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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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5 вер 2024
  • #진흥왕#진흥왕순수비#대륙신라
    대륙신라의 관점으로 본 진흥왕 순수비.
    과연 진흥왕 순수비는
    진흥왕 당대에 세워진 비석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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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출처 표시
    진흥왕 순수비 (북한산, 함초령, 마운령, 창녕)
    출처:국립중앙박물관 www.museum.go.k...
    사용근거: '공공누리 제1유형'
    진흥왕 순수비 비문 원문 (북한산, 창녕)
    출처: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gsm.nricp.go.kr

КОМЕНТАРІ • 507

  • @정도령-f4z
    @정도령-f4z 5 років тому +69

    일년 전 쯤 경주사람에게서 들은 말인데요. 경주에 있는 왕릉들이 신라왕들의 무덤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이전 훨씬 전에 그냥 그자리에 있었던 무덤이라고 하네요. 왠만한 경주사람은 아는 소문이라고 하던데 자세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고고학과 역사학자들이 힘을 합쳐 정확한 연대 측정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참 미스테리 처럼 꼬여있는 것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4 роки тому +11

      우리 선조들도 너무 사실을 은폐한 인격이 보입니다.

    • @user-on9eh4jc7h
      @user-on9eh4jc7h 4 роки тому +10

      맞아요. 조선반도에서 중앙 아시아로 진출했을수도 있고 해수면이 낮았을때는 조선 반도가 아니었겠죠. 신라 역사를 너무 금이야 옥이야해서 이 사단이 나는겁니다.

    • @user-ll9zc6pr3c
      @user-ll9zc6pr3c 3 роки тому +20

      현재 역사원로들이 일제식민사관의 제자들인데 당연한거

    • @JKJ0509
      @JKJ0509 Рік тому +4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과연 그런 연구를 할까요?

    • @p1785418
      @p1785418 Рік тому

      2,000년도인 지금 경주사람이 1,500년전의 사실을 어찌 알고? 나이가 1,500살 먹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면 몰라도, 나아가, 지금 경주사람들의 조상은 백제인,고구려인 일 수도 있습니다. 경주사람들의 말이라고 신라시대일을 잘 알거라는 생각은 좀........,

  • @user-hr2mw2mj6l
    @user-hr2mw2mj6l 5 років тому +41

    논리와 근거는 역사학자도
    알수있는 설명이 연구에
    충분히 채택되길바랍니다.~~
    당신이야 말로 역사연구위원
    에서 일할실분~~^^^

  • @user-zq5dc1jd5m
    @user-zq5dc1jd5m 2 роки тому +19

    좋은 내용입니다
    많은 연구 부탁드립니다
    식민사학을 반역이적죄로 처벌하라
    자금줄도 조사하라

  • @hongpund
    @hongpund 2 роки тому +21

    김해에 가야국이 들어서기엔 그당시 평평한 땅이 부족합니다 1910년도 일제가 침락했을때 김해평야는 지금보다 훨씬 좁았고 그당시 논밭이 아닌 갈대밭이었다고 하던데요

    • @kb-nd5mf
      @kb-nd5mf Рік тому +6

      가야는 양자강 부근에 위치한 지역으로 백제와 신라 사이의 조그만 지역...신라는 절강성이 중심...말의 성조가 같습니다

  • @phoenixsb137
    @phoenixsb137 5 років тому +21

    중세시대 사람들이 성경을 못 읽어서 교회의 절대적 권위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말이 공감이 갑니다...

  • @Tanghuru888
    @Tanghuru888 5 років тому +30

    3국이...., 그 오랜기간 전쟁을 하는데...., 현대도 아니고, 오로지 땅의 생산력이 인구수를 늘일수 있는 유일한 바탕이었던 그 옛날에... 농지도 얼마없고, 산투성이인 한반도에서 과거 농사실력으로 과연 얼마만큼의 인구가 유지가 되었을까요.....? 백번 양보해서 3국이 한반도에 있었다 하더라도, 영토가 가지는 한계로 인구수의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고, 이건 군사력의 한계가 되고, 이렇게 되면, 큰 전투 한번 잘못하면 나라는 그냥 망하겠죠.... 사실, 그런거 생각안하고.... 농경사회에서 농사지을 평야나 평원이 제일 중요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80%가 산지인데..., 여기서 무슨.... 발전된 문명을 지닌 저력있는 국가가 생길 수 있을까요....? 한반도 사관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자체로 참 머저리같은 이론일 뿐입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12

      말씀주신내용에 공감이갑니다. 강단사학에서 말하는데로 당나라가 중원땅전체와 요서지방까지 장악한 대국이었다면 어떻게 한반도 귀퉁이의 신라를 정벌하지못하고 참패했는지도 생각해볼문제죠. 서쪽에 토번때문에 전쟁을 중단했다고는하나, 이미 토번이 공격하기전에도 신라의 완강한 저항에 전선이 교착상태였었죠. 또한 조금만 바꿔생각해보면, 서쪽에 그러한 침략위험이 있었음에도 애초에 별볼일없는 (70%가 산지인) 조그만 한반도에 무슨 욕심이 있어 당나라의 국운을 걸고 신라를 침공했겠냐는거죠.

    • @Tanghuru888
      @Tanghuru888 5 років тому +6

      @@gulsakgi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왜곡되지 않은 진짜 역사는, 약탈해간 역사서들이 있는 일본황실창고(서고?) 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순전히 뇌피셜입니다만, 조선왕조 실록도 ,개인적으론 조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나라 역사를 조작하려면,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하는 것이 조선왕조 실록이고, 실제로 마지막 왕의 것은 일본놈들이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아마도 조작을 위해서 테스트를 해본 것이라 생각합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10

      @@Tanghuru888 말씀주신 일본 궁내청 도서관에 우리역사의 비밀이 담긴 책이 많이 있을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나마 그곳에라도 우리의 고서적들이 보관되있다는게 불행중 다행이겠지요. 세월이 흐르고 언젠가 그 책들을 볼수있게될 날이 오길바랍니다.

    • @유영복-r9j
      @유영복-r9j 5 років тому

      개소리죠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당신이 말한대로 인구수 한계있엇음 고구려는 장수왕 당시 최대 군사력 5만 백제 역시 3만~5만 백제가 호남 평야 먹어서 장수왕때 빼고 항상 군사는 더 많았음 신라는 나당 연합때가 되서야 5만 당나라 항쟁때 고구려 백제 유민 동원해서 다 막음

    • @유영복-r9j
      @유영복-r9j 5 років тому

      후삼국 시대에 각국의 군사수만 봐도 알수있음 국지전을 벌일경우 그수가 2천에서 3천임 삼국을 진정으로 통일한 고려때 요동정벌하러가야 10만나옴

  • @TV-vl2qp
    @TV-vl2qp 5 років тому +14

    그렇죠! 역사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이제 식민사관은 극복되었다! 왁자지껄!!! 열린사회, 열린결론의 출발! 응원합니다. 열심히 하사!!!

  • @user-kt4co9tg7i
    @user-kt4co9tg7i 2 роки тому +12

    학술연구는 기존에 발표한 내용들이 진실인지 검증부터 해봐야
    과학분야에도 심심잖게 데이터조작이 있어서 논란이 되는데
    더군다나 국가상황에 따라 조작날조가 가장 심한 역사분야에서는 더욱더 검증작업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 @박용환-p5m
    @박용환-p5m 2 роки тому +7

    정말 대단하십니다.^^
    최고 이십니다.
    천재시네요.^^

  • @설향-h8y
    @설향-h8y 2 роки тому +12

    우리가 역사를 알려면 먼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도 지형을 꼼꼼히 관찰 해야 한다!
    한반도는 대부분이 산지이고 그 산도 경사가 너무 가파러서 교통이 발달하기 어려워 통행이나 물자 소송에 큰 장해였고 농지가 턱업이 부족하여 항상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가장 중요한 쌀 또한 통일벼가 나온 70년대 이후에야 자급이 가능해졌고 불가 50년 전에야 자급 가능해 진거고 현대 이전 비료나 퇴비의 부족 물 부족 등으로 식량 생산이 아주 미약하여
    그나마 구황작물인 감자나 고구마도 조선말에 들어와 인구 증가에 기여한 사실!
    한반도의 생산력으로 백제가 요성 산동 왜 등으로 진출하기도 어렵고 고구려가 수당과만큼 군량 조달도 불가 통일 신라가 당과 전쟁할 물자도 조달이 어렵다
    백제나 고구려 신라등이 대륙에서 건국하여 후기에 한반도로 유입돼는게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 @펄린-o6e
    @펄린-o6e 5 років тому +18

    일제가 패망철수 하면서 그랬자여... 너희의 찬란한 역사를 깨닫기까지....100년이 넘을것이다.. 히루카케??

    • @kisear455
      @kisear455 5 років тому

      그거 구라임

    • @버들피리-o8p
      @버들피리-o8p 4 роки тому

      @@kisear455 나현빈 니놈은 댓글을 달대 마다 나라에 해를 끼치는 매국질을 계속하는 역적의 괴수다

    • @kisear455
      @kisear455 4 роки тому

      @@버들피리-o8p 니애기지 ㅋㅋㅋ

    • @user-yq3sb9ud2m
      @user-yq3sb9ud2m 4 роки тому +1

      그래통일신라 만주경영설 백제산동반도경영설과 야마토정권의실세이자 후견인점
      고구려실질적요서지배설 이사실일지도모른다

    • @user-ll9zc6pr3c
      @user-ll9zc6pr3c 3 роки тому

      아놔 25년 남았네

  • @user-rl4qf1nf7h
    @user-rl4qf1nf7h 2 роки тому +5

    언제나 좋은 내용 ..항상 응원합니다

  • @charlieahnkr
    @charlieahnkr 4 роки тому +14

    북한산 순수비 비문에서 목적어인 방문한 장소부분만 지워진게 참 의아스럽네요...

    • @happy-rich_5
      @happy-rich_5 2 роки тому

      다른곳에 있던 것을 가져다 놓은 시기가 조선시대? 이전?

    •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Рік тому +1

      그것 말고도 지워진 부분 많아요

    • @절대평형
      @절대평형 16 днів тому +1

      조선시대는 역사를 조작하지 않았습니다.
      왕조시록을 읽어 보아도 조작 여부를 알 수있는 것입니다.
      조작된 것은 100% 일제와 박정희정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happy-rich_5

  • @user-xd4sx1xq7c
    @user-xd4sx1xq7c 2 роки тому +15

    탁월한 분석 입니다.

  • @user-vd4mb2em8u
    @user-vd4mb2em8u 5 років тому +9

    대단하십니다
    용기에 감탄 합니다🐲🐲🐲🐲

  • @김형근-c5i
    @김형근-c5i 5 років тому +8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 @user-xz7dz3sk4v
    @user-xz7dz3sk4v 5 років тому +8

    이분 영상 흥미 진하네 잘보고 있었요

  • @로마니기타
    @로마니기타 5 років тому +6

    좋은영상감사합니다

  • @beangroove
    @beangroove 3 місяці тому +4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네이놈들...

  • @altaihanmoyong5500
    @altaihanmoyong5500 4 роки тому +6

    신라의 역사를 반도 아에 가두려는 의도에 맞추어 유물을 배열하다 보니 역사서 내용과 현실이 뒤죽박죽

    • @user-on9eh4jc7h
      @user-on9eh4jc7h 4 роки тому

      후기 신라 역사가 고작 2백년이고 이주전에 뿌리도 찾기 힘들고 동족들이라고 지목된 사람들도 국가라는 틀을 싫어하는데 제발 대륙신라설좀 그만하세요. 신라방도 백제 망하고 신라방이라 이름 바꿨겠죠.

  • @mrhsk0908
    @mrhsk0908 5 років тому +6

    매우 재밌는 역사적 추론 이네요..

  • @user-et8se3od1p
    @user-et8se3od1p 5 років тому +7

    명나라와 사대조선이 합작으로 이 비석들을 한반도로 옮겼다고 봐야 하겠죠. 신라는 지금 현재 우리가 중국 대륙이라고 부르는 땅을 최초로 통일한 왕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짜 질문은 과연 신라와 별개로 당나라라는 나라가 존재했는가, 아니면 신라가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중국식 국호로 정한 것이 당인가 입니다. 후자의 가설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것이어서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절 더러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일 수 있는가를 따져보기 전에, 고려와 송나라는 별개의 나라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이 가설 또한 미친 사람의 말로 생각하시겠습니다만, 적어도 元史는 분명히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나라의 공식 역사서인 원사의 외국전을 보면 제일 먼저 고려가 나오는데, "고려는 9백년을 이어왔고 마침내 五代時代의 주인이 되었다"고 명확히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려가 900년을 이어왔다고 하는 것은 고려가 고구려를 이은 것으로 간주한 기록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려가 오대시대의 주인, 즉 오대시대를 통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죠. 우리가 배운 역사에서는 송나라가 오대시대를 통일한 것으로 되어 있지요? 그런데 원사에는 그게 고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고려는 河間 변량에 도읍했다"고 기록하고 있죠. 하간이 어디냐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약간 있습니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지도상에 하간이라는 지명은 북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것은 명나라 영락제가 대대적으로 지명을 이동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변량"이라는 단어에 있지요. 변량이란 변수와 량수, 즉 개봉부를 지나는 두 개의 운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량이라는 지명은 송나라의 수도 개봉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죠. 그럼 왜 그곳을 하간이라고 불렀을까요? 대청광여도를 보면 황하는 개봉 바로 윗쪽에서 황하와 회수로 갈라집니다. 즉 河가 두 갈래로 갈라지고, 그 갈라져 흐르는 두 河의 사이에 개봉이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지명이 옮겨지기 이전의 하간이라는 이름은 황하와 회수 사이의 땅을 지칭하던 것이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간변량에 도읍한 고려란 바로 송나라는 말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게 말이 될까요? 사실 안 될 것도 없습니다. 거란이 세운 나라는 요나라이고, 몽골이 세운 나라는 원나라이며, 여진이 세운 나라는 금나라와 청나라인데 고려가 세운 나라는 송이라고 하면 안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더 나아가서 신라가 세운 나라는 당이라고 하면 안된다는 법이 있을까요? 여기에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습니다.
    신라가 양자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고구려는 산서성을 중심으로 있었으며, 백제는 그 서남쪽에 있었다고 봤을 때 이 세 나라를 통일한 신라가 중국대륙 전체를 차지했을 거라고 보는 것이 지나친 망상이겠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가지 근거를 더 대자면, 패수의 위치가 산서성의 남부 태행산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은 한서지리지과 금사지리지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는데, 신라가 고구려나 발해와 경계를 이룬 곳이 바로 패수입니다. 그러니까 신라는 황하변까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죠. 이미 통일 이전에 말입니다.
    그러니 당나라가 신라와 별개로 존재했던 왕조라면 그것은 섬서성과 사천성 일부 정도를 차지한 작은 나라로 신라보다 훨씬 작고 약한 나라였어야 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당나라는 따로 없고 그냥 신라가 당인 것입니다. 사실 신라가 당이라고 하면 최치원이 "우리 당나라는..."이라는 식으로 글을 쓴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고, 산동성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킨 황소가 낙양을 점령하자 "토황소격문"을 쓴 것도 당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낙양이란 패수 바로 아래의 지명이므로, 당연히 신라의 땅이었을 테니까요. 사실 수양제가 고구려 깊숙히 침공했을 때 신라가 그 틈에 낙양을 급습하여 점령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며(수나라의 고구려 침공 때 신라가 패수 이남을 차지했다는 역사 기록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어 지리멸렬한 수나라 군대를 계속 연파하면서 아예 장안까지 점령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는 너무나도 많은 거짓이 있기 때문에,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신라는 어떻게 그렇게 강한 나라가 됐을까요? 그것은 강남 개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강남(물론 양자강의 남쪽을 말합니다)이란 늪이 많고 날씨가 더워서 많은 인구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농업기술을 발달시켜, 그 늪을 논으로 바꿔 쌀농사를 시작했던 것이죠. 그러자 그 쓸모없던 땅은 엄청난 생산성을 가진 땅으로 변모한 것입니다. 그렇게 백 년 이 백년이 지나면서 신라는 서서히 강대국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 말에 남아있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은 이 때 나온 말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 속담에서 "강남"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미지의 땅, 기회의 땅이 아닙니까? 양자강 남부가 바로 그 기회와 미지의 땅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강남 갔던 제비"라는 말의 강남 역시 양자강 남쪽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구요. 심청전에서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서 배를 타고 인당수까지 가는 "범피증류"라는 대목을 자세히 보면 양자강 상류의 한강 유역에서 시작, 양자강 하구까지의 여정을 상세히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심청가가 만들어진 것은 양자강 유역이었던 것이죠. 이것은 고려시대에도 역시 양자강 유역이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제 "낙양성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 호걸이 그 누구며..."라는 성주풀이가 왜 낙양의 폐허를 노래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십니까? 이 노래는 신라 멸망 후, 통일 신라의 도읍이었던 낙양성이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지어 부른 고려시대의 노래인 것입니다.
    참, 고려시대가 아니라 고리시대라고 해야 겠죠. 麗자는 나라이름이 될 때에는 리라고 읽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구려가 아니라 고구리고, 고려가 아니라 고리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도 "옛날 고리적에는..."이라고 했던 것이고, 그게 와전돼서 "옛날 고리짝"이라는 말이 남게 된 것이죠. 이것은 조선 초기에도 고려를 고리라고 불렀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고리의 이름이 서양에까지 전해져서, 코리아라는 이름이 남게 된 것이죠.
    그럼 신라의 이름은 서양에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저는 알려졌다고 봅니다. 바로 샹그릴라 (이상향이라는 뜻입니다)라는 말이 신라라는 발음이 어려웠던 서양인들이 신라라는 이름을 잘못 전해서 생겨난 단어일 수 있는 것이죠....

    • @user-mountgo
      @user-mountgo 2 роки тому

      조선이 비석을 옮기는데 일조 했을거라는 추측은 가지만, 물증, 기록을 찾을수 있다면.....

  • @user-pe1mk8bp7u
    @user-pe1mk8bp7u 2 роки тому +5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 @user-ey9sk8gn8u
    @user-ey9sk8gn8u 8 днів тому +1

    '고구려의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 남당 박창화 찬술 청송 김성겸 초벌번역 편저를 참조바랍니다
    대륙 고구려 백제 신라 왜 가야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5 років тому +8

    한가지 참고로 가야의 문화재는 전라도에서도 나옵니다 의문이긴 하지만요
    보통 백제의 해상물류가 뛰어난것과 연관성이 아닌가도 봅니다
    대륙땅들의 신라방들이 아마 무역거점 지역이 아닌것과 같지않을까...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3

      정보감사합니다. 앞으로 영상을 만드는데 있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 @aegislee_korea
    @aegislee_korea 8 місяців тому

    좋은 내용과 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5 років тому +4

    많은 연구자료 감사하고 앞으로도 노력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가 참 대충 어성하게 하는 마인드가 많은데 그게 정과 구분을 못해서 아닐까도 봅니다
    일본만큼 세세하고 본다면 어느것이나 장단점은 따지면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왜곡된 역사도 안아무인격으로 봐라보고 있었고 재미나 눈의 즐거움으로만 살았다는게 참 안타까울정도 이지만요...
    조금만 더 넓은시야와 넓은마음으로 본다면 우리도 시베리아 역사에 안 넣을필요는 없는거죠...그리고 자꾸 대륙땅에는 안가거처럼 역사책도 나오지만 이런점을 바꾸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봅니다
    그나마 다행인게 범투르크민족성이나 범위와 역사로 나아간다면 이런 우주만물설과 관련되어서
    진실이 차츰 알려지지 않을까 보네요 노력에 감사드리고 항상 좋은 의견보여주세요
    응원합니다 요즘 김정민님도 고대사에 치중하다가 갑자기 오바를 국익 생각에 많이 하시는데
    나쁜모습은 아니라 지켜만 보지만요...백프로 사람은 없는데 저만큼 하는 분도 안계시죠...
    전 그점에 높이 평가를 합니다 이간질 선동질 영상보다는 유익하죠...
    당파싸움 아직도 하는데 똑같이 이간질 선동질하니...이것부터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러면 최소한 개선이나 대책이 뭔지라도 알리면 될것을 그저 상대방 욕하기 바쁘죠 자기는 안그런거처럼요...
    중국공산당 집단처럼 범죄자라면 그래도 됩니다 막 욕하고 이간질 선동질하구요 그래야 하구요
    일본도 욕해야 하지만 순서란게 있죠 중국공산당이 없어져야 일본에 문화재라도 받아올수있고 나아가 미국내 성경족속들 민낮도 알려지구요...
    요즘 트럼프 잘하던데 협상은 하겠지만 중국공산당한테는 협상을 안했으면 하네요...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1

      개인적으로도 김정민박사님이 고대사강연을 많이 해주셨음하네요.^^

  • @양군사마
    @양군사마 5 років тому +6

    오재성 선생님의 칼럼과 책들을 보세요
    출간되지못한 책이 너무나 많습니다 일식기록 박창남교수도 오재성샘에게 배웠습니다

  • @물병자리시대
    @물병자리시대 5 років тому +3

    흥미롭게 보고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공부하시는 분이신가요? 하시는 일이 어떻게되는지 궁금하네요

  • @眞正g
    @眞正g 2 роки тому +3

    박수민님의 설명을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간단히 의견을 말씀드리면...} 진흥왕이 실제 순수한 것이 아니라, 진흥왕 때의 신라 강역의 범위를 나타내기 위한 비석인데, 7말8초 시기에 {역사왜곡을 목적으로 해서=즉, 강소신라가 경주신라로 이동(exodus)한 것을 감추기 위함}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니 { 비문의 내용은 진흥왕 당대의 내용이지만} 죽은 다음의 시호가 비문에 등장하는 것이지요.
    다만, 신라역사를 개괄하면,... '산동신라(4~514) > 강소신라(514~875) > 경주신라(875~935)'인데, (675~875=200년)은 강소신라(西都)와 경주신라(東都) 양도를 운영했습니다. 저 순수비4개는 나중에 나라를 옮길 것을 전제로 해서 7말8초에 세운 것입니다...진흥왕은 강소신라에서 사망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메일을 알려 주시면 나름대로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로 협력하고 싶습니다.

    • @gulsakgi
      @gulsakgi  2 роки тому

      djsm4@naver.com 입니다.

    • @眞正g
      @眞正g 2 роки тому

      @@gulsakgi 감사합니다. 금명간 메일 올리겠습니다.

    • @whylive3471
      @whylive3471 Рік тому

      강소신라875년이면 이때 황소의 난이 있었지 산동에서

  • @y-rlee7261
    @y-rlee7261 5 років тому +4

    신라가 경주에 없었다면 울진 봉평비, 포항 흥성리비, 단양 적성비 등에 대해서도 분석해 볼 의향은 없는지요.

    • @gn.l3762
      @gn.l3762 2 роки тому

      신라 양자강설은 사대.식민 강단사학 계에 백만원군일겁니다. 그봐라 제야사학계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맹랑한지.

  • @user-qj2ou8nj5e
    @user-qj2ou8nj5e 5 років тому +5

    역시 순수하다하는건 순수하지 않구먼
    진짜 참기름이 가짜인 것처럼 ~~~♥

  • @yuma6976
    @yuma6976 2 роки тому +1

    경주에 왕성이 있었나요? 경주 무덤중에 그 매장자의 신분이 밝혀진 무덤이 단하나라도 있나요?
    토함산이 화산인가요? 신라는 왕이ㅡ많이 바꿘만큼 수도도 많이 옮겨 다녔는데, 왜ㅡ항상 언제나 경주가 수도인가요?

  • @박용환-p5m
    @박용환-p5m 2 роки тому +1

    동감합니다.

  • @노수민-o9t
    @노수민-o9t 5 років тому +1

    우리의 한반도 삼국역사기를 보기 전에 우리민족의 규명과 우리민족성의 강역을 구별하고 구분부터 하고 이를 반드시 알고 삼국역사를 따져야 할 게 있다.
    로마는 한반도보다 더 열악한 고산지 투성이인 이탈리아 반도의 한 구석에서 시작했고 로마태동의 동편에는 당시 지구최고의 문화군사국가로 그리스란 초강국이 있었다.
    그런데 로마의 성장은 북방지향적 사방확대로서 우리민족의 성장이동방향과 반대고 현존상황은 반도에 머물기로서 같다. 우린 북방이 온화한 기후로 살기 좋던 시기 북경과 랴오뚱 및 산둥반도 유역부터 몽골 만주 동쪽 연해주 그리고 남쪽 한반도를 아우르는 동북방 최대강국 이었으나 현존 우리민족성 강역은 대한민국 이란 남하된 방향의 국가소재와 같이 기껏 한반도에 머문다.
    우리민족성의 강역에 있어 고대역사의 기록은, 우리선조는 초지능의 우수문화를 가졌음을 알 수 있는데, 바로 민족성의 강역을 결정짖는 문자와 통치사상의 강역을 얼마나 넓게 보유하였으며 현재까지 그 민족성의 강역흔적이 실존하는지에 따라 역사적 민족의 힘을 가늠할 수 있다.
    민족성강역은 공동체가 함께 일상으로 사용하고 소통 공감을 하며 그를 역사흐름에 실어 민족과 민족성을 유지존속 계승 및 지속 발전을 시키는 말과 글의 강역과 그리고 그러한 민족성을 가진 공동체를 일체로 결속 및 담합행동을 하게 하는 민족철학의 존부여부와 그 철학 실체의 존재 및 그 실체의 실천적 기술의 보유여부로서 즉 민족사상을 자부심으로 공유하고 실천을 하는 강역이 민족성강역 이다.
    우리민족과 우리민족성에 동류한 집단의 고대 우리의 민족성강역에는 무슨 글과 통치철학이 있었을까 ?! ㅡ 군말이 필요없이 한글의 원류가 되는 문자와 홍익인간 통치사상 임은 부연 설명이 필요가 없는데 개독들이 모가지를 자르고 또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환빠 단군의 개천절 기념노랠 모르는 우리민족성 집단이 있을까 싶어 갈캬주면 풍백 우사 운사 즉 비 바람 구름을 거느렸다 했다! ㅡ 출전은 뛘국장깨들의 역사기록영웅 이자 타민족에겐 천하에 몹쓸 역사사기꾼 사마천의 글과 기타 중국 각종 고대역사서 및 중화학자의 고대역사 기술에 나온 그대로를 개천절 기념송의 내용으로 했으며, 갸들 짱깨역사에는 우리고대에 일반 백성도 문자를 사용하며 쉽게 보던 우리고대역사서에 씐 대로를 펌했다.ㅡ근데 잠깐! 여기서 도대체 우리민족성강역의 문자는 진짜 뭐지? 홍익인간 이란 통치철학과 민족사상만으로도 현대 민주주의 철학을, 우린 고대 그 때에 이미 뛰어넘고 국민대우를 받고 있었건만ᆢ, 그도 모자라 일반 국민도 글을 썼다? 그게 바로 가림토글 이다 마 ㅡ 근데 또 한자는 우짜꼬? 짱개족이 발견? 개풀 뜯는 소리! 옛부터 우수두뇌 집단인 우리민족성강역의 백성은 집단의 제례를 시작하며 왕명출납 족벌간 외교 전쟁 감찰 등 국사에 위엄과 기밀유지로서 암호적 표현과 표기를 전달했고 그 표기는 보존성이 좋은 뼈에 세겼었는데 주술적 내용의 표기를 한 골각문자가 한자의 시원이었다!
    그런 식의 표기가 우리고대 북방강역 집단에는 수두룩 했고 납작해서 문각이 편한 거북배겁질에 씐 귀갑문도 포함되는데 그걸 우연히 노점에서 줒은 짱깨가 왈왈대며 난리를 떨기로 한족이 한자발명의 원조라고 개난리 법석을 떨고 공산독재전제사회에 국가명으로 쉽게 강요주입역사로 고정고착화 역사가 되었다. 홍산문물과 흑피옥문물 그리고 피라미드의 주인과 실체를 드러내 대보라고 짱깨들은!
    일부러 규원사화 환단고기 등의 우리고역사서! ㅡ 민주화 이후에야 관심과 각광을 받는 책을 언급하지 앓아도 짱깨와 왜쪽바리가 숨죽여 눈치를 보는 한글 및 그 원류의 말과 글꼴 그리고 홍익인간의 철학과 통치사상은, 미개뛘놈중화국의 삼황오제 역사부터 한자창제 농사리 푸념부터 개조져 놓고, 일본서기의 비참유치한 조악조작의 칠전도 등 주장으로 임나왜국설 등 유인원미개인류 왜쪽바리의 역사도 개패주고 남는다!
    오죽했으면 황하치수에 우리강역 통치이념인 인치부터라고 했으며 사생아 공자가 동이후예 임을 자랑스러워 하고 동이는 집집마다 책이 있고 애들도 글을 읽는다고 했을까!
    등 등 민족과 민족성의 강역부터 보면 저절로 허위로 조작된 이상한 우리역사가 드러난다.
    삼국사기 자쳬가 중국사대 이니 그를 고참은 해도 인용인정은 함부로 말라.
    중국과 한반도에 같은 지명 같은 성씨가 있는 건 누가 먼저라 싸울 게 없이 당연한데 짱깨중화와 동이 등 오랑케족의 중화지배가 우수우월의 우리민족성강역의문화문화문명 전래 및 도입으로 같을 수 밖에 없는데 도대체 뭐가 문젠지?
    우리의 강역을 무엇으로 어떻게 정확히 보고 규명하며 단호히 그 역사조작을 배척하며 올바른 민족과 민족성의 강역을 정립할 지는 우리민족의 글과 말 사상부터 제대로 알고 손을 대자 ㅡ.

  • @ligiqkbvh
    @ligiqkbvh Рік тому +1

    Thanks!

  • @oitrwq
    @oitrwq 2 місяці тому +1

    비와 비에 새겨진 글자가 너무조잡하네요? 황제의 비석인데 일반사람비보다도 못한거같네요?

  • @Tanghuru888
    @Tanghuru888 5 років тому +39

    2차대전 전후의 기술력이라면, 비석따위는 왜곡하려면 얼마든지 새로 만들거나, 옮기고 싶은 곳으로 옮길 수 있죠.... 따라서 왜곡이 힘든 천문지리적인 데이타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요...?

    • @kisear455
      @kisear455 5 років тому +2

      천문도 왜곡하라면 왜곡할수가 있는데요?

    • @bnf7255
      @bnf7255 5 років тому

      @@kisear455 할순있지만 천문으로 지역을 추리하는 방법을 과연 생각할수 있었을까요?

    • @kisear455
      @kisear455 5 років тому

      @@bnf7255 천문으로 지역 추리하는거 자체가 무의미하고 광범위해서 별의미 없습니다

    • @유영복-r9j
      @유영복-r9j 5 років тому

      그리고 이미 요서~요동으로 시작한 고조선 부터 지금의 한반도로 오기까지의 선사시대때 부터의 한민족 유물이 차고 넘치는데 이걸 다옮기는것부터가 판타지지 만주 한반도 규슈까지 이어지는 비파형 세형 동검의 분포도나 고인돌 유적 등 이걸 다 옮기는게 말이됨?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발굴 되고 있는데? 말이 되는소리좀 하자

    • @Tanghuru888
      @Tanghuru888 5 років тому +2

      @@유영복-r9j 다 옮길 필요가 있음...? 스토리라인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 몇십가지 에서 몇백가지만 옮겨놓고, 그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역사학자들과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키면 끝아님....?

  • @sjpark4115
    @sjpark4115 4 роки тому +4

    혹시 진흥왕때 기록된 문서를 후에 비석을 새워 세겼을 가능성은 없나요?

    • @Jeong-eun
      @Jeong-eun 2 роки тому

      진흥왕은 이름이 김진흥입니다.

    • @이종환-x7j
      @이종환-x7j Рік тому

      삼국사기에 "시호를 진흥이라고 했다"
      라고 나옵니다
      님 말대로 김진흥이 생전이름이라면
      "생전 이름인 진흥을 시호로 했다"
      라고 기록되어야 맞죠
      역사서는 당대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 집필하는데 역사가들이
      저렇게 허술하게 기술했을까요?

    •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Рік тому

      @@이종환-x7j 고려인의 시선으로 삼국을 판단한 거죠

  • @박창현-w1h
    @박창현-w1h 4 роки тому +4

    현재 한반도 경주는 왕도가 아닙니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동경이고 100만호가 들어가야 하며, 먹고 씻고 빨래 할 물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경주에는 시내물만 있을 뿐 강이 없습니다.

    • @user-rq4bx3bl7z
      @user-rq4bx3bl7z 4 роки тому

      경주에 형산강이 있는데, 강이 없다는 이야기는. 베스낚시 가보세요.

    • @남천만
      @남천만 4 роки тому

      고대 경주에는 우물이 많음. 보문호 덕동호 같은 고지대의 풍부한 물이 밑으로 스며들어 경주분지 지하에 엄청난 수량이 저장됨..

    • @user-on9eh4jc7h
      @user-on9eh4jc7h 4 роки тому

      경주쪽 수질 좋던데요. 샘물로 개발되길.

  • @morphous
    @morphous 5 років тому +1

    그러면 신라는 대륙 동쪽 지역을 포함한 삼국을 통일 했으나 대륙 서쪽 지역 세력에 밀려 대륙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고 한반도로 밀려 나게 됐다가 되겠군요.이를 입증할 고고학적 유물들이 대륙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있느냐가 관건이겠네요. 철저하게 파괴되고 왜곡되고 숨겨지지 않았다면 일단 찾아야겠지요. 대륙에서 신라와 관련된 것들을요

  • @ninez6456
    @ninez6456 5 років тому +2

    좋습니다~!!

  • @user-kl7uy6op4q
    @user-kl7uy6op4q Рік тому +2

    감사합니다. 크기. 형태. 글귀 등이 제각각이니
    확실히 순수비가 아니네요. ㅎ

  • @chuligim4052
    @chuligim4052 2 роки тому +2

    일제시대에 일제놈들이 많이 장난질 해놨을거야.

  • @HH-re9re
    @HH-re9re 5 років тому +6

    영상 잘 봤습니다. 장보고의 청해진에 대해서도 해 주세요 진짜 완도가 청해진이 맞는지요? 궁금하네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4

      당시 신라방 신라소 라고 불리었던 당나라내 신라인 자치구역은, 제 생각에 한반도로 신라지배층과 함께 넘어오지 못하고 잔류했던 신라인들이 당나라에 완벽히 흡수되기 전까지의 과도기적 단계였다고 봅니다. 장보고가 왕에게 보고했던 당나라해적에 노략질당한 그 신라인들은, 중국동해안일대에 잔류했던 사람들이었겠죠. 그러나 그들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청해진이 구체적으로 어디였는지는 좀더 연구해볼 문제라고 봅니다.

    • @HH-re9re
      @HH-re9re 5 років тому

      @@gulsakgi 신라가 한반도 경주로 천도 후 지금의 왕릉들, 금관들 등이 형성되었다고 봐야겠네요?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6

      @@HH-re9re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봅니다. 무슨말이냐면 지금 경주일대에 산재한 왕릉이 신라의 것인지부터가 의혹입니다. 제가 알기로 신라 어느왕의 무덤인지 확실히 알려면 그 안에서 발굴된 유물중에 신라왕의 시호나 이름이 적힌것이 나와야하는데 지금까지 그런식으로 왕릉의 주인을 확정한것은 백제 무령왕릉 외엔 없습니다. 결국 지금 경주 왕릉의 주인은 모두가 제대로 모르는상태에서 단지 어림짐작으로 그 주인을 비정해놓은상태죠. 발굴을 한 황남대총과 금관총. 그 주인을 말하는 유물이 나왔습니까? 금관총같은 경우 그 칼에 이사지왕 이란 명문이 나왔습니다. 신라왕 그 누구도 이사지 라는 칭호를 가진왕은 없었습니다. 결국 제 추론은, 금관총의 주인은 신라가 경주지역을 복속하기전 존재했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왕국의 왕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이 다소 황당하게들리실수 있겠으나, 금관총에서 발굴된 그 금관 마저 신라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 @HH-re9re
      @HH-re9re 5 років тому

      @@gulsakgi 오 그러면 신라 게 아니고 다른 세력이나 왕국일 수도 있겠네요. 경주 유물이랑 중앙아시아 유물은 유사한 게 많고 이국적인 것도 많은데 신라 김씨가 흉노의 후예라 경주 '총'들은 신라 거일 수 있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네요?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6

      @@HH-re9re 그렇습니다. 저 역시 경주에서 발굴되는 유물들이 중앙아시아의 것과 연관이 있음을 알고있고 무덤의 주인들이 북방에서 남하한 기마민족일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그 기마민족이 신라의 김씨와 동일한 민족일수는 있을지언정 무조건 그들이 신라 김씨여야 하는 이유는 없는것이죠.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들이 그렇게 말해주고있습니다.

  • @youngman5202
    @youngman5202 4 роки тому +1

    내용은 좋은데, 백제의 위치가 틀립니다.
    요서지방은 티벳이고, 요서백제란 티벳과 그에 잇닿은 운남, 귀주지역입니다.
    백제의 경계가 서로는 월주에 닿아있다는 기록은 오늘날의 월남을 말하는 겁니다.

  • @jrodgrey51
    @jrodgrey51 9 місяців тому

    대륙사관에서의 주요 비판점 중 하나가 광개토대왕릉비나 진흥왕 순수비 등등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유물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데 삼국이 대륙을 지배했다고 해서 대륙'만' 지배해야 할 이유는 없죠. 그러니까 대륙과 반도 어느 한곳에만 집중하지 말고 대륙과 한반도를 서로 엮어서 추가적인 연구를 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반도사관으로 일식기록(이 체널 영상보면 나와있죠)이나 지명, 기상기록 등을 설명할수 없는것도 매한가지기 때문에.

  • @numberks
    @numberks 4 роки тому

    좋아좋아
    발상 심오한분서력 밋터리에빠져들거하는
    목소리 백지영 목소리한번댕겨보고 가자이

  • @user-fo1fw4zs2u
    @user-fo1fw4zs2u 4 роки тому +1

    논리적이야. 역사책 보면서 비논리적인게 한 둘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렇다고 하니까 우리 조상들이 뻥이 쎄구나 싶었는데. 궁금증이 풀리는거 보면 강단 사학이라고 해서 다 맞는게 아닌듯

  • @Jeong-eun
    @Jeong-eun 2 роки тому

    북사는 643~659년 완성, 삼국사기는 1145년에 완성 중국은 누가 조공오는거 바로바로 기록하지 않나 조선도 실록을 기록할때 승정원 일기인가 사관이 그때 그때 써 놓은거 정리한거 아닌가. 진흥왕 순수비 이름들은 가야 이름인데

  • @dufosla2
    @dufosla2 5 місяців тому

    명과 조선을 의심합니다.
    한족 중심의 종교집단 明敎가 고려의 땅에 건국한 명나라와 역사를 아는 반도내 왕씨를 숙청하며 고려를 나눠먹은 조선의 작품 같음.

  • @유강-t2i
    @유강-t2i 5 місяців тому

    국보가 나오지 않는것은 나라에 알리면 보상도 없고 심지어는 땅도 맹지가 됩니다 경주에서 많이 나오던 유물들이 1990부터 거의 나오지 않는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훈민정음 혜례본도 국보니 소유권은 국가로 귀속된다는 법이 있으니 그 누가 알리겠나요?
    저 같아도 절때로 알리지 않을 겁니다

  • @문성철-r4g
    @문성철-r4g 2 місяці тому

    황룡사는 선덕여왕 시절에 건립되지 않았나요?

  • @kijp45
    @kijp45 4 роки тому +1

    일본사기만 판타지아이니고 대한민국 일부에서도 판타지역사를...꿈꾸는건자유!

  • @dongwk2662
    @dongwk2662 3 роки тому

    8세기 이후에 천도했으면 당나라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했는데 그 땅을 버리고 한반도로 왔다는 게 좀 이해가 안 되네요 ????당시 당나라는 또 어디 있었나용?? 매소성이나 기벌포는 어느 쪽일지?

  • @Custade
    @Custade 4 роки тому

    근데 수민님 말대로 대륙신라가 맞다면 황산벌전투랑 관산성 전투는 대륙인가요? 반도인가요? 약간 혼란스럽긴 하지만 일식도로 인해 만약 사실이라면 중국 대륙에 신라 백제관련 문화재는 중국측에서 막고있는건지..

  • @cattofg
    @cattofg 2 роки тому

    우리나라는 일제 시대를 겪었기 때문에 역사 조작을 의심해봐야합니다.
    그렇지만 진흥왕 순수비는 정말 말이 안되게 이상하군요.
    저 순수비가 만약 역사를 조작하고 거짓된 이야기를 만들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면 구역질 나는 일입니다.
    그런 놈들이 있다면 사람이라 부르면 안됩니다...
    어쩄든 진흥황 순수비 저 4 비석 너무 수상하군요.

  • @user-id6ow6mn4e
    @user-id6ow6mn4e Рік тому

    신라 고구려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관점에서 볼 때 가야가 한반도에 존재했을까요?

    • @gulsakgi
      @gulsakgi  Рік тому

      대륙에서 출발해 이후 한반도 및 일본열도로 이주한것으로 추정됩니다.

    • @user-id6ow6mn4e
      @user-id6ow6mn4e Рік тому

      @@gulsakgi
      신라는 천재지변으로 한반도로 이주하셨다고 하셨고,
      가야는 무슨 이유로 한반도로 이주를 했을까요?
      이주를 했다면 육로 해로?
      육로로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해로로 이동했다고 해도 바다의 환경이 꽃 길은 아니었을 것 입니다.
      설령 도착했다고 해도 원주민이 가만히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주지인 한반도의 상황을 세가지로 추론해 보았습니다.
      첫째 한반도가 무주공산이었다
      둘째 원시인들이 살던 곳이다.
      셋째 가야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이 추론도 가능성이 낮은 것이 정착지 주변으로 이주를 하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와 정착지를 건설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이 듭니다.

  • @user-eu4mw3gg3x
    @user-eu4mw3gg3x Рік тому

    2:50 진흥왕 시호

  • @user-zp9bx8om8n
    @user-zp9bx8om8n 2 роки тому

    역사는힘에논리로써여진다.고려가북방토벌.이성계를보낸지.고려가군사를모아북방을치다며어마어마한군사와군량있서야되는대.고려가약하다.생각한번해봐야지.군사반란이아니며고려가멸망해는가.

  • @양군사마
    @양군사마 5 років тому

    왜가 중국절강성남부부터 대만까지이며, 야마토정권과 왜는 다름으로 보고있습니다. 명나라때 현재 일본국의 작호를 받아쓰고 있고, 지판구,왜는 신라우측과아래, 절강성아래로 대륙백제아래 존재했네요, 일본국은 고구려백제신라영토 였네요 일식기록이 대만계로 나옵니다

  • @Jeong-eun
    @Jeong-eun 2 роки тому

    가야는 하나인데 6개로 쪼개더니 일본서기로 수십개로 쪼갰어 창녕비는 개척비인데

  • @user-vb7kl3wi3h
    @user-vb7kl3wi3h 4 роки тому +1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륙에 있었다면, 수나라 당나라 는 어디 있었나요.

    • @As-summer-passes
      @As-summer-passes 2 роки тому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은 중국의 동부해안가에 백제 신라가 고구려는 하북성등과 만주 중국은 동부해안 제외 낙양 장안 중심인 서쪽지역에 있다고 합니다

  • @anunnakyangeles4690
    @anunnakyangeles4690 5 років тому +5

    신라는 원래부터 대륙에 있었다 라는 사실에
    우리의 역사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 @gn.l3762
    @gn.l3762 2 роки тому

    강단사학계에 힘만실어주는것 아닐까 합니다. 양자강쪽에 신라가 있었다면 돛단배타고 수십만.수백만이 동지나해를 건너온다는건 불가능합니다. 지도부.수백명 아니 수천명이 옮겨 왔다고 해도 그게 양자강쪽의 신라일수는 없습니다.

    • @user-mountgo
      @user-mountgo 2 роки тому

      지진으로 목숨을 건질려고 피난하든 생존력과 육이오 민족의수난은 한국민족의 DNA가 되어 숨쉬고 있고, 우리 민족의 부흥을 중국과 일본은 게속 경계하는 역사적인 수레바퀴가 되어 인류의 흐름으로 나아가나 근적적인 인류의 발전을 추구하는 민족만이 선진 문화민족으로 남는 것을 조만간 이번대에 세계에 보여 줄 것 같은 우리 만족의 우수함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예언자 들도 충분히 증언 하고 았고 역사를 아무리 외곡하고 숨길려하고 공정해도 진실은 외곡 되지않고 미래에 드러나고 나타난다고 본다.
      이제 일본은 지진으로 피난처를 찾고 중국도 다시 수몰의 역사가 오면 우리민족의 왔던길이 다시 한번 반복회자 되고 인류에게는 교훈이 있을것이다. 우리는 그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기나긴 역사의 수레 바퀴속에 생존 보다는 교훈을 찾아야 하겠다.인류의 공존을 위한 길이고 홍익 인간 정신이 아닐까?

  • @joongseon
    @joongseon 8 місяців тому +1

    대륙 삼국? 수천년간 중국의 그 많은 역사가들이 모두 짜고 고스톱을 쳤다고? ㅋㅋㅋㅋㅋ 놀구계시네요...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2 місяці тому

      아주 무식한 티를 내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읽어봤나?? 읽어보고나 지껄이길.
      중국사서들도 신라가 대륙에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무슨??

  • @y-rlee7261
    @y-rlee7261 4 роки тому

    황제는 스스로를 짐이라 하고, 제후는 과인이라 했고, 관리들은 소신이나 신이라 합니다. 진흥왕이 스스로 과인이라 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 @renovatio2946
      @renovatio2946 3 роки тому +1

      진흥왕은 통일신라 이전의 왕이야. 삼국시대때 중국은 수나라 당나라 정도였어. 무슨 황제국이야? 신라가 제후국이냐? 수나라, 당나라가 제후국 고구려를 침략했다 말을해..그러다가 깨진거여, 니 말대로 라면...

    • @user-rq8rh3si3m
      @user-rq8rh3si3m Рік тому

      나는 진짜 신기한게 수나라 당나라같은 보잘것 없는 것들이 어떻게 황제라고 썼는지 그게 젤 신기함 황제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서 지들끼리 올려친거 아님? 지금에야 황제 다음이 왕 이지만 그 예전에 그런 개념 조차 없었을때는 황제가 뭔지 알게뭐임? 알아야되나? 지들끼리 황제놀이하고 노는데?

  • @user-hk8px4bt8r
    @user-hk8px4bt8r 2 роки тому

    시호와 이름을 똑같이 할거면 시호를 만들 이유가 없음 . 그리고 창녕만 비석을 세워다가 말이 안됨 6가야 다 세우든지 아님 다는 아니라도 최소 몇개는 세웠어야지 창녕보다 더 강한 가야국들을 복속 했는데 안 세운다 말이 안됨

  • @dufosla2
    @dufosla2 5 місяців тому

    옮겨오고 한 두 세대가 흐르면 기록에 의존하게 됩니다. 지명의 이동에 따라 그지명과 기록에 맞게 김씨 후손들이 산정상에다가 기록을 한것 아닐까?당대 같음 정치인이 도심에 만들었겠지요...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이 사람 보라고 만들었겠지요. 바보도 아니고 산 꼭대기에 만들었을까? 누군가 기리기 위하거나 역사조작을 위해 만들거나 옮겼네요. 신라는 일본백제의 원수국입니다.

  • @user-kn2yj3xq5k
    @user-kn2yj3xq5k 4 роки тому +2

    진흥왕 순수비 4개는 모두 중국에 있었는데 일제때 중국에 있던 비들을 모두 한반도에 옮겨지고 일부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새겨져 반도사관에 맞게 심어져 교육받고 세뇌되어 왔습니다..경주가신라의 천년고도 라고 강변 하는데 천년 고도의 문화제라는것이 전혀 형편없으며 유물도
    거의 없고 가짜유물입니다..초등학교 수학 여행때 공주와 부여 경주를 봤는데 초라한 유물 에 많이 실망했었습니다..
    한마디로 백제와 신라는 반도에 없었다는 것입니다..이제야 일제가 한반도에 만들어놓은 역사의 퍼즐이 하나하나 맞쳐지네요..

    • @elithaqua
      @elithaqua 4 роки тому

      일제가 문제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사실을 은폐한거아님??ㅋㅋㅋㅋㅋ

    • @elithaqua
      @elithaqua 4 роки тому

      일제가 그랬다면 왜 굳이 한반도로 그 비석을 옮김?? 그냥 그 비석있던자리까지 구실삼아
      지배하면 되지??ㅋㅋㅋㅋㅋㅋ
      굳이 옮긴다구??

    • @user-kn2yj3xq5k
      @user-kn2yj3xq5k 4 роки тому +1

      일본이 지배한지역이 중국 본토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지배했으며 서안이나 감숙성 같은 내륙깊은 곳에서나 중국인들과 전쟁을했다구 합니다.. 원래만주지역이 감숙성 지역인데 일본이 지명이동을 해서 한반도 북부를 신만주라고 부르면서 역사를 만주와 한반도로 구겨 넣어 가르치고 있는거죠.. .일본 패망후 중국 공산당이 중국 본토를 모두 점령하고 그안에살고있는 조선의 사람들과 지식인을 어마어마하게 대거숙청하고 역사를 새로 만들어 가르쳐서 중국사로 즉 한족의 역사로 부풀려서 배우고있는것이라고 합니다....
      역사 학자들 유물을 발굴하면 한민족의 것이 많아 대부분 비밀리에 다시덮고 발굴자를 격리조치하고 비밀에 부치라는 명령을 공산당간부가 철저히 한다고 합니다...
      중국 어느 양심적 역사 학자가 올린 글들입니다...그리고 일본중국 대만 인도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한국역사의 왜곡 축소를 암암리에 지지 하고 있다고들합니다....한민족 의 옛영광 과부흥을
      막고 못난조상들의 후손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꺽어 강대국에 순종굴복하는 하등 민족으로 살게하기위해서 라고 합니다...

    • @user-kn2yj3xq5k
      @user-kn2yj3xq5k 4 роки тому

      @@elithaqua 중국도 일본과 함께 해방후 조직적으로 역사를 은폐 한족사를 부풀려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 @장02
    @장02 2 роки тому +1

    우리 가족 납골 비석에 빈칸이 있습니다. 사후 돌아가신분 이름을 첨자해넣기 위함이죠. 진흥이란글자만 사후 첨자되었을듯합니다. 비석은진짜지만 위치가조작된것이라 생각됩니다. 큰비석을 그옛날 어떻게 옮기느냐는 물음은 근대에 옮겨진것임 일제강점기때는 기차철도의 발전으로 중량물의 이동이 용이한시기이며 일제의 대륙역사 반도이식이라는 이유도 뚜렷합니다.

  • @dlstodgodqhrgos581
    @dlstodgodqhrgos581 Рік тому

    중국 역사에 대륙신라 백제 고구려가 적힌 역사서가 있을거 아닐까요? 당나라가 지웠나요? 궁금하네요.

  • @이종배-h6l
    @이종배-h6l 5 років тому

    초딩같은 질문이긴한데요 대륙에서 신라백제 고구려 있었으면 세나라 언어는 어떻게 같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고대사를 몰라서....ㅠ.ㅠ 한국가였는데 세나라로 나뉜건가요?

    • @이계절-g9r
      @이계절-g9r 5 років тому

      똑똑하십니다~^^

    • @higher1461
      @higher1461 5 років тому

      지금 중국도 언어가 다 다른 거 아시죠?
      사투리 생각하면 미디어가 없다면 언어가 다른지 않았을까 추론할 수 있죠
      우리나라가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건 아마 없지 않았나 싶네요.
      역사고증을 통해서 다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꼬지마시고 열리마음으로 봐주시죠
      이런 이론도 있다~~정도로

  • @yohango1445
    @yohango1445 4 роки тому

    몇억짜리 이해할수 없는 단순한 그림과 몇만원짜리 컴퓨터+프린터+프로그램이 있다. ....
    인간들은 예나 지금이나 복잡하다.

  • @user-ld9uz2hl3j
    @user-ld9uz2hl3j 6 місяців тому

    우리 아빠 올아요 선덕여왕 아빠 아빠 죽고나서 세웠어요 네 올아요 진시황제가 한국 박혁거세 .진평왕 환생부활 반복이예요

  • @7h77l3
    @7h77l3 5 років тому

    궁금한게있는데 그럼 한반도는 어느 나라 영토인가여? 중원 무대가 삼국영토이면 중국은? 서하쪽아님 한반도? 정말 궁금합니다.

    • @타산지석-k8r
      @타산지석-k8r 5 років тому +1

      동부여-고구려변방-신라순으로 한반도역사가 이루어지죠물론 대륙에 삼국은 존재했었고...

  • @남천만
    @남천만 5 років тому

    신라가 중국 내륙에서 일어나 나중 경주지역으로 욺겨왔다면, 신라가 중국을 지배하고 그영토 역시 우리땅이라는 논리를 설정할 수 있을것 같지만, 역으로 신라는 중국의 역사 그리고 신라의 영토 역시 중국의 것이라고 중국에서 주장하면 뭐라 대응 할것인가?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신라가 한반도에만 있었다 해도 어차피 중국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않을것이라 봅니다. 지금 중국은 백제도 중국사라는 논리를 만들고 있는데 그들이 과연 백제에서 멈출까요? 신라야 명분만 만들어내면 그만입니다. 예를들어, 신라 김씨가 흉노라는 설이 있는데 흉노는 중국의 역사다 고로 신라는 중국의 역사다. 아니면 신라가 당나라 연호를 쓴점, 당나라에 조공한점을 들어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시킬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륙신라의 가능성은, 대한민국이 역으로 중원에 대한 역사적 명분을 가질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라 봅니다. 어느 국가의 역사는 결국 지배계층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인데, 신라 지배계층이 한반도로 넘어왔다면 그들이 본래 소유했던 중원 영토에 대한 정통성을 우리 대한민국도 가질수 있다는 것이죠.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제 의견의 핵심은, 어차피 중국은 한반도 전역 공산화를 위한 역사공정을 진행할것이고 그런면에서 대륙삼국은 우리가 역으로 중원대륙의 한국화를 위한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종환-x7j
      @이종환-x7j Рік тому

      중국이 뭐라 주장하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죠

  • @pabelshin
    @pabelshin 5 років тому +2

    시호 아니고 이름이 김진흥이라고 밝혀 졌음
    이영상 의문의 출발이 잘못됨...동굴에서도 발견됨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삼국사기 기록과 동굴에 새긴 글자가 충돌한다면 저는 삼국사기 기록을 더 신뢰할것입니다. 따라서 진흥왕 사후에 후대인들이 동굴에 새겼을 가능성이 높다 봅니다.

    • @pabelshin
      @pabelshin 5 років тому

      sumin park 아니 충동하는게 아니고요.
      순수했다고 동굴에 세겨져 있습니다.
      김진흥으로 나옴 벌써 두군데에서 발견됐습니다.

    • @pabelshin
      @pabelshin 5 років тому

      sumin park 그리고 글쓴이의 견해에 문제로 보는게
      진흥이라는 이름을 평소에 쓴거랑 왕사후에 시호라고
      따로 보는 관점인데 이런 방식은 조선 고려시대나 되서 그런거지요.
      신라 백제 고구려의 시호는 전혀 다릅니다.
      또한 일정지위이상의 사람들은 이름이 많게는 5-6개정도 (아명. 호 등등) 됩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pabelshin 동굴에 새겨진 글자는 정확히 어느시기에 새겨진것인지 판가름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삼국이 고려, 조선과 시호를 쓰는방식이 달랐다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근거를 가지고계신지 묻고싶습니다.

    • @pabelshin
      @pabelshin 4 роки тому

      sumin park 진흥이 시호인디 이름인지 밝혀졌다구요.
      왕이 되기던부터 진흥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후에 시호도 진흥으로 쓴것이고 당시에 시호의 개념과
      후대에 시호의 개념은 다르다는게 학계정설 아닌가요?
      그리고 이번에 발견된 글자로 인해 더 명확해진거죠.

  • @y-rlee7261
    @y-rlee7261 5 років тому

    신라 스스로 순수비를 세웠다면 스스로 영토를 축소하고 왜곡한 것이 되니 참으로 모순이 되네요. 8세기 천도만 한 것이라면서 왜 스스로 영토를 축소하고 왜곡된 비석을 세웠을까요. 뭔가 모순이 되네요.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4 роки тому

      자신들이 통치를 못하는 지역을 떠나서 아예 그 영역을 잃는다면 이것은 왕의 권위와 자존심의 실추로 이어질거고 마치 중국공산당이나 일제가 전쟁에서 패해도 이기고 있다는드시 은폐를 하지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을것으로 보입니다.

    • @y-rlee7261
      @y-rlee7261 4 роки тому

      @@dennythedavinchi3832 말이 더 안되지요. 영역 축소가 창피한 일인데 한반도로 오면서 역사를 스스로 축소하고 비를 굳이 세워 영역 축소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4 роки тому +1

      @@y-rlee7261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그 작은 반도 땅에서 소중화라는 웃기지도 않는 비굴한 짓을 한게 조선사대부들이고, 당시에 고대 영토를 더 넓게 봤던 사람도 여러 있었지만지금의 압록강으로 선을 그어 확정한것도 정다산입니다.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추태를 감추는것을 본인들은 과거에 아무흠집이 없다고 은폐하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 역사를 서술해 왔던거로 보입니다. 물론 본인들도 그걸 그대로 믿는경우도 있고, 체제 안정을 위해 답을 정해놓은 경우도 있는거 같습니다. 명나나 청나라에게 영토 요구를 할 힘도 없으니까요. 단념해버린거죠.
      우리야 지금 쟈유와 민주주의, 자주주의에 각인된 세계관에서 살지만, 과거는 그렇지 않았다는걸 직시해야죠.

  • @양군사마
    @양군사마 5 років тому +2

    영상수준 높습니다

  • @SamSaek.
    @SamSaek. 4 роки тому

    논리적으로는 대륙신라가맞는데 중국사서에 한번도안나오는것이 이상합니다

  • @y-rlee7261
    @y-rlee7261 5 років тому

    8세기 신라가 만주를 점령하고 있었다면 발해는 어떻게 되는 건지요?? 만주에서 발해 유물이 발견되고 중국도 일부지만 유물들을 공개했습니다. 8세기 만주를 신라 영역으로 표시했는데 말이 안되지 않나요??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5

      개인적으로 만주 길림을 잠시 거쳐 신라가 한반도로 왔다고생각합니다. 만주일대에 발견된 성터가 발해의것이 확실한지부터 짚고 넘어가야하며 실제 발해의것이 맞다하더라도 신라와 한때 만주를 양분했을 가능성이 있고, 혹은 787년 이후부터 신라의 일식 관측위치가 한반도남부로 나오는것을 봐서, 이당시부터는 만주의 영역을 신라가 상실했을수도있습니다. 당시의 영토는 지금처럼 고착화되지 않았을것이기에 저의 이러한추론이 단순한 억측은 아닐것입니다.

  • @happy-rich_5
    @happy-rich_5 2 роки тому +1

    이전에 적은 무지할 때 적은 글을 지우고 다시 씁니다.
    첫째 비석에서 보이는 글자는 태왕 부터 입니다 ㅠ 진흥이라는 글자는 애초부터 안보이고
    옆면에 후대에 진흥대왕이라고 쓴 글에서부터 라고 보는게 맞을거 같습니다. 물론 진흥은 돌아가신 후의 시호이니 이미 말이 안되구요.
    둘째 '태왕'이 당시엔 고구리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호우총에서 나온 광개토호태왕 처럼 말입니다
    당시 고구려 영토라고 해야 더 말이 되죠

  • @user-qj2ou8nj5e
    @user-qj2ou8nj5e 4 роки тому +1

    진흥왕은 예수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비석을 세운 것입니다
    제 거시기도 죽어있지만
    언젠가는 부활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

  • @user-xm8yl8ut1y
    @user-xm8yl8ut1y 5 років тому +1

    일본이랑 중국은 그냥 역사범죄자들이네 ㅋㅋ

  • @ediya4499
    @ediya4499 2 роки тому

    영상 참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창녕비가 왜 부자연스럽다는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해가 안되네요..

  • @user-hj1bk8bx4l
    @user-hj1bk8bx4l 4 роки тому +5

    뭐 다 가짜래

  • @kor1213
    @kor1213 2 роки тому

    진짜 비석은 강도가 쌔지요. 왜냐 후대에 알리려고 하기에..

  • @Hi-wt9bl
    @Hi-wt9bl 2 роки тому

    근데 대륙신라면 말갈족이랑 접점이 없지 않나요????

  • @Jeong-eun
    @Jeong-eun 3 роки тому

    광개토왕비는 신봉하던데 진흥왕 순수비는 부정하는 쪽인가

  • @user-zq5dc1jd5m
    @user-zq5dc1jd5m 2 роки тому

    반복 학습 합니다

  • @user-hv8ku8hx3d
    @user-hv8ku8hx3d 5 років тому +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돌산유격대-x4d
    @돌산유격대-x4d 4 роки тому

    바보가 아니라면 넓은 중원땅을 포기하고 작은 경주땅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누가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 @이종환-x7j
      @이종환-x7j Рік тому

      로마와 징기스칸이 그 넓은 영토를
      지배했지만 영원한것은 없습니다

  • @user-ru2vs3jp7t
    @user-ru2vs3jp7t 4 роки тому

    그래서 중국땅도 우리땅, 우리땅 찾읍시다.

  • @enigma6166
    @enigma6166 4 роки тому

    대륙에 있던 순수비를 옮긴걸 수도 있지 않을까? 순수는 활제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 @gn.l3762
    @gn.l3762 2 роки тому

    중원 고구려비도 가짜겠네요.ㅡ

  • @북극물개-c5o
    @북극물개-c5o 4 роки тому

    영상들 쭉 보고잇는데 헛소리라고 하기엔 작성자분이 준비해온 자료들이 많고 근거들이 논리적이네요 제가 궁금한건 기존 역사 패러다임이랄까 일반적으로 배우고잇는 사실들을 저같은 일반인들만이 아닌 역사 전문가들도 따르고 있는중인데 이 사람들이 다 바보가 아닐텐데 왜 님이랑 다른 전형적인 역사론에 동의하고 잇는건가요?? 만약 그분들이 님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논리적으로 반박되서 역시 그럼 그렇지 뭐 이렇게 될까요?

    • @gulsakgi
      @gulsakgi  4 роки тому

      고대사는 기본적으로 물증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어느한방향으로 기준을 잡고 역사를 바라보게되면 저와같이 다양한 추론을 할수있게되요. 따라서 기존학계 역시 그들나름의 논리와 추론이 성립할수 있고, 굳이 그들의 반응을 궁금해하실 것도없이, 현 교과서 내용이나 인터넷에 우선적으로 검색되는 지식백과등을 보시면 그들의 논지를 이해하실것으로 생각됩니다.

  • @huiyuliu339
    @huiyuliu339 4 роки тому

    그라니까한국사람들은스리랑카의후손이다이말이네요

    • @user-on9eh4jc7h
      @user-on9eh4jc7h 4 роки тому

      가야쪽은 그쪽 근처인들의 이주 기록이나 흔적이 있습니다.

  • @theredangel3980
    @theredangel3980 5 років тому +1

    쿠왁핫핫하핰칵콱ㅋㅎ~~

  • @안채순-e5j
    @안채순-e5j 5 років тому +8

    순수비는 일제가 만들어 거짓 역사를 만든것이다.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4 роки тому

      어쩌면 그전에 신라가 한반도로 천도하면서 주변에 기념비들을 세웠을수도 있고, 조선이 모든 자신들 영토 안속서 삼국의 역사를 그리려 억지를 쓰다 결국에 이런 비석들을 조작했을 가능성들도 있습니다. 북한산진흥왕 순수비는 확실히 조선시대에 발굴 되었고 나머지는 일제시대지만 마운령이나 함초령은 일본인이 발견한게 아닌걸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