었는데 고려는 진짜 운좋은 편임. 몽골제국이 고려를 100년간 식민지배만 하고 멸망까진 안시킴. 고려는 진짜 호라즘제국 꼴나서 지구상에서 삭제될 수도 있었는데 진짜 운이 좋은 편.
애초부터 몽골은 고려를 정복할 생각 따위 없었음. 동쪽 변두리에 있었던 관계로 처음부터 몽골은 고려를 먹을 생각이 없었음. 고려가 대단한게 아니라, 고려가 가난한 농업국가라서 몽골에세 매력이 뚝 떨어진 나라였음. 훗날 고려반역자들이 고려를 내지로 편입 해달라는 청원을 경제적으로 형편없다는 이유로 몽골이 거부했었음. 요동에 주둔했떤 몽골 지방군 오천에서 ~1만명 정도의 병력이 고려 침략 병력임.... 산성이나 섬으로 도망친 고려가 수천명의 몽골군에게 온 국토가 짓밝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 창피했음. 대몽항쟁은 파보면 팔 수록 창피한 역사임. 그리고 고려가 대단해서 쿠빌라이가 고려에 게 유리하게 해준 게 아니라, 쿠발라이가 본래부터 그의 통치 스타일이이라서 고려가 운이 좋은 것임. 고려가 뭐 대단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님. 그리고 태자였던 원종이 쿠빌라이를 만난 것도 원종이 탁월한 선택이 아니라, 어쩔수 없이 만난 것였음. 당시 원종이 쿠빌라이를 안 만나서도, 쿠빌라이 통치 스타일을 본다면 고려는 똑같은 대접을 받았을 것임. 원종이 잘한 게 아님. 토번과 대리, 남송 정복전에서도 쿠빌라이의 행한 통치 스타일을 보더라도 고려만 특별한 게 아니였음.
몽골의 침략은 서양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는 지옥의 군대, 죽음의 군대이기에 솔직히 살아남았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예로운 생존이나 온전히 자랑스럽지만은 않지만, 침략 받은 나라 거의 99%가 사라질 때 그래도 살아남아서 국가를 유지시켰잖아요. 저 지옥의 군대에게 헌납해야 했던 것도 많고, 자주성도 훼손된 건 맞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고 버텨서 몽골이 약화된 후 그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났다는 것에서 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의 마지막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위대하다던 한무제 때 대군을 징집해서 흉노를 친다고 나라를 들들볶았더니 3000만 인구가 1500만 인구로 내려앉을 정도로 막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 죽어버린 건 아니고 오히려 징집 도피하려고 도망자, 도적이 되어 내부의 불안요소가 되었죠. 원래 큰 일에는 백성들의 큰 희생이 따릅니다. 근데 고려의 사례를 갖고 억까를 하는 군요.
그 논리라면,,,우리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세계 모든 왕들(정복자들)이 악마임....그 모든 왕들이 한 일은 100% 다 동일함,,,사람죽이고,,,땅 뺏기였으니까...모두 동일하게 악마임...그렇게 되면,,,우리가 영웅으로 모시는 광개토대왕도 악마임...그 땅뺏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죽였을테니까,,,,
몽골에 항복한 후에도 고려 왕조와 문화, 풍습이 계속 유지될수 있었던 것은 넓은 의미로 지배당한게 아닌 독립을 의미함.. 몽골에 정복당한 나라들은 지배계층이 모두 멸망하고 몽골의 직접 지배를 받았으며 백성들은 몽골의 풍습을 강요받았음.. 단지 고려왕은 몽골의 부마로 정치적 간섭을 받았으므로 몽골 간섭기라고 표현하는 것임.. 고려왕이 몽골왕의 부마라는 것은 바꿔서 말하면 고려왕이 몽골왕의 고모부라는 것임.. 고려왕실은 몽골제국에서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지배세력이었음
원나라에서 유행했던 고려양이 훨씬 크기가 컸다는것도 알아야겠지.. 원나라 멸망후 명나라가 들어선 후에도 고려 의복이 북경 상류층에서 유행해서 명정부에서 법으로 금지하였던 것에서 알수 있음.. 요즘 중공애들이 말하는 한푸가 그것임.. 원래 데릴사위 들어가면 서름받는건 당연함.. 그래도 대재벌의 데릴사위는 집안에선 서름받아도 외부에 나가면 모두가 떠받들고 알아줌.. 그게 고려왕실의 위치였던것
@@userxxx-mv4bm 국뽕소설인지 역사책과 지명을 대입해보면 금방알수 있음. 왜 중국에 경주 팔공산 광주 전주 우산,,하남이 있으며 우리에게 없는 성곽들이 남아 있으며 중국정부는 그곳들을 방치하고 있을까.? 구글어스로 찾아본 역사속의 성들이 모두 그곳에서 나온단다. 왜 이땅에 신라,백제의 성곽들이 흔적도 없는지 '우리역사..'뭐시기도 함 봐라. 국뽕인지..
정말 우리나라 강화도에서 고려시대에 몽골과 그리 오래 싸웠는지... 이해할수 없습니다. 강화도 앞게 가보면 하루종일 물살이 그리 쌘것도 아니고 지금의 김포에서만 강화도로 건너갈수있는것도 아닌데요. 위에서 배를 타고 넘어올수도 있고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 전쟁기간동안 1년도 넘는기간을 강화도에서 농사지어가면서 버텼을까요? 이런부분들이 이해를 할수 없습니다.
고려시대에 강화도는 산동반도입니다. 산동서의 동쪽 절반은 황하의 하류가 당시에 산동성을 가로질러 남으로 흘러 바다로 갔습니다. 지금은 지형이 변해서 황하가 산동성 북으로 흘러 바다로 갑니다. 고려시데에는 산동성은 황하의 지류와 뻘 늪지대로 분리된 섬같은 지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삼별초가 그 안에서 30년간 수십만의 병력을 키우며 버틸수 있었습니다.
몽골의 군사작전이 고려에서는 성공하지 못하여 협상으로 종결된것 경주 나 춘천등 파멸적인 학살등이 벌어졌지만 끝까지 항전하여 멸망하지 않고 협상으로 종결함. 부마국의 지위 였으나 충열왕등은 만주까지 다스리는 왕으로 몽골제국내에서 강항 자치권과 권한을 보유하였음. 몽골이 이지지 못하는 적과 협상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택한것.
권재할아버지는 충선왕이 어릴 때 함께 몽골에 갔다 왕이 되어 고려로 올 때까지 함께 함. 충선왕이 권재할아비지를 아우로 삼고 싶어 해 권재가 왕후라는 이름을 가짐. 그 아들은 왕중귀, 왕상좌 그리고 막내가 딸인데 훗날 원소종의 왕후가 됨.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되어 왕씨를 모두 죽일 때 6촌인 권근의 주청으로 권씨 성을 찾음. 권씨 15파 중에서 우리파는 추밀공파인데 달리 왕권파라고도 함. 흐흐 역사는 참으로 복잡하고도 신비하다.
고려 왕조와 문화, 풍습이 계속 유지될수 있었다는 것은 지배가 아닌 독립을 의미함.. 몽골에 정복당한 나라들은 지배계층이 모두 멸망하고 몽골의 직접지배를 받았으며 백성들은 몽골의 풍습을 강요받았음.. 단지 고려왕은 몽골의 부마로서 정치적 간섭을 받았으므로 몽골 간섭기라고 표현하는 것임.. 고려왕이 몽골왕의 부마라는 것은 바꿔서 말하면 고려왕이 몽골왕의 고모부라는 것임.. 고려왕실은 몽골제국에서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지배세력이었음
@@jipark_2373 몽골에 정복한 나라들은 지배층이 모두 멸망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몽골은 직접 지배에 대한 노하우가 없다시피해서 거의 대부분의 영토를 분봉하거나 현지 유력자에게 맡겨놓는 식으로 제국을 운영했음. 몽골이 부마국이 된 건 맡지만 몽골 케식을 보면 고려왕족이나 중앙아시아, 심지어 러시아 왕공족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음. 고려왕족이 좀 대우 밭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거 가지고 고려는 독립국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임. 그 논리면 남 중국도 독립국임
@@아무게-m4p 몽골제국이 영토를 나눠서 여러개의 한국을 세우고 그 나라들을 몽골인들이 직접 지배하였음.. 원활한 지배를 위해 중간계층을 현지인으로 활용했겠지만 칸은 몽골인이었다는 것임.. 그러므로 지배당한 나라의 지배층 왕족은 모두 멸망시켰다는것이 사실임.. 역사를 왜곡하지 마시오.. 유일하게 왕조와 백성들의 문화, 풍습이 유지된 것이 고려임.. 그건 항복 당시 고려의 요구사항이었고 쿠빌라이의 약속이었기 때문
몽골이 정복전쟁을 하던 그 시기에 존재하는(몽골이 지나가는) 국가는 모두 엄청난 피의 댓가를 치루는데,,,우리는 그 국가의 왕을 칭기스칸이라고 위대한 왕이라고 칭하고 있지요...옳고 그름의 문제인지,,,거대한 역사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정의라는 잣대가 필요한 건지,,,잘 모르겠네요...
원간섭기는 한국역사학자들이 우기면서 만든 민족주의 사학의 관점이구요 원래 없는단어입니다 원지배기가 맞는 표현입니다 원나라의 허락없이는 왕조차 아무것도 못하던 시기이고 왕조만 살아있을뿐 모든건 원나라가 지배했죠 원 지배기가 맞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간섭기라는 말은 그냥 당시 세계최강국이였던 몽골로부터 살아남았다라는걸 강조하기위해 만든 표현일뿐이죠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한가지 내용을 더 다뤘으면 좋았겠네요. 원나라 황제가가가 중국 송나라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고려 사람과느 결혼해서 황제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다뤘으면 합니다. 단지 고려가 쿠테타에 역배팅을 잘해서 유지되고 결혼하여 자손이 황제까지 세울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고 보기가 너무 힘든것 같습니다. 어떤 특별한 다른 이유가 또 존재하지 않았나 궁금합니다.
@@감자훈찌 저도 예전에 들었던 거라 구체적인 출처는 더 찾아봐야할 것 같습니다ㅜㅜ 제가 본 게 위키백과의 '몽골황실' 항목이랑 비슷한 거였거든요...? 위키백과 들고와서 죄송합니다ㅠㅠ 저도 찾아보고 말씀드릴게여 !! ko.wikipedia.org/wiki/%EB%AA%BD%EA%B3%A8_%ED%99%A9%EC%8B%A4?wprov=sfla1
몽골이 케세이 즉 거란이고 말갈(몽골)이고 고려와 동일 뿌리다 왕건의 고려는 신라영토를 뺏어 일어난 나라이지만 북경(고려서경)에 황궁을 짖고 도읍을 몽골 과 가까운 북으로 잡은것은 연고지이기때문ㄷㄷ 거란 손소녕과 고려 서희의 담론에서보듯 거란과 고려는 서로 고구려의 후손이라 주장하던 사이다
고구려는 한, 예맥 쪽이고 안에 말갈등이 구성원으로 있긴했지만 완전 우리 민족이다 이런 인식은 덜함. 광개토태왕비에 나오는 것임. 흉노,선비,말갈 등에서 거란 여진등의 원류라 볼 수 있고 고구려에서 갈라진건 아님 고구려 유민이 후에 그 지역에 속했을 수도 있지만 주류세력이 아니였음
딱 봐도...털께 없는 나라라서.............. 이건 뭐 좀 가려고 하면 산지에..지형도 험하고...날씨는 무지 변덕스럽고.. 사람이 살기 척박한 이런곳에 ? 라는 인식이 있던거지.. 됐다..됐어...그냥 니들끼리 살어....간간히 조공이나 받치고.....이거지... 몽골만 그랬을까 ?? 청나라도...마찬가지지
고려와 몽골의 관게를 이해할려면 고려의 영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서기 1000년경 고려는 중원을 지배하는 황제국이었습니다. 하북성, 하남성,산동성,산서성,안휘성,복건성,강소성,광동성 등 대륙의 동부지역을 지배하는 제국입니다. 대륙으로 남하하려는 몽고는 필연적으로 고려와 대립할수 밖에 없었고, 고려는 몽고와 30년 전쟁을 강화도(지굼의 산동성 동부지역)에서 버티다가 결국 몽고와 화친하고 대륙땅을 몽고에 내어주고 고려는 만주와 한반도로 밀려난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는 북경 에서 심양지역으로 밀려나고 고려의 왕은 심양왕이 된 것입니다. 고려사를 읽어보면 북경의 자금성이 고려의 서경임을 세부적으로 나오는 궁궐의 건물들의 이름이 일치함을 통하여 알수 있습니다.
1910년 이전에 동북면은 현재 만주를 의미 했습니다 1910년 이전에는 만주는 현재 지나족이 차지한 내몽골을 의미 했습니다 만주 중심지가 대대로 오르도스 지역임 1910년 이전엔 중국은 코리안 천자 계신곳을 의미 했습니다 현재 한국 권력층은 일제시대보다 더 심한 식민사관 ===반도사관으로 학교에서 세뇌 시킵니다 정조대왕 시문집에 “”우리 조선은 4이 (남만 북적 서융 동이) 를 거느린 중화다 “”” 라고 분명히 기록돼 있습니다 정조대왕은 우리 코리안이 천자국임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에 “””중국은 황제계신 강남이며 곧 우리 나라얏 “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가 중국이며 황제국이라고 분명히 기록한 것입니다 중공 모택동 문화혁명때 유명한 구호가 “”””조선적을 불태워라 “””였어요 1928년까지 한반도로 탈출하지만 못한 대륙에 남아있던 조선인 혈통을 대량 학살하고 그들의 호적을 불태운 것이 문화혁명 실체입니다 그때 학살한 3000만명 중에는 조선인 혈통이 많았습니다 당신들이 학교에서 배운 또는 TV와 영화로 세뇌되는 역사가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아래 사이트에서 진짜 우리 역사를 찾아 보세요 구글검색 “”” “””대조선삼한역사학회. BAND
글쎄 그렇게 따지면 당시 지도를 한반도를 포함시키는 지도는 어떻게 해석하는거임? 그 사람들이 멍청해서였을까 아니면 한반도만 문화와 풍속 왕족을 보존해서 국가였다고 생각 하는 것은 그냥 한국인들의 착각일까? 과연 몽골이 문화와 풍속을 보존한 나라가 고려만 있었을까? 참고로 제국이라 함은 국가를 자국의 행정단위로 둘 수 있는데 고려는 그 중 하나였지 결코 독립된 국가는 아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이 제국과 봉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고려와 원나라 문제를 세계인들과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지 다름이 아니다
심양왕을 중국영화에서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 듣게 되고 그 지리를 알게 되었네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르치지 않아서 정확히 어디인지 몰랐는데, 또한 중국지리여서 몰랐는데 한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만주사역사도 같이 배웠어야 했겠네요. 발해사도 그냥 스쳐지나가고 그 이후는 가르치질 않는데 좀더 많이 가르쳐야 할 내용같네요. 이성계도 천부장출신이었는데 어떻게 그가 왕까지 했는데 그 역사를 모를 수 있었을까요? 일제 식민사관의 힘이 아직까지 끼치고 있씁니다.
한국에서 몽골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하며 빠는 애들이 많은데 실제는 몽골군이 의외로 많이 처맞고 다녔다. 베트남한테 졌고 이집트한테도 졌고 인도라인도 넘지 못했으며 인도네시아한테도 졌다. 일본침공 1차전은 고려군의 활약으로 압도했으나 2차때는 막부군의 효율적 기습성공과 전의를 잃은 강남군 10만이 도륙당하며 사실상 패배했다. 유럽전선에서도 헝가리,폴란드,독일 연합에 막혀 오스트리아 빈만 함락하고 더 이상 진공못했고 고려와의 30년전쟁도 그 내용을 보면 패배한 전투가 과반에 이를 정도로 고전했다. 결과적으로 고려가 몽골에게 항복한건 맞으나 당시 고려는 무신정권의 실정으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인데 만약 제대로된 정권과 고려의 특수부대 삼별초, 백성이 일치단결했으면 항복을 없었을 것!! 과거 수,당,돌궐,거란및 한족의 여러 정권등이 개처발렸는데 몽골이 무력으로 고려를 더이상 어떻게 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
오오 이렇게 거금을...!!! ㅜㅠ
감사해요~!!! ㅎㅎㅎ
강의 마지막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위대하다던 한무제 때 대군을 징집해서 흉노를 친다고 나라를 들들볶았더니 3000만 인구가 1500만 인구로 내려앉을 정도로 막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 죽어버린 건 아니고 오히려 징집 도피하려고 도망자, 도적이 되어 내부의 불안요소가 되었죠.
원래 큰 일에는 백성들의 큰 희생이 따릅니다. 근데 고려의 사례를 갖고 억까를 하는 군요.
감사합니다.
헉ㅜㅜ 부족한 영상에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몽고인들은 쿠빌라이가 그랬듯이 옛고구려를 매우 존중한 듯. KBS 역사 다큐에서 아직도 몽고인이 그들의 전통 악기로 연개소문과 이세민과의 전쟁을 노래하는 것을 보았음
몽골인들중에 고구려가 자신들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jaymoondr 몽골의 역사는 고구려로부터 시작된다고 몽골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나와있으니 당연한거죠.
한국인들은 이 사실을 아는 사람 별로 없지만.
@@yoonjk81 네 맞습니다 그당시 많은 나라들이 고구려를 모쿠리라고 불렀고 그 이름 그대로 이어져온게 몽골이죠. 몽골역시 우리처럼 고구려의 후예들이 맞는것 같습니다. 식민사관하에 정립된 역사에서 이부분을 지운거 같습니다.
@@jaymoondr 우리가 환빠 취급하며 무시하던 역사가 중앙아시아에서 정설이네요.
옛날 어느 고려사 전문 역사학자가 말하길..몽골이 고려에 집중을 하다가, 뒷통수 맞을가능성 있는데다가, 옛날 수나라가 고구려 침략하다 망했고, 당태종이 고구려 침공하다 피박 썼고, 삼국말기에 당과 신라랑 한 판 붙어 당이 후퇴했고, 거란이 몇번이나 침공했다가 결국 거란이 서서히 멸망했던 것들이 몽고도 알고 있었기에 고려는 민중이 강해서 뿌리를 뽑는 것 보다, 크게 이득 볼것도 없으니 살살 다스리는게 나을거라고 몽골의 신하들이 상소를 해서 고려는 반만 살려 줬다고 하더군요.
징기스칸 유언이 고려를 '말발굽아래 두지 말아라 '
왜 한국을 몽골에서는 송골로스라고 따로 부를까.
왜 태국 중국은 아직도 한국을 고려(까올리,까오리)로 부를까.
왜 원나라는 영락궁(광개토대왕)을 짓고 제를 올렸을까.
왜 지금도 몽골인들은 한국을 조상이 같은 나라라고 부를까.
왜 몽골은 고려에 공주를 시집보내고 화족은 노예로 부렸을까.
역사는 스스로 찾아야지 이런 유튜브에서 일본인들이 써준 소설로 배우는게 아님.
그리고 한국에는 고려사 전공 교수가 없어요.
교수인데도 고려사 원문도 제대로 안본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니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에 고려사 원문이 번역을 안해놨거나 엉망으로 한자뜻까지 바꿔서 풀이한거죠. 그방대한 조선왕조 실록은 다 번역해놓고 ㅋ
거란은 몰살 당했지만 국가가 망한건 아닙니다. 이후에도 서쪽으로 영토확장을 성공적으로 했죠.
그러죠.고려가 강하기도하고 같은 고구려후예이기도하고 간접통치하는게 더 유용하다 생각했겠죠. 당시의 강역은 대륙동부지역 하북성에서부터 광동성일대가 고려의 땅이었습니다. 아직도 광저우에는 고려채라는 백김치를 먹고 있어요.
먹어봐야 양도 적고 맛없는 고기 같은존재 아니었을까 산악도 많고 곡창도 적고 ㅋㅋ 하이에나 내지 얼룩말 같은 존재 고려 성질드러워서 말도 고분고분 안듣고
그러기에는 조금 맞지 않는 것이 남송이 몽고 상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버티고 처절했습니다. 고려에게 이용가치가 있어서 몽고가 살려준 것 으로 보시는 것이 맞습니다.
오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몽골제국 역사는 한족과 조선이 애써 외면하던 치부였던만큼 재밌네요....ㅋㅋㅋㅋㅋㅋ
그나마
고려라는 나라를 보존하고
왕권을 유지한것도 사실이고,백성들이 받은 고통또한 사실이죠.
한편으론
몽골이 정복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걸 감안하면 나름 선방한면도 있는거 같습니다.
그때 만약 몽골이 직접 지배하였다면..
우리의 역사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확실한건 우리 조상들이 나라를 지키고 보존하는 생존력자체는 세계 탑급인건 확실한거 같습니다.
강의 잘 들었어요.^^
고려의 사직을 지킨건 매우 중요합니다
몽골에 무너져 한반도까지 원나라가 되었다면 고려의 문화는 사라졌을꺼고 현재의 중국은 동북공정을 넘어 한민족의 역사 전체를 중국역사라고 우길겁니다
사실상 먹힌거라고 봐야하긴함 몽골 연경에서 원격으로 고려 왕 교체할정도면 자주권있는 나라라고 보긴힘듬
내정간섭기는 정신승리고 사실상 종속된 속국이지
세계역사학계에선 고려가 사라졌다가 독립하는걸로 보는 시각 주류
@@일루바타르-e5d무슨 셰계역사는 고려라는 이름이 있구만...중국이나 다른 나라는 왕들이 ..전부 몽고계 고려만..우리나라 왕이면 고려 입니다..
@@오경복-b4y 점령당해서 몽골됬다가 공민왕때 독립하는걸로 보는 시각이 주류
그래도 고려로 남았다는게..
너무 재미있는 강의예요. 궁금했던 의문도 싹 해소되고 머리 속에 쏙쏙 들어 옵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강의 마지막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위대하다던 한무제 때 대군을 징집해서 흉노를 친다고 나라를 들들볶았더니 3000만 인구가 1500만 인구로 내려앉을 정도로 막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 죽어버린 건 아니고 오히려 징집 도피하려고 도망자, 도적이 되어 내부의 불안요소가 되었죠.
원래 큰 일에는 백성들의 큰 희생이 따릅니다. 근데 고려의 사례를 갖고 억까를 하는 군요.
@@두선생의역사공장 청나라의 기마부대가 한양까지 7일 안에 왔는데 그것보다 더 빠른 몽골군이 4일만에 오지 않을까요? 무슨 한반도에서 강화도 지금도 쉽게 점령하는 강화도를 먹을 것도 없는 척박한 강화도에서 무슨 전쟁을 한다는 것인지 생각 좀 하고 사세요. 소설 작가님 정신 차리세요.
고려정벌을 안했다가 맞긴합니다..이유는 징기스칸은 자기 아들들을 직접 원정에 보냈는데 고려엔 징기스칸 왕자가 정벌하러 오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중요성이 많이 떨어지긴합니다. 게다가 서진해서 공격가는데 고려는 반도끝이라 많이 계륵이기도 하고...이후는 쿠빌라이의 황제즉위에 원종의 항복과 의탁이 영향을 주었기에 충분히 세조구제를 해줄 명분도 있었네요
스타로 치면 이미 게임은 끝났는데 프로브가 구석구석 다니면서 여기저기 파일런 박아두는 짓을 한거죠
그걸 일일이 찾아가며 부시려면 부실 수는 있으나
그렇게 함으로 인해 생기는 노력의 대가가 크지 않기 때문에 맵의 남은 자원은 정복한 놈이 파먹으면서
파일런 두어개는 그대로 남겨둔... 그런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문젠 몽골은 그 프로브가 지나갔던 지역 싹 중립몹까지 죽이고 갔던 애들이 인데 안해서 그런겁니다
고려만 신기한 이유가 그런이유에요
항복도 도주도 다 삭제했던 애들임
항복할거면 사신이 오는 순간 바로 항복한것 아닌이상 삭제 엔딩
섬에서 포토도배하고있는거임 나머지맵은 다 몽골이 잇는거고 드랍쉽속업개발안해서 섬제외자원채취중😅
그렇쵸 굳이 애쓰면 정벌해도 남는것도 없고 그냥 짱박혀잇게만 할려고 햇는거같음
그리고 간섭기란 말도 참 없는단어를 그냥 자존심세울려고 만든 단어인거같음
부가 설명을 몇개 덧붙이면
1. 쿠빌라이 칸의 통치 스타일이 이전 대칸들과 다른 약간 둥근 스타일이고 본인이 중국물과 유교물을 좀 먹어서 기존의 북방 유목민들의 시각만 가지고 있지 않음
2. 최악의 상황에도 기회를 노리고 포착하는 고려의 외교와 통찰력
실제로 카디얀이 공격을 격퇴할때 한희유, 원충갑이 크게 공을 세우고 그 대가(?)로 탐관총관부를 고려가 다시 돌려받고 동녕부를 심양으로 밀어 버려서 서북면의 통제권을 고려가 다시 돌려받음
3. 몽골이 반대하나 고려의 적극적 몽골황실에 일원이되고 그 부가효과로 고려의 지위가 안정됨
원래 쿠빌라이 칸과 몽골은 고려의 황실과 혼인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고려가 하도 끈질기게 요청하고 그 결과 서로 혼인을 함
덩달아 고려의 민초도 어느정도 우위를 가지게 되었음
팩트: 저당시 고려를 원간섭기라고 가르치며 고려를 원나라 영토로 교육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음. 구글에 영어로 몽골제국 최대영토 검색하면 100% 한반도는 몽골제국 영토로 칠해져잇음. 원간섭기라는말 자체가 국뽕역사 왜곡의 산물임. 왕이 있다고 독립국? 그럼 심양왕있던 만주지역도 독립국가로 표시해야지?
@@강인하-c5v
팩트: 매번 느끼는 거지만 스스로 팩트라 말하는 양반들 보면 팩트하고 멀리 동떨어진 작자들이 많음
@@강인하-c5v
쿠빌라이 대칸과 약속한 불개토풍을 세조구제를 명분으로
카안 울루스의 지방행성으로 편입 시키는 입성책동을 막은게 몇번인데
어떻게 카안 울루스(원나라)의 영토로 그냥 단정 지을수 있는지?
원나라 7대 무종 키야트보르지긴 카이샨 치세 천하에 사직을 가진건 고려뿐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건 무엇인지?
모스크바 공국이 킵차크 울루스의 세금원이 되는데
그곳을 킵차크 울루스의 영토로 말하지는 않음
@@강인하-c5v
구글에 검색되는 이야기가 전부 팩트가 진실이고
한국이 말하는게 국뽕이면
구글에서 만약 독도가 다케시마라 써져 있고 지팡구의 땅이라 나오면
한국이 국뽕에 취해 진실을 왜곡하는게 되는 것인가?
구글이 절대적 만능의 진실인가?
말도 안된다
@@수집쟁이드라하카 영어할줄모름?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해봐 고려를 독립국으로 표시하고 가르치는 곳이 어디있는지
한반도는 70%가 산악지형이고
농지도 적고 토양은 척박해서 먹을게 없어요 또한 교통이 불편해서 직접통치가 어려워서
자국의 영토에 복속시켜도
행정력이 닿지 않아서 포기하고
그냥 조공만 바치라고 했어요
점령할 가치가 없어보이니까 안한거죠
중국 음식을 보면 한국애서 중국집은 많은 음식이 한국인을 위해 만든겁니다. 왜냐구요? 전통중국 음식을 한국인이 비싸서 사먹을수 없어서죠. 몽골도 고려인 먹는 음식 보고 뺏어먹고 싶었을까요. 😅
@@오산-v2b 솔직히 한반도는 첩첩산중으로 한반도 내에서도 산맥으로 막혀서 통행이 어려운 나라이고 과거 농사짓던 시절에도 보릿고개 당시 먹을게 없어서 풀뿌리와 나무껍데기 먹던 나라인데 점령해보이 이건 노략질은 커녕 다른 나라에서 뺏은 자원 지원해줘야 할 판이죠. 과거 중국을 치려던 유목민족들이 중국과 친하게 지내던 한반도의 국가들을 먼저 손봐서 뒤를 치지 못하게 한 목적이 큽니다.
고려 영토가 한반도 내부가 아님 ㅋㅋ 어디 식민사관 찌라시 보고 엉터리로 알고 있으시네 다들
@@빅토르망치-e7z환단고기끊으세요.
쉽게 풀어주니 쏙쏙 들어오네요. 이영 님! 긴장하셔야 할 듯,,
이영님은 누구시죠 ㅎㅎ
@@두선생의역사공장 역사돋보기. 라는 채널 운영하시는분 있어요. 두선생님과는 스타일이 달라요 ㅎㅎ
@@매니아썬 앗 그렇군요 ㅎㅎㅎ 저도 이영님 유튜브도 한번 봐야겠네여. 감사합니다 !!
원종의 입장에선 쿠빌라이한테 붙어서 손해볼게 없는게,
1. 당시 쿠빌라이는 칸의 후순위였기에, 자신을 칸으로 인정해주고 받들어주는 원종은 매우 반갑고 고맙게 보였을 것. = [쿠빌라이가 이기면 고려는 완전 보존가능.]
2. 아리크부카 승리시, 리크부카한테는 당시 몽케가 죽었기때문에 누구한테 가야할지 몰라 때마침 쿠비라이가 보여 그리로 가서 굴복의사를 밝혔다. 몰라봬서 죄송했다. = [아리크부카가 이겨도 목숨보존가능]
3.쿠빌라이 아리크부카랑 서로 동반자멸 = [항복할 필요가 없어지고 고려자체가 온전히 보존가능.]
나올수 있는 시나리오가 3가지뿐인데, 3가지 전부 고려에게는 손해볼 것이 없는 배팅이었습니다. 원종은 굉장히 똑똑했던 것 같습니다 :)
2번은 누가봐도 일터지고 그냥 핑계변명인데 저런게 먹힐거라 생각하는거임...?
2번은 말이 안되는 시나리오입니다. 이유불문 역배팅이 실패하면 뒤지는겁니다.
2번은 세상 꽃밭으로 보는 관점인데, 내 생각에는 아리크부카 승리시 걍 항전을 지속하고 강화도에서 계속 살면되지 머라고 생각했을수도 있음. 즉, 현상유지.
오 오늘도 잼있어요 ~~🎉🎉🎉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양왕이 다스렸던 지역은 일찌기 고려의 영토로 보아야합니다.
요양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은 고려의 서경으로 추정되며 묘청이 고려의 수도를 개경에서 서경으로 천도하려 했던 것은 고구려가 지배했던 유주지역(지금의 북경유역)을 되찾기 위함이였습니다.
교과서에는 서경을 평양으로 추정하는데 개경에서 불과 북쪽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않은 곳을 서경이라함은 옳지 않습니다.
식민사학이 고려의 영역을 축소했지만 만주 원류고, 혹은 청의 건륭제의 명에 의해 쓰여진 사고전서에 의하면 고려의 동서 강역은 고구려의 영토보다 더 컸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서희의 강동육주는 압록강 남쪽이 아니고 요하의 동쪽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강동육주란 용어가 맞게 됩니다.
여몽여진연합군이 주원장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성계가 주원장과 야합하여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성계가 만주를 주원장에 바치는 대신 조선왕자리를 보장받았습니다.
한국사 최대의 치욕사건입니다. 이 바람에 중국사 5000년가운데 북방족이 거의 유일하게 패했습니다.
조선판 분서갱유사건인 서적수거령은 그 본질이 고려역사말살작업입니다.(정부아닌 개인이 역사서를 소유할 경우 참형에 처한다-사서수거령)
이성계를 비롯한 조선왕조는 자신들의 부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역사서를 다 불사르고 지도를 불살라 자신이 고려땅 대부분을 주원장에게 바치고 왕이 된 사실을 숨기고자 했습니다.(단군이래 최대의 매국노)
이성계는 기마민족인 고려인들에게 사농공상신분제를 강요하고 기마민족의 주산업이던 공,상업을 억눌러서 조선인들이 가난한 농민이 되게했고 고려와 달리 유교를 강요하여 백성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기마민족정신을 말살했습니다.
조선왕조500년은 한국역사 5000년의 최대치욕이고 역사의 암흑기입니다.
일제시대도...백성들은 힘들었는데 조선왕족들은 일본왕족과 지내며 편하게 지냈죠. 비슷한 일이 있었네요
고려 공민왕때 만주를 고려가 엄연히 통치하고 있었는데 이를 고려영토로 표기하지 않은 것은 현재 역사학계의 심각한 잘못입니다.
당시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했던 몽골제국이 왜 고려만을 예외로 했는지 그 이유를 아는 한국인이 현재 거의 없습니다.
몽골황실이 외국과 사돈 관계를 지속한 것은 세계의 절반을 차지한 몽골에게 유일한 사례입니다.
그 뿐 만 아니라 고려인이 몽골황후가 되고 그 아들이 몽골황제가 되고
이런 특수한 관계가 왜 발생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몽골에게 몰살당한 민족들이 상당히 많습니다.중국인도 1억명 가운데 5000만이 몰살당했고.
이런 특수한 관계는 당시 몽골이 고구려의 후손으로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라는 말이 고구려의 5대부족중 하나인 몽고려에서 나온 말이고.
(고구려는 자신들의 나라를 고구려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고려라고만 불렀습니다.고구려라는 말이 처음 생긴 것은 왕고려때입니다.
중국사에 고구려시대에 고려라는 말이 수없이 나오는 것은 고구려가 당대에는 고려로 불렸기 떄문입니다.)
당시 국제정세는 명태조주원장과 이성계 연합세력과 북원,여진,고려조정으로 양분되어 세계대전급 전쟁이을 벌이던 상황이었습니다.(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던 몽골제국)
이 사실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와같은 북방민족과 남방민족의 대결에서 아주 희귀하게 북방민족이 패한 이유가 북방세력이 분열됐기 떄문입니다.
중국사 5000년에서 북방민족이 패한 거의 유일한 사례입니다.
인구 1억이던 중국이 총인구 20만이던 몽골에게 힘없이 무너진 이유가.
농경민족인 중국의 농민 보병부대가 원래부터 북방기마부대의 상대가 안됐기 때문에 5000년동안 계속 패했던 것이고.
당시 농경민이 말을 기르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가능했고.
이성계의 반란은 휴전선을 지키던 전두환일당이 탱크를 몰고 서울로 쳐들어온 것보다 더 나쁜 사례인데.
그렇기 떄문에
조선의 역사는 그 이전의 모든 역사를 말살하고 역사책을 불태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들의 부정행위를 숨길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현재 국사교과서의 고려국경은 일제시대 일본만화가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린 것이
식민사학자들이 옳다거니 차용하고 그게 오늘날 국사교과서까지 올라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코메디같은 사실입니다.
이친구도 식민사관에 찌든 친구인모양입니다
알지못하면 이야기를 말아야지 추측으로 강의하며 흥미위주의 강의입니다
음모론은 정신병입니다
反亂은 同族간 軋轢·鬪爭 !
고려 다루가치는 고려인 아냐 !
그렇다고 우기는 기록은 일체가
붓장난 !
제가 주장하는 내용과 많이 유사하네요. 우리나라에 일제식민사관에의해 영향받고 가르친것에의해 계속 내려와서 아직도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한례로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도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인데 일본관료와 청나라(중국계)관료에 의해서 변경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고려때 만주를 고려가 지배했는데 왜 우리영토가 안될 수 있습니까? 또한 청나라는 그 지역을 신성시해서 공도정책으로 비워뒀기 때문에 그 지역에 거주하는 자는 주로 우리 조상들이었을 확률이 높고요. 또한 그지역의 천부장이었던 이성계가 고려의 장수에서 쿠테타해서 고려왕조를 찬탈하고 조선를 세웠었는데 그지역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지요. 함경도 이북 지역에 이성계같은 우리 조상들이 수 많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중국농민보병이 북방계유목민족을 못이겻다는건 어디서 주어들으셧나요?
한나라 한무제때 흉노를 씨말렷는데요?
수당때도 돌궐이 중원황제를 자기네칸이라고 햇는데 설마 모르시나?
대부분 전쟁에서 중원이 졋지만 씨를말릴정도로 강승한건 중원왕조인데요?
잘 봤습니다.
몽골 제국의 지도를 그린다면 고려도 어쨌든 그 영토의 일환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간섭은 당했지만 국체는 유지했음으로 몽골 제국의 영토는 아니다라고 봐야 할까요.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어떠한지요?
일반적으론 속국으로 봄.이 게 좀 애매한데 고려왕실이 몽골제국 귀족으로 편입되었고 몽골제국의 땅을 하사받아서 지배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사실 군권도 몽골황제에 있고 뭐 국가 계획 최종결제도 몽골칸한테 받아야했음
다른국가 역사학자들은 보통 속국으로 봐서 고려는 몽골땅으로 그린다고 하더라구요
중세때 세계 최강대국 몽골제국이 고려를 정복했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그 후에 몽골제국이 고려를 멸망까지도 시킬 수 있었는데 고려는 진짜 운좋은 편임. 몽골제국이 고려를 100년간 식민지배만 하고 멸망까진 안시킴. 고려는 진짜 호라즘제국 꼴나서 지구상에서 삭제될 수도 있었는데 진짜 운이 좋은 편.
모르죠. 을지문덕이나 이순신같은 존재가 열세에도 불구하고 몽골군을 전멸시켰을수도 있죠.
모든 전쟁은 간단합니다. '점령할수가 없어서' 포기한겁니다.
애초부터 몽골은 고려를 정복할 생각 따위 없었음. 동쪽 변두리에 있었던 관계로 처음부터 몽골은 고려를 먹을 생각이 없었음. 고려가 대단한게 아니라, 고려가 가난한 농업국가라서 몽골에세 매력이 뚝 떨어진 나라였음. 훗날 고려반역자들이 고려를 내지로 편입 해달라는 청원을 경제적으로 형편없다는 이유로 몽골이 거부했었음. 요동에 주둔했떤 몽골 지방군 오천에서 ~1만명 정도의 병력이 고려 침략 병력임.... 산성이나 섬으로 도망친 고려가 수천명의 몽골군에게 온 국토가 짓밝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 창피했음. 대몽항쟁은 파보면 팔 수록 창피한 역사임. 그리고 고려가 대단해서 쿠빌라이가 고려에 게 유리하게 해준 게 아니라, 쿠발라이가 본래부터 그의 통치 스타일이이라서 고려가 운이 좋은 것임. 고려가 뭐 대단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님. 그리고 태자였던 원종이 쿠빌라이를 만난 것도 원종이 탁월한 선택이 아니라, 어쩔수 없이 만난 것였음. 당시 원종이 쿠빌라이를 안 만나서도, 쿠빌라이 통치 스타일을 본다면 고려는 똑같은 대접을 받았을 것임. 원종이 잘한 게 아님. 토번과 대리, 남송 정복전에서도 쿠빌라이의 행한 통치 스타일을 보더라도 고려만 특별한 게 아니였음.
님말대로라면 살려둘 이유가 1프로도 없는데?
몽골의 침략은 서양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는 지옥의 군대, 죽음의 군대이기에 솔직히 살아남았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예로운 생존이나 온전히 자랑스럽지만은 않지만, 침략 받은 나라 거의 99%가 사라질 때 그래도 살아남아서 국가를 유지시켰잖아요.
저 지옥의 군대에게 헌납해야 했던 것도 많고, 자주성도 훼손된 건 맞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고 버텨서 몽골이 약화된 후 그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났다는 것에서 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합니다:)
내가 갈쳐줄께요...
몽골 입장에서 보면 넓은 평야도 많은데...한반도에 80%가 산맥인데 뭐한다고 산을 점령하러갈까??
그냥, 한반도는 삼심할 때 겁만주는거지...서방쪽으로 가면 평야가 많은데..유목민족에겐 넓고 광활한 평야가 필요한거지요...
그렇다면 몽골은 왜 일본을 힘들게 태풍 맞아가면서 정벌했을까.. 거기도 산이 70%이상 쓸모없는 땅인데
몽골 다큐라도 한번봐봐 그냥 니가 생각한 것보단 고려가 대단히 잘한거 맞아 ㅋ
잘못알고 있어서 그렇지 고려가 한반도국가가 아님 ㅎㅎ 조선도 한반도 국가가 아니고
조선도 요동,만주,간도,연해주 직간접 통치했고
고려는 직접통치, 북경이 고려 서경
로봇공학은 로봇에 관한 과학이자 기술학으로, 컴퓨터 과학과 공학 등 여러 학문의 접점이자 학제간의 연구 영역이다. 로봇공학자는 로봇을 설계, 제조하고 응용 분야를 다루는 일을 한다.
잠시 잘다녀 왔네요 고려를
강의를 이리 매끄럽게 성큼성큼
강의 마지막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위대하다던 한무제 때 대군을 징집해서 흉노를 친다고 나라를 들들볶았더니 3000만 인구가 1500만 인구로 내려앉을 정도로 막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 죽어버린 건 아니고 오히려 징집 도피하려고 도망자, 도적이 되어 내부의 불안요소가 되었죠.
원래 큰 일에는 백성들의 큰 희생이 따릅니다. 근데 고려의 사례를 갖고 억까를 하는 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징기스탄을 악마라고 봅니다. 남의나라를 침랔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인놈이 사람입니까. 악마중 악마지😢
징기스칸을 지나치게 영웅시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 논리라면,,,우리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세계 모든 왕들(정복자들)이 악마임....그 모든 왕들이 한 일은 100% 다 동일함,,,사람죽이고,,,땅 뺏기였으니까...모두 동일하게 악마임...그렇게 되면,,,우리가 영웅으로 모시는 광개토대왕도 악마임...그 땅뺏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죽였을테니까,,,,
몽골에 항복한 후에도 고려 왕조와 문화, 풍습이 계속 유지될수 있었던 것은 넓은 의미로 지배당한게 아닌 독립을 의미함.. 몽골에 정복당한 나라들은 지배계층이 모두 멸망하고 몽골의 직접 지배를 받았으며 백성들은 몽골의 풍습을 강요받았음.. 단지 고려왕은 몽골의 부마로 정치적 간섭을 받았으므로 몽골 간섭기라고 표현하는 것임.. 고려왕이 몽골왕의 부마라는 것은 바꿔서 말하면 고려왕이 몽골왕의 고모부라는 것임.. 고려왕실은 몽골제국에서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지배세력이었음
민며느리제도.. 몽고풍. 연지. 곤지.. 몽골이 몽고풍습을 강요 했다기 보단. 최신트랜드를. 쫒아간거지.. 그리구 고려같이 존만한 나라. 관심이나. 있었겠슴?. 유럽이나. 중동에 훨씬 먹을게 많은데.. 글구 착실하니. 말두 잘듣는데...
한가지더.. 머 대제국 몽돌의 사위나라 어쩌규 하는데.. 설마. 가조까튼 사이라 생각하는건 아니쥐?
원나라에서 유행했던 고려양이 훨씬 크기가 컸다는것도 알아야겠지.. 원나라 멸망후 명나라가 들어선 후에도 고려 의복이 북경 상류층에서 유행해서 명정부에서 법으로 금지하였던 것에서 알수 있음.. 요즘 중공애들이 말하는 한푸가 그것임.. 원래 데릴사위 들어가면 서름받는건 당연함.. 그래도 대재벌의 데릴사위는 집안에선 서름받아도 외부에 나가면 모두가 떠받들고 알아줌.. 그게 고려왕실의 위치였던것
@@jipark_2373 고려양. 북경상류층. 기억속에. 희미한한데.. 혹시
내가 모르는거. 알려줄수있을까? 한가 하면?
근데. 내가. 알고있는걸. 먼져 설명 해야. 하는데. 그러기. 귀찮네..
재미있는 강의 감사합니다~
조리복 깜찍해요 ㅋㅋㅋㅋ😊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찌되었건 정체성은 살려준거니 조선때 일제침략기와는 다르게 봐야하는게 맞는거 같아요.
일본은 조금 다른게 조선을 자국민화 시켰고 한족 때려잡은 건 일본이나 원나라나 같아용
지나면서 수탈이 극에 달하고 변발복장을 강요햇는데 정체성을 살려주긴
" 책보고 "라는 채널을 보면 왜 중국 동부의 지명이 우리나라에 있는지 알수 있을거같음요.
국뽕소설채널들 고만바라.
@@userxxx-mv4bm조국을 지키지 못하면 서울시내에 욱일기 계양한다.
@@userxxx-mv4bm 국뽕소설인지 역사책과 지명을 대입해보면 금방알수 있음.
왜 중국에 경주 팔공산 광주 전주 우산,,하남이 있으며 우리에게 없는 성곽들이 남아 있으며 중국정부는 그곳들을 방치하고 있을까.?
구글어스로 찾아본 역사속의 성들이 모두 그곳에서 나온단다.
왜 이땅에 신라,백제의 성곽들이 흔적도 없는지 '우리역사..'뭐시기도 함 봐라.
국뽕인지..
개소리는 니들 끼리 노는데서만 해라
어 마지막멘트 틀어보니 지금같은데요 중국에 셰셰하는 사람이 국회입성한거같은데 아닌가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그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니까 다른걸로 착각하기 마련이다.......요즘 쌍통도 그렇다
두선생...건국전쟁은 어케 생각하시는지?
제가 아직 보지를 못해서 뭐라고 할 자격이 없네요ㅜㅜ
자네 전라도냐? 빨갱이냐? 묻는 질문이네 ㄷㄷ
ㅡ쓰레기 영화지 민족학살 리승만ㅇㅣᆢ
역사를 뉴라이트에의해 왜곡해서 만든 영화일 것이다 유추해 봅니다.
1차 전쟁 말고는 사실상 고려 정부가 국토를 포기하고 강화도에만 들어가 있는 상황으로 전쟁이라 할수도 없는 개막장이었으니 몽골 입장에선 딱히 국력도 소모하지 않았고 하니 살려준 이유도 있을거라 생각함. 남송처럼 처절하게 싸웠으면 강제병합당하지 않았을까
강의 수고 많으셨습니다 😊
격려 감사합니다😊
줄을 잘 선 덕에 사위국으로 흡수했으니 죽일필욘 없었죠.
정말 우리나라 강화도에서 고려시대에 몽골과 그리 오래 싸웠는지... 이해할수 없습니다. 강화도 앞게 가보면 하루종일 물살이 그리 쌘것도 아니고 지금의 김포에서만 강화도로 건너갈수있는것도 아닌데요. 위에서 배를 타고 넘어올수도 있고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 전쟁기간동안 1년도 넘는기간을 강화도에서 농사지어가면서 버텼을까요? 이런부분들이 이해를 할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강화도 지도가 모양이 달랐다고 합니다. 훨씬 복잡한 해안선이 있었고, 상륙하기도 쉽지 않았다는 글을 다음 카페에서 본 적 있어요. 지금처럼 퇴적층이 많이 쌓이기 전이라서요.
강화위치가 거기가 아니라고 나옵니다
그때의 산둥반도를 강화라고 불렀습니다. 고려의 무신정권 최씨진영이라는 지명, 오련산, 견자산… 다 거기에 지명이 아직도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강화도는 산동반도입니다. 산동서의 동쪽 절반은 황하의 하류가 당시에 산동성을 가로질러 남으로 흘러 바다로 갔습니다. 지금은 지형이 변해서 황하가 산동성 북으로 흘러 바다로 갑니다. 고려시데에는 산동성은 황하의 지류와 뻘 늪지대로 분리된 섬같은 지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삼별초가 그 안에서 30년간 수십만의 병력을 키우며 버틸수 있었습니다.
재밌게 잘봤습니다 !!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몽골의 군사작전이 고려에서는 성공하지 못하여 협상으로 종결된것 경주 나 춘천등 파멸적인 학살등이 벌어졌지만 끝까지 항전하여 멸망하지 않고 협상으로 종결함. 부마국의 지위 였으나 충열왕등은 만주까지 다스리는 왕으로 몽골제국내에서 강항 자치권과 권한을 보유하였음. 몽골이 이지지 못하는 적과 협상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택한것.
권재할아버지는 충선왕이 어릴 때 함께 몽골에 갔다 왕이 되어 고려로 올 때까지 함께 함. 충선왕이 권재할아비지를 아우로 삼고 싶어 해 권재가 왕후라는 이름을 가짐. 그 아들은 왕중귀, 왕상좌 그리고 막내가 딸인데 훗날 원소종의 왕후가 됨.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되어 왕씨를 모두 죽일 때 6촌인 권근의 주청으로 권씨 성을 찾음. 권씨 15파 중에서 우리파는 추밀공파인데 달리 왕권파라고도 함. 흐흐 역사는 참으로 복잡하고도 신비하다.
지리적 방향성의 원인이 큰게 아닐까? 돌출된 반도를 향해가기엔 그 끝이 바다로 단절되고 제국의 팽창방향과도 엇나가고 그냥두기엔 외교적으나 군사적으로 뒤통수가 뜨겁고
아...후반부 백성들의 삶이 핵심인데,
차마 보고듣지 못하겠네요...ㅠㅠ
몽골은 살려준 적 없는데? 애초에 외국 역사서 보면 한국도 몽골에 점령된걸로 나옴. 고려가 살아있엇던거면 티벳이나 러시아 공국이나 다 살아있던거임.
고려 왕조와 문화, 풍습이 계속 유지될수 있었다는 것은 지배가 아닌 독립을 의미함.. 몽골에 정복당한 나라들은 지배계층이 모두 멸망하고 몽골의 직접지배를 받았으며 백성들은 몽골의 풍습을 강요받았음.. 단지 고려왕은 몽골의 부마로서 정치적 간섭을 받았으므로 몽골 간섭기라고 표현하는 것임.. 고려왕이 몽골왕의 부마라는 것은 바꿔서 말하면 고려왕이 몽골왕의 고모부라는 것임.. 고려왕실은 몽골제국에서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지배세력이었음
@@jipark_2373 몽골에 정복한 나라들은 지배층이 모두 멸망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몽골은 직접 지배에 대한 노하우가 없다시피해서 거의 대부분의 영토를 분봉하거나 현지 유력자에게 맡겨놓는 식으로 제국을 운영했음. 몽골이 부마국이 된 건 맡지만 몽골 케식을 보면 고려왕족이나 중앙아시아, 심지어 러시아 왕공족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음. 고려왕족이 좀 대우 밭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거 가지고 고려는 독립국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임. 그 논리면 남 중국도 독립국임
@@아무게-m4p 몽골제국이 영토를 나눠서 여러개의 한국을 세우고 그 나라들을 몽골인들이 직접 지배하였음.. 원활한 지배를 위해 중간계층을 현지인으로 활용했겠지만 칸은 몽골인이었다는 것임.. 그러므로 지배당한 나라의 지배층 왕족은 모두 멸망시켰다는것이 사실임.. 역사를 왜곡하지 마시오.. 유일하게 왕조와 백성들의 문화, 풍습이 유지된 것이 고려임.. 그건 항복 당시 고려의 요구사항이었고 쿠빌라이의 약속이었기 때문
이게 맞음 국뽕이 원간섭기 이딴거 만든거지
~~~ 공민왕 중반기 까지의 대동강
大河가 흘러서 同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6600리 )
~~~ 공민왕 후반기 '우왕대의 大同江
大江이 흘러서 洞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5500리 )...
대국들이 한반도 점령을 잘못한이유부터 알아야할듯 합니다. 기마유목민족이든 중국왕조건 침공해도 산악지역국이라 산으로 산으로 다니면서 활로 게릴라전을 하는 한반도라 완전 점령 통치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한반도가 오래동안 버텨온 이유일겁니다
그걸 최근 '지도로 읽는 한국사' 영상에 담아놨습니다:)
몽골 징기즈칸은 발해 대중상의 둘째아들이자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의 19대손이고 고려왕건은 고구려를 계승 국호를 고려라 칭하니 징기즈칸은 말골 즉 모골 몽골이라 국호를 칭하니 왕건은 금행의 증외손주로 먼 사이가 아니다
그러니 멸망시키지는 않은것이다
멍멍이 소리 그만
ㅋㅋㅋㅋ
@@sbang1683맞는말인데 모르면 고서들 잦아보라..반도로 쪼그라든 강단식민사학에 찌들어 멍멍대지말고
형제 사이에도 권려앞에서 서로 죽이는데 먼사촌은 살려둘 이유가 없음. 개연성 없는 이야기란 말이지.
고려사에 보면 고려는 남북으로 보다 동서로 긴 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고려사에 대해 좀 다시 해석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환단고기 끊으세요
이거 들으니까 갑자기 몽골과 중국과 일본에 수소폭탄 50개씩 던지고 싶다....
ㅋㅋㅋㅋㅋㅋ
참신한 관점. 오오.
현실은 하나도 없고 그들은 50개맞고 살아남겟지만 한국은 지도에서 사라진다는것 ㅋㅋ
@@Bee-xs8jn그렇게해도 한국 안사라짐.
한번 더 보고 두번 더 보라면 총 세번 더 보라는 건가요??
한 번 보고, 한 번 더 보고, 두 번 더 보면 네 버ㄴ....
필요하신 만큼 보시면 됩니다^.^
몽골이 정복전쟁을 하던 그 시기에 존재하는(몽골이 지나가는) 국가는 모두 엄청난 피의 댓가를 치루는데,,,우리는 그 국가의 왕을 칭기스칸이라고 위대한 왕이라고 칭하고 있지요...옳고 그름의 문제인지,,,거대한 역사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정의라는 잣대가 필요한 건지,,,잘 모르겠네요...
정말 공감합니다. 뭐가 맞는 건지...꼭 무엇을 맞다고 하는 게 맞을지...
지도표기에대한책임감필요합니다
고려는 빼먹을건 없고 지도층은 도망가서 전쟁 나몰라라. 귀찮아서 살려준 느낌.
현 꼰대 보수들과 같음 군대도 안간게 전쟁타령
역사공부 좀 더하고 영상 찍기 바랍니다.
본인피셜을 설명하던가 다른의견을 설명하든가 그냥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댓글 쓸거면 남 깎아내리는것밖에 안됨
거란이 고려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몽고는 등장하지 않았을 듯.
대국과 수교해서 기쁘다면서 몽고 황제가 다녀온 사신을 격려연회를 베풀었죠
운도 실력이지 운이나 실력이나 당시 로또1등 맞은거지 두번이나 아마 연줄이나 인연으로 안엮이고 계속 개겼으면 고려 삭제 됐었을거임 뒤통수 맞느니 초토화 시키는게 더 편했을테니
원간섭기는 한국역사학자들이 우기면서 만든 민족주의 사학의 관점이구요
원래 없는단어입니다
원지배기가 맞는 표현입니다
원나라의 허락없이는 왕조차 아무것도 못하던 시기이고 왕조만 살아있을뿐 모든건 원나라가 지배했죠
원 지배기가 맞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간섭기라는 말은 그냥 당시 세계최강국이였던 몽골로부터 살아남았다라는걸 강조하기위해 만든 표현일뿐이죠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님 말대로라면 한국도 식민지 맞음. 양키 승인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지배층은 단지 문화만 허락받고(문화도 사실 양키에 동화됨.) 외교와 군사권은 양키가 가지고 있으니 식민지 맞음.
국뽕 1도 없는 사실 그대로 강의해서 좋네요.
2도 😂
감사합니다 ㅎㅎㅎ
싱크 좀 맞춰주셨으면...
산이 많아 정복하기 안좋고 먹을건 별로 안나오고 저항은 심하니 고려를 지우기 위해 전력을 많이 ㅆ는건 좀 비효율 적인거 같으니 적당히 ㅈ패고 말았겠지ㅋ
지금 북한도 그꼴인더 북한에 기름이 중동처럼 나온다면 미국이 북한을 살려줬을까?
지금 대화 구걸하는건 양키임. 북하고 만 싸우는게 아니라서 북이 설사 양키한테 패했더라도 양키도 피해가 막심할꺼고 힘빠진 양키 뜯어발길 족속들은 널렸단 말이지. 그래서 양키가 북에 꼼짝 못하는거다.
힘의 논리대로 잘 생각해봐라!
두선생님 최고
한가지 내용을 더 다뤘으면 좋았겠네요. 원나라 황제가가가 중국 송나라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고려 사람과느 결혼해서 황제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다뤘으면 합니다. 단지 고려가 쿠테타에 역배팅을 잘해서 유지되고 결혼하여 자손이 황제까지 세울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고 보기가 너무 힘든것 같습니다. 어떤 특별한 다른 이유가 또 존재하지 않았나 궁금합니다.
因为朝鲜一直在贡献女人给上邦大国
쿠빌라이 카안은 툴루이의 차남 아닌가요?
저는 툴루이 넷째아들로 알고 있습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툴루이의 넷째 아들은 아리크 부케 입니다! 혹시 그 근거가 있을까요?
@@감자훈찌 저도 예전에 들었던 거라 구체적인 출처는 더 찾아봐야할 것 같습니다ㅜㅜ
제가 본 게 위키백과의 '몽골황실' 항목이랑 비슷한 거였거든요...? 위키백과 들고와서 죄송합니다ㅠㅠ 저도 찾아보고 말씀드릴게여 !!
ko.wikipedia.org/wiki/%EB%AA%BD%EA%B3%A8_%ED%99%A9%EC%8B%A4?wprov=sfla1
@@두선생의역사공장 그렇군요. 저는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에서 보았습니다.
두분다 맞는 얘기 아닐까요 ?
두선생님 말씀대로 쿠빌라이칸이 툴루이 전체 자식들 중 “4남” 이기도 하고 댓글다신분 말씀대로 정실 소생 자식들 중엔 “2남” 이기도 하고
쿠빌라이칸 : 툴루이 정실 기준 2남 ,전체 4남
아릭부케 : 툴루이 정실기준 4남 , 전체 7남
😂
여진에게 사대 했다고 어느 역사서에 그렇게 나오니?
일본교과서? 일본서기? 요사? 송사?
얇팍한 지식으로 자랑질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사실 역배 건게 아니라 자긴 태자라 잘모른다하고 튀어서 몽골측 기록엔 태자의 확답을 못들었단 식으로 얘기라고 귀국해서도 마음 못정해서 쿠빌라이가 먼저 독촉함 ㅋㅋㅋ 국가대사를 사실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을리가 없죠
몽골이 케세이 즉 거란이고 말갈(몽골)이고
고려와 동일 뿌리다
왕건의 고려는 신라영토를 뺏어 일어난 나라이지만 북경(고려서경)에 황궁을 짖고 도읍을 몽골 과 가까운 북으로 잡은것은 연고지이기때문ㄷㄷ
거란 손소녕과 고려 서희의 담론에서보듯
거란과 고려는 서로 고구려의 후손이라 주장하던 사이다
No !
Never ever !
@@HongseokSeo-sl6oi possible
정신병잔가 말갈이 무슨 몽골이야 ㅋㅋㅋㅋㅋ 진짜 ㅋㅋㅋㅋㅋㅋ 유튜브 별의별 애들 다있네.. 참신하다 창의성도 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븅 같은 소리한다. 당시 몽골은 부족사회에서 발전해서 경쟁 상대에게 진짜 잔인했다. 살아있는건 다 죽였단다. 지금처럼 민족의식이 거의 없었고 무한경쟁 체제였어. 징기스칸인생 처럼.
고구려에서 몽골,고려,여진,타타르,청,금...이 다나왔다....형제의 나라 였다
고구려는 한, 예맥 쪽이고 안에 말갈등이 구성원으로 있긴했지만 완전 우리 민족이다 이런 인식은 덜함. 광개토태왕비에 나오는 것임. 흉노,선비,말갈 등에서 거란 여진등의 원류라 볼 수 있고 고구려에서 갈라진건 아님 고구려 유민이 후에 그 지역에 속했을 수도 있지만 주류세력이 아니였음
몽골족이랑 만주족은 다르다 , 머리가 없으니 유목민족이라니까 그냥 다 같아보이지?
딱 봐도...털께 없는 나라라서..............
이건 뭐 좀 가려고 하면 산지에..지형도 험하고...날씨는 무지 변덕스럽고..
사람이 살기 척박한 이런곳에 ? 라는 인식이 있던거지..
됐다..됐어...그냥 니들끼리 살어....간간히 조공이나 받치고.....이거지...
몽골만 그랬을까 ?? 청나라도...마찬가지지
고려가 강한거죠~
몽고의 쿠빌라이 막내공주랑 결혼해서 그때부터 몽고반점이 생긴거구나 ㅋㅋㅋ
몽골 말갈 거란 여진은 다 고구려 땅 그전에 주신땅에서 일어 났다.
우리민족은 절대 단일민족은 아니다.
특히 건주여진의 금나라와 청나라는 고구려가 발원한 곳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몽고 거란 여진은 고구려 처럼 정복전쟁으로 먹고 살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고려와 몽골의 관게를 이해할려면 고려의 영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서기 1000년경 고려는 중원을 지배하는 황제국이었습니다. 하북성, 하남성,산동성,산서성,안휘성,복건성,강소성,광동성 등 대륙의 동부지역을 지배하는 제국입니다. 대륙으로 남하하려는 몽고는 필연적으로 고려와 대립할수 밖에 없었고, 고려는 몽고와 30년 전쟁을 강화도(지굼의 산동성 동부지역)에서 버티다가 결국 몽고와 화친하고 대륙땅을 몽고에 내어주고 고려는 만주와 한반도로 밀려난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는 북경 에서 심양지역으로 밀려나고 고려의 왕은 심양왕이 된 것입니다. 고려사를 읽어보면 북경의 자금성이 고려의 서경임을 세부적으로 나오는 궁궐의 건물들의 이름이 일치함을 통하여 알수 있습니다.
고려 수군 4만명 모집해서 일본 정벌나섰지만 태풍으로 상륙도 못하고 몰사한 그런 피해도 있습니다. 일본 정복은 실패 포기
고려의 영토를 한반도로 국한해서 설명하면...
그자체로 끼워맞추기 설명이 됩니다.
고려의 강토를 대륙까지 보아야 제대로 역사가 보입니다.
살려둔게...아니라..고려의 민족이 대항하여 지켜냈다가 맞는거 아님,....징기스칸을 잘 못 알고 있는 사람들 넘 많음
👍👍👍👍
아웃트로 노래 너무 일찍 트는 느낌
아.. 피드백 감사합니다 !!
역시 인생은 베팅이군요
1910년 이전에 동북면은
현재 만주를 의미 했습니다
1910년 이전에는 만주는 현재
지나족이 차지한 내몽골을 의미
했습니다
만주 중심지가 대대로 오르도스 지역임
1910년 이전엔 중국은
코리안 천자 계신곳을 의미 했습니다
현재 한국 권력층은 일제시대보다
더 심한 식민사관 ===반도사관으로
학교에서 세뇌 시킵니다
정조대왕 시문집에
“”우리 조선은 4이 (남만 북적 서융 동이) 를 거느린 중화다 “””
라고 분명히 기록돼 있습니다
정조대왕은 우리 코리안이
천자국임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에
“””중국은 황제계신 강남이며
곧 우리 나라얏 “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가 중국이며
황제국이라고 분명히 기록한
것입니다
중공 모택동 문화혁명때
유명한 구호가
“”””조선적을 불태워라 “””였어요
1928년까지 한반도로 탈출하지만 못한 대륙에 남아있던 조선인 혈통을
대량 학살하고 그들의 호적을
불태운 것이
문화혁명 실체입니다
그때 학살한 3000만명 중에는
조선인 혈통이 많았습니다
당신들이 학교에서 배운 또는
TV와 영화로 세뇌되는 역사가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아래 사이트에서 진짜 우리
역사를 찾아 보세요
구글검색 “””
“””대조선삼한역사학회. BAND
몽골지배후에 고려는 최약소국이 됨
노비숫자가 폭증
사실상 식민지
KBS 출연 중인데 고려거란전쟁 잼없다고 해도 괜찮아요??
글쎄 그렇게 따지면 당시 지도를 한반도를 포함시키는 지도는 어떻게 해석하는거임? 그 사람들이 멍청해서였을까 아니면 한반도만 문화와 풍속 왕족을 보존해서 국가였다고 생각 하는 것은 그냥 한국인들의 착각일까? 과연 몽골이 문화와 풍속을 보존한 나라가 고려만 있었을까?
참고로 제국이라 함은 국가를 자국의 행정단위로 둘 수 있는데 고려는 그 중 하나였지 결코 독립된 국가는 아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이 제국과 봉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고려와 원나라 문제를 세계인들과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지 다름이 아니다
세계인이 그렇게본다고 그게 맞는게 되는거임? 그럼 독도도 일본땅으로 표기하는 나라도 많은데 그럼 독도는 일본꺼임?
중국세계관의 왕중의왕 황제 인데 황제 우리나라말로 꼬봉하기엔 좋음 또 거란보고 그냥 나두는게 낫겠다 생각한듯 또 먹을게 없는 가난한 계륵
龜州大捷 戰場을 귀주대첩이 아닌 구주대첩으로 읽으면
九州鎭 또는 旧州鎭이라는 地名이 近現世地圖에서도 읽어낼 수 있지요...
곰족 : 고대조선 수 당 신라 금 청 조선
호족: 부여 고구려 거란 고려 몽골
곰족 지배계급이면 호족 피지배계급
호족 지배계급이면 곰족 피지배계급
단군할아버지 신화부터 시작됨
먼 헛소리냐 호족은 환웅이 사해 밖으로 좇아냈는데
그리고 환족+웅족이 결합하여 배달민족이 탄생한거고
심양왕이라는 자리가 몽골제국내의 세력균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군요.
이런걸 배웠어야 하는건데 말입니다.
심양왕을 중국영화에서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 듣게 되고 그 지리를 알게 되었네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르치지 않아서 정확히 어디인지 몰랐는데, 또한 중국지리여서 몰랐는데 한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만주사역사도 같이 배웠어야 했겠네요. 발해사도 그냥 스쳐지나가고 그 이후는 가르치질 않는데 좀더 많이 가르쳐야 할 내용같네요. 이성계도 천부장출신이었는데 어떻게 그가 왕까지 했는데 그 역사를 모를 수 있었을까요? 일제 식민사관의 힘이 아직까지 끼치고 있씁니다.
썸네일에 룬써결 대통령 아님?
넷플릭스 마르코폴로에 나온 쿠빌라이칸입니다...ㅋㅋㅋㅋㅋ
살려줘요?;
테무친의 어머니가 고구려?고려 사람이라고 알고있습니다.
또한 테무친이 죽기전 고려?만은 정복하지 말라는 말을했죠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ㅋㅋㅋ. 소설을 써라 😂😂😂
징기즈칸의 네번째 부인이 고려여인 홀랑이라는 썰이...
홀랑에게 푹 빠져서 3년동안 정사를 보지 않았다고 함
그래서 '홀랑 빠지다'는 말의 유래가 됨
한국에서 몽골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하며 빠는 애들이 많은데 실제는 몽골군이 의외로 많이 처맞고 다녔다. 베트남한테 졌고 이집트한테도 졌고 인도라인도 넘지 못했으며 인도네시아한테도 졌다. 일본침공 1차전은 고려군의 활약으로 압도했으나 2차때는 막부군의 효율적 기습성공과 전의를 잃은 강남군 10만이 도륙당하며 사실상 패배했다. 유럽전선에서도 헝가리,폴란드,독일 연합에 막혀 오스트리아 빈만 함락하고 더 이상 진공못했고 고려와의 30년전쟁도 그 내용을 보면 패배한 전투가 과반에 이를 정도로 고전했다. 결과적으로 고려가 몽골에게 항복한건 맞으나 당시 고려는 무신정권의 실정으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인데 만약 제대로된 정권과 고려의 특수부대 삼별초, 백성이 일치단결했으면 항복을 없었을 것!! 과거 수,당,돌궐,거란및 한족의 여러 정권등이 개처발렸는데 몽골이 무력으로 고려를 더이상 어떻게 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끔 우리가 일본은 침략자로 여기고 몽골은 같은 핏줄로 여기는데, 걔네도 침략자다. 잊지말자
그시대 고려가 한반도에 갖혀 있는 나라가 아니었고 동경,서경 먼저 공부하시고 지금의 중국 동북지방까지 고려영역이었는데,,, 그러한 자료가 충분히 있건만
여기도 식민사관에 갖혀 뻘짓하는구만
역사는 잘나갈때 국봉하는데 쓰지요
역사를 아는 한국인이 ㅇㅅㅇ을 뽑겠어요
몽골에 항복한 나라중에 국호를 사용하고 그 민족이 왕도 할 수 있게 해준 나라는 고려가 유일하죠
지배,침략만 당하는 것들이었음. 실제 일제침략보다 몽골지배가 더 강했을텐데,... 시간이 지나서 모르는것이지.
좀 이해가 안되는게 호라즘 쪽이 깝치다가 사라졌는데 거기보다 가깝고 정복1순위가 고려인데 나뒀다는게 이해 안됨ㆍ 차라리 그 시절 서로 협력관계여서 그랬다면 이해돌듯ㆍ 나라면 몰살이 답이었을듯ㆍㆍ
차이는 거란 땐 영웅들이 많았고 여진때는 빌런이 있었고 몽골 땐 영웅들이 없었다. 거란이 약골처럼 보이는데 그냥 고려에 영웅이 있어서 막은거. 영웅 없었음 이미 1차에 털림. 서희부터 강감찬까지
영상이랑 소리가 어긋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