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임방울 08 적벽가 '군사설움타령'

Поділитися
Вставка
  • Опубліковано 26 вер 2024
  • 임방울(林芳蔚, 1904-1961)
    호적상으로 1905년 4월 20일 임경학(林敬鶴)의 5남매 중 넷째로 출생한 그는 14세 때 창에 취미가 있어 창극계에 들어가 명창 박재실에게 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웠다.
    다음에 유성준(劉成俊)에게 수궁가·삼국지·심청가를 배우고 난 다음에 25세까지 독단적으로 공부하였다. 서울서 박람회가 있어 시골서 단체로 서울에 올라와서 박람회에 참가했다고 조선일보(1956.5.28) 소재 그의 글 "나와 창극"에 전한다. 임방울이 유성준에게 판소리를 공부할 때 그의 후배인 박동진(朴東鎭)도 그와 함께 수궁가를 배웠다. 그 후 유성준이 일본 오사카 공연을 갔을 때 당시 유명세를 얻은 제자 임방울을 제자로 소개한 적이 있다.
    만석꾼 정기영의 집에서 박석기의 소개로 만나게 된 장판개(張判介)에게 임방울은 적벽가(赤壁歌)를 비롯한 동편제(東便制) 소리를 학습하였다. 1929년 9월 12일부터 10월 31일까지 경복궁 경회루에서 열린 조선박람회(朝鮮博覽會) 때 상경하여 외숙인 명창 김창환(金昌煥)의 소개로 동아일보사 주최 전국명창대회에서 불렀던 "쑥대머리"를 통해 인기를 얻게 됐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11월 콜럼비아레코드사의 일본 오사카로 복혜숙 등과 함께 가서 취입한 음반을 통하여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29년 11월 13일 일본 대판지점(大阪支店)의 취입소에서 콜럼비아 축음기회사의 제2회 취입 때 복혜숙(卜惠淑)·김영환(金永煥)·김초향(金楚香) 등과 함께 취입했다. 1929년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처음으로 출연한 그는 1935~1944년 국본정엽(國本正葉)·이정엽과 함께 "고고천변"(皐皐天邊)·단가·수궁가·창극조·"호남가"(湖南歌) 방송하였다.
    1930년 2월 8일 전주극장에서 열린 명창경연대회 때 그는 이화중선·박금향 등과 함께 출연했다. 1930년 정정렬이 춘향가를 취입하기 위해 일본에 갔을 때 이화중선(李花中仙)·박녹주(朴綠珠)·김소희(金素姫) 등과 함께 동행하여 "적성가"(赤城歌)를 취입하였다. 1931년 3월 14일 여수에서 이중선일행(李中仙一行)과 함께 공연했다. 1932년 콜럼비아음반에 두 번째로 취입한 이후 빅타사와 시에론사 그리고 오케사 등의 레코드에도 취입하였다.
    1935년 임종원(林宗元)이 창단한 대동창극단(大東唱劇團)에서 강남중·신영채·홍갑수·이화중선·이중선·박초선·박초홍 등과 함께 주로 삼남(三南)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36년 2월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의 직속단체 창단된 창극좌(唱劇座)에서 강태홍·김세준·김연수 등과 함께 창극활동을 전개했다. 『朝光』(1937) 17호에 발표된 "조선성악연구회 현재 멤버"에 소개된 그는 1938년 3월 13~17일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가극(歌劇) 토끼타령 때 토끼로 출연하였다.
    1937년 6월 11일 빅타 축음기회사가 춘향전 전편(全篇)을 취입할 때 박녹주·김소희·한성준 등과 함께 취입했다. 1938년 4월 27~28일 전조선향토연예대회 중 춘향전과 심청전 전창(全唱) 때 출연했으며, 1938년 5월 4~10일 전조선향토연예대회 중 조선성악연구회의 판소리대회 때 출연하였다. 1939년 임방울은 박초월·박귀희 등과 함께 동일창극단(東一唱劇團)을 창단하고 김아부(金亞夫) 작, 박동실(朴東實) 편곡, 박진(朴珍) 연출로 "일목장군"(一目將軍) 공연 때 그는 안기옥·오태석·정광수·신영채·김준섭·홍갑수·강도근·김준옥·박초월·박귀희·강남월·박이숙·박산월·한애순과 함께 출연하였다.
    1943년 9월 제일극장에서 이운방(李雲芳)의 창작 창극 "남강의 풍운"으로 동일창극단의 창단공연 때 안기옥·오태석·정광수 등과 함께 출연했다. 창단 공연 후 조몽실·강남중·박후성 등과 함께 전국순회공연에 동참하였다. 단가 "호남가"의 작곡자로 유명한 그는 춘향가 중 "옥중가"(獄中歌)의 "쑥대머리"가 특장이었으며, 수궁가에도 능하였다. 외삼촌 김창환과 송만갑의 주선으로 동양극장에서 "쑥대머리"를 불렀고, 음반으로 취입하여 120만 장이 팔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그가 취입한 "가난타령"·가야금병창·"고고천변"·"기생점고"를 포함한 단가와 판소리 여러 눈대목은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그가 취입한 "제비노정기"·"춘당시과"(春塘試科)·"춘향모 비는데"·"춘향모 탄가"(春香母嘆歌) 등의 여러 눈대목은 시에론음반에 전한다. 김녹주·김소희·신숙 등과 함께 오케고악단·오케효과단 반주로 취입한 가야금병창·단가 "명기명창"을 비롯해 춘향가의 여러 눈대목과 흥보가의 눈대목 "흥보 가난타령"·"흥보경사"(興甫慶事)·"흥보구걸"(興甫求乞)·"흥보 매 맞는데"·"흥보 박 타는데" 등은 오케음반에 전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그가 취입한 단가 "고고천변" 및 춘향전의 "쑥대머리"·"춘향가 이별"(春香家離別)은 군소회사음반에 전한다.
    해방 후 1946년 대한국악원(大韓國樂院)의 창극단에서 오태석·백점봉·조상선 등과 함께 활동했고, 대한국악원 산하단체인 임방울창극단(林芳蔚唱劇團)의 대표였다. 1954년 5월 21일 부산 범일동에서 열린 고전음악제전 때 박녹주 등과 함께 출연했고, 1955년 국악동인회(國樂同人會)를 창설하고 시공관에서 출연했다. 1956년 4월 28일 국악진흥회(國樂振興會) 주최로 국립국악원 연주실에서 적벽가 완창 및 같은 해 11월 23일 수궁가 완창 실황을 릴테이프로 남겼다.
    1957년 4월 원각사(圓覺社)에서 열린 박초월 문하생발표회 때 성우향·한농선·박귀희 등과 함께 특별 출연했다. 그해 9월 21일 국립국악원 연주실에서 김재선의 북반주로 녹음한 완창 적벽가는 현재 연세대 음대 도서실에 소장되어 있다. 이 적벽가는 1968년 신세계레코드에서 LP음반으로, 1983년 카세트테이프로, 1990년 CD로, 오아시스에서 1996년 CD로 발매되었다. 이 무렵 김재선의 북반주로 춘향가를 부른 공연을 보고 느낀 그의 인상기는 동아일보(1961.3.22)에 전한다.
    1959년 후반에서 1960년 초에 그는 일본 동경과 오사카에서 열린 임춘앵일행(林春鶯一行)과 창극 "견우직녀"(牽牛織女)의 공연 때 도창을 맡았다. 이때 조총련의 공연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귀국 후 경찰에 연행되어 고문을 당한 후유증은 매우 컸으며, 그때부터 공연을 하지 못했다. 1960년 국악진흥회(國樂振興會)의 제5회 국악상(공로상)을 수상했다. 1960년 8월 16일 전북 김제공연 때 김동준의 북반주로 수궁가를 부르다가 쓰러졌으며, 1961년 3월 7일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1972년 김기수(金琪洙)는 그가 부른 판소리 적벽가를 5선보로 채보하여 『한국음악』 제10집으로 출간하였다. 1986년 9월 12일 광주 광산구 송정공원 안에 국창 임방울 선생 기념비가 세워졌다. 1988년 11월 20일 망우리에서 남한강 공원묘지로 이장됐다. 1994년 12월에는 광주문화예술회관에 국창 임방울 선생 흉상이 세워져서 그의 예술을 기리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임방울 [林芳蔚] (한겨레음악대사전, 2012. 11. 2., 송방송)

КОМЕНТАРІ • 16

  • @kkh1395
    @kkh1395 Рік тому +9

    대단한 분이다...지금들어도 재밌고 구성지고 기교가 어마어마하시다는게 느껴진다.우리것을 지켜야겠다

  • @차재숙-r8g
    @차재숙-r8g 2 роки тому +10

    무슨말인지는 몰라도 그저 음과 소리, 가락만으로도 심금을 울립니다.
    월류봉에서 산줄기를 보며 듣자니 신선이 부럽지 않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아이바우
    @아이바우 4 роки тому +23

    적벽가의 하이라이트, 한민족이 낳은 20세기 세계최고의 소리꾼

  • @오래바로문
    @오래바로문 Рік тому +5

    이런 명창이 어디 또 있으랴!!!

  • @davidking8083
    @davidking8083 3 роки тому +22

    노래음 하나하나 에 기운과 혼신의기백이 실려있는것이 대단한 분이시네요 조선제일 명창이란 평가가 손색이없으신듯하시네요 고함소리 산을 허는듯하고 나직히 흐르는 말들은 가야금의 탄현같이 울림이 있어라
    자근자근 이어져나오는 나레이션은 역사저편에서 멈춘 장면들이 마치 살아움직여 뛰어다니는듯한 착각이 듭니다

  • @해석최-z4w
    @해석최-z4w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명창임방울선생은소리에천재였다

  • @임태우-q7v
    @임태우-q7v 3 роки тому +10

    나주임씨 가문에서는 소리꾼한다고 좋은소리 못들었다고 들었네요 외로운길을 가신 선생님

  • @샛별-h6q
    @샛별-h6q 3 роки тому +8

    돌아가신 부친이 좋아하시던 소리꾼입니다
    오늘따라 아버지생각이 많이나네유ㅠ

  • @양택석-x2r
    @양택석-x2r 3 роки тому +10

    들으니 너무가슴떨려오
    뵙진 못하지만 그소리듣게되어
    그얼마나 조은지 그저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시퍼요

  • @aliesha7691
    @aliesha7691 3 роки тому +9

    감동은 심장의 울림

  • @올억셉트
    @올억셉트 2 роки тому +5

    고맙습니다.

  • @박기호-d2x
    @박기호-d2x 2 роки тому +6

    적벽대전의 순멸한 영혼들의 한과 탄이 가슴 깊이 울려옵니다.

  • @gobongbop
    @gobongbop 3 роки тому +5

    이날치 보다가 여기까지 와부렀소~~~~

  • @이나무-b2d
    @이나무-b2d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아 ᆢ살떨리고 ㆍ 힘차고 ᆢ짧고 ᆢ깊고 ᆢ 높고ᆢ낮고 ᆢ꽉차고 ᆢ비우고ᆢ그 가락이 고개 고개 넘고 갈적에 ᆢ 요람에서 무덤으로 눈물젖은 한이 되는구나 ᆢ

  • @종수임-y3t
    @종수임-y3t Рік тому +5

    국보 소리꾼

  • @goddnesscom
    @goddnesscom 4 місяці тому +2

    말이안나오는 깊이와 절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