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의 시대가 되어서야 성리학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않았지만, 이 성리학이 한반도에 대두되기 시작하던 14세기말 15세기초 즉, 고려말기때는 이것만한 대체제도 없던게 현실이었습니다. 새 왕조를 창업하는데 이전왕조 고려처럼 그나마 과거시험도 없이 가문 혈통빨로 벼슬 물려주기로 기득권 유지하고, 민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야할 승려들은 땡중이 되서 오히려 농민들보다 훨씬많은 대토지를 보유하고, 이들이 백성들을 상대로 세금이란 명목으로 재물들을 돌아가며 갈취하던(또 그것이 법적으로 합법이던) 그 체재를 그대로 가져갈순 없었으니까요.
고려말 신진사대부들 역시 부원파와 불교 등 요소가 얽힌 전횡과 부패로 백성들은 도저히 도탄에서 빠져나올 일말의 희망조차 없으니 이를 대체하고자 민생을 위해 성리학을 새로운 이념으로 삼았겠으나... 후대 조선만의 민생을 위한 대유학으로 발전시킨 것이 아닌 그저 성리학에 나라와 백성을 통째로 갈아넣은게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어떻게 전쟁에서 획득한 포로도 아닌 대다수 자국민을 노예로 만들어 부리며 소수의 양반이라는 책만 읽는 계층을 부양하게 하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일제시대 일본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식민지 청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몇 년간 그냥 놀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사업이라도 해야겠다고 해서 정미소를 차렸습니다. 일본서 수입한 기계가 갑자기 고장나 망할 뻔 했지만 이병철 선대회장이 죽기살기로 연구해 직접 고쳤다고 합니다. 이후 정미소 사업이 크게 번창하기 시작했는데 조선인따위가 감히 지 분수를 모르고 '와'를 깬다고 해서 일제가 굉장히 못 마땅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이걸 핑계로 일제가 정미소를 몰수해 버렸습니다. 이에 크게 상심한 이병철 선대회장은 만주를 방황하다 다시 돌아와 대구 서문시장 구석에 '삼성상회'란 이름의 국수공장을 차렸습니다. 이 초라한 국수공장이 바로 오늘날 삼성전자의 효시입니다. 아마 해방이 되지 않았으면 이병철 선대회장은 평생 국수공장만 했을 것입니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나라가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겪었고 그래서 삼성그룹의 사훈이 사업보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할 사항이 있는데, 이렇게 어렵게 차지한 식민지로 일본은 이익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식민지를 위해 많은 지출을 해야 했고 결국 이게 패망까지 굴러가게 하는 굴레의 시작이었죠. 식민지 사업으로 이익을 본 국가는 영국 뿐이었고, 그것도 인도라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을 간접 통치를 통해 군비를 최대한 축소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조선은 전초기지+여차하면 노동력 인력 뽑아쓰려고 했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식민지를 수립한 것이지 진짜 쓸모없다고 생각했으면 자기네끼리 볶아먹게 놔두거나 위험을 감수할 리스크를 안을 필요가 없음 근데도 리스크를 감수했다는 것은 대륙세력이 반도를 장악해서 자기네 본토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예방전쟁+방파제 겸 해양에서 대륙으로 세력을 투사하고자 한 일본의 계산이 영일동맹 가쓰라-테프트 조약등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게 된 상황 운이 따라줬기 때문이라고도 봅니다.
알고 싶었던 내용. 여러번 보게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
체코는 그렇게 우리와 인연이 있었군요. 독립운동사에서 뜸금없이 체코제 무기가 등장해서 좀 황당했어요
정말 어떤 찬사도 부족한 최고의 다큐영상. 그 어떤 방송 다큐보다도 훨씬 더 수준이 높고 모든 국민이 반드시 보아야 되는 영상입니다.
풉
명심하겠습니다. 기회의 땅!
아름다운 영상 그리고 심도있는 내용… 최고의 방송에 경의를 표합니다 ❤. 현재의 우리 상황에
타산지석이 되었으면합니다. 😢
우리은 왜 학교에서 이런 중요한 사실을 배우지 못 할까요??
일본에 민주주의가 어딧어??ㅋㅋ 그냥 막부체제의 다른 모습이지...
철도도 만주진출용, 2차대전군량미수송용 목적으로 만든 것이지 . . .
조선(대한민국)인들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지 . . .
의도가 어찌됬든 일시적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건 맞지 다만 625때 다 부서져서 해방 이후 경제에 도움이 된건 아니고
뭐가 도움이 됐다는거냐 만주 침략용 군량미 수송용이라고 써놨구만은. 미안하지만 저건 우리나라 침탈용이야 정신차려라
@@user-dh8or6st5k침탈의 도구를 만든 일본에 감사해야하는지 ?
@@선인장-t2m 감사해야 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했는데 왜 과대해석 하세요 그냥 일본이 우리나라에 철도를 건설했고 이로 인해 당시 한국의 gdp자체가 성장했다는건 사실이잖아요 물론 이런 인프라는 625때 거의 초기화 되었지만
영국과 러시이아의 대륙패권싸움때문에 영국이 일본을 밀어준거때문이죠
2찍들은 이런걸 볼까 싶다. 물론 봐도 읿종이 되겠지만
제2의 형제국가가 체코였네요.
체코군단의 독립군지원 및 한민족의 사랑은 영원할겁니다.
늦게나마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한말의 시대가 되어서야 성리학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않았지만, 이 성리학이 한반도에 대두되기 시작하던 14세기말 15세기초 즉, 고려말기때는 이것만한 대체제도 없던게 현실이었습니다. 새 왕조를 창업하는데 이전왕조 고려처럼 그나마 과거시험도 없이 가문 혈통빨로 벼슬 물려주기로 기득권 유지하고, 민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야할 승려들은 땡중이 되서 오히려 농민들보다 훨씬많은 대토지를 보유하고, 이들이 백성들을 상대로 세금이란 명목으로 재물들을 돌아가며 갈취하던(또 그것이 법적으로 합법이던) 그 체재를 그대로 가져갈순 없었으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성리학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성리학을 교조주의 또는 원리주의로 믿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의 개독들처럼...
고려말 신진사대부들 역시 부원파와 불교 등 요소가 얽힌 전횡과 부패로 백성들은 도저히 도탄에서 빠져나올 일말의 희망조차 없으니 이를 대체하고자 민생을 위해 성리학을 새로운 이념으로 삼았겠으나...
후대 조선만의 민생을 위한 대유학으로 발전시킨 것이 아닌 그저 성리학에 나라와 백성을 통째로 갈아넣은게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어떻게 전쟁에서 획득한 포로도 아닌 대다수 자국민을 노예로 만들어 부리며 소수의 양반이라는 책만 읽는 계층을 부양하게 하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농경집단 사회에 적합했던게 성리학.
개인 스스로의 권리와 책임이 중요해지던 근현대 시대에 와서 폭망.
내용은 댔고요.인트로 목소리..후 ㄷㄷㄷ.먼 불여시가 오셨댜.(불여시=큰칭찬임)
이런 퀄리티가..3프로 딴 가쉽하곤 차원이 다르죠..
외교에 대한 인식이 전혀없는 얼간이가 나라의 운명을 흔들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미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특히 외교에서 일어나고 있는데...참으로 우려스럽습니다.
똠방각하의 실정이 국운을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외교가 어렵죠 국민정서와 외교적 실익이 서로 충돌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외교를 할 때 국민의 지지와 외교적 실익 중 한가지를 버려야 하는 나라죠
결국은 자기들 기득권싸움인거지 정의 뭐이런건 그냥 그이후 이유잡는거거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일제시대 일본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식민지 청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몇 년간 그냥 놀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사업이라도 해야겠다고 해서 정미소를 차렸습니다. 일본서 수입한 기계가 갑자기 고장나 망할 뻔 했지만 이병철 선대회장이 죽기살기로 연구해 직접 고쳤다고 합니다. 이후 정미소 사업이 크게 번창하기 시작했는데 조선인따위가 감히 지 분수를 모르고 '와'를 깬다고 해서 일제가 굉장히 못 마땅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이걸 핑계로 일제가 정미소를 몰수해 버렸습니다. 이에 크게 상심한 이병철 선대회장은 만주를 방황하다 다시 돌아와 대구 서문시장 구석에 '삼성상회'란 이름의 국수공장을 차렸습니다. 이 초라한 국수공장이 바로 오늘날 삼성전자의 효시입니다. 아마 해방이 되지 않았으면 이병철 선대회장은 평생 국수공장만 했을 것입니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나라가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겪었고 그래서 삼성그룹의 사훈이 사업보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 대기업들의 효시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세운 회사를 일본 패전 후 압수해서 한국인들에게 나눠준것입니다.
삼성은 미츠코시 백화점과 동방생명이었습니다.(후에 이름을 신세계와 삼성생명으로 바꿈)
사실을 곡해는 하지 맙시다.
일본 민주주의 군국주의 🤬😤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할 사항이 있는데, 이렇게 어렵게 차지한 식민지로 일본은 이익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식민지를 위해 많은 지출을 해야 했고 결국 이게 패망까지 굴러가게 하는 굴레의 시작이었죠. 식민지 사업으로 이익을 본 국가는 영국 뿐이었고, 그것도 인도라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을 간접 통치를 통해 군비를 최대한 축소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조선을 위해 식민 통치를 했다는건가요? 말도 안되는 소리를..
@@hhjo416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 하지말고. 그렇게 부귀 영화를 누릴 것 처럼 악착 같이 식민지를 쥐어 짜지만 결국 다 처음부터 헛된 지꺼리였다는게 결론이 되어야지 어떻게 그쪽이 결론이 될 수 있소?
어차피 조선은 전초기지+여차하면 노동력 인력 뽑아쓰려고 했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식민지를 수립한 것이지 진짜 쓸모없다고 생각했으면 자기네끼리 볶아먹게 놔두거나 위험을 감수할 리스크를 안을 필요가 없음 근데도 리스크를 감수했다는 것은 대륙세력이 반도를 장악해서 자기네 본토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예방전쟁+방파제 겸 해양에서 대륙으로 세력을 투사하고자 한 일본의 계산이 영일동맹 가쓰라-테프트 조약등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게 된 상황 운이 따라줬기 때문이라고도 봅니다.
@@hhjo416근데 조선 총독부는 단 한번도 흑자였던 적이 없음 경제적 의도보다는 노동력 확보와 대륙진출 교두보 확보, 조선의 산업화를 통한 병참 기지화의 의도가 있던거지
조선은 워낙 가난해서 가져갈 것이 없었던 것이지요. 일본화 하려는 과정에 흑자가 안난 것이지요. 초기투자시 적자가 나는 기간이었습니다.