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향로가 나온 자리는 제가 어릴 때부터 논으로 쓰던 작은 다랭이 논이었고 발굴된 당일은 갑자기 큰 한파가 몰아친 저녁,발글하던 분들의 긴장되고 흥분된 모습들이 불빛 사이에서도 기억합니다. 운 좋게도 그날 현장에 있었지만 멀리서나마 진흙 범벅의 뭔가를 담아 가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뭔가 나왔다는 직감은 햇지만 저런 대단한 초 국보급인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국뽕빼고 팩트만 알려드릴게요. 백제 금동대향로하고 모양이 거의 똑같은 박산로가 중국 서한에서 발견됐습니다. 백제에서 나온것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진겁니다. 당시 백제는 중국 남조졍권과 밀접한 관계였고 무역도 활발하던 시대였음. 비슷한 시기에 무령왕릉 또한 중국 남조의 건업인들이 와서 축조했다고 벽돌에 기록이 있죠. 백제가 많은 중국인들을 귀화시켜 관료로 채용했다는 기록도 있음.
백제에는 저런 박산로를 제작했다거나 사용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어요. 저런걸 만들었다면 일반적으로 기록이 있거나 발달과정이 있기마련인데 저건 뜬금없이 발굴됐고 더구나 향로는 사치품의 일종이라 중국과 무역이 활발하던 백제가 수입했다고 보는게 합리적입니다. 아님 무령왕능처럼 중국인 기술자들을 데려와서 만들었겠죠. 결론은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가 만든 유물이 아닙니다.
국뽕빼고 팩트만 알려드릴게요. 백제 금동대향로하고 모양이 거의 똑같은 박산로가 중국 서한에서 발견됐습니다. 백제에서 나온것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진겁니다. 당시 백제는 중국 남조졍권과 밀접한 관계였고 무역도 활발하던 시대였음. 비슷한 시기에 무령왕릉 또한 중국 남조의 건업인들이 와서 축조했다고 벽돌에 기록이 있죠. 백제가 많은 중국인들을 귀화시켜 관료로 채용했다는 기록도 있음.
백제에는 저런 박산로를 제작했다거나 사용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어요. 저런걸 만들었다면 일반적으로 기록이 있거나 발달과정이 있기마련인데 저건 뜬금없이 발굴됐고 더구나 향로는 사치품의 일종이라 중국과 무역이 활발하던 백제가 수입했다고 보는게 합리적입니다. 아님 무령왕능처럼 중국인 기술자들을 데려와서 만들었겠죠. 결론은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가 만든 유물이 아닙니다.
발굴왕 다시 해줘
발굴왕 채널이 이사온걸까요?
뭐야 발굴왕 채널 왜 없앴어요 ㅠㅠ
저번 주 부여 박물관 가니 370만원 하던 데 그것도 많이 내려간 가격이구나...
대향로가 나온 자리는 제가 어릴 때부터 논으로 쓰던 작은 다랭이 논이었고 발굴된 당일은 갑자기 큰 한파가 몰아친 저녁,발글하던 분들의 긴장되고 흥분된 모습들이 불빛 사이에서도 기억합니다.
운 좋게도 그날 현장에 있었지만 멀리서나마 진흙 범벅의 뭔가를 담아 가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뭔가 나왔다는 직감은 햇지만 저런 대단한 초 국보급인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중국의 선진문화래,,,와,,,,졌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 당시에는 맞지 그 당시 일본 문화가 선진 문화냐? 시대상을 봐야 하는거야
넌 그때의 중국이 지금의 중국이랑 같은 줄 아냐? 그 당시 중국은 로마 제국 수준의 국가였다.
국뽕빼고 팩트만 알려드릴게요.
백제 금동대향로하고 모양이 거의 똑같은 박산로가 중국 서한에서 발견됐습니다. 백제에서 나온것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진겁니다.
당시 백제는 중국 남조졍권과 밀접한 관계였고 무역도 활발하던 시대였음. 비슷한 시기에 무령왕릉 또한 중국 남조의 건업인들이 와서 축조했다고 벽돌에 기록이 있죠.
백제가 많은 중국인들을 귀화시켜 관료로 채용했다는 기록도 있음.
백제에는 저런 박산로를 제작했다거나 사용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어요. 저런걸 만들었다면 일반적으로 기록이 있거나 발달과정이 있기마련인데 저건 뜬금없이 발굴됐고 더구나 향로는
사치품의 일종이라 중국과 무역이 활발하던 백제가 수입했다고 보는게 합리적입니다. 아님 무령왕능처럼 중국인 기술자들을 데려와서 만들었겠죠.
결론은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가 만든 유물이 아닙니다.
역사를조쟉하는민족에게미래는없다
국뽕빼고 팩트만 알려드릴게요.
백제 금동대향로하고 모양이 거의 똑같은 박산로가 중국 서한에서 발견됐습니다. 백제에서 나온것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진겁니다.
당시 백제는 중국 남조졍권과 밀접한 관계였고 무역도 활발하던 시대였음. 비슷한 시기에 무령왕릉 또한 중국 남조의 건업인들이 와서 축조했다고 벽돌에 기록이 있죠.
백제가 많은 중국인들을 귀화시켜 관료로 채용했다는 기록도 있음.
백제에는 저런 박산로를 제작했다거나 사용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어요. 저런걸 만들었다면 일반적으로 기록이 있거나 발달과정이 있기마련인데 저건 뜬금없이 발굴됐고 더구나 향로는
사치품의 일종이라 중국과 무역이 활발하던 백제가 수입했다고 보는게 합리적입니다. 아님 무령왕능처럼 중국인 기술자들을 데려와서 만들었겠죠.
결론은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가 만든 유물이 아닙니다.
@@고니-l1x1:55
이 인간 금동향로에 대한 콘텐츠마다 쫒아다니며 이 댓글 도배질하네
보아하니 한국어하는 되놈이나봄
@@라일락라일락-z6e 쓸데없는 댓글보다는 근거와 논리적인 반박을 하는게 대중들한테 설득력을 얻지 않을까요?
@@고니-l1x 네? 대향로에 있는 봉황 얼굴 봤어요? 산 무늬 봤어요? 백제 유물 여기저기에 있는 봉황과 뮈늬랑 똑같아요. 역지 좀 그만 쓰쇼
대향로의 가치를?? 평가해??? ㅎㅎㅎ 몇 조를 줘도 택도 없지~ 모나리자를 줘도 안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