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장교분이시네요. 참고로 저는 80년 중반 군번인데 제 동기가 취사병인데 어느날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찌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은 그냥 기름만 둥둥 떠다니기에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제 동기 왈 " 오자마자 제일 좋은걸 부대장님 숙소로 절반 배달, 그리고 점심때 중대장님 오셔서 나머지중 절반 갈취, 그리고 남은것중 또 절반은 주임상사랑 그 찌그래기들이 결국 부대원 전체에게는 12.5%만 배달............... 정말 욕 나오더군요.
저도80초반군번입니다. 진짜 너무 많이 맞았어요. 얼차례를 너무 심하게 뙤약볕에서 오니종일 받고 순간 어지럼증으로 다리가 풀려서 쓰러졌는데 의무반에서 잘 먹여라해서 간부지시가 내려 갔는데 고참들이 역으로 많은 식사를 주고 남기면 죽인다고 ㅠㅠ 먹고토하고 ㅠㅠ 유독 괴롭히는 악질 고참이 있었는데 대구 수영선수 출신 차재동 입니다 아시는분 연락 주세요 환갑이 넘었지만 꼭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이 나라의 국방비는 모자라는게 아니라 새는게 너무 많았던거다"라는 생각을 각인시켰던 과거의 기억들... 형님들로부터 들었던 돼지가 장화 신고 지나간 물로 끓여내는 돼지국이나 소가 트름한 공기 담아 끓여내는 소고기국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원래 그런가보다 했었음. 그런데 막상 대전의 육군통신학교를 가니 배식을할때 중대 단위로 하는데 기간병들이 밥, 국, 및 각각 그날의 찬들을 따로 대형 그릇에 담아 놓고 인원을 대면 그 인원 * 무게를 저울로 달아서 주는 거임. 놀라운 거는 소고기는 가라앉고 돼지고기는 뜬다는 말을 당시 특공연대 창설멤버였던 형으로부터 들었던터라 내가 배식 당번이 되면 그렇게 했는데도 식깡에 고기가 왕창 남아 이걸 안 걸리게 눈치 보며 버리고 학과 올라갔던 기억과 닭은 반마리(?)였는지 300그램 정도 였는지... 그게 육군 정량이었음. 워낙 외부인사가 많이오고 종종 교육생들에게 질문들을 해대니 달달 외우게 시켰던 기억이. 근데 자대 가니 거기는 개 차반. 다시 산 위로 파견가니 여기 저시서 다 빼다가 먹어도 고기는 넉넉하더라는.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샜었다는건지? 그게 80년대였는데 아직도 그런다면 관리 못한 장성들부터 다 갈아 엎어야 함. 아무 곳이나 부대 불시 점검 몇 번만 하면 확 달라짐. 유류남겨 빼돌리고, 훈련핑계로 수백페어짜리 고가의 통신케이블을 수십킬로미터씩 가설시험후 바로 겉어서 업자불러 팔아 넘기고 하다하다 격오지 파견수당,야식수당, 생명수당까지 착복했다 걸려 물어내고 나간 중대장에... 아련한 기억들이...
저도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지요, 제가 막 군대를 제대한 1981년 10월 이었습니다. 여자 친구와 부산에 놀러 갔었는데 전 당시 입대하고 부산의 군수 사령부에 이등병 이었던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이고 여자친구는 외삼촌 댁에 간 것이었는데 토요일 오후 3시쯤 되어서 나 여자친구 그리고 부산에서 합류한 여자 친구의 친구 셋이 군수 사령부에 이등병 면회를 갔었지요 위병소에서 면회신청을 했는데 시간이 늦은데다 지금 경계 근무중이라 40여분후 교대하고 나면 면회시간이 거의 끝나니 내일 다시 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위병 조장이 말하기에 수긍하고 돌아 서려는데 같이 갔던 여자친구 친구가 잠깐 전화 쓰겠다고 부탁하여 위병소 전화로 누군가와 통화 하고 나더니 한시간만 기다리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하며 방문록을 기록 하더라고요 이게 나중에 사단을 일으킵니다.. 영문을 몰라 면회실 한쪽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당시 군대에서 이등병 면회 왔는데 면회시간 다되어서 허락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었거든요 저희도 경계 근무 나간 것은 알지 못하고 면회시간이 한시간반쯤은 남아 있으니 어차피 외출 외박도 안되는 이등병 면회실에서 보고 갈 생각 이었거든요.. 기다리다 보니 진짜 친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면회실에 들어오는 겁니다, 그러더니 어떻게 된거냐고 묻기에 나도 모른다고 하며 여자친구의 친구를 소개하며 이분이 전화하고 기다리라기에 기다렸다 했지요... 글쎄 이 친구가 외박증 까지 들고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나가자 하고 자갈치 시장으로 가서 회에 술을 곁들여 저녁을 먹으며 여친의 친구에게 어떻게 한거냐고 물어보자 놀라운 답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부대의 대빵 군수 사령관(3스타) 이라고요 아빠한테 전화해서 친구들이랑 면회 왔는데 면회 할 수 없냐고 물었더니 "근무 끝나는 대로 보내줄께"!! 이렇게 된 겁니다... 실컷 먹고 같이 어울리다가 여친과 친구는 같이 외삼촌 댁에 갔고 우린 다시 포차에서 한잔 더하고 다음날 도로 모여서 을숙도 갈대밭에 갔다가 태종대 구경하고 했는데 밤 늦게 점호전 까지 돌아가면 되었지만 이등병인 친구는 부담 스러웠는지 들어가겠다 해서 먹을 것 한보따리 죄어주고 갖고있던 현금도 줘서 6시 이전에 돌려 보냈습니다... 나중에 이 친구가 휴가 나와서 나에게 고맙다고 그야말로 군대생활 꽃피었다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친 친구가 방명록을 쓰면서 관계란에 애인 이라고 써 버린 겁니다, 사령관이 당직 사령에게 "딸이 친구 면회 왔는데 이등병이라 오래는 안되고 하루 내 보내줘" 했는데 딸이 애인 이라고 했으니 부대에 소문이 돌면서 특별 관리대상이 되어 당시 군수사령부의 일인 전승 최고의 보직인 미군 연락 담당이 된 겁니다.. 요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는 그런 보직이 있었답니다, 일부 공유 소모품이나 보급품들을 주고받는 일들이 있었고 그 업무를 담당하는 특수한 직책 이었으니 당시 일반 병으로 누구의 간섭도 없는 이만한 보직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 물론 그 둘이 연결된 것은 아니고 따로따로 결혼해서 잘들 살고 있지요, 저와 여친은 이제 한집에서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두사람을 따로따로 보지만 그때 이야기 하며 가끔씩 웃습니다...
울아버지 어렸을때 논산훈련소 옆에 살았었는데 할아버지가 논산훈련고 장교식당 요리사 였어서 ㅎㅎ 그때 쌀 빼돌리다 잡혀간 부사관도 많았고 ㅎㅎ 새벽 아침부터 아부지 친구랑 부대 앞 도로에서 군인이 교통정리 하는거 시늉했다 지나가던 별님이 보고 부대가 난리났었던 것도 있었고 ㅎㅎ 이거 보니 생각나냉 ㅎㅎ
당시 대학교2학년(매 학기)까지 남자는 필수이수 과목으로 군사과목(교련) 이 있었습니다. 86년 즈음 폐지 된 것으로 압니다. 1학년은 군사교육외에 문무대(훈련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5박6일과 2학년 때는 전방부대(GOP철책 2박3일 근무 포함) 5박6일도 갔다 옵니다. 그래서 대학 2학년까지 마치고 입대하면 2년 동안 교련 이수한 시간을 감안하여 3개월 축소해 준 것으로 압니다. 따라서 1학년 입학하고 입대하면 축소 없습니다. 대학생이라 줄여준 것이라 아니라 교련과목 이수기간을 감안하여 축소해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말씀하신 대로 선임으로부터 말 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youngbeompark8760 대학교련 이수하면 3개월이 아니라 1학년 교련에 1,5개월 즉 2학년까지 교련을 이수하고 군에 가면 3개월 혜택.. 최고로 대학 4년간 교련을 이수하면 6개월까지 ,,, 중간에 대학 2년간만 교련이 줄었지만 나이를 똭채워 군에 왔던 사람중에 6개월 혜택자도 있었죠 제대하기 전날 고참에게 불려가 한따까리하고 제대하기도,,
여기가 아닌가벼 ? 저는 84년 7월 군번입니다. 수도권에 위치한 모 부대에 근무했고 그 부대가 있던 산 중턱이 거의 10년동안 민둥산이 된 이야기인데 제가 근무하던 당시에 전국 부대에는 테니스장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연대가 테니스장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당장 그 옆 부대원들은 테니스장 만들기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목적은 군인들의 건전한 취미 생활이었지만 뭐 아시겠지만 그건 장교 전용입니다. 어째든 우리 부대도 테니스장 열풍에 휩싸였고 부대원 대부분이 본부 중대장님이 지정한 산 중턱에 올라가서 거의 한달동안 곡깽이랑 삽, 그리고 맨손으로 산 중턱을 아작냈습니다. 그리고 땅 평탄화 작업 한다고 땅 다지기용 롤러가 도착하는날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롤러. 그런데 작전장교님이 올라오셔서 하는말 여기가 아니다. 누가 여기로 지정했는지 몰라도 저 건너편 산이다. 순간 우리들은 잡은 곡깽이와 삽자루에 힘이 들어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난 74년 7월 군번 인데 대대장 당번병으로 제대 했어요 포병병과 포수 였는데 cp 근무하며 부식 수령병 추운데 고생한다 생각 했는데 친한 선임 제대 후 고백 한달에 50만원씩 집에 송금 했다고 해 깜놀 당시 대대장 봉급이 34만원 방법은 고기 종류 사단서 구량계서 제대로 불출해 카피지 대로 저울 확인하고 군수장교 대대장 결재 받은 후 사단과 짠대로 앞에 1을 적으면 100키로 2를 적으면 200키로 빼 돌리는 거죠 구량계 선임하사.업자.부식 수령계 3등분 된 돈이 50만원 정도 였다고 합니다. 참 기가 찬 일이죠
과외병과는 없음. 관사 당번병에게 이것저것 온갖 일들을 시키고 부려 먹었는 데, 동향사람 선임병이어서 자연히 알게됨. 언젠가는 관사 당번병이 부당 대우 등으로 터뜨려놓아 사회에 알려지게 된 적도 있었는 데, 엄청 큰 파장으로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개복어"님, 옛 군대시절 추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내용이 다른 곳에서도 본듯하군요.... "장석조 감독"의 "오인용 데빌"을 보면 군대에서의 온갖 얘기들이 나옵니다^^ 은근 재미나기도 하지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과외병과는 없었고 공관사병^^ 사단 본부대나 직할대 소속이지만 비파(비공식파견)되어 모든 일에 열외입니다. 비슷한게 사단장이나 참모장 당번병이 있는데 사단본부대 소속이고 모든 교육.보초에 열외...단 잠은 점호이후에 내부반에서 잡니다.. 70~80년대는 부식부조리가 심해서 영상에 나오는 장국과 희멀건 김치 많이 먹어서 최고의 PX부식은 고추장이 였습니다. 아~그리고 당시에도 대학졸업이나 다니다 온 인력이 많았어요. 사단본부대에 절반은 대학물 먹은 애들...군종 정훈 감찰 경리...모두 고급인력. 난 졸업하고 입대해서 6개월 복무단축을 받았는데 6개월은 6년정도 긴 세월입니다^^ 고참들도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많았고 2~3단계 위 고참보다 먼저 제대^^ 27개월만에 제대했는데 24 개월에 병장 달았으니 병장진급후 3개월만에 전역했었네요. 오래된 추억이라 끄적여 봤습니다.
소고기국은 소가 장화를 싣고 지나간것 처럼 기름만 둥둥 떠있는데 그기름도 식용유 였읍니다 모내기도 뭘 주는 집을 중심으로 해줬읍니다 누구를 위한 김장인지 모르지요 보리와쌀을 섞어서 밥을 하는데 쌀을 팔아먹으니 보리 비중이 많을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배부르면 최고였지요 올해 손자가 해병대 입대 합니다
이야기는 사실적으로 들리는데, 씁쓸하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군대는 능력만으로 출세하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80년대 초반 군생활 하며 봤지만, 당시는 육사 출신이더라도 중대장 시절부터 줄타기를 잘해야 순조롭게 군생활이 가능하여 자기 봉급은 물론 항상 빚에 찌들어 살죠. 그런데 군단장이라... 얼마나 많이 갖다 바쳤고,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든 사람을 아는 게 아니라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예외는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높은 자리라고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미국에 30년 가까이 살던 여직원이 몇 년 전 영구 입국 하였는데 아들이 군대에 가서 자대 배치받고 한달인가 지나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그러더래요! 엄마 나 광심병사됐써!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탓에 한국어가 서투른데,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으니 관심병사로 지정해서 관리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은 스마일 뱃지 채워주니 좋았는데, 일병 달고 휴가 나와선 창피하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물론 지금은 한국어 마스터해서 관심병사 타이틀도 떼고 미국때를 다 벗었다고 여직원이 너무 좋아합니다! 당시엔 자기 아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 했는데, 중대장이 직접 전화해서 설명을 해줘서 안심했다고 하더라고요!
부조리가 가장 많은 집단중 하나가 군대입니다. 이유는 폐쇄적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처리되는 일이 많아서 문제가 있어도 잘 들어나지 않죠. 90년대 군번인데 당시 내부 부조리 고친다고 부조리 고발하라고 사병들 상대로 소원수리 많이 받았는데 그거 적어내면 반대로 병사들을 어떻게 관리했길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느냐며 비리척결보단 사병들 관리(?)에 더 치중하던 시대이죠. 한마디로 상급부대에서 감사가 나왔을때 이런 이야기 나오면 골치아프니 자체적으로 처리하도록 종용하던 시대입니다. 당연히 비리도 많죠. 군수과에서 얼마나 삥땅을 쳤는지 이주동안 감자 몇개 들어간 똥국에 양배추 김치에 씨알감자 두개 간장에 졸인거 이거 세개가 식단으로 나온적이 있었죠. 주임원사에게도 사연이 전해졌는지 나중에 주임원사님이 사병식당에 나와서 식사 한번 하시고는 이런 문제가 해결된적도 있습니다. 월남전 참전 용사이신데 무언의 항의로 간부식당 놔두시고 사병식당에서 식사를 하신거죠. 그 외 글로 다 적지는 못하지만 의무로 국가에 충성하는 이 나라의 자식들을 너무 도구로만 사용하던 시대였습니다. 국가를 위해 아무런 댓가도 받지 못하고 의무만 강요받던 시절인데 지금은 후배들이 좀더 나은 대우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군대는 않가는게 맞다는 생각는 드는건 그만큼 의무에 비해서 대우를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한것 같습니다. 부모님 생각하며 각종 부조리를 버티며 생활한게 엊그제 같은데 추억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추악한 과거네요. 오죽하면 `병사의 적은 간부다!` `전쟁나면 간부부터 쏴죽이겠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폐쇄적인 조직은 결국 썩어 문드러 집니다. 앞으로 더 군대는 변해야 합니다.
아래 어느 분의 댓글에도 나오지만, 고깃국 나오는 날에는 늘 고기는 없고 기름과 비계 한두 개만 둥둥 떠 있던 기억이 나네요. 부대 창립기념일에는 부대에서 짬밥 받아가서 돼지 키우는 인근 축산 농가 아저씨께서 돼지를 두 마리씩 주셨는데 그 날도 역시 국에는 기름과 비계만 잔뜩 있더라고요. 그 때는 말년이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금 여유있게 볼 수 있었는데, 그날 우연히 취사반 옆을 지나가다가 간부들이 좋은 살코기 부위를 다 떼어서 챙기는 모습을 봤더랬죠. '저런 짓을 하면서 부끄럽지 않은가, 나 같으면 창피해서 못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옛날 직업 군인들 중에는 양아치 같은 놈들도 꽤 있었습니다. 사회부적응자들이 먹고 살 길이 없으니 군대에 말뚝 박는 일들이 많았죠. 군대에서 횡령하고 병사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왕 노릇하고. 사회 어딜 가도 그렇게 편히 살 만한 곳은 없죠.
멧돼지가 교회에 쳐들어가 초코파이 약탈한 썰.....멧돼지가 교회에 쳐들어가 초코파이 약탈한 써어어얼!!!
이거 강력하게 희망합니다.
@@리마인드피씨 멧돼지가 사탄이라뇨? 어덯게 그런 심한 말을?
멧돼지지는 우리 국군의 주적입니다.
올곧은 사람이 시대의 풍파속에서 좋은 인연으로 잘 된 케이스셨네요
W
군단장님도 자기 동생 보라왔다는데 영창에 가 있다고 하니 순간 뻘쭘하면서도 전후사정 알게되니까 화나는 한편 얼굴 한번 본적 없는 동생인데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특할까 싶네요 예비군 1년찬데 저는 왜 그렇게 군생활 못했을까 아쉽습니다
80년대에 3스타 군단장이면 어마어마했을텐데 ㄷㄷ
아니 아버지가 저런분인데 할아버지분은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거얔ㅋㅋㅋㅋㅋㅋㅋㅋ
아버지가 70년대 대학생이셨으면 할아버지께서는 일단 6.25겪으신건 확정이니...
그것만으로도 파란만장으로는 어디가서 안꿀리시져 ㄷㄷ
@@useless_boring_life ㄷㄷㄷㄷ
모처럼 쉬원상쾌통쾌한 사연이네요 그시절 군수비리 대단했죠
정확히 이순신같으신 분이네요 딱 강직하고 성실하신 분
80년대 군단장 정도면 쿠테타 전두환 똘마니 노릇한 똥별인데 웬 이순신장군?
썰들이 전부 스펙타클하네요 홀리...
군단장 동생을 영창보냈다 생각하면ㅋㅋㅋㅋㅋㅋㅋㅋ
아우~~듣기만해도 정신이 혼미해집니다.ㅋㅋㅋㅋㅋ
그것도 비리를 항의했다고 영창보냄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걸리면 그냥 뭐 ㅋㅋㅋㅋ
저시절 군단장이면 와 지금도 어마어마한데......
할아버지가 그 시절 장교였는데 부사관들이 하도 빼돌리니까 부식 들어오는 날에는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본인이 지키고 섰다고 하더라고요
좋은 장교분이시네요.
참고로 저는 80년 중반 군번인데 제 동기가 취사병인데 어느날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찌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은 그냥 기름만 둥둥 떠다니기에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제 동기 왈 " 오자마자 제일 좋은걸 부대장님 숙소로 절반 배달, 그리고 점심때 중대장님 오셔서 나머지중 절반 갈취, 그리고 남은것중 또 절반은
주임상사랑 그 찌그래기들이 결국 부대원 전체에게는 12.5%만 배달...............
정말 욕 나오더군요.
와 과외병 내 초등학교때듣고 오늘 다시듣네 이거 90년대 까지 있었던 걸로 기억함. 원래는 농촌 아이들혹은 당시 학교를 제대로 못나온 장병들을 위해 있던 보직인데 장교들 개인과외병으로 변질된걸로 ㄷ
80년대초 해병대에서 군생활 30개월 한사람인데 가슴에 외닿네요, 훈련은 디지도록 시키면서 밥은 안줘~~? 메뉴에는 닭튀김인데 그당시 해군예하부대라 해군에서 엄청 해먹고 사단에서 해먹고 연대에서 해먹고 대대에서 해먹고 찌게병들이 해먹었으니 제대하는동안 먹은닭을 조립하면 닭한마리도 못먹었죠, 맨날 내장까지 넣고 끓인 동태국! 고추가루없고 국물만 시커먼게 무슨 사약 같았어요! 어려운시기였지만 어렵다고 느낄여유도 없었네요! 하루한번을 안맞으면 하루해가 진게 아니었지요! 글에 100% 공감이 갑니다! 그당시 전두환전통 시절인데 전두환씨 큰누님이랑 같이 살았고 어머님과는 계원이셨어요! 어려운거 없냐고 물으실때 한마디만 했어도 내인생은 바꼈겠죠, 간염에 허리,목 두드려 맞아 지금도 병원신세 자주집니다! 물론 제성격도 불같아서 억울하게 영창가서 군법에 넘길 지경이었는데 진실을을아신 대대장님께서 구해주셨네요 이기X대대장님 무탈하십니까?
저도80초반군번입니다. 진짜 너무 많이 맞았어요. 얼차례를 너무 심하게 뙤약볕에서 오니종일 받고 순간 어지럼증으로 다리가 풀려서 쓰러졌는데 의무반에서 잘 먹여라해서 간부지시가 내려 갔는데 고참들이 역으로 많은 식사를 주고 남기면 죽인다고 ㅠㅠ 먹고토하고 ㅠㅠ
유독 괴롭히는 악질 고참이 있었는데 대구 수영선수 출신 차재동 입니다 아시는분 연락 주세요 환갑이 넘었지만 꼭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저도 30개월 근무했습니다.
다만 저는 공군 95년군번입니다.
저희도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잠이 안오던 시절이었죠...
구타 얼차려의 끝을보고 제대했습니다!
81년도 입대한 사람입니다
그때 우리부대 구타금지 야간 집합금지 실현하신 최영철 병장님 존경합니다(김천여고 영어 선생님이었음)
저는 그래서 군대 구타 집합 이야기 잘 안믿었음
구타가 완전히 없으졌음
진짜 재밌는 사이다 썰이네
아버님도 멋지고, 군단장님도 멋지고 군종목사님(외할아버님)도 멋지다...
"이 나라의 국방비는 모자라는게 아니라
새는게 너무 많았던거다"라는 생각을 각인시켰던 과거의 기억들...
형님들로부터 들었던 돼지가 장화 신고 지나간 물로 끓여내는 돼지국이나
소가 트름한 공기 담아 끓여내는 소고기국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원래 그런가보다 했었음.
그런데 막상 대전의 육군통신학교를 가니 배식을할때 중대 단위로 하는데 기간병들이
밥, 국, 및 각각 그날의 찬들을 따로 대형 그릇에 담아 놓고 인원을 대면 그 인원 * 무게를 저울로 달아서 주는 거임.
놀라운 거는 소고기는 가라앉고 돼지고기는 뜬다는 말을 당시 특공연대 창설멤버였던 형으로부터 들었던터라
내가 배식 당번이 되면 그렇게 했는데도 식깡에 고기가 왕창 남아 이걸 안 걸리게 눈치 보며 버리고 학과 올라갔던 기억과
닭은 반마리(?)였는지 300그램 정도 였는지...
그게 육군 정량이었음.
워낙 외부인사가 많이오고 종종 교육생들에게 질문들을 해대니 달달 외우게 시켰던 기억이.
근데 자대 가니 거기는 개 차반.
다시 산 위로 파견가니 여기 저시서 다 빼다가 먹어도 고기는 넉넉하더라는.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샜었다는건지?
그게 80년대였는데 아직도 그런다면 관리 못한 장성들부터 다 갈아 엎어야 함.
아무 곳이나 부대 불시 점검 몇 번만 하면 확 달라짐.
유류남겨 빼돌리고, 훈련핑계로 수백페어짜리 고가의 통신케이블을 수십킬로미터씩 가설시험후 바로 겉어서 업자불러 팔아 넘기고
하다하다 격오지 파견수당,야식수당, 생명수당까지 착복했다 걸려 물어내고 나간 중대장에...
아련한 기억들이...
저도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지요, 제가 막 군대를 제대한 1981년 10월 이었습니다. 여자 친구와 부산에 놀러 갔었는데 전 당시 입대하고 부산의 군수 사령부에 이등병 이었던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이고 여자친구는 외삼촌 댁에 간 것이었는데 토요일 오후 3시쯤 되어서 나 여자친구 그리고 부산에서 합류한 여자 친구의 친구 셋이 군수 사령부에 이등병 면회를 갔었지요 위병소에서 면회신청을 했는데 시간이 늦은데다 지금 경계 근무중이라 40여분후 교대하고 나면 면회시간이 거의 끝나니 내일 다시 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위병 조장이 말하기에 수긍하고 돌아 서려는데 같이 갔던 여자친구 친구가 잠깐 전화 쓰겠다고 부탁하여 위병소 전화로 누군가와 통화 하고 나더니 한시간만 기다리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하며 방문록을 기록 하더라고요 이게 나중에 사단을 일으킵니다..
영문을 몰라 면회실 한쪽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당시 군대에서 이등병 면회 왔는데 면회시간 다되어서 허락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었거든요 저희도 경계 근무 나간 것은 알지 못하고 면회시간이 한시간반쯤은 남아 있으니 어차피 외출 외박도 안되는 이등병 면회실에서 보고 갈 생각 이었거든요.. 기다리다 보니 진짜 친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면회실에 들어오는 겁니다, 그러더니 어떻게 된거냐고 묻기에 나도 모른다고 하며 여자친구의 친구를 소개하며 이분이 전화하고 기다리라기에 기다렸다 했지요... 글쎄 이 친구가 외박증 까지 들고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나가자 하고 자갈치 시장으로 가서 회에 술을 곁들여 저녁을 먹으며 여친의 친구에게 어떻게 한거냐고 물어보자 놀라운 답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부대의 대빵 군수 사령관(3스타) 이라고요 아빠한테 전화해서 친구들이랑 면회 왔는데 면회 할 수 없냐고 물었더니 "근무 끝나는 대로 보내줄께"!! 이렇게 된 겁니다...
실컷 먹고 같이 어울리다가 여친과 친구는 같이 외삼촌 댁에 갔고 우린 다시 포차에서 한잔 더하고 다음날 도로 모여서 을숙도 갈대밭에 갔다가 태종대 구경하고 했는데 밤 늦게 점호전 까지 돌아가면 되었지만 이등병인 친구는 부담 스러웠는지 들어가겠다 해서 먹을 것 한보따리 죄어주고 갖고있던 현금도 줘서 6시 이전에 돌려 보냈습니다...
나중에 이 친구가 휴가 나와서 나에게 고맙다고 그야말로 군대생활 꽃피었다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친 친구가 방명록을 쓰면서 관계란에 애인 이라고 써 버린 겁니다, 사령관이 당직 사령에게 "딸이 친구 면회 왔는데 이등병이라 오래는 안되고 하루 내 보내줘" 했는데 딸이 애인 이라고 했으니 부대에 소문이 돌면서 특별 관리대상이 되어 당시 군수사령부의 일인 전승 최고의 보직인 미군 연락 담당이 된 겁니다.. 요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는 그런 보직이 있었답니다, 일부 공유 소모품이나 보급품들을 주고받는 일들이 있었고 그 업무를 담당하는 특수한 직책 이었으니 당시 일반 병으로 누구의 간섭도 없는 이만한 보직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 물론 그 둘이 연결된 것은 아니고 따로따로 결혼해서 잘들 살고 있지요, 저와 여친은 이제 한집에서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두사람을 따로따로 보지만 그때 이야기 하며 가끔씩 웃습니다...
음 내용 잼있다 근데 더 궁금한건 안경 어디서 맞췄나요? 안경 이쁘네요 ㅎㅎㅎㅎㅎㅎ
83 군번
소금에절인무
고추가루없는
김장김치
그겄도 없어서못먹고
항상 배고파했죠
깍두기에 고추가루 3개 묻어 있었다. 대민지원 모내기 나가 밥 얻어먹을 때 행복했었다. 갈치국에 비린내나는 하얀 비늘만......
김장김치는 고추가루가 없을수가 없음
김장은 병사들끼리 만드는게 아니라 군인가족들도 총출동해서 만들었음
군인 가족이 만드는 김치에 고추가루가 없을수 없음
84년도 군번인데 훈련소 김치에도 고추가루는 있었음
83년 논산군번..1337xxxx..대전통신학교 12주 교육받고 자대배치후 저녁마다 청소불량, 총기수입불량, 전투화 수입불량으로 내무반 전체가 관물대에 깎지끼고 엎드리는 얼차례나 얻어맞았고 반찬으로 나온 김치는 고춧가루를 헤아릴수 있었다. 청개구리가 배추잎사이에서 나오기 까지했다..반찬이 부족하니 청개구리가 싸인 배추잎만 건져내고 물론 다먹었고
@@sangchuljung1855 통하라 시네요
반갑네요
통신학교 24주 교육받았네요
병은 아니고 하사관 교육받았습니다
12주 교육이면 무선전신 같은데 아닌가요?
12주 생각 나는 주특기가 무선전신 밖에 셍각이 안나네요
극초단파는 14주 나머지는 거의 8주
저때 군단장이면 진심 엄청난 권력일텐데...
지금도 군단장은 엄청난 권력이에요 ㅋㅋㅋ
지금보단 저때 군단장이 더 쎄죠ㅋㅋ
@@SHK-n9r지금 군단장은 사회에는 영향을 크게 못끼치잖아
@@user-cc5cy7yv2s 지금 군단장도 사회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치긴하지 ㅋㅋ 3스타면 참모총장 이런거 바로 밑엔데.. 사단장만되도 2스타 ㅎㄷㄷ인데 3스타면 엄청난 권력이지 ㅋㅋ
쓰리스타면 지금도 영향 엄청 크지..
저희 아버지께서 1973년 10월에 입대해서 1974년1월~75년 5월까지 1군지사 헌병대에서 근무하시다가 1군지사 헌병대가 1군사령부 1헌병대와 통폐합하는 바람에 12사단 헌병대에서 근무하시다가 76년8월에 만기전역하셨는데 군납비리가 엄청 심할때라 육본 범죄수사단에서 눈에 불을 키고 정보수집을 할 정도였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1군지사 헌병대에 근무할때 병참대대 장교,하사관,군무원들이 군수품빼돌리다가 적발돼서 구속된거를 본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장태완,정봉욱장군같은분들이 군납비리 없애려고 해도 성행했었다고 하네요 ㅠㅠ
사연자분 아닠ㅋㅋㅋㅋㅋ 썰이 뭐이렇게 많으셔 ㅋㅋㅋㅋㅋ 줄줄이 있네 ㅋㅋㅋㅋ
아주 훌륭한 아버님이시네요
2:43-첨언: 장장군이 지휘하던 당시 수방사는 그당시 복무환경 생각하면 ㄹㅇ 파라다이스였다.
그립습니다.
아버지 이야기가 맞나…..? 본인 이야기같은데요 ㅋㅋㅋㅋㅋ
아버지 이야기나 삼촌일수도 있죠 저의 아버지가 58년생이 신데 81년에 군생활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user_qsdf4521 너무 상세하게 잘 적으셔서 본인인가…? 라고 적었어요 ㅎㅎ
너무 썰이 판타지 하긴함
@@enusj3396 근데 이게 msg가 2번 쳐졌다면 이해가능한 판타지임
@@SmileToBlue msg를 넘어 미원 다시다 치킨스톡 맛다시를 심각하게 버무려서 썰자체가 너무 이질감들고 판타지같아 집중이 안됨
어우씨 군단장 ㅋㅋㅋㅋ 지금도 들으면 약간 긴장되는 그 직급
사이다썰 기분조타!
울아버지 어렸을때 논산훈련소 옆에 살았었는데 할아버지가 논산훈련고 장교식당 요리사 였어서 ㅎㅎ
그때 쌀 빼돌리다 잡혀간 부사관도 많았고 ㅎㅎ
새벽 아침부터 아부지 친구랑 부대 앞 도로에서 군인이 교통정리 하는거 시늉했다 지나가던 별님이 보고
부대가 난리났었던 것도 있었고 ㅎㅎ 이거 보니 생각나냉 ㅎㅎ
옛날 사람들이 나때는 하면서 지금 군대 깎아내리는 건 좀 보기 싫은데 그 시절 군대 전역한 사람들 정신력은 진짜 존경할만함
87년 306입대해 수도권 정치적 색깔이 찐한 사단의 공병대 중대 행정 서무병으로 근무하던 생각이 납니다.
구타와 부조리가 근절되어 가던 시절이지만 파란만장한 사건과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던 시절이었죠.
87년에 구타와 부조리가 근절되고 있었나요?ㄷㄷ
@@woody667 근절된 건 아니고, 구타금지 운동이 있을 때라 당시에 영창 간 사람 많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대했군요. 저도 87년 306 보충대... ^^
@@sangmunoh4638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들
92년도 김영삼정부 들어서면서 군대내 전면 폭행금지!!!
허나 그당시도 말뿐이였을 뿐이였죠
선배님들./
훌륭한 아버님이시네요.
문제는 저때나 지금이나 군대에서 내부를 좀 먹는 버러지들은 바글바글 하다는게 문제
울 아부지는 60년대 한남동 육본시절 3성장군 당번병이었는데 육본인데도 사병식당 밥이 개판이었다고 하셨음. 대령들이 문턱 달때까지 들락거리는데 그게 위에 짜웅해서 군수품 다 빼돌리는 거라고 했었음
3스타의 폭격이라....상상도 하기 싫다....
그시절 대학생이라고 그냥 갈구던게 아니라 군생활을 일부 줄여 줍니다.
3개월인지 6개월인지 그럴겁니다.
그러니 동기나 쫄따구가 본인보다 먼저 제대해서 그런겁니다.^^
당시 대학교2학년(매 학기)까지 남자는 필수이수 과목으로 군사과목(교련) 이 있었습니다. 86년 즈음 폐지 된 것으로 압니다. 1학년은 군사교육외에 문무대(훈련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5박6일과 2학년 때는 전방부대(GOP철책 2박3일 근무 포함) 5박6일도 갔다 옵니다. 그래서 대학 2학년까지 마치고 입대하면 2년 동안 교련 이수한 시간을 감안하여 3개월 축소해 준 것으로 압니다. 따라서 1학년 입학하고 입대하면 축소 없습니다. 대학생이라 줄여준 것이라 아니라 교련과목 이수기간을 감안하여 축소해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말씀하신 대로 선임으로부터 말 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taehoLee-xu5xf 박정희정권때 대학생들이 대학교련폐지 시위를 하니 대학교련이수하면 3개월 줄여줄께 가 된거죠 ㅎㅎ 저도 저희 센터장님한테 들어서 잘알죠 ㅎㅎ
@@youngbeompark8760 대학교련 이수하면 3개월이 아니라
1학년 교련에 1,5개월 즉 2학년까지 교련을 이수하고
군에 가면 3개월 혜택.. 최고로 대학 4년간 교련을 이수하면
6개월까지 ,,, 중간에 대학 2년간만 교련이 줄었지만
나이를 똭채워 군에 왔던 사람중에 6개월 혜택자도 있었죠
제대하기 전날 고참에게 불려가 한따까리하고 제대하기도,,
저는 75학번으로 79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79년 5월에 자대입대하였네요.그 당시에는 대학3학년까지 교련교육을 이수하면 6개월의 군생활 단축혜택을 부여했습니다
여기가 아닌가벼 ?
저는 84년 7월 군번입니다.
수도권에 위치한 모 부대에 근무했고 그 부대가 있던 산 중턱이 거의 10년동안 민둥산이 된 이야기인데
제가 근무하던 당시에 전국 부대에는 테니스장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연대가 테니스장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당장 그 옆 부대원들은 테니스장 만들기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목적은 군인들의 건전한 취미 생활이었지만 뭐 아시겠지만 그건 장교 전용입니다.
어째든 우리 부대도 테니스장 열풍에 휩싸였고
부대원 대부분이 본부 중대장님이 지정한 산 중턱에 올라가서 거의 한달동안 곡깽이랑 삽, 그리고 맨손으로 산 중턱을 아작냈습니다.
그리고 땅 평탄화 작업 한다고 땅 다지기용 롤러가 도착하는날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롤러.
그런데 작전장교님이 올라오셔서 하는말 여기가 아니다. 누가 여기로 지정했는지 몰라도 저 건너편 산이다.
순간 우리들은 잡은 곡깽이와 삽자루에 힘이 들어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군대에서 군종병을 보았을때, 81미리 박격포 메고 행군한 나는 정말 신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ㅎㅎㅎㅎ
ㅎㅎ 그저 웃지요
저당시 군단장이면.. 집안이 어느정도야 도대체 ㅋㅋㅋㅋ
DLC 라인업도 미쳤네 ㅋㅋㅋ
아! 돈있다고!! 빨리 출시하라고!
난 74년 7월 군번 인데 대대장 당번병으로 제대 했어요 포병병과 포수 였는데 cp 근무하며 부식 수령병 추운데 고생한다 생각 했는데 친한 선임 제대 후 고백 한달에 50만원씩 집에 송금 했다고 해 깜놀
당시 대대장 봉급이 34만원
방법은 고기 종류 사단서 구량계서 제대로 불출해 카피지 대로 저울 확인하고 군수장교 대대장 결재 받은 후 사단과 짠대로 앞에 1을 적으면 100키로 2를 적으면 200키로 빼 돌리는 거죠
구량계 선임하사.업자.부식 수령계 3등분 된 돈이 50만원 정도 였다고 합니다. 참 기가 찬 일이죠
30년전에도 과외병 있었내요 ㅠㅠ
따지고 보면 결국 큰아버지가 군단장이라는거 아닙니까?ㄷㄷㄷ
아주 훌룡한 아버지와
훌룡한 인맥의 시너지가 ㅋㅋㅋ
군납 비리한 그 간부는 불벼락 맞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가 더 궁금하네요. 군단장이 안 사건이면 그 비리간부의 엔딩장면은 최소가 육군교도소 입창부터 시작인데
아버지 훌륭하시네요~요즘 시대에 더더욱 필요한 인재상입니다!
시원하다
군 미제사건인 염순덕 상사 사건이 생각나네요.
2000년대에도 횡령잡으려다 살해당하고, 뻔한 범인 냅두고 미제사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참...위험한 시기에 별 탈 없으셨어서 다행이네요
아 이거 비슷한 썰이 저도 있는데 말이죠ㅋ
썰풀어줘요!!!!
신학과도 집합과 얼차려가 있었군요... 그 시대란....
90년대 초반까지 신학교에서 담배 피면 지나간던 선배가 머리통 갈겼습니다.
신학교라도 신학과만 있는 게 아니라 사범대나 사회복지과 같은 일반과들도 있는 데, 그런거 상관없이 그냥 쳐 맞았죠...
5:49 몰입해서보다가 여기에서 육성으로 ㅈ됐네 하고 뱉어버림 ㅋㅋㅋㅋㅋ
저희 아버지도 80년도때 군생활 하셨는데 보급품 빼내가는건 뭐 밥먹듯이 했다고 하더군요.
저때 군단장 빽이면 군 내부에선 어지간해선 게임 끝인데....
ㅎㅎ 과외병. 원래 저런 병과가 있죠.
고모부는 70년대말에, 바둑을 잘 둬서 군대에서 바둑만 두다가 제대했다고 하더군요.
동생은 2000년에 입대했는데, 독립중대에서 테니스병으로 중대장 지시로 중대장과 소대장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다보니, 휴가와 외박이 잦아서 이웃 아저씨는 휴가나온 동생을 보고 언제 군대가냐고 묻기도 하셨죠.
ㅎㅎ
군단장님의 버스터 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뿜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는 그랬지 우리 부대도 간부가 기름 팔아먹고 ㅋㅋ
03년 군번인데.. 군단이었는데.. 과외병과 있었음 골프병과도 있었음.
군단내 골프장에서 영관급들 골프레슨
21년도 썰 뭐양
맷돼지 이야기 궁금한데요?
저때나 지금이나 비리ㅠ
저 군단장 께서 계급이 대장이셨으면 진정한 버스터콜을 발동시키셨던건데... 당시 계급이 정말 궁금하네요.
군단장이 별4개 단적은 한번도없어요. 3개뿐
별4 개는 참모총장이였으니 그아래의 장군급이겠죠
저 당시면 야전사령관도 3성이였던 시절입니다
저 때 당시는 계급 인플레가 없던 시절이라 대대장이 소령이 하고, 연대장을 중령이 하던 시절임.
아니 어떻게 안올린게 훨씬 스펙타클하네
사연 시절의 군단장이면 권력이 쎈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권능을 행하는 무언가지.
당시에 전두환이 소장이었으니 ㅋㅋㅋ
와 똥 된장국에 두부가 들어잇는건 처음봄. 80년대 군번임
1960년대 과외병... 과외선생..
1970년대 양고기 수입시절... 포장하니 반의 반이 사라지는 부식인 양고기...
과외병과는 없음. 관사 당번병에게 이것저것 온갖 일들을 시키고 부려 먹었는 데, 동향사람 선임병이어서 자연히 알게됨. 언젠가는 관사 당번병이 부당 대우 등으로 터뜨려놓아 사회에 알려지게 된 적도 있었는 데, 엄청 큰 파장으로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개복어"님, 옛 군대시절 추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내용이 다른 곳에서도 본듯하군요.... "장석조 감독"의 "오인용 데빌"을 보면 군대에서의 온갖 얘기들이 나옵니다^^ 은근 재미나기도 하지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교회 초코파이 썰 떳나요?
과외병과는 없었고 공관사병^^ 사단 본부대나 직할대 소속이지만 비파(비공식파견)되어 모든 일에 열외입니다. 비슷한게 사단장이나 참모장 당번병이 있는데 사단본부대 소속이고 모든 교육.보초에 열외...단 잠은 점호이후에 내부반에서 잡니다..
70~80년대는 부식부조리가 심해서 영상에 나오는 장국과 희멀건 김치 많이 먹어서 최고의 PX부식은 고추장이 였습니다.
아~그리고 당시에도 대학졸업이나 다니다 온 인력이 많았어요. 사단본부대에 절반은 대학물 먹은 애들...군종 정훈 감찰 경리...모두 고급인력. 난 졸업하고 입대해서 6개월 복무단축을 받았는데 6개월은 6년정도 긴 세월입니다^^ 고참들도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많았고 2~3단계 위 고참보다 먼저 제대^^ 27개월만에 제대했는데 24 개월에 병장 달았으니 병장진급후 3개월만에 전역했었네요. 오래된 추억이라 끄적여 봤습니다.
99년 같은사단 연대장이 고종사촌이라서 아는사람 적어내라고 해서 냈더니 2주차 휴일에 신교대가 뒤집어 졌습니다.대령도 이럴진데 군단장이면 ㅎㄷㄷ하네요!
소고기국은 소가 장화를 싣고 지나간것 처럼 기름만 둥둥 떠있는데 그기름도 식용유 였읍니다
모내기도 뭘 주는 집을 중심으로 해줬읍니다
누구를 위한 김장인지 모르지요
보리와쌀을 섞어서 밥을 하는데 쌀을 팔아먹으니 보리 비중이 많을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배부르면 최고였지요
올해 손자가 해병대 입대 합니다
이야기는 사실적으로 들리는데, 씁쓸하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군대는 능력만으로 출세하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80년대 초반 군생활 하며 봤지만, 당시는 육사 출신이더라도 중대장 시절부터 줄타기를 잘해야 순조롭게 군생활이 가능하여 자기 봉급은 물론 항상 빚에 찌들어 살죠. 그런데 군단장이라... 얼마나 많이 갖다 바쳤고,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든 사람을 아는 게 아니라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예외는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높은 자리라고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81년 군복무자...
영상 속에 부식이 ㅂ족하다는 언급은 잘못 알고있는 부분...
나의 경우 부식은 충분하고 괜찮은 편이였고 바은 먹고 싶은 만큼 충분히 먹었는데..
문제는 괜찮은 부식 재료를 가지고 부식에 맞는 제대로된 요리가 부족 했다는 기억...
제목 보고 아니무슨 아버지도 아니고 형이 군단장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80년대군요
ㅋ 근데
까닭했으면 뭔일 당할수도 있던 시절에 그런 무모한 행동을 그당시엔 구타가혹행위가 상상을 초월했으니
간부가 술쳐먹고 총으로 쏴죽이고 자살했다고 보고하고
그나마 천운으로 군단장이 부대에 일찍 방문했기에 망정이지 진짜 뭔일 벌어졌을지도
자살당할뻔하심 ㄷㄷ
멧돼지 하고 악연이 생기셨나 ㅋㅋㅋㅋㅋㅋ남은썰중 과반을 차지하는 멧돼지 썰 들어보고싶네
저땐 거의 생계형이었지. 물론 바늘 도둑이 소도둑된다고 크게 가는 간부도 있었겠지만
보병 대대 간부들 집에 가면 거지집 수준이라고 표현하면 맞음.
9:59
뭐야 엔딩이네요
2스타도 아니고 3스타 ㄷㄷ
버스터콜 제대로 발동했겠네 ㅋㅋㅋ
저 80년대 모 사령부 공관병 출신 입니다 영외거주 사복생활 점호없고 한달에 기본1번 특박 등등 편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혔죠 ㅎ 선임 부관 1분은 세상 좁데요 저 친구 매형 ㅡ공관병 힘들어요 ~~~~
아니 부조리를 고발한 사람에게 부조리인 과외병이라는 것이 말이 안됩니다
많은 부분이 그당시 군생활과는 말이 안됩니다
흥미 위주로 작성하지 마시고
그때 내쫄따구가성균관대졸.1차사시패쓰한 연대장공관병.우리는 연대장따까리라불렀음.58년생김승기님 잘계시우?진격.ㅎ
20년 전 나 군생활때도 차로 맛스타랑 부식들 자기차로 실어나르는 보급계간부 많이 봤다 맛스타 건빵같은거 큰훈련때 말곤 먹어보질 못했지
왜 끝에 DLC는 엄청난걸까요?ㅎㅎㅎ
본인이 군생활하던 2천년 초반에도 과외병은 있었다. 당연히 정식 병과는 아니었지만.
군단장 60 가까이 되고 아버지 군대를 50에 가신거임?
이해가 안감 일개 병사랑 군단장이랑 형동생이 될수 있음?
저 당시 군단장이면 진짜 ㅋㅋㅋㅋㅋ
미국에 30년 가까이 살던 여직원이 몇 년 전 영구 입국 하였는데 아들이 군대에 가서 자대 배치받고 한달인가 지나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그러더래요!
엄마 나 광심병사됐써!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탓에 한국어가 서투른데,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으니 관심병사로 지정해서 관리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은 스마일 뱃지 채워주니 좋았는데, 일병 달고 휴가 나와선 창피하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물론 지금은 한국어 마스터해서 관심병사 타이틀도 떼고 미국때를 다 벗었다고 여직원이 너무 좋아합니다! 당시엔 자기 아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 했는데, 중대장이 직접 전화해서 설명을 해줘서 안심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버님 너무 멋있으시다
기숙사에서 그랬다고? 나도 77학번으로 그 시절 학교 다녔는데?
81군번입니다. 옛날생각나네요
저 당시 군단장 백이면....흐음 상상도 하기 싫어지네...
3스타면 위에 세명(포스타, 국방장관, 대통령)밖에 없는 진짜 개쩌는 계급인데..?
미필이네 ㅉ
부조리가 가장 많은 집단중 하나가 군대입니다. 이유는 폐쇄적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처리되는 일이 많아서 문제가 있어도 잘 들어나지 않죠. 90년대 군번인데 당시 내부 부조리 고친다고 부조리 고발하라고 사병들 상대로 소원수리 많이 받았는데 그거 적어내면 반대로 병사들을 어떻게 관리했길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느냐며 비리척결보단 사병들 관리(?)에 더 치중하던 시대이죠. 한마디로 상급부대에서 감사가 나왔을때 이런 이야기 나오면 골치아프니 자체적으로 처리하도록 종용하던 시대입니다. 당연히 비리도 많죠. 군수과에서 얼마나 삥땅을 쳤는지 이주동안 감자 몇개 들어간 똥국에 양배추 김치에 씨알감자 두개 간장에 졸인거 이거 세개가 식단으로 나온적이 있었죠. 주임원사에게도 사연이 전해졌는지 나중에 주임원사님이 사병식당에 나와서 식사 한번 하시고는 이런 문제가 해결된적도 있습니다. 월남전 참전 용사이신데 무언의 항의로 간부식당 놔두시고 사병식당에서 식사를 하신거죠. 그 외 글로 다 적지는 못하지만 의무로 국가에 충성하는 이 나라의 자식들을 너무 도구로만 사용하던 시대였습니다. 국가를 위해 아무런 댓가도 받지 못하고 의무만 강요받던 시절인데 지금은 후배들이 좀더 나은 대우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군대는 않가는게 맞다는 생각는 드는건 그만큼 의무에 비해서 대우를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한것 같습니다. 부모님 생각하며 각종 부조리를 버티며 생활한게 엊그제 같은데 추억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추악한 과거네요. 오죽하면 `병사의 적은 간부다!` `전쟁나면 간부부터 쏴죽이겠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폐쇄적인 조직은 결국 썩어 문드러 집니다. 앞으로 더 군대는 변해야 합니다.
뭔가 어투가 뭔가 뭔가 있다
군을 몇살에 갔길래 동생이 신병 나이고 형이 군단장 ? 나이차이가 얼마나 나는거냐고
뻥ㅋㅋ
85년도 해병대 후반기 교육때 후임기수 군화 군복 두둘겨패서 빼앗아 채웠던게 인생에서 가장큰 후회 중 하나입니다 지속된 관행이라 했지만 왜 거부하지 못했을까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후임들에게 사과를 드립니다
40년전에는 현역 복무 중인 병사의 50% 이상이 대학 재학생 이상의 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군 MRE이런것도 민간시장에 뻬돌린경우도 있죠
갖다팔려고 ㅋㅋㅋㅋㅋ
아래 어느 분의 댓글에도 나오지만, 고깃국 나오는 날에는 늘 고기는 없고 기름과 비계 한두 개만 둥둥 떠 있던 기억이 나네요. 부대 창립기념일에는 부대에서 짬밥 받아가서 돼지 키우는 인근 축산 농가 아저씨께서 돼지를 두 마리씩 주셨는데 그 날도 역시 국에는 기름과 비계만 잔뜩 있더라고요. 그 때는 말년이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금 여유있게 볼 수 있었는데, 그날 우연히 취사반 옆을 지나가다가 간부들이 좋은 살코기 부위를 다 떼어서 챙기는 모습을 봤더랬죠. '저런 짓을 하면서 부끄럽지 않은가, 나 같으면 창피해서 못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옛날 직업 군인들 중에는 양아치 같은 놈들도 꽤 있었습니다. 사회부적응자들이 먹고 살 길이 없으니 군대에 말뚝 박는 일들이 많았죠. 군대에서 횡령하고 병사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왕 노릇하고. 사회 어딜 가도 그렇게 편히 살 만한 곳은 없죠.
할아버지설부터
영창이 영상으로 되어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