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킹덤오브 헤븐처럼 한공간에 다양한 종교의 각각의 복장이 있는 장면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정말..눈호강하는군요 스페인,포르투칼을 생각하면 항상 들던 생각중에 왜 대항에 시대의 황금기이후에 찾아오는 근대화에서 특히 1,2차 세계대전이후 어찌하여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위치로 바뀐걸까 생각했는데 이번영상이 전부는 아니여도 몇가지 단서를 주시는군요 추가적으로 점점 영상 퀄리티가 말도안되게 좋아지는데 중간에 삽화로 들어간 그림도 너무 멋지네요 영상제작에 너무 바빠지시는게 아닌가 몰라요 추운겨울 건강조심하시길 독일에서도 잘지네세요 언제나 잘보고갑니다.
잘 봤습니다. 말씀대로라면 스페인어에도 아랍어의 영향이 제법 남아있겠군요? 스페인어 남성 관사가 el인 것도 아랍어의 영향 아닐까 싶어요. 지도 보면 카스티야, 아라곤, 나바라 등 외에 'Catalan counties'라고 있네요. 카탈루냐에 여러 백작령이 있었던 모양인데 아라곤 왕국과 어떤 관계였나요? 봉건적 lord-vassal 관계였나요?
흥미로운 질문인데 대댓이 없어서 제가 찾아서 시간순으로 대략 정리해봤어요. 출처는 영문 위키백과(Hispanic Marches, Catalan counties, County of Barcelona, Crown of Aragon)입니다. 제 영어실력이 뛰어나지 않아 오역이 많을 수 있으니 시간이 되신다면 가급적 원문을 찾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1. 무슬림 지배 : 711년부터 시작된 우마이드 왕조의 알-안달루스 정복으로 까딸루냐 지방에도 이슬람 행정기구(Walis)가 설치됩니다.(이슬람 세력은 피레네 산맥 너머의 프랑스 남부까지 침투) 2. 프랑크 왕국의 반격 : 샤를마뉴 대제가 781년 아들 Louis the Pious를 아키텐 왕국의 왕으로 봉하고, 785년 지로나 정복을 시작으로 피레네 산맥 남쪽으로의 정복이 시작됩니다. 801년엔 핵심 도시인 바르셀로나 백작령을 점령하였고, 그 전후로 아라곤&카탈루냐 지역에 많은 성채를 세워 방어하였습니다. 이 성채 지방들을 Hispanic Marches, 스페인어로 Marca Hispánica라 부릅니다. (사족 : 여러 블로그나 나무위키에 실린 한국어 번역에서는 이를 '에스파냐 변경백'이라 부릅니다. 변경백의 영어 표현은 Margrave지만 비슷한 뜻인가 봅니다.) 3. 자치권 : 이들 지역들은 처음에는 를 이루고 있었으나, 상속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변경백작들과 왕국의 관계는 좋지 않았으며 왕권의 약화가 겹쳐 점점 자치조직이 되어갑니다. 이 자치조직들을 Catalan counties라고 부릅니다. 9세기 말의 바르셀로나 백작 Wilfred the Hairy(?~897)는 여러 county들을 통합하였고, 사실상 이때부터 Catalan counties는 County of Barcelona로 통합되어갑니다. 988년 서프랑크에서 카롤링거 왕조가 단절되고 카페 왕조가 뒤를 잇자 당시 바르셀로나 백작 Borrell II(?~993)은 '충성서약을 하러 가지 않는 선택'으로 사실상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사견 : 위키백과의 문맥으로 보아, 이 사건 이후 서프랑크 왕국도 왠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굳히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3. 아라곤 왕국과의 통합 : 1137년 바르셀로나 백작 Ramon Berenguer IV(당시 24세)와 아라곤의 여왕 Petronilla(당시 1세!!)의 약혼과 1151년의 결혼으로 두 국가가 통합하였고, 둘의 아들 Alfonso II가 왕국의 이름을 아라곤 연합왕국((영)Crown of Aragon, (서)Corona de Aragón)이라 칭합니다. 경제적으로는 바르셀로나 백작령이 더 부유했으나, 아라곤 왕가가 더 높은 작위를 가졌으므로 왕국의 공식적 이름은 '아라곤'이 되었습니다. (사견 : 계급 차이는 나지만 경제력 차이가 있기 때문에...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통합이라 보여집니다.) 참고로 아라곤 왕국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문위키 + 나무위키) 처음엔 까딸루냐 지방과 같이 Marca Hispánica로써 프랑크 왕국의 봉건계약 하에 있었으나 바스크족이 반란을 일으켜 점령하고 팜플로냐 왕국을 세웁니다. 팜플로냐 왕국은 성장하여 11세기에 나바라 왕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산초 3세의 통치하에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그놈의 분할상속 때문에 왕국이 4개로 쪼개집니다. 이 중 하나가 아라곤 왕국입니다. (나머지는 나바라, 카스티야, 레온) 위에서 적었듯 제 영어실력의 한계도 있고, 또한 위키백과라는 단일 출처의 한계로 인해 오류가 많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분이 나서주신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또한 스페인어에는 아랍어의 영향이 꽤 남아있는 것 같네요. 역시 위키백과에서 라고 검색하시면 엄청나게 많은 예시가 나옵니다. 전 스페인어를 몰라서 이만...
멜라닌이 부족한데 일조량 높은 지역에서 살면 피부병 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사람들이 북유럽보다 검은 편인건 자연선택된 결과고요. 포르투갈은 다른 남유럽보다 더 검은 편입니다. 이건 적은 인구수에 비해 뱃사람들이 많아 인구수 유지를 위해 모로코쪽과 통혼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저땐 유럽이 더 미발달 즉 미개했음ᆞ 중세 중기 전까진 농업생산만 해도 원래 평야에 로마때부터 관리를 좀 하던 현 프랑스 지역 외는 독일은 광산이 많이도 반대로 채광 전에다가 그 외 지역도 습지가 많아서 당장 농사 짓기도 그렇고 인구도 적어서(로마 말부터 안정 될려고하면 게르만족끼리 치고박고 마자르에 바이킹에 원확 자주 들락거려서ᆢ 이게 정리되기 전엔 뭐ᆢ) 생각보다 생산량도 기본적으로 딸림ᆞ 애당초 신성로마제국이 원탑이던 프랑스를 중세 중기부터 비비며 압도가능한 시점이 된게 오토 대제가 마자르족을 족치면서 신성로마제국의 뿌리가 내리기도 하고 습지가 매꿔지며 재법 괜찮은 농지가 되면서 쓸만한 광산들도 많이 채광하던 중기부터임ᆞ(사실상 라인발트-팔츠와 인근 지역 일부 즉 로마의 최전선에 해당되던 부분 외는 낙후됬음ᆞ독일은) 그런데 북아프리카는 로마때부터 관리된 관계 수로 시설이나 개관시설이 아직 유지되던 때라서 오히려 인구는 더 많고 농업생산력도 좋았음ᆞ
@Your future president 안그래도 여기에 마자르족에 바이킹에 아주 그냥ᆢ(좀만 안정될려고하면 샤를마뉴 사망 이후 상속권 문제로 3국으로 나눠서 상속했드만 셋이 더 차지하겠다고 투닥거리는 거 같은 일이 자꾸 발생ᆢ) 거기에 봉권제 특유 구조상 지들끼리도 대영주들 잔득 모여서 몇천명 몇만명 투입하는 캠페인급 전쟁은 아니더라도 몇십명 몇백명 규모로 동네 패싸움보단 규모가 커도 투닥거리는 짜잘한 영주들 쌈도 많죠ᆞ 당장 카노사의 굴욕 원인 중 하나가 하인리히 3세 시절 지 통치를 위해서 세습이 법적으로 안되서 사후 영지 권한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는(어차피 당시엔 보름스 협약 전이고 제국교회령 때문에 주교 임명권도 황제가 가지고 있어서) 주교 영주를 잔득 임명해 놓았는데 지들끼리 싸움으로 갈려나갔죠ᆞ 원래는 세속 영주를 견제 할려고 세속 영주랑 달리 자신과의 관계에서 권력이 유지되고 권한 회수도 쉬운 주교 영주들에게 힘을 팍 실어줬더만 세속 영주들이랑 지들끼리 투탁거리다가 정작 자기 아들 대엔 엄청나게 갈려서ㅠ
@@999masijjyeong 그건 문6... 문5는 바닐라, 신과 왕, 멋진 신세계의 3부작으로 황금기 '밖에' 없었고 저 그래픽이었습니다. 문6은 암흑기와 정상기, 영웅기가 추가된 흥망성쇠 확팩...은 확실히 값이 너무했고, 나중에 나온 몰려오는 폭풍까지 세트메뉴로 사야 그나마 제값을 하는 작이죠. 쨌든 문6이 아닌 문5 그래픽입니다 저건.
6:43아프리카 모로코 북끝 땅 세우타(Ceuta)는 현재 스페인 땅인데 1640년 동군연합에서 독립전쟁을 벌인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독립하면서 넘기게 되죠. 스페인의 남땅끝 지브롤터(Gibraltar)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결과인 1713년 위트레흐트(Utrecht)조약으로 영국에게 넘기죠.
카스티야-아라곤 왕국과 나스르 왕조의 관계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하죠. 아무리 사소한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상대 세력이라도 무너뜨리고 나면 아쉬울 때가 오는 법입니다. 스페인의 경우에는 종교적 원인이 추진제가 되어 배타적인 정책을 이어나간 끝에 결국 영토는 늘었으나 실속은 잃은 상황을 겪고 말았죠
제 글의 의도는 영국, 프랑스 등 주요한 국가들을 제외한 타국가 관련 전공자가 매우 적다는 걸 얘기했던 거에요. 특히 에스파냐사는 에스파냐어의 언어적 위상에 비하면 국내연구자가 극히 적은 편이죠. ‘전무하다시피’의 의미는 이것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이 세계(이베리아 반도는 물론 중남미를 포괄)를 연구하는 국내 연구자의 진영에는 그동안 사실상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포르투갈사 전공자가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 (황보영조, , 역사학보 제235집, pp.407, 2017.)
처음에 타리크 이븐 지야드의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통치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시는 부분에서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영상에서는 '우마야드 왕국의 효율적인 통치전략'이 있었다고 말씀하시고 전략적 요충지에 군대를 집중시킨것과 현지인들과의 타협을 예시로 들어주셨는데요. 이 부분만 들으면 우마야드 칼리프 측에서 주도적으로 이베리아의 정복과 통치를 주도하고 실현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 이베리아의 정복이 시작된 710년대 이후의 우마이야 왕조의 중앙 권력만 보아도 여러 내분과 불안정성으로 동요하다가 750년대에 아바스 왕조에 칼리프 자리를 내주기까지 하죠. 이베리아 정복도 다마스쿠스의 중앙 정부가 계획하고 실행했다기 보다는 이프리키야 총독인 무사 이븐 누사이르 쪽에서 자체적으로 성공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칼리프 측에서는 이베리아 정복 성공에 기뻐하기 보다는 멀리 서쪽에 떨어진 총독이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우려하여 무사 이븐 누사이르를 다마스쿠스로 불러들이고 가두기까지 하죠 아브드 알 라흐만이 이베리아에서 후 우마이야 왕조의 에미르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까지 아랍 무슬림의 이베리아 통치는 그렇게까지 안정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앞서 말했듯 우마이야 왕조는 700년대에 들어서 결국엔 왕조가 교체될 정도의 정치적 내분을 겪기 때문에 이베리아에 대한 효과적 통치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무슬림의 정복 초기에는 원정군의 주축인 베르베르인들이 아랍인들 상대로 반란도 일으키고 아랍인들 사이에서도 부족 출신에 따라 갈등도 심했던 상태인지라 베르베르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우마이야 가문으로 혈통도 확실했던 아브드 알 라흐만이 와서 아바스에서 독립된 후우마이야 왕조를 세우고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확립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물론 무슬림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이라는 사건을 정확히 재구성하기엔 신뢰할만한 1차 사료가 많이 부족하기에 딱잘라 정확히 말하기엔 힘든 구석이 있긴 하지요. 저는 Hugh Keneddy의 Great Arab Conquest와 Brian Catlos의 Kingdoms of Faith를 참조했는데 함께하는 세계사 님께서 참조하신 독일어 자료를 읽고 비평할 능력은 없어서 유감입니다. 국내에 잘 안 알려진 시대인데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알 안달루스 시대의 유대인 문화는 영문 위키에 아예 Golden age of Jewish culture in Spain라는 문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중세 유럽 유대인들의 역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은 찾아가서 읽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근데 그 말씀대로 에스파냐 이단심문관들이 유명했던 이유가 도미니코 수도회때문이였죠.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마녀라는 존재를 만들었고 마녀사냥을 만들어내고 스타트를 끊었으니까요. 근데 에스파냐 종교재판으로 넘겨지는 사례는 많았다하는데 실제로 그 판결이 이뤄진건 얼마 없다고합니다. 그에 반해 독일에 한 지역에서는 1년동안 300명의 사람이 마녀로 몰려 죽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근데 독일에선 돈이 필요했던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부요한 과부들이 많이 처형당했죠...
@@이도형-x9x 확실히 무조건 맞다고 말씀은 못드릴거같네요 지금은 자퇴했지만 신학 전공을 했을 때 읽었던 책이 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마녀사냥을 거의 마녀사냥 사업으로 삼았던 남독일에서는 남편을 잃은 부유한 과부 , 혹은 나이든 늙은이 , 힘이 없었던 귀족들을 많이 고발했다고 읽었던거같습니다. 그중에도 부유한 과부들이 많이 사냥당했다고 읽었던거같구요. 실제로 이들의 자산은 주교들 혹은 영주들이 가져갔거든요. 그리고 여자들이 많이 사냥당했던 이유도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이 마녀라는 존재를 만들었던 하인리히 크레이머와 자콥 스트렝거가 주장했던 이론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악마의 유혹에 약하다. 이 이론을 주장했었고 실제로 들어먹였죠 몰론 남자라고 마녀사냥을 안당했던건 아니지만... 몰론 도형님 말도 맞습니다. 마녀사냥 기록에 보면 평범한 여성이였던 사람이 집 앞을 빗자루로 쓸고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마녀로 기소되어서 84회에 걸친 고문과 거짓자백 요구를 했다는 ted에 나왔던 영상도 생각이 나는군요 m.ua-cam.com/video/7x5KesH3dzM/v-deo.html 그 테드 영상이 이겁니다.
@@박재신-n8i 네 님말도 맞다고 여겨집니다 실제 남성보다 여성이 많이 죽기도 했고요 - 러시아와 북유럽 제외 - 남독일은 사업인지 광풍인지 뭔가 불면서 부유한 과부들이 많이 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과부나 몰락 귀족 등은 그나마 기록이 남아서고 대개는 힘 없는 사람이 죽었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죽을 정도며 어마어마한 광풍이라고 해석하는 거죠
사실 공존이라고는 해도 이슬람이 1류 기독교와 유대교가 2류인 공존이었죠 유대교야 어디가도 2류였으니 그러려니 했겠지만 기독교 입장에서는 .... 그래서 한 때 이베리아의 기독교 인구가 10프로 남짓까지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더욱 종교적으로 편향적으로 갔을 수 있다 봅니다
유대인은 땅을 못 가지게 만들어서 농업에 좋사하지 못하고 상업, 금융업에 많이 좋사 했는데 말이 좋아서 금융이지 고리대고 상업도 내가 하던 가게는 유대인랑 경쟁에 밀리기 일수인데 누가 좋게 보겠나요... 히틀러 때문에 유대인이 전세계적으로 동정표 받아서 그렇지 아니였으면 지금도 욕 엄청 먹으면서 살고 있을 듯.
@@kyeongsukim4699 역사에 '만약'은 없는건데,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이 히틀러 정권에 적극 협조했을 거라 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당시 독일에서 어느 정도 재력을 많이 가진 집단이라서. 그리고 지금 미국의 IBM이나 코카콜라 그외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대기업들이 당시 히틀러 정권에 협조했는데, (이건 인터넷 검색하면 금방 나옵니다.) 이들 기업의 상당수가 또한 유대인들 소유 기업들이죠.
와 진짜 영상 퀄리티 미쳤어요ㅠㅜ 너무너무 재밌어용❤️ 화이팅하세여
돈키호테 볼때 등장인물이 툭하면 '무어인이나 할 짓이네, '무어인 만도 못한 놈아', '그런건 무어인한테나 주도록 하라죠' 라고 틈만나면 엄청 비아냥거리는데 이런이유때문이군요 ㄷ
무어라고?
@@Sprise ㅋㅋㅋㅋ
입 다무어
보통 강의들이 '레콩키스타' 자체에만 포인트를 줘서 가르쳐서 과정을 잘 몰랐는데
상세한 과정에 대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역사에 관심있는 편인데도 독재자 프랑코가 레콩키스타토르로 자칭했는지는 몰랐네요^ 구독하면서 잘보구 있고, 조아요 누르고 갑니다.
이채널을 구독하면서 알게된건 역사가 정말 단순하게 해석인 안된다는거, 마치 살아있는 세포처럼 복잡하게 얽힌재미가 있어요
오 드디어 레콘키스타군요 선댓후감상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종교가 저렇게 싸우면서 서로 교류하면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게 신기하네요
놓치기 쉬운 역사만 콕콕 집어내시네 대단해 이채널
유대인 역사까지... 알차네요!
영상 감사합니다 ^^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막연히 알고 있던 역사를 제대로 알게되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담백하지만 군더덕없는 재미난 설명과 삽화. 잘 보고 있습니다.
현대사까지 다루어주시는 부분이 너무 좋네요
저는 킹덤오브 헤븐처럼 한공간에 다양한 종교의 각각의 복장이 있는 장면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정말..눈호강하는군요 스페인,포르투칼을 생각하면 항상 들던 생각중에 왜 대항에 시대의 황금기이후에 찾아오는 근대화에서 특히 1,2차 세계대전이후 어찌하여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위치로 바뀐걸까 생각했는데 이번영상이 전부는 아니여도 몇가지 단서를 주시는군요
추가적으로 점점 영상 퀄리티가 말도안되게 좋아지는데 중간에 삽화로 들어간 그림도 너무 멋지네요 영상제작에 너무 바빠지시는게 아닌가 몰라요 추운겨울 건강조심하시길 독일에서도 잘지네세요 언제나 잘보고갑니다.
인재유출이 컸죠.. 이베리아 반도에서 살고있던 유대인들을 이슬람인들처럼 다 추방시켜 버렸으니 그 유능한 유대인들이 영국과 프랑스 독일등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서 스페인의 전성기가 영국과 프랑스로 이어진 듯
@@로일당-o4v 프사와 닉네임...귀하군요
너무 재밌어요! 이 맛에 유튜브 봅니다. 다음에는 브리튼7왕국이나 중세의 북유럽에 대해 배우고 싶어요!
레콩기스타 이전의 이야기인 셈이군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ㅋ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덕분에 중세 스페인에 대해 얕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로마 제국의 몰락과 중세로의 변화 과정에서 각각의 나라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심스레 요청합니딘.
좋은 내용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공생해야 되면 어떻게든 방책을 찾아내네요. ㅎㅎ
재미있게 보고가용
잘 봤습니다. 말씀대로라면 스페인어에도 아랍어의 영향이 제법 남아있겠군요? 스페인어 남성 관사가 el인 것도 아랍어의 영향 아닐까 싶어요.
지도 보면 카스티야, 아라곤, 나바라 등 외에 'Catalan counties'라고 있네요. 카탈루냐에 여러 백작령이 있었던 모양인데 아라곤 왕국과 어떤 관계였나요? 봉건적 lord-vassal 관계였나요?
흥미로운 질문인데 대댓이 없어서 제가 찾아서 시간순으로 대략 정리해봤어요. 출처는 영문 위키백과(Hispanic Marches, Catalan counties, County of Barcelona, Crown of Aragon)입니다. 제 영어실력이 뛰어나지 않아 오역이 많을 수 있으니 시간이 되신다면 가급적 원문을 찾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1. 무슬림 지배 : 711년부터 시작된 우마이드 왕조의 알-안달루스 정복으로 까딸루냐 지방에도 이슬람 행정기구(Walis)가 설치됩니다.(이슬람 세력은 피레네 산맥 너머의 프랑스 남부까지 침투)
2. 프랑크 왕국의 반격 : 샤를마뉴 대제가 781년 아들 Louis the Pious를 아키텐 왕국의 왕으로 봉하고, 785년 지로나 정복을 시작으로 피레네 산맥 남쪽으로의 정복이 시작됩니다. 801년엔 핵심 도시인 바르셀로나 백작령을 점령하였고, 그 전후로 아라곤&카탈루냐 지역에 많은 성채를 세워 방어하였습니다. 이 성채 지방들을 Hispanic Marches, 스페인어로 Marca Hispánica라 부릅니다. (사족 : 여러 블로그나 나무위키에 실린 한국어 번역에서는 이를 '에스파냐 변경백'이라 부릅니다. 변경백의 영어 표현은 Margrave지만 비슷한 뜻인가 봅니다.)
3. 자치권 : 이들 지역들은 처음에는 를 이루고 있었으나, 상속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변경백작들과 왕국의 관계는 좋지 않았으며 왕권의 약화가 겹쳐 점점 자치조직이 되어갑니다. 이 자치조직들을 Catalan counties라고 부릅니다. 9세기 말의 바르셀로나 백작 Wilfred the Hairy(?~897)는 여러 county들을 통합하였고, 사실상 이때부터 Catalan counties는 County of Barcelona로 통합되어갑니다. 988년 서프랑크에서 카롤링거 왕조가 단절되고 카페 왕조가 뒤를 잇자 당시 바르셀로나 백작 Borrell II(?~993)은 '충성서약을 하러 가지 않는 선택'으로 사실상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사견 : 위키백과의 문맥으로 보아, 이 사건 이후 서프랑크 왕국도 왠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굳히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3. 아라곤 왕국과의 통합 : 1137년 바르셀로나 백작 Ramon Berenguer IV(당시 24세)와 아라곤의 여왕 Petronilla(당시 1세!!)의 약혼과 1151년의 결혼으로 두 국가가 통합하였고, 둘의 아들 Alfonso II가 왕국의 이름을 아라곤 연합왕국((영)Crown of Aragon, (서)Corona de Aragón)이라 칭합니다. 경제적으로는 바르셀로나 백작령이 더 부유했으나, 아라곤 왕가가 더 높은 작위를 가졌으므로 왕국의 공식적 이름은 '아라곤'이 되었습니다. (사견 : 계급 차이는 나지만 경제력 차이가 있기 때문에...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통합이라 보여집니다.)
참고로 아라곤 왕국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문위키 + 나무위키)
처음엔 까딸루냐 지방과 같이 Marca Hispánica로써 프랑크 왕국의 봉건계약 하에 있었으나 바스크족이 반란을 일으켜 점령하고 팜플로냐 왕국을 세웁니다. 팜플로냐 왕국은 성장하여 11세기에 나바라 왕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산초 3세의 통치하에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그놈의 분할상속 때문에 왕국이 4개로 쪼개집니다. 이 중 하나가 아라곤 왕국입니다. (나머지는 나바라, 카스티야, 레온)
위에서 적었듯 제 영어실력의 한계도 있고, 또한 위키백과라는 단일 출처의 한계로 인해 오류가 많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분이 나서주신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또한 스페인어에는 아랍어의 영향이 꽤 남아있는 것 같네요. 역시 위키백과에서 라고 검색하시면 엄청나게 많은 예시가 나옵니다. 전 스페인어를 몰라서 이만...
=요약=
1. 아라곤과 까딸루냐 백작령들 사이엔 별 관계가 없었음. 까딸루나 백작령 중 바르셀로나 백작령이 나머지 까딸루냐를 다 먹었고, 바르샤 백작령과 아라곤 왕국이 합쳐서 아라곤 연합왕국이 됨.
2. 스페인어에는 아랍어 영향이 많이 남아있음.
@@kimjmable 친절한 답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아랍어의 al이 스페인어의 el로 변한 거 같음
아랍어의 잔재가 현재 스페인어에 꽤 남아 있죠.. 대표적 단어로 쌀...arroz ,alcohol... 이런거
이렇게 재밌으면서도 깊이있는 채널은 유일한것같습니다.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 스페인사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여기서 배우네요.
카탈로니아 지역이 스페인에서 지니는 의미도 영상으로 만들어주세요~~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7:57 까스띠야 et 레온 이라고 되어 있는데 스페인어는 y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프랑스어 et가 써있는거 같아 혹시 차이가 있을까요?
이베리아인의 인종적 외형에도 영향을 주었을까요? 남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은 백인치고 키도 작고 흑발도 많고 피부도 까맣고 곱슬도 많은, 어떻게 보면 아랍인적인 외모도 좀 섞여있는것 같습니다.
원래는 일반적인 백인 외모였으나 수백년간의 점령기때 유전적으로 섞였을까요?
다 알면서 왜 물어봐요ㅋ
멜라닌이 부족한데 일조량 높은 지역에서 살면 피부병 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사람들이 북유럽보다 검은 편인건 자연선택된 결과고요.
포르투갈은 다른 남유럽보다 더 검은 편입니다. 이건 적은 인구수에 비해 뱃사람들이 많아 인구수 유지를 위해 모로코쪽과 통혼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하플로그룹에서는 동일하다고 나옵니다
@@ikeresin 하플로그룹에선 아랍인들과 이베리아 남부 지역 사람들이 동일한 인종으로 나온다구요??
저도 늘 궁금했어요. 스페인 가봤는데, 라틴계 같은 용모더군요
너무너무 잘 보고있습니다! 최근 제 삶의 낙이에요!
이렇게 유익한영상을 편하게 앉아서 감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캐릭터는 개미 빠에야인가요? 😍 ㅋㅋㅋ 우와 디테일과 제미 가면갈수록 엄청나집니다!!!
논문을참고하신건가요? 서점가서 작정하고 아시아역사 카테고리로 찾는데 깜짝놀랐습니다. 대형서점인데도 관련서적이거의없더라구요. 써칭하는방법 좀 가르쳐주세요 스승님
논문 참고하신 거 맞음. 레포트 작성 땸에 흑사병 관련 논문 찾아보니까 있더라고;
먼나라이웃나라
먼나라 이웃나라는 ㄹㅇ 이지
영상참고란에 참고자료 보세용
독일어 하시니까 우리가 알 수 없는 논문도 많이 보실듯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이해잘되게 잘 설명해주시네요 ㅎㅎㅎ
'레콩키스타'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많이 선물받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깊이 있는 내용 감사합니다!
드디어 스페인사!!!
선생님의 글을 참고하고 크루세이더 킹즈3라는 게임을 하니 더 몰입이 잘 되고 재밌네요. 이번에는 '보다 빠른 레콩퀴스타'라는 컨셉을 잡고 해봐야겠습니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진짜 진짜 좋은 영상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부터 계속 느낀 개인적인 바람 딱 하나는 배경음 볼륨을 조금 낮춰주실 수 있을까요? ㅠ.ㅠ.. 말씀하시는 톤이 좋으신데 배경음이 크다 보니 집중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ㅠ.ㅠ
요즘 컨디션이 좋으신가요? 초창기보다 목소리에서 활기가 ㅋㅋ
재밌게 봤습니다^^
어제 업로드가 되지 않아 오늘 하루종일 기다렸네요.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오늘도 역시 뇌를 채우고 갑니다. 고마워요 함세사~~
9:23 항복한 이슬람 지배층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네요.
그 유대인들이 지금 네덜란드 벨기에로 건너가서 네덜란드 개떡상
선따봉,후감상. 영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슬람이 되게 잘 싸우는데 어떤게 비결일까요? 자원도 없고 인구도 많지 않은데...
석유나오기 이전ㅋㅋ
저땐 유럽이 더 미발달 즉 미개했음ᆞ 중세 중기 전까진 농업생산만 해도 원래 평야에 로마때부터 관리를 좀 하던 현 프랑스 지역 외는 독일은 광산이 많이도 반대로 채광 전에다가 그 외 지역도 습지가 많아서 당장 농사 짓기도 그렇고 인구도 적어서(로마 말부터 안정 될려고하면 게르만족끼리 치고박고 마자르에 바이킹에 원확 자주 들락거려서ᆢ 이게 정리되기 전엔 뭐ᆢ) 생각보다 생산량도 기본적으로 딸림ᆞ 애당초 신성로마제국이 원탑이던 프랑스를 중세 중기부터 비비며 압도가능한 시점이 된게 오토 대제가 마자르족을 족치면서 신성로마제국의 뿌리가 내리기도 하고 습지가 매꿔지며 재법 괜찮은 농지가 되면서 쓸만한 광산들도 많이 채광하던 중기부터임ᆞ(사실상 라인발트-팔츠와 인근 지역 일부 즉 로마의 최전선에 해당되던 부분 외는 낙후됬음ᆞ독일은)
그런데 북아프리카는 로마때부터 관리된 관계 수로 시설이나 개관시설이 아직 유지되던 때라서 오히려 인구는 더 많고 농업생산력도 좋았음ᆞ
@Your future president 안그래도 여기에 마자르족에 바이킹에 아주 그냥ᆢ(좀만 안정될려고하면 샤를마뉴 사망 이후 상속권 문제로 3국으로 나눠서 상속했드만 셋이 더 차지하겠다고 투닥거리는 거 같은 일이 자꾸 발생ᆢ)
거기에 봉권제 특유 구조상 지들끼리도 대영주들 잔득 모여서 몇천명 몇만명 투입하는 캠페인급 전쟁은 아니더라도 몇십명 몇백명 규모로 동네 패싸움보단 규모가 커도 투닥거리는 짜잘한 영주들 쌈도 많죠ᆞ
당장 카노사의 굴욕 원인 중 하나가 하인리히 3세 시절 지 통치를 위해서 세습이 법적으로 안되서 사후 영지 권한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는(어차피 당시엔 보름스 협약 전이고 제국교회령 때문에 주교 임명권도 황제가 가지고 있어서) 주교 영주를 잔득 임명해 놓았는데 지들끼리 싸움으로 갈려나갔죠ᆞ
원래는 세속 영주를 견제 할려고 세속 영주랑 달리 자신과의 관계에서 권력이 유지되고 권한 회수도 쉬운 주교 영주들에게 힘을 팍 실어줬더만 세속 영주들이랑 지들끼리 투탁거리다가 정작 자기 아들 대엔 엄청나게 갈려서ㅠ
자원이 없으니까 얻을러규 만날 싸운거 아닐까요
Thank you and thank you for good knowledge , Dear chaewon.
데우스 벨트 신이 바라신다!!!
따봉을 안줄래야 안줄수가 없는 퀄리티
빠에야 너무 귀여워요 ㅋㅋㅋ
포르투갈과 갈라진 배경도 좀 만들어 주세요
와우 레콩키스타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까지!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오오,드디어 업로드 됬군요!!! 토요일에 오시지 않으셔서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쫓아내고
종교재판소가 이자벨여왕 사후 변질 됫다는거는 알고 있었는데
선대가 유대인출신이란 이유로 쫓아낸건 첨알앗내 ㄷㄷ
영상 수준이 너무 높다..ㄷㄷ
너무나 재미있게 설명 고맙습나다.
내용이 좋네요!👍🏼 더 좋은 영상을 위해 역사교육 전공자로서 약간의 조언을 드리자면.. 우마야드 왕조가 아니라 우마이야 왕조가 맞지 않을까요? 그리고 불편하더라도 기독교란 표현보단 크리스트교란 표현이 역사에 관심 많은 청소년에겐 혼란을 덜 줄 거 같아요!
와!
2:46 함께하는 세계사 채널도 문명5 해보셨구나 ㅎㅎ
흥망성쇠 나름 흥미로운 시도였죠 피락시스가 돈독이 올라서 확팩가격이 본편이랑 맞먹는것만 빼면...
@@999masijjyeong 그건 문6... 문5는 바닐라, 신과 왕, 멋진 신세계의 3부작으로 황금기 '밖에' 없었고 저 그래픽이었습니다. 문6은 암흑기와 정상기, 영웅기가 추가된 흥망성쇠 확팩...은 확실히 값이 너무했고, 나중에 나온 몰려오는 폭풍까지 세트메뉴로 사야 그나마 제값을 하는 작이죠. 쨌든 문6이 아닌 문5 그래픽입니다 저건.
역시나 중요한 건 공생이네요... 역사는 거짓이 없습니다
근데 오늘날 민주당하고 국힘 보면 서로 없어져야 할 대상임,ㅋㅋ,ㅋㅋ
6:43아프리카 모로코 북끝 땅 세우타(Ceuta)는 현재 스페인 땅인데 1640년 동군연합에서 독립전쟁을 벌인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독립하면서 넘기게 되죠. 스페인의 남땅끝 지브롤터(Gibraltar)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결과인 1713년 위트레흐트(Utrecht)조약으로 영국에게 넘기죠.
처음 영상 봤을땐 목소리가 많이 주눅들어 있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발랄하십니다.
레콩키스타도르 너무 재밌다도르
과거엔 유대인들을 끊임없이 박해했던 유럽 국가들이 지금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또 유대인들에게 비교적 관대했던 이슬람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죽일듯이 대치하고있으니 이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네요 ㅎㅎ
결국 돈이죠 ㅎㅎ
사실 유럽에 흩어져 살면서 민족성을 거의 잃었던 유대인들의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일깨운것도 나치독일이었고 서방세계와 유대인이 긴밀히 협력할 계기를 제공한것도 나치독일이었죠. 현재의 이스라엘이 유대인에 의한 민족주의 괴물이 된걸 생각하면 만악의 근원이 따로없네요
레콩키스타가 단순히 스페인 재정복인 줄 알고있었는데 당시의 시대가 그러했듯이 많이 복잡한 사정을 가지고 있었군요.
reconquistar= re(again)+con(together)+quaerere(to seek, acquire)=[다시 하나로 되찾다] 재정복
영단어 conquest의 어원이 스페인어 콩키스타 인가요?
레콩키스타 끝나고 스페인이 유대인까지 쫓아내고 스페인내부 상공업 붕괴한게 지금까지 영향미침
하나의 언어에 닮긴 역사가 굉장히 복잡하군요. 지난 아이티 영상에서도 보았듯이 '인재의 추방'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초반에 이베리아 북부에 있던 이베리아 가톨릭 최후의 보루였던 아스투리아스 왕국에 대해서도 언급 정도는 해 주시징....
카스티야-아라곤 왕국과 나스르 왕조의 관계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하죠. 아무리 사소한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상대 세력이라도 무너뜨리고 나면 아쉬울 때가 오는 법입니다. 스페인의 경우에는 종교적 원인이 추진제가 되어 배타적인 정책을 이어나간 끝에 결국 영토는 늘었으나 실속은 잃은 상황을 겪고 말았죠
유대인을 종교적인 문제로 내쫓은줄 알았는데 여왕의 빚이 많아서이기도 했군요~채권자들을 내쫓고 싶은데 종교라는 핑계를 댄 느낌이네요
사실이랑 다른것도 있네요
피레네 산맥 북쪽까지도 진출했고 투르ᆞ푸아티에전투에서 프랑크왕국에게 져서 더이상의 북상이 막힌것입니다. 수정 부탁드립니다.
732년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에 패, 이후 피레네 산맥 이남으로 격퇴당함..
이슬람에 대한 공격을 명분삼아 권력을 안정화하려는 유럽인들의 모습은 정말 십자군전쟁의 예고편을 보는 듯 하군요 ㄷ
1. 레콩키스타가 민족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개념이었다니...!
2. 한국에서는 에스파냐사 전공자가 전무하다시피 한다던데 역시 독일은 같은 지역권이라 관련 전공자가 많나 보군요...(참고문헌이 전부 독일어인 것 같아 내린 판단입니다.)
에스파냐사 전공자가 안 계시진 않습니다. dbpia,riss 에서 스페인 역사 관련 논문 검색해보면 전공자분들 논문 찾으실수 있을겁니다
제 글의 의도는 영국, 프랑스 등 주요한 국가들을 제외한 타국가 관련 전공자가 매우 적다는 걸 얘기했던 거에요. 특히 에스파냐사는 에스파냐어의 언어적 위상에 비하면 국내연구자가 극히 적은 편이죠. ‘전무하다시피’의 의미는 이것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이 세계(이베리아 반도는 물론 중남미를 포괄)를 연구하는 국내 연구자의 진영에는 그동안 사실상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포르투갈사 전공자가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
(황보영조, , 역사학보 제235집, pp.407, 2017.)
서양의 역사를 더 많은 알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레콩키스타도 비잔티움제국이라는 뜻처럼 후세에 지어진 말이 라는 사실이 놀라워습니다.
유럽역사는 참 많이도 이슬람하고 엮이는듯 아나톨리아 반도도 원래는 유럽으로 되어야하는데 오스만이 결국 먹어버리고 수세기가 지나서 영국애들이 아나톨리아를 아시아로 만들어버렸잖아 만약 아나톨리아가 아직도 그리스 영토로 되어있으면 그 역사도 재미있었을듯
처음에 타리크 이븐 지야드의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통치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시는 부분에서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영상에서는 '우마야드 왕국의 효율적인 통치전략'이 있었다고 말씀하시고
전략적 요충지에 군대를 집중시킨것과 현지인들과의 타협을 예시로 들어주셨는데요.
이 부분만 들으면 우마야드 칼리프 측에서 주도적으로 이베리아의 정복과 통치를 주도하고 실현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 이베리아의 정복이 시작된 710년대 이후의
우마이야 왕조의 중앙 권력만 보아도 여러 내분과 불안정성으로 동요하다가
750년대에 아바스 왕조에 칼리프 자리를 내주기까지 하죠.
이베리아 정복도 다마스쿠스의 중앙 정부가 계획하고 실행했다기 보다는
이프리키야 총독인 무사 이븐 누사이르 쪽에서 자체적으로 성공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칼리프 측에서는 이베리아 정복 성공에 기뻐하기 보다는
멀리 서쪽에 떨어진 총독이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우려하여
무사 이븐 누사이르를 다마스쿠스로 불러들이고 가두기까지 하죠
아브드 알 라흐만이 이베리아에서 후 우마이야 왕조의 에미르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까지
아랍 무슬림의 이베리아 통치는 그렇게까지 안정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앞서 말했듯 우마이야 왕조는 700년대에 들어서 결국엔 왕조가 교체될 정도의
정치적 내분을 겪기 때문에 이베리아에 대한 효과적 통치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무슬림의 정복 초기에는 원정군의 주축인 베르베르인들이 아랍인들 상대로 반란도 일으키고
아랍인들 사이에서도 부족 출신에 따라 갈등도 심했던 상태인지라
베르베르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우마이야 가문으로 혈통도 확실했던
아브드 알 라흐만이 와서 아바스에서 독립된 후우마이야 왕조를 세우고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확립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물론 무슬림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이라는 사건을 정확히 재구성하기엔
신뢰할만한 1차 사료가 많이 부족하기에 딱잘라 정확히 말하기엔 힘든 구석이 있긴 하지요.
저는 Hugh Keneddy의 Great Arab Conquest와 Brian Catlos의 Kingdoms of Faith를 참조했는데
함께하는 세계사 님께서 참조하신 독일어 자료를 읽고 비평할 능력은 없어서 유감입니다.
국내에 잘 안 알려진 시대인데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알 안달루스 시대의 유대인 문화는 영문 위키에 아예 Golden age of Jewish culture in Spain라는 문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중세 유럽 유대인들의 역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은 찾아가서 읽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잉글랜드 7왕국 하셨나요? 안하셨으면 한번 부탁드려요
타이파라는 용어나 개념이 이베리아 밖에서는 안쓰였나요
스페인 이단심문관들이 악명높았던 이유가 이런 역사때문에 그런걸까?
마녀사냥을 많이했던 국가와 지역으로는 스코틀랜드와 독일이 있었죠... 신교랑 구교와 한창 싸울때 생각하면 스페인은 비비지도 못할거같네요...독일지역과 스코틀랜드 그냥 말도 듣지않고 구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죽이고 신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많이죽였죠...
근데 그 말씀대로 에스파냐 이단심문관들이 유명했던 이유가 도미니코 수도회때문이였죠.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마녀라는 존재를 만들었고 마녀사냥을 만들어내고 스타트를 끊었으니까요. 근데 에스파냐 종교재판으로 넘겨지는 사례는 많았다하는데 실제로 그 판결이 이뤄진건 얼마 없다고합니다. 그에 반해 독일에 한 지역에서는 1년동안 300명의 사람이 마녀로 몰려 죽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근데 독일에선 돈이 필요했던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부요한 과부들이 많이 처형당했죠...
@@박재신-n8i 부유한 과부보다는 돈 없고 힘 없던 사람들이 주 대상이었죠. 부유한 과부는 일회성으로 재산 몰수보다 두고두고 이런 저런 이유로 헌금을 받는게 이득이니까요. 교회의 주 보호대상이었던 부유한 과부조차 피할 수 없었다가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이도형-x9x 확실히 무조건 맞다고 말씀은 못드릴거같네요 지금은 자퇴했지만 신학 전공을 했을 때 읽었던 책이 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마녀사냥을 거의 마녀사냥 사업으로 삼았던 남독일에서는 남편을 잃은 부유한 과부 , 혹은 나이든 늙은이 , 힘이 없었던 귀족들을 많이 고발했다고 읽었던거같습니다. 그중에도 부유한 과부들이 많이 사냥당했다고 읽었던거같구요. 실제로 이들의 자산은 주교들 혹은 영주들이 가져갔거든요. 그리고 여자들이 많이 사냥당했던 이유도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이 마녀라는 존재를 만들었던 하인리히 크레이머와 자콥 스트렝거가 주장했던 이론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악마의 유혹에 약하다. 이 이론을 주장했었고 실제로 들어먹였죠 몰론 남자라고 마녀사냥을 안당했던건 아니지만... 몰론 도형님 말도 맞습니다. 마녀사냥 기록에 보면 평범한 여성이였던 사람이 집 앞을 빗자루로 쓸고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마녀로 기소되어서 84회에 걸친 고문과 거짓자백 요구를 했다는 ted에 나왔던 영상도 생각이 나는군요 m.ua-cam.com/video/7x5KesH3dzM/v-deo.html 그 테드 영상이 이겁니다.
@@박재신-n8i 네 님말도 맞다고 여겨집니다
실제 남성보다 여성이 많이 죽기도 했고요 - 러시아와 북유럽 제외 -
남독일은 사업인지 광풍인지 뭔가 불면서 부유한 과부들이 많이 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과부나 몰락 귀족 등은 그나마 기록이 남아서고 대개는 힘 없는 사람이 죽었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죽을 정도며 어마어마한 광풍이라고 해석하는 거죠
좋다 .
적당한 갈등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지나치면 심화되어 분열하고 내전까지 치닫죠.. 갈등이 없으면 나태해져서 몰락하고... 참... 역사라는 게
와우!
레콩키스타의 변천 알차다 알차
피레네산맥도 넘었지만...투르 푸아티에..
아직도 가족 중심적인 사회를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나라 스페인
이사벨1세는 그라나다를 멸망시킨후 무함마드 12세를 일부로 놔줍니다 무함마드 12세가 너무 잘생겼다는게 이유였다죠
사실 공존이라고는 해도 이슬람이 1류 기독교와 유대교가 2류인 공존이었죠
유대교야 어디가도 2류였으니 그러려니 했겠지만 기독교 입장에서는 ....
그래서 한 때 이베리아의 기독교 인구가 10프로 남짓까지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더욱 종교적으로 편향적으로 갔을 수 있다 봅니다
4:57 이런 이유로 피렌체이남은 아프리카라는 말이 생긴건가...?
스페인이 만약 관용 정책을 유지했으면 '대영 제국' 을 능가하는 '대스페인 제국'을 성립하고, 상당히 다채로운 문화 콘텐츠를 후세에 전달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종교적 관용을 넘어서 경제적 관용까지 베풀었다면 홉스봄의 이중혁명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음 근데 유대인을 추방시키지 않았더라도 영국인과 스페인인과의 민족적 차이때문에 영국이 결국 주도권을 가져오게 되었을 것 같아요.
일례로 대포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스페인은 민족성으로 기다리지 못 했기 때문에 영국보다 성능이 낮은 대포밖에 생산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유대인, 무어인 대축출 전에 유대인들이 스페인의 경제 분야를 맡고 무어인들이 농업을 맡았던 것처럼 관용정책을 유지했다면 군수 분야도 어느 정도는 커버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콩키스타는 절대 못 참지~!
9:00 왕인데... 초상화에 미화가 안 들어 갔네요.
이슬람 왕국이 부를 쌓은 방법과 정확하게 반대로 한 결과가 수많은 식민지를 선점했지만 죄다 잃어버리고 영국에게 주도권을 내줘버리는 결과로 이어짐.
5:42 쏘리질러~ DEUS VULT
1:20 뭐만 하면 유대인 때리내 ㅜ
유대인이 돈과 기술을 갖고 있으니 적당히 뺏고 내쫓는거죠. ㅎㅎ
@@jisungpark8952 저 유대인들은 스파라드 유태인이라 돈많던 부류가 아님.. 돈많던 유태인들은 동유럽에서 퍼진 아슈케나지 유태인들.. 얘네가 금융 무역에 종사한애덜임.
유대인은 땅을 못 가지게 만들어서 농업에 좋사하지 못하고 상업, 금융업에 많이 좋사 했는데 말이 좋아서 금융이지 고리대고 상업도 내가 하던 가게는 유대인랑 경쟁에 밀리기 일수인데 누가 좋게 보겠나요... 히틀러 때문에 유대인이 전세계적으로 동정표 받아서 그렇지 아니였으면 지금도 욕 엄청 먹으면서 살고 있을 듯.
@@kyeongsukim4699 역사에 '만약'은 없는건데,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이 히틀러 정권에 적극 협조했을 거라 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당시 독일에서 어느 정도 재력을 많이 가진 집단이라서. 그리고 지금 미국의 IBM이나 코카콜라 그외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대기업들이 당시 히틀러 정권에 협조했는데, (이건 인터넷 검색하면 금방 나옵니다.) 이들 기업의 상당수가 또한 유대인들 소유 기업들이죠.
참고자료있으니까 왠지 신뢰성이간다고해야하나? 솔직히 참고자료없이 걍올리는거는 그냥 남에꺼 그냥 가져다쓰는느낌.
현대의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통치
했다는~ㄷㄷㄷ
설명이 너무 빨라서 그런지 잘 이해가 안되네요 타 유튜버들과 비교해서 뭐가 문제인지..연구해보셔야 할 듯
남들 다 이해하고 있는데 본인만 잘 이해가 안간다면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나요?
중고등학교만 제대로 졸업해도 이해할만한 내용들
제노바가 아닌가?
♥♥♥♥♥
레콩키스타
목소리가 다니엘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