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 SUB】나무조각 하나로 사거리UP! 파워UP! "격목형 총통과 죽절의 비밀",The Secrets of ‘Wooden Wad Chongtong’ and Its Jo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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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5 лис 2020
  • 세종시절, 총통은 한번 더 진화하게 됩니다.
    바로 격목의 등장이죠.
    작은 나뭇조각이 어떻게 총통의 사거리와 위력을 높일 수 있었을까요?
    더불어 총통 외면을 둘러싸고 있는 죽절의 비밀도 살펴봅니다!
    Chongtong advanced once more in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development of wooden wads made it possible.
    How did those tiny wooden pieces made better range and power for chongtong?
    Let’s also dive into the secret of joints on the surface of chongtong!
    #화력조선 #국립진주박물관 #일발다전법 #격목 #죽절 #건들건들 #hand cannon

КОМЕНТАРІ • 228

  • @ToE-pm2iy
    @ToE-pm2iy 3 роки тому +216

    이집 일 잘하네, 건들건들이랑 합작도 하고, 이렇게 좋은 정보들 유튭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좋네요.

    • @user-wk5re6mv6h
      @user-wk5re6mv6h 3 роки тому +20

      ??? : 이집은 국물도 뻑뻑하고, 고기도 꽤 많이 들었어

    • @bwerty841
      @bwerty841 3 роки тому +1

      @@user-wk5re6mv6h ㄹㅇㅋㅋ

    • @x2.992
      @x2.992 10 місяців тому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user-ep6vn5mr3e
      @user-ep6vn5mr3e 9 місяців тому

      요한복음3장16절 말씀 아멘

  • @utomoto1945
    @utomoto1945 3 роки тому +21

    감탄 감탄 또 감탄. 전문가와 유튜버가 만났을 때 어떤 퀄리티가 나오는지 보여준다. 그저 경이롭다.

  • @tyronekim3506
    @tyronekim3506 Рік тому +6

    Wow! This is an amazing history of the Korean weapons development during the Joseon period. I am 72 years young and have never heard of the hand cannon developed by the Koreans during the Joseon period until today.
    Thank you for the history lesson.

  • @agm1144
    @agm1144 3 роки тому +69

    새로운 사실을 배워갑니다. 문서 기록과 현실의 괴리가 생각보다 컸군요. 토격, 목격 운운한 종래의 인식은 전면적으로 재고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 @jangbyeoungil
    @jangbyeoungil 3 роки тому +22

    오~ 컬리티보소. 거의 역사스폐셜급인데...

  • @gonya2564
    @gonya2564 3 роки тому +68

    충무공 학술 세미나 차 해사 방문해주셨을 때 총통에 관해서 강연하시면서 유튜브 건들건들 페이지와 합작해서 영상 제작중이라고 했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강연하신 죽절 관련 내용을 영상을 통해 다시 만나니 더욱 이해가 잘 되네요ㅎㅎㅎ앞으로도 이런 양질의 컨텐츠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user-if1bs6jr8p
    @user-if1bs6jr8p 3 роки тому +52

    진주가 머리좀 썼네요. 건들건들을 알아봄

  • @madkkm87
    @madkkm87 3 роки тому +7

    1:25 옷이랑 손에 때낀거 까지 다 고증함 ...아 너무 좋아...

  • @user-ui5rx2wo7m
    @user-ui5rx2wo7m 3 роки тому +19

    죽절의 역할에 대해서 궁금했었는데, 어느 정도 답을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총통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Prewooks
    @Prewooks 3 роки тому +18

    대단하다. 너무 유익한 정보입니다. 재밌어요.

  • @user-ie9ph3ym6z
    @user-ie9ph3ym6z 3 роки тому +19

    고퀄이네했더니 콜라보였군요

  • @holyshit7812
    @holyshit7812 3 роки тому +10

    건들건들 퀄 잡아보고 콜라보 제안한 분이 다음 박물관장 해야됨 ㄹㅇ

  • @user-ec5dg2wn6t
    @user-ec5dg2wn6t 3 роки тому +8

    너무재미있고 유익한 영상이예요!! 이런식으로 문화재나 옛 물건들 우리전통이 잊혀지지않고 계속 알려지면좋겠네요ㅎㅎ
    멋진 콜라보👍👍

  • @mukfeel
    @mukfeel 3 роки тому +9

    야~ 진짜 지금 포방부가 그냥 된게 아니군요..
    조선이 총통왕조였네요.
    역사와 전통의 포방부.

  • @firmtree3902
    @firmtree3902 3 роки тому +6

    기다렸어요!

  • @user-ws8zw7xv3p
    @user-ws8zw7xv3p 3 роки тому +9

    아싸
    학교발표에 써야징

  • @user-rm1ck5sr5n
    @user-rm1ck5sr5n 3 роки тому +38

    개인적으로 생각만 하던 콜라보가 진짜가되 소름끼치네요

  • @ychoi80
    @ychoi80 3 роки тому +5

    오우 잼나네요.

  • @hanmeck
    @hanmeck 3 роки тому +3

    뭔가 쏘는 물건 영상은 건들건들형들이 최고!
    처음 영상 올렸을때 바로 구독 누르는 이유가 있음

  • @pojiyehd
    @pojiyehd 3 роки тому +3

    우와..멋있어요~^^종류도 엄청 많고..제대로 감상합니다

  • @user-si1hi9py1h
    @user-si1hi9py1h 3 роки тому +72

    진주에 살아서 진주 박물관 자주 갔는데 총통이 저렇게 많은지 몰랐음;;;;;

    • @user-tendo
      @user-tendo 3 роки тому +4

      저도요 ㅎㅎ
      용산전쟁기념관 가시면 더 많음...

  • @kjddaum
    @kjddaum 3 роки тому +36

    이제부터 진주하면 박물관이다. ㅋㅋㅋ

  • @baenicraft1998
    @baenicraft1998 3 роки тому +4

    설계도 처럼 하면 좁아진 부위가 충격을 집중적으로 받아서 갈라질듯 싶기도. 대장장이가 설계하는 애들이 뭘 하나 하고 그냥 만들었거나..

  • @user-zd2gh8pg5j
    @user-zd2gh8pg5j Рік тому +1

    감탄스런 영상과 고증

  • @Alfpooh
    @Alfpooh Рік тому +1

    훌륭합니다!

  • @sip_gay_hannam
    @sip_gay_hannam 3 роки тому +3

    세금 잘쓰이네

  • @user-ls2lo1ps9b
    @user-ls2lo1ps9b 3 роки тому +12

    대박!!! 👍👍👍👍👍

  • @hyunwoolee533
    @hyunwoolee533 3 роки тому +12

    이렇게 콜라보로 건들건들 궁극의 전쟁사에서 임진왜란도 나오면 좋겠다!

  • @j8663
    @j8663 3 роки тому +31

    그 사극들 중 이 총통이 등장하는 사극은 mbc의 조선왕조 500년 임진왜란편 이더군요
    헌데 다른 사극들에서는 조선이 왜군에게 진건 조총을 활로만 상대 해서 진것이다 식으로 나오더군요

    • @schutze9402
      @schutze9402 3 роки тому +1

      임진왜란 말기에는 우리나라사 조총 보유수 더 많아졌을 정도라던데...

    • @user-yh7ej6mn5b
      @user-yh7ej6mn5b 3 роки тому +2

      지금 방구석 전문가들 나와서 너도너도 단편적인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조선까는걸 보고있으면 역사를 단순화하여 배우는게 상당히 위험다다고 생각합니다.

    • @user-nc5yc9es6j
      @user-nc5yc9es6j 3 роки тому +1

      @@user-yh7ej6mn5b
      그래도 당시 조총이 총통보다 더 발전된건 맞잖아요.

    • @user-hj1kx6lg8k
      @user-hj1kx6lg8k 3 роки тому +4

      ​@@user-nc5yc9es6j 그건 맞말이지만 애초에 조총이 있었어도 150년동안 지들끼리 죽어라 싸워대서 전쟁에 도가 튼 놈들하고 싸워서 이길수가 있었을까요..?그냥 하나의 요인으로 보는게.

    • @cokedas5959
      @cokedas5959 3 роки тому +1

      @@user-nc5yc9es6j 테크트리가 다르니까요
      조선은 개인화기보다는 대구경, 대량살상에 더 치중한 발전이었고 초반에 방심만 안했으면 상륙 전에 해전만으로 결판이 났을수도 있죠
      결국 몇몇 장수들의 삽질과 숙련된 병사의 부족이 문제였지 화력 문제가 아니었다는겁니다

  • @user-ls5qd6wx7e
    @user-ls5qd6wx7e 3 роки тому +8

    역시 형님들 ㅠ

  • @TV-ro6qd
    @TV-ro6qd 3 роки тому +4

    환장 팬더 좋아요.

  • @user-bd9zo9xe6q
    @user-bd9zo9xe6q 3 роки тому +9

    격목이라는 선진적인 와드 기술이 있었는데 왜 폭발가스를 막아 줄 수 없는 토격으로 돌아간 걸까요. 장전 속도는 빨라졌어도 탄속 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 @skyline-z4z
      @skyline-z4z Рік тому +2

      생산 시간 등의 문제 외에도 빡빡해서 쑤셔넣기가 힘들 때가 있어 장전속도가 느렸다고도 합니다..
      토격은 형태가 자유로워 꽉꽉 쑤셔넣기 좋아 빠른 장전속도 물론 유사시에는 인근의 젖은 흙으로도 만들 수 있었고다고도 하네요.

  • @sjmtech7572
    @sjmtech7572 3 роки тому +22

    4:50 아오 81mm 전역한지 2년이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나오자 마자 놀랐다. 2800!!

    • @DownForceful
      @DownForceful 3 роки тому +1

      편각 둘팔백 사각 하나하나백

    • @sjmtech7572
      @sjmtech7572 3 роки тому +1

      @@DownForceful 포판 위치 현위치 전방에 차렷포

  • @oh5226
    @oh5226 3 роки тому +12

    썸네일 이나 제목에도 건들건들님들과 함께 했다고 표시하는게 바른것 같습니다.

  • @user-lk8ip6qx2u
    @user-lk8ip6qx2u 3 роки тому +8

    역시 화력덕후....

  • @user-dk8vf5rh2b
    @user-dk8vf5rh2b 3 роки тому +3

    아침마당M보다 훨씬 재미있어요ㅎㅎ

  • @sungminhwang1700
    @sungminhwang1700 3 роки тому +13

    항상 감사합니다! 정말, 일제가 총포 급 화약단속법(銃砲及火藥團束法)으로 많은 무기들과 갑옷등 유물들을 소실시켰죠! ㅜㅜ 앞으로도 더 많은 정보가 나왔으면 하네요 ㅜㅜ

    • @user-tz9id1vx3c
      @user-tz9id1vx3c 3 роки тому

      반일에 정신이 나갓나 ㅋㅋ 현대 한국이 화기단속 더 심하게 하는데 식민지배로 입은 피해랑 식민지정부에서 행한 정책이랑 구분을 못하시는듯 ㅋㅋ

    • @user-hj1kx6lg8k
      @user-hj1kx6lg8k 3 роки тому

      ​@@user-tz9id1vx3c 예?말이 화약단속법이지 유물들 압수해서 폐기처분하는건데 갑자기 뭔 현대한국...글 한번 다시 읽어보실?
      당장 구글에만 쳐봐도 잘 나오는구만 님은 일제 쉴드치다가 정신나간 일뽕임?
      검색어 "일제 화약단속법 銃砲及火藥團束法"이라고 치면 잘나옴 이건 걍 관련 기사링크
      www.asiae.co.kr/article/2019082716000577796

    • @user-tz9id1vx3c
      @user-tz9id1vx3c 3 роки тому +2

      @@user-hj1kx6lg8k 그래서 구한말 무기가 저시대에도 유물인가? 일본이 저법으로 조선의 문화흔적을 말살하려고 한것도 아니고 그냥 치안유지를 위한 무기압수처분법이지 특별히 조선에만 적용한것도 아니고 일본본토에서도 똑같이 적용해서 민간에서 무기 압수 처분하고 성때려부쉇는데 그게 뭐가 문제?

    • @kcs73209
      @kcs73209 3 роки тому +2

      @@user-tz9id1vx3c 그게 문제다.

    • @user-hj1kx6lg8k
      @user-hj1kx6lg8k 3 роки тому +1

      @@user-tz9id1vx3c 치안유지? 내가 준 링크 읽어보기는 함?
      1907년 8월1일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해산한 일제는 의병 저항을 막는다며
      1907년 9월6일부터 조선 전국의 모든 무기를 압수, 폐기시킨다.
      8월에 군대 해산시키고 9월에 시행한 법이 치안유지?
      일본 본토에도 적용시켰다는 뇌피셜은 찾을수가 없다는건 둘째치고(있으면 링크좀)
      '일본이 저법으로 조선의 문화흔적을 말살하려고 한것도 아니고'
      이게 뭐랑 똑같이 들리는줄 아슈?
      ㅇㅁㄷ ㅁㄱ이 여성인권을 개선하겠답시고 ㅎㄴㅊ ㅈㄱ해 ㅇㅈㄹ해서
      아니 여성인권을 개선한다면서 ㄴㅎ은 왜 하는거임?이라고 물었더니
      아 ㅎㄴ들이 먼저 했으니까 미러링하는거라 괜찮음.좋은 의도에서 한거였음^^라는 대답이랑 똑같이 들림ㅋ'

  • @user-pi6cn1hx5e
    @user-pi6cn1hx5e 3 роки тому +3

    죽절이라는 거이 현 탱크 포신의 서멀재킷 기능이라고 봐야하나?

    • @추상인간
      @추상인간 3 роки тому

      @NAL DAWSON 아니면 왜 아닌지도 말해라 개띠껍네

  • @joda1223
    @joda1223 3 роки тому +7

    죽절이 Ring Stiffer인듯

  • @SulfurParrot
    @SulfurParrot 3 роки тому

    와 기록이랑 많이 달랐네요 ㄷㄷ

  • @kallismar141
    @kallismar141 3 роки тому +8

    이집 맛집일쎄 ㅋ

  • @user-sh7ln3yu3v
    @user-sh7ln3yu3v 3 роки тому +9

    꿀잼 참잼 진잼 짱잼

  • @user-ys5tg9dj1g
    @user-ys5tg9dj1g 3 роки тому


    보구
    가내유...^^

  • @nockjoock
    @nockjoock 3 роки тому +2

    내부로 갈수록 좁아진다는 걸 그림으로 표현하자니
    그냥 직선으로 그리면 나중에 보는사람이 헷갈릴수도 있고
    그래서 그림으로 설명하고자 저런식으로 그려놨던 걸지도 ㅋㅋㅋ

  • @user-bz7nt4fi1p
    @user-bz7nt4fi1p 3 роки тому +11

    격목 = 코르크마개

  • @minhwa6962
    @minhwa6962 3 роки тому +2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화포나 함선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입니다. 화포 기술은 아무래도 북방에서 내려오는 대규모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서 필수였고 함선은 3면이 바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현대에도 자주포나 MLRS는 세계 탑이죠. 이지스함 건조능력도 탑이고요.

  • @user-zz2hc9uo1p
    @user-zz2hc9uo1p 3 роки тому +23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만 , 경목형 내부는 그시대 화포 주조 기술로는 만들기가 힘들지 않았을까요. 이상적인 설계는 됬지만 제조기술이 따라주질 못한것 아닐까요?

    • @llenn8632
      @llenn8632 3 роки тому +10

      저도 이게 맞는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좋을것 같은데? 하고 설계는 해봤지만 실제로 만들어보니 설계대로 하기도 힘들고 그래서 없애는 쪽으로 대량생산하기로한게아닌가.. 싶습니다

    • @WooseungLee
      @WooseungLee 3 роки тому +2

      저도 여기 한표! 제조 문제도 있지만, 아마 검수가 엄청난 문제였을겁니다. 저런 구조를 생산 뒤 검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저기 맞는 특별한 도구가 없으면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실제로는 나무를 넣다보면 중간에 더 안 들어가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고, 그걸로 미루어 추측컨데 요렇게 완성이 되었을 것이다.. 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외부면 모를까 안쪽에 저런 정교한 구조를 주조로 구현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렇게 되도록 나름대로 무언가의 조치를 취했겠지만, 생각대로 되지도 않고 또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걸 정확히 확인할 방법도 없었겠지요.

  • @user-eb2fr1my1k
    @user-eb2fr1my1k 3 роки тому +1

    아니... 형들이 왜 여기서 나와..?

  • @moustyoon4970
    @moustyoon4970 3 роки тому +7

    이느므 진주 박물관은 유능한 인재들만 있나 정규방송에 버금가는 방송을하네 님들도 수신료 받으쇼 ㅎ

  • @javaxerjack
    @javaxerjack 3 роки тому +8

    장전량이나 방법 발사 방법등이 총이라기 보다는 대포의 축소판 그 자체네요. 마개로 막아 에너지 전달량을 높이려고 생각한건 혁명적인데 비해 그쪽 방향으로 발전 못한건 안탑갑습니다.

    • @sk.p4885
      @sk.p4885 3 роки тому

      핸드캐넌

    • @sdsssdd1987
      @sdsssdd1987 3 роки тому +1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전쟁이 적었으니까 무기 발전이 느렸던거 같습니다 유럽같은 경우는 전쟁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용병단도 있고 다 고만고만하다보니 무기 개발이 이루어지면 다른 나라에서도 빠르게 습득하여 서로 발전하는 관계였건거 같습니다

    • @user-ze5hn7yx5s
      @user-ze5hn7yx5s 3 роки тому +1

      원래 우리의 소총도 대포에서 출발했어요.
      대포를 혼자쏘게 할수 있을까?-핸드캐논
      조준이 힘들어 손잡이를 달자-머스캣.
      조준하고 있기 힘들어-게머리판.
      이런식으로 가다가 소총이 나온거죠.

    • @user-ze5hn7yx5s
      @user-ze5hn7yx5s 3 роки тому +4

      @@sdsssdd1987 전쟁 자체는 아시아도 꾀 있었고, 그 규모는 서양과 비교도 안됫어요.
      문제는 규모가 커서였지요..
      소수정예라는 측면에서 기계가 발달한 서양, 대규모라는 측면에서 대규모 인력동원이 발전한 동양...

    • @lilillliilililll6088
      @lilillliilililll6088 3 роки тому

      @@user-ze5hn7yx5s ㄹㅇ 동아시아가 더 격동지면 격동지였지 전쟁 횟수가 좀 적을뿐 규모면에선 훨씬 컸죠 그리스 터키 싸우듯이 소모전을 했는데

  • @슬랑
    @슬랑 3 роки тому +14

    과거: 격목
    현재: 탄피

    • @user-no7yr2rt6w
      @user-no7yr2rt6w 3 роки тому +6

      탄피보다는 샷건의 송탄통정도 될것같아요

    • @user-fi9pl5bd3r
      @user-fi9pl5bd3r 3 роки тому

      탄피는 화약을 담는 통입니다.

  • @kttele
    @kttele 3 роки тому +2

    군용 대검종류도 설명해 주세요~^^

  • @user-cd5gv1pe1v
    @user-cd5gv1pe1v 3 роки тому +1

    건들건들~~~!!!

  • @user-uc3ev8mh9g
    @user-uc3ev8mh9g 3 роки тому +7

    3부도 올라오나요?

  • @jeffyoung60
    @jeffyoung60 11 місяців тому

    Few people, including me, knew that the medieval Koreans were using their version of the European hand gonne of the 15th century. The Koreans named their hand gonne the, "Chongtong".
    Basically a hand gonne was a relatively simple iron, bronze, even brass tube, between 8 to 16 inches in length, although around 12 inches to 14 inches appears to be the most common. The metal tube affixed to a wood pole between four and five feet in length. In concept, the hand gonne was something of a hand-held miniature cannon, hence the term in Europe, 'hand gonne'.
    The Korean medieval hand gonne likely arrived through Ming China. In Ming China the hand gonne, likely arrived via contact with Turkic-Persian Islamic armies, or, less likely, through remote European contacts.
    The hand gonne was widespread in Ming China, many handgunners being from Fukien province. Not much is known about the hand gonne in medieval Korea. Only very recently have depictions of the Chongtong appeared. The Korean Chongtong must have been used in the Imjin War of 1592 to 97. But by that time the Japanese invaders were employing the more advanced matchlock musket. The Koreans quickly adopted the matchlock in the second Japanese invasion of 1597, either from captured Japanese specimens or locally manufactured copies.

    • @vipsrocket
      @vipsrocket 7 місяців тому

      Hand gun was developed Song period(AD 1000y~) after Mongol invasion, spread-out to Europ. In the same time, cannon was developed also in Korea, without any technology transfer. European people just copy and start develop that.

  • @park6126
    @park6126 3 роки тому

    진짜 머리 좋다

  • @hyeonlee1458
    @hyeonlee1458 3 роки тому +4

    미국만 샷건의 민족인줄 알았는데 조선도 샷건을 좋아했었구나

  • @Mol-dg5jw
    @Mol-dg5jw 5 місяців тому

    ❤❤❤

  • @user-rf6sx1ko9h
    @user-rf6sx1ko9h 3 роки тому +9

    미니에탄 같은것들도 화약가스를 온전히 이용하기 위한 탄이었죠

    • @XerenAMetal
      @XerenAMetal 3 роки тому +1

      그것도 맞는데 정확히는 강선을 이용하기 위함임

    • @blyatguy2441
      @blyatguy2441 3 роки тому

      날탄의 sabot도 예시로 들기에 적절한듯

  • @jeffyoung60
    @jeffyoung60 4 місяці тому

    In form and function the Chinese and Korean handgonne was nearly identical to the European hand gonne. Even the lengths and dimensions were comparable.
    History records indicated the Ming expeditionary force into Korea, circa late 1592 and early 1593 included Fujian gunners who were still using handgonnes compared to the Japanese matchlock. Reputedly the Fujian gunners were content to continue using handgonnes and resisted transitioning to matchlocks.
    For some reason, South Korean movies about the 1592 Japanese invasion of Korea (The Imjin War) fail to depict Korean use of their chongtong, the handgonne. This is probably due to oversight. The Koreans had always been very proud of their domestic archery skills with the Korean recurve bow. The Koreans declined to adopt the Chinese crossbow but history now shows the Koreans did use handgonnes. The reason was likely the same for Europe. It was cheap to equip peasant soldiers with the simple handgonne and easy to train them to use the simple handgonne. It took years of training to develop the muscles, stamina, and skills to use a bow or wield a sword. For a gunpowder firearm, the explosion provided all the power and strength. The firer just had to hold and point the metal tube then apply a match or heated wire into the touchhole. It appears the Koreans preferred to use short lengths of fuse, enough to give three to four seconds time for aiming the chongtong.

  • @MrHm240288
    @MrHm240288 3 роки тому

    흠 그럼 이번에는 화약의 조상인 고려를 알아보는게 좋겠어요

  • @user-wh6lj4vr5e
    @user-wh6lj4vr5e 3 роки тому

    조총도 저리 연구했다면 좋아쓸탠대

  • @DOG_524
    @DOG_524 3 роки тому

    여러가지 총통을 보고싶으시면 전쟁기념박물관을 찾아가서 보시길 바랍니다,보다 더 많은 종류와 여러가지
    총통을 차이점,생긴시정,등을 알수
    있습니다 한번 전쟁기념박물관을 들리
    시는걸 추천드립니다

  • @charliecharlie2510
    @charliecharlie2510 6 місяців тому

    죽절은 총통을 쏘고나서 손에서 뒤로 밀렸을 때
    놓치지 말라고 만든 걸림 매듭 역할도 했을겁니다.
    격목이 추가돼서 폭발력이 세지면,
    습기가 심한 환경에서는
    발사후 미끄러지기 쉬웠을 겁니다.
    소승자총통은 폭발력이 그렇게 세지 않으니까
    죽절이 필요 없었을 것 같구요.

  • @BudherSong
    @BudherSong 3 роки тому +1

    구욷!!

  • @ppague22
    @ppague22 3 роки тому +9

    총통종류웰케많엌ㅋㅋㅋ

  • @pup5355
    @pup5355 3 роки тому

    어우...진실이 궁금하다..!
    조상님 좀 알려주세요!

  • @kinigarawakashikuhah
    @kinigarawakashikuhah 3 роки тому

    조선 샷건?!

  • @user-bv7kg3bp9t
    @user-bv7kg3bp9t 3 роки тому

    문헌 기록과 출품 된 유물이 다른 이유는 이미 저 당시에도 존재했던 k-방산비리의 시초 아닐까요

  • @user-ry8bb3ot9v
    @user-ry8bb3ot9v 3 роки тому +4

    세조가 선조들의 화약무기 제조기술을 간수만 잘했더라도..

    • @user-ry8bb3ot9v
      @user-ry8bb3ot9v 3 роки тому +1

      여기서 선조는 조선시대의 왕이 아닌 조상들을 뜻합니다.

    • @user-dc3tk6jh4w
      @user-dc3tk6jh4w 3 роки тому

      전수가 잘 되었어도 안됩니다.전쟁이 많이 해야 군과 무기가 발전하는 겁니다.
      조선은 전쟁이 없었습니다.임란전까지 전쟁이라고 해봐야 북방에서 여진족과 소규모로 싸우는게 다인데 야들 상대로는 기존 군과 무기체제로 가능했기에 발전할 여력이 별로 없었던 것이조

    • @songroid4847
      @songroid4847 3 роки тому

      자원 부족(초석 등) 때문에 안됬을 것입니다. 화약을 만드는 천연재료가 부족하고 염초만으로 충당이 안되니까요. 특히 지방 반란을 두려워해서 해상 교역을 막게 되면서 자연하게 다른 여타 기술들도 도태되어 갔습니다. 결국 기술의 발전에는 자본이 필요하니깐.

    • @user-fi9pl5bd3r
      @user-fi9pl5bd3r 3 роки тому

      세조때가 되면 이미 민간에서 화약 및 염초 제조기술이 널리 퍼졌습니다.
      굳이 국가가 관리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화약 만들고 성능 개량하는데, 화통도감 같은걸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거죠.

  • @hotdogun
    @hotdogun 3 роки тому

    죽절 그냥 화포 고정용 아니였을까요? 줄로다가 묶기 딱 좋은 구조인데

  • @user-cb7tn2vm6t
    @user-cb7tn2vm6t 3 роки тому +3

    안타까운 것은 세종이후로 수백년동안 별다른 무기발달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 @Tyran-rex
      @Tyran-rex 3 роки тому +2

      ㄴㄴ 문종때 화차를 개량하여
      신기전을 2배나 많이 발사할 수 있게되었고
      임진왜란 이후 좋은 품질의 조총를
      대량 생산되었으며 주물식으로
      만들던 총통이 두드려서 만드는 방식으로
      변경 되어 사고가 줄게되었습니다

    • @user-ii8ix9ff8f
      @user-ii8ix9ff8f 3 роки тому +2

      @@Tyran-rex 그게 아니라 기존의 무기개량이 아닌 혁신적인 무기가 안나왔다는 말임

    • @Tyran-rex
      @Tyran-rex 3 роки тому

      @@user-ii8ix9ff8f
      아 글쿤요

    •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3 роки тому +1

      호란 이 후로 전란이 없어 군사력 발전이 없었죠. 일본도 마찬가지고..

  • @Kim_kyung_ho
    @Kim_kyung_ho 3 роки тому +5

    우효!!

  • @myhaha239
    @myhaha239 Рік тому

    조선때 둥근형태의 주물기술이 떨어져 여러번 사용했을 경우 균열이나 열화로 총통을 오래 사용 못했을지 않나 예상합니다. 그래서 길이에 따라서 일정하게 환을 두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환이 있을 경우 충격도 완화 해주고 화약이 통과할때 열화도 일정부분 감소해 주는 역활이 되었지 싶은데요. 현대에 가스배관을 고층일 경우 중간 중간에 한 번씩 꺽어서 올려 세우는데 그게 압력때문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원리를 그 당시 여러번 실험을 통해서 터득했지 않았나 싶네요

  • @9tv-emph722
    @9tv-emph722 3 роки тому +2

    조선의 유탄발사기로다

  • @故_라니
    @故_라니 3 роки тому

    총통계의 최고조넘은 대총ㅌ..

  • @retroaiden6071
    @retroaiden6071 3 роки тому +3

    기록과 다른이유: 그 시대의 방산비리.

  • @532nn
    @532nn 3 роки тому

    힛총통!

  • @suyoungjung1528
    @suyoungjung1528 3 роки тому +1

    저 임진왜란때 만든 정철총통은 뭐여요?

  • @AtelierRyza3
    @AtelierRyza3 3 роки тому +4

    솔직히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조선의 화력 무기들.. 총통은 유럽과 비슷하거나 유럽보다 더 화력이나 위력이 강력했음.
    그런데 왜 조선의 화력 무기는 몰락했고
    서양의 화력 무기는 흥했는가..
    제 예상이지만 그건 편리함의 차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조선시대에는 비격진천뢰같은 시한폭탄도 있었고, 세총통같은 권총형 강력한 총통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비격진천뢰, 세총총같은 권총의 위력도 당시 서양의 무기보다 선진화되있거나 위력 자체는 더 강했습니다.
    일본의 조총보다 강력했으니까요.
    하지만 조선의 화약 무기들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화력의 위력은 막강했지만 편리하지 않았거든요.
    비격진천뢰는 강했지만, 사용하기가 어렵고 말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는 단점이 있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적을 공격할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할수도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도박에 거는 무기였죠.
    또 세총통같은 권총은 위력은 강력했지만 방아쇠같은 편리한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적을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었죠. 물론 세총통은 시한폭탄은 아니어서 내가 다칠 위험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반 권총은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발사해서 적을 공격할수있는데 반해서, 세총통은 총통처럼 총알이 나갈떄까지 적을 겨누고 있어야하죠.
    저는 이런 '편리함'에서 무기의 역사가 진화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조선시대까지 무기는 그냥 위력, 파괴력만 있으면 됬지만.. 이제 근대시대로 넘어오면서 단순히 위력이나 파괴력이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쓰기 '편리하냐'가 바로 무기를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 @qualityoflife6654
      @qualityoflife6654 3 роки тому

      당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이 한자를 넘어 1400년대에 더 빠른 대중화가 되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것도 같네요.
      물론 내생각이지만 빠른 소통과 기록된 정보의 차이...가 아닐까란..
      한글때문에 우리가 20세기이후 빠른 발전을 했다고 생각이 수많은 영상과 자료에서 확신이 들기도 하거든요...
      암튼 진짜 흥미로운 사실 보고갑니다.

  • @user-ce8yk3mc9f
    @user-ce8yk3mc9f 3 роки тому +2

    총말고 활..........

  • @user-wp4vd3jn5b
    @user-wp4vd3jn5b 3 роки тому

    건들짜응!

  • @virgiljjacas1229
    @virgiljjacas1229 2 роки тому

    There are not English subtitles . WHY 🤔🤔🤔

  •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3 роки тому

    승자총통을 과연 개머리판이나 나무 고정대 같은 것을 부착하지 않고 쏘았을까?

  • @오유석victorio
    @오유석victorio Рік тому +1

    격목은 가스조절기라 봐야할까?
    굳이 따지면 현대 소총의 어느 부분이라고 해야할까요?

    • @as-vu7bk
      @as-vu7bk Рік тому +3

      현대 화기들의 경우 탄두가 총신 내경에 딱 맞기 때문에, 화약의 폭발압을 받아낸다는 점에서 탄두 뒷부분이 격목의 역할을 겸한다고 볼 수 있겠네용

    • @오유석victorio
      @오유석victorio Рік тому +1

      @@as-vu7bk 설명 감사합니다.

  • @JungSungMock
    @JungSungMock 3 роки тому +2

    미친 화력덕후들 ㅡㅡ
    공군화력대신 자주포 운영하는 미친나라가 두우우개 ㅠ

  • @user-mt8yx4wh1z
    @user-mt8yx4wh1z 3 роки тому

    기록과 다른 총통이라 신기하네 무슨이유인지 궁금하다

  • @user-ys2rx3ql9l
    @user-ys2rx3ql9l 3 роки тому

    포방부의 실처

  • @housekeeper7910
    @housekeeper7910 3 роки тому +2

    머지...내가 어딜 들어와 있는거지?

  • @user-ov5zm5rz3v
    @user-ov5zm5rz3v 3 роки тому

    격목을 안쓰는게 이상함! 특히 대구경인 수군의 총통류는 모두 격목이 들어가야 하는 구조임. 큰 단일 철환을 스던 작은 수십~수백개의 조란환을 쓰던 커다란 화살인 대장군전이나,장군전을 쓰던간에 격목은 필수 였음. 특히 천자총통에 넣고 쏘는 조란탄일 경우 화약->방습지->격목->조란환->진흙->조란환->진흙->조란환->진흙->조란환->진흙->조란환->진흙->조란환->진흙->대구경 탄환 식으로 약 200발 남짓의 조란탄을 밀어 넣고 쐈으므로 격목이 없어서는 안됨.

  • @user-iu9tw7fq7p
    @user-iu9tw7fq7p 3 роки тому +1

    아 통크 먹고싶다

  • @kellyj8011
    @kellyj8011 3 роки тому +1

    그래서 코로나도 같이 발사해버린 진주...

  • @sungchulkim2106
    @sungchulkim2106 3 роки тому +1

    어...건들건들이네

  • @user-kt6vp3bk8q
    @user-kt6vp3bk8q 3 роки тому

    죽절은 깨짐 폭발 방지를 위해서 넣었을듯..

  • @user-xj2pu9cr6g
    @user-xj2pu9cr6g 3 роки тому +13

    이미 척계광이 왜구잡을때 써보고 아이건 아니야 조총에 총통은 안돼 하고 버린걸 100년넘게 뒤에 썼으니 털리지...아휴 속터져

    • @user-dc3tk6jh4w
      @user-dc3tk6jh4w 3 роки тому +7

      아는 것이 저거니 저거만 죽어라 판거조 이렇게도 만들어 보고 저렇게도 만들어 보고 발전을 가속화시킬 큰 전쟁이 있었으면 이건 아니다 하고 다르게 생각하면서 새로운 것을 생각했을텐데 평화시기가 오래되면서 혁신적인 것을 만들어도 다급함과 수요가 없으니 그냥 기존 것만 가지고 꽁양꽁양한 것이조 이후 임란 때 조총이란 혁신무기를 접하고 조총을 허벌나게 생산하게 되조 근데 또 병자호란 이후 전쟁이 없어요 그러니 다시 조총을 이렇게 개량을 해보고 저리 해보고 하게 되었조 중간에 나선정벌에서 최신식 화승총을 노획했지만 다급함이 없으니 조총보다 나은 점은 조금 밖게 없는데 단가만 높아 하고 창고에 쳐박아 두고 말았조 ㅎㅎㅎ 전쟁에서 이 작은 이점이 승부를 가르는데 말입니다. 즉 조선은 무기가 발전하기에는 너무 평화로웠다는 것 ㅎㅎㅎ

    • @user-xj2pu9cr6g
      @user-xj2pu9cr6g 3 роки тому +6

      @@user-dc3tk6jh4w 조총은 임란전에 대마도를 통해 소량이 수입되어 조선도 이미 알았습니다..단 총신을 못만들어 수입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전술적이해의 부족으로 도입하지 않았습니다...천안함침몰을 겪고서야 제대로된 소나가 달린 호위함을 건조하고 연평도 포격을 당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포병 아처 레이더 사오고 개발하고...아주 죠선의 전통같아서 더 속이 터져요

    • @user-dc3tk6jh4w
      @user-dc3tk6jh4w 3 роки тому +5

      @@user-xj2pu9cr6g 기술문제와 전술문제 보다는 현실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는 적을 대비해서 새로운 무기를 준비하고 새로운 전술과 시스템을 만든다 이거 쉽지 않습니다(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란 말도 있조 공격은 능동적이고 방어는 수동적이기에) 더욱 조선처럼 국가재정이 열악하고 전쟁을 안해본 국가는... 준비하는데 다 돈입니다 군량 같은 건 1년이면 다 섞고 쥐가 다 파먹습니다 이걸 처들어 올때까지 반복해서 쌓아두어야합니다 군량미뿐이겠음 조선은 부병제 국가조 백성들 모아 훈련을 해야함(당시 조선은 무기는 백성들이 사비로 마련했음 훈련 비용도 사비로 충당) 쳐들어 올때까지 훈련을 정기적으로 하면 농사는 누가 지음 땅만 파먹고 사는 농본주의 국가인데 조선 경제 작살나는 것이조 그래서 당시 조선은 나름 최선책이다라고 생각되는 걸 한 것입니다 대마도주가 진상한 조총 좋은 거 알았겠조 모르면 바보니깐요
      좋은 것 알지만 현실의 벽에 부디친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나름 최선책을 생각해서 현 시스템과 있는 자원을 정비하자 쪽으로 간 것입니다 이 또한 제대로 안되었지만요 이게 데자뷰 처럼 호란때도 똑같이 반복이 되는데 청나라가 쳐들어 올거라는 사실과 기병으로 전격전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만주얘들이 중원 가기전에 반도 먼저 공격하고 간다는 사실과 정묘호란때 경험했으니 그런데 이후 조선의 전략 전술은 정묘호란과 같았습니다 아니 기존 걸 더 보강하자로 갔습니다 안통한다는 걸 뻔히 알았지만요 왜 조선 현실에서 이게 최선책이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무기와 전술의 가치는 전쟁을 많이 해본 나라가 그 가치를 알고 빠르게 변화를 줄수 있지 조선처럼 전쟁 안해본 나라는 가치를 알수는 있어도 쳐맞기전에는 모르는 것이조

    •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3 роки тому +1

      @@user-dc3tk6jh4w 나선정벌에서 노획한 건 수발총이었소. 조총이 이미 화승총이니.

    • @user-ch1nq8lq2d
      @user-ch1nq8lq2d 3 роки тому +1

      @@user-dc3tk6jh4w 인조땐 청나라의 전격전으로 예상보다 빨리 들이닥친게 컸어요. 파발보다 빨랐거든요. 그때 청나라가 하루만 늦게 내려왔으면 후방의 조선군과 남한산성근처의 군대때문에 청나라는 패주할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되었으면 명나라의 명줄은 100년은 더갔겠죠.

  • @user-eo1cl9ru8r
    @user-eo1cl9ru8r 3 роки тому +1

    호옹

  • @user-ir1vy1kx1r
    @user-ir1vy1kx1r 3 роки тому

    방산비리가 알고보니 유서깊은건가

    • @bookcollector1
      @bookcollector1 3 роки тому +1

      그보다는 당대의 한계라고 보는게 맞을 듯 합니다. 저때 도량형의 대표격인 척만 해도 10가지가 넘어갔으니....

    • @user-yh7ej6mn5b
      @user-yh7ej6mn5b 3 роки тому +1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동일규격 대량생산이라는게 지키기 힘들었습니다. 같은공방에서 만들어도 기본적으로 수제인지라 제품마다 편차가 있었죠

  • @TV-mh5ph
    @TV-mh5ph 3 роки тому

    화살을 발사하려고 총통을 사용하는건 좀
    그시각어 편전등을 쏘는게
    나을거 갇은데요

    • @user-od5dl4fw8j
      @user-od5dl4fw8j 3 роки тому

      화약무기의 가장 큰 장점을 잊으셨군요.
      화약무기는 활보다 사용법을 익히는 시간이 훨씬 짧고, 그만큼 숙련된 병사를 더 많이 양성할 수 있습니다.
      총이 보다 성능이 뛰어났던 활을 밀어내고 전장의 주력 무기가 된것도 이 때문입니다.

  • @kshani1109
    @kshani1109 3 роки тому +3

    총통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장제스와 히틀러를 빼놓다니 실망이네요

  • @user-xr2tz3rx2g
    @user-xr2tz3rx2g 3 роки тому +6

    좀 의문인건 조선시대때 일본에게 유린당한건 일본군이 쓴 조총 때문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하면서 왜 무기 발전은 조총을 모방한 무언가가 안나왔을까요? 그냥 개인화기 개발을 등한시 한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 @frederickkim7273
      @frederickkim7273 3 роки тому +1

      간단하게 설명하면 당시에 화약을 생산하려면
      초석이 필요했는데 초석이 분포하던 곳들이
      주로 미대륙, 인도, 중국 인데 미대륙이랑 인도는
      영국 스페인이 독점하고 중국은 초석 수출 안하고
      이래저래 조선이 불리한 상황이었음

    • @user-hd2iq4fj3o
      @user-hd2iq4fj3o 3 роки тому

      조선도 조총을 많이 만들었대요
      건들건들 채널에 해당 내용으로 영상 있어요

    • @user-sn7nf3px8b
      @user-sn7nf3px8b 3 роки тому

      임란 후기만 되도 조선의 조총 생산량은 일본을 넘어섭니다...그리고 조선 후기 조선군의 주무장은 조총과 편곤입니다...드라마에서나 포졸복이 당파들고 다니지 실제는 두정갑에 조총, 환도와 편곤이 조선군 기본무장이었습니다...
      조선초에 비하면 무기개발 속도가 조금 떨어졌다고 볼수있지만 등한시하진 않았습니다...다만 호란이후 대규모 전쟁이 없었고 그런시기가 거의 200년이 지속되어 더 이상 발전의 필요를 못느꼈고 그 결과가 19세기 제국주의시대에 뒤떨어지게 된거죠...

    • @fakemode2958
      @fakemode2958 3 роки тому

      @@user-sn7nf3px8b 바보들이 화승총만 개발해서가 문제죠 ㅋㅋ 다들 수석총에 뇌관 강선등 혁신적으로 총을 개량하기 위한 시도를하고 성공하는데 조선은 19세기까지 화승만 만들었죠 ㅋㅋ

    • @kimk8780
      @kimk8780 3 роки тому

      @@fakemode2958 화승총보다 화약 보급이 문제였음 화약을 만들려면 염초 숯 유황이 필요한데
      염초를 생산하는 초석 광산이 없어서 오줌을 받아서 극소수에 염초를 생산함 즉 화약이 부족했다는 겁니다 진자 세종이 정복 군주였다면 중국에 초석 광산을 정복하면 되는건데
      아무튼 한국에 초석 광산만 있었더라도 세계사는 달라졌을 것임
      화승총보다 화력이 우위인 신기전이 있었는데 화약 소모가 너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