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선택전쟁사
교양선택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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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전투 #1, 군산에 상륙한 해병대가 군산 일대를 방어할 것이다. 독립대대는 웅포와 용안 일대를 방어하라. 전북경찰은 강경과 고산 사이를 방어하라.
호남지역전투는 서해안지구전투사령부가 1950년 7월 16일부터 7월 26일까지 11일간 충남 내륙을 관통하고 남하한 북한군 6사단과 603모터사이클연대의 호남지역 점령을 저지하기 위해 전개한 공방전입니다.
1950년 7월 16일, 미 24사단 19연대가 방어하는 대평리의 금강방어선을 붕괴시킨 북한군 3사단이 곧장 남진해 대전을 북쪽에서 압박하고, 공주를 점령한 북한군 4사단이 논산을 경유해 대전 남쪽으로 우회하면서 미군의 퇴로차단을 시도하고 있을 무렵 북한군 주공부대인 1군단의 우익에 전개된 방호산 소장의 6사단이 충남 내륙을 돌파해 남진해오자 전북지역에서는 점차 전운이 고조되었습니다.
북한군 6사단은 천안에서 서해안 방향으로 서남진하면서 주공부대는 청양과 부여를 거쳐 강경으로, 조공부대는 서천으로 진격시키고 있었습니다. 금강 하류 북쪽을 석권한 북한군 6사단장 방호산 소장은 호남지역 진출의 가장 큰 장애물인 금강을 신속하게 도하하기 위해 강경 대안에 도착한 병력을 이리 방향으로 계속 남진시키면서 서천으로 남진한 13연대 병력을 금강 하류에서 도하시켜 국군을 양면에서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북한군의 남진을 막아야 하는 군·경의 전력은 모두 합쳐도 1개 연대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나마 병력이 분산되어 상호 통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군은 금강 남안의 국군 방어병력 규모를 여단 정도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6.25전쟁에 대한 많은 영상이 있지만, 기초적인 사실 조차 확인하지 않은 영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도 조차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는 형편입니다. 6.25전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하여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참전했던 국군과 미군의 회고록, 미국 논픽션 전쟁사 작가의 간행물, 중공군 참전기록 등 다양한 정보를 교차 검증하여 가장 정확한 6.25전쟁 정보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어 3년 1개월 2일 만인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민족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상처를 남긴 채 종전이 아닌 휴전의 형태로 정지된 비극적 전쟁입니다.
자유진영 전사자는 한국군 149,005명,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 40,306명 등 189,311이 희생되었습니다. 공산진영은 북한 294,000명, 중공 197,653명, 소련 315명 등 491,968명이 전사했습니다.
6.25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을 포함하여 5,991,48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5,991,484명의 희생자 중 5,218,480명이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인명 피해로만 본다면 고구려-수나라 전쟁, 고려-몽골 전쟁,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대외전쟁을 합친 것 보다 많습니다.
불과 70여 년 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6.25전쟁은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참고자료]
6.25전쟁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주요전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영웅(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중국군의 한국전쟁사(국방부, 군산편찬연구소), 낙동강(류형석, 플래닛미디어), 6.25전쟁 징비록(백선엽, 책밭),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권주혁, 지식산업사), 6.25전쟁과중공군(박실, 정미디어), 6.25전쟁(존 톨랜드, 바음), 콜디스트 윈터(데이비드 헬버스템, 살림), 이런전쟁(T. R. 페렌바크, 플래닛미디어), 6.25전쟁에서의 소부대 전투기술(러셀 구겔러, 북갤러리), 중국군의 한국전쟁사(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 한국전쟁(왕수쩡, 글항아리), 중국이 본 한국전쟁(홍학지, 한국학술정보), 항미원조(리펑, 다른생각)
[영상 출처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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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전선 지연전 영덕-진보 전투, 1950년 7월 1일 울진 탈환 작전에서 시작된 동해안전선 지연전의 마지막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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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진보 전투는 국군 3사단과 독립기갑연대가 1950년 7월 14일부터 8월 2일까지 20일간 동해안을 따라 남하한 북한군 5사단과 766유격대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전투로 7월 1일 울진 탈환 작전에서 시작된 동해안전선 지연전의 마지막 공방전입니다. 이 기간 중 북한의 전쟁 목표는 국군을 완전히 격멸하고 미군이 한반도에 무사히 도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남동부 해안의 포항, 울산, 부산을 신속히 장악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대전을 점령한 후 부산, 상주를 점령한 후 대구, 안동을 점령한 후 포항 방면으로 진격하라고 예하 군단에 명령했습니다. 동해안에서는 5사단과 766유격대를 투입해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면서 영덕과 포항을 넘어 부산으로 진출하도록 했습...
영덕·진보전투 #4, 진보전투, 연대가 상대하는 북한군은 1개 연대 규모의 정규군과 1,000여 명에 이르는 무장공비이며 탄약이 보급된다면 현 전선에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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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도보대대에 의한 3차 연결작전이 실패한 상황에서 독립기갑연대는 7월 31일 미명에 273고지로 침투한 1개 대대 규모의 북한군과 교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북한군은 전날 정면 돌파를 시도하다가 좌절되자 이날 미명을 기해 포격과 더불어 1개 대대를 투입해 273고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273고지의 경찰대대 3중대는 3시간 동안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으나 2파, 3파 등 제파식으로 공격하는 북한군에게 밀려 경찰대대 2중대가 방어진지를 구축한 비봉산 동북쪽 능선으로 물러났습니다. 연대의 우측방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또 다른 1개 대대 규모의 북한군이 잠목으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34번 도로상의 월전삼거리는 방자에게 유리한 지형을 갖추고 있었고 잠목 남쪽은 400m에 이르는 개활지인데다 여...
영덕·진보전투 #3, 진보전투, 독립기갑연대와 강원경찰5대대의 고군분투, 1개 연대 규모의 적이 영양 방면에서 남하 중이며 주왕산 남쪽에는 무장공비 1,000여 명이 준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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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3사단이 7월 16일부터 시작된 영덕 방어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육군본부에서는 22연대를 증원하고, 미8군에서는 해군과 공군의 강력한 화력지원을 통해 동해안의 위기를 수습하고자 했으나 영덕과 안동 사이 55km 구간은 여전히 개방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육군본부는 이 간극을 메우고자 영동에서 대구로 이동 중인 독립기갑연대를 3사단에 배속하여 진보로 이동시키는 한편 이곳에서 무장공비 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400여 명 규모의 강원경찰 5대대를 독립기갑연대에 배속시켰습니다. 당시 독립기갑연대의 병력은 550명이었으며, 1개 대대는 2개 중대로 편성되어 있었고 주요 장비로는 장갑차 4대, 반궤도차량 1대, 말 200여 필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말은 방어전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보 남쪽 ...
영덕·진보전투 #2, 대대에 대전차화기가 없으니 밤에 자고 있을 때 파괴하는 방법이 유일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국군 3사단 영덕 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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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 북쪽 207고지-181고지 선에서 국군 23연대가 미·영 해군의 화력지원 하에 북한군의 파상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7월 24일 대구에서 재편성을 마친 22연대가 강구에 도착했습니다. 국군 3사단장 이준식 준장은 22연대의 증원으로 작전에서 병력운용에 대한 융통성을 가질 수 있게 되자 22연대를 강구 북쪽 1.5km 지점에 있는 150고지에 배치하고, 22연대로 23연대를 초월 공격하게 하여 26일 영덕을 탈환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25일 밤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또 다시 181고지를 상실하자 181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22연대를 투입했습니다. 7월 26일 국군 3사단장 이준식 준장은 181고지 및 207고지의 북한군이 진지를 보강하기 전에 역습을 감행하기로 결정하고 작전명령을 내렸습니다. 1. 사...
영덕·진보전투 #1, 사태는 아주 절망적이다! 병력 수습이 성공하면 다행이나 실패하면 결과는 기대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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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진보 전투는 국군 3사단과 독립기갑연대가 1950년 7월 14일부터 8월 2일까지 20일간 동해안을 따라 남하한 북한군 5사단과 766유격대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전투로 7월 1일 울진 탈환 작전에서 시작된 동해안전선 지연전의 마지막 공방전입니다. 이 기간 중 북한의 전쟁 목표는 국군을 완전히 격멸하고 미군이 한반도에 무사히 도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남동부 해안의 포항, 울산, 부산을 신속히 장악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대전을 점령한 후 부산, 상주를 점령한 후 대구, 안동을 점령한 후 포항 방면으로 진격하라고 예하 군단에 명령했습니다. 동해안에서는 5사단과 766유격대를 투입해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면서 영덕과 포항을 넘어 부산으로 진출하도록 했습...
풍기-영주-안동전투, 소백산맥을 넘어 남진하려는 북한군 12사단과 8사단을 저지한 국군 8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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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과 미군은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평야로 이루어진 서부지역은 미군이, 산악지역인 중동부지역은 국군이 방어하기로 결정하고, 금강과 소백산맥을 연결하는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소백산맥선 지연전은 국군이 북한군 2군단의 공격을 지연시킨 전투로 국군 1군단이 수행한 미원·함창전투, 국군 2군단의 문경·점촌전투 및 풍기·안동전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풍기-영주-안동 전투는 이성가 대령이 지휘하는 국군 8사단이 1950년 7월 14일부터 7월 31일까지 18일간 5번 도로 축선에서 소백산맥을 넘은 후 풍기와 영주를 거쳐 안동으로 남진하려는 북한군 12사단과 8사단의 진격을 저지한 전투입니다. 6.25전쟁에 대한 많은 영상이 있지만, 기초적인 사실 조차 확인하지 않은 영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풍기-영주-안동전투 #6, 국군 1군단은 7월 31일과 8월 1일 사이의 야음을 이용해 낙동강 남쪽 강안으로 철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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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8군사령관 워커 중장(Walton Harris Walker)은 1950년 7월 29일 전군에 반격 준비를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될 낙동강-반변천-오십천에 설정한 새로운 방어선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육군본부는 7월 31일 작전명령 제91호로 국군 1군단과 2군단에 낙동강-반변천 방어선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작전명령은 1군단사령부가 운산에서 단촌으로 이동한 직후인 19시에 연락기 편으로 전달되었습니다. ‘7월 31일과 8월 1일 사이의 야음을 이용해 낙동강 남쪽 강안으로 철수하라!’ 철수명령을 접수한 1군단은 7월 31일 20시에 8사단과 수도사단 참모장을 군단전술지휘소로 소집하여 군단 참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안동 철수작전에 대한 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에는 1군단 참모장...
풍기-영주-안동전투 #5, 북한군 12사단은 옹천리-오운리 선에서 사단 정면으로 침공하는 한편 일부가 예안으로 우회하여 동측방을 위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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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12시 국군 8사단장 이성가 대령은 21연대가 397고지-봉수산 선에서 북한군을 저지하자, 이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 무렵에는 예천 방면에서 풍산으로 접근한 북한군 8사단이 안동을 서쪽에서 위협하고 이와 때를 같이해 예안 북쪽에 단대호 미상의 새로운 북한군이 나타나 국군 8사단 방어지역 동쪽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성가 대령은 397고지-봉수산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취소하고 5번 도로와 예안에서 안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동시에 방어할 수 있는 안동 외곽에 2개의 방어선을 설정하여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이성가 대령의 작전계획은 지형 구조상 안동에서 오랫동안 버티기 어려운 만큼 조만간 낙동강-반변천 선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할 것이란 판단에 근...
풍기-영주-안동전투 #4, 영주를 방어하는 국군 8사단을 포위 섬멸하기 위한 북한군의 총공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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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01시, 북한군은 영주를 방어하고 있는 국군 8사단을 포위 섬멸할 목적으로 30연대를 두전리를 거쳐 영주 방면으로, 32연대를 동촌리를 거쳐 영주 방면으로 투입해 총공세를 시작했습니다. 21연대 우일선에 배치된 공병대대는 268고지의 3중대가 증강된 북한군 1개 대대의 공격을 받고 중과부적으로 인해 방어선이 돌파 당하자 동촌리로 물러나 25연대 2중대와 합세하여 타원형 진지를 편성하고 수류탄과 총검으로 백병전을 벌였으나 제파식으로 이어지는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계천을 건너 309고지로 물러났습니다. 276고지를 방어하는 25연대 1대대는 01시에 영주 북쪽 4km 지점 선바위 부근까지 접근한 T-35/85전차와 SU-76자주포의 무차별 포격을 받았습니다. 포격으로 인해 ...
풍기-영주-안동전투 #3, 북한 수상 김일성의 신속한 진격 명령! 북한군 12사단을 저지하는 국군 8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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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8사단장 이성가 대령은 7월 19일 16시 30분부터 감행한 10연대와 21연대의 역습이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자, 현재의 방어선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기로 결심하고, 7월 19일 21시에 작전명령을 내렸습니다. 1. 적은 영주를 목표로 계속 공격할 것이다. 2. 사단은 현 방어선에서 적을 저지, 격멸하려 한다. 3. 21연대는 7월 19일 23시부로 공병대대를 통합지휘하여 현 방어선을 계속 확보하라. 25연대 2중대는 공병대대에 배속하라. 4. 10연대는 현 방어선을 계속 확보하라. 5. 25연대 1대대 2중대는 7월 19일 23시부로 21연대로부터 공병대대로 배속을 변경한다. 6. 25연대 1대대(-)는 7월 20일 미명을 기해 순흥 방면의 적을 공격할 태세를 갖춰...
풍기-영주-안동전투 #2, 방어선 무단이탈로 사단의 전체 방어선을 와해시킨 책임을 물어 1대대장 윤태현 소령을 총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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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진격이 풍기에서 국군의 기습적인 타격을 받고 돈좌되고, 장군봉-426고지에 대한 북한군의 우회공격도 실패로 돌아간 7월 15일 이후 이틀간 풍기 일대에서는 큰 전투 없이 소강상태가 유지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북한군 12사단은 후속부대인 32연대를 풍기로 진출시켜 공격부대의 병력을 증강시켰습니다. 이 무렵 신형 105mm M-2곡사포 6문으로 편성된 50포병대대의 1개 포대가 국군 8사단에 배속되었습니다. 국군 8사단은 조만간 북한군의 강력한 공격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7월 17일 예하 부대에 작전명령을 내렸습니다. 1. 단양에 집결 중인 북한군 12사단은 당면의 적 8사단을 초월 공격할 것으로 판단한다. 2. 사단은 새로이 투입되는 적의 공격을 저지격멸하고 현 방어선을 계속 확보하려 한다...
풍기-영주-안동전투 #1, 북한군과 정면 대결이 계속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진다. 개활지인 풍기에서 북한군을 깊숙이 유인하여 격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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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영주-안동 전투는 이성가 대령이 지휘하는 국군 8사단이 1950년 7월 14일부터 7월 31일까지 18일간 5번 도로 축선에서 소백산맥을 넘은 후 풍기와 영주를 거쳐 안동으로 남진하려는 북한군 12사단과 8사단의 진격을 저지한 전투입니다. 1950년 7월 12일 저녁, 죽령에서 물러난 국군 8사단은 풍기국민학교에 집결해 부대를 정비했습니다. 사단장 이성가 대령은 북한군 12사단과 정면대결이 계속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전황이 불리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개활지인 풍기에서 북한군을 깊숙이 유인하여 격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북한군을 유인하기 위해 국군 8사단은 7월 12일 자정 무렵부터 사단의 모든 차량을 동원해 풍기에서 영주 사이의 도로를 왕복 운행하면서 영주로 내려갈 때는 전조등을 켜고, 풍기로 복귀할...
문경-점촌전투, 소백산맥을 넘어 남진하려는 북한군 1사단과 13사단을 저지한 국군 6사단
Переглядів 26 тис.5 місяців тому
소백산맥선 지연전은 국군이 북한군 2군단의 공격을 지연시킨 전투로 국군 1군단이 수행한 미원·함창전투, 국군 2군단의 문경·점촌전투 및 풍기·안동전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경-점촌 전투는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국군 6사단이 1950년 7월 14일부터 7월 31일까지 18일간 3번 도로 축선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남진하려는 북한군 1사단과 13사단의 진격을 저지한 전투입니다. 국군과 미군은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평야로 이루어진 서부지역은 미군이, 산악지역인 중동부지역은 국군이 방어하기로 결정하고, 금강과 소백산맥을 연결하는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소백산맥선 방어계획의 의거,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10일 11시부로 국군 6사단에 ‘문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무...
문경-점촌전투 #4, 북한군 전차의 진격을 막아야 한다. 국군 19연대 대전차특공대의 육탄돌격! 문경-점촌 축선 방어를 위해 국군 1사단 증원
Переглядів 16 тис.5 місяців тому
문경에서 점촌으로 이어진 3번 도로는 이 지역에서 기계화 부대가 기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도로였습니다. 북한군은 3번 도로를 장악하기 위해 보전협동부대를 투입했고, 국군은 6사단 2연대를, 미군은 19전차대대 A중대를 투입해 북한군의 도로 장악을 저지하고자 했습니다. 1950년 7월 23일 05시, 북한군 1사단은 국군 6사단의 중앙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2개 방향에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북한군 보전협동부대는 T-34/85전차 7대를 동원해 진남교까지 남하한 후 교량 상류 쪽에서 영강을 도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영강 남안에 배치된 국군 2연대의 대전차포중대, 미군의 M-24경전차 3대와 155mm곡사포 포대가 집중포격을 가했지만 북한군 전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강을 도하한 후 문...
문경-점촌전투 #3, 영강으로 철수해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하라! 이화령과 조령에서 물러선 국군 6사단
Переглядів 11 тис.6 місяців тому
문경-점촌전투 #3, 영강으로 철수해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하라! 이화령과 조령에서 물러선 국군 6사단
문경-점촌전투 #2, 이화령전투, 연대장이 여기 있다! 물러서지 말고 반격하라~ 진내에서 백병전까지 벌인 조령전투!
Переглядів 35 тис.6 місяців тому
문경-점촌전투 #2, 이화령전투, 연대장이 여기 있다! 물러서지 말고 반격하라~ 진내에서 백병전까지 벌인 조령전투!
문경-점촌전투 #1, 이화령과 조령에 방어중점을 두고, 기동예비대를 보유한 거점방어태세 구축! 북한군 1사단과 13사단의 남진을 저지하는 국군 6사단
Переглядів 6 тис.6 місяців тому
문경-점촌전투 #1, 이화령과 조령에 방어중점을 두고, 기동예비대를 보유한 거점방어태세 구축! 북한군 1사단과 13사단의 남진을 저지하는 국군 6사단
미원-함창전투, 압도적 화력에도 굴하지 않은 국군의 투지가 만들어낸 빛나는 승리! 북한군 2군단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시킨 국군 1군단
Переглядів 21 тис.7 місяців тому
미원-함창전투, 압도적 화력에도 굴하지 않은 국군의 투지가 만들어낸 빛나는 승리! 북한군 2군단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시킨 국군 1군단
미원-함창전투 #5, 국군 1사단 함창 부근 전투, 국군 1사단은 문경 공격을 중단하고 함창으로 철수하여 군단 서측방 방어임무를 수행하라!
Переглядів 14 тис.7 місяців тому
미원-함창전투 #5, 국군 1사단 함창 부근 전투, 국군 1사단은 문경 공격을 중단하고 함창으로 철수하여 군단 서측방 방어임무를 수행하라!
미원-함창전투 #4, 국군 1사단 화령지구전투, 1950년 7월 23일~24일,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접전
Переглядів 8 тис.7 місяців тому
미원-함창전투 #4, 국군 1사단 화령지구전투, 1950년 7월 23일~24일,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접전
미원-함창전투 #3, 화령장전투, 국군 17연대 7월 17일 상곡리전투와 7월 21일 동관리전투에서 북한군 2개 연대 섬멸하고 전 장병 1계급 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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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함창전투 #3, 화령장전투, 국군 17연대 7월 17일 상곡리전투와 7월 21일 동관리전투에서 북한군 2개 연대 섬멸하고 전 장병 1계급 특진
미원-함창전투 #2, 미원 전투, 50연대는 청안과 미원을 경유하여 보은으로 45연대와 48연대는 괴산에서 상주 방면으로 진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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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함창전투 #2, 미원 전투, 50연대는 청안과 미원을 경유하여 보은으로 45연대와 48연대는 괴산에서 상주 방면으로 진격하라!
미원-함창전투 #1, 청주 남쪽 방어전, 어떠한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현 전선을 고수해야 한다! 소백산맥선 지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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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함창전투 #1, 청주 남쪽 방어전, 어떠한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현 전선을 고수해야 한다! 소백산맥선 지연전
소백산맥선 지연전 프롤로그, 중동부전선을 방어하는 국군 1군단과 2군단,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유엔군이 증원되면 전세를 반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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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선 지연전 프롤로그, 중동부전선을 방어하는 국군 1군단과 2군단,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유엔군이 증원되면 전세를 반전시킨다!
영동-김천 지연전, 충북 영동에서 경북 김천으로 이어지는 경부국도 축선을 중심으로 전개한 공방전, 미군 1기병사단 VS 북한군 3사단·105전차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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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김천 지연전, 충북 영동에서 경북 김천으로 이어지는 경부국도 축선을 중심으로 전개한 공방전, 미군 1기병사단 VS 북한군 3사단·105전차사단
영동-김천 지연전 4편, 김천전투 그리고 낙동강 방어선 준비, 먼저 간 전우들의 죽음은 반드시 보상되어야 한다. 현 전선은 확보되어야 하며 우리는 승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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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김천 지연전 4편, 김천전투 그리고 낙동강 방어선 준비, 먼저 간 전우들의 죽음은 반드시 보상되어야 한다. 현 전선은 확보되어야 하며 우리는 승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영동-김천 지연전 3편, 혼란스런 전선 상황, 27연대에게 출혈을 감내하고 지연전을 계속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김천으로 철수시켜 사단으로 복귀하도록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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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김천 지연전 3편, 혼란스런 전선 상황, 27연대에게 출혈을 감내하고 지연전을 계속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김천으로 철수시켜 사단으로 복귀하도록 할 것인가?
영동-김천 지연전 2편, 영동 전투, 방어진지 좌우 측면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후방을 차단하는 북한군 3사단의 우회기동전술에 고전하는 미 1기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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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김천 지연전 2편, 영동 전투, 방어진지 좌우 측면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후방을 차단하는 북한군 3사단의 우회기동전술에 고전하는 미 1기병사단
영동-김천 지연전 1편, 제1기병사단은 영동을 방어하라! 그 후방에는 우군이 없으므로 후방보급로 확보에 주의하라. 미 1기병사단 VS 북한군 3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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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김천 지연전 1편, 제1기병사단은 영동을 방어하라! 그 후방에는 우군이 없으므로 후방보급로 확보에 주의하라. 미 1기병사단 VS 북한군 3사단

КОМЕНТАРІ

  • @끄떡이
    @끄떡이 2 дні тому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

  • @beekang6708
    @beekang6708 5 днів тому

    죽느냐, 사느냐, 한국 의 운명 은 풍전등화, 전부 제정신 이 아니엇고 정말 함들 엇을 것입니다, 감사하며 수고 하셧읍니다

  • @Wisdom-w7i
    @Wisdom-w7i 5 днів тому

    필승! 6사단 2연대 출신입니다. 6사단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정영덕-o7e
    @정영덕-o7e 5 днів тому

    오래 기달렸습니다.좋은 내용들인데 자주 업좀 해주세요

  • @장경찬-y5u
    @장경찬-y5u 6 днів тому

    자주자주 올려주세요

  • @진진마
    @진진마 6 днів тому

    기대됩니다~~~

  • @루카치-u3m
    @루카치-u3m 6 днів тому

    한국전쟁 시기 전라도 호남 지역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룬 곳이 별로 없었는데... 부산 몽진과 낙동강 전선 기지화 등 전술전략적 이유로 소홀해지고 방치된 탓이 큰 것 같습니다..

  • @주현택-f9k
    @주현택-f9k 6 днів тому

    고맙습니다

  • @대명동마동석
    @대명동마동석 6 днів тому

    영상 많이기다렸습니다. 보금의 중요성과 지휘부의 저세판단능력이 중요한것 같네요

  • @LansAki
    @LansAki 6 днів тому

    보급 통신 정찰 예비대 사기

  • @큐-l5h
    @큐-l5h 6 днів тому

    많이기다렸습니다 ㅎㅎ 호남지구 경찰대대 및 급편부대의 눈물겨운 지연전이군요 ㅠㅠ

  • @LansAki
    @LansAki 8 днів тому

    ㅠㅠ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군의 노력에 심심한 감사드립니다

  • @박계원-r5y
    @박계원-r5y 9 днів тому

    빨갱이 새키들은 씨를 말려야해

  • @hyeongtaekim4323
    @hyeongtaekim4323 10 днів тому

    . 6.25개전당시 우리식구는 강릉시 왕산면 도마리에서 흑연광산 채굴하며 살았다. 나는 5살이고 7살누나 그해 2월에 태어난 갓난동생과 엄마 아부지 살았다. 그해 1950년 초여름 일요일 아부지가 일찍 산나물캐서 왔는데 광산 직원이 와서 총소리난다 했다. 전쟁의 서막이었다. 그 후 국군이 우리집을 들이닥쳐 집을 뒤졌다.왜 뒤졌는지 모른다. 3년전 1947년 우리가족은 고성장전에서 탈북 월남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 된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2년간 본 일이 없다. 국군과 인민군 양쪽으로부터 쫓긴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 싯점부터 7살 누나 5살 나 1살갓난 동생 그리고 38살 엄마의 혹독한 피난살이는 계속된다....어른들이 수근대는 걸 들었다. 8사단은 쫄닥 망했다고....그 해 초가을 도매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왕산국민학교가 미군기에 폭격당했다. 그날 어느 할머니 집에 2.3가족이 모였고 집의 문은 다 열어놓고 할머니는 태연히 방가운데 앉아 얼마전 후퇴하던 국군이 잡아먹은 소 뼈다귀를 칼로 손질하고 있었고 우리는 할머니가 내 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방가운데 엎드렸다. 방 문 밖으로 국민학교 교사에 폭탄이 떨어지는게 생생하게 보였고 이어 기관총 알이 날아 들었다. 이불틈으로 눈을 내 놓고 다 보았다. 학교는 불 탔고 나중에 보니 집 흙벽에 기관총 알이 박혀 있었다...폭격할 때 방문을 열어 놓아야 벽이 안 무너지고 이불 솜이 총탄을 막아 준다고 해서 우리는 이불을 뒤집어 썼던거다. 집에 와보니 집 뒤가 무너져 엄마가 배수로 쳤는데 내 몸 만안 폭탄이 뭍혀있어 엄마가 왕산지서에 신고했는데 외서 보더니 그냥 묻으라 해서 그냥 묻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우리 4가족은 유난히 그 해 많은 눈 덮힌 삽당령을 넘어 태백산맥을 따라 경북후포까지 머나먼 고난의 피란길에 올랐다. 그냥 걷다시피 눈길을 더듬어 남으로 남으로ㅜ가는 동안 1살동생은 7살 누나가 업고 나는 걷다가 엄마에 업히고 제무시도 냄비차도 얻어타고 남으로 남으로....그 와중 산길에서 눈밭을 헤메다 날 저물어 어느 초가를 찾아 들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다 들 피란 갔는데 홀로 남아 있었고 끓인 간장물을 주셨는데 거기다 소금밥도 주셨다.어느 동네 읍네정도 되는데 헌병이 여자 둘하고 밥 먹고 있는데 엄마가 빌자 먹던 밥을 우리에게 먹였다 어느 산동네를 걷다 아무도 없는 잡 처마에 마른 옥수수가 달려 있어서 걷어 먹었다.어렵사리 후포에서 엄마가 밥을 빌러다녀 우리 삼남매를 먹이다가 어느 날 삶에 지쳐 3일간 굶은체 누워 있는데 누군가가 사과와 고구마를 들여 놔 줘서 먹고 살았다. 이후 엄마는 엿도가에서 엿을 떼가 촌 도부로 영양을 가서 곡식을 갖고 와 연명했다. 어느날 엄마 따라 촌도부를 갔다가 개울을 건너던 중 내가 물살에 고무신을 떠 내려 보냈는데 엄마가 어떡해 어떡해하며 그냥 우셨다.엄마 우는 걸 처음 봤다.6살 내가 맨발로 수십리 산길을 걸어야 하기에 엄마는 정말 난감했을거다.엄마 미안해...장사 안되는 날은 엿지게미나 술찌게미로 연명했다. 배가 고파 이웃할머니 장독대에서 김치를 훔쳐 먹기도 했다.....그러던 중 홀연히 아버지가 나타나 부산에서 밀수를 하던 30대 초반 외삼촌(부산 성ㅇ경파 두목 성ㅇ경..2000년대까지 건재추정)을 만나 어선 덕성호에 기름 10드럼을 싣고 나타나는데...이 당시엔 전시 상황으로 물자부족이 심각한 때라 국제시장엔 밀수품이 넘쳐나고 그 건 한국 전시경제의 한 축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영화 국제시장의 꽃분이네가게도 밀수품파는 가게였다).이후 기구한 피난살이 운명이 다시 시작되는데.....사지군복울 입은 다리없는 상이군경 둘이 땡깡구걸 하는데 엄마가 밥 차려주며 물어보니 8사단이라 했다...

    • @교양선택전쟁사
      @교양선택전쟁사 9 днів тому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어렵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겠습니다.

  • @큐-l5h
    @큐-l5h 10 днів тому

    왜 다음편이 않나오나요 ㅠ

  • @박정수-p8s
    @박정수-p8s 10 днів тому

    애구 1개월. 되셨네 다음꺼기다리다 늙어가요

  • @LansAki
    @LansAki 13 днів тому

    가슴 아픈 내용들입니다 어떻게 지켜낸 이 땅인데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이

  • @주현택-f9k
    @주현택-f9k 14 днів тому

    빨리 업데이트 해주셔요

  • @큐-l5h
    @큐-l5h 28 днів тому

    선생님 혹시 여순사건(정치적 견해 말고) 14연대와의 전투 과정도 다뤄주실수있나요

    • @교양선택전쟁사
      @교양선택전쟁사 9 днів тому

      여순사건은 6.25전쟁이 아니라, 6.25전쟁이 완료된 후에 검토해 보겠습니다.

  • @프랙탈-e1q
    @프랙탈-e1q Місяць тому

    후방 보급로 차단이 적의 주요한 전술로 예상되는데 취약지구 주요 고지에 1개 분대씩만이라도 배치해 놓았더라면. .

  • @프랙탈-e1q
    @프랙탈-e1q Місяць тому

    통신두절시 비둘기라도 써야되는거 아니야! 미24사단은 허구헌날 통신두절이여!

  • @해탈-g3y
    @해탈-g3y Місяць тому

    .6.25전쟁 초기 우리국군은 민병대 수준 그런 군대를 가지고 입만 벌리면 북진통일 멸공통일 아가리 털다 된통 당한 이승만

  • @홍승수-q1p
    @홍승수-q1p Місяць тому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워 지켜야 하는 임무로 매일매일 시시각각 다급하게 뛰어 다니며 부실한 무기로 싸운 국군들~.머리숙여 묵념을 드립니다. 잊지말자 공산당 북괴의 침략을!

  • @정용규-w9f
    @정용규-w9f Місяць тому

    영화로 찍어서 교육용으로 ,.어릴 때 배달의 기수같은 프로를 만들어야.,,한편의 역사교과서이다,,6.25 초반 국군의 대패와 국군의 붕괴,,임진왜란때 왜적의 초반 조총 공격으로 대패.,.부산성 동래성 대패..불멸의 이순신프로,,비슷하게,,백선엽장군 이란든가,,이성가 장군,김종오장군등..채명신장군등,,,나라를 지킨 구국의 영웅에 대한,,이야기를 후세들이 배워야 할 산 교육이다..

  • @cjfdlskfkche5162
    @cjfdlskfkche5162 Місяць тому

    미군, 국군,경찰 여러분 감사합니다

  • @장상길-e8o
    @장상길-e8o Місяць тому

    미군 감사합니다. 보은할 일이 있을것입니다. 일단 국내 좌삐리 척결이 우선되어야 가능합니다.

  • @아나키아
    @아나키아 Місяць тому

    인민군6사단의 서쪽 침공과 경기충청호남 경찰의 호국방어도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아나키아
    @아나키아 Місяць тому

    잘보고 있습니다. 잘보는 정도가 아니라 공부하듯보고있습니다 좋은채널 좋은내용 감사합니다

  • @김상복-e9e
    @김상복-e9e Місяць тому

    미군이 나가면 하늘을. 보아라

  • @진김-u7m
    @진김-u7m Місяць тому

    항상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candlmess55
    @candlmess55 Місяць тому

    괴뢰군들이 가장 무서워했던게 함포라고 합니다. 공습은 보면서 얼마든지 피할수 있는데 밤에 어디로떨어질지 모르는 함포는 패닉 그 자체였다고

  • @toyoungkwon9026
    @toyoungkwon9026 Місяць тому

    전쟁준비 없이 당한 625 쫓기면서도 대단히 잘싸운것임..보급도 누가 어디서 어떻게 원활히 할수 있었겠읍니까?

  • @GWANGCHULKIM
    @GWANGCHULKIM Місяць тому

    이 나라를 위해 노력하신 분들께 감사할뿐입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 @pmrfg-ksy
    @pmrfg-ksy Місяць тому

    잘보고 갑니다. 더크게 성장하는 채널 되시며~ 건강 행복 가득한 하루 되세요👍

  • @루카치-u3m
    @루카치-u3m Місяць тому

    12:15 삼국지 마속 이야기가 떠오르는 부분이군요...

  • @std3786
    @std3786 Місяць тому

    전쟁 발발 후 두달안에 영덕까지 국군은 밀림ㆍ 이것은 장비가 문제아니라 아군의 오합지졸 병력과 전문적 훈련된 북한군 그리고 전략이 북한이 우월해서 국군은 일방적 당함ㆍ 낙동강 전투도 유엔군 공군력이 아니었다면 전쟁 후 8월달어 부산 함락당함ᆢ 아군이 잘싸운게 아니다ㆍ

    • @13무명씨
      @13무명씨 Місяць тому

      종북좌파와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유일한 처방전이자 💊 인데...

    • @강주희-y5q
      @강주희-y5q Місяць тому

      국군은 생각보다 잘 싸웠고 인민군은 생각보다 못 싸웠습니다. 참고로 미군도 인민군을 맞아서 24사단이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25사단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 @std3786
      @std3786 Місяць тому

      잘 싸운 군대가 주구장창 낙동강까지냐ᆢ

    • @bsl9415
      @bsl9415 Місяць тому

      @@std3786.북한은 주력이 중공의 홍군,내전 출신 경험자임. 병력수 절대적 많고,장비도 당시의 최첨단 소련제. 전쟁이 주둥이로 하는 것 아니다.

    • @std3786
      @std3786 Місяць тому

      @bsl9415 무지군님ᆢ 내말은 정신력 말함ㆍ 한국군은 요즘도 미군없으먼북에 초토화된다

  • @균복박
    @균복박 Місяць тому

    감사합니다

  • @oky4519
    @oky4519 Місяць тому

    진보시내와 현 경북교도소, 진보에서 영양가는 초입일대가 전쟁터였군요. 우리 국군의 열악한 조건에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전해지는 듯 합니다. 오늘도 좋은 영상 잘봤습니다. ^^

  • @dardadargo1761
    @dardadargo1761 Місяць тому

    이렇게 유의미한 컨텐츠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교양선택전쟁사 좋습니다

  • @현이-_-9
    @현이-_-9 Місяць тому

    저희 큰할아버지가 문경전투에서 포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 암울하네요.

  • @이서영-t9j2l
    @이서영-t9j2l Місяць тому

    17연대 75년군번입니다 화령장에 다녀왔습니다

  • @카에리미하세지
    @카에리미하세지 2 місяці тому

    중공조선족의 실체 중공조선족은 동포가 아니다 6.25 남침 선봉부대 4사단 18연대가 조선족 부대였다 북한군 105 전차 여단 기계화 연대는 조선족이 주축으로 서울 점령 후 시가행진 당시 독일제 카피 사이드카 부대였다. 초기 북한의 남침의 선봉부대는 1사단, 2사단, 3사단, 4사단, 6사단, 7사단, 15사단, 105전차여단으로 구성되었다. 이 부대들은 사실 굉장히 특이한 병력이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외국 군대의 병력들이 북한군 군복 입고 북한군식 편제로 임시편제로 내려온 병력이다. 북한 인민군 최정예 사단 6사단은 일명 방호산 사단이라고 불리는 부대로 중국 공산당 팔로군 166사단이 그대로 인민군으로 편입된 사단이었다. 1949년 7월 초 방호산이 인솔해 북한으로 들어가서 1949년7월25일 인민군 6사단으로 재편된 부대였다. 개성 송악산을 넘어온 방호산 소장의 인민군 제6사단은 모택동의 팔로군 출신으로 구성된 부대다 이들은6.25 남침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1950년6 월18일 사리원에서 기차로 개성 북방에 배치된 후 대기하고 있었다. 모택동은1949년7월 약2만2000여명에달하는 팔로군소속 조선족 부대를 6.25남침을 준비하는 김일성에게 넘겨주었고,이들은 이동하는 기차안에서 인민군복으로 갈아입었다 김일성은 이들을6.25남침의주력으로삼았다.

  • @최원섭-z8e
    @최원섭-z8e 2 місяці тому

    진짜 처절하네요

  • @hybbikkim4580
    @hybbikkim4580 2 місяці тому

    뻑하면 총살에 군도로 참수질이나 하는 쓰레기 군인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 @김영욱-o8u
    @김영욱-o8u 2 місяці тому

    왜군 게다짝들이 바글바글하구나 죽창으로 꼬치를 맹글어야된디

  • @남장권영
    @남장권영 2 місяці тому

    나라 빨갱이 욕을 해도 잡아가는 세상이 될것이다.

  • @std3786
    @std3786 2 місяці тому

    유사시 북 경보병에게 남한은 후방 교란ᆢ 산악지형에 모든 전술 특화된 ᆢ 반면 한국국은 도로

  • @또또네-n6l
    @또또네-n6l 2 місяці тому

    우리 아버지들의 희생이 있어 대한민국을 지켜낸겁니다. 벌써 세월이 74년이 지나가네요. 전쟁에서 가난에서 우리를 기르고 가르치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끄떡이
    @끄떡이 2 місяці тому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 @진김-u7m
    @진김-u7m 2 місяці тому

    항상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