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위화도회군 5개월 전 최영과 이성계가 힘을 합쳐 이인임 일파를 제거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위화도회군 전까지 최영과 이성계는 적대적인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때론 협조하고 때론 경쟁하는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고려의 전병력을 동원한 정벌이었기에 당시 동북면에서 탄탄한 병력을 거느리고 있던 이성계를 빼고는 정벌을 추진한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구요, 요동정벌군의 총사령관은 최영, 넘버2는 좌군도통사인 조민수, 넘버3는 우군도통사인 이성계... 이렇게 지휘부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조민수는 최영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조민수가 회군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일말의 불안감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조민수를 통해 정벌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주피디님의 말한 것 처럼 최영이 변방의 이성계를 좀 키워준 점도 있고, 훌륭한 장군으로 믿고 있었고, 필요시 함께 힘을 합친 적도 있었죠. 하지만 고려를 배반하는 반역을 할 것으로는 믿지 않았죠. 요동 정벌시 총사령관은 최영이였는데, 그 당시 우왕이 최영 없으면 공민왕 처럼 암살 될 까 두려워, 최영을 극구 말리는 바람에 최영은 개경에 남고, 이성계와 조민수만 가게 되었죠. 이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던 걸 그 때는 몰랐죠. 요동 정벌은 그야말로 국가의 총력을 집중해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군대를 보낼 수 밖에 없었고, 그 당시 이성계의 동북면 군사들이 훈련이 잘 되어서 요동정벌에 꼭 필요했기에 이성계의 힘이 필요했어죠. 이성계는 요동정벌 이전부터 정도전과 함께 반역을 꿈꾸고 있었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죠. 그래서 이성계의 입장에서 보면 본인의 잘 훈련된 병력이 요동정벌 후 손실을 입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요동 정벌을 반대했었는데, 왕명이라 어쩔 수 없이 가는 척 했지만,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진군했죠. 그리고 압록강변에 이르러서 더 이상 가기 싫어서 말도 않되는 4개 불가론을 내세워서 회군했죠. 이성계가 반역 할 생각이 없었다면, 일단 요동으로 진군 후 요동을 정벌 할 수 도 있었거나, 싸우는 척 할 수 도 있었고, 역부족이였다 하면서 회군해도 뒤 탈이 없었을 것이지만, 이성계는 시도 조차 하지 않고 되돌아와서 고려를 무너뜨리게 되죠. 최영은 그래도 이성계를 믿었지만, 이성계는 최영을 배반한 겁니다. 이성계의 조상은 고려 때 무신의 난의 주인공인 이의방이고, 그 후 원나라에 귀화해서 벼슬한 이자춘이 아버지이고, 이 사람이 원나라를 배반하고, 고려로 귀화를 했죠.....이걸 보면 이성계 집안은 무인으로서 상황에 때라 항상 반역과 배반을 자주한 집안인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피를 물려받은 이성계는 결국 고려를 무너뜨렸죠.
@@dalgug 라이벌 아니었습니다. 원 간섭기 때부터 고려는 나라 곳곳이 어지러웠습니다. 최영과 이성계는 군 지휘관으로 곳곳에 출전하고 공을 세웠습니다. 시대와 나라 기풍은 무인이 상당한 부와 사병들을 거느릴 수 있게 했고 장군들의 명성과 덕망은 대단했습니다. 최영은 이성계의 직속 상관이 아니었고, 둘은 서로 대립하지도 않았습니다. 최영은 공민왕 때나 그 이후로도 왕권에만 절대 충성을 했고 그래서 계파나 군벌들 싸움에 적극 개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자리가 그를 피의 결정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반면 이성계는 신진사대부에 호의적이었고 권문세족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위화도 회군 꽤 오래 전부터 나라를 뒤업는 마음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영은 북벌을 계획할 때 자신이 직접 나설 계획을 하였으나 출정이 다가올 즈음 우왕의 불안감을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출정에 불만이 있어도 자신처럼 강직함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이성계는 역모를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과감히 행동했습니다. 고려 왕조의 수호신 최영을 제거하는 것은 최우선 목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최영과 이성계가 대립하는 라이벌처럼 보였겠지만 아닙니다. 둘은 동업자이자 서로 존중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냥 최영은 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었고, 이성계는 야심을 가졌고 역심을 꺼내 든 사람이었습니다.
@@정찬종-t2u 둘이 대립한게 아니죠. 계급으로바도 최영이 상급이였죠. 그리고 이성계는 변방 출신의 장수라서, 공이 있어도, 중앙 정치에선 힘이 없었죠. 단지 최영은 이성계가 뛰어난 장수이면서 위험한 인물인걸 알았지만, 자신이 살아있는 한 반역을 하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이성계도 그리하지 못했지만, 군사를 한번에 다 밀어준세 큰 실수였죠. 이성계는 그 한번의 기회를 잘 살려서, 옆에서 반역을 바람잡이 한 정도전과 함께 모반을 한겁니다. 정도전은 학식은 있었으나, 힘은 없는, 야심은 큰 인물인지라, 이성계의 무와 정도전의 문이 합세해서 고려를 무너뜨린거죠.
무속인들이 괜히 지금도 신처럼 이른바 모시는게 아닙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한이서린 죽음이였으면 민초를 사이에 지금도 회자 될까요. 중국도 관우상이 마치 예수 상처럼 집집마다 없는곳이 없더군요. 수천년 역사중에 의를 숭상한 관우의 죽음이 큰 충격이였기 때문입니다. 초한지 나오는 항우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웠던 중국 민초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3000년이 지난 지금도 경극을 만들어 회자 됩니다. 공교롭게도 관우가 죽고 그의 양녀가 산속으로 들어가 무속인이 되는데 그녀가 중국 무속의 기원이랍니다.
경기도 파주군 조리읍 몽일천이라는 곳에 모셔진 최영 장군의 묘. 그런데 입구 봉일천 지역에는 여름에 복날 때마다 보신탕 상인들이 솥을 걸어 놓고 성업을 하는데 보기가 민망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나요? 가리에 개를 묶어 메달고 후려치는 사람도 털을 뽑이 그슬리는등 대학살을 연상케 하던 곳이엇습니다.그리고 최영 장군의 묘에 풀이 나지않는 최씨의 신비는 후손들이 봉분에 소금을 뿌려서 인가요? 저는 그곳의 토양을 채취해서 식염이나 비소 성분을 분해하고싶읍니다.
옛날 어른들은 개고기를 즐겨 하였지요 개를 잡아 먹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보신탕은 우리고유 문화 입니다 외국 사대주의에 눌려서 개고기 판매금지를 한것이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유학자 우암 송시열 선생은 개를 잡아 제사를 지내 달라 하셨읍니다 참고적으로 나는 개고기를 즐겨하지 않읍니다 개를 잡아먹는게 야만인이 아니라 문화인 입니다 바로 고유문화 우리 고유문화
아버지 묘 밑에 묘를 저렇게 쓰는 경우도 있던 가요? 유교의 영향으로 전부 조선시대 만든 가묘지요. 이방원 때 급하게 몽진한 이후에 후손들이 만든 묘라고 봅니다. 개성에 있다는 선죽교도 후손들이 난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때는 이미 반도사관에 길들여진 이후라 대륙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어서 개성을 개경으로 인식한 거라고 보여집니다.
님의 역사기행 해설은 이시대. 우리들에게 큰 감화를 일으키십니다. 감사합니다.
주피디의 역사여행 오늘 최영 장군에 대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 주셔서 유익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이렇게 역사의 흔적을 보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요즈음의 군인들중 얼마나 최영 장군 처럼 할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런지 심히 걱정이 듭니다.
주피디님 덕분에 역사 탐방 잘 보고 있습니다.
전문 아나운서보다 듣기가 편안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톤과 발음 너무 좋으세요 ^^
차분한 목소리로
늘 우리 역사를 읽어주시는 주피디님
늘 잘보고 잘 배우고있습니다
이렇게 좋은채널이
왜 100만이 안되는지
모르겠네요
오늘도
잘 배우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주피디님 ㆍ항상 늘 감사 드립니다 ㆍ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매번 사랑합니다.
억울한 죽음이었고,
이긴 자들의 기록은 많은 논쟁이 필요합니다.
87전 87승
반송 나무위에 활짝핀 눈꽃송이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듣는 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원래는 풀이 안났는데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이 비가 오면 흘러내리니까..최근에 계속 이것저것 시도를 해서 풀이 난다고 들었어요
추운 겨울인데 고생 하셨네요~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
제가 잘 몰랐었던 아픈 역사 이야기를 차분히 잘 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진짜 고려시대는 두개의태양이 잠시나마 존재했지.. 최영도 그때 정규군이 다 있었다면 이성계군과 대등하게싸웟을거같은데 요동정벌보낸다고 개경수호 500명남짓만 남겨뒀으니 우왕이 진짜미련했지 요동정벌주장한 최영을 남겨둬서 죽게만들었으니 이성계 최영이 같이 요동으로갔다면 정복은했을꺼같은데 참..너무아쉽지
추운 날씨에도 역사 흔적을 보여 주셔셔
감사드립니다.
주피디님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최 영 장군님은~~~이성계의 희생양이였지요!!!!!
아주 어릴때 아버지로부터 들었습니다.
최영장군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장군이였다고 들었습니다.
희생자로 생각됩니다
80년도 초에 군에서 작전중에 우연히 봤습니다. 참배도 못하고 그냥 지나친게 못내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도 주피디의 역사여행 을 통해 역사가 생생하게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나레이션 편집 모두 굳입니다❤
이성계는 명과 야합하여 조선을 세웠다. 당시의 요동을 명에게 양보하는 대가이다.
오호!!이것이군요
배신의 원조 이성계놈
새로운 구독자입니다. 채널의 주제가 좋아 구독했는데 나레이션이 최고네요
@@CH-vy1li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감사해요. 모르던 부분을 정확히 알게 되었네요
❤❤❤ 드라마 정도전,제가 좋아하는 작품인데요
서인석배우의 최영 연기가 좋았던기억이 납니다
하긴 배우들 연기가 하나같이 다 완벽했던 기억이 나네요~~
고려가되던조선이되던집안싸움이많은나라였죠
맨날싸우고싸워본들능력은늘지않고입만살았지요
지금 이 나라에는 영웅이 필요합니다.😢😢😢😢
감사 합니다
최영장군 그당시 고려의충신중에 충신이였다 얼마나 한이맺여서면 무덤에 풀이나지않는다고 말을했을까
❤❤❤
이성계 계세기지
원나라의 요청으로 중국에 진출해 신흥 군벌인 장사성과의 전투가 빠졌네.
그때 혁혁한 공을 세운 경험으로 중국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이성계등에게 요동정벌을 명한것임.
승자의 감춰야 하는 기록에도 감춰지지 않고 저리 빛나는 것을 보면 ...영웅이였던듯
최영이야 말로 집에 황금이 돌처럼 굴러다녔으니 황금을 돌보듯 했지요.
악독한이성계나라지키신유명한장군최영을죽였다나라를뺏엇다임금자리가중요한것이아니다섭정을해서라도나라를발전시키는것이영웅인것이다
고맙습니다 ❤❤❤
김정일이 최영장군이 민족의 명장이라 생각했다던데 잘은 몰라도
이성계보다는 위대한 인물이 틀림없는것 같다. 그래도 고양시에 잘 관리되고있어 보기 너무 좋다
김정일 ㅉㅉ
내용 정리나 나레이션이 깔끔합니다.
무덤에 진짜 풀이 나지 않았는데 근대와서야 풀이 낫다네요 토양문제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위대한 장군 이지만 기우는 나라를
막기는 역부족
민속 무속의 신령으로 지금도 숭배 대상
많이 배우고 갑니다
보통 원통하게 죽은 장군들은 무속에서 신령으로 섬기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중국 춘추시대의 오자서나 삼국시대의 관우, 우리나라 최영 장군이나 남이 장군등이 대표적이죠.
@@hyunyoon8952 미처 몰랐던 사실
감사합니다
최영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명이 강해서 고려 원이 뭉쳐야 요동을 수복할 수 있다는것을
고맙 소이다.
쿠데타에 희생된 최영장군 아닌가싶네요.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는 역성혁명을 하면서 우리민족은 자주성을 상실하고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한번가봣읍니다
관산동ㆍ살적에
최영장군 묘역도 다녀와야 겠습니다
용인에 있는 정몽주 묘역은 지난주에 다녀왔네요
역사공부 제대로 하면서
주피디님 역사여행 따라가봅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잘 보았습니다 ㅡ
명당자리에 모셔져 있습니다
진짜 최영장군님 유골이 있을까요?
드라마 정도전 땡기네요
홍산전투. 홍산 초등학교 뒷산에 위령비가 있습니다. 홍산국민학교 4 학년 까지 다님.
주피디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질문 드리는데요! 최영과 이성계는 라이벌 관계였는데 왜 최영은 이성계에게 요동정벌의 수장을 맡겼나요? 고려의 모든 군대를 이성계에게 내어 줄 만큼 둘의 관계가 좋았던 건 아닌 걸로 아는데요!
라이벌 의식은 없엇을듯한디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위화도회군 5개월 전 최영과 이성계가 힘을 합쳐 이인임 일파를 제거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위화도회군 전까지 최영과 이성계는 적대적인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때론 협조하고 때론 경쟁하는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고려의 전병력을 동원한 정벌이었기에 당시 동북면에서 탄탄한 병력을 거느리고 있던 이성계를 빼고는 정벌을 추진한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구요, 요동정벌군의 총사령관은 최영, 넘버2는 좌군도통사인 조민수, 넘버3는 우군도통사인 이성계... 이렇게 지휘부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조민수는 최영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조민수가 회군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일말의 불안감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조민수를 통해 정벌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주피디님의 말한 것 처럼 최영이 변방의 이성계를 좀 키워준 점도 있고, 훌륭한 장군으로 믿고 있었고, 필요시 함께 힘을 합친 적도 있었죠. 하지만 고려를 배반하는 반역을 할 것으로는 믿지 않았죠. 요동 정벌시 총사령관은 최영이였는데, 그 당시 우왕이 최영 없으면 공민왕 처럼 암살 될 까 두려워, 최영을 극구 말리는 바람에 최영은 개경에 남고, 이성계와 조민수만 가게 되었죠. 이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던 걸 그 때는 몰랐죠. 요동 정벌은 그야말로 국가의 총력을 집중해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군대를 보낼 수 밖에 없었고, 그 당시 이성계의 동북면 군사들이 훈련이 잘 되어서 요동정벌에 꼭 필요했기에 이성계의 힘이 필요했어죠. 이성계는 요동정벌 이전부터 정도전과 함께 반역을 꿈꾸고 있었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죠. 그래서 이성계의 입장에서 보면 본인의 잘 훈련된 병력이 요동정벌 후 손실을 입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요동 정벌을 반대했었는데, 왕명이라 어쩔 수 없이 가는 척 했지만,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진군했죠. 그리고 압록강변에 이르러서 더 이상 가기 싫어서 말도 않되는 4개 불가론을 내세워서 회군했죠. 이성계가 반역 할 생각이 없었다면, 일단 요동으로 진군 후 요동을 정벌 할 수 도 있었거나, 싸우는 척 할 수 도 있었고, 역부족이였다 하면서 회군해도 뒤 탈이 없었을 것이지만, 이성계는 시도 조차 하지 않고 되돌아와서 고려를 무너뜨리게 되죠. 최영은 그래도 이성계를 믿었지만, 이성계는 최영을 배반한 겁니다. 이성계의 조상은 고려 때 무신의 난의 주인공인 이의방이고, 그 후 원나라에 귀화해서 벼슬한 이자춘이 아버지이고, 이 사람이 원나라를 배반하고, 고려로 귀화를 했죠.....이걸 보면 이성계 집안은 무인으로서 상황에 때라 항상 반역과 배반을 자주한 집안인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피를 물려받은 이성계는 결국 고려를 무너뜨렸죠.
@@dalgug 라이벌 아니었습니다.
원 간섭기 때부터 고려는 나라 곳곳이 어지러웠습니다.
최영과 이성계는 군 지휘관으로 곳곳에 출전하고 공을 세웠습니다.
시대와 나라 기풍은 무인이 상당한 부와 사병들을 거느릴 수 있게 했고 장군들의 명성과 덕망은 대단했습니다.
최영은 이성계의 직속 상관이 아니었고, 둘은 서로 대립하지도 않았습니다.
최영은 공민왕 때나 그 이후로도 왕권에만 절대 충성을 했고 그래서 계파나 군벌들 싸움에 적극 개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자리가 그를 피의 결정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반면 이성계는 신진사대부에 호의적이었고 권문세족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위화도 회군 꽤 오래 전부터 나라를 뒤업는 마음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영은 북벌을 계획할 때 자신이 직접 나설 계획을 하였으나
출정이 다가올 즈음 우왕의 불안감을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출정에 불만이 있어도 자신처럼 강직함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이성계는 역모를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과감히 행동했습니다. 고려 왕조의 수호신 최영을 제거하는 것은 최우선 목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최영과 이성계가 대립하는 라이벌처럼 보였겠지만 아닙니다. 둘은 동업자이자 서로 존중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냥 최영은 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었고, 이성계는 야심을 가졌고 역심을 꺼내 든 사람이었습니다.
@@정찬종-t2u 둘이 대립한게 아니죠. 계급으로바도 최영이 상급이였죠. 그리고 이성계는 변방 출신의 장수라서, 공이 있어도, 중앙 정치에선 힘이 없었죠. 단지 최영은 이성계가 뛰어난 장수이면서 위험한 인물인걸 알았지만, 자신이 살아있는 한 반역을 하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이성계도 그리하지 못했지만, 군사를 한번에 다 밀어준세 큰 실수였죠. 이성계는 그 한번의 기회를 잘 살려서, 옆에서 반역을 바람잡이 한 정도전과 함께 모반을 한겁니다. 정도전은 학식은 있었으나, 힘은 없는, 야심은 큰 인물인지라, 이성계의 무와 정도전의 문이 합세해서 고려를 무너뜨린거죠.
1920년까지 풀이 나지 않아서 붉은무덤
😢😢😢😢😢ㅣ
이성계가 자기만
잘살고 6오십년하고
백성들은 침상도
걸상도 말도 못헉
고생시키고 갔데요
정군님요ㅠ님이 ㅜ구말심이 맞젔네
ㅜㅜ혼자서 왕국하고
고종이란사람이 끝😢😢😢위대한님
최 영장군에 87승이 다 한반도 일까요!?😢
최영장군 노은리에 사당있습니다
인생무상 쓸쓸해오는것을 어이하노....
이렇게 훌륭한 분이 계셨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재한겁니다,
주피디님
감사합니다 ^^
고려의 기둥이 그렇게 쓰러젔기 때문에 한 대 처맞은 개처럼 깨갱깨갱 하고 외세에게 복종해온 조선과 지금의 비굴한 한국이 있는거요 자주정신이라고는 1도없는...
비운의 장군님 ㅠㅠ
고려 조선 일제시대 선비들이 역학 점같은거 많이따지고 유용하게 써먹었지 ,,,
최영장군 하면 탤런트 신구님 생각만 납니다..왜 그런지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죠 ㅎ
후삼국때는(나말여초) 유금필 장군이 있었다면, 고려말에는 최영 장군이요.
최영장군
이 키워준사람은
이성계인데 결국은
고려말기에 혼란기에
서로 협력했다면....
그러나 누구하나는 지는 해가되었기에
장군의 기계와의지가
강했기에 우리나라의 무속과 민간풍속에서 경배의 대상이되었지요
늘 역삭을배울수 있겠했 주셨서 감사합니다
지가 알아서 큰거지 누가 누굴 키우남?
이런 한심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니...
그런 표현은 능력도 없고 빌빌한 넘을 어느 위치까지 올럈다던가 할때나 쓰는 표현이오~
이성계는 살인에 온 나라가 피로 억룩졌구나 피로 얼룩진 나라가 되었구나
최영 장군이 개성에 있지않고 조민수와 이성계와 같이 요동정벌에 나섰다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래도 최영장군입니다 역사는 승자만의 기록입니다
문숙공 윤관님도 사실은 무장 아니고 문관이었씁니다.
요즘군 수뇌부랑은 다른 참군인 이었네요
무속인들이 괜히 지금도 신처럼 이른바 모시는게 아닙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한이서린 죽음이였으면 민초를 사이에 지금도 회자 될까요.
중국도 관우상이 마치 예수 상처럼 집집마다 없는곳이 없더군요. 수천년 역사중에 의를 숭상한 관우의 죽음이 큰 충격이였기 때문입니다.
초한지 나오는 항우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웠던 중국 민초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3000년이 지난 지금도 경극을 만들어 회자 됩니다.
공교롭게도 관우가 죽고 그의 양녀가 산속으로 들어가 무속인이 되는데
그녀가 중국 무속의 기원이랍니다.
최영 장군님 우째, 처형할수 있단 말인가? 이성계 그래서 아웃이다 정도전도 그렇고 조선때보다 고려때가 더 좋지,,,
이성계하고 19살 차이더만 동생 멍게하곤 25살차이고
최영, 정몽주도 막지못한 고려의 멸망 그리고 그 씨앗을 심은 마지막 불꽃군주 공민왕. 역사는 아이러니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저 안에
정치 쌈에서 밀린
최영의 가루(흔적)가 있을까?
10키로 정도 떨어져 있는 윤관장군 묘와 비교해 보시면 나름 재미가 있을겁니다.
풀을깍았잔아
억울하게 죽은 징수들이 무속신앙의 신이 되지요 최영 남이 임경업
그건가짜요 진짜는중국에있어 똑바로보시요 돌멍이가새것이고 검은돌은조선시대거요 이것뿐아니고 지금까지 헛짓만해댓어요 도대체제목이뭐요 왜그런유언비어만하시요
이분들은 전부 홍건적이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안타깝게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이성개가 나쁘지요
요즘 똥별몇명 있던데 ㅡ최영 발바닥이라도 가봐라 ㅡ
경기도 파주군 조리읍 몽일천이라는 곳에 모셔진 최영 장군의 묘. 그런데 입구 봉일천 지역에는 여름에 복날 때마다 보신탕 상인들이 솥을 걸어 놓고 성업을 하는데 보기가 민망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나요? 가리에 개를 묶어 메달고 후려치는 사람도 털을 뽑이 그슬리는등 대학살을 연상케 하던 곳이엇습니다.그리고 최영 장군의 묘에 풀이 나지않는 최씨의 신비는 후손들이 봉분에 소금을 뿌려서 인가요? 저는 그곳의 토양을 채취해서 식염이나 비소 성분을 분해하고싶읍니다.
풀 이
앖따구?
🦀 웃김.
옛날 어른들은 개고기를 즐겨 하였지요 개를 잡아 먹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보신탕은 우리고유 문화 입니다
외국 사대주의에 눌려서 개고기 판매금지를 한것이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유학자 우암 송시열 선생은 개를 잡아 제사를 지내 달라 하셨읍니다
참고적으로 나는 개고기를 즐겨하지 않읍니다
개를 잡아먹는게 야만인이 아니라 문화인 입니다
바로 고유문화 우리 고유문화
우리동네에 사당있는데 노은리
@@원일이-s7o외국사대주의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개는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기 때문에 식용을 반대합니다.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님이 옳다고만 주장하지 마세요.
반대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나는백억을벌었다 사대주의 맞고요 돼지 멱따는 소리 들어 봤습니까? 동물은 똑같이 감정이 있습니다. 소 죽을때 눈물 흘리는걸 보셨나요? 개만 야만 이란건 사대주의 맞습니다. 개 맞아 죽는거 봤습니다. 야만 이지요 . 외국인의 압력으로 먹지 않는것이 사대 입니다.
우왕의 칭얼거림을 왜 받아줌? 이성계를 믿었나? 조민수가 견제할거라고? 우리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어버렸다
역사는 역사일뿐 그당시 cctv나 블박이없었기에 과연 진실은 ? 700년전 일을 어찌알수 있을까요 ~~😂😂😂
이성계 이좄세
아버지 묘 밑에 묘를 저렇게 쓰는 경우도 있던 가요? 유교의 영향으로 전부 조선시대 만든 가묘지요. 이방원 때 급하게 몽진한 이후에 후손들이 만든 묘라고 봅니다. 개성에 있다는 선죽교도 후손들이 난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때는 이미 반도사관에 길들여진 이후라 대륙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어서 개성을 개경으로 인식한 거라고 보여집니다.
좋아요
고려의 장군은 모두 문신이었읍니다.
그래도 묘가 남한에 있네요..........고려 당시면 지금의 이북쪽에 있을 것 같은데 다행이네요
왜곡된 역사라 생각합니다 최영장군이 홍건적을 격퇴했는데 사실
홍건적은 한반도 들어온적이 없습니다.
@@골골딸랑이 기록이 다 남아있음
@@dalgug 개경이 황해도의 개성아니고요
홍건적이 한족이라는데 솔직히 말이 안되고요 4만이나 되는 홍건적의 무리들이 대륙의 허베이성에서 황해도 개성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갔다고요 그 먼거리를 그리고12월 한겨울을 ㅋ 뭐 믿는건 자유지만
역사는 승리자의 몫 이다...
최영은 역사속에 그 시대 승리자들에의해 온 천하를 덮은 역적으로 기록하였고 민심속에도 그렇게 선동했을거같다...
그래야..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과 합법을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근데 최영이 권문세족이 아니엇나요?? 제가 잘못 기억하는걸수도 잇지만 ㅎㅎ 철원최씨가문에 권문세족이엇다고 본적이 잇는듯해서 ㅎ
😂😂😂😂😂
이러다가 사람죽이는거 아니에요?
정치인들이 좀 배웠으면 좋겠네 특히 정권만 잡으면 해 먹으려고 눈 뻘건 ㄱ ㅎ 당
망할넘 이성계
풀이 안 난다고 했는데 풀이 난 것은 후손이 관직에서 더러운 짓을 했기에 화가 나서 날수도 있음. . . 믿거나 말거나지만 아버지쪽 어머니쪽 최영 장군의 후손들 중 정치인들 조사해봐
근데 이집안이 한국의 산과 바다 곳곳에 산재한 절들과 항구목을 장악하고 권력을 누려오고있었다.
다 이김 뭐하남💦마지막에 진걸...
고려 최후의 명장은 이성계인데 최영은 1패를 이성계한테 졌고 이성계는 2패를 이방원에게만 했는데
미쳤니 황금보기를 돌같이하긴..
시대마다 각자의 역활이 달랐을뿐입니다. 최영은 무장으로, 이성계는 청치인으로 백성을 구했을 뿐, 백성을 위한다는 것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국힘당 기득권층은 내란죄를 저지르고도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지요!
헌법74조와 77조는 대통령의 통수권과 계엄선포권이다 대통령이ㅇ자기의 권한을 사용한게 어떻게 내란이 되냐 권한을 넘어서는 짓을 했으면 직권남용인데, 직권남용은 임기중에는 기소도 못한다(헌법84조) 민주매국노들아
최영장군은 현대판 4.3사건과 다를바없는 큰과오를 남긴 인물인데 공이 워낙 많아 학살을 승리로 포장해버린 인물이죠 4.3사건때 보다 더 많이 제주도민 학살한 인물임
좌빨 전교조한테 역사를 배우다 보니 4.3사태가 무슨 민주화운동으로 착각하고 있네.
진짜 이나라가 조만간 전쟁도 못하고 북괴한테 먹힐 것 같다.
공산주의의 폭도진압을 학살로 포장마세요
이성계가 참으로 역적이었지요 ~
최영장군은 단군왕검에 후손으로 영웅입니다....항상 간신. 역적 땜시 죄없는 영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남이 장군, 이순신
역사는 쿠테타 성공한
세력에 의해서 기록됐다 특히 명분없는 쿠테타는 상대세력을 엄청날 정도에 기록조작으로 비하 시키고 폄하하무로써 안좋게 기록됐다 모든 역사는 후대가 결정한다 역적이던 영웅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