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은 유학자 당시 학문을 배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있었죠 신채호 선생도 유학과 과거제도가 우리나라의 기상을 낮추고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는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자리잡게하여 우리나라의 긴역사 동안 조공국으로 전락한것을 안타까워했어요
신채호가 살던시기야 일제강점기니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온다 치지만 현재에는 신채호의 그 말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봅니다. 간단히 생각해봅시다. 지금 현대인들이 햄버거를 먹고 청바지를 입는다고 모든 현대인을 친미성향 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 당시도 이거랑 비슷했습니다. 중국의 문화가 그때는 가장 우수했으니 중국의 문화를 따르자고 한 게 맞던 거지요. 게다가 신채호가 사대주의자라며 제일 싫어하던 사람이 김부식이었지만 정작 김부식은 사대주의자와는 거리가 꽤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쓴 책을 삼국사기라고 붙였다는 것 부터가 사대주의자였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는 증거에요. 사기는 황제국의 역사서라는 뜻으로 중국에서만 쓰던 이름이니까요
@@o자유함 그리고 유학도 문화다. 당신이 말하지 않았나 우리민족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줬냐고. 햄버거 먹고 청바지 입는 것도 같다. 지금 길거리에 한복 입고 다니는 놈이 있다 치자 어떻게 보이나? 미친놈으로 안 보이나? 똑같다. 지금 동양에서도 서양식 학문과 문화를 따르듯 당시에도 중국이라는 문화를 따라덨 것 뿐이다.
1:27 설명 오류: 최적관측지에서 가장 잘보이고 주변에서 관측가능한점은 맞으나, 삼국사기에서는 한반도에서 볼 수 없는 일식 기록이 나타납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큰비[大雨]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는 번역이 안되어있어 원문으로 홍수기록 보면 신라 131년, 212년, 260년, 350년 496년, 720년, 785년 백제 116년, 497년으로 지금의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장마전선이 생겨 같은시기에 두 지역이 호우 피해를 보는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백제의 일식 최적관측지로 나타난 지역이 평소 비가 자주 안내린다는 점도 무시 못합니다. 과학계의 주장을 역사학자들이 검증조차 시도하지 않고 묵살했을 뿐 반박된것은 아닙니다.
삼국사기 일식 기록에 대해 무시 하는 분들은 최적일식 관측지의 개념이 부족해 보입니다(개인 의견) 1. 중국대륙에서 관측되는 것이 한반도에도 관측된다는 의견에 대해 - 실제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식기록의 일부는 한반도에서 관측 불가능한 사례가 다수 존재 2. 중국에 존재한 고대 왕조의 일식기록을 삼국사기에서 차용했다는 주장 - 만약 차용했다고 가정 시 중국의 일식기록(모수)에서 샘플링으로 차용했을 때 고구려/백제/신라의 일식기록처럼 특정 지역에서 관측되는 일식 기록만 차용했을 가능성 약 0.6% 임 즉, 당시 천문학은 관측기록만 남겼을 뿐 언제 발생할꺼라는 것을 모르는 시대에 특정지역에서만 관측되는 일식기록 만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거 - 중국 고대왕조의 일식 리록 분석 삼국시대 당시 존재한 진, 한, 수, 당, 북연, 전연 등 일식 기록 분석 시 최적관측지로 분석되는 특정영역 확인 안됨.. 따라서 중국 고대 왕조가 관측해서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더 낮음. 이런 내용을 우리 사학계에서 알고나 있는지 의문입니다.
신채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고려후기 조선초기 까지만 하더라도 고대 역사서가 많이 남아있다 하셨는데 그놈에 원나라와 명나라를 섬기고 나서부터는 대륙과 싸웠던 역사를 부정하고 그들의 문화와 풍습이 아닌것들을 부정하게 되서 자체척으로 많이 없애버렸다고 하네요 그리고 신라~고려를 거치면서 불교가 크게 발전이 되어서 고유 명칭이나 이름들을 없애고 불교용어로 다시 썼다죠
신채호의 그 말은 완전히 믿을 수 가 없습니다. 조선이 일부러 역사서를 태웠으면 그럼 지금까지 남아있는 삼국사기는 뭡니까? 게다가 조선도 고려사를 편찬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병자호란 같은 수많은 전쟁이 났기 때문에 그 때 역사서도 같이 없어진 게 더 맞을겁니다.
대한민국에 고대 역사서로 주요한 것이라고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단 2가지만 전해지고 있는 이유도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는 동안 역사관련 서적을 23만여권을 거둬들여 불살라버렸던 게 결정적입니다. 신채호 선생같은 분들이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역사적 기록들을 읊으고 계신 건 당시까지만 해도 여러 역사 서적이 존재했었다는 방증입니다.
근구수왕이 기원후 375 년에 즉위하여 재위 10 년 동안에 고구려에 대하여는 겨우 한 번 평양 침입이 있었으나 바다를 건너 지나 대륙을 경략 하여 선비 ( 鮮卑 ) 모용씨 ( 慕容氏 ) 의 연 ( 燕 ) 과 부씨 ( 符氏 ) 의 진( 秦 )을 정벌하여 , 지금의 요서 ( 遼西 ) · 산동 ( 山東 ) · 강소 ( 江蘇 ) · 절강 ( 浙江 ) 등지를 경략하여 넓은 땅을 장만하였다. 이런 기록이 비록 백제 본기에는 오르지 않았으나 양서 ( 梁書 ) 와 송서 ( 宋書 ) 에 "백제가 요서와 진평군 ( 晋平郡 ) 을 공략하여 차지하였다 ( 百濟 略有遼西晋平郡 )· ”고 했고, 자치통감 ( 資治通鑑 ) 에는 “부여 ( 扶餘 ) 가 처음에 녹산 ( 塵山 ) 에 웅거하였다가 백제에게 격파당해 서쪽 연 ( 燕 ) 가까이로 옮겼다."(扶餘 初據鹿山 爲百濟所殘破 西徒近燕 ) ”고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대개 근구수가 근초고왕의 태자로서 군국 ( 軍國 ) 대사를 대리하여 이미 침입하는 고구려를 격퇴하고, 나아가서 지금의 대동강 이남을 차지하고는 해군을 확장하여 바다를 건너 지나 대륙에 침입하여 모용씨를 쳐서 요서와 북경( 北京 )을 빼앗아 요서 ( 遼西 ) 진평 ( 晋平 ) 두 군을 설치하고, 녹산 ( 塵山 )---지금의 합이빈 ( 哈爾濱 ) 까지 들어가 부여의 서울을 점령하여 북부여가 지금의 개원 ( 開原 ) 으로 천도하기에 이르렀으며, 모용씨가 망한 뒤 지금의 섬서성 ( 陝西省 ) 에서는 진왕 ( 秦王 ) 부견 ( 符堅 : 역시 선비족 ) 이 강성해지매, 근구수왕이 또 진과 싸워 지금의 산동 ( 山東 ) 등지를 자주 정벌하여 이를 피곤하게 하였으며, 남으로 지금의 강소 · 절강성 등지를 차지하고 있는 진 ( 晋 ) 을 쳐서 또 한 얼마간의 주군 ( 州軍 ) 을 빼앗았으므로 여러 책의 기록이 대략 이러한 것이다.
1) 일제가 23만여 권에 달하는 책을 분서했다는 원문을 보여주세요. 구체적으로 몇 년도 몇월 며칠에 일어난 사건인가요? '나다니엘 페퍼'가 그랬다더라 같은 카더라 말고 정확한 출처를 남겨주세요.(인터넷에 있다고 다 사실이 아니라는 '링컨 패러디' 짤 아시죠?) 2) 일제가 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을 남겨놨나요? 3) 이미 우리나라의 사서는 옛날부터 많이 없었습니다. 최치원의 제왕연대력이나 김대문의 수많은 사서, 이승휴가 인용한 단군본기 등은 모두 고려-조선 초에만 인용문으로 등장할 뿐 그 이후 시점에 죄다 자취를 감춥니다. [진삼국사기표] (인종이 말하기를) "또 이른바 고기(古記)는 문자가 너무도 졸하고 사적도 빠진 것이 많은 까닭으로......" -> 이미 당대에도 기록이 부족했음 [동사강목 서문] 동방의 역사도 갖추어 있다. 기전체(紀傳體)로는 김 문열(金文烈 문열은 김부식(金富軾)의 시호)의 《삼국사기》와 정문성(鄭文成 문성은 정인지의 시호)의 《고려사》가 있고, 편년체(編年軆)로는 서사가(徐四佳 사가는 서거정(徐居正)의 호)와 최금남(崔錦南 금남은 최 보(崔溥)의 호)의 봉교찬(奉敎撰)인 《동국통감》이 있고, 이를 따라서 유계(兪棨)의 《여사제강(麗史提綱)》과 임상덕(林象德)의 《동사회강(東史會綱)》이 있으며, 초절(抄節)한 것으로는 권근(權近)의 《동국사략(東國史畧)》과 오운(吳澐)의 《동사찬요(東史纂要)》 등의 책이 있어 빈빈하게 성하다.
《고구려와 백제는 소노부(消奴部) 해씨(解氏) 가문이 건국했는데, 나중에 고구려는 계루부(桂婁部) 고씨 가문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6대 태조왕을 옹립하여, 계루부 왕실의 권위를 높이 기 위해 계루부의 조상인 주몽을 소노부 해씨의 조상인 유리왕 앞에 올려놓고 주몽을 개국 시조로 삼았다.》 "유리왕 이하 제5대 모본왕 ... 까지는 해씨 ... 제6대 태조왕 ... 이후는 ... 고씨로 되어 있다 ... 태조왕 이후의 고씨 왕들만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 고구려 왕실이 소노부 ... 에서 계루부 ... 로 바뀌었다 ... 고구려 초기에는 유리왕계의 소노부 해씨 세력이 왕위를 계승하다가 ... 태조왕 때 계루부 고씨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 계루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계루부의 조상인 주몽을 소노부 해씨의 조상인 유리왕 앞에 올려놓고 주몽을 개국 시조로 삼았다." < 유리왕(琉璃王)-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백제는 그 세계가 고구려와 함께 더불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해 ... 로서 성씨를 삼았다." === 라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 지 정확한 내용인 지 잘 모르겠네요.
유리왕의 출생부터가 잡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본래 추모성왕의 소생이 아니였다는 설도 있어요 진짜 추모성왕의 아들이든 아니든 유리왕은 이주해온 세력이 소서노와 아들들을 몰아내고 고구려 정권을 먹은 것으로 고구려 건국 당시 일조했던 세력들한테는 견제를 꾸준히 받았을겁니다. 저런행보도 그러한게 원인일수도 있죠
현재 대한민국 사학계의 스승이 바로 식민사학을 만들어내서 정한론을 비롯해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일제의 정치적, 역사적,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일제의 사학자들이기 때문이죠.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의 역사학은 식민사학을 벗어나면 학위도 딸 수 없고, 그러니 대학 강단은 물론 전국의 박물관 학예사와 같은 직장도 구할 수 없이 실업자가 되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뿌리깊은 식민사관이 지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러시아의 역사학자가 "중국과 일본은 없는 것도 자기들 것이라 만들어내는데, 신기하게도 남한은 있는 것도 애써 무시하고 없다고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지요
대륙에 삼국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남제서의 백제관련 기록이 참으로 모호한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정작 수십만 병력을 동원하여 백제와 대전쟁을 벌였다는 북조계 사서에는 그런 기록이 전혀 없다는것이 지나치게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혹자는 북위가 창피해서 기록을 지우거나 감춘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본디 전대 왕조의 치부는 후대의 왕조에 의해 폭로되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그런식이라면 남조가 북위를 망신주려고 없는 사실을 기록했다는것이 더 설득력이 있지요. 어쩌다 이런기록이 남게되었을까? 에 대한 학설은 대표적으로 쳐들어온 것이 북위가 아닐 것이라는 의견, 표문을 보낸 것이 백제가 아닐 것이라는 의견, 북위가 실제로 배를 타고 쳐들어왔을 것이라는 의견 등등이 있습니다.
써에이쇼님...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 본기를 읽어보기나 하신 겁니까? 아래 10개의 질문에 논리적으로 사서를 가지고 답변 논리를 설명해 보시죠. 1.국사편찬위 데이터 베이스에서 삼국사기를 읽고 해석해서 거기에 나오는 위치 지명을 구글 지도로 검색하면 그 지명 그대로 지금도 있습니다. 2.백제의 주민이 76만호이고 홍수나 역병이 돌았다는 기록에서 한반도내에서라면 신라에서도 동일하게 돌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건 그만큼 한반도가 아닌 대륙으로 옮겨가면 그대로 설명이 됩니다. 3. 백제본기 온조편에 북쪽으로 말갈과 국경을 접해 있고 온조3년에 말갈이 쳐들어와 격퇴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에도 말갈이 수도 없이 쳐들어와 격퇴시켰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한반도 백제라면 말갈이 북쪽과 국경을 접해 있다는 기록이 설명이 됩니까? 4. 구당서와 신라본기에도 백제 패망 후 백제 땅을 발해와 신라, 말갈이 나누어 가졌다는 게 설명이 됩니까? 5. 백제 패망 후 백제의 성 63곳을 한반도 내에서 찾아보시구요. 당나라가 설치했다는 동명, 덕안 도독부의 위치가 대륙 지명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국사편찬위 DB에서 그 지명 한자를 그대로 옮겨서 구글지도의 대륙으로 옮겨와 검색하면 검색됩니다. 동명, 덕안의 위치는 한반도에서는 어딘지 못 찾겠다고 하고 있구요... 6. 백제가 한반도였다면 지금 학계가 비정하고 있는 풍납토성과 송파 유적지 등에서 그 흔한 왕궁 주춧돌이 나온 게 있습니까? 7. 충남 공주 땅에 마곡사가 640년 신라 자장율사가 건립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적지인 공주 땅에 절을 세우는 게 설명이 되시나요? 640년은 신라와 백제가 서로 앙숙으로 극한 대립하던 상황인데 설명이 되시나요?? 575년에 진흥왕이 전북 고창에 선운사 창건한 기록도 백제 땅에 세운 게 설명이 되시나요?? 8. 마찬가지로 김제 벽골제는 신라 때 건립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백제 땅이라면 백제본기에 기록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백제본기에 김제 땅에 벽골제를 건립했다는 얘기가 없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하시겠습니까? 9. 경기 하남시 이성산성 발굴 결과 백제의 유물이 나오지 않고 고구려의 지방 관직명인 욕살이 등장하고 그와 관련된 유물이 나왔고 그 무덤 양식도 백제의 양식이 아닌 적석총으로 고구려 양식인 건 무엇으로 설명하시겠습니까? 한반도 백제라고 할때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십니까?? 10. 백제본기와 남제서에 백제와 북위와의 전쟁 기록을 보면 한반도에선 싸울 수 없는 환경인데 한반도 백제가 있었을까요? 북위는 당시 남조와 대치, 전쟁 중이였고 북위가 유목민족으로 수군으로 싸우는 게 불가는한데다 배에 기병과 말을 태우고 서해 바다를 건너서 백제와 전투를 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시나요?? 학계(주류 강단 사학)가 부정하는 대륙 신라, 대륙 백제를 부정하는 것의 시초는 조선사 편수회 쓰다 쇼키치 등의 식민 사학자들이 제창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입니다. 그걸 그들의 제자였던 이병도와 신석호부터 그 제자들이 맹신하고 있고 그들이 학계의 카르텔이 되어 지금껏 이르고 있는 것이구요. 최재석 교수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비판"이란 책을 읽어보고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본기 내용들을 중국(한족)의 25개 정통 사서와 비교해 보시던가요 책보고와 오재성, 김진경 선생등이 이미 30여년 전에 나온 대륙 삼국설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려놓았으니 가서 좀 찾아 보시고 공부 좀 하세요... 이런 허접한 영상으로 독자들을 현혹시키지 마시구요
저도 삼국이 애초부터 대륙에만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아직 믿기 어렵고 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 것만 봐도 민족 정통성은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륙에는 하회족과 동이족 등이 있는데 중국은 한족 그러니깐 하회족이 정통이고 중심이라고 하는 나라이고 우리와는 결이 다르지요 우리는 고조선에서부터 이어지는 민족이니깐요 이런것만 봐도 중국이 신라의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기 어렵고 현재 중국은 신라가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시작점이 한반도가 아닌데 자꾸 한반도 토착민으로 생각하며 역사를 보니깐 틀린 답밖에 안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영토를 놓고보면 안되죠. 영토의 영역으로만 민족의 정통성을 주장하는건 아니라고 본다는 닥터진로님의 말이 맞죠. 우리가 왜 국가가 다른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을 우리 역사라고 생각하고 배우나요? 한반도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쓰는 언어가 같고 문화가 같았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라고 배우는거지요. 실제로 신라와 무역을 했던 이란(페르시아)의 지도에는 신라는 중국 대륙에 위치한다고 표기되어있습니다. 테헤란대 역사학 교수님도 인정을 한 부분이구요. 이렇게 의심가는 부분이 많고 이상한 부분도 많고 한데도 그 부분에 대해서 파고들어 공부하며 사실을 알아볼 생각보다 어릴때 배웠던 내용이랑 다르니 이건 틀렸다고 말도 안된다 생각하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허믈-u7j 왜 한 번도 안 싸운 것으로 해석하나요? 한반도 밖에서도 열심히 싸웠겠지요. 중국 사서는 고구려 백제가 중국의 북부와 산둥 해안까지 차지했었다고 쓰여있는 데 우리는 항상 한반도내에서만 사로 싸운 것으로 교과서에서 배우잖아요. 정신차려야지요. 구한말에도 이러다 일본에게 먹혔겠지요
지금 시대는 읽는 사람 입장에 서서 잘 이해할수 있도록 문장을 쓰지요 하지만 옛날의 문헌은 글쓰는 이가 자기 입장에 서서 문장을 씁니다 읽는 이로서는 암호문과 같습니다 그래서 해석도 다양하게 할수있고 문장이 모호합니다 일본서기나 삼국유사나 그대로 믿지말고 참고만 하면 됩니다
몇천년이 지나 그때까지 우리의 후손이 살아가고 있다면 이런 음모론을 펼치고있을겁니다. 1. 미국인 학자 아무개에 따르면 20세기에 테헤란로라는 곳이 한국에 있었다고 한다. 아마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가르키는 것일 듯한데 이게 왜 한국에 있었단 말인가? 한국이 서아시아 유역까지 진출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당시 한국은 북한이란 나라와 분단되어있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북한 서적에는 '김일성 장군 항일 무투사', '김정일 국방위원장 대미 항쟁사'등의 책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북한은 당시 세계 GDP 1위, 2위 국가인 미국 일본을 개차반 내버리는 대단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한국은 북한보다 국력이 월등했다고 한다. 3.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불렸던 미국의 전역에 수많은 한글 간판과 한국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명이 존재한다. 왜 초강대국이라 불렸던 미국은 동북아의 약소국 한국에게 이와같은 특전을 배풀었을까? 어쩌면,당시 미국과 한국은 우리가 아는 역사와 정반대의 관계였을수도 있다.
광무제 이야기는 1세기 낙랑군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낙랑태수가 살해당했을떄 광무제가 제압을 했었다는 내용이고 이때 영동7현을 포기했다고 나오기에 오히려 세력이 줄었습니다. 낙랑이 가장 강력했던 시기는 3세기 위나라 제후군으로 흡수되며 군사지원을 받으며 고구려와 싸울때입니다. 결론적으로 4세기때 고구려에게 흡수됩니다.
@@doublejoker5019 낙랑은 한사군 중 하나이며, 유주는 허베이성 동북쪽 지역을 뜻합니다. 고구려왕들이 위나라 유주자사들과 자주 싸웠던 기록들, 그리고 평양성이 낙랑의 옛 지역에 있었다는 기록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아 고구려 평양성은 유주와 아주 가까이 접경하고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참고로 평양이라는 지명은 고구려 멸망 이후 왕건의 고려가 건국되며 동쪽으로 천도되었다고 기록됩니다.
그건 아니에요. 현재 한국측에서 보유하고 있는 역사책이 적은 것일 뿐이지 중국이나 일본측에는 이 시대 역사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외국은 한국측에 유리한 연구는 안하니까 우리가 모르는 것이죠. 또한 한국에도 자료들이 남아있긴 한데 현재 이병도의 역사학과 상반되는 내용들이 나온다고 연구조사를 안하고 있어요. 정약용의 아방강역고라고 들어보셨나요.
[[ 구글지도에서 검색방법 ]] 중국愛媛 중국 高知縣 중국 名古屋 중국下關 중국馬關 중국 東京=난징 중국 長崎=나가사키 중국 名古屋 =나고야 중국 広島=히로시마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 [퍼옴] 한반도 이주가 기록된 통계청 자료이다 보거라
대륙삼국은 근거와 사료가 부족합니다. 하지만 대륙백제는 요서경락설과 중국의 정사 역사서, 일본 역사서 등에 나와있기에 외면하기 어려운 기록입니다. 정리하자면 대륙백제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탐구해야 하나 대륙삼국은 근거가 빈약합니다. 물론 대륙백제의 영토에 대해서도 요서냐, 요동이냐, 만주 일부 지역이냐 등 해석에 따라 디테일에서 차이가 나긴 합니다. 따라서 뭐든 교과서가 옳다고 타인을 ‘환빠’라고 낙인 찍고 몰아가는 이들이나,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콤플렉스 탓에 ‘아메리카 대조선’이라는 판타지까지 주장하는 일부 재야사학자 등 양 극단이 문제입니다. 과학적 근거와 기록의 증거에 따라 사심없이 역사를 판단해야 합니다.
최적 관측지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네요. 한반도에서 일식을 관측했다고 한다면 최적 관측지가 중국 대륙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확률 자체가 수학적으로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체가 누구든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신라의 일식 기록은 양자강 일대에서 독자적으로 관측해서 기록한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신라초기 같은 경우 고구려 백제의해 한반도 동쪽 영역만 확대할 가능성이크고 고구려는 우리가아는 광개토태왕 시기 최대영토보다 우리가 알지못한 그영역이 더 크고 강대했을꺼라보고 백제경우 5세기 백제심장부였던 한강유역 상실하고 침체기가있었어도 산둥반도 요서지역 영역은 계속 유지했으나 무왕 의자왕 시기 상실하여 북쪽으론 고구려의식해 동쪽 신라를 공략할 수 밖에 없는듯 합니다. 물론 역사에선 나제동맹에서 신라의 배신으로 서로 관계가 틀어져 백제가 끊임없이 복수 하려했지만. 나라를 먼저 생각한다면 5세기 후 세력이 약해진 백제가 그나마 공략 할 수있었던 곳은 신라뿐이였다고 봅니다.
@@dennythedavinchi3832 KBS1 인터뷰에서 한나라 수도가 북경이라고 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같은 영상에서 신라의 별자리 관측지 또한 최근 국뽕유투버들의 주장처럼 양쯔강 동쪽 하류부분이 아니라 양쯔강 서쪽, 그러니 거의 중국 중심부분인 것도 보입니다.
교과서 지도가 엉터리라서 그런거지 삼국사기 기록에는 당연히 말갈이 강원도까지 왔다고 한적이 없어요. 저도 이 부분이 너무 이상해서 계속 삼국사기 읽어보고 다른 고서들과 비교해보고 재야학자들 주장들도 들어보니 현대 교과서가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덕일 교수님 강연 추천드려요. 재야학자들 중에 항상 명확한 1차자료 가지고 교과서 식민사관을 반박하시는 분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당시 말갈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는데 교과서 지도가 엉터리라서 결과적으로 말갈이 한반도까지 왔다는 주장이 되버리는 상황입니다. 교과서 지도를 삼국사기 기록과 매칭시키면 말갈이 적대적 사이이던 고구려와 낙랑 영토를 뚫고 경기도까지 내려왔다는 소리가 되버립니다.
@@OYT0724 당시 국경은 거점위주라 현재처럼 생각하면 이해안되는 부분이 있을수 있어요. 거점만 피하면 얼마든지 대규모 이동이 가능했었고 이는 병자호란만 보더라도 여실히 증명되는 팩트죠. 말갈또한 함경도~ 강원도의 말갈루트라고 불리는 경로를 통해 강원도주변의 한반도 중부까지 실재했을수 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기록의 부재가 혼란을 낳고 있는게 안타까울뿐이죠
삼국대륙설이 끼워맞추기라면 삼국한반도도 끼워맞추기 아닌가...유물만 존재할뿐 각 밝혀진 왕릉을 보면 확실히 맞다고 할만한 증거도 없음. 방향성을 열어두고 다시 첨부터 조사하는게 맞을텐데 일제가 만들어둔 한국사에 뿌리를 두고 조사를 하니...하나 둘씩 퍼즐조각 맞추기가 됐다고 생각함. 비어있는 퍼즐조각은 찾지도 못한채로
동이족 국가의 시원인 고조선의 후손들이 일시에 한반도로 모두 이동할수 있을까요? 합리적으로 요동 요서에 많은 동이계 세력이 있었을것이며 이들이 삼국중 고구려 백제세력과 연합하고 그들의 이름으로 활동할수 있음은 예측가능하죠, 그들은 같은 일족 의식이 있었으니 자연스런 일이죠
잘 봤습니다.
고대사님 와주신것만해도 감사한데 이런 큰 선물까지 ㅠㅜ
진짜 잘보신듯!!!
나왔다 내 야동
2주간 목빠지게 기다렸네
신작 오늘도 맛있게 먹겠습니다 써에이스형
이게 왜 찐임?
어느 국가든 처음 시작은 미약했군요. 삼국이 커 가는 과정이 어떨지 기대되네요. 재밌게 봤습니다.
어릴때 본 고구려왕조700년, 신라왕조1000년 만화가 생각나네요
너무 기다렸습니다 ㅠ
이런 말 하기 죄송하지만
영상 빨리 빨리 부탁합니다
장비 못참것습니다!
항상 재미지게 시청하고있습니다ㅎ
오늘도 감사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김부식은 유학자
당시 학문을 배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있었죠
신채호 선생도 유학과 과거제도가 우리나라의 기상을 낮추고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는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자리잡게하여 우리나라의 긴역사 동안 조공국으로 전락한것을 안타까워했어요
신채호가 살던시기야 일제강점기니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온다 치지만 현재에는 신채호의 그 말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봅니다. 간단히 생각해봅시다. 지금 현대인들이 햄버거를 먹고 청바지를 입는다고 모든 현대인을 친미성향 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 당시도 이거랑 비슷했습니다. 중국의 문화가 그때는 가장 우수했으니 중국의 문화를 따르자고 한 게 맞던 거지요. 게다가 신채호가 사대주의자라며 제일 싫어하던 사람이 김부식이었지만 정작 김부식은 사대주의자와는 거리가 꽤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쓴 책을 삼국사기라고 붙였다는 것 부터가 사대주의자였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는 증거에요. 사기는 황제국의 역사서라는 뜻으로 중국에서만 쓰던 이름이니까요
@@maple4801 교육사상을 햄버거 먹는것과 비교하는 수준에 감탄하고 갑니다
유학이란 학문이 우리민족의 정신을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말해야지 단순히 문화를 즐거고 좋아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o자유함 학문? 그래 뭐. 좋다.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서양과학을 부정하면 애국자가 되는 것인가?
@@o자유함 그리고 유학도 문화다. 당신이 말하지 않았나 우리민족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줬냐고. 햄버거 먹고 청바지 입는 것도 같다. 지금 길거리에 한복 입고 다니는 놈이 있다 치자 어떻게 보이나? 미친놈으로 안 보이나? 똑같다. 지금 동양에서도 서양식 학문과 문화를 따르듯 당시에도 중국이라는 문화를 따라덨 것 뿐이다.
일편 까먹어서 다시 들으러갑니다
1편 요약 알에서 사람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박혁거세 알에서 태어났다구? 그래
석탈해 알에서 태어났다구? 그래
김알지...
??? : 그만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zㅋㅋㅋㅋㅋㅋㅋ
항상 선물과도 같은 써에이스님의 영상!! 오늘도 감사합니다 🙏🏻
선댓글 후감상!
잘봅니다 수고하십니다
우리 아이가 아껴 보고 있어요 ㅠㅠ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대단 하십니다 . 오늘 학교에서 편지쓰는 수업 했는데 ..써에이스 선생님께 썼다고 하네요 ^^ 감사합니다 !!!
마무리 되면 집에 가져와서 보내 드려야 겠어요 ^^!!!!초딩 2학년 입니다 ㅎㅎ
시작의BGM이 너무 좋네요. 내용을 들으며 하나의 거부감없이 몰입도 높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료준비에 고생많으셨겠어요 항상 즐독합니다!
잘 봤습니다. 써에이스쇼님 특유의 깔끔한 전개 정말 좋았습니다.^^
블로그 잘 보고 있습니다.^^
옛날부터.....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간계와 모함과 음모를 잘해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내치는 모습이 꽤 많이 보이는데.......참 개탄스럽고 슬픈일입니다~~~~~ㅠ
너무 재밌게 보았습니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듣고 읽었던 이야기들을 다양한 참고문헌을 통해 객관적인 작품으로 만들어 주신 작가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1편부터 다시 봐야겠네요
최근 고대역사서들 번역본들이 많이 출판되어서 직접 읽으실 수도 있어요. 원문으로는 정약용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와 북제의 위서(魏書), 그리고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추천드립니다.
왓 깊은 학식 같습니다 받은 늣끼밉니다
삼국사기 2화도 제작하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이래서 역사는 교차검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들의 교차검증:입맛에 맞는것만 맞다고함
많은 유익한역사이야기 감사합니다
대무신왕이 죽인 부여왕이 주몽의 형이었던 대소였다는게 참 아이러니 하죠
개꿀잼 임나일본부설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핵꿀잼
1:27 설명 오류: 최적관측지에서 가장 잘보이고 주변에서 관측가능한점은 맞으나,
삼국사기에서는 한반도에서 볼 수 없는 일식 기록이 나타납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큰비[大雨]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는 번역이 안되어있어 원문으로 홍수기록 보면
신라 131년, 212년, 260년, 350년 496년, 720년, 785년
백제 116년, 497년으로
지금의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장마전선이 생겨 같은시기에 두 지역이 호우 피해를 보는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백제의 일식 최적관측지로 나타난 지역이 평소 비가 자주 안내린다는 점도 무시 못합니다.
과학계의 주장을 역사학자들이 검증조차 시도하지 않고 묵살했을 뿐 반박된것은 아닙니다.
일식기록은 완벽하게 겹치는걸 일식으로 기록햇는데 당시 살짝걸친 일식아닌일식이 보였다는건 좀 설득력없는 소리네요
세종 전까진 중국을 기준으로 하는 역법을 썼으니 그렇지 ㅋㅋ 세종대도 교식추보에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이유가 중국을 기준으로 하는 입성을 써서 그랬음 그래서 그걸로 삼국이 대륙에 있다 주장하면 의무교육 제대로 못받은거
2부 기다렸습니다!! 써에이스님 건강 생각하셔서 빡세게 영상 만들어주세요
컨강을 생곽했다면서 빡세게 라니 촉흠 어불성설 암툰 잘본고로 👌 좋아요 시전하고 갑니다
z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ㅋㅋㅋ 중간에 그림에 넣으시는 자막이 너무 웃갸요ㅕ
믿고 기다리는 써에이스님
논란이 있는 설들 한번씩 언급해주고 가는군요
삼국의 접촉이 시작되는데 흥미 진진합니다
넘 재미납니다
옛날게임 바람의나라를 재밌게 했어서 더 집중하게 되었네요
삼국사기가 제일 재밌네요 감사함다
다 아는 내용이여도 꿀잼인게 레전드
제왕운기 삼국사절요 등과 교차검증 해서 올려주시면 써에이스쇼님께서는 보다 힘드시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너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허허
학창시절 수업이 이거였으면 머리에 쑥쑥들어오겠다.
솔직히 학창시절에 역사 흐름 몰라서 시험 망치나...??? 흐름이랑 상관없는 경제쪽 세금은 얼마나 걷었는지 문화쪽 어떤어떤 시를 보여주며 이 시대에 나왔던 책은 무엇이며 연도는? 이런거 외워야 했으니 힘들었지
오오!
🥰👍
최고
삼국사기 일식 기록에 대해 무시 하는 분들은
최적일식 관측지의 개념이 부족해 보입니다(개인 의견)
1. 중국대륙에서 관측되는 것이 한반도에도 관측된다는 의견에 대해
- 실제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식기록의 일부는 한반도에서 관측 불가능한 사례가 다수 존재
2. 중국에 존재한 고대 왕조의 일식기록을 삼국사기에서 차용했다는 주장
- 만약 차용했다고 가정 시 중국의 일식기록(모수)에서 샘플링으로 차용했을 때 고구려/백제/신라의 일식기록처럼 특정 지역에서 관측되는 일식 기록만 차용했을 가능성 약 0.6% 임
즉, 당시 천문학은 관측기록만 남겼을 뿐 언제 발생할꺼라는 것을 모르는 시대에 특정지역에서만 관측되는 일식기록 만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거
- 중국 고대왕조의 일식 리록 분석
삼국시대 당시 존재한 진, 한, 수, 당, 북연, 전연 등
일식 기록 분석 시 최적관측지로 분석되는 특정영역 확인 안됨..
따라서 중국 고대 왕조가 관측해서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더 낮음.
이런 내용을 우리 사학계에서 알고나 있는지 의문입니다.
무휼(대무신왕)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만화가 김진님의 '바람의 나라'입니다.
드라마와 게임으로도 만들어졌지요.
좀 오래된 만화이기는 하지만 재미있으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신채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고려후기 조선초기 까지만 하더라도 고대 역사서가 많이 남아있다 하셨는데 그놈에 원나라와 명나라를 섬기고 나서부터는 대륙과 싸웠던 역사를 부정하고 그들의 문화와 풍습이 아닌것들을 부정하게 되서 자체척으로 많이 없애버렸다고 하네요
그리고 신라~고려를 거치면서 불교가 크게 발전이 되어서 고유 명칭이나 이름들을 없애고 불교용어로 다시 썼다죠
있기는 삼국사기도 조선 중후반되니까 거의 없어서 원본 찾는데 몇년 걸렸다는 기록도 있는데
너무 좆같은 현실 슬프네요 ..
신채호도 뭘 알겠습니까 훨씬 후에나온인간인데 ㅋㅋ
신채호의 그 말은 완전히 믿을 수 가 없습니다. 조선이 일부러 역사서를 태웠으면 그럼 지금까지 남아있는 삼국사기는 뭡니까? 게다가 조선도 고려사를 편찬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병자호란 같은 수많은 전쟁이 났기 때문에 그 때 역사서도 같이 없어진 게 더 맞을겁니다.
국사가 역시 재밋네요>_
대한민국에 고대 역사서로 주요한 것이라고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단 2가지만 전해지고 있는 이유도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는 동안 역사관련 서적을 23만여권을 거둬들여 불살라버렸던 게 결정적입니다. 신채호 선생같은 분들이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역사적 기록들을 읊으고 계신 건 당시까지만 해도 여러 역사 서적이 존재했었다는 방증입니다.
근구수왕이 기원후 375 년에 즉위하여 재위 10 년 동안에 고구려에 대하여는 겨우 한 번 평양 침입이 있었으나 바다를 건너 지나 대륙을 경략 하여 선비 ( 鮮卑 ) 모용씨 ( 慕容氏 ) 의 연 ( 燕 ) 과 부씨 ( 符氏 ) 의 진( 秦 )을 정벌하여 , 지금의 요서 ( 遼西 ) · 산동 ( 山東 ) · 강소 ( 江蘇 ) · 절강 ( 浙江 ) 등지를 경략하여 넓은 땅을 장만하였다.
이런 기록이 비록 백제 본기에는 오르지 않았으나 양서 ( 梁書 ) 와 송서 ( 宋書 ) 에 "백제가 요서와 진평군 ( 晋平郡 ) 을 공략하여 차지하였다 ( 百濟 略有遼西晋平郡 )· ”고 했고, 자치통감 ( 資治通鑑 ) 에는 “부여 ( 扶餘 ) 가 처음에 녹산 ( 塵山 ) 에 웅거하였다가 백제에게 격파당해 서쪽 연 ( 燕 ) 가까이로 옮겼다."(扶餘 初據鹿山 爲百濟所殘破 西徒近燕 ) ”고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대개 근구수가 근초고왕의 태자로서 군국 ( 軍國 ) 대사를 대리하여 이미 침입하는 고구려를 격퇴하고, 나아가서 지금의 대동강 이남을 차지하고는 해군을 확장하여 바다를 건너 지나 대륙에 침입하여 모용씨를 쳐서 요서와 북경( 北京 )을 빼앗아 요서 ( 遼西 ) 진평 ( 晋平 ) 두 군을 설치하고, 녹산 ( 塵山 )---지금의 합이빈 ( 哈爾濱 ) 까지 들어가 부여의 서울을 점령하여 북부여가 지금의 개원 ( 開原 ) 으로 천도하기에 이르렀으며, 모용씨가 망한 뒤 지금의 섬서성 ( 陝西省 ) 에서는 진왕 ( 秦王 ) 부견 ( 符堅 : 역시 선비족 ) 이 강성해지매, 근구수왕이 또 진과 싸워 지금의 산동 ( 山東 ) 등지를 자주 정벌하여 이를 피곤하게 하였으며, 남으로 지금의 강소 · 절강성 등지를 차지하고 있는 진 ( 晋 ) 을 쳐서 또 한 얼마간의 주군 ( 州軍 ) 을 빼앗았으므로 여러 책의 기록이 대략 이러한 것이다.
진짜 개쓰레기들이다…타임머신이존재하지않는이상 무로 가버린 역사
1388년 명태조가 15만 대군으로 고려에 진입.
첩보를 접한 우왕이 7만의 병력을 준비함.
좌군 조민수와, 우군 이성계의 협공으로
명태조가 사망. 알려지지 않음...
명태조의 넷째아들 주체가 반격을 가하다.
고려군 중과부적으로 패배하다.
최영이 개경을 방어하다. 전사하다.
우왕이 피난길에 오르다. 주체가 추격하다.
서북면을 지나 산해관까지 밀리다.
우왕이 산해관을 지나 동북면으로 가다.
주체가 북평에 근거지하다.
우왕이 북면인 심양에 근거지하다.
영양왕 동면인 개성으로 내려오다.
고려는 옥토에 없었으며, 명태조는 자연사로,
전쟁은 없었으며, 회군으로 처리되다....
너무 안타깝네요... 수천년간 버텨온 책들이 일제의 35년침탈동안 다타버리다니
1) 일제가 23만여 권에 달하는 책을 분서했다는 원문을 보여주세요. 구체적으로 몇 년도 몇월 며칠에 일어난 사건인가요? '나다니엘 페퍼'가 그랬다더라 같은 카더라 말고 정확한 출처를 남겨주세요.(인터넷에 있다고 다 사실이 아니라는 '링컨 패러디' 짤 아시죠?) 2) 일제가 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을 남겨놨나요? 3) 이미 우리나라의 사서는 옛날부터 많이 없었습니다. 최치원의 제왕연대력이나 김대문의 수많은 사서, 이승휴가 인용한 단군본기 등은 모두 고려-조선 초에만 인용문으로 등장할 뿐 그 이후 시점에 죄다 자취를 감춥니다.
[진삼국사기표] (인종이 말하기를) "또 이른바 고기(古記)는 문자가 너무도 졸하고 사적도 빠진 것이 많은 까닭으로......" -> 이미 당대에도 기록이 부족했음
[동사강목 서문] 동방의 역사도 갖추어 있다. 기전체(紀傳體)로는 김 문열(金文烈 문열은 김부식(金富軾)의 시호)의 《삼국사기》와 정문성(鄭文成 문성은 정인지의 시호)의 《고려사》가 있고, 편년체(編年軆)로는 서사가(徐四佳 사가는 서거정(徐居正)의 호)와 최금남(崔錦南 금남은 최 보(崔溥)의 호)의 봉교찬(奉敎撰)인 《동국통감》이 있고, 이를 따라서 유계(兪棨)의 《여사제강(麗史提綱)》과 임상덕(林象德)의 《동사회강(東史會綱)》이 있으며, 초절(抄節)한 것으로는 권근(權近)의 《동국사략(東國史畧)》과 오운(吳澐)의 《동사찬요(東史纂要)》 등의 책이 있어 빈빈하게 성하다.
오!!!교과서에없는내용까지 알려주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삼국사기 시리즈도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요 누르고 보는 유일이한 유튭영상👍
점심과 함께 맛있게 먹겠읍니다...
2부도 잘 봤습니다!^^
실제 유리왕은 집안 사람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 무능력자였네요
아내는 도망가고 아들을 죽게 만들고...
내 생각에 아마 복잡한 정치적인 갈등이 있었을 겁니다. 사료애는 안나오지요.
《고구려와 백제는 소노부(消奴部) 해씨(解氏) 가문이 건국했는데, 나중에 고구려는 계루부(桂婁部) 고씨 가문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6대 태조왕을 옹립하여, 계루부 왕실의 권위를 높이 기 위해 계루부의 조상인 주몽을 소노부 해씨의 조상인 유리왕 앞에 올려놓고 주몽을 개국 시조로 삼았다.》
"유리왕 이하 제5대 모본왕 ... 까지는 해씨 ... 제6대 태조왕 ... 이후는 ... 고씨로 되어 있다 ... 태조왕 이후의 고씨 왕들만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 고구려 왕실이 소노부 ... 에서 계루부 ... 로 바뀌었다 ... 고구려 초기에는 유리왕계의 소노부 해씨 세력이 왕위를 계승하다가 ... 태조왕 때 계루부 고씨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 계루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계루부의 조상인 주몽을 소노부 해씨의 조상인 유리왕 앞에 올려놓고 주몽을 개국 시조로 삼았다." < 유리왕(琉璃王)-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백제는 그 세계가 고구려와 함께 더불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해 ... 로서 성씨를 삼았다."
===
라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 지 정확한 내용인 지 잘 모르겠네요.
@@그사람-h7y 설 중의 하나죠. 제가 청화수 라는 역사채널에서 보았습니다. 만족문화대백과 라는 곳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겠고 삼국유사는 나보다 더 잘 아실거고. 쨋든 정설은 아니지요.
유리왕의 출생부터가 잡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본래 추모성왕의 소생이 아니였다는 설도 있어요
진짜 추모성왕의 아들이든 아니든 유리왕은 이주해온 세력이
소서노와 아들들을 몰아내고 고구려 정권을 먹은 것으로 고구려 건국 당시 일조했던 세력들한테는
견제를 꾸준히 받았을겁니다.
저런행보도 그러한게 원인일수도 있죠
아니 진짜 영상 너무 재밌잖앙 더더더 만들어줘요
잘보고 있습니다 ㅎㅎ
국내성 위치를 보세요. 산골짜기 입니다. 한 국가의 수도로 가능한지?
유적지 조차 하나 없어요
지린성 지안시에 국내성 성벽이 남아있습니다
산골짜기인데다가 방어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장수왕이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겼고요
저런 첩첩산중인데도 중국에게 수없이 털린게 현실임
오.. 어제 1편 보고 왔는데! 타이밍 굿
깔끔하고 좋습니다!
전설이돌아왔다!!!
현재 대한민국 사학계의 스승이 바로 식민사학을 만들어내서 정한론을 비롯해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일제의 정치적, 역사적,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일제의 사학자들이기 때문이죠.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의 역사학은 식민사학을 벗어나면 학위도 딸 수 없고, 그러니 대학 강단은 물론 전국의 박물관 학예사와 같은 직장도 구할 수 없이 실업자가 되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뿌리깊은 식민사관이 지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러시아의 역사학자가 "중국과 일본은 없는 것도 자기들 것이라 만들어내는데, 신기하게도 남한은 있는 것도 애써 무시하고 없다고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지요
여기서 나오는 화희와치희가 초한지에서 나오는 우희와 노원공주와 닮았네요
뜨끔!
국사 많이 다뤄주세용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판타지를 쓰세요~ 이 부분 넘나 잼나요 ㅋㅋㅋㅋ
깨알 멘트가 꿀잼 ㅋㅋ
진짜 아껴봐야지 5분마다 쉬는시간 갖고 5번 돌려봐야지
크 너무 유익하고 재밌습니다
다음화도 기대합니다-!!
13:07 말갈 위치는 고구려 보다 위에 있는데 어떻게 백제까지 온단 말이지...
와 삼국사기 재밌겠다!
대륙에삼국이존재할가능성이 높은게 특히 유목민족국가였던 위와 백제동성왕과의 싸움임 삼국사기도 그렇고 중국사서인 남제서보면 피물들정도로 싸웠다고 나왔고 그외 남제서의 백제관련 기록 일부가 지워졌을정도로 진실여부는 알수없지만 어딘가에 있다고봄
대륙에 삼국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남제서의 백제관련 기록이 참으로 모호한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정작 수십만 병력을 동원하여 백제와 대전쟁을 벌였다는 북조계 사서에는 그런 기록이 전혀 없다는것이 지나치게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혹자는 북위가 창피해서 기록을 지우거나 감춘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본디 전대 왕조의 치부는 후대의 왕조에 의해 폭로되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그런식이라면 남조가 북위를 망신주려고 없는 사실을 기록했다는것이 더 설득력이 있지요.
어쩌다 이런기록이 남게되었을까? 에 대한 학설은 대표적으로 쳐들어온 것이 북위가 아닐 것이라는 의견, 표문을 보낸 것이 백제가 아닐 것이라는 의견, 북위가 실제로 배를 타고 쳐들어왔을 것이라는 의견 등등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낮다 수준이 아니라 없다. 동성왕때 위와 싸운 건 북위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거나 아니면 남제가 북위와 전쟁을 할 때 백제가 동맹을 맺고 도왔다가 맞을 것이다
잠들기 전에 보는데 1편 보는데 3일정도 걸려서 너무 좋아요! 수면제 ㅎㅎ
길어봤자 20분짜리 영상을 3일이나 걸리는 뇌 용량이 정말 한심하네요
남이 정성으로 힘들게 만든 영상을 수면제 용도라고 얘기하고 싶나요?
실례입니다
@@유영-h3g ㅋ
백제의 동쪽이 낙랑, 북쪽이 말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
써에이쇼님...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 본기를 읽어보기나 하신 겁니까? 아래 10개의 질문에 논리적으로 사서를 가지고 답변 논리를 설명해 보시죠.
1.국사편찬위 데이터 베이스에서 삼국사기를 읽고 해석해서 거기에 나오는 위치 지명을 구글 지도로 검색하면 그 지명 그대로 지금도 있습니다.
2.백제의 주민이 76만호이고 홍수나 역병이 돌았다는 기록에서 한반도내에서라면 신라에서도 동일하게 돌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건
그만큼 한반도가 아닌 대륙으로 옮겨가면 그대로 설명이 됩니다.
3. 백제본기 온조편에 북쪽으로 말갈과 국경을 접해 있고 온조3년에 말갈이 쳐들어와 격퇴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에도 말갈이 수도 없이 쳐들어와 격퇴시켰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한반도 백제라면 말갈이 북쪽과 국경을 접해 있다는 기록이 설명이 됩니까?
4. 구당서와 신라본기에도 백제 패망 후 백제 땅을 발해와 신라, 말갈이 나누어 가졌다는 게 설명이 됩니까?
5. 백제 패망 후 백제의 성 63곳을 한반도 내에서 찾아보시구요. 당나라가 설치했다는 동명, 덕안 도독부의 위치가 대륙 지명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국사편찬위 DB에서 그 지명 한자를 그대로 옮겨서 구글지도의 대륙으로 옮겨와 검색하면 검색됩니다.
동명, 덕안의 위치는 한반도에서는 어딘지 못 찾겠다고 하고 있구요...
6. 백제가 한반도였다면 지금 학계가 비정하고 있는 풍납토성과 송파 유적지 등에서 그 흔한 왕궁 주춧돌이 나온 게 있습니까?
7. 충남 공주 땅에 마곡사가 640년 신라 자장율사가 건립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적지인 공주 땅에 절을 세우는 게 설명이 되시나요?
640년은 신라와 백제가 서로 앙숙으로 극한 대립하던 상황인데 설명이 되시나요?? 575년에 진흥왕이 전북 고창에 선운사 창건한 기록도 백제 땅에 세운 게 설명이 되시나요??
8. 마찬가지로 김제 벽골제는 신라 때 건립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백제 땅이라면 백제본기에 기록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백제본기에 김제 땅에 벽골제를 건립했다는 얘기가 없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하시겠습니까?
9. 경기 하남시 이성산성 발굴 결과 백제의 유물이 나오지 않고 고구려의 지방 관직명인 욕살이 등장하고 그와 관련된 유물이 나왔고 그 무덤 양식도 백제의 양식이 아닌 적석총으로 고구려 양식인 건 무엇으로 설명하시겠습니까? 한반도 백제라고 할때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십니까??
10. 백제본기와 남제서에 백제와 북위와의 전쟁 기록을 보면 한반도에선 싸울 수 없는 환경인데 한반도 백제가 있었을까요? 북위는 당시 남조와 대치, 전쟁 중이였고 북위가 유목민족으로 수군으로 싸우는 게 불가는한데다 배에 기병과 말을 태우고 서해 바다를 건너서 백제와 전투를 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시나요??
학계(주류 강단 사학)가 부정하는 대륙 신라, 대륙 백제를 부정하는 것의 시초는 조선사 편수회 쓰다 쇼키치 등의 식민 사학자들이 제창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입니다.
그걸 그들의 제자였던 이병도와 신석호부터 그 제자들이 맹신하고 있고 그들이 학계의 카르텔이 되어 지금껏 이르고 있는 것이구요.
최재석 교수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비판"이란 책을 읽어보고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본기 내용들을 중국(한족)의 25개 정통 사서와 비교해 보시던가요
책보고와 오재성, 김진경 선생등이 이미 30여년 전에 나온 대륙 삼국설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려놓았으니 가서 좀 찾아 보시고 공부 좀 하세요...
이런 허접한 영상으로 독자들을 현혹시키지 마시구요
얘 여기서도 이러고 있네 ㅋㅋㅋㅋㅋ 니 캡틴티비 대륙삼국설 영상에서 나랑 키배뜨다가 튀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선 아무 말도 못하더니 여기선 무슨 우영우 빙의해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앉았네 😂😂😂😂😂😂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우니 외로운 사인의 작은 몸은 뉘와 함께 갈기나 ~
재밌게 잘 봤습니다.
김부식 평가하는거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예전 몽골 k박사가 유튜브에서 한창 대륙설을 주장했었는데..개인적으로 그건 좀 아닌듯..국가란 영토에 기반을 하는데 인접한 만주, 요동까지는 우리영역으로 받아들일수 있지만 중국본토에 신라가 있었다면 이는 우리 역사라 말하기 힘든 오류에 빠집니다.
저도 삼국이 애초부터 대륙에만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아직 믿기 어렵고 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 것만 봐도 민족 정통성은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륙에는 하회족과 동이족 등이 있는데 중국은 한족 그러니깐 하회족이 정통이고 중심이라고 하는 나라이고 우리와는 결이 다르지요 우리는 고조선에서부터 이어지는 민족이니깐요
이런것만 봐도 중국이 신라의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기 어렵고 현재 중국은 신라가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영토의 영역으로만 민족의 정통성을 주장하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터키는 돌궐족 후예라고 하는데 터키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이정기는 고구려 유민으로 제나라를 산둥지역에 건국하였는데 당나라를 위협했었자나요~ 고구려 유민은 우리민족이 아닌가요?
시작점이 한반도가 아닌데 자꾸 한반도 토착민으로 생각하며 역사를 보니깐 틀린 답밖에 안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영토를 놓고보면 안되죠. 영토의 영역으로만 민족의 정통성을 주장하는건 아니라고 본다는 닥터진로님의 말이 맞죠.
우리가 왜 국가가 다른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을 우리 역사라고 생각하고 배우나요? 한반도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쓰는 언어가 같고 문화가 같았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라고 배우는거지요.
실제로 신라와 무역을 했던 이란(페르시아)의 지도에는 신라는 중국 대륙에 위치한다고 표기되어있습니다. 테헤란대 역사학 교수님도 인정을 한 부분이구요.
이렇게 의심가는 부분이 많고 이상한 부분도 많고 한데도 그 부분에 대해서 파고들어 공부하며 사실을 알아볼 생각보다
어릴때 배웠던 내용이랑 다르니 이건 틀렸다고 말도 안된다 생각하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손은성-i6q ㅋㅋㅋ 테헤란대 역사 교수가 신라 역사를 잘 아는 군요. 하긴 이방원이 아프리카 완전 잘알죠.
국뽕유투버들이 일부러 과장해서 그런 주장을 하는거지 명확한 1차자료 가지고 연구하는 재야학자들은 신라가 강소성이네 백제가 하남성이네 이따위 주장 안합니다.
이 유투브도 식민사관에 근거한 한반도내에서 삼국이 서로 싸우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네요. 식민사관으로 중고등 대학교까지 배웠으니 벗어나기는 쉽지가 않지요
삼국이 싸우는거랑 식민사관이랑 관련이있는건가요?? 주위에 붙어있는나라였으니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게 정상아닌가 ..
@@경기도성남시아탑동에이 사람 말은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에 있다는 겁니다. 한반도의 역사는 그냥 없는 거고요. 우리 민족은 고려시대까지 중국에서 살다가 위화도 회군을 기점으로 한반도에 박혀 산 이사람들 말에 의하면 참 한심한 민족입니다.
한반도 내의 삼국이 오백년 넘는 시간동안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건가요?
@@허믈-u7j 왜 한 번도 안 싸운 것으로 해석하나요? 한반도 밖에서도 열심히 싸웠겠지요. 중국 사서는 고구려 백제가 중국의 북부와 산둥 해안까지 차지했었다고 쓰여있는 데 우리는 항상 한반도내에서만 사로 싸운 것으로 교과서에서 배우잖아요. 정신차려야지요. 구한말에도 이러다 일본에게 먹혔겠지요
@@경기도성남시아탑동에 우리 역사를 한반도내 묶어놓고 역사를 배우고 있다는 거죠. 서로 싸우고 안싸우고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시대는 읽는 사람 입장에 서서 잘 이해할수 있도록 문장을 쓰지요 하지만 옛날의 문헌은 글쓰는 이가 자기 입장에 서서 문장을 씁니다 읽는 이로서는 암호문과 같습니다 그래서 해석도 다양하게 할수있고 문장이 모호합니다 일본서기나 삼국유사나 그대로 믿지말고 참고만 하면 됩니다
0:54 ㅋㅋㅋㅋㅋㅋㅋ 이 논리대로면 중국 우한 예전 이름이 한양이니 사실 조선수도 한양은 우한이라고 하는거랑 똑같은듯 ㅋㅋㅋ
ㅋㅋ 근데 진짜로 그러고 있음
그건 국뽕환빠들 주장이고, 제대로된 재야학자들은 지명 딱 하나만 가지고 장난질하지는 않습니다. 삼국유사, 사기, 통전,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같은 여러 고서자료들과 현지 유물들을 교차검증해서 밝혀진 내용을 연구하는 재야학자들도 있어요. 국뽕환빠들과 혼동하시면 안됩니다.
몇천년이 지나 그때까지 우리의 후손이 살아가고 있다면 이런 음모론을 펼치고있을겁니다.
1. 미국인 학자 아무개에 따르면 20세기에 테헤란로라는 곳이 한국에 있었다고 한다. 아마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가르키는 것일 듯한데 이게 왜 한국에 있었단 말인가? 한국이 서아시아 유역까지 진출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당시 한국은 북한이란 나라와 분단되어있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북한 서적에는 '김일성 장군 항일 무투사', '김정일 국방위원장 대미 항쟁사'등의 책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북한은 당시 세계 GDP 1위, 2위 국가인 미국 일본을 개차반 내버리는 대단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한국은 북한보다 국력이 월등했다고 한다.
3.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불렸던 미국의 전역에 수많은 한글 간판과 한국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명이 존재한다. 왜 초강대국이라 불렸던 미국은 동북아의 약소국 한국에게 이와같은 특전을 배풀었을까? 어쩌면,당시 미국과 한국은 우리가 아는 역사와 정반대의 관계였을수도 있다.
와 그럼 서울에서 코로나가 터진거네
그때 낙랑에 대해 질문이 있는데 낙랑은 확장됐다가 못가서 광무제(후한)에게 다시 뺐겼다는 내용이 없네요. 삼국사기에서 대륙의 지명일치는 이건 경덕왕때의 일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기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경덕왕때 만든 '신라지리지'가 본기에 있는 내용들과 부합하지 않아 다스릴수 없는 자역은 포기한고 새로 개편한거 같습니다.
광무제 이야기는 1세기 낙랑군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낙랑태수가 살해당했을떄 광무제가 제압을 했었다는 내용이고 이때 영동7현을 포기했다고 나오기에 오히려 세력이 줄었습니다. 낙랑이 가장 강력했던 시기는 3세기 위나라 제후군으로 흡수되며 군사지원을 받으며 고구려와 싸울때입니다. 결론적으로 4세기때 고구려에게 흡수됩니다.
@@OYT0724 설명감사합니다. 여기서 명확하려는데 그 낙랑이 평양을 말하나요 아니면 유주중 하나인가요?
@@doublejoker5019 낙랑은 한사군 중 하나이며, 유주는 허베이성 동북쪽 지역을 뜻합니다. 고구려왕들이 위나라 유주자사들과 자주 싸웠던 기록들, 그리고 평양성이 낙랑의 옛 지역에 있었다는 기록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아 고구려 평양성은 유주와 아주 가까이 접경하고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참고로 평양이라는 지명은 고구려 멸망 이후 왕건의 고려가 건국되며 동쪽으로 천도되었다고 기록됩니다.
@@doublejoker5019 신당서 고구려열전
그 나라의 왕이 살고 있는 곳은 평양성으로 장안성이라고도 부르는데, 한 대의 낙랑군으로 장안에서 5천리 밖에 있다.
다음 컨텐츠는 고려사절요로 해주세요!!
아.... 저 나팔과 북 호동이야기... PTSD가 오네요 ㅠㅠ
매번 시험문제에 나와서 괴롭혀서 ㅠ
그런데 저건 역사적 사실로 보긴 어려운.
삼국사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잘보고 있는데요.
삼국시대가 삼국지나 초한지에 비해서 사료가 많이 적은가요?
초한지는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하고 삼국시대는 삼국사기에 비롯. 근데 사마천 사기 양이 방대함.
ㅇㅇ 솔직히 우리나라는 조선이전 기록은 다른나라와 비교하면 부족하다라고 해야 할 정도임. 삼국사기부터 중국사료를 옮긴거이니....(특히 전쟁사 기록은 유럽보다 더 처참함.)
고려때도 조선처럼 실록이 있었는데 몽골과 전쟁때 싸그리 불타버렸죠. 그때 역사책이나 문화재가 죄다 날아갈정도로 한반도 전체가 난리였음. 대표적으로 지금 남아있다면 세계문화유산급인 황룡사 9층목탑도 타버렸죠
그건 아니에요. 현재 한국측에서 보유하고 있는 역사책이 적은 것일 뿐이지 중국이나 일본측에는 이 시대 역사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외국은 한국측에 유리한 연구는 안하니까 우리가 모르는 것이죠. 또한 한국에도 자료들이 남아있긴 한데 현재 이병도의 역사학과 상반되는 내용들이 나온다고 연구조사를 안하고 있어요. 정약용의 아방강역고라고 들어보셨나요.
[[ 구글지도에서 검색방법 ]]
중국愛媛 중국 高知縣 중국 名古屋 중국下關 중국馬關 중국 東京=난징 중국 長崎=나가사키 중국 名古屋 =나고야 중국 広島=히로시마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 [퍼옴] 한반도 이주가 기록된 통계청 자료이다 보거라
대륙삼국은 근거와 사료가 부족합니다. 하지만 대륙백제는 요서경락설과 중국의 정사 역사서, 일본 역사서 등에 나와있기에 외면하기 어려운 기록입니다. 정리하자면 대륙백제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탐구해야 하나 대륙삼국은 근거가 빈약합니다. 물론 대륙백제의 영토에 대해서도 요서냐, 요동이냐, 만주 일부 지역이냐 등 해석에 따라 디테일에서 차이가 나긴 합니다.
따라서 뭐든 교과서가 옳다고 타인을 ‘환빠’라고 낙인 찍고 몰아가는 이들이나,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콤플렉스 탓에 ‘아메리카 대조선’이라는 판타지까지 주장하는 일부 재야사학자 등 양 극단이 문제입니다. 과학적 근거와 기록의 증거에 따라 사심없이 역사를 판단해야 합니다.
진짜 몰라서그러는데 대륙백제설이 진짜 신빙성이있는건가요??
그림에 그 당시 갑옷이나 의복 고증을 원하는건 사치겠죠? ㅠ 항상 재밋게 잘 보고 있습니다
최적 관측지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네요. 한반도에서 일식을 관측했다고 한다면 최적 관측지가 중국 대륙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확률 자체가 수학적으로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체가 누구든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신라의 일식 기록은 양자강 일대에서 독자적으로 관측해서 기록한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임나일본부설 반도버전
우리나라 일식 기록을 중국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일식기록이 일치한 거란 생각은 안해봄? 이 환빠야?
@@maple4801 일반적 생각: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환빠의 생각:우리가 중국에 영향을 주었다
김수로왕도 대단하다.
보다보니 문뜩 궁금하네요..
알에서 나오고 상자에서 나오는데
이것은 동화라고 봐야하나요?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닌 설화로 보고 있습니다.
책보고. 채널보면 깜놀이야 이거 아니야
일편 까먹어서 다시 보러갑니다
오.... 단명한 신나라도 나오는군요
신라초기 같은 경우 고구려 백제의해 한반도 동쪽 영역만 확대할 가능성이크고
고구려는 우리가아는 광개토태왕 시기 최대영토보다 우리가 알지못한 그영역이 더 크고 강대했을꺼라보고 백제경우 5세기 백제심장부였던 한강유역 상실하고 침체기가있었어도 산둥반도 요서지역 영역은 계속 유지했으나 무왕 의자왕 시기 상실하여 북쪽으론 고구려의식해 동쪽 신라를 공략할 수 밖에 없는듯 합니다. 물론 역사에선 나제동맹에서 신라의 배신으로 서로 관계가 틀어져 백제가 끊임없이 복수 하려했지만.
나라를 먼저 생각한다면 5세기 후 세력이 약해진 백제가 그나마 공략 할 수있었던 곳은 신라뿐이였다고 봅니다.
1994년 박창범 교수의 별자리 연구는 삼국시대 별자리 기록들의 정확도와 일정함을 증명한 연구이기는 허나, 연구 당시 박창범 교수는 한나라의 수도를 베이징으로 착각하고 초기 신라의 별자리 지역을 양쯔강 중류라고 잘못 표현하는 바람에 많은 오해들을 만들기도 하였죠.
제가 그분 책 읽었는데 그런 얘기 없는데요.
@@dennythedavinchi3832 KBS1 인터뷰에서 한나라 수도가 북경이라고 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같은 영상에서 신라의 별자리 관측지 또한 최근 국뽕유투버들의 주장처럼 양쯔강 동쪽 하류부분이 아니라 양쯔강 서쪽, 그러니 거의 중국 중심부분인 것도 보입니다.
@@텐버거-w4l 지금 눈앞에서 읽고 있는데 뭔소리. 상기 신라 별자리 관측자료 동그라미를 자세히 보세요 동남쪽 장쑤성은 닿지도 않아요.
13:15 말갈이라고 하면 여진족의 전신일텐데 얘네가 강원도 백제옆까지 왔나요??
말갈->산간지방 사람들 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고유명사로
강원도 태백산맥
교과서 지도가 엉터리라서 그런거지 삼국사기 기록에는 당연히 말갈이 강원도까지 왔다고 한적이 없어요. 저도 이 부분이 너무 이상해서 계속 삼국사기 읽어보고 다른 고서들과 비교해보고 재야학자들 주장들도 들어보니 현대 교과서가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덕일 교수님 강연 추천드려요. 재야학자들 중에 항상 명확한 1차자료 가지고 교과서 식민사관을 반박하시는 분입니다.
바람의나라 서버 스토리를 알 수 있군요 여기서
오랜만에 역사에 대해서 보니까 문명하고 싶네요 문명해야겠다
내용, 영상 좋아요 하지만 무대를 대륙으로 옮기면 우리 찬란한 역사가 더 진실되게 보일거에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 2편도 자기전에 틀어놓
궁금한게 있습니다! 말갈이 한반도 안에 있었던건가요?
조선초까지만 해도 여진족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흩어져 거주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삼국사기 초기에 언급되는 말갈은 만주 오리지널 말갈이 아니라 강원도일대의 고대 연맹왕국이었던 동예라는 설도 있습니다.
삼국 초기의 말갈은 아직도 실체가 불분명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당시 말갈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는데 교과서 지도가 엉터리라서 결과적으로 말갈이 한반도까지 왔다는 주장이 되버리는 상황입니다. 교과서 지도를 삼국사기 기록과 매칭시키면 말갈이 적대적 사이이던 고구려와 낙랑 영토를 뚫고 경기도까지 내려왔다는 소리가 되버립니다.
@@OYT0724 당시 국경은 거점위주라 현재처럼 생각하면 이해안되는 부분이 있을수 있어요. 거점만 피하면 얼마든지 대규모 이동이 가능했었고 이는 병자호란만 보더라도 여실히 증명되는 팩트죠. 말갈또한 함경도~ 강원도의 말갈루트라고 불리는 경로를 통해 강원도주변의 한반도 중부까지 실재했을수 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기록의 부재가 혼란을 낳고 있는게 안타까울뿐이죠
@@steyr357 산맥들이 잔뜩 있고 좁디 좁은 한반도에서 기마민족 말갈족들이 대규모 이동을 했었다는 주장이 팩트라고 보기에는 힘듭니다. 반면 한사군 낙랑이 한반도가 아닌 허베이성 동북쪽이었다는 근거자료는 많이 존재합니다.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은 지린성 지린시 일대인데 영상에서 고구려의 위치가 너무 아래에있네요 만주 위로 표시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1천년전 아랍지도에 표기 된 대륙 신라지명 지도
ua-cam.com/video/Ru1eK8qQD_E/v-deo.html&ab_channel=%EC%8D%A8%EC%97%90%EC%9D%B4%EC%8A%A4%EC%87%BCsiraceshow
삼국대륙설이 끼워맞추기라면 삼국한반도도 끼워맞추기 아닌가...유물만 존재할뿐 각 밝혀진 왕릉을 보면 확실히 맞다고 할만한 증거도 없음. 방향성을 열어두고 다시 첨부터 조사하는게 맞을텐데 일제가 만들어둔 한국사에 뿌리를 두고 조사를 하니...하나 둘씩 퍼즐조각 맞추기가 됐다고 생각함. 비어있는 퍼즐조각은 찾지도 못한채로
유물만 존재하긴..멀쩡히 있는 유적도 팔아치워 버리네
네 니들은 유적 없으면 없다고 지랄
있으면 날조다 거짓이다라며 지랄하죠
그럼 대륙 유적은 얼마나 있죠
@@Whoamihahahah 더 많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데 자꾸 아무것도 없는 한반도에만 이곳이 옜날에 어디였다 하는데 대륙에 끼워맞추면 다 맞는데 반도에 끼워맞추니까 이상해짐
@@Whoamihahahah 근데 어릴때부터 세뇌되왔던지라 이러한 위화감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함
@@질문빌런-f5i 그 많다는 대륙유적이 뭐가 있는지 설명할수 있는지???
그저 한자를 쓰는 같은 동아시아라고 건축양식 비슷한걸로 껴맞추지 말고
부여왕이면 대소왕을 말하는거죠? 배다른 동생 손자에게 죽었으니 오래살았네요...
3부 언제올라오나요 ㅠㅠ 목이 마릅니다 ㅠㅠ
선덕여왕 주몽 했을때 영상 만드셨으면 최소 2000만뷰 나올텐데.....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그땐 유튜브 자체가 없었지
고대국가는 모두 알까기로 시작되눈군요
알까기의민족
동이족 국가의 시원인 고조선의 후손들이 일시에 한반도로 모두 이동할수 있을까요? 합리적으로 요동 요서에 많은 동이계 세력이 있었을것이며 이들이 삼국중 고구려 백제세력과 연합하고 그들의 이름으로 활동할수 있음은 예측가능하죠, 그들은 같은 일족 의식이 있었으니 자연스런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