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할아버지가 4.3때 사귀포경찰에 잡혀가신후로 실종상태로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당시 엄마를 데리고 몇시간을 걸어 매일 경찰서로 찾아갔지만 한번도 만나지 못했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배운사람도 빨갱이도 아닌 그냥 농사꾼이었습니다 그후 오십년이 넘도록 시신은 물론 어디서 어떻게 된건지도 모른채 제사조차 제대로 지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2007년 정뜨르비행장에서 발굴된 유골중 dna검사를 통해 할아버지 유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유해발굴현장을 시뮬레이션한것을 보고 정말 경악했습니다 커다란 웅덩이를 파놓고 빙둘러 사람들을 세워놓고 총살했습니다 총을 맞은 사람들이 그 웅덩이안으로 스스로 빠지도록 정말 이 효율성이란 그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시민들에게 위협을 주기위해 경찰서에는 죽은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 처마밑에 걸어두기까지 했습니다 이게 같은나란 국민에게 저지를 수 있는 일입니까?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는 자주 말씀하시길 낮에는 순경이 괴롭히고 밤에는 폭도가 괴롭혔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경찰을 신뢰하시지 않으셨지요 그후 할머니는 스스로 흙집을 지어야 할정도로 힘들었고 저희어머니는 국민학교 제대로 다니지 못할정도로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4.3은 사건이 아닙니다 끝없이 고통으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4.3만 되면 뉴스댓글을 보면 정말 미치도록분노하게 되고 혹시라도 엄마가 알까봐 무섭습니다 대부분의 희생자분들 그저 누군가의 가족인 시민이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잘모르는 그저 농사꾼이었습니다 그러고도 가족들은 수십년을 숨죽어 지내야 했습니다 저또한 어렸을적 어렴풋이만 알았지 할아버지가 4.3희생자란걸 안것은 대학교에 들어갈 즈음이었습니다 얼마나 공권력이 무서웠으면 그랬을까요 그런 만행을 저지른 서북청년단들은 다 국가유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분들이 그런 말도 안되는 욕을 먹어야 하나요 한번쯤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온갖 고초와 치욕을 겪으며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해주었으면 하네요 4.3기념관에는 지금도 자신의 이름을 찾지못한 명패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학생때 교수님이 순이삼촌 리포트 써오라고 하셔서 우리 어멍(어머니)한테 여쭤본적이 있었는데 울어멍이 알앙머허젠햄시니(알아서 뭐하려고)잡혀간다 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물론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였지만 그시절 겪으신 제주 어르신들은 트라우마에 여전히 몸서리치시죠.참 많이도 죽였어요ㅠㅠ
어머니 이름이 '순이' 라 참 여러 생각을 하게 된 책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을 정리하고 교육을 하는 부분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도에 살고있는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대 이 사건에 연관이 없는 육지 분들은 오죽할까 하고요... 이런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 역사에 아픈 일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던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월요일에 너븐숭이 4.3기념관 다녀왔는데 순이삼촌이라닝!!ㅠ 통했네여!!!크윽!! 제주 가시는 분들 꼭 한번 들려보세요! 크지는 않지만 4.3에 대해 잘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평소 우키앵이 쓰는 기사 참 좋아하는데요! 글을 매우 잘 쓰기 때문이죠!! 어떤 책을 읽어야 이런 글이 나오는지에 대해 항상 궁금 해서 우키앵이 책을 추천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50권을 추천해 준다닝!! 너무 너무 좋네요😆 다 읽어야딩!!!! 신남🤭
이 세상은 내가 태어나면 생기고, 내가 죽으면 이 세상도 사라집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 그 자체입니다. 이렇게 귀중한 생명을 무고하게 죽이고도 뻔뻔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오직 똘똘한 국민만이 이들의 뻔뻔함을 시들게 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식과 내 부모가 무고하게 죽었다면 절대 헛소리 못하겠지요. 가짜와 엉터리 정보에 제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제주4.3에 대해 알게 해 준 게 바로 현기영님의 소설 '순이 삼촌'이었습니다. 정말 그때 엄청 충격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소설을 읽기 전 까지 제주4.3이 일어났던 일인 거 자체도 몰랐으니까요. 지금이야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땐 제주분들 외에 대부분 몰랐을 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고통을 당했지만 여전히 책임져야 하는 가해자는 없으니 아직도 제주 4.3의 역사는 왜곡되는게 많나 봅니다. 제주 4.3에 맞춰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이 책이 5.18민주항쟁에 관한 책이었던가 순간 착각할 뻔 했습니다.
고문당한 문인들이 더 있습니다. 소설 "분지" 를 쓴 남정현 소설가가 대표적입니다. 1967,68년 끌려가 엄청난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 뒤로 담시 "오적"의 김지하 시인, 문인간첩단사건과 전두환의 5.17계엄확대에 의한 김대중내란음모 사건 때에 끌려갔던 이호철 소설가가 있습니다.
우키앵 몰이가 정말 재밌어...요즘 제일 재미난 것 중의 하나..ㅋㅋㅋㅋㅋㅋ 순이삼촌..엄마, 이거 예전에 우리 꼭 읽어라고 줬던 책 아니예요? 응..읽었어? 읽었죠, 근데 요즘 이거 뜨고 있어요.. 몇 년 전의 아이와의 대화다. 나는 이런 일에 인생의 뿌듯함을 느끼는 단순한 사람~^^
아.. 4.3이 너무 억울한 사건이라는것도 알고 이번정부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참석 기념식도 했다는것도 아는데 사실 제주도라하면 관광지로만 인식이 되어서 그 아픔이 잘 전달이 안됐거든요. 이번 소설 소개로 인해 영화나 드라마도 제작되고 하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알아가면 좋겠네요. 우키앵 멋져요!!!!
수능준비시절 근현대사 4.3사건파트 공부하다가 책덮고 도서관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객관적인 기술에서조차 그 분통함이 절절히 새어나왔어요. 가해자는 처벌받지도 않고 정부가 바뀌어도 사건을 외면했던 그 세월동안 피해자와 유족들은 그 아픔을 얼마나 억누르고 살았을지.. 이것을 생생히 담아내고 후대에 고스란히 전달하는 문학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댓읽기 기자분들 너무 너무 좋아해서 소박하게 글 남깁니다. 주변분들에게도 널리 알립니다 ^^ 섬의 특징이 있습니다. 공간이 한정적이라 독립적이고 합리적 사고 방식이어야 그 사회가 유지 된다고 합니다. 제주는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살아도 살림, 식사 각자 합니다. 완전 개방형 사고입니다. 교육도 아들 딸 구별 없습니다. 경제 활동도 남자 여자 구분없습니다. 당시 제주는 육지와 달리 봉건 사회가 아니라 지위 고하, 지주와 소작농 뭐 이런 거 없습니다. 일 예로 부부가 초상집을 갑니다. 부조금을 남편도 내고 부인도 냅니다. 남편이 냈다고 부인이 안 내는 거 뭐 그런 거 없습니다. 남편이 상대방 아는 것은 아는 거고 부인인 내가 아는 건 또 부인이 아는 겁니다. 남편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이재수의 난을 겪고 제국에 대한 폐단과 자식들을 공부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각 동네마다 야학이 있었고 산을 넘고 넘어야 학교 하나 있는 육지와 달리 동네 마을 마다 학교가 다 있고 기본 역사가 100년~ 70년 이상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40년 전 제주 이사와서 제일 놀란 건 육지는 당시 할머니들 까막눈이 많았는데 제주는 시골 할머니들인데도 까막눈이 없더라는. 그리고 일제시대때 제주~ 오사카 직항 노선배가 있어 일본 유학, 공장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가면서 신문물, 노동운동에 많이 깨어 있었습니다. 합리적 사고와 독립적 성향. 학문이 밝고. 이런 성향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우리 땅, 해방된 땅에 불합리한 일들이 생겨납니다. 미군정이 들어서고 47년 서북 청년단이 제주 들어오면서 잔인 무도한 사건, 서북 청년단 사무실에는 피 비린내가 진동하고 당시 아기들도 서북 청년단 온다 하면 울음을 뚝 그쳤다고 할 정도로 공포였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똑똑하고 젊으면 감옥에 갇히고 고문당해서 죽고... 맘에 안든다고 총 쏘아죽어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무법천지였습니다. 해방된 땅에 일련에 상황이 꿈꾸던 조국이 아닙니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합리적이고 독립적 성향이 강한 제주 사람들의 성향으로는 탄압하는데 항쟁하지요. 그러나 항쟁에 대처하는 고위층들의 태도는 그냥 싹쓰리입니다. 30만 제주도민 죽어도 좋다 빨갱이만 잡을 수 있다면... (박진경) 이런 방식은 오키나와를 학살로 내 몬 일본과 뭐가 다른가요? 매카시즘에 놀아난 미국이나 한국이나... 할 말은 많으나... 그리고 당시 남로당은 이적단체가 아닙니다. 남로당 빨갱이 에고...지금 시대에 만약 민주 노동당이 빨갱이라고 하면 얼마나 우습습니까? 당시 일본에도 공산당이 있고 구석진 곳이지만 간판이 시내 한 건물에 걸려 있었답니다. 만약 제주에 그런 건물이 있었으면 그 건물과 지역 주민들은 과연 무사했을까요? 권력의 해석에 따라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다면....;;;; 4.3 탄압한 자들이 승승장구하고 잘나가는 면면히 보면 더 이해가 갈 듯. 그들의 후예들이 베트남 양민학살, 5.18... 지금도 호위호식하고 잘 사는데... 제주 사는 분들 4.3 모릅니다. (그저 사람이 많이 죽은 정도) 4.3 에서 살아 나온 분들은 절대 자손들이 그 누구에게도 4.3 얘기 안합니다. 말하면 곧 죽음이니까요. 동네 할머니가 예전 한 마디 한 게 생각납니다. 마을 지서 앞에 늘 한라산 공비라고 목 짤린 사람 얼굴을 내걸어 놓았다고. 체 게바라보다 20년 앞 선 투쟁가들의 삶을 우리 문학에서 누군가는 다뤄줬으면....
제주에 내려가서 만행을 저지른 서북청년단의 코어가 한국 개신교의 본부격이었던 서울 영락교회 청년들이었고, 그 청년들이 일부는 제주에 남고 일부는 서울로 돌아와서 집사 되고, 장로 되고, 신학교 가서 목사 되고 평생 반공을 외치면서 퍼져나가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저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유명한 깡패 시라소니도 서북청년단에서 활약했고 나중에 영락교회 집사가 되었죠. 최근까지도 유명한 조폭 두목이 대형교회 유명 목사와 친하고 새 삶을 산다면서 교회를 이용해서 이미지메이킹을 했던 것도 시라소니와 영락교회가 시초라고 봐야죠.
하산을 하라고 방송을 했고, 하산하지 않은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간주를 했는데 이건 사실 말이 안돼요. 그 당시에는 라디오도 제대로 보급이 안되던 시절인데 산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하산하라는 방송을 듣겠어요. 애초에 죽이려는 의도가 다분했고 그래서 친할아버지가 이때 총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20세기 말, 대학교 신입생들의 첫 학습 교재가 '순이삼촌'이었다. 여순에서 이어지는 서북청년단과 '순사' 출신들의 만행, 이승만에 대한 분노, 그 후에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만행, 역사적 사실은 파도 속에 가라앉았다가는 솟아오르고... 아무도 먹을 수 없었다는 너무도 커다란 감자...가 목에 메이는...
05:34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둘 다 닮은건 인정
모함택시에 있는 우키엥 뜯어먹는 피라냐들 우키엥은 닭강정을 먹지 말고 갖고 왔어야 했어 지슬도 보면 좋을듯 함 그리고 남로당원이 경찰서를 습격했는데 성격상 반란 이라는데에는 동의를 못하겠음 남로당원이 아닌 제주도민이 습격을 했다면 반란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고 보는데 우키엥의 생각은 어떤지 다음방송서 말해주면 고마울듯
지금은 518 민주항쟁이라고 하지만, 예전엔 광주사태라고 불렀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광주사태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어떻게 광주사태라고 하느냐?'는 질책이 있곤 했었지요. 아무래도 광주의 당사자이거나 광주에 투사하는 사람들에게선 '사태'라는 중립적인 단어에도 아픔을 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사태'라는 말이 나쁜 뉘앙스를 주는 단어가 전혀 아님에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진의가 어떻든 '반란'이란 단어 사용 자체가 그리 바람직해보이진 않습니다. 실시간 챗을 하다보니 방송 내용에 영 집중할 수 없어 이해가 안 되서 다시 들어봤습니다. 43 성격을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고 그 주 피해자를 '아이, 여성, 노인'로 생각해서 남로당의 폭력 자체도 43 폭력의 일부라고 보고 그것에 대한 반감으로 '반란'이라 표현하신 거라 봤습니다. 단순히 경찰서 기습만이 아닌 그 이후의 폭력행위까지 통틀어 '반란'으로 표현한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고 경찰서 기습이란 것 자체만으로 반란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면 광주 시위대가 전남도청을 점거한 것도 그 자체로보면 '반란' 행위였겠지요. 그렇다한들 항쟁과 혁명에 부적절한 행태가 없었을까요? 혹은 불의한 행태가 전혀 없어야만 항쟁과 혁명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마치 비폭력으로 여기고 있는 31운동도 일제의 야만이 거세짐에 따라 폭도의 모습으로 약탈, 살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31운동을 폄훼할 수는 없겠지요. 제가 보기엔 2016년 촛불이 비폭력이었다 해서 그 기준으로 과거를 본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헌법을 배웠을 때, 혁명의 요건으로 '비폭력'을 꼽았지요. 하지만 법 정당성의 차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일 뿐 역사 사실에서 비폭력이었던 건 2016년 한국?^^ 저는 43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항쟁이 맞는지 국가의 민중학살로 볼지 판단이 서진 않습니다. 그러나 43에 민중항쟁의 성격이 있다면 그것을 정당히 평가해주는 것이 옳지 않나 싶습니다. 43을 국가폭력으로 한정해서 본다면 '트리거'란 표현은 옳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민중항쟁으로 본다면 조금 다르게 볼 수 있겠고요. 한국전쟁에 대한 설이 생각납니다. 북침설, 남침설, 내전설 분분했지요.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내전설을 얘기했고요. 지금은 소련 기밀 문서가 나오면서 남침설을 정설로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본다면 남침설은 맞지 않습니다. 남북 정부가 세워지면서 양측의 전투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승만은 미국의 힘을 받아 북진을 주장했고 김일성도 그렇게 남침을 계획했습니다. 결국 김일성은 소련, 중국을 끌어들였고 내전은 국제전이 됐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의 성격을 국제전으로 본다면 남침설이 더 옳습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트리거를 얘기하다 한국전쟁이 생각난 건, 43에 대한 성격을 제가 판단하기 어려워서 입니다. 과연 어디를 43의 시점으로 보는 게 맞을까요? 사람들이 잘 정리해줘서 저는 편히 판단하길 바랍니다. 전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어디 한군데를 파고들기 싫어라 해서요. 남들 고심해서 연구한 거 잘 받아 판단했음 싶습니다. 앞으론 실시간 챗은 못하겠습니다. 영 방송 내용을 못 따라 잡네요. 이젠 멀티플이 안되는...ㅠㅠ 그럼.
평소 댓읽기를 묵묵히 조용히 보는 시청자이지만, 제주 4.3 관련해서는 반대 의견을 좀 쓰겠습니다. 순이 삼촌, 지슬 다 좋은 작품이죠. 그치만 제주 4.3 을 제대로 알려면 역사학자 강의를 한편 보는게 나을듯 싶습니다. 고향이 제주인 저도 제주 4.3 관련 다큐가 있으면 챙겨보지만 모를 수도 있고 잊었을 수도 있으니 어떤 댓글 토론이든 환영합니다. 저는 참고로 kbs에서 반영한 제주 4.3 관련 도올 강의를 바탕으로 근거를 얘기하겠습니다. 김기화 기자님이 말한 제주 4.3은 남로당의 반란이 트리거 였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350명의 무장대가 12개의 경찰 지서와 서청 등 우익단체의 집을 습격했다. 이걸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가만히 있던 제주도민들이 남로당이 되어 경찰서를 습격했을까요? 경찰서를 습격했던 원인이 오히려 트리거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47년 3.1절 발포사건 이후 대규모 민관 총파업이 일어났고 검속 한달만에 500여명 체포, 1년 동안 2500여명 구금. 그리고 가장 원인이 됐던건 48년 일선 경찰지서에서 세 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해서 제주 사회는 금방 폭팔할 것 같은 분위기 였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생각하면 시민들의 저항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350명의 무장대가 좌익이 뭔지, 우익이 뭔지, 남로당이 뭔지를 알고 경찰서를 습격 했을까요? 공권력의 저항이라면... 그 당시 미군정이었는데 5.10 선거 전이잖아요? 대한민국 정부에 저항을 한건가요? 1987년 제주대학생들은 제주 4.3 을 제주 4.3 민중항쟁 이라 불러지길 바랬다. ( 도올 김용옥, 제주 4.3을 말하다 2부 초반) 처음 제주 4.3을 공론화하려 했던 제주대생들이 왜 민중항쟁이라 불러지길 바랬을까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제주 4. 3의 원인은 남한의 독립적인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로당의 반.란.이 맞습니다." 정연욱 기자처럼 주장하는 곳을 한 곳 찾았습니다. "제주 4, 3 사건은 제주도에 자리잡은 공산세력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기 위해 일으켰던 무장폭동이었다. 이걸 진압하는 과정에서 미군정과 정부군의 지나친 토벌 작전으로 인해 무고한 양민의 인권들도 짓밟혔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ㅡ 윤서인 (윤튜브 진행하는 .....말하기도 그런...)ㅡ 언론에서 말해주지 않는 제주 4.3 사건의 본질 ㅡ
제주도분일거라 어림짐작 하고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다 이해 되지만 아시다시피 제주4.3이 세상에 알려지고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된게 얼마 안된걸로 알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당시 혼란했던 정세를 아픔을 제주도민들이 겪어온 그 세월을 온전히 다 알순 없겠지만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한 과정 속에 있다 이해해주시면 안될까요? 역사 사료나 다큐나 역사 강의로 알아가는 방법도 물론 있고 장점도 또한 있지만 쉽게 접할수 있는 문화가 우선은 조성되어야 하고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 전반적인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방면으로 자주 노출 되는것이 모든 연령층을 다 아우르고 설득적으로 다가가기에 더 효율적일거라 생각해요. 정연욱 기자님이 저번 방송에서 하셨던 말씀은, 당일 주제가 아닌 내용중 일부 발언이었던지라 편집해서 잘린 내용도 다수 있었을테고 제가 받아들이기엔 정기자님이 "제주4.3의 원인은 무장대가 경찰서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하고 원인을 단정지어 말씀하신걸로 보이지 않았어요. 아픔을 지니고 직접 겪으신 분들에게 그 아픔의 깊이가 어떨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역사를 알아가고 통찰해가고 바로잡아가는 노력과 과정속에 있다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국내 정치인들과 선거시기가 맞물린 당시 정세나 국내 국외 상황들이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역사인것은 분명하고 남로당과 토벌대와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참극을 설명하는 한 과정에서, 시간의 한계가 있는 방송에서 나온 말들이었고, 기자님들도 제주 이외 다른지역 사람들도 피해입으신 제주도민분들의 아픔을 어느정도는 공감하고 계실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내뱉어지는 발언들이 당사자들에겐 아픔으로 느껴질수도 있는 문제라 더 조심스럽지만 그래서 더욱 공론화 하고 드러내면서 하나하나 바로잡혀 가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턱이 낮은 예술작품들도 국민들이 제주4.3에 대해 알아가고 공부할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거라 생각해요. 문학작품이나 예술의 파급력은 상당하고, 그것이 점점 더 많은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배경이 되고, 그것을 시작으로 호기심이 생겨 사료도 찾아보고 다큐도 찾아보고 강연도 들어보고 할테니까요. 조심스럽지만 작으나마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존스노우 작년 4월 4일 Kbs 9시 뉴스, 클로징 멘트에서 정기자님이 순이 삼촌 책을 언급하셨지요. 그 후로도 4.3 사건에 대해서 댓읽기 방송중에 몇번 더 언급을 하셨고요. 그 덕에 정기자님이 우리에게 역사적 관심과 환기를 주셨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윤모씨와 같은 선상에서 언급되는 댓글이라니요. 그냥 사랑놀음 얘기책이나 가지고 오시지, 코로나 확진자수 현황이나 말씀하시지, 그 좋아하시는 클래식 음악 기사만 쓰시지... 무엇하러 논란의 불씨가 있는 주제를 자꾸 가져오셔서, 스스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십니까. 우리가 짐작하는것보다 더 많은 논란과 시시비비 한 가운데에 외롭게 계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또 화두를 던지실거고, 그들의 이야기를 감내하시겠죠. 그래서 우리가 그를 응원하고 사랑하나봅니다.
존스노우님,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댓읽기 구독자인데요.. 저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제주 4.3 사건도 자세히 공부한적이있는데.. 정연욱 기자님 말씀하신게 어느 부분이 틀렸다는건지 잘 모르겠어서 답글달아봅니다... 1. 독립이후 우리나라는 미군정시대를 지냄. 미군은 패망한 일본을 더이상 적으로 보지않고.. 새로운 사회주의세력인 '소련'을 적으로 봄.. 그래서 광복이후에도 우리나라에 계속 친일경찰 친일공무원들을 등용함. 우리 국민들은..이제 친일파도 벌받고 청산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음. 2. 엎친데덮친격으로 제주도가 도로 승격되면서(겉으로는 도로 승격되는게 좋아보이지만 그게 아니었음) 세금도 많이 납부하게되고(미군정이 엄청많이 세금 요구함. 경제수탈임.) 실업률도 높아지고 전염병도 돌면서 상황이 엄청 안좋아짐.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치안강화를 목적으로 미국은 제주도에 더 많은 친일파출신 육지경찰, 즉 응원경찰들을 충원시킴. 일제강점기시대에 독립운동가들과 국민들을 괴롭힌 친일파 경찰들을 또 보게 되니 도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함.. 이에 도민들은 불편한 감정을 갖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3. 1947년 3월 1일 3.1운동을 계승하고자 3만여명의 제주도민들이 평화가두시위를 진행함. 이 과정에서 6살꼬마아이가 경찰의 말발굽에의해 크게 다침.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치하지 않은채 도망가고... 군중들이 화가나서 돌을 던지면서 그 경찰을 따라감. 그 모습을 보던 다른 경찰관들이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오인하고 도민들을 향하여 총을 발포함. 이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 6명이 죽게됨. 4. 이로인하여 1947년 3월 10일 도민들은 진상규명시위를 펼치게되고,(심지어 제주 경찰들까지 파업에 참여) 직장에 나가지 않고 장사를 하지 않는 등 총파업에 돌입함. 그리고 이런 소문이 서울에까지 퍼지게됨. 이 소문을 들은 서울경찰 중앙경무부장 조병옥??은(이름이 잘 기억이 안나요 아무튼ㅠㅠ) 제주도민들을향해 사상이 불온하고 건국에 저해된다면 싹 쏘아버리겠다라고 협박함.. 이후 제주도에는 응원경찰이 더 충원되었고 이때 서북청년단(반공.친미.반공우익집단)도 거의 경찰급이되어.. 좌익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목하에 사람들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난리핌. 1947년 한해동안 2000명이 넘는 제주도민들을 고문함. (아니ㅡㅡ 아이의 죽음에대해 진상규명하라고 목소리 낸건데 무슨 좌익세력 타령임?? 이 사건은 사회주의세력뿐만 아니라 전 제주도 도민이 전부 빡친 사건이었음. 제주도지사도 사표내고 공무원들도 개빡쳤음. 무조건 다 빨갱이로 몰아가는데 그럼 제주도지사도 교사들도 다 빨갱이냐? 상식적으로 생각해야지ㅡㅡ 제주도민들을 지켜야하는 제주도경찰들이 사람을 총쏴서 죽인거에 빡쳤는데 거기서 사회주의세력이 왜 나와ㅡㅡ ) 5.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1948년4월3일 제주 4.3사건이 발발함. 제주4.3사건은 1948.4.3-1954.9.21까지 발생한 사건으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의 주도 아래 경찰과 서청의 탄압중지와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 촉구 등의 슬로건을 걸고 무장봉이 일으킨 사건을 말함. (님 말씀처럼.. 제가 위에서 언급한 1947년 3.1일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3.10 총파업,, 3명의 청년 사망사건을 거치면서 제주도민들의 분노는 폭팔직전이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48년 4월 3일 4.3사건이 터지게되죠.. 제가 4.3사건을 배울때 앞의 기점이 되는 사건(즉, 제주4.3사건의 도화선이 되는 사건들)을 배경으로 배운 후, 4.3일 남로당의 무장봉 세력에의해 제주 4.3사건이 발발되었다고 배웠는데.. 정연욱 기자님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거아닌가요? 틀린게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ㅠㅠㅠ 제가 지금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건가요?ㅠㅠㅠ) 아무튼..이 과정에서 4.3당일 경찰과 우익인사 12명이 사망함. (이 과정에서 좌익무장대 세력들도 제주도민에 피해를 입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 6. 이로인해 당시정부는 군대를 투입하려고하였음. 하지만 '미군정'이 파견한 김익렬이라는 사람은 이 일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원했고 당시 좌익무장대총책임자였던 김달삼과 만나서 협상함.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서로 약속했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이 약속과정이 참 감동적임 ㅠㅠㅠ친일파라고 볼 수 도있는 김익렬이 제주도 상황을 보고 이건아니라고 느꼈는지.. 김달삼만나서 설득함.) 이렇게 약속이 잘 되어서 무장대도 시위를 중단함. 서로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끼리 협상을 잘 이끌어 낸거임..근데 이게 왠일.. 약속이 결렬됨.....약속결렬원인이 '오가리방화사건'인데.. 미군정에선 이거 무장대들이 폭동 일으킨거라고 주장하면서 저 빨갱이 세력들이 협상 약속 안지킨거라고우김. 근데 알고보니 우익 청년들이 마을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었음... (하... 미치겠다,, 충분히 평화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건 평화적으로 마무리하려했던 미군정의 입장이 갑자기 대토벌적(제주도 토벌하는거...ㅠㅠ)으로 변화한거임...여기서 협상을 이끌어낸 김익렬도 빨갱이로 몰아버리고,, 미군정은 제주도민들 다 죽이라고하고... 난리남 ㅠㅠ 7. 사태가 악화되는도중 1948.5.10선거가 치뤄짐. 우리역사상 처음으로 선거가 치러진거임.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당시 무정부상태였기때문에 통일 정부를 누가 어떻게 만들거냐로 갈등이 엄청 심했음. - 이승만 : 남한만이라도 선거하자. 남한 단독 정부를 세우자. - 김구, 김규식: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서 물러가라고 주장함) 아무튼 갈등치닫으면서 김구선생님 5.10 선거 불참.. 김구 선생님등 선거 불참세력은 권력을 잃게됨.... 제주도민들도 민족분단에 반대하면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 많았음. (좌익세력의 투표 방해 등도 있었음) 이런 이유들로 제주도는 전국에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지역으로 낙인찍힘. 사회주의자들의 섬.. 빨간섬으로 낙인찍힘.. 8. 화난 이승만은 1948.11.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초토화작전을 펼침.(아 맞다.. 계엄령전에 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사건도 잊으면 안됨. 이승만이 여수 순천에있는 군대 동원해서 제주도민 학살하려고했음. 그러나 병사들은 같은 민족인 제주도민을 왜 공격하냐고 거부하고. 단독정부수립도거부함. 암튼 제주도 진압 명령 거부함. 이때문에 이승만은 여기 사람들도 엄청 공격함.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희생됨. 아우 화가납니다ㅠㅠ ) 암튼 11월 17일 계엄령 선포하고.. 경찰, 군인, 서북청년단 등 토벌대가 제주도민들 학살. 제주도민을 전부 빨갱이 사회주의세력으로 몰면서 태워죽이고 굶겨죽이고 때려죽이고 별별 수단을 다씀... 이에 무고한 제주도민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피해를 입음.. 이걸 제주도 중산간 소개령이라고하는데.. 진짜 진짜 개빡침.. 토벌단들이 무장대를 공격한다는 이유로 제주도민들을 다른대로 대피시키는데... 대피시켰으면 그 후에 도민들 잘 보살펴줘야될꺼아니야.. 근데 다 죽여버림.. 그러니까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무서워서 이곳저곳에 산이나 기슭에 숨어버림. 토벌단은 이제 더이상 무장대만이 아닌 숨어있는 제주도민들까지 찾아내서 빨갱이라고 몰아부치고 다 죽여버림... (물론 이때 토벌대만 피해준건아님. 무장대도 비판에서 자유롭지못함. 그러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토벌대에 의해 잔인하게 희생됨. 무조건 그냥 다 전부 빨갱이로 모는 상황.. 민간인들 대상으로 총기난사 연습하고 미친 짓 많이함.) 9. 그 이후에도 제주도민들은 계속 빨갱이로 낙인 찍히면서 살다가 민주정부에들어서야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받게됨..
저희 할아버지가 4.3때 사귀포경찰에 잡혀가신후로 실종상태로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당시 엄마를 데리고 몇시간을 걸어 매일 경찰서로 찾아갔지만 한번도 만나지 못했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배운사람도 빨갱이도 아닌 그냥 농사꾼이었습니다 그후 오십년이 넘도록 시신은 물론 어디서 어떻게 된건지도 모른채 제사조차 제대로 지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2007년 정뜨르비행장에서 발굴된 유골중 dna검사를 통해 할아버지 유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유해발굴현장을 시뮬레이션한것을 보고 정말 경악했습니다 커다란 웅덩이를 파놓고 빙둘러 사람들을 세워놓고 총살했습니다 총을 맞은 사람들이 그 웅덩이안으로 스스로 빠지도록
정말 이 효율성이란
그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시민들에게 위협을 주기위해 경찰서에는 죽은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 처마밑에 걸어두기까지 했습니다
이게 같은나란 국민에게 저지를 수 있는 일입니까?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는 자주 말씀하시길 낮에는 순경이 괴롭히고 밤에는 폭도가 괴롭혔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경찰을 신뢰하시지 않으셨지요 그후 할머니는 스스로 흙집을 지어야 할정도로 힘들었고 저희어머니는 국민학교 제대로 다니지 못할정도로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4.3은 사건이 아닙니다 끝없이 고통으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4.3만 되면 뉴스댓글을 보면 정말 미치도록분노하게 되고 혹시라도 엄마가 알까봐 무섭습니다
대부분의 희생자분들 그저 누군가의 가족인 시민이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잘모르는 그저 농사꾼이었습니다
그러고도 가족들은 수십년을 숨죽어 지내야 했습니다
저또한 어렸을적 어렴풋이만 알았지 할아버지가 4.3희생자란걸 안것은 대학교에 들어갈 즈음이었습니다 얼마나 공권력이 무서웠으면 그랬을까요
그런 만행을 저지른 서북청년단들은 다 국가유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분들이 그런 말도 안되는 욕을 먹어야 하나요 한번쯤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온갖 고초와 치욕을 겪으며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해주었으면 하네요
4.3기념관에는 지금도 자신의 이름을 찾지못한 명패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도 생생한 증거가 이렇게 있는데 슬프고 저립니다
우리민족의 '한' 이 많은 역사 이야기들...
님의 글을 정독하고 천천히 읽으면서 왜이리 슬프고 미안한지요...
가족의 치료될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수 있을까요?
오늘밤 만큼은 님의 생각에 같이 동참하며 거기에 머물겠습니다.
그리고 꼭 기억하겠습니다.
숨죽여 살아야했던 우리 역사의 희생자 분들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안될 것 같네요
정말 너무 가슴이 먹먹하고 슬퍼요.
할 수 있는 거라곤 기억하고 똑바로 전하는 것뿐이라 ㅠㅠ
가족분들의 상처가 제주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옅어지길 바랍니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가족들이 오롯히 견뎌내시고 계시는군요.
대부분은 제주도 비극 잘 알고 있습니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에게 마음 상처 받지 말으시길...
요즘 4.3사건이 더 알려져서 다행입니다 ㅠ
아직도 이승만 찬양하는 인간들이 있다는게 어이없네요 ㅠㅠ
4.3사건, 보도연맹사건, 국민군 사건만 해도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인데
우리 한국 현대사의 6.25 전쟁에 이어 최대의 비극인 4.3항쟁을 다룬 "순이삼촌"을 다뤄 깜짝 놀랐습니다. 젊은이들이 이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게 해 줘 너무나 고맙습니다.
저도 젊은분들이 4.3 항쟁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지식에 놀랐답니다.
다시한번 돌려서 집중하고 시청했습니다.
역사의 무관심과 잘못된 역사 교육은 자식을 괴물로 만들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자식이 쓰레기 인성을 가졌다는 말은 듣지 않도록 키워야 한다.
학생때 교수님이 순이삼촌 리포트 써오라고 하셔서 우리 어멍(어머니)한테 여쭤본적이 있었는데 울어멍이 알앙머허젠햄시니(알아서 뭐하려고)잡혀간다 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물론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였지만 그시절 겪으신 제주 어르신들은 트라우마에 여전히 몸서리치시죠.참 많이도 죽였어요ㅠㅠ
언급되는 서북청년단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만들어진 자유개척청년단 대표가 대한의사협회장 최대집입니다.
그리고 그 부대표 장기정은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치킨(폭식)파티를 열었죠.
순이삼촌......
읽고 나서도 충격이커서 한참 잔상이 남았다는........
동굴속에 구더기가 ..........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
힘없는 민초들의 서러운 이야기........
오늘방송 뭔가 울림이 깊은것같아요... 순이삼촌 꼭 읽어볼께요!
영화 '지슬'도 추천합니다.
눈물콧물 빼며 봤던 두권. 순이삼촌, 소년이온다...
국회의원들 뽑는거 보면 갑갑합니다. 그래놓고 억울하다고
원자력 발전소 지어야 지역발전할수 있다는 국회의원 뽑아 놓고는, 원전 반대시위하고 있는 곳도 있고. 에휴
우키앵~ 사회를 바라보는 순수한 열정과 감수성 멋져요~ 늘 응원합니다^^
우키앵 진짜 누구 생겼네 ㅋㅋ휴가에 속초라니~
운전하몀서 혼자 닭강정을 꺼내먹긴 힘들죠^^ ㅋㅋㅋ
그나저나 ㅋ닭강정은 늘~ 그래서 내 거 하나, 선물 하나 ㅋ이렇게 사는 게 진리!
어머니 이름이 '순이' 라 참 여러 생각을 하게 된 책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을 정리하고 교육을 하는 부분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도에 살고있는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대 이 사건에 연관이 없는 육지 분들은 오죽할까 하고요...
이런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 역사에 아픈 일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던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월요일에 너븐숭이 4.3기념관 다녀왔는데 순이삼촌이라닝!!ㅠ 통했네여!!!크윽!!
제주 가시는 분들 꼭 한번 들려보세요! 크지는 않지만 4.3에 대해 잘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평소 우키앵이 쓰는 기사 참 좋아하는데요! 글을 매우 잘 쓰기 때문이죠!! 어떤 책을 읽어야 이런 글이 나오는지에 대해 항상 궁금 해서 우키앵이 책을 추천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50권을 추천해 준다닝!!
너무 너무 좋네요😆 다 읽어야딩!!!! 신남🤭
저도 욱키앵 보려고 주말뉴스 사수하고있습니다
이 세상은 내가 태어나면 생기고, 내가 죽으면 이 세상도 사라집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 그 자체입니다.
이렇게 귀중한 생명을 무고하게 죽이고도 뻔뻔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오직 똘똘한 국민만이 이들의 뻔뻔함을 시들게 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식과 내 부모가 무고하게 죽었다면 절대 헛소리 못하겠지요.
가짜와 엉터리 정보에 제발 속지 말아야 합니다.
또다른 제주출신인 화가 강요배님의 '풍경의 깊이'란 책도 추천합니다. 좀 크고 두껍지만 4.3사건의 고통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낸 좋은 책입니다.
가볍게 시작해서, 묵직하게 남네요. 잘 보고 갑니다.
4.3, 그리고 5.18을 두고 빨갱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뭡니까? 그들은 어느 시대를 살아가며 어떤 정보를 듣고 배워 그런 생각을하고 말을 지꺼리는지..
제주4.3에 대해 알게 해 준 게 바로 현기영님의 소설 '순이 삼촌'이었습니다.
정말 그때 엄청 충격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소설을 읽기 전 까지 제주4.3이 일어났던 일인 거 자체도 몰랐으니까요.
지금이야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땐 제주분들 외에 대부분 몰랐을 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고통을 당했지만 여전히 책임져야 하는 가해자는 없으니 아직도 제주 4.3의 역사는 왜곡되는게 많나 봅니다.
제주 4.3에 맞춰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이 책이 5.18민주항쟁에 관한 책이었던가 순간 착각할 뻔 했습니다.
고문당한 문인들이 더 있습니다. 소설 "분지" 를 쓴 남정현 소설가가 대표적입니다. 1967,68년 끌려가 엄청난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 뒤로 담시 "오적"의 김지하 시인, 문인간첩단사건과 전두환의 5.17계엄확대에 의한 김대중내란음모 사건 때에 끌려갔던 이호철 소설가가 있습니다.
너무 비극적인 사건이었네요 순이 삼촌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질풍지경초... 울림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를 표현하는 말 같네요.
왜곡된 진실들이 밝혀지길~~ 열일하시는 기자님들~ 감사합니다.
오늘도 열씨미 시청하겠슴다..댓읽기 홧팅~~^^
우키앵 몰이가 정말 재밌어...요즘 제일 재미난 것 중의 하나..ㅋㅋㅋㅋㅋㅋ
순이삼촌..엄마, 이거 예전에 우리 꼭 읽어라고 줬던 책 아니예요?
응..읽었어?
읽었죠, 근데 요즘 이거 뜨고 있어요..
몇 년 전의 아이와의 대화다.
나는 이런 일에 인생의 뿌듯함을 느끼는 단순한 사람~^^
우리 언론을 지켜주는 올바른 기자님들 !!!
남성을 죽이고 여성을 죽이고 노인을 죽이고 아이를 죽였으나 남로당을 죽였으니 그게 정당하다 하는건 미개하다 못해 야만스럽다.
그런 이가 초대 대통령이라니...
전쟁에서도 민간인 학살은 범죄인데...
닭강정을 혼자 드신게 아니라 누가 먹여주신거구나 ㅋㅋㅋ
내일 당장 순이삼촌 사서 읽어볼게요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 우리 중 가장 취약계층이 맨 먼저 고통을 받는다.
좋은 소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무서운 시절에 저런 글을 쓰신 작가님의 용기가 정말 대단하고,
결국 끌려가서 한달동안 폭력에 시달렸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아.. 4.3이 너무 억울한 사건이라는것도 알고 이번정부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참석 기념식도 했다는것도 아는데 사실 제주도라하면 관광지로만 인식이 되어서 그 아픔이 잘 전달이 안됐거든요. 이번 소설 소개로 인해 영화나 드라마도 제작되고 하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알아가면 좋겠네요. 우키앵 멋져요!!!!
책과 멀어진 시간이 긴데.. 남은 49권도 댓읽기에서 짧은 정기코너를 해주면 좋겠어요.
천안의 자랑 강병수 기자가 안보이니 조금 서운하네요~~
김기화기자님 멋있어졌어요
옥기자도 너무 이뻐졌구요
우리의 자랑 우키앵~#
정애주 작가 님등 너무 반갑고 고마운 사람들~~~
저도 뉴스 봤는데.. 정연욱 기자와 너무 잘 어울리는 기획기사인것 같아요~~~^^
우키앵 덕분에 좋은 책을 하나 더 소장하게 되었네요...감사합니다...벌써 다음 추천도서가 기대됩니다..^^
수능준비시절 근현대사 4.3사건파트 공부하다가 책덮고 도서관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객관적인 기술에서조차 그 분통함이 절절히 새어나왔어요. 가해자는 처벌받지도 않고 정부가 바뀌어도 사건을 외면했던 그 세월동안 피해자와 유족들은 그 아픔을 얼마나 억누르고 살았을지.. 이것을 생생히 담아내고 후대에 고스란히 전달하는 문학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책소개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또 진실에 가까워질수있게 도와주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몰랐었던 내용을 배웁니다. 뉴스할때도 짧은 리포트였지만 너무 좋은 내용이라 감사했습니다.
아직 구매하지 못했지만 꼭 구매해서 읽고 아이들도 읽을 수 있게 해야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방송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계속 재탕하는 댓읽기 방송 중에 하나가 더 추가될 것 같네요. 책 꼭 읽어보겠습니다. 언제쯤 4.3이 이런 말도 안되는 음해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나이 60을 바라보는 저도 젊어서 읽은 소설중에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 순이삼촌이었습니다. 정연욱기자 감사합니다.
매번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댓읽기......좋아요.
응원합니다.
4.3 사건을 이리 심도있게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 하십니다. 저는 kbs 프로중에 시청료 아깝지않은 프로로 잘보고 있습니다.
댓읽기 기자분들 너무 너무 좋아해서 소박하게 글 남깁니다.
주변분들에게도 널리 알립니다 ^^
섬의 특징이 있습니다.
공간이 한정적이라 독립적이고 합리적 사고 방식이어야 그 사회가 유지 된다고 합니다.
제주는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살아도 살림, 식사 각자 합니다.
완전 개방형 사고입니다.
교육도 아들 딸 구별 없습니다.
경제 활동도 남자 여자 구분없습니다.
당시 제주는 육지와 달리 봉건 사회가 아니라 지위 고하, 지주와 소작농 뭐 이런 거 없습니다.
일 예로 부부가 초상집을 갑니다.
부조금을 남편도 내고 부인도 냅니다.
남편이 냈다고 부인이 안 내는 거 뭐 그런 거 없습니다.
남편이 상대방 아는 것은 아는 거고 부인인 내가 아는 건 또 부인이 아는 겁니다.
남편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이재수의 난을 겪고 제국에 대한 폐단과 자식들을 공부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각 동네마다 야학이 있었고
산을 넘고 넘어야 학교 하나 있는 육지와 달리 동네 마을 마다 학교가 다 있고 기본 역사가 100년~ 70년 이상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40년 전 제주 이사와서 제일 놀란 건 육지는 당시 할머니들 까막눈이 많았는데 제주는
시골 할머니들인데도 까막눈이 없더라는.
그리고 일제시대때 제주~ 오사카 직항 노선배가 있어 일본 유학, 공장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가면서
신문물, 노동운동에 많이 깨어 있었습니다.
합리적 사고와 독립적 성향. 학문이 밝고. 이런 성향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우리 땅, 해방된 땅에 불합리한 일들이 생겨납니다.
미군정이 들어서고 47년 서북 청년단이 제주 들어오면서 잔인 무도한 사건, 서북 청년단 사무실에는 피 비린내가 진동하고
당시 아기들도 서북 청년단 온다 하면 울음을 뚝 그쳤다고 할 정도로 공포였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똑똑하고 젊으면 감옥에 갇히고 고문당해서 죽고... 맘에 안든다고 총 쏘아죽어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무법천지였습니다.
해방된 땅에 일련에 상황이 꿈꾸던 조국이 아닙니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합리적이고 독립적 성향이 강한 제주 사람들의 성향으로는 탄압하는데 항쟁하지요.
그러나 항쟁에 대처하는 고위층들의 태도는 그냥 싹쓰리입니다.
30만 제주도민 죽어도 좋다 빨갱이만 잡을 수 있다면... (박진경)
이런 방식은 오키나와를 학살로 내 몬 일본과 뭐가 다른가요?
매카시즘에 놀아난 미국이나 한국이나...
할 말은 많으나...
그리고 당시 남로당은 이적단체가 아닙니다.
남로당 빨갱이 에고...지금 시대에 만약 민주 노동당이 빨갱이라고 하면 얼마나 우습습니까?
당시 일본에도 공산당이 있고 구석진 곳이지만 간판이 시내 한 건물에 걸려 있었답니다.
만약 제주에 그런 건물이 있었으면 그 건물과 지역 주민들은 과연 무사했을까요?
권력의 해석에 따라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다면....;;;;
4.3 탄압한 자들이 승승장구하고 잘나가는 면면히 보면 더 이해가 갈 듯.
그들의 후예들이 베트남 양민학살, 5.18... 지금도 호위호식하고 잘 사는데...
제주 사는 분들 4.3 모릅니다. (그저 사람이 많이 죽은 정도)
4.3 에서 살아 나온 분들은 절대 자손들이 그 누구에게도 4.3 얘기 안합니다.
말하면 곧 죽음이니까요.
동네 할머니가 예전 한 마디 한 게 생각납니다.
마을 지서 앞에 늘 한라산 공비라고 목 짤린 사람 얼굴을 내걸어 놓았다고.
체 게바라보다 20년 앞 선 투쟁가들의 삶을 우리 문학에서 누군가는 다뤄줬으면....
공중파 소속 기자들이 비록 유튜브이긴 하지만 '순이삼촌'을 추천해 주시다니...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좋아요 먼저 누르고 열심히 봤습니다.
제주에 내려가서 만행을 저지른 서북청년단의 코어가 한국 개신교의 본부격이었던 서울 영락교회 청년들이었고, 그 청년들이 일부는 제주에 남고 일부는 서울로 돌아와서 집사 되고, 장로 되고, 신학교 가서 목사 되고 평생 반공을 외치면서 퍼져나가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저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유명한 깡패 시라소니도 서북청년단에서 활약했고 나중에 영락교회 집사가 되었죠. 최근까지도 유명한 조폭 두목이 대형교회 유명 목사와 친하고 새 삶을 산다면서 교회를 이용해서 이미지메이킹을 했던 것도 시라소니와 영락교회가 시초라고 봐야죠.
정연욱 기자님 알려주세요 현지인이 좋아하는 닭강정 알려주십시오
너무 비극적인 역사. 이런 비극적인 일에도 ㅃㄱㅇ라는 댓글을 다네요.. 주말 뉴스보면서 매주 한 권씩 읽어봐야겠어요.
오늘처럼 묻힌 뉴스는 하나, 35분 방송 괜찮은 것 같습니다. 꼭 1시간+1시간이 아니라 본 뉴스를 시간 늘려 깊게 다루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순이 삼촌 카트 넣어놨습니다. 책선물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요 100개 누르고 싶네요. 다음 책 소개도 궁금해지네요
바로 책 주문했어요.~
목미얼더미 마더더미에서 치더더미까지 얻으셨는데 눈을 잃으셨네요 이제훈???이건 아니에요 ㅋㅋㅋ
4.3 은 말한다 를 읽어보세요~^^
김기화기자에게서 이제훈의 스멜 인정!!
정연욱앵커 책 소개 좋네요. 4.3 소재 아직도 부끄럽게도 첨예한 소재인데... 자꾸 다뤄서 당연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소재로 만드는데 한 역활 하셨네요.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지켜보며 응원 합니다. 지치지말고 꾸준히!!!
하산을 하라고 방송을 했고, 하산하지 않은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간주를 했는데 이건 사실 말이 안돼요. 그 당시에는 라디오도 제대로 보급이 안되던 시절인데 산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하산하라는 방송을 듣겠어요. 애초에 죽이려는 의도가 다분했고 그래서 친할아버지가 이때 총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이 책 읽고 슬프기도하고, 삼촌이 남자가 아니라는것 알게 되었습니다
2:57 정연욱기자님 보려고 주말엔 kbs 평일엔 Jtbc 😉
김기자님 말씀만 듣고 책 구매함 ..빨리 읽어 보고 수정 할께요 ~~~~
화이팅
5:12 보철 치료 다음엔 안과 치료 받으러 가셔야할듯ㅎㅎㅎㅎㅎㅎㅎ
참고로 4.3사건으로 인해 제주도민 10%가 증발했습니다.
20세기 말, 대학교 신입생들의 첫 학습 교재가 '순이삼촌'이었다. 여순에서 이어지는 서북청년단과 '순사' 출신들의 만행, 이승만에 대한 분노, 그 후에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만행, 역사적 사실은 파도 속에 가라앉았다가는 솟아오르고... 아무도 먹을 수 없었다는 너무도 커다란 감자...가 목에 메이는...
05:34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둘 다 닮은건 인정
삼촌이 그 삼촌이 아니라고 하길래 바로 제주 얘기라는 걸 알았습니다. (제주 출신이라서)
5:01 일상이 비방용
7:19 페미닌한 삼촌이름ㅋ
8:45 치더더미와 함께 함덕 해수욕장 간 우키앵?
순이삼촌
아직 4.3 이 사건인 이유
토벌대에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있지만.
무장대에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있다.
피해자들이 소위 이야기 하는 빨갱이도 있지만, 친일파도 있고, 민주주의 자도 있고. 여러 사람이 존재 한다.
모함택시에 있는 우키엥 뜯어먹는 피라냐들
우키엥은 닭강정을 먹지 말고 갖고 왔어야 했어
지슬도 보면 좋을듯 함
그리고
남로당원이 경찰서를 습격했는데 성격상 반란 이라는데에는 동의를 못하겠음
남로당원이 아닌 제주도민이 습격을 했다면 반란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고 보는데
우키엥의 생각은 어떤지 다음방송서 말해주면 고마울듯
이자식들 나중에 다짤릴꺼야 나대지말자
순이삼촌…..제목만 들어도…애효~ㅠㅠ
울아부지도 물타기의 대가... 흠냐...
이거 소리가 왜이리 작아요...
누가 옥기자님의 태도를 지적하는지..😧💢
그 정도로 친해서 그러는갑네 하면 되는 걸 남이 이러쿵저러쿵 선-후배 간 질서를 논하면서 타꼰질짓을 하는 겁니까?
이제훈, 베일: ???????????????
22:00 작가님 미소가.... 혹시 두분 사귀세요? 저건 찐 미소인데..
이제훈 배우님한테 왜 그래요~
글 적을데가 없어서 여기에 적어요. 어재 오늘 kbs 9시 뉴스에 윤석열 장모 이야기 안 다루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벌써 차기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서 몸조심 하는건가요?? 이런거도 못올리는 9시 뉴스 팀장이나 그 책임자 묹 많은거 같네요
제주도민은 학살당 찍어주는데 굳이 4.3 사건을 다룰 필요가 있나?
이건 뭔 최첨단 개솔이 지???
제주 4.3을 공부를 하면 친일 군인이 모두 나쁘다고 하기도 힘들고, 독립운동가가 착하다고 하기도 힘들다.
제주 4.3에서 독립운동가와 친일 군인의 행보가 우리의 상식과 다른 행위를 한다.
지금은 518 민주항쟁이라고 하지만, 예전엔 광주사태라고 불렀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광주사태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어떻게 광주사태라고 하느냐?'는 질책이 있곤 했었지요.
아무래도 광주의 당사자이거나 광주에 투사하는 사람들에게선 '사태'라는 중립적인 단어에도 아픔을 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사태'라는 말이 나쁜 뉘앙스를 주는 단어가 전혀 아님에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진의가 어떻든 '반란'이란 단어 사용 자체가 그리 바람직해보이진 않습니다.
실시간 챗을 하다보니 방송 내용에 영 집중할 수 없어 이해가 안 되서 다시 들어봤습니다.
43 성격을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고 그 주 피해자를 '아이, 여성, 노인'로 생각해서 남로당의 폭력 자체도 43 폭력의 일부라고 보고 그것에 대한 반감으로 '반란'이라 표현하신 거라 봤습니다.
단순히 경찰서 기습만이 아닌 그 이후의 폭력행위까지 통틀어 '반란'으로 표현한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고 경찰서 기습이란 것 자체만으로 반란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면 광주 시위대가 전남도청을 점거한 것도 그 자체로보면 '반란' 행위였겠지요.
그렇다한들 항쟁과 혁명에 부적절한 행태가 없었을까요?
혹은 불의한 행태가 전혀 없어야만 항쟁과 혁명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마치 비폭력으로 여기고 있는 31운동도 일제의 야만이 거세짐에 따라 폭도의 모습으로 약탈, 살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31운동을 폄훼할 수는 없겠지요.
제가 보기엔 2016년 촛불이 비폭력이었다 해서 그 기준으로 과거를 본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헌법을 배웠을 때, 혁명의 요건으로 '비폭력'을 꼽았지요.
하지만 법 정당성의 차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일 뿐 역사 사실에서 비폭력이었던 건 2016년 한국?^^
저는 43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항쟁이 맞는지 국가의 민중학살로 볼지 판단이 서진 않습니다.
그러나 43에 민중항쟁의 성격이 있다면 그것을 정당히 평가해주는 것이 옳지 않나 싶습니다.
43을 국가폭력으로 한정해서 본다면 '트리거'란 표현은 옳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민중항쟁으로 본다면 조금 다르게 볼 수 있겠고요.
한국전쟁에 대한 설이 생각납니다. 북침설, 남침설, 내전설 분분했지요.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내전설을 얘기했고요.
지금은 소련 기밀 문서가 나오면서 남침설을 정설로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본다면 남침설은 맞지 않습니다.
남북 정부가 세워지면서 양측의 전투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승만은 미국의 힘을 받아 북진을 주장했고 김일성도 그렇게 남침을 계획했습니다.
결국 김일성은 소련, 중국을 끌어들였고 내전은 국제전이 됐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의 성격을 국제전으로 본다면 남침설이 더 옳습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트리거를 얘기하다 한국전쟁이 생각난 건, 43에 대한 성격을 제가 판단하기 어려워서 입니다.
과연 어디를 43의 시점으로 보는 게 맞을까요?
사람들이 잘 정리해줘서 저는 편히 판단하길 바랍니다.
전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어디 한군데를 파고들기 싫어라 해서요.
남들 고심해서 연구한 거 잘 받아 판단했음 싶습니다.
앞으론 실시간 챗은 못하겠습니다. 영 방송 내용을 못 따라 잡네요.
이젠 멀티플이 안되는...ㅠㅠ
그럼.
평소 댓읽기를 묵묵히 조용히 보는 시청자이지만,
제주 4.3 관련해서는 반대 의견을 좀 쓰겠습니다.
순이 삼촌, 지슬 다 좋은 작품이죠.
그치만 제주 4.3 을 제대로 알려면 역사학자 강의를 한편 보는게 나을듯 싶습니다.
고향이 제주인 저도 제주 4.3 관련 다큐가 있으면 챙겨보지만 모를 수도 있고 잊었을 수도 있으니
어떤 댓글 토론이든 환영합니다.
저는 참고로 kbs에서 반영한 제주 4.3 관련 도올 강의를 바탕으로 근거를 얘기하겠습니다.
김기화 기자님이 말한 제주 4.3은 남로당의 반란이 트리거 였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350명의 무장대가
12개의 경찰 지서와 서청 등 우익단체의 집을 습격했다.
이걸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가만히 있던 제주도민들이 남로당이 되어 경찰서를 습격했을까요?
경찰서를 습격했던 원인이 오히려 트리거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47년 3.1절 발포사건 이후 대규모 민관 총파업이 일어났고
검속 한달만에 500여명 체포, 1년 동안 2500여명 구금.
그리고 가장 원인이 됐던건 48년 일선 경찰지서에서 세 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해서
제주 사회는 금방 폭팔할 것 같은 분위기 였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생각하면 시민들의 저항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350명의 무장대가 좌익이 뭔지, 우익이 뭔지, 남로당이 뭔지를 알고 경찰서를 습격 했을까요?
공권력의 저항이라면... 그 당시 미군정이었는데 5.10 선거 전이잖아요?
대한민국 정부에 저항을 한건가요?
1987년 제주대학생들은 제주 4.3 을 제주 4.3 민중항쟁 이라 불러지길 바랬다.
( 도올 김용옥, 제주 4.3을 말하다 2부 초반)
처음 제주 4.3을 공론화하려 했던 제주대생들이 왜 민중항쟁이라 불러지길 바랬을까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제주 4. 3의 원인은 남한의 독립적인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로당의 반.란.이 맞습니다."
정연욱 기자처럼 주장하는 곳을 한 곳 찾았습니다.
"제주 4, 3 사건은 제주도에 자리잡은 공산세력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기 위해 일으켰던 무장폭동이었다.
이걸 진압하는 과정에서 미군정과 정부군의 지나친 토벌 작전으로 인해
무고한 양민의 인권들도 짓밟혔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ㅡ 윤서인 (윤튜브 진행하는 .....말하기도 그런...)ㅡ
언론에서 말해주지 않는 제주 4.3 사건의 본질 ㅡ
제주도분일거라 어림짐작 하고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다 이해 되지만 아시다시피 제주4.3이 세상에 알려지고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된게 얼마 안된걸로 알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당시 혼란했던 정세를 아픔을 제주도민들이 겪어온 그 세월을 온전히 다 알순 없겠지만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한 과정 속에 있다 이해해주시면 안될까요?
역사 사료나 다큐나 역사 강의로 알아가는 방법도 물론 있고 장점도 또한 있지만 쉽게 접할수 있는 문화가 우선은 조성되어야 하고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 전반적인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방면으로 자주 노출 되는것이 모든 연령층을 다 아우르고 설득적으로 다가가기에 더 효율적일거라 생각해요.
정연욱 기자님이 저번 방송에서 하셨던 말씀은, 당일 주제가 아닌 내용중 일부 발언이었던지라 편집해서 잘린 내용도 다수 있었을테고 제가 받아들이기엔 정기자님이 "제주4.3의 원인은 무장대가 경찰서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하고 원인을 단정지어 말씀하신걸로 보이지 않았어요.
아픔을 지니고 직접 겪으신 분들에게 그 아픔의 깊이가 어떨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역사를 알아가고 통찰해가고 바로잡아가는
노력과 과정속에 있다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국내 정치인들과 선거시기가 맞물린 당시 정세나 국내 국외 상황들이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역사인것은 분명하고 남로당과 토벌대와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참극을 설명하는 한 과정에서, 시간의 한계가 있는 방송에서 나온 말들이었고, 기자님들도 제주 이외 다른지역 사람들도 피해입으신 제주도민분들의 아픔을 어느정도는 공감하고 계실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내뱉어지는 발언들이 당사자들에겐 아픔으로 느껴질수도 있는 문제라 더 조심스럽지만 그래서 더욱 공론화 하고 드러내면서 하나하나 바로잡혀 가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턱이 낮은 예술작품들도 국민들이 제주4.3에 대해 알아가고 공부할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거라 생각해요. 문학작품이나 예술의 파급력은 상당하고, 그것이 점점 더 많은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배경이 되고, 그것을 시작으로 호기심이 생겨 사료도 찾아보고 다큐도 찾아보고 강연도 들어보고 할테니까요.
조심스럽지만 작으나마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존스노우 작년 4월 4일 Kbs 9시 뉴스, 클로징 멘트에서 정기자님이 순이 삼촌 책을 언급하셨지요. 그 후로도 4.3 사건에 대해서 댓읽기 방송중에 몇번 더 언급을 하셨고요. 그 덕에 정기자님이 우리에게 역사적 관심과 환기를 주셨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윤모씨와 같은 선상에서 언급되는 댓글이라니요.
그냥 사랑놀음 얘기책이나 가지고 오시지, 코로나 확진자수 현황이나 말씀하시지, 그 좋아하시는 클래식 음악 기사만 쓰시지... 무엇하러 논란의 불씨가 있는 주제를 자꾸 가져오셔서, 스스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십니까.
우리가 짐작하는것보다 더 많은 논란과 시시비비 한 가운데에 외롭게 계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또 화두를 던지실거고, 그들의 이야기를 감내하시겠죠. 그래서 우리가 그를 응원하고 사랑하나봅니다.
존스노우님,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댓읽기 구독자인데요.. 저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제주 4.3 사건도 자세히 공부한적이있는데.. 정연욱 기자님 말씀하신게 어느 부분이 틀렸다는건지 잘 모르겠어서 답글달아봅니다...
1. 독립이후 우리나라는 미군정시대를 지냄. 미군은 패망한 일본을 더이상 적으로 보지않고.. 새로운 사회주의세력인 '소련'을 적으로 봄.. 그래서 광복이후에도 우리나라에 계속 친일경찰 친일공무원들을 등용함.
우리 국민들은..이제 친일파도 벌받고 청산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음.
2. 엎친데덮친격으로 제주도가 도로 승격되면서(겉으로는 도로 승격되는게 좋아보이지만 그게 아니었음) 세금도 많이 납부하게되고(미군정이 엄청많이 세금 요구함. 경제수탈임.) 실업률도 높아지고 전염병도 돌면서 상황이 엄청 안좋아짐.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치안강화를 목적으로 미국은 제주도에 더 많은 친일파출신 육지경찰, 즉 응원경찰들을 충원시킴. 일제강점기시대에 독립운동가들과 국민들을 괴롭힌 친일파 경찰들을 또 보게 되니 도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함.. 이에 도민들은 불편한 감정을 갖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3. 1947년 3월 1일 3.1운동을 계승하고자 3만여명의 제주도민들이 평화가두시위를 진행함.
이 과정에서 6살꼬마아이가 경찰의 말발굽에의해 크게 다침.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치하지 않은채 도망가고... 군중들이 화가나서 돌을 던지면서 그 경찰을 따라감. 그 모습을 보던 다른 경찰관들이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오인하고 도민들을 향하여 총을 발포함. 이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 6명이 죽게됨.
4. 이로인하여 1947년 3월 10일 도민들은 진상규명시위를 펼치게되고,(심지어 제주 경찰들까지 파업에 참여) 직장에 나가지 않고 장사를 하지 않는 등 총파업에 돌입함. 그리고 이런 소문이 서울에까지 퍼지게됨. 이 소문을 들은
서울경찰 중앙경무부장 조병옥??은(이름이 잘 기억이 안나요 아무튼ㅠㅠ) 제주도민들을향해 사상이 불온하고 건국에 저해된다면 싹 쏘아버리겠다라고 협박함.. 이후 제주도에는 응원경찰이 더 충원되었고 이때 서북청년단(반공.친미.반공우익집단)도 거의 경찰급이되어.. 좌익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목하에 사람들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난리핌. 1947년 한해동안 2000명이 넘는 제주도민들을 고문함. (아니ㅡㅡ 아이의 죽음에대해 진상규명하라고 목소리 낸건데 무슨 좌익세력 타령임?? 이 사건은 사회주의세력뿐만 아니라 전 제주도 도민이 전부 빡친 사건이었음. 제주도지사도 사표내고 공무원들도 개빡쳤음. 무조건 다 빨갱이로 몰아가는데 그럼 제주도지사도 교사들도 다 빨갱이냐? 상식적으로 생각해야지ㅡㅡ 제주도민들을 지켜야하는 제주도경찰들이 사람을 총쏴서 죽인거에 빡쳤는데 거기서 사회주의세력이 왜 나와ㅡㅡ )
5.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1948년4월3일 제주 4.3사건이 발발함.
제주4.3사건은 1948.4.3-1954.9.21까지 발생한 사건으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의 주도 아래 경찰과 서청의 탄압중지와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 촉구 등의 슬로건을 걸고 무장봉이 일으킨 사건을 말함.
(님 말씀처럼.. 제가 위에서 언급한 1947년 3.1일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3.10 총파업,, 3명의 청년 사망사건을 거치면서 제주도민들의 분노는 폭팔직전이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48년 4월 3일 4.3사건이 터지게되죠.. 제가 4.3사건을 배울때 앞의 기점이 되는 사건(즉, 제주4.3사건의 도화선이 되는 사건들)을 배경으로 배운 후, 4.3일 남로당의 무장봉 세력에의해 제주 4.3사건이 발발되었다고 배웠는데.. 정연욱 기자님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거아닌가요? 틀린게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ㅠㅠㅠ 제가 지금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건가요?ㅠㅠㅠ) 아무튼..이 과정에서 4.3당일 경찰과 우익인사 12명이 사망함. (이 과정에서 좌익무장대 세력들도 제주도민에 피해를 입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
6. 이로인해 당시정부는 군대를 투입하려고하였음. 하지만 '미군정'이 파견한 김익렬이라는 사람은 이 일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원했고 당시 좌익무장대총책임자였던 김달삼과 만나서 협상함.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서로 약속했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이 약속과정이 참 감동적임 ㅠㅠㅠ친일파라고 볼 수 도있는 김익렬이 제주도 상황을 보고 이건아니라고 느꼈는지.. 김달삼만나서 설득함.) 이렇게 약속이 잘 되어서 무장대도 시위를 중단함. 서로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끼리 협상을 잘 이끌어 낸거임..근데 이게 왠일.. 약속이 결렬됨.....약속결렬원인이 '오가리방화사건'인데.. 미군정에선 이거 무장대들이 폭동 일으킨거라고 주장하면서 저 빨갱이 세력들이 협상 약속 안지킨거라고우김. 근데 알고보니 우익 청년들이 마을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었음... (하... 미치겠다,, 충분히 평화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건 평화적으로 마무리하려했던 미군정의 입장이 갑자기 대토벌적(제주도 토벌하는거...ㅠㅠ)으로 변화한거임...여기서 협상을 이끌어낸 김익렬도 빨갱이로 몰아버리고,, 미군정은 제주도민들 다 죽이라고하고... 난리남 ㅠㅠ
7. 사태가 악화되는도중 1948.5.10선거가 치뤄짐. 우리역사상 처음으로 선거가 치러진거임.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당시 무정부상태였기때문에 통일 정부를 누가 어떻게 만들거냐로 갈등이 엄청 심했음.
- 이승만 : 남한만이라도 선거하자. 남한 단독 정부를 세우자.
- 김구, 김규식: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서 물러가라고 주장함)
아무튼 갈등치닫으면서 김구선생님 5.10 선거 불참.. 김구 선생님등 선거 불참세력은 권력을 잃게됨....
제주도민들도 민족분단에 반대하면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 많았음. (좌익세력의 투표 방해 등도 있었음)
이런 이유들로 제주도는 전국에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지역으로 낙인찍힘. 사회주의자들의 섬.. 빨간섬으로 낙인찍힘..
8. 화난 이승만은 1948.11.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초토화작전을 펼침.(아 맞다.. 계엄령전에 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사건도 잊으면 안됨. 이승만이 여수 순천에있는 군대 동원해서 제주도민 학살하려고했음. 그러나 병사들은 같은 민족인 제주도민을 왜 공격하냐고 거부하고. 단독정부수립도거부함. 암튼 제주도 진압 명령 거부함. 이때문에 이승만은 여기 사람들도 엄청 공격함.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희생됨. 아우 화가납니다ㅠㅠ )
암튼 11월 17일 계엄령 선포하고.. 경찰, 군인, 서북청년단 등 토벌대가 제주도민들 학살. 제주도민을 전부 빨갱이 사회주의세력으로 몰면서 태워죽이고 굶겨죽이고 때려죽이고 별별 수단을 다씀... 이에 무고한 제주도민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피해를 입음.. 이걸 제주도 중산간 소개령이라고하는데.. 진짜 진짜 개빡침.. 토벌단들이 무장대를 공격한다는 이유로 제주도민들을 다른대로 대피시키는데... 대피시켰으면 그 후에 도민들 잘 보살펴줘야될꺼아니야.. 근데 다 죽여버림.. 그러니까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무서워서 이곳저곳에 산이나 기슭에 숨어버림. 토벌단은 이제 더이상 무장대만이 아닌 숨어있는 제주도민들까지 찾아내서 빨갱이라고 몰아부치고 다 죽여버림...
(물론 이때 토벌대만 피해준건아님. 무장대도 비판에서 자유롭지못함. 그러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토벌대에 의해 잔인하게 희생됨. 무조건 그냥 다 전부 빨갱이로 모는 상황.. 민간인들 대상으로 총기난사 연습하고 미친 짓 많이함.)
9. 그 이후에도 제주도민들은 계속 빨갱이로 낙인 찍히면서 살다가 민주정부에들어서야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받게됨..
제가 알고있던 내용이랑 역사쌤들 강의참고한건데 틀린거 있으면 알려주세요ㅠㅠㅠㅠ
댓읽기 아제 포지션 바꿈?.......
재방송 햤던내용.그렇다고 현재 이슈도 아니고 .....
한경오 거르고 시사인거르고 유튭에와서 여기왔는데...여기도 이젠...
볼륨이 작은듯 합니다
최대치로 해야 겨우 기자님을 말이 들리구
중간광고 시작하면 귀가 찢어질 것 같아요
볼륨문제좀 해결하셔야 할것 같아요
48년에 남로당이 경찰서 습격했다는 게 자작극이라는 얘기도 있던데. 그건 확인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