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그 시대에 맞게 만들기나 심금을 울릴만큼 만드는게 여간 어려운게 아닐거 같아요~ 진짜 난중일기 데로만 제작한다면 진짜 역대급 시리즈 나올건 확실한데 말입니다.. 붙힘살 없이 제작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있는 그데로 진짜 이렇게 햇다고?? 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제대로 제작한다면 더할나위 없을거 같습니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군국주의 길을 걷습니다. 육군은 아베가 고향인 야마구찌(당시 명칭으로 죠오슈번) 출신들이 주동적으로 키워나가고 육군 권력도 다 갖습니다. 해군은 메이지 유신을 죠오슈번과 같이 일으킨 사쓰마번(쿠마모또)이 맡는데 정부에서의 지원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짱구 굴려서 이순신을 불러들이고 이래서 해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청일전쟁시 해전에서 이기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순신 영웅만들기는 기승을 부립니다. 드디어 러일전쟁까지 해전에서 이기자, 그들은 광기로 미쳐 날뜁니다. 매년, 해군 수뇌부에서 진해의 이순신 현충사를 방문합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이순신 영웅 만들기 작업이 계속 띄워지고, 이 당시 일본 육사를 다녔던 박정희는 일본군 수뇌부가 진해 현충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이순신은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한 장군이지 이기는 전쟁을 한 장군이 아니다. 나는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하는 장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군국주의 길을 걷습니다. 육군은 아베가 고향인 야마구찌(당시 명칭으로 죠오슈번) 출신들이 주동적으로 키워나가고 육군 권력도 다 갖습니다. 해군은 메이지 유신을 죠오슈번과 같이 일으킨 사쓰마번(쿠마모또)이 맡는데 정부에서의 지원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짱구 굴려서 이순신을 불러들이고 이래서 해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청일전쟁시 해전에서 이기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순신 영웅만들기는 기승을 부립니다. 드디어 러일전쟁까지 해전에서 이기자, 그들은 광기로 미쳐 날뜁니다. 매년, 해군 수뇌부에서 진해의 이순신 현충사를 방문합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이순신 영웅 만들기 작업이 계속 띄워지고, 이 당시 일본 육사를 다녔던 박정희는 일본군 수뇌부가 진해 현충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이순신은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한 장군이지 이기는 전쟁을 한 장군이 아니다. 나는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하는 장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내가만일 이순신장군 였다면 엄청난 공을 인정받기는 커녕 감옥당하고 고문당하는 입장에서는 혁명을 일으켜 싹다 쓰러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장군은 만신창이 몸을 이끌고 원균놈이 망가트려놓은 배들을 수습해 아직도 12척이나 있다라며 오직 나라만을 위한 그런 정신.... 정말 하늘에서 보낸 성인이다. 이보다 극적일수는 없다.
모두들 그럴겁니다. 그 정신이 마치 유전자처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으니까요. 그 큰마음을 가슴에 담아보려하니 가슴이 터질 것 처럼 벅차서 그저 새길 수 밖에 없음입니다. 역사 속 인물은 평가되기 마련인데 장군은 감히 평가할 수도 없는 불가역 영역의 존재십니다. 장군의 업적을 폄하하고, 장군에 대한 허위정보 를 퍼나르는 것들은 민족의 역적이고, 토착왜구 입니다. 절대 좌시하면 안됩니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군국주의 길을 걷습니다. 육군은 아베가 고향인 야마구찌(당시 명칭으로 죠오슈번) 출신들이 주동적으로 키워나가고 육군 권력도 다 갖습니다. 해군은 메이지 유신을 죠오슈번과 같이 일으킨 사쓰마번(쿠마모또)이 맡는데 정부에서의 지원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짱구 굴려서 이순신을 불러들이고 이래서 해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청일전쟁시 해전에서 이기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순신 영웅만들기는 기승을 부립니다. 드디어 러일전쟁까지 해전에서 이기자, 그들은 광기로 미쳐 날뜁니다. 매년, 해군 수뇌부에서 진해의 이순신 현충사를 방문합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이순신 영웅 만들기 작업이 계속 띄워지고, 이 당시 일본 육사를 다녔던 박정희는 일본군 수뇌부가 진해 현충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이순신은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한 장군이지 이기는 전쟁을 한 장군이 아니다. 나는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하는 장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성이름 그율곡이 듣보라는게 아니라 율곡이 하필 서인이 추종하는 사람이었다라는 겁니다. 반대로 남명 조식같은 사람은 이이만큼 뛰어나지만 유명하지 않죠 왜냐면 동인이 추종하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북인들이 추종하던 사람으로 알고 있음. 반대로 서인이 일찍 몰락했더라면 이이가 유명세를 타지도 않았을듯 서인이 정권을 잡지 않았더라면 율곡이이는 지금 남명조식 같은 뛰어나지만 유명하지 않는 그런 인물이었을겁니다
이순신은 23전 23승이 아니라 2전2승임. 한산도해전과 명량해전. 나머지는 적군이 극도로 전쟁을 안하려고 피하는 것을 함포로 사격한 것임. 그것도 전쟁인가 ?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군국주의 길을 걷습니다. 육군은 아베가 고향인 야마구찌(당시 명칭으로 죠오슈번) 출신들이 주동적으로 키워나가고 육군 권력도 다 갖습니다. 해군은 메이지 유신을 죠오슈번과 같이 일으킨 사쓰마번(쿠마모또)이 맡는데 정부에서의 지원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짱구 굴려서 이순신을 불러들이고 이래서 해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청일전쟁시 해전에서 이기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순신 영웅만들기는 기승을 부립니다. 드디어 러일전쟁까지 해전에서 이기자, 그들은 광기로 미쳐 날뜁니다. 매년, 해군 수뇌부에서 진해의 이순신 현충사를 방문합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이순신 영웅 만들기 작업이 계속 띄워지고, 이 당시 일본 육사를 다녔던 박정희는 일본군 수뇌부가 진해 현충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이순신은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한 장군이지 이기는 전쟁을 한 장군이 아니다. 나는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하는 장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성은 이씨가 아닙니다만.. 저에게도 이순신장군의 피가 외가쪽을 통해서 일부라도 흐르지 않겠습니까.. 족보를 찾아서 덕수이씨쪽 외가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쨎던... 생물학적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의 현세의 사람들은 이순신장군의 후손이라고 말하면 실례일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순신장군의 덕을 본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기계를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기술의 좋은 스승을 만나 좋은 능력을 갖게되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존경하는 스승으로 지내며 취미인 사회인 야구에도 야구선수 투수의 꿈이였던 저로써 또 좋은 스승을 만나 사회인 야구에서도 영광을 얻었습니다...예전부터 역사!!! 엄청 좋아하고 관심사에 있습니다...황현필이라는 역사 스승으로 항상 응원하고 감사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직접적인 스승은 아니지만...책 또한 가르침을 받기에 이런 좋은 역사 선생님 당신도 저의 스승이십니다~~ 스승이십니다...감사합니다
정말미스테리다... 어릴떄는 그냥 역사책이나 영화에서나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나도 군대 갔다오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도저히 상상 초월이다...이순신 장군님이 돌아가실나이가 지금의 내나이다.. 살아남아도 영웅대접은 커녕 선조의 견제로 분명히 돌아가셨을게 뻔하다... 참 안타 깝다... 나라 이름이 조선이라... 우리나라가 조선업은 세계최강이다.. 이순신 장군님은 배만드는데에도 일가견이 있는것이다.. 거북선을 만들어 한강에 띄우는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장수'복'도 엄청났음. 유명한 일화중에 이억기 장군의 합류가 늦어져서 이순신장군이 첫출전에 머뭇거리고 있었을때 전라좌수영 수하장군들이 모여 "경상도도 우리나라땅 아닙니까 가서 경상도에 왜구들 물리칩시다" 라며 첫출전을 재촉했다고 함. 그래서 전라좌수사장군의 첫전투가 경상도 옥포해전. 크~멋짐~
이순신 장군 밑에 뛰어난 부하가 있는건 운이 아니라 실력입니다. 능력있는 사람은 어디나 있어요. 알아보는 사람을 못만나 능력을 못피우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 발탁하고 또한 그들의 능력이 완벽하지 않기에 각자의 능력을 보고 적절히 맞는 곳에 쓴거죠. 또한 뛰어난 이순신장군으로 부터 후배들이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뛰어난 부하가 나오죠. 반면 원균은 이순신의 장수들을 부하로 두고도 이기지 못했어요. 지는 전략을 짜고 적재적소에 배치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균한테 배울 것도 없으니 뛰어난 부하가 나오지도 못했겠죠.
@@헬싱키-l4q 대부분이 전라도 사람들에 특히 물적 지원이 대부분 전라도에서 이뤄집니다. .1909년도에 일본이 전라남도만을 콕 찍어서 지역 포위 학살을 했던 "남한폭도대토벌"의 배경이 임진왜란때의 호남으로인한 패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일본 자체의 기록이 있을정도입니다. 박정희가 중정시켜서 도난으로 조작해서 경상도에 관한 적나라한 내용을 훼손시킨 지금의 난중일기등의 기록물들을 보고 전체 조선이 다 왜군에게 저항했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아…이순신 장군님! 2004년 KBS에서 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순신 장군님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 나름 공부도 했지만 선생님 강의를 통해 더욱 명료하게 장군의 생애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 우리가 자랑스런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라는 걸 다시 한번 상기 시켜준 소중한 강의 감사합니다.
영국에서 활동을 올해 시작했한 유일한 한국밴드입니다! covid-19 때문에 지금은 다른 뮤지션들처럼 무대에 서지 못하네요. 저희 사진처럼 이순신 장군님을 썸네일로 사용하고 있는데 너무 반갑고 감사하네요~ 한 가지 사족이지만... 21년전 제가 여기 영국 땅에 처음와서 알게된 한 가지 사실은 그 당시 영국의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넬슨 만델라로 나왔는데 넬슨 이라고 해서 전 당연히 넬슨 장군을 얘기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죠! 넬슨 만델라 였던 것을 알고 놀랐었습니다! 암튼 황현필 선생님 강의 just brilliant! supporting from here london!
토착왜구를 왜 토착왜구 라 하는가 ? 한국땅에 토착 , 즉 .... 일본을 옹호하는 무리를 토착왜구당이라 하는 집합소를 일컫는 말이다. 자한당에 토착왜구들이 드글드글 .... 특히 나경원 .... 민주당은 중빠들이 드글드글 .... 음 .... 특정인물이 누군지 당사자는 알 것이여. 민주주의가 빠짐 . 콜라 , 사이다에 탄산이 빠진 느낌 .... 아시죠? 윤미향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만하고 , 돈을 받아 챙긴 죄 삼족 , 구족을 멸해라 !!!! 심상정이 속해있는 정의당은 정의가 빛발치지 않고 대리 게임을 해서 논란을 일으킨 여인을 정의당에 선출시키는 것이 정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 이러한 추세이면 국민들은 10% ~ 80% 국회의원 및 정치에 뛰어들것이 차명한 결과 여족부는 여성들을 위한 법을 만들지 않고 눈만 껌뻑껌뻑 .... 사대주의로 빠져 버리는 것은 .... 나라의 패망만을 앞당기는 것 .... 일본에 지식으로 , 군사력으로 , 월드컵으로 압도하는 것이 급선무 !!!!
원유철의 조상 :원균 , 이순신 장군께서 건조 하셨던 350척을 가지고 칠천량전투에서 한산도를 빼앗기고 부산포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한 점 .... 천추의 한 .... 수군들을 이끄는 장군이 병법을 모르는것인가? 어찌하여 나태 했는가? 똥 멍청이 자식아 !! 원균의 대를 이은 자 : 원 유 철 누구인가 ? 누가 칠천량 앞바다에서 뒷치기를 당했단 말인가? 내가 관심법으로 보니 그대는 정말 똥 막대기 였구려 !! 어찌 조선군 제일의 방어진이었던 한산도를 그대로 적에게 빼앗기고 칠천량으로 가는 것인가? 그대의 죄는 첫째 . 350여척의 함선을 가지고 패배해서 12척으로 만든 죄 ( 그런데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치트키 전술로 구루지마 미치후사 목 벰 ? ) 둘째 . 선조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그대로 행한 죄 셋째 . 충성을 빙자하여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된 죄 넷째 .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키지 못한 죄 다섯째 . 태어난 죄 1. 후퇴를 하려면 원앙진으로 회망을 만들어 적들을 척살함에 좋을것이고 2. 전진을 할거라면 원앙진 , 쐐기진 , 팔문금쇄진으로 적들을 요격함에 있어서 만전을 기해야 할것이야 !! 3. 기문포 해전을 승리 했으면 끝까지 승리를 거두웠어야 맞는일 ....
*황현필의 [임진왜란] 시리즈 몰아보기!*
_하단 링크를 클릭하세요._
ua-cam.com/play/PL0lEEgMCRI86oI5zbT1bem9tki9KkmEII.html
이전 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재업하였습니다^^
축구나 전쟁이나 전설의 1군은 언제 등판하나요?ㅎㅎ
@@안준영-o2i 토왜인가보네;; 이 채널에 복불해서 댓글단거 봐 ㅋㅋ
저 위에서 세번째에 먹이주지말고 가만히 있읍시다
@@안준영-o2i 참 철딱서니 없네 ㅉㅉ
느그 졷본 코로나나 걱정해라 ㅋㅋ 일본 노인네들 다 죽기 전에
'저들의 후손이 우리 후손을 업신여기지 말게하라.'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ㅜㅜ...일본 불매 다시합시다 저 시불놈들이 아직도 우릴 비우는답니다
근데 가릴수도 없구만 셔츠입고
배나온 요리사는 믿지마세요
저도 이마지막 말씀에 울컥눈물이나고 온몸에소름이~목숨바쳐지키신이나라 이시대를살면서 늘감사하고 잘살겟습니다
서방김 왜사냐?ㅋㅋㅋ원서방?ㅋㅋㅋ
이. 순. 신. 그 함자 석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께서 지켜주신 이나라 저들이 무시하지 못하도록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한강에
거북선 100대가 웅장한 모습으로 떠있는 모습 상상해 봄니다 오늘도 눈물나는 강의 잘 보고 감니다 감사함니다
General Yi Sunsin
이나라에 기생하는 토착왜구 척결 먼저
댓글 보면서 제가 눈물이 납니다. 장군님께서 지켜주신 이 나라라는 말... ㅠ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이 새낀 뭐냐 도대체... 또라이냐??? 애쓴다 애써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이 물건 정말 할일 없는 놈이내
역사수업을 듣는데 눈물이 납니다...
나이먹고 이러면 안되는데...본론은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선생님을 늦게 알게되서 늦었지만 감사히 잘 듣고 있습니다.
저도 나이먹어서인가...
안타깝고 절망의 눈물이...
다행히 이순신 장군님 덕분에 안심의 눈물도...애처로움의 눈물도...
일상생활가능하신지요
찐짜 거북선은 브랜드화를 너무 못하는듯 후손이 아직 힘이 충분치 않아 위대한 업적을 세계 만방에 알리지 못함이 송구스러울뿐입니다. 전세계 과장과 미화된 영웅소설도 이 실화를 감히 넘지 못합니다.
@so na 무슨 그런 논리가 있나요? 그냥 순수하게 이순신이라는 우리나라의 영웅을 생각합니다. 좌파니 우파니 그런 썩은 생각은 버리시길 바랍니다.
판옥선이 메인이지 거북선은 주력함선도 아니었는데...
거북선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확신도 하지 못하는게 현실
한 집안에 영웅이 나면 후손은 그 기를 다 소모해서 집안을 세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영웅 후손들이 잘되는 경우는 없다는 군요
아 진짜 넷플릭스같은 곳에 돈 받아서 시즌제로 개쩔게 이순신장군 드라마 한번 만들어주면 좋겠다
고증도 좀 지대로해서 포졸옷에 水 박은거말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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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밴드오브브라더스처럼 걸작하나 나올텐데 명량정도면 가능할거 같기도하고 귿데 사극이 워낙 촬영이 어려워서 힘들죠ㅠ 소품도 많고
ㅋㅋㅋㅋ
근데 그 시대에 맞게 만들기나 심금을 울릴만큼 만드는게 여간 어려운게 아닐거 같아요~
진짜 난중일기 데로만 제작한다면 진짜 역대급 시리즈 나올건 확실한데 말입니다..
붙힘살 없이 제작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있는 그데로 진짜 이렇게 햇다고?? 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제대로 제작한다면 더할나위 없을거 같습니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존경하는 두분이 이순신장군님과 세종대왕님 이다.
두분을 존경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그분들의 업적보다 빛나는 애민정신 때문이다.
심지어 업적도 가장 위대함
이순신 장군님이 얼마나 위대한 위인인지 익히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 강의를 듣고 난 후, 지난 세월 제가 알고 있던 이순신 장군님을 가슴으로 다시 새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군국주의 길을 걷습니다. 육군은 아베가 고향인 야마구찌(당시 명칭으로 죠오슈번) 출신들이 주동적으로 키워나가고 육군 권력도 다 갖습니다. 해군은 메이지 유신을 죠오슈번과 같이 일으킨 사쓰마번(쿠마모또)이 맡는데 정부에서의 지원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짱구 굴려서 이순신을 불러들이고 이래서 해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청일전쟁시 해전에서 이기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순신 영웅만들기는 기승을 부립니다. 드디어 러일전쟁까지 해전에서 이기자, 그들은 광기로 미쳐 날뜁니다. 매년, 해군 수뇌부에서 진해의 이순신 현충사를 방문합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이순신 영웅 만들기 작업이 계속 띄워지고, 이 당시 일본 육사를 다녔던 박정희는 일본군 수뇌부가 진해 현충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이순신은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한 장군이지 이기는 전쟁을 한 장군이 아니다. 나는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하는 장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영상 명강의 였습니다.
이어질 본편을 기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오랜만에 영화 명량을 다시 봤는데 전투 자체의 박진감보다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고뇌에 이입이 돼서 선생님 영상 찾아보게 됐습니다. 역사공부 않는 민족에게 왜 미래가 없는지 또 깨닫게 되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고생 많으셔요, 감사합니다.
우리 민족은 위기가 왔을때 가진자는 도망가고 일반 백성들이 이 나라를 위해 싸웠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이 땅을 지킨 백성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동감합니다..어찌보면 그래서 민주주의가 되나봐요 우리가 어떻게 만든 나란데..라는 생각들이 있잖아요^^
정답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전쟁나면 재벌들 정치인들 부자들 다 도망가고 우리 국민들만 남아서 싸워야 할겁니다 ㅎㅎ
전쟁나면 당연히 국민들이 도망치는 것보다 정치인들이 도망치는 게 먼저죠. 요즘 시대에 인터넷하나로 찾아보면 나오는 게 정보지만 중요 정보는 국민들이 접하는 게 힘드니 먼저 정치인들이 도망치는 건 가정사실이라고 봅니다.
아멘
캠핑가서 듣다가 푹 빠져서 지금은 일상 생활에서도 몇번째 계속 돌려가면서 듣고 있습니다.
가슴에 스며들도록 강의하시는 모습에 또 감동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아... 진짜... 이순신 장군 동영상에까지 까는 댓글 다는 놈들은 도대체 누구고 어느나라 놈들일까?
그냥 다 죽 아니 사라져 버렸음 그리고 대대로 다 빌어먹지도 못하고 살았음 한다. 제발!!!! 그런놈들은
토착왜구 이니깐 신경쓰지마세요
토착왜구일듯 친일파많자나유
진짜 딴건 몰라도 이순신 장군 까는 놈들은 토착왜구, 친일파 맞죠
어디긴요 옆 섬나라죠
명량해전은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이순신장군님입니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 강의.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 집중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혹자들은 이순신장군님이 마음만 먹으면 왕이 될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백성들을 향한 마음이 더 깊었던거 같아요.
꼭 문화재청장님이 되셔서 한강에 거북선 100대를 띄우는 꿈이 성사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기록에 남아있으니까 믿는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냥 허구가 아니었나 싶을정도의 삶을 살았던 분이십니다.
성스러운 영웅
거룩한 영웅
갓조선..
정말요.. 이게 진짜 말이 되나 싶은 이야기들이에요..
수고하셨습니다!! 진짜 이순신 장군님은..말로 표현을 할수있는게 대단하다 위대하다 라는 말 밖에 없다는게 안타까울뿐입니다... 계속해서 방송 기다려지게되네요..
저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살고 있습니다만 선생님의 강의에 깊이 감동하고 갑니다. 앞으로도 역사답게 가르챠주시능 역사 기대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군국주의 길을 걷습니다. 육군은 아베가 고향인 야마구찌(당시 명칭으로 죠오슈번) 출신들이 주동적으로 키워나가고 육군 권력도 다 갖습니다. 해군은 메이지 유신을 죠오슈번과 같이 일으킨 사쓰마번(쿠마모또)이 맡는데 정부에서의 지원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짱구 굴려서 이순신을 불러들이고 이래서 해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청일전쟁시 해전에서 이기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순신 영웅만들기는 기승을 부립니다. 드디어 러일전쟁까지 해전에서 이기자, 그들은 광기로 미쳐 날뜁니다. 매년, 해군 수뇌부에서 진해의 이순신 현충사를 방문합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이순신 영웅 만들기 작업이 계속 띄워지고, 이 당시 일본 육사를 다녔던 박정희는 일본군 수뇌부가 진해 현충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이순신은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한 장군이지 이기는 전쟁을 한 장군이 아니다. 나는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하는 장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여러 위인이 있지만 성웅의 칭호가 붙은 사람은 없다. 정말 신급의 위인.
내가만일 이순신장군 였다면
엄청난 공을 인정받기는 커녕
감옥당하고 고문당하는 입장에서는 혁명을 일으켜 싹다 쓰러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장군은 만신창이 몸을 이끌고 원균놈이 망가트려놓은 배들을 수습해
아직도 12척이나 있다라며 오직 나라만을 위한 그런 정신....
정말 하늘에서 보낸 성인이다.
이보다 극적일수는 없다.
그 영화 명랑 이순인 있지 안씀둥~
리순신이노 김재규와 함께 성웅이모니다~
@@hyunwoolee5078 올쏘~
@@나는성공한다-x5g 나두 동감이오
솔직히 성웅 보단 영웅으로 혀야죠
성웅은 오직 이. 순. 신 장군만....
김재규 장군~~~
@@hyunwoolee5078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악당은요?
드라마를 역사로 알고 있는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원균은 이순신의 경쟁자이기는 했지만, 엉뚱하게 이순신을 모함적이 없습니다.
항상 존경합니다 이순신장군님
이순신 장군님은 전쟁의 신이 우리가 불쌍해서 잠깐 인간계에 노닐다 가신 것 같아요.
선생님 세종대왕님 이순신 장군님 까는 인간들 있는데 열정적인 강의 고맙습니다!
그런사람들은 이나라사람이 아닌듯~부모가아무리잘못해도 다른곳에서 자신들의부모는 욕하지않지요~그래도 이나라사람은 그때그분들의유전자가 흐르는데
그런 까는 놈들 화교거나 관종이에요. 오히려 사무라이 정신 있는 일본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할 겁니다. 관종에 미친 정신병자들이나 하는 짓이죠.
일베애들이 까더라구요.. 걔네는 인간말종들이라
와.. 나만 가슴이 울렁거리나?
다들 그런가요?
눈물날뻔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울렁거리다 못해 벅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모두들 그럴겁니다. 그 정신이 마치 유전자처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으니까요.
그 큰마음을 가슴에 담아보려하니 가슴이 터질
것 처럼 벅차서 그저 새길 수 밖에 없음입니다.
역사 속 인물은 평가되기 마련인데 장군은 감히
평가할 수도 없는 불가역 영역의 존재십니다.
장군의 업적을 폄하하고, 장군에 대한 허위정보
를 퍼나르는 것들은 민족의 역적이고, 토착왜구
입니다. 절대 좌시하면 안됩니다.
수군 1, 2, 3 모였냐 다들 잘지냈느냐 나 수군4다
저도 울었어요 흑흑
영상보며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네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추모와 애정으로...
황현필 선생님 역사 강의 정말 멋져요 항시 응원합니다
아..성웅 이순신.
장군님 덕분에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순신장군 특집.
선생님 강의를 들으니 절로 숙연해지네요.
감명깊은 프롤로그입니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군국주의 길을 걷습니다. 육군은 아베가 고향인 야마구찌(당시 명칭으로 죠오슈번) 출신들이 주동적으로 키워나가고 육군 권력도 다 갖습니다. 해군은 메이지 유신을 죠오슈번과 같이 일으킨 사쓰마번(쿠마모또)이 맡는데 정부에서의 지원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짱구 굴려서 이순신을 불러들이고 이래서 해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청일전쟁시 해전에서 이기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순신 영웅만들기는 기승을 부립니다. 드디어 러일전쟁까지 해전에서 이기자, 그들은 광기로 미쳐 날뜁니다. 매년, 해군 수뇌부에서 진해의 이순신 현충사를 방문합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이순신 영웅 만들기 작업이 계속 띄워지고, 이 당시 일본 육사를 다녔던 박정희는 일본군 수뇌부가 진해 현충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이순신은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한 장군이지 이기는 전쟁을 한 장군이 아니다. 나는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하는 장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울컥하게되네요.
이순신 장군님~~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2탄이 올라온줄 알고 허겁지겁 눌렀네요ㅠ 한번 더 복습합니다^^
저두요ㅎ
이순신 장군이 터미네이터라고 합니다... 요새 바빠서 몰아서 보고 있어요~ 근데 너무 재밌네요 ㅎㅎㅎㅎ
넷플릭스 지원받아 드라마 제작하면 진짜 초대박 시청률 30% 확신한다
드라마 만들때 역사 잘아는사람들께 고증 잘받으면 진짜 엄청날거같은데
어릴때부터 노량까지 이야기
이순신장군님을생각하면눈물만흐릅니다,선생님의강의도너무완벽하시구요,감사합니다,
와...이순신장군 강의들으면서 눈물이 나오는건 처음입니다.
앞으로도 좋은강의 부탁드립니다.
ㅎㅎ 첫영상도 좋았는데요! 한강에 거북선, 10만원권에 이순신장군님 모델 반드시 만들어 냅시다!!! 선생님 앞으로 이순신 시리즈 완전 기대합니다!!!!
너무나가슴이저려옵니다
뭐라말로할수없네요
아~~~위대한이시대의영웅
알로만들어도가슴이절절해집니다
이야기듣는동안두손을잡교들었어요
눈물이줄줄나네요
세계기록유산 ㅡ난중일기
크아~멋지네요~~~♡
이순신장군 임진왜란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숙연해집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꼭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재업로드 전 영상도 봤는데, 분명 완성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이쪽의 영상의 구성이 더 좋습니다. 시리즈 쭈욱 부탁드립니다.
감동적인 영상 자랑스럽습니다. 황현필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이토록 훌륭한 분을 보내 주신 것 감사합니다.
고작 100원 짜리 동전에 들어가실 분이 아니지... 광개토대왕이나 이순신장군은 나중에 5만원권 이상의 지폐 발행되면 거기 들어가셔야 함.
뭐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 가장 많이 발행되는 화폐 중 하나에 넣어다라고는 하는데 ㅎㅎ
이순신 장군 진정 시간 여행자~~저의 워너비이자 롤모델이자 최고로 존경하는 인물임
일단 5만원에 신사임당 아줌마부터 빼야 된다고봄
@성이름 공감.. 신사임당의 업적이 율곡이이 낳은것 그거 하나 ㅋㅋㅋ 그것도 서인이 집권하지 않고 동인쪽에서 집권했다면 누군지도 몰랐듯 그런 인물
@성이름 그율곡이 듣보라는게 아니라 율곡이 하필 서인이 추종하는 사람이었다라는 겁니다. 반대로 남명 조식같은 사람은 이이만큼 뛰어나지만 유명하지 않죠 왜냐면 동인이 추종하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북인들이 추종하던 사람으로 알고 있음. 반대로 서인이 일찍 몰락했더라면 이이가 유명세를 타지도 않았을듯
서인이 정권을 잡지 않았더라면 율곡이이는 지금 남명조식 같은 뛰어나지만 유명하지 않는 그런 인물이었을겁니다
영화도 이렇게 만들면 욕먹음
진짜 영화보다 영화같은 삶을 살다 가신분
예전부터 다들 대충 알고있는 23전 23승에 800여척격파.... 정말 이순신은 전쟁의신이라는게 다시한번 느껴짐....
이순신은 23전 23승이 아니라 2전2승임. 한산도해전과 명량해전. 나머지는 적군이 극도로 전쟁을 안하려고 피하는 것을 함포로 사격한 것임. 그것도 전쟁인가 ?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군국주의 길을 걷습니다. 육군은 아베가 고향인 야마구찌(당시 명칭으로 죠오슈번) 출신들이 주동적으로 키워나가고 육군 권력도 다 갖습니다. 해군은 메이지 유신을 죠오슈번과 같이 일으킨 사쓰마번(쿠마모또)이 맡는데 정부에서의 지원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짱구 굴려서 이순신을 불러들이고 이래서 해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청일전쟁시 해전에서 이기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순신 영웅만들기는 기승을 부립니다. 드디어 러일전쟁까지 해전에서 이기자, 그들은 광기로 미쳐 날뜁니다. 매년, 해군 수뇌부에서 진해의 이순신 현충사를 방문합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이순신 영웅 만들기 작업이 계속 띄워지고, 이 당시 일본 육사를 다녔던 박정희는 일본군 수뇌부가 진해 현충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이순신은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한 장군이지 이기는 전쟁을 한 장군이 아니다. 나는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하는 장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본강의는듣지도않았는데 왜눈물이나지요
ㅜㅜ 진짜5분간 눈물만나네요
생각만해도 그저 놀랍고 대단하고 감사하신 장군님 ㅠㅠ
아주 잘 요약해주시고 잘 해설해주셔서 군더더기없고 또한 마음하나하나 느낌을 전달해 주시니 집중도 150%입니다.
덕분에..난중일기 읽고있고 징비록도 구매했네요.
황현필 선생님의 올바르며 열정과 감성이 풍성하고 재밌는 역사공부 계속 열중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히 보고있습니다!!
황현필 선생님 !! 응원 합니다!!^^♡
아~~ 자랑스럽습니다. 이순신장군의 후손이라는게 자랑스럽습니다. 황선생님이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성은 이씨가 아닙니다만.. 저에게도 이순신장군의 피가 외가쪽을 통해서 일부라도 흐르지 않겠습니까.. 족보를 찾아서 덕수이씨쪽 외가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쨎던... 생물학적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의 현세의 사람들은 이순신장군의 후손이라고 말하면 실례일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순신장군의 덕을 본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Cannon.. Made in
이순신 장군은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중 한명 입니다.! 황현필 선생님 좋은 역사 방송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나올 영상들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항상 감사히 잘보고있습니다
감동의 눈물이 ㅜ.ㅜ
이순신장군님 이야기 기대됩니다
정말 기다렸습니다 ㅎㅎ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현시대 대한민국 남자로서
아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장 존경하는 성웅
이순신 장군님.
토욜 퇴근하고 힐링 타임~~
황현필 선생님 덕뷴에 많이 울고 웃고 행복합니다
아니 내전도 아니고 나라대나라로 전쟁 양국이 다걸고싸는건데
지원받고 싸워도 부족한데 정말 클라스있게 싸워 다이김 이게 가능한일인가 정말이지 엄청난 분
저는 기계를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기술의 좋은 스승을 만나 좋은 능력을 갖게되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존경하는 스승으로 지내며 취미인 사회인 야구에도 야구선수 투수의 꿈이였던 저로써 또 좋은 스승을 만나 사회인 야구에서도 영광을 얻었습니다...예전부터 역사!!! 엄청 좋아하고 관심사에 있습니다...황현필이라는 역사 스승으로 항상 응원하고 감사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직접적인 스승은 아니지만...책 또한 가르침을 받기에 이런 좋은 역사 선생님 당신도 저의 스승이십니다~~ 스승이십니다...감사합니다
독도에..이순신 장군님 동상을 국민성금 모아서
높이 50m 대규모로 일본 본토를 향한 모습으로
지었으면합니다 국민청원 갑시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 일본을 노려보고 계시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남준호-n2m 아그렇쿤요 감사합니다 댓글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승하십쇼 ㅜㅜ
장군님 생각에 술한잔하고 울컥할번...
역사강의를 들으면서, 울어보긴 첨이네요. 구전으로만 들었던 민족의 영웅의 일대기를 정말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손자병법 모공편 지피지기 백전불태를 몸소 실천하신 레전드
먼저 완벽한 전략을 수립하고 거기에 맞는 전술로 원숭이 청소를 하신
전설.....
오..손자병법보셧나부네 저도 봤는데 이순신덕후 크..이겨놓고 싸운다
그냥 눈물이 납니다ㅜㅜㅜㅜ
ㅋㅋ2탄 벌써 나왔나하고 초 흥분 상태로 들어왔는데 복습하라고 재업하신거였군요
황현필강사님. 애국진심에 감사드립니다. 강의하니 목이 아프겠어요. 건강식사 신경 써 주십시요
저... 사실 지금 불멸의 이순신 다시 보기 하고 있어요.. 정말 기다리던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 태백광노 일원 드림.. ---
당신은 애국의혼을담아 열의을 보이는 지식인인 그데는 애국자이다 고맙씁니다 응원합니다
오랜만에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오길 기다리게됩니다. 감사합니다!!!
말씀만 듣고 있는데도 마음이 뭉클합니다.위인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지금과 같은 시대에 우리나라에 다시 한번 살아게셨으면..보고 싶네요.
이순신장군님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뭉클합니다.. 난중일기 장군님의 고뇌가 느껴집니다
정말미스테리다... 어릴떄는 그냥 역사책이나 영화에서나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나도 군대 갔다오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도저히 상상 초월이다...이순신 장군님이 돌아가실나이가 지금의 내나이다.. 살아남아도 영웅대접은 커녕 선조의 견제로 분명히 돌아가셨을게 뻔하다... 참 안타 깝다... 나라 이름이 조선이라... 우리나라가 조선업은 세계최강이다.. 이순신 장군님은 배만드는데에도 일가견이 있는것이다.. 거북선을 만들어 한강에 띄우는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번 영상 재업하셨다니 더욱 짠하고 더욱 감사합니다♥
눈물 나네요. 감동적입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518 영상은 언제쯤 올라올까요? 이거도 너무 기대하고 있습니다!!
황쌤 영상보면 누워있다가 기운을 내야될것 같은 에너지가 생깁니다
한동안 아프기도 하고
역사듣기를 게을리 했습니다
다시시작합니다~~
우리의 이순신 성웅님 이야기로!
늘 감사해요!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20분이 너무 빨리 지나갔습니다. 내일까지 또 어떻게 기다릴지... 😢
어느 정도는 다아는 얘기인데 왜 황교수님이 강의하시면 먼가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불끈불끈 올라오는가요~~ 가슴속의 국열을 끄집어내실줄 아시는분~~
실로 천운이였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 이럴때는 한번 이상 있다
실로 천운이라고 해석할수밖에 없는때가...
아웅! 넘나 재밌는거. 주말에는 하루 두편씩 찍어달라!!!
황현필 선생은 뼈와 살을 갈아넣어서 하루 두편씩 평일에도 올려달라!!!!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이순신 장군은 부하장수'복'도
엄청났음. 유명한 일화중에
이억기 장군의 합류가 늦어져서
이순신장군이 첫출전에
머뭇거리고 있었을때
전라좌수영 수하장군들이 모여
"경상도도 우리나라땅 아닙니까
가서 경상도에 왜구들 물리칩시다"
라며 첫출전을 재촉했다고 함.
그래서 전라좌수사장군의 첫전투가
경상도 옥포해전. 크~멋짐~
원래 명장 밑에 뛰어난 부하들이 있는법입니다
@성이름 이억기 장군 밑에서 첫번째 백의종군을 했고. 정운은 부하였지만 군 선배였죠.
이순신 장군 밑에 뛰어난 부하가 있는건 운이 아니라 실력입니다. 능력있는 사람은 어디나 있어요. 알아보는 사람을 못만나 능력을 못피우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 발탁하고 또한 그들의 능력이 완벽하지 않기에 각자의 능력을 보고 적절히 맞는 곳에 쓴거죠. 또한 뛰어난 이순신장군으로 부터 후배들이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뛰어난 부하가 나오죠. 반면 원균은 이순신의 장수들을 부하로 두고도 이기지 못했어요. 지는 전략을 짜고 적재적소에 배치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균한테 배울 것도 없으니 뛰어난 부하가 나오지도 못했겠죠.
다큐 이순신의 사람들 봤는데...혼자 전쟁준비 한게 아니더군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다시 보겠습니다
황선생님의 열정에 감동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김명민님이 이순신장군 연기를 너무 잘해주셔서 이순신장군 모습 하면 김명민이 떠오름
진짜 공감합니다 ㅋㅋ
@@Dr_Sunshine91 친일파넘들이 만든건가봐요.
@@Dr_Sunshine91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원작은 김 훈 작가의 칼의 노래입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 전사 신도 자살했다고는 안나옵니다.
ㅇㅈ연기가 아니라 살아생전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는듯 했음 거의 빙의된 수준
한국판 글래디에이터 아니 그것보다도 더욱 소설같은 진짜 성웅 이순신~!!!
이순신 장군과 전라도민들 같은 분들이 안 계셨음. 어쩜 지금 대한 민국이 없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언제부터인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 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웅이시라 생각 합니다.
전라도민만 있었던게 아니라 이순신이 연정연승하니 전국에서 그 지역으로 몰려들어요 물론 충청남도 전라도 사람이 주였겠지만
???? 6.25전쟁 때 낙동강 최후 전선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낼 때 전라도는 전쟁다운 전쟁 없이 북괴군들 무혈입성 했습니다만..
전라도와 조선을 지켜 낸 이순신 장군님 안계셨으면 조선이 망할 뻔 한거지 대한민국의 6.25전쟁 때 전라도는 빨치산들 봉기로 북괴군들 전쟁 없이 전라도 입성ㅋㅋ
@@헬싱키-l4q 대부분이 전라도 사람들에 특히 물적 지원이 대부분 전라도에서 이뤄집니다. .1909년도에 일본이 전라남도만을 콕 찍어서 지역 포위 학살을 했던 "남한폭도대토벌"의 배경이 임진왜란때의 호남으로인한 패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일본 자체의 기록이 있을정도입니다. 박정희가 중정시켜서 도난으로 조작해서 경상도에 관한 적나라한 내용을 훼손시킨 지금의 난중일기등의 기록물들을 보고 전체 조선이 다 왜군에게 저항했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REDFILL1115 전라도가 주축이여도 전국에서 이순신 밑으로 대부분이 이동했는데 전라도 사람만 했다는것도 착각이세요
아…이순신 장군님! 2004년 KBS에서 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순신 장군님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 나름 공부도 했지만 선생님 강의를 통해 더욱 명료하게 장군의 생애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 우리가 자랑스런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라는 걸 다시 한번 상기 시켜준 소중한 강의 감사합니다.
이순신 장군님 생각하면 눈물이 왈컥ㅜㅜ
영국에서 활동을 올해 시작했한 유일한 한국밴드입니다! covid-19 때문에 지금은 다른 뮤지션들처럼 무대에 서지 못하네요. 저희 사진처럼 이순신 장군님을 썸네일로 사용하고 있는데 너무 반갑고 감사하네요~ 한 가지 사족이지만... 21년전 제가 여기 영국 땅에 처음와서 알게된 한 가지 사실은 그 당시 영국의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넬슨 만델라로 나왔는데 넬슨 이라고 해서 전 당연히 넬슨 장군을 얘기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죠! 넬슨 만델라 였던 것을 알고 놀랐었습니다! 암튼 황현필 선생님 강의 just brilliant! supporting from here london!
성웅 이 순 신
제 개인적으로 가장 위대하고 존경받는 분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이순신장군님은 진짜 신이 우리를위해서보내주신 영원한영웅이시지 나도개인적으로 한국역사속에많은 위인분들이있지만 가장존경하고사랑하는분입니다
제목에서 찢었다!이.순.신 단 세글자로 게임 오버!
앗차차차....1편부터 내달리는데 강의가 너무 좋아 정신도 못차리다가 이제사 겨우 좋아요 누릅니다.
쨔스! 너무 기다렸어요 ㅋㅋㅋㅋ
당신의 말을 듣고 있자면 눈물이 앞을 가릴려고 합니다. 전 정말로 우리 역사 최고의 구국의 영웅이라 생각합니다.
볼륨만 좀 맞춰주시면 최고의 채널이 될거같습니다..ㅠ
우연히 동영상을 보고 클릭 했는데 넘 재미나게 강의를 잘하세요. 👍👍👍👍👍
귀에 쏙쏙 들어와 흥미롭게 듣고 있습니다.
팬이 되었습니다
흑흑 장군님
저흰 아직 왜구랑 싸우고 있습니다 ㅠㅠ
그런데 그 왜구가 한국에도 있네요 ㅠㅠ
그들의 이름 : 친일파 , 토착왜구
ㄹㅇㅋㅋ
ㅋㅋㅋ 그넘이 새작입니다
기회를 엿보구 붙어 먹으려는 넘덜
지들 이익만 되면 등돌리구 민족두
팔어 먹는, 꼭 처단 해야 하는데.....
토착왜구를 왜 토착왜구 라 하는가 ?
한국땅에 토착 , 즉 ....
일본을 옹호하는 무리를 토착왜구당이라 하는 집합소를 일컫는 말이다.
자한당에 토착왜구들이 드글드글 .... 특히 나경원 ....
민주당은 중빠들이 드글드글 .... 음 .... 특정인물이 누군지 당사자는 알 것이여.
민주주의가 빠짐 . 콜라 , 사이다에 탄산이 빠진 느낌 .... 아시죠?
윤미향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만하고 , 돈을 받아 챙긴 죄
삼족 , 구족을 멸해라 !!!!
심상정이 속해있는 정의당은 정의가 빛발치지 않고 대리 게임을 해서 논란을 일으킨 여인을 정의당에 선출시키는 것이 정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
이러한 추세이면
국민들은 10% ~ 80% 국회의원 및 정치에 뛰어들것이 차명한 결과
여족부는 여성들을 위한 법을 만들지 않고 눈만 껌뻑껌뻑 ....
사대주의로 빠져 버리는 것은 .... 나라의 패망만을 앞당기는 것 ....
일본에 지식으로 , 군사력으로 , 월드컵으로 압도하는 것이 급선무 !!!!
원유철의 조상 :원균 , 이순신 장군께서 건조 하셨던 350척을 가지고 칠천량전투에서 한산도를 빼앗기고 부산포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한 점 .... 천추의 한 .... 수군들을 이끄는 장군이 병법을 모르는것인가?
어찌하여 나태 했는가? 똥 멍청이 자식아 !!
원균의 대를 이은 자 : 원 유 철
누구인가 ? 누가 칠천량 앞바다에서 뒷치기를 당했단 말인가?
내가 관심법으로 보니 그대는 정말 똥 막대기 였구려 !!
어찌 조선군 제일의 방어진이었던 한산도를 그대로 적에게 빼앗기고 칠천량으로 가는 것인가?
그대의 죄는 첫째 . 350여척의 함선을 가지고 패배해서 12척으로 만든 죄
( 그런데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치트키 전술로 구루지마 미치후사 목 벰 ? )
둘째 . 선조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그대로 행한 죄
셋째 . 충성을 빙자하여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된 죄
넷째 .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키지 못한 죄
다섯째 . 태어난 죄
1. 후퇴를 하려면 원앙진으로 회망을 만들어 적들을 척살함에 좋을것이고
2. 전진을 할거라면 원앙진 , 쐐기진 , 팔문금쇄진으로 적들을 요격함에 있어서 만전을 기해야 할것이야 !!
3. 기문포 해전을 승리 했으면 끝까지 승리를 거두웠어야 맞는일 ....
황현필선생님
자세한 역사강의
너무 재밋고
유익합니다~♡
이런 훌륭한분이 대한민국의상징 지폐에 못들어가는지 정말 납득을 할수없습니다 ....
신사임당이 대체 뭐를 햇습니까 ! ! 정말 화폐개혁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바부팅. 가장많은 백원 동전에 있습니다. 물론 예전 백원지폐에도 이순신 장군이었구요. 오원 동전에는 거북선 ...
이래서 페미가 욕을 먹는거죠. 그림이나그리고 아들 잘키운게 한 나라의 화폐까지 갈정도인지. 울 엄니도 나 잘 키웠는데 말이죠
Dong bin Shin 너 뇌가 없냐?? 동전 누가 쓰냐고
@@정경문-x2x 동전을 누가쓰냐고? 말이여 방구여 ㅋㅋ 솔직합시다. 100원 동전을 자세히 본적없다고.
Dong bin Shin 뇌가 없군.. 100원을 자세히 봐서 댓글쳐 달아라.
너무 기대됩니다. 잘보겠습니다. 이순신장군님 최고!
해군에선 이순신 장군을 제독이라 부릅니다 진짜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성웅 이순신..타임머신이 있다면 400년 전으로 돌아가서 뵙고 싶습니다
살짝 들었을뿐인데 20분이 사라졌다..? 너무너무 기대했던 이순신 입니다!!! 재업 하실정도라니 역시 황현필 선생님의 이순신 사랑은 진짜네요ㅎㅎㅎ 다음 영상도 기대가 무척 큽니다!!
하늘에서 조선을 구하라는 칙명을 받고 내려오신 그야 말로 신! 이순신!
다시봐도 감동의 눈물이 흐를정도네요
인간으로서 제독으로서 아비로서 자식으로서 친구로서 상사로서 이순신 장군님같은 분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