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환단/한단)시가 있었던 저곳 이외 중요한것이 ■만주동북쪽 6천년이전부터 이미 철기유물이 있는(봉림고성)과 강원도와도 연관이 매우 큼 ■홍산등도 같이 파확해서 유지해야 저곳과 이곳들은 서로연관성이 큼 ------------------------------------------------ 그리고 바이칼 호수 북쪽과 아무르강 북쪽과 캄차카반도 사이 넓은 벌판의 옛문명등도 파악이 같이 중요함 (옛날에는 이곳들이 인디언 머리와 인디언 깃털모자와 인디언 복장을 하고 있었음 가슴과 배는 갑옷을 둘렀으며 / 등과 목을 부분을 감싸은 갑옷형태로(고구려 갑옷처럼 생긴형태) 초기에는 동물뼈나 나무로 갑옷이 만들어짐 이후 이들이 북중미로 건너가서는 기후가 따스해서 가죽옷들이 많이 생략형의 복장을 한임(이들이 도착할때 그곳원주민들은 옷이 없었으며) 인디언들 가슴에 있는 것들이 원래는 갑옷이였음 / 복장이 거란(=환인 안파견 배달국,고조선,후예일부)풍복장인데 다만 인디언풍 깃털모자를 쓰거나 ■(어리양쪽에 깃털 2개를 꽃아서 다님 즉 깃털을 머리에 꽃고 다녔음) (곡옥)을 착용하기도 함 배달국과 고조선후예(체로키)들도 북미에서 가장 먹거리가 풍부한 곳에 유지했으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빛살무늬 토기 이동루트처럼 해빙기때 서해에서 부채살처럼 펼쳐나갔기에 1차 2차 3차
산서성 성도인 태원시가 원래 이름이 진양시입니다晉陽。진주강씨가 원래는 진양강씨인데 강씨는 대표적인 고구려 성이고, 치우천황, 강태공(태공망)의 성입니다. 거기에 진양고성도 있고, 유구한 박물관도 있다는데 , 사진으로만 봐도 그 규모가 굉장히 웅장한게 고구려 성임에 틀림없어 언젠가 한번 가볼려고요.
@@내가알고싶은이야기 그거에 대해선 계속 알아봐야죠. 다만, 중국에 백제 본토가 있었다고는 확신합니다. 서울대 천문학 교수님이신 박창범 교수님이 예전 고대 삼국의 일식 관측지를 연구했었는데, 백제는 중국 베이징쪽에서 나타났고, 백제는 지방행정제도인 22담로, 그리고 왕성이 2개인 동백제와 서백제. 북위와의 전쟁, 말갈과의 잦은 다툼.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백제로 설명하기엔 웃기죠. 또한, 요서백제도 말이죠. 백제의 첫 수도인 하남 위례성. 황 ( 하河 ) 하 이남의 큰 바다같은 강 이남의 위례성을 뜻하는거지. 지금의 한강(아리수) 이남의 위례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합리적해석 이해가 잘 갑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한이 삼한에 한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지며 삼한은 대륙본토와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의미이고 지금의 국명에는 미비하게 느껴지지만 잎으로가 기대가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 봅니다. 많이 축소된 이땅이 전후 70년후에 문화강국으로 그리고 정말 조용히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던 방산 기술이 발전하여 방산강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분명 이 나라를 생각하는 우리역사채널 처럼 숨어 있는 힘있는 애국자가 있을 거라 믿고 있고 그 결과물이 문화와방산이 크게 발전된 것이라 봅니다. 아직 역사분야는 미비한 분야지만 분명히 힘을 실어줄 애국자분들이 있을 거라 믿고 동북아 역사의 적통을 우리가 가져가리라 믿습니다.
몸골은 과거에 큰 호수들과 큰 강줄기들이 흘렀으며 초목이 우거졌던 곳임 당시 몽골은 존재되지 않았고 몽골영억은 고조선 영토의 일부분 부여나 고구려영토 일부분에 해댱 됨 환국시절 말타고 4방 8방 지름길 교통로 핵심 지역이였던 바이칼 북쪽 온다르(온달지대/완달과 전주의미와 동일함) 전부해당됨 그리고 북장안을 장악해야 되었기에 고비사막 서쪽에 밤댸하게 태- 궁성급 고구려 성을 축조해서 유지하는데 2차세계 대전때 파괴되버리고 사진만 남아있게 됨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중앙아시아는 고조선 멀티지역이였으며 3조선 형태로 유지운영됨 ,■다만 (신시,조시,해시)운영은 못함 이것은 (본진)에서만 유일하게 가능함 중앙아시아가 고조선 멀티지역이지 고조선 본진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에 있음 ■자꾸 많은 자들이 이것을 망각하고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음 ■(신시+조시+해시)■=본진에서만 가능
환국은 알타이산맥 북쪽에 있었고, 돈황 삼위산을 거쳐 BC40세기 서안 태백산에 가서 신시배달국을 세웠고, BC27세기 탁록대전 이후 夷族(환웅-치우)과 濊貊族(웅녀-황제)이 만나 오르도스 북서부 시마오유적 숙신국을 거쳐 동으로 산동반도 태산 근방 양곡으로 가서 청구국을 계승한 것이 BC24세기 단군왕검의 조선 아사달입니다. 후에 BC12세기 殷나라 箕子 일족이 망명하며 인구가 급증하면서 단군조선은 堯임금의 옛 도읍 장당경을 거쳐 BC7세기 텐진 부근 조선천독 왕검성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BC5세기 흉노 동쪽 東胡 예맥조선의 한 갈래인 오환부여가 동쪽으로 가서 BC3세기 辰國이 되었고 북부여로 이어진 것입니다.
책으로 꼭 만들어 주세요~차이나가 한자를 간자체로 만든것도 오래된 지명을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한것으로 보이고, 한글도 명나라가 이씨조선에 명령해서 국어를 한자를 쓰지 못하게 명령해서 세종이 급하게 한글을 만들었을 개연성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도 국어를 만드는 국가는 없습니다. 육백년전에 새로 국어를 만든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신라는 우리의 복합궁인 활을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복합궁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물소뿔, 대나무, 참나무 같은 것들인데 대부분 남쪽 땅에서 만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지만, 이것을 사용하는 우리는 북쪽 사람들입니다. 결국 복합궁은 대륙의 남쪽에 있던 신라에서 개발되었고, 차이나 황하족은 이런활을 쓰지 않습니다. 청나라는 신라의 후손들이라 우리와 비슷한 활을 씁니다.
GOOD 아주 잘정리됨 *본래 제 1평양은 서해바다가 평양이였고 / (해빙기이후) 제2의 멀티평양 산둥반도 서쪽 그지도상 백제로 표기된영역이 평양이며 백제로 표기된 지도영역의 서쪽이 (미츄홀)인데 미추홀은 초기에 고구려에서 백제에 놔누워진땅임 아랫쪽 백제경우는 (본래 한(韓)국이 있었던 곳이였으며 이후 백제가 찾이하게됨 그 주변에 (가야가 존재했으며)가야도 본래 산둥반도 발해(대야미)쪽에서 그쪽으로 이동됨 지도는 백제 2차 초기시절이며 이후 백제는(고구려와 화해이후) 북위를 정복하고 바로 아래신라를 쳐서 신라를 아랫쪽으로 이동시키게되며 신라가 아랫쪽에 자리해서 운영하는데 특정시기에 대륙전체가 자연재해가 오랫동안 발생되게됨 *백제 1차 초기시절은 북경과 산둥반도 및 한반도 전체 만주와 연해주전체를 포함됨 그리고 백제 비석을 세우게됨 ---------------------------------------------- 평양성은 낙양서북쪽에 존재하며 평양성 위로는 개마산(또는 마자르산=말갈)이 존재하며 마자수가 존재함
자금성은... 고려의 황궁이였음. 송나라 사신단이 1천명을 이끌고 많은 조공물품들을 가지고 알현한 곳이 바로 자금성..송나라는 당시 고려의 제후국이였고.... 송나라 사신이 고려황성으로 가는 길목을 상세히 적은 기록을 분석하니 현재 베이징의 자금성으로 가는 길이였다는 사실...ㅋㅋㅋ 고려를 존재하지도 않았던 나라인 북송으로 둔갑시키고... 그리고 원래 남송도 아니였지. 그냥 송나라였지... 원이 물러가고 송나라는 난징에 자신들 송나라였던 난진궁을 다시 세운거고..그리고 얼마안가 난징궁에서 900km나 떨어진곳... 그 거리가 얼마나 먼곳인데 베이징에 자금성을 만들고 수도를 옮겼다고 뻥을치고 있는거죠...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바톤 받고 대명조선국을 세웠던게 진짜 역사임. 크고 밝은 조선이란 뜻... 줄여서 명나라.. 당시 한반도는 제후국이 아니라 분국이였고.. 고려시대때 만월대가 있던거처럼... 이후 청나라가 쳐들어와 당연히 황제가 살던 메인 궁인 현재의 자금성을 점령하고 지배하고 살다가 한반도에 있던 흥선대원군이 과거 조선을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반도에 경복궁을 재건한거고.. 청나라는 대륙에서 아래 난징궁까지 점령을 한건지 어떻게 된건지 알수 는 없지만 송나라 마저 집어삼킨것으로 보임.. 그렇게 된건데... 일제강점기때 대륙 조선의 역사를 반도에 구겨넣어버린거고.. 현재 이렇게 살고 있는것임... 현재 서울의 경복궁와 베이징의 자금성을 보면 그 궁의 양식 프레임 비슷함. 정면에 문이 3개 나있는것도 그렇고.. 일직선상의 전각을 배치하는 형태 역시 같고... 가까운 주변 일본의 성들이나 고궁을 봐도 완전히 다름. 또한 동남아시아의 고대 왕궁들 역시 서로 인접하고 있다하여도 역시나 서로의 궁의 배치나 양식이 저마다 모두 다름.. 형태도 다르고 ... 경복궁과 자금성은 구조적으로 판박이임. 참고로 학계에서 논란이 되는 압록강의 위치는 세상에 2군데가 존재하는것으로 추정. 바로 중앙아시아의 아무르강(아무다리아)... 그리고 러시아의 아무르 강.. 보통 나라가 다르고 거리도 먼데.. 일반적으로 강이름이 같을수가 없음. ㅋ. 러시아가 만주지역까지 이동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기에 이곳에 애초에 터잡고 살던 사람들이 압록강이라 부르던 단어를 러시야 유럽식 발음으로 아무르 강이라고 불리웠다는것이 지배적인 의견... 중앙아시아의 압록강이 고대 진짜 압록강이며 이후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며 뭔가의 동질성으로 역시나 압록강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꽤나 높은것임. 중앙아시아 사람들이나 러시아 사람들이나 압록강이란 말을 두고 아무르 강이라고 비슷한 발음으로 표현한것임. 현재 조선의 간도영토는 두개의 강사이의 영토를 의미하는데 그 강중 하나인 신의주 위의 압록강이 아니라 러시아의 아무르 강임.
저 지도는 파트 2시절에 해당되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파트 1시절은 매우 다르며 파트 1시대 해빙기후 대륙 서해바다에 물이차오르고 설산들과 빙하가 녹으면서 저지대는 늘 바다같이 물이 차여있던 시절이라 그래서 터를 다시잡기 위해서 터맥을 삼게되는데 한곳은 삼위로 삼고 다른한곳은 태백으로 삼아서 운영하게됨 (삼위)는 황하물줄기 수원지대에 있으며(배달국때도 매우 귀하게 보호관리되었으며 치우가 직접관리함) 삼위산은 동쪽 하단에 있는데(삼위산은 본래는 산둥동쪽 서해바다 장도에도 있었으며) ■어째거나 시안서쪽과 대륙 삼위산과 그 주변에 흐르는 황화강과 그주변들이 있는데 ,■이곳에 바로 노륭현이있으며 장려현이 있으며 고죽국이 있다( 고죽국은 두곳에 존재하는데 시안서쪽과 산둥반도 서쪽 폐수 서쪽에 존재됨) ■시안서쪽 이곳에 은나라가 존재했으며 은나라는 초기는 (청해)쪽에 존재했었다 침약당하고 /시안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후기자는 시안과 낙양사에 머물고있다 / 북경에서 동북쪽 해안가 섬쪽에 머물다 / 이후 산둥 동쪽 (장도)에 오랫동안 머물다 / 이후 양쯔강북쪽에가서 사망하게 되었고 그곳에 실제기자묘가 있고 (저-기자묘는 가짜고 / 한국사학계에서 화하족들에게 기자묘라 우겨서 기자묘가 된것임) 삼위산 아래쪽으로 6가 가야가 존재했었는데 본래는 만주와 산동반도쪽에서 비롯됨 당시 포구마다(6부 6촌을 두워서 운영했는데 퇴적층이 쌓여 일부가 없어지게됨) 이후 양쯔강 근처 분지지형으로 이동하게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중시)위에 (고구려,백제 신라,가야)가 존재했었음 /오랫동안 다 (서해가 산전벽해)되면서 동쪽에서 멀티해서 유지 된것임 지명도 동일하게 남아있음 ■장안 위취를 잘 파악함 (시안은 장안이 아님 장안은 총 3개가 있는데 북장안에서 아랫쪽으로 수직선은 그으면 3개의 장안 위취가 됨 ■낙양의 실제위치는 시안 서쭉에 있으며 (낙양성 십리허도 이곳에 있음) 현재 낙양은 훗날 지명이 이동되었고 이후 낙양으로 불리지게 됨
선=어+양. 그래서 어양(지금의 북경 윗쪽)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양 한자가 다르긴 하네요. 쩝. 물고기도 잡고 유목도 하는 어양. 지금의 어양, 밀운에 가면 둘레가 200킬로? 가 넘는 거대한 호수가 있고 물고기 어 자를 쓰는 지명도 있으니 물고기도 잡고 양도 기르고 하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파트 0 = (매우 중요함) 산둥반도 동쪽 바다에는 장도라는 섬이 있는데 / 육지였던 서해에 물이 차오른 상태에서도 (그 주변들이 넖은 평지로 유지 되어 왔으며 / 이동수단은 수레를 끌고 다님 /최초로 수레를 만들어서 사용함) 매우 문명이 발달된 곳이 였으며 (정신문명+물질문명)매우 발달되어 있으며 (천독국)이라 불리워짐 편경이 있었으며/ 특히 악기류들이 많이 있었으며/ 각종 예약을 만들어서 유지했으며(최초로 음악을 만들어서 유자함)/ (부도의 도)가 있었으며 나라운영 원리와 이치와 역법이 있었고 (백제금동향로에 이 모든 것이 포함되있음) ■주변의 나라왕들내지 핵심인물들이 이곳에 와서 도을 배우고 갔으며 / 예악과 악기연주법을 배우고 갔는데 나라운영의 진법의 원리와 이치를 배우고 감 아무나 못갔으며 특히 화족은 절대 불허임 / 본래 태산은 화족 진입이 금지되었으며 대륙 대부분의 평야지대른 화족진입이 금지되었고 올 수밖에 없을때는 상투을 틀어야먄 올 수가 있었음 ■왕이 되면반드시 태산(또는 마니산)에 올라 고하고369대예제를 올려야되며 / 이곳에 와서 다시 윤허를 받아야만 왕으로 인정이되게 됨 ---------------------------------------------- 이후 장도 주변에 넓은 평지가 사라지게 됨 ( 큰 지진이 계속 발생되었으며) 물속에 가라앉게되었고 이후 장도 섬만 남게됨(금이 흔하게 유지되었던 곳이였음) 섬만 남게되었으나 ■삼국정부에서 장도에 꾸준하게 양식을 공급해줌 ■고려시작때 큰 자연재해로 산둥반도와 장도가 패허가 되었는데 이곳들은 고려에서 대대적으로 개보수을 해서 유지하게 됨 ----------------------------------------- ■서양의 양키들의 골드러시때 장도에 황금이많다는 소문을 듣고 줄줄이 배타고 장도로 갔으나 한척도 가지를 못하고 모조리 난파되어 실패됨
발해는 본래 산둥반도 있었고 산둥반도는 본래 동쪽과 이어져 있었고 발해만은 빙하기 시절때도 큰 호수로 유지되었으나 (발해만 아래에도 서해는 바다가 아닌 방대한 대륙 상태에서 /큰 호수와 큰 강줄기들이 이어져 흘렀으며 금수강산으로 먹거리가 매우풍부+ 물반 고기반) 해빙기때 산마다 쌓인 만년설들이 녹으면서 산둥반도가 섬으로 유지되게 되었고 /이후 토사가 축적되면서 산둥반도가 점점 대륙에 가까이 유지하다 이후 붙게됨 산둥반도 서남쪽으로 살 황화강(살수강)줄기가 흘렀다가 이후 북동쪽으로 물줄기가 바뀌게 됨 바뀌기 전에 대 운하같이(대야미)유지 되었는데 이곳이 대야미-발해며 / 발해에는 큰 포구가 있었으며 /이후 발해는 큰 호수처럼 유지되었고(계속 발해라고 불림) 이후 토사가 쌓이면서 작은호수로 유지되는데 계속 발해라 불림/ 이후 호수가 거의 없어지게됨 그래도 계속 발해라 불림 그 근처에 (사문도)가 있으며 이후사문도 문양이 없어지게 되었고 명칭만 남게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훗날 이정기가 왜 산둥반도에서 나라를 세워서 다시 부흥화를 시도했는지 잘 알 수 있음 ■고려시절 포구가 산둥반도 남쪽에 있으며(본래는 산둥반도 안쪽에 포구가 있었는뎌 안쪽이 토사유입으로 막히고 이후 이쪽을 포구로 유지됨 장보고가 많이 들락달락 했던 곳이며 (왜/섬왜+육지왜/왜=일본인과 화족인)해적들을 소탕하며 /양쯔강 윗쪽으로 해적때와 도덕때들을 소탕하고 그곳들을 고려에서 세금을 받아서 유지함
아사달 문양이 몽골, 부리야트공화국, 사하공화국, 카자흐스탄 국기에도 나옵니다. 단군왕검의 조선 (고조선) -> 고구리 -> 고리 -> 몽골제국 으로 이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런 기반이 없이 갑자기 징기스칸같은 인물이 나왔다고해서 유라시아에 걸치는 제국을 하루아침에 건설할 수 없습니다.
@@doodaebal 몽골제국의 통치 방식은 칸에게 충성을 하고 부여하는 의무를 이행하면 점령지 민족의 문화와 종교, 언어, 제사를 인정하는 식으로 직접 지배가 아닌 간접지배를 했지요. 이와 비슷한게 고조선과 고구려에도 있었거든요. 고조선은 천산족, 예족, 맥족, 늑대족 (유목민)의 연합체였고 마찬가지고 각자의 조상을 모실 수 있는 제사를 인정했고요. 이는 그 민족의 지배층의 존엄과 존속을 인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고구려도 가한 제도 라는게 있어서 신라가 중앙집권국가로 가기 이전에 신라의왕을 마립간(마립가한)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고구려 천하 중심 체계의 일부로 속국화했는데 이런 식으로 돌궐, 숙신(여진), 거란에게도 가한을 세웠던 것입니다. 몽골제국은 역사상 가장 적은 숫자로 이루어진 집단이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하며 지배층으로 군림하며 다스렸던 기이한 구조의 제국입니다. 징기스칸을 중심으로 통일된 몽골인들이 당시 단순히 전쟁만 잘 했던 것 뿐만 아니라 제국을 통치하고 유지하는 그들 나름의 철학과 통찰력이 바탕이 되어 정치체제를 구성했고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어떠한 집단적 지혜를 통해 잠재적으로 내려져왔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지혜의 바탕에는 고조선과 고구려가 일찍히 유목민들을 자신의 천하 아래 두었던 제국의 통치 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undaunted3202 우리 조상님들은 국호를 "아스"라고 하였고 이를 중국이 한자로 "조선"이라 표기한 것 입니다 이것이 최근 언어 연구에서 밝혀진 어간은 한자의 뜻으로 하고 어미는 한자의 발음으로 하는 이두, 향찰 등의 한자 차용을 통한 우리 고대어 표기 방식으로 발전 된 것이고요 아라스-아스로 불리우던 우리 고대국가의 정식 표기는 산동성에서 출토된 대문구문화 아사달 문양이 당시 "아스"를 표기한 상형문자라는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었지요 정리하면 "조선"의 "조"는 아침, 광명, 햇살, 밝음 의 뜻이며 "선" 은 "스"로 발음하라는 규칙입니다 우리가 외래어 표기시 "RADIO"라는 알파벳을 "라디오"라고 한글로 표기하는것과 같지요 위 알파벳을 발음기호 미국식 [ |reɪdioʊ ]로 표기하지 않고 우리 문자인 한글로 "라디오"로 표기하는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모루한55대 물론 최 박사님께서 가라+사라의 합성어에서 동음생략으로 "가사라" 라고 말씀하시지만 이는 어미 부분까지 해석하는것에서 오는 문제로서 천손사상을 갖은 동이족은 "해" "밝음"의 상징으로 "아스" 를 국호로 하여 "선"은 "스"로 발음해야 한다는걸 알려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것입니다
대폭발 전에는 후지산처럼 생겼었는데 천년전 엄청난 대폭발로 윗부분이 모두 날아가고 파여서 현재의 모양이 되었지요. 예전에는 4000m 언저리 높이 입니다. 어마어마한 폭발로 일본에 1m 높이의 퇴적물을 만들고, 화산재가 지구를 한바퀴 이상 도는 역사상 몇번 안되는 큰 폭발을 일으켰어요.
망상은 금물이며 참으로 진실됨을 발설키를 바라며 아사달 하! 고어에 아사는 아침의 이슬을 뜻하며 달이란 제단을 말한다. 이는 아침의 하늘에서 내린 고귀한 물을 제단에 올린다는 것이며 이는 장소를 말함이 아니며 곧 그곳이 최고의 신령한 존재의 거처이고 바로 그곳이 중심이다.옛 날엔 생김세 피부색 언어가 필요치 않으며 곧 사상이 부족이며 나라였다. 발을 숭배하는 족속을 곰이라칭하고 달을 숭배하는 족속을 부을이라 칭하고 태양을 칭송하는 이들을 호우라라 말하고 물을 칭송하는 이들을 여리고라 말하고 그외 목초 잡물을 칭하는 이들을 가무라라고 칭했다.
태백산이 히말리아산입니다ᆢ히말라야 ! 태백산기슭은 티벳고원입니다 그곳에 크고작은 호수가 아주 많은데 그 호수한곳 즉 은단수 근처에 도읍지를 정하고 아사달이라고 했읍니다 그리고 고조선시대부터 우리조상들은 동으로 이동했읍니다 황하를 따라 이동했으며 중국인의 조상들은 양자강을 따라 이동했으니다 고조선 중기때는 우리조상들이 서안에서 대륙을 다스렸읍니다 이미 그때에 대륙으 동부 황하의 북부 한반도까지 퍼져서 거주했으며 ᆢ
華夏族은 사마천이 창작한 개념입니다. 이를 인정하더라도 하나라는 BC20세기에 나타나므로 그 이전의 夷族 역사의 주인이 아닙니다. 사실상 206년 유방이 세운 漢나라가 漢族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북방 유목민들이 지배했고, 남송 이후 주자학 등 오늘의 중국 문화가 형성된 것입니다.
발해는 본래 산둥반도 있었고 산둥반도는 본래 동쪽과 이어져 있었고 발해만은 빙하기 시절때도 큰 호수로 유지되었으나 (발해만 아래에도 서해는 바다가 아닌 방대한 대륙 상태에서 /큰 호수와 큰 강줄기들이 이어져 흘렀으며 금수강산으로 먹거리가 매우풍부+ 물반 고기반) 해빙기때 산마다 쌓인 만년설들이 녹으면서 산둥반도가 섬으로 유지되게 되었고 /이후 토사가 축적되면서 산둥반도가 점점 대륙에 가까이 유지하다 이후 붙게됨 산둥반도 서남쪽으로 살 황화강(살수강)줄기가 흘렀다가 이후 북동쪽으로 물줄기가 바뀌게 됨 바뀌기 전에 대 운하같이(대야미)유지 되었는데 이곳이 대야미-발해며 / 발해에는 큰 포구가 있었으며 /이후 발해는 큰 호수처럼 유지되었고(계속 발해라고 불림) 이후 토사가 쌓이면서 작은호수로 유지되는데 계속 발해라 불림/ 이후 호수가 거의 없어지게됨 그래도 계속 발해라 불림 그 근처에 (사문도)가 있으며 이후사문도 문양이 없어지게 되었고 명칭만 남게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훗날 이정기가 왜 산둥반도에서 나라를 세워서 다시 부흥화를 시도했는지 잘 알 수 있음 ■고려시절 포구가 산둥반도 남쪽에 있으며(본래는 산둥반도 안쪽에 포구가 있었는뎌 안쪽이 토사유입으로 막히고 이후 이쪽을 포구로 유지됨 장보고가 많이 들락달락 했던 곳이며 (왜/섬왜+육지왜/왜=일본인과 화족인)해적들을 소탕하며 /양쯔강 윗쪽으로 해적때와 도덕때들을 소탕하고 그곳들을 고려에서 세금을 받아서 유지함
산둥반도 동쪽 바다에는 장도라는 섬이 있는데 / 육지였던 서해에 물이 차오른 상태에서도 (그 주변들이 넖은 평지로 유지 되어 왔으며 / 이동수단은 수레를 끌고 다님 /최초로 수레를 만들어서 사용함) 매우 문명이 발달된 곳이 였으며 (정신문명+물질문명)/ 편경이 있었으며/ 특히 악기류들이 많이 있었으며/ 각종 예약을 만들어서 유지했으며(최초로 음악을 만들어서 유자함)/ (부도의 도)가 있었으며 나라운영 원리와 이치와 역법이 있었고 (백제금동향로에 이 모든 것이 포함되있음) ■주변의 나라왕들내지 핵심인물들이 이곳에 와서 도을 배우고 갔으며 / 예악과 악기연주법을 배우고 갔는데 아무나 못갔으며 특히 화족은 절대 불허임 / 본래 태산은 화족 진입이 금지되었으며 대륙 대부분의 평야지대른 화족진입이 금지되었고 올 수밖에 없을때는 상투을 틀어야먄 올 수가 있었음 ■왕이 되면반드시 태산(또는 마니산)에 올라 고하고369대예제를 올려야되며 / 이곳에 와서 다시 윤허를 받아야만 왕으로 인정이되게 됨 ---------------------------------------------- 이후 장도 주변에 넓은 평지가 사라지게 됨 ( 큰 지진이 계속 발생되었으며) 물속에 가라앉게되었고 이후 장도 섬만 남게됨(금이 흔하게 유지되었던 곳이였음) 섬만 남게되었으나 ■삼국정부에서 장도에 꾸준하게 양식을 공급해줌 ■고려시작때 큰 자연재해로 산둥반도와 장도가 패허가 되었는데 이곳들은 고려에서 대대적으로 개보수을 해서 유지하게 됨 ----------------------------------------- ■서양의 양키들의 골드러시때 장도에 황금이만다는 소문을 듣고 줄줄이 배타고 장도로 갔으나 전부 난파나 메몰되었고 이후 이들은 포기하고 인천으로 오게됨 그리고 이들은 다시 어메리컨 북중미로 이동함 ■북미동쪽에는 북미왕이 허락해서 속국들형태로 유지시키서 기생형태로 자리했던 재팬인(영국인)들은 동쪽 13주을 통일하고 이후 북미왕에 재팬(영국)사자로 옆에 유지했던 자에 의해 기습 구테타를 당하고 주객전도화로 나라전체를 빼앗기게 됨 / 이후 말타고 달려가 깃발만 꽃으면 땅을 얻게 적용하게됨 이후 북미에 자리한 배달국과 고조선후예 체로키인들도 쫒겨나게됨 북미와 중미에 자리했던 고구려와 발해인들도 타격받게 되었으며
갈석산을 황하 이남으로 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잊지 말고 되찾아야죠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을 보여주셔서 감개무량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환단/한단)시가 있었던 저곳 이외
중요한것이
■만주동북쪽 6천년이전부터 이미 철기유물이 있는(봉림고성)과 강원도와도 연관이 매우 큼
■홍산등도 같이 파확해서 유지해야
저곳과 이곳들은 서로연관성이 큼
------------------------------------------------
그리고 바이칼 호수 북쪽과
아무르강 북쪽과 캄차카반도 사이 넓은 벌판의 옛문명등도 파악이 같이 중요함
(옛날에는 이곳들이 인디언 머리와 인디언 깃털모자와 인디언 복장을 하고 있었음
가슴과 배는 갑옷을 둘렀으며 / 등과 목을 부분을 감싸은 갑옷형태로(고구려 갑옷처럼 생긴형태)
초기에는 동물뼈나 나무로 갑옷이 만들어짐
이후 이들이 북중미로 건너가서는 기후가 따스해서 가죽옷들이 많이 생략형의 복장을 한임(이들이 도착할때 그곳원주민들은 옷이 없었으며)
인디언들 가슴에 있는 것들이 원래는 갑옷이였음 / 복장이 거란(=환인 안파견 배달국,고조선,후예일부)풍복장인데
다만 인디언풍 깃털모자를 쓰거나 ■(어리양쪽에 깃털 2개를 꽃아서 다님
즉 깃털을 머리에 꽃고 다녔음)
(곡옥)을 착용하기도 함
배달국과 고조선후예(체로키)들도 북미에서 가장 먹거리가 풍부한 곳에 유지했으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빛살무늬 토기 이동루트처럼 해빙기때 서해에서 부채살처럼 펼쳐나갔기에 1차 2차 3차
고려 개경은 북쪽에 송악산이 있고, 동과 서에 큰강이 있어야 합니다. 서쪽의 큰강은 예성강이고 벽란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쪽 강 근처에는 용수산과 진봉산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나도 바로 태산에 아사달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해뜨는 곳을 보는 산 바로 태산입니다...그곳이 우리 민족이 살았던 흔적이 파면 나옵니다..지금도 갖은 지명이 우리 역사에 나오는 지명입니다...
지도에 있는 陽谷이 九夷족 중심지 아사달입니다.
궁금하네요 어떤 근거로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근거는 없고 아무말 대잔치 하는곳이네;;
@@doodaebal 죄송합니다. ~~ 근거 없는 이야기 드렸네요. 그냥 태산이야기 하시길래 속담 생각나서 그냥 말씀 드린건데 오해 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또 한분의 역사고수가 계시는군요 일제식민장개역사를 지키고 있는 늠들을 모두 쓸어내서 우리의 진짜역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산서성 또한 고구리의 핵심강역이라고 봐야 할 듯하네요.
산서성 성도인 태원시가 원래 이름이 진양시입니다晉陽。진주강씨가 원래는 진양강씨인데 강씨는 대표적인 고구려 성이고, 치우천황, 강태공(태공망)의 성입니다. 거기에 진양고성도 있고, 유구한 박물관도 있다는데 , 사진으로만 봐도 그 규모가 굉장히 웅장한게 고구려 성임에 틀림없어 언젠가 한번 가볼려고요.
우리역사님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금도 서라라는 지명이 있어요..서주 밑에...정확한 해석이다....어찌 나와 똑 같은 생각을 했을 까...
그렇죠.. 당항성이 바로 당나라와 통하는 교두보였고 지금의 인천이 당항성이라는 개소리는 진짜 어처구니가 없음.. 얼추 그냥 껴맞추다보니 그걸 믿는 이병도의 노예들이나.. 문제
한반도에 백제가 없었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내가알고싶은이야기 그거에 대해선 계속 알아봐야죠. 다만, 중국에 백제 본토가 있었다고는 확신합니다.
서울대 천문학 교수님이신 박창범 교수님이 예전 고대 삼국의 일식 관측지를 연구했었는데, 백제는 중국 베이징쪽에서 나타났고,
백제는 지방행정제도인 22담로, 그리고 왕성이 2개인 동백제와 서백제. 북위와의 전쟁, 말갈과의 잦은 다툼.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백제로 설명하기엔 웃기죠.
또한, 요서백제도 말이죠.
백제의 첫 수도인 하남 위례성. 황 ( 하河 ) 하 이남의 큰 바다같은 강 이남의 위례성을 뜻하는거지.
지금의 한강(아리수) 이남의 위례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알고싶은이야기 저는 있었다고 생각함. 둘 다
애초에 대륙에만 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말도 안되는게 여러가지 비석들이 존재하는데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으시는 우리역사 히스토리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합리적해석 이해가 잘 갑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한이 삼한에 한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지며 삼한은 대륙본토와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의미이고 지금의 국명에는 미비하게 느껴지지만 잎으로가 기대가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 봅니다.
많이 축소된 이땅이 전후 70년후에 문화강국으로 그리고 정말 조용히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던 방산 기술이 발전하여 방산강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분명 이 나라를 생각하는 우리역사채널 처럼 숨어 있는 힘있는 애국자가 있을 거라 믿고 있고 그 결과물이 문화와방산이 크게 발전된 것이라 봅니다.
아직 역사분야는 미비한 분야지만 분명히 힘을 실어줄 애국자분들이 있을 거라 믿고 동북아 역사의 적통을 우리가 가져가리라 믿습니다.
후조선. 찬성입니다.
1990년대초 다큐에서 몽골지역 위성사진으로 과거 흘러 가는 강을 찾아서 보여줬던 게 기억나군요!!!
몸골은 과거에 큰 호수들과 큰 강줄기들이 흘렀으며 초목이 우거졌던 곳임 당시 몽골은 존재되지 않았고
몽골영억은 고조선 영토의 일부분
부여나 고구려영토 일부분에 해댱 됨
환국시절 말타고 4방 8방 지름길 교통로 핵심 지역이였던 바이칼 북쪽 온다르(온달지대/완달과 전주의미와 동일함) 전부해당됨
그리고 북장안을 장악해야 되었기에 고비사막 서쪽에 밤댸하게 태- 궁성급 고구려 성을 축조해서 유지하는데
2차세계 대전때 파괴되버리고 사진만 남아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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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는 고조선 멀티지역이였으며
3조선 형태로 유지운영됨
,■다만 (신시,조시,해시)운영은 못함
이것은 (본진)에서만 유일하게 가능함
중앙아시아가 고조선 멀티지역이지 고조선 본진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에 있음
■자꾸 많은 자들이 이것을 망각하고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음
■(신시+조시+해시)■=본진에서만 가능
결국 마지막백제 의자왕은 나라가 망한후에 죽은후 자기땅인 북망산에 묻힌거네요
한반도공주에서 의자왕을 생포해서 그 먼대륙까지 끌고갔다는건 결국 개구라네요
훌륭합니다!!!!! 리스펙!!!!!💙
고을 선은 언덕 선이라고도 합니다...한자 사전에 나와 있어요..일본 한자 사전에도 있고..그래서 조는 아사이고(일본 아사히 신문을 보세요), 선은 언덕입니다. 즉 달입니다. 조선은 아사달이라는 겁니다....
제일 구라가 많고 과대 평가 받고 있는게 당나라 일거라고 생각함 티베트 ,위구르, 발해 등등한테 계속 털림 .
일단 신라와 7년 전쟁으로 국력이 바닥.. 그 이후로 동쪽은 쳐다도 안 봄..
감사합니다
다만 한반도는 신라와 무관함
7만년 역사이래 신라는 아무것도 아닌 티끌이고
이미 한반도 남쪽 동서에도 왕국들이 이미 존재했었고
그곳의 무덤들은 애초 신라와 아무런 상관없는 무덤들임
한민족은 7만년이상의 역사이지
한국역사의 바이러스(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절부터 처음으로 시쟉된 역사가 아님
옛고서에 요동의 기준은 장안을 기준으로 한다고 들었네요 지금의 지명도 개명 되었을수도 있다고 봄니다 .서안의 대규모 피라미드 가 단군 시대 유적이라고 추정 하는데 한기 발굴하고 더이상 발굴을 안하고 있음니다
만약 서안 피라미드가 있다면 환웅 신시배달국의 유적
일 것입니다. 현재는 반파유적(태호복희), 삼성퇴유적(염제신농)입니다.
단군조선은 산동반도입니다.
지역마다 문화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지
지방에 따라 다른것인지
충주 고구려비는 무엇인지
하늘이 중공을 벌하고서야 우리역사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당신의견에 한표
정신들 차려.
도대체 학교를 어디까지 나온거야 ?
😊👍
황하강, 태산,산뚱반도, 길림,안동~~~유목민 국가 신라~~~^^~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도다. 태산이 높은 산이 아니지만 예맥족 땅에선 높은 산이었던 것임. 친구 따라 강남간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다 우리 민족의 지명임.
태산은 5,000년전에 해안으로 산동성이 섬이었을수 있습니다.
삼위산(감숙성)배달ㅡ2만기의 묘지
태백산(서안),고조선ㅡ수십개의 피라미드로 단군릉
환국은 알타이산맥 북쪽에 있었고, 돈황 삼위산을 거쳐 BC40세기 서안 태백산에 가서 신시배달국을 세웠고, BC27세기 탁록대전 이후 夷族(환웅-치우)과 濊貊族(웅녀-황제)이 만나 오르도스 북서부 시마오유적 숙신국을 거쳐 동으로 산동반도 태산 근방 양곡으로 가서 청구국을 계승한 것이 BC24세기 단군왕검의 조선 아사달입니다. 후에 BC12세기 殷나라 箕子 일족이 망명하며 인구가 급증하면서 단군조선은 堯임금의 옛 도읍 장당경을 거쳐 BC7세기 텐진 부근 조선천독 왕검성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BC5세기 흉노 동쪽 東胡 예맥조선의 한 갈래인 오환부여가 동쪽으로 가서 BC3세기 辰國이 되었고 북부여로 이어진 것입니다.
와 진심 대단하십니다 정말 딱딱 들어맞는게 테트리스 끝판왕수준입니다
이런거 보고도 한반도 라고 우기는것들은 무뇌인듯합니다
백제가 한반도에 없었다고 믿는건가요?
@@내가알고싶은이야기네전백제본진은 한반도없는걸로생각이됩니다
잘 봤습니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반도에서 나오는 백제유물은 뭔가요?
여러지역에 있는것이죠
아사달 지금도 있는뎅 아프간에도 카자흐스탄에도 구글지도에 치면 나와요
책으로 꼭 만들어 주세요~차이나가 한자를 간자체로 만든것도 오래된 지명을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한것으로 보이고, 한글도 명나라가 이씨조선에 명령해서 국어를 한자를
쓰지 못하게 명령해서 세종이 급하게 한글을 만들었을 개연성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도 국어를 만드는 국가는 없습니다. 육백년전에 새로 국어를 만든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신라는 우리의 복합궁인 활을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복합궁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물소뿔, 대나무, 참나무 같은 것들인데 대부분 남쪽
땅에서 만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지만, 이것을 사용하는 우리는 북쪽 사람들입니다.
결국 복합궁은 대륙의 남쪽에 있던 신라에서 개발되었고, 차이나 황하족은 이런활을
쓰지 않습니다. 청나라는 신라의 후손들이라 우리와 비슷한 활을 씁니다.
GOOD
아주 잘정리됨
*본래 제 1평양은 서해바다가 평양이였고 /
(해빙기이후)
제2의 멀티평양 산둥반도 서쪽 그지도상 백제로 표기된영역이 평양이며
백제로 표기된 지도영역의 서쪽이 (미츄홀)인데 미추홀은 초기에 고구려에서 백제에 놔누워진땅임
아랫쪽 백제경우는 (본래 한(韓)국이 있었던 곳이였으며 이후 백제가 찾이하게됨 그 주변에 (가야가 존재했으며)가야도 본래 산둥반도 발해(대야미)쪽에서 그쪽으로 이동됨
지도는 백제 2차 초기시절이며 이후 백제는(고구려와 화해이후) 북위를 정복하고 바로 아래신라를 쳐서
신라를 아랫쪽으로 이동시키게되며 신라가 아랫쪽에 자리해서 운영하는데
특정시기에 대륙전체가 자연재해가 오랫동안 발생되게됨
*백제 1차 초기시절은 북경과 산둥반도 및 한반도 전체 만주와 연해주전체를 포함됨 그리고 백제 비석을 세우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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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은 낙양서북쪽에 존재하며 평양성 위로는 개마산(또는 마자르산=말갈)이 존재하며 마자수가 존재함
좋아요 !
청해호가 창해일수도 있겠군요.
갈석산같은 유명한 낮은 관망산도 거기있던데...
대청광여도에 보면 개봉이 이문으로 되어 있어야 ..동이의 시작이라는 것이죠...개봉은 동이족의 터전이 었어요...
극단적 권력 독식과 배신이 많은 중국처럼 중앙집권이 강화되는 기원후에도 초기 귀족공동체가 마지막까지 나라와 함께했으니 다양한 경쟁자와 어우러져 상생하는 정치 문화는 동이족 특징인 듯
최초 환웅께서 내려오신 태백산은 중국서안시 남쪽 태백산입니다.
맞습니다!!
저번에 장흥군 주변을 돌았는데~
부산, 용산, 마산, 안동, 안양 등 여러지명이 행정명으로 사묭하고 있는데 그건 뭐여?
지리산아래 함양은 뭐여?
광동성 광저우에 남월왕묘가 있는데. 정교한 청동기 장신구와 옥장신구. 순장풍습등. 가야문명과 닮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는데. 갸야=왜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남월국은 진니라말 한나라시기로 우리나라국가는 고조선 시기임
훌륭한 영상 감사드립니다.
당나라가 사천지방을 처음부터 가졌다는건 말이 안되니까 수정바랍니다.
연해주 만주 요동반도 산둥반도 상해 다 대한민국 영토다 역사다 😂
아래
■파트 1시절
■파트 2시절
동시에 같이 파확하면 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저 영상의 파트 2시절
핵심을 아주 잘 파악했음
바다 해 가 사막을 일컫기도 하지요..고점도 참고해봐야 할듯합니다
옛땅도 다 잃고 이제는 한반도 내에서 중국 현지인도 인정하는 신라땅을 나 몰라라 하는 후손들이네요... 참 슬픈일입니다.
맞는 말 입니다
낙랑.임둔.진번.현도가.척벅한 함경도에 있었을리가 절대 없읍니다.
자금성은... 고려의 황궁이였음. 송나라 사신단이 1천명을 이끌고 많은 조공물품들을 가지고 알현한 곳이 바로 자금성..송나라는 당시 고려의 제후국이였고.... 송나라 사신이 고려황성으로 가는 길목을 상세히 적은 기록을 분석하니 현재 베이징의 자금성으로 가는 길이였다는 사실...ㅋㅋㅋ 고려를 존재하지도 않았던 나라인 북송으로 둔갑시키고... 그리고 원래 남송도 아니였지. 그냥 송나라였지... 원이 물러가고 송나라는 난징에 자신들 송나라였던 난진궁을 다시 세운거고..그리고 얼마안가 난징궁에서 900km나 떨어진곳... 그 거리가 얼마나 먼곳인데 베이징에 자금성을 만들고 수도를 옮겼다고 뻥을치고 있는거죠...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바톤 받고 대명조선국을 세웠던게 진짜 역사임. 크고 밝은 조선이란 뜻... 줄여서 명나라.. 당시 한반도는 제후국이 아니라 분국이였고.. 고려시대때 만월대가 있던거처럼... 이후 청나라가 쳐들어와 당연히 황제가 살던 메인 궁인 현재의 자금성을 점령하고 지배하고 살다가 한반도에 있던 흥선대원군이 과거 조선을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반도에 경복궁을 재건한거고.. 청나라는 대륙에서 아래 난징궁까지 점령을 한건지 어떻게 된건지 알수 는 없지만 송나라 마저 집어삼킨것으로 보임.. 그렇게 된건데... 일제강점기때 대륙 조선의 역사를 반도에 구겨넣어버린거고.. 현재 이렇게 살고 있는것임...
현재 서울의 경복궁와 베이징의 자금성을 보면 그 궁의 양식 프레임 비슷함. 정면에 문이 3개 나있는것도 그렇고.. 일직선상의 전각을 배치하는 형태 역시 같고... 가까운 주변 일본의 성들이나 고궁을 봐도 완전히 다름. 또한 동남아시아의 고대 왕궁들 역시 서로 인접하고 있다하여도 역시나 서로의 궁의 배치나 양식이 저마다 모두 다름.. 형태도 다르고 ...
경복궁과 자금성은 구조적으로 판박이임.
참고로 학계에서 논란이 되는 압록강의 위치는 세상에 2군데가 존재하는것으로 추정.
바로 중앙아시아의 아무르강(아무다리아)... 그리고 러시아의 아무르 강.. 보통 나라가 다르고 거리도 먼데.. 일반적으로 강이름이 같을수가 없음. ㅋ. 러시아가 만주지역까지 이동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기에 이곳에 애초에 터잡고 살던 사람들이 압록강이라 부르던 단어를 러시야 유럽식 발음으로 아무르 강이라고 불리웠다는것이 지배적인 의견... 중앙아시아의 압록강이 고대 진짜 압록강이며 이후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며 뭔가의 동질성으로 역시나 압록강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꽤나 높은것임. 중앙아시아 사람들이나 러시아 사람들이나 압록강이란 말을 두고 아무르 강이라고 비슷한 발음으로 표현한것임.
현재 조선의 간도영토는 두개의 강사이의 영토를 의미하는데 그 강중 하나인 신의주 위의 압록강이 아니라 러시아의 아무르 강임.
오!오! 대명조선이라
전라도쪽 백제유물들은 어찌설명하시나요? 궁금하네요 한반도가 계속 신라영토였다면 오류잖아요
중국은 한국교과서 때문에 동북공정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고려국경
책보고 채널과 같히 연구했으면 촣겠어요
개경이 태산 부근이고, 서경이 낙양이라면, 고려사 지리 왕성개경부와 서경유수관의 기록과 부합할 듯합니다.
갈석산 위치가 중요한건 고구려와 화하족 경계지역이기 때문인걸 압니다
역사 영상을 제일 멋지게 만들어주시는 선생님, 참고 서적에 환단고기도 참고해 주세요. 조선편수회를 계승한 강단사학이 세뇌시키려고 만든 유언비언만 버리면 아까 단군조선의 시간적 의미와 존재했던 나라의 탄생과 소멸시기와 이유를 알게 됩니다. 더 멋진 영상 기대하겠습니다.
저 지도는 파트 2시절에 해당되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파트 1시절은 매우 다르며
파트 1시대
해빙기후 대륙 서해바다에 물이차오르고 설산들과 빙하가 녹으면서 저지대는 늘 바다같이 물이 차여있던 시절이라
그래서 터를 다시잡기 위해서 터맥을 삼게되는데 한곳은 삼위로 삼고 다른한곳은 태백으로 삼아서 운영하게됨
(삼위)는 황하물줄기 수원지대에 있으며(배달국때도 매우 귀하게 보호관리되었으며 치우가 직접관리함)
삼위산은 동쪽 하단에 있는데(삼위산은 본래는 산둥동쪽 서해바다 장도에도 있었으며)
■어째거나 시안서쪽과 대륙 삼위산과 그 주변에 흐르는 황화강과 그주변들이 있는데
,■이곳에 바로 노륭현이있으며 장려현이 있으며 고죽국이 있다( 고죽국은 두곳에 존재하는데 시안서쪽과 산둥반도 서쪽 폐수 서쪽에 존재됨)
■시안서쪽 이곳에 은나라가 존재했으며
은나라는 초기는 (청해)쪽에 존재했었다 침약당하고 /시안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후기자는 시안과 낙양사에 머물고있다 / 북경에서 동북쪽 해안가 섬쪽에 머물다 / 이후 산둥 동쪽 (장도)에 오랫동안 머물다 / 이후 양쯔강북쪽에가서 사망하게 되었고 그곳에 실제기자묘가 있고
(저-기자묘는 가짜고 / 한국사학계에서 화하족들에게 기자묘라 우겨서 기자묘가 된것임)
삼위산 아래쪽으로 6가 가야가 존재했었는데 본래는 만주와 산동반도쪽에서 비롯됨
당시 포구마다(6부 6촌을 두워서 운영했는데 퇴적층이 쌓여 일부가 없어지게됨) 이후 양쯔강 근처 분지지형으로 이동하게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중시)위에 (고구려,백제 신라,가야)가 존재했었음 /오랫동안
다 (서해가 산전벽해)되면서 동쪽에서 멀티해서 유지 된것임
지명도 동일하게 남아있음
■장안 위취를 잘 파악함
(시안은 장안이 아님
장안은 총 3개가 있는데 북장안에서
아랫쪽으로 수직선은 그으면 3개의 장안 위취가 됨
■낙양의 실제위치는 시안 서쭉에 있으며
(낙양성 십리허도 이곳에 있음) 현재 낙양은 훗날 지명이 이동되었고
이후 낙양으로 불리지게 됨
조선초기 민가의 책까지 거둬
불살랐는데
그래도 기록이 남아 있군요
우리 역사교육은 헛다리군요
아사달 아스땅 아스타나/ 테무친 대무신 / 목골려 모쿠리 고구리 고구려 몽골 / 텡그리 텡게르 탱리 튼리 딘그르 탁리 티그리 단군 /케레이 켈트 겨레 까마귀 .... 고대사 미스테리는 끝도 없음.
절대공감! 우리 고대역사 재조명하고 복원해야 할 배달 천손민족의 숙제입니다!👏👏💦🔥
아사달과 아사녀
단순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 우리선조 우리조상
이성계가 조선이라국호를만드러 지가만든나라가 옛조선에 비교가되니
고대사를 다지움!
물고기자리, 양자리를 말하는 게 아닐까요 ? 음력 10월10일
선=어+양. 그래서 어양(지금의 북경 윗쪽)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양 한자가 다르긴 하네요. 쩝. 물고기도 잡고 유목도 하는 어양. 지금의 어양, 밀운에 가면 둘레가 200킬로? 가 넘는 거대한 호수가 있고 물고기 어 자를 쓰는 지명도 있으니 물고기도 잡고 양도 기르고 하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고
단군이 처음 나라를 세운 곳은 평양성이고, 그다음이 백악산 아사달(궁홀산, 금며달)이며, 마지막 수도는 장당경입니다. 단군은 다시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비슷하네요
당나라가 더 내륙쪽 아닐까요
중국에 지명은 모두서쪽에서 이동된 지명입니다
갈석산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동쪽산이 갈석산입니다
남쪽으로는 요해가 있고 요해동쪽이 바로 요동입니다
3천년전 지금중국땅은 반은 물바다였는데 물바다에서 뭔 나라가 있었겠어요
우리조상은 중앙아시아에 시작됩을 알아야 합니다
묘지석은 무조건 탄소연대 측정해야함
너무 쎄삥
파트 0 = (매우 중요함)
산둥반도 동쪽 바다에는 장도라는 섬이 있는데 / 육지였던 서해에 물이 차오른 상태에서도
(그 주변들이 넖은 평지로 유지 되어 왔으며 / 이동수단은 수레를 끌고 다님 /최초로 수레를 만들어서 사용함) 매우 문명이 발달된 곳이 였으며 (정신문명+물질문명)매우 발달되어 있으며 (천독국)이라 불리워짐
편경이 있었으며/ 특히 악기류들이 많이 있었으며/ 각종 예약을 만들어서 유지했으며(최초로 음악을 만들어서 유자함)/ (부도의 도)가 있었으며 나라운영 원리와 이치와 역법이 있었고
(백제금동향로에 이 모든 것이 포함되있음)
■주변의 나라왕들내지 핵심인물들이 이곳에 와서 도을 배우고 갔으며 / 예악과 악기연주법을 배우고 갔는데
나라운영의 진법의 원리와 이치를 배우고 감
아무나 못갔으며 특히 화족은 절대 불허임 / 본래 태산은 화족 진입이 금지되었으며 대륙 대부분의 평야지대른 화족진입이 금지되었고
올 수밖에 없을때는 상투을 틀어야먄 올 수가 있었음
■왕이 되면반드시 태산(또는 마니산)에 올라 고하고369대예제를 올려야되며 / 이곳에 와서 다시 윤허를 받아야만 왕으로 인정이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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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장도 주변에 넓은 평지가 사라지게 됨 ( 큰 지진이 계속 발생되었으며) 물속에 가라앉게되었고
이후 장도 섬만 남게됨(금이 흔하게 유지되었던 곳이였음)
섬만 남게되었으나
■삼국정부에서 장도에 꾸준하게 양식을 공급해줌
■고려시작때 큰 자연재해로 산둥반도와 장도가 패허가 되었는데
이곳들은 고려에서 대대적으로 개보수을 해서 유지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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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양키들의 골드러시때
장도에 황금이많다는 소문을 듣고 줄줄이 배타고 장도로 갔으나 한척도
가지를 못하고 모조리 난파되어 실패됨
발해는 본래 산둥반도 있었고
산둥반도는 본래 동쪽과 이어져 있었고
발해만은 빙하기 시절때도 큰 호수로 유지되었으나 (발해만 아래에도 서해는 바다가 아닌 방대한 대륙 상태에서 /큰 호수와 큰 강줄기들이 이어져 흘렀으며 금수강산으로 먹거리가 매우풍부+ 물반 고기반)
해빙기때 산마다 쌓인 만년설들이 녹으면서 산둥반도가 섬으로 유지되게 되었고 /이후 토사가 축적되면서 산둥반도가 점점 대륙에 가까이 유지하다 이후 붙게됨
산둥반도 서남쪽으로 살
황화강(살수강)줄기가 흘렀다가
이후 북동쪽으로 물줄기가 바뀌게 됨
바뀌기 전에 대 운하같이(대야미)유지 되었는데
이곳이 대야미-발해며 / 발해에는 큰 포구가 있었으며 /이후 발해는 큰 호수처럼 유지되었고(계속 발해라고 불림) 이후 토사가 쌓이면서 작은호수로 유지되는데 계속 발해라 불림/ 이후 호수가 거의 없어지게됨
그래도 계속 발해라 불림
그 근처에 (사문도)가 있으며 이후사문도 문양이 없어지게 되었고 명칭만 남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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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이정기가 왜 산둥반도에서 나라를 세워서 다시 부흥화를 시도했는지 잘 알 수 있음
■고려시절 포구가 산둥반도 남쪽에 있으며(본래는 산둥반도 안쪽에 포구가 있었는뎌 안쪽이 토사유입으로 막히고 이후 이쪽을 포구로 유지됨
장보고가 많이 들락달락 했던 곳이며
(왜/섬왜+육지왜/왜=일본인과 화족인)해적들을 소탕하며 /양쯔강 윗쪽으로 해적때와 도덕때들을 소탕하고 그곳들을 고려에서 세금을 받아서 유지함
아사달 문양이 몽골, 부리야트공화국, 사하공화국, 카자흐스탄 국기에도 나옵니다. 단군왕검의 조선 (고조선) -> 고구리 -> 고리 -> 몽골제국 으로 이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런 기반이 없이 갑자기 징기스칸같은 인물이 나왔다고해서 유라시아에 걸치는 제국을 하루아침에 건설할 수 없습니다.
징기스칸을 너무 모르신듯 ㅋㅋㅋㅋ
@@doodaebal 몽골제국의 통치 방식은 칸에게 충성을 하고 부여하는 의무를 이행하면 점령지 민족의 문화와 종교, 언어, 제사를 인정하는 식으로 직접 지배가 아닌 간접지배를 했지요. 이와 비슷한게 고조선과 고구려에도 있었거든요. 고조선은 천산족, 예족, 맥족, 늑대족 (유목민)의 연합체였고 마찬가지고 각자의 조상을 모실 수 있는 제사를 인정했고요. 이는 그 민족의 지배층의 존엄과 존속을 인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고구려도 가한 제도 라는게 있어서 신라가 중앙집권국가로 가기 이전에 신라의왕을 마립간(마립가한)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고구려 천하 중심 체계의 일부로 속국화했는데 이런 식으로 돌궐, 숙신(여진), 거란에게도 가한을 세웠던 것입니다. 몽골제국은 역사상 가장 적은 숫자로 이루어진 집단이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하며 지배층으로 군림하며 다스렸던 기이한 구조의 제국입니다. 징기스칸을 중심으로 통일된 몽골인들이 당시 단순히 전쟁만 잘 했던 것 뿐만 아니라 제국을 통치하고 유지하는 그들 나름의 철학과 통찰력이 바탕이 되어 정치체제를 구성했고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어떠한 집단적 지혜를 통해 잠재적으로 내려져왔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지혜의 바탕에는 고조선과 고구려가 일찍히 유목민들을 자신의 천하 아래 두었던 제국의 통치 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장꼬르드)족 입만 열면 거짓말입니다.
그럼 중국인들 상당수가 삼국유민들의 후손이겠군요..! 저 옛날에 중원에서 농사짓던 수많은 백성들을 다시 반도에 다 우겨넣었을라가 없으니…
일본어로 아침을 아사라고 하지요.
물론 한자도 ”아침 조(朝)“이구요.
"조선"은 당시 발음으로는 "아스" 라고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집니다
한자를 음차할때 사용한 이두식 표현이기 때문에 "조선" 에서 "선"은 뜻은 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국명을 정하는데 한 글자는 뜻이 없다는게 이상하지 않나요? 내가 이상한건가?
최춘태 박사의 갑골음 연구에 의하면, 조선은 갓살 (또는 가라사라) 라고 합니다. 갓은 (가라의 축약, 해의 옛음), 살은 햇살/화살/창살 에서의 살 (길고 삐죽한 거). 결국 요즘음으로 하면 햇살이 되겠네요.
@@undaunted3202
우리 조상님들은 국호를 "아스"라고 하였고 이를 중국이 한자로 "조선"이라 표기한 것 입니다
이것이 최근 언어 연구에서 밝혀진 어간은 한자의 뜻으로 하고 어미는 한자의 발음으로 하는 이두, 향찰 등의 한자 차용을 통한 우리 고대어 표기 방식으로 발전 된 것이고요
아라스-아스로 불리우던 우리 고대국가의 정식 표기는 산동성에서 출토된 대문구문화 아사달 문양이 당시 "아스"를 표기한 상형문자라는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었지요
정리하면 "조선"의 "조"는 아침, 광명, 햇살, 밝음 의 뜻이며 "선" 은 "스"로 발음하라는 규칙입니다
우리가 외래어 표기시 "RADIO"라는 알파벳을 "라디오"라고 한글로 표기하는것과 같지요
위 알파벳을 발음기호 미국식
[ |reɪdioʊ ]로 표기하지 않고 우리 문자인 한글로 "라디오"로 표기하는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모루한55대
물론 최 박사님께서 가라+사라의 합성어에서 동음생략으로 "가사라" 라고 말씀하시지만 이는 어미 부분까지 해석하는것에서 오는 문제로서 천손사상을 갖은 동이족은 "해" "밝음"의 상징으로 "아스" 를 국호로 하여 "선"은 "스"로 발음해야 한다는걸 알려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것입니다
지금 우리 강단사학은 조선사편수회에 완전 장악당해 있습니다.
한나라가 낙랑을 두었던곳이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분지 코칸트로 단군에 왕검성이 있던 곳이다
그곳을 고구려 장수왕때 남하정책으로 낙랑을 몰아내고 왕검성을 평양성으로 바꾸었다
고구려 국내성은 키르기즈스탄 촐본에 있었다 고구려가 그곳에서 시작하였다
지형을 보면 당나라 위치 그림이 매우 잘 못되어 보입니다.
당이 그렇게 지역을 차지할 수도 없고 그렇게 차지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 채널의 삼국지도가 95%는 정확하다.
몽골은 동이족 동호인 입니다
BC3세기 동호가 단군조선 유민이고, 13세기 몽골은 고구려와 발해의 후예입니다.
현재의 백두산은 930년 정도에 폭발하여 높아진 것이니 그전엔 높지 않았었지. 그러니 그전엔 태백이라 부를 정도로 높은 산이 될 수 없지. 무식한 역사학자들.
대폭발 전에는 후지산처럼 생겼었는데 천년전 엄청난 대폭발로 윗부분이 모두 날아가고 파여서 현재의 모양이 되었지요. 예전에는 4000m 언저리 높이 입니다. 어마어마한 폭발로 일본에 1m 높이의 퇴적물을 만들고, 화산재가 지구를 한바퀴 이상 도는 역사상 몇번 안되는 큰 폭발을 일으켰어요.
백두산이 우리 민족의 聖山이 된 것은 고구려 이후입니다. 고구려 무덤의 머리 방향이 天池라고도 합니다.
망상은 금물이며 참으로 진실됨을 발설키를 바라며 아사달 하! 고어에 아사는 아침의 이슬을 뜻하며 달이란 제단을 말한다. 이는 아침의 하늘에서 내린 고귀한 물을 제단에 올린다는 것이며 이는 장소를 말함이 아니며 곧 그곳이 최고의 신령한 존재의 거처이고 바로 그곳이 중심이다.옛 날엔 생김세 피부색 언어가 필요치 않으며 곧 사상이 부족이며 나라였다.
발을 숭배하는 족속을 곰이라칭하고 달을 숭배하는 족속을 부을이라 칭하고 태양을 칭송하는 이들을 호우라라 말하고 물을 칭송하는 이들을 여리고라 말하고 그외 목초 잡물을 칭하는 이들을 가무라라고 칭했다.
삼위, 태백이라고 했으니 산동성 태백산이 아니고 섬서성 삼위산과 산서성 태백산사이에 있었다고 본다
그러다가 동으로 이동하여 산동성에 자리잡았다
가야+신라=당
주장도 어느정도 근거는 필요
일본어로 아침이 아사....!
저 지도는 최소한 아닌가요?
유트브)소호금천
위에 유트브속에 우리역사
중국역사와 삼국사기를 대조하면서 치밀하게 세밀하게 역사를 정리해야할 때인것같네요. 너무 믿기지 않는 내용이라.
동북공정이 있겠지만 최대한 팩트로 밣혀주세요,
태산은 우리산이야..
ㅈ
결국 한반도는 중국에 있던 신라의 식민지였군요.
ㅎㅎㅎ
식민지는 정책성이 다른 민족들의 나라를 말합니다 그시절 대륙 동부는 우리와 같은 민족이 살았을거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황하를기준으로 북쪽은 마한
황하 아랬쪽은 진한
황하 아랬쪽 바닷가는 변한
태백산은 티벳산 에버레스트
괴뵈클리테페의 테페가 거룩한 언덕을 뜻하는 태백입니다. 지나 대륙에도 우리 민족의 이동에 따라 여러 곳에 나타납니다. 평양도 마찬가지구요.
그럼 공주, 부여는 뭐여?
백제, 고구려도 중국이면 참😂😂😂
부산은? 백제 왕이 사냥 다닌곳이 부산인디요
태백산이 히말리아산입니다ᆢ히말라야 !
태백산기슭은 티벳고원입니다
그곳에 크고작은 호수가 아주 많은데
그 호수한곳 즉 은단수 근처에
도읍지를 정하고 아사달이라고 했읍니다
그리고 고조선시대부터 우리조상들은
동으로 이동했읍니다 황하를 따라 이동했으며
중국인의 조상들은 양자강을 따라 이동했으니다
고조선 중기때는 우리조상들이 서안에서
대륙을 다스렸읍니다 이미 그때에 대륙으 동부
황하의 북부 한반도까지 퍼져서 거주했으며
ᆢ
로마도한국땅이라하지
태산은 우리 속담에 한가득.. 화하족은 곤륜과 화산만 주구장창..
華夏族은 사마천이 창작한 개념입니다. 이를 인정하더라도 하나라는 BC20세기에 나타나므로 그 이전의 夷族 역사의 주인이 아닙니다. 사실상 206년 유방이 세운 漢나라가 漢族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북방 유목민들이 지배했고, 남송 이후 주자학 등 오늘의 중국 문화가 형성된 것입니다.
서왕모를 모시는 족속들.. 우리가 황토족이라 불렀죠.. 죽으면 하늘로 간다=>천손민족.. 죽으면 흙으로 간다 => 황토족
한국 : 朝 아침(훈), 조(음) / 일본 : 朝 아사(훈), 쵸-(음) 일본은 고조선때 사용하던 아사란 말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음. 예)아사가 쿠루마데(아침이 올때까지)
역사서 연구로 이런 내용 들으면 나름 논리적이긴 하나 헛점도 너무 많아서 어떻게 봐야할지 참 난감합니다!
백제가 한반도 없었다는 말인가?
그럼 미륵사지 보수 공사에 나온 사리힘 문구는 어떻게 해석을 하면 되겠습니까?
아차산성은?
온달산성은?
진흥왕 순수비는?
고구려비?
과대망상
갈석산과 발해에 대하여...이기훈 논문을 참조바람🎉
발해는 본래 산둥반도 있었고
산둥반도는 본래 동쪽과 이어져 있었고
발해만은 빙하기 시절때도 큰 호수로 유지되었으나 (발해만 아래에도 서해는 바다가 아닌 방대한 대륙 상태에서 /큰 호수와 큰 강줄기들이 이어져 흘렀으며 금수강산으로 먹거리가 매우풍부+ 물반 고기반)
해빙기때 산마다 쌓인 만년설들이 녹으면서 산둥반도가 섬으로 유지되게 되었고 /이후 토사가 축적되면서 산둥반도가 점점 대륙에 가까이 유지하다 이후 붙게됨
산둥반도 서남쪽으로 살
황화강(살수강)줄기가 흘렀다가
이후 북동쪽으로 물줄기가 바뀌게 됨
바뀌기 전에 대 운하같이(대야미)유지 되었는데
이곳이 대야미-발해며 / 발해에는 큰 포구가 있었으며 /이후 발해는 큰 호수처럼 유지되었고(계속 발해라고 불림) 이후 토사가 쌓이면서 작은호수로 유지되는데 계속 발해라 불림/ 이후 호수가 거의 없어지게됨
그래도 계속 발해라 불림
그 근처에 (사문도)가 있으며 이후사문도 문양이 없어지게 되었고 명칭만 남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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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이정기가 왜 산둥반도에서 나라를 세워서 다시 부흥화를 시도했는지 잘 알 수 있음
■고려시절 포구가 산둥반도 남쪽에 있으며(본래는 산둥반도 안쪽에 포구가 있었는뎌 안쪽이 토사유입으로 막히고 이후 이쪽을 포구로 유지됨
장보고가 많이 들락달락 했던 곳이며
(왜/섬왜+육지왜/왜=일본인과 화족인)해적들을 소탕하며 /양쯔강 윗쪽으로 해적때와 도덕때들을 소탕하고 그곳들을 고려에서 세금을 받아서 유지함
산둥반도 동쪽 바다에는 장도라는 섬이 있는데 / 육지였던 서해에 물이 차오른 상태에서도
(그 주변들이 넖은 평지로 유지 되어 왔으며 / 이동수단은 수레를 끌고 다님 /최초로 수레를 만들어서 사용함) 매우 문명이 발달된 곳이 였으며 (정신문명+물질문명)/
편경이 있었으며/ 특히 악기류들이 많이 있었으며/ 각종 예약을 만들어서 유지했으며(최초로 음악을 만들어서 유자함)/ (부도의 도)가 있었으며 나라운영 원리와 이치와 역법이 있었고
(백제금동향로에 이 모든 것이 포함되있음)
■주변의 나라왕들내지 핵심인물들이 이곳에 와서 도을 배우고 갔으며 / 예악과 악기연주법을 배우고 갔는데
아무나 못갔으며 특히 화족은 절대 불허임 / 본래 태산은 화족 진입이 금지되었으며 대륙 대부분의 평야지대른 화족진입이 금지되었고
올 수밖에 없을때는 상투을 틀어야먄 올 수가 있었음
■왕이 되면반드시 태산(또는 마니산)에 올라 고하고369대예제를 올려야되며 / 이곳에 와서 다시 윤허를 받아야만 왕으로 인정이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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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장도 주변에 넓은 평지가 사라지게 됨 ( 큰 지진이 계속 발생되었으며) 물속에 가라앉게되었고
이후 장도 섬만 남게됨(금이 흔하게 유지되었던 곳이였음)
섬만 남게되었으나
■삼국정부에서 장도에 꾸준하게 양식을 공급해줌
■고려시작때 큰 자연재해로 산둥반도와 장도가 패허가 되었는데
이곳들은 고려에서 대대적으로 개보수을 해서 유지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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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양키들의 골드러시때
장도에 황금이만다는 소문을 듣고 줄줄이 배타고 장도로 갔으나 전부 난파나 메몰되었고
이후 이들은 포기하고 인천으로 오게됨
그리고 이들은 다시 어메리컨 북중미로 이동함
■북미동쪽에는 북미왕이 허락해서 속국들형태로 유지시키서
기생형태로 자리했던 재팬인(영국인)들은 동쪽 13주을 통일하고
이후 북미왕에 재팬(영국)사자로 옆에 유지했던 자에 의해 기습 구테타를 당하고 주객전도화로 나라전체를 빼앗기게 됨 / 이후 말타고 달려가 깃발만 꽃으면 땅을 얻게 적용하게됨
이후 북미에 자리한 배달국과 고조선후예 체로키인들도 쫒겨나게됨
북미와 중미에 자리했던 고구려와 발해인들도 타격받게 되었으며
@@김정수-r4i2y 이 주장 이기훈씨 거를 참조한 것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주장이신가요? 매우 일리 있어 보이는데, 이 주장을 뒷받침한 논문(또는 책) 이 있습니까?
이 부분은
오랜세월동안 여러 실질차원의 객관적 자료들을 보고 검토해서
■(100%실질차원으로 정립함)
즉 100%사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