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 대한제국 애국가( National Anthem of Korea Empire) - Min Young-hwan(lyrics)/ Franz Eckert(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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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1 лют 2025
  • 【Korean History in Songs】 • Korean History in Song...
    ABOUT Lyricist:
    Min Yeong-hwan (7 August 1861 - 30 November 1905) was a minister of the Korean Empire and known as a conservative proponent for reform. He was born in Seoul into the powerful Yeoheung Min clan and committed suicide as an act of resistance against the Eulsa Treaty imposed by Japan on Korea. He was an adoptive nephew of Empress Myeongseong. He is remembered today for his efforts on behalf of Korean independence in the waning days of the Joseon dynasty and a statue to his memory now stands near the gates of Seoul's Changdeok Palace.
    ABOUT Composer:
    에케르트 [ Franz Eckert ]
    요약 작곡가·지휘자. 한국 이름은 예계로(譽啓爐). 대한제국(1897~1910) 시절 우리나라 양악대(洋樂隊)의 초대 지도자. 독일인(獨逸人) 음악가.
    출생 - 사망
    1852년 ~ 1916년
    에케르트
    1852년에 독일 시레지아주 재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드레스덴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군악대에 들어가 병역을 마치자 곧 해군 군악대장의 직책을 맡았다. 1879년 28세 때 일본으로 초빙되어 3년 동안 일본 해군 군악대의 교사로 취임했다. 1883년부터 3년간 음악취조소(音樂取調所) 곧 동경음악학교 전신의 음악교사를 겸임했으며, 그 후 궁내성(宮內省) 아악과(雅樂科)의 전임교사가 되었다. 22년 만에 귀국해 독일황제로부터 프러시아의 왕실악장이란 칭호를 받았고 우리 정부의 초청을 받아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다.
    1896년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민영환(閔泳煥)이 서양식 군악대를 창설하도록 상주한 이후, 주한독일영사를 통해 일본에서 서양음악과 군악대를 지도하다 귀국해 우리나라의 양악대를 지도하기 위하여 초빙되어 1901년(광무 4) 2월 27일 우리나라에 도착하여 양악대를 창설하였다. 일본에서 9개월 걸쳐서 이룬 성과를 한국에서 3개월 만에 달성할 수 있었다. 착수한 지 6개월 만에 60여 명의 대취주악단의 양악대를 길렀다.
    1904년(광무 8) 명성황후의 장례식 때 장송곡(葬送曲)을 지휘했고, 1902년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하였으며, 1915년 양악대가 해산되었으나 귀국하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국가(國歌)인 "대한제국애국가"(大韓帝國愛國歌)를 작곡했을 뿐만이 아니라 백우용(白禹鏞)을 비롯한 양악의 선구자들을 길러냈다.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이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우리나라에 머물다가 1916년 8월 6일 65세를 일기로 회현동(會賢洞) 자택에서 숨졌다.

КОМЕНТАРІ • 1

  • @jettury1004
    @jettury1004 Місяць тому

    에케르트는 일본의 기미가요도 작곡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