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5회말 5:5 1사 2,3루 상황에서 전상렬 타구를 1루수 이호준이 포구후 1루 베이스를 밟아 2아웃, 홈에 송구 강성우가 3루주자 김동주를 태그 아웃..3아웃 공수교체..가 심판들 판단이었죠. 문제는 애초에 1루 땅볼 타구부터 파울이었단겁니다. (다음 타석때 1루로 출루한 이호준이 1루수 장원진 선수에게 파울이었다고 말해줌)..1루로 뛰던 전상렬 선수도 뛰다마는 주루고, 이호준의 송구도 왼쪽으로 쏠렸던 것도 타자와 1루수 모두 파울로 인지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결국 오심에 징계까지 받게된 판정은 김동주를 태그하던 강성우가 송구가 쏠리면서 주저앉으면서 잡았고, 점프해서 멀리 피한 김동주 선수의 유니폼을 잡으며 일어섰기 때문에 이미 주루방해 동작으로 세이프가 됩니다. 거기다 김동주 선수의 스파이크의 홈플레이트 터치도 강성우 선수의 미트 태그보다 빨랐구요..이영재의 다음날 멘트는 "강성우의 오른손에 공이 있었다고 봤다"였지만, 강성우는 태그 아웃 이후까지 미트에 공이 들어있었고, 심지어 공든 미트로 어필 동작까지 취했죠..그런데도 오른손에 공이 있다고 봤다니... 5:5 동점을 만들고 이어진 찬스에서 3연속 오심(파울 오심-주루방해 오심-세이프/아웃 오심)으로 역전에 실패한 두산이 다음 이닝 결승점 내주고 결국 5:6으로 패합니다. 하필 이 날은 교육중인 2군 심판들이 견학을 왔던 경기였고..당시 6mm 캠코더로 촬영하는 VJ 컨텐츠들 전성시대여서 2군 심판들의 일상을 찍던 시기였답니다. 당시 방송된 장면중 이닝 교체에 맞춰 커피를 타서 기다리던 2군 심판이 1군 심판에게 말도 제대로 못 걸고 손도 덜덜떠면서 커피 전달 못하자 이닝 교체까지 그걸 그대로 들고 기다리던 장면 쇼킹했는데, 그렇게 하늘같던 1군 심판의 오심과 퇴장 명령까지 직관을 했으니.. 아마도 2002시즌 급격히 팬클럽들이 늘어나면서 팬 클럽데이처럼 해당 팬클럽 회원들 경기 종료후 해당 선수와 싸인회와 사진촬영하는 팬서비스를 했던거 같습니다. 덕분에 역대급 오심한 날 심판실을 창문 넘어 찍어볼수 있었네요..짬되는 심판은 쇼파에 앉아서, 신참들은 서서 정자세로 각잡는 모습 참.. 이영재 심판에 대한 TMI는 다음 이영재 오심 영상으로 털어보겠습니다. 갓 1군 올라와서 각 잡고 칼 같이 스트라이크 잡던 경기를 직접 봤기에 솔직히 안타까운 맘이 더 큽니다. 그 경기에서 구타 당하고 오심의 대명사 이영재가 된게 아닌지...
ㅇㅈ ^^ 영상에 자막이나 음성 TMI를 넣으라는게 유튜브던데, 제가 옛날야구 영상을 올리는 이유가 그 시절의 공기, 기억들을 소환하기 위해 화질 개선 뽐뿌질 어렵게 한 영상인데 제 주장을 자막이나 음성으로 넣어 시청 몰입에 방해가 되길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고있는 TMI는 댓글과 답글로 무단 대량 방류 중인거죠. 나이가 들어서 제 야구 기억력이 어마어마하게 감퇴된걸 다행으로 아십쇼 ^^
이날 영상은 여러곳을 이동하며 촬영했는데, 이 이닝에 우연찮게 3루심 시선 선상 외야에 있었네요..이영재 오심과 항의한 김평호 코치에게 육두문자 쓴 입모양이 방송된 영상도 가지고 있답니다..그런데요..구대성 퇴장과 이희수 감독님이 공을 쥐고 턱을 날린 그 경기 라이브로 중계봤던 1인입니다..1군 콜업된지 한달정도된 젊은 심판이란 해설을 듣고 중계보는 내내 "좋은 심판" 나왔다고 평가했답니다..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우타자 바깥쪽은 뭐 태평양 수준이었죠..특히나 구대성 송진우존이라 불리던 더 바깥쪽에서 바깥쪽으로 들어오던 스트라이크 콜받던 공은 배터박스 밟고 쳐도 몸을 숙여야 커트할 정도였던 시절이었기에 바깥쪽 존 타이트했고, 경기 내내 일관된 존 고수하던 신입 심판이 정말 맘에 들더군요..뭐, 그날도 특유의 격파 삼진콜이 더 눈에 띄었지만, 구대성존 인정 않는 당찬 신입 심판이란 점에 더 점수주고 봤답니다..경기내내 구대성 존에 대한 불만이 9회 빌리홀에게 던진 볼을 볼넷 판정하면서 터진거죠..그 마지막 공은 구대성존이 아닌 한가운데 "낮은"공이었죠..네. 명백한 볼이었고, 구대성 입장에선 "초짜" 심판 주제에 늘 잡아주던 구대성존을 무시한데 대한 분노였다고 봅니다. 마운드에서 글러브 팽개치고, 퇴장되면서 1루 라인쪽에 있던 공을 발로 차버렸죠..KBS 위성 중계였는데, 녹화 안한게 천추의 한이네요..경기는 결국 삼성이 역전승했고, 이희수 감독님 폭행은 다음날 기사로 알게됐죠..저는 야구 지인과 제 아들에게 이영재가 맛이 간게 그날의 이희수 감독의 폭행때문이란 이야기를 계속했답니다. 너무 신선했고, 너무 용감했던 좋은 심판 재목이 그날을 분기점으로 격파 삼진콜과 오심의 아이콘만으로 전락해버린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99시즌은 기형적인 양대리그로 전체 승률 1위가 두산 2위가 롯데 3위가 삼성 4위가 한화였죠..웃긴건 드림리그 1,2위는 최종전 맞대결에서 결정이 났고, 거의 서로 "져주기" 게임 분위기로 일관했답니다..드림1위와 매직2위 크로스 토너먼트로 시작되는 포스트시즌 일정이 최종전 다음날 하루 휴식후였기에 차라리 드림 2위가 하루 휴식 어드밴티지를 갖기 때문이었죠..최종전에 순위가 결정된 드림리그와 달리 매직리그는 이미 정규시즌 종료 한참전에 순위 확정이라 한화는 일주일 전에 송진우를 제외한 투수들 아예 엔트리에서 다 빼고 휴식했답니다. KS직행의 최대 어드밴티지가 긴 시즌 종료후 2~3주 휴식이 주는 투수 휴식이 정말 깡패수준이거든요..플옵 이틀전까지 연장 혈투했던 전체 1위와 일주일 전부터 쉬면서 준비한 전체 4위 팀간 대결..1차전 비까지 오면서 한화를 위해 우주의 기운이 모인 99시즌이더군요..^^ 초짜 이영재가 용감하게 투쟁했던 명백한 볼들이었던 송진우 구대성 존이 맹활약하면서 4연승 스윕으로 KS가서 7차전 혈투하고 너덜해진 롯데를 꺾고 유일무이 한화 우승을 이뤘죠..대전 3차전때 마지막 타자 우즈 삼진공은 방망이를 던져도 안 닿을 정도로 빠진 볼임에도 구대성존 인정받아서 우즈는 타석에서 항의하는데 이미 심판진 광속 퇴장하는 바람에 항의나온 감독 코치들 벙쪄하던 장면이 여전히도 기억납니다..이 우승의 분수령을 이희수 폭행으로 인정하는 이들이 많았다는거 아시나요? 리그 승률도 높지않았고, 무엇보다 홈 연패가 팀 기록급일 정도여서 선수단에 메세지 보내려고 작정하고 아구 갈긴거라고 자타 공인된 사건이었죠. 우연찮게 KBS 위성 채널 라이브로 이 중계를 봤었고, 너무 인상적인 신입 심판이었고, 무려 리빙 레전드 구대성에게 꿀리지않고 제대로 스트라이크존 고수한 심판 유일한 심판이었기에 이날의 폭행후 망가진 이영재에 대해 누구보다 애증이 크고 관심도 커서 이영재 이슈는 다 팔로우하고 있었답니다..통로에 모인 2군 심판들 앞에서 역대급 오심을 하고 징계먹은 게임을 찍고 편집하면서 정말 많은 전사들이 펼쳐졌답니다..구대성과 이희수 감독님의 그날을 아는 분이셔서 또..길고긴 일기를 적었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2014년부터 두산팬이 된 현 고1입니다. 2000년대 두산이 궁금해서 이런영상 자주찾아보고 그러는데 혹시 홍성흔선수의 첫번째 응원가 가사좀 알려주실수 있나요? 나무위키 같은곳에서도 안나와있던데 2007년 한국시리즈 영상보면 홍성흔 선수 타석때 꼬부랑 할머니 응원가보다 더 옛날 응원가가 나오더라고요. 잘 알려지지 않은 응원가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홍성흔 응원가하면 다들 떠올리는건 첫번째 FA로 롯데 갔을때 만든 "4 Non Blondes"의 "What's Up?" 원곡의 롯데의 홍성흔~ 이겠죠..제 입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홍성흔 응원가는 "Glory Glory Hallelujah" 가사로 유명한 "Battle Hymn of the Republic" (군대 음악으로 귀에 익은 멜로디죠..교회를 다니신다면 영광 영광 할렐루야 후렴구의 찬송가로 알려진) 원곡에서 Glory Glory Hallelujah 부분을 반복하는 응원가입니다..가사는 "홍~성흔 안타 안~타 (X3) 날려라 홍성흔~ 안타! "였던것 같네요..이 응원가를 점점 빨리 반복하면서 분위기 업하는 응원가였죠..분명 입으로 자동 재생되는데 유튜브나 위키 등등 찾아도 없네요. 홍성흔 응원가는 롯데 시절 응원가가 국룰인듯 싶죠..2번째 FA 베어스로 돌아와서도 롯데를 두산으로 바꾸고 계속 사용을 했으니까요. 2003시즌 잠실 직캠 속 사운드로 확인했습니다..원하셨던 응원가가 이 응원가셨길..TMI 2003시즌 경기 영상 돌려보니 투수가 일본인 이리키였고, 타자가 쿨바였네요...쿨바 선수는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마이너리그 코치시절 3루 주루 코치로 나가있다가 파울 타구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선수로 유명해졌죠..그 사망사고 이후로 메이저리그도 국내에서도 주루 코치들이 헬멧을 쓰게됐구요..쿨바 선수 영상 많지는 않지만, 모아서 올려볼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혹시나 하는 맘에 이리키 선수도 검색해봤는데..올해 2월달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뜨네요..에고...
국내에서 스탯과 일본에서의 스탯은 이미 아실듯하니..개인적 감상이라면, 야구는 원년 이전부터 고교야구를 봐온 입장에서..우즈를 통해 처음본 궤적을 여전히도 기억합니다. 한참 야구보면 타구음, 궤적, 수비움직임을 보면 여유있게 넘어갈건지, 간당간당한건지, 여유있게 잡힐건지 알게되는데요..근본적으로 잠실은 펜스거리만 긴게 아니라,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역풍이 불기때문에 높이 뜨면 저항을 많이 받아선지 급격히 궤적이 떨어지는게 일반적이었기에 상당히 높이 뜨고 체공시간도 길어서 내야를 넘는 순간에 워닝 트랙도 못가겠다..고 생각하면서 좌익수 뒤쪽 외야스탠드에서 보고 있었죠..중견수와 좌익수도 천천히 뒤로 백을 하고 있었구요..그런데 수많이 보아온 타구 궤적과 달리 떨어질 타이밍에 안떨어졌기에 한번더 쭉 뻗는 느낌을 첨 받았습니다. 결과는 좌중간 스탠드 중상단에 떨어졌구요..순수 파워 자체도 만랩이었지만, 배트스피드도 역대급이어서 몸쪽 붙는 공도 인앤아웃 스윙(오른쪽 팔꿈치가 배꼽에 붙어나오는 스윙..박병호 몸쪽 스윙, 티라노 스윙? ^^)으로도 비거리 상당한 홈런을 많이 쳤습니다..밀어서도 잠실 우측 스탠드로도 많이 넘겼구요..떨공삼 스타일의 약점도 분명했지만, 그걸 극복 못했는데 일본에서 그렇게 성공했을리는 없겠죠..직관 갔을때 상당히 높은 확률로 1회말에 정수근이나 장원진 선수가 안타로 출루하면 3번 타자로 우측으로 밀어서 홈런을 치면서 경기를 시작해주기 때문에 항상 경기 노잣돈을 챙겨줘서 편하게 게임을 보곤 했죠..2015년 이후 왕조시절엔 높은 확률로 민뱅 선수가 1회말 리드오프로 나와 우중간 2루타로 경기를 시작하는 패턴도 많이 봤구요..우즈가 뛰던 시절이 출루율 높고 도루왕 리드오프 정수근에 홈런 못치는 188cm 거구의 깍신 2번 장원진 뒤로 우동수(우동학) 트리오라서 타선의 시너지로 전형적인 공갈포 타입의 타자로 전락되지도 않았죠..잠실 홈에서 평균 34개 홈런 자체도 크지만, 2루타도 많아서 득점 생산성에선 올타임 외국인 선수중에서도 원탑급이었죠..워낙 연봉이 짜서 마지막 시즌엔 우즈 선수가 태업을 했죠..문학에서 시즌 최종전때 일본 진출할 걸 알았기에 우즈 위주로 촬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최근에 테이프로 직접 확인한건 아니지만요..시도때도 없이 도루시도 ㅋㅋ 시즌 끝나고 우즈 팬클럽에서 모임할때 찍새로 함께 가서 우즈 선수 인터뷰찍고, 캠코더 스트랩에 우즈 영문과 한글 싸인(댓글 쓰며서 생각나서 찾아봤는데 많이 희미해지긴 했네요)을 받았었죠..신천 한복판에서 한 겨울에 덩치 산만한 어른들이 "우즈 우즈" 응원할땐 쪽팔리기도 하고, 마지막임을 알았기에 만감이 교차했었네요..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즈 직캠 영상이나 경기 녹화 영상도 올려보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old-baseball 이야... 그냥 어떤선수인지 실제로 본거 같은 기분이 드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정수근 선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정수근 선수도 궁금합니다. 최근에 박건우 아님 2000년대 초반 이종욱선수같은 분들이랑 비교한다면 누가 우위에 있을지 고민해본적이 종종 있었는데 아무래도 실제로 본적이 없어서요 ㅠㅠ
각잡고 장문의 댓글을 시작하겠습니다..야구 수다떨 상대가 너무 없는 요즘이기에요 잘못 걸리셨습니다 ^^;;.....오비 시절부터 중견수 계보라고 하면 초대 신인왕 박종훈->박노준->>>>>정수근->이종욱->정수빈으로 봐야겠죠..박종훈 선수는 정말 당시 유행어였던 쾌남 스타일로 플레이가 품위가 있다고 해야할까요? 안타깝게도 사구로 커리어가 끊긴 케이스고, 박노준은 고교야구 시절부터 제 우상이었던 선수지만..야구에대한 자존심, 열정과 재능에 비해 몸이 유연하지 못하다고 해야할까요..적당히란 거부하는 터라 골절 부상 복귀 경기에서도 이 공 잡고 죽자는 마인드로 몸을 날리는 그런 타입이라 공백기가 긴 부상이 반복되면서 고교시절의 반에 반도 못한 비운의 스타죠..그 뒤가 오비꼴찌 암흑기 시절이다보니 롱런과 임팩트를 준 중견수는 솔직히 생각이 안나네요..1995 통합우승 당시 주전 중견수는 장원진 선수였죠. 당시 입단한 고졸 중견수 백업이 정수근이었구요..KS에서 결정적인 3루타(그냥 평범한 안타인데 결정적인 득점권이라 다이빙 캐치가 실패하면서)로 임팩트를 줬고, 1996시즌 장원진 선수가 공익근무로 빠지면서 주전 꿰차고 짧은 적응기를 거쳐 타격까지 포텐 터지면서 3할 도루왕 리드오프로 장기간 군림했죠..솔직히 "야구"만으로는 정수근을 깔께 뭐 하나 없죠..타격 포텐만 제일 늦게 터졌을뿐 입단 당시부터 수비와 주루 센스는 올타임 탑급이었고, 비디오판독이 있었다면 KBO 올타임 하일라이트 장면 수두룩하게 남겼을겁니다. 상당수가 타이밍상 아웃으로 추정 판정해서 손해 많이 본 케이스죠..김동주도 와~할 정도의 태그 피하는 슬라이딩 센스를 가졌는데 몸이 주는 선입관으로 오심 손해 많이본 케이스구요. 잠실 그라운드에 다이빙 캐치 전통은 박노준 시절부터 있어왔지만, 정수근때부터가 빈도수나 임팩트면에서 특출났다고 봐야겠죠..첫발 스타트부터 타구판단이 워낙 좋아서 좌우 수비폭도 광폭이었구요..국대에서도 임팩트있는 다이빙 캐치를 남길 정도였지만,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른선수 다이빙 시도할 타구를 빠른 판단과 빠른 발로 쉽게 쉽게 처리하는 이미지죠..좌익수 장원진 우익수 심정수가 "필딩"에선 뛰어난 선수들이 아니었음에도 중견수 정수근이 양쪽 다 커버해줘서.. 홈런 훔치는 능력자 장원진과 어깨깡패 심정수의 장점이 살아날수 있게한 것도 정수근의 수비 범위 덕이라고 봅니다. 박명환 유튜브에서 정수근 왈 "똥차"라고 할 정도의 수비범위였던 장원진 선수..정수근 룸메이트기도 했고, 워낙 FM 생활에 착한 선배로 존중하지만, 수비는 대놓고 디스했을 정도였으나 다 커버했던 정수근이죠..가장 떨어지는 수비 능력치라면 아무래도 어깨정도겠죠..보살이 심심찮게 나왔지만 왜소한 체형 준족의 리드오프 중견수에게 어깨까지 요구하는건 그렇죠..이종욱도 송구가 가장 떨어진 능력치였구요..정수근이 빠른 발과 야구 지능, 센스로 수비를 했다면 이종욱은 플러스 이거 잡고, 오늘 경기하고 죽는다..는 결기같은게 느껴지는 플레이를 언제나 하던 선수였고, 야구 외적으로도 물의가 없던 선수여서 개인적으로 베어스 올타임 넘버원 중견수는 이종욱이었다고 단언합니다. 우승반지 못 준게 천추의 한이죠..은인 손시헌을 위해 패키지 FA로 떠난게 안타깝죠..원클럽맨으로 남아줬다면...정수근과 마찬가지로 타격 포텐이 가장 늦게 터진 능력치였지만, 빠르게 3할대 타율 리드오프가 됐고, 도루왕급 도루 개수뿐 아니라 고젯 고영민과 연계된 주루플레이는 진짜 상대 야수들 혼을 빼죠..이종욱 1루에서 고영민의 단타(특히나 좌전 안타)때 3루 뛰어서 세이프되고 그 사이에 고영민 2루 세이프되고..이 플레이 아웃되는거 기억에 남는게 하나도 없을 정도네요..이종욱 FA 이후로 민병헌이 주전 중견수였죠..정수빈이 상무입대로 빠진 시기에..솔직히 정수빈은 정수근과 판박이로 입단 시즌부터 1군 멤버였고, 주루와 수비능력에서도 거의 판박이..오히려 투수 출신이라 송구는 정수빈이 더 좋았구요..문제는 타격이죠..정말 어쩜 이렇게 안터지는지..베어스 올타임이 아니라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원탑 다이빙캐쳐지만..베어스 중견수 계보 중에 가장 타격능력이 떨어지는 선수죠..박건우는 이형종을 울린 그 결승전 1루 송구 입스로 외야 전향후 송구능력에선 리그 탑급이지만, 필딩 자체가 특출난 타입은 아니었구요..민뱅과 박건우가 유사하죠..견실한 정도의 필딩에 역대급 송구능력..하지만, 계보에 넣을 정도로 긴 기간 중견수를 한게 아니라서 우익수로 봐야겠죠..무엇보다 정수근-이종욱-정수빈의 필딩 능력이 워낙 급이 달라서요..베어스라는 팀이 상당히 축복받은거죠..1990년대 중반부터 근 30년간 리그탑 중견수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중견수 걱정은 없었죠..10년짜리 중견수가 3연속으로 터진다니..이런팀 어디에도 없습니다..게다가 외부에서 FA로 데려온 선수들이 아니고 입단과 동시에 주전 꿰차고 빠르게 완성형으로 성장한 선수들(정수빈 빠따빼고요;;)이라서 너무 공기처럼 당연한걸로 여기는듯도 싶죠..옆집 엘쥐는 홍창기가 나오기 전까지 스스로 키운 중견수가 너무 허접해서 우승 도전조차 못해왔죠..올해는 워낙 리그 레벨이 떨어져서 운대가 맞으면 또 모르겠네요..늘 센터라인이 우승할 레벨이 전혀..게다가 현재 박해민 박동원은 외부 FA고요..이대형은 주루와 필딩빼면 소녀어깨에 불필요한 송구 동작에 타격은 정수빈 하위버전으로 1루로 뛰기 위한 스타트 동작 정도의 타격이고..박용택은 그냥 공격형이죠..필딩도 평범인데 어깨는 이대형과 난형난제급..기본적으로 엘쥐 외야수들이 송구동작에 불필요한 동작들을 취하죠..이병규도 김재현도..대쉬도 설렁설렁하는 이미지가 강하고요..베어스의 중견수는 동시대 타팀과 상대평가를 하면 너무 비교 우위라서 팀 역대 상대평가가 의미가 있겠죠..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오로지 야구능력으로만 보면 이종욱>=정수근>>정수빈으로 평가해본답니다. 정수빈은 KBO 역사에서 넘사벽 다이빙 캐쳐로 남을 거지만 시즌 타격이 커리어 끝까지 안터질걸로 봅니다. 솔직히 걱정은 정수빈 다음 계보를 이을 중견수죠..포텐 터진 김대한이 가장 이상적이지만..될놈될이 통하는 KBO에서 김대한은 그런 찬스를 참 못살리는 이미지가 굳어져서 아쉽네요..수비만으로는 조수행인데 작년 정수빈 본헤드 플레이로 커리어 최초 끝내기안타를 놓치면서 좋던 타격 페이스가 꺾인후로 반등을 못하네요..나이도 대졸이라 많은 편인데요..극히 개인적으로는 정수빈을 FA로 잡지 말았어야 한다..주의였습니다. 조수행도 주전 고정하고 한시즌 보내면 준수한 타격 가능하다고 봤고, 김대한도 키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민병헌 박건우 처럼 박수치고 보내주는게 순리였다고 봅니다..정수빈이 없었다면, 김인태와 김대한 조수행 중 하나는 아무리 페이스가 떨어져도 닥치고 주전일테니 정확한 진단이 나왔을겁니다. 거액의 FA로 중견수와 좌익수가 고정이되다보니 우익수 한자리에 들어오고 빠지고가 너무 잦아지면서 아무도 주전이 못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30년간은 그냥 나오자마자 자리 잡고 10년갔던 터라 공기의 소중함을 느껴야 할 순간이 오고있다고 봅니다..역대급 왕조를 이끈 김태형이었기에 리빌딩도 맡겨서 평가받게 해줄만 했는데..이승엽이란 윈나우도 리빌딩도 못하게 하는 어정쩡한 감독 영입으로 현재 베어스는 근 30년간 본적없는 그런 팀이 됐죠..팜에서 키운 야수들이 긴 준비기간을 거쳐 포텐 터지고 FA로 유출되고 다시 그 자리를 기다렸던 자원이 차지하던 선순환(솔직히 모그룹의 자금난때문에 갖춘 시스템)이 거액의 장기 FA로 외부 유출을 막으면서 꽉 막히게 된거죠..물론, 이전처럼 퓨쳐스 씹어먹던 자원들이 더 이상은 줄줄이 나오지도 못하지만요..이럴땐 그때가 좋았지..하면서 신진 선수들 성장하는 모습에 즐거워하는 야구로 접해야지 왕조시절과 비교하면 암울할겁니다..오비 꼴찌 수모를 참아내고서야 5번의 우승과 왕조를 기어코 마주했던것처럼 지금은 답답함과 수모도 참고 견대내야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네요..오늘의 일기는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댓글과 이어진 답글 정말 감사합니다.
@@old-baseball 와 그 시절 야구를 경험하신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다르네요.. 긴글 후딱 다읽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안경현-고영민-오재원 으로 넘어가는 2루수 이야기도 해쥬실슈 있나요?? 아시다시피 현 두산은 자리잡지 못한 내야수들도 문제가 큰거 같습니다
한 템포 쉬고 싶었는데 바로 또 물어주셔서..^^ 원년부터 2루수는 김광수(구천서..최초 쌍둥이 형제 선수, 동생도 오비 구재서)가 롱런했죠..전형적인 2번이나 8번 타순의 타율은 낮고, 장타력 최하..출루와 희생번트 같은 희생하는 팀플에 우선을 두던게 고교야구 시절부터 정석이었기에 딱 맞는 유형이었고, 흔한 표현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하셨고, 수비도 안정적였고, 주루도 현역 김태형같은 체형에도 센스가 있으셔서 다람쥐 이미지였죠..그 이후 90년대 암흑기와 95우승 시절이 이명수 선수였죠..베어스 2루계보에서 타격 우위 2루수의 문을 연 선수라고 할 정도로 좌중간 라인드라이브 2루타를 잘치는 이미지를 준 사이즈도 작지않고, 수비보단 타격의 2루수였는데, 워낙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풀타임을 못뛰었던 기억이고요..그 직후인 98년부터 외국인 선수가 뛸때 최초의 베어스 외국인이었던 에드가 케세레스 선수가 2루수였습니다. 경력에서 출중했고, 미국 현지 트라이아웃에서 눈에 띈 타격 능력과 수비력을 갖춘 선수여서 1순위였고, 우즈는 전혀 영입대상이 아니었다죠..수비는 없다고 볼 수준이라..이재국 기자님의 "베팬알백"에 트라이아웃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재미있게 올라와있답니다. 암튼 기대가 컸는데..데뷔전부터 실책(당시 중계진도 무등야구장 상태를 쪽팔려하는 뉘앙스였답니다)을 보여주면서 수비가 급이 다르단 전문가들 예상에 의심을 하게됐고, 아무래도 장타력이 아닌 교타자 외국인을 만족하긴 힘들었죠..리딩히터급 타율까지 친것도 아니구요..개인적으로는 케세레스 덕에 제 눈도 높아졌고, 이후 베어스 수비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봅니다. 2루로 오는 타구가 아님에도 1루수 뒤쪽으로 백업을 들어가고, 포수의 1루 송구가 빠졌음에도 백업들어온 케세레스가 바로 커버하는 메뉴얼화된 모습을 첨봤습니다..센스있는 선수들이 간헐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백업 플레이 중계 플레이때 위치선정과 움직임이 다른 세상에서 온 수준이었죠..직관가서는 케세레스의 움직임만 팔로잉하면서 본적도 있답니다. 야구의 깊이를 보여준 따거였네요..암튼..님께서 문의하신 안경현 선수는 이제 등장하네요..오비라는 팀명으로 95년 우승 직전까지 신인급 야수들 중에 눈에 띈게 계명대 김민호, 연세대 안경현, 인하대 장원진 선수였죠..지명 순번에선 안경현 선수가 월등히 앞섰고 상대적 기대도 높았는데 데뷔 후 선발 자리를 잡는건 제일 늦었죠..원래 포지션도 3루수였습니다. 3루수는 워낙 핫코너라 순간 판단력이 수비범위보다 중요한 포지션이라 필딩 자체가 안정적이면 최고이던 시절이라 현재 허경민 처럼 몸을 비껴 앉으면서 핸들링으로 중간바운드까지 캐치하면 선배들에게 집단 폭행당할 시절이었죠..무조건 정면으로 맞춰서 몸빵하던 시절이라 정석에 충실한 필딩 스타일에 송구는 솔직히 피식할 정도로 딱딱한 느낌이랄까요? 송구 거리가 길다보니 2루수 시절 모습과는 많이 달랐구요..좌익수 김동주가 3루로 들어오면서 감히...^^ 케세레스 이후 무주공산이 된 2루를 장기 집권한거죠..고영민급 변태 수비범위도 오재원급 센스도 없지만, 견실한 2루 수비와 베어스 키스톤 계보에도 당당히 넣을만 했죠. 김민호 - 안경현 시절도요..순간적인 순발력과 센스도 있어서 글러브 토스 경기영상도 제가 보유한 테이프에도 여럿 있구요..김성근 아들 김정준과 절친이다보니, 상대 투수의 쿠세를 읽는 노하우가 쌓여서 말년에 이걸로 짭짤했다고 본인이 밝히기도 할 정도로 노림수가 좋은 타자였고, 수비보단 타력에 비중이 크긴한데 3할 찍는 완전 교타자도 홈런 두자리 늘 치는 장타자도 아니었지만, 역시나 라인드라이브 2루타 타자 이미지였고, 어린이날 끝내기 홈런이나 2000년 PO 9회 2사 동점 홈런같은 임팩트있는 홈런이 많아서 홈런 타자처럼 기억도 되는데 그런 타입은 아니었죠..김정준 아들을 통해 팀내 선수들 싸인 팔았다는 혐의를 받은게 아마 안경현일겁니다..정수근이 박명환 채널에서 한때 야수진과 투수진이 이 문제로 사이가 완전히 엉망이던 시절이 있다고 밝혔었죠..장기간 2루 주전에다 주장 이미지까지 겹치고, 김인식 사단에서 홍성흔과 안경현이 덕아웃 리더였던 터라 김경문 체제에서 가장 먼저 입지가 달라졌죠..안경현은 스크로 홍성흔은 롯데로 떠난 이유도, 김인식 감독님 스타일의 자율야구가 길어지면서 덕아웃 분위기가 너무 느슨해지다보니, 카리스마형 감독이던 김경문 감독님 입장에선 그 부분부터 해체하고 새로 만들려고 하다보니..이미 베어스에서 전성기가 꺾인 안경현과 2루 송구 입스로 포수가 불가능했던 홍포에게 정체성인 포수를 포기하란 통보를 받고 관계가 껄끄러워지다 FA로 떠났죠..김인식 감독님 체제에선 안경현이 프랜차이즈 스타->코치로 가는 0순위였는데 한순간에 떠나고 역시나 전성기에서 꺾여 선발타순에서도 빠지며 준 코치 느낌이었던 조용히 제몫하던 FM 사나이 장원진 선수가 김경문 사단의 덕아웃 리더처럼 됐죠..이후 코치 생활까지 주욱 이어지다 코로나 직격탄 맞을때 하필 퓨쳐스 메인 코치가 아닌 잔류군 소속이라 짤린후 현재까지 무소식이죠..그래서 팬들 사이에선 안샘과 장샘 라인을 운운하는데..두 선수의 라이프 스타일 차이로 결코 같이 어울릴수는 없었지만, 후배들 줄세우고 정치질 하는 그런게 있을수 없는 당시 덕아웃 분위기였답니다. 경기후 술을 즐기며 어울리는 타입의 안경현에 비해 콜라 주는 팬을 제일 좋아했던 장원진 선수는 경기후 어울릴수 없었던거죠..그 정도 정보만 가지고 잘나가던 안샘이 갑자기 스크로 떠나고, 뒷방 늙은이같던 장샘이 갑자기 떠오르니 뇌피셜로 라인 스토리를 지어낸거죠..정작 고영민 오재원 시절을 듣기 원하셨던거 같은데..그 이전 전사로 너무 오래 떠들었네요..고영민 오재원 시절 이야기는 좀 시간을 두고 댓글 올려볼게요..그리고, 고영민 오재원 초창기 시절이 제가 야구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있던 시절이라 기사와 순수 뇌피셜 스토리가 될겁니다..2000년대 초반 팬덤 문화 발생기엔 팬클럽과 선수, 선수 와이프, 부모님들과 최근접하던 시절(지금의 비지니스적이고 큰 벽이 쳐진 시절은 이해못할 수준)이라 선수와 팀내 이런저런 전언을 자주 듣던 때이기도 했고, 야구 기억력 만랩이던 시절에 대학생 특권으로 야구에 푹 빠져 살던 시절이라 희미해진 기억력으로 선후관계가 혼동은 되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던 시절이었구요..그나마 다시 야구에 끈을 이은건 순전히 아들과의 캐치볼 로망으로 아들과 캐치볼이 가능해진 2014시즌 정도부터 였네요..물론, 라떼는 말야하면서 지금의 구단, 선수와 팬들의 관계가 맘에 안들어 불평하는 일반팬 중 하나로요..현재 작업해둔 영상이 직캠 하나, 경기 영상 하나인데 올릴 타이밍을 못잡겠네요..고영민 오재원 스토리도 털어보겠습니다..야구 수다가 너무 그리웠던겁니다..글 길이를 확인할때마다 당황스럽네요. ;;
2000년부터 최초의 디지털 6mm 캠코더가 보급되면서 "VJ"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VJ 특공대와 같은 교양, 예능 프로그램 전성시대가 왔었죠..2002년에 개인적으로 대학 졸업을 했고, 군제대 하자마자 IMF 맞으면서 그냥 학교다니다가 전공관련 회사에 입사하는 시스템이 완전 파괴된 상태에서 야구 + 6mm 캠코더로 뭔가 해보고 싶은 생각에 캐논 GL-1을 들고 2002~2003년까지 야구장에서 직캠과 케이블TV 중계녹화(당시엔 유료 스포츠채널에 가입해도 전구장 중계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중계할땐 녹화하고, 한밤에 하는 스포츠 하일라이트 녹화)하고, 밤샘 편집 랜더링해서 웹호스팅 업체(당시에도 유튜브가 있었을겁니다..다만, 고화질 대용량 파일 업로드가 빠르게 안되던 외국 업체정도?)에 업로드하고 개인 홈피(하니의 야동)에 올리고, 곰대에 영상 링크 올리고 자던 시절이었네요..생각해보면 베어스포티비를 10여년 이상 먼저해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당시가 야구에도 팬덤문화가 태동하면서 "팬클럽"들이 확 늘어나던 시기였고, 곰들의 대화와 선수 개인 홈페이지들이 생겨나던 시절이라 구단 홍보팀과도 아주 느슨하지만, 연계도 되서 베어스포티비가 했던 덕아웃 스케치들도 기획은 해봤지만, 10여년 후에나 가능했던 구단 마인드를 당시에 한 개인이 바꿀순 없었고요, 2003시즌 응원단 교체와 우즈 홀대, 김인식 감독님 교체 파동등 격변을 거치면서 최근접했던 구단과의 거리가 한순간에 안드로메다로 벌어지면서 야구에 빠져 살던 짧은 시기를 그렇게 마감했답니다..2002(2003?)시즌 끝나고 곰모때 구단에서 시상도 해주고 했지만, 거기까지였고요...솔직히 그때 찍거나 녹화한 6mm 테이프 50여개들도 최근에서야 다시 돌려본거랍니다. 선수개인 홈페이지에 붙는 무작위 배너광고가 성인용이거나 도박사이트류들이 많다보니 겨우 링크만 걸어준거 뿐인 구단에서 구단 이미지 버린다고 반 협박성 메일을 받으면서 시작된 인연이었지만, 이후 메일과 연락을 통해 팬서비스 아이디어와 피드백들로 가까워졌던 당시 프런트 막내셨던 이왕돈님의 본인상 부고를 최근에 봤던게 다시 테이프 케이스를 열어본 계기가 아니었나 싶네요..젊은 나이셨는데..시구 행사나 은퇴식, 레전드 데이 영상을 통해 여전히 잘 계시는구나 근황을 보던 분이셨는데 안타깝더군요..2000~2001 감동의 KS로 종신 감독, 10번 타자하면서 팬과 구단 케미가 환상이던 시절이 불과 2년 후에 최악이 될줄은 몰랐죠..홍성흔 팬클럽 아도니스가 아이돌 팬클럽화되면서 시대가 변하는구나를 몸소 체험도 하던 팬문화 격변기에 IMF 핑계, 대학생 핑계로 원없이 야구에 빠져살던 흔적들을 되돌아보는 요즘이었네요..아쉬운건 김동주 채병용 벤클 영상 작업하면서 취미가 아닌 좀더 "직업적" 마인드로 녹화, 캡쳐하고 촬영도 했었다면...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시기적으론 딱 2년만 빨리 그런 활동을 했다면, 2015시즌부터 왕조를 기록했던 베어스포티비처럼 훨씬 더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는 영상들이 쌓였을텐데 말이죠..안경현 봉중근, 김동주 채병용 벤클 풀버전 같은 "마라탕맛" 영상들은 더 이상 딱히 없고..20년전 옛날 베어스 영상을 하나씩 여유있을때 올려보려 하네요..목디스크로 일도 쉬면서 뭐라도 해서 떨어진 자존감을 세워보려고 한달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달려봤는데요..젊음이 깡패라는걸 뼈져리게 느끼네요..당시엔 이틀을 밤샘하고도 야구장가서 왕복 4시간을 거뜬히 버텼는데, 이젠 밤샘하면 2~3일은 죽음이네요..이젠 목디스크 증상도 나아져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해서 아주 띄엄띄엄 영상이 올라갈듯 하네요..^^ 댓글들에 거의 답글 안달다가 한번씩 달면 장문의 일기를 쓰는게 패턴화 되는군요..;; 야구 이야기로 밤샘하던 시절이 그립긴 하네요..옛날야구 영상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TMI
5회말 5:5 1사 2,3루 상황에서 전상렬 타구를 1루수 이호준이 포구후 1루 베이스를 밟아 2아웃, 홈에 송구 강성우가 3루주자 김동주를 태그 아웃..3아웃 공수교체..가 심판들 판단이었죠.
문제는 애초에 1루 땅볼 타구부터 파울이었단겁니다. (다음 타석때 1루로 출루한 이호준이 1루수 장원진 선수에게 파울이었다고 말해줌)..1루로 뛰던 전상렬 선수도 뛰다마는 주루고, 이호준의 송구도 왼쪽으로 쏠렸던 것도 타자와 1루수 모두 파울로 인지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결국 오심에 징계까지 받게된 판정은 김동주를 태그하던 강성우가 송구가 쏠리면서 주저앉으면서 잡았고, 점프해서 멀리 피한 김동주 선수의 유니폼을 잡으며 일어섰기 때문에 이미 주루방해 동작으로 세이프가 됩니다. 거기다 김동주 선수의 스파이크의 홈플레이트 터치도 강성우 선수의 미트 태그보다 빨랐구요..이영재의 다음날 멘트는 "강성우의 오른손에 공이 있었다고 봤다"였지만, 강성우는 태그 아웃 이후까지 미트에 공이 들어있었고, 심지어 공든 미트로 어필 동작까지 취했죠..그런데도 오른손에 공이 있다고 봤다니...
5:5 동점을 만들고 이어진 찬스에서 3연속 오심(파울 오심-주루방해 오심-세이프/아웃 오심)으로 역전에 실패한 두산이 다음 이닝 결승점 내주고 결국 5:6으로 패합니다.
하필 이 날은 교육중인 2군 심판들이 견학을 왔던 경기였고..당시 6mm 캠코더로 촬영하는 VJ 컨텐츠들 전성시대여서 2군 심판들의 일상을 찍던 시기였답니다. 당시 방송된 장면중 이닝 교체에 맞춰 커피를 타서 기다리던 2군 심판이 1군 심판에게 말도 제대로 못 걸고 손도 덜덜떠면서 커피 전달 못하자 이닝 교체까지 그걸 그대로 들고 기다리던 장면 쇼킹했는데, 그렇게 하늘같던 1군 심판의 오심과 퇴장 명령까지 직관을 했으니..
아마도 2002시즌 급격히 팬클럽들이 늘어나면서 팬 클럽데이처럼 해당 팬클럽 회원들 경기 종료후 해당 선수와 싸인회와 사진촬영하는 팬서비스를 했던거 같습니다. 덕분에 역대급 오심한 날 심판실을 창문 넘어 찍어볼수 있었네요..짬되는 심판은 쇼파에 앉아서, 신참들은 서서 정자세로 각잡는 모습 참..
이영재 심판에 대한 TMI는 다음 이영재 오심 영상으로 털어보겠습니다. 갓 1군 올라와서 각 잡고 칼 같이 스트라이크 잡던 경기를 직접 봤기에 솔직히 안타까운 맘이 더 큽니다. 그 경기에서 구타 당하고 오심의 대명사 이영재가 된게 아닌지...
우연찮게 알고리즘 따라 채널들어왔는데 ㅋㅋ 주인장님 댓글 장문 ㅋㅋ 찬호형 저리가라네요 ㅋㅋㅋ
ㅇㅈ ^^ 영상에 자막이나 음성 TMI를 넣으라는게 유튜브던데, 제가 옛날야구 영상을 올리는 이유가 그 시절의 공기, 기억들을 소환하기 위해 화질 개선 뽐뿌질 어렵게 한 영상인데 제 주장을 자막이나 음성으로 넣어 시청 몰입에 방해가 되길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고있는 TMI는 댓글과 답글로 무단 대량 방류 중인거죠. 나이가 들어서 제 야구 기억력이 어마어마하게 감퇴된걸 다행으로 아십쇼 ^^
@@old-baseball ㅋㅋㅋ 업로드 영상들 잘보겠습니다.
귀하고 재밌는 영상 너무 고맙습니다!!
꾸벅~
이영재는 저때부터 눈동자를
굴리고 무작정 싸우자는식으로
달려 들었네 ㅋㅋㅋㅋㅋㅋ
그와중에 3루심 정면으로
보고 있으면서.. 할말하않..
99년에 구대성 퇴장 시켰다가
당시 한화감독이던 이희수
감독님한테 뺨 맞은적 있었지..
이날 영상은 여러곳을 이동하며 촬영했는데, 이 이닝에 우연찮게 3루심 시선 선상 외야에 있었네요..이영재 오심과 항의한 김평호 코치에게 육두문자 쓴 입모양이 방송된 영상도 가지고 있답니다..그런데요..구대성 퇴장과 이희수 감독님이 공을 쥐고 턱을 날린 그 경기 라이브로 중계봤던 1인입니다..1군 콜업된지 한달정도된 젊은 심판이란 해설을 듣고 중계보는 내내 "좋은 심판" 나왔다고 평가했답니다..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우타자 바깥쪽은 뭐 태평양 수준이었죠..특히나 구대성 송진우존이라 불리던 더 바깥쪽에서 바깥쪽으로 들어오던 스트라이크 콜받던 공은 배터박스 밟고 쳐도 몸을 숙여야 커트할 정도였던 시절이었기에 바깥쪽 존 타이트했고, 경기 내내 일관된 존 고수하던 신입 심판이 정말 맘에 들더군요..뭐, 그날도 특유의 격파 삼진콜이 더 눈에 띄었지만, 구대성존 인정 않는 당찬 신입 심판이란 점에 더 점수주고 봤답니다..경기내내 구대성 존에 대한 불만이 9회 빌리홀에게 던진 볼을 볼넷 판정하면서 터진거죠..그 마지막 공은 구대성존이 아닌 한가운데 "낮은"공이었죠..네. 명백한 볼이었고, 구대성 입장에선 "초짜" 심판 주제에 늘 잡아주던 구대성존을 무시한데 대한 분노였다고 봅니다. 마운드에서 글러브 팽개치고, 퇴장되면서 1루 라인쪽에 있던 공을 발로 차버렸죠..KBS 위성 중계였는데, 녹화 안한게 천추의 한이네요..경기는 결국 삼성이 역전승했고, 이희수 감독님 폭행은 다음날 기사로 알게됐죠..저는 야구 지인과 제 아들에게 이영재가 맛이 간게 그날의 이희수 감독의 폭행때문이란 이야기를 계속했답니다. 너무 신선했고, 너무 용감했던 좋은 심판 재목이 그날을 분기점으로 격파 삼진콜과 오심의 아이콘만으로 전락해버린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99시즌은 기형적인 양대리그로 전체 승률 1위가 두산 2위가 롯데 3위가 삼성 4위가 한화였죠..웃긴건 드림리그 1,2위는 최종전 맞대결에서 결정이 났고, 거의 서로 "져주기" 게임 분위기로 일관했답니다..드림1위와 매직2위 크로스 토너먼트로 시작되는 포스트시즌 일정이 최종전 다음날 하루 휴식후였기에 차라리 드림 2위가 하루 휴식 어드밴티지를 갖기 때문이었죠..최종전에 순위가 결정된 드림리그와 달리 매직리그는 이미 정규시즌 종료 한참전에 순위 확정이라 한화는 일주일 전에 송진우를 제외한 투수들 아예 엔트리에서 다 빼고 휴식했답니다. KS직행의 최대 어드밴티지가 긴 시즌 종료후 2~3주 휴식이 주는 투수 휴식이 정말 깡패수준이거든요..플옵 이틀전까지 연장 혈투했던 전체 1위와 일주일 전부터 쉬면서 준비한 전체 4위 팀간 대결..1차전 비까지 오면서 한화를 위해 우주의 기운이 모인 99시즌이더군요..^^ 초짜 이영재가 용감하게 투쟁했던 명백한 볼들이었던 송진우 구대성 존이 맹활약하면서 4연승 스윕으로 KS가서 7차전 혈투하고 너덜해진 롯데를 꺾고 유일무이 한화 우승을 이뤘죠..대전 3차전때 마지막 타자 우즈 삼진공은 방망이를 던져도 안 닿을 정도로 빠진 볼임에도 구대성존 인정받아서 우즈는 타석에서 항의하는데 이미 심판진 광속 퇴장하는 바람에 항의나온 감독 코치들 벙쪄하던 장면이 여전히도 기억납니다..이 우승의 분수령을 이희수 폭행으로 인정하는 이들이 많았다는거 아시나요? 리그 승률도 높지않았고, 무엇보다 홈 연패가 팀 기록급일 정도여서 선수단에 메세지 보내려고 작정하고 아구 갈긴거라고 자타 공인된 사건이었죠. 우연찮게 KBS 위성 채널 라이브로 이 중계를 봤었고, 너무 인상적인 신입 심판이었고, 무려 리빙 레전드 구대성에게 꿀리지않고 제대로 스트라이크존 고수한 심판 유일한 심판이었기에 이날의 폭행후 망가진 이영재에 대해 누구보다 애증이 크고 관심도 커서 이영재 이슈는 다 팔로우하고 있었답니다..통로에 모인 2군 심판들 앞에서 역대급 오심을 하고 징계먹은 게임을 찍고 편집하면서 정말 많은 전사들이 펼쳐졌답니다..구대성과 이희수 감독님의 그날을 아는 분이셔서 또..길고긴 일기를 적었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old-baseball kbs 위성 1,2
추억이네요 ㅋㅋㅋㅋㅋ 저도 그 시절
야구를 봤었지만, 가끔 생각이나곤
하는데, 이런 추억의 영상
자주 올려주세요 !!
그나마 화질이 좀 나은건 2002년에 6mm 캠코더가 생긴 이후에 캠코더에 녹화한 영상이나 직캠이고요..그 이전은 재사용된 VHS테이프 녹화여서 4K 유튜브 시대엔 완전 안습이죠..하루 4경기중 많아야 2경기 중계하던 시절이었고, 네이버 문자중계만 하던 시절에다.. 셋톱박스도 없는 지역 유선방송 노이즈 낀 영상소스를 아날로그 VHS로 녹화한게 원본이라 그나마 볼수있게 프로그램 돌리려면 시간이 몇배는 들어가야 해서 선뜻 건드리질 못하네요..비디오 판독이 없어서 역대급 주루 플레이들이 아웃판정받은 오심 영상들도 VHS 테이프로 남아있긴 합니다..전혀 신경 안쓰고 습한 창고에 쳐박혀 있다보니 테잎 내부에 허연 곰팡이 같은 오염도 가득해서 분해해서 세척하고 다시 PC로 캡쳐하고..안습 화질 노이즈 제거에 업스케일링까지...엄두가 안나네요..ㅜㅜ
안녕하세요. 혹시 2001년 안경현이랑 박지철 벤치클리어링 영상도 있으신가요??
안녕하세요. 2014년부터 두산팬이 된 현 고1입니다. 2000년대 두산이 궁금해서 이런영상 자주찾아보고 그러는데 혹시 홍성흔선수의 첫번째 응원가 가사좀 알려주실수 있나요? 나무위키 같은곳에서도 안나와있던데 2007년 한국시리즈 영상보면 홍성흔 선수 타석때 꼬부랑 할머니 응원가보다 더 옛날 응원가가 나오더라고요. 잘 알려지지 않은 응원가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홍성흔 응원가하면 다들 떠올리는건 첫번째 FA로 롯데 갔을때 만든 "4 Non Blondes"의 "What's Up?" 원곡의 롯데의 홍성흔~ 이겠죠..제 입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홍성흔 응원가는 "Glory Glory Hallelujah" 가사로 유명한 "Battle Hymn of the Republic" (군대 음악으로 귀에 익은 멜로디죠..교회를 다니신다면 영광 영광 할렐루야 후렴구의 찬송가로 알려진) 원곡에서 Glory Glory Hallelujah 부분을 반복하는 응원가입니다..가사는 "홍~성흔 안타 안~타 (X3) 날려라 홍성흔~ 안타! "였던것 같네요..이 응원가를 점점 빨리 반복하면서 분위기 업하는 응원가였죠..분명 입으로 자동 재생되는데 유튜브나 위키 등등 찾아도 없네요. 홍성흔 응원가는 롯데 시절 응원가가 국룰인듯 싶죠..2번째 FA 베어스로 돌아와서도 롯데를 두산으로 바꾸고 계속 사용을 했으니까요. 2003시즌 잠실 직캠 속 사운드로 확인했습니다..원하셨던 응원가가 이 응원가셨길..TMI 2003시즌 경기 영상 돌려보니 투수가 일본인 이리키였고, 타자가 쿨바였네요...쿨바 선수는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마이너리그 코치시절 3루 주루 코치로 나가있다가 파울 타구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선수로 유명해졌죠..그 사망사고 이후로 메이저리그도 국내에서도 주루 코치들이 헬멧을 쓰게됐구요..쿨바 선수 영상 많지는 않지만, 모아서 올려볼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혹시나 하는 맘에 이리키 선수도 검색해봤는데..올해 2월달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뜨네요..에고...
@@old-baseball 제가 찾던 응원가가 맞네요! 2003년 이전부터 있었다니 정말 오래된 응원가였나봅니다..
처음 응원가는 "꼬부랑 할머니" 를 편곡한 곡인걸로 기억합니다. 딸이 가장 좋아했던 동요였다고..
안녕하세요 항상 영상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두산팬인데 저는 우즈라는 전설적인 외국인 선수만 들어봤지 실제로 본적은 없습니다. 이미 우즈에 대한 영상이 많던데 우즈는 어떤 외국인 선수 였나요??
국내에서 스탯과 일본에서의 스탯은 이미 아실듯하니..개인적 감상이라면, 야구는 원년 이전부터 고교야구를 봐온 입장에서..우즈를 통해 처음본 궤적을 여전히도 기억합니다. 한참 야구보면 타구음, 궤적, 수비움직임을 보면 여유있게 넘어갈건지, 간당간당한건지, 여유있게 잡힐건지 알게되는데요..근본적으로 잠실은 펜스거리만 긴게 아니라,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역풍이 불기때문에 높이 뜨면 저항을 많이 받아선지 급격히 궤적이 떨어지는게 일반적이었기에 상당히 높이 뜨고 체공시간도 길어서 내야를 넘는 순간에 워닝 트랙도 못가겠다..고 생각하면서 좌익수 뒤쪽 외야스탠드에서 보고 있었죠..중견수와 좌익수도 천천히 뒤로 백을 하고 있었구요..그런데 수많이 보아온 타구 궤적과 달리 떨어질 타이밍에 안떨어졌기에 한번더 쭉 뻗는 느낌을 첨 받았습니다. 결과는 좌중간 스탠드 중상단에 떨어졌구요..순수 파워 자체도 만랩이었지만, 배트스피드도 역대급이어서 몸쪽 붙는 공도 인앤아웃 스윙(오른쪽 팔꿈치가 배꼽에 붙어나오는 스윙..박병호 몸쪽 스윙, 티라노 스윙? ^^)으로도 비거리 상당한 홈런을 많이 쳤습니다..밀어서도 잠실 우측 스탠드로도 많이 넘겼구요..떨공삼 스타일의 약점도 분명했지만, 그걸 극복 못했는데 일본에서 그렇게 성공했을리는 없겠죠..직관 갔을때 상당히 높은 확률로 1회말에 정수근이나 장원진 선수가 안타로 출루하면 3번 타자로 우측으로 밀어서 홈런을 치면서 경기를 시작해주기 때문에 항상 경기 노잣돈을 챙겨줘서 편하게 게임을 보곤 했죠..2015년 이후 왕조시절엔 높은 확률로 민뱅 선수가 1회말 리드오프로 나와 우중간 2루타로 경기를 시작하는 패턴도 많이 봤구요..우즈가 뛰던 시절이 출루율 높고 도루왕 리드오프 정수근에 홈런 못치는 188cm 거구의 깍신 2번 장원진 뒤로 우동수(우동학) 트리오라서 타선의 시너지로 전형적인 공갈포 타입의 타자로 전락되지도 않았죠..잠실 홈에서 평균 34개 홈런 자체도 크지만, 2루타도 많아서 득점 생산성에선 올타임 외국인 선수중에서도 원탑급이었죠..워낙 연봉이 짜서 마지막 시즌엔 우즈 선수가 태업을 했죠..문학에서 시즌 최종전때 일본 진출할 걸 알았기에 우즈 위주로 촬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최근에 테이프로 직접 확인한건 아니지만요..시도때도 없이 도루시도 ㅋㅋ 시즌 끝나고 우즈 팬클럽에서 모임할때 찍새로 함께 가서 우즈 선수 인터뷰찍고, 캠코더 스트랩에 우즈 영문과 한글 싸인(댓글 쓰며서 생각나서 찾아봤는데 많이 희미해지긴 했네요)을 받았었죠..신천 한복판에서 한 겨울에 덩치 산만한 어른들이 "우즈 우즈" 응원할땐 쪽팔리기도 하고, 마지막임을 알았기에 만감이 교차했었네요..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즈 직캠 영상이나 경기 녹화 영상도 올려보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old-baseball 이야... 그냥 어떤선수인지 실제로 본거 같은 기분이 드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정수근 선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정수근 선수도 궁금합니다. 최근에 박건우 아님 2000년대 초반 이종욱선수같은 분들이랑 비교한다면 누가 우위에 있을지 고민해본적이 종종 있었는데 아무래도 실제로 본적이 없어서요 ㅠㅠ
각잡고 장문의 댓글을 시작하겠습니다..야구 수다떨 상대가 너무 없는 요즘이기에요 잘못 걸리셨습니다 ^^;;.....오비 시절부터 중견수 계보라고 하면 초대 신인왕 박종훈->박노준->>>>>정수근->이종욱->정수빈으로 봐야겠죠..박종훈 선수는 정말 당시 유행어였던 쾌남 스타일로 플레이가 품위가 있다고 해야할까요? 안타깝게도 사구로 커리어가 끊긴 케이스고, 박노준은 고교야구 시절부터 제 우상이었던 선수지만..야구에대한 자존심, 열정과 재능에 비해 몸이 유연하지 못하다고 해야할까요..적당히란 거부하는 터라 골절 부상 복귀 경기에서도 이 공 잡고 죽자는 마인드로 몸을 날리는 그런 타입이라 공백기가 긴 부상이 반복되면서 고교시절의 반에 반도 못한 비운의 스타죠..그 뒤가 오비꼴찌 암흑기 시절이다보니 롱런과 임팩트를 준 중견수는 솔직히 생각이 안나네요..1995 통합우승 당시 주전 중견수는 장원진 선수였죠. 당시 입단한 고졸 중견수 백업이 정수근이었구요..KS에서 결정적인 3루타(그냥 평범한 안타인데 결정적인 득점권이라 다이빙 캐치가 실패하면서)로 임팩트를 줬고, 1996시즌 장원진 선수가 공익근무로 빠지면서 주전 꿰차고 짧은 적응기를 거쳐 타격까지 포텐 터지면서 3할 도루왕 리드오프로 장기간 군림했죠..솔직히 "야구"만으로는 정수근을 깔께 뭐 하나 없죠..타격 포텐만 제일 늦게 터졌을뿐 입단 당시부터 수비와 주루 센스는 올타임 탑급이었고, 비디오판독이 있었다면 KBO 올타임 하일라이트 장면 수두룩하게 남겼을겁니다. 상당수가 타이밍상 아웃으로 추정 판정해서 손해 많이 본 케이스죠..김동주도 와~할 정도의 태그 피하는 슬라이딩 센스를 가졌는데 몸이 주는 선입관으로 오심 손해 많이본 케이스구요. 잠실 그라운드에 다이빙 캐치 전통은 박노준 시절부터 있어왔지만, 정수근때부터가 빈도수나 임팩트면에서 특출났다고 봐야겠죠..첫발 스타트부터 타구판단이 워낙 좋아서 좌우 수비폭도 광폭이었구요..국대에서도 임팩트있는 다이빙 캐치를 남길 정도였지만,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른선수 다이빙 시도할 타구를 빠른 판단과 빠른 발로 쉽게 쉽게 처리하는 이미지죠..좌익수 장원진 우익수 심정수가 "필딩"에선 뛰어난 선수들이 아니었음에도 중견수 정수근이 양쪽 다 커버해줘서.. 홈런 훔치는 능력자 장원진과 어깨깡패 심정수의 장점이 살아날수 있게한 것도 정수근의 수비 범위 덕이라고 봅니다. 박명환 유튜브에서 정수근 왈 "똥차"라고 할 정도의 수비범위였던 장원진 선수..정수근 룸메이트기도 했고, 워낙 FM 생활에 착한 선배로 존중하지만, 수비는 대놓고 디스했을 정도였으나 다 커버했던 정수근이죠..가장 떨어지는 수비 능력치라면 아무래도 어깨정도겠죠..보살이 심심찮게 나왔지만 왜소한 체형 준족의 리드오프 중견수에게 어깨까지 요구하는건 그렇죠..이종욱도 송구가 가장 떨어진 능력치였구요..정수근이 빠른 발과 야구 지능, 센스로 수비를 했다면 이종욱은 플러스 이거 잡고, 오늘 경기하고 죽는다..는 결기같은게 느껴지는 플레이를 언제나 하던 선수였고, 야구 외적으로도 물의가 없던 선수여서 개인적으로 베어스 올타임 넘버원 중견수는 이종욱이었다고 단언합니다. 우승반지 못 준게 천추의 한이죠..은인 손시헌을 위해 패키지 FA로 떠난게 안타깝죠..원클럽맨으로 남아줬다면...정수근과 마찬가지로 타격 포텐이 가장 늦게 터진 능력치였지만, 빠르게 3할대 타율 리드오프가 됐고, 도루왕급 도루 개수뿐 아니라 고젯 고영민과 연계된 주루플레이는 진짜 상대 야수들 혼을 빼죠..이종욱 1루에서 고영민의 단타(특히나 좌전 안타)때 3루 뛰어서 세이프되고 그 사이에 고영민 2루 세이프되고..이 플레이 아웃되는거 기억에 남는게 하나도 없을 정도네요..이종욱 FA 이후로 민병헌이 주전 중견수였죠..정수빈이 상무입대로 빠진 시기에..솔직히 정수빈은 정수근과 판박이로 입단 시즌부터 1군 멤버였고, 주루와 수비능력에서도 거의 판박이..오히려 투수 출신이라 송구는 정수빈이 더 좋았구요..문제는 타격이죠..정말 어쩜 이렇게 안터지는지..베어스 올타임이 아니라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원탑 다이빙캐쳐지만..베어스 중견수 계보 중에 가장 타격능력이 떨어지는 선수죠..박건우는 이형종을 울린 그 결승전 1루 송구 입스로 외야 전향후 송구능력에선 리그 탑급이지만, 필딩 자체가 특출난 타입은 아니었구요..민뱅과 박건우가 유사하죠..견실한 정도의 필딩에 역대급 송구능력..하지만, 계보에 넣을 정도로 긴 기간 중견수를 한게 아니라서 우익수로 봐야겠죠..무엇보다 정수근-이종욱-정수빈의 필딩 능력이 워낙 급이 달라서요..베어스라는 팀이 상당히 축복받은거죠..1990년대 중반부터 근 30년간 리그탑 중견수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중견수 걱정은 없었죠..10년짜리 중견수가 3연속으로 터진다니..이런팀 어디에도 없습니다..게다가 외부에서 FA로 데려온 선수들이 아니고 입단과 동시에 주전 꿰차고 빠르게 완성형으로 성장한 선수들(정수빈 빠따빼고요;;)이라서 너무 공기처럼 당연한걸로 여기는듯도 싶죠..옆집 엘쥐는 홍창기가 나오기 전까지 스스로 키운 중견수가 너무 허접해서 우승 도전조차 못해왔죠..올해는 워낙 리그 레벨이 떨어져서 운대가 맞으면 또 모르겠네요..늘 센터라인이 우승할 레벨이 전혀..게다가 현재 박해민 박동원은 외부 FA고요..이대형은 주루와 필딩빼면 소녀어깨에 불필요한 송구 동작에 타격은 정수빈 하위버전으로 1루로 뛰기 위한 스타트 동작 정도의 타격이고..박용택은 그냥 공격형이죠..필딩도 평범인데 어깨는 이대형과 난형난제급..기본적으로 엘쥐 외야수들이 송구동작에 불필요한 동작들을 취하죠..이병규도 김재현도..대쉬도 설렁설렁하는 이미지가 강하고요..베어스의 중견수는 동시대 타팀과 상대평가를 하면 너무 비교 우위라서 팀 역대 상대평가가 의미가 있겠죠..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오로지 야구능력으로만 보면 이종욱>=정수근>>정수빈으로 평가해본답니다. 정수빈은 KBO 역사에서 넘사벽 다이빙 캐쳐로 남을 거지만 시즌 타격이 커리어 끝까지 안터질걸로 봅니다. 솔직히 걱정은 정수빈 다음 계보를 이을 중견수죠..포텐 터진 김대한이 가장 이상적이지만..될놈될이 통하는 KBO에서 김대한은 그런 찬스를 참 못살리는 이미지가 굳어져서 아쉽네요..수비만으로는 조수행인데 작년 정수빈 본헤드 플레이로 커리어 최초 끝내기안타를 놓치면서 좋던 타격 페이스가 꺾인후로 반등을 못하네요..나이도 대졸이라 많은 편인데요..극히 개인적으로는 정수빈을 FA로 잡지 말았어야 한다..주의였습니다. 조수행도 주전 고정하고 한시즌 보내면 준수한 타격 가능하다고 봤고, 김대한도 키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민병헌 박건우 처럼 박수치고 보내주는게 순리였다고 봅니다..정수빈이 없었다면, 김인태와 김대한 조수행 중 하나는 아무리 페이스가 떨어져도 닥치고 주전일테니 정확한 진단이 나왔을겁니다. 거액의 FA로 중견수와 좌익수가 고정이되다보니 우익수 한자리에 들어오고 빠지고가 너무 잦아지면서 아무도 주전이 못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30년간은 그냥 나오자마자 자리 잡고 10년갔던 터라 공기의 소중함을 느껴야 할 순간이 오고있다고 봅니다..역대급 왕조를 이끈 김태형이었기에 리빌딩도 맡겨서 평가받게 해줄만 했는데..이승엽이란 윈나우도 리빌딩도 못하게 하는 어정쩡한 감독 영입으로 현재 베어스는 근 30년간 본적없는 그런 팀이 됐죠..팜에서 키운 야수들이 긴 준비기간을 거쳐 포텐 터지고 FA로 유출되고 다시 그 자리를 기다렸던 자원이 차지하던 선순환(솔직히 모그룹의 자금난때문에 갖춘 시스템)이 거액의 장기 FA로 외부 유출을 막으면서 꽉 막히게 된거죠..물론, 이전처럼 퓨쳐스 씹어먹던 자원들이 더 이상은 줄줄이 나오지도 못하지만요..이럴땐 그때가 좋았지..하면서 신진 선수들 성장하는 모습에 즐거워하는 야구로 접해야지 왕조시절과 비교하면 암울할겁니다..오비 꼴찌 수모를 참아내고서야 5번의 우승과 왕조를 기어코 마주했던것처럼 지금은 답답함과 수모도 참고 견대내야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네요..오늘의 일기는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댓글과 이어진 답글 정말 감사합니다.
@@old-baseball 와 그 시절 야구를 경험하신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다르네요.. 긴글 후딱 다읽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안경현-고영민-오재원 으로 넘어가는 2루수 이야기도 해쥬실슈 있나요??
아시다시피 현 두산은 자리잡지 못한 내야수들도 문제가 큰거 같습니다
한 템포 쉬고 싶었는데 바로 또 물어주셔서..^^ 원년부터 2루수는 김광수(구천서..최초 쌍둥이 형제 선수, 동생도 오비 구재서)가 롱런했죠..전형적인 2번이나 8번 타순의 타율은 낮고, 장타력 최하..출루와 희생번트 같은 희생하는 팀플에 우선을 두던게 고교야구 시절부터 정석이었기에 딱 맞는 유형이었고, 흔한 표현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하셨고, 수비도 안정적였고, 주루도 현역 김태형같은 체형에도 센스가 있으셔서 다람쥐 이미지였죠..그 이후 90년대 암흑기와 95우승 시절이 이명수 선수였죠..베어스 2루계보에서 타격 우위 2루수의 문을 연 선수라고 할 정도로 좌중간 라인드라이브 2루타를 잘치는 이미지를 준 사이즈도 작지않고, 수비보단 타격의 2루수였는데, 워낙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풀타임을 못뛰었던 기억이고요..그 직후인 98년부터 외국인 선수가 뛸때 최초의 베어스 외국인이었던 에드가 케세레스 선수가 2루수였습니다. 경력에서 출중했고, 미국 현지 트라이아웃에서 눈에 띈 타격 능력과 수비력을 갖춘 선수여서 1순위였고, 우즈는 전혀 영입대상이 아니었다죠..수비는 없다고 볼 수준이라..이재국 기자님의 "베팬알백"에 트라이아웃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재미있게 올라와있답니다. 암튼 기대가 컸는데..데뷔전부터 실책(당시 중계진도 무등야구장 상태를 쪽팔려하는 뉘앙스였답니다)을 보여주면서 수비가 급이 다르단 전문가들 예상에 의심을 하게됐고, 아무래도 장타력이 아닌 교타자 외국인을 만족하긴 힘들었죠..리딩히터급 타율까지 친것도 아니구요..개인적으로는 케세레스 덕에 제 눈도 높아졌고, 이후 베어스 수비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봅니다. 2루로 오는 타구가 아님에도 1루수 뒤쪽으로 백업을 들어가고, 포수의 1루 송구가 빠졌음에도 백업들어온 케세레스가 바로 커버하는 메뉴얼화된 모습을 첨봤습니다..센스있는 선수들이 간헐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백업 플레이 중계 플레이때 위치선정과 움직임이 다른 세상에서 온 수준이었죠..직관가서는 케세레스의 움직임만 팔로잉하면서 본적도 있답니다. 야구의 깊이를 보여준 따거였네요..암튼..님께서 문의하신 안경현 선수는 이제 등장하네요..오비라는 팀명으로 95년 우승 직전까지 신인급 야수들 중에 눈에 띈게 계명대 김민호, 연세대 안경현, 인하대 장원진 선수였죠..지명 순번에선 안경현 선수가 월등히 앞섰고 상대적 기대도 높았는데 데뷔 후 선발 자리를 잡는건 제일 늦었죠..원래 포지션도 3루수였습니다. 3루수는 워낙 핫코너라 순간 판단력이 수비범위보다 중요한 포지션이라 필딩 자체가 안정적이면 최고이던 시절이라 현재 허경민 처럼 몸을 비껴 앉으면서 핸들링으로 중간바운드까지 캐치하면 선배들에게 집단 폭행당할 시절이었죠..무조건 정면으로 맞춰서 몸빵하던 시절이라 정석에 충실한 필딩 스타일에 송구는 솔직히 피식할 정도로 딱딱한 느낌이랄까요? 송구 거리가 길다보니 2루수 시절 모습과는 많이 달랐구요..좌익수 김동주가 3루로 들어오면서 감히...^^ 케세레스 이후 무주공산이 된 2루를 장기 집권한거죠..고영민급 변태 수비범위도 오재원급 센스도 없지만, 견실한 2루 수비와 베어스 키스톤 계보에도 당당히 넣을만 했죠. 김민호 - 안경현 시절도요..순간적인 순발력과 센스도 있어서 글러브 토스 경기영상도 제가 보유한 테이프에도 여럿 있구요..김성근 아들 김정준과 절친이다보니, 상대 투수의 쿠세를 읽는 노하우가 쌓여서 말년에 이걸로 짭짤했다고 본인이 밝히기도 할 정도로 노림수가 좋은 타자였고, 수비보단 타력에 비중이 크긴한데 3할 찍는 완전 교타자도 홈런 두자리 늘 치는 장타자도 아니었지만, 역시나 라인드라이브 2루타 타자 이미지였고, 어린이날 끝내기 홈런이나 2000년 PO 9회 2사 동점 홈런같은 임팩트있는 홈런이 많아서 홈런 타자처럼 기억도 되는데 그런 타입은 아니었죠..김정준 아들을 통해 팀내 선수들 싸인 팔았다는 혐의를 받은게 아마 안경현일겁니다..정수근이 박명환 채널에서 한때 야수진과 투수진이 이 문제로 사이가 완전히 엉망이던 시절이 있다고 밝혔었죠..장기간 2루 주전에다 주장 이미지까지 겹치고, 김인식 사단에서 홍성흔과 안경현이 덕아웃 리더였던 터라 김경문 체제에서 가장 먼저 입지가 달라졌죠..안경현은 스크로 홍성흔은 롯데로 떠난 이유도, 김인식 감독님 스타일의 자율야구가 길어지면서 덕아웃 분위기가 너무 느슨해지다보니, 카리스마형 감독이던 김경문 감독님 입장에선 그 부분부터 해체하고 새로 만들려고 하다보니..이미 베어스에서 전성기가 꺾인 안경현과 2루 송구 입스로 포수가 불가능했던 홍포에게 정체성인 포수를 포기하란 통보를 받고 관계가 껄끄러워지다 FA로 떠났죠..김인식 감독님 체제에선 안경현이 프랜차이즈 스타->코치로 가는 0순위였는데 한순간에 떠나고 역시나 전성기에서 꺾여 선발타순에서도 빠지며 준 코치 느낌이었던 조용히 제몫하던 FM 사나이 장원진 선수가 김경문 사단의 덕아웃 리더처럼 됐죠..이후 코치 생활까지 주욱 이어지다 코로나 직격탄 맞을때 하필 퓨쳐스 메인 코치가 아닌 잔류군 소속이라 짤린후 현재까지 무소식이죠..그래서 팬들 사이에선 안샘과 장샘 라인을 운운하는데..두 선수의 라이프 스타일 차이로 결코 같이 어울릴수는 없었지만, 후배들 줄세우고 정치질 하는 그런게 있을수 없는 당시 덕아웃 분위기였답니다. 경기후 술을 즐기며 어울리는 타입의 안경현에 비해 콜라 주는 팬을 제일 좋아했던 장원진 선수는 경기후 어울릴수 없었던거죠..그 정도 정보만 가지고 잘나가던 안샘이 갑자기 스크로 떠나고, 뒷방 늙은이같던 장샘이 갑자기 떠오르니 뇌피셜로 라인 스토리를 지어낸거죠..정작 고영민 오재원 시절을 듣기 원하셨던거 같은데..그 이전 전사로 너무 오래 떠들었네요..고영민 오재원 시절 이야기는 좀 시간을 두고 댓글 올려볼게요..그리고, 고영민 오재원 초창기 시절이 제가 야구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있던 시절이라 기사와 순수 뇌피셜 스토리가 될겁니다..2000년대 초반 팬덤 문화 발생기엔 팬클럽과 선수, 선수 와이프, 부모님들과 최근접하던 시절(지금의 비지니스적이고 큰 벽이 쳐진 시절은 이해못할 수준)이라 선수와 팀내 이런저런 전언을 자주 듣던 때이기도 했고, 야구 기억력 만랩이던 시절에 대학생 특권으로 야구에 푹 빠져 살던 시절이라 희미해진 기억력으로 선후관계가 혼동은 되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던 시절이었구요..그나마 다시 야구에 끈을 이은건 순전히 아들과의 캐치볼 로망으로 아들과 캐치볼이 가능해진 2014시즌 정도부터 였네요..물론, 라떼는 말야하면서 지금의 구단, 선수와 팬들의 관계가 맘에 안들어 불평하는 일반팬 중 하나로요..현재 작업해둔 영상이 직캠 하나, 경기 영상 하나인데 올릴 타이밍을 못잡겠네요..고영민 오재원 스토리도 털어보겠습니다..야구 수다가 너무 그리웠던겁니다..글 길이를 확인할때마다 당황스럽네요. ;;
양승호 전 롯데감독님 두산 수석코치시절때 성격 장난아니셧네요..ㄷㄷ😮😮
이걸 어떻게 다 가지고 계신건가요ㄷㄷㄷ
2000년부터 최초의 디지털 6mm 캠코더가 보급되면서 "VJ"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VJ 특공대와 같은 교양, 예능 프로그램 전성시대가 왔었죠..2002년에 개인적으로 대학 졸업을 했고, 군제대 하자마자 IMF 맞으면서 그냥 학교다니다가 전공관련 회사에 입사하는 시스템이 완전 파괴된 상태에서 야구 + 6mm 캠코더로 뭔가 해보고 싶은 생각에 캐논 GL-1을 들고 2002~2003년까지 야구장에서 직캠과 케이블TV 중계녹화(당시엔 유료 스포츠채널에 가입해도 전구장 중계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중계할땐 녹화하고, 한밤에 하는 스포츠 하일라이트 녹화)하고, 밤샘 편집 랜더링해서 웹호스팅 업체(당시에도 유튜브가 있었을겁니다..다만, 고화질 대용량 파일 업로드가 빠르게 안되던 외국 업체정도?)에 업로드하고 개인 홈피(하니의 야동)에 올리고, 곰대에 영상 링크 올리고 자던 시절이었네요..생각해보면 베어스포티비를 10여년 이상 먼저해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당시가 야구에도 팬덤문화가 태동하면서 "팬클럽"들이 확 늘어나던 시기였고, 곰들의 대화와 선수 개인 홈페이지들이 생겨나던 시절이라 구단 홍보팀과도 아주 느슨하지만, 연계도 되서 베어스포티비가 했던 덕아웃 스케치들도 기획은 해봤지만, 10여년 후에나 가능했던 구단 마인드를 당시에 한 개인이 바꿀순 없었고요, 2003시즌 응원단 교체와 우즈 홀대, 김인식 감독님 교체 파동등 격변을 거치면서 최근접했던 구단과의 거리가 한순간에 안드로메다로 벌어지면서 야구에 빠져 살던 짧은 시기를 그렇게 마감했답니다..2002(2003?)시즌 끝나고 곰모때 구단에서 시상도 해주고 했지만, 거기까지였고요...솔직히 그때 찍거나 녹화한 6mm 테이프 50여개들도 최근에서야 다시 돌려본거랍니다. 선수개인 홈페이지에 붙는 무작위 배너광고가 성인용이거나 도박사이트류들이 많다보니 겨우 링크만 걸어준거 뿐인 구단에서 구단 이미지 버린다고 반 협박성 메일을 받으면서 시작된 인연이었지만, 이후 메일과 연락을 통해 팬서비스 아이디어와 피드백들로 가까워졌던 당시 프런트 막내셨던 이왕돈님의 본인상 부고를 최근에 봤던게 다시 테이프 케이스를 열어본 계기가 아니었나 싶네요..젊은 나이셨는데..시구 행사나 은퇴식, 레전드 데이 영상을 통해 여전히 잘 계시는구나 근황을 보던 분이셨는데 안타깝더군요..2000~2001 감동의 KS로 종신 감독, 10번 타자하면서 팬과 구단 케미가 환상이던 시절이 불과 2년 후에 최악이 될줄은 몰랐죠..홍성흔 팬클럽 아도니스가 아이돌 팬클럽화되면서 시대가 변하는구나를 몸소 체험도 하던 팬문화 격변기에 IMF 핑계, 대학생 핑계로 원없이 야구에 빠져살던 흔적들을 되돌아보는 요즘이었네요..아쉬운건 김동주 채병용 벤클 영상 작업하면서 취미가 아닌 좀더 "직업적" 마인드로 녹화, 캡쳐하고 촬영도 했었다면...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시기적으론 딱 2년만 빨리 그런 활동을 했다면, 2015시즌부터 왕조를 기록했던 베어스포티비처럼 훨씬 더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는 영상들이 쌓였을텐데 말이죠..안경현 봉중근, 김동주 채병용 벤클 풀버전 같은 "마라탕맛" 영상들은 더 이상 딱히 없고..20년전 옛날 베어스 영상을 하나씩 여유있을때 올려보려 하네요..목디스크로 일도 쉬면서 뭐라도 해서 떨어진 자존감을 세워보려고 한달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달려봤는데요..젊음이 깡패라는걸 뼈져리게 느끼네요..당시엔 이틀을 밤샘하고도 야구장가서 왕복 4시간을 거뜬히 버텼는데, 이젠 밤샘하면 2~3일은 죽음이네요..이젠 목디스크 증상도 나아져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해서 아주 띄엄띄엄 영상이 올라갈듯 하네요..^^ 댓글들에 거의 답글 안달다가 한번씩 달면 장문의 일기를 쓰는게 패턴화 되는군요..;; 야구 이야기로 밤샘하던 시절이 그립긴 하네요..옛날야구 영상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영재 이당시에는 30대쯤 였을텐데 나이 어린데도 지가 잘못해놓고 성질 드러웠네.
이영재는 옛날부터 동태눈깔 유명했네
저당시볼만하긴했네 배치기까지ㅋㅋ
영 자질이 없어...
연습도 노력도 안하는 집단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