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역사기록의 이상한 부분을 지적하시는 측면은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하지만, 사서의 원문을 읽을 때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많이 보충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庚寅 元遣中書舍人愛阿赤來. 先是, 爲征日本, 運江南米十萬石, 在江華島, 今遼瀋告飢, 帝詔以五萬石, 賑之. 이 기사의 첫머리 庚寅은 그달(12월)의 15번째날을 60갑자로 표시한 것입니다. 즉 충렬왕 20년 갑오년 12월의 15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충렬왕 (甲午)二十年 은 甲午년이 맞습니다. 庚辰은 그해 12월 15일의 일진입니다. 나머지 원이 강화도에 쌀 10만석을 쌓아놨다는 대목은 분명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더하여 몇자 더 적으면 충렬왕 16년(AD1290년) 화주와 등주에 침입한 합단의 군대는 반원세력으로 원나라 군대가 아닙니다. 또한 왕이 화주와 등주 지역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고, 이들 반적 합단 무리들이 나라의 동쪽에 침입해 노략질을 하므로 개경에서 강화로 피신한 것입니다.
강화와 역사상 제국 몽고 ㅡ나무위키 여몽전쟁 에서 73전 고려가 55승 대재국 고려의 수도가 조그만 섬이라고 ㅡ 코리아는 강력한 대제국이기에 몽고가 40년간 정복하지 못했다 ㅡ몽고제국 지도를 보세요 고려사에서 강화 검색결과 강화도와 인근의 토지를 용처에 따라 나누다ㅡ그 시대 강화의 토지가 5000만평이 안돤다 〈고종(高宗)〉 46년(1259) 9월에 강화(江華)의 토지 2,000결을 공름(公廩)에 소속시키고, 3,000결은 최의(崔竩)의 집에 소속시켰다. 또한 하음(河陰)·진강(鎭江)·해녕(海寧)의 토지는 제왕(諸王)과 재추(宰樞)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나누어 지급하였다 강화 연안 수비를 엄중히 하고 광주·남경을 강화에 합치다ㅡ지금의 서울이 강화 라고 임오 전후좌우군(前後左右軍)의 진주(陣主)와 지병마사(知兵馬事)에게 명령하여 강화 연안을 수비하게 하고 또 광주(廣州)와 남경(南京)을 합쳐 강화(江華)로 들어오게 하였다 북방오랑캐가 청천강을 건너자 송도를 방어하는 양반을 강화로 오게 하다ㅡ ㅡ몽고군 못가는 강화 양반은 자유롭게 서해도안찰사(西海道按察使)가 보고하기를, 북방 오랑캐[狄人] 40기(騎)가 수달을 잡는다는 핑계로 청천강(淸川江)을 건너 서해도 경내로 들어왔다고 하였다. 이에 송도(松都)에 나가 있던[出排] 양반들을 모두 강화(江華)로 돌아오게 하였다. 당시 양반들을 번갈아 보내어 송도를 지키게 하였었다. 원이 강화도의 쌀을 풀어 요양과 심양의 기민을 구휼하다ㅡ고려사에서 수많은 강남 경인 원(元)이 중서사인(中書舍人) 애아적(愛阿赤, 아야치)을 보내왔다. 이는 앞서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중국 강남(江南)의 쌀 100,000석을 운반하여 강화도에 두었었는데, 지금 요양(遼陽)과 심양(瀋陽)에 기근이 들었다고 보고하였으므로 황제가 그 중에서 50,000석으로 진휼하라고 명령하였다. 쟈릴타이 등이 갑곶강 밖에 와서 군세를 과시하다ㅡㅡ강건너도 섬인가 신사 차라대(車羅大, 쟈릴타이)와 영녕공(永寧公), 홍복원(洪福源) 등이 갑곶강(甲串江) 건너편에 와서 깃발을 가득 벌여놓고 밭에서 말을 먹이고, 통진산(通津山)에 올라서 강도(江都)를 살펴보다 안해현(安亥縣)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 이것은 일부다 ㅡ40년간 수도 강화 ㅡ병저호란때 1알에 함락된 강화 ㅡ나의 놀이터 마라산 참성단이 있는고가도는 고려사에 없울까ㅡㅡ간척전 강화영토 인구 유물 비석 무덤 집터 등 등
조선 스스로 중화사대주의에 빠져 고려의 영토와 역사를 왜곡 축소했다고봅니다..더군다나 '함흥차사'로 대변되는 이성계와 이방원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고려의 만주와 북방영토에 거주하는 여진족을 가르고 이민족화(오랑캐)하면서 영토의 반을 잃어버리며 '역사를 잊은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문구처럼 35년간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일제 35년의 원인은 조선8:일본2(실질적으론 9:1)인데, 그시대에 대한 반성없이 진실과 책임을 덮기위해 맹목적인 반일 친일파 프레임으로 정치적 선동하고 있지요
Coree~~~서양에서 구한말까지~~사용했던~~단어입니다~~~고려역사~~자료,유물,중국현지인들 이야기~~~동네지명, 할아버지들의 옛날이야기속에~~아직도 녹아있네요~~역사기행,다큐에서 중국인들 인터뷰에 옛날 지명, 할아버지 이야기에 고려인들을 많이 무서워했다고~~~강한 군사들~~전투민족~~
속았다. 어쩐지 국사배울때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였다. 대제국 몽골 침입에 코딱지 만한 고려가 36년? 항쟁을 했다는게 믿기지 않았거든. 근데 대륙의 대제국 고려라면 이야기는 딱 맞아떨어지지. 살수대첩, 서희담판, 귀주대첩 전부다 배울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게다가 쌍성총관부? 만수산? 그게 대체 반도 어디에 있다는 거지? 아무리 찾아도 반도안에는 없더라.
울진은 고구려때 우진야현 또는 고울이군 으로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때 울진군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울진은 고구려 땅이였다는 말이 됩니다. 신라와 고구려 백제는 강아지 송곳니 처럼 국경이 되어있다고합니다. 그 경계에 울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우리역사님 종로구에서 금나라 장종 시절 쓰인 승안 3년이 쓰여있는 유물이 나왔는데요 1189년부터 3년이면 1192년이겠네요. 아무튼 금나라가 그 시절에는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추측이 듭니다. 그 시절에는 고려의 주무대는 한반도가 아니였다고 생각하고 금나라와는 친척국가로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했다고 하는데요. 고려시절에는 금나라는 고려와 국경을 맞대어 한반도를 다스렸다고 생각되어 지는데 그렇다면 현재 경주의 무덤도 금나라의 것이 아닐까요. 금나라가 한반도를 지배했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골타가 고려에게 연해주 부근 동북9성을 달라고 하는것도 바로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여진족 출신이니 고려가 망하고 바로 자신의 지지층이 많은곳 원래 금나라가 지배한 한반도로 온것도 이해가 갑니다.
@@SHK-g7p 강화도로 ”천도“를 했다는 기록으로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이는 문무대신과 황실 호위군대 모두를 이끌고 들어갔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강화도 수비를 위한 상비군대 까지 적게 잡아도 수만에서 십만명대가 넘는 규모이어야 합니다. 수백도 수천도 아닌 수만~십만 이상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역활을 맡은 사람의 주변 식구들 까지 다하면 수십만명 규모는 되어야죠. 그리고 30년을 넘게 항쟁을 했으면 무려 한 세대가 지나갈 정도 자급자족을 하며 그 세월 동안 버텼던건데 평야 하나 없는 고려시대 때 강화도에서 그게 가능하겠어요? 경기도 강화도는 조선시대 때 수도와 가까운 곳에 농작지를 늘리기 위해 조정에서 지속적인 간척사업을 통해 평야를 늘렸고 이를 ”강화평야“라고도 합니다. 설령 지금의 강화도라 할지라도 수십만의 인구를 당시 농업 생산기술로 부양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간척사업 이전에 지금 크기의 3/1도 안되는 작은 섬에 불과했던 당시 강화도로는 택도 없는 어불성설입니다. 역사상 유래 없이 그 넓은 황하강, 회수, 양자강을 넘어 동북아시아를 휩쓸고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요새도시 철의 장벽이었던 바그다드를 함락시켜 중동을 넘어 동유럽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까지 정복했던 몽골제국이 황하강 폭의 4/1도 안되는 강화도 앞 해역을 못넘어 그런 작은 섬 하나 정복 못해했다는 한국사 해석은 확실히 논리적 오류가 심각한 것입니다. 당시 세계를 휩쓸다시피한 몽골군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었고 그들이 일으킨 세계적 대전을 맞이해서 무려 30년을 넘게 버티다 끝끝내 몽골의 부마국(사위국) 지위를 얻어 왕조를 존속시킨 고려의 생명력 또한 경이롭지요.
오늘날 중국 대륙 황하강을 넘고 양자강(장강)을 넘어 정벌했던 몽골군이 경기도 강화도를 못 넘어 30년 넘는 세월 동안 항쟁을 했다는게 말이 된다고 보시나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가 조선에 쳐들어왔다가 인조가 경기도 강화도로 도망갔는데 단 하루만에 강화도가 함락됬거든요. 이게 곧 사실이고 고려가 몽골에게 항쟁햇던 강화도가 아니라는 강한 반증 아니겠어요. 😅 수 많은 강들을 넘어 내달려 유라시아를 제패하고 내륙의 송나라를 정복한 몽골군이 만주족 보다 도하를 못했을 리 없자나요. 😂
지금 적어 놓은 글들이 교과서를 만들고 일본이 만든 한국소설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식민사학, 강단사학자들에게 그대로 말씀하셔야 할듯 합니다. 공부가 모자란게 아니라 강단사학자들은 증거도 없으면서 그냥 유추, 추정해서 만든게 현재 한국사 아닙니까??? 다른분야 증거??? 지금 강단사학자들은 삼국사(기)와 고려사는 부정하고 역사에 채택도 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국보와도 같은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빼박 증거 아닙니까??? 지금 동영상에서 다른 증거로 설명했습니까??? 고려사 원문 그대로 설명하는데 무슨 분야을 모른다고 말씀하시는지???다른 분야는 일본서기를 말씀하시는지
그럼 상식적으로 대륙에 있던 고려 영역은 언제 사라졌고 역사기록에 흔적도 없는데 전부중국이 조작했나요 현재 역사설도 문제점이 많지만 맞을만한 부분은 강력주장하고 고려중기후기 조선으로 역사가 연결이 안되요 그큰 영역을 상실함에도 고려사에 조그마한 힌트조차 없다 이것이 상식일까요
몽골이 침입으로 대륙 고려의 땅은 원에게 빼앗기고 만주 심양아래와 한반도만 통치하다 명이 원을 대체하면서 아주 대륙땅과는 이별을 하였다고 봅니다. 만주지역은 이전부터 거란, 여진과 개의 이빨모양으로 얽혀 있다고 사서에 나오고 있으니 조선 중기에 청의 등장으로 지배력이 약화되고 조선말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간도땅마저 일본놈이 철도부설권과 바꿔먹었다지요. 고려사는 주원장과 고려땅을 나눠먹은 이성계의 후손이 쓴 책이고 조선시대 수차례에 걸쳐 이전시대의 무수한 역사서와 지도들을 강제수거해 불살랐고 일제시대에 와서도 겨우 남아있던 역사서마저 또 수거해서 없애버린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 그런 고려사와 삼국사기, 중국사서를 가지고도 삼국과 고려의 대륙지배의 흔적들을 입증하고 있는 겁니다. 식민사학은 지들 소설에 도움이 안되는 삼국사기와 고려사는 철저히 무시합니다. 힌트조차 없다니 무슨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좀 더 연구해보시면 답이 나오실겁니다.....대륙의 고려가 원나라의 침략으로 대륙본토는 원나라가 되었고 심양 동쪽은 고려가 자치권을 인정받았고....원나라가 멸망하자 중국대륙의 농부출신세력이 대륙을 먹고 명이 되었고 여진족세력의 이성계는 쿠테타로 심양동쪽을 강탈해서 명과 조선은 그렇게 고려를 나눠 먹었습니다....이때부터 두 국가에서는 역사 조작 작업과 역사서 소각을 일삼게 되었습니다....두 국가는 고구리,백제,신라, 고려의 역사를 말살하고 그 지역의 땅의 소유권을 조작하기 시작한겁니다.
아니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원문을 보고 해석하는걸 국뽕이라 하면 멀 보고 역사를 말해야 하는가??? 안타깝다. 대한민국의 국보와 같은 역사서는 부정하고 일본서기와 중국서는 인용하고 ....아니지 아무 근거도 증거도 없는 쓰다소키치가 만든 한국역사소설을 그대로 세뇌공부를 하니 정사의 역사가 국뽕으로 보일수밖에....ㅉㅉㅉ
선생님, 역사기록의 이상한 부분을 지적하시는 측면은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하지만, 사서의 원문을 읽을 때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많이 보충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庚寅 元遣中書舍人愛阿赤來. 先是, 爲征日本, 運江南米十萬石, 在江華島, 今遼瀋告飢, 帝詔以五萬石, 賑之.
이 기사의 첫머리 庚寅은 그달(12월)의 15번째날을 60갑자로 표시한 것입니다.
즉 충렬왕 20년 갑오년 12월의 15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충렬왕 (甲午)二十年 은 甲午년이 맞습니다. 庚辰은 그해 12월 15일의 일진입니다.
나머지 원이 강화도에 쌀 10만석을 쌓아놨다는 대목은 분명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더하여 몇자 더 적으면 충렬왕 16년(AD1290년) 화주와 등주에 침입한 합단의 군대는 반원세력으로 원나라 군대가 아닙니다.
또한 왕이 화주와 등주 지역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고, 이들 반적 합단 무리들이 나라의 동쪽에 침입해 노략질을 하므로 개경에서 강화로 피신한 것입니다.
보기 좋은 말로 반문하시니 읽는 사람들도 기븐이 상하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화주 등주가 강원도 북쪽인데 거기를 노략질 당한다고 왕이 강화도로 피신한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방향이나 거리상 화주 등주가 무너지면 수도가 위험할때 피신하는게 상식적으로 맞는거죠~
더 깊이 연구해 주시고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화도에서 왕이 스님들과 함께 40년을 기거했다는건가요? 주지스님방을 왕이 차지했나봅니다~^^
화주와 등주를 나라의 동쪽으로 해석하신 부분도 과하신듯합니다^^
@@이타키온 네, 좋은 지적이십니다.
화주와 등주의 위치는 본 영상에서의 언급을 따랐습니다. 등주와 화주는 동계에 속하고, 등주에는 안변도호부가 있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화는 산동성 아래입니다...현ㅍ상화도라면 어떻게 40년을 견디었을까요? 식민사관 매국 학자들 퇴출이 애국입니다
강화는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1일만에 함락되었죠ㅡ몽고에 정복된 후손에게
우리는 섬에서 이겨는데 ㅡ몽고 재국 가짜야 ㅡ 세종대왕님의 고려사 지리 서문
몽고가 고려를 정복 못한 이유는
ua-cam.com/video/GWuwKQO74CM/v-deo.html
이번에도 영상 공유. 홍보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강화와 역사상 제국 몽고 ㅡ나무위키 여몽전쟁 에서 73전 고려가 55승
대재국 고려의 수도가 조그만 섬이라고 ㅡ 코리아는 강력한 대제국이기에 몽고가 40년간
정복하지 못했다 ㅡ몽고제국 지도를 보세요
고려사에서 강화 검색결과
강화도와 인근의 토지를 용처에 따라 나누다ㅡ그 시대 강화의 토지가 5000만평이 안돤다
〈고종(高宗)〉 46년(1259) 9월에 강화(江華)의 토지 2,000결을 공름(公廩)에 소속시키고, 3,000결은 최의(崔竩)의 집에 소속시켰다. 또한 하음(河陰)·진강(鎭江)·해녕(海寧)의 토지는 제왕(諸王)과 재추(宰樞)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나누어 지급하였다
강화 연안 수비를 엄중히 하고 광주·남경을 강화에 합치다ㅡ지금의 서울이 강화 라고
임오 전후좌우군(前後左右軍)의 진주(陣主)와 지병마사(知兵馬事)에게 명령하여 강화 연안을 수비하게 하고 또 광주(廣州)와 남경(南京)을 합쳐 강화(江華)로 들어오게 하였다
북방오랑캐가 청천강을 건너자 송도를 방어하는 양반을 강화로 오게 하다ㅡ
ㅡ몽고군 못가는 강화 양반은 자유롭게
서해도안찰사(西海道按察使)가 보고하기를, 북방 오랑캐[狄人] 40기(騎)가 수달을 잡는다는 핑계로 청천강(淸川江)을 건너 서해도 경내로 들어왔다고 하였다.
이에 송도(松都)에 나가 있던[出排] 양반들을 모두 강화(江華)로 돌아오게 하였다. 당시 양반들을 번갈아 보내어 송도를 지키게 하였었다.
원이 강화도의 쌀을 풀어 요양과 심양의 기민을 구휼하다ㅡ고려사에서 수많은 강남
경인 원(元)이 중서사인(中書舍人) 애아적(愛阿赤, 아야치)을 보내왔다. 이는 앞서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중국 강남(江南)의 쌀 100,000석을 운반하여 강화도에 두었었는데, 지금 요양(遼陽)과 심양(瀋陽)에 기근이 들었다고 보고하였으므로 황제가 그 중에서 50,000석으로 진휼하라고 명령하였다.
쟈릴타이 등이 갑곶강 밖에 와서 군세를 과시하다ㅡㅡ강건너도 섬인가
신사 차라대(車羅大, 쟈릴타이)와 영녕공(永寧公), 홍복원(洪福源) 등이 갑곶강(甲串江) 건너편에 와서 깃발을 가득 벌여놓고 밭에서 말을 먹이고, 통진산(通津山)에 올라서 강도(江都)를 살펴보다 안해현(安亥縣)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
이것은 일부다 ㅡ40년간 수도 강화 ㅡ병저호란때 1알에 함락된 강화 ㅡ나의 놀이터 마라산 참성단이 있는고가도는 고려사에 없울까ㅡㅡ간척전 강화영토 인구 유물 비석 무덤 집터 등 등
대륙 강화도에 대륙의 강남쌀 보관. 위치가 빼박입니다🎉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합리적 의심을 통해 논리적으로 해석하니 알기 쉽네요.
책보고님 이후 또 좋은 역사채널이 생겨서 기분이 좋네요.
난 역사학자가
문서확인은 못하지만 조선 이방원이 책들을 몰수하여 불태웠다는 거와
고려사를 조선초 시대에 편찬하였다니
거기에 함정과
답이 있을듯요
조선 스스로 중화사대주의에 빠져 고려의 영토와 역사를 왜곡 축소했다고봅니다..더군다나 '함흥차사'로 대변되는 이성계와 이방원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고려의 만주와 북방영토에 거주하는 여진족을 가르고 이민족화(오랑캐)하면서 영토의 반을 잃어버리며 '역사를 잊은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문구처럼 35년간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일제 35년의 원인은 조선8:일본2(실질적으론 9:1)인데, 그시대에 대한 반성없이 진실과 책임을 덮기위해 맹목적인 반일 친일파 프레임으로 정치적 선동하고 있지요
조선건국을 도와준 장본인과 이성계가 딜을 쳤겠죠.
멋진 해석입니다
이해가 잘되는 영상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월욜아침에 행복을. 주시네요^^
30년을 버틸 수 있는 땅인데.. 지금 강화도는 1년도 불가능함..
강화도의 위치가 가장 궁금했습니다.고맙습니다.감사핲니다
오늘도 우리역사 히스토리님 영상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우리 역사 광복의 그날까지~!!
우리 역사를 공부하는 올바른 방법을 제시해 주시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타당한 의문을 속쉬원하게 풀어주셨습니다.
잘보았읍니다 고맙습니다😄👍
고려 원나라때는 잘 막아내고 임시 수도로 쓰인 강화도가
조선 청나라때는 한방에 뚫려서 왕족들이 다 잡혔지요
이것만 보더라도 고려 강화와 조선현재 강화는 차이가 큽니다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넵 몽골군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까지 쳐들어가서 수전할 수준이었는데 지금 반도 강화도 못건넜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강단사학주류들은 이런 주장을 비논리적이고 황당무계하다고 비웃던데, 사실 그들의 시각은 우물안 개구리 아닌가 싶더군요.
@@erickkim9135 실세는 덮고싶은게 아닐까요
@@erickkim9135 중국 일본의 돈을 받고 활동하는 거겠죠 뭐
@@정재문-l2e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자신(신념)을 이길 용기가 부족한 거 아닐까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홧팅 🎉
수고가 많으셨읍니다 감사합니다 👍
훌륭한 영상 감사드립니다.
식민사학 나팔수면서 아닌척 위장한 강지형씨 같은 분을 이 영상으로 눌러드려야할텐데 말이죠.
강지형씨가 책보고 영상을 대표로 대륙고려를, 고려사 왜곡 주범이라고 지목하는 영상을 최근 2개 업로드 했네요 ㅎ
서하에 조공 바치던 대륙의 송나라는 어디로ㅡ강지형의 대륙삼국
유트브 명이 바뀌였군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강화도에 고려궁터가 발견되지도 않았거니와 20만이 임시수도로 살만한곳이 아니죠~~!
살수는 있지만 농토나 물의 수원지 같은 것이 없어서 식수를 해결하기 힘들듯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점차 연구층이 두터워지네요. 응원합니다.
유툽 책보고님의 노력이 드디어
맞습니다... 책보고+우리역사 조합 짱!! 역사 퍼즐이 다 풀린다는~~^^
울진현=울릉도 (강소성 북쪽끝 렌윈강시)
1900년대 일본 제작 지도를 보면 강에서 밀려오는 토사로 섬이 육지가 되는 과정이 나온다. 1900년 지도엔 섬이었던 곳이 1908년, 1911년 지도엔 곶(반도)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잘 하고 있는 겁니다
객관성과, 주관성이 있어 좋습니다
오늘도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영상으로 잃어버린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퐈이팅~!!😊
Coree~~~서양에서 구한말까지~~사용했던~~단어입니다~~~고려역사~~자료,유물,중국현지인들 이야기~~~동네지명, 할아버지들의 옛날이야기속에~~아직도 녹아있네요~~역사기행,다큐에서 중국인들 인터뷰에 옛날 지명, 할아버지 이야기에 고려인들을 많이 무서워했다고~~~강한 군사들~~전투민족~~
동감합니다.
이제 역사도 상식이 통하는 역사로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공부가 많이 됩니다.
지리 비정이, 이씨조선 때는 명/청 눈치를 보느라,
일제시대 때는 일제 관변학자들이 지들 멋대로 위치 비정을 한 것이고,
현 강단사학자들도 이해관계가 일제의 종복들(이병도 등)과 일치하니 여태 아무말 대잔치 하고 있는 게지요.
반박불가한 증거 자료로 밝혀주셔서 감사합니다.
😘👍
빨리 교과서 부터 바꿔야 합니다. 식민사학 그만 없애고
식민사학 나팔수면서 아닌척 위장한 강지형씨 같은 분을 이 영상으로 눌러드려야할텐데 말이죠.
강지형씨가 책보고 영상을 대표로 고려사 왜곡 주범이라고 지목하는 영상을 최근 2개 업로드 했네요 ㅎ
교육부장관이 역사 의식이 투철한 사람으로 교체해서, 강력하게 역사교과서 개정, 선택, 교육 시키게 해야 합니다~!
정치하는 놈드리 역사에 관심이 없어요 사학계 없에라. 일본놈들이 역사왜곡. 한것 싸그리.폐기하고 다시. 만들어라
식민사학을 없에야 비로소 한민족의 역사광복을 이룩할 것 입니다.
😊
선생님 1등댓글 😊✨️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주되네요^^
2번부근 강화도 오련산 고려 관련 지명들과 1번부근 대규모 곡식 저장고 관련 KBS 다큐멘터리 고구려 유민 이정기의 제나라 편 보시면 곡식을 강과 수로를 따라 옮겨와 저장한 기록과 장소가 남아있죠.
한번찾아봐야겠어요 전에본것같은데 기억이 잘안나네요 ^^
감사합니다 ✨️ 💕
지금 한반도에 강화도로는 역사서에서 몽고 전투때 왕이 피난가서 항쟁한곳으로는 설명이 않됨 지금 강화도라면 몇달도 못버티고 털렸을듯
사학계어서는 전라도 같은데서 배로 식량을 수급 받았다고하는데
몽골은 전라도에는 안갔을까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당연합니다! 지금 강화도 배들 잘들 들락 거리는데 당시는 안될 이유가 없죠!
몇달 노노, 몇일 예스예스 ㅎ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했을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 있다가 강화도로 기어들어갔다가 단 하루 만에 항복했습니다. ㅋㅋ 한달도 아니고 하루만에요.
@@패미박멸 맞습니다.. 그런 인천 강화도에서 30년을 먹고 자면서 싸우고 버틴다? 말도 안되는 코미디죠...
정확합니다...나도 그렇게 분석햇는 데....그곳이 울릉도 입니다..아직도 그 옆에 거우산도라는 섬이 있고 죽도라는 섬도 있죠..
인터넷에서 중국도 를 찾아보면 산동반도 제남의 남쪽 태산과 청주 사이에 우산羽山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고려사는 한반도에 적용하면 안된다. 조선(고려)대륙에 있는 강화도는 호북성에 존재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배운 역사를 무턱대고 믿었지만
배경지식 사전지식이 전혀 없던 때라서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었던 순수한 어린이
커서 머리가 커지고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기마병 몽골부대가 뜬금없이 배타고 강화도 진도 제주도를 쳤다는건 노이해지
속았다.
어쩐지 국사배울때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였다.
대제국 몽골 침입에 코딱지 만한 고려가 36년? 항쟁을 했다는게 믿기지 않았거든.
근데 대륙의 대제국 고려라면 이야기는 딱 맞아떨어지지.
살수대첩, 서희담판, 귀주대첩 전부다 배울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게다가 쌍성총관부? 만수산? 그게 대체 반도 어디에 있다는 거지? 아무리 찾아도 반도안에는 없더라.
쌍성총관부 = 하얼빈 인근
만수산 = 북경 북쪽에 현존하는 산
책보고님의 팬이자ㅡ울진사람으로써 대륙울진의 문헌근거가ㅡ궁금합니다
울진은 고구려때 우진야현 또는 고울이군 으로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때 울진군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울진은 고구려 땅이였다는 말이 됩니다.
신라와 고구려 백제는 강아지 송곳니 처럼 국경이 되어있다고합니다.
그 경계에 울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화도 3번은 아님니다.
김종윤 선생님은 산둥반도에 있다고 합니다.
진실이 먼지 궁금하긴 함 대륙 신라 백제 고려가 있었어도 중국 일본이 부정하겠죠 한국은 항상 약소국 역사라고 주장함 철저하게 고서 유물 조사하고 탐방해서 알려야됨
양자강 남쪽 호남성 강화현 영평부. 강화라고 했지 강화도라고 하지 않았음. 식민사학이 자꾸 강화도를 강화와 겹쳐서 헷갈리게 하는 지점에 녹아나서 전부 엉터리 비정을 하고 있다. 북경에서 호남성 강화현까지 도망가니 몽골군이 못쫒아 온것임. 따라서 호남성 강화현이 강화임.
강화도 옛적 섬이거나 삼면이 물로 가득차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해수면이 10-20미터 올라 가 있었을 옜날에는 말이죠.
아무리 몽고군이 시막기병위주라지만 국내 현재의 강화도면 코앞인데 그걸 공격 못했다면 코미디겠지요
후금(청나라)는 쉽게 강화도를 점령했지요
오히려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말았지만요
감사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 물살이 쎄서 들어가지 못했다면 중국 방향으로 나갔다가 돌아서 들어가면 쉬울 테니 말이죠! 강화도 배들이 죄다 이런식으로 들락거리겠죠?
이런게 진짜 역사지...
맨 교과서 기반에 어중간하게 알면서 아는 척 떠들고 댕기는 것들 보다가 이 영상을 보니 눈이 트이네요.
등주별초가 철령에서 몽고군을 물리치다.1255년 2월 7일
갑비ㆍ고차,
갑 = 곶(곶/곷/고추/꽃)..
"고추 서다" ~
강화; 강이 (갯물로) 변하는=연안(옌롄)~
추정.비정한다가아니고.생각합니다도아니죠.수많은사서기록.대륙동쪽전체가.위대한동이쪽의땅이였죠.
내 고향 강화도
몽고항쟁 절대 못하는 섬이다.
거란과의 전쟁 작가님, 중공에서 얼마 받으셨나요? 솔직히 말해 보시죠
안녕하세요 우리역사님 종로구에서 금나라 장종 시절 쓰인 승안 3년이 쓰여있는 유물이 나왔는데요 1189년부터 3년이면 1192년이겠네요. 아무튼 금나라가 그 시절에는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추측이 듭니다. 그 시절에는 고려의 주무대는 한반도가 아니였다고 생각하고 금나라와는 친척국가로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했다고 하는데요. 고려시절에는 금나라는 고려와 국경을 맞대어 한반도를 다스렸다고 생각되어 지는데 그렇다면 현재 경주의 무덤도 금나라의 것이 아닐까요. 금나라가 한반도를 지배했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골타가 고려에게 연해주 부근 동북9성을 달라고 하는것도 바로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여진족 출신이니 고려가 망하고 바로 자신의 지지층이 많은곳 원래 금나라가 지배한 한반도로 온것도 이해가 갑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배경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목소리가 잘 안들립니다
아하!
임진왜란땐 명황제가 산동반도의 쌀을 풀어 조선 백성들을 살렸죠.
이나라역사가 거짓인게 맞는거죠?
조선에서의 이전 역사서를 수거해서 불태워버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문장 한개로 모든 역사는 조작되었다는것이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분서갱유(조선 초기부터 80년간 우리 역사 책을 수거해 불태웠던 사건)
식민사학 가짜역사책 불태우기 운동이 필요합니다
한국최초 고려수도 강화 중국 남경 고지도에서 찾았습니다 고려부동산 #우리역사 틀리면 의견 주세요
ua-cam.com/video/qg5xj4SdXPI/v-deo.html
강화도가 아니고 창된 우리 역사에선 강화가 아닌가요 세계사가 2중3삼증 역사세탁 된 걸로 압니다.
섬도자가 있긴해요
허나 옛날에는 반도란 말이 없었습니다.
반만 섬이라는 개념이 없었던거죠
지금의 반도를 그때 그 시절엔 그냥 섬으로 표현했을수도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식민사학자 관단사학자 잘보시면 대부분 일본유학 했습니다. 대부분 일분일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죠.그러니 무뉘만 대한민국 사학자고 일본역사학자 인겁니다.
중국에 귀주도 있고 한반도에 없는 지명 다 있음
많죠 작은 한반도에 비정하기 힘든 지명들이죠
감사합니다 ✨️ 💕
중국이 과거 역사서를 불질렀는지 아는가?
해석이 청년들의 역사관심을 일으키기에 안성마춤이라고 봅니다. 뭐랄까요? 역사를 제대로된 지리학적 논리로 설명하려는 관점이 매우 좋습니다. 요즘 일부 강단사학을 옹호하는 젊은 역사유툽을 보면, 좀 논리가 허접하더군요.
특히 재역사tv가 심합니다.. 개소리를 정성스럽게 씨불이더라고요.
몽고가 고려를 정복 못한 이유는
ua-cam.com/video/GWuwKQO74CM/v-deo.html
도저히 믿기지 않는.. 국사.. 학생들은 그게 믿겨질까나..
저는 1번 아니면 2번이라 생각 합니다ㅋ
그정도 크기와 위치가 아니라면 원나라한테
수십년 못 버틴다고 생각합니다ㅋ
글고 고려가 군대 동원 한거보면 몇십만
단위로 동원 했다고 하는데요ㅋ
지금의 한반도에 고려가 위치하고 했다면
수십만을 무슨 수로 동원 하겠어요ㅡ.ㅡㅋ
한반도 인천 부근 강화도에 고려 왕이 머물던 유적은 무엇인가
딸랑 건물 하나가 정말 왕이 머물만한 곳이던가요? ㅎ
@@패미박멸 평상시 궁궐인가요
戰時 도망쳐 피신한 상황서 그것도 섬에 노동력 구할 백성 인부 구하기도 어려운 사정 아닌가요
@@SHK-g7p 강화도로 ”천도“를 했다는 기록으로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이는 문무대신과 황실 호위군대 모두를 이끌고 들어갔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강화도 수비를 위한 상비군대 까지 적게 잡아도 수만에서 십만명대가 넘는 규모이어야 합니다. 수백도 수천도 아닌 수만~십만 이상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역활을 맡은 사람의 주변 식구들 까지 다하면 수십만명 규모는 되어야죠. 그리고 30년을 넘게 항쟁을 했으면 무려 한 세대가 지나갈 정도 자급자족을 하며 그 세월 동안 버텼던건데 평야 하나 없는 고려시대 때 강화도에서 그게 가능하겠어요? 경기도 강화도는 조선시대 때 수도와 가까운 곳에 농작지를 늘리기 위해 조정에서 지속적인 간척사업을 통해 평야를 늘렸고 이를 ”강화평야“라고도 합니다. 설령 지금의 강화도라 할지라도 수십만의 인구를 당시 농업 생산기술로 부양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간척사업 이전에 지금 크기의 3/1도 안되는 작은 섬에 불과했던 당시 강화도로는 택도 없는 어불성설입니다. 역사상 유래 없이 그 넓은 황하강, 회수, 양자강을 넘어 동북아시아를 휩쓸고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요새도시 철의 장벽이었던 바그다드를 함락시켜 중동을 넘어 동유럽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까지 정복했던 몽골제국이 황하강 폭의 4/1도 안되는 강화도 앞 해역을 못넘어 그런 작은 섬 하나 정복 못해했다는 한국사 해석은 확실히 논리적 오류가 심각한 것입니다. 당시 세계를 휩쓸다시피한 몽골군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었고 그들이 일으킨 세계적 대전을 맞이해서 무려 30년을 넘게 버티다 끝끝내 몽골의 부마국(사위국) 지위를 얻어 왕조를 존속시킨 고려의 생명력 또한 경이롭지요.
아니 이렇게 합리적 상식적으로 이해되어져야 역사라고 할 수 있는건데.. 그 똑똑한 역사학자 양반들은 책상에 앉아서 이런것도 못 알아내나. 학자의 양심이란 것이 남아있기는 한건가. 부끄러운줄 알아라.
고려이후 역사가 오리무중이네요. 그 이전 역사는 중국사서를 통하여 대륙에 있었다는것이 확실한데 고려이후는 역사서 조작으로 정확한 위치비정이 어려운것 같네요. 좀더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강화도만 하더라도 현재 강화도가 맞다.틀리다 확실하게 반증하기가 어렵네요.
오늘날 중국 대륙 황하강을 넘고 양자강(장강)을 넘어 정벌했던 몽골군이 경기도 강화도를 못 넘어 30년 넘는 세월 동안 항쟁을 했다는게 말이 된다고 보시나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가 조선에 쳐들어왔다가 인조가 경기도 강화도로 도망갔는데 단 하루만에 강화도가 함락됬거든요. 이게 곧 사실이고 고려가 몽골에게 항쟁햇던 강화도가 아니라는 강한 반증 아니겠어요. 😅 수 많은 강들을 넘어 내달려 유라시아를 제패하고 내륙의 송나라를 정복한 몽골군이 만주족 보다 도하를 못했을 리 없자나요. 😂
배경음악이 너무 커서 해설이 잘 들리지 않음
인천광역시 강화군~~~
이죠....(??!!!)
마니산도~~~좋아요...
항상 고려사만 슥 지나듯이 배우는게 좀 이상하긴했음
또한 대한민국의 영어이름이 코리아인데 마지막 계승왕조가 조선인데 왜 코리아일까
또한 코리아말고 코리 쿠리 구리 등 으로 읽는 외국도있음
그렇죠 고려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려진게 없다는게 문제지요 상업의 나라였는데
감사합니다 ✨️ 💕
@@Ourhistory2023 우리만 알려진게 부족하지 세계는 고려를 많이 알고 있었으니 코리아라 부른 거겠죠!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가 조선 보다도 늦은 시간대에 있었고 땅 덩어리도 작은데 어떻게 세계는 조선 보다 고려를 더 기억할까요! 참 이상하죠!
지도에 나타난 글자는 강화가 아니라 강혁 강혁이고 사람 인명입니다. 강혁 주변의 글자가 모두 사람 이름입니다.
중국 강소성아 강화입니다ㅡㅡ유튜브 장두구
삼국까지는 대륙이 맞고 그다음은 아닌거 같은데
그리고 강화도에서 배로 요하로 가서 심양으로 보내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중국도 상해에서 출발해서 요동만까지 군대를 보냅니다. 고려시대죠.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만 가져와 설명하는 게 역사 쪽의 문제로군요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의 공부가 모자라서 그런 거 같네요
다른 분야에서 증거를 찾을 수도 있는데 다른 분야를 모르는 거 같군요
교차검증을 통해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증거가 너무 빈약하네요
지금 적어 놓은 글들이 교과서를 만들고 일본이 만든 한국소설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식민사학, 강단사학자들에게 그대로 말씀하셔야 할듯 합니다.
공부가 모자란게 아니라 강단사학자들은 증거도 없으면서 그냥 유추, 추정해서 만든게 현재 한국사 아닙니까??? 다른분야 증거??? 지금 강단사학자들은 삼국사(기)와 고려사는 부정하고 역사에 채택도 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국보와도 같은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빼박 증거 아닙니까??? 지금 동영상에서 다른 증거로 설명했습니까??? 고려사 원문 그대로 설명하는데 무슨 분야을 모른다고 말씀하시는지???다른 분야는 일본서기를 말씀하시는지
그럼 상식적으로 대륙에 있던 고려 영역은 언제 사라졌고 역사기록에 흔적도 없는데 전부중국이 조작했나요
현재 역사설도 문제점이 많지만 맞을만한 부분은 강력주장하고 고려중기후기 조선으로 역사가 연결이 안되요
그큰 영역을 상실함에도 고려사에 조그마한 힌트조차 없다
이것이 상식일까요
이성계에 대해서 연구한 내용들 공부하셔야지 싶습니다
대륙에 있던 고려영역은 고려말에 명나라가 개국하면서 대륙의 대부분지역은 명나라에게 뺏기고 명나라와 사대관계를 맺은 이성계가 한반도와 만주에 조선을 건국하면서 한반도는 조선 대륙은 명나라에게 귀속 되었다고 합니다
몽골이 침입으로 대륙 고려의 땅은 원에게 빼앗기고 만주 심양아래와 한반도만 통치하다 명이 원을 대체하면서 아주 대륙땅과는 이별을 하였다고 봅니다. 만주지역은 이전부터 거란, 여진과 개의 이빨모양으로 얽혀 있다고 사서에 나오고 있으니 조선 중기에 청의 등장으로 지배력이 약화되고 조선말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간도땅마저 일본놈이 철도부설권과 바꿔먹었다지요. 고려사는 주원장과 고려땅을 나눠먹은 이성계의 후손이 쓴 책이고 조선시대 수차례에 걸쳐 이전시대의 무수한 역사서와 지도들을 강제수거해 불살랐고 일제시대에 와서도 겨우 남아있던 역사서마저 또 수거해서 없애버린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 그런 고려사와 삼국사기, 중국사서를 가지고도 삼국과 고려의 대륙지배의 흔적들을 입증하고 있는 겁니다. 식민사학은 지들 소설에 도움이 안되는 삼국사기와 고려사는 철저히 무시합니다. 힌트조차 없다니 무슨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1400-1945년 역사가 정말 500년 역사가 정말 아이러니하네요. 임진왜란 이후 역사가 통째로 바뀐 기분입니다.
좀 더 연구해보시면 답이 나오실겁니다.....대륙의 고려가 원나라의 침략으로 대륙본토는 원나라가 되었고 심양 동쪽은 고려가 자치권을 인정받았고....원나라가 멸망하자 중국대륙의 농부출신세력이 대륙을 먹고 명이 되었고 여진족세력의 이성계는 쿠테타로 심양동쪽을 강탈해서 명과 조선은 그렇게 고려를 나눠 먹었습니다....이때부터 두 국가에서는 역사 조작 작업과 역사서 소각을 일삼게 되었습니다....두 국가는 고구리,백제,신라, 고려의 역사를 말살하고 그 지역의 땅의 소유권을 조작하기 시작한겁니다.
요즘 이런 국뽕 역사왜곡이 많은걸보면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다. 일제의 식민사관.,중국의 동북공정도 문제지만 우리내부의 이런 국뽕역사왜곡도 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나쁜짓한다고 우리도 그렇게하면 똑같이 나쁜놈일뿐이다. 정신차리자.
역사라는게 우리가 배우는게 백프로 정답은 아니죠.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 배우는게 정답이라 생각하고 다른 건 무조건 틀렸다라고 생각하는건 위험합니다.
밥은 잘 자시고
Ddong은 잘 Ssasigy ¤¡¿¿¿¿¿
그럼 됐shwe
인구수 1명 채우는 게
센세의 존재이유요
생각하려도 말아요
숨만 쉬셔유~
🤯🤯🤯🤯🤯🤯
🥶🥶🥶🥶🥶🥶
🤡🤡🤡🤡🤡🤡
@@하늘사나이광타 ㅋㅋ정신병자 미치광이들.차라리 이불속에서 우주를 정복해라.
아니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원문을 보고 해석하는걸 국뽕이라 하면 멀 보고 역사를 말해야 하는가???
안타깝다. 대한민국의 국보와 같은 역사서는 부정하고 일본서기와 중국서는 인용하고 ....아니지 아무 근거도 증거도 없는 쓰다소키치가 만든 한국역사소설을 그대로 세뇌공부를 하니 정사의 역사가 국뽕으로 보일수밖에....ㅉㅉㅉ
'국뽕'? 그 단어 대만화교떼가 민족분열용으로 만든 거란다...
너 대만화교냐?
구글어스도 사용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