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멜방끈 풀고 앞에총 완전군장 할 때 변칙으로 개머리판 탄띠에 걸치고 뛰다 조교새끼 한테 걸려 좆나 터졌다 70년대 초 육군하사관학교 교육 먹을 것도 부실하고 통일화, 훈련복 꿰매고 일석점호 때 마다 기압, 무지막지한 구타 그래도 28 주 교육 끝내고 35개월 군 생활 마쳤다
무장구보는 진짜로 중압감 100%의 훈련이다 처음부터 구보로 충분한 단련후에 하더라도 호흡을 두번 내쉬고 두번 들이쉬고 발을 맞춰서 전체의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지휘자가 살펴보면서 조정을 잘해야... 시간 단축도 중요하겠지만 소대원일동이나 중대원 일동이 낙오없이 함께 달성하는게 대단히 중요하기에....
가슴에 연대 표시마크 파란것늘 보니 3연대 맞구만. 무장구보는 3연대지. 신호줄 묶어서 낙오 못하게 하고 속도 조절은 뒤에서 신호줄 잡고 있는 병장이나 짬밥분대장이 당겼다 놓았다. 킹콩 3연대 무장구보 8연패의 신화. 해병대 창설기념일 4월 15일 체육대회. 9월 28일 서울수복기념 체육대회. 80년대 초반 20대 내 청춘이여~
각 연대마다 중간 중간에 무전병이 출발신호와 함께 시간을 잽니다. 각 연대 무전병이 통과 시간을 무전으로 날리면 뒤에 앰블란스에 주임상사는 시간조절을 계산해 속도증가, 속도감소 하라고 핸드마이크로 소리치면 속도증가, 속도감소하며 결승지점을 향하여 개발에 땀나도록 뛰고 혹시 증간에 무장속에 내용물 빼돌렸는지 저울갔다 놓고 무장 무게를 측정했지요. 1등하라고 14박 15일 휴가증을 비닐에 싸서 철모속에 넣고 뛰었던 기억. 각 보병연대장들은 3연대 이겨보려고 보병교육대에 직접 체대출신을 뽑았다는 정봉규 연대장의 훈시. 잠시 젊은 날 돌아봅니다.
육군 88군번인데 얼룩무늬가 아니라 민짜군복입고 제대했는데 90년대까지 저 구형군장을 메고 구보하는 해병대 나도 딱 한번 신교대에서 저 날개모포달고 구형군장으로 훈련했는데 진짜 힘듭니다. 항상 해병대는 왜 보급순위에서 밀리는지 정말 잘못됐읍니다. 더 해주지는 못할 망정 왜 뒤쳐지게 지원합니까! 해병대가 해달라는건 조건달지 말고 무조건 해주세요 이제껏 요구도 눈치보느라 참고 산것같은데 정신력으로지킨 해병대 이제는 해달라고 하는거 무조건 해주세요.
@@susu-kx6km 그게 중요하냐? 현실적으로 지금 편해지다 못해 군대? 군인인지 고등학교 학생들 정신 상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망가졌다 보는데? 생각해라 감성적 변호가 다가 아니다 30대 40대 50대 더 가서 60대까지 건장하신 선배들이 다시 입대 해도 더 믿음직스러울 거 같다. 인권 인권 외쳐도 선은 지켰어야 하는데 지금 군대는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그 선이 지켜지지 못했다 본다. 감성적 보호도 선을 지키지 못하면 지금 교권이 망가진 것처럼 과 같다
1998년 4월1일 충북 영동군 민주지산에서 천리행군 중이던 5공수 여단 6명이 기상 악화로 탈진해 중대장 포함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폭설이 내려 급 저체온증 대대장은 행군을 중지하고 귀대해야한다고 상부에 보고 했지만 상부의 강행지시로 6명이 죽었다 정신력으로만 안되고 체력도 한계가 있고 강한사람이 있고 조금 모자란 사람도 있다 난 89-92년 군의관 출신이다 옛날에는 완전군장에 연병장 뺑뺑이 원산폭격이 기합의 기본이었다 지금처럼 실외온도 높은 여름에 야외훈련 금지 이런거 없었다 한여름 완전군장 해서 연병장 뺑뺑이 돌다가 의무대 많이 실려왔다 심하면 죽고
5여단 민주지산 사고는 미리 예측하지 못한 이상 악기상으로 인한 천재에 가까웠던 사고였다. 공교롭게도 사고가 난 4월1일은 특전사 창설기념일 이었고 사령부 예하 거의 모든부대가 체육대회와 기념행사를 하고 있던 시각에 야외내륙전술훈련 마지막 단계인 복귀행군(천리행군) 중 사고가 났다. 당일은 전국이 포근한 4월 봄비가 내리고 반바지 차림으로 운동을 하는 시기였는데...오전부터 행군을 하던 5공수여단 장병들은 오전에 맞던 비를 그대로 맞으며 1.100m가 넘는 민주지산으로 접어들었고 급기야 야간과 심야엔 눈보라와 기온 급강화로 인해 무방비 상태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임. 4월 봄날에 눈보라와 강풍... ...
12km 45분이라는 주파 시간은 완전하게 허구입니다. 특공연대 복무시 1992년 경 평지기준 10km 측정시 56분~1시간 잘 뛰는 팀은 최대 50~53분에 주파를 했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뛰어본 사람은 모두 공감을 할 겁니다. 10km은 맨몸으로 잘 뛰는 사람도 32~38분 입니다. 10km 45분 주파도 완전군장 상태에 허구입니다! 8km 정도의 거리를 10km로 산정하고 측정한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훈단에서 완전군장 3km 구보해봣는데 힘들다기보단 걍 기분 개 좋음 순가부를때 평소보다 더 크게 부름 교관들 개 좋아함 동기한명 햄스트링 나갔는데도 울면서 다리 부여잡으면서 뛰더라 교관이 그만하라했는데도 울면서 할수 있다면서 그거보고 더 끓어올라서 군가 더 크게 부름 그랬더니 앞에서 같이 뛰던 교관 “좋아!!” 엄지 척 해줌 그리고 오천시교장에 도착해서 제자리뛰어 몇번하다가 제자리에 서 햇는데 그동기 쓰러지더라 근데 우리 동기들 다같이 움 사람이 악에받치면 어떻게 되는지 그때 배움
계급장이 아직 저시인성으로 바뀌지 않은 시기였으니 1996년 이전의 해병대 무장 완전군장 구보시절 영상이네요... 또한 무장완전군장 구보는 육군의 경우 대부분 1991년 전후로 사라졌는데 해병은 그 이후에도 있었군요... 개인화기도 M16A1에 이어 K2로 초도 신품 받아서 검정색의 새것이고(육군의 경우 3군사령부 예하 상비 예비사단은 1985년부터 K2초도 지급 1980년대 말에는 서울 북부 경기 강원일부 지역 부대는 K2소총 무장했음 우리부대는 1987년도에 M16A1과 20발탄창 반납하고 신품 K2와 30발 바나나탄창 지급되었음)... 근데 군장이 2차세계대전 부터 6.25전쟁.베트남 전쟁에서 1980년대 까지 사용하던 모포 말아서 각잡고 군화 꾸겨넣고 묶어서 메다는 구형군장이네요...(저 구형 군장의 배낭끈이 우리가 탄띠에 결속해 어께에 메는 X반도임...) 우리육군 상비사단 에선 1980년대 중후반 부터 현재의 등산배낭 형태로 알류미늄 지지대가 있는 군용전투군장을 사용했는데... 참 해병대의 저당시(대충봐도 얼룩무늬 전투복이고 장교계급장 백색에 병사들의 계급장은 노란색 새우깡이면 1993~1996년 사이임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사건당시 즉시 검정색 저시인성 명찰과 계급장으로 급히 변경하였음 ) 군장류 상태가 참 거시기 하군요...
옛날 영상보면 해병대 DI 이정구 하사가 밤에 훈련병을 너무 심하게 기합준걸을 알고 DI 고참이 이정구하사에게 얘들 체력 봐 가면서 기합을 주라고 충고한다 체력이 견딜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못 견딜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번 육군 훈련병 사망 사고처럼 이렇게 뒤쳐지는 병사는 도와줘야 한다
구보할 때 뒤쳐지는 병사를 도와주는 가장 도움되는 방법은 총기와 군장을 들어주는 방법 보다는 내 몸끝을 잡고 따라오게 하는 방법입니다. 내가 뛰는 속도보다 빨라서 힘든 것이니 잘하는 고참을 잡고 잠시 끌려 가다보면 기력을 되찾고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수 있습니다...내가 이등병 때 10 km 50분주파구보에서 5km 이후부터 약 2km 정도를 나를 도와준 병장의 군장을 붙잡고 무사히 완주를 했었고 내가 병장 때 나 역시 후임병 군장을 대신 매고 내군장끈을 잡고 이끌며 완주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군장을 두배로 매고 후임을 끌고 가면서도 지치지 않는 내가 스스로도 신기했었다...
82년도 해병대 입대 했을 때 사단 무장 구보 경진대회 준비를 저렇게 했었다. 평지를 달리거나 맑은 날씨에는 그나마 좀 할만 했다. 언덕을 통과 해야 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죽은 목숨이었다. 당시에 무장은 지금처럼 방수가 된다거나 경량화 된 무장이 아니었다. 천으로 된 것에 담요를 두룬 무장인데 이것이 비에 젖으면 돌덩어리 처럼 느껴졌다. 골인 지점에 도착해서도 바로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냥 널부러져서 한참을 숨만 깔닥거리고 있어야 했다.
채널 주인장은 육군출신이지만 해병대의 자긍심과 해병정신이 정말 멋진 것 같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복무중이신 모든 군인분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우리나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캬....주인장!! 기합..! 자진입대 환영한다!
몇몇의 정신나간 해병대 빼고는 다들 멋진 사나이들인 듯
@@나야나-g2i 꼴통도 있고 엘리트도 있어야 사람 사는 동네 아니겠습니까~
저런 해병대가 정치판에서
두동강이 났어 물어뜯는 개판으로 가고있지
@@goldenshorts777정치모리배 국개의원들 모두 일년에 1주일씩 유격훈련 시켜야합니다
완전군장 구보도 힘들지만 총 앞으로 들고 그 자세 그대로 구보하는건 더힘듬 진짜 해보면 아실꺼임 진짜 대단한 대한민국의 청년들..
M-1멜방끈 풀고 앞에총 완전군장 할 때 변칙으로 개머리판 탄띠에 걸치고 뛰다 조교새끼 한테 걸려 좆나 터졌다 70년대 초 육군하사관학교 교육 먹을 것도 부실하고 통일화, 훈련복 꿰매고 일석점호 때 마다 기압, 무지막지한 구타 그래도 28 주 교육 끝내고 35개월 군 생활 마쳤다
나도 70년초 군번. 34개월15일 복무. @@바른소리-i8k
나는 구보하다가 총은 맡겨봤음
억수로 미안했음
동기야 고마웠다
32년 복무 후 전역함
@@바른소리-i8k 그때 식사는 어땟나요? 오 이건 먹을만 하다 하는 기억나는 식단 있나요
나도73년 3월군번입니다 정말 고생많이 하셨겠네요 74년 7월 중순경 완전군장 구보측정하는데 GOP근무때 철원 대마리 민통선 마을돌아오는구보 신임 소대장이 견디지 못하니까 중대장이 워카발로 사정없이 까더라 그러먼서 온갖욕 다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당시의 군생할은 한마디로 무지막지했다@@바른소리-i8k
무장구보 평가는 총원 통과시 기준이라
쓰러지면 들고서라도 뜀
그래서 몸을 묶어놓은거
(저 인원이 다 들어와야 기록인정)
아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냥 무심코 저 이병 오늘 훈련 끝나고 혼나겠구만 하고있었는데 그런 기준이었군요.
@@TV-nh9fh이병이 무장구보중에 병기 빼앗기면 뭐..ㅈ..
사단체육대회 한종목임... 내가 88년도 유경험자... 호각부는 하사가 제일 힘들겠다고 생각하며 뛰었다... 도착후 게거품 무는 해병을봤다
@@마조리카-t8l 총원통과기준이라
옆에 일상병들이 병기, 무장 들어주고
밀어주다가 정 안되면 쓰러진애 들고 뛰어요
마지막엔 끈 안에 인원들 다 개거품 뭅니다
86년백골부대복무하면서 산악구보할때 생각납니다
대한민국 국군파이팅!
82~84 복무했네요
유격 들어가서 문혜리 에스커브 구보 힘들었지요
저도 86년열쇠
저도86ㅡ3월
양구21사
완전군장산악구보생각나네요😢
백골! 97군번입니다 ㅎㅎㅎㅎ
백골 97군번입니다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군에 갔다오지않은 입으로만떠드는 국회의원 들을 병영체험에 보내야합니다
30년 짜리 병영체험을 보내야 합니다.
유격 2달짜리로 보내야함.천리행군 포함.
감사합니다ㆍ
대한민국 국군 만세
대한민국 해병대원 고마워요ㆍ
화이팅ㆍ
748기 수색출신입니다 선후배분들 훈련할때가 가장 행복 했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저분들께 무조건 감사함을 가져야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합니다. 🙏🙏
졸병때 구보 저거 완전히 지옥이더니만 상병 다니까 좀 적응되더라.
원래 짬 먹으면 다 할만하잖아요....ㅎㅎ
아니던데 일이병땐 긴장해서 힘든줄도몰랏는데 상병장되니간
귀찮아서 힘들어디지는줄..
상병때까지 걸렸냐?
고문관인가?
일주일만 뜀박질해도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더만
@@꿀방구그래 너 잘남
@@사람-y1s 응 고마워
볼때마다 울컥함.
해병 전역한 아들놈 생각나네.
아들이었으면 물해병 일 때.
@@현-h6s6y참 나~~~
인성 하고는...
@@현-h6s6y물해병 이면 당신은 어디 출신인데 물해병 이레도 땅깨가 견줄만 하다 생각하나 당신같은 사람 때문에 서로 헐뜻고 싸우는거야 줫도 고생도 안해본기
카리스마 멋있어~!
울컥함
@@현-h6s6y군대나 갔다왔나 야간사격 때 강물에 빠저봤냐 점호끝나고 집합때 안맞아봤지 해병대 욕하지마라 뭐도 아닌게 까불고 있어
정말 댓글처럼 존경스럽네요
어린 군인 분들 너무 쨘합니다
총은 k2인데
군장은 625때 쓰던거?
무장구보는 진짜로 중압감 100%의 훈련이다
처음부터 구보로 충분한 단련후에 하더라도 호흡을 두번 내쉬고 두번 들이쉬고 발을 맞춰서 전체의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지휘자가 살펴보면서 조정을 잘해야...
시간 단축도 중요하겠지만 소대원일동이나 중대원 일동이 낙오없이 함께 달성하는게 대단히 중요하기에....
해병대 뿐이아니고 모든 군장병들이 주인공입니다.😊
멋져요 대한의청년들 그대들이 애국자고 영웅입니다
빡센 훈령중에도 후임 위하는 마음 대단하네 ...! 👍
지친 이등병을 위하여 총과 군장을 대신 들어주는 선임하사 고참? 감동입니다
나중에 개갈굼과 구타작렬 ㅋ
구보 끝나고 니 위 내 밑으로...😅
카메라 있으니 저랬겠죠.
카메라의 힘~!
카메라 있든 없든 저렇게 들어주고 도와줍니다@@soul5490
주고 나면
저분들 훈장을 받아야할분들이다.
저래야 전쟁나도 싸워서 이기지.
@@cyuseob저 군단 특공대였는데 3사단 수쌕아저씨들 재미졌음
지금의 군인은 마네킹이지.
대 간첩작전하면.그 없는 간부만 끊임 없이 죽어나올것이다.
전진시키려면 30분은 연설해야
30cm움직이고.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야 한다고 나
하고.
스카웃 잼버리 하나 똑바로 못하는 나라입니다
전쟁나면 자위대가 먼저들어올듯한데
잼버리 하나 못하는 나라가 뭘한다고 ㅋㅋ
어느군인이나 늘하는거아닌가 요즘안하나
멋진 해병대!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92년도 제가근무했던1사단
분기별로 완전무장구보 평가.
평가보기 1달전부터 동영상 처럼
줄얶어서 연습했는데. 힘들어지만
그때가 그립습니다.
필승690기입니다.
같은시기 하사였네요
오~난 678기. 33대대
@@bigbossman71 33대대 누구냐
32대대 동기다. (678기 임훈규)
@@zio-nk2wh 난 김두환이다. 반갑다 동기야~~~
저시절 해병대를 지금 해병대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된다 ㅋㅋㅋㅋㅋ
나도 저 시절 해병이지만,
선.후임 다 해병이다!
저때가 해병대이다
해병은 흘러도 해병임
😊진짜
믿음직스러운 ~북 어디라도상륙가능할듯~저정신해병대 자부심~
지금 해병도, 일반 군인도 다 고생하는데 이런 댓글은
좀 쓰지 마라. 너 같은 애들 때문에 군 인권 향상이 더뎌지는거다.
80년대초 포항근무
매주 토요일 마다 무장구보
그모습 이네요.
지금은 환갑이 지나고
그때 그시절이 생각납니다.
자랑스러워도 됨니다
80년대 초 병으로 근무하셨다면 3백자 ~4백자 중반정도 되시겠습니다.저는 457 부산 영남 징집기수입니다
저도 82~84년제대 포항22대대 출신입니다~반갑습니다~^^
@@제임스영-i2g 남편이 80년대에 포항에 있었던데...제주도에서도 있었구요
필승 417기 입니다
저기서 방독면 착용해서 구보할때가
내생애 가장 힘든 구보였다
습기찬 방독면 틈사이로 시야를 확보하던
그시절… 눈물나게 그립네
악악악!
그것에 더해서 판초우의 입고 뛰었습니다....
일반우의가 얼마나 부럽던지
@@goldkoogi-그것에 더해 납덩이로 된 방탄조끼입고 뛰었습니다
그것에 더해 완전군장에 M60메고 뛰었슴다.
소총들고 뛰던 애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청풍-d6x m60인정 합니다 같이 뛰면서 m60둘러맨 선임 60mm포판 울러메고 뛰는 해병보고 난 힘들다는 표시도 못했습니다 필승 728기입니다
그것에 더해 완전군장에 81미리 박격포 탄약병인데 고폭탄4개 군장에 매고 뛰었습니다.. 포신 들고 뛰던 애들이 어찌나 부러운지....
71년도 김신조 북한군은 완전무장 12km 1시간 주파한다고 해서 해병대는 50분 목표로 연습함 부대별 측정검열 받기전 연습때 완전군장 하고 축구공 만한 돌들고 연습 검열시 48분 통과함
체력이 약해 구보땐 중대기 들고 선두에서 뛰었다 낙오하면 대우못받으니...저때 하사관들 달리봤다 숨도 못쉬겠는데 저렇게 첨부터 끝까지 호각불고 뛰니...
하사란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우리는 간부니까요. 군인의 명예는 병이나 간부나 동등하지만 병들에 비해 더 많은 권한과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봉급을 받았지요.
더 큰 책임감으로 병들을 챙기고 지휘하라는 국가와 국민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80~90년대 선배님들 덕분인지 2000년대 해병대 지원율이 제일 높았습니다
덕분에 멋있는 선후배들이랑 군생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ㅋㅋ IMF 때라.😅
지금 이시간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으로 헌신해 주는 모든 국군 장병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호각 부는 소대장 죽음이다
계속 호각 불며 뛰어야하니
머리가 어질 어질 할듯
ㄴㄴ 병분대장 또는 하사관 분대장이 불어요
저도 분대장때 호각 불며 구보및 인솔 했습니다
@@wjdfksk4569 호각불며 뛰면 힘들거 같은데 힘든가요?
호각불다가 힘들면 군가시키고 좀 숨돌립니다 ㅋㅋㅋㅋ
소대장이 아니고 하사, 요즘말로 부사관
@@K귤물제 2 번호붙여~가 ! ㅎㅎ
가슴에 연대 표시마크 파란것늘 보니 3연대 맞구만. 무장구보는 3연대지. 신호줄 묶어서 낙오 못하게 하고 속도 조절은 뒤에서 신호줄 잡고 있는 병장이나 짬밥분대장이 당겼다 놓았다. 킹콩 3연대 무장구보 8연패의 신화.
해병대 창설기념일 4월 15일 체육대회.
9월 28일 서울수복기념 체육대회.
80년대 초반 20대 내 청춘이여~
각 연대마다 중간 중간에 무전병이 출발신호와 함께 시간을 잽니다. 각 연대 무전병이 통과 시간을 무전으로 날리면 뒤에 앰블란스에 주임상사는 시간조절을 계산해 속도증가, 속도감소 하라고 핸드마이크로 소리치면 속도증가, 속도감소하며 결승지점을 향하여 개발에 땀나도록 뛰고 혹시 증간에 무장속에 내용물 빼돌렸는지 저울갔다 놓고 무장 무게를 측정했지요.
1등하라고 14박 15일 휴가증을 비닐에 싸서 철모속에 넣고 뛰었던 기억.
각 보병연대장들은 3연대 이겨보려고 보병교육대에 직접 체대출신을 뽑았다는 정봉규 연대장의 훈시. 잠시 젊은 날 돌아봅니다.
해병대 장교들은 무장구보 구경만 할줄알지 뛰어 보지도못하지요 호각부는 부사관들 대단하다.사단 체육대회때 총력전 및 무장구보가 꽃치였는데
육군 88군번인데
얼룩무늬가 아니라
민짜군복입고 제대했는데
90년대까지
저 구형군장을 메고
구보하는 해병대
나도 딱 한번
신교대에서
저 날개모포달고
구형군장으로 훈련했는데
진짜 힘듭니다.
항상 해병대는
왜 보급순위에서 밀리는지
정말 잘못됐읍니다.
더 해주지는 못할 망정
왜 뒤쳐지게 지원합니까!
해병대가 해달라는건
조건달지 말고
무조건 해주세요
이제껏 요구도
눈치보느라 참고 산것같은데
정신력으로지킨 해병대
이제는 해달라고 하는거
무조건 해주세요.
3연대 같은데
파란색 명찰
힘내라 해병대~!!!
해병1사단 3연대인가 보네요?
40여년전에 저표식달고 무장구보하던때가 생각나네요~
대대장이 젤 앞장서 뛰니 낙오할 생각도 못하고 저렇게 힘들어 하는 대원이 있으면 한명은 소총,한명은 군장을 짊어주어 완주하도록 도와주던 우리의 고참들이 생각나네요
연대 마크는 해마다 표식이 바뀌는거로 아는데요 2*3*5연대 빨강 노랑 파랑 마크
@@서산마루-t4f 5연대는 없습니다
2,3,7연대이고 노랑,초록,파랑입니다.
포병11연대가 빨강 입니다.
요즈음은 해마다 바뀌는지 몰라도(바꾼다면 부대표식을 해마다
바꾼다는건 문제가 있겠지요)40여년전에 80년초에는 그랬습니다.
@@viva9447 우리때는 5연대 있어음
빨강은 세모 11연대 포병/하도 오래돼 기억이 가물가물 ??
@@서산마루-t4f 5연대가 2사단 강화도여서 1사단 포항2,3,7연대 말씀한신것 같네요.. 1,5,8연대는 2사단.. 오랫만에 강화도 놀러갔는데 연대가 전부 여단으로 명칭이 바꼈네요..
우리영감 해병 의장대 222기
월남참전
평생 군대 이야기 늙으니까 더함
저때 해병은 인정,지금은 단독군장에 활동화.
그거 인정해서 뭐함?
지금도 평화유지하기위해
본인 인생의 일분일초가 삭제되면서
희생당하는 애들인데 충분히 존중해 줘야 하는거 아니야? 진짜 어떤 인생을 살면 너같이 생각하냐...
@@susu-kx6km 미필이야 아님여자야?
@@수환-o1j 차라리 정신병자보단 미필,여자가 낫지ㅋㅋ 애들 고생하는데 까내리고싶냐 ㅋㅋㅋㅋ
나 125×기인데 우리도 사격훈련 갔다오면서 완전무장 구보했는데??@@수환-o1j
@@susu-kx6km
그게 중요하냐?
현실적으로 지금 편해지다 못해 군대? 군인인지 고등학교 학생들 정신 상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망가졌다 보는데? 생각해라 감성적 변호가 다가 아니다
30대 40대 50대 더 가서 60대까지 건장하신 선배들이 다시 입대 해도 더 믿음직스러울 거 같다.
인권 인권 외쳐도 선은 지켰어야 하는데 지금 군대는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그 선이 지켜지지 못했다 본다.
감성적 보호도 선을 지키지 못하면 지금 교권이 망가진 것처럼 과 같다
우리의 해병대 가슴이 뭉클합니다.
저거 앞에총 자세가 겁나 힘듦ㅠ 그냥 어깨에 메고 뛰기만 해도 살맛남
해보기는 했냐?ㅎ
우리 아들 군대 들어 가서요
갑자기 아들 생각 나내요
참으로 대단한
우리 아들 애요
멋진 군인 애요
훌륭한 아들 두셨습니다 더 튼튼한 믿음직한 ㅇ대한의 아들로 돌아올겁니다
해병대는 완전무장이라 하지 완전군장이라 하지 않음
88년도에 군생활 했어요 그때 완전군장 구보 많이 했지요.
군생활시절 생각이 많이 나네요.
삐 빅~삐빅~
저 호각소리가 그리워지는 세월이 됩니다.
악! 악!
우리나라의 최고 전사 해병대전우회원님!!정말정말 악으로깡으로 완전군장에 전투구보훈련하시느라 수고많으십니다 우리는 부교놯는다고 열씸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웬지 모르게 눈물나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시절! 진짜사나이가 되어가는 과정!
주말마다 무장구보 최고였지
또 군기 교육대 가기보다는 완전무장 연병장 뺑뺑이 하루종일 돌다 개거품 물어본적도 있고.
이병들 고참들 배고플까봐 추라이에 밥채겨서
연병장에서 밥도 먹고
개인적으로 무장구보 넘재밋게햇슴..훈련마무리할때 항상뛰었는데 동료들과 같이 뛰고오면 생활관 들어가기전에 등목하면..좋아죽었슴..
방독면쓰고뛰라고할때도있었는데 그게좀힘들었지만..그시절로다시돌아가고싶네요...
저건 구보 지휘자 호각이 지옥임 ㅋㅋㅋ
호각 호흡법 폐활량 ㅋㅋㅋ
1998년 4월1일 충북 영동군 민주지산에서 천리행군 중이던 5공수 여단 6명이 기상 악화로 탈진해 중대장 포함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폭설이 내려 급 저체온증 대대장은 행군을 중지하고 귀대해야한다고 상부에 보고 했지만 상부의 강행지시로 6명이 죽었다
정신력으로만 안되고 체력도 한계가 있고 강한사람이 있고 조금 모자란 사람도 있다
난 89-92년 군의관 출신이다
옛날에는 완전군장에 연병장 뺑뺑이 원산폭격이 기합의 기본이었다 지금처럼 실외온도 높은 여름에 야외훈련 금지 이런거 없었다 한여름 완전군장 해서 연병장 뺑뺑이 돌다가 의무대 많이 실려왔다 심하면 죽고
여간기합이 아니었다..
야레야레...
예전엔 뉴스도 안나고 그냥 개죽음
5여단 민주지산 사고는 미리 예측하지 못한 이상 악기상으로 인한 천재에 가까웠던 사고였다.
공교롭게도 사고가 난 4월1일은 특전사 창설기념일 이었고 사령부 예하 거의 모든부대가 체육대회와 기념행사를 하고 있던 시각에 야외내륙전술훈련 마지막 단계인 복귀행군(천리행군) 중 사고가 났다.
당일은 전국이 포근한 4월 봄비가 내리고 반바지 차림으로 운동을 하는 시기였는데...오전부터 행군을 하던 5공수여단 장병들은 오전에 맞던 비를 그대로 맞으며 1.100m가 넘는 민주지산으로 접어들었고 급기야 야간과 심야엔 눈보라와 기온 급강화로 인해 무방비 상태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임.
4월 봄날에 눈보라와 강풍... ...
대중선상님이 저지른 일이네요...
지금 시대였음 탄핵..ㅋ
99년 군번인데.. 진짜 위에 고참들
대단하신분들 엄청 많았습니다.
찐 군인들.
이등병 악으로 깡으로 멋지네
그때는 젊었는데....
80년대 33~군번
풀 군번 이 생각 나네 ㅎㅎㅎ
나두 33
3315 전라도 병력
@@소라지송어달
춘천 102보충대 쌍팔년ㅇ
11사 입니다.
팀에스 2번 국군의날 행사도 했었지요
팔도 사내들 다 있었던 기억나네요.
서울 전라 갱상 충청 특히 부산 동기들도 잘지내고 있겠지요
다들 보구싶다
저는 충청도 ....
멋진 해병들
그대들의 결의에 찬 훈련으로 안전한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강인한 우리의 해병 최고
해병은 자원이니 체력좀 되니 가능 강제 징병해서 저지랄하면 몇 잡는다
이거를 여중대장 너도 해보고 일주일도 안 된 훈련병을 시켜라 이 더러운 것아 ㅠㅠ
저도 할라면 체력 좋은 해병대 합격한 병사들이 적어도 6개월 이상 훈련 받아야 된다
고생이 많다. 자랑스럽고 또 젊음과 건강이 부럽다. 모두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길 빈다
군생활 생각하면 눈물이납니다. 세월이흘러 버렸다는게 너무 슬프네요.제일 젊을때 전성기때가 그립네요. 젊은날을 정말 알차게들 보냅시다. 술독 여독에빠지지마시고.
진정 애국자 분들입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한분한분 모든 군인분들 귀하고 소중하십니다
힘들텐데 노래를 하넹 ㅠ 저렇게 총들구 베낭 매구 뛰는거 ㄱㅐ힘들거 같은데 대신 들어주구 뛸정도면 체력이 얼마나 좋은걸까요? 화이팅요 모두 건강히 전역하시길 😊🤗
삐릿 삐릿 삐리릿삐~~생각만해도 진저리쳐지는음인데...40여년이지나서 들어보니... 그때가 행복한 시절이엇다....
군시절. 군장구보보다도 힘들었던건 전투화 바닥에 못이 튀어나와서. 뛸때마다 고통이였음...
이었음
육군 사병들도 다들 이정도는 다 해야하는데 나라가 걱정됩니다
훈련시 땀한방울이 피한방울 줄인다는 명언
육군은 하는곳은 더하면 더했고 안하는곳은 안하고 전후방 차이가 심하죠
누구를 위해서?
육군은 하면 죽습니다.
@@찬희-b2w ㅋㅋ지랄하네
육군 수색대.특공대는
해병대처럼 깝죽거리지도않고
훨씬더많은 훈련을했단다.
해병은 특별하냐?
주뎅이만 특별하지.ㅋ
❤ 해병대는 제발 생존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입대기키지 말아야 한다.
완전군장으로 81미리 박격포 포열18키로 포다리 13키로 포판11.3키로 들고 산으로 가봐야 내 맘을 알지요
그심정압니다 ㅡ저도중화기중대 81미리 출신입니다
해병2사단 부대서 애기봉 까지 마라톤거리 완전무장 구보후 부대 복귀 대열후 오바이트 입에 한가득 기압때문에 뱉지도 못하고 삼켰다가 나오면 또삼키고 ㅎ 그때가 그리운ᆢ
어휴 무장구보 생각만해도 신나네 ㅋㅋ
저 당시 해병대 안경쓴 병사가 한명도 안보이네요
저때는 시력이 좋은 사람만 뽑았어요.징집기수들중에 시력이 나쁜 친구들있어도 부대내에선 안경낀 사람도 잘없고요.
지금도 특전사등 특수부대는 안경낀 사람없음 특수부대가아닌 해병대가 저랬다는건 역시 해병은 유별낫다는거지.. 지금은 해병도 육군만큼 안경쓴사람 많데
@@johnlee4798당시 거의 0.8 이상만 지원가능했음...드물게 안경낀 병사가 있긴했음. 나도 그랬고 그리고 유별난게 아니고 해병대 자체가 상륙작전하는 특수목적군이기 때문에 그럴수 밖에 없었음
91년 입대했는데 당시 시력기준이 0.8 이상이었어요. 50넘은 선임하사님 돋보기 정도외에는 안경낀 사람은 없었죠.
@@Ibbong
예 없었습니다...신검때 시력표 외워서 속이고 억지로 가끔 들오온 병사들도 선임들이 후임들 안경 못끼게 갈구고 했지요 ...나도 안경 착용했지만 특기병으로 스카웃 돠서 들어온 덕에 간부들 비호?아래 균생활 했어요
그런데 해병대는 군 특성상 이왕이면 시력 좋은 병사 원하는게 이해가 갑니다.
지금 저케 구보하면 가혹행위 라고 국방부 계시판 사단 계시판 부모들 항의 뎃글들 넘쳐나고 훈련 열외 시켜달라고 전화 넣고 하지 ㅋㅋ
걱정이다.
난 87군번 이다.
지금 군대가 걱정 이다 .
너무 약하다.
90 군번식으로 행동 필요
인구가 적어 그렇다 적으면 귀하게 취급하는거
멋진 사나이들
나는 육군 11사단 출신인데 78년도에 우리 선배들은 12km완전 무장 구보를 45분에 돌파 했었다.
12키로를 45분?? 맨몸이겠지!!
선출만 모았나... 말이안되는 속도인데
10키로겠지 당시 육군에 12키로 구보하는데는 없던거로 아는데 10키로 58분내 들어와야 하는데 대부분 45분내로 들어옴 76년 입대 79년 제대시 원주 1군 사령부근무
정말로 말도 안되는 체력들입니다 완전무장
12키로를 45분에 돌파?
믿기지가 않습니다
12km 45분이라는 주파 시간은 완전하게 허구입니다.
특공연대 복무시 1992년 경 평지기준
10km 측정시 56분~1시간
잘 뛰는 팀은 최대 50~53분에 주파를 했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뛰어본 사람은 모두 공감을 할 겁니다.
10km은 맨몸으로 잘 뛰는 사람도 32~38분 입니다.
10km 45분 주파도 완전군장 상태에 허구입니다! 8km 정도의 거리를 10km로 산정하고 측정한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나도11사 78년4월 군번인데.행군 .구보.사격.때권도. 지겹도록
저거 주면 들가서 뒤지게 쳐맞고 짬대우 못받고..
지금 생각해보면, 저 끝도 없이 부르는 군가가 고통을 잊게해준 활력제였던듯..
병장 월급도 몇천원 하던시절
어느덧 이제는 내년이면 병장월급 200만원을 넘긴다네요. 하사관 분들이 불쌍합니다. 병도 중요하지만, 하사관은 계속있을 직장인데, 더 대우를 해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이면 일부 하사관들은 병장들보다 월급이 적어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인나라병장 몇달한다고 하사관 걱정들 하는지 당췌 아해불가...병장이 부러우면 병장 생활하고 하사관 지원하면 됨.
@@gmvisck하사는 초임이어도 병장보다 월급 높아야 정상임
옛날 저 악끼는 어디로 갓을까ᆢ
아들이 해병대 간다고 지원을 했습니다.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아들인데
늠늠하게 씩씩하게 우리 아들들
잘 이겨내고 버티면 좋겠읍니다.
방송국놈들 저런거좀 하지말아라 얼마나 힘드냐
방송국촬영땜에 찍은게아니라
매주 했어요
분기별로는 무장구보 대회가있어서 1등은 포상휴가나가고했습니다
훈단에서 완전군장 3km 구보해봣는데 힘들다기보단 걍 기분 개 좋음 순가부를때 평소보다 더 크게 부름 교관들 개 좋아함 동기한명 햄스트링 나갔는데도 울면서 다리 부여잡으면서 뛰더라 교관이 그만하라했는데도 울면서 할수 있다면서 그거보고 더 끓어올라서 군가 더 크게 부름 그랬더니 앞에서 같이 뛰던 교관 “좋아!!” 엄지 척 해줌 그리고 오천시교장에 도착해서 제자리뛰어 몇번하다가 제자리에 서 햇는데 그동기 쓰러지더라 근데 우리 동기들 다같이 움 사람이 악에받치면 어떻게 되는지 그때 배움
무장구보에서 가장 금기시되는게 구보중에 군가인데... 저날엔 속도측정 안했나보네..
군가를 부르는거는 아주아주 약간의 속도조절효과와 함께 군가를 부르면서 호흡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저걸보니 눈물난다 창원에서~상남 각개전투장 완전군장 m/1총들고 길이나좋나 완전비포장에 먼지퍽마시면서 부모형제 나를믿고 단잠을 이룬다 35개월21일군대생활 지금전쟁나면 총들고최전방 먼저간다
채상병 사건 이후 장남이 지원 포기 했습니다
계급장이 아직 저시인성으로 바뀌지 않은 시기였으니 1996년 이전의 해병대 무장 완전군장 구보시절 영상이네요... 또한 무장완전군장 구보는 육군의 경우 대부분 1991년 전후로 사라졌는데 해병은 그 이후에도 있었군요... 개인화기도 M16A1에 이어 K2로 초도 신품 받아서 검정색의 새것이고(육군의 경우 3군사령부 예하 상비 예비사단은 1985년부터 K2초도 지급 1980년대 말에는 서울 북부 경기 강원일부 지역 부대는 K2소총 무장했음 우리부대는 1987년도에 M16A1과 20발탄창 반납하고 신품 K2와 30발 바나나탄창 지급되었음)... 근데 군장이 2차세계대전 부터 6.25전쟁.베트남 전쟁에서 1980년대 까지 사용하던 모포 말아서 각잡고 군화 꾸겨넣고 묶어서 메다는 구형군장이네요...(저 구형 군장의 배낭끈이 우리가 탄띠에 결속해 어께에 메는 X반도임...) 우리육군 상비사단 에선 1980년대 중후반 부터 현재의 등산배낭 형태로 알류미늄 지지대가 있는 군용전투군장을 사용했는데... 참 해병대의 저당시(대충봐도 얼룩무늬 전투복이고 장교계급장 백색에 병사들의 계급장은 노란색 새우깡이면 1993~1996년 사이임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사건당시 즉시 검정색 저시인성 명찰과 계급장으로 급히 변경하였음 ) 군장류 상태가 참 거시기 하군요...
옛날 영상보면 해병대 DI 이정구 하사가 밤에 훈련병을 너무 심하게 기합준걸을 알고 DI 고참이 이정구하사에게 얘들 체력 봐 가면서 기합을 주라고 충고한다
체력이 견딜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못 견딜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번 육군 훈련병 사망 사고처럼
이렇게 뒤쳐지는 병사는 도와줘야 한다
계급장보니 선배님들이시네요.
정말 짜세납니다.천자봉 행군할때 무장 2개매고 간 기억이 나네요😊
좋은영상 감사드립니다 ^^
구독박았습니다 🎉🎉🎉
무적해병
귀신도 잡는다..
팔각모는 오직 조국만을....
정치 나부랭이들에게 휘둘리지 마라
이게 해병이요!!믿음,신뢰, 존엄에 해병..그러나 작금에 해병대는 어쩔거나????!!!!윗대가리들이..지랄을 해놔서..어찌 국민에 믿음과 신뢰를 회복할라나!!!!
완전군장 대대본부에서 사방거리 반환점 돌아 먼지길 대대복귀까지
그것도 분대장직책에 호각에 구령에
복귀까지 완전그로기 녹초가되었지
물론 낙오병도 있었지만
78년도 군생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네
와~~~ 정말 대단하다.
멋있다. 해병대
구보할 때 뒤쳐지는 병사를 도와주는 가장 도움되는 방법은 총기와 군장을 들어주는 방법 보다는 내 몸끝을 잡고 따라오게 하는 방법입니다. 내가 뛰는 속도보다 빨라서 힘든 것이니 잘하는 고참을 잡고 잠시 끌려 가다보면 기력을 되찾고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수 있습니다...내가 이등병 때 10 km 50분주파구보에서 5km 이후부터 약 2km 정도를 나를 도와준 병장의 군장을 붙잡고 무사히 완주를 했었고 내가 병장 때 나 역시 후임병 군장을 대신 매고 내군장끈을 잡고 이끌며 완주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군장을 두배로 매고 후임을 끌고 가면서도 지치지 않는 내가 스스로도 신기했었다...
얼차려도 힘든걸알고 봐가며시켰고 기합도 상태나 체력을보면서 시켰고 동료가힘들어하면 동료나 고참들이 거들어주었던시절이죠.얼마전 여군중대장이 그딴짓을 했을때 주변에서 아무도 말리거나 제지하거나 막아주질못하고 동조하고 아주비겁한 행동들입니다 이영상을보니 주변동료해병들이 자랑스러워보입니다
저거. 89년 입대. 91년 제대한
617기 인데.해병 1사단
군부대내 무장구보 12k대회인데. .한명 쓰러지면.
2분 페널티. 이상한 약먹이고
합숙훈련 하먼서 개고생한거
기억나네.
역시 해병... 멋있어요
해병대 전통과
맥을이어가는
포항 3연대
장병들 이시군요,
역시 해병대 다워요
15년도 훈단에서 천자봉올라갈때 제일뒤에서 뒤쳐져있던 나를 보고앞에가던 동기들이 내뒤로내려와 내등을 밀어주던게 기억나네
8-90 년대는 해군 해병 경쟁률이 쌜수박에 없었음 태어난 인구가 많았고 지원자가 많아서 지금은 인구가 줄어서 정신병자도 간혹 입대자중에 섞여있다는데.
82년도 해병대 입대 했을 때 사단 무장 구보 경진대회 준비를 저렇게 했었다.
평지를 달리거나 맑은 날씨에는 그나마 좀 할만 했다.
언덕을 통과 해야 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죽은 목숨이었다.
당시에 무장은 지금처럼 방수가 된다거나 경량화 된 무장이 아니었다. 천으로 된 것에 담요를 두룬 무장인데 이것이 비에 젖으면 돌덩어리 처럼 느껴졌다.
골인 지점에 도착해서도 바로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냥 널부러져서 한참을 숨만 깔닥거리고 있어야 했다.
해병은 대한민국 건아들의 대명사~~❤❤❤
899기입니다.
쫄병무장구보때 군가.앞에총.완전군장보다
옆에선임이 목소리더크게 내라는 눈빛과 갈굼이 더숨찼었습니다ㅋ
아.. 저 호각소리는 아직도 문득문득 귓가에맴돈다
어쩔때는 나혼자 걷거나 뛸때도 혼자 삐빅삐빅 삐빅삐빅 삑삐~ 삑삐 삑삐~ 삑삐 입으로 소리내고있음
이명소리 입니다 이비인후과 다녀오세요
9공수 특전여단에서 완전군장하고 산악구보하던때가 생각나네요. 1초라도 기록단축하려고 뛰다가 구르기도하고 했었는데 지금은 걷는 것도 귀찮다는 😂😂😂
800기 초반 기수 해병대 출신 친구가 하는말이 1000기 이후는 해병대 아니다 해병캠프다~ㅋㅋㅋ
멋지다 팔각모 싸나이들!
미친듯이 악으로 깡으로 뛰었다 오로지 시간내 도착으로. 쓰러짐 디지는겨
80년대 지옥훈련기수 배가 너무 고파 짠밥통 버려놓은거 씻어서 묵었네.
대단하네 난육군보병출신인데 저렇게까진 못했고
군기교육대 입소해서 오전내내 영외까지 나가서
오전내내 뛰었어도 50분 구보에 10분씩 쉬고
그랬었는데 해병은 극한으로 몰아치네 멋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