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11월에 대련에서 단동까지 승용차로 가본적이 있습니다. 고속도로로 3시간 정도 거리인데 대련은 따뜻한데 단동은 도로가 얼어있었습니다. 요동땅의 위도를 보면 평양이랑 비슷해서 따뜻합니다. 즉 농사가 가능했다는 것이죠. 이에 비해 압록강 하구로 가면 이미 농사짓기 어려운 추운곳이라는점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농경시대에 농사짓기 좋은 요동반도 빼고나면 중국왕조든 고려/조선 이든 굳이 가져도 별 도움이 안된다 생각했을거라 생각됩니다.
고구려시기나 근대이전의 만주와 요동은 지금과 기후와 기온이 다릅니다 지금의 기후가 그때의 기후가 아닙니다 농사짓기 쉽지않았다고 알고있습니다 농사지을수있는지역은 한정적이고 한반도북부에 비해 군사적으로 방어하기에 넓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대륙에비해 우리민족의 국가들은 인구가 적었으니까요
나는 조선의 역사, 고조선의 역사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크게 외곡 된 역사라고 생각 합니다. 신채호 선생님께서 주장하는 역사가 우리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의 역사며, 통일 신라 이후 왕건이가 세운 고려의 역사에도 상당히 큰 역사 외곡이 있었다고 본다. 물론 강화도 조약 이후의 역사는 일본인들에 의한 역사 외곡을 전문적으로 외곡한 것이 분명하다. 요동 땅과 간도 땅, 그리고 연해주 땅도 조선의 영토가 분명한데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1930년 일본이 만주 국 건국과 함께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이 혼제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성 국인 미국, 영국, 소련의 일방적인 국경 으로 지금의 한반도 역사는 크게 외곡 된 역사다.
요동에 대해서 정약용 선생이 틀린것은 조선초 요동을 차지했다면 조선은 굳이 명의 해금정책에 따를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일본처럼 대외무역을 했더라면 조선은 더 풍요로웠을 거고, 요동 방어에 들어 가는 비용도 충분히 충당 가능했을 것입니다. 또 요동과 그 주변을 통치하면서 인구수도 더 많이 늘어서 요동을 방어하는 일에 동원 군사가 더 많아 충분 했을겁니다. 그리고, 요동을 차지했다면 자원과 특히 군마의 수급으로 조선군이 수성전 외에도 조선이 많이 부족했던 기병대를 많이 깆추고, 명이나 여진족에 대해서 군사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능력과 군사력을 유지 했을 겁니다.
위화도 회군떄 정벌하려 했던 요동은 현재 북경지역입니다. 위화도는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구요 ㅎㅎㅎ 한국사는 통일신라, 후삼국, 고려, 조선초기 시기에 납득가지 않는 내용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 지도가 엉터리라는 소리죠. 몇가지 예로 들어볼까요? 1. 생각 해 보세요. 콩딱지만한 고려영토에서 얼마되지도 않는 인구로 몽골, 거란의 수십만 병력이 수시로 쳐들어오는데 어떻게 막아냈겠습니까? 2. 조선에서 명나라로 조공으로도 보내고 팔기도 하고 지원도 보내는 등 말을 수만필을 보냈습니다. 한반도 안쪽의 조선에서 말을 어디서 키웁니까? ㅎㅎ 한반도 내에서 사용하던 말은 군용으로 사용이 힘든 조랑말이었습니다. 명나라에 군용으로 보내는 말은 만주지역의 말이죠. 조선에서 군용으로 사용되던 것도 그 말이었습니다. 3. 교과서에서 봤던 강동6주를 생각 해 보시죠. 서희의 외교담판... ㅎㅎ 강의 동쪽 6개 주입니다. 지도에 나오는 그거 맞다고 봅니까? 4. 고려의 천리장성이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서 있는데 맞아요? ㅎㅎㅎ 장성이 있었다면 구글어스로 보면 뭔가 흔적은 나와야하는데 보입니까? 그 산꼭대기에 장성을 짓는다구요 맞아요?
몽골시대에도 요동성은 고려인이 요양왕으로 있기도 할 만큼 요동의 통제력은 고려인이 높긴했죠 이성계의 요동성 원정떄의 기록만 봐도, 요동에 고구려 발해 계통 민족성을 띈 백성도 많았죠. 고려가 건국하고, 평양이남부터 시작해서, 야금야금 올라가서, 조선 세종때 4군6진 개척으로 지금의 한반도 형세를 이루었죠. 고려 건국당시의 영토보다 50%나 넒힌 영토죠. 개마고원이라는 엄청난 산맥을 넘어 진을 구축하고 지키는 쉬운문제가 아니죠. 조조가 한중을 얻고도 계륵이라고 한 이유가, 진령산맥 넘어에 있는 한중분지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었죠. 세종 이후 세조시대에 강력한 군사력 (조선사 마지막 군사력 불꽃)을 태웠으나, 정벌군으로 활용한적은 없죠. 그 이후 어영부영있다가, 임진왜란을 격고 후금(청이) 중국을 장악하자, 조선의 북벌은 이루어질 기회 조차 소멸되버립니다. 세종이후에, 중국이 분열되있었어야 기회라도있었겠죠. ㅠ
@@물멍-d8b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부여,고구려,옥저,동예가 개마고원을 가운데 두고도 한 묶음으로 묶이는데 반해, 동북쪽 숙신읍루말갈은 부여에서 1000리이고 그 길이 험하여 수레와 말이 다니지 못하여 60일이 걸렸다는 기록이 잇습니다. 그래서 우리민족과 퉁구스계 숙신읍루말갈여진이 끝내 통합되지 못하고 다른 길로 간 듯합니다. 우리민족과 말갈이 함께 한 지붕 아래 있었던 고구려 후기와 발해 때도 결론적으로 오롯이 하나가 되지 못 했죠.
08:02 한민족의 영역이 한반도로 축소된 건 아닙니다. 한민국 국가의 국경이 한반도로 축소된 것이죠. 현재 해외동포들이 있듯이 요동과 만주에는 기원전부터 고려조선시대 구한말과 현재까지 줄곧 해외동포들이 있었습니다. (서양의 짧은 역사 개념인 nationalism 국가=민족이 아닌 언어가 통하고 핏줄이 같았던 동양의 한자 그대로 민족民族) 기원전4세기 고조선이 요동을 잃은 뒤에도 요동에 연나라 지배받는 조선인이 많이 살았고 기원전2세기 고조선이 멸망해도 한사군의 인구 중 80%가 조선예맥인이었고 고구려,발해가 망한 뒤에도 요동,만주에 남은 유민들이 있었고, 발해 유민들은 200년간 부흥운동 간헐적으로 했고, 고려시대에는 고구려발해유민 + 몽골간섭기 몽골과 고려 교류로 요동에 고려인 늘어나 심양왕을 고려왕이나 고려왕족이 맡았습니다. 조선전기에도 압록강 국경넘어 명나라 직할령 요동가는 길에 조선인 마을이 줄지어 있었고 조선후기 청나라가 만주를 비운 뒤에는 조선인이 더 늘어나서 익히 널리 알려진 두만강 넘어 동간도&북간도(연변) 뿐만 아니라} 압록강 넘어 서간도에도 조선, 대한제국이 관리를 파견하여 조선사람들을 관리하려습니다. 조선후기 압록강 넘어에 수십개 면을 설치하기도 하고, 대한제국이 연변지방에는 관청까지 두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외교권을 앗은 뒤에 청나라에게 간도를 넘겨버려 그곳 조선사람들이 재중동포가 되어 현재에 이르렀죠. 남만주 연변 인구의 80%이 조선사람이었습니다. 조선후기~대한제국기 구한말~일제시대 내내요. 국경이 있어도 만주의 동포, 한반도 사람들이 교류를 할 수 있었는데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 세계사적으로도 아주 극단적으로 유례없는 통행 교류 전화 금지, 완전한 분리를 당하고 잇는 것이 우리민족의 현실입니다. 북한은 독재의 압제 아래 시들어가고, 재중동포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온 민족정체성,문화,언어를 중공의 억압세뇌속에 젊은 재중동포 세대들이 정체성을 잃어가며 남한 젊은세대들의 혐오대상이 되어버리고, 남한은 경제적 발전과 시민의 힘으로 이룬 민주화를 이룩하였으나 극단적인 자본주의,물질주의로 스스로 소멸해가고 있습니다. 분단의 장기화로 영구분단 이야기도 나오고 이렇게 외세에 의해 갈가리 찢기운 민족이 소멸하고 나면 중공,일본,미국만 이 땅을 차지하고 노를 젓겠지요. 역사적으로 내내 우리민족 우리땅을 침탈했던 외세에 의해... 수천년 우리민족이 이렇게...
제 말이 이겁니다 지금 제야 사학계 플러스 판타지 환단고기 이야기는 접어 두더라도 만주 일대는 고조선 이후로 수천년간 한민족이 살아오던 터전 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 사람들이 싹 사라질 수 없는 일이고 계속 그 땅에서 우리 조상들은 살아왔다는건데 이제 그런 기록과 민족성 자체가 없어져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mmoon4699수천년 살아왔다고 보기가 민망하지 않냐? 중국역사서를 통해서만 확인 가능했던 부여, 유목민이었던 고구려, 발해까지 다 합쳐도 만주지역 먹은거 몇백년 밖에 되지 않는데 원나라를 중국역사라 안치더라도 한,당,요,금,청 생각하면 중국이 만주 먹은 기간이 더 길고 현재도 중국 땅인데 그냥 행복회로 돌리는거랑 무슨 차이임?
무슨꿈꾸세여. 고려시대도 만주는 우리땅이었고 고려는 한반도 만주 중국동부지역을 장악한 국가입니다. 고려가 중국통일전쟁 시작하다가 이성계가 주원장의 밀약 그리고 이성계의 통수로 고려가 멸망하고 한반도에 이씨조선이 세워져서 영토가 축소된겁니다. 그래서 넓은 고려땅에서 좁은 한반도 변방 깡촌으로 내려오니 말이 안통해서 말 통하게 할려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거잖아요 이영반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한 이유도 모르고있나보네
@@하늘의말나말여초 때는 한반도까지 들어와서 살았어요. 예맥계통은 고조선이 한반도로 밀려날 때, 고구려가 망할 때, 발해가 망할 때 한반도로 쏟아져들어왔고 만주족을 배척해서 못들어온거임.이 시기에 소빙하기 때문에 만주에서 농사짓고 척박해진 거+백두산폭발 때문에 떼거지로 한반도로 발해인이 들어온 건 고려사에 기록되어있음 대략 고려조정에서 파악한 꽤 큰 규모만 500여회임 고려 중기만해도 갈라전 여진족은 고려땅에 들어와서 살고 싶어했음.고려가 못들어오게 한거지 ㅇㅇ
요동을 잃어버린 탓에 우리는 평생 벗어날수 없는 약소국의 숙명을 살게 되었음.뭐 그 때 요동 포기안했으면 명나라에게 먹혔다고들 하는데 그 덕에 청나라의 완전히 수탈당하고 일본에게 나라가 멸망한건 생각도 안하나봄 정작 명나라도 그런 요동을 완전히 실효지배한것도 아니었고 고려가 요동을 차지한다고 해도 명나라에게 위협이 안되었기에 적극적으로 고려와 공세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는거.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도 강대국이 되는 수밖에 없음.지금 미국도 언제까지 우리를 지켜줄지 모를일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체 왜 하나같이 상대방의 논리가 기본지식이 틀려먹었네, 못 배웠네 하면서 정작 본인들이 제대로 된 참된 지식을 가졌다 지적하는 양반들은 뭐가 문제길래 이리 꼴깝인지................. 그 주장이 근거가 있고 납득이 되면 또 몰라 하나같이 얼토당토 없는 헛소리나 제끼니........................
예족은 중국과 교류가 잦던 아무르계 종족이고 맥족은 말갈족 퉁구스와 가깝던 종족으로 추론하고 있습니다. 예족이 호랑이, 맥족이 곰이라는 추론이 있는걸로 아는데 물론 설화이지만 이건 퉁구스 계옐 에벤키족은 곰을 모시고 있죠. 이들종족은 한국인과 비슷한게 많았고. 하지만 맥족이 고조선의 주류라기는 어렵고 보조적 집단 말갈에 가까운 퉁구스족이지만 예조과 통혼으로 중간자적 문화로 살아서 예족과 구분되었고 다시 그 구분이 애매해질정도로 되었을때 예맥족으로 불려진것 같다고 봅니다. 예족은 반농반목을한. 부여등에 가까웠고, 고구려 동명성왕일화에서 보듯 맥족을 차별했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이어 고구려 발해는 맥족중심이었고 말갈족은 반란이 없었던것은 동족의식이 있었다라고 보여지죠. 반대로 부여와 거란 선비족은 말이 통했을것으로 추론할수 있고 예맥족과 삼한족은 초기엔 말이 통하진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예맥족이 남하해서 고조선계열의 부족국가를 세우고 때문에 언어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에 거쳐 통하게 됬다라고 알수 있습니다.
또한 만주족의 후예들인 만족, 우리 민족인 조선족 사람들과 아이들이 그 때가 오면 자랑스럽게 독립을 하고 한족의 마수와 세뇌에서 벗어난 자기들의 나라를 온전히 세우고 조상들의 역사를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을 중국인(한족)과 구분하고 별개로 취급하는데 힘쓰고 그런 정서를 퍼트려야 합니다.
게다가 요동은 방어하기에 적합하지 않는 문제점도 있죠 평야다보니 방어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음 고구려도 평양으로 이전한게 아님 국내성이 고구려 영토에 중앙이라서 통치하기에 편했지만 방어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평양은 압록강이나 대동강에 이점이 있어서 3중에 수비라인을 구성하기 편했고 게다가 평양지대라서 인구를 부양하기에도 적합했기때문이죠
실제로 요동에 살던 고려인들도 많았고, 실제 북원이 주둔중인 요동성을 공격할때 고려인들도 도움을 줬다고합니다. 실제로 그 주변엔 고려인들이 살고 있었고, 한반도 세력이 강해지면 요동에서도 우호적인 세력이 생겨났음. 그래서 윤관이 북벌할때 우호적인 여진족장들 회식한다고 불러놓고 쳐죽인걸 비판하는거임. 그때문에 그 부족들이 친 여진파로 완전히 돌아섬.
만주 관련 역사에 대한 기본 사료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강의를 하니 전혀 알맹이 없는 허당이 되었습니다. 고려사에서 요즘 만주 관련하여 얼마나 치열한 논쟁이 있는지를 전혀 눈치체지 못 하고 있군요. 한국사를 진지하게 연구한 후 나름대로의 주관을 갖고 이런 강의를 했으면...
두선생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요동이라고 하는 개념은 요나라 이후에 형성된 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동의 요는 먼 동쪽이라는 뜻으로 중국의 영토에서 가장 동쪽 끝을 말하는 겁니다. 마사천 사기부터 요나라때 까지 모든 사료는 요동은 만리장성이 있고 갈석산이 있는 지역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동이전이나 후한서에 삼한이 사방 4천리 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당대에 쓰여진 사료에는 낙랑군은 요동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지 북한 평양에 있다는 사료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로 본다면 고대 요동과 현재의 요하 기준의 요동을 구분해서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jipark_2373 그렇게도 볼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료에는 요는 멀다는 뜻이다 그것이 멀리 구주의 동쪽에 있으므로 요동이라 이름 했는데 또한 요서를 아울러서 말한다 라고 기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물론 요수를 기준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견 잘 들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만리토성은 요동까지이고, 그게 현요동입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보시면 현요하 동쪽까지 만리토성이 있어요. 연진의 만리토성이 아니라 사마염의 진나라때 모용씨 때문에 현 갈석까지 장성을 쌓은 것과 혼동해서 요동을 잘못해석하면 안됩니다. 만리토성의 끝은 요동입니다. 사마염의장성은 갈석입니다. 갈석이 요동인게 아니라, 두 장성은 다릅니다
요즘 사람들이 단군께서 나라터를 잘못 잡아서 나라가 이렇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는데 이게 과연 맞는 말일까요. 단군은 홍산문화권 황하 이북 만주 서쪽 에 터를 잡으셨고 지금은 신라 고려 조선 의 한반도 대한민국은 한반도 반쪽인데 왜 단군을 욕하는 거죠 제가 잘못 아는 걸 수도 있으니 만약 시간 되시면 정확한 구분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전 인정이죠 근데 잘 생각하면은 약간 타이밍도 문제인게 A.D 1370년에 요동정벌을 가잖습니까? A.D 1368년에 명나라가 건국되니 고려는 아마 명나라가 갓 만들어진 나라니 기선제압의,목적도 있었을 거라 보이고 명나라 입장에선 고려가 자기들 건국하자 마자 요동을 공격하니 긴장할수 밖에....................... 근데 그 이전에 명나라가 먼저 시건방진 외교 서신을 보내기도 하죠 만약 잘 되었다면 계속 시도해서 요동을 차지할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결론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우리가 중국과 경쟁할만 하면 요동을 차지 하지 않고 중국을 도모할 수 없다고 하셨지만 바꿔 말하면 요동을 차지 하지 않고서 중국과 경쟁할만한 힘을 가질수도 없는거니까... 결국 민족성의 문제가 아닐지... 그렇게 가열차게 외세에 침략을 당해놓고 정작 본인들은 침략해 본적이 없는... 너무나 착해 빠져서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조금 손해 봐도 괜찮다는 참으로 순수한 민족성.. 물론 그것이 오늘날의 문화강국 코리아를 만든 원동력 이란걸 믿어 의심하지 않지만요..
요동의 가치는 군마수급에 있었죠. 원나라 시절 말 사육두수를 보면 요동 1지역에서 산출되는 말이 중국전체 말생산량을 능가했습니다. 그것도 몽골말이 아니라 꽤 중장비를 견딜만한 군마요.게다가 철광석이 굴러다닌다는 표현이 있을정도로 철생산기지라 먹으면 중국 한번 노려볼만한 각이 나오는 지역임. 지형상 방어하긴 불리하지만 공격베이스캠프 차리기엔 너무 좋은 땅
말 생산량, 소금의 생산량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지만 가늠은 가능하죠 고구려 당시 시라무렌강의 비려(키타이)을 정복한걸 시작으로 고구려가 급상승하며 강해지고 주변을 정복하며 빠르게 팽창하죠 광개토대왕릉비와 삼국사기등 사리에도 소금이 많이 나오고 말같은 갗 고을 기르기 좋았다 하니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그곳이 이익을 주는 땅인건 확실하죠 그리고 이 땅, 단순히 경제적 이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할때 지리의 이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거라 봅니다 지팡구가 청일 전쟁, 러일전쟁때 이곳에서 미친듯이 싸우고 그 이점이 향후 어떻게 지판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지 말 안해도 잘 알고................ 아니 모르시면 얼마든지 질의 하십시요 최대한 답해드리죠
해상무역로가 발달하기 이전 실크로드와 연결된 무역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만주를 포기한 것은 커다란 패착이었다. 그 당시는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꼭 확보했어야 될 만주영토였다고 생각한다.북방유목민을 오랑캐로 여기고 무역로가 막혀 대륙과 연결된 섬아닌 섬이되어 농업국가로 전락한 결과가 이씨 지배층의 장기적 안정에 도움줬을지 몰라도 나라 안에 돈이 씨가마르고 얼마 안되는 생산량을 중국에 꾸준히 상납하여 조선의 국운이 쪼그라드는 결정적 요인이었다.해상무역에 주도권을 내준 근세를 보면 주변국에 막혀 내륙 안에 갇혀서 백여년간 무역길이 차단된 소외국가를 보면 조선이 어떠 했을지 상상이 된다. 각종 산업이 고도화 되고 정보화된 시대에 아무런 변화 없이 정체된 내륙국가의 현재 모습들이 당시 경쟁에서 뒤쳐진 낙후한 조선의 처지와 별반 다를것이 없다고 생각한다.조선은 그런 세월을 6백년 이상을 보낸 것이다 미화하면 안된다.기와집이 즐비한 중국과 유럽고대도시는 조선의 초가집과 너무 대비된다.
한강유역은 생산량이 그리 좋지 못하였습니다. 하상계수가 너무 커서 농업에 불리하고 또한 서해 조수간만의 차이에 의한 영향으로 압구정까지 바닷물이 밀려와서 식수로도 사용하기 힘들었죠. 그래서 당시 마한의 중심지가 충남지역이었고 북쪽의 변방을 마한왕이 온조와 비류에게 할양해준거죠. 똥땅이니깐요. 변방에서 한군현이랑 말갈족 몸빵해준거죠. 게다가 시간이 훨씬 흐른 훗날 조선초기에도 경기도의 인구는 조선 8도의 10~15프로 수준이었습니다.
@@PrettyT-rex 풍납토성은 초기 백제가 북방 한군현이나 예족, 말갈족의 위협에 왕조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온 국가적 역량을 총 동원해서 지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뭐 잘 아시겠지만 한강유역은 범람원이 광범위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여름철에 특히 취약하여 이렇다할 만한 농산물을 수취하기 힘든 환경이죠. 게다가 용산유역 그 이상까지 바닷물이 밀려와서 농업용수로는 절대 쓸 수가 없습니다. 오직 수운을 이용한 물류와 대외 교역이 아주 좋아서 지리적 위치는 최상급인거죠. 그래서 조선왕조가 한강에서 살짝 벗어난 (하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삼각산 이남 평야지대에 도읍을 정하였고 부족한 식량자원은 삼남지방에서 거두어서 한강 수운을 통하여 마포를 지나 만초천을 이용하여 도성까지 운반했죠.
생각은 필요 없어요 실효지배하고 있는 나라의 것을 무슨 수로 가져 옵니까? 무력 밖에는 답이 없는데 전쟁하면 어떤 변수가 발생할 지 모릅니다.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한국을 치면 센카쿠 제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일본은 중국에게 같은 논리를 제공해 줄 뿐 입니다. 요동과 만주를 한국땅이라 생각하는 것에 뾰루퉁 해서 글 다신 모양이신데 잃어버린 옛 땅에 미련만 한가득이지 무리인거 압니다. 한반도라도 온전히 되돌려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죠. 적어도 고려말에는 애초에 명나라 위에 북원이 버티고 있었고 요동에는 원간섭기 이후 많은 고려인이 건너가서 살았고 고려왕계가 원 황실로부터 심양왕 책봉도 줄곧 받았던 지역이여서 고려의 지배력이 실질적으로 미칠 수 있던 땅이었는데요. 잘만 하면 요나라 물리쳐서 세력균형 유지했던 고려초처럼 북원이랑 어느정도 명나라 견제하면서 세력균형 유지할 수도 있었던 거고요.
그리고 조선말에도 청나라가 쇠약해지면서 간도로 이주하는 조선인이 상당했고. 지금도 조선족이 만주 전역에 걸쳐 살고 있잖아요. 북한만 없었으면 한국인들은 꾸준히 대륙으로 나가서 거주했을 거고요. 지금 북한으로 막혀있어서 그렇지 만주가 아예 넘볼 수 있는 땅이 아닌 건 아니죠. 한국인들은 계속해서 만주로 이주해서 살았던 게 역사인데요.
미국이 소극적이었다면 지금 패권국은 절대 안됐다. 영국과도 2차례싸우고, 카나다와 전쟁하고 중부지역을 프랑스에서 구매하고 정복하고, 텍사스공화국과 연맹하여 멕시코를 물리치고 서부까지 차지하고, 얼어붙은 쓸모없는 알라스카까지 구매하여 전세계 짬뽕민족을 통합하여 어느나라보다 잘운영하여 현재 패권국이 된거다. 내맘에들고 나같은 사람만 민족이라생각하면 전라도 따루 경상도 따루 서울 따루 쪼개져 북한이나 중국에 흡수될것이다. 조선족도 고려족도, 시베리아 브리얕족도 멀리 튀키에까지 형제국가 같은민족이라는데 왜 우리는 다른것만 찾아서 축소되는게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그들이 우리민족이 아닌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상황은 이해간다... 하지만 너무 분하다... 조선아... 정말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냐... 명나라가 당시 세계 최강국인 건 부정할수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발버둥이라도 쳐보거나 하다못해 외교적으로라도 어떻게 시도라도 할수있지 않았냐... 그저 명나라의 신하국을 자처해서 들어가는 것말곤 방법이 없었냔 말이다 조선아... ㅠㅠ 하... 우리 한민족의 잃어버린 옛 고토 땅 요동을 볼때마다 눈물만 나온다. 분명히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정복했던 영광스러운 땅인데 이제는 한반도에서도 남쪽에만 갇혀사는 한민족 신세라니 ㅠㅠ
만주를 우리가 차지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지역에 중국과 별개의 독립국가가 세워졌어야 했는데 아쉽다. 해방 후 김일성이 스탈린을 찾아가서 일본이 패망했으니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을 내가 다스릴테니 나에게 달라고 했다는데 스탈린은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소련군이 만주에 들어와 있어서 스탈린이 마음만 먹으면 지배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스탈린이 머리에 총 맞아서 김일성한테 주겠음? 자기가 가져가도 되는데. 그리고 다련항이 부동항이라서 소련한테는 제일 좋은 곳인데. 심지어 요동때문에 일본이랑 피터지게 싸워서 져서 제정러시아가 멸망한 요인까지 되고.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김일성이 아니라 김일성 할배가 와도 안 주지.
그리고 만주에 독립국가가 생겨도 운명은 어차피 몽골이랑 똑같음. 러시아나 중국의 위성국이 되겠지. 특히 중국이 가만히 둘리가 없음. 중국역사에서 항상 북방에서 남방을 통일해왔지 남방에서 북방으로의 통일은 2번정도 밖에 안됨. 하나는 명나라, 다른 하나는 중화민국임. 그외의 통일은 전부 북방에서 남방으로. 중국공산당이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요동을 그대로 둘리가 없음.
고려 서쪽국경은 요하라고 기록한 당시대의 1차사료인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의 기록과 세종대왕이 심혈을 기울여 편찬한 고려사의 지리지에 고려 동북 국경이 두만강 북쪽 700리 선춘령이라고 기록된 사실을 보면 강동6주는 압록강 남쪽에 있었다고 볼수 없죠.. 강동이 강남으로 바뀌게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한사군의 낙랑군은 중국 여러사료에 진나라 장성의 기점인 갈석산과 요수 사이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한사군은 한반도나 현재의 요하동쪽이 아니라 만리장성 산해관과 갈석산이 있는 진황도시에서 요하 서쪽에 위치했다고 보는것이 사료 기록에 부합됩니다.. (해당 사료의 요수는 현재의 요하가 아니며 중국사료에는 요수의 동쪽에 낙랑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요동이 아니란 것이죠.. 한나라때 요동은 당산시 또는 진황도시였습니다 )
한국이 만주로 진출할 수록 전선이 커지고 벌어지는 건 사실... 누가 봐도 대동강 원산만이 피차에게 가장 경제적인 전선.....그러나 거기에 안주하면 발전이 없음... 사실상 압록강,개마고원 국경까지 진출한 거임. 요동을 얻는 건, 또다른 돌출국경을 갖게 되는 것... 결국 만주전역을 평정할 능력이 있어야 확보되는 것임.
두선생 채널도 역사에 관한 한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역사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전혀 보이는 않는 매우 가벼운 터치...어릴 때 배운 내용을 그냥 외워서 되풀이 하는 정도의 수준을 보이니.. 우리 역사의 기원부터 시작해 모든 문제점을 좀 깊히 고민하고 그 문제를 풀려는 진중한 자세가 있었으면 좋을텐데요..
지리를 기본으로 한 역사 강의, 매번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시청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강의에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는 3나라가 같은 민족이라는 동족의식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즉, 3나라가 동족의식이 있었다면 서로 그렇게까지 싸울 일이 없었을 것이라 하신 부분이 아쉽습니다. 한가지 예를 든다면, 현재의 남북 분단이 100여년간이나 고착 되어가는 시점에 약 500년 후, 후손들이 지금의 남과 북이 한민족이 아니었다고 생각할까봐 무섭습니다. 서로 전쟁까지 하고 그 후에도 현재까지 약 70여년을 각자 정권을 유지하고 살고 있는데 후세들은 이 시기, 이와 같은 현상을 보고 지금의 세대들이 마치 삼국시대를 서로 전쟁을 했으니 민족의식이 없었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봅니다. 짧은 소견이지만, 민족의식이 없어서 싸운 것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싸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네요. 동의합니다. 같은 민족의식은 고려가 아니라 이미 고조선 삼한 시기에 있었다고 봅니다. 진한과 변한은 비슷하고 왜와는 구분하던 중국 기록을 봐도. 언어 복식 문화가 비슷한 이와 전혀 다른 이들 구분못할 리가요. 민족 개념은 근대에 생겼다는 개념은 유럽사에 적용되는 것이지 동아시아에 적용은 아닌것 같습니다. 중앙집권국가의 성립 시대도 엄청나게 차이나잖아요?
민족의식에 대해선 이미 오피셜로 대몽항쟁시기에 형성되었다고 알려져있구용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민족국가가 아님 백제의 경우 졸본부여 지배층에 의해 설립되었고, 한반도 중부에서 시작하여 한반도 남부의 마한 등 여러 소국들까지 먹으며 완성된거임 한 국가 내에서도 단일민족의식이 흐렸을건데 고구려 백제 신라가 뭘 공유한다는거?
@@freakinchicken 그리스의 아테네, 테네, 스파르타등이 같은 공동체가 전쟁을 해도 같은 그리스 역사이듯 고구려, 백제, 신라도 매한가지로 우리 역사인거죠 그 세나라의 공유점? 언어, 풍습이 비슷하고 국가가 달라 싸울뿐 공유점은 물론이거니와 되레 유사성이 없다는 점을 말하는게 더 어렵죠
실제로 역사란 것이 그렇다고 봅니다. 근대 유럽의 백인들이 선사와 고대시대의 역사를 백인우월주의로 이끌었고, 일본이 근대에 부유해 지니까 한국과 일본은 같았다 라고 왜곡했고, 중국이 한족중심의 역사관을 가졌다가 강대국이 되니까 동북아 대부분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하고 있고... 만약 동남아의 인도네시아가 패권국이 되면, "동아시아의 기원은 5만년 경 인도네시아와 주변에서 출발했으니 동북아시아의 모든 나라와 호주 그리고 남미대륙 모든 국가의 선사역사는 인도네시아의 역사다" 라고 할 수 있어요.
최영과 이성계가 요동을 확보하고 북원과 손잡았으면 또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았을까? 고려나 조선의 단독의 힘으로 요동을 유지하는 건 힘들었겠지만, 북원이라는 협력자가 있으면 얘기가 다른 데..... 요동을 제대로 틀어막으면 만주는 따라오게 되어 있음. 오히려 여진은 요동으로 중국과 열려있기엔 중국의 이이제이로 조선과 싸울 여력이 생기는 것임. 4군6진 개척같은 실속없이 결과적으로 힘만 빼버리는 일들이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것임.
지리적으로 보면 당연한결과... 쌀농사로 먹고사는 한민족인데...사실 한반도 최남단이라도 중국이랑 비교하면 쌀농사 북방한계선에 걸릴정도... 지금이야 영토한점이라도 소중하자고 보지...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조선시대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봐보면 유목하고 살것도 아니고 벼농사도 제대로 안되는 저 척박한땅 뭔 그리 소중했겠냐...
정말 좋은 내용이고 지리와 역사를 조합한 지오폴리틱스의 해석관점은 너무 곱씹을게 많습니다. 지정학을 잠시마나 전공했던 입장에서 너무 반가운 내용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때의 만주와 지금의 만주는 다르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지금 발해만과 만주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걸 만주국시절의 일본이 알았다면 아마 그들은 무모한 대미도발을 재고했을것이 틀림없듯이. 무엇보다 여유당전서의 요동론을 인용허신 대목은 절로 무릅을 치게 만드시네요. 다만 한가지 보충제안을 한다면 발해라는 표현은 과연 250년간 존속한 그들 스스로의 이름일까요? 엄연히 일본사에서도 그들사신은 아고려국이라는 표현을 국서에서 쓰고 있음이 명확합니다. 따라서 그들을 발해가 아닌 중대 고려 혹은 대씨 고려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터키를 튀르키에라고 부르고 버마대신 미얀마라도 하듯이 대조영이 세운 나라는 초대 구려 혹은 고구려(고씨 고려 혹은 해씨 고려)를 잇는 중대 고려 혹은 대씨고려 아닐지? 우리가 코리아라 불리는 이유도 최소 8백년서 최대 천년이 넘는 상대 고려(고구려) 250여년의 중대 대씨 고려,그리고 475년의 하대 왕씨 고려이기 때문이죠. 비록 자체역사기록을 하나도 남기지 못했으나 이후로도 200년이상 부흥의 시도가 있었을만큼 유서깊은 저력과 뿌리가 있었습니다. 역사의 파편만 봐도 그들은 스스로를 고려라 불렀지 발해라는 중화적 표기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우리가 그들을 아직도 발해라고 불러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역사와 흔적도 분명 코리아라는 명칭의 관점에서 우리것이니까요.
신라의 삼국통일이 한강을 얻게 됐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외세를 끌여들여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고 난 후의 결과론적 해석이고,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신라 보다는 더 큰 지정학적 의미가 있었겠죠. 그래서 전 우리 한민족의 가장 큰 역적으로 김춘추를 꼽습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만든 학설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우고 있으니. 인하 대학교에서 조선 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 해제하는 사업을 교육부의 국고 지원으로 했죠. 그런데 다시 교육부에서 출판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역사학계 단체에서 필사적으로 출간 못하게 막고 있는 겁니다. 일본인들이 편찬한 조선사와 우리가 현재 배우는 교과서 내용이 일부분 빼고 거의 같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소극적이었다면 지금 패권국은 절대 안됐다. 영국과도 2차례싸우고, 카나다와 전쟁하고 중부지역을 프랑스에서 구매하고 정복하고, 텍사스공화국과 연맹하여 멕시코를 물리치고 서부까지 차지하고, 얼어붙은 쓸모없는 알라스카까지 구매하여 전세계 짬뽕민족을 통합하여 어느나라보다 잘운영하여 현재 패권국이 된거다. 내맘에들고 나같은 사람만 민족이라생각하면 전라도 따루 경상도 따루 서울 따루 쪼개져 북한이나 중국에 흡수될것이다. 조선족도 고려족도, 시베리아 브리얕족도 멀리 튀키에까지 형제국가 같은민족이라는데 왜 우리는 다른것만 찾아서 축소되는게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그들이 우리민족이 아닌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Koreans are really funny. History has stolen China culture into Korean culture. Korea was a dependency of China in ancient times, a Japanese colony in modern times and a trophy of the United States in modern times.😅
또 요동을 차지 했다면. 엄청난 비용을 지불했어야 할것입니다 중국도 한족의 중국은 누구도 요통을 얻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땅은 거친 수많은 민족이 사는 땅입니다. 어떻게 지켜요? 쥐뿔도 없는 땅을 가지고 있어서 뭐에 쓸까요? 여진 거란 쌀대주다가 판납니다. 그리하여 중국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중국입장에서는 늘 자신을 쳐들어오는 만주의 이민족의 배후에 한반도가 있어 견제하는 것이 가장 싼 비용이 드는 정책입니다. 한반도 역시 중국과 편을 먹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이득이지요. 어차피 중국과 육로는 이어지지 않으니.. 중국과 한반도가 공동으로 북방 민족을 견제하면서 산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중국과 별개로 살아올수 있었던 이유에요.
영토라는 지리적관점만 바라보고 그시대의 국가들을 평가해선 안됩니다. 그땅에서 생산되는 생산력이 뒷받침되어야 국가가 강해지는것이죠. 고구려가 광활한 국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신라와백제에 비해 단위면적당 생산성은 낮았을것이다. 요동을 지배하는경우와 포기하는 선택 중에서 지금의 관점에서 평가하지 않고, 당시의 관점에 대해서도 설명해주니 좋았네요. 만약 그시절 명나라와 전쟁한번 해야한다는 각오를 한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고려해야 했겠는가..
이미 고구려는 중원의 거대 중앙집권 국가인 수나라와 싸우고 국력이 쇄하고 소극적 대외정책으로 전환한 상태라 버텼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중원 통일국가가 나왔을때 무너졌을거라 생각함 애초에 한반도 의 지리적 태생적 한계가 팽창하기에 좋은 곳은 아님 일본이나 영국같이 지키는데 용이한것도 아니고 위아래로 막아야하는 입장에서 생산력도 작고
요동 상실의 가장 큰 문제는 요동 그 자체보다도 그 뒤의 서북한을 전혀 써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데 있죠. 한반도의 몇 안 되는 귀중한 경제거점이 무려 3세기 간이나 방기되었고 그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전란에 휩쓸려 개발되지 못했으니까요
몇년전 11월에 대련에서 단동까지 승용차로 가본적이 있습니다. 고속도로로 3시간 정도 거리인데 대련은 따뜻한데 단동은 도로가 얼어있었습니다. 요동땅의 위도를 보면 평양이랑 비슷해서 따뜻합니다. 즉 농사가 가능했다는 것이죠. 이에 비해 압록강 하구로 가면 이미 농사짓기 어려운 추운곳이라는점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농경시대에 농사짓기 좋은 요동반도 빼고나면 중국왕조든 고려/조선 이든 굳이 가져도 별 도움이 안된다 생각했을거라 생각됩니다.
요동반도보다 요동대평야의 수확량이 훨 많은데요. 그리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쭈욱 요동반도는 주요 농산지가 아니였습니다. 그 원인은 산이 너무 많아서죠.
요동 위도가 평양과 비슷????
고구려시기나 근대이전의 만주와 요동은 지금과 기후와 기온이 다릅니다
지금의 기후가 그때의 기후가 아닙니다
농사짓기 쉽지않았다고 알고있습니다
농사지을수있는지역은 한정적이고 한반도북부에 비해 군사적으로 방어하기에 넓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대륙에비해 우리민족의 국가들은 인구가 적었으니까요
지금 평균기온은 중세온난기랑 비슷한 수준이라 조선시대때는 훨씬 추웠을 겁니다.
인류 시원은 한반도다? 왜 우리말 갓을 ㅡ 다음 검색
중국역사는 1912년 중화민국부터 시작.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신라가 전세계를 통일.
전세계가 고려 ..조선
1930년대 까지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1편에 이어 너무 좋은 내용이네요 👍🏻👍🏻
감사합니다🙌
나는 조선의 역사, 고조선의 역사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크게 외곡 된 역사라고 생각 합니다.
신채호 선생님께서 주장하는 역사가 우리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의 역사며, 통일 신라 이후 왕건이가 세운 고려의 역사에도 상당히 큰 역사 외곡이 있었다고 본다.
물론 강화도 조약 이후의 역사는 일본인들에 의한 역사 외곡을 전문적으로 외곡한 것이 분명하다. 요동 땅과 간도 땅, 그리고 연해주 땅도 조선의 영토가 분명한데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1930년 일본이 만주 국 건국과 함께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이 혼제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성 국인 미국, 영국, 소련의 일방적인 국경 으로 지금의 한반도 역사는 크게 외곡 된 역사다.
요동에 대해서 정약용 선생이 틀린것은 조선초 요동을 차지했다면 조선은 굳이 명의 해금정책에 따를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일본처럼 대외무역을 했더라면 조선은 더 풍요로웠을 거고, 요동 방어에 들어 가는 비용도 충분히 충당 가능했을 것입니다. 또 요동과 그 주변을 통치하면서 인구수도 더 많이 늘어서 요동을 방어하는 일에 동원 군사가 더 많아 충분 했을겁니다. 그리고, 요동을 차지했다면 자원과 특히 군마의 수급으로 조선군이 수성전 외에도 조선이 많이 부족했던 기병대를 많이 깆추고, 명이나 여진족에 대해서 군사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능력과 군사력을 유지 했을 겁니다.
위화도 회군떄 정벌하려 했던 요동은 현재 북경지역입니다. 위화도는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구요 ㅎㅎㅎ
한국사는 통일신라, 후삼국, 고려, 조선초기 시기에 납득가지 않는 내용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 지도가 엉터리라는 소리죠.
몇가지 예로 들어볼까요?
1. 생각 해 보세요. 콩딱지만한 고려영토에서 얼마되지도 않는 인구로 몽골, 거란의 수십만 병력이 수시로 쳐들어오는데 어떻게 막아냈겠습니까?
2. 조선에서 명나라로 조공으로도 보내고 팔기도 하고 지원도 보내는 등 말을 수만필을 보냈습니다. 한반도 안쪽의 조선에서 말을 어디서 키웁니까? ㅎㅎ 한반도 내에서 사용하던 말은 군용으로 사용이 힘든 조랑말이었습니다. 명나라에 군용으로 보내는 말은 만주지역의 말이죠. 조선에서 군용으로 사용되던 것도 그 말이었습니다.
3. 교과서에서 봤던 강동6주를 생각 해 보시죠. 서희의 외교담판... ㅎㅎ 강의 동쪽 6개 주입니다. 지도에 나오는 그거 맞다고 봅니까?
4. 고려의 천리장성이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서 있는데 맞아요? ㅎㅎㅎ 장성이 있었다면 구글어스로 보면 뭔가 흔적은 나와야하는데 보입니까? 그 산꼭대기에 장성을 짓는다구요 맞아요?
몽골시대에도 요동성은 고려인이 요양왕으로 있기도 할 만큼 요동의 통제력은 고려인이 높긴했죠
이성계의 요동성 원정떄의 기록만 봐도, 요동에 고구려 발해 계통 민족성을 띈 백성도 많았죠.
고려가 건국하고, 평양이남부터 시작해서, 야금야금 올라가서, 조선 세종때 4군6진 개척으로 지금의 한반도 형세를 이루었죠.
고려 건국당시의 영토보다 50%나 넒힌 영토죠. 개마고원이라는 엄청난 산맥을 넘어 진을 구축하고 지키는 쉬운문제가 아니죠. 조조가 한중을 얻고도 계륵이라고 한 이유가, 진령산맥 넘어에 있는 한중분지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었죠.
세종 이후 세조시대에 강력한 군사력 (조선사 마지막 군사력 불꽃)을 태웠으나, 정벌군으로 활용한적은 없죠.
그 이후 어영부영있다가, 임진왜란을 격고 후금(청이) 중국을 장악하자, 조선의 북벌은 이루어질 기회 조차 소멸되버립니다.
세종이후에, 중국이 분열되있었어야 기회라도있었겠죠. ㅠ
마지막 불꽃은 인조시절이 아닌가 싶네요. 이괄의 동북면군이 임진왜란에서 단련된 병사로 키워진 군대다 보니 당시에는 무력이 엄청 강했다고 봅니다. 이괄의 난만 없어도 여진족은 국경에서 애를 먹었을것이고 삼전도의 굴욕도 없었겠죠.
백두산 화산폭발 이후 쏟아져나온 용암으로 개마고원의 해발고도가 더 높아졌다는 연구도 있네요. 그래서 고구려-발해 시대보다 한반도와 만주 간 교통이 원활하지 않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더라고요.
그죠 홀골산성을 지키던 이오르테무르, 즉 이형원도 고려사람이고 이성계의 휘하 장수가 되기도 하죠
고려시대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서 저 요동땅은 아직도 많은 고려사람이 살고 있다 하니까요
표해록에 그 재밌는 내용이 있죠
@@물멍-d8b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부여,고구려,옥저,동예가 개마고원을 가운데 두고도 한 묶음으로 묶이는데 반해, 동북쪽 숙신읍루말갈은 부여에서 1000리이고 그 길이 험하여 수레와 말이 다니지 못하여 60일이 걸렸다는 기록이 잇습니다. 그래서 우리민족과 퉁구스계 숙신읍루말갈여진이 끝내 통합되지 못하고 다른 길로 간 듯합니다. 우리민족과 말갈이 함께 한 지붕 아래 있었던 고구려 후기와 발해 때도 결론적으로 오롯이 하나가 되지 못 했죠.
@@물멍-d8b 샛길이 얼마나 많은데
08:02 한민족의 영역이 한반도로 축소된 건 아닙니다. 한민국 국가의 국경이 한반도로 축소된 것이죠.
현재 해외동포들이 있듯이 요동과 만주에는 기원전부터 고려조선시대 구한말과 현재까지 줄곧 해외동포들이 있었습니다.
(서양의 짧은 역사 개념인 nationalism 국가=민족이 아닌 언어가 통하고 핏줄이 같았던 동양의 한자 그대로 민족民族)
기원전4세기 고조선이 요동을 잃은 뒤에도 요동에 연나라 지배받는 조선인이 많이 살았고
기원전2세기 고조선이 멸망해도 한사군의 인구 중 80%가 조선예맥인이었고
고구려,발해가 망한 뒤에도 요동,만주에 남은 유민들이 있었고, 발해 유민들은 200년간 부흥운동 간헐적으로 했고,
고려시대에는 고구려발해유민 + 몽골간섭기 몽골과 고려 교류로 요동에 고려인 늘어나 심양왕을 고려왕이나 고려왕족이 맡았습니다.
조선전기에도 압록강 국경넘어 명나라 직할령 요동가는 길에 조선인 마을이 줄지어 있었고
조선후기 청나라가 만주를 비운 뒤에는 조선인이 더 늘어나서 익히 널리 알려진 두만강 넘어 동간도&북간도(연변) 뿐만 아니라}
압록강 넘어 서간도에도 조선, 대한제국이 관리를 파견하여 조선사람들을 관리하려습니다.
조선후기 압록강 넘어에 수십개 면을 설치하기도 하고, 대한제국이 연변지방에는 관청까지 두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외교권을 앗은 뒤에 청나라에게 간도를 넘겨버려 그곳 조선사람들이 재중동포가 되어 현재에 이르렀죠.
남만주 연변 인구의 80%이 조선사람이었습니다. 조선후기~대한제국기 구한말~일제시대 내내요.
국경이 있어도 만주의 동포, 한반도 사람들이 교류를 할 수 있었는데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 세계사적으로도 아주 극단적으로 유례없는 통행 교류 전화 금지, 완전한 분리를 당하고 잇는 것이 우리민족의 현실입니다. 북한은 독재의 압제 아래 시들어가고, 재중동포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온 민족정체성,문화,언어를 중공의 억압세뇌속에 젊은 재중동포 세대들이 정체성을 잃어가며 남한 젊은세대들의 혐오대상이 되어버리고, 남한은 경제적 발전과 시민의 힘으로 이룬 민주화를 이룩하였으나 극단적인 자본주의,물질주의로 스스로 소멸해가고 있습니다. 분단의 장기화로 영구분단 이야기도 나오고 이렇게 외세에 의해 갈가리 찢기운 민족이 소멸하고 나면 중공,일본,미국만 이 땅을 차지하고 노를 젓겠지요. 역사적으로 내내 우리민족 우리땅을 침탈했던 외세에 의해... 수천년 우리민족이 이렇게...
제 말이 이겁니다 지금 제야 사학계 플러스 판타지 환단고기 이야기는 접어 두더라도 만주 일대는 고조선 이후로 수천년간 한민족이 살아오던 터전 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 사람들이 싹 사라질 수 없는 일이고 계속 그 땅에서 우리 조상들은 살아왔다는건데 이제 그런 기록과 민족성 자체가 없어져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mmoon4699 환단고기 들먹이지 마시구요 그건 어차피 상고사 관련 역사책이니까요. 삼국사, 고려사, 및 관련 중국사서만 봐도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초까지 현대 요동지역, 만주지역은 우리 영토였습니다.
재중동포같은 소리하네 ㅋㅋㅋ 걔네들 그냥 중국인이에요. 조나단같은 애들이 우리 한국인이고 ㅋㅋㅋㅋ
@@mmoon4699수천년 살아왔다고 보기가 민망하지 않냐?
중국역사서를 통해서만 확인 가능했던 부여, 유목민이었던 고구려, 발해까지 다 합쳐도 만주지역 먹은거 몇백년 밖에 되지 않는데
원나라를 중국역사라 안치더라도 한,당,요,금,청 생각하면 중국이 만주 먹은 기간이 더 길고 현재도 중국 땅인데 그냥 행복회로 돌리는거랑 무슨 차이임?
@@빅토르망치-e7z 통일신라 한반도 거의 절반이 당한테 넘어가 버렸는데 만주 지역 먹었다고?
고려시대는 요나라 금나라에 대동강 이남으로 밀렸났고 나중에 몽골 원나라가 거기 다 먹었는데 무슨 소리 하는거임???
요를 중심으로
서와 동을 나눈게 요서.요동인대!!
즉 고대의 "요"가 어디인지 가장 오래전..지명과 기록을 찾는게 가장 중요하다.. 또한 그리 따지면 하나의 통일된 민족을 어디도 따질수 없는거다
덕분에 냉철한 현실역사를 듣게된것 같아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정약용 선생의 견해는 냉철하심에 더욱 존경스럽네요 근데 줜장 의상이 주방장 복장이라 궁금하네요 혹시 쉐프? ^^
'역사 한 그릇', '지도 한 그릇' 맛있게 대접해드리고자...ㅋㅋㅋ 자세한 내용은 채널 커뮤니티에 주저리주저리 써놨습니다:)
단군의 땅이었지만 고구려발해를 거쳐 한반도로 쫓겨난거죠..
고조선 초기 중심지는 요서 조양시 일대
무슨꿈꾸세여. 고려시대도 만주는 우리땅이었고
고려는 한반도 만주 중국동부지역을 장악한 국가입니다.
고려가 중국통일전쟁 시작하다가
이성계가 주원장의 밀약 그리고
이성계의 통수로 고려가 멸망하고
한반도에 이씨조선이 세워져서 영토가 축소된겁니다.
그래서 넓은 고려땅에서 좁은 한반도 변방 깡촌으로 내려오니
말이 안통해서 말 통하게 할려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거잖아요
이영반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한 이유도 모르고있나보네
그럴 가능성은 없음
만주족은 한반도에 올 기회가 많이 있었음에도
절대 오지 않았음
생활을 하기에 만주가 한반도 보다 좋았기 때문에
그냥 나라가 망하면 대다수의 국민은 그 위치에
그대로 살았을 것 임
@@하늘의말나말여초 때는 한반도까지 들어와서 살았어요. 예맥계통은 고조선이 한반도로 밀려날 때, 고구려가 망할 때, 발해가 망할 때 한반도로 쏟아져들어왔고 만주족을 배척해서 못들어온거임.이 시기에 소빙하기 때문에 만주에서 농사짓고 척박해진 거+백두산폭발 때문에 떼거지로 한반도로 발해인이 들어온 건 고려사에 기록되어있음 대략 고려조정에서 파악한 꽤 큰 규모만 500여회임 고려 중기만해도 갈라전 여진족은 고려땅에 들어와서 살고 싶어했음.고려가 못들어오게 한거지 ㅇㅇ
인류 시원은 한반도다? 왜 우리말 갓을 ㅡ 다음 검색
중국역사는 1912년 중화민국부터 시작.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신라가 전세계를 통일.
전세계가 고려 ..조선
1930년대 까지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요동을 잃어버린 탓에 우리는 평생 벗어날수 없는 약소국의 숙명을 살게 되었음.뭐 그 때 요동
포기안했으면 명나라에게 먹혔다고들 하는데
그 덕에 청나라의 완전히 수탈당하고 일본에게 나라가 멸망한건 생각도 안하나봄
정작 명나라도 그런 요동을 완전히 실효지배한것도 아니었고 고려가
요동을 차지한다고 해도 명나라에게 위협이 안되었기에 적극적으로 고려와 공세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는거.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도 강대국이 되는 수밖에 없음.지금 미국도 언제까지 우리를 지켜줄지 모를일임
그 위화도 회군 때 고려는 이인임, 임견미, 염흥방 등 권문세족들이 나라 다 말아먹고 파탄내는 바람에
요동을 칠 여력이 없어져 버렸죠..
공민왕 죽고 나서도 우왕, 이인임, 임견미, 염흥방 등이 나라 말아먹지 않고 착실하게 국력을 키우고 쌓아놨더라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무릎을 탁! 치는 명언이네요
요동을 포가 안했으면 명나라라 전쟁인 뭐네 하면서 떠들면서
그덕에 약소국이 되고 청나라에 머리를 조아리고 지팡구에게 망국이 되는건 말도 안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명나라는 요동을 실효지배했는데요?? 애초에 기반 지식이 틀리니 그 위에서 상상하는 것도 모두 논리적으로 무너지네요
@@PrettyT-rex
....................?
명나라가 요동을 실효지배?
거기 주르첸을 제대로 제압도 못해서 벼슬주고 위탁통치하는 명나라가?
이만주가, 누르하치가 있는 요동을 명나라가 실효지배?
혹시 표해록이란 책을 읽어보셨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체 왜 하나같이 상대방의 논리가 기본지식이 틀려먹었네, 못 배웠네 하면서
정작 본인들이 제대로 된 참된 지식을 가졌다 지적하는 양반들은 뭐가 문제길래 이리 꼴깝인지.................
그 주장이 근거가 있고 납득이 되면 또 몰라
하나같이 얼토당토 없는 헛소리나 제끼니........................
예족은 중국과 교류가 잦던 아무르계 종족이고 맥족은 말갈족 퉁구스와 가깝던 종족으로 추론하고 있습니다.
예족이 호랑이, 맥족이 곰이라는 추론이 있는걸로 아는데 물론 설화이지만
이건 퉁구스 계옐 에벤키족은 곰을 모시고 있죠. 이들종족은 한국인과 비슷한게 많았고. 하지만 맥족이 고조선의 주류라기는 어렵고 보조적 집단 말갈에 가까운 퉁구스족이지만 예조과 통혼으로 중간자적 문화로 살아서 예족과 구분되었고 다시 그 구분이 애매해질정도로 되었을때 예맥족으로 불려진것 같다고 봅니다.
예족은 반농반목을한. 부여등에 가까웠고, 고구려 동명성왕일화에서 보듯 맥족을 차별했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이어 고구려 발해는 맥족중심이었고 말갈족은 반란이 없었던것은 동족의식이 있었다라고 보여지죠.
반대로 부여와 거란 선비족은 말이 통했을것으로 추론할수 있고
예맥족과 삼한족은 초기엔 말이 통하진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예맥족이 남하해서 고조선계열의 부족국가를 세우고 때문에 언어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에 거쳐 통하게 됬다라고 알수 있습니다.
신라가 통일을 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고구려가 통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기대감을 사람들이 갖고 있습니다. 이런 기대감에 대해서 영상을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디서 얼핏 본거같은데 만주나 북중국에 9세기 전에는 좀 더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았다고 하는 걸 어디서 본거 같은데 잘못된 정보일까요? 어디서 본지는 기억이 안나요
9000~5000년 전 지금보다 기온이 2~3도가량 높은 ‘홀로세 기후 최적기’가 존재했다. 라고 검색되네요..
단군조선이 건국되던 시기라서 그때는 요동지역의 기후가 지금보다도 더 사람이 살기 좋았었을 것 같아요.
그러들 아닌들 만주가 겨울에 ㅈㄴ추운 건 똑같음
너무 좋은 지론이네요~많이 배웠습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중국이 내분으로 갈라질때가 기회가 될수 있으니 우리는 늘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어야한다.
또한 만주족의 후예들인 만족, 우리 민족인 조선족 사람들과 아이들이 그 때가 오면 자랑스럽게 독립을 하고 한족의 마수와 세뇌에서 벗어난 자기들의 나라를 온전히 세우고 조상들의 역사를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을 중국인(한족)과 구분하고 별개로 취급하는데 힘쓰고 그런 정서를 퍼트려야 합니다.
한반도 통일도 MG세대 관심도 없는데 북한 뒤여넘어 요동?!ㅋㅋㅋ
@@czh9528 mz에요 할아버지 새마을금고 가시게여?
순리적으론 그렇죠
고구려 발해 멸망후 1500년동안 한번도 얻지 못했는데 이제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듯
게다가 요동은 방어하기에 적합하지 않는 문제점도 있죠 평야다보니 방어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음
고구려도 평양으로 이전한게 아님 국내성이 고구려 영토에 중앙이라서 통치하기에 편했지만
방어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평양은 압록강이나 대동강에 이점이 있어서 3중에 수비라인을 구성하기 편했고
게다가 평양지대라서 인구를 부양하기에도 적합했기때문이죠
요동 수복이라는 표현이 있는걸보면 확실히 요동에 영향력을 끼쳤던거같네요
만주는 잊고 남북통일하면 한반도나 잘 지킵시다.
@@bongoo2577 과거에 그랬다는건데 왜이럴까? 왜 남한이 한반도수복하고 중국공격할까봐 그러니?지금 남한역량으로 북한전체 수복가능할까말까인데 ㅋ 혹시 중국쪽 사람? Ni shi zhongguoren ma?
실제로 요동에 살던 고려인들도 많았고, 실제 북원이 주둔중인 요동성을 공격할때 고려인들도 도움을 줬다고합니다. 실제로 그 주변엔 고려인들이 살고 있었고, 한반도 세력이 강해지면 요동에서도 우호적인 세력이 생겨났음. 그래서 윤관이 북벌할때 우호적인 여진족장들 회식한다고 불러놓고 쳐죽인걸 비판하는거임. 그때문에 그 부족들이 친 여진파로 완전히 돌아섬.
요동친다
남북한 통일후에 좀더 강대국이 되어서 만주를 수복 하는것이 순서 라고봄 ❤
고구려 멸망 후 신라인들은 一統三韓이라고 자랑스러워 했슴.
고구려 백제 신라는 삼한이라는 동족의식이 있었슴.
광개토대왕이 臣民이라고 한 신라 백제는 같은 민족이라고 인정한 거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통신사 파견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동은 회복되어야 한다
북괴가 점령한 한반도북쪽부터~
지금 내전이 정전이 된지도 칠십년이 지났고 겅제력도 비교할 수 없이 커졌는 데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철수에 온 나라가 들썩하는 것을 보면 옛날에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는 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요동과 요서의 기준은 태행산백
찿아야 한다. 꼭!
만주 관련 역사에 대한 기본 사료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강의를 하니 전혀 알맹이 없는 허당이 되었습니다. 고려사에서 요즘 만주 관련하여 얼마나 치열한 논쟁이 있는지를 전혀 눈치체지 못 하고 있군요. 한국사를 진지하게 연구한 후 나름대로의 주관을 갖고 이런 강의를 했으면...
대체 이런거에 좋아요 박는 것들은 그냥 틀딱들이 영상 반박은 못하겠고 추하게 추천이나 누르고 튀는거임?
요즘 치열한 논쟁하는건 사료를 이상하게 해석하는 대륙빠돌이들이나 하는거고 ㅋㅋㅋㅋㅋㅋ
한국사를 진지하게 연구한 영상 소개부탁드립니다. 그게 이 영상보다 못하다고 설명 드릴수 있을거 같아서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뭐임? 설명도 적당히 상식선에서 했는데? 그리고 님 말대로 치열한 논쟁이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거임? 말만 하는 건 나도 하겠다.
고려 강역 지도 다시 공부하시오. 서경은 어느 도읍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는 도시? 개경? 식민사관 추종 두선생
이상한 영상으로 역사공부하니 대륙썰이나 빨죸ㅋㅋㅋ
@@PrettyT-rex삼국사기 고려사 보기는 했니? 공부도 안한 새끼가 별 개소리 다하네??? ㅋㅋㅋㅋㅋ
영상 잘 보고 갑니다.
만주는 드넓고, 관리하기는 빡세고, 이민족이 들끓고, 지역마다 환경이 뚜렷해서 오롯이 농사를 지을땅은 한정되있고, 그외땅은 목축이나, 약탈, 사냥, 반농-반목을 해야하거나 끝없는 황야만 존재하거나였음.
그러니 관리하기엔 버겁고 다스리기엔 벅찬 곳임. 발해가 대단하고 고구려가 존경스러운 이유.
고려도 공민왕때 요동정벌은 단행했지만 말그대로 정벌에그쳤고
만주땅 전역을 행정구역화 하진 않았음.
행정구역화하면 혈세가 들어가고 이주민이 발생하며, 안정기에 들어갈때까지 시간과 크고작은 소란이 생길수밖에 없기에 공민왕 조차도 행정구역화 하진않았음.
요동도 계륵이고 대마도도 계륵이고...에라이 ㅜㅜ
옛날이나 계릭이고, 과학기술이 발전된 요즘은 땡 잡은거죠. 우리가 가지면 개발은 알아서 잘하고, 방어도 지금 휴전선도 하는데, 그쯤이야죠.
나약한 삼치 문약 조선과 대한민국의 특징이죠
본인들이 힘이 없고 이익을 얻지 못한걸 애써 무마할려고 정신 승리하는 마법의 주문
계륵이라 그랬다, 어차피 손해다
변명만 일삼죠
고구려, 백제, 심지어 신라, 발해, 최소한 고려라면 이런 변명질만 일삼지는 않을걸요
그 당시에도 곡물과 철광이 풍부한 요충지였는데ㄷㄷ
요동은 스타맵으로 치면 중앙멀티와 같음. 맛있어보이지? 대신 지키기 빡셈. 인근 유목민족들도 중화세력도 요동두고 으르렁거리는데 그거 차지할라면 중원도 묵사발 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가능
@@펨코유저요충지라 사방에서 달려드는 애들을 다패야함 그러다 한번이라도 말리면 발해되는거
고려 성종이 요성을 방문한 기사는 뭐라 설명을??? 아직.미혹한 부분도 있습니다...
두선생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요동이라고 하는 개념은 요나라 이후에 형성된 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동의 요는 먼 동쪽이라는 뜻으로 중국의 영토에서 가장 동쪽 끝을 말하는 겁니다. 마사천 사기부터 요나라때 까지 모든 사료는 요동은 만리장성이 있고 갈석산이 있는 지역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동이전이나 후한서에 삼한이 사방 4천리 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당대에 쓰여진 사료에는 낙랑군은 요동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지 북한 평양에 있다는 사료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로 본다면 고대 요동과 현재의 요하 기준의 요동을 구분해서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요서는 먼 서쪽이란 뜻인가요... 그렇지 않죠.. 고대 요동과 요서는 요수를 중심으로 나타낸 용어입니다.. 먼 동쪽이란 뜻이 아닙니다
@@jipark_2373 그렇게도 볼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료에는 요는 멀다는 뜻이다 그것이 멀리 구주의 동쪽에 있으므로 요동이라 이름 했는데 또한 요서를 아울러서 말한다 라고 기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물론 요수를 기준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견 잘 들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만리토성은 요동까지이고, 그게 현요동입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보시면 현요하 동쪽까지 만리토성이 있어요.
연진의 만리토성이 아니라 사마염의 진나라때 모용씨 때문에 현 갈석까지 장성을 쌓은 것과 혼동해서 요동을 잘못해석하면 안됩니다.
만리토성의 끝은 요동입니다.
사마염의장성은 갈석입니다.
갈석이 요동인게 아니라, 두 장성은 다릅니다
@@TV-DOCJON 애는 임나일본부 그대로 임나 지명 사실이지만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하는 황당한 논리 여기서도 똑같이 말하네. 사기 몽염열전에 만리장성은 임조에서 요동까지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고 산해경이나 수경주에는 임조에서 갈석까지 장성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TV-DOCJON 진시황이 연나라를 무너트리고 쌓은 장성 끝이 갈석까지인데 무슨 사마염의 장성이 현재의 요하까지 있다고 말하고 있어.
왜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처럼 고구려의 박작성을 호산산성이라고 주장 하고 싶은 것이냐?
요즘 사람들이 단군께서 나라터를 잘못 잡아서 나라가 이렇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는데
이게 과연 맞는 말일까요.
단군은 홍산문화권 황하 이북 만주 서쪽 에 터를 잡으셨고
지금은 신라 고려 조선 의 한반도
대한민국은 한반도 반쪽인데
왜 단군을 욕하는 거죠
제가 잘못 아는 걸 수도 있으니
만약 시간 되시면 정확한 구분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그놈에 신화를 왜 자꾸 정사로 보는지 볼려하는지 모르겟네요 ㅋㅋ
@@Bee-xs8jn어디까지 안나와야 신화임? 기록이 한두개가 아닌데
요동이 아니라 한반도 통일도 어렵지 북한과 사이가좋아 통일은 고사하고 왕래가 자유로와도 중국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는다는거
만주에 2개 사단이나 괜히 놓은거 아니다.
정말 좋은 내용 잘 듣고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방대한 분량 중요한 내용만 잘 학습할 수 있어 좋습니다^^
요동 요서 요가 정확히 무엇을뜻하고 어디를 뜻하고 지역명의 이동경로 또한 알고 역사를 말합시다
원명교체기 떄의 요동수복 실패는 정말 아쉬울뿐 ... ㅜㅜ 군량창고 불만 안났어도...
근데 불이 안나도 어차피 지켜내지도 못함. 당시 명나라 군대가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왔고 그걸 막을 방법이 없었음.
그 당시 고려의 국내상황으로 보면 명나라랑 전쟁 터지면 먼저 고려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게 됨.
@@섬나라에게대륙국가의
꼭 그렇지도 않죠
당시 주원장의 속내도 똥줄이 바싹 타고 있을 때니까요
만약 고려(조선)이 20만 정예로 요동 공격하면 그땐 어떻게 방어 하냐며 대책 회의하는 놈들이라
그전 인정이죠
근데 잘 생각하면은 약간 타이밍도 문제인게
A.D 1370년에 요동정벌을 가잖습니까?
A.D 1368년에 명나라가 건국되니
고려는 아마 명나라가 갓 만들어진 나라니 기선제압의,목적도 있었을 거라 보이고
명나라 입장에선 고려가 자기들 건국하자 마자 요동을 공격하니 긴장할수 밖에.......................
근데 그 이전에 명나라가 먼저 시건방진 외교 서신을 보내기도 하죠
만약 잘 되었다면 계속 시도해서 요동을 차지할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수집쟁이드라하카 꼭 성공햇을거라고 확신하네요?ㅋㅋ 만에하나 패한다면 한반도통째로 명나라될수 잇겟다고 봐도될까요?
고려 본토에서도 왜구에 털리기 바빠 지원도 못해주는 반면에 꼴랑 군량창고 불탔다고 요동에 깃발 잠깐 꽂다 돌아온다? 답이 나오죠
결론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우리가 중국과 경쟁할만 하면 요동을 차지 하지 않고 중국을 도모할 수 없다고 하셨지만 바꿔 말하면 요동을 차지 하지 않고서 중국과 경쟁할만한 힘을 가질수도 없는거니까... 결국 민족성의 문제가 아닐지... 그렇게 가열차게 외세에 침략을 당해놓고 정작 본인들은 침략해 본적이 없는... 너무나 착해 빠져서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조금 손해 봐도 괜찮다는 참으로 순수한 민족성.. 물론 그것이 오늘날의 문화강국 코리아를 만든 원동력 이란걸 믿어 의심하지 않지만요..
착해서 침략안했다는 헛소리좀 그만합시다...
모든게 그 당시 상황이었다고 보지만 결국 정약용선생님처럼 그 때 그 렇게 되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맞다고 보고 현재도 그렇지만 상황을 만들면 대한민국 동이족들은 분명 헤쳐 나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요동의 가치는 군마수급에 있었죠. 원나라 시절 말 사육두수를 보면 요동 1지역에서 산출되는 말이 중국전체 말생산량을 능가했습니다. 그것도 몽골말이 아니라 꽤 중장비를 견딜만한 군마요.게다가 철광석이 굴러다닌다는 표현이 있을정도로 철생산기지라 먹으면 중국 한번 노려볼만한 각이 나오는 지역임. 지형상 방어하긴 불리하지만 공격베이스캠프 차리기엔 너무 좋은 땅
요동은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철산지가 있음.. 고구려가 철갑기병으로 군사력이 강했던 이유가 요동을 차지했기 때문임... 그게 요동의 가치임
맞죠, 단순 농업만이 아닌 국가의 풍요를 보장하는 농업, 소금, 철광석, 유목지가 두루있는 천혜의 땅이죠
말 생산량에 대한 정보 있나요???
말 생산량, 소금의 생산량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지만 가늠은 가능하죠
고구려 당시 시라무렌강의 비려(키타이)을 정복한걸 시작으로 고구려가 급상승하며 강해지고
주변을 정복하며 빠르게 팽창하죠
광개토대왕릉비와 삼국사기등 사리에도 소금이 많이 나오고 말같은 갗 고을 기르기 좋았다 하니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그곳이 이익을 주는 땅인건 확실하죠
그리고 이 땅, 단순히 경제적 이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할때 지리의 이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거라 봅니다
지팡구가 청일 전쟁, 러일전쟁때 이곳에서 미친듯이 싸우고 그 이점이 향후 어떻게 지판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지
말 안해도 잘 알고................
아니 모르시면 얼마든지 질의 하십시요
최대한 답해드리죠
더 큰 가치는 서북 평야지대를 보호하는 방어막이라는 데 있죠
지금 사는 선족들도 한족 밑에 납작 엎드려서 안되요
그냥 옛 땅이었을 뿐이죠
옛땅 생각하자면
마케도니아 알렉산더제국
이탈리아 로마제국
튀르키예 오스만제국
몽골제국은
어쩌겠어요
해상무역로가 발달하기 이전 실크로드와 연결된 무역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만주를 포기한 것은 커다란 패착이었다.
그 당시는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꼭 확보했어야 될 만주영토였다고 생각한다.북방유목민을 오랑캐로 여기고 무역로가 막혀 대륙과 연결된 섬아닌 섬이되어 농업국가로 전락한 결과가 이씨 지배층의 장기적 안정에 도움줬을지 몰라도 나라 안에 돈이 씨가마르고 얼마 안되는 생산량을 중국에 꾸준히 상납하여 조선의 국운이 쪼그라드는 결정적 요인이었다.해상무역에 주도권을 내준 근세를 보면 주변국에 막혀 내륙 안에 갇혀서 백여년간 무역길이 차단된 소외국가를 보면 조선이 어떠 했을지 상상이 된다. 각종 산업이 고도화 되고 정보화된 시대에 아무런 변화 없이 정체된 내륙국가의 현재 모습들이 당시 경쟁에서 뒤쳐진 낙후한 조선의 처지와 별반 다를것이 없다고 생각한다.조선은 그런 세월을 6백년 이상을 보낸 것이다 미화하면 안된다.기와집이 즐비한 중국과 유럽고대도시는 조선의 초가집과 너무 대비된다.
한강유역은 생산량이 그리 좋지 못하였습니다. 하상계수가 너무 커서 농업에 불리하고 또한 서해 조수간만의 차이에 의한 영향으로 압구정까지 바닷물이 밀려와서 식수로도 사용하기 힘들었죠. 그래서 당시 마한의 중심지가 충남지역이었고 북쪽의 변방을 마한왕이 온조와 비류에게 할양해준거죠. 똥땅이니깐요. 변방에서 한군현이랑 말갈족 몸빵해준거죠. 게다가 시간이 훨씬 흐른 훗날 조선초기에도 경기도의 인구는 조선 8도의 10~15프로 수준이었습니다.
풍납토성의 규모를 생각하면 한강유역이 충남보다 후달린다+똥땅이다라고 보기 힘들텐데요
@@PrettyT-rex 풍납토성은 초기 백제가 북방 한군현이나 예족, 말갈족의 위협에 왕조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온 국가적 역량을 총 동원해서 지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뭐 잘 아시겠지만 한강유역은 범람원이 광범위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여름철에 특히 취약하여 이렇다할 만한 농산물을 수취하기 힘든 환경이죠. 게다가 용산유역 그 이상까지 바닷물이 밀려와서 농업용수로는 절대 쓸 수가 없습니다. 오직 수운을 이용한 물류와 대외 교역이 아주 좋아서 지리적 위치는 최상급인거죠. 그래서 조선왕조가 한강에서 살짝 벗어난 (하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삼각산 이남 평야지대에 도읍을 정하였고 부족한 식량자원은 삼남지방에서 거두어서 한강 수운을 통하여 마포를 지나 만초천을 이용하여 도성까지 운반했죠.
경기도 면적이 한반도 5퍼인건 알고 인구비율 소리하는거?
얻으려고 해도 주변 세력이 가만 안놔두고
반도세력은 해양세력도 상대해야해서 요동을 유지하기 쉽지 않음.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한반도 내부의 천리장성은 실체가 없어요... 최근 탐사와 연구결과를 보면 고구려의 주변의 방어성곽 라인을 천리장성으로 보는게 유력합니다.
울릉도는 어느 나라 땅인가요? 😊
울릉도와 독도는 한국 땅입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을 할가요?
생각은 필요 없어요 실효지배하고 있는 나라의 것을 무슨 수로 가져 옵니까? 무력 밖에는 답이 없는데 전쟁하면 어떤 변수가 발생할 지 모릅니다.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한국을 치면 센카쿠 제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일본은 중국에게 같은 논리를 제공해 줄 뿐 입니다. 요동과 만주를 한국땅이라 생각하는 것에 뾰루퉁 해서 글 다신 모양이신데 잃어버린 옛 땅에 미련만 한가득이지 무리인거 압니다. 한반도라도 온전히 되돌려 받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요리사 복장인이유는 현재 요동이 중국땅이라서 그런건가요? ㅎㅎㅎ
8:00 저거 어느영상인지 제목 알려주세요. 궁금하네요.
요동의 지리적 특성을 이해하는데 좋은 영상이네요. 아쉬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지만 농경민족(고구려/발해 멸망 후)의 한계라는 관점에 수긍이 됩니다.
공부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수복을 하고 싶어도 실질적으로 할 수 없는땅이 되어버림
현재 만주 대대수 지역에 한족이 거주중이며, 조선족 자치주 마저도 한족이 더 많음 ㅜㅜㅜㅜ
구글 위성 사진보면 얼마나 촘촘하게 한족 이주 인구 통제했는지가 보임...
放心将来解放军会再次到汉城,汉族也会在汉城定居
그리고 마지막 만주 점령 가능성은 구한말 고종의 북벌도 있었습니다.
ㅋㅋㅋㅋㅋ 고종
@@Bee-xs8jn 왜 웃으시죠?
북벌ㅋㅋㅋㅋㅋㅋㅋㅋㅋ
@@user-pl5pu6it5x 웃을 수밖에 없잖아욬ㅋㅋㅋ북벌ㅋㅋㅋㅋㅋㅋ의화단 잔당 조지도 실효지배도 못했는뎈ㅋㅋㅋㅋ점령 가능성?ㅋㅋㅋㅋㅋ
개똥이가 만주의 간도에 관리사를 파견하걸 보면 아주 얼토당토 없지는 않죠
이범진이 거기서 관리사로 파견가니까요
애초에 저 땅가지고 있었으면 고대에는 중국이나 유목민족 현대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어 버텨내고 지켜낼수 없었지 얼마나 많은 "서민 , 백성" 들이 죽어나갔겠음?
오히려 저기 사는 사람들이 같은 국가 사람이라면 침탈의 역사도 줄어들었을 것이고
반대로 인구 증가와 세수 증대
그리고 육로로의 수출과 천연자원의 확보 등
단점보단 장점에 많을듯 합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죠. 적어도 고려말에는 애초에 명나라 위에 북원이 버티고 있었고 요동에는 원간섭기 이후 많은 고려인이 건너가서 살았고 고려왕계가 원 황실로부터 심양왕 책봉도 줄곧 받았던 지역이여서 고려의 지배력이 실질적으로 미칠 수 있던 땅이었는데요. 잘만 하면 요나라 물리쳐서 세력균형 유지했던 고려초처럼 북원이랑 어느정도 명나라 견제하면서 세력균형 유지할 수도 있었던 거고요.
그리고 조선말에도 청나라가 쇠약해지면서 간도로 이주하는 조선인이 상당했고. 지금도 조선족이 만주 전역에 걸쳐 살고 있잖아요. 북한만 없었으면 한국인들은 꾸준히 대륙으로 나가서 거주했을 거고요. 지금 북한으로 막혀있어서 그렇지 만주가 아예 넘볼 수 있는 땅이 아닌 건 아니죠. 한국인들은 계속해서 만주로 이주해서 살았던 게 역사인데요.
미국이 소극적이었다면 지금 패권국은 절대 안됐다. 영국과도 2차례싸우고, 카나다와 전쟁하고 중부지역을 프랑스에서 구매하고 정복하고, 텍사스공화국과 연맹하여 멕시코를 물리치고 서부까지 차지하고, 얼어붙은 쓸모없는 알라스카까지 구매하여 전세계 짬뽕민족을 통합하여 어느나라보다 잘운영하여 현재 패권국이 된거다.
내맘에들고 나같은 사람만 민족이라생각하면 전라도 따루 경상도 따루 서울 따루 쪼개져 북한이나 중국에 흡수될것이다. 조선족도 고려족도, 시베리아 브리얕족도 멀리 튀키에까지 형제국가 같은민족이라는데 왜 우리는 다른것만 찾아서 축소되는게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그들이 우리민족이 아닌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상황은 이해간다... 하지만 너무 분하다... 조선아... 정말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냐...
명나라가 당시 세계 최강국인 건 부정할수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발버둥이라도 쳐보거나 하다못해 외교적으로라도 어떻게 시도라도 할수있지 않았냐... 그저 명나라의 신하국을 자처해서 들어가는 것말곤 방법이 없었냔 말이다 조선아... ㅠㅠ
하... 우리 한민족의 잃어버린 옛 고토 땅 요동을 볼때마다 눈물만 나온다. 분명히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정복했던 영광스러운 땅인데 이제는 한반도에서도 남쪽에만 갇혀사는 한민족 신세라니 ㅠㅠ
두고두고 발목을 잡죠
삼치 문약 조선의 폐혜가...............
当时你们加入中国,但是中国不接受。因为你们这地方无法自己养活自己,需要国家付钱养活你们。
지금의 요하를 기준으로 나눈 요동 요서는 명나라 이후부터 임
고려시대까지의 요동 요서 기준은 태행산맥 임
고대 사서들을 공부 좀 하고 이런 방송 했으면 좋겠음
정약용의 요동론은 패배주의적 생긱이다. 조선의 성리학은 근현대사에 일본의 침략을 부른 근본 이유다, 고구려=>고려=>코리아 라는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단어를 생각하자
강의 잘듣고 갑니다. 요동 만주 얘기만 들어도 재밌네요.
만주를 우리가 차지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지역에 중국과 별개의 독립국가가 세워졌어야 했는데 아쉽다. 해방 후 김일성이 스탈린을 찾아가서 일본이 패망했으니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을 내가 다스릴테니 나에게 달라고 했다는데 스탈린은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소련군이 만주에 들어와 있어서 스탈린이 마음만 먹으면 지배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中华民国二战后是联合国创始国,反法西斯四大盟国之一。金日成是个什么东西?😂
스탈린이 머리에 총 맞아서 김일성한테 주겠음? 자기가 가져가도 되는데. 그리고 다련항이 부동항이라서 소련한테는 제일 좋은 곳인데. 심지어 요동때문에 일본이랑 피터지게 싸워서 져서 제정러시아가 멸망한 요인까지 되고.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김일성이 아니라 김일성 할배가 와도 안 주지.
그리고 만주에 독립국가가 생겨도 운명은 어차피 몽골이랑 똑같음. 러시아나 중국의 위성국이 되겠지. 특히 중국이 가만히 둘리가 없음.
중국역사에서 항상 북방에서 남방을 통일해왔지 남방에서 북방으로의 통일은 2번정도 밖에 안됨.
하나는 명나라, 다른 하나는 중화민국임.
그외의 통일은 전부 북방에서 남방으로.
중국공산당이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요동을 그대로 둘리가 없음.
@@光明的祈祷A 대만사람이면 인정하는데 중공에 살면 중화민국 거론하지도 마시고요.
@@光明的祈祷A김일성은 격동기에 권력을 지향하는 공산주의 독재 정치인에 불과했다.
중국대륙은 원나라였고 고려는 자립해있엇는데 왜 명나라는 쌧고 고려는 약한건가요? 홍건적이나 왜구 침입 때문인가요
명나라가 시작한 남중국의 인구가 고려보다 훨씬 많아서 아니었을까요....?
말이 자립이지 고려왕실이 사실상 몽골황실에 흡수되어서 공민왕빼면 황실정치질에 집중하느라 통치는 뒷전이고 왜구는 평안도 함경도까지 털고 홍건전은 개성터니 나라가 누더기에 이성계가 위화도 갔을때도 충청도는 왜구한테 털리는 중이었음
당시에 요서는 태행산맥 서쪽 요동은 동쪽이었음. 1920년 중화민국 상서성 도에 명확히 기록돼 있다.
강동6주는 대동강과 압록강 사이보다
청천강과 압록강 사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요?
추가로 한4군은 요동이 아닌 한반도 북부에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대동강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한사군은 요동과 한반도 북부에 퍼져있었다고 볼 수 있겠죠..
고려 서쪽국경은 요하라고 기록한 당시대의 1차사료인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의 기록과 세종대왕이 심혈을 기울여 편찬한 고려사의 지리지에 고려 동북 국경이 두만강 북쪽 700리 선춘령이라고 기록된 사실을 보면 강동6주는 압록강 남쪽에 있었다고 볼수 없죠.. 강동이 강남으로 바뀌게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한사군의 낙랑군은 중국 여러사료에 진나라 장성의 기점인 갈석산과 요수 사이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한사군은 한반도나 현재의 요하동쪽이 아니라 만리장성 산해관과 갈석산이 있는 진황도시에서 요하 서쪽에 위치했다고 보는것이 사료 기록에 부합됩니다.. (해당 사료의 요수는 현재의 요하가 아니며 중국사료에는 요수의 동쪽에 낙랑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요동이 아니란 것이죠.. 한나라때 요동은 당산시 또는 진황도시였습니다 )
역사에 대해서 말하려면 최소한의 기본적 지식을 가지고 말해주기 바랍니다.. 왜곡된 교과서가 아닌 사료의 기록으로 역사를 해석해야 합니다.. 교과서는 사료가 아닙니다
소련에서 독립한 소수민족 카자크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처럼 중국에서도 소수민족인 위구르 민주공화국 티벳민주공화국 만주민주공화국이 독립할 날도 언젠가 올수있을겁니다
한국이 만주로 진출할 수록 전선이 커지고 벌어지는 건 사실... 누가 봐도 대동강 원산만이 피차에게 가장 경제적인 전선.....그러나 거기에 안주하면 발전이 없음... 사실상 압록강,개마고원 국경까지 진출한 거임. 요동을 얻는 건, 또다른 돌출국경을 갖게 되는 것... 결국 만주전역을 평정할 능력이 있어야 확보되는 것임.
몇안되는 정상적인 의견이내요
다산, 정약용 선생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학생일때 교과서로 요동에 대해 공부할때는 그냥 지도로만 되있기에
왜 요동을 차지하지 않나? 의문 투성이었고 사대주의의 결과물이었나 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이런 강의를 학생때 들었어야 했는데....
영상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생각은 어떤 눔이 뭐라해도 요동땅과 그 주변은 동이의 땅이엿다. 잊지 말지.요동 회복 고토회복
우리가 유대인이냐? 언제적 일을..그런식이면 우리나라도 심지어 한반도의 지배권을 잠시라도 놓친 시절이 역사의 곳곳에 있어...끝도없어..그만 잊어..있는거나 잘 지키자 허구헌날 쳐박고 싸움하는 꼬라지보면 지금도 두나라로 쪼개진것만 같지만..
동이 타령하는 애가 많진 않네요.
왜가 동이고 일본이 동이니, 요동은 일본땅? 이겠다 그쵸?
동이라고 말한것 자체가 너의 조상은 짱꿔다 ㅁㅈㄹ
동이는 몰라도
언젠가는 되찾을 땅이긴 하죠
@@TV-DOCJON 일본이 동이가 아니라 일본도 동이족의 일파인거죠 ^^
세종대왕 생각하면,.. 역적 이성계를 나쁘게만 볼수 없고.... 조선의 노예제도를 없앤 일제 강점기. 625전쟁도 다른 순기능이 있으니, 세상에 무조건 나쁘고 좋고가 없다
두선생 채널도 역사에 관한 한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역사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전혀 보이는 않는 매우 가벼운 터치...어릴 때 배운 내용을 그냥 외워서 되풀이 하는 정도의 수준을 보이니.. 우리 역사의 기원부터 시작해 모든 문제점을 좀 깊히 고민하고 그 문제를 풀려는 진중한 자세가 있었으면 좋을텐데요..
민간 야매 역사학자들의 뇌피셜 말고 교차검증이 끝난 역사학계의 증거를 토대로 한 얘기입니다. 이게 가벼운 터치면 내일부터 삼체인의 구성과 역사에 대해 말해도 되나요?😂
진지하게 고민하면 어떤 접근이 가능한지 고견 듣고 싶네요.. 이건 우리 사학에서 가장 보편적, 객관적이라 할 수 있는 평론인데.. 이게 못마땅하신거잖아요?
정중하게 간단한 브리핑 부탁 드립니다.
@@아이돈노우-b9f 책보고 검색하시면 사서 교차검증한 내용 많아요
걍 단군고기나 잡숴요 그걸 원하는거자나 ㅋㅋ
@@섬나라에게대륙국가의 무슨 교차검증 입니까? 무슨 근거로 교차검증 토대로 했다는 말이지 모르겠네요.
역사에 영토포기란 없다.
단지 우리가 찾아와야 할 땅일 뿐이다. 되찾을 각오로 치열하게 살아갑시다.
정복과 지배는 다른영역이지요
알렌산더대왕도 거대한 영토를 정복했지만 알덴산더 사후 10년이 못가서 멸망했습니다.
수비하기가 힘들었겠지만, 지킬 수 만 있었다면 고구려때도 중요한 철산지였고, 지금도 중국의 중요 철산지이기에 우리것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요동 요서의 구분을 요하강으로
구분하는건 언어유희입니다
강으로 구분하였다면
강서 강동이 올바른 표기입니다
예전부터 지역 구분의 기준은
지형입니다 산맥의 경우 령(영),
호수의 경우 호(해), 예전엔 강이나 호수를 바다로 표기했습니다
고려사를 연구해보면 더 좋았을꺼 같습니다
이제 반도 땅 지키는 것도 핵 없으면 애매한 거 같은데 그렇다면...?
지리를 기본으로 한 역사 강의, 매번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시청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강의에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는 3나라가 같은 민족이라는 동족의식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즉, 3나라가 동족의식이 있었다면 서로 그렇게까지 싸울 일이 없었을 것이라 하신 부분이 아쉽습니다.
한가지 예를 든다면,
현재의 남북 분단이 100여년간이나 고착 되어가는 시점에 약 500년 후, 후손들이 지금의 남과 북이 한민족이 아니었다고 생각할까봐 무섭습니다.
서로 전쟁까지 하고 그 후에도 현재까지 약 70여년을 각자 정권을 유지하고 살고 있는데
후세들은 이 시기, 이와 같은 현상을 보고 지금의 세대들이 마치 삼국시대를 서로 전쟁을 했으니 민족의식이 없었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봅니다.
짧은 소견이지만, 민족의식이 없어서 싸운 것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싸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네요. 동의합니다. 같은 민족의식은 고려가 아니라 이미 고조선 삼한 시기에 있었다고 봅니다. 진한과 변한은 비슷하고 왜와는 구분하던 중국 기록을 봐도. 언어 복식 문화가 비슷한 이와 전혀 다른 이들 구분못할 리가요. 민족 개념은 근대에 생겼다는 개념은 유럽사에 적용되는 것이지 동아시아에 적용은 아닌것 같습니다. 중앙집권국가의 성립 시대도 엄청나게 차이나잖아요?
민족의식에 대해선 이미 오피셜로 대몽항쟁시기에 형성되었다고 알려져있구용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민족국가가 아님 백제의 경우 졸본부여 지배층에 의해 설립되었고, 한반도 중부에서 시작하여 한반도 남부의 마한 등 여러 소국들까지 먹으며 완성된거임 한 국가 내에서도 단일민족의식이 흐렸을건데 고구려 백제 신라가 뭘 공유한다는거?
@@freakinchicken
그리스의 아테네, 테네, 스파르타등이 같은 공동체가 전쟁을 해도
같은 그리스 역사이듯
고구려, 백제, 신라도 매한가지로 우리 역사인거죠
그 세나라의 공유점?
언어, 풍습이 비슷하고 국가가 달라 싸울뿐
공유점은 물론이거니와 되레 유사성이 없다는 점을 말하는게 더 어렵죠
통일신라 고려시대까지도 요동은 확실히 우리민족 영토였습니다만 ㅎㅎ 뭘 잘못알고 계신듯. 그 지역을 완전히 상실한건 조선시대 후기부터입니다.
그나마 조선 후기에도 간도지역은 우리 영토였고 일제시대에 현재의 영토가 된겁니다.
간도 그거 청이 거기 봉쇄했는데 조선인들이 살길찾아 거기가서 산거임. 조선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한 사실은 없음. 군대보내 영토를 지킨것도 아니고
아몰라 ~ 걍 우리나라 세지면 우리거라고 우기죠 ㅋㅋㅋㅋ
실제로 역사란 것이 그렇다고 봅니다. 근대 유럽의 백인들이 선사와 고대시대의 역사를 백인우월주의로 이끌었고, 일본이 근대에 부유해 지니까 한국과 일본은 같았다 라고 왜곡했고, 중국이 한족중심의 역사관을 가졌다가 강대국이 되니까 동북아 대부분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하고 있고...
만약 동남아의 인도네시아가 패권국이 되면, "동아시아의 기원은 5만년 경 인도네시아와 주변에서 출발했으니 동북아시아의 모든 나라와 호주 그리고 남미대륙 모든 국가의 선사역사는 인도네시아의 역사다" 라고 할 수 있어요.
최영과 이성계가 요동을 확보하고 북원과 손잡았으면 또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았을까? 고려나 조선의 단독의 힘으로 요동을 유지하는 건 힘들었겠지만, 북원이라는 협력자가 있으면 얘기가 다른 데..... 요동을 제대로 틀어막으면 만주는 따라오게 되어 있음. 오히려 여진은 요동으로 중국과 열려있기엔 중국의 이이제이로 조선과 싸울 여력이 생기는 것임. 4군6진 개척같은 실속없이 결과적으로 힘만 빼버리는 일들이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것임.
원으로부터 독립하려고 그렇게 발버둥친 역사가 있는데 잘도 손잡겠군
@@user-google-noodle-idle 원수지간인 쵸슈와 사쓰마도 손 잡았죠... 사카모토 료마 의 중재로....
@@Earth-Ground 걔네들은 구심점인 천황이 있고 같은 일본인이잖아
만주 민주공화국
티벳 민주 공화국
위구르 민주공화국 독립공화국만세
지리적으로 보면 당연한결과... 쌀농사로 먹고사는 한민족인데...사실 한반도 최남단이라도 중국이랑 비교하면 쌀농사 북방한계선에 걸릴정도... 지금이야 영토한점이라도 소중하자고 보지...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조선시대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봐보면 유목하고 살것도 아니고 벼농사도 제대로 안되는 저 척박한땅 뭔 그리 소중했겠냐...
묘청의서경천도의서경은 현베이징이고 고리적은 현시안이서경이죠
정말 좋은 내용이고 지리와 역사를 조합한 지오폴리틱스의 해석관점은 너무 곱씹을게 많습니다. 지정학을 잠시마나 전공했던 입장에서 너무 반가운 내용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때의 만주와 지금의 만주는 다르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지금 발해만과 만주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걸 만주국시절의 일본이 알았다면 아마 그들은 무모한 대미도발을 재고했을것이 틀림없듯이.
무엇보다 여유당전서의 요동론을 인용허신 대목은 절로 무릅을 치게 만드시네요.
다만 한가지 보충제안을 한다면 발해라는 표현은 과연 250년간 존속한 그들 스스로의 이름일까요? 엄연히 일본사에서도 그들사신은 아고려국이라는 표현을 국서에서 쓰고 있음이 명확합니다. 따라서 그들을 발해가 아닌 중대 고려 혹은 대씨 고려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터키를 튀르키에라고 부르고 버마대신 미얀마라도 하듯이 대조영이 세운 나라는 초대 구려 혹은 고구려(고씨 고려 혹은 해씨 고려)를 잇는 중대 고려 혹은 대씨고려 아닐지? 우리가 코리아라 불리는 이유도 최소 8백년서 최대 천년이 넘는 상대 고려(고구려) 250여년의 중대 대씨 고려,그리고 475년의 하대 왕씨 고려이기 때문이죠. 비록 자체역사기록을 하나도 남기지 못했으나 이후로도 200년이상 부흥의 시도가 있었을만큼 유서깊은 저력과 뿌리가 있었습니다. 역사의 파편만 봐도 그들은 스스로를 고려라 불렀지 발해라는 중화적 표기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우리가 그들을 아직도 발해라고 불러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역사와 흔적도 분명 코리아라는 명칭의 관점에서 우리것이니까요.
발해라는 이름은 왠지 초라해보임...대진국도 별로...고구려(고려)와 연관된 이름으로 바꾸면 어떨까?❤
요동과 요서의 기준은 요하가 아니라 태행산맥에 위치한 요입니다
대륙고려설을 주장하는 책보고같은 미친 작자들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에 식민 사학이 살아남는 겁니다.
고려의 영토는 남만주와 한반도입니다.
@@jerome-e9k 책보고채널이 사서로 다 해석, 정리하고 있는데 반박 가능하신가요?
@@bgkhan4475 제가 예전에 책보고에게 물어봤죠. 반박 한마디 못 듣고 채널 차단 당하고 욕만 들었습니다.
@@bgkhan4475 만리장성이 사실은 고려의 장성이다 요탑이 사실은 고려의 탑이라고 하는 정신 나간 소리로는 식민사학 극복 못합니다. 사료와 유적 유물로써 정확한 사실적인 이야기로 이야기 해야 역사가 바뀌는 겁니다.
지금 요하의 이름은 원래 구려하 였음
지금 요하를 기준으로 요동 요서를 나누는 역사 학자들은 식민사학자들은 그렇다치더라도 소위 재야사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역사서 원서 연구는 하지않고 반도사관을 기본으로 연구해놓은 것을 앵무새 처럼 떠벌리기만 함
요동 요서 위치부터 잘못된거 같은데 요하 위치가 거기가 아닙니다
몽골 즉 원간섭기에도 고려왕요양왕 즉 겸직이었다.
고려 시대에도 만주 즉 요서요동의 공식적 지배자는 고려였다..
그런데 무슨 개소릴 하는지.
지금이라도 요양왕을 공부 쫌 해라.
무슨 댓글 다는 댓글러들보다 수준이 떨어지나.
응 딱 처음 한번이고 그뒤로 갈라섬
그리고 사실상 말이 고려왕이지 몽골황족이란건 앎?
요동을 먹는순간 흑룡강 연해주까지 평정하고 중국과 영구 동맹을 맺어야되니 진짜 어려운싸움... 문제는 그정도로 영토가 확보되면 욕심이 나서 중원에 도전할게 뻔하니... 실제로 일본제국도 요동 흑룡연해 일대 평정후 중원으로 ....(세계2차대전) 욕심은 끝도없음..
두선생.. 잘못된 역사.
그곳은 한참 후대의 요동과 요서이지 .. 고구리시절의 요동과 요서는 절대 아니라네.. 그 기준은 "요" 이지 한참 후대에 붙여진 요하가 기준이 아니라고.. 알긋나?
근거는? 근거를 대야 알지? 이건뭐 원숭이 엉덩이가 사과라는 소리니...
신라의 삼국통일이 한강을 얻게 됐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외세를 끌여들여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고 난 후의 결과론적 해석이고,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신라 보다는 더 큰 지정학적 의미가 있었겠죠. 그래서 전 우리 한민족의 가장 큰 역적으로 김춘추를 꼽습니다.
지정학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보면 이정도 밖에 안되는거에요. 주변 유목민족들 상대하고 일본해적소탕하고 중국도 상대해야 하는데 그게 쉬워보임?
이분도 아닌척 하면서 식민사관에 매몰된 분이군요 꽉막힌 사학계입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만든 학설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우고 있으니. 인하 대학교에서 조선 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 해제하는 사업을 교육부의 국고 지원으로 했죠. 그런데 다시 교육부에서 출판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역사학계 단체에서 필사적으로 출간 못하게 막고 있는 겁니다. 일본인들이 편찬한 조선사와 우리가 현재 배우는 교과서 내용이 일부분 빼고 거의 같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짝짝짝 최고의 강의
감사합니다:)
이분도 이병도 신석호교수를 초대스승으로 두고 일제사관으로 역사를 배웠다 그래야 학위를 받을수 있기에 자기스스로 연구한것은 없을테고
역사연구라함은 한국,중국 정사를 모두 공부해야는데 암기한것만 읊어대는 컨텐츠팔이에 불과하다
참고로 고려사 조선실록에 요동은 실효지배한 강토이다
무슨 연구냐?다 상상에 맡겨서 본인 입맛에 맞게 쓴 소설인데
미국이 소극적이었다면 지금 패권국은 절대 안됐다. 영국과도 2차례싸우고, 카나다와 전쟁하고 중부지역을 프랑스에서 구매하고 정복하고, 텍사스공화국과 연맹하여 멕시코를 물리치고 서부까지 차지하고, 얼어붙은 쓸모없는 알라스카까지 구매하여 전세계 짬뽕민족을 통합하여 어느나라보다 잘운영하여 현재 패권국이 된거다.
내맘에들고 나같은 사람만 민족이라생각하면 전라도 따루 경상도 따루 서울 따루 쪼개져 북한이나 중국에 흡수될것이다. 조선족도 고려족도, 시베리아 브리얕족도 멀리 튀키에까지 형제국가 같은민족이라는데 왜 우리는 다른것만 찾아서 축소되는게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그들이 우리민족이 아닌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요하에 위화도 있어
고려, 발해, 고구려, 신라, 백제는 대륙을 지배했습니다. 이분 반도사관을 아직도 고수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아냐? 짜집기한 증거가 1이면 대륙은 한족거엿단 증거는 99인거 ㅋㅋ환빠벌레들은 환빠벌레체널에서민 놀아
Koreans are really funny. History has stolen China culture into Korean culture. Korea was a dependency of China in ancient times, a Japanese colony in modern times and a trophy of the United States in modern times.😅
진짜 이 명예 중국인들은 사라지질 않네 ㅋㅋㅋ
일본 혐한넷우익인가? 한국이 대륙을 지배했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이간질 시킨던데ㅋㅋㅋㅋㅋ
@@nuneanddine不不不,其实韩国人曾经统治的是宇宙,曾经建立过一个叫做大韩宇宙国的国家,只是他们在跟印度宇宙国的战争中失败了😅😅😅
다산 정약용이 최고의 실학자리는 말도 웃긴 얘기입니다. 정약용이 쓴 책을 당대에 누가 읽기나 했습니까? 1930년대 이후에 세상에 나온 겁니다.
그야 제본기술조차도 없어서 책보급이 안됐으니까 ㅡㅡ
중요한건 동이족이 요동을 상실한 역사보다 실질적으로 지배한 역사가 더 길고 화려해서 민족 중흥기의 절정에 도달하면 요동 뿐만아니라 만주,산동, 연해주까지도 수복하고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됄것이다
환빠 ㅋㅋㅋ
품질이 좋지 않은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나요?
어딜가나 열도 나부랭이나 짱빼기들 너무 많아서 인간 정화가 필요하다
看得出来,韩国人忍受不了自己国家贫瘠的历史,拼命想要跟东夷人拉上关系,寻找文化认同,不惜自认为中国人😂。东夷人并不是一个民族,而是后期组成中华文明的分支,你是在说中国人是韩国人的祖宗吗?既然那么想认种族,你为什么不去非洲找你的亲戚呢?😊
또 요동을 차지 했다면. 엄청난 비용을 지불했어야 할것입니다
중국도 한족의 중국은 누구도 요통을 얻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땅은 거친 수많은 민족이 사는 땅입니다.
어떻게 지켜요?
쥐뿔도 없는 땅을 가지고 있어서 뭐에 쓸까요?
여진 거란 쌀대주다가 판납니다.
그리하여 중국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중국입장에서는 늘 자신을 쳐들어오는 만주의 이민족의 배후에
한반도가 있어 견제하는 것이 가장 싼 비용이 드는 정책입니다.
한반도 역시 중국과 편을 먹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이득이지요.
어차피 중국과 육로는 이어지지 않으니..
중국과 한반도가 공동으로 북방 민족을 견제하면서 산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중국과 별개로 살아올수 있었던 이유에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정치적 역사학자(황현필) 같지 않은 진짜 뜻 깊은 내용 입니다
현재 만주평원(동북평원)의 생산량이 중국화북평원생산량을 능가합니다 훨씬능가
영토라는 지리적관점만 바라보고 그시대의 국가들을 평가해선 안됩니다. 그땅에서 생산되는 생산력이 뒷받침되어야 국가가 강해지는것이죠. 고구려가 광활한 국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신라와백제에 비해 단위면적당 생산성은 낮았을것이다. 요동을 지배하는경우와 포기하는 선택 중에서 지금의 관점에서 평가하지 않고, 당시의 관점에 대해서도 설명해주니 좋았네요. 만약 그시절 명나라와 전쟁한번 해야한다는 각오를 한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고려해야 했겠는가..
실제 생산력 인구는 백제가 좋았음
희생이 문제가 아니라 고려라는 나라의 존망을 걸어야죠.
맞습니다. 아마 고려하기 싫어서 고려를 친듯.
跟明朝开战,朝鲜半岛现在就是中国的一个自治区
이미 고구려는 중원의 거대 중앙집권 국가인 수나라와 싸우고 국력이 쇄하고 소극적 대외정책으로 전환한 상태라 버텼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중원 통일국가가 나왔을때 무너졌을거라 생각함 애초에 한반도 의 지리적 태생적 한계가 팽창하기에 좋은 곳은 아님 일본이나 영국같이 지키는데 용이한것도 아니고 위아래로 막아야하는 입장에서 생산력도 작고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단군을 섬겼죠~
한민족 맞습니데이~ㅎ
만주는 단군이 창업하실때는 기후가 온난하여 옥토였다. 그리고 지금도 만주평야는 우크라이나의 평야지대와 견주는 세계3대 평야지대이대로 들어간다. 비록 중국인들이 그평야를 개간하였지만... 단군왕검께서 창업한 만주는 좋은땅이다. 계륵은 더더욱 아니다.
옛날부터 곡창지대였고 철광도 풍부해서
순유목민이 요동반농민을 못이겼음
@@펨코유저 요나라?
결국, 요동 땅의 사람과 반도의 사람이 다르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금, 청은 다른 민족, 다른 나라.
그런가요? 금 청을 한국사에 포함 시켜야 한다고 생각 했는데 ...사촌쯤( 육촌쯤) 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