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요즘 끌어당김, 명상 등등을 탐구하다가 그것이 결국 같은 곳으로 귀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떠오르는 감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느껴서 해소시켜줘야 한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감정을 눌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고 저 또한 그래왔었는데, 오히려 감정을 느껴서 해소시켜줘야 나의 사고가 무의식의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완전하게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는 건 사실 자기 존중과 이어져 있어서 오히려 인간이 더더욱 독립적일 수 있게 해준다는 걸 최근에 저를 통해 알게되었어요. 예전에는 불안과 덮쳐오는 감정을 어찌 다룰지 몰라서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거나 타인들이 정한 정답을 따라가야 하나 겁이 났었던 거 같아요. 사고는 오직 현실과 관계없는 내면 세계에서에만 사용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 혹은 이론적인 것을 너무나 좋아했고 치중하고 있었고요. 근데, 불안과 감정들을 느껴서 해소시켜주니 내가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제 안에 들어섰고 이는 곧 자기 존중으로 이어졌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 나의 생각에 귀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현실이나 인간관계에서도 어쩌면 내가 나의 사고로 대처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에서야 드는 거 같아요. 너무 길게 썼는데 요약하자면 저는 부정적 감정을 느껴주면 결국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1. 우리들의 무의식은 이제 해소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무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진정한 정체성, 나를 만날 수 있고 2. 나의 억압된 부분을 인정해준 것이기 때문에 이는 곧 자기 존중이며 이는 내 스스로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고 나의 힘을 믿는 계기가 된다.
최근에 모든 감정은 타당하다며 제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존중해주시고, 부정적 감정(예. 상대방 저주의 마음?^^)을 조심하는 저에게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건 나에게 화살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주신 상담선생님 말씀을 정리해주는 영상이었습니다. 상담도 영상도 최고!👍
공감이 많이 가는 내용의 영상...잘 시청했습니다. 10대후반부터 40대를 향해가는 현재까지, 타락편향 - 긍정추구 - 중립추구 를 거쳐서 현재 토마슨이 말하는 것을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인생의 스테이지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뒤틀거나 회피하거나 곡해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온전히 느끼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 켄 윌버가 쓴 책에서 감정은 자각을 통해 흘러간다 는 식의 문장을 읽은 기억이 나요. 어떤 감정이 되었든 내가 온전히 자각하고 느낄때 비로소 소화되고 해소되는게 아닐까 싶어요. 영상의 마지막 부분도 굉장히 공감이 됩니다. 누가 힘들어할 때 옆사람으로써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처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렇구나 라고 함께 느껴주는 것 같아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도 내가 내삶의 힘듦을 토로할 때 그저 묵묵히 들어주는 대상이 있으면 무엇보다 그의 존재감이 그어떤 조언이나 격려 혹은 충고보다 큰 힘이 되어주죠..
충코님, 몸은 좀 어떠세요? 잘 회복 되신 듯 하네요. 🙂 메리크리스마스 지나고 새로이 시작 되는 한 해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 * 부정적 생각. 충코님 방송 내용도 수긍이 가지만,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방식, 방향"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 합니다. 즉, 흔한 예로 , 병 속에 물이 반일 때, 어떤 사람은 , 물이 겨우 반밖에 없네. 어떤 사람은 , 아직 물이 반이나 있네. 라고~ 하죠. 이와 유사한 예들이 또 있는데, 결과적으로, 같은 상황 일 때 인지 방식에 따라 안정, 행복도가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이 부정적인 사고로 괴로워 한다면 원인 파악 부터 해서 그 사건을 어떤 "방식, 방향"으로 전환 할 것인가를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굉장히 효과적으로 치유 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란 마치 늪 같아서 한 번 빠져들기 시작 하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나약하죠. 삶의 무게가 "시지프스의 돌"만큼 이니까요. 그것을 들여다 볼 여유란 사실 위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적 "방식, 방향"네비게이션을 가동 시켜 긍정적 사고로 길을 잘 찾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간은 좀 필요 할 순 있지만 그 과정에서 면연력도 강화 될 겁니다. 불가에서는 부정적 생각을 "번뇌"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공(空)" 등등을 가르치는데, 불교란 수행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지만 정신과적인 현실적 치유법을 효과적으로 가르칩니다. 원효대사님의 해골물 일화도 생각의 방향에 대한 큰 깨달음을 주시죠. 이 외에 너무 많아서 다 말 할 순 없고, 어쨌든, 되도록이면 밝은 면을 볼 수 있도록 노력 해야 합니다. 어쩌면, 공포 단편문학의 대가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들에 적잖이 등장 할 겁니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잘 묘사 했죠. 시기심, 질투란 인류 보편적이며, 적당하면 생산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다못해 악행으로 연결 된다면 심각하갰죠. 오늘은 밤이 깊어서 여기까지만 😊
부정적 감정에 대처하는 자세 세가지 경우 다 필요하지 않나요? 분노하다가도 초연해지고 그러다가 다시 한 번 곱씹고 그게 정도 이상이다 싶으면 주먹부터 나갔다가 그 결과가 잘못된 결과다 싶으면 감정통제로 이어지다가 그렇게 꾹꾹 누르고 살다보면 다시 자신의 감정 바라보다가 정도에 타협 지점에서 합의점을 찾게는 될 거 같은데 용납이 도저히 안 되는 극단적 부분은 다시 주먹부터 나가긴 할 거 같아여ㅋㅋ 여타 비슷한 감정들도 전 동일한 방식대로 작동할 것 같네용
슬프면 울어야하고 화나면 화를 내야 합니다. 어떻게 울지 어떻게 화낼지는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슬플때 울지 않고 화날때 화를 못 내면 인간은 망가집니다. 희망이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면 욕구와 욕망은 부스터 입니다. 더 빨리 가고 싶다면 욕구와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시기심 질투심이 나를 성장시키는 요소도 된다 .. 동의합니다 하지만 시기 질투가 강한 사람들은 대체로 말년에 몸의 중병이 쉽게 오는듯 하더군요 시기 질투가 나를 자동으로 성장시켜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내 맘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은것을 수천년의 철학으로도 이미 밝혀 냈잖아요 그 불변의 철학을 무시하고 시기 질투를 합리화한 결과가 곧 울화병이고 그 울화병이 신체로 나타나는 것이 노년에 각종 중병인듯 합니다 심신일체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파지고/마음이 건강하면 몸이 건강해지고) 라는 말이 괜히 있는말이 아니죠 ..
부정적인 감정을 내 상황을 이해하는 데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감정이 생겨난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원인 파악이 끝났다면 그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과하게 감정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늘 좋은 컨텐츠 감사합니다 !
예스맨이나 긍정이 사고 방식이 무조건 좋지 않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저도 오랜시기를 긍정적 사고 방식으로 지내 왔기에.. 물론 영상이나 책들을 통해 얻은 지식들로 긍정적인 사고 방향이 부정적 사고 방식 보다는 인생에 도움이 되니까 저도 수용 한거고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마음의 변화를 조금씩 통해 부정적인 에너지와 생각들에 대해 조금씩은 대면 할 수 있는 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행복= 도파민=웃음이 아닌 것 처럼 화낼 때 화내고 웃을 때 웃으면서 살아가는 거지 뭐... 애초에 감정의 영역에 이성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결에 안 맞다고 해야하나? 한 번쯤은 내 감정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 좋지만 너무 거기에 매몰되서 감정을 통제하려들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못한듯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사람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렇다고 감정으로 인해 영향받는 표면적 태도를 통제하기 위해 과한 에너지를 쏟는 것도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듦. 사람이 떠오르는 감정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감정을 관조하며 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한데, 그게 사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러한 관조를 위한 생각만 할 때 가능한 얘기인 것. 현실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런식으로 온전히 어떤 변수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태도를 통제하는 것은 꿈같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일 뿐. 그래서 그렇게 속세를 등지고 번뇌를 관조하고 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바쳐 살 사람이 아니고서야 속세에서 사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타고난 형질은 어쩔 수 없으니 그러한 타고난 형질을 통제하는 데에는 최소한의 통제에 필요한 에너지만 할애하고 다음에는 그저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으로 옮기기 위해 사력을 다해 분투하는 것 뿐. 물론 그 타고난 형질이 모범적인 사람은 최소한의 할애 에너지도 더 적어지니 환경 변화를 위해 할애 할 에너지의 크기도 더 커질 것이고, 타고난 형질이 좀 불량한 사람은 최소한의 사회성을 유지하는데 요구되는 최소한의 에너지의 총량도 그만큼 커서 환경변화에 할애할 에너지도 더 적어지는 개인간의 편차가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편차때문에 경쟁에서 좋은 환경으로 가기 위한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동요되는 태도에 대한 통제를 좀 느슨하게 하고 오직 환경을 바꾸기 위한 노력에 극단적으로 할애하는 것도 전략중 하나인 것. 많은 사람들이 괴팍하면서도 부자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욕하지만, 그들은 그저 생존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통제가능한 조건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거고, 그 선택이 맞았을 뿐인 것. 그리고 속세를 머물며 속세에 뜻을 두고 살고 싶으면서도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도 비춰지고 싶은 욕심으로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조건임에도 태도의 통제에 집착하느라 환경을 바꾸기 위한 노력에 에너지를 많이 할애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불리한 조건인 것 같은 사람들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고. 그러나 결국 그러한 생각의 방향이나 실천 등등 과정과 결과의 차이 전부 지능 건강 환경 등등 무수한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일 뿐. 그게 아니라면 맞는 말 한마디로 세상 모두를 구할 수 있어야겠지.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예를 들어, 분노를 해야할 상황에서 "내가 뭔가를 했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화내지 말자. 화내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하며 분노라는 감정을 억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반면 감정을 느끼되 행동하지 말라는 건,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왜 화가 났지? 어떤 부분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해서 본인의 현재 상태를 좀더 객관화시켜서 바라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방어기제를 하지말라는 말이죠 화가나면 왜 화난지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파고들필요도없고 상대를 오해하고 원망할필요도없고 화가났구나 라는 그감정을 알차리는게 제일 좋은방향이기 떄문이에요 주지화 투사 인지도식 왜곡 등 여러 인지적왜곡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멈추고 내가 지금느끼는 그감정에 집중하시면되요
원시시대에는 적과 환경,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고 주변을 경계한 인간들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렇게 의심하고 회피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인류는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인간이 된거죠. 그러나 시대가 바뀐 현대에선 오히려 긍정주의가 개인 혹은 인류의 공존과 번영의 요인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고 타당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극단적 감정은 주의해야겠지요.
책을 읽어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스토아철학이 감정을 그저 배제하라고만 가르치는 건 아닐텐데. 문제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문제에서 벗어난다, 라는 단계에 이르려면 우선 문제 속으로 들어가서 바라봐야 하며, 그 냉철한 바라봄이 책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느끼기'와 많이 다를까 싶음. 앞서 저자는 감정을 목적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지 말라고 했는데, 정작 뒤에 가면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더 다각도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 라는 목적을 이야기 함. 그렇다면 스토아철학의 바라봄과 이 저자의 느끼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봄. 스토아철학의 감정에 대한 가르침은, 통제되지 않는 파괴적인 감정을 경계하라, 는 쪽이고, 저자가 부정적 감정을 온전히 느껴라, 라고 하는 것 또한 통제가 이루어진 다음에나 가능한 거임. 그 통제를 위해서 스토아철학에서는 냉철하게 문제(혹은 상황)을 들여다보라고 하는 거.
스토아철학은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 핵심입니다. 아파테이아(apatheia; a- 없이 pathos 욕구,열망), 욕구가 없는 상태를 가장 이상적이라고 바라보았으니 감정을 배제하는 게 행복에 다다르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건 완전한 배제는 아니고, 감정을 이성의 조율하에 두라는 것이며,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나 스피노자 철학에 가까운 것 같네요 감정은 통제되지 않으며(이성은 감정의 노예다) 그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데이비드 흄이나 니체 철학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는 이렇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이 취하고 싶은 만큼 취하면 됩니다. 많은 유명한 철학자들 또는 성인들의 지혜의 말씀들은 그들 자신의 오랜 세월 경험과 고찰로 이어진 결실을 맺은 그들만의 것입니다. 삶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삶이 다양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제가 오랜 세월 살아보진 않았지만 여태껏 제가 겪은 경험들이 유명한 지혜의 말씀들 즉 제 것이 아닌 타인의 경험들과 사색들이 오로지 제 자신의 경험들과 사색들이 만나 결론을 추론하게 될 때 저 자신만의 통찰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어째든 지금까지의 결론은 부정보단 긍정안에 머무는 것이 좋은 것 같더라 입니다. 부정을 못하면 긍정도 못합니다. 둘 다 경험해보세요 삶을 사세요. 즐겁고 기쁘게 사세요. 무겁고 슬프게 사세요.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맞지 않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물런 깊게 생각해보고 해당 영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본다면 상관 없겠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기때문이죠 제가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을 접해보면서 느낀점슨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짜 '예민'하다는것입니다 그 예민이 좋은 매너도 만들고 성실성도 만들며 안정된 사회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너무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해있다라고도 생각합니다 국민 대다수가 완벽주의자 같은 느낌을 받을때가 많은데 진짜 의미를 모른채 감정에 솔직하라는 문장을 한국인이 문장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냥 혼돈의 한국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
제가 철학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 생각을 적고 싶어서 적어봅니다. 극단적 예외이긴 하지만 보통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위하는 본능에 큰 타격을 입었거나 그 부정적 감정의 크기가 너무나 거대하다면 오히려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와 후자 모두 부정적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의 부재를 의미하며 이는 부정적 감정에 휘말려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고 자살을 하거나 자해나 신체적 불구와 같은 큰 타격을 주는 행위를 할지도 모르기에 이 상태에선 억압이 유일한 그나마 나은 선택이란 겁니다. 억압은 연명을 가능케하고 연명은 억압된 부정적 감정을 훗날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요? 억압은 작전상 후퇴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영상의 내용은 큰 자학적인 부정적 감정에서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고, 피할 수 없는 큰 고통에서 충격을 줄이기 위해 미리미리 일부러 사서 고통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것을 살면서 느낍니다. 그래서 평소 같았으면 쉽게 회피했을 껄끄러운 사람이 있는 단체 생활도 일부러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가벼운 수치감을 일부러 느끼려 몸을 던집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순간순간 드는 자잘한 부정의 감정에 이성이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내가 의도한 것이니까요. 물론 마음은 당연히 괴롭지만 그것이 경감되고 일상에 지장이 없이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 차이죠.
@@빌런을피하자 이게 맞아요. 선사시대라면 이게 유리한 생존 수단이니 인류가 그렇게 진화 한 것이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렇게 살면 바로 히키코모리나 백수 폐인이 되는 지름길이죠. 현대 사회에서 살려면 인류의 본능을 거스르며 살 필요가 생긴거예요. 그걸 깨달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계발서를 쓰고 영상을 만들고 있는거구요
궤변이라 봄. 틀린 말이란 얘기 아님! 그러나 이 작가가 말하는 대로 실천하느니 차라리 시기, 질투 등을 아예 끊으려 하는게 더 쉬운 일이라 봄. 금연을 떠올려 보면 거진 자명하다 봄. 끊을라면 확실히 끊어야지 골초가 이제까지는 하루에 세갑 폈지만 오늘 부터는 하루에 3개비만 펴야지라는 거랑 비슷한 상황이라 봄.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끊을 생각해야지 시기나 질투 등을 긍정적인 힘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건 자위 수준도 못되는 자기기만 말장난에 가까운 일이라 봄. 이것저것 떠나 동서고금 어디서나 시기,질투, 분노 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만 봐도 답 나오지 않나? p.s. 참고로, 나는 이 책을 이미 서점에서 훑어 봤음. 작가의 말발 자체는 나쁘지 않다 보지만 굳이 시간내서 읽기에는... .
저도 흡연자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ㅎㅎ 하지만 위 댓글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힘으로 발전시키기는 어렵다는 것” 저는 이부분에서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영상에서는 토마슨이 긍정주의를 반대한다고 언급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정적인 것을 무한히 긍정하라가 아닌 들여다보고 생각하며, 느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一妄一語 이 영상 논지 자체를 착각하고 계시는거예요. 오히려 님 주장 자체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구요. 금연과는 천지차이죠. 사람이 생각이 떠오르는것을 어떻게 끊나요? 생각과 감정이 발생하는 것은 절대 사람이 통제 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냥 선전적인 성격 + 살아온 환경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떠오른 그 후의 반응을 조절하란 것입니다. 시기 질투가 떠오른 후에 그것 자체를 자책하거나 자기 위로 하고 넘기지 말고, 받아 들인 후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으란 이야기죠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in my hour of darkness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너무 안타깝네요. 모두가 쉬쉬하는 이유는, 점점 본인들이 가진 것들이 많기에, 그 가진 것들을 잃을 수 없는 위치라서, 양심적으로 현재의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모습들을 그 누구도 ‘비판’을 할 줄 모르는 21세기 남한인들이니; 당연히 남한은 사회주의 및 다시 과거의 생각의 자유를 억압 당한 채 살아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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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요즘 끌어당김, 명상 등등을 탐구하다가 그것이 결국 같은 곳으로 귀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떠오르는 감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느껴서 해소시켜줘야 한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감정을 눌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고 저 또한 그래왔었는데,
오히려 감정을 느껴서 해소시켜줘야 나의 사고가 무의식의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완전하게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는 건 사실 자기 존중과 이어져 있어서 오히려 인간이 더더욱 독립적일 수 있게 해준다는 걸 최근에 저를 통해 알게되었어요. 예전에는 불안과 덮쳐오는 감정을 어찌 다룰지 몰라서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거나 타인들이 정한 정답을 따라가야 하나 겁이 났었던 거 같아요. 사고는 오직 현실과 관계없는 내면 세계에서에만 사용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 혹은 이론적인 것을 너무나 좋아했고 치중하고 있었고요. 근데, 불안과 감정들을 느껴서 해소시켜주니 내가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제 안에 들어섰고 이는 곧 자기 존중으로 이어졌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 나의 생각에 귀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현실이나 인간관계에서도 어쩌면 내가 나의 사고로 대처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에서야 드는 거 같아요.
너무 길게 썼는데 요약하자면 저는 부정적 감정을 느껴주면 결국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1. 우리들의 무의식은 이제 해소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무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진정한 정체성, 나를 만날 수 있고
2. 나의 억압된 부분을 인정해준 것이기 때문에 이는 곧 자기 존중이며 이는 내 스스로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고 나의 힘을 믿는 계기가 된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감, 결국 문제 해결능력이 강해지고, 스스로가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거 같아요. 다만 의존적인 사람은, 부정적 감정이 들자마자 남에게 해결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는게 문제죠
좋은 감정은 빨리 사라지는데 부정적인 감정은 억지로 누른다고 없어지지도 않고 계속 오래 남는거 같아요.. 결국엔 실제 환경이 바뀌지 않아서 그런거죠..
방향 전환을 시켜 줘야 합니다.
밝은 면을 찾아 낼 수 있도록.
인생의 네비게이션. 😊
맞말추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기 때문에 오래가는 겁니다.
뇌기능중 하나라고도 하네요 . 부정적감정이 불안감?등이 오래 있어야 생존에 유리했다 라고 들어봤네요 .. 다스림이 참 중요한거같습니다
나를 지옥같은 나락으로 끌어내리던 부정적 기억, 느낌들이 결국 모두 내편이었다는걸 깨닫고 그들에게 나를 지켜주려해서 고맙다고 인사 했을때 우리는 모두 껴안고 울었다.
자기자신을 속이는 행위가 재일 위험하죠
자기 감정에 솔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슬플때는 슬픔을 분노할 땐 분노할 필요가 있죠 자기 감정을 억압할수록 현실을 왜곡할수록 악순환에 빠지는 법이죠
긍정적인 감정이나 부정적인 감정이나 적당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거군요
최근에 모든 감정은 타당하다며 제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존중해주시고, 부정적 감정(예. 상대방 저주의 마음?^^)을 조심하는 저에게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건 나에게 화살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주신 상담선생님 말씀을 정리해주는 영상이었습니다. 상담도 영상도 최고!👍
공감이 많이 가는 내용의 영상...잘 시청했습니다. 10대후반부터 40대를 향해가는 현재까지, 타락편향 - 긍정추구 - 중립추구 를 거쳐서 현재 토마슨이 말하는 것을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인생의 스테이지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뒤틀거나 회피하거나 곡해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온전히 느끼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 켄 윌버가 쓴 책에서 감정은 자각을 통해 흘러간다 는 식의 문장을 읽은 기억이 나요. 어떤 감정이 되었든 내가 온전히 자각하고 느낄때 비로소 소화되고 해소되는게 아닐까 싶어요. 영상의 마지막 부분도 굉장히 공감이 됩니다. 누가 힘들어할 때 옆사람으로써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처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렇구나 라고 함께 느껴주는 것 같아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도 내가 내삶의 힘듦을 토로할 때 그저 묵묵히 들어주는 대상이 있으면 무엇보다 그의 존재감이 그어떤 조언이나 격려 혹은 충고보다 큰 힘이 되어주죠..
감정이 들려주는 풍부한 이야기 라는 표현이 되게 좋네요
여전히 철학이 필요한 이유 ❤
인생길에 달콤한 꿈은 길처럼 멀고
길에서 바람과 서리가 얼굴을 스치네
인생은 아름다운 꿈과 열망이라
꿈 속에 어렴풋이 눈물이 보이네
인생 길에 선 즐거운 소년
길은 험난하고 햇빛이 보이지 않으니
흙 먼지 속에 즐거움은 몇 갈래나 있는가
산책하면서 재밌게 보겠습니다 감사해요
원인분석없이 아프다.
괴롭다.
힘든다.
이렇게 바라보고 수용하는것입니다.
충코님, 몸은 좀 어떠세요?
잘 회복 되신 듯 하네요. 🙂
메리크리스마스 지나고 새로이 시작 되는 한 해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
* 부정적 생각.
충코님 방송 내용도 수긍이 가지만,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방식, 방향"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 합니다.
즉, 흔한 예로 ,
병 속에 물이 반일 때,
어떤 사람은 , 물이 겨우 반밖에 없네.
어떤 사람은 , 아직 물이 반이나 있네. 라고~ 하죠.
이와 유사한 예들이 또 있는데,
결과적으로, 같은 상황 일 때 인지 방식에 따라 안정, 행복도가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이 부정적인 사고로 괴로워 한다면 원인 파악 부터 해서
그 사건을 어떤 "방식, 방향"으로 전환 할 것인가를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굉장히 효과적으로 치유 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란 마치 늪 같아서 한 번 빠져들기 시작 하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나약하죠.
삶의 무게가 "시지프스의 돌"만큼 이니까요.
그것을 들여다 볼 여유란 사실 위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적 "방식, 방향"네비게이션을 가동 시켜 긍정적 사고로 길을 잘 찾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간은 좀 필요 할 순 있지만 그 과정에서 면연력도 강화 될 겁니다.
불가에서는 부정적 생각을 "번뇌"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공(空)" 등등을 가르치는데,
불교란 수행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지만
정신과적인 현실적 치유법을 효과적으로 가르칩니다.
원효대사님의 해골물 일화도 생각의 방향에 대한 큰 깨달음을 주시죠.
이 외에 너무 많아서 다 말 할 순 없고,
어쨌든,
되도록이면 밝은 면을 볼 수 있도록 노력 해야 합니다.
어쩌면, 공포 단편문학의 대가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들에 적잖이 등장 할 겁니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잘 묘사 했죠.
시기심, 질투란 인류 보편적이며,
적당하면 생산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다못해 악행으로 연결 된다면 심각하갰죠.
오늘은 밤이 깊어서 여기까지만 😊
아...최근에 되는일 없다 생각하며 괴로워 하고 있었는데 ㅠㅜ 영상 보는 내내 눈물이 나네요 ㅠ
단비같은 영상이었어요 고마워요
부정적 감정에 대처하는 자세 세가지 경우 다 필요하지 않나요? 분노하다가도 초연해지고 그러다가 다시 한 번 곱씹고 그게 정도 이상이다 싶으면 주먹부터 나갔다가 그 결과가 잘못된 결과다 싶으면 감정통제로 이어지다가 그렇게 꾹꾹 누르고 살다보면 다시 자신의 감정 바라보다가 정도에 타협 지점에서 합의점을 찾게는 될 거 같은데 용납이 도저히 안 되는 극단적 부분은 다시 주먹부터 나가긴 할 거 같아여ㅋㅋ 여타 비슷한 감정들도 전 동일한 방식대로 작동할 것 같네용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이네요.
책도 바로 구매해봐야겠어요^^
안녕하세요
부정적인 생각을 인정한다는것은 부정적인 생각의 능력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물질과 함께 있음을 알때 부정적인감정에서도 힘을 받을수있답니다
어떠한것도 방대한능력,생명이 있음을 받아들이는것이랍니다
요즘 스스로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는데 이게 꼭 좋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됐네여
슬프면 울어야하고 화나면 화를 내야 합니다.
어떻게 울지 어떻게 화낼지는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슬플때 울지 않고 화날때 화를 못 내면 인간은 망가집니다.
희망이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면 욕구와 욕망은 부스터 입니다.
더 빨리 가고 싶다면 욕구와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책 내용이 너무 구미가 당기네요ㅎㅎ 너무 재밌을거같아요
시기심 질투심이 나를 성장시키는 요소도 된다 ..
동의합니다
하지만
시기 질투가 강한 사람들은 대체로 말년에 몸의 중병이 쉽게 오는듯 하더군요
시기 질투가 나를 자동으로 성장시켜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내 맘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은것을 수천년의 철학으로도 이미 밝혀 냈잖아요
그 불변의 철학을 무시하고
시기 질투를 합리화한 결과가 곧 울화병이고 그 울화병이 신체로 나타나는 것이 노년에 각종 중병인듯 합니다
심신일체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파지고/마음이 건강하면 몸이 건강해지고) 라는 말이 괜히 있는말이 아니죠 ..
저도 중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사상이 바탕인거 같습니다 감정은 나와 떨어질수 없는 하나이지만 감정에 너무 사로 잡히면 집착을 낳고 집착은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많으므로 내가 기쁜 혹은 슬픈 분노하는 감정에 빠져있구나를 알아차리는 것으로 집착에서 벗어날수 있죠
부정적인 감정을 내 상황을 이해하는 데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감정이 생겨난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원인 파악이 끝났다면 그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과하게 감정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늘 좋은 컨텐츠 감사합니다 !
부정적인 감정을 바라본다는게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을 분석하고 나에대해 관찰해보라는 의미일까요? 표현이 좀 추상적이어서 질문합니다 감정을 분석하는건 항상하고있는데.. ㅋㅋ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게 무조건 나쁜게 아니라는 말 위로가 되네요
무조건 나쁜건 아닌데 되먹임 구조로 가서 좋을 것도 없더군요
예스맨이나 긍정이 사고 방식이 무조건 좋지 않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저도 오랜시기를 긍정적 사고 방식으로 지내 왔기에.. 물론 영상이나 책들을 통해 얻은 지식들로 긍정적인 사고 방향이 부정적 사고 방식 보다는 인생에 도움이 되니까 저도 수용 한거고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마음의 변화를 조금씩 통해 부정적인 에너지와 생각들에 대해 조금씩은 대면 할 수 있는 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행복= 도파민=웃음이 아닌 것 처럼 화낼 때 화내고 웃을 때 웃으면서 살아가는 거지 뭐...
애초에 감정의 영역에 이성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결에 안 맞다고 해야하나?
한 번쯤은 내 감정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 좋지만 너무 거기에 매몰되서 감정을
통제하려들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못한듯
감정을 그 자체로 느끼는 것은 동물들이지
인간이면 감정으로써 자신의 목표 역할 위치를 잡아가는 것이야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사람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렇다고 감정으로 인해 영향받는 표면적 태도를 통제하기 위해 과한 에너지를 쏟는 것도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듦.
사람이 떠오르는 감정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감정을 관조하며 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한데, 그게 사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러한 관조를 위한 생각만 할 때 가능한 얘기인 것.
현실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런식으로 온전히 어떤 변수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태도를 통제하는 것은 꿈같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일 뿐.
그래서 그렇게 속세를 등지고 번뇌를 관조하고 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바쳐 살 사람이 아니고서야 속세에서 사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타고난 형질은 어쩔 수 없으니 그러한 타고난 형질을 통제하는 데에는 최소한의 통제에 필요한 에너지만 할애하고 다음에는 그저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으로 옮기기 위해 사력을 다해 분투하는 것 뿐.
물론 그 타고난 형질이 모범적인 사람은 최소한의 할애 에너지도 더 적어지니 환경 변화를 위해 할애 할 에너지의 크기도 더 커질 것이고, 타고난 형질이 좀 불량한 사람은 최소한의 사회성을 유지하는데 요구되는 최소한의 에너지의 총량도 그만큼 커서 환경변화에 할애할 에너지도 더 적어지는 개인간의 편차가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편차때문에 경쟁에서 좋은 환경으로 가기 위한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동요되는 태도에 대한 통제를 좀 느슨하게 하고 오직 환경을 바꾸기 위한 노력에 극단적으로 할애하는 것도 전략중 하나인 것.
많은 사람들이 괴팍하면서도 부자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욕하지만, 그들은 그저 생존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통제가능한 조건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거고, 그 선택이 맞았을 뿐인 것.
그리고 속세를 머물며 속세에 뜻을 두고 살고 싶으면서도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도 비춰지고 싶은 욕심으로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조건임에도 태도의 통제에 집착하느라 환경을 바꾸기 위한 노력에 에너지를 많이 할애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불리한 조건인 것 같은 사람들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고.
그러나 결국 그러한 생각의 방향이나 실천 등등 과정과 결과의 차이 전부 지능 건강 환경 등등 무수한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일 뿐.
그게 아니라면 맞는 말 한마디로 세상 모두를 구할 수 있어야겠지.
감정을 행동으로 곧장 연결시키지말고 그대로 느끼라는 부분에서는 조금 갸우뚱하게 되네요.
둘은 서로를 촉발하는데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라는 것이 이미 감정을 억제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jparallel292 생각해보니 행동으로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않고 덮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것같네요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예를 들어,
분노를 해야할 상황에서 "내가 뭔가를 했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화내지 말자. 화내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하며 분노라는 감정을 억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반면
감정을 느끼되 행동하지 말라는 건,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왜 화가 났지? 어떤 부분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해서 본인의 현재 상태를 좀더 객관화시켜서 바라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방어기제를 하지말라는 말이죠 화가나면 왜 화난지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파고들필요도없고 상대를 오해하고 원망할필요도없고 화가났구나 라는 그감정을 알차리는게 제일 좋은방향이기 떄문이에요 주지화 투사 인지도식 왜곡 등 여러 인지적왜곡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멈추고 내가 지금느끼는 그감정에 집중하시면되요
원시시대에는 적과 환경,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고 주변을 경계한 인간들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렇게 의심하고 회피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인류는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인간이 된거죠.
그러나 시대가 바뀐 현대에선 오히려 긍정주의가 개인 혹은 인류의 공존과 번영의 요인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고 타당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극단적 감정은 주의해야겠지요.
긍정주의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긍정하는 주의로 정의하고 가르치면 건강하겠죠. 그냥 영상이나 끝까지봅시다.
@@일옥-i3x제 말은 인간은 원래 충분히 부정적이라 시크릿 같은 긍정적 의식을 주입하는 책이 유행했다는 것이죠. 저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을 읽어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스토아철학이 감정을 그저 배제하라고만 가르치는 건 아닐텐데. 문제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문제에서 벗어난다, 라는 단계에 이르려면 우선 문제 속으로 들어가서 바라봐야 하며, 그 냉철한 바라봄이 책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느끼기'와 많이 다를까 싶음. 앞서 저자는 감정을 목적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지 말라고 했는데, 정작 뒤에 가면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더 다각도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 라는 목적을 이야기 함. 그렇다면 스토아철학의 바라봄과 이 저자의 느끼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봄. 스토아철학의 감정에 대한 가르침은, 통제되지 않는 파괴적인 감정을 경계하라, 는 쪽이고, 저자가 부정적 감정을 온전히 느껴라, 라고 하는 것 또한 통제가 이루어진 다음에나 가능한 거임. 그 통제를 위해서 스토아철학에서는 냉철하게 문제(혹은 상황)을 들여다보라고 하는 거.
스토아철학은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 핵심입니다. 아파테이아(apatheia; a- 없이 pathos 욕구,열망), 욕구가 없는 상태를 가장 이상적이라고 바라보았으니 감정을 배제하는 게 행복에 다다르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건 완전한 배제는 아니고, 감정을 이성의 조율하에 두라는 것이며,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나 스피노자 철학에 가까운 것 같네요
감정은 통제되지 않으며(이성은 감정의 노예다) 그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데이비드 흄이나 니체 철학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는 이렇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이 취하고 싶은 만큼 취하면 됩니다.
많은 유명한 철학자들 또는 성인들의 지혜의 말씀들은 그들 자신의 오랜 세월 경험과 고찰로 이어진 결실을 맺은 그들만의 것입니다.
삶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삶이 다양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제가 오랜 세월 살아보진 않았지만
여태껏 제가 겪은 경험들이
유명한 지혜의 말씀들
즉 제 것이 아닌 타인의 경험들과 사색들이
오로지 제 자신의 경험들과 사색들이 만나 결론을 추론하게 될 때
저 자신만의 통찰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어째든 지금까지의 결론은 부정보단 긍정안에 머무는 것이 좋은 것 같더라 입니다.
부정을 못하면 긍정도 못합니다.
둘 다 경험해보세요
삶을 사세요.
즐겁고 기쁘게 사세요.
무겁고 슬프게 사세요.
이 세상은 의심이 약이 되는 세상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맞지 않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물런 깊게 생각해보고 해당 영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본다면 상관 없겠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기때문이죠 제가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을 접해보면서 느낀점슨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짜 '예민'하다는것입니다 그 예민이 좋은 매너도 만들고 성실성도 만들며 안정된 사회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너무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해있다라고도 생각합니다 국민 대다수가 완벽주의자 같은 느낌을 받을때가 많은데 진짜 의미를 모른채 감정에 솔직하라는 문장을 한국인이 문장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냥 혼돈의 한국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
제가 철학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 생각을 적고 싶어서 적어봅니다. 극단적 예외이긴 하지만 보통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위하는 본능에 큰 타격을 입었거나 그 부정적 감정의 크기가 너무나 거대하다면 오히려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와 후자 모두 부정적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의 부재를 의미하며 이는 부정적 감정에 휘말려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고 자살을 하거나 자해나 신체적 불구와 같은 큰 타격을 주는 행위를 할지도 모르기에 이 상태에선 억압이 유일한 그나마 나은 선택이란 겁니다. 억압은 연명을 가능케하고 연명은 억압된 부정적 감정을 훗날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요? 억압은 작전상 후퇴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영상의 내용은 큰 자학적인 부정적 감정에서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동의해요 생존본능때문에 어느정도 억압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기, 질투가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 동시에 제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ㅠㅠ
저도 그랬었는데 어느정도 목표 이루고 나서는 자기혐오 대신 저를 사랑할려고 노력 많이 했던거 같아요
시기, 질투를 '내가 저사람을 이겨야지'라고 받아들이면 자기혐오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나의 욕망이 뭔지 들여다보는 계기로 받아들이면 자기혐오로 가지 않더라고요. 노력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오히려 나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는것 같습니다.
긍정적인거랑 낙관적인거랑 구분을 잘 해야겠네요
부정적 감정 속에서 우울과 함께 살던 내게 길라잡이가 되어주신 충코님께 드리는 말, 사랑해왔어요
제 콘텐츠에서 좋은 기운을 얻으셨다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힘내시고 삶의 길을 지혜롭게 걸어가시길 응원드리겠습니다.
썸네일 ㅋㅋㅋ 왜 적국의 김정은으로 보였던 거지 ㅠ
부정적인 생각은 과학기술,자연현상, 우주에 대한 이해,
양극화 문제 등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비과학적,근거가 불확실 것에 대하여 선동에 빠지고,억지주장하면
안 됩니다 발전을 저해한디고 봅니다
감정의 제대로 된 해소
그러니 힘내라는 말 함부로 하지말아야한다
자아 분열 요
죽은 철학 죽은지식 죽은말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고, 피할 수 없는 큰 고통에서 충격을 줄이기 위해 미리미리 일부러 사서 고통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것을 살면서 느낍니다. 그래서 평소 같았으면 쉽게 회피했을 껄끄러운 사람이 있는 단체 생활도 일부러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가벼운 수치감을 일부러 느끼려 몸을 던집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순간순간 드는 자잘한 부정의 감정에 이성이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내가 의도한 것이니까요. 물론 마음은 당연히 괴롭지만 그것이 경감되고 일상에 지장이 없이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 차이죠.
이게 비공이었군요ㅜㅡㅜ 잘빼셨군요 ㅎㅎ
북한의 김정은은 축복이다 라고 왜 읽혔지 ㅡ.ㅡ
그닥
그냥 부정적 감정 느끼면 아무것도 하기싫고 비관적이게 되니
차라리 아무 생각도 안하고 흐름대로 살아가는 쪽이 더 동기부여가 됨 물론 계획은 해야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게 그 당시 부정적 감정이 원하는 거에요. 생존에 유리합니다
@@빌런을피하자 이게 맞아요. 선사시대라면 이게 유리한 생존 수단이니 인류가 그렇게 진화 한 것이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렇게 살면 바로 히키코모리나 백수 폐인이 되는 지름길이죠. 현대 사회에서 살려면 인류의 본능을 거스르며 살 필요가 생긴거예요. 그걸 깨달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계발서를 쓰고 영상을 만들고 있는거구요
토마슨에 동의하는 나 ㅋㅋ
그리고 상대방에게 배려 해 봐야죠. 조금이라도- 그게 나자신이 될 수 도 있구요
그냥 불교 사상인데....?
궤변이라 봄. 틀린 말이란 얘기 아님! 그러나 이 작가가 말하는 대로 실천하느니 차라리 시기, 질투 등을 아예 끊으려
하는게 더 쉬운 일이라 봄. 금연을 떠올려 보면 거진 자명하다 봄. 끊을라면 확실히 끊어야지 골초가 이제까지는 하루에
세갑 폈지만 오늘 부터는 하루에 3개비만 펴야지라는 거랑 비슷한 상황이라 봄.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끊을 생각해야지
시기나 질투 등을 긍정적인 힘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건 자위 수준도 못되는 자기기만 말장난에 가까운 일이라 봄.
이것저것 떠나 동서고금 어디서나 시기,질투, 분노 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만 봐도 답 나오지 않나?
p.s. 참고로, 나는 이 책을 이미 서점에서 훑어 봤음. 작가의 말발 자체는 나쁘지 않다 보지만 굳이 시간내서 읽기에는... .
힘든일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부정적 감정을 무한히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면모도 바라보며 자아를 확립, 나를 찾아가는 계기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요?
@@Hijjjffkfndjd 그러니까 저는 그게 하루 세갑 골초가 하루에 한두 개비 정도만 피는 건 내가 이 담배를 통제할 수 있는 길이겠지?랑
같은 수준이라는 거죠. 가능만 하면 나쁘지 않다 봅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몇이나 가능할까요?
저도 흡연자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ㅎㅎ
하지만 위 댓글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힘으로 발전시키기는 어렵다는 것” 저는 이부분에서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영상에서는 토마슨이 긍정주의를 반대한다고 언급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정적인 것을 무한히 긍정하라가 아닌 들여다보고 생각하며, 느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一妄一語 이 영상 논지 자체를 착각하고 계시는거예요. 오히려 님 주장 자체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구요. 금연과는 천지차이죠. 사람이 생각이 떠오르는것을 어떻게 끊나요? 생각과 감정이 발생하는 것은 절대 사람이 통제 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냥 선전적인 성격 + 살아온 환경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떠오른 그 후의 반응을 조절하란 것입니다. 시기 질투가 떠오른 후에 그것 자체를 자책하거나 자기 위로 하고 넘기지 말고, 받아 들인 후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으란 이야기죠
@@一妄一語 전문적인 영성 수련자들이나 높은 법력을 가진 스님들도 늘 가르치는게 바로 이겁니다. 생각을 '관조'하라는 것이요. 그런 높은 경지의 명상이 가능한 사람들조차도 생각이 떠오르는 것 그 자체는 절대 막을 수 없다는걸 진작에 깨닫고 있는거죠
좀 머리 아프지만 부정적 감정이든 긍정적 감정이든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말고 그저 바라보는 연습을 하라는 말로 이해하고 갑니다~!
무의식이 현실을 만든다
올라오는 생각들을 바라보고 멘탈리셋 해야합니다
이건 비공개 영상인가요?
이제 공개인가봐요!ㅎㅎ
맞습니다ㅎㅎ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in my hour of darkness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김정은 축복이다
ㅋㅋㅋㅋㅋㅋㅋ 23년도 서울북전시회에서 니 혼자있는 모습을 보고 일말의 동정심을 가젔지만 철학과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끄럽게 현실을 외면하고 있구나
내 마음이 있으려면 내 주체성과 내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 자유를 지멋대로 억누른 현 대통령 그리고 그가 몰고온 현 상황에 대한 철학적 진단 없이 잠자코 있는 충코의 철학,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음 ;; 본인 같은 사람들 몰려올까봐 조심하시는 거 아닐까요 케이지 안에 들어가서 싸우고 싶으면 본인 같은 부류를 찾아요 앞 세울 사람 찾지 말고
정신에 상당히 깊은 병이 들어계신것 같네요
왜 다른 사람들이 본인처럼 느껴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것도 다른 의미에서는 독재 아닌가요?
가수 임영웅씨에게 ‘이 시국에 뭐하냐?’ 하고 메세지로 공격하는 누군가가 생각나네요. 님도 그런 부류인가요?
너무 안타깝네요.
모두가 쉬쉬하는 이유는,
점점 본인들이 가진 것들이 많기에,
그 가진 것들을 잃을 수 없는 위치라서,
양심적으로 현재의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모습들을 그 누구도 ‘비판’을 할 줄 모르는 21세기 남한인들이니;
당연히 남한은 사회주의 및 다시 과거의 생각의 자유를 억압 당한 채 살아가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