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포 지도 29회 "피난시절의 기호공간, 국제시장"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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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5 жов 2024
  • 광복과 피난시절의 삶터였던 부산 국제시장
    대화재로 인해 그 흔적은 이재민의 가슴속에 사라져버린다.
    상인들의 눈물겨운 삶의 몸부림이 지금의 국제시장을 있게 만든다.
    도떼기시장의 원조, 국제시장.
    날 것 그대로의 부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КОМЕНТАРІ • 5

  • @BOSSBOSS-nj2qn
    @BOSSBOSS-nj2qn 5 років тому +5

    이런 멋진 다큐. 공중파 방송 못지않은 수준의 부산포지도의 시청자 수가 얼마 안되니 좀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 @cafeluv223
    @cafeluv223 5 років тому +2

    윗 분말처럼 참 괜찮은 프로인데 의외로 구독자나 시청률이 높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참 좋은 방송입니다.

  • @서하늘악마도감
    @서하늘악마도감 4 роки тому +2

    그 당시의 유명한 인물들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국제시장관련해서요 1900~1910년 전에 태어났던 사람들 위주로 해서요 궁금하네요 이왕이면 사진같은것도 있었으면 해요 구독하고 갑니다. 그리고 정승덕,이삼남(이상량)에 대한것도 아시는 부분있으시면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 @shibato4733
    @shibato4733 6 років тому +3

    딱 한곳이 빠져 있네요
    지금은 불편한 진실이라고 애써 부인하지만 이곳에 부산 남자들이 한번 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완월동 ! 100여년 이상의 시간의 기억과 부산 남자들의 동정을 오롯이 받아준 그곳 완월동
    왜 한국 여인들은 이렇게 위선의 탈을 쓰고 그곳을 경멸하며 지탄하는가?
    한때 한국최대 2.000명의 여인들이 생존을 위하여 그악하게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자식을 키우고 공부시키고 하면서 살았던 그곳 완월동은 왜 애써 외면 하는가?
    한국의 위선적인 여인들은 같은 여자로써 삶이 너무 가난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그 여인들을
    왜 지금의 잣대와 시선으로 판단하려 드는가?
    그 완월동은 한때의 공창. 사창. 그리고 세상의 악이라도 되는 것 처럼 접근금지의 구역으로
    만들어 버린 그곳의 여인들과 남자들의 기록을 남겨야 되지 않을까?
    역사를 지금의 잣대와 시선으로 판단하면 기록한 모든것이 전부 거짓말책이 될것이다
    나도 그 완월동에서 자라 초장국민학교도 다니고 했지만 그당시 60년대말 그곳은
    그런 직업 조차 가질 수 있는 여인이라면 아마 바로 옆동네 사람에 비교해 행복하지 않았을까?
    바로 옆 아미동 비석 마을 사람 , 남부민동 ,초장동 ,감천 까치고개 사람들의
    삶은 그때는 형언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 @BOSSBOSS-nj2qn
      @BOSSBOSS-nj2qn 5 років тому +2

      젊은 시절... 완월동엔 한번도 안갔습니다.
      주위 친구들 중에 그런 곳에 다닐만한 아닌, 착하고 순진한 친구들 덕분이겠지요.
      알게 된 것도 시간이 한참이나 많이 지났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