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서부전선전투 2편, 연천-동두천 전투, 국군 1연대 2대대 VS 북한군 4사단, 양원리-초성리 전투, 동막동-동두천 전투, 봉암리 전투, 덕정으로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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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11 лют 2025
- 연천-동두천 전투는 203전차연대 2대대를 앞세운 이권무 소장의 북한군 4사단과 함준호 대령의 국군 1연대가 6월 25일 하루 동안 벌인 공방전입니다.
북한군 4사단은 연천에서 출발하여 3번 도로를 따라 동두천으로 진격해왔는데, 이 길은 38선에서 서울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습니다.
1연대장 함준호 대령은 부임한지 한 달 남짓하여 연대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고, 1대대장 한태원 중령은 보병학교 고등군사반에 입교 중이었으며, 3대대장 김황목 소령은 참모학교 입교명령을 받아 지휘선에서 물러나 있는 등 1연대는 전력에 적지 않은 허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동두천 방면으로 침공해온 북한군 4사단은 전투대형을 2개 제대로 편성하고, 1제대로는 주공인 16연대와 2개 포병대대, 2개 공병중대, 2개 전차중대를 초성리고개 및 상대전리 동남쪽 경계선에 포진시키고, 조공인 18연대와 1개 포병대대, 1개 공병중대, 1개 전차중대는 동이리에 포진시켰습니다. 2제대인 5연대는 2개 대대를 주공인 16연대를 후속하게 하고, 1개 대대는 조공인 18연대를 후속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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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어 3년 1개월 2일 만인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민족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상처를 남긴 채 종전이 아닌 휴전의 형태로 정지된 비극적 전쟁입니다.
자유진영 전사자는 한국군 149,005명,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 40,306명 등 189,311이 희생되었습니다. 공산진영은 북한 294,000명, 중공 197,653명, 소련 315명 등 491,968명이 전사했습니다.
6.25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을 포함하여 5,991,48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5,991,484명의 희생자 중 5,218,480명이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인명 피해로만 본다면 고구려-수나라 전쟁, 고려-몽골 전쟁,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대외전쟁을 합친 것 보다 많습니다.
불과 70여 년 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6.25전쟁은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참고자료]
6.25전쟁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주요전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영웅(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중국군의 한국전쟁사(국방부, 군산편찬연구소), 낙동강(류형석, 플래닛미디어), 6.25전쟁 징비록(백선엽, 책밭),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권주혁, 지식산업사), 6.25전쟁과중공군(박실, 정미디어), 6.25전쟁(존 톨랜드, 바음), 콜디스트 윈터(데이비드 헬버스템, 살림), 이런전쟁(T. R. 페렌바크, 플래닛미디어), 중국군의 한국전쟁사(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 한국전쟁(왕수쩡, 글항아리), 중국이 본 한국전쟁(홍학지, 한국학술정보), 항미원조(리펑, 다른생각)
[영상 출처 : 국가기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